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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책하는 강아지가 미치도록 좋아할 때가 있다. 이른 아침, 아직 이슬이 마르기 전에 동네 앞 야산을 산책할 때다. 비가 그친 직후면 더 ‘환장’한다. 온갖 풀잎의 냄새를 맡고, 온몸을 비비고 땅에 구르는데 마치 디즈니랜드에서 미키마우스를 만난 아이들 같다고 할까. 야생동물 생물학자로 일하다 ‘향기’의 매력에 빠져 천연 조향사로 전업한 저자가 다채로운 향기를 내는 식물에 관해 쓴 책이다. 식물도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향과 몰약, 향신료, 향수 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역사와 문화, 생태, 산업, 첨단 기술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인류의 문화사에서 ‘향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 가장 유명한 향수 중 하나인 샤넬 No.5는 분리된 향기 분자의 효과에 의존한 최초의 향수는 아니지만, 현대 향수의 상징이 되었다. 꽃향기가 나는 여성에게 염증을 느낀 코코 샤넬은 자신을 위해서 1920년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환상의 향수 제작을 의뢰했다. 그녀가 원한 향수는 여성스러우면서 깨끗하고 우아한 향이 나고, 진취적인 여성들에게 팔릴 만한 향수였다.”(12장 ‘향기의 세계: 산업과 패션’에서) 분명 ‘향기 나는 식물’에서 시작된 이야기인데 읽다 보면 선사 시대부터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식물과 이어진 사람들의 신앙과 권력, 부, 중독, 혐오, 패션 등 온갖 모습을 보게 된다. 저자는 식물이 향기를 만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 동물과 포식자인 나방, 딱정벌레, 세균과 곰팡이, 꿀벌과 파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내는 향기로 꽃가루 매개 동물을 끌어들이고, 질병과 싸우고, 초식동물을 쫓아내는 등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도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가 있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누군가의 것은 향기로, 누군가의 것은 냄새라고 불린다. 앞에 ‘좋은’ ‘맑은’이란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 ‘고약한’이 붙는 사람도 있다. 향기로웠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추한 냄새를 내는 사람으로 바뀌고, 그 반대도 허다하다. 지금 향기를 내고 있는가, 아니면 냄새를 피우고 있는가. 어느 쪽인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저출생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라가 사라집니다. 나라가 없는데 교회는 있을 수 있습니까?”4일 서울 동작구 CTS기독교TV에서 만난 감경철 저출생대책국민운동본부 본부장(CTS기독교TV 회장)은 “본업보다 출산 장려 운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란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저출생대책국민운동본부는 2022년 8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 지도자가 모여 발족한 민간단체로, 올 1월 교회 등 종교시설에서도 영유아 돌봄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국토교통부령 제1439호)을 개정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감 본부장은 “지난해에만 전국에서 어린이집이 2000곳 가까이 문을 닫았고, 어린이집이 한 곳도 없는 읍면동이 600여 곳에 이른다”며 “아이를 낳아도 맡길 곳이 없으니 출산을 꺼리고, 아이가 없으니 다시 어린이집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시설을 영유아 돌봄 시설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특히 교회는 읍면동, 작은 마을까지 대부분의 지역에 있고, 예배나 목회 활동이 없는 시간에는 사실상 비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를 활용하자는 것. 그는 “수요가 없는 곳에 민간 어린이집이 생길 리도 없고, 그렇다고 국가가 하면 전국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종교기관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수익 문제로 폐원할 염려도, 신자들이 다 주민이니 이전할 우려도 없다”고 말했다.감 본부장은 1일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총연합회 초청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요즘 전국을 돌며 법령 개정 사실을 알리고 교회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개정 법령은 교회가 영유아뿐만 아니라 노약자, 장애인도 돌볼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종교시설이 아닌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종교시설을 용도 변경해야 했는데, 이제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죠. 교회로서도 더 수월하게 지역 사회와 주민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이기도 합니다.”그는 19년 전인 2006년 ‘생명과 희망의 네트워크’, 2010년 출산장려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하며 저출생 극복 운동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인구 감소가 국가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저출생대책국민운동본부(2022년), ‘행복한 출생 든든한 미래’(2023년)를 잇달아 발족했고,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 때는 저출생 대책 정책 제안서를 만들어 각 정당에 전달했다. 올 1월 종교시설 내 아동 돌봄이 가능해진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다.감 본부장은 “저출생은 주거와 보육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며 “주거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보육은 우리 같은 종교기관과 민간에서도 충분히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과 종교시설 활용 등 민간 영역을 함께 아우른다면 저출생 문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저출생을 극복하지 못 하면 나라가 사라집니다. 나라가 없는데 교회는 있을 수 있습니까?”4일 서울 동작구 CTS기독교TV에서 만난 감경철 저출생대책국민운동본부 본부장(CTS기독교TV 회장)은 “본업보다 출산 장려 운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저출생대책국민운동본부는 2022년 8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우리 사회 각 분야 지도자가 모여 발족한 민간단체로, 올 1월 교회 등 종교시설에서도 영유아 돌봄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국토교통부령 제1439호)을 개정하는데 산파 역할을 했다.감 본부장은 “지난해에만 전국에서 어린이집이 2000곳 가까이 문을 닫았고, 어린이집이 하나도 없는 읍면동도 600여 곳에 이른다”라며 “아이를 낳아도 맡길 곳이 없으니 출산을 꺼리고, 아이가 없으니 다시 어린이집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종교시설을 영유아 돌봄 시설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특히 교회는 읍면동, 작은 마을까지 대부분의 지역에 있고, 예배나 목회 활동이 없는 시간에는 사실상 비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를 활용하자는 것. 그는 “수요가 없는 곳에 민간 어린이집이 생길 리도 없고, 그렇다고 국가가 하면 전국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든다”라며 “종교기관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수익 문제로 폐원할 염려도, 신자들이 다 주민이니 이전할 우려도 없다”라고 말했다.감 본부장은 1일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총연합회 초청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요즘 전국을 돌며 법령 개정 사실을 알리고 교회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개정 법령은 교회가 영유아뿐만 아니라 노약자, 장애인도 돌볼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종교시설이 아닌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종교시설을 용도 변경해야 했는데, 이제는 일정 요건만 갖추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죠. 교회로서도 더 수월하게 지역 사회와 주민에 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이기도 합니다.”그는 19년 전인 2006년 ‘생명과 희망의 네트워크’, 2010년 출산장려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하며 저출생 극복 운동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인구 감소가 국가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저출생대책국민운동본부(2022년), ‘행복한 출생 든든한 미래’(2023년)를 잇따라 발족했고,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 때는 저출생 대책 정책 제안서를 만들어 각 정당에 전달했다. 올 1월 종교시설 내 아동 돌봄이 가능해진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다.감 본부장은 “저출생은 주거와 보육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라며 “주거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보육은 우리 같은 종교기관과 민간에서도 충분히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과 종교시설 활용 등 민간 영역을 함께 아우른다면 저출생 문제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일본이 우리처럼 부처님을 진심으로 아끼며 관리할지 걱정이에요. 또 전처럼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는 않을지….”지난달 31일 충남 서산 부석사(浮石寺). 이날 사찰은 ‘금동관세음보살좌상(사진) 100일 친견 법회’가 열리고 있어 647년 만에 귀향한 부처님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고려 시대(14세기) 제작된 높이 50.5cm, 무게 38.6kg의 이 불상은 2012년 한국인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섬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 와 팔려다 적발됐다. 이후 일본 측과 소유권 다툼 끝에 2023년 10월 대법원 판결로 돌려주기로 결정됐으나, 반환 전 불상을 모시고 법회를 열고 싶다는 부석사 측 요청으로 1월 25일부터 5월 5일까지 100일 친견 법회가 열리고 있다. 부석사 주지인 원우 스님은 “이제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일본 측은 어디에 부처님을 모실지 결정도 못 한 상태”라고 답답해했다. ―애초 쓰시마섬 시립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지난달 25, 26일 친견 법회 상황을 알리고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일본에 가 쓰시마시와 박물관 관계자들을 만났어요. 저도 시립 박물관에 모시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간논지 주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하더군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박물관을 원하는데, 지역 주민들은 간논지에 모시길 바란다는 거예요.” ―간논지는 무인 사찰 아닙니까.“상주하는 스님이 없는 사찰이지요. 주지도 다른 절 주지가 간논지 주지를 겸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곳에 부처님을 모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2012년 도난도 그렇게 허술하게 방치했다가 벌어졌는데…. 그런데 관리·보관 면에서는 박물관이 낫겠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그것도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요.“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는 취득 입증 책임이 소장자에게 있어요.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돌려줘야 하거든요. 일제강점기 때 유출돼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있다가 80여 년 만인 지난해 4월 돌아온 석가불 진신사리(眞身舍利·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사리)와 나옹·지공 선사 사리가 같은 경우죠. 박물관에 보관하면 오히려 한국에 돌려줄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니까요.” ―우리 대법원이 일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타인의 물건이라도 일정 기간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인정했는데, 그것과 약탈 문화재 반환은 별개니까요. 앞서 말한 석가불 진신사리도 취득 시효만 따지면 돌려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대법원 판결이 난지 꽤 됐는데, 정부 차원의 환수 노력은 있었습니까.“아무것도 들은 게 없어요. 대법원 판결과 약탈 문화재 환수 노력은 별개인데…. 반환 절차도 원래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갔다가 거기서 일본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연구원은 빠지는 것으로 변경됐어요. 어차피 갈 것인데 괜히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그래도 우리 문화재인데 좀 더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하지요.”서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일본이 우리처럼 부처님을 진심으로 아끼며 관리할지 걱정이에요. 또 전처럼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는 않을지….”지난달 31일 충남 서산 부석사(浮石寺). 이날 사찰은 ‘금동관세음보살좌상 100일 친견 법회’가 열리고 있어 647년 만에 귀향한 부처님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고려 시대(14세기) 제작된 높이 50.5cm, 무게 38.6kg의 이 불상은 2012년 한국인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섬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 와 팔려다 적발됐다. 이후 일본 측과 소유권 다툼 끝에 2023년 10월 대법원 판결로 돌려주기로 결정됐으나, 반환 전 불상을 모시고 법회를 열고 싶다는 부석사 측 요청으로 1월 25일부터 5월 5일까지 100일 친견 법회가 열리고 있다. 부석사 주지인 원우 스님은 “이제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일본 측은 어디에 부처님을 모실지 결정도 못 한 상태”라고 답답해 했다.―애초 쓰시마섬 시립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지난달 25, 26일 친견 법회 상황을 알리고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일본에 가 쓰시마시와 박물관 관계자들을 만났어요. 저도 시립 박물관에 모시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간논지 주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하더군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박물관을 원하는데, 지역 주민들은 간논지에 모시길 바란다는 거예요.”―간논지는 무인 사찰 아닙니까.“상주하는 스님이 없는 사찰이지요. 주지도 다른 절 주지가 간논지 주지를 겸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곳에 부처님을 모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2012년 도난도 그렇게 허술하게 방치했다가 벌어졌는데…. 그런데 관리·보관 면에서는 박물관이 낫겠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그것도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요.“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는 취득 입증책임이 소장자에게 있어요.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돌려줘야 하거든요. 일제강점기 때 유출돼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있다가 80여 년 만인 지난해 4월 돌아온 석가불 진신사리(眞身舍利·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사리)와 나옹·지공 선사 사리가 같은 경우죠. 박물관에 보관하면 오히려 한국에 돌려줄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니까요.”―우리 대법원이 일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타인의 물건이라도 일정 기간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시효’ 법리에 따라 인정했는데, 그것과 약탈 문화재 반환은 별개니까요. 앞서 말한 석가불 진신사리도 취득시효만 따지면 돌려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간논지가 사적으로 소유하면 그런 문제는 없지만 보관 문제가 있으니…. 그래서 일본 측이 결정을 못 하는 것 같아요.”―요즘 산불이 심각한데,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이 지역은 아직 산불 피해는 없는데,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받다 보니 소방서와 함께 대피 훈련도 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어요. 밤에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문도 잠가 놓고요. 그런데, 한밤중에 몰래 절에 와 자물쇠를 열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그래서 방화도 대비할 겸 폐쇄회로(CC)TV를 20개 넘게 설치하고 경보 시스템도 설치했지요.”―대법원 판결이 난지 꽤 됐는데, 정부 차원의 환수 노력은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들은 게 없어요. 대법원 판결과 약탈 문화재 환수 노력은 별개인데…. 반환 절차도 원래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갔다가 거기서 일본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연구원은 빠지는 것으로 변경됐어요. 어차피 갈 것인데 괜히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그래도 우리 문화재인데 좀 더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하지요.”서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사람의 눈은 파장이 380∼750nm(나노미터)인 가시광선(可視光線) 영역만 인식할 수 있다. 이 파장 밖을 사람은 볼 수 없지만 다른 생물, 예를 들어 벌과 같은 곤충은 자외선을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적외선을 볼 수 있다면, 사람은 야간 투시경으로 보는 것처럼 붉은 열기의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진짜 피부색은 뭘까? 지금 눈에 보이는 색이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와 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가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을 이야기한 것이다. 저자들은 인간이 우주를 인식하는 방식을 별과 별자리에 비유한다. 서로 몇천, 몇억 광년 떨어진 별을 자의적으로 연결해 별자리를 그리고, 이렇게 인간에게 유의미한 ‘시그널’만 추출해 자연을 이해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공기의 진동을 통해 전파되는 ‘소리’는 지구라는 행성 전체에 늘 존재하는데, 우리는 별자리처럼 그중 8음계 또는 12음계만 따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보면 사카모토의 음악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보다는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그 경계를 넘어 인생과 세상에 관해 말하는 철학에세이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따로 음악을 틀지 않아도 읽는 내내 사카모토의 음악이 들리는 기분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담임목사가 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동맹 강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회’에서 뉴저지주 의회로부터 ‘공동입법 결의문’(Joint Legislative Resolution) 정본을 전달받았다.뉴저지주 상·하원 120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 결의문은 한미동맹 및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 온 이 목사의 헌신을 뉴저지주 의회가 높이 평가해 공식 표창한다는 내용이다. 뉴저지 상·하원 결의안은 뉴저지주 의회가 수여하는 최고 수준의 공적 표창으로, 각 분야에서 도덕적 권위와 사회적 공헌이 탁월한 인사에게 수여된다. 이 목사는 이날 한미동맹 강화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미국 연방하원으로부터 감사증(Commendation)도 받았다. 이 목사는 수상 소감에서 “한국교회는 이제 세계를 섬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고, 진리와 사랑으로 인류 공동체의 회복에 앞장서야 할 때”라며 “특히 한미동맹에 대한 신앙적·사회적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앞으로 양국의 연대와 평화 기도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들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모두)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언과 행동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헌재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예고하자 원로 및 전문가들은 1일 헌재 결정에 대한 조건 없는 승복을 강조했다. 초유의 12·3 비상계엄과 장기화된 탄핵 정국으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분노한 민심이 헌재 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사회 지도자부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 지도자들이 통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놓는 등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민 통합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복하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 맞을 것” 원로들은 탄핵 찬반 세력과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한국 사회의 갈등이 위험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진단했다. 헌재 심의가 길어진 것도 양측이 세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 양측이 자제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시민들이 계속 광장으로 달려 나오는 건 위험천만하다”고 했다. 그는 “탄핵이 인용되면 반대 측에서 항의 집회를 벌이는 등 소요가 일 것”이라며 “대선에 후보를 내 정상적으로 선거를 하고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나지 않으면 혼란이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모든 결과를 다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그런 경우엔 사태가 폭동으로 번질 위험마저 있다”며 “대통령이 임기 단축과 개헌을 시도한다고 해도 엄청난 논쟁을 불러올 것인데, 얼마나 동의를 얻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손 교수는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폭력이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속이 쓰릴지언정 받아들여야 한다. 한번 결정된 헌재 판결을 무리하게 바꾸겠다면 남는 것은 폭력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agree to disagree)’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대한 이해와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정이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나 국민들한테 필요하다”며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의 승복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선고 당일) 여야 지도부에서 승복한다는 공식 성명부터 내야 한다”며 “(국민들이 승복하게 만들기 위해선) 차기 주자들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게 통합 얘기를 자꾸,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 “이제 통합의 시간이 돼야” 국민 분열이 극심해진 현 상황에 대해 정 회장은 “한쪽에서는 다수결, 한쪽에서는 거부권 등으로 힘의 논리를 자제하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헌재의 결과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 서로 유도하기 위해 지금 양쪽에서 텐트를 치고 장외 정치를 하는 이런 모습은 민주국가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선고날인 4일 ‘국가를 걱정하는 원로 모임’에서 국민들은 평상으로 돌아가고 정치인도 원내로 돌아가라고 권면할 예정”이라며 “탄핵심판 이후 국민통합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법적 판단과 별개로 모든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전쟁이나 전시에 준하는 상황도 아닌데 계엄을 선포하고 총을 든 군인을 국회로 보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탄핵 반대 쪽은 헌재의 결과에 승복하고 특히 일부 지도자들은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난입과 같은 일이 초래되지 않도록 지지층 결집 메시지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헌 등을 통한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교수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정부 여당과 의회 권력 간의 극한 대립이 계엄이라는 불덩이를 만나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됐다”며 “이번 사태를 정당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전기로 삼아아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위성정당을 불러온 현행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다당제의 정착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나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강 교수도 “헌재 결정이 또 다른 갈등이나 극단적 대결로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정치제도의 개혁이나 개헌 논의도 나오고 있는데 승자독식 구조를 깨고 포용적 형태의 국정 운영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왜곡된 정보가 증폭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한국 불교가 1700년 역사라면 비구니의 역사도 1700년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비구니 역사를 정리하거나 기록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지요. 불교계 안에서도 신라 최초의 출가자가 남성이 아닌 여성인 사씨(史氏) 스님이란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 불교 1700년 역사상 최초로 비구니의 활동과 역사를 정리한 책 ‘역사 속 한국 비구니’가 나왔다.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가 출간한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뛰어난 비구니들을 발굴하고 활동을 정리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법룡사에서 만난 수경 스님은 “세계 여성불교 역사에서 천년이 넘는 비구니 역사를 중단없이 이어온 나라는 한국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라며 “그 유구한 역사를 이어받아 미래로 가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라고 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 수석부회장인 그는 이 책의 기획부터 출간까지 산파 역할을 했다. ―외람됩니다만,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비구니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조계종 스님이 1만1000여 명 정도인데 비구니가 50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잘 드러내지 않아서 많은 줄을 사람들이 잘 모르지요. 지금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당나라 때 편찬한 주서(周書) 이역열전 ‘백제’ 편에는 ‘남승과 여승, 절과 탑은 매우 많으나 도교의 도사는 없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비구와 더불어 비구니가 나란히 거론될 만큼 백제에 비구니가 많았다는 방증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비구니에 관해 기록된 책이 없었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예를 들어 고려는 불교가 국교일 정도로 불교문화의 황금기였지만, 광종 때 승과제를 도입하면서 응시 자격을 비구에게만 줬어요. 비구니는 공식적으로 활동할 여지가 없었던 거죠. 교단도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더 입지가 줄었고요. 지금도 구술을 듣기 위해 찾아뵈면 ‘굳이 상(相)을 세우려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비구니 스님이 많아요.” ―‘상을 세운다’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상에는 ‘드러낸다’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엔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과시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조용히 수행과 자기가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되지, ‘내가 누구다’ ‘어떤 일을 했다’ 하고 드러내는 것을 수행자로서 가벼운 처신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이런 생각에 심지어 윗대 스님들의 자료를 불태운 경우도 있지요.” ―기록이 그리 없으면 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20여 년 전인 1999년 중앙승가대 교수였던 본각 스님(전 전국비구니회장)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당시 외부에서 근세 비구니 스님에 관한 자료를 요청받았는데, 찾아 보니 자료가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자비로 한국비구니연구소를 설립하고, 제자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자료를 찾고 원로 비구니 스님에게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어 녹음하고 정리한 거죠. 이런 밑바탕이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구니 기록이 거의 없었던 데는 남성 중심 문화의 영향도 컸던 건가요.“아니라고 말할 순 없겠지요. 지금도 주요 보직이나 원로회의 의원 자격은 ‘비구’로 한정돼 있어요. 과거보다 늘기는 했지만, 중앙종회 의원 81명 중 비구니는 10명뿐이지요. 아무래도 공적인 지위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기록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가려져 왔던 뛰어난 비구니 스님들과 그들의 활동을 기록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테고, 남성 중심 문화도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이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한국 불교가 1700년 역사라면 비구니의 역사도 1700년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비구니 역사를 정리하거나 기록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지요. 불교계 안에서도 신라 최초의 출가자가 남성이 아닌 여성인 사씨(史氏) 스님이란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한국 불교 1700년 역사상 최초로 비구니의 활동과 역사를 정리한 책 ‘역사 속 한국 비구니’가 나왔다.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가 출간한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역사 속에 묻혀있던 뛰어난 비구니들을 발굴하고 활동을 정리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법룡사에서 만난 수경 스님은 “세계 여성불교 역사에서 천년이 넘는 비구니 역사를 중단없이 이어온 나라는 한국 외에 찾아보기 어렵다”라며 “그 유구한 역사를 이어받아 미래로 가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라고 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전국비구니회 수석부회장인 그는 이 책의 기획부터 출간까지 산파 역할을 했다.―외람됩니다만,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비구니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조계종 스님이 1만1000여 명 정도인데 비구니가 50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잘 드러내지 않아서 많은 줄 사람들이 잘 모르지요. 지금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당나라 때 편찬한 주서(周書) 이역열전 ‘백제’ 편에는 ‘남승과 여승, 절과 탑은 매우 많으나 도교의 도사는 없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비구와 더불어 비구니가 나란히 거론될 만큼 백제에 비구니가 많았다는 방증 아닌가 싶습니다.”―그럼에도 비구니에 관해 기록된 책이 없었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예를 들어 고려는 불교가 국교일 정도로 불교문화의 황금기였지만, 광종 때 승과제를 도입하면서 응시 자격을 비구에게만 줬어요. 비구니는 공식적으로 활동할 여지가 없었던 거죠. 교단도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더 입지가 줄었고요. 지금도 구술을 듣기 위해 찾아뵈면 ‘굳이 상(相)을 세우려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비구니 스님이 많아요.”―‘상을 세운다’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상에는 ‘드러낸다’라는 뜻이 있는데, 여기엔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과시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조용히 수행과 자기가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되지, ‘내가 누구다’ ‘어떤 일을 했다’하고 드러내는 것을 수행자로서 가벼운 처신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이런 생각에 심지어 윗대 스님들의 자료를 불태운 경우도 있지요.”―기록이 그리 없으면 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20여 년 전인 1999년 중앙승가대 교수였던 본각 스님(전 전국비구니회장)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당시 외부에서 근세 비구니 스님에 관한 자료를 요청받았는데, 찾아보니 자료가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자비로 한국비구니연구소를 설립하고, 제자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자료를 찾고 원로 비구니 스님에게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어 녹음하고 정리한 거죠. 이런 밑바탕이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비구니 기록이 거의 없었던 데는 남성 중심 문화의 영향도 컸던 건가요.“아니라고 말할 순 없겠지요. 지금도 주요 보직이나 원로회의 의원 자격은 ‘비구’로 한정돼 있어요. 과거보다 늘기는 했지만, 중앙종회 의원 81명 중 비구니는 10명뿐이지요. 아무래도 공적인 지위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기록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가려져 왔던 뛰어난 비구니 스님들과 그들의 활동을 기록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테고, 남성 중심 문화도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이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다음 달 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봉축점등식을 시작으로 서울 전역에 연등불이 켜진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다음 달 1일부터 5월 5일 부처님오신날까지를 ‘불교의 달, 마음 평안의 달’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선보인다. 다음 달 1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2025 국제선명상대회’ 개막식이 열린다. 6일까지 열리는 대회의 주제는 ‘선명상을 통한 마음의 평안, 세계평화’다. 미륵대불을 활용한 ‘세계평화’ 기원 미디어아트와 선명상 음악회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2일 광화문 봉축점등식을 시작으로 종로 조계사 권역과 봉은사 권역에서도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조계종 측은 “서울의 대표 핫플레이스에서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없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전했다. 3∼6일에는 코엑스에서 ‘너의 깨달음을 찾아라!’를 주제로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개최된다. 조계사에선 14∼20일 국민 대화합과 국운 융성을 발원하는 ‘담선대법회’도 열린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는 설사 수백억 달러가 든 연구가 실패해도 연구자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고 한다. 그 연구에 대해 가장 많은 경험과 지식을 얻고, 고민을 한 사람이 바로 그 ‘실패한 연구자’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자도 ‘그’라는 것이다. 오늘날 NASA가 항공 우주 분야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 것은 이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철학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두려워만 하지 않으면,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날 저절로 성공하는 건가.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뭘, 어떻게 배워야 하는 걸까. 2021년 문을 연 ‘카이스트(KAIST) 실패연구소’가 3년여에 걸쳐 KAIST 학생들은 물론이고 세대와 분야를 넘어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았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실패에서 배우기’가 쉽지 않은 것은 개인의 의지나 능력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것을 방해하는 사회 구조와 문화에 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한국 사회 노동시장이나 입시 제도 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직업이나 좋은 학벌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면 경쟁에서 도태된 루저가 자기 처지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래서 내가 만난 많은 청년은 눈앞의 부조리에 관심을 끊고 더 좋은 회사, 더 높은 지위, 더 좋은 타이틀과 학위 등 자격을 갖추는 일에 계속 몰두했다.”(2장 ‘실패 캠페인의 이상과 현실’에서) 굳이 남의 일을 예시로 들 필요도 없다. “(문제가 있으면) 성공해서 네가 바꿔”, “된 다음에 얘기해”라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듣고, 또 하며 살았는지. ‘실패에서 배우라’고 하지만 곱씹어 보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배울 수 있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개인적으로는 전부)의 실패 이야기는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 이순신 장군 같은 어마어마하게 ‘성공한’ 사람들이 겪은 실패 이야기이니 말이다. 성공한 뒤에 재구성된, ‘수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극복했습니다’라는 말에서 무엇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을까. 저자들은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실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강조하거나 일시적인 캠페인 등 단편적인 접근만으로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성공한 사람의 실패 이야기나 교훈을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기존 방식이 ‘실패’라는 것을 깨닫고 얻은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실패연구소도 실패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이다.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메뉴 선정의 실패’조차 겪기 싫어서 늘 먹는 것만 먹고, 가는 곳만 가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자기 행동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부제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한국 사회 실패 탐구 보고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다음 달 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봉축점등식을 시작으로 서울 전역에 연등불이 켜진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다음달 1일부터 5월 5일 부처님오신날까지를 ‘불교의 달, 마음 평안의 달’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선보인다.다음 달 1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2025 국제선명상대회’ 개막식이 열린다. 6일까지 열리는 대회의 주제는 ‘선명상을 통한 마음의 평안, 세계평화’이다. 미륵대불을 활용한 ‘세계평화’ 기원 미디어아트와 선명상 음악회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2일 광화문 봉축점등식을 시작으로 종로 조계사 권역과 봉은사 권역에서도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조계종 측은 “서울의 대표 핫플레이스에서 가족 나들이나 데이트코스로 손색없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전했다.3~6일에는 코엑스에서 ‘너의 깨달음을 찾아라!’를 주제로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개최된다. 조계사에선 14~20일 국민 대화합과 국운 융성을 발원하는 ‘담선대법회’도 열린다. 전국 57개 사찰에선 7~20일 2030세대를 대상으로 1만 원으로 템플스테이에 참여할 기회도 제공한다. 접수는 1일부터 템플스테이 홈페이지(www.templestay.com)에서 할 수 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906년 프랭클린 윌리엄스 선교사(1883∼1962)가 충남 공주에 기독교 사립학교인 영명학교를 세웁니다. 8년 후인 1914년 이 학교에 당시 12세이던 유관순 열사가 입학하지요. 100여 년 전 이 땅에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은 그렇게 대한민국이 독립하고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서만철 한국선교유적연구회장) 한국 기독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김종혁 목사) 지도부가 24, 25일 전북 군산, 충남 논산·공주 일대의 기독교 근대 문화유산 탐방에 나섰다. 한국 개신교계는 140년 전인 1895년 4월 아펜젤러 선교사(1858∼1902·미국 북감리회)와 언더우드 선교사(1859∼1916·미국 북장로회)가 인천항에 도착한 때부터 한국 선교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1897년 에드워드 폴링(1864∼1960) 선교사가 세운 논산시 강경읍 ‘ㄱ자형 교회(구 강경침례교회)’는 한국 침례교가 처음 시작된 곳. 당시 강경은 금강을 통해 서해의 수산물과 호남의 쌀 등 곡물, 중국의 물산까지 드나들던 대표적인 포구로 배가 하루 100척 넘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런 입지 조건으로 강경은 충청지역 선교거점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1906년 국내 침례회 최초의 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군산 지역 선교는 1895년 봄 윌리엄 전킨(1865∼1908), 알렉산드로 드루(1859∼1926) 선교사가 초가집 두 채를 구입해 예배와 진료를 시작하면서 출발했다. 1899년 당시 ‘궁멀’이라 불리던 곳에 궁멀교회(현 구암교회)를 세운 전킨 선교사는 이후 멜볼딘여학교, 영명 남학교(현 군산제일중고교), 군산 예수병원 등을 잇달아 설립했다. 군산을 넘어 전북 지역 선교의 뿌리를 내리게 한 전킨 선교사는 이곳에서 세 아들을 풍토병으로 잃었다. 그 자신은 미국에서 소천했지만, 구암교회가 있는 궁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교총 지도부는 이 밖에도 전킨 선교사가 세워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된 군산제일고, 6·25전쟁 중 공산당에 의해 66명의 목사와 신자들이 순교한 논산 병촌성결교회, 시인 이상화, 백범 김구, 유관순 열사의 유물과 기록이 보존된 공주기독교 박물관(옛 공주 제일감리교회) 등을 답사하며 선인들의 뜻과 넋을 기렸다. 행사를 주관한 소강석 한국기독교 140주년 기념대회 상임대회장(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140년 전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의 입국으로 시작된 한국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교육, 의료, 독립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영향을 미쳤다”라며 “과거를 통해 오늘을 비추는 것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군산·논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906년 프랭클린 윌리엄스 선교사(1883~1962)가 충남 공주에 기독교 사립학교인 영명학교를 세웁니다. 8년 후인 1914년 이 학교에 당시 12세이던 유관순 열사가 입학하지요. 100여 년 전 이 땅에 선교사들이 뿌린 씨앗은 그렇게 대한민국이 독립하고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서만철 한국선교유적연구회장)한국 기독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김종혁 목사) 지도부가 24, 25일 전북 군산, 충남 논산·공주 일대의 기독교 근대 문화유산 탐방에 나섰다. 한국 개신교계는 140년 전인 1895년 4월 아펜젤러 선교사(1858~1902·미국 북감리회)와 언더우드 선교사(1859∼1916·미국 북장로회)가 인천항에 도착한 때부터 한국 선교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1897년 에드워드 폴링(1864~1960) 선교사가 세운 논산 강경읍 ‘ㄱ자형 교회(구 강경침례교회)’는 한국 침례교가 처음 시작된 곳. 당시 강경은 금강을 통해 서해의 수산물과 호남의 쌀 등 곡물, 중국의 물산까지 드나들던 대표적인 포구로 배가 하루 100척 넘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런 입지 조건으로 강경은 충청지역 선교거점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1906년 국내 침례회 최초의 총회가 열리기도 했다.군산 지역 선교는 1895년 봄 윌리엄 전킨(1865~1908)·알렉산드로 드루(1859~1926) 선교사가 초가집 두 채를 구입해 예배와 진료를 시작하면서 출발했다. 1899년 당시 ‘궁멀’이라 불리던 곳에 궁멀교회(현 구암교회)를 세운 전킨 선교사는 이후 멜볼딘여학교, 영명 남학교(현 군산제일중고교), 군산 예수병원 등을 잇달아 설립했다. 군산을 넘어 전북 지역 선교의 뿌리를 내리게 한 전킨 선교사는 이곳에서 세 아들을 풍토병으로 잃었다. 그 자신은 미국에서 소천했지만, 구암교회가 있는 궁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교총 지도부는 이 밖에도 전킨 선교사가 세워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된 군산제일고, 6·25전쟁 중 공산당에 의해 66명의 목사와 신자들이 순교한 논산 병촌성결교회, 시인 이상화, 백범 김구, 유관순 열사의 유물과 기록이 보존된 공주기독교 박물관(옛 공주 제일감리교회) 등을 답사하며 선인들의 뜻과 넋을 기렸다.행사를 주관한 소강석 한국기독교 140주년 기념대회 상임대회장(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140년 전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의 입국으로 시작된 한국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교육, 의료, 독립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영향을 미쳤다”라며 “과거를 통해 오늘을 비추는 것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군산·논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우울증이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참 좋아했던 후배가 갑자기 목숨을 끊기 전까지. 평소에는 정말 유쾌한 녀석이었는데, 감정의 기복이 좀 심했다. 그때마다 “죽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진지하게 들어줬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자 “뭐 그런 걸 가지고 죽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그가 평소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안함과 동시에 이 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공적 감정(a public feelings)’을 연구해 온 저자는 ‘우울’이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문제나 병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공적(公的) 감정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사회구조와 현상을 분석하는 주요 단서이자 키워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퍼블릭 필링스 연구는 9·11과 거의 동시적이었고 그 파장 속에서 진행되었다.…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부시에게 투표하거나 전쟁에 찬성하게 되었는가? 불안과 무감각이 결합하면서 만연해진 이런 정치적 결정은 일상생활의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서론’에서)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면 그 원인과 치료를 더 이상 개인에게만 맡길 순 없지 않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자신의 미래가 암울하거나 없어 보일 때 우리는 우울함을 느낀다. 취업이나 질병에도 느끼는 우울감을 국가와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될 때 느끼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정치지도자들은 그걸 더 부추기고, 배웠다는 사람들은 억지와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자기편만 강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아 우울증에 걸린다면, 그게 나만 치료하면 되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원제 ‘Depressing: a public feeling’.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천도교를 대표하는 최고위 자리인 교령(敎領)으로 준암 박인준 선도사(74·사진)가 선출됐다. 천도교는 20일 개최한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차기 교령을 선출했으며, 박 신임 교령은 다음 달 1일 공식 취임한다. 박 교령은 천도교 동천 교구장과 천도교 중앙총부 교화관장, 천도교 중앙총부 종무원장을 지냈다. 임기는 다음달 1일부터 3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인생이라는 길에서 누구나 앞이 보이지 않아 방황할 때를 만나지요. 교황도 그런 순간이 있었겠지만 ‘희망’이라는 작은 등불을 피우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어요. 모두가 자신만의 희망이란 등불을 켜고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셨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자서전 ‘희망’(원제 SPERA)의 한국어판 번역을 맡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재협 신부는 13일 “교황이 직접 책 제목을 ‘희망’이라고 붙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란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희망’은 1월 중순 세계 80개국에서 동시 출간됐으나, 한국어판은 번역·감수 등의 과정을 거치느라 이보다 늦은 이달 7일 발간됐다. 원래 교황 사후에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교황의 뜻에 따라 가톨릭교회가 25년마다 맞이하는 희년(禧年·해방과 안식을 베푸는 해)인 올해 출간됐다. 한국어판 번역에는 이 신부와 지난 5년간 교황청 ‘바티칸 뉴스’ 한국어 번역을 맡은 김호열 신부, 번역가 이창욱, 작가 가비노 김 등이 참여했다. 원제 ‘SPERA’는 이탈리아어 동사 스페라레(sperare·희망하다, 기대하다)의 삼인칭 단수형이다. 교황은 책에서 “희망은 행동을 위한 미덕이자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교황께서 명령형으로도 쓰이는 동사 ‘spera’를 제목으로 쓴 것은 ‘희망하라’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의지적 의미를 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하지만, 교황은 반대로 평소 ‘우리에게 희망이 있기에 숨이 붙어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예요.” 원제의 의미를 담은 한국어 제목을 찾는 데는 많은 고민이 따랐다. 우리말 ‘희망’에는 동사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 이 신부는 “‘희망하라’ ‘희망을 간직하십시오’ 등 동사형 후보로 20여 가지가 제시됐지만 다소 어색한 데다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다”며 “그래서 명사지만 결국 가장 직관적인 느낌이 드는 ‘희망’으로 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고로 영어로 출간된 자서전 제목도 ‘HOPE’다. 이 신부는 “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교황은 2013년 즉위하자마자 첫 외부 방문지로 난민 등 불법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이탈리아의 람페두사섬을 선택했다”며 “이것은 그의 가족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1927년 10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해 3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부분 생존과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난 소작농, 밀항자, 난민 등이었다. 교황의 조부모도 외동아들(교황 아버지)을 데리고 이 배의 표를 샀었지만, 자산을 제때 처분할 수 없어 배를 타지 못했다. 교황이 수많은 방문지를 제치고 첫 행보로 람페두사섬을 택한 건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한다. 이 신부는 자서전에서 감명 깊었던 부분으로는 25장 ‘저는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일 뿐입니다’에서 ‘희망이 피어나는 데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라는 구절을 꼽았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고, 여기에 또 다른 당신이 더해지고, 또 다른 당신이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된다는 뜻이지요. 신자, 비신자를 떠나 교황이 살아온 길을 살펴보는 것은 지금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사는 우리에게 좋은 영적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인생이라는 길에서는 누구나 앞이 보이지 않아 방황할 때를 만나지요. 교황도 그런 순간이 있었겠지만 ‘희망’이라는 작은 등불을 피우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어요. 모두가 자신만의 ‘희망’이란 등불을 켜고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셨을까요.”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자서전 ‘희망(원제 SPERA)’의 한국어판 번역을 맡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재협 신부는 13일 “교황이 직접 책 제목을 ‘희망’이라고 붙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희망’은 1월 중순 전 세계 80개국에서 동시 출간됐으나, 한국어판은 번역·감수 등의 과정을 거치느라 이보다 조금 늦은 지난 7일 발간됐다. 원래 교황 사후에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교황의 뜻에 따라 가톨릭교회가 25년마다 맞이하는 희년(禧年)인 올해 출간됐다. 한국어판 번역에는 이 신부와 함께 지난 5년간 교황청 ‘바티칸 뉴스’ 한국어 번역을 맡은 김호열 신부, 번역가 이창욱, 작가 가비노 김 등이 참여했다.교황은 책에서 “(모국어인)스페인어 동사 ‘에스페라르(esperar)’가 ‘희망하다’와 ‘기다리다’라는 두 가지 뜻을 아우르는 만큼 이 둘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특히 희망은 ‘행동을 위한 미덕이자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원제 ‘SPERA’는 이탈리아어 동사 스페라레(sperare·희망하다, 기대하다)의 삼인칭 단수형으로 에스페라르와 같은 의미다. 이 신부는 “교황이 명령형으로도 쓰이는 동사 spera를 제목으로 쓴 것은 ‘희망하라’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라는 의지적 의미를 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보통 ‘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라고 하지만, 교황은 반대로 평소 ‘우리에게 희망이 있기에 숨이 붙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제의 의미를 담은 한국어 제목을 찾는데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이 신부는 말했다. 우리말 ‘희망’에는 동사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 이 신부는 “‘희망하라’, ‘희망을 간직하십시오’ 등 동사형 후보로 20여 가지가 제시됐지만 다소 어색한 데다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다”라며 “이 때문에 명사지만 결국 가장 직관적인 느낌이 드는 ‘희망’으로 정하게 됐다”라고 말했다.이 신부는 “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교황은 2013년 즉위하자마자 첫 외부 방문지로 난민 등 불법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이탈리아의 람페두사섬을 선택했는데, 이것도 그의 가족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라고 말했다. 1927년 10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해 3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부분 생존과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난 소작농, 밀항자, 난민 등이었는데, 교황의 조부모도 외동아들(교황의 아버지)을 데리고 이 배의 표를 샀다고 한다. 하지만 자산을 제때 처분할 수 없어 배를 타지 못했다. 교황이 수많은 방문지를 제치고 첫 행보로 람페두사섬을 택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그는 자서전 중 감명 깊었던 부분으로 25장(‘저는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일 뿐입니다’) 중 ‘희망이 피어나는 데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라는 구절을 꼽았다. 이 신부는 “그 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고, 여기에 또 다른 ‘당신’이 더해지고, 또 다른 ‘당신’이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된다는 뜻”이라며 “신자, 비신자를 떠나 교황이 살아온 길을 살펴보는 것은 지금 불안하고 힘든 시기를 사는 우리에게 좋은 영적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표적 한국 불교 문화유산인 ‘수륙재(水陸齋)’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추진된다.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 주지 법해 스님은 17일 “최근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수륙재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추진위 공동위원장), 진관사 회주 계호 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수륙재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열린 해당 세미나에선 한국 불교의 수륙재와 진관사 ‘국행(國行) 수륙재’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의례공동체로서의 역할과 의미 등이 조명됐다. 수륙재는 온 세상의 모든 고혼(孤魂·의지할 곳이 없는 넋)을 차별 없이 구제하기 위해 지내는 불교 의례다. 진관사 수륙재는 1397년 조선 태조 때부터 시작됐으며, 이후 국가 차원으로 설행(設行)돼 국행 수륙재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잠시 중단됐으나 1970년대 복원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진관사 국행 수륙재는 조선시대의 전통적 수륙재인 칠칠재(七七齋) 사십구재 형식으로, 낮에 지내는 낮재와 밤에 지내는 밤재의 이부 구성을 유일하게 전승하고 있다. 매년 9∼10월 입재(入齋)를 시작으로 초재(初齋)에서 칠재(七齋)까지 49일에 걸쳐 진행되며, 수륙재의 정점인 마지막 칠재는 이틀 동안 봉행된다. 현재 국가무형유산에 등재된 수륙재는 진관사 국행 수륙재, 강원 동해 삼화사 수륙재, 경남 창원 아랫녘 수륙재 등 3개다. 이 밖에도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방무형문화재로 등재된 것들도 다수 있다. 법해 스님은 “수륙재는 종교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담긴 우리 민족의 장엄한 무형문화유산”이라며 “세계적으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대립과 갈등이 극심한 지금 시대에 용서와 화해, 구원과 평화의 정신을 담은 수륙재는 충분히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