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배중

김배중 기자

동아일보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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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입사해 방송, 영화, 문화재, 학술(문화부), 사건사고(사회부), 야구, 농구, 육상, 수영 등(스포츠부)을 취재해왔습니다. 평창 겨울 올림픽이 열린 2018년부터 ‘스포츠’라는 망원경으로 세상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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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5-18~2026-06-17
축구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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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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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반2%
정치일반2%
사회일반2%
배구1%
  • [책의 향기]똑똑한 씨앗의 생존을 위한 놀라운 진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1인당 428잔이다. 하루에 한 잔 이상 마실 정도로 커피에 빠졌다는 의미. 커피는 이미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역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커피가 정착하기 시작한 17세기 이전 유럽 북부 1인당 맥주 소비량은 연간 300∼400L. 하지만 오늘날 독일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약 100L에 불과하다. 늘 약간 취해 살던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혁명적 사상도 키웠다. 커피를 두고 사회사 연구자들은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멋진 음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사람들의 습관을 바꾸고 계몽주의의 불씨를 댕기게도 했다는 커피는 그렇다면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일까. 보존생물학자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커피 입장에서는 몰려드는 900종 이상의 곤충이나 해충을 대처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살충제 역할을 해주는 카페인의 함량을 늘리며 진화해 갔을 뿐이다. 이처럼 저자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커피를 포함한 과일, 작물의 씨앗이 사실 스스로를 위해 진화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과일을 먹을 때 주로 먹는 과육도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씨앗의 확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알멘드로 나무는 씨앗 겉에 얇은 과육 층을 만들어 과일박쥐를 유인해 씨앗이 800m 이상 떨어진 곳으로 확산하게 한다. 맛있는 과육을 생산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작물을 돌보는 인간의 모습은 씨앗의 입장에서 이들을 위해 종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책 제목대로 ‘씨앗의 승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기적인 씨앗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 “매번 ‘씨앗(seed)’을 내 쪽으로 들어 올리고는 ‘잘 살펴봐(Heed)’라고 소리쳤다”는 저자 아들의 말을 가슴에 새겨놓은 듯 13장에 걸쳐 씨앗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아들에게 전하듯 어렵지 않게 전한다. 이기적일지 모를 씨앗이지만 잘 활용하면 인간에게도 물론 유익하다. 냉전시기 살인의 수단으로 쓰여 충격을 줬던 아주까리 씨앗 속 ‘리신’은 세포 파괴 능력을 지닌 단백질로, 암세포만 선별적으로 사멸시킬 가능성이 있다. 인도네시아 숲속에서 자라는 자바 오이는 얇고 넓은 날개를 가진 씨앗의 모양이 스텔스 폭격기로 유명한 ‘B-2 스피릿’ 개발에 영감을 줬다. 2004년 쓰나미가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연안 지역의 논을 덮쳤을 때 씨앗을 연구해온 씨앗은행은 염분에 내성을 가진 벼를 이곳에 제공해 심게 했다. 극작가, 사상가이자 평론가인 영국의 버나드 쇼(1856∼1950)는 씨앗의 위대함에 대해 특유의 익살스러운 평을 내렸다. “하나의 도토리 안에 집약되어 있는 강렬한 에너지를 생각해 보라! 땅에 도토리를 심으면 엄청나게 팽창해 거대한 참나무로 자란다! 양 한 마리를 땅에 묻어 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썩을 뿐이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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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성대 2cm 기울고… 다보탑 난간 일부 떨어져

    경북 경주시 일대에서 발생한 두 차례 강진의 여파로 이 지역의 문화재 23건(국가지정 13건, 시도지정 10건)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과 사찰 내 피해 실태를 조사한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의 상층부 난간석이 분리됐다. 이 난간석은 1910년대 일본이 해체 및 조립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로 붙여 놓은 것이다. 전날 폐쇄회로(CC)TV를 통해 상층부 흔들림이 관찰된 첨성대(국보 제31호)는 2014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 때 북쪽으로 20.4cm 기울어진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번 지진 이후 2cm가 더 기울어졌다. 상부 정자석의 일부도 5cm가량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안형순 문화재청 대변인은 “첨성대는 기울기의 변화가 확인됐지만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고, 석굴암도 조사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가 없다”고 밝혔다.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경북 청도 운문사 서(西)삼층석탑(보물 제678호)에서도 일부 피해가 확인됐다. 모전석탑은 1층 벽돌에서 실금이 관찰됐고, 서삼층석탑에서는 탑 꼭대기 상륜(원기둥 모양 장식)이 떨어져 나갔다. 문화재청은 피해에 따른 긴급보수비 23억 원을 지원해 빠른 복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안전점검반을 운영해 문화재 안전점검도 한다. 한편 경주국립공원은 입산이 통제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진 발생 직후인 12일 오후 9시 30분부터 전국 국립공원 탐방로를 전면 통제하고 국립공원 내 대피소, 야영장 등 체류 인원에 대한 안전점검을 했으며, 13일 오후부터 경주국립공원을 제외한 전 탐방로 입산을 재개했다. 국립경주박물관도 13일 임시 휴관하고 안전점검을 실시한 뒤 14일부터 정상 개관한다.김배중 wanted@donga.com·임현석 기자}

    • 201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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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 스님-문경현-송순섭-김우정씨 이승휴문화상

    신흥사 조실(祖室)이자 시조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오현 스님(84)이 2016년 제3회 이승휴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이사장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는 최근 이승휴문화상위원회를 열고 올해 수상자로 문학상의 오현 스님을 비롯해 △학술상 문경현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82) △예술상 송순섭 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장(80) △사회봉사상 김우정 헤브론메디컬센터 원장(63)을 선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3일 강원 삼척시 죽서루 경내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3000만 원과 상패가 주어지며 상금은 삼척시에서 후원한다. 이 상은 고려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이승휴(1224∼1300)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4년 제정됐다. 삼척에서 태어난 이승휴는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집필해 단군 이래 고조선-삼한-삼국-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강조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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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차례상서 툭 한마디, 비수로 박힙니다”

    “안 본 사이에 살쪘네” “누구 집 자식은 공부 잘한다던데”….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각각 10대 여학생과 40대 여성이 이런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 30대는 취업, 결혼, 육아에 대한 잔소리, 10대는 외모에 대한 지적, 40대는 자녀를 다른 가족과 비교하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8, 9일 리서치기업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10∼5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70% 이상이 명절에 ‘말로 인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연령대별 100명씩 명절에 듣고 싶거나 듣기 싫은 말을 주관식으로 물었다.○ 미래에 대해 걱정해주는 말에 오히려 ‘상처’ 전체 응답자의 답변을 합산했을 때 명절에 가족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미래 걱정’(36.8%)이었다. 입시를 앞둔 10대에게 “대학은 어디 갈 거니?”, 20, 30대에게 “취업은 했니?” “애인은 있니?” 등의 말이 이에 해당했다. 명절을 앞두고 고향을 방문할 예정인 취업준비생 김민규 씨(28)는 “취업 문제로 머리가 아픈데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취업 질문을 받으면 할 말도 없고 스트레스만 더 받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상처를 주는 말의 유형은 ‘비교’(21.8%)인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는 연봉이 얼만데 너는 왜…” “아무개의 애들은 공부도 잘하는데 네 아이들은 왜…” 등 자신 또는 자녀의 상황을 다른 가족과 비교하는 말들이다. 특히 40, 50대 연령층에서는 ‘비교’가 24.5%로 ‘미래 걱정’(21.5%)을 앞섰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정다경 씨(43)는 “남들 못지않게 자녀 교육에 힘쓰는 보람으로 살고 있는데 ‘누구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 잘못 같아 마음 아프다”고 했다. 10대 소녀들에게는 외모에 대한 지적(34%)이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말로 조사됐다. 50대 남성 응답자 중 37%는 ‘나이 들었으니 건강 챙겨야지’ 같은 ‘잔소리’를 꼽았다. ○ “잘될 거야” “예뻐졌다”… 칭찬과 용기를 반면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듣고 싶은 말로는 ‘칭찬’(35.6%)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34.2%)로 나타났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 40% 이상이 ‘칭찬’을 꼽았는데, 연령대별로는 10, 20대는 ‘외모’, 30, 40대는 ‘자녀’, 50대는 ‘성취’에 대한 칭찬을 듣고 싶어 했다. 40, 50대 남성은 각각 62%가 “다 잘될 거다” “항상 건강해라”란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했다. 10대 중 12%는 “용돈 줄게”를 가장 듣고 싶은 말로 꼽았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남궁기 교수는 “평소 취업과 육아 등을 고민해 온 당사자들에게 이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취지로든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안 되는 것보다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 응원하는 말이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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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정’의 작가 이광수 그의 친일은 위장이었나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했습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심문에서 스스로를 변호한 춘원 이광수(1892∼1950)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시초’ ‘친일 작가’는 그를 수식하는 상반된 표현들이다. 지난달 한국문인협회에서 그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제정하려 하자 시민단체에서 그의 친일 행적을 들며 반발해 무산됐다. 3·1운동 전 일본 도쿄에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등 그가 당대 최고 문인(文人)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평론가 김현은 ‘이광수 문학의 전반적 검토’(1977년)에서 “만질수록 덧나는 민족의 상처”라 평가했다. 반면 역사학자 김원모는 ‘영마루의 구름’(2009년)에서 “이광수의 친일은 위장(僞裝)”이라고 주장했다. 이광수의 친일은 위장일까, 자발일까. 30년 전 ‘무정’을 읽은 뒤 그의 문학세계를 연구해온 일본 니가타(新潟)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광수의 저작, 일제가 작성한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를 훑어 간다. 7장으로 구성된 평전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이광수를 있게 한 사건을 시간순으로 담았다. 대표작인 ‘무정’ 등 그가 쓴 글을 토대로 행간에 숨은 그의 심리를 추적하기도 한다. 평생 그의 연구를 업으로 삼은 저자지만 그를 옹호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가령 이광수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1917년 글을 실은 데 대해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상대를 이용하려는’ 전략, 개인적 야망, 경제적 이유 등 다각적인 요인을 언급한다. 1937년을 기점으로 일제의 요시찰 인물에서 친일 인사가 된 그의 양면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이광수의 변(辯)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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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글]두근두근… 재결합 젝스키스 16년만의 신곡은?

    최근 재결합한 그룹 ‘젝스키스’(젝키·사진)의 신곡이 이들의 단독 콘서트에서 처음 공개된다. 젝키의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 따르면 젝키는 16년 만의 신곡을 10,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재결합 후 첫 콘서트에서 공개한다. 신곡은 5일 녹음됐다. 젝키의 신곡에 대해 누리꾼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한 누리꾼은 “16년 만에 들을 젝키 신곡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은 “공연 티켓을 수소문해 빨리 신곡을 듣고 싶다”며 기대감을 밝혔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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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이 라마 “한국 방문 희망… 中변화 기대”

    “제가 입은 가사는 2600여 년 전 부처가 입은 것과 모양이 똑같습니다. 비록 옷은 구식이지만 제 생각은 젊답니다.” 지난달 30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81)는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재치 있게 자신을 설명해 웃음을 선사했다. 자줏빛을 띤 티베트 가사 차림의 그는 관저 앞마당에서 친견(親見)을 온 신도 100여 명을 만난 뒤 접견실로 들어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느리지만 힘찼고 악수를 건네는 손은 아기 손처럼 부드러웠다. 이날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는 지난달 29일부터 4일간 열린 다람살라 남걀 사원의 ‘아시아 법회’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온 3000여 명의 신도 앞에서 종교를 초월한 사랑과 자비심, 그리고 ‘젊은 생각’을 강조했다. 그가 강조하는 대표적인 젊은 생각은 현대과학에 대한 입장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의 전통적인 ‘수미산(須彌山) 우주론’에 대해 “평평한 사각의 세계 한가운데 수미산이 있다는 우주관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입증한 과학과 배치되기에 나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의 가르침은 본래 맹신이 아닌 비판적 분석”이라며 “단순히 경전을 외기보다 이치를 따지며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긴 생명력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젊은 생각은 그의 삶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1959년 중국에 점령당한 티베트를 떠나 인도 북서부 히말라야 고원지대인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운 그는 400년 넘게 유지돼온 ‘법왕(法王)’ 체제를 끝냈다. 2001년 제정분리를 통해 총리를 임명한 뒤 2011년 그 지위를 ‘시_(티베트어로 정치 지도자)’으로 높여 정치권력을 전부 이양했다. 중국의 반대 때문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 그는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 상임대표인 금강 스님에게 “앞으로 몇 년을 기다리면 되느냐”며 웃으며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 불교 국가 중에서 일본밖에 가보지 못했다. 한국을 방문하면 맛있는 김치를 먹고 싶다”고 했다. 달라이 라마는 “방한은 중국의 태도 변화와 한국인의 순수한 소망이 어우러진다면 곧 가능할 것”이라며 “느긋한 마음을 갖자”고 밝혔다. 그는 내년에 열리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언급하며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영토 및 역사분쟁 등 동아시아 현안을 묻자 특유의 교육을 통한 해법을 제시했다. “직면한 갈등을 10∼20년 안에 해결할 순 없겠지만 어린 세대들에게 사랑과 연민을 갖도록 교육한다면 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활동할 30∼40년 뒤에는 더 나은 세상이 될 겁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의 이름을 내건 테러와 폭력에 대해 반대의 메시지를 분명히 밝혔다. “세상 70억 인구에게 내 종교만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말이 됩니까. 종교인이라면 내 신앙만큼 이웃 종교를 존중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다람살라=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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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이 라마 “부처 말씀 맹신은 안돼…이치 따지고 살펴봐야”

    “제가 입은 가사(승려의 법복)는 2600여 년 전 부처가 입은 것과 모양이 똑같습니다. 비록 옷은 옛날 복식이지만 제 생각은 젊답니다.” 지난달 30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81)는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재치 있게 자신을 설명해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달 29일부터 1일까지 나흘 동안 진행된 ‘아시안 법회’에서도 그는 그의 가르침을 얻으러 온 세계 각국 3000여 명의 신도들 앞에서도 종교를 초월한 사랑과 자비심과 함께 ‘젊은 생각’을 강조했다. 달라이 라마의 대표적인 ‘젊은 생각’은 현대과학에 대한 입장이었다. 그는 법회 뿐 아니라 기자들과의 접견에서도 불교와 현대과학의 만남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30여 년 전부터 과학자들과 교류해온 달라이 라마는 불교의 대표 세계관으로 꼽히는 ‘수미산(須彌山) 우주론’을 부정했다. 수미산은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이다. 달라이 라마는 “평평한 사각의 세계 한가운데 수미산이 있다는 우주관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걸 입증한 과학과 배치되기에 나조차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과학이 종교의 근본을 위협할 수는 없으며, 불교철학과 현대과학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처의 가르침은 본래 맹목적으로 따를 게 아닌 이치를 따져보고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의 말씀을 단순히 경전처럼 외며 맹신하기보다 (과학처럼) 경전을 분석하며 이치를 따져갈 때 미래의 불교도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그의 ‘젊은 생각’은 삶의 행적 곳곳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59년 중국에 점령당한 티베트를 떠나 인도 북서부 히말라야 고원지대인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운 그는 400년 넘게 유지돼온 티베트 전통의 ‘법왕(法王)’체제를 종식시켰다. 2001년 제정분리를 통해 총리에게 정치를 맡긴 그는 2011년 총리의 권한을 티베트어로 정치지도자를 의미하는 ‘시쿙(sikyong)’으로 높이고 정치적 권한을 전부 이양했다. 종교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세계 각국의 미래 세대들에 높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취업 결혼 육아 등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한국의 청년들에 대한 관심도 아끼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는 “행복과 불행은 물질보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메달을 위해 고통을 극복해가는 운동선수처럼, 굳은 마음으로 극복해가다보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건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영토분쟁, 역사분쟁 등 동아시아 현안에 대해서도 그의 관심사인 미래 세대의 교육을 통한 해법을 제시했다. “직면한 갈등을 10~20년 안에 해결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세대들에 사랑과 연민을 교육시키고 함양하게 만든다면 이들이 사회지도자 등 주역으로 활동하게 될 3~40년 뒤에는 분명 더 나은 세상이 돼있을 겁니다.” 달라이 라마는 그동안 자신에 대해 ‘석가의 비구’ ‘설법자’ ‘달라이 라마’로 스스로 소개해왔다. 그는 “근래 ‘설법자’를 (좀 더 따져본다는 취지로) ‘사상가’로 바꿨다”며 “깊이는 부족하지만 승려들에게 ‘사상가’가 되라고 말하며 티를 조금 내봤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달라이 라마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맹목적 신앙에 기초한 종교간 갈등과 전쟁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갖되 다른 종교를 존중하며 다툼보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종교인들에게 당부했다. 달라이 라마는 세계 각국에서 의료봉사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가톨릭 교회의 활동을 존중해야 할 사례로 언급했다. 달라이 라마는 법회에서 “세상에 무신론자도 많고 70억 모두에게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도 없다”며 종교를 초월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는 “종교 유무를 떠나 인간의 기본인 사랑과 자비심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한다면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모두 신뢰할 수 있고 삶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방한에 대한 기대감도 넌지시 드러냈다. ‘달라이라마 방한추진회’ 상임대표인 금강스님 등에게 “앞으로 몇 년을 기다리면 되냐”고 농담을 건넨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태도변화와 한국인의 순수한 소망이 어우러진다면 곧 가능할 것이다. 느긋한 마음을 갖자”고 말했다. 다람살라=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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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수백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 애국심 잣대로만 판단해서야

    “올해 ‘황야의 결투’는 모두가 승자였다.” 이게 뭔가. 올림픽도 아니고 다 이겼다니. 에이전트41(김배중)은 자기가 써 놓고도 헷갈렸다. 하나 올해 여름 영화시장은 확실히 그랬다. 4대 배급사가 총출동해 500억 원(총제작비) ‘전쟁’을 벌였는데 패자가 없다. 물론 22일 기준으로 ‘부산행’(약 1125만 명)이 가장 크게 웃었지만, ‘인천상륙작전’(679만 명) ‘터널’(524만 명) ‘덕혜옹주’(490만 명)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요원 모두 ‘손에 손잡고’(서울 올림픽 주제가)라도 부르려 했으나, 찜찜한 대목은 남아 있다. 영화계 단골손님인 ‘국뽕’ 논란 때문이다. ‘나라 국(國)’과 ‘히로뽕’을 합친 말로 지나친 애국주의를 비하한단 설명도 이젠 머쓱할 정도. 영화계 일각에서는 올해 6·25전쟁이 소재인 ‘인천…’이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국뽕에 기댄 졸작’이란 평과 ‘국뽕으로 폄훼된 수작’이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 뽕에 취했건 안 취했건 다들 ‘뽕 타령’이다. 불끈한 에이전트2(정양환)는 우악스럽게 41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도 뽕 따러 가자.”○ 진짜 영화계 좀비는 국뽕 논쟁 뽕밭의 발원지는 요원도 찾기 어려웠다. 2012년 전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알려졌으나 명확하진 않다. “한민족이 수메르 왕국을 세웠다” 같은 국수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조롱이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영화계에선 이 용어 등장 전부터 ‘국뽕’ 사태가 존재했다. 2007년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본격적인 발화점이었다. 애국심 호소와 작품성 논란으로 뒤범벅된 영화는 관객 785만5474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이 들며 흥행했으나 170억 원의 적자를 봤다. 옳건 그르건, ‘디 워’가 증명한 애국의 티켓 파워는 쭉 이어졌다. 역대 흥행 1, 2위인 2014년 ‘명량’(약 1762만 명)과 ‘국제시장’(약 1426만 명)은 모두 국뽕 논란이 불거졌던 작품. 지난해 600만 명이 넘은 ‘연평해전’도 마찬가지다. 한 영화제작자는 “과거엔 이런 논란을 불편해했으나 요즘은 하나의 마케팅 기법으로 인식된다”며 “인천상륙작전이나 덕혜옹주는 기획 단계부터 이를 활용할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천…’도 수혜자일까. 한 배급사 관계자는 “‘천만 영화’를 5편이나 내놓은 CJ로선 순제작비가 147억 원이나 들어간 대작에 더 높은 기대를 했을 것”이라며 “수익은 내겠지만 ‘국뽕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개봉 전부터 워낙 욕을 먹어 현재 스코어에 가슴을 쓸어내린단 후문”이라며 “중장년층이 찾게 만드는 ‘애국심 코드’는 여전히 위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결과를 놓고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형국이다.○ 누굴 위하여 논란을 불태우나 문제는 ‘국뽕’ 딱지가 붙는 순간 다른 요소는 논외가 된다는 점이다. 요원들이 접촉한 ‘인천…’을 보지 않은 이들은 대다수가 ‘국뽕’에 거부감이 컸다. 대학생 박준형 씨(27)는 “취업과 결혼 등 현실적 문제로 벅차 애국심 얘기만 거론해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 50대 주부는 “나라 사랑을 되새긴 교훈적 작품”이라며 “무조건 뒤떨어진 보수우익으로 모는 분위기가 싫다”고 답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디 워’ 때처럼 무 자르듯 찬반으로 갈려 생산적 토론을 벌일 기회조차 없다”고 아쉬워했다. 평단이 사람들의 취향을 살피는 데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연예기획사 이사는 “평론가는 만듦새에 집중해 흥행 전망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며 “자기반성 없이 700만 관객의 선택을 국뽕 잣대로 판가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이 갈등만 키운단 우려도 컸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양극화되고 소속감이 붕괴된 상태에서 무조건적 애국심 강조는 간극을 더 깊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부나 사회지도층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이런 논쟁도 잦아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에이전트2는 다시 ‘인천…’을 봤다. 실은 그도 개봉 전 무지 박한 평점을 줬다. 무엇을 놓쳤기에 ‘병론가(평론가 비하)’가 됐나. 근데 대통령도 20일 영화를 관람했단다. 아, 흥행 예측은 실패했던 한 평론가 이건 또 맞히다니. “아마 곧 대통령이 ‘인천…’을 볼 겁니다. 칭찬도 하겠죠.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죠. 이런 상상을 해봐요. 대통령이나 여당이 ‘부산행’이나 ‘터널’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 ‘세월호, 메르스가 떠올랐다. 재발 방지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란 메시지를 남기는 거죠. 그럼 이런 국뽕 논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

    • 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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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실험실]종이갑옷인데 조총도 못 뚫었다니…

    《‘부산행’을 택했다. 최종 목적지는 부산 금정구에 있는 ‘한국의 전통 갑주’(대표 최항복)였다. 한국의 옛 갑주(甲胄·갑옷과 투구)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택한 곳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 전시관에서는 조선 갑주를 볼 수는 있었지만 입을 수 없었다. TV용 갑옷은 겉모양만 비슷하게 흉내 낸 ‘소품’이다. ‘한국의 전통 갑주’는 40여 년간 조선의 종이 투구를 만든 연구소란 소개를 받았다. 그곳에 당도한 때는 폭염이 한창인 오후였다.》 ○ 조총을 너끈히 막던 조선의 갑주 연구소엔 에어컨이 없었다. 최 대표는 ‘목형(木型·나무 제작 틀)’을 사용한 전통기법으로 만든 투구부터 문헌을 참고해 무게까지 비슷하게 만든 갑옷까지 한 벌의 온전한 조선 후기 ‘두정갑(頭釘甲)’을 내줬다. 무게가 20kg인 갑옷과 2kg 넘는 투구를 입고 쓰고 ‘드림’(투구에 달린 얼굴 가리개)으로 얼굴을 가리니 땀이 주르륵 쏟아진다. 두정갑은 신용카드 절반 크기의 쇳조각 수백 개를 천 안감과 겉감 사이에 넣고 둥근 머리 못인 ‘두정’으로 고정해 만든 갑옷이다. 쇳조각이 직접 닿는 이전 갑옷에 비해 상대적으로 착용감이 좋아 조선시대에 ‘국민 갑옷’이 됐다. 최 대표는 “두정갑의 내구력은 임진왜란 시절의 조총이 뚫기 힘든 정도였다”고 말했다.○ ‘가성비 갑’ 종이갑옷(紙甲) 이곳에서 입은 두정갑의 주요 소재는 쇠였지만 조선시대엔 가죽(皮), 종이(紙)도 사용됐다. 비싸고 구하기 힘든 철 조각에 비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돼지가죽, 한지가 널리 쓰였다. 그중 종이는 흥미롭다. 질긴 한지를 송진, 아교 등 접착제로 겹겹이 붙인 뒤 옻칠을 한다. 무게는 플라스틱만큼 가볍지만 내구력은 쇠 못지않게 단단해진다. 옻칠만 한 고깔모자 크기의 종이투구 원형의 무게는 200g도 되지 않았다. 관청에서 과거시험 등에 쓰인 종이는 종이갑옷으로 재활용됐다. 김성혜 육군박물관 부관장은 “한지 13겹 이상이 일반적으로 쓰였는데 조총이 뚫기 힘들었다. 값이 싸고 옻칠로 방수와 보온이 됐으며 겹수를 더할수록 내구력이 좋아졌다. 무게가 쇠의 절반도 안 돼 오늘날의 ‘기능성’ 소재라 할 만큼 애용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성비가 좋은 소재라 일반 백성들도 종이로 만든 갑옷을 쓸 수 있었다. “갑옷 입은 무사에게 타격을 줄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돼요. 갑옷이 방어하지 못하는 목, 겨드랑이 등을 노리거나 철퇴 등으로 갑옷 위를 때려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조선 갑옷은 조총이나 일반적 칼로는 치명상을 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습니다.”(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직접 입어본 경험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 조선 갑옷은 꽤나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할리우드 히어로 물이 범람하는 요즘, 한국적 캐릭터를 만든다면 특수 종이갑옷을 입은 캐릭터를 만들어 내도 어색하지 않겠다는 느낌이었다. 서울행 KTX 안에서 문득 종이 소재 기능성 전투복을 입은 한국 히어로가 빌딩 숲을 누비는 스토리 라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부산=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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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은 피곤해도 삶의 지혜 배워요”

    “마태복음 10장 8절에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다립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며 강단에 오른 교황청 인류복음화부 차관 사비오 혼 타이파이 대주교는 한국말로 또렷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첫인사를 건넸다. 그는 성경 한 구절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폴란드에서 열린 제31차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서 전한 가르침을 인용하며 봉사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제1회 한일 가톨릭계 대학교 프란치스코 봉사캠프가 진행 중인 경기 가평군의 한 수련원에선 21일 대주교의 특강으로 일정이 시작됐다. 타이파이 대주교는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라는 사도행전 2장 42절을 거론하며 “친교가 있는 봉사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담긴 질 높은 봉사”라며 “형식적으로 봉사하지 말고 즐길 수 있는 봉사를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특강 후 학생들과 어울린 대주교는 “국적을 불문하고 봉사를 위해 학생들이 어울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뜨거워졌다”며 “동북아시아 문제, 특히 한국과 일본의 아름답지 못한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데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이 봉사캠프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당시 보여준 화해와 희망의 메시지를 되새기기 위해 추진됐다. 한국가톨릭계대학총장협의회와 일본가톨릭계대학연맹이 공동 개최한 이번 봉사캠프에 한국 학생 97명, 일본 학생 38명, 중국 홍콩에서 온 유학생 등 140여 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앞서 16∼20일 충북 음성군 꽃동네, 경북 포항시 민들레공동체,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농촌마을, 전남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농촌마을, 경남 밀양시 오순절평화의마을 등 5곳에서 장애인, 영유아, 농촌 노인 등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벌였다. 안동시에서 농촌 일손을 도운 임성희 씨(19·꽃동네대 간호학과)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일했다”며 “잠이 부족해 몸은 피곤했지만 마을 어른들과 함께 일하고 새참을 먹으며 삶의 지혜도 배웠다”고 말했다. 송민진 씨(24·가톨릭대 환경공학과)는 “대학 다닐 동안 한 번도 봉사한 적이 없고 이번이 처음인데 작은 일에도 웃어주는 장애인분들을 보며 많이 반성했다”고 말했다. 봉사를 통해 어우러지며 국적의 벽도 무너졌다.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한 황진선 씨(21·인천가톨릭대 간호학과)는 “처음엔 외국인 친구들과 겸상하는 것도 어색했지만 문화 차이 등을 극복하며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20일 오후부터 봉사캠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성캠프’가 진행됐다. 학생들은 봉사활동에 대한 경험, 역사 인식에 대한 이야기로 소통했다. 학생들은 22일까지 어울림한마당, 캠프파이어 등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갖는다. 한국가톨릭계대학총장협의회 의장인 박영식 가톨릭대 총장은 “봉사캠프가 아시아 전역의 화해, 통합, 평화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봉사캠프는 앞으로 매년 여름에 개최되며 내년 개최지는 일본 나가사키가 될 예정이다.  가평=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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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민해방’ 후 10년, 마오쩌둥의 칼은…

    #2006년 여름 중국 창춘(長春)에서 관개 시설을 만들기 위해 도랑을 파기 시작한 인부들은 섬뜩한 광경을 목격했다. 땅속 1m 아래에서 수천 점의 해골이 다닥다닥 붙은 채 발견된 것. 어떤 사람은 유골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일 것으로 추측했다. 당시 누구도 이 유골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주의자들과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사이에서 1945년 이후 재개된 제2차 국공내전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한 중국의 베이징 도심 한복판에 있는 톈안먼(天安門)에는 1949년 10월 1일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국) 건국을 선포한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려 있다. 맞은편 기념관에서는 유리 상자에 영구 보관된 그의 시신을 볼 수 있다. 예전보다 덜하지만 중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마오쩌둥의 사진과 조각품은 외국인의 눈에 중국의 상징물처럼 비치는 기념품 중 하나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홍콩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이처럼 중국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마오쩌둥과 그가 구축한 체제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을 가한다. 이 책의 제목인 ‘해방의 비극’은 중국이 4년간의 국공내전을 마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1949년 ‘해방’의 시기 전후, 번영기로 자평해온 1945∼1957년의 허구를 조목조목 짚었다. 3부 14장에 걸쳐 중국의 잔인한 민낯을 드러낸 책의 첫 장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로 오해됐던, 창춘에서 수습된 수천 구의 유골이 중국 내전의 집단폭력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주며 충격을 더한다. 서구의 중국 비판은 ‘중국 위협론’의 부상과 함께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하지만 이 책이 신빙성을 갖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기록보관소에서 새로 공개된 자료들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기록에 의하면 당시 중국 인구 5억5000만 명 중 71만 명이 반동분자 등의 명목으로 처형됐다. 새롭게 공개된 각종 통계는 당시 중국이 선전했던 성장지표들이 대부분 허구였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중국이 행해온 집산제, 국유화는 인민들을 상향평준화하기보다 무책임, 생산의 퇴보 등을 이끌어 전쟁 때처럼 인민들을 곤궁에 빠뜨렸다. 당대인들의 증언, 회고록, 편지 등은 딱딱한 자료에 이야기를 더한다. 반동분자 등을 색출하겠다는 명목으로 행해진 각종 처형 과정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심이 될 정도다. 마오쩌둥을 위시한 당은 사람 죽이는 일에도 할당량을 배정했고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서로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2000명 이상 목숨을 잃은 중국 산시(山西) 성의 한 마을에서는 25명의 아이들이 ‘어린 지주’라는 꼬리표가 붙어 죽임을 당했다. 마오쩌둥이 판을 깐 ‘공포정치’하에서 해방 후 10년간은 책 제목대로 ‘비극’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인민 3부작’ 중 첫 번째로 번역된 작품. 후속으로 ‘마오의 대기근’ ‘문화대혁명’이 나올 예정이다. ‘마오의…’의 경우 2011년 영국에서 논픽션계의 부커상이라 불리는 새뮤얼 존슨 상을 받았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이지만 중국 공산당 기록보관소의 미공개 자료를 연구해 온 저자로부터 어떤 새로운 이야기들이 고발될지 궁금해진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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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성수기 관객, 10명중 7명 한국영화에 몰려

    폭염 속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이 모두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8월 초 보름 동안 10명 중 7명이 한국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달 1∼15일 한국영화를 보러 온 관객은 약 141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쌍천만’ 영화로 기록된 ‘암살’ ‘베테랑’이 주도했던 지난해 1146만 명보다 약 264만 명이나 많다. 같은 기간에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70.2%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인 59.6%보다 높은 수치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들이 잇달아 흥행에 성공해 수치 상승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영화 ‘부산행’은 개봉 19일 만인 7일 관객 1000만 명을 넘어 1100만 명을 넘보고 있다. 뒤이어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지난달 27일)은 600만 명, ‘덕혜옹주’(3일) ‘터널’(10일)도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한 영화관계자는 “‘부산행’ ‘터널’ 같은 장르물,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같은 역사물이 골고루 흥행에 성공해 관객의 영화 선택 폭을 넓히며 중복 관람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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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재훈 교수 “재야사학계 고조선 연구, 검증 안된 상상력 경쟁”

    “1980년대 윤내현 교수님 밑에서 연구조교로 있던 저도 교수님을 도우며 성과에 환호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경제성장기에 민족 자부심을 고취시킨 교수님의 연구가 당시엔 필요했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54)가 최근 발간한 책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푸른역사)에서 재야사학계의 고조선 연구를 ‘상상력 경쟁’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가 날을 세운 대상에 재야사학계의 원로인 그의 스승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76)가 있기 때문이다. 스승의 학문 업적을 거스르기 쉽지 않은 국내 학계에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11일 경기 용인시의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심 교수는 “윤 교수님은 저를 있게 한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인간적으로 30년 넘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 교수는 윤 교수의 출간 기념행사에서 제자를 대표해 사회를 맡았다. 그러나 심 교수는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라며 “학문적으로 지나침이 있다면 그걸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아들로서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증연구를 중시한 미국 시카고대 에드워드 쇼너시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재야사학의 고조선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근거 부족’을 지적했다. 기원전 2333년부터 고조선이 시작됐다고 보는 재야사학계의 주장이 기원전 2∼1세기 무렵 편찬된 ‘사기’를 제외하면 100자 남짓밖에 안 되는 기록에 의존했다는 것. 그는 “이에 대한 기록들의 진위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국 고대가 하, 상, 주, 춘추전국시대로 넘어오는 동안 우리의 역사는 고조선 하나뿐입니다. 중국 역사와 대등함을 강조하려다 우를 범한 게 아닌지. 이제는 ‘우리끼리만의’ 연구가 아닌 서양 학자들도 공감할 수 있을 객관화된 한국 고대사 연구를 해야 합니다.” 50대 중반인 심 교수는 지난해 뒤늦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푹 빠졌다. ‘고대 중국에…’ 또한 그가 지난 1년간 3000명이 넘는 사람과 SNS 소통을 하면서 쏟아낸 학계와 개인사에 관한 65편의 이야기들이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제 분야인 중국 고대사로 소통하고 싶다”며 “현대 세계 사학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분야로 꼽히고 우리 선조, 오늘의 동아시아를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용인=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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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국민만 챙기는 日… 한국인 희생자 이름 영원히 묻힐 위기

    “조선인 군속(군무원) 200여 명은 모두 굶주려 피골이 상접했는데, 일본군의 분풀이 대상처럼 보였어요. 결국 24명이 총살당했는데 탈영하거나 식량을 훔쳤다는 명목이었죠. 일본군은 다시 조선인 군속 50여 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던져 넣고 못 나오게 가뒀습니다. 그 와중에 10여 명이 굶어 죽었어요.” 지난달 27일 일본 오키나와(沖繩) 현 나하(那覇) 시로부터 서쪽으로 43km 떨어진 아카(阿嘉) 섬 앞바다는 지난날 조선인의 피맺힌 절규가 무색하게 에메랄드빛으로 빛났다. 당시 일본군으로 현장을 목격한 가키노하나 부이치(垣花武一) 씨(86)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조선인 군속의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무겁게 잠겨들었다. 15세이던 1945년 일본군에 징집돼 부대에 있었다는 그는 “내가 조선인 군속의 시신을 직접 묻었다”고 했다. 1945년 3∼6월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과 일본군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현지인들은 이를 ‘오키나와 전쟁’이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당시 군인 및 군속으로 징집된 조선인 중 약 1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한다. 러시아 사할린 등과 함께 강제동원 규모가 큰 지역 중 하나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오키나와 한인 강제동원 문제를 연구해 온 강제숙 ‘원폭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추진연대회의’ 공동대표와 함께 나하 시 내 도마린 항으로부터 배를 타고 1시간 반을 들어갔다. 면적 3.8km²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이 섬은 71년 전 조선인 군속으로서는 살아서 나가기 힘든 ‘지옥’이었다. 조선인 군속은 군내에서 최말단으로 ‘군부(軍夫)’라고 불렸다. 이들의 참상을 전하는 공식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가키노하나 씨나 살아남아 군속으로 겪은 지옥을 증언했던 고(故) 강인찬의 증언으로 전해질 뿐이다. 가키노하나 씨는 “일본인으로서 부끄러운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알리고 반성해야 할 과거”라고 강조했다. 기자는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조선인이 총살된 ‘세키가하라(關ヶ原) 처형장’과 감금된 구덩이 등 참상의 현장을 찾아 섬 곳곳을 헤맸다. 71년 세월 속에 수풀이 우거진 그곳을 현지 주민들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1시간 동안 우거진 수풀을 헤쳤지만 길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증언집의 지도에 나온 위치는 이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일본군 본부가 있던 노다(野田) 산 정상의 나카다케(中岳) 전망대에 오르자 처형장과 구덩이 위치가 간신히 보였다. 세찬 바람이 한여름 더위를 삼키듯 한 차례 맹렬하게 불었다. 희생자들이 ‘우리를 잊지 말라’는 말이라도 건네는 듯했다. 희생된 이들은 그대로 묻혀 있을까. 현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지시로 섬 주민들이 유골을 수습해 1952년 오키나와로 보냈다. 이후 여러 곳에서 모인 유골들은 한데 모아져 화장된 뒤 몇 곳의 위령탑 등에 안치된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결국 이곳에서 희생된 조선인 유골의 행방은 알 수 없다. 2004년에야 한국과 일본 정부는 강제징집된 조선인 군인과 군속의 유골 반환 협의를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미미하다. 그 전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인 사망자 유골을 가려내는 일을 사실상 방기해왔다. 지난달 26일 찾은 오키나와 남단 마부니(摩文仁) 해안에 조성된 현립 평화기념공원 내에는 ‘오키나와 전쟁’ 사망자의 이름이 가득했다. 벽의 이름은 ‘평화의 초석(平和の礎)’. 한쪽 구역에는 조선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따로 적혀 있다. ‘강맹근, 고광일, 김봉환….’ 희생자들의 명단은 불과 447명(대한민국 국적 365명, 북한 82명)에서 멈췄다. 희생자 추산치인 1만 명의 4.47%에 불과하다. 이름이 새겨진 이들 역시 거의가 유골을 찾지 못한 이들이다. 1975년 8월 우리 정부가 광복 30주년을 기념해 세운 ‘한국인위령탑’이 공원 한쪽에 있었지만 유난히 한적했다. 조선인 유골 봉환 등과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4월부터 시행 중인 ‘전몰자의 유골 수집에 관한 법률’(유골수집법)이다. 종전 80주년을 맞는 2025년까지 수습된 전사자 유골에 대한 유전자(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사실상 유골문제를 마무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오키나와 현도 이 법의 시행에 맞춰 2014년 7월부터 수습 유골에 대한 화장을 중단한 상태였다. 평화기념공원 내의 ‘전몰자 유골수집 정보센터’는 2014년 전후로 보관한 690여 구의 유골 중 DNA 검사 대상이 되는 87구를 분류해 놨다. 특히 우라소에(浦添) 시 마에다(前田) 소학교 인근 현장은 후생노동성이 직접 조사하는 등 대규모 현장으로, 향후 조선인 유골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유골수집법은 일본에서 ‘우리나라(일본) 전몰자 유골’로 대상을 한정했다. DNA 검사를 한 뒤 일본인 유족 중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도 조선인 등 외국인 유족과는 DNA 대조를 확인할 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태평양전쟁보상추진협의회 등 한국 유족 단체들은 한반도 출신 희생자의 신원 파악을 위한 유족 DNA 검사를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일본) 정부 내부에서 적절한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는 미지근한 반응만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는 현재까지 공식적인 대응이 없다. 행정자치부 산하 과거사 관련 업무 지원단에서 한국 유족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관련한 1차 예산 3억 원을 신청한 뒤 다음 달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강제숙 공동대표는 “법안은 문제점이 있지만 DNA 검사를 실시하는 등 조선인 유골을 가족에게 돌려보낼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사실상 합골 상태로 화장되기 때문에 유골들은 영영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한국 정부 차원에서 유족 데이터베이스를 빠른 시일 내에 구축하고 법 시행 관련 일본 정부의 행동에 기민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오키나와=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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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골수습 자원봉사 구시켄 대표 “DNA검사로 가족 품에 돌려보내야”

    “일본인이건 한국인이건, 억울하게 죽은 분들의 유골은 신원을 밝혀 유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34년간 오키나와 현 나하 시 일대에서 전사자 유골을 수습해 온 자원봉사 단체 ‘가마후야’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2·사진) 대표의 말은 단호했다. 지난달 27일 나하 시의 한 호텔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그는 “지금까지 수습된 유골 중 이름표나 유품 등을 통해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것은 5%도 되지 않는다”며 “신원이 제대로 파악되기도 전에 감추고 싶은 역사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유골은 급히 화장되고 합골(合骨)됐다”고 했다. 오키나와 태생으로 본업이 기계수리공인 구시켄 대표는 수년 전부터 유골에 대한 DNA 검사의 필요성을 앞장서 주장했다. 2009년 시 외곽에서 172구의 유골을 수습하고 나서는 오키나와 현에 유골들을 화장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올 4월 ‘유골수집법’이 시행됐지만 그는 여기에도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DNA 분석 표본을 치아에서만 채취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구시켄 대표는 “한국이 6·25전쟁 전사자 유골의 DNA를 분석할 때 표본을 치아뿐 아니라 팔다리뼈에서도 채취해 분석하는 것처럼 일본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시행 이후 오키나와 현이 보관하던 전사자 유골 690여 구 중 DNA 검사 대상으로 분류된 것은 치아가 보존된 87구의 유골이다. 하지만 치아는 없어도 팔다리뼈가 있는 나머지 유골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할 기술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자신이 지금까지 수습한 유골 300여 구 중 10구 이상은 조선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앞으로 수습될 유골에도 조선인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한일 양국 정부의 노력을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등 외국 정부와 협력해 일본인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의 DNA를 외국의 유족과도 대조한 뒤 유족을 찾아줘야 합니다. 한국 정부도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하루 빨리 구축해야 합니다. 지금 서두르지 않는다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한을 풀 수가 없습니다.”나하=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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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5년 전쟁 일으킨 日 엘리트 육군의 광기

    “이 책은 ‘쇼와 육군’이 왜 많은 착오를 범했는가를 해명하기 위해 쓰였다.” ‘쇼와 육군’ 머리말 첫 구절. 언뜻 보면 이 책이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저지른 만행에 대해 내세운 숱한 변명 중 하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자신의 사관을 ‘자성(自省) 사관’이라 규정한 대로 일본이 저질러 온 과오를 숨김없이 들춰 나간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및 군부 주요 인사 4000여 명을 취재하고 관련 서적만 150권 이상 저술한 베테랑답게 ‘쇼와 육군’을 샅샅이 해부한다. 쇼와(昭和·1926∼1989년) 일왕 시기 만주사변(1931년)부터 패전(1945년)까지의 ‘15년 전쟁’, 전후 시기에 관한 자료와 관련자 증언 등이 1000쪽이 넘는 분량에 빼곡히 담겨 있다. ‘쇼와 육군’ 탄생의 역사적 배경 등은 1부 60여 쪽에 ‘전사(前史)’로 상술했다. 자화자찬식인 일본의 공식 기록을 인용할 뿐 아니라 약자와 희생자 등의 증언, 공식 기록에서 배제됐던 자료를 비중 있게 다룬 점은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공식 기록의 허구성을 짚는다. 가령 일본군이 1943년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 섬에서 벌어진 미군과의 전투에 대해 일본 대본영은 적에게 입힌 손해는 인원 2만5000명 이상, 우리 쪽 손해는 1만6734명이라고 발표한다. 우세한 적군을 압박하고 과감하게 격전을 치러 적의 전력을 분쇄했다는 대본영의 자평도 덧붙는다. 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반대편에 있다. 참전한 일본군, 이들과 맞대결한 미군의 증언 및 기록 등을 통해 초반부터 정보력, 화력이 열세에 몰린 일본군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적에 대한 객관적 정보 없이 오기로 치른 전쟁, 적과 싸우기보다 굶주림과 싸워야 한 일본 병사들…. 미군 기록 등에 담긴 내용(미군 전사자 1000명 부상자 4200명, 일본군 전사자와 아사자 2만4600명)을 대조하며 대본영 발표가 과장과 허위의 대명사라 비판한다. 전후에도 일본의 ‘피해’ 기록만 있을 뿐 ‘가해’에 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광기에 휩싸인 일본제국이 벌인 전쟁과 각종 참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저자는 일본 ‘쇼와 육군’, 특히 상층부를 이루는 엘리트 장교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메이지 시대인 1882∼1896년에 걸쳐 태어나 육군유년학교,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엘리트. 하지만 일본 육군 양성 시스템에서 독창적 식견, 선견지명을 갖추기보다 협소한 틀에서 사고하던 무능력자들이다. 인간을 전쟁 소모품으로 간주한 이들은 서구 열강보다 국력이 약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옥쇄(玉碎·옥이 부서지듯 아름답게 죽는다는 뜻으로 집단자결이나 최후항전을 의미)’를 하급 군인, 민간인에게 강요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미래는 없다. 책 전체를 관통하며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사 청산은커녕 쇼와 육군 탄생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듯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전쟁 수행 가능 국가로 나아가는 아베 정권을 볼 때, 17년 전 책에서 펼친 저자의 주장은 지금도 시의적절하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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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중국은 왜 ‘짝퉁 천국’이 됐을까

    # 조조의 아들인 조충은 대여섯 살 때부터 총명함이 남달라, 다들 어른보다 낫다고 했다. 어느 날 손권이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보냈는데, 조조는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몹시 궁금했다. 사람들에게 방법을 물었으나 누구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러자 다섯 살인 조충이 말했다. “코끼리를 배에 실은 다음 배가 물속에 어느 정도 가라앉는지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만큼의 돌을 싣습니다. 그런 다음 그 돌을 꺼내 무게를 재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조조는 크게 기뻐했다. 중국 고사성어 중 하나인 ‘조충칭상(曹沖稱象·조충이 코끼리 무게를 재다)’ 이야기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기념우표로 나왔을 정도로 중국에서 지혜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이를 보고 어린아이의 지혜에 감탄사를 내뱉을 때쯤, 산통 깨는 저자의 비판이 이어진다. “(부력 원리라는) 위대한 물리학 정의는 중국인을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예부터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부분이 약하고 수량화와 형식화에 대한 자각의식이 부족해 수많은 발견이 ‘직관적 관찰’에 그치고 만 것이다.” 저자는 부력을 인지하고도 조충의 지혜에만 감탄할 뿐 고대 그리스 아르키메데스처럼 직관적 관찰을 과학법칙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중국인의 ‘얕은 사고’를 아쉬워한다. 중국인이지만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싱가포르 국립대 종신교수로 근무하는 저자는 이런 식으로 중국인들의 행태를 깎아내린다. 원제목이 ‘중국인의 논리’인 책 속에는 10장에 걸쳐 중국인들이 흔하게 저지르는 민폐들을 분석한다. 중국에 ‘짝퉁’이 많은 이유, 중국인이 목소리가 큰 이유, 도박을 좋아하는 이유,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이유 등 외부인이 보기에도 솔깃할 만한 내용들이다. 저자의 날 선 분석은 거침없다. 중국에 짝퉁이 많은 이유는 남과 같음을 추구하는 중국인의 속성 때문이다. 체면을 중시해 새 모조품을 쓸지언정 남이 쓰던 물건은 쓰지 않는다는 중국인들의 옛날 사고 등이 오늘날 ‘짝퉁 천국’ 중국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언어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어서(목소리가 큰 이유), 표의문자 위주인 한자의 특성상 기호 위주인 수학이 발달하지 못해서(확률상 돈을 잃게 돼 있는데도 도박을 좋아하는 이유), 서양의 기독교처럼 욕망을 절제하게 하는 신앙이 없어서(질서를 안 지키는 이유) 등 분석은 다양하다. 그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중국인은 중국 본토는 물론이고 대만 싱가포르 등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다. 저자는 “후손들이 자신들의 사고습관을 알고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길 원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저자의 애정 섞인 비판들을 읽다보면 책 속 이야기들이 마냥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과도한 혈연주의로부터 파생된 ‘푸얼다이(富二代·한국의 재벌2세와 비슷)’, 물질만능주의로부터 비롯된 각종 뇌물과 부패 스캔들, 윗사람에 대한 복종을 미덕으로 여겨 창의성이 떨어지는 문화….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이슈들이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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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피해 할머니 恨서린 현장, 앱 통해 전세계 고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눈물이 담긴 생생한 현장을 전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한국 홍보 전문가로 잘 알려진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42)가 1일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소의 역사 현장을 안내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부터 1년간 일본 오키나와 2곳, 중국 상하이 3곳 등 일본군 위안소의 흔적을 찾아 역사 현장답사를 다녔다”고 말했다. “일본 오키나와 ‘류큐(琉球)왕국’ 왕궁 터에 남아있다는 위안소(동굴)를 6시간 동안 찾아 헤맸어요. 겨우 찾은 그곳 입구에 놓인 국화 한 송이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죠. 누군가 기억하고 있구나, 이제 우리 모두가 기억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교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소의 흔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지도에 표시하고, 영상 사진자료까지 담은 모바일 앱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최근 떠오른 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해 역사적 현장에서 일본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줄 앱을 내년 3·1절을 기점으로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 교수는 또 일제에 의한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리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지난달 부산 기장군 일광면 ‘닛코(日光) 광산’에 일제 강제징용현장 안내판을 설치했다. 그는 지난달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주년을 맞은 일본 하시마(端島) 섬(별칭 군함도)을 방문했다. “지난달 16일 새로 개관한 ‘군함도 자료관’을 가보니 일본이 당초 약속한 ‘강제징용’에 대한 설명은 한 단어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유네스코 유산 등재 후 관광객이 급증한 군함도를 ‘관광섬’으로 홍보하고, 관광객에게 낚시를 허가하는 등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제 강제징용의 역사를 없애려는 꼼수를 그대로 지켜볼 수 없습니다.” 서 교수는 2005년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실어 화제를 모았으며 가수 김장훈 등과 함께 해외에서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나서면서 일본 극우단체의 살해협박 메일과 전화도 적지 않았다. “젊은이들로부터 ‘나도 함께 한국 홍보활동을 하고 싶다’는 전화나 메일을 매일 10통 이상씩 받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홍보 노하우도 전수하고 싶어요.”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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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넘게 이어져온 中 조선족 교육의 뿌리

    “중국 조선족들은 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의 뿌리는 조선인이라는 의식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것일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정미량 박사가 쓴 학술서 ‘발로 찾아 쓴 조선족 근현대 교육사’는 중국 만주지역에서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조선족 교육의 역사를 추적해 이들을 깊게 이해하려 했다. 제목처럼 발로 찾아 쓴 내용이 주종이다. 2007년 연구를 구상한 저자는 중국 창춘(長春) 시의 관성구조선족소학교, 옌지(延吉) 시의 중앙소학교, 우창(五常) 시의 민락중심소학교 등 세 곳을 찾아가 교육 과정의 변화를 살피고 현지 조선족을 만나 구술 취재를 했다. 저자가 추적한 조선족 1세대와 3, 4세대 요즘 조선족 사이 의식 변화 내용은 현실적이다. 민족성에 비중을 둔 조선족 1세대와 중국 사회 소수민족으로 성장해 온 보다 전략적인 3, 4세대들. 이를 ‘변절’로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이주민이 있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나타나는 보편 현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세대는 바뀌었지만 저변에 있는 민족주의적 감성, 고향에 대한 자부심 등 2가지가 100년 넘는 이주의 역사 동안 조선족 교육이 중국 안에서도 생존한 이유라고 저자는 본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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