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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에는 하루 평균 120만 명이 극장을 찾는다. 영화계에서는 올해 연휴에도 관객 수가 65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개봉 영화 면면이 예년과는 다르다. 대목 때마다 극장을 메운 소위 ‘큰돈’ 들인 한국영화가 없고, ‘극한직업’ ‘뺑반’처럼 알짜배기 영화들 위주다. 주요 배급사들은 연휴 1, 2주 전으로 개봉을 앞당기고 개봉 날짜를 분산해 관객 선점에 나섰다. ‘명절용 영화’를 내걸고 연휴 직전 동시에 개봉했던 한국영화들이 공멸했던 지난해 설, 추석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영화 키워드 ‘가성비’ CJ엔터테인먼트는 ‘극한직업’, 쇼박스는 ‘뺑반’을 내놨다. NEW는 애니메이션 ‘극장판 헬로카봇: 옴파로스 섬의 비밀’을, 롯데엔터테인먼트는 9일 개봉한 ‘말모이’로 명절을 대체했다. ‘안시성’(NEW), ‘협상’(CJ엔터테인먼트), ‘물괴’(롯데엔터테인먼트) 등 총제작비 100억 원 이상 영화들로 채워졌던 지난해 추석과 비교하면 확실히 규모가 줄었다. 물론 대작이 사라진 만큼 손익분기점을 넘기에 수월하다. 23일 개봉한 코믹 수사물 영화 ‘극한직업’은 5일 만에 관객 수 300만 명을 넘겼다. 순제작비가 65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은 230만 명. 배급사는 설 연휴 흥행을 발판으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30일 개봉하는 ‘뺑반’은 액션에 코미디를 가미해 설 연휴 ‘극한직업’과 함께 쌍끌이 흥행을 노린다. 장르도 ‘7번방의 선물’(2013년), ‘수상한 그녀’(2014년) 등 과거 명절에 굳건하게 자리 잡았던 코미디물로 돌아갔다. ‘공조’ ‘더 킹’(2017년 설), ‘골든슬럼버’(지난해 설)처럼 남성적 향기를 진하게 풍기던 액션물도, ‘남한산성’(2017년 추석), ‘흥부’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지난해 설) 같은 사극도 자취를 감췄다. 배급사 관계자들은 “대목에 꼭 대작을 내놓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2014년 이후 최저인 50.9%. ‘마약왕’ ‘스윙키즈’ 등 대작 한국영화의 흥행 참패로 제기된 한국영화 위기설을 설 연휴를 계기로 극복하려는 모양새다. 황재현 CGV 홍보팀장은 “지난해와 다르게 한국영화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있다”고 했다.○ ‘블랙팬서’의 악몽 재연될까 변수는 역시 할리우드 대작 영화다. 지난해 설 연휴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팬서’가 박스오피스 1위를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다음 달 5일에는 ‘타이타닉’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하고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알리타: 배틀엔젤’이 개봉된다. 26세기 고철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두뇌와 기계의 몸을 가진 사이보그 소녀가 과거 기억을 되찾고 최강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알리타…’는 순제작비만 약 1677억 원에 달한다. 2009년 관객 13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던 ‘아바타’의 파급력과 맞먹는다는 관측도 나온다. 30일 개봉하는 ‘드래곤 길들이기3’는 바이킹 족장으로 거듭난 히컵과 용 투슬리스의 마지막 모험을 그렸다. 2010, 2014년 개봉한 1, 2편이 각각 259만 명, 299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바 있어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명절 연휴에는 하루 평균 120만 명이 극장을 찾는다. 영화계에서는 올해 연휴에도 관객 수가 65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개봉 영화 면면이 예년과는 다르다. 대목 때마다 극장을 메운 소위 ‘큰 돈’ 들인 한국영화가 없고, ‘극한직업’ ‘뺑반’처럼 알짜배기 영화들 위주다. 주요 배급사들은 연휴 1~2주 전으로 개봉을 앞당기고 개봉 날짜를 분산해 관객 선점에 나섰다. ‘명절용 영화’를 내걸고 연휴 직전 동시에 개봉했던 한국영화들이 공멸했던 지난해 설, 추석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다.●한국영화 키워드 ‘가성비’ CJ엔터테인먼트는 ‘극한직업’, 쇼박스는 ‘뺑반’을 내놨다. NEW는 애니메이션 ‘극장판 헬로카봇: 옴파로스 섬의 비밀’을, 롯데엔터테인먼트는 9일 개봉한 ‘말모이’로 명절을 대체했다. ‘안시성’(NEW), ‘협상’(CJ엔터테인먼트), ‘물괴’(롯데엔터테인먼트) 등 총제작비 100억 원 이상 영화들로 채워졌던 지난해 추석과 비교하면 확실히 규모가 줄었다. 물론 대작이 사라진 만큼 손익분기점을 넘기에 수월하다. 23일 개봉한 코믹 수사물 영화 ‘극한직업’은 5일 만에 관객 수 300만 명을 넘겼다. 순제작비가 65억 원으로 손익분기점은 230만 명. 배급사는 설 연휴 흥행을 발판으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30일 개봉하는 ‘뺑반’은 액션에 코미디를 가미해 설 연휴 ‘극한직업’과 함께 쌍끌이 흥행을 노린다. 장르도 ‘7번방의 선물’(2013년), ‘수상한 그녀’(2014년) 등 과거 명절에 굳건하게 자리 잡았던 코미디물로 돌아갔다. ‘공조’, ‘더 킹’(2017년 설), ‘골든슬럼버’(지난해 설)처럼 남성적 향기를 진하게 풍기던 액션물도, ‘남한산성’(2017년 추석), ‘흥부’,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지난해 설) 같은 사극도 자취를 감췄다. 배급사 관계자들은 “대목에 꼭 대작을 내놓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2014년 이후 최저인 50.9%. ‘마약왕’, ‘스윙키즈’ 등 대작 한국영화의 흥행 참패로 제기된 한국영화 위기설을 설 연휴를 계기로 극복하려는 모양새다. 황재현 CGV 홍보팀장은 “지난해와 다르게 한국영화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있다”고 했다.●‘블랙팬서’의 악몽 재현될까 변수는 역시 할리우드 대작 영화다. 지난해 설 연휴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팬서’가 박스오피스 1위를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다음달 5일에는 ‘타이타닉’,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하고 ‘씬 시티’의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알리타: 배틀엔젤’이 개봉한다. 26세기 고철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두뇌와 기계의 몸을 가진 사이보그 소녀가 과거 기억을 되찾고 최강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알리타…’는 순제작비만 약 1678억 원에 달한다. 2009년 관객 13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던 ‘아바타’의 파급력과 맞먹는다는 관측도 나온다. 30일 개봉하는 ‘드래곤 길들이기3’은 바이킹 족장으로 거듭난 히컵과 용 투슬리스의 마지막 모험을 그렸다. 2010년, 2014년 개봉한 1, 2편이 각각 259만 명, 299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바 있어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MBC가 적폐청산을 목적으로 설립한 ‘정상화위원회’의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서부지법은 28일 MBC 노동조합(3노조)이 지난해 10월 제출한 MBC 정상화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일부를 받아들여 정상화위원회의 징계 요구권 등 핵심 조항들의 효력을 정지했다. 최승호 사장 취임 후 지난해 1월 출범한 정상화위원회는 2008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일어난 독립성 침해, 왜곡 보도 등을 조사해 왔다. 최근 활동 기한 1년이 만료되자 6개월 연장했다. 이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위원회가 조사 대상에 대해 출석 또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출석, 답변, 자료 제출 요구를 받은 조사 대상이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하며 △조사 결과 회사에 조사 대상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는 한편 △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한 조사 대상에게 징계를 요구하는 등 정상화위원회의 주요 운영규정의 효력이 정지됐다. 이로 인해 이번 사건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상화위원회는 핵심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은 “정상화위원회 운영규정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으로 “MBC 소속 근로자에게 집단적이고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준칙”이라고 해석했다. 정상화위원회가 이런 운영규정을 만들 때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1노조)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없었고 MBC 공정방송노동조합(2노조), MBC 노동조합(3노조)과도 아무런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MBC는 “정상화위원회는 MBC 장악의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활동 만료 시한까지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가처분 결정에 대해 이의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이 피었다. 다음 달 7일 개봉하는 영화 ‘콜드 워’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공기 속에서 사랑을 이어가는 남녀를 흑백 화면에 담았다. 미장센이나 사랑의 서사, 시대적 배경 모두 고전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세련됐다. 1949년 가난을 탈출하고자 폴란드 민속음악단 ‘마주르카’에 입단한 줄라(요안나 쿨리크)는 그곳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빅토르(토마시 코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공산권 선전 수단으로 이용된 ‘마주르카’에서 빅토르는 줄라가 음악단 입단 조건으로 그의 사상과 행적을 상부에 보고한다는 사실을 알고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자칫 뻔할 수 있는 로맨스지만 폴란드 민속음악과 프랑스 재즈를 얹어 찬란하게 빛난다. 음악을 매개로 둘은 수차례 재회하며 사랑이라는 이상과 이데올로기 대립에 놓인 현실의 경계를 진동한다. 1954년 파리 재즈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빅토르에게 줄라가 찾아온다. 폴란드에서 성공한 가수가 돼 결혼까지 한 줄라와 빅토르는 또다시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줄라가 빅토르를 처음 만난, 민속음악단 입단 면접에서 부른 ‘심장’은 재즈의 선율을 만나 전혀 다른 노래로 재탄생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하나가 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줄라가 내뱉는 ‘심장’의 가사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으니까”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감독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는 부모님의 40년 사랑 이야기로부터 둘의 사랑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둘을 바라보는 감상적 시선은 흑백의 화면 대비를 통해 힘을 얻는다. 제87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다’(2015년)에 이어 감독은 흑백 화면과 4:3 화면 비율을 고집했다. 프레임 중심에서 인물을 멀리 떨어뜨린 구도는 두 남녀의 공허함과 쓸쓸함을 담는다. 그는 “1950년대 폴란드는 전쟁으로 파괴됐다. 실제 삶을 선명하고 강렬한 색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완전히 거짓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재즈로 편곡한 ‘심장’의 “시계추가 시간을 죽였네”라는 가사처럼, 둘의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파리에서 이별한 뒤, 빅토르가 10년 전 둘이 처음 만났던 폴란드로 찾아가면서 사랑이 완성된다. 차갑고 시린 얼음 위에 피어났기에 둘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8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도 군더더기 없이 압축적이다. 제71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자 제91회 아카데미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작. 15세 관람가. ★★★★(★ 5개 만점)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1958∼2009·사진)의 성추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해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성추행 혐의로 잭슨을 고소한 남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리빙 네버랜드’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개봉했다. 영화는 잭슨의 저택 ‘네버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남성의 사건 회고와 그 이후의 삶을 담았다. 영화제는 개봉 첫날 팬들의 상영 방해 시위에 대비해 이례적으로 경찰까지 배치됐다. ‘#StopLeavingNeverlandNOW’, ‘#MJInnocent’ 등 해시태그(#)를 달아 잭슨의 무죄를 주장하는 온라인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조카 타지 잭슨은 ‘리빙…’을 반박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잭슨재단 측은 이달 초 ‘리빙…’ 개봉을 앞두고 “고소인들은 믿을 수 없는 주장만 펴고 있다. 이미 무죄를 받은 사건”이라고 항의했다. 잭슨은 아동 성추행 혐의에 대해 2005년 5월 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리빙…’은 올봄 미국 케이블 채널 HBO에서도 방송될 예정.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1958~2009·사진)의 성추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해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성추행 혐의로 잭슨을 고소한 남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리빙 네버랜드’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개봉했다. 영화는 잭슨의 저택 ‘네버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남성의 사건 회고와 그 이후의 삶을 담았다. 영화제는 개봉 첫날 팬들의 상영 방해 시위에 대비해 이례적으로 경찰까지 배치됐다. ‘#StopLeavingNeverlandNOW’, ‘#MJInnocent’ 등 해시태그(#)를 달아 잭슨의 무죄를 주장하는 온라인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조카 타지 잭슨은 ‘리빙…’을 반박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잭슨 재단 측은 이달 초 ‘리빙…’ 개봉을 앞두고 “고소인들은 믿을 수 없는 주장만 펴고 있다. 이미 무죄를 받은 사건”이라고 항의했다. 잭슨은 아동 성추행 혐의에 대해 2005년 5월 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리빙…’은 올봄 미국 케이블 채널 HBO에서도 방송될 예정.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가장 차가운 곳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이 피었다. 다음달 7일 개봉하는 영화 ‘콜드 워’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공기 속에서 사랑을 이어가는 남녀를 흑백 화면에 담았다. 미장센이나 사랑의 서사, 시대적 배경 모두 고전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세련됐다. 1949년 가난을 탈출하고자 폴란드 민속 음악단 ‘마주르카’에 입단한 줄라(요안나 쿨릭)는 그곳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빅토르(토마즈 코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공산권 선전 수단으로 이용된 ‘마주르카’에서 빅토르는 줄라가 음악단 입단 조건으로 그의 사상과 행적을 상부에 보고한다는 사실을 알고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자칫 뻔할 수 있는 로맨스지만 폴란드 민속음악과 프랑스 재즈를 얹어 찬란하게 빛난다. 음악을 매개로 둘은 수차례 재회하며 사랑이라는 이상과 이데올로기 대립에 놓인 현실의 경계를 진동한다. 1954년 파리 재즈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빅토르에게 줄라가 찾아온다. 폴란드에서 성공한 가수가 돼 결혼까지 한 줄라와 빅토르는 또다시 서로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줄라가 빅토르를 처음 만난, 민속 음악단 입단 면접에서 부른 ‘심장’은 재즈의 선율을 만나 전혀 다른 노래로 재탄생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하나가 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줄라가 내뱉는 ‘심장’의 가사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으니까”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감독 파벨 파블리코브스키는 부모님의 40년간 사랑 이야기로부터 둘의 사랑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둘을 바라보는 감상적 시선은 흑백의 화면 대비를 통해 힘을 얻는다. 제87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다’(2015년)에 이어 감독은 흑백화면과 4:3 화면 비율을 고집했다. 프레임 중심에서 인물을 멀리 떨어뜨린 구도는 두 남녀의 공허함과 쓸쓸함을 담는다. 그는 “1950년대 폴란드는 전쟁으로 파괴됐다. 실제 삶을 선명하고 강렬한 색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완전히 거짓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재즈로 편곡한 ‘심장’의 “시계추가 시간을 죽였네”라는 가사처럼, 둘의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파리에서 이별을 한 뒤, 빅토르가 10년 전 둘이 처음 만났던 폴란드로 찾아가면서 사랑이 완성된다. 차갑고 시린 얼음 위에 피어났기에 둘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8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도 군더더기 없이 압축적이다. 제71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자 제91회 아카데미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작. 15세 관람가. ★★★★(★ 5개 만점)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파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겠죠. 어려서 꿈꾸었던 비행기 타고∼.” 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누구라도 2006년 그룹 거북이의 ‘비행기’를 흥얼거릴 듯싶다. 채널A에서 26일부터 새로 선보이는 ‘비행기 타고 가요’는 연예인들의 승무원 체험기를 담았다. 제작발표회가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비행기…’를 통해 승무원에 도전하는 신현준(51) 황제성(37) 정진운(28) 유라(27)를 만났다. 나이는 천차만별이지만 멤버 모두 승무원에 대한 로망을 품어 왔다. 아이돌그룹 출신으로 해외 공연차 비행기를 밥 먹듯이 타는 이들에게는 더 간절했다. 정진운은 공항에 갈 때마다 여럿이 함께 다니는 승무원들을 보며 ‘한 번쯤 저 옷을 입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라는 비행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했다. 그는 “기내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대변(?)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동안 승객으로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며 웃었다. 멤버들은 “날로 먹는 예능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예능이지만 교육과정은 ‘다큐’였다는 것. 촬영 두 달 전부터 승무원 교육을 받았다. 서비스, 안전 교육 등 훈련을 마치면 목이 쉬었다. SBS ‘정글의 법칙’, MBC ‘무한도전’ 조정 특집 등에 출연하며 체력을 뽐낸 정진운에게도 힘든 도전이었다. 그는 “눈치 보고 머리 쓰는 직업이라 촬영 후에도 혼난 부분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신현준은 첫 비행 때 기내에서 장난을 치다가 딸(?) 같은 승무원 선배에게 혼쭐이 났다. 그는 “승무원은 승객 생명을 책임지기 때문에 안전훈련을 받을 때 특히 스트레스가 심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웃음으로 대하는 승무원들의 노고를 직접 경험한 뒤 앞으로 친절한 손님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실전은 만만치 않았다. 유라는 “착륙 시 등받이를 세워 달라”는 요구에 귀찮아하며 인상을 쓰거나 못 들은 척하는 승객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일본어가 서툰 정진운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일본인에게 “오프(off)시테 구다사이”라는 정체 모를(?) 언어를 내뱉기도 했다. 개그맨 황제성은 작은 키 때문에 가방을 짐칸에 올릴 때마다 재킷이 승객의 정수리를 덮어 난감해했다. 승무원 생활의 묘미는 기내에만 있는 건 아니다. 승무원들에게 ‘핫’한 현지 탐방지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승무원이 꼽는 식당은 진짜 ‘맛집’이라고 한다. 멤버들은 일본 다카마쓰에서 50년 넘은 우동집을 최고로 꼽았다. 유라는 “저번 여행 때 몸무게가 2kg 불어 돌아왔다. 다음 ‘먹방’을 위해 열심히 닭가슴살을 먹고 있다”며 웃었다. 이 프로그램은 항공사 에어서울, 여행사 롯데JTB가 제작을 지원했다. 연출을 맡은 김형구 PD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힘들게 일하는 승무원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으려 했다. ‘비행기…’를 계기로 멋진 승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멤버들은 시청률 2%를 넘기면 시청자들을 뽑아 다음 비행에 초대하겠다는 깜짝 공약을 했다. 과연 이들은 공약을 달성할 수 있을까. 첫 방송은 26일 오후 5시 50분.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공영방송이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노동조합에 예속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디어연대,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24일 열린 ‘KBS의 방송 공정성과 수신료 징수’ 토론회에서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에서 전 정부 사장 및 경영진을 반강압적으로 밀어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력과 공영방송이 유착된 ‘정치병행성’ ‘후견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황 교수는 “KBS, MBC 등 현재 공영방송을 주도하는 노동조합은 정치투쟁을 하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의 대리인 성격이 강해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이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공영방송이 별도 규제기구로 운영되는 영국의 ‘이원적 규제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청률과 영향력이 급감한 공영방송이 광고재원에 기댐으로써 급기야 중간광고 도입이라는 최악의 수를 두게 됐다”며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수신료 인상과 대규모 구조조정 및 경영합리화 정책으로 영국 최대 포털 사이트의 하나로 성장했다”고 했다. 또 “정치집단은 수신료 인상에 나서지 않고 공영방송 내부는 구조조정을 피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광고에 의존하려 하며 국민은 수신료를 부담하지 않으려는 ‘부정적 연합’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KBS 수신료 강제 부과 조항을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경환 변호사는 “인터넷TV 등 지상파 방송의 수많은 대체재로 인해 TV 수상기의 정의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수신료를 강제 부과하는 것은 국민의 납부선택권을 제한하는 구시대적 조항”이라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독일의 ‘수신료산정위원회(KEF)’처럼 국민이 수신료 산정, 징수, 분배, 사용을 감시할 수 있는 전문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가을에 괴질이 유행하여 서쪽에서부터 들어왔는데 열흘 사이에 도하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효가 수만 명에 달하였다.’ 2011년 김은희 작가는 조선 23대 임금 ‘순조실록’의 한 구절을 보고 백성들이 좀비로 변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3년 뒤 만화 ‘버닝헬(신의 나라)’에 이 이야기의 일부를 풀어낸 김 작가가 마침내 넷플릭스를 만났다.》 25일 세계 190여 개국 가입자 1억3900만 명에게 공개되는 6부작 드라마 ‘킹덤’은 15, 16세기 조선에서 권력에 밀린 세자가 역병의 비밀을 파헤치는 좀비물이다. 국내 최초로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시즌2 제작이 확정돼 화제를 모았다. 조정의 실세인 영의정 조학주(류승룡)가 임금이 머무는 강녕전 출입을 금하자 세자 이창(주지훈)은 임금이 죽었다는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호위무사 무영(김상호)과 함께 부산 동래로 길을 나선다. 임금의 병을 치료했던 의원을 찾아 동래의 지율헌에 당도하지만 마을에는 죽은 이들의 시신만 가득하다. ‘킹덤’은 시작부터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을 통해 충격을 극대화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답게 그로테스크한 연출도 볼거리. 좀비가 된 임금이 곤룡포를 입고 쇠사슬에 묶여 포효한다.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든 고요한 연못 아래에는 나무에 묶인 시체들이 우글거린다. 지율헌에서 좀비 떼가 사람을 물어뜯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쌓는 장면은 압권. 김 작가는 “이 드라마를 온전하게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은 넷플릭스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생생한 좀비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스산한 음향과 함께 흘러나오는 좀비의 기괴한 소리에 흠칫 놀랄 때가 많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의 드라마 중 가장 많은 제작비인 회당 20억 원을 투입해 좀비 특수분장과 컴퓨터그래픽(CG)에 공을 들였다. 온몸의 관절이 꺾이며 좀비로 변해 가는 배우들의 연기는 리얼함을 넘어 두려움을 준다. 김성훈 감독은 “가장 동양적인 이야기지만 외피는 서구에서 나온 좀비 장르다. 이 둘의 융합이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했다. 좀비물이기 이전에 ‘킹덤’은 굶주림에 관한 이야기다. 동래의 초가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지율헌의 의녀 서비(배두나)는 백성들이 임금에게 물려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를 삶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오열한다. 권력을 향한 욕망도 또 다른 배고픔 중 하나. 김 감독은 류승룡에게 “세자를 반역죄로 몰아 권력을 잡으려 하는 조학주를 연기할 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에서 자신의 대의를 위해 괴물로 변해 가는 허균을 열연했던 기억을 떠올려 달라”고 주문했다. 류승룡은 “배고픔, 권력에 대한 탐욕은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대작 드라마답게 2017년 10월부터 6개월간 경기 포천시, 전북 고창군 등 전국을 누볐다. 실감나는 좀비들의 추격 장면을 찍기 위해 일주일 동안 1300여 명의 배우, 스태프들이 산속에서 횃불을 들고 촬영에 임했다. 배우 주지훈은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고 김 감독은 카메라에 설경을 담다가 차를 폐차해야 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제작진의 노고(?)와는 별개로, 조선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드라마의 초반 전개가 다소 장황하다. 좀비가 된 임금, 역병에 맞서는 세자 등 기본 설정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창궐’을 떠오르게 한다. 사전에 공개된 예고편만 보고도 “소재가 신선하지 않다”는 팬들의 반응이 잇따랐다. 공교롭게도, 감독도 동명이인. 그럼에도 영화 ‘끝까지 간다’(2014년), ‘터널’(2016년) 등 익숙한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 김 감독의 첫 드라마 도전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 정도면 아무 사이 아니라도 기분이 묘할 듯.” 1982년생 동갑내기 배우 현빈과 손예진의 열애설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양쪽 모두 부정하고 나섰지만 누리꾼들은 온갖 추측을 쏟아내고 있다. 두 배우는 9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미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목격담이 올라오며 국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를 점령했다. 곧장 부인했지만 21일에는 두 배우가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이 게재되며 난리가 났다. 양측 소속사는 여전히 “친한 지인들도 함께 있었다. 서로 친한 동료 사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두 배우는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 ‘협상’에서 호흡을 맞췄을 때부터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았다. 이 때문에 사실 여부와 별개로 “결혼 적령기를 채운 두 배우가 차라리 연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누리꾼들의 응원 아닌 응원 목소리가 크다. 인터넷에서는 수차례 열애설을 부인하다 2017년 결혼한 배우 송중기 송혜교 커플을 거론하며 “나중에 갑자기 결혼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첫 시도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20일 종영한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국내 최초로 드라마에 증강현실(AR)을 도입했지만, 스마트렌즈를 낀 배우 현빈(유진우)이 게임 속 장검(長劍)을 든 중세의 무사로 변신해 결투하는 설정을 받아들일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마지막 회에서 유진우가 마침내 게임 속 버그인 차형석(박훈), 차병준(김의성), 서정훈(민진웅)의 가슴에 차례로 열쇠를 꽂아 버그를 삭제했고 게임은 초기화됐다. 죽었다고 여긴 유진우가 살아 있음을 암시하며 마무리되자 예상치 못한 결말이라는 반응과 초반에 던져 놓은 ‘떡밥’을 회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런 논란에도 ‘알함브라…’는 종영 직전 9∼1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 기묘한 드라마의 기원은 게임 ‘포켓몬 고’였다. 3년 전 송재정 작가(46)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스마트폰으로 포켓몬을 잡으면서 AR 소재를 떠올렸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에서 만난 그는 “영화 ‘아바타’,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가상현실 콘텐츠는 제작비가 많이 들지만, 증강현실은 기존 화면에 아이템만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하면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tvN ‘인현왕후의 남자’(2012년), ‘나인’(2013년)에 이은 타임슬립(시간여행) 3부작 드라마 기획도 과감히 포기했다. 그는 전형적인 드라마 작가는 아니다. SBS ‘순풍산부인과’, MBC ‘거침없이 하이킥’ 등 시트콤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때의 옴니버스 작법 때문인지 16부작인 이번 드라마도 16개의 엔딩을 써놓고 집필을 시작했다. 그는 ‘대항해시대’, ‘문명’ 등 평소 하던 게임을 읊으며 “생소한 게임 소재였지만 ‘게임 마니아’라 따로 공부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 드라마를 쓸 땐 ‘이게 말이 돼?’, ‘판타지물의 기본을 모른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마다 ‘판타지에 정해진 틀이 어디 있느냐’는 반발심이 들더라고요.” 아이디어는 다른 분야의 콘텐츠를 보며 건져 올린 경우가 많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자서전을 읽고 현실과 게임을 넘나들며 오류의 실체를 찾아 나선 게임회사 대표 유진우를 떠올렸다. 소재는 통통 튀지만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영웅 서사’라고 했다. 송 작가는 “내 작품들은 평범한 인물이 초현실적인 일을 겪으며 사랑을 찾고 진짜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며 “‘알함브라…’ 속 유진우도 현대판 ‘오디세우스’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찬양 인터뷰로 논란이 된 KBS ‘오늘밤 김제동’에 대해 문제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날 회의에서 야당추천 위원인 전광삼 상임위원과 이상로 위원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2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고의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9명의 위원 중 6명이 ‘문제없음’ 의견을 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 4일 김수근 ‘김정은 위인맞이 환영단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찬양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2분가량 내보냈다. 이날 회의에서 징계 의견을 낸 이상로 상임위원은 “KBS는 북한 체제를 찬양, 고무할 목적으로 김 단장을 인용했다. 수신료를 받고 대한민국과 국민을 공격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전광삼 박상수 상임위원은 KBS 공영노동조합이 양승동 KBS 사장과 ‘오늘밤…’ 제작진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한 것과 관련해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최종적으로 심의를 하자는 의견을 고수했다. 반면 정부 추천 이소영 상임위원은 국가보안법을 두고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언뜻 봐선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어벤저스 시리즈 같다. 감독 M 나이트 시아말란은 17일 개봉한 영화 ‘글래스’에서 자신의 전작 ‘언브레이커블’(2000년), ‘23아이덴티티’(2016년)에 나온 캐릭터들을 한 세계관에 불러냈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초인인가, 과대망상증에 빠진 정신병자인가. 영화는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세 인물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줄기차게 던진다. 131명이 숨진 열차 사고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데이비드 던(브루스 윌리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사소한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는 미스터 글래스(새뮤얼 잭슨), 유년 시절 어머니의 학대로 24개의 인격을 갖게 된 해리성 정체 장애인 케빈(제임스 매커보이). ‘언브레이커블’의 던과 글래스, ‘23아이덴티티’의 케빈은 모두 자신을 슈퍼 히어로라고 믿는 동시에 상처를 가진 존재들이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 엘리 스테이플(세라 폴슨)은 이들을 치료가 필요한 정신 질환자라고 규정한다. 화려한 그래픽과 선악이 극적으로 충돌하는 전형적인 히어로물을 상상하면 실망할 수 있다. 그만큼 스펙터클한 장면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스터 글래스는 필라델피아 최고층 타워 오픈 일에 맞춰 히어로들의 대립을 보여주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현실에선 정신병원 앞에서 일반인보다 힘이 조금 세 보이는 케빈과 던의 지저분한 몸싸움이 펼쳐진다. 감독의 전작 ‘식스 센스’(1999년)급은 아니지만 나름의 반전(?) 결말도 흥미롭다. 아냐 테일러조이, 스펜서 트리트 클라크 등 전작에 출연했던 아역 배우들의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으로 ‘언브레이커블’과 ‘23아이덴티티’의 스토리를 설명하지만 감독의 심오한 메시지를 읽기엔 불충분한 게 사실이다. 오히려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을 연결시키는 기나긴 과정에서 피로감마저 찾아온다. 미국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물에 싫증을 느끼거나, 초 단위로 다른 인물이 되는 제임스 매커보이의 신들린 연기력을 감상하고 싶은 이들에겐 괜찮은 선택일 듯하다. 15세 관람가. ★★★(★ 5개 만점)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토막연쇄살인, 총기난사 등 극단적인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한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극단주의의 실태를 파헤치고 이런 행동을 저지르는 이들의 심리를 파악한다. 극단주의를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믿음을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 내린다. 극단주의자의 탄생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체적, 경제적 위협뿐 아니라 정신적 위협도 포함된다. 개인은 가치 체계, 세계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며 무력감을 느끼지만 치유되지 않고 유사한 일을 반복해 겪을수록 혐오하는 대상이 넓어진다. 부모에 대한 혐오가 인간 혐오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남 일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차별을 통해 극단주의를 부추기거나 묵인하는 사회 지배층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돔 모양 고대 건축물은 역사를 증명하듯 군데군데 기둥이 잘려 있다. 이끼로 덮인 건물들 사이로 레이저를 쏘는 상어와 다리가 달린 해마가 대치하는, 비극의 도시 아틀란티스. 현란한 색채로 구현한 해저 도시의 디테일은 지난해 12월 개봉해 496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아쿠아맨’의 볼거리 중 하나다. 서울 동대문구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10일 만난 콘셉트 아티스트 크리스티안 로렌츠 쇼이러(52)는 영화 장면으로 재현된 이 해저도시의 초기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이날부터 이틀 동안 열린 ‘2018 콘텐츠원캠퍼스 구축운영 성과발표회’ 참석차 내한했다. 쇼이러는 “1년 6개월 동안 오로지 ‘아쿠아맨’ 일러스트에 매달렸다. 거대한 해파리들로 이뤄진 수직적인 해저도시를 구상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32편의 영화에 참여한 내로라하는 콘셉트 아티스트다. ‘제5원소’(1997년), ‘타이타닉’(1997년), ‘매트릭스’(1999년), ‘맨 오브 스틸’(2013년) ‘300: 제국의 부활’(2014년),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년) 등 그가 참여한 작품들이 받은 아카데미상만 16개.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콘셉트 아티스트는 영화, 만화, 게임 등의 제작 단계에서 구현될 장면의 시각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직업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대본이나 감독의 상상을 디자인을 통해 구체화하는 역할이다. 그런 만큼 그는 “콘셉트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강조한다. 영감을 얻는 방법은, 뻔하지만 “많이 보는 것”이 답이라고. ‘아쿠아맨’ 제작에 참여할 때도 바티칸, 피렌체, 베네치아 등을 여행하면서 눈에 담아둔 돔 형식의 건축물을 떠올렸다. 그는 “사원을 보러 꼭 쿠알라룸푸르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선한 콘셉트 아트를 내놓기 위해서는 인터넷 검색도 필수”라며 웃었다. 시놉시스만 보고 콘셉트 아트를 완성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아쿠아맨, 슈퍼맨처럼 원작에서 정형화된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콘셉트 아티스트의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맨 오브 스틸’에서는 직선 대신 곡선만으로 슈퍼맨의 고향 크립톤 행성을 구체화했고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는 고담 시티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기 위해 조명 대비에 신경을 썼다. “수많은 아티스트가 협업을 통해 내놓은 콘셉트 아트를 영화에 차용하는 건 결국 감독입니다. 팀원들, 감독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이유죠.”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그는 동물학자인 아버지와 아트스쿨에서 예술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다. 1997년 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작정 떠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임스 캐머런이 만든 시각효과 업체 ‘디지털 도메인’에 입성하면서부터 영화 콘셉트 아티스트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시나리오나 감독의 생각에 의존하는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에 대해 “뛰어난 대본과 감독이 있다면 문제없다”면서도 “SF 장르 등 기존 작품과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창조하려면 콘셉트 아티스트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국 영화를 보며 자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영화 ‘설국열차’에 구현된 세계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언젠가 꼭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어요.”(웃음)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미국 HBO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사진) 마지막 시즌이 올해 국내 안방극장을 찾는다. 영화 전문 케이블채널 ‘스크린’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8을 국내에 독점 방영한다고 14일 밝혔다. 미국에선 4월경 방영 예정이나 국내는 아직 미정이다. 조지 R R 마틴의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가 원작인 이 드라마는 2011년부터 방영을 시작해 2017년 시즌7을 마무리한 뒤 지난해 8번째 시즌 제작을 마쳤다.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될 시즌8은 회당 1500만 달러, 총제작비 9000만 달러(약 1018억 원)가 들어가 역대 드라마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투입했다. 특히 제작진이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결말을 촬영했다고 밝혀 팬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누리꾼들은 “간만에 시즌7까지 ‘정주행’해야겠다” “HBO 최고경영자(CEO)가 시즌8을 보고 경외감을 느꼈다는데 유종의 미 거두길” 등 기대감을 드러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떨어질 듯하다가도 다시 또 치고 올라온다.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제 불사신 같다. 14일 기준 978만 명을 돌파한 ‘보헤미안…’은 지난해 10월 31일 개봉한 이래 ‘박스오피스 순위’를 10회나 역주행했다. 그중 1위로 올라선 횟수만 네 번이다. 올해도 꾸준히 3위권을 유지하며 1000만 관객은 시간문제란 관측이 나온다. 》‘보헤미안…’의 저력은 관객 순위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국내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관객들은 지나간 음악영화를 찾아보며 ‘콘서트 대리만족’을 이어가고, 배급사는 대박을 꿈꾸며 또 다른 음악영화 찾기에 나섰다. 다큐멘터리 영화 ‘콜드플레이: 헤드 풀 오브 드림스’가 상영된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양천구의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은 콜드플레이의 인기곡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전주에 맞춰 박수를 쳤다. 싱어롱(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화 감상)관도 아니었지만 일부 관객은 영어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날 극장을 찾은 이준일 씨(31)는 “‘보헤미안…’을 본 뒤로 음악이 소재인 영화는 무조건 찾아보고 있다”며 “조용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는 문화가 바뀌는 것 같아 음악, 영화 팬으로서 뿌듯하다”고 했다. 사실 콜드플레이의 탄생부터 7집 앨범 투어까지를 담은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지난해 11월 14일 딱 하루만 상영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12월 28일부터 이틀간 개봉했다. 그런데 서울 8개관에서 좌석점유율이 80%를 넘어서며 ‘예매 전쟁’까지 벌어졌다. 결국 추가로 상영관이 편성되기도 했다. 배급사 관계자는 “‘보헤미안…’에 나온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처럼 콘서트 실황을 극장에서 체험하려는 관객이 많았다”고 전했다. ‘퀸’ 특수를 노리는 움직임도 상당하다. 배급사 ‘엣나인필름’은 최근 팬들의 요청에 따라 ‘퀸 록 몬트리올’ 재개봉을 위해 일본 배급사와 협의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 2009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198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을 담았다. 엣나인필름 관계자는 “당시엔 관객이 1만9000여 명에 그쳤지만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것”이라며 “‘싱어롱관’처럼 공연장을 대관해 상영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선보였거나 개봉을 앞둔 음악영화들도 훈풍을 타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3일 개봉한 ‘레토’는 러시아의 고려인 출신 록스타 ‘빅토르 최’의 젊은 시절을 다뤘다. “흥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4일 만에 관객 1만 명을 돌파했다. 5월에는 영국 가수 엘턴 존의 일대기를 그린 ‘로켓 맨’이 개봉한다. 이외에도 비틀스와 저니, 1980년대 LA메탈의 전성기를 열었던 머틀리 크루 등을 소재로 한 영화도 올해 관객들을 찾을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급사들은 또 다른 대박 음악영화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커트 코베인, 마이클 잭슨 등 ‘영화화’가 유력한 아티스트 목록을 공유하고, 조그만 음악영화도 놓칠세라 국제영화제에 파견 직원을 늘리고 있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음악영화의 가치가 예전보다 올라 계약금도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객의 요청으로 ‘보헤미안…’ 싱어롱관이 기획된 만큼, 영화관도 ‘관객 참여형’ 영화 찾기에 고심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관객들이 값비싼 콘서트의 대리만족을 위해 가성비가 높은 극장을 찾고 있다”면서 “‘보헤미안…’의 성공으로 ‘N차 관람’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관객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극장별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떨어질 듯하다가도 다시 또 치고 올라온다.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제 불사신 같다. 14일 기준 978만 명을 돌파한 ‘보헤미안…’은 지난해 10월 31일 개봉한 이래 ‘박스오피스 순위’를 10회나 역주행 했다. 그 중 1위로 올라선 횟수만 네 번이다. 올해도 꾸준히 3위권을 유지하며 1000만 관객은 시간문제란 관측이다. ‘보헤미안…’의 저력은 관객 순위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국내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관객들은 지나간 음악영화를 찾아보며 ‘콘서트 대리만족’을 이어가고, 배급사는 대박을 꿈꾸며 또 다른 음악영화 찾기에 나섰다. 다큐멘터리 영화 ‘콜드플레이: 헤드 풀 오브 드림스’가 상영된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한 영화관에서 관객들은 콜드플레이의 인기곡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전주에 맞춰 박수를 쳤다. 싱어롱(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화 감상)관도 아니었지만 일부 관객들은 영어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날 극장을 찾은 이준일 씨(31)는 “‘보헤미안…’을 본 뒤로 음악이 소재인 영화는 무조건 찾아보고 있다”며 “조용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는 문화가 바뀌는 것 같아 음악, 영화 팬으로서 뿌듯하다”고 했다. 사실 콜드플레이 탄생부터 7집 앨범 투어까지를 담은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지난해 11월 14일 딱 하루만 상영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12월 28일부터 이틀 간 개봉했다. 그런데 서울 8개관에서 좌석점유율이 80%를 넘어서며 ‘예매 전쟁’까지 벌어졌다. 결국 추가로 상영관이 편성되기도 했다. 배급사 관계자는 “‘보헤미안…’에 나온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처럼 콘서트 실황을 극장에서 체험하려는 관객이 많았다”고 전했다. ‘퀸’ 특수를 노리는 움직임도 상당하다. 배급사 ‘엣나인필름’은 최근 팬들의 요청에 따라 ‘퀸 록 몬트리올’ 재개봉을 위해 일본 배급사와 협의 중이다. 국내에서 2009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198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을 담았다. ‘엣나인…’ 관계자는 “당시엔 관객이 1만9000여 명에 그쳤지만,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것”이라며 “‘싱어롱관’처럼 공연장을 대관해 상영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선보였거나 개봉을 앞둔 음악영화들도 훈풍을 타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3일 개봉한 ‘레토’는 러시아의 고려인 출신 록스타 ‘빅토르 최’의 젊은 시절을 다뤘다. “흥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4일 만에 관객 1만 명을 돌파했다. 5월에는 영국 가수 엘튼 존의 일대기를 그린 ‘로켓 맨’이 개봉한다. 이외에도 비틀즈와 저니, 1980년대 LA메탈의 전성기를 열었던 머틀리 크루 등을 소재로 한 영화도 올해 관객들을 찾을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배급사들은 또 다른 대박 음악영화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커트 코베인, 마이클 잭슨 등 ‘영화화’가 유력한 아티스트 목록을 공유하고, 조그만 음악영화도 놓칠 새라 국제영화제에 파견 직원을 늘리고 있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음악영화의 가치가 예전보다 올라 계약금도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객의 요청으로 ‘보헤미안…’ 싱어롱관이 기획된 만큼, 영화관도 ‘관객 참여형’ 영화 찾기에 고심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관객들이 값비싼 콘서트 대리만족을 위해 가성비가 높은 극장을 찾고 있다”면서 “‘보헤미안…’의 성공으로 ‘N차 관람’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관객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극장별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예수는 회개하지 않는 가버나움 사람들에게 멸망을 예언했고 7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받은 이 이스라엘 도시는 폐허가 됐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가버나움’의 감독 나딘 라바키는 난민의 비참한 삶이 계속되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폐허의 도시 가버나움을 떠올렸다. 영화는 소년 자인이 법정에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 남성을 칼로 찔러 수감된 소년은 부모를 고소하기 위해 다시 법정에 섰다. 고소 이유를 묻는 판사에게 “나를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부모에게 경멸에 찬 눈빛을 보내며 “배 속의 아이도 나처럼 될 것”이라고 저주한다. 영화는 ‘괴물’이 된 아이의 삶을 흔들리는 시선으로 추적해간다. 베이루트는 몰상식이 상식이 된 도시다.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를 낳고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 자인도 12세로 추정될 뿐이다. 남자아이들은 뒷골목에서 앵벌이를 하며 마약과 담배를 배우고 여자아이들은 생리를 시작하면 신부로 팔려간다. 학교에 갈 시간에 길거리에서 과일주스를 팔아 온 자인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카메라는 일말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자인의 생존투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11세 여동생 사하르가 팔려가듯 시집을 가자 자인은 부모를 원망하며 집을 나선다. 엄마를 잃은 에티오피아 난민 아기 요나스를 위해 그는 우유를 훔치고 얼음에 설탕을 뿌려 먹인다. 자인을 향한 어른들의 시선은 연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난민 신분으로 타국으로의 탈출을 꿈꾸지만 아버지는 “서류 없는 삶을 인정하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려라”라고 말할 뿐이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점에서도 ‘가버나움’이 주는 충격은 적지 않다.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내전으로 베이루트에 정착하면서 라바키 감독을 우연히 만났다. 아기 요나스의 어머니 라힐로 출연한 요르다노스 시페라우는 불법 체류자로 체포되는 장면을 찍은 다음 날 실제 당국에 체포됐다. 촬영 기간 6개월 동안 난민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담기 위해 감독은 “액션”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래 가버나움은 예수의 기적으로 가득한 축복의 도시였다. 영화 말미, 신분증을 만드는 자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는 그저 어른들에게 “존중받고 사랑받기”를 원했다. 태어나게 하는 것을 넘어 ‘살아갈 수 있게 하라’는 어른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15세 관람가. ★★★★(★ 5개 만점)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