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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의예과 남학생들이 술자리에서 같은 과 여학생을 외설적 대화의 소재로 삼은 사실이 확인돼 징계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 중 일부는 학교 측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징계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8일 인하대와 인천지법에 따르면 인하대 의예과 15, 16학번 남학생 11명은 지난해 3월~5월 학교 근처 식당, 주점 등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을 대화 소재로 성적 발언을 했다. 일부 학생은 후배에게 “‘스나마’를 아느냐”며 “(같은 과 여학생 중) 골라보라”고 요구했다. 스나마는 남학생 사이에 쓰이는 은어로 ‘얼굴과 몸매는 별로지만 그나마 성관계를 하고 싶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올 2월에도 신입생 후배에게 “16학번 여학생 중 (성관계를) 하고 싶은 사람을 골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들의 일탈은 지난 3월 해당 학과 학생회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학교 측은 지난달 학생 상벌위원회를 열어 남학생 5명에게는 무기정학, 나머지 6명에게는 유기정학 90일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가 늦어지면서 피해 여학생들과 가해 남학생들은 4달가량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불편한 상황이 빚어졌다. 징계를 받은 가해 학생 중 7명은 최근 학교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징계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남학생만 모인 자리에서 이성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며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이 술기운에 한 대화”라고 주장했다. 또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거나 평가한 게 아니라 농담조로 언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해 남학생들이 소송을 냈다는 소식에 피해 여학생들은 8일 학교에 사건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붙였다. 이들은 “가해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인용되면 매일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또 “소송을 맡은 재판부에 탄원서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인하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운전기사 4명에게 폭언을 일삼는 등 ‘갑질’을 하고 교통법규를 어기도록 지시한 혐의(강요) 등을 받고 있는 종근당 이장한 회장(65·사진)이 2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날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이 회장은 포토라인에서 “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피해자와 국민들께 용서를 구한다”며 허리를 숙였다. 이 회장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인 발기부전 치료제를 접대용으로 선물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의사들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의약품을 의사에게 홍보용으로 소량 제공한 경우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회장은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또 “종근당 회장직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엔 “조사를 다 받고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지난달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이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그 ×× 대가리 더럽게 나쁘네. 왜 이런 ××들만 뽑은 거야”, “아비가 뭐 하는 놈인데 제대로 못 가르치고 그러냐. 부모가 불쌍하다”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서울 동대문의 D의류상가 상인을 상대로 한 상가운영회(운영회)의 조직적 ‘갑질’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이르면 다음 주 의류상가 회장 서모 씨(58)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서 회장은 운영회를 사실상 지배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경찰에 따르면 서 회장은 운영회가 입점비와 퇴점비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상인들로부터 받아낸 돈을 정해진 용도 외에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횡령 등)를 받고 있다. 경찰은 상인들이 낸 돈의 일부가 서 회장에게 흘러간 단서를 상당수 확보했다. 서 회장의 횡령 규모는 30억 원이 넘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미 운영회 서모 사장(56)과 오모 전무(56)는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D의류상가 운영회의 ‘갑질 적폐’ 수사는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증언에 나서면서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상당수 상인들은 그동안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겼다. 수사 초기에 경찰이 각 점포를 돌며 수사 협조 안내 전단지를 돌리면 운영회 직원들이 뒤따르며 전단지를 회수할 정도였다. 한 상인은 “운영회 측에서 상인들을 밀착 감시하며 입단속을 심하게 했지만 언론 취재가 시작되고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동대문 D의류상가처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갑질 횡포’의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다. 경찰청은 8월부터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상대로 한 임대·관리업자와 고용주 등의 불법 행위를 특별 단속한다고 밝혔다. 중점 단속 대상은 입점상인을 상대로 법적 근거 없이 관리비, 시설비를 물리거나 이를 횡령한 임대업자, 가맹점주를 상대로 금품 제공 등 부당한 요구를 한 상위 사업자 등이다. 경찰은 또 감정노동자를 괴롭히는 ‘블랙 컨슈머’(고의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와 중·소형 마트 등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납품업자 등도 단속할 예정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갑질 횡포는 서민경제 생태를 파괴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적폐이므로 엄정히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구특교 kootg@donga.com·김배중 기자}

서울 동대문 D의류상가 도매상인들은 자신들의 일터를 ‘동대민국(東大民國)’이라고 부른다. 개장 시간 오후 8시∼이튿날 오전 8시, 밤낮이 뒤바뀐 이곳은 ‘치외법권’ 지역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상인운영회(운영회)라는 자치 조직이 특정 세력에 의해 사유화되면서 상인들을 상대로 ‘입점비’ ‘퇴점비’ 등을 뜯어내는 등 불법적인 관행이 1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이다. 상인들에겐 운영회의 지시가 곧 법이었고 그 ‘법’을 어기면 옷 장사를 할 수 없었다. 국내 의류시장 매출의 30%인 연간 15조 원을 벌어들이는 동대문 의류상가 일각의 어두운 실태가 최근 경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동대문의 대표적 도매상가인 D상가 운영회의 불법행위를 수사해 지난달 서모 사장과 오모 전무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점포주와 상인 사이 똬리 틀고 전횡 D상가는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에 점포는 400여 곳에 이른다. 상인들은 평균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180만 원을 내며 4.23m²(약 1.25평) 크기 점포 한 칸을 얻어 장사하고 있다. 점포마다 소유주가 따로 있지만 이들로부터 임대 계약과 관리 권한을 위임받은 운영회가 중간 길목에서 상인들에게 전횡을 일삼는 구조다. 상인들은 운영회가 계약이나 규약 등 법적 근거도 없이 걷어가는 돈이 한 해 수천만 원에 달한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운영회는 처음 입주하는 상인들에게 점포 보증금과는 별도로 500만∼3000만 원의 ‘입점비’를 물려왔다. 운영회는 상가 활성화 또는 기존 상인에게 주는 권리금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운영회로부터 권리금을 돌려받은 상인은 거의 없다. 사실상 강제적 기부금인 셈이다. 입점비 액수는 정해진 기준도 없다. 상가 운영 경험이나 인맥이 취약할수록 더 많은 액수를 요구받는다는 게 상인들의 증언이다. 운영회는 계약이 만료된 점포를 다른 점포로 ‘강제 이주’시킨 뒤 추가로 입점비를 받기도 한다. 한 상인은 “가게를 안 옮기고 버티자 운영회에서 찬조비로 2000만 원을 요구해 계약서에도 없는 돈을 내고 겨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상인들은 운영회의 횡포를 못 이겨 가게를 접을 때에도 200만∼800만 원의 퇴점비를 내야 했다. 운영회가 전액 돌려줘야 할 보증금의 일부를 퇴점비 명목으로 차감하고 나머지만 돌려주는 식이다. 운영회는 퇴점비에 대해 “가게가 빠진 뒤 반품이나 환불 문의가 있을 것에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상인들은 “반품, 환불 요구는 드문 일인데 운영회로부터 퇴점비를 제때 돌려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매주 5만∼15만 원의 홍보비와 명절 행사비용으로 한 해 50만∼100만 원을 운영회에 납부한다. 하지만 실제 집행 내용은 공개되지 않아 상인들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특정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해 점포 수리를 하라는 운영회의 강요에 못 이겨 멀쩡한 점포를 시세보다 웃돈을 주고 고치는 경우도 많다. 한 상인은 “갈취 피해를 덜 당하려면 운영회 간부에게 고급 양주나 현금 등 수백만 원을 지속적으로 상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영회 고위 간부들 수십억 횡령 혐의 경찰은 운영회의 이 같은 관행이 1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운영회가 상가 주인들로부터 일정 권한을 위임받았더라도 경비, 청소 등 일반적인 관리 수준을 넘어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거액을 요구한 행위는 공갈죄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경찰은 “운영회 측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어김없이 보복이 가해졌고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큰소리로 겁박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상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특수공갈과 강요 혐의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또 운영회 고위 간부들이 홍보비와 행사비 명목으로 걷은 돈 수십억 원을 횡령한 정황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회 측은 “입점비는 동대문시장의 관행에 따라 받아왔지만 얼마 전 없앴고 퇴점비도 받지 않고 있다. 홍보비도 투명하게 집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최근까지 입점비를 요구받았고 퇴점비 역시 운영회가 돈이 없다며 보증금 자체를 안 돌려주고 있어 떼어가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상인들 왜 10년 넘게 당했나 ▼‘문제 상인’ 찍히면 다른 상가에도 입점 거부당해1주일 단위로 의류 제작 ‘스폿’ 방식… 가게 옮기면 수천만원 재고 부담서울 동대문 D의류상가 도매상인들은 동대문 특유의 의류 생산 방식 때문에 상가운영회의 부당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시장 반응을 주시하면서 일주일 단위로 디자인을 바꿔 소량 제작하는 이른바 스폿(Spot) 생산 방식이어서 운영회의 점포 이주 요구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상인들이 운영회 측 요구에 불응하다 아예 다른 상가로 가게를 옮기게 되면 새 장사를 준비하는 2, 3주 동안 그전에 만든 옷은 유행이 지나버려 재고로 남게 된다. 통상 보름 치 재고가 쌓이면 손실액은 3000만∼5000만 원에 이른다. 운영회의 ‘착취’를 피해 다른 상가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다른 상가의 운영회도 운영회 측과 갈등을 빚고 나온 상인은 ‘문제 상인’으로 간주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의류 도매상은 국내 최대 시장인 동대문에서 밀려나면 기존 수입을 유지하기 어렵다. 간신히 쫓겨나지 않았더라도 한 번 미운털이 박히면 상가 내에서 점포를 자주 옮겨야 하거나 입점비나 퇴점비 등의 액수가 더 늘어난다. 오후 8시∼다음 날 오전 8시인 ‘올빼미 영업시간’도 상인들이 문제 제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다. 한 상인은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휴식을 취해야 할 낮에 깨어 있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D상가의 상인은 약 80%가 여성이다. 이들 대부분이 오전에 잠깐 눈을 붙이고 오후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숨죽이던 상인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해 매출까지 크게 줄자 “더는 못 견디겠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서울연구원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올 2분기 동대문 관광특구 상인들의 매출 체감도는 사드 사태 전인 전년 동기의 50∼60% 수준에 불과하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김배중 기자}
▼ 상인들 왜 10년 넘게 당했나 ▼‘문제 상인’ 찍히면 다른 상가에도 입점 거부당해1주일 단위로 의류 제작 ‘스폿’ 방식… 가게 옮기면 수천만원 재고 부담서울 동대문 D의류상가 도매상인들은 동대문 특유의 의류 생산 방식 때문에 상가운영회의 부당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시장 반응을 주시하면서 일주일 단위로 디자인을 바꿔 소량 제작하는 이른바 스폿(Spot) 생산 방식이어서 운영회의 점포 이주 요구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상인들이 운영회 측 요구에 불응하다 아예 다른 상가로 가게를 옮기게 되면 새 장사를 준비하는 2, 3주 동안 그전에 만든 옷은 유행이 지나버려 재고로 남게 된다. 통상 보름 치 재고가 쌓이면 손실액은 3000만∼5000만 원에 이른다. 운영회의 ‘착취’를 피해 다른 상가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다른 상가의 운영회도 운영회 측과 갈등을 빚고 나온 상인은 ‘문제 상인’으로 간주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의류 도매상은 국내 최대 시장인 동대문에서 밀려나면 기존 수입을 유지하기 어렵다. 간신히 쫓겨나지 않았더라도 한 번 미운털이 박히면 상가 내에서 점포를 자주 옮겨야 하거나 입점비나 퇴점비 등의 액수가 더 늘어난다. 오후 8시∼다음 날 오전 8시인 ‘올빼미 영업시간’도 상인들이 문제 제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다. 한 상인은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휴식을 취해야 할 낮에 깨어 있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D상가의 상인은 약 80%가 여성이다. 이들 대부분이 오전에 잠깐 눈을 붙이고 오후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숨죽이던 상인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해 매출까지 크게 줄자 “더는 못 견디겠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서울연구원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올 2분기 동대문 관광특구 상인들의 매출 체감도는 사드 사태 전인 전년 동기의 50∼60% 수준에 불과하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김배중 기자}

26일 오후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의 넓이 4.95m² 경비실에서는 선풍기 두 대가 돌고 있었다. 벽걸이 선풍기 한 대로는 더위를 쫓기에 턱도 없어 경비원 A 씨가 한 대를 집에서 가져다 놓았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섭씨 32.8도를 기록했다. 전날에는 섭씨 35.4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책상과 작은 소파가 절반을 차지한 비좁은 경비실에서 선풍기 두 대는 그리 시원하지만은 않은 바람을 뿜어댔다. 땀에 절어 군청색으로 변한 파란색 경비복 상의를 입은 A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비원들의 노고에 주민들이 화답했다. 몇몇 주민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자고 관리사무실에 요청했다. 2, 3년 전부터 여름만 되면 나왔다가 묻힌 주장이었지만 주민 대표들은 “이번만큼은…”이라고 생각했다. 25일부터 12개동 2100가구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경비실 에어컨 설치 찬반투표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아파트 밖 사람들이 ‘100원짜리 투표’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에어컨 12대 구입비 480만 원은 아파트 단지에서 재활용품 판매대금이나 전단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다만 에어컨 공동전기료는 주민 부담이다. 예상 전기료는 여름철 매달 20만 원으로 가구당 평균 100원꼴이다. 아파트 게시판의 투표 안내문에는 에어컨 설치 시 단점의 하나로 ‘월 세대당 100원(공동전기료) 증가 예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에어컨 설치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굳이 투표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반응이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억지로 하는 일인 양 변질될까 우려스럽다는 얘기다. 한 주민은 “경비원을 배려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 엉뚱하게도 한 달에 100원을 더 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비쳐 민망하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여름이라고 해도 1년에 서너 달이다. 10년 넘게 (100원씩) 내봤자 올해 최저시급(6470원)에도 못 미친다”며 “주민만 우스워졌다”고 했다. 주민 대표들은 아파트 입주민의 여건과 주변 단지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한 ‘또 다른 배려’라고 설명했다. ‘당연한’ 사안이라도 민주적 절차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 주민 대표는 “여기는 임대아파트로 2100가구 중 30% 남짓은 에어컨조차 없다”며 “‘우리도 없는데…’라고 생각할지 모를 주민 의견까지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30년 된 아파트라 설계할 때부터 예상 사용전력을 낮게 잡아 여름 겨울같이 전기 소비가 늘 때는 자주 정전이 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대표도 “주변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도 비슷한 처지라 우리가 그냥 에어컨을 달면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주민의 뜻이라는 명분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찬반투표 결과는 29일 나올 예정이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이지운 인턴기자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경희대가 자회사를 설립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135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경희대 측은 26일 “전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국내 대학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경희대가 세운 자회사 ‘케이에코텍’은 지난달 말 기존 용역업체와 계약이 끝난 청소노동자 135명과 70세 정년 보장 고용 계약을 체결했다. 경희대 일반 교직원의 정년은 62세다. 경희대 관계자는 “2년 전부터 내부적으로 상생 방안을 고민했고, 청소노동자의 나이가 대부분 60대라 정년을 70세로 상향 조정했다”며 “다음 달 초 청소노동자 노조가 임금과 복지 근로환경 등에 대해 자회사와 교섭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경희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모교다. 경희대의 청소노동자 정규직 고용은 최근 청소노동자들과 임금 인상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등 일부 대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임금 인상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연세대 청소노동자 120여 명은 26일 총장과 총무처장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또 홍익대 청소노동자 30여 명은 이날 총장실이 있는 건물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앞서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은 8일 동안 파업한 끝에 19일 학교 측과 시급을 6950원에서 7780원으로 올리는 데 합의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청소노동자의 정규직 전환과 정년 70세는 비현실적”이라며 “경희대의 조치에 청소노동자 측에서 임금 인상을 넘어 정규직 전환까지 요구하고 나설까 걱정된다”고 말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 문예슬 인턴기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요리랑 서빙은 제가 직접 하고 주문받는 것과 계산은 무인계산기한테 맡겼어요.” 충북의 한 대학 앞에서 일본식 덮밥집을 운영하는 최모 씨(27)는 며칠 전 일하던 직원 3명 모두를 휴가 보냈다. 방학으로 손님이 급감해 ‘긴축 운영’에 들어간 것이다. 8월 말까지 음식 조리와 서빙 모두 최 씨 혼자서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5월 말 들여온 무인계산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한 달 인건비 26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최 씨는 “인건비 걱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인계산기를 선택했다”며 “이번에 최저임금이 엄청 오르는 걸 보니 역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인건비 감당 못해…뾰족한 수 있나요” 패스트푸드 업계를 중심으로 늘어나던 무인자동화기기 설치가 최근 일반 음식점과 주유소 PC방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압박이 불을 보듯 뻔해지면서 이런 무인자동화기기를 찾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롯데리아와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업계에 따르면 무인계산기 도입 비율이 올 들어 40%를 넘어섰다. 셀프주유소는 지난해 2269곳으로, 2011년과 비교해 4배 이상 늘었다. 결제만 하면 기계가 알아서 라면을 끓여 주거나, 무인계산기에 원하는 맛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는 ‘아이스크림 ATM기’도 등장했다. 서울 도봉구에서 140석 규모의 PC방을 운영하는 김모 씨(50)는 올 2월 400만 원짜리 무인계산기를 설치한 이후 3명이던 아르바이트생을 1명으로 줄였다. 이후 월 인건비 200만 원이 절감됐다. 좌석 계산과 음식 주문은 무인계산기가 처리하고 직원 1명이 음식을 조리해 손님에게 가져다주는 일을 한다. 김 씨는 “무인계산기를 쓰면 일손이 달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문제가 없었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른다고 하니까 주변 상인들이 기계 써보니 어떠냐고 물어온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56)는 “빠듯하게 식당을 운영했는데 갑자기 인건비를 올리면 결국 사람 줄이고 기계를 쓰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털어놨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인 ‘알바천국’이 19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용주의 79.8%가 “아르바이트생 고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불안한 알바생, 찜찜한 소비자 무인자동화기기 제조업체들은 호황을 맞았다. 메뉴를 고르고 결제할 수 있는 무인계산기의 대당 가격은 100만∼600만 원. 매달 수백만 원을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와 비교할 때 부담이 없다는 것이 자영업자들의 인식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발표된) 15일 이후 구입 문의가 3배 이상 늘었다. 공동구매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한 무인자동화기기 업체의 주가는 ‘최저임금 관련주’로 불리며 20% 가까이 급등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PC방을 종종 이용한다는 전모 군(14)은 “일반 PC방은 결제하려면 직원을 기다려야 되는데 무인계산기가 있으면 클릭 세 번으로 결제가 끝나 편리하다”고 말했다. 반면 주부 이맹선 씨(46)는 “손님과 직원 사이의 ‘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서비스를 기계가 대신할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식당 직원 김모 씨(25)는 “사장님이 무인계산기를 들이면서 동료 2명을 해고했다”며 “아마 손님이 더 줄면 다음 타깃은 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김배중·김예윤 기자}

“어쩔 수 없이 캡슐호텔로 정했어요.” 8월 초 일본 도쿄(東京)로 ‘혼행(혼자 여행하기)’을 떠날 박모 씨(31·여·직장인)는 18일 고민 끝에 숙소를 예약했다. 말이 호텔이지 침대와 TV만 있는 캡슐형 숙소다. 당초 박 씨는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빌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16일 일본에서 발생한 한국인 여성 관광객 성폭행 피해사건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박 씨는 “일본은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가는 나라이고 치안도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조금 불편하더라도 더 안전한 숙소가 낫다”고 말했다.○ 편하긴 한데 왠지 찜찜한 ‘숙박 공유’ 에어비앤비, 홈어웨이, 투지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숙박공유업체다. 이를 통하면 일반인 소유의 숙소를 온라인으로 간편하고 저렴하게 빌릴 수 있다. 이 중 에어비앤비가 가장 유명하다. 설립 10년째인 올해 누적 이용객이 2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용자가 늘면서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친절한 집주인이 범죄자로 돌변하는 사건이 대표적이다. 16일 오전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한국 여성 A 씨(31)가 집주인에게 성폭행 당했다. 집주인 오사베 소이치(長部聰一·34) 씨는 사건 당일 0시 무렵 A 씨에게 술을 권했다. A 씨는 그가 건넨 술 두 잔쯤을 마신 뒤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집주인은 범행을 저질렀다. 집주인은 경찰 조사에서 “만지기는 했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경찰은 혐의를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후쿠오카 검찰은 19일 오사베 씨에 대해 구류장(한국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 2월 미국에 사는 한인 2세 서다인 씨(25·여)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집에 도착 직전 집주인 태미 바커로부터 돌연 ‘예약 취소’ 통보를 받았다. 서 씨가 항의하자 집주인은 “당신이 ‘아시안’이라는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한다”고 말했다.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에어비앤비 측은 해당 호스트를 영구 퇴출했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5000달러(약 56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7월 직장인 김모 씨(33·여)는 스위스 여행 중 숙소 거실에서 폐쇄회로(CC)TV 카메라를 발견했다. 김 씨는 한동안 자신을 찍은 영상이 유포될까 불안에 떨었다. 해외여행 중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박모 씨(29·여)는 “숙소의 위치와 형태가 각양각색인 만큼 이용자가 감수해야 할 위험의 폭도 넓고 예측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휴가철 앞두고 일본행 불안감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나라가 일본이다. 상당수가 숙박공유업체를 이용한다. 그러나 성폭행사건이 알려지면서 숙박공유업체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숙박공유업체를 이용했을 때 집주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면서 에어비앤비 등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고 이용할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숙박공유업체의 자정 노력은 소비자의 눈높이를 따라오지 못한다. 에어비앤비 역시 사고 발생 시 공급자를 가맹업체에서 퇴출하는 정도의 조치가 사실상 전부다. 이번 한국 여성 성폭행 사건에 대해 에어비앤비 관계자는 “안전과 보안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번 사건에 대해 커다란 분노를 느낀다. 이 호스트를 즉시 삭제했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피해자 게스트와 접촉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소비자들이 피해 사례를 공유하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최근 온라인에는 ‘에어비앤비 지옥(airbnb Hell)’이라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사이트에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가 피해를 본 사례자들의 익명 후기가 주로 올라온다. 현재로서는 숙박공유업체 이용 때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해 이용자가 △가급적 후기가 많은 숙소 중심으로 선택하고 △각종 문의에 응답률이 높은 ‘슈퍼호스트’를 고르는 등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낫다.김배중 wanted@donga.com·구특교 기자 / 도쿄=장원재 특파원}

“처음 겪는 일이라 어제는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오늘 망가진 수박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네. 올해는 다 끝났어….” 충북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20년째 남편과 수박농사를 지어온 성모 씨(52·여)는 17일 처참히 망가진 비닐하우스를 뒤로한 채 먹구름 가득한 먼 하늘만 바라봤다. 지난달 중순 하우스 8개 동 4960m²에 수박묘목 3000포기를 심었다. 지난주 꽃이 피어 벌통을 넣고 수정작업을 해 한창 열매가 달렸다. 그러나 한 달 뒤 수확할 꿈은 수마(水魔)가 앗아갔다. 15, 16일 200mm를 훨씬 넘는 물 폭탄을 맞은 충북 도내 곳곳에서는 이날 새벽부터 폭우의 참상을 지우려는 손길로 분주했다. 그러나 유례가 드문 봄 가뭄을 견뎌낸 농촌은 최악의 비 피해로 허망해진 농심만 가득했다. 성 씨 부부의 비닐하우스는 전날 오전 인근 개천 둑이 터지며 들어찬 물이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차올랐다. 수박묘목은 모두 잠겼다. 이날 오후에서야 물이 빠졌지만 하우스 안은 진흙밭이나 다름없었다.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9900m² 논에서 벼농사를 짓는 박장순 씨(48)는 이날 오전부터 포클레인으로 무너진 둑과 끊어진 농로를 이었다. 박 씨는 “양수기까지 동원해 물을 줘가며 봄 가뭄을 견뎠는데 이번 폭우로 허사가 됐다. 1년 농사를 망쳤다”며 울먹였다. 도심인 흥덕구 석남천의 다리는 물이 빠지면서 상류에서 떠내려 온 잔해만 가득했다. 인근 신시가지 주택가와 상가에서는 주민들이 거리의 쓰레기와 진흙을 치우느라 땀을 흘렸다. 집 밖에 내놓은 물 먹은 가재도구와 주방용품 등이 거리 곳곳에 쌓였다. 모충동 저지대에서 5년째 인쇄소를 하는 안모 씨(51)는 “침수된 인쇄기계들이 모두 못 쓰게 돼 생계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인근 문방구 주인 김모 씨(47·여)는 “주민센터에 신고를 했는데 피해 품목을 적어두라고만 하더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22년 만에 290mm가 넘는 비가 쏟아진 청주시에서는 안일한 대처가 초래한 인재(人災)라는 얘기도 나왔다. 흥덕구의 채소가게 주인 황모 씨(46)는 “(16일) 오전 7시경부터 물 폭탄이 쏟아졌는데 시에서는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안전에 유의하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한 시간이나 지나서 왔고, 재난방송은 오전 10시에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전날 충북 괴산에서 실종된 주민 2명이 이날 숨진 채 발견되면서 충북에서만 4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특히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도로보수원 박모 씨(50)는 전날 오전 6시부터 청주시 오창읍에서 도로 보수작업을 하다 쓰러져 숨졌다. 청주와 괴산 등 6개 시군에서 주택 457채가 침수되거나 반파됐다. 농경지 2989ha가 침수 등의 피해를 봤다. 조운희 충북도 재난안전실장은 “최종 피해 규모는 지금보다 2∼3배 정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도는 이날 청주를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청주시와 증평군, 진천군, 괴산군 등 4개 시군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했다.청주=장기우 straw825@donga.com / 진천=김배중 기자}

“20초가 20년처럼 길었어요.” 직장인 이모 씨(32·여·경기 시흥시)는 올 4월 26일을 잊지 못한다. 이 씨에게는 악몽 같은 날이 아니라 악몽 그 자체다. 이날 이 씨는 회사 근처를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건물 틈에서 개 한 마리가 뛰쳐나와 이 씨에게 달려들었다. 그냥 개가 아니었다. 맹견 중의 맹견인 ‘로트바일러’였다. 당황해 넘어진 이 씨는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겨우 개를 떼어 놓았다. 로트바일러가 이 씨를 공격한 시간은 20초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이 씨는 20년처럼 느꼈다. 로트바일러는 이 씨의 오른쪽 종아리와 팔뚝 어깨 등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었다. 종아리 부상이 심각했다. 장기 재활치료가 필요해 이 씨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뒀다. 이 씨는 “한때 유기견 보호 활동을 할 정도로 개를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조금만 덩치 큰 개를 봐도 그날 일이 떠올라 몸서리가 난다”고 말했다. 애견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았다. 3년 뒤 애완견을 중심으로 한국의 반려동물 시장은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장밋빛 전망과 함께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애완견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개가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강력사건’이 늘고 있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맹견의 습격 지난달 27일 전북 군산시에서 ‘맬러뮤트’ 한 마리가 길을 걷던 A 군(9)의 양팔과 다리 등 10여 곳을 물고 달아났다. 산책하던 견주(개 주인)가 목줄을 놓친 것이다. 출동한 119구조대가 쏜 마취총을 맞고 야산으로 달아난 맬러뮤트는 4시간 만에 잡혔다. 맬러뮤트는 키 55∼70cm, 몸무게가 34∼50kg에 이르는 대형견이다. 알래스카 등지에서 썰매견으로 이용된다. 같은 달 16일 서울 도봉구에서 집 밖으로 나온 맹견 2마리가 행인 3명을 공격했다. 목줄 없이 마당에서 길러지던 개들은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대문 틈을 비집고 나와 거리를 활보했다. ‘도고 아르헨티노’와 ‘프레사 카나리오’는 통제 불능 상태로 3명에게 상처를 입혔다. 도고 아르헨티노는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가 쏜 마취총을 맞고 죽었다. 두 견종 모두 다 크면 키 60cm, 몸무게 40kg 이상인 대형견이다. 특히 도고 아르헨티노는 영국과 호주, 싱가포르 등지에서는 사육이나 반입이 금지된 맹견이다.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까지 일어났다. 올 5월 강원 원주시의 개 사육장에서 주인 권모 씨(65·여)가 기르던 도사견에게 물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권 씨는 도사견 2, 3마리가 있던 사육장에 들어가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권 씨를 구하러 들어간 남편 변모 씨(66)도 팔 등에 부상을 입었다. 2015년 2월 경남 진주시에서 80대 노인이 핏불테리어에게 밥을 주다 공격을 당해 사망했다. 같은 해 6월 충북 청주시에서 15개월 남자아이가 역시 집에서 기르던 핏불테리어에게 가슴 등을 물려 사망했다. 7일 경북 안동시의 한 농가의 안방에서는 70대 노인이 8년간 키우던 풍산개에게 물려 숨졌다. 동물보호단체 ‘케어’에 따르면 대형견이나 맹견을 키우던 견주가 공격을 받은 뒤 동물보호단체 등에 양도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한번 사람을 공격한 개는 사람을 제압했다는 인식을 갖게 돼 또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동물단체 등은 대부분 안락사 처리한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반려견 물림 사고’는 2011년 245건에서 2012년 560건, 2013년 616건, 2014년 676건으로 증가했다. 2015년에는 1488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1019건이나 됐다. 사고 급증의 원인으로 한국의 ‘펫티켓’(‘펫’과 ‘에티켓’의 합성어) 수준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해 초 경기 수원시 광교호수공원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견주 B 씨(42)가 로트바일러 3마리를 데리고 애견놀이터를 방문했는데 한 마리가 C 군(10)의 다리를 문 것이다. 겨울이라 두꺼운 옷을 입어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B 씨는 “(로트바일러가) 아직 아기라서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C 군의 부모가 발끈하면서 언쟁이 붙었다. B 씨는 평소 애견놀이터에서 로트바일러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경찰견이나 군견 훈련 때 쓰는 팔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이를 물어뜯게 했다. 한 견주가 “맹견은 공격훈련을 하기보다 입마개를 착용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항의했으나 “간섭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C 씨는 “물어뜯기 훈련은 애견놀이터에서 몇 번 가볍게 시켜본 게 전부”라며 “‘우리 아기들’은 평소 예절교육을 잘 시켜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요즘 항공사도 개 때문에 골치다. 주인과 함께 비행기를 타는 반려동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지난해 반려동물과 기내에 동승한 국제선 승객은 5940명. 수화물로 운반된 대형견을 합치면 국적기를 타고 국내외로 이동한 반려동물은 지난해 3만7334마리나 된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수화물로 운송해야 할) 대형견까지 기내에 데리고 타겠다는 승객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개 탓’ 아닌 ‘내 탓’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진단한 애견 사고의 원인과 해법은 간단하다. “동물은 결국 사람 하기 나름”이라는 것. 주인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동물을 키워도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반려견을 충분히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걸 주인의 ‘기본’으로 꼽았다. 한 애견 전문가는 “별다른 지식도 없는데 남들 앞에 무턱대고 ‘강해 보이려고’ 맹견을 기르는 사람이 젊은층 사이에 꽤 있다”고 우려했다. 또 주인이 본인의 개를 가장 잘 아는 만큼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위 사람이 개를 보고 귀엽다며 무턱대고 만지려 하면 우선 제지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개의 동작도 못 하도록 해야 한다. 개가 앞발을 들고 서서 사람과 박수 치는 듯한 동작은 자칫 아이나 노약자를 덮치는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외출은 가급적 인파가 많은 곳이나 시간대를 피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목줄과 입마개를 착용시키는 건 기본이다. 맹견으로 분류된 견종에게 목줄과 입마개를 하는 건 이미 의무화됐다. 위반 시 과태료는 최대 50만 원 이하다. 늘어난 애견 인구만큼 견종에 대한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국내에서 맹견으로 분류된 견종은 도사견과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테리어, 스태퍼드셔불테리어, 로트바일러 등 5종에 불과하다. 최근 시민을 공격했던 도고 아르헨티노 등은 영국 등에서 사육금지 동물로 규제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평범한 반려동물로 취급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1991년부터 ‘위험한 개 법(Dangerous Dogs Act)’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도고 아르헨티노와 필라브라질레이루 등은 ‘특별통제견’으로 분류돼 관리받는다. 특별통제견을 키우려면 법원의 허가까지 받아야 한다. 이후 견주는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다. 대인배상보험 가입과 중성화 수술, 마이크로칩 삽입, 입마개 착용 등을 지켜야 하고 임의로 번식과 판매 교환 등도 할 수 없다. 개가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견주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사망에 이르게 하면 최대 14년의 징역에 처해진다. 뉴질랜드는 올 2월 맹견관리자격 제도를 도입했다. 견주가 위험한 개를 다룰 능력이 되는지, 적절한 사육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등을 검토해 일정 기준을 넘어야 맹견을 기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해당 맹견의 기질도 검사하고 견주에게 법적 처벌 등이 포함된 교육을 받게 한다. 스위스도 면허제를 도입하고 맹견 등에게 반드시 정기적인 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맹견 사고가 이어지면서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견주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하는 대책을 검토하기로 했다. 맹견 범위를 확대하고 수입과 생산 판매 단계마다 내용을 신고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긍정적이다. 이웅종 이삭훈련소장은 “맹견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풀어놓고 기르는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며 “특히 영국처럼 사고 발생 등에 대한 견주 처벌 강화를 포함시킨다면 우리도 반려동물 관련 사고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김배중 기자 ※ 대표적 맹견들(왼쪽)코카시안 오브차카(Caucasian Ovtcharka)●원산지: 러시아●키: 63∼71cm●체중: 46∼66kg●크기: 초대형●특징: 600년간 양떼를 침략자들에게서 보호해온 어마어마한 덩치의 경비견. 평소에는 믿음직스러운 목축견이지만 위험한 상황에 당면하면 사전 경고없이 난폭하게 돌변.(오른쪽)로트바일러(Rottweiler)●원산지: 독일●키: 58∼69cm●체중: 40∼50kg●크기: 대형●특징: 현재 국내에서 번식되고 매매되는 모든 견종 중에 매매 가격이 가장 비싼 개.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멧돼지 사냥개로 쓰일 만큼 사나운 맹견.(왼쪽)아메리칸 핏불테리어(American Pit Bull Terrier)●원산지: 미국●키: 46∼56cm●체중: 23∼36kg●크기: 중형●특징: 운동선수 같은 근육질 몸매,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력과 강한 힘, 목표물에 대한 높은 집중력 때문에 오랫동안 투견으로 사육. 하지만 주인에 대해서는 애교가 넘치고 보호 본능이 강한 편.(오른쪽)도고 아르헨티노(Dogo Argentino)●원산지: 아르헨티나●키: 62∼68cm●체중: 40∼45kg●크기: 대형●특징: 순한 생김새와 달리 멧돼지나 퓨마 등 야생동물을 잡을 만큼 힘이 센 개. 얼마 전 대문 밖을 빠져나와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습격해 논란을 일으킨 개.(왼쪽)도사(Tosa)●원산지: 일본●키: 60cm●체중: 30∼100kg●크기: 대형●특징: 투견으로 사육되고 개량돼 키워진 견종. 괴력 수준의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말리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근성이 특징.(오른쪽)캉갈(Kangal)●원산지: 터키●키: 80∼100cm●체중: 60∼100kg●크기: 초대형●특징: 터키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터키 국견(國犬). 송아지보다 큰 거대한 덩치로 늑대까지 때려잡는 개로 알려짐. 이빨이 무척 튼튼해 뼈까지 씹어 먹기도 함.}

직전 학기 성적이 4.3(만점 4.5)이 나와 성적우수장학금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올봄부터 학자금대출(350만 원)을 받기 시작했다. 전북 군산에서 서울에 와 월세 45만 원짜리 방에 살고 있다.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 100만 원가량이 드는 생활비를 충당해왔다…. 장학금을 받게 된 소감을 덤덤히 얘기하던 이모 씨(20)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5월 재학생을 상대로 한 교내 장학금 모금 프로젝트에 모인 돈이 어떤 돈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우들이 밥값, 커피값 등을 아껴가며 모아준 돈이었다. 이 씨는 “장학금이 어떻게 마련됐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며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기관장학금을 받아본 그에게도 학우들이 십시일반 마련한 장학금이 주는 감회는 남달랐다. 이 씨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리는 ‘GIVE TO CHANGE’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다. 성균관대 재학생이 모금을 통해 마련한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씨를 비롯한 재학생 3명이 각각 200만 원을 받는다. 이 장학금 600만 원은 재학생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적게는 100원, 많게는 18만 원을 기부해 마련했다. 성균관대 학교발전홍보대사 ‘S-ANGEL’ 학생 37명은 5월 17일부터 8일 동안 인문사회(서울)·자연과학(수원) 캠퍼스에 각각 부스를 만들어 모금 활동을 벌였다. 학생 약 300명이 동참해 240여만 원을 모았다. 개인 기부액은 대체로 1만 원 전후였다. 최고액도 하루 500원씩 365일간 아끼겠다는 뜻으로 6명의 재학생이 낸 18만 원이었다. 여기에 2014년 9∼12월 학생 230여 명이 기부한 장학금 780만 원 가운데 남은 380만 원을 더했다. 모금에 9000원을 냈다는 재학생은 “학업, 취업으로 경쟁만 알고 사는 요즘 같은 때에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적지만 기쁘게 기부했다”고 말했다. 장학금 대상자도 학생들이 직접 뽑았다. S-ANGEL 학생들은 장학금 신청을 했다가 아쉽게 탈락한 학생을 학교로부터 추천받거나 장학금신청서를 낸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자기소개, 생활수준, 학교성적 등을 살폈다. S-ANGEL 최지훈 회장(20)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지원자의 향학열을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GIVE TO CHANGE 장학금 프로젝트는 2014년 성균관대 재학생 성세운 씨(28·행정학과) 등 7명이 기획했다. 소액기부를 통해 기부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자는 취지였다. 2015년 1학기 재학생 2명에게 각각 2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듬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들이 모두 취업해 잠정 중단됐다. 올해 성 씨가 학교를 찾아와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S-ANGEL에서 이를 받아들여 장학금 프로젝트는 부활했다. 최 회장은 “좋은 취지였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며 “‘학생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 하나의 전통이자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의 5촌 조카 살인사건 수사기록이 사건 발생 6년 만에 유족에게 공개됐다. 서울북부지검은 4일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피해자 박용철 씨(사망 당시 49세)의 통화 기록이 담긴 수사기록 131쪽을 복사해 유족에게 전달했다. 지난달 18일 서울행정법원이 “수사기록을 유족에게 공개하라”고 판결한 지 16일 만이다. 검찰은 기록을 공개하면서 청부살인 가능성을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씨의 통화기록을 면밀히 살펴봤지만 특정 상대방이나 의미 있는 통화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6년 전 사건 발생 당시 수사를 벌인 검찰도 청부살인이 아닌 것으로 수사 결론을 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 씨가 박 전 대통령 남매의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에 깊숙이 개입했었기 때문에 살인사건에 숨겨진 배후가 있을 거라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박 씨는 2011년 9월 서울 북한산 등산로에서 흉기로 복부 여러 군데를 찔리고 머리를 둔기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또 다른 박 전 대통령 5촌 조카 박용수 씨(당시 51세)는 박용철 씨 시신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3km 떨어진 숲속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검찰은 피의자 박용수 씨가 사망한 점 등을 고려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리고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박용철 씨 유족은 수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박용철 씨의 사망 이전 한 달간 통화기록과 통화 상대방의 신상정보 등 비공개 수사기록을 등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검찰이 기록 공개를 거부하자 유족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을 대리해 검찰에서 수사기록을 받은 박용철 씨 유족의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나 그 주변 인물의 통화 기록 등과 대조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동혁 기자}

경남 창원 골프연습장 40대 주부 납치 살해 사건의 피의자 심천우(31)와 강정임(36·여)이 3일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9일 만이다. 영호남을 오가며 경찰 추적을 유유히 따돌렸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모텔에서 검거됐다. 이들이 모텔에 투숙한 건 지난달 28일. 바로 경찰이 공개 수배한 날이다. ● 공개 수배 직후 모텔로 숨었다 3일 오전 10시 10분경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팀 형사 6명이 서울 중랑구의 한 모텔에 도착했다. 40년가량 된 낡은 숙박업소다. 심과 강은 2층 방에 있었다.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열라고 말했다. 잠깐의 침묵 후 안에서는 “예, 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약 10분 후 경찰이 “주인을 부르겠다”고 말하자 결국 문이 열렸다. 경찰이 수배전단을 보여주며 “당신 맞지”라고 다그치듯 물었다. 두 사람은 순순히 시인했다. 그리고 경찰이 들고 있던 수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거 당시 심은 수배전단 속 검은 뿔테 안경 대신에 얇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들이 모텔에 투숙한 건 지난달 28일 오후 4시 반경. 경찰의 공개 수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지 약 2시간 후다. 자신들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된 걸 알고 곧바로 모텔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일주일 치 방값(20만 원)을 내고 투숙했다. 그러나 5일 동안 거의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음식도 매번 시켜 먹었다. 장기 투숙객 A 씨는 두 사람의 행동이 이상했다. 2일 오후 9시경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두 사람이 나란히 외출하는 걸 봤다. A 씨는 “수상한 사람이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살인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출동한 경찰은 이들이 묵었던 방을 둘러봤다. 특별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A 씨도 이들이 수배전단 속 인물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일단 경찰은 모텔 주변에 남아 폐쇄회로(CC)TV를 살펴보며 탐문을 벌였다. 또 A 씨와 계속 연락하며 두 사람의 동태를 확인했다. 3일 0시 반경 심과 강은 다시 모텔로 돌아왔다. 이어 오전 9시 50분경 A 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두 사람의 도피 행각은 막을 내렸다. 경찰은 범행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이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 엉뚱한 곳만 수색한 경찰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투숙하면서 “한 달 동안 머물겠다”고 말했다. 모텔 주인이 “곤란하다”고 하자 일주일로 바꿨다. 하루 3만 원씩 방값은 21만 원. 주인이 1만 원을 깎아줬다. 심은 주인에게 “우리 방은 신경 쓰지 마라. 청소 안 해도 된다. 수건도 필요하면 우리가 달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족발 피자 같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또 옷가지가 담긴 쇼핑백을 갖고 있었다. 검거 후 방 안 휴지통에선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어린이 장난감 ‘피짓스피너’가 발견됐다. 창원서부경찰서는 이날 오후 9시 15분경 이들을 창원으로 압송해 범행 동기와 도주 경로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심은 “생활비 마련과 사업자금 확보를 위해 돈 많은 사람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주부 손모 씨(47)를 납치,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고 신용카드로 410만 원을 인출한 혐의로 4일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붙잡힌 심의 육촌동생(29)은 강도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당초 경찰은 이들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매일 경찰관 1000여 명을 투입해 함안, 진주, 창원 일대를 수색했다. 그러나 심과 강은 27일 오전 1시 반 함안에서 경찰 추적을 따돌린 직후 곧바로 창원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지나는 차량을 얻어 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이 서울로 가기까지의 정확한 경로와 방법을 수사 중이다. ● ‘수상하다’ 신고 받은 경찰 ‘끝까지 확인하자’ 심과 강을 검거한 건 공개수배 5일 만이다. 이번에 체포하지 못했다면 검거까지 자칫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2일 오후 10시 서울 중랑경찰서 112상황실에 “남녀 한 쌍이 갑자기 모텔에서 사라졌는데 수상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남녀’라는 말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 및 이날 당직인 강력6팀 형사들은 심과 강의 얼굴이 나온 수배전단을 챙겼다. 모텔을 찾은 경찰은 A 씨에게 전단을 보여줬다. 심과 강을 가리키며 “혹시 이 사람들이 맞나”라고 물었다. A 씨는 “남자는 (안 봐서) 모르겠고, 여자는 (봤는데) 아닌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일단 경찰은 현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백희광 강력6팀장은 팀원들에게 “혹시 나중에 범인이 이곳에 들렀다는 게 밝혀지면 분하지 않겠나”라며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확인해보자”고 말했다. 형사들은 모텔에서 투숙객의 지문 등을 채취하고 밤새 모텔 주변 탐문 등을 벌였다. 현장 주변의 CCTV도 확인했다. 다음 날 오전 9시 형사들은 모텔을 다시 찾아가 “혹시 투숙객이 돌아오면 꼭 알려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첫 신고 후 고민에 빠졌던 A 씨도 용기를 냈다. 사라졌던 투숙객이 자정 무렵 숙소로 돌아온 찰나에 형사들이 끈질기게 붙자 평소 알고 지내던 역술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역술인이 “경찰에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하자 A 씨도 용기를 내 “새벽에 남녀가 다시 방에 들어왔다”고 형사들에게 알려줬다. 이어 확인한 CCTV 속 남녀의 모습은 형사들 눈에 수배전단 속 심, 강의 모습과 동일했다. 형사들은 큰 불상사 없이 두 사람을 검거했다. A 씨는 “한숨도 못 자고 어떻게 할까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다”며 “(두문불출하다가 사라지는) 행동이 이상해 신고했을 뿐인데, (살인범이라는 말에) 가슴이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현장을 지휘한 백 팀장은 1986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발을 들였다. 근무 첫해 조직폭력배 간 흉기난동 사건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중랑서 관계자들은 “백 팀장이 ‘조폭 사건 전문가’로 통하는데 평소 사건을 대하는 촉이 남다른 편이다”라고 평가했다. 창원=강정훈 manman@donga.com / 김배중·구특교 기자}

30일 오후 4시 반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 종로1가 버스정류장. 시민 10여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한 시민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20분째 부채질을 했다. 정류장 앞을 지나던 한 경찰이 “버스가 2시간 뒤에 올 것”이라고 말하자 한 남성이 “집회를 왜 평일에 해가지고…. 이게 도대체 뭣 하는 거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시민은 “‘윗분’들이 기다려도 이렇게 늦게 알려줬을 거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요일 오후 도심 곳곳 정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30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30 사회적 총파업’ 집회를 개최했다. 주최 측 추산 약 5만 명(경찰 추산으로 약 2만3000명)이 참가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열린 촛불집회 후 가장 많은 인원이 서울 한가운데에 모였다. 이들은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의 슬로건 아래 연설과 문화제를 이어갔다. 현장에는 ‘문재인 개혁은 너무 미온적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트럼프와 코드 맞추기’ 등의 유인물이 뿌려졌다. ‘재벌 곳간 열어 시급 인상하자’는 현수막도 곳곳에 걸렸다.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백남기 씨 사건과 관련해 ‘경찰폭력 OUT’ ‘국가폭력 책임자처벌’이라고 쓰인 피켓을 든 시위대도 보였다. 무엇보다 집회가 유동인구가 많은 금요일 오후에 열리면서 광화문을 중심으로 종로 일대 교통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본집회에 앞서 조합원들은 서울역 등지에서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했다. 또 집회가 종료된 4시 20분부터 대부분의 참가자가 세종대로 사거리를 지나 종로3가를 거쳐 청계3가 관수교까지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많게는 6개 차로까지 통행이 막히면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집회 및 행진으로 이 일대 차량의 평균속도가 평소보다 3km 줄어든 시속 16.2km를 기록했다. 특히 행진 경로 등이 제대로 공지되지 않아 볼일을 보러 종로 일대를 찾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종로3가 인근 금은방에 결혼반지를 계약하러 찾아온 조모 씨(31)는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웠다가 집회 행렬에 막혀 1시간 넘게 오도 가도 못했다. 조 씨는 “빨리 계약하고 일하러 가야 하는데 이게 무슨 봉변이냐”라며 항의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행렬에 막혀 무더기로 멈춰 서는 일도 벌어졌다. 이날 경찰은 경력 75개 중대 6000여 명을 배치했다. 하지만 차벽 등을 세우지 않고 교통통제와 질서 유지에 집중했다. 대규모 행진이 퇴근시간 전인 오후 5시 20분 무렵에 마감돼 당초 우려했던 ‘퇴근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행진 도중 스피커 차량에 오른 일부 민노총 관계자는 시민들을 향해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21일 오전 출근시간대에 이뤄진 건설노조 집회 때 시민들의 출근길을 방해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민노총 측이 이를 의식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 집회 참가자가 금연구역인 광화문광장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우거나 대낮인데도 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이 목격됐다. 집회 현장에서 나는 노래와 확성기 소음 때문에 지나는 관광객이나 인근 건물 사무실 근로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급식 파행도 이틀째 계속 전국적으로 1만7000명이 넘는 학교 비정규직이 이틀째 민노총 총파업에 동참하면서 전국 학교에서 급식과 돌봄교실, 방과 후 수업 등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30일에는 전날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대구와 전북지역 학교들도 파업에 나서 급식 파행 지역이 더욱 늘었다. 교육부는 이날 4026개교에서 근무하는 1만7448명이 파업에 참여해 총 2158개 학교의 급식 운영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전체 학교의 19.09%에서 급식 파행이 이뤄진 것이다. 전날 정상 운영됐던 대구와 전북지역에서만 각각 49개교, 200개교의 급식 운영이 추가로 중단됐다. 학교들은 긴급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에게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안내(537개교)하거나 학교 측에서 빵과 우유를 마련해 제공(1344곳)했다. 단축수업을 해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끼니를 해결하도록 한 학교도 158곳에 달했다. 이날 실제 파업 규모는 미미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민노총은 이날 파업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조원 규모가 6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이틀째 파업을 이어간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 1만8000명을 제외하면 민노총 산하 일부 비정규직 조합원만 파업에 동참해 전체 파업 규모는 2만 명 안팎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노조 전임자들이 대거 서울에 운집하고, 금요일에 휴가나 연가를 내고 서울 도심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이 많아 집회 인원은 실제 파업 규모보다 훨씬 많았다.김배중 wanted@donga.com·구특교·유성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29일 미국에 도착한 가운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단체는 이날 오후부터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밤새도록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 단체는 앞서 24일 이른바 ‘미 대사관 포위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반미(反美) 성향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전국행동) 소속 100여 명은 이날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미 대사관 맞은편 광화문광장에서 이른바 ‘한미 정상회담 대응 30시간 비상행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문화제라며 토크콘서트를 열어 미국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퍼부었다. 박대성 원불교 교무는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폭력을 팔아먹고 살고 폭력으로 국가를 유지하는 곳”이라며 “미국은 깡패, 힘 좀 있다고 힘없는 나라 힘들게 하는 모순덩어리 국가”라고 말했다. 다른 발언자는 “트럼프 이노무 시키 모가지 딱 쥐고 (사드) 나가라 하면 결국은 나가게 되겠죠”라며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했다. 발언을 듣고 있던 참가자들은 도화지에 ‘나에게 사드란, 나에게 미국이란’을 주제로 한 단어나 문장을 적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여기서는 나에게 사드란 ‘혈압상승제’, ‘오물’, ‘기생충’, ‘미국의 쓰레기’, ‘개사기’ 등으로 표현됐다. 나에게 미국이란 ‘깡패다’, ‘똥이다’ 등이라고도 했다. 24일 사드반대집회에서는 민노총 김재하 부산지역본부장이 서울광장 연단에 올라 “촛불을 들어 미국을 쓸어버릴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토크콘서트가 열리기 전 김태복 한국진보연대 반전평화국장은 “촛불정부 이후 처음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맞아 촛불민중의 힘을 모아 미국과 불평등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 미 대사관 쪽에서 바닥에 붙여놓은 ‘NO THAAD’ ‘NO TRUMP’ 표시를 따라 흰색, 빨간색 골판지를 들고 줄지어 서는 시위를 했다. 권명숙 서울진보연대 사무처장은 “저번에는 인간띠를 했는데 더 세게 항의하자는 의미로 호루라기를 불자”고 해 참가자들은 20초 이상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10시까지 토크콘서트를 한 뒤 10시 반에는 ‘돗자리 회의’를 했고 30일 오전 2시 반부터는 사드 배치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경북 성주군 군민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파란 나비 효과’를 상영했다. 이들은 30일 오전부터 기자회견, 릴레이연설, 결의대회를 잇달아 가질 예정이다. 민노총이 이날 예고한 ‘6·30 사회적 총파업’ 등에 합류할 여지도 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김배중 wanted@donga.com·구특교 기자}

27일 0시경 서울 중앙고 3학년 김태규 군(18)은 청와대 앞길로 들어섰다. 집 근처라 가끔 다니던 길이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평소 김 군은 밤늦게까지 공부한 뒤 청와대 동편 계동에 위치한 중앙고에서 청와대 서편 신교동 집까지 오기 위해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학교에서 안국역 앞으로 나와 대로를 지나 광화문을 거쳐 경복궁역에서 다시 효자동 방향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U자형으로 돌아가는 코스의 길이는 약 3.2km. 40분 넘게 밤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26일부터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개방되면서 김 군의 하굣길도 약 2km, 30분 정도로 단축됐다. 김 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는데 집에 가는 시간이 줄고 지나는 차도 없어 시끄럽지 않아 좋다”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이 길로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개방 첫날 축하 행사에 참석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총괄위원장의 기억에도 청와대 앞길은 친근한 ‘등하굣길’이다. 청와대 근처 청운초교 출신인 유 위원장은 “내가 청운초 37회 출신이다. 50년 전 일대의 경기고와 대동상고(현 대동세무고) 학생들이 등하교 때 애용한 길”이라며 추억했다. 24시간 개방 소식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앞길은 첫날 밤부터 많은 사람이 찾았다. 26일 오후 늦은 시간까지 가족과 친구끼리 찾은 시민들이 비 온 뒤 쾌적한 여름밤의 정취를 즐겼다. 시민들은 서로를 향해 “정말 여기서 사진 찍어도 되느냐”라고 물으며 즐거워했다. 북악산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다는 청와대 정문 바로 앞은 벌써부터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북새통을 이뤘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이곳을 찾은 장귀석 씨(68)는 “칠십 먹고 이 시간(오후 9시)에 여기 서 있을 거라 상상을 못했다”며 “죽기 전까지 더 자주 찾아올 거다”라며 벅찬 얼굴로 말했다. 날이 제법 쌀쌀해진 오후 11시 무렵에는 인파가 줄었지만 산책 나온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이곳을 거니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마치 편안한 동네길 같았다. 청운동에 산다는 김미란 씨(47·여)는 “10년을 여기서 살았지만 밤에 와보긴 처음”이라며 “새로운 뒷마당이 생긴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적함을 틈타 ‘야행(夜行)’을 즐기는 연인들도 눈에 띄었다. 한 여성은 “곳곳에 서 있는 경찰들이 잘 지켜줄 테니 치안을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불청객도 있었다. 27일 오전 1시경 술에 취한 60대 남성이 “분통 터져 대통령한테 할 말 있어서 왔다”고 큰소리로 말하며 청와대로 다가갔다. 경찰들이 남성을 막아서는 등 10분 넘게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루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배중 기자}
경기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 씨는 얼마 전 ‘음주운전 예방 포스터’를 직접 그렸다. 자녀의 학교 숙제를 대신한 게 아니다. 소속 부서에 제출할 포스터다. ‘수사권 조정에 대비해 경찰의 개인 비위를 예방하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라’는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A 씨는 일과 후 밤을 꼬박 새워 포스터를 그렸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술병에 깨진 내용이다. 현재는 소속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음주운전 예방대책 발표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A 씨는 “업무도 바쁜데 그림 그리고 발표회 준비까지 하다 보면 마치 초등학교 방학숙제를 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요즘 경찰은 이처럼 ‘집안 단속’이 한창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트집 잡히면 안 된다는 분위기 때문이다. 검찰도 마찬가지. 검찰은 최근 ‘돈 봉투 만찬 사건’을 비롯해 검찰 간부에 대한 징계, 면직이 연이어 나오자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돼 주도권을 뺏기지 않을까’ 걱정하며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다. 최근 검사들 사이에선 “경찰이 강남권을 중심으로 성매매 단속을 강화한다” “검사나 검찰 수사관을 잡으면 특진 대상이라 경찰관들이 여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평검사는 “다른 건 몰라도 음주운전은 걸리면 죽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각 부서 단위에선 부원 근태에 대한 당부성 지시가 자주 내려온다고 한다. 한 부장검사는 “민감한 시기인 만큼 직원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는 것도 자제하게 된다”며 “부하 직원들에게도 ‘처신에 신경 써달라’는 당부의 말을 건넸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는 저녁식사 등이 한창인 오후 8시가 되면 “민감한 시기인 만큼 술 마시는 자리는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문자가 돈다. 경찰관 B 씨는 최근 ‘음주운전 예방 단결대회’에 참석해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또 경찰청은 26일 “경찰채용시험에서 채점 오류가 있어 잘못을 바로잡았다”면서 스스로의 잘못을 미리 공개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경이 이처럼 집안 단속을 강화하고 나선 건 수사권 조정이 임박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지금을 수사권을 가져올 최적기라 판단하고 있고 검찰은 최대의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김배중 기자}
“5, 4, 3, 2, 1.” 26일 오후 8시. 청와대 앞길이 시작되는 춘추관 앞에 모인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마치자 도로 위에 솟아있던 장애물이 사라지고 철문이 열렸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 야간(오후 8시∼다음 날 오전 5시 30분) 통행이 제한돼온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전면 개방되는 순간이었다. 김 여사는 이날 ‘50년 만의 한밤 산책’에 참석해 시민 선발대 50여 명과 함께 청와대 앞길을 걸었다. 시민 선발대는 청와대 페이스북을 통해 참가 신청을 한 3500여 명 중 추첨을 통해 선발됐다.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청와대 앞길 개방 소식을 듣고 찾아온 400여 명의 시민도 선발대를 뒤따랐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며 “작은 변화지만 권력이 막아섰던 국민의 길, 광장의 길을 다시 국민께 돌려드리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산책 중간 지점인 신무문에서 KBS 국악관현악단 한충은 부수석의 대금 연주와 박준 시인의 시 낭송을 감상했다. 이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내려 행사 진행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행사 시작 시간을 앞두고 비가 그치면서 예정대로 진행됐다. 청와대 앞길 산책 도우미로 나선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총괄위원장은 “권부들에게 갇혔던 길이 시민들에게 돌아오는 순간”이라며 “조선시대에 비가 안 오면 숙정문과 북쪽 길을 열고 기우제를 지냈는데, 경복궁 뒷길인 청와대 앞길을 여는 오늘 기다리던 비가 내렸나 보다”고 소회를 밝혔다.유근형 noel@donga.com·김배중 기자}

주한 미국대사관을 에워싸는 사상 첫 ‘포위 집회’가 열렸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노골적인 반미 구호가 경쟁하듯 쏟아졌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를 강도 높게 압박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24일 오후 4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참여하는 사드저지전국행동(전국행동)이 주최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집회가 열렸다.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NO THAAD(노 사드)’라고 적은 대형 깃발이 휘날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집회는 시작됐다. 연단에 선 주최 측 인사들의 수위 높은 발언이 이어졌다. 최종진 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촛불항쟁으로 만들어진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불필요한 사드를 당장 가져가라고 통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소속 김종훈 의원(울산 동)은 “(한미)동맹이 협박의 연속이라면 동맹은 파기될 수밖에 없다”며 “(문 대통령이) 우리의 간절함에 상처를 입힌다면 문 정부와도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걸 경고한다”고 말했다. ‘한미동맹 파기’ 등이 언급될 때마다 참가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광화문 일대 행진 도중 나온 발언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김재하 민노총 부산지역본부장은 “미국 추종하는 놈들은 (국내에) 20%도 안 된다”며 “미국이 압박하면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해라. 우리가 촛불 들어 미국을 쓸어버리겠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한 명은 마이크에 입을 대고 10초가량 ‘윙’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오산 등 미국 레이더기지에서 나는 소리”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부부젤라와 호루라기 등을 불고 ‘촛불의 명령’ ‘사드 철회’ ‘노(NO) 트럼프’ 등을 외쳤다. 시위대는 이날 오후 5시부터 약 2km 거리를 행진했다. 서울광장에서 세종대로 사거리를 거쳐 종로1가 사거리(종각역), 우정국로 등을 돌아 미 대사관을 향하며 최대 3개 차로가 통제됐다. 토요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차량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종로1가 사거리에서 세종대로 사거리 방향은 약 1시간 동안 교통이 통제돼 차량들이 광교 사거리 방향 등으로 우회해야 했다. 행진 막바지 코스인 종로구청을 지난 뒤 미 대사관 ‘포위’가 시작됐다. 전날 법원의 ‘1회에 한해 20분 이내 통과’라는 조건부 허용으로 이뤄진 것이다. 오후 6시 32분부터 시위대는 미 대사관 뒷길로 행진한 뒤 멈춰 섰다. 인간 띠를 만들어 파도타기를 진행하고 부부젤라와 호루라기를 불며 대사관을 향해 ‘노 사드, 노 트럼프’ 등을 외쳤다. 미 대사관 ‘포위 집회’는 19분간 진행됐다. 집회 마지막 미 대사관 정문 앞에서는 ‘사드강요 미국규탄 NO THAAD NO TRUMP’ 문구와 함께 사드 미사일과 돈뭉치를 입에 문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노란색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25일에는 광화문 일대에서 ‘사드 배치’ ‘한미동맹 강화’ 등을 외치는 보수단체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주최 측인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행동’은 이날 오후 6·25전쟁 기념 국가안보 및 국민회의 집회를 열고 탑골공원부터 중구 대한문까지 약 1.6km 구간을 행진했다. 6·25전 참전용사 등으로 구성된 집회 참가자들은 “한국에 사드 반대를 외치는 좌파들의 선동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예윤·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