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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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선희 기자입니다.

teller@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문학/출판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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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3%
  • [문학예술]우리시대 대표작가 9인의 자전소설

    마흔의 나이에 ‘나목’으로 등단한 뒤 한국의 대표작가로 우뚝 선 소설가 박완서 씨. 6·25전쟁 때 가족을 잃은 아픔이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로 이어진 뒤 당시의 전쟁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과 한국사회의 세태와 일상을 담은 풍속소설들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그런데 작가생활도 결혼생활처럼 풍파 없이 순탄한 길을 걷던 1988년, 그는 남편과 막내아들을 석 달 간격으로 잃는 크나큰 아픔을 겪었다. 박 씨는 자전소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에서 이처럼 작가의 생애를 휘감고 간 여러 사건들을 유년기부터 최근까지 담담하게 되짚었다. 박완서 윤후명 양귀자 등 우리 시대 대표 작가 아홉 명의 자전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들을 문학의 문턱으로 들인 사건과 한 작가의 세계관 배후에 어린 개인사를 접하면서 문학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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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닷없이 당하는 세상, 전염병 비슷”

    소설가 편혜영 씨가 첫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많은 독자들이 탄탄한 문장과 그로테스크한 상상력, 섬뜩한 이미지들이 어우러진 그의 정교한 단편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 작가의 단편들은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상문학상’ 우수상,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등에 선정되며 주목을 받아왔다. 단편집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에 이어 등단 10년 만에 선보인 첫 장편소설 제목은 ‘재와 빨강’. 그가 선보여 온 여러 문학적 요소가 응축된 작품이다. 소설은 제약회사의 약품개발원인 사내가 C국에 파견근무를 발령받으며 시작된다. 쥐와 전염병이 창궐하고 쓰레기더미로 뒤덮인 이 불쾌하고 해석 불가능한 세계로 진입한 사내는 오해와 의심, 불안의 사슬 속에서 점차 스스로 추락한다. 25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작가를 만났다. 작품 분위기처럼 어딘지 스산한 날씨였지만, 작가는 활짝 웃는 표정이 잘 어울리는 유쾌한 인물이었다. ―단편집을 두 권 내면서 상 및 주목을 많이 받았다. 첫 장편소설이라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음, 부담감을 가질 만큼 주목을 받거나 완성된 세계를 구축하진 않았다.(웃음) 등단 10년 만에 낸 장편이지만 지금까지 펴낸 두 단편집의 내용을 아우르면서 하나의 시기를 매듭짓는 과정이어서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물론 장편을 내는 것이 처음이어서 첫 책을 낼 때처럼 이런저런 생각이 많긴 했다.” ―폐쇄된 공간, 전염병과 살인, 학대 등의 설정과 잔혹한 이미지가 전작들과 흡사하다. 스스로 표현했듯이 ‘전작들을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다른 것이 있다면 질병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홍콩을 휘감았던 사스 사태를 봤을 때는 생존질병이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고 폐허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 충격이 ‘아오이 가든’ 등에 표현됐다. 그런데 작년의 신종 인플루엔자 파동을 보면 이제는 질병도 중세의 페스트처럼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고 폐허화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세계가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운이 없어 그 질병 근처에 간 개인들에게 디스토피아가 발생하는 것이다.” ―신종 플루를 비롯해 사회의 여러 사건 사고들이 직간접적으로 소설에 반영된 것 같다. “전면적이진 않지만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전염병은 모호한 세계를 표현하기 좋은 소재다. 요령부득의 이 세계야말로 전염병 같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실체를 확인할 수 없고 정체도 원인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을 쓸 때 신문에서 접하는 사건들이나 방송사의 뉴스 등에 등장하는 사회 병폐들에서 곧잘 소재를 얻는다.” ―주인공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는데 거기엔 출구가 없어 보인다. “결말을 다르게 해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의 조건을 모두 바꿀 수 없는 한 탈출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삶에 대한 의혹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디에서 살든 그게 과연 탈출일까. 대신 이 같은 결말은 한 사내의 몰락기이자 동시에 생존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그렇게라도 살아가니까 말이다.” 편 씨는 올봄 계간 ‘문학과 사회’에 신작 장편소설 ‘서쪽 숲에 갔다’ 연재를 시작하고 가을 무렵 새 단편집을 묶어 내는 등 창작활동에 한층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가 귀띔한 바로는 “집단성이 강한 소도시로 이사 간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새 장편도 설정에서부터 음울하고 수상한 징조가 엿보이는 듯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처럼 부조리하고 불가해한 세계의 폭력성을 그려내는 데 문학적 관심을 꾸준히 두는 이유가 궁금하다. “글쎄,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발동한다. 평소에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것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글 쓸 때는 감정적인 것, 낯간지러운 표현을 절대 못쓴다. 상상력의 회로이기 때문에 설명 불가능하다. 확실한 건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텍스트는 늘 ‘현실’이라는 점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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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물 안되면 버티지 못하는 세상…오현종 씨 신작 ‘거룩한…’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제목 그대로 속물적이다. 졸업이 다가오자 배우자감을 물색하기 위해 돌연 대형 교회에 착실히 나간다거나 일종의 보험으로 ‘감자’같이 생긴 의대생 남자친구를 참고 사귄다. 외모와 옷차림, 사는 곳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고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동기간의 치열한 신경전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이들의 철저히 계산된 속내와 위악적인 행동들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가 오현종 씨는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거룩한 속물들’(뿔)에서 속물이 되기를 자처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권하는 우리 사회의 풍속도를 세밀하고 흡인력 있게 그려낸다.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집필동기에 대해 “현진건의 단편 중에 ‘술 권하는 사회’란 것이 있었지만 요즘은 ‘속물 권하는 사회’인 것 같다”며 “작가로서 이 사회의 속물성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여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는 여대생 기린과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업 실패 뒤 대리운전 기사로 근근이 살면서도 이른바 ‘SKY’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는 자신을 곧 죽어도 ‘중산층’이라고 믿는다. 전공과는 달리 사회 복지에 큰 관심이 없는 기린은 돈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위해 과외를 몇 탕이나 뛰면서도 ‘빈티’만은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친구들이 그런 자신을 몰래 비웃고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있으면서도 없는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이들의 속물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팽팽하게 얽혀든다. 왕년의 나이트 죽순이에서 결혼 재테크 성공으로 인생을 역전시킨 사촌언니, 사는 지역을 따져가며 연애 상대를 만나는 주식 동아리 회장 등 다채로운 등장인물은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가는 “자본주의 문화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인 만큼 이들을 통해 패배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오늘의 20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처럼 속물근성이 만연한 현실만 질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과 삶의 애환을 함께 가늠하게끔 한다. 작가는 “정답은 없겠지만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욕망, 가치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과 꿈을 따라가는 것만이 대안을 찾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기린 역시 종국에는 이런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한 단계 성장해 간다. 소설의 제목은 김수영 시인의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에서 따왔다. 속물성을 마치 종교처럼 떠받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완벽한 속물’조차 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다. 작가의 말처럼, “대부분의 우리들은 회의하고 고통받고 외로워하는 어설픈 속물들”임을 깨닫게 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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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름 달랜 ‘바보 몸짓’… 이제 누가 우리의 눈물을 닦아줍니까

    우는 아이, 우는 어른들에웃음의 선물 전해주신 그분우리를 위해 하루하루더 절절한 바보가 되신 그분먼길 가심에 고마움의 꽃을…“새봄을 맞아 각 방송국은 앞을 다투어 창경원 야외무대에서의 공개방송을 진행하는데 KBS TV가 첫 테이프를 4월 16일 낮 2시부터 끊는다. 4시까지 이어지는 이 새봄맞이 공개방송특집은 노래 무용 창과 코메디로 엮어지는데 출연자는 최희준, 하춘화, 이미자, 펄시스터즈, 김상희, 문정선,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박초월, 묵계향 제씨.”(1972년 4월 5일 동아일보) 1972년이면 내가 중학교 1, 2학년 때쯤 기억이 아스라한 시간이다. 몇 줄 기사를 읽는 순간 봄의 창경원의 벚꽃, 아이들의 웃음소리, 시골에서 올라온 어르신들의 옷자락 소리 그리고 수줍은 얼굴로 웃기만 하는 청춘남녀의 발그레한 미소가 저절로 그려진다. 그 많은 사람이 머리에 가슴팍에 희디 흰 벚꽃 한두 송이를 꽂은 채 같은 곳을 바라본다. 모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얼굴은 버짐 꽃이 벚꽃의 눈치를 보며 살그머니 피어나며, 애써 단장한 옷매무새는 봄바람에 설핏 제 자랑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온몸 가득 웃음이 흐른다. 바로 저 사람, 저 바보 때문에! 나라님도 즐겁게 해주지 못하고, 권세 있는 자도 알아주지 않고, 배운 자도 모른체 하고, 부자님도 귀 막는 세상이지만… 민초들은 저 사람 때문에 웃는다, 어제의 서러움을 한 바보의 어수룩한 연설 한 마당에 허허 날려버린다, 그제의 씁쓰레함을 바보의 황당한 미끄러짐에 박수로 털어버린다. 조금 전의 괴로움을 솜사탕과 함께 녹여버린다. 그리고 뻔하디뻔한 내일의 추레함에 대해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호통친다. 우리에겐 저 사랑스러운 바보가 있으니까! 누가 이 사람들을 이리도 녹녹히 위로하고, 이렇게 다정히 어루만져주는가? 좀 살펴보자, 아니, 저 바보가? 설마 바보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단 말이야? 웃게 한다고? 그래서 그 바보를 기다린다고? 나라님 앞에서 충 먹은 머리를 숙이지만 헤진 옷 안의 가슴속으로는 바보에게 존경심을 표한다고? 도대체 그 바보가 누구야? ―바보, 여기 왔소이다! 나는 바보 삼룡이올시다! ―너는 뭐하는 자이더냐? ―난 그냥 바보이외다. 바보에게 뭘 묻다니, 당신이야말로 바보군요, 허허허…. 레슬링 선수 김일 때문에 통쾌했고, 마루치 아라치 때문에 신났으며, 바보 배삼룡 때문에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웃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 놓고 터뜨릴 수 있으며, 공장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도 웃을 수 있었다. 아직 갓을 쓰고 버선을 신은 어르신들도 안 보듯 곁눈으로 흑백텔레비전 속에서 온몸을 흔들며 무결점 영혼을 가진 듯한 바보를 훔쳐보았다.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것 외에는 가난에서 벗어날 별다른 방법이 없는 그 시간 속의 사람들…. 그 모두에게 ‘바보’라는 환호성과 박수를 한꺼번에 받은 배삼룡, 그는 엄연한 예술가이자, 한국 희극인의 대부였다. 지금은 개그, 개그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코미디, 코미디언’이라 하였다. comedy, 즉 희극은 넓은 의미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모든 연극을 일컫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소극(farce)과 구별하여 문학적으로 수준 높은 해학극을 말한다. 희극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Komoidia’인데, 이것은 Komos(잔치)의 Oide(노래)라는 뜻이다. 즉 희극은 주신 디오니소스 축제 때 풍자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평소에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꼬기 위해 흉내를 내거나 주위의 구경꾼과 간단한 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듯하다고 한다. 코미디의 정신이 이러하기에 현대사회에서는 코미디를 통해 인간의 모순이나 사회의 불합리성을 해학적,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따끔한 가르침이나 간절한 호소, 암묵적 동의를 얻어내거나 유발하는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펜이 칼보다 강하듯, 위협적인 외침이나 선동적인 구호보다는 웃음의 통로를 통과한 촌철살인의 말과 아무 짓도 못할 것 같은 바보나 조금도 위험할 것 같지 않은 밑바닥 인물을 내세운 어설픈 몸짓이 더욱 강력하면서도 끈끈하게 사람의 마음과 머리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의 전파력은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설령 한다 해도 머리도 꼬리도 잡지 못한 채 더욱 멀리, 빠르게,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 법! 정월대보름이 며칠 남지 않은 2월의 한 날에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래서 더더욱 그가 그리워진다. 설날 추석 정월대보름 같은 날이면 그는 마치 산타할아버지처럼 우리에게 웃음선물을 한가득 짊어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산타할아버지와는 성정이 너무도 다르다. 그는 우는 아이에게, 울고 있는 어른에게 더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더 울고, 더 우세요, 그리고 눈물마저 마르면 차라리 웃으세요, 라며 다정히 안아주었다. 그런데 이제 누가 우리의 눈물을 닦아줄까? 이제 세상은 바보 말고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를 위해 하루하루 더 절절한 바보가 되려고 노력했던 배삼룡 선생. 그 시대의 청소년이었던 우리들, 그분의 말소리 몸짓 하나 하나를 따라하며 즐거워했던 우리들…. 그분의 먼 길 가심에 고마움의 꽃을 공손히 내려놓는다.노경실 동화작가}

    • 20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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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판 몸담았지만 이젠 소설 쪽에 힘 쏟고 싶어”

    오랜만에 반가운 작가가 돌아왔다.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장편 ‘고래’로 소설에 대한 기존 관념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렸던 소설가 천명관 씨(46)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고래’의 낯선 서사와 장대한 스케일은 소설의 강렬한 이미지만큼이나 그의 이름을 문단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2007년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펴낸 뒤 단편 발표 한 번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의 소식과 차기작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았음은 물론이다.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신작 장편 ‘고령화 가족’을 들고 온 그를 만났다. 천 씨는 유쾌한 목소리를 가진 달변가였다. “계간지 등에 단편을 꾸준히 발표해야 이 작가가 뭘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단편을 안 쓸 뿐이지 계속 뭔가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면서도 그는 “사실은 단편 청탁이 없기도 했다”며 씩 웃어 보였다. 그는 등단하기 전 영화판에서 공력을 다진 시나리오 작가였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각본을 썼다. 문예창작과 출신의 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문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영화계로 뛰어들었던 그의 이력은 단연 눈에 띈다. 이 작품도 2년 전부터 구상했지만 연극 ‘참치’ 연출 등 잠시 ‘딴짓’을 하다 보니 더디게 진행됐다고 한다.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3대에 걸친 유장한 서사를 선보였던 ‘고래’와는 결이 사뭇 다르다. 작가의 말대로 ‘아주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데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며 빈털터리가 된 40대 후반의 영화감독. 그가 다시 노모의 집으로 들어가 백수 형, 이혼 당한 여동생과 함께 살며 겪는 가족 내의 소극을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새삼 가족서사를 들고 온 이유에 대해 작가는 “계속 ‘고래’ 같은 소설만 쓸 수는 없으니까”라고 농담했다. 특히 ‘충무로의 낭인’인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러 면에서 작가 자신의 삶의 궤적이 투영된 듯하다. 천 씨는 영화제작사에서 근무하거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 일을 거들며 30대를 보냈다. 최종 목표는 감독이었다. “직접 쓴 시나리오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다니기도 여러 번, 제작이 결정됐다 엎어지기도 했고 캐스팅에 문제가 생겨 좌초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충무로를 떠도는 낭인들이 주변에 너무 많으니 그런 삶을 누구보다 잘 알죠.” 그는 “가족서사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화려한 성공, 물질적인 가치만 추구했던 한 사람이 평범한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가는 성장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소설 끝 후기에서 그는 “동료 소설가인 박민규와 김언수, 그리고 백영옥 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썼다. 문단 밖에서 등장한 이 작가가 단편청탁 시스템 같은 문단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연합하게 된 “비슷한 성향의 작가들”이다. 나이는 1990년대 활동한 작가들과 엇비슷하지만, 쓰는 작품은 2000년대 이후 작가들과 맥이 닿는 어색하게 ‘끼인’ 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소설을 줄곧 쓰면서도 소설가라는 호칭을 어색하게 여겼고, 문단에서 주목받았지만 문단과는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에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는 “아직 낯설지만 이제는 소설가란 정체성을 가져 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구상하는 차기작의 초고 작업도 시작했다. ‘고래’처럼 광대하지만 그보다는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 가족’은 여러 면에서 그의 새로운 출발점 같아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시작됐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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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구중서 씨

    한국작가회의 신임 이사장에 문학평론가 구중서 씨(74·사진)가 20일 선출됐다. 한국작가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용강동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구 씨를 2년 임기의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구 이사장은 수원대 국문과 교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을 지냈다. 구 이사장은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사회의 대표적 문화예술단체로서 물질 중심적이고 비인간화하고 있는 사회를 다시 인간화, 인격화시키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에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불법집회 불참확인서’를 요구한 조치에 대해서 “시위 참여는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며 법에 저촉되는 점이 발견된다면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면 된다”며 “돈을 구실로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단체를 사전 위협하려는 것은 상대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이사장으로는 최원식 인하대 교수, 도종환 나종영 이은봉 시인을 선출했으며 사무총장에는 소설가 김남일 씨가 선임됐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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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삶이여

    ◇찬란/이병률 지음/152쪽·7000원·문학과지성사“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지금껏 많이 살았다 싶은 것도 찬란을 배웠기 때문/그러고도 겨우 일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다 찬란이다.” 이병률 시인의 시들은 서글서글하면서도 진중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삶의 밝음과 어두움이 해가 뜨고 저무는 것처럼 찬찬히 교차되고 눈앞에 펼쳐진 듯 섬세한 묘사들은 어느 순간 마음을 쿵, 움직이게 한다. 전작 ‘바람의 사생활’ 이후 3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표제작 ‘찬란’처럼 일상 곳곳에 가닿는 시인의 시선은 잊혀져 있던 우리들의 애환을 이처럼 서정적으로 환히 밝혀낸다.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민첩하지 않아도 되니/그것은 다행한 일//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보면/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어느 곳에도 없으며…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좀 살만하지 않을까/그중에서도 살아갈 힘을 구하는 것은/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바람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생활에게’) 무심결에 피해버린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는 시인의 안타까운 목소리는 타인에 대한 관심, 소통의 열린 마음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삶을 뼈아프게 돌이켜보게 한다.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던 이…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의 방도를 조용히 물을/그 새(鳥)처럼 마른 이/못 보셨습니까.”(‘불편’)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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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비루한 삶, 몽타주같이 그려내

    ◇오란씨/배지영 지음/344쪽·1만1000원·민음사일간지 사회면의 사건 사고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일들이 이 소설집에서는 많이 나온다. 덤프트럭의 추돌사고, 오토바이 추락사, 화장실 변사부터 연쇄살인에 이르기까지. 현대 한국사회의 신산하고 기형적인 풍경들을 이 작가는 집요하게 그려낸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로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오란씨’는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서울 모래내시장 인근에 사는 이복형제 이야기다. 15년 전 매밋집 여자와 오토바이로 함께 야반도주하다 사고로 죽었던 형처럼, 동생 역시 한 여자를 향한 순정 때문에 길을 나섰다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소설은 죽음을 앞둔 동생의 회상을 통해 가족과 주변 시장 사람들의 비루한 삶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살인자가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어느 살인자의 편지’, 익명성에 가려진 현대사회의 어두운 치부를 들춰낸 ‘몽타주’ 등이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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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詩와 철학의 입맞춤… 짧은 만남 긴 여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강신주 지음/432쪽·1만 6000원·동녘최근 시인이나 문학평론가들이 해설을 곁들인 시선집을 많이 내놓고 있다. 문학사적 맥락, 작가론적 입장, 일상적 경험에서 시를 더욱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풀어 쓴 책들이다. 이 책은 그런 시선집과 다르다. 철학 전공자로 대중 인문서를 써 온 저자는 이 책에서 서양철학이란 프리즘을 통해 21편의 한국 현대시들을 읽어낸다.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현대시도 저자가 철학적 시선과 만나며 숨겨뒀던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철학적’으로 시를 감상해 보면 이렇다. 최두석 시인의 시 ‘성에꽃’은 엄동 혹한의 새벽 시내버스 창에 어린 성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다. “새벽 시내버스는/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엄동 혹한일수록/선연히 피는 성에꽃…어제 이 버스를 탔던/처녀 총각 아이 어른/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시인은 이 시에서 성에꽃의 의미를 동시대인들의 삶과 열정이 뒤섞인 공동체적 애환으로 확장했다. 저자는 여기에서 질 들뢰즈의 ‘다중체’란 철학적 사유와 같은 맥락을 발견한다. 아장스망(agencement)으로도 불리는 다중체는 들뢰즈 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다중체란 “차이 나는 본성들을 가로질러서 그것들 사이에 연결이나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란 뜻이다. 즉, 서로 다르지만 연동되어 있으며 서로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결연관계를 뜻한다. 들뢰즈는 이것을 뿌리와 줄기의 체계구분이 명확한 ‘수목’에 대비해 ‘리좀’(뿌리줄기)적인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리좀은 수목과 달리 탈중심적이고 수평적이며 개방적인 체계를 지닌 다중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끈으로 묶인 우리들의 삶을 시인은 ‘성에꽃’이란 시로, 들뢰즈는 ‘리좀’이란 개념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삶에 편재한 권력의 논리를 ‘하……그림자가 없다’에서 노래한 김수영 시인의 시는 푸코적 통찰과 맥이 닿는다. 김수영 시인은 이 시에서 사나운 악한도 아니며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우리의 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다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이윽고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이 시가 어떻게 푸코의 사유와 연관될 수 있는 것일까. 푸코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사실은 복잡한 권력관계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성된 역사적 결과물임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한 철학자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주체’가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주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김 시인이 시에서 말하듯이 쉼 없이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쉼 없는 싸움이란 결국 권위주의에 익숙해진 스스로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한 편의 시에 어울리는 한 철학자의 주요 개념을 연결시킨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말년에 새롭게 내세웠던 ‘우발성의 유물론’ ‘마주침의 유물론’은 ‘물의 시인’으로 불리는 강은교 시인의 시 ‘물길소리’와 결합되며 새로운 공명을 빚어낸다. 부부를 각각 자기 자리에 놓인 가구에 비유한 도종환 시인의 ‘가구’에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공동체’ 개념을 끌어온다. 그의 철학에서 ‘공동체’란 동일한 언어게임과 규율을 가진 닫힌 개념이다. 서로에 대한 ‘맹목적 비약’을 통해 사랑에 빠졌던 연인은 서로 익숙해질수록 동일한 규율에 묶인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도 시인이 말한 ‘가구’ 같은 부부란 곧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공동체’적 규율이 내면화된 부부인 것이다. 이 책은 철학과 문학을 개괄적인 수준에서 알기 쉽게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유혹을 어선의 화려한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오징어떼에 비유했던 유하 시인의 ‘오징어’를 베냐민의 철학과 연관시키는 등 비교적 평이한 접근도 있다. 하지만 짧게 간추린 철학적 사유들은 시를 해석하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골칫덩어리였던 ‘시와 철학’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가늠하게 해준다. 해당 철학자나 시인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을 때 읽을 만한 추천도서도 수록돼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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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이후 격동의 시대, 詩는 삶의 전부”

    《암 투병 중인 노(老)시인이 사는 곳은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아담한 담홍빛 2층 주택이었다. 최근 그는 문학인생을 마무리하는 듯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근작 20여 편을 포함해 시 전집을 출간했다.병세를 안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을 서둘렀다. 전집이라지만 일평생 일곱 권의 시집밖에 내지 않았던 과작의 시인이라 500페이지 분량의 한 권으로 만들어졌다. ‘최하림 시전집’이다.》■ 김치수 교수“모더니즘서 출발, 현실로 지평 넓힌 최 시인 작품세계는 우리 세월을 응축”■ 최하림 시인“시쓰기 그만두고 강으로 나서니 흐르는 물을 붙잡을 생각 없어져” 17일 오후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70)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미동 없이 앉아 있던 시인(71)이 몸을 일으켰다. 거동이 불편한데도 시인은 지팡이를 짚고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교수의 손을 맞잡은 그의 표정은 반가움으로 환해졌다. 호수가의 호젓한 전원주택은 가끔씩 그의 서울예대 제자들이 들르는 것 외엔 찾는 이가 많지 않다고 했다. 시인은 “외롭다”고 짧게 말했다. 이들의 인연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일면을 대변해 준다. 1960년대에 문학 활동을 시작한 4·19세대 문인들이자 평론가 김현, 소설가 김승옥 씨 등과 함께 한국문단 최초로 ‘한글세대’의 등장을 알렸던 동인지 ‘산문시대’를 펴냈다. 김 교수가 양평을 찾은 것은 지난해 여름 투병 소식을 듣고 방문한 후 몇 개월 만이었다. 때마침 최 시인의 시 전집과 나란히 김 교수의 신작 비평집 ‘상처와 치유’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다. 최 시인은 힘에 부친 듯 말수가 눈에 띄게 적었지만 동시에 출간된 김 교수의 책을 받아 들면서 “잘됐어, 아주 잘된 일이지”라고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최 시인은 간암 확진을 받은 직후인 지난해 봄부터 전집을 준비해 왔다. “암이란 게 상상력을 앗아가는 것 같아. 시술 받는 것이 너무 힘들고 걸을 수도 없으니 생각이 혼란스럽기 짝이 없고. …힘 닿는다면 열 편 정도 새로 보태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지.” 최 시인의 나지막한 말에 김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음만 잘 먹으면 병마를 이길 힘도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시집도 아주 잘 나왔던데, 서문을 읽으니 착잡해지고 흐뭇해지고 여러 생각이 들었네.” 최 시인은 서문에서 삶의 끝자락을 응시하는 듯 이처럼 담담히 읊조렸다. “마침내 나는 쓰기를 그만두고 강으로 나갑니다. …죽은 자들과 대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런 몇몇 문장이 떠오른 듯 김 교수가 말끝을 흐리자 시인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어쨌든 다른 건 몰라도 ‘문지’에서 나온 시집들 중 장정은 내 것이 최고야.” 시 전집 표지 이미지로 쓰인 것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이다. 화제는 자연스레 1960년대 ‘산문시대’ 발간에 얽힌 추억들로 이어졌다. 앙상한 뼈만 추려낸 자코메티의 조각을 유난히 좋아했던 최 시인은 그들이 꾸렸던 ‘산문시대’의 표지로 그의 작품을 쓴 적이 있었다. 김 교수는 그들의 오래전 만남을 회상하면서 “김현은 방학이면 목포에 내려가 편지로 소식을 전했다. 하루는 ‘여기 음악, 미술, 문학 뭣 하나 모르는 것이 없는 기막힌 천재 시인을 만났으니 보러 오라’는 소식을 전해왔는데 그게 최하림 씨였다”고 말했다. 동인지 ‘산문시대’가 발행되는 동안 이들은 한 달 동안 하숙집에서 합숙을 하면서 책을 만들었다. 김 교수는 “누가 봐도 비리비리했던 대학생들”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들은 반세기 뒤 한국 문단의 중심축을 차지하게 됐다. 최 시인은 “돌이켜보면 시 쓰기는 사는 것이었고 전부였다. 우리 시대는 그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모더니즘 계열에서 출발했지만 역사현실에 대한 관심을 넓혀갔던 최 시인의 시 세계는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말했다.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4·19혁명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아를 토대로 한글 문체와 독특한 감수성을 새롭게 발견해 냈다는 자긍심은 아직까지도 이 두 문인을 엮는 단단한 끈이었다. 병세로 긴 대화가 힘들었지만 이들의 대화는 훌쩍 한 시간을 넘겼다. 시인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따로 놓인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두꺼운 갱지 봉투에 잘 싸인 그것은 자신의 시전집이었다. 시전집을 선물로 받아 든 김 교수는 한사코 배웅하러 나서려는 그를 만류하며 “추우니 나오지 말게. 몸조리 부디 잘하시게” 하고 손을 굳게 잡았다.양평=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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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휴 잊은 연희창작촌 “일상 잊고 작품에 몰두…”

    설 연휴 마지막날인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연희문학창작촌. 잔설이 드문드문 보이는 창작촌 산책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소리가 청량했다. 국내 최초의 도심 속 문학창작촌인 이곳에는 20여 명의 문인이 입주해 있다. 대부분의 작가와 직원이 자리를 비워 한적했지만 연휴를 잊은 채 창작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중견작가 은희경 씨는 온라인 연재 중인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와 함께 연휴를 보냈다. 때마침 서효인 시인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작업실을 나서던 그는 “그새 날씨가 많이 풀린 것 같다. 작품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하니 시간은 쫓겨도 활기는 넘친다”고 말했다. 은 씨는 밤새워 작품을 쓰고 오전에 퇴고한다. 그는 “독자들에게는 마냥 즐겁게 작업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으니 설날에도 일했다고 하지 말라”고 농담하며 웃었다. 덥수룩이 수염을 기른 극작가 최창근 씨는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책 중이었다. 희곡 ‘13월의 길목’ ‘엄마 여행갈래요’ 등을 발표했던 최 씨는 이번 연휴를 맞아 시나리오 ‘이인(異人)들의 여름’ 초고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연휴 내내 창작촌에만 있었으니 떡국 한 그릇 챙겨먹지 못한 건 당연한 일. 고향이 강원 삼척인 그는 “부모님이 많이 섭섭해 하셨지만 시나리오 완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영화 제작 시기가 달라지니 별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연휴 속의 작업이지만 스트레스보다는 오히려 즐거움처럼 보였다. 새로운 서정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이강 시인은 첫 시집 준비를 위해 이번 연휴 창작촌을 택했다. 그는 “평소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잊고 온전히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으니 연휴야말로 문학을 위해 공짜로 생긴 시간 같다”며 “이는 다른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를 창작촌에서 보낸 이들의 한 해 소망은 소박했다. “창작자들이 최선을 다해 작업한 만큼 그 결과가 독자나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최창근 씨) “작품이야 늘 써야 하는 것이니 사실 설이라고 특별할 것이 있겠습니까. 올해는 곳곳에서 장편이 많이 나온다고 하니 그만큼 문학계도 더 많은 활기가 생겼으면 합니다.”(은희경 씨)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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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독재에 눈감은 문학의 독백

    ◇칠레의 밤/로베르토 볼라뇨 지음·우석균 옮김/176쪽·9800원·열린책들라틴아메리카의 암울했던 정치 상황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촌철살인의 위트와 결합해 풀어낸 칠레 출신 작가의 장편. 독재정권에 부합한 문학가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통찰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보수적인 우루티아 사제의 광기어린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 사제는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건만 아직도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다. 나는 평화로웠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평화롭지 않다”고 불평하며 이 모든 것이 ‘그놈의 늙다리 청년’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작가는 보수적인 사제이자 문학비평가인 우루티아의 정치의식이 결여된 긴 독백을 통해 칠레의 암울했던 현대사와 기회주의적이었던 칠레 문단, 지식인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아바카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기도 했던 사제는 칠레 현대사의 어지러운 상황을 외면하고 “될 대로 되라지”라며 방에서 독서에만 몰두한다.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아옌데가 쿠데타군에 저항하다 대통령궁에서 자살했는데도 “참 평화롭군”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피노체트를 필두로 한 군사평의회 의원들에게 부역하게 되면서 문단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은둔을 자처했던 그는 독재라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게 되고 그나마 남아 있던 비판적 지성은 억지스러운 자기 위안과 변명으로 흐려진다. 그는 피노체트 체제하의 정치범 고문실이기도 한 작가 지망생 마리아 카날레스의 집에서 문인들과 파티를 즐기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고문실의 피해자를 모른 척 한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았다”고 옹색하게 변명하면서. 기회주의자이며 위선자였던 우루티아 사제에게 나타난 ‘늙다리 청년’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는 “혼자서는 역사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자신의 인생을 강하게 옹호하지만 비판적 양심의 소산인 그 ‘늙다리 청년’을 설득하기는 힘들다. 그가 그토록 집요하게 옹호하고 추구하고자 했던 ‘평화’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루티아 사제의 독백은 결국 칠레문학에 대한 강한 조소로 끝난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열린책들’ 출판사는 ‘칠레의 밤’을 시작으로 볼라뇨의 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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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야구광 30대 회사원이 메이저리그 진출?

    ◇말이 되냐/박상 지음/480쪽· 1만1800원·새파란 상상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스스로 말이 안 되는 소설임을 자처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말이 되냐’는 제목 아래 ‘Noble entertainer Park sang's fusion baseball story(소설 엔터테이너 박상의 퓨전 야구소설)’이라고 쓰여 있다. 저자는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펴냈다. 이 작품은 그의 첫 장편이다. 문학적 엄숙주의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재기발랄하고 대중적인 글쓰기를 선보이는 작가는 이번 장편에서는 골수 야구팬이었던 평범한 30대 회사원의 야구 성공기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선보인다. 처음에는 사회인 야구단에서 뛰기 시작한 주인공은 프로야구 2군, 1군을 거쳐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까지 진출한다. 상사의 압박과 매일 일에 치여 살며 꿈을 잃고 있던 한 직장인의 기상천외한 성공기는 웃음과 함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첫 소설집에서도 야구를 소재로 한 단편을 많이 선보였던 작가는 국내 최초 문인야구단 ‘구인회’의 창단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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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똥글똥글’ 똥그란 밥상… 발랄한 동시 60편

    ◇염소 똥은 똥그랗다/문인수 지음/112쪽·8500원·문학동네“염소가 맴맴 풀밭을 돈다//말뚝에 대고 그려 내는 똥그란 밥상,/풀 뜯다 말고 또 먼 산 보는 똥그란 눈,/똥그랗게 지는 해//오늘 하루도 맴맴 먹고 똥글똥글/똥글똥글 염소똥”(‘염소 똥은 똥그랗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연이나 사물을 소재로 천진하고 발랄한 상상이 뻗어나가는 동시들이 모였다. 이 동시집은 미당문학상을 받은 문인수 시인이 처음으로 쓴 동시 60여 편을 모은 것이다. 동심의 세계에 가 닿은 시인의 시심은 세심하면서도 그윽하다. 초등학교 시절 써내서 담임에게 큰 칭찬을 받았던 시 ‘흰 구름’을 새롭게 쓴 동시도 있다. “구름은 산 너머 너머에서 온다/산속 가난한 마을을 뭉게뭉게 살펴보다가/제 근심만 뭉게뭉게 잔뜩 더 부풀어/구름은 산 너머 너머로 간다”(‘흰 구름은 뭉게뭉게 근심만 부푼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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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회 독특한 품앗이 ‘부조’ 어떻게 변해왔나

    1970년대 농촌선 쌀-감주 오가미풍양속서 실리적 측면 변질‘받은만큼 부조’ 풍조 비판론도흉사(凶事), 길사(吉事)에 주고받는 부조(扶助)는 한국사회의 오래된 품앗이 문화다. 현대 한국인들은 돈, 재물을 보내 축하나 애도를 표하는 부조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조문화가 전통사회에서부터 지금 같은 방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부조문화의 변천사를 15세기부터 규명한 논문이 나왔다. 박동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이 최근 열린 실천민속학회 전국학술대회를 통해 발표한 ‘미풍양속으로서 부조문화의 전통과 변화’다. 박 연구원은 이 논문에서 한국사회의 부조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통시적으로 분석했다. ‘조선왕조실록’(태조∼철종), ‘고종실록’, ‘순종실록’, 문사들의 개인 문집 등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전기의 부조는 현대의 양상과 많이 달랐다. 부조는 주로 상례(喪禮) 등 흉사에 한해 이뤄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조, 세종 등이 ‘부조를 내리는 관례’에 따라 죽은 신하의 유족에게 부조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17세기 문신 신흠의 시문집 ‘상촌집(象村集·1630년)’ 기록을 보면 이런 전통이 17세기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은 일찍이 청강공의 초상 때 들어온 부조금 중에서 상사에 쓰고 남은 돈을 증식하여 백형인 정자공의 두 아들을 결혼시켰다.” 조선시대 부조품은 현물보다는 의례에 필요한 물품 위주로 이뤄졌다. 쌀, 콩, 기름 등의 음식이나 관(棺) 등이 권장 부조물품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1426년 쓰시마(對馬) 섬 태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상례를 슬피 여겨 조미 100석, 콩 50석, 종이 200권, 백세면주 백세저포 각 10필과 곶감 50첩, 잣 3석, 대추·밤 각 2석을 부조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사람을 보내 상례를 도와주는 몸 부조도 빈번했다. 하지만 18세기에 접어들면서 현금 부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금 부조 사례가 처음 확인된 것은 숙종 때 역관 홍우재가 쓴 통신사 일기 ‘동사록(東사錄·1682년)’에서. 18세기 후반 정약용 역시 상사에 1000전을 부조했다는 사실을 ‘다산시문집’에 기록했다. 이 같은 부조문화가 흉사에 그치지 않고 혼례, 돌잔치 등 길사로 확대되고 금반지, 현금 등이 보편화된 것은 20세기 중후반 들어서면서부터. 경북 청송군 홍미자 씨의 1977년 혼례 부조기를 보면 농촌지역에서는 아직 의례에 필요한 쌀, 감주 등의 물품이 부조품으로 오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전화송금, 계좌이체 등이 가능해지며 현금 부조가 빠른 속도도 광범위해졌다. 이에 대해 박 연구원은 “미풍양속이나 예절의 일환이었던 부조문화가 실리 행위의 일종으로 변모한 것”으로 해석했다. 박 연구원은 한국 부조문화의 실리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도 내놓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신이 부조 받은 횟수에 맞춰 부조하는 행위. 이미 17세기 초 문신 장현광은 시문집 ‘여헌집(旅軒集)’에서 이 같은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박 연구원은 “전통사회 때부터 이어져 온 한국의 미풍양속 부조문화가 최근 체면문화, 과시문화와 결합되며 일종의 ‘세금 고지서’로 여겨질 만큼 의미가 크게 바뀌게 됐다”고 지적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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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의 가슴에 꽂힌 이 영화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화양연화’(2000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화 제목과 같은 이름의 시가 있다는 것이다. 이병률, 권혁웅 시인이 각각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시들이다. 이병률 시인은 ‘화양연화’에 대해 “나에게 이 영화는 그림이며 음악이며 사진이며 여행이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걸 거느리며 여전히 아직도 내 깊숙한 힘줄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영화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근 나온 계간 ‘시인세계’ 봄호가 ‘내 시 속에 들어온 영화’를 기획특집으로 꾸몄다. 유안진, 마광수, 김영승, 박주택, 정끝별, 이병률 씨 등 시인 16명의 글을 수록했다.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에비타’를 바탕으로 ‘탱고 탱고, 탱고를 위하여’를 쓴 유안진 시인은 “영화는 때로 직접체험 이상이다”라고 말한다. 정끝별 시인은 프랑스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의 한 장면을 같은 이름의 시 속으로 끌어들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무작정 찾아 나선 어린 두 남매의 여정을 그린 이 영화에서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온몸으로 자욱한 안개 속을 헤쳐 나갔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시 속에 애절하게 묻어난다. “깜깜한 식솔들을 이 가지 저 가지에 달고/아버진 이 안개 속을 어떻게 건너셨어요?/닿는 것들마다 처벅처벅 삭아내리는/이 어리굴젓 속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김영승 시인은 특정한 영화가 아니라 어린 시절 즐겨 봤던 검객 영화를 떠올리며 시를 썼다. 검객 영화에 등장하는 호연한 무림의 고수에게 자신을 투영한 ‘반성 173’.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오욕과 근심을 “함부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영화 속) 천하제일의 검객”에 빗대는 것으로 달랜다. “어릴 때 본 검객 영화를 생각한다/악당들이 미리 칼을 뽑고 삥 둘러싸도/주인공은 태연하다…악당들의 쫄개들이 하도 찝쩍대면/할 수 없이 젓가락을 집어던지는/그리하여 악당들의 눈에 가서 팍팍팍 박히게 하는…할 수 없이 술을 마시다가/할 수 없이 칼을 뽑는/정말 할 수 없는 그 주인공을 생각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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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위, 문예단체에 ‘불법시위 불참 확인서’ 요구 논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기금 집행을 앞두고 일부 문예단체에 ‘불법 폭력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한 것에 한국작가회의가 8일 반발하고 나섰다. 예술위는 1월 19일 한국작가회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대구지부에 문예진흥기금 지원 조건으로 “불법 시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으며 향후 불법 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을 반환할 것”이라는 확인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가 2008년 불법 폭력시위 단체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최일남)는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용강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작가회의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불법 폭력시위를 한 적이 없다”며 “예술위가 이번 사태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문학적 대응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위의 박두현 지원컨설팅부장은 “불법 폭력시위 단체나 그에 적극 가담한 단체에 예산집행을 제한하게 한 기획재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확인서를 제출해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당초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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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1964년 도쿄올림픽 테러에 떨다

    ◇올림픽의 몸값/오쿠다 히데오 지음·양윤옥 옮김/472쪽, 468쪽·각 권 1만3000원·은행나무‘남쪽으로 튀어’ ‘공중 그네’ 등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올림픽의 몸값’은 여러 면에서 복고적인 소설이다. 우선은 시대 배경이 그렇다. 때는 1964년 올림픽 개막을 앞둔 도쿄. 전후 새롭게 건설된 지 20년도 되지 않은 도쿄에는 앞으로 이 도시의 상징이 될 거대한 건물들이 한창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요요기 종합체육관이 지붕부터 위용을 드러내고 있고 고속열차가 다니기 시작하며 젊은 여성들은 비틀스에 열광한다. 스무 해 남짓한 청춘기에 접어든 도쿄는 그해 여름 덮쳐온 미증유의 폭염 못지않게 올림픽이란 거대한 축제의 열기로 들끓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이 도시 곳곳에서 방화, 폭발 테러가 일어난다. “나는 도쿄 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것이다. 며칠 안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요구는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라는 편지가 중앙 경시총감 앞으로 배달된 지 며칠 후부터다. 처음 이 편지를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했던 경찰과 공안국은 비상 상태에 돌입한다. 무엇보다 언론에 이 사건이 새나가지 않도록 보안에 만전을 기하며 범인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만약 보도가 된다면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일본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범죄 현장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스릴러의 형식을 갖췄지만, 예상과 달리 범인이 누구인지는 1권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윤곽이 드러난다. 아키타의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으나 영화배우 못지않은 외모와 천재성으로 도쿄대 경제학부에 진학해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시마자키 구니오다. 그는 도쿄 올림픽을 볼모로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 만약 그것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개막식 당일 행사장 한 곳을 폭파하겠다고 협박한다. 그야말로 ‘올림픽의 몸값’을 내놓으라는 당돌한 요구다. 문제는 그가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 사연이다. 몇 가지 단서가 등장한다. 구니오는 마르크스를 전공한 하마다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 중이라는 사실. 건설 현장의 노동자로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며 번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했던 큰형이 병사했다는 것. 막 호황기로 접어든 도쿄는 나날이 번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향 아키타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과 가난에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 마치 아주 다른 나라의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격차에 분노한 구니오는 실질적인, 하지만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기로 결심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주제 면에서 이 소설은 또 한번 복고적이다. 전후 일본에서 본격화된 산업자본주의의 불평등과 빈부격차 문제, 마르크스주의에 혼을 빼앗긴 청년들의 좌익테러운동 등이 ‘올림픽 몸값’을 요구하는 허무맹랑한 폭탄범들의 이면에 있기 때문이다. 구니오 외에도 소설에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올림픽 개막식 경비를 총괄하는 경시감의 철없는 막내아들이자 방송국 예능 PD인 스가 다다시, 경시청 수사과의 형사이자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폭탄범 추격에 뛰어든 오치아이 마사오, 도쿄대 앞 헌책방집 딸로 비틀스에 열광하는 고바야시 요시코 등이다. 등장인물의 각양각색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서사의 폭은 넓혔지만 범행 동기, 결말 등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단순하다. 쉽고 가볍게 읽히는 이유다. 2권은 2월 둘째 주 중 출간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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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다시 태어난 신드바드… 알라딘… 알리바바…

    ◇천일야화1∼6/앙투안 갈랑 엮음·임호경 옮김/296∼384쪽·각 권 9800원·열린책들‘바다 사나이 신드바드’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 ‘알리바바와 마흔 명의 도적’…. 이 유명한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 아랍의 고전 ‘천일야화’다. 아랍 세계에서조차 뿔뿔이 흩어져 내려오던 이 이야기의 모음집을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엮어 1704년 서방세계에 소개한 사람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앙투안 갈랑이었다. 당시 유럽의 여러 식자들을 매혹시키고 자극을 안겨줬던 ‘천일야화’가 총 6권으로 완역돼 나왔다. 국내에 주로 ‘아라비안나이트’로 알려져 있는 리처드 버턴의 1885년 영역판 역시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바탕으로 번안, 각색한 내용이다. 외설적이거나 잔인한 내용,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 첨가된 ‘천일야화’의 여러 이본(異本)과 달리 이 책은 아랍 민중의 건강한 해학과 풍자를 담아냈다. 존 테니얼 등 1850년대 유명 삽화가들이 그렸던 관련 삽화 200여 점이 함께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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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생태계를 살린 늑대들

    ◇늑대가 돌아왔다/진 크레이그헤드 조지 지음/웬델 마이너 그림·최순희 옮김/32쪽·9800원·다산기획1920년대 미국은 국립공원을 비롯한 산과 숲에서 늑대를 없애기로 결정한다. 가축이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마찬가지였다. 관리자들은 산림감시원과 사냥꾼, 목장주인들에게 늑대가 보이는 대로 쏘아 죽이라고 했다. 48주가 지난 뒤 미국에서 늑대는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포식자인 늑대가 사라지자 엘크, 들소, 산양 같은 초식동물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은 풀과 꽃을 먹어치우고 어린 나무를 짓밟았다. 그러자 작은 새, 동물들도 살 수 없게 됐다. 나무가 사라지자 냇가의 흙이 쓸려가고, 다른 생물도 살 수 없게 됐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게 된 사람들은 1995년, 70여 년 만에 다시 캐나다산 늑대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들여놓는다. 늑대가 돌아오자 생태계는 제 모습을 찾아간다. 삽화와 함께 늑대가 돌아오며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공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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