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북한이 끝내 벼랑 끝 ‘강대강(强對强) 전술’을 선택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단결된 압박, 한미일 3국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굳건한 대북 공조로 수세에 몰린 북한이 ‘정부 성명’이란 최고 권위의 발표 형식을 통해 “유엔 결의를 전면 배격한다”는 김정은의 의중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북한이 공개적인 대결 카드를 집어 들면서 조만간 6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8말(末) 9초(初) 위기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리용호 외무상 등 북한 대표단은 중국, 러시아 등과 연쇄회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국면 전환을 노렸지만 국제적 압박의 칼끝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北 “美에 천백 배로 결산할 것” 북한은 7일 오후 3시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제재 결의(2371호)를 전면 배격한다”며 “우리 국가와 인민을 상대로 저지르고 있는 미국의 극악한 범죄의 대가를 천백 배로 결산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가 나온 지 하루 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에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가하겠다”고 통화한 지 6시간 만에 북한의 공식 대응이 나온 것이다. 북한은 1993년 이후 7번째인 ‘정부 성명’이란 중대발표 형식을 통해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외길을 택했다. 성명은 “단호한 정의의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든가 “그 어떤 최후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사할 것”이라며 추가 도발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을 계속 몰아붙였다. 한미일 외교장관은 이날 ARF에서 만나 “지속적인 대북제재 강화를 통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압박함으로써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대화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내고 “안보리 제재 결의가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안정을 유지하고, 비핵화 과정을 추진하며 국제 핵무기 확산을 방지한다는 목표에 부합한다”며 북한을 외면했다. ARF 회원국들은 이르면 8일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이행을 촉구하는 공동성명 채택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8말 9초 위기설 현실로?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북한의 향후 추가 도발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됐다. 21일로 예정된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과 다음 달 9일 북한 정권수립일 전후 도발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두 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쏜 북한이 이번에는 6차 핵실험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도발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ARF 기간 내내 극도로 말을 아끼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7일 오후 본회의에서 도발의 민낯을 드러냈다. 리 외무상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케트를 협상탁(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 도발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8쪽에 걸쳐 준비해 온 연설문을 읽은 리 외무상은 “우리가 선택한 핵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핵보유국들은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받은 일이 없지만 핵을 못 가진 그라나다 파나마 아이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등은 미국의 군사적 침공을 받아 정권 교체를 당했다”고도 했다. 리 외무상은 이어 “우리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 대륙간탄도로케트(미사일) 보유국”이라며 “미국의 반공화국 군사행동에 가담하지 않는 한 미국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핵미사일을 오로지 미국만 겨냥하겠다는 것으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오후 북한 측의 기자회견 계획 소식이 알려지자 리 외무상 숙소인 뉴월드 마닐라베이호텔은 회견 시작 2시간 전부터 2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ARF 연설을 마치고 리 외무상이 도착하자 현지 경찰이 서서 지키던 포토라인마저 와르르 무너졌다. 리 외무상의 연설에 대해 참석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황인찬 hic@donga.com / 마닐라=신나리 / 김수연 기자 ● 북한 ‘정부 성명’정확한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성명’이다. 북한의 여러 발표 형식 중 최고 수준의 권위와 무게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시작으로 역사적인 변곡점마다 정부 성명 형식을 통해 입장을 내놨다. 7일 나온 성명은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이후 1년 7개월 만이자 역대 북한의 7번째 정부 성명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전화 통화를 하고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통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포기를 이끌어내자는 데 공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도발 후 열흘 만이자, 북한 연간 수출의 3분의 1 수준(10억5000만 달러)을 봉쇄하는 내용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 하루 만에 이뤄진 두 정상의 통화는 56분간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등 확고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힘의 우위에 기반한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을 핵 폐기를 위한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자”고 말했다. 또 “결의안에 원유 공급 중단 조치가 빠진 것은 아쉽다”면서 “(압박이) 북한이 견딜 수 없는 순간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도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자체 방어력 증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미사일 탄두 중량 확대와 함께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 언급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북 방위력 증강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좋다(very good)”며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도 통화를 하고 북핵 폐기를 위한 공동 대응에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미 정상 통화 후 6시간 만에 ‘공화국 정부 성명’을 내고 “우리 국가와 인민을 상대로 저지르고 있는 미국의 극악한 범죄 대가를 천백 배로 결산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국가 핵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단호한 ‘정의의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조만간 6차 핵실험 및 국지적 도발을 예고했다. 필리핀 마닐라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청산 없이는 핵 협상도 없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북한이 유엔 및 국제사회의 제재에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북핵 해법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이른바 ‘8말(末) 9초(初) 위기설’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지금은 북한과 대화를 할 때가 아니다”라면서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음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며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만큼 궁극적으로는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평화적 외교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가하되 선제타격론이나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날 언급한 대북 ‘예방전쟁론’에는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ARF 회의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미사일 도발을 멈춰야 한다”고 했지만 북한이 대화에 나설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폭스뉴스에서 “북한은 우리가 더는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마닐라=신나리 기자}

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선 첫날부터 한미, 한중, 북-중, 미중 등 숨 가쁜 양자회담이 이어졌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일치된 의견으로 낸 공동성명과 그 직후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 2371호까지 표면적으로 북한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형국이다. 얼마 전까지 국제사회의 북핵 패러다임 구도였던 ‘북중러 대 한미일’ 대결구도조차 흔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나라별로 들어가면 북핵 해법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어 이를 조정해낼 외교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개최지인 필리핀 마닐라에서 6일 만나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한미 안보태세 확립을 강조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지 9시간 만이었다. 양국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김정은 지하 벙커 타격 등 대북 군사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을 조속히 개시하기로 했다. 한 당국자는 “구체적으로 시기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지침을 개정하자고 한미 양국이 발표한 만큼 관심을 갖고 협력해 나가자는 데 두 장관이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틸러슨 장관은 또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 ‘implement(이행하다)’라는 표현 대신 ‘enforce(집행)’라는 단어를 쓰며 강력한 집행 의지를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위급 인사가 대북 제재안과 관련해 공식석상에서 비외교적 표현인 ‘enforce’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석유회사 엑손모빌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외교 문외한’이었던 그는 2월 취임 후 각종 한미 회의에서 주로 ‘청취자 모드’였지만, 이날은 적극적으로 강 장관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북한과 대화를 나누길 원한다”고 밝혔다가 백악관이 반박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른 틸러슨 장관은 이날 회담에선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신중한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을 만나 “틸러슨 장관에게 안보리 결의가 성공적으로 채택되는 데 긴밀히 협의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중국과 러시아의 동참을 이끄는 과정에서 겪은 ‘밀고 당기기’ 에피소드와 소회를 전한 뒤 “단순히 (각국에 제재안 실행을) 맡기는 게 아니라 이행 상황을 모니터하고 필요하면 이행 확보를 위한 추가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배석한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틸러슨 장관은 어떤 대북 선언이나 정책적 발표보다는 일단 북한의 도발을 끊는 게 중요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 행동 마련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또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강력한 한미일 동맹에서 나온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틸러슨 장관은 “한미일 동맹이 바위처럼 단단할 때(rock solid) 중국과 러시아도 오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중국과 러시아를 어떻게 대북제재에 동참시킬지 한미 외교장관이 상당 시간을 할애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가 구체적으로 (대북) 대화조건을 합의하거나 어떤 일정에 따라 협의하자고 한 부분은 없지만 적어도 최근 긴장된 (한반도)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관련자들이 인식할 정도의 상황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마닐라=신나리 journari@donga.com / 황인찬 기자}
국제사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채택 직후 열린 첫 국제 외교 행사인 필리핀 마닐라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일제히 북한 압박에 나섰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연쇄 도발 뒤 첫 외교 무대에 나선 북한 정부 대표단은 예년보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 사면초가에 몰렸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6일 마닐라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왕 부장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 측에 ‘앞으로는 추가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 탄도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왕 부장은 이어 “현재 한반도 정세는 이미 위험한 임계점에 도달했으며 동시에 결단하고 담판을 회복할 전환점”이라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관련 당사국에 냉정하게 형세를 판단하고 자제를 유지하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왕 부장은 또 이날 열린 ARF 후 기자들과 만나 “누가 안보리 결의의 각 항목을 집행하는가? 실제로 중국이 집행하는 것이다. 누가 이 방면에서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중국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확고한 이행 의지를 강조했다. 이에 앞서 아세안 10개국 외교장관들은 5일 이례적으로 북한 관련 공동성명을 내고 “북한이 즉각 유엔 안보리의 관련 결의들을 전적으로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왕 부장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 후 중국 기자들과 만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우리는 최대한 빨리 이 장애물을 치우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의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 하지만 한국의 안보는 중국의 안보 불안의 기초 위에 세워질 수 없다”고 강 장관에게 얘기했다고 밝혔다. 리용호 외무상은 왕 부장과의 회담에서 핵 개발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장은 “북한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관심이 크지 않은 듯하다”고 전했다.마닐라=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고립무원(孤立無援).’ 북한의 올해 상황은 지난해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때보다 훨씬 외롭고 고독하다. 연출 논란이 있었어도 라오스에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숙소에 머무는 등 친밀함이라도 과시했었다. 하지만 올해 필리핀 마닐라 ARF에선 중국 등 믿었던 아군마저 유엔 새 대북제재 결의안에 도장을 찍은 채 마주해야만 했다. 잇따른 도발로 북한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6일 오전 마닐라에 도착한 리 외무상을 공항에서 맞이하는 인원은 단출했다. 필리핀은 라오스와 달리 북한대사관이 없다. 취재진의 눈을 피해 VIP 통로로 나온 리 외무상은 현지 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숙소인 뉴월드 마닐라베이 호텔에 도착해서야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 외무상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움직였고 그를 보좌한 방광혁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 부국장이 대변인을 자처하며 남북 외교장관회담 가능성에 대해 “만날 계획 없습네다”라고 답했다. 리 외무상은 북한 입장 발표 시기와 방향을 묻는 질문에 “기다리라”고만 했다. 북-중 외교장관회담은 이날 오후 1시간 10분 정도 진행됐다. 리 외무상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거듭 표명하고 지금 중국과 소통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에 대한 ‘SOS’ 요청이자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왕 부장은 리 외무상에게 “한반도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해 북-중관계 역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연쇄 도발로 중국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리 외무상이 이번 회의에 참석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회원국들이 말하는지 청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의견 교류는 매우 의미 있다. 북한이 마지막엔 올바르고 지혜로운 결단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이날 오후 열린 환영만찬에 가벼운 미소를 띤 채 주로 정면을 응시했다. 리 외무상은 당초 중국과 캄보디아 외교장관 사이에 앉기로 돼 있었으나 정작 스위스와 우호국인 캄보디아 사이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리 외무상과 21칸 떨어진 곳에 앉았다. 험난한 남북관계만큼이나 먼 거리였다. 아세안 외교장관들까지 작심하고 대(對)북한 성명을 낸 가운데 리 외무상은 다른 외교장관과 어울리지 못해 유령 노릇을 했던 ‘라오스 비엔티안 왕따’의 악몽을 또다시 경험할 처지에 놓였다. 마닐라=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한국의 대화 제의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했다”며 북-중 회담 내용을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귀띔했다. 하지만 이날 회담은 역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싸고 냉랭한 기류가 전반적으로 이어졌다. 왕 부장은 모두발언에서부터 “서두르게 사드 배치를 결정한 문재인 정부가 개선되고 있는 양자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찬물을 끼얹었다고 표현하면서 손바닥을 펼쳐 어딘가를 덮는 듯한 위압적인 포즈도 취했다. 이에 강 장관은 “국민의 우려와 걱정이 심화된 가운데 문 대통령께서 방어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받아쳤다 강 장관은 회담 후 취재진에 “기존 입장을 거듭 주장하는 중국에 사드 추가 배치를 하게 된 배경을 조목조목 설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왕 부장도 “이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문제로 양국 관계의 정상적인 발전에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영향을 준다”며 “안보와 관련한 한국의 관심사가 중국의 불안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심지어 왕 부장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가담하는 것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도발적인 질문도 했다. 왕 부장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사드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막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내 생각에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매우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사드를 배치했는가’라는 데 대해 많은 의문점을 품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 장관은 왕 부장의 사드 발언이 워낙 길게 이어지자 중국의 사드 관련 대한(對韓) 보복 중단을 요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유엔 대북제재에 전격 합의해 준 만큼 사드 이슈를 놓고 일종의 ‘대북제재 결의안 청구서’ 격으로 더 공세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회담에 배석한 관계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0월 열리는 19차 당 대회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사드와 관련해 메시지의 강도를 더 높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마닐라=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해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는 초강력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제재안이 제대로 이행될 경우 북한의 한 해 수출액의 3분의 1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안보리는 5일(현지 시간)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석탄, 철, 철광석, 납, 연광석, 수산물 등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신규 노동자 해외 송출을 막는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15개국 전원의 찬성으로 의결했다. 또 결의를 위반한 북한 선박의 입항과 북한과의 신규 합작사업 및 투자를 금지했고, 북한 외환을 관리하는 조선대외무역은행을 비롯해 금융기관 4곳과 개인 9명을 제재 명단에 포함시켰다.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로 평가받는 이번 조치로 북한의 연간 수출액(28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인 10억5000만 달러(약 1조1800억 원)의 외화 유입이 차단될 것으로 유엔은 전망했다. 다만 미국이 강력히 요구했던 ‘원유 공급 금지’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결의에서 빠졌다. 기존 40여 개국에 파견된 북한 해외 노동자 5만∼10만여 명도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제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됐다. 제재의 키를 쥔 중국이 과거처럼 이행에 비협조적일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와 관련해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은 “과거에도 중국은 안보리 제재를 이행하겠다고 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 되돌아가는 패턴을 보였다. 이러한 오락가락 행보를 보게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휴가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북제재 결의 채택 직후 트위터에 “(북한) 경제에 매우 큰 충격이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고,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북한 정권에 대한 단일 제재로는 가장 광범위한 경제 제재 패키지”라고 강조했다. 우리 외교부도 성명에서 “북한의 외화 획득 채널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 반면 북한 노동신문은 6일 대북제재 결의 채택 직전 낸 논평에서 “미국이 핵 방망이와 제재 몽둥이를 휘두르며 우리 국가를 감히 건드리는 날에는 본토가 상상할 수 없는 불바다 속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미 백악관의 안보사령탑인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그는 5일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예방전쟁을 말하느냐”고 확인한 뒤 “물론이다. 우리는 모든 옵션을 제공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군사 옵션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마닐라=신나리 기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도발 이후 한반도 안보지형이 살얼음판을 걷는 모습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추가 미사일 발사나 핵탄두 소형화를 입증하기 위한 6차 핵실험 또는 국지 도발 등에 나설 것이라는 ‘8말(末) 9초(初)’ 위기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21일부터 연합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에 들어가고, 다음 달 9일은 북한의 정권수립일이다. 한 정보 소식통은 4일 “북한은 한미 연합 훈련 기간이나 정권수립일 전후 자주 도발을 해온 만큼 화성-14형 도발의 효과를 이어갈 수 있는 시기로 이달 말과 다음 달 초를 상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이 조만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 싱크탱크 국가이익센터(CFTNI)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4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한 국방부 관료가 최근 익명을 전제로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을 마무리짓고 있으며, 6∼18개월 안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들도 “아슬아슬하다”는 말로 현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기류가 일관성이 부족해 김정은이 도발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나라와 러시아, 이란을 목표로 한 제재법안이 (미국에서) 채택된 데 대해 국제적 반발이 크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면서 추가 도발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새로운 대북 제재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3일 “미국이 유엔의 강력한 추가 대북 제재를 위한 대화를 15개국으로 곧 확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침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4일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안보리 대북 결의를 전면적이고 엄격하게 계속 집행하겠다”고 밝혀 미중이 합의에 이르렀다는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미국의 북한·러시아·이란제재법 통과에 거듭 불만을 표출하고 나선 러시아를 설득하는 게 변수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지난달 30일 “새로운 대북 제재에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것이 진정한 시험(true test)”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의 발언과는 달리 실제로 중국이 원유 수입 제한 등 핵심 대북 제재안을 놓고서는 여전히 미국과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은 여전히 몇몇 조건에 난색을 표하는 걸로 안다”고 했다. 설령 미중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안에 합의하더라도 김정은이 반발해 추가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은 과거에도 핵실험 등에 대한 유엔 결의안 채택에 반발해 ‘맞불 도발’을 해 왔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개막하는 필리핀 마닐라에도 세계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안보협의체다. 4일 필리핀 국제회의장(PICC) 주변은 주말에 열리는 회의에 맞춰 모여든 각국 당국자들과 취재진으로 분주한 모양새다. 현지에선 리용호 외무상이 이끄는 북한 정부 대표단이 6일 입국을 앞두고 급하게 호텔을 바꾼 것 아니냐는 등 각종 정보가 급박하게 오가고 있다. 이번 ARF에선 27개 회원국이 모두 참석하는 7일 본회의에서 북핵 문제를 의제로 관련국들이 정면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의 ARF 회원 자격 정지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대북 압박정책에 동조해 달라고 촉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핵무기와 ICBM 개발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신진우 niceshin@donga.com / 마닐라=신나리 / 뉴욕=박용 특파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도발 후 한국 외교도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 외교안보 수장들의 태도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화성-14형’을 발사한 지난달 28일 장관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 태스크포스(TF) 관계자들과 격려 회식을 계획했다가 임박해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장관 측은 “회식은 이전 주에 계획했던 것이고 (북한의 도발이 예상된) 엄중한 시기에 회식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26일 장관이 취소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이후부터 북한의 도발 징후가 잇따라 포착됐고 6·25전쟁 정전협정일인 27일 도발이 예상됐는데도 회식을 구상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화성-14형 2차 도발 1시간 20분 뒤인 29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련 사진 중 일부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빠져 있다. 정부 소식통은 “강 장관이 이날 회의에 지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강 장관 측은 “지각한 건 맞지만 1∼2분 정도였다. (강 장관은 대기하고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늦게 왔다”고 해명했다. 발사 당일 저녁 한 외교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밤에 미사일을 쏘지 않는다. (북한이) 자신들의 진전된 미사일 기술을 잘 보여주기 위해 영상이나 사진이 잘 나오는 오전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예상했던 계기일(27일)이 지나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북한의 도발은 기습적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주변 4강 대사들의 임명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부가 가장 고심하는 주미대사에는 다양한 후보가 거론되지만 당사자가 고사하거나 북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조율 등 안보와 경제 현안에 두루 능한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후문이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손효주 기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을 이어가면서 동북아 안보 정세에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폭주’가 ‘임계치’에 다가설수록 미국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미중(美中) 대결의 격화로 한국의 운신의 폭도 날로 좁아지고 있다. 군사력을 동원한 파국적 사태부터 극적인 외교적 해결 가능성까지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를 예상해 보고 한국에 미칠 파장을 짚어 본다. 》 [1] 美, 北의 핵-미사일기지 선제타격 北 보복땐 대량피해… 한국정부 동의할 리 없어북한이 핵 탑재 ICBM을 실전배치하면 미국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었다고 보고, 대북 선제타격을 ‘실행 가능한 옵션’으로 검토할 수 있다. ICBM이 미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만큼 ‘예방적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으로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제거 수순에 돌입하겠다는 것. 스텔스전폭기와 초정밀유도무기로 영변 핵시설 등 북한 전역의 핵·미사일 기지와 이동식발사차량(TEL), 지휘부를 파괴하는 내용이 거론된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더 많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동의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미국이 동맹 파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독자적 대북 선제타격 확률은 제로(0)”라고 말했다. 득보다 실이 크다는 우려도 많다. 지하에 건설된 다수의 북한 핵·미사일 기지를 모두 제거하기 힘들고 북한의 보복으로 대규모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비화돼 한국에 엄청난 인명·물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2] 대북 원유공급 차단 등 국제사회 제재 강화유엔의 현실적 액션플랜… 中-러 협조 미지수대북 원유 공급 제한을 포함한 유엔 제재결의안은 국제사회가 현 상황에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ICBM급 1, 2차 도발로 중국,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초강경 제재 결의안 채택에 동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원유 공급 제한을 결의안에 포함시키려고 중국, 러시아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도 “중국이 겉으론 심드렁해도 결의안 조건 등을 놓고 미국과 치열한 물밑협상을 진행 중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의 원유 공급원인 두 나라가 ‘인도적 지원’ 차원의 원유 차단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해야 일이 풀린다는 지적이 많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모든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과 개인 제재)’을 통한 독자 방식 등 지금보다 강력한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3]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한국 독자 핵개발‘공포의 균형’으로 北에 맞불… 비핵화에 역행북한이 핵미사일을 다량으로 전력화하면 남북 간 군사력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다. 한미연합군의 첨단 재래식 전력의 대북 우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한(對韓) 확장억제의 효용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유사시 미국이 자국민에 대한 핵공격의 위협을 무릅쓰고, 한반도에 군사적 개입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주한미군의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 핵개발 등 대북 핵옵션도 대안으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으로 북한 핵무기의 효용성을 반감시키는 시나리오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특정 시점까지 북핵 문제가 성과가 없으면 전술핵을 들여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 한계가 많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비핵화 목표에도 상치돼 국제적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의 핵개발은 ‘역내 핵도미노’에 대한 우려로 미국 등 주변국이 동의할 리 만무하고, 국제사회 제재 등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4] 北-美 양자대화 통한 핵동결 합의 추진‘北핵보유’ 인정하는 미봉책… 한국 방관자 전락북-미 양자 대화는 외교적 해법으로는 한국에 최악이고, 북한에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김정은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기조인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미국은 핵시설 동결 및 미사일 발사 유예 등의 조건을 걸고 북한과 양자 대화에 나설 개연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전략적 중요성보다 미국의 실리(북한 핵무기 확산 방지 등)를 앞세워 문제를 푸는 지름길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 비확산 문제 연구기관 군축협회(ACA)의 켈시 대븐포트 비확산담당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과 의회는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지원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도 양측 견해차가 커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양자대화가 성사되면 한국 정부는 대북문제의 ‘운전석’에서 밀려나 방관자로 전락할 것”이라며 “이런 기류가 감지되면 우리 정부가 그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코리아 패싱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中-러 적극적 중재로 北 다자대화 복귀中-러 ‘北의 전략적 가치’ 포기할 기색 안보여북한의 ‘경제적 목줄’을 쥔 중국, 러시아가 북한을 회유해 핵·미사일을 포기토록 하거나 미국, 한국 등이 포함된 다자 대화로 복귀시키는 시나리오다. 한국으로선 최선의 방안이다. 국제사회의 대북공조를 유지하면서 대화 재개를 통한 현 정부 대북정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자산’인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어서다. 권영세 전 주중대사는 “북한의 잇단 ICBM급 도발 이후 두 나라의 태도를 보라. 달라진 게 있느냐”며 “김정은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인 국제사회의 분열을 보며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중국이 북한을 우습게 보고 있는데 오판”이라며 “무릎 위에 올려놓은 애완견(북한)은 관리가 가능하지만 미친개가 되면 언제 물지 모른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에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중국에도 이득이라는 것이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진우·신나리 기자}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의 주체인 박근혜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 등을 정조준하는 외교부 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31일 공식 출범했다. 연내 최종 보고서 도출을 목표로 한 TF의 결론이 이전 정부의 결정을 뒤집고 위안부 합의 재협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오태규 TF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조사 과정에서 필요한 관계자는 소속이 어디든 모두 면담하겠다”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해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과거 정부 청와대 관계자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에게 의견을 청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 과정 당시 청와대 내부 논의 내용도 검토 대상이다. 오 위원장은 “문서의 소재지가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모든 걸 검토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 및 국제정치, 국제법, 인권 문제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간위원과 외교부 관계자 등 총 9명의 TF위원은 법 절차를 준수하는 틀 안에서 외교문서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TF의 ‘성역 없는’ 검증작업은 사실상 2015년 12월 28일 합의가 타결되기 전까지 청와대와 외교당국이 일본 정부와 벌인 고위급·실무급 합의 과정 전반을 겨누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내겠다는 10억 엔의 책정 배경, 합의문의 문안 조율, 이면합의 존재 등이 주요 쟁점이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7일 인사청문회에서 “위안부 합의에서 ‘불가역적·최종적 합의’라는 단어는 군사적 합의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외교부의) 책임을 추궁할 부분이 있다면 추궁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TF 출범이 반드시 위안부 합의 파기로 연결되는 조치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사실관계를 샅샅이 살펴본 뒤 문제점이 나오면 문재인 정부가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방향’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취할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오 위원장도 “이번 합의는 피해자들이 수의 문제를 떠나 질적으로 상당히 반발하고 있다”며 합의에 피해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투영됐는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위안부 합의 TF는 이날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첫 회의를 열고 운영 방안과 향후 계획을 논의했다. TF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처음 인정한 1993년 고노담화 발표에 대한 일본 외무성의 검증 활동과 보고서를 주요 참고자료로 삼을 방침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화성-14형 2차 도발 다음 날인 2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우리의 독자적 대북제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길 바란다”고 주문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개성공단 폐쇄도 1년 5개월째,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남북 교역을 전면 중단한 5·24조치까지 취한 상태라 우리 수중에 남은 독자 제재 카드가 마땅치 않다. 정부가 독자 제재안을 실무 검토하고 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외교부 당국자도 “독자 조치를 취한다면 한미, 한미일 공조라는 틀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 당장 말할 것은 없지만 독자적 제재 방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며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자 제재를 해야겠는데 뾰족한 수가 현재로선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는 외국을 통한 우회 제재를 제안하기도 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해외의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의 80%가 북한의 핵개발 자금으로 쓰이는 만큼 인권 착취라는 관점에서 외국의 협조를 구하거나 중국산으로 위장된 북한산 농산물 경공업제품의 수입을 제한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 상황에서도 ‘베를린 구상’에서 밝힌 대북 대화 기조는 포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 고위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국면으로 압박과 제재를 최대 강도로 높이고 있지만 결국 탈출구로서의 남북 간 대화라는 부분은 살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고 독자적 제재까지 마련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혔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4대강 사업에 대한 네 번째 정책감사를 진행 중인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 과정을 집중 감사하는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2010년 첫 감사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던 기존 감사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의 경제적 효율성과 현실성을 미리 점검하는 제도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감사원은 이달 중순경 기획재정부로부터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당시 일련의 자료들을 대거 확보했다. 기재부는 4대강 사업이 검토되던 2009년 3월 ‘재해예방 지원을 목적으로 시급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는 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에 추가하도록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를 둘러싸고 사실상 4대강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생략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22조 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은 핵심인 보의 설치, 준설사업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진행됐다. 감사원은 또 4대강 사업의 세부계획 수립과 설계 등 절차적인 부분에 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첫 번째 감사에 참여했던 전 감사관들도 조사했다. 이들은 조사에서 “감사 발표 직전 선고된 법원의 1심 판결을 근거로 환경영향평가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2015년 12월 국민소송단이 4대강 사업의 위법성을 가려달라며 낸 행정소송 상고심에서 “예비타당성조사는 사업과는 별도로 예산편성을 위한 절차일 뿐”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관계 부처들에 탈법·편법을 지시하는 식으로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들여다볼 계획이다. 특히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및 정권 윗선의 비정상적인 개입은 없었는지 등을 관계자들에게 추궁할 방침이다. 감사원 주변에선 최근 문재인 정부의 개헌 논의 과정에서 감사원의 소속·기능에 대한 개편 논의가 이뤄지는 만큼 이번 4대강 감사 결과에 감사원이 조직의 사활을 걸었다는 말도 들린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차원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얼마만큼 이끌어내느냐가 감사원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 실제로 감사원 국토·해양감사국을 주축으로 100명에 달하는 감사팀의 일부 감사관들은 1주일에 사흘씩 세종시에 내려가 관련 자료를 수집해오는 등 감사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최근 테러 및 안전사고가 잇따른 영국 런던이 여행경보 첫 단계인 ‘여행 유의’ 구역(1단계 남색경보)으로 설정된다. 외교부는 이르면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에 발표할 ‘해외여행 안전정보’에 이 같은 사항을 반영할 예정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인 런던이 여행경보 지역으로 분류되는 것은 2005년 7월 지하철·버스 테러로 52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12년 만이다. 여행 유의 구역은 여행 자제(2단계 황색경보), 철수 권고(3단계 적색경보)와 함께 권고 사항이지만 상황에 따라 경보 단계가 2, 3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최종 단계인 여행금지구역(4단계 흑색경보)은 여행할 경우 여권법에 따라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 원에 처해질 수 있다. 런던은 올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3월 22일 런던 의사당 인근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테러로 6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을 입었고 지난달 3일에는 시내 중심부인 런던브리지 일대에서 차량·흉기 테러로 6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다쳤다. 이미 미국과 일본, 호주, 아랍에미리트가 런던브리지 테러 후 런던을 여행경보 지역으로 분류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신민경 인턴기자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빅 이벤트 볼 준비들 하쇼.” 올 4월 13일 새벽잠을 깨우는 북한 당국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묻지 마 초청’으로 평양에 들어간 외신 기자 200여 명이 뜬눈으로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다. 당시 4월은 15일 태양절(김일성 탄생일)부터 조선인민군 창건 85주년(27일)까지 다양한 기념일이 몰려 있어 6차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던 시기라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며 북한을 주시했다. 하지만 큰 기대와 달리 이날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여명거리 준공식을 공개했다. 여명거리는 김정은 정권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반발하면서 평양에 조성한 신시가지로, 70층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었다. “태양절까지 ‘무조건’ 완공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공사에 박차를 가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명거리 깜짝 홍보는 ‘제재에도 끄떡없다’는 북한의 메시지였다. 북한의 상위 1%인 이른바 ‘평해튼’이 누리는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지난해 5월 워싱턴포스트(WP)가 만든 이 신조어는 경제난 속에서도 호사를 누리는 이들의 세상을 두고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뉴욕 맨해튼에 빗댄 표현이다. 평양의 이 신흥 부유층은 1인분에 48달러(약 5만4000원)짜리 1등급 쇠고기 스테이크를 썰고, 9달러(약 1만100원)짜리 아이스모카커피를 마신다. 몸매 관리를 위해 헬스클럽에서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요가도 하고, 글로벌 의류 브랜드인 자라와 H&M 옷도 즐겨 입는다. 더우면 물놀이장에서 헤엄치고, 눈이 오면 마식령 스키장을 찾는 등 철마다 즐길 레저도 다양하다. WP는 “북한에서 가난은 더 이상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평해튼의 부유층이 날씬해지기 위해 운동을 하는 와중에도 빈곤층을 포함한 나머지 99%는 식량 부족 등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화를 향유하는 북한 특권계층은 극소수에 불과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명분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정권보다 빠른 속도로 호화 시설 건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대북 제재 실효성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한 대외 홍보용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런 호화층의 삶이 북한 체제에 근본적인 불안 요인으로 김정은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반인들이 부유층을 보고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이 커지면 살인, 강도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져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2015년 12월 전북 익산 나들목 인근을 교육 비행하던 수리온 4호기의 2번 엔진이 고도 3000피트 상공에서 이상이 생겼다. 엔진 내부로 공기와 연료가 다량 유입돼 엔진에 과속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베테랑 조종사 A 씨는 침착하게 기체를 조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번 엔진의 고장을 알리는 경고등까지 들어와 1번 엔진 동력을 차단한 채 고장 난 2번 엔진으로 착륙을 시도했다. A 씨는 착륙 시 꼬리부터 닿은 기체에서 몸을 빼내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헬기는 활주로에 추락해 완전히 부서졌다.○ 황당한 사고 잇따라도 성능 개선 안 돼 수리온 4호기의 추락 사고는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해 1월(12호기)과 2월(2호기)에 비상착륙을 할 당시 원인으로 지목된 엔진 결함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기판 결함 개선을 요청받았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후속 조치 관리에 태만했던 군 당국 등 관련 기관과 업체들이 방치했던 결과다. 4호기 추락으로 손실 194억 원이 발생했고, 석 달간 수리온 운용이 전면 중단됐다. 감사원이 16일 공개한 총 256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이 같은 수리온의 주요 사고와 그 원인들이 상세히 담겨 있다. 2014년 8월에는 수리온 16호기가 프로펠러와 기체 상부 장치인 전선절단기가 부딪쳐 파손되면서 엔진이 정지됐다. 감사 당국자는 “프로펠러가 돌면서 헬기 몸통을 때리는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했다. 감사 결과 국방과학연구소가 이륙시험도 없이 지상정지 상태에서만 확인했음에도 안전하다는 KAI의 보고를 인정해 규격과 기준을 충족한다고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양산 전격 재개 결정 수리온은 지난해 8월 양산이 중단됐다. 결빙 성능시험 101개 항목 중 29개 항목이 미달됐기 때문이다. 그 뒤 10월부터 두 달 동안 감사원의 강도 높은 감사까지 받았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가 끝난 지 일주일 만인 12월 9일 장명진 방사청장은 “기존 헬기가 노후화됐고, (양산이 중단되면) 방산업체의 인력 유지 문제가 있다”며 수리온 전력화 재개를 지시했다. 비행 중 항공기 표면이 얼면 엔진 손상으로까지 이어지는 결빙 현상은 산악지대가 많은 한국에서는 자주 일어나며, 조종사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엔진의 공기흡입구 등에는 결빙이 발생했지만 방사청은 저온환경 시험을 근거로 “겨울철 운용 문제없음”으로 국방부 등에 수리온 납품 재개를 타진하는 공문을 보냈다. “저온 환경시험은 결빙 환경과 서로 달라 결빙 성능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리온 전력화 재개를 향해 방사청은 손대서는 안 될 규격도 국방기술품질원과 협의해 마음대로 고쳤다. 감사원 관계자는 “규격을 변경할 수 없는 안전 관련 사항을 일반사항으로 바꿨고, (성능시험) 적용 시점도 2018년 6월로 유예했다”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선 전력화, 후 시험’이라는 비상식적인 방침으로 조종사들의 안전은 뒷전이 됐고, 전력화된 물량의 개선비용 약 207억 원도 고스란히 정부가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탄핵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시기에 방사청이 서둘러 전력화 재개를 결정한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제조사와의 유착이나 외부 인사의 개입 의혹 등의 해소는 검찰 수사의 몫이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손효주 기자}

“아끼던 선배 법관들이 말렸어요. 당장 법관 경력에 도움은 안 되겠지만 선구자는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왠지 모를 사명감이 저를 베트남으로 이끌었습니다.” 2014년 초 ‘베트남 법원연수원 역량강화 사업’ 현지총괄책임자를 구하는 대법원의 채용공고를 처음 봤을 때 오병희 대구지법 부장판사(47·사법연수원 30기·사진)는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냈다. 2009년 정부 대표단 자격으로 민사사법 공조 조약을 체결하러 가면서 베트남과 첫 인연을 튼 그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법관 14년 차, 주변에서 경력관리가 필요하다며 만류했지만 오 부장판사는 2014년 2월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 법원연수원 역량강화 사업은 대법원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법관 교육역량을 강화하고 현지 사법부의 위상을 높이고자 용역 계약을 맺고 시작한 사업이다. 앞서 같은 사업의 일환으로 법원 연수원을 출범시켰는데 법관 교육시설이 베트남에 도입된 것은 처음이다. 오 부장판사는 올해 2월까지 3년간 베트남 현지 법관들을 상대로 한국 법제를 소개하고 법원 연수원의 운영과 관리 방법 등을 전수하고 돌아왔다. 그는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에 따라 사회규범을 규정하는 법제도도 달라진다”며 “새로운 법제도를 수용하려면 법관도 지속해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열의 있는 연수생도 많았지만 교육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공산당과 행정기관의 지침이 우선시돼 법을 통치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한국의 좋은 법제를 당장 현실화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베트남어로 쇄신)’ 이후 서구나 선진국의 좋은 법제를 수용했지만 기존의 법과 상충하는 규정들을 손질하지 못해 국민의 권리 구제는 물론 국가 운영도 매끄럽지 않은 상황이다. 오 부장판사는 베트남 최고인민법원(베트남 최고법원)과 협력해 현지 사법제도를 개선하고 입법을 지원하기도 했다. △데이터베이스화된 판례제도 △전자소송제도 △가정법원 운영안 등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법제 등을 중심으로 연수생들에게 소개했다고 전했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한 베트남은 올해 4월 기준으로 중국과 미국에 이어 한국의 무역량 3위를 차지하는 중요한 교역 파트너다. 하지만 외국인이 건물을 소유할 수 없다는 법 규정 등 베트남 법제를 잘 이해했다면 위험요소를 미리 피할 수 있음에도 분쟁이 발생해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상주하는 교민들이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오 부장판사는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세워진 법제를 연구하면 향후 통일 한국의 법제 정비에도 참고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북베트남이 통일 이후 시행착오를 겪었던 부분이 북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국의 다리가 될 후배 법관들의 많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첫 한국형 헬기 사업으로 총 1조2000여억 원을 들여 개발한 수리온이 비행 안전에 치명적인 엔진 및 기체 설계 결함 등이 있으며, 심지어 기체 내부로 빗물이 유입되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방위사업청이 이 같은 결함이 시정되지 않았는데도 지난해 12월 수리온의 전력화 재개를 전격 결정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장명진 방위사업청장과 이상명 한국형헬기사업단장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지난달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16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5년 발생한 3차례 추락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결빙 현상에 대한 성능 검사 결과 101개 항목 중 29개 항목이 기준에 미달했다는 결과에 따라 지난해 8월 양산을 중단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제조사 측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보완하겠다는 후속 조치 계획을 제출하자 방위사업청이 전력화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등 관련기관의 전력화 재개 동의를 서둘러 유도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수리온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개발에 착수해 2012년 12월부터 60여 대가 실전 배치된 뒤 잦은 사고로 논란을 일으켰다. 방위사업청이 수리온 양산 재개를 결정한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방사청 관계자들은 감사원에서 “헬기 노후화와 전력 공백 등을 고려한 조치”라고 진술했지만 구체적인 재개 사유에 대해선 입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1월 취임한 장 청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학 동기동창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독일 베를린에서 이달 6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한중 정상회담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시 북-중 관계를 “혈맹”이라고 말했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동행기자단에 밝혔지만 사실 확인 결과 시 주석이 “혈맹”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14일 드러났다. 당시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북한과 혈맹 관계를 맺어왔고 25년 전 한국과 수교를 맺어왔지만 많은 관계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 시 주석의 혈맹 발언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 발사 도발 직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터에,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북한을 각별하게 감싼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어서 관련국과 전문가들의 의구심이 많았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한중 정상회담에 배석한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확인한 결과 시 주석은 당시 정상회담에서 “과거엔 북한과 ‘선혈을 나누는 관계’였으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 측 통역관도 “(북-중은) 피로 맺어진 우의 관계였다”고 한국어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어로 선혈은 ‘피’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환추시보 사설에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언급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다. 중국과 북한의 특수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선혈’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시 주석의 입에서 ‘혈맹’이란 표현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브리핑을 근거로 대다수 언론은 북한과의 ‘혈맹’을 부각한 중국의 대북 인식을 집중 보도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시 주석이 혈맹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밝혔다. ‘혈맹’이나 ‘피로 맺어진 우의’가 비슷한 개념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2014년 류젠차오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는 “중국과 북한이 군사동맹 관계에 있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어떤 국가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 중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피로 맺어진 우의’라는 표현은 과거 북한과의 역사적 특수성을 부각할 때 자주 쓰는 수사일 뿐이란 얘기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 외교에는 혈맹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시 주석의 발언은 대북 제재에 있어서 이미 중국이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맥락이어서 청와대의 브리핑은 시 주석의 발언 취지 자체를 왜곡한 셈이 돼버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 당국자는 “(시 주석 발언의) 방점은 (북한과) 피를 나눈 관계지만 지금은 ‘변화했다’라는 뒷부분에 찍혀 있다”며 “지금은 (북-중 관계가) 더 이상 그런 긴밀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혈맹 브리핑’은 청와대의 외교안보적 무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라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중 정상회담 당시 배석한 정부 인사 중에 중국어에 능통한 인물이 없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익명의 외교 소식통은 “정확한 대국민 소통을 위해 발언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의역한 것은 큰 문제”라며 “강 장관이라도 브리핑 이후 혈맹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생각해 바로잡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신나리 jouranri@donga.com·신진우 기자 / 문예슬 인턴기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숨 가쁜 해외 순방이 마무리됐다. 양자회담과 다자외교 무대 데뷔에 대한 호평이 나왔지만 회담의 후속 조치가 대거 예정돼 있는 데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어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현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은 13일 “문 대통령께서 안보 공백을 메우고 초석을 깔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진단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소장 한기흥)가 ‘한반도 위기와 대한민국의 진로’를 주제로 개최한 제1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 강좌에서 유엔 활동 경험을 토대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 외교가 가야 할 길도 모색했다.○ “안보엔 두 번 없다…사드 조속히 완료해야” 미국 하버드대 연구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 첫 공개 강연에 나선 반 전 총장은 “제 소견은 명확하다”며 ‘조속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국내법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맹 간 안보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유예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정치적 문제나 법은 재조정할 수 있지만 안보는 한 번 안 되면 끝이다. 두 번이 없다”고 역설했다. 중국 지도부와의 공식·비공식 접촉을 통해 사드 배치 입장을 개진해 온 사실도 새롭게 공개했다. 반 전 총장은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을 튼튼하게 하는 하위 개념”이라고 언급한 뒤 “중국 최고위층과 공·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 공식 직함은 없지만 사드 문제에 대해 중국 측에 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비공식적으로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지난달 2일 ‘사드 보고 누락’ 논란으로 외교 홍역을 치르던 문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 당시 오고 간 대화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반도 평화, 유일한 미중 협치점” 반 전 총장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한 대북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북제재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운을 뗀 반 전 총장은 “제재 이후 국면에선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결의 이행에 동참할 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신(新)냉전 구도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반 전 총장은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 그런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한반도 안보는 어디까지나 한미동맹 관계를 기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패권 경쟁 속에서도 북핵 문제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두 나라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 전 총장은 “미중이 전략적 합치를 볼 수 있는 분야가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라며 “미중 사이에서 잘 설득해 중국이 좀 더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외교적 전략을 취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성급한 대화 교류 안 돼” 반 전 총장은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 경험에 비춰 대화는 어떤 경우에도 필요하다”면서도 “독자적이고 성급한 대화·교류 추진은 다분히 위험요소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북한의 도발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선제적 군사조치를 취할 가능성에 대해선 외교적으로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제재안 채택을 위해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되 순수한 인도적 지원 등으로 북한과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했다.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반 전 총장은 “현금이 바로 유용될 수 있는 구석도 있고 유엔 안보리의 7개 대북제재 결의안과 상충된다”며 “성급히 (재개를) 논의할 일이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 기자·문예슬 인턴기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