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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성매매에 가담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습니다.” 19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유튜버 정배우는 지난달 한 유명 트랜스젠더 유튜버 A 씨의 성매매 전력을 폭로했다. 구독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정배우는 A 씨의 과거 성매매 업소 후기 글을 증거자료로 제시하거나 A 씨가 영상 내용에 항의하는 통화 내용을 녹음해 들려주는 등 ‘저격’ 영상들을 수차례 찍어냈다. 결국 4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했던 A 씨는 “잘못을 인정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이 사건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수십 명의 유튜버들은 정배우와 A 씨의 논란을 정리하는 영상을 빠르게 찍어 올렸다. 검색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이런 콘텐츠들을 매일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유명 유튜버를 대상으로 하거나 기존 언론 기사를 재가공해 만든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는 뜻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들을 ‘기생튜버(기생+유튜버)’라고 부른다. 콘텐츠의 적절성 여부와 관계없이 기생튜버들은 ‘레드오션’이 된 크리에이터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정배우는 콘텐츠 말미에 “유튜버 인성, 피해폭로, 이슈화되고 공론화 시켜야 되는 사건 제보 바란다”는 문구를 덧붙인다. 17일에는 열성 팬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논란을 겪은 유튜버 양팡(구독자 208만 명)을 비판하는 등 이슈몰이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도 여러 번 올랐다. 인지도가 높아진 정배우와 유명 유튜버 간 갈등은 또 다른 기생튜버들의 타깃이 되며 관련 동영상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저격’ 영상이 주를 이루는 콘텐츠 특성상, 정배우는 지금까지 유명 유튜버 6명에게 고소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진행상황을 브리핑하기도 한다. “남의 인생을 까 내리면서 돈을 버느냐”는 비판이 많지만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때론 타깃이 된 유튜버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그의 대담한(?) 행동에 팬들의 응원 글도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기생튜버들은 화제의 이슈나 인물을 검색 키워드에 끼워 넣어 조회수를 높인다. 지난달 먹방 유튜버 밴쯔(구독자 281만 명)가 과장광고로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자 ‘밴쯔 구독자 하락하는 이유’ ‘밴쯔 부활이 어려운 이유’ 등을 제목으로 한 동영상이 수십 건 올라왔다. ‘보람튜브 월 수익 40억은 진실일까?’ ‘대도서관 이렇게 무너지지는 말자’ ‘감스트 논란의 핵심’ 등 기생튜버의 콘텐츠는 유명 유튜버 영상 아래에 배치돼 ‘노이즈 마케팅’ 효과도 톡톡히 누린다. 기존 자료에 설명을 덧붙인다는 점에서 각 분야 유튜버의 ‘지식 채널’과 유사하지만, 유명인이나 유튜버를 타깃으로 삼고 마구잡이로 자극적인 이슈를 편집해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부분 유명 유튜버의 콘텐츠를 캡처한 사진을 나열하고, 기사나 댓글을 참고해 음성번역기로 내용을 읽어주는 식이다. 신분 노출을 꺼려 선글라스나 가면을 쓰고 이슈를 설명하는 유튜버도 상당수다. 영상의 질보다는 이목을 끄는 자극적인 내용이 중요하다보니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단발적인 조회수 증가로 초기 기반을 다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까지 기생튜버로 활동했던 이모 씨(28)는 “실시간 검색어를 새로고침하면서 아이템을 찾고 관련 기사들을 ‘복붙(복사, 붙여넣기)’해 빠르게 영상을 만드는 게 핵심”이라며 “구독자 대비 영상 조회수가 높아 가성비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기생튜버 콘텐츠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유통회사에서 일하는 김지윤 씨(29)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전하는 TV프로그램처럼 유튜버들의 사건사고를 전하는 채널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출판인 강모 씨(36)는 “검색어 노출을 노리는 채널이 많아지면서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워졌다. 기존 콘텐츠를 재탕한 것처럼 보이는 영상은 거르는 편이다”고 했다.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며 인기를 얻는 행태가 안타깝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을 소개해 부정확한 정보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크리에이터 업계 관계자도 “(기생튜버들을) 인지하고 있다. 유튜브에서도 인용 영상 관련 저작권 알고리즘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가짜뉴스나 선정적인 콘텐츠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마디로, 뉴스가 재미있어진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채널A 메인 뉴스인 ‘뉴스A’ 개편 간담회가 열린 20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동정민 앵커(39)는 힘주어 말했다. ‘뉴스A’는 23일부터 오후 7시 반에 방송된다. 방송 시간은 70분으로 개편 전보다 10분이 늘었다. 주말 ‘뉴스A’는 오후 7시 반부터 50분간 진행된다. 평일 ‘뉴스A’는 기자 출신의 젊은 남녀 동정민, 여인선 앵커(29)가 맡았다. 2004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프랑스 파리 특파원 등을 거쳐 채널A 탐사보도팀장이기도 한 동 앵커는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을 통틀어 가장 젊은 남성 앵커다. 그는 “두 달 전만 해도 현장을 뛰던 기자였다. ‘진실을 찾고 진실을 전한다’는 말을 마음에 담고 펄떡펄떡 살아있는 뉴스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2017년부터 ‘뉴스A’ 진행을 맡아 온 여 앵커는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해주는 것이 뉴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만나고 싶은 친구 같은 앵커가 되겠다”고 전했다. 이번 개편에는 채널A 현장 기자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포맷의 고정 코너들이 마련될 예정이다. 특히 채널A ‘먹거리 X파일’을 진행했던 김진 기자는 실생활 아이템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 ‘김진이 간다’ 코너를 맡았다. ‘김진의 돌직구쇼’부터 ‘뉴스A’까지 “채널A의 셔터를 열고 닫는 ‘셔터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소비자 중심의 고발 뉴스를 현장에서 검증해 전해드리겠다”고 했다. 주말 ‘뉴스A’는 KBS 9시 뉴스 앵커를 지낸 조수빈 앵커(38)가 단독으로 진행한다. 조 앵커는 “아나운서의 강점은 진행력이라고 생각한다. 제게도,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분야로 돌아와 설렌다. (‘뉴스A’가) 마지막 뉴스 진행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겠다”고 말했다. KBS N 스포츠의 ‘아이 러브 베이스볼’을 진행하며 ‘야구 여신’으로 불린 윤태진 앵커(32)는 주중 스포츠 뉴스를 맡았다. 스포츠 뉴스 진행에 처음 도전하는 윤 앵커는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제 색깔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건 좀 아니지 않아?ㅋㅋㅋ” 두 자녀를 둔 신모 씨(35·여)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소소한 다툼을 벌였다. “짜증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라는 글과 함께 올린, 치마를 입은 5세 아들의 사진에 댓글이 달렸기 때문. “귀엽기만 한데 왜 그러느냐”는 신 씨의 말에 한 지인은 “아이가 크면 싫어할 수 있다”며 논쟁을 벌였다. 신 씨는 “억울하지만 남들이 댓글을 볼까 두려워 사진을 삭제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육아를 공유하는 부모들의 SNS 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른바 셰어런팅으로, 이는 공유라는 의미의 셰어(share)와 육아라는 의미의 페어런팅(parenting)을 합성한 신조어다. 대부분 아이의 사생활 보호 필요성과 육아 방식의 적절성을 놓고 벌어지는 다툼들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SNS 특성상 제3자의 뭇매를 맞는 경우도 부지기수. 최근 한 포털 사이트에선 2년 전 아픈 아이의 얼굴과 함께 체온계를 인증한 부모의 글이 다시 논란이 됐다. ‘#40도’, ‘#고열버티는중’ 등 해시태그(#)가 달려 있는 이 글을 두고 “당장 아이를 들고 병원에 뛰어가도 모자랄 판” “이 정도면 아동학대” 등 누리꾼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물론 “응급실을 가는 게 답이 아니다” “남 육아에 참견하는 것은 월권이다” 등 부모를 옹호하는 의견도 첨예하게 맞섰다. 논란과 별개로, 셰어런팅은 국내에서도 보편적인 육아 문화로 자리 잡았다. SNS나 ‘맘카페’ 등을 통해 일면식도 없는 부모들이 소소한 육아 과정이나 후기를 공유한다. 이 같은 글들엔 대부분 ‘육아스타그램’ ‘××맘’ 등 해시태그가 달린다. ‘비건(vegan·동물성 식재료를 완전히 배제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맘’ 이영진 씨(36)는 “블로그에서 비건 육아의 장점 등을 소개하고 레시피도 공유해 왔는데 최근 ‘애가 채식하고 싶다고 한 건 맞느냐’는 쪽지가 왔다”고 말했다. 셰어런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은 타 자녀의 내밀한(?) 사생활을 보지 않을 권리도 호소한다. 특히 ‘#배변훈련’ 등 키워드를 달고 변기에 앉아 있는 아이나 대소변을 담은 사진에 불만이 크다. 기저귀를 가는 동영상에 아이의 알몸이 그대로 노출된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인 박정민 씨(32)는 “결혼한 친구가 주기적으로 올리는 아이의 배변일지를 보기 싫어 팔로잉을 끊었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선 셰어런팅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다. 2016년 캐나다 13세 소년이 “유아 시절 사진들로 내 이미지가 훼손됐다”며 부모에게 합의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프랑스에선 부모가 자녀의 유아 시절 사진을 자녀 동의 없이 게재할 시 벌금 4만5000유로(약 5927만 원)와 징역 1년에 처할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동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부모들은 자신이 올린 사진이 훗날 자녀의 장래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요한 렌크 감독(53)은 19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또렷이 기억한다. 어린 시절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도달한 방사능 낙진을 경험했다. 도시엔 북부지방에서 온 육류를 먹으면 안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몇몇 친구들은 남반구로 이민을 갔다. ‘방사능 공포’는 그에게도 일상이었다. 미국 HBO의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을 연출한 그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익숙한 참사라고 생각해 왔는데 깊이 알아볼수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작가 크레이그 메이진이 3년 동안 소련 정부 문서들을 수집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쓴 각본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해 촬영 전까지 체르노빌 사고를 다룬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닥치는 대로 찾아봤다. 우크라이나 생존자들에게서 직접 들은 참상은 그를 숙연해지게 했다.》 “동유럽에서 제 아이 4명을 돌보면서 촬영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 처음에는 연출 제안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생존자, 희생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재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파는 철저히 배제했다. 드라마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체르노빌’은 당시 사고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22일 열리는 제71회 에미상 시상식에선 최우수 미니시리즈 작품상 등을 포함해 19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5월 방영 동시에 로튼토마토(신선도 95%), 메타크리틱(9.3점) 등 유명 영화리뷰 사이트의 호평도 이어졌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2010년) ‘브레이킹 배드’(2009∼2010년) 등 상상 속 세계를 연출해 온 그도 이번만큼은 “진실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00일간의 촬영을 위해 방문했던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일대는 “1980년대 소련을 재현할 완벽한 장소”였다. 1986년식 우크라이나 소방차를 찾는 데만 꼬박 4개월이 걸렸고, 낡은 모직 양복이나 스카프, 오래된 시계, 전화기 등을 구하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 이베이나 우크라이나 키예프 벼룩시장을 헤맸다. 촬영도 체르노빌과 같은 기종으로 2009년 가동이 중단된 리투아니아의 이그날리나 원전에서 했다. “그때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로부터 ‘사실이고 정확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실제 몇몇 우크라이나 사람들로부터 ‘놀랍다’는 연락을 받아서 만족해요.” 치밀한 묘사 덕분에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군인들이 원자로 위 흑연 잔해를 치우는 명장면도 시청자들의 ‘간접 체험’을 위해 철저히 계산한 결과다. 방사능 피폭 허용치를 고려해 1인당 주어진 90초 작업시간을 ‘롱테이크’로 담았고 스테디캠(대상을 따라가면서 계속 이어서 촬영하는 기법)을 활용해 긴박감을 살렸다. “리허설만 3일이 걸렸어요. 개인적으로 롱테이크 촬영을 선호하진 않지만 그 장면은 그렇게 찍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실제 긴박하고 두려운 90초를 경험하길 원했거든요.” 끔찍한 사고가 주는 공포도 침묵이나 무미건조한 음악으로 극대화됐다. 이그날리나 원전에서 얻은 기계음, 금속음 같은 기괴한 소리를 효과음으로 활용했다. 렌크 감독은 “때로는 침묵이 몰입을 강화시킨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위협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극 중 폭발 사고를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소련 관료들의 모습처럼, 렌크 감독은 “유사한 비극은 진행 중”이라고 강조한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라는 첫 대사는 현대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에요. 여전히 진실보다 자신들을 위해 거짓을 선전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죠.” ‘체르노빌’의 흥행으로 참사 현장을 찾는 ‘다크 투어리즘’도 크게 늘었지만, 그는 아직 체르노빌을 가보지 못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촬영 당시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대형 산불로 무산됐다. “그곳에 갈 날을 고대하고 있다”던 그는 소셜미디어에 게재된 관광객들의 외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인증 사진들에 대해서는 “엄숙함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연출을 보여준 그는 독특하게도 1993년 ‘스타카 보’라는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마돈나, 비욘세,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캘빈 클라인, 아르마니 등 브랜드 광고 연출로 경력을 쌓아왔다. 박찬욱 감독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그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영화들이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제 친구인 작가 마이클 레슬리가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9년) 각본을 박 감독과 함께 작업했는데 정말 질투가 나더라고요. 하하.”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요한 렌크 감독(53)은 19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또렷이 기억한다. 어린 시절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도달한 방사능 낙진을 경험했다. 도시엔 북부지방에서 온 육류를 먹으면 안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몇몇 친구들은 남반구로 이민을 갔다. ‘방사능 공포’는 그에게도 일상이었다. 미국 HBO의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을 연출한 그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익숙한 참사라고 생각해왔는데 깊이 알아볼수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3년 동안 작가 크레이그 메이진이 소련 정부 문서들을 수집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해 쓴 각본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해 촬영 전까지 체르노빌 사고를 다룬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닥치는 대로 찾아봤다. 우크라이나 생존자들에게서 직접 들은 참상은 그를 숙연해지게 했다. “동유럽에서 제 아이 4명을 돌보면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 처음에는 연출 제안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다보니 생존자, 희생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재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파는 철저히 배제했다. 드라마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체르노빌’은 당시 사고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22일 열리는 제71회 에미상 시상식에선 최우수 미니시리즈 작품상 등을 포함해 19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5월 방영 동시에 로튼토마토(신선도 95%), 메타크리틱(9.3점) 등 유명 영화리뷰 사이트의 호평도 이어졌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2010년) ‘브레이킹 배드’(2009~2010년) 등 상상에 기반한 세계를 연출해 온 그도 이번만큼은 “진실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00일 간의 촬영을 위해 방문했던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일대는 “1980년대 소련을 재현할 완벽한 장소”였다. 1986년식 우크라이나 소방차를 찾는 데만 꼬박 4개월이 걸렸고, 낡은 모직 양복이나 스카프, 오래된 시계, 전화기 등을 구하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 이베이나 우크라이나 키예프 벼룩시장을 헤맸다. 촬영도 체르노빌과 같은 기종으로 2009년 가동이 중단된 리투아니아의 이그날리아 원전에서 했다. “그때 그 곳에 있었던 누군가로부터 ‘사실적이고 정확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실제 몇몇 우크라이나 사람들로부터 ‘놀랍다’는 연락을 받아서 만족해요.” 치밀한 묘사 덕분에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군인들이 원자로 위 흑연 잔해를 치우는 명장면도 시청자들의 ‘간접 체험’을 위해 철저히 계산한 결과다. 방사능 피폭 허용치를 고려해 1인당 주어진 90초 작업시간을 ‘롱테이크’로 담았고 스테디캠(대상을 미끄러지듯 따라가면서 계속 이어서 촬영하는 기법)을 활용해 긴박감을 살렸다. “리허설만 3일이 걸렸어요. 개인적으로 롱테이크 촬영을 선호하진 않지만 그 장면은 그렇게 찍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실제 긴박하고 두려운 90초를 경험하길 원했거든요.” 끔찍한 사고가 주는 공포도 침묵이나 무미건조한 음악으로 극대화됐다. 이그날리아 원전에서 얻은 기계음, 금속음 같은 기괴한 소리를 효과음으로 활용했다. 렌크 감독은 “때로는 침묵이 몰입을 강화시킨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위협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극 중 폭발 사고를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소련 관료들의 모습처럼, 렌크 감독은 “유사한 비극은 진행 중”이라고 강조한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라는 첫 대사는 현대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에요. 여전히 진실보다 자신들을 위해 거짓을 선전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죠.” ‘체르노빌’의 흥행으로 참사현장을 찾는 ‘다크투어리즘’도 크게 늘었지만, 그는 아직 체르노빌을 가보지 못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촬영 당시 대형 산불로 방문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 “그곳에 갈 날을 고대하고 있다”던 그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된 관광객들의 외설적이고 우스꽝스런 인증사진들에 대해서는 “엄숙함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연출을 보여준 그는 독특하게도 1993년 ‘스타카 보’라는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마돈나, 비욘세, 데이빗 보위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캘빈클라인, 아르마니 등 브랜드 광고 연출로 경력을 쌓아왔다. 박찬욱 감독의 광팬이기도 한 그는 “세계시장에서 한국 영화들이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제 친구인 작가 마이클 레슬리가 드라마 ‘더 리틀 드러머 걸’(2019년) 각본을 박 감독과 함께 작업했는데 정말 질투가 나더라고요. 하하.”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S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SBS KPOP CLASSIC’은 지난달 초부터 1990∼2000년대 ‘SBS 인기가요’를 실시간 스트리밍했다. 24시간 스트리밍 기술을 점검하는 차원이었다. 2007년 개설한 이 채널은 원래 구독자 6만 명에 광고수입은 연 50만 원쯤 되는, 사실상 ‘죽은 채널’이었다. 스트리밍 접속자 수는 초창기엔 5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점점 누리꾼 사이에 입소문을 타더니 지난달 28일 방송에선 2만 명이 동시에 몰리며 ‘대박’이 났다. 10일 기준 채널 구독자도 벌써 16만 명. 시청자들이 붙인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명도 이때 생겨났다. SBS 관계자는 “내년 SBS 출범 30주년을 맞아 MC 인사말이나 유승준, 컨츄리꼬꼬 등 논란인 가수는 편집하고 공연 위주의 콘텐츠를 내보낼 예정이었으나 가감 없이 보여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온라인 탑골공원을 찾은 이들은 주로 밀레니엄 시대를 추억하는 30, 40대. 호기심으로 무장한 10, 20대도 적지 않다. “예전 한국가요에 목말라 있었다”며 미국, 브라질 등 해외에서 방송을 기다리는 시청자도 상당하다. 직장인들이 업무시간에 방송을 틀어놓는다는 의미로 ‘노동요’라는 애칭마저 붙었다고 한다. 실시간 채팅창을 가득 메운 시청자들의 다채로운 반응은 이 방송의 가장 큰 볼거리다. 그룹 god의 멤버 손호영에게는 ‘호다니엘(손호영+강다니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그룹 스페이스A의 멤버 루루를 보곤 “탑골 (블랙핑크) 제니가 나왔다”는 댓글이 쏟아진다. 가수 유승준의 무대엔 “외국인 가수 내한공연”이란 조롱(?) 섞인 반응도 나온다. 전지현, 김민희 등 당시 MC로 출연한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이나 음료, 햄버거 광고들도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시작한 콘텐츠이다 보니 시청자와의 피드백도 활발하다. 누리꾼들에게 ‘공원 관리자’로 불리는 채널 운영자는 향후 방송할 특정 시기 ‘인기가요’에 대한 설문조사도 벌였다. 참여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탓에 수시로 방송 댓글을 점검하기도 한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참담함을 느낀다.” “고인물이 됐다.” 최근 KBS 예능 ‘해피투게더’ 시즌4의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원색적인 비난(?)이라고 하기엔 “유재석 활용법이 잘못됐다” “토크 주제가 한정적이다” 등 프로그램 내용을 언급하며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들이 대다수다. 이들 중에는 과거 시즌1의 ‘쟁반노래방’, 시즌3의 ‘웃지 마 사우나’ 등 인기 코너를 추억하며 아쉬워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다. ‘해피투게더’나 MBC ‘라디오스타’ 등 장수 예능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토크쇼에 각종 재미 요소를 더해 10년 넘게 평일 안방극장을 사로잡아왔다. 하지만 최근 이 예능들이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과 재미마저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는 시청자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해피투게더’는 지난해 10월 시즌4로 개편하면서 “스튜디오를 벗어나 스타들을 찾아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이나 경기 고양시 등 두 달여간 외부 촬영이 진행됐지만 결국 KBS 별관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흑역사를 지워 드립니다’ 같은 신설 코너를 만들고 배우 조윤희를 새 MC로 투입했지만 “기대만 못하다”는 평이 많다. 오히려 MC들이 출연자들을 지나치게 띄워주는, 일명 ‘용비어천가’식 진행으로 뭇매를 맞았다. 지난달 15일 방송에서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홍보차 출연한 배우 김고은에게 ‘예능 요정’이라는 자막을 쓰거나 MC들이 시종일관 감탄사만 연발해 비판이 쏟아졌다. 함께 출연한 배우 김국희, 정유진의 분량이 주연 배우들에 비해 턱없이 적어 차별 논란마저 일었다. 결국 ‘해피투게더’는 지난달 22일 2001년 방송 이후 최저 시청률인 2.5%(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장수 예능의 부진에는 전반적인 예능의 시청률 하락과 더불어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등 동시간대 타 채널 예능의 선전도 한몫한다. 지난해부터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시청률을 추월당한 ‘라디오스타’도 마찬가지. 게스트의 중복 출연이 잦고 방영 초기 앞세웠던 특유의 ‘B급 감성’도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며 시청률은 4∼5%에 머물러 있다. 12년 동안 MC 김구라와 콤비를 이뤄온 가수 윤종신이 이달 하차하면서 향후 전망도 어둡다. 2010년부터 시청자들의 고민을 나눠온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도 최근 개편을 검토 중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토크쇼 장르가 예능 트렌드에서 멀어진 탓도 있지만 홍보성 출연 같은 뻔한 진행 방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거부반응이 오랜 기간 쌓여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추석 벌초 문제를 놓고 얼마 전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장손인 제가 “앞으로 벌초는 대행으로 하고, 직접 찾아가는 건 명절이 아닌 기일에 맞추자”고 건의한 탓이죠. 아버지는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며 역정을 내십니다. 집안의 후손들은 대부분 서울에 삽니다. 선산에 가려면 편도 5∼6시간은 걸리죠. 작년 추석 즈음엔 친척들이 모여 10기가 넘는 묘를 손수 벌초하다가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자주 빠지는 자제들을 두고 고성이 오간 것이죠. ‘벌금을 거둘까, 당번을 정할까’ 조상님 앞에서 말다툼이 이어졌습니다. 조상의 묘를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건 당연한 도리입니다. 하지만 사는 곳도, 살아가는 모습도 너무 다르다 보니 ‘성묘’를 둘러싼 예법을 전부 따르는 건 쉽지 않죠. 가족 간 불화를 줄이고 전통도 이을 수 있는 지혜로운 해결책이 없을까요? 》 “벌초 문제로 형제들과 다투지 말고, 이 돈으로 지혜롭게 해결하거라.” 평해 황씨 중앙종친회 종무기획이사인 황병극 씨(58)의 어머니는 6년 전 자식들 앞으로 500만 원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해마다 추석이면 ‘벌초를 누가 하네’ 하며 서로 눈치를 주는 자녀들을 보며 내린 결정이다. 형제들은 이 종잣돈에다 각자 자발적으로 낸 금액을 더해 ‘형제기금’을 만들었다. 그 뒤로 벌초에 참여하지 못할 땐 기금을 내고, 벌초를 자발적으로 맡은 형제에겐 수고비를 주는 게 이 집안의 새로운 룰이 됐다. 황 씨는 “경북 영주의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벌초대행까진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전통이란 이유로 의무만 강요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어머니의 지혜 덕분에 벌초로 수고한 형제에겐 금전적 보상을 하다 보니 갈등이 많이 사라지고 우애도 돈독해졌다”고 전했다. 해마다 추석이면 성묘와 벌초를 둘러싼 갈등이 되풀이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최순권 학예연구관은 “성묘는 본래 묘를 살피며 잡초를 제거해 봉분을 깨끗이 관리하는 게 핵심”이라며 “지역에 따라선 추석 직전 벌초만 하기도 하고, 이와 별도로 추석 당일 묘 앞에서 주과포(술, 과일, 포)를 올리는 ‘묘제’를 지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칙이 없기 때문에 가정마다 지내는 방식을 두고 세대 간 갈등이 벌어지곤 한다. 황 씨의 집안은 ‘벌초’ 갈등을 줄이기 위한 묘안을 발휘한 셈이다. 물론 벌초를 반드시 후손들이 직접 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이는 많은 가정에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국학진흥원 김미영 수석연구위원은 “과거에도 양반들이 성묘할 땐 직접 벌초를 하지 않았고, 머슴이나 묘지기를 썼다”며 “현대식으로 해석하자면 벌초대행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7년째 벌초대행을 해온 경기 여주시의 이창호 씨(49)는 추석을 코앞에 둔 4일 취재진과 만났다. 그는 “요즘 농촌엔 청년들이 부족해 태국인 근로자 4명과 함께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이날 벌초대행을 부탁한 이는 70대 전직 교수다. 그동안 낫을 들고 손수 벌초를 했지만 기력이 쇠해진 탓에 대행을 맡겼다고 한다. 100m 산길을 올라간 이 씨는 일꾼들과 함께 묘 앞에서 묵념을 한 뒤 작업 전후 봉분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직접 오지 못하지만 궁금해할 후손들에게 사진을 전송하기 위해서다. 그는 “가족들의 묘를 벌초한다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며 “깨끗해진 묘에 자손들이 나중에 찾아와 비석을 닦는 식으로 조상에 성의를 표할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송경희 여주 대신농협 과장은 “농협에서 벌초대행을 중개한 지 10년이 됐는데, 워낙 깨끗이 단장해드리는 것을 보며 묘 하나당 8만∼10만 원은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자손들을 위해 여러 군데 흩어진 묘를 합치는 가문도 있다. 경주 손씨 가문의 25대 종손 손성훈 씨(64)는 최근 1년 반에 걸쳐 묘를 이장해 한 군데로 모으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직계와 방계를 아울러 약 80위나 되는 묘를 옮기겠다고 하자 문중 어르신들이 크게 반대해 설득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한 건 후손들을 위해서였다. 손 씨는 “가족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후손들은 외국을 포함해 이곳저곳에 흩어져 산다”며 “이런 상황에서 각각 떨어져 있는 선산을 전부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후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런 결단을 내렸지만, 성묘 방식까지 강요하진 않을 생각이다. 손 씨는 “조선시대도 전기와 후기의 예법이 크게 다르듯, 방식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 당일 반드시 묘제를 지내러 성묘를 가야 하느냐, 부부 중 남자 배우자 쪽의 성묘만 챙겨야 하느냐는 문제도 자주 등장하는 논란거리다. 이철영 동국대 생사의례산업학과 겸임교수는 “묘제를 추석 당일에 지내거나, 남자 배우자의 조상 묘만 찾아뵙는 것을 원칙이라고 하긴 어렵다”며 “‘귀찮기 때문에 성묘를 안 하겠다’는 태도만 아니라면 어떤 경우든 가족의 사정에 맞춰 가정의례를 지키는 형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김수연 sykim@donga.com / 여주=신규진 / 김자현 기자}

“너는 오전 1시 50분에 죽는다. 너는 2등급 지옥에 간다. 지옥의 강도는 네가 느낀 최고 고통의 10배다.” 불현듯 찾아온 천사의 말에 한 남성은 좌절한다.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저승사자로부터 도망칠 것인가. 연상호 감독(41)의 연작 애니메이션 영화 ‘지옥―두 개의 삶’(2003, 2006년)은 언제나 나쁜 선택을 하고 마는 인간에 대한 잔혹한 우화다. 영화 ‘부산행’(2016년)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그가 이번엔 웹툰에 도전한다. 애니메이션에 바탕을 둔 네이버 웹툰 ‘지옥’의 연재를 지난달 25일부터 시작했다. ‘지옥’은 저승사자가 출몰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과정을 다룬 영화의 프리퀄(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에 해당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만난 연 감독은 “어릴 때 영화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죽음의 시간이 예고되고 저승사자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영화의 핵심 설정은 그대로다.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는 악몽을 꿨던 그는 대학 시절인 1996년 원작의 시나리오를 썼다. 총 35분가량의 짧은 두 단편 영화는 특유의 어둡고 기괴한 서사와 장면들로 가득하다. 다소 거친 편집과 어설픈 움직임에도 ‘지옥…’은 많은 팬들에게 ‘연상호’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연 감독은 웹툰 시나리오를 새로 쓰면서 힘들었던 20대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1인 작업인 데다 제작비도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두 단편을 만드는 데 3년이 넘게 걸렸다. 실제 배우의 연기에 애니메이션을 합성하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쓰면서 직접 연기부터 그림까지 홀로 모든 작업을 담당했다. 녹록지 않은 제작 여건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염두에 뒀던 시리즈 제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번 웹툰의 그림은 최규석 작가(42)가 맡았다. ‘송곳’으로 이름을 알린 최 작가는 ‘돼지의 왕’(2011년), ‘사이비’(2013년), ‘서울역’(2016년) 등 연 감독 작품의 원화 작업 대부분을 그려 왔다. 친구 사이인 둘은 2년 전쯤 맥주를 마시다 웹툰을 기획했다고 한다. 연 감독은 “친한 친구끼리 작업하면 마냥 재미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6개월간 회의를 하는 동안 은근히 의견 충돌이 많았다”며 웃었다. “영화로 치면 제가 시나리오 작가고 규석이가 감독인 셈이죠. 저랑 다르게 규석이는 꼼꼼한 스타일이에요. 저보다도 먼저 시나리오에 나온 인물의 모습을 생각해 놨더라고요.” 사실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인물 표정과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는 연 감독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 둘 다 오토모 가쓰히로의 만화 ‘아키라’(1982∼1990년)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연 감독은 “규석이 그림은 영화 같다. 제 시나리오의 캐릭터를 잘 잡아준다”고 평가했다. 최 작가는 “상호는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화수분’ 같은 존재”라고 맞받았다. ‘돼지의 왕’(2012년)으로 감독주간, ‘부산행’(2016년)으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초청되며 두 번이나 칸 국제영화제의 부름을 받은 연 감독.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첫 실사영화이자 국내 최초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으로 ‘1000만 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연 감독은 흥행이 보장된 속편 대신 ‘염력’(2018년) 연출을 택했다. 물론 ‘염력’은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우물을 판다. 지난해엔 직접 그린 그래픽노블 ‘얼굴’을 출간했다. 그는 “규석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웹툰도 직접 그려보고 싶다”며 웃었다. “‘염력’은 ‘부산행’이나 이전 애니메이션과도 비슷한 지점이 없었죠. 그래서 관객들이 느낀 배신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국에서 주류 장르가 아닌 ‘B급 코미디’를 해봤다는 것에 개인적으론 만족합니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데 익숙했던 그도 ‘부산행’ ‘염력’ 등을 연출하며 “협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연 감독은 “혼자 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시나리오부터 촬영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남 이야기를 들으면 제 색깔이 없어진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야기꾼답게 틈틈이 언제 영화화할지 모르는 시나리오들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곤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집에 쌓여 있는 만화책들을 다시 들춰 본다. 내년 방영 예정인 tvN 드라마 ‘방법’은 시나리오 집필을 이미 마쳤다. ‘방법’은 국내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는 기자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녀가 얽힌 스릴러물. ‘사이비’ 이후 새 장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썼지만 아직은 답보 상태. 그는 “투자금 회수 등 전략을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작다”며 아쉬워했다. 그가 연출 중인 영화 ‘반도’에 대해 물으니 “일주일에 절반을 대전 촬영지에서 보내고 있어 정신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내년 여름 개봉을 앞둔 ‘반도’는 배우 강동원, 이정현이 출연하는 좀비물. ‘부산행’의 속편 격으로 4년 뒤 폐허가 돼버린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총제작비는 190억 원으로 전편보다 규모가 더욱 커졌다. “‘반도’를 촬영하면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느낌을 받아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이 워낙 많아서요. 하하.”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처음엔 달 하나만 떠 있는 우주를 상상했는데, 근사한 우주선이 있더라고요.” 홍정은(45), 홍미란(42) 작가(일명 홍 자매)는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1분 남짓한 우주 장면에 감탄했다고 한다. 2일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드래곤에서 만난 이들은 “영상화가 어려웠던 생각들이 시각적으로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입을 모았다. 죽은 자의 원한을 달래주는 호텔과 이를 운영하는 여사장 장만월(아이유)의 이야기를 다룬 ‘호텔 델루나’는 1일 시청률 12%(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화제 속에 막을 내렸다. 홍 자매는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년) 집필 당시 ‘호텔 델루나’를 기획했다. “구미호 꼬리를 붙이고 연기했던 시절”이었을 정도로 당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조악해 자그마치 9년을 묵혀 왔다. 미란 씨는 “세트장이 실제 호텔보다 좋아 놀랐다”고 했다. KBS ‘쾌걸춘향’(2005년)부터 함께 글을 써온 이들은 “서로 떨어져 글 쓰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집에서 노트북 한 대를 켜놓고 번갈아가며 생각나는 문장을 써나가는 식이다. 의견 충돌이 생기면 한 명이 자리를 잠시 비울 때도 있지만 솔직한 피드백이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를 쓰는 데 보탬이 된다. “저는 ‘졸리면 자고 내일 쓰자’는 생각인데, 동생은 부지런해요. 물론 저의 느긋하고 신중한 성격이 장점이 될 때도 있어요. 완급 조절이 잘된다고 생각해요.”(홍정은) 두 작가는 지난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을 유독 많이 하게 됐다. 과거 정은 씨가 MBC ‘신기한TV 서프라이즈’에 참여하면서 접한 가슴 아픈 귀신 제보들도 시나리오 완성에 도움이 됐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오묘한 존재인 장만월은 애초에 아이유를 점찍어 뒀다. 캐스팅에 실패하면 드라마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미란 씨는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홀로 있을 때 짠해 보이는 분위기에 (아이유가) 제격이다”고 전했다. 그간 MBC ‘최고의 사랑’(2011년), tvN ‘화유기’(2017년) 등 홍 자매 작품들은 성공과 별개로 표절 논란에 휘말리는 일이 많았다. ‘호텔 델루나’도 일본 만화와 설정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란 씨는 “가슴에 돌덩이가 얹혀진 것처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심령물 소재는 수많은 작품에서 쓰인 소재예요. 온라인에서 근거 없는 표절 프레임이 씌워질 때마다 이야기할 데도 없고 억울했습니다.”(홍정은) 1일 에필로그에 최근 전역한 배우 김수현이 등장한 것에 대해선 “아직 시즌2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너는 오전 1시 50분에 죽는다. 너는 2등급 지옥에 간다. 지옥의 강도는 네가 느낀 최고 고통의 10배다.” 불현듯 찾아온 천사의 말에 한 남성은 좌절한다.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저승사자로부터 도망칠 것인가. 연상호 감독(41)의 연작 애니메이션영화 ‘지옥-두 개의 삶’(2003, 2006년)은 언제나 나쁜 선택을 하고 마는 인간에 대한 잔혹한 우화다. 영화 ‘부산행’(2016년)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그가 이번엔 웹툰에 도전한다. 애니메이션에 바탕을 둔 네이버 웹툰 ‘지옥’의 연재를 지난달 25일부터 시작했다. ‘지옥’은 저승사자가 출몰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과정을 다룬 영화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만난 연 감독은 “어릴 때 영화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죽음의 시간이 예고되고 저승사자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영화의 핵심 설정은 그대로다.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는 악몽을 자주 꿨던 그는 대학 시절인 1996년 원작의 시나리오를 썼다. 총 35분가량의 짧은 두 단편 영화는 특유의 어둡고 기괴한 서사와 장면들로 가득하다. 다소 거친 편집과 어설픈 움직임에도 ‘지옥…’은 많은 팬들에게 ‘연상호’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연 감독은 웹툰 시나리오를 새로 쓰면서 힘들었던 20대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1인 작업인데다 제작비도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두 단편을 만드는 데 3년이 넘게 걸렸다. 실제 배우의 연기에 애니메이션을 합성하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쓰면서 직접 연기부터 그림까지 홀로 모든 작업을 담당했다. 녹록치 않은 제작 여건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염두에 뒀던 시리즈 제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번 웹툰의 그림은 최규석 작가(42)가 맡았다. ‘송곳’으로 이름을 알린 최 작가는 ‘돼지의 왕’(2011년), ‘사이비’(2013년), ‘서울역’(2016년) 등 연 감독 작품의 원화 작업 대부분을 그려왔다. 친구 사이인 둘은 2년 전쯤 맥주를 마시다 웹툰을 기획했다고 한다. 연 감독은 “친한 친구끼리 작업하면 마냥 재미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6개월 간 회의를 하는 동안 은근히 의견충돌이 많았다”고 웃었다. “영화로 치면 제가 시나리오 작가고 규석이가 감독인 셈이죠. 저랑 다르게 규석이는 꼼꼼한 스타일이에요. 저보다도 먼저 시나리오에 나온 인물의 모습을 생각해놨더라고요.” 사실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인물 표정과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는 연 감독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 둘 다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연 감독은 “규석이 그림은 영화 같다. 제 시나리오의 캐릭터를 잘 잡아준다”고 평가했다. 최 작가는 “상호는 끝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화수분’ 같은 존재”라고 맞받았다. ‘돼지의 왕’(2012년)으로 감독주간, ‘부산행’(2016년)으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되며 두 번이나 칸 국제영화제의 부름을 받은 연 감독.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첫 실사영화이자 국내 최초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으로 ‘1000만 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연 감독은 흥행이 보장된 속편 대신 ‘염력’(2018년) 연출을 택했다. 물론 ‘염력’은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우물을 판다. 지난해엔 직접 그린 그래픽노블 ‘얼굴’을 출간했다. 그는 “규석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웹툰도 직접 그려보고 싶다”며 웃었다. “‘염력’은 ‘부산행’이나 이전 애니메이션과도 비슷한 지점이 없었죠. 그래서 관객들이 느낀 배신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한국에서 주류 장르가 아닌 ‘B급 코미디’를 해봤다는 것에 개인적으론 만족합니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데 익숙했던 그도 ‘부산행’ ‘염력’ 등을 연출하며 “협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연 감독은 “혼자 작업을 많이 해와 그런지 시나리오부터 촬영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남 이야기를 들으면 제 색깔이 없어진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야기꾼답게 틈틈이 언제 영화화할지 모르는 시나리오들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곤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집에 쌓여있는 만화책들을 다시 들춰본다. 내년 방영 예정인 tvN 드라마 ‘방법’은 시나리오 집필을 이미 마쳤다. ‘방법’은 국내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는 기자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녀가 얽힌 스릴러물. ‘사이비’ 이후 새 장편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썼지만 아직은 답보 상태. 그는 “투자금 회수 등 전략을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작다”며 아쉬워했다. 그가 연출 중인 영화 ‘반도’에 대해 물으니 “일주일에 절반을 대전 촬영지에서 보내고 있어 정신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내년 여름 개봉을 앞둔 ‘반도’는 배우 강동원, 이정현이 출연하는 좀비물. ‘부산행’의 속편 격으로 4년 뒤 폐허가 돼버린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총 제작비는 190억 원으로 전편보다 규모가 더욱 커졌다. “‘반도’를 촬영하면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느낌을 받아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이 워낙 많아서요. 하하.”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채널A 뉴스가 23일부터 새로운 얼굴로 시청자들을 찾는다. 평일 메인뉴스 ‘뉴스A’는 동정민 여인선 앵커가, 주말 ‘뉴스A’는 조수빈 앵커가 단독으로 진행한다. ‘뉴스A’ 스포츠뉴스 진행은 윤태진 아나운서가 맡는다. 더 젊고, 더 재미있어진 채널A 뉴스를 이끌 새 얼굴들을 미리 만나봤다.》 주말 ‘뉴스A’의 단독 진행을 맡은 조수빈 앵커(38·사진)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KBS ‘뉴스9’ 앵커를 맡는 등 다양한 뉴스 진행 역량을 쌓아왔다. 올해 3월 KBS를 퇴사한 조 앵커는 “변화가 필요했다. 뉴스를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뉴스A의 변화 방향성에 공감해 합류하게 됐다”고 전했다. 7년 만에 다시 맡은 메인뉴스 앵커 자리는 그에게도 큰 부담이다. 조 앵커는 “내 강점을 어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KBS 재직 당시 그는 기존의 엄숙한 여자 아나운서들과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조 앵커는 “앵커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딱딱한 여성 앵커의 이미지보단 친근함을 내세워 시청자들이 보기에 편안한 뉴스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조 앵커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뉴스A에 끌렸고, 개편 전 회의에 참여하며 조직의 ‘신선함’을 체험했다고 한다. 조 앵커는 “KBS에선 여성 앵커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며 “기자 등 팀원들과 함께 여러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젊은 뉴스A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평일 뉴스와 다른 주말 뉴스만의 개성을 살릴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KBS 퇴사 후 CNN 같은 해외 뉴스채널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뉴스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고 한다.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조 앵커는 2004년 제1회 KBS 한국어능력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835점을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동아일보 인턴 1기 출신이기도 하다. 조 앵커는 “미생으로 참여했던 기자 인턴이 훗날 뉴스를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스포츠뉴스 진행 윤태진 아나운서 “수많은 스포츠 현장 누빈 경험 큰 자산”▼‘뉴스A’ 스포츠뉴스 진행은 윤태진 아나운서(32·사진)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윤 아나운서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많이 해봤지만 뉴스는 처음”이라며 “(뉴스A에서) 스포츠 진행자를 영입한 것도 처음이라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도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윤 아나운서는 2010년 미스춘향선발대회에서 선에 오른 뒤 “아나운서를 해볼 생각 없느냐”는 방송인 이금희 씨의 조언으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2011년 KBS N 스포츠에 입사한 그는 2012년부터 3년간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아이러브 베이스볼’ 진행을 맡아 스포츠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외모와 활발한 성격으로 최희, 정인영과 더불어 스포츠 아나운서 ‘3대 여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윤 아나운서는 “딱딱하거나 진지한 모습보다는 밝고 명량한 제 분위기를 살려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겠다”고 말했다. 다년간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다져온 내공은 윤 아나운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야구뿐 아니라 축구, 농구 등 수많은 스포츠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선수들과 인터뷰를 했던 경험도 큰 자산이 됐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에도 팬으로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그는 “기존 제 색깔과 뉴스라는 포맷의 중간 지점을 잘 찾아 가겠다”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뉴스가 어렵다고요? 채널A 메인뉴스 ‘뉴스A’를 보면 뉴스 ‘인싸’가 됩니다.” 채널A 메인뉴스인 ‘뉴스A’가 23일부터 젊은 남녀 앵커와 현장 기자들의 출연으로 확 달라진다. 또 취재력이 뛰어난 스타 기자들이 현장 구석구석을 뛰며 만든 뉴스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코너들을 마련한다. 주말뉴스와 스포츠뉴스도 새로운 얼굴로 시청자들을 찾는다. ‘뉴스A’는 주 52시간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발맞춰 오후 7시 30분 편성되며 방송 분량도 60분에서 70분으로 늘려 전문성과 심층성을 강화했다. 앵커는 동정민 탐사보도팀장(39)과 여인선 기자(29)가 맡는다.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서 진행 실력을 인정받은 두 기자는 2030세대의 패기로 뉴스에 현장성과 생동감을 더할 예정이다. 동정민 앵커는 2004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프랑스 파리 특파원 등을 거친 베테랑 기자다. 동 앵커는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을 통틀어 가장 젊은 남자 앵커다. 여인선 앵커는 사회부 법조팀에서 ‘정운호 게이트’ 등을 취재했으며 ‘이슈 투데이’ ‘뉴스A’ 등을 안정감 있게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뉴스A에는 채널A의 ‘어벤저스’급 현장 기자들이 참여하는 고정 코너가 매일 다양한 포맷으로 마련돼 하루 뉴스를 더욱 깊이 있고, 현장감 있게 전달할 예정이다. 채널A ‘먹거리 X파일’과 ‘김진의 돌직구쇼’ 간판 진행자로 잘 알려진 김진 기자는 신설되는 ‘김진이 간다’(사진) 코너를 맡는다. 김 기자는 이 코너를 통해 먹을거리 등 실생활 아이템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 현장을 누빌 예정이다. 또 시청자의 궁금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취합해 김 기자가 직접 취재하는 소통형 제작도 할 예정이다. 이재명 차장은 ‘여랑야랑’ 코너로 가장 뜨거운 정치 이슈에 대한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공개한다. 이 기자는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국회팀장, 정치부 차장을 지냈고 ‘달콤쌉싸래한 정치’ 칼럼 코너를 통해 단단한 팬층을 확보한 베테랑 정치 기자다. 사회부 법조팀 성혜란 기자는 ‘팩트맨’ 코너를 통해 꼼꼼한 취재로 본격 팩트체크를 선보인다. 정치부 이동은, 사회부 사공성근 기자는 주요 정치·사회 이슈를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달 신설된 탐사보도팀은 다른 뉴스에서는 볼 수 없는 뉴스A만의 심층 보도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미 지난달 ‘탈북모자 사망 사건’을 발굴해 우리 사회의 아픈 이면을 들춰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탐사보도팀은 동 앵커가 직접 이끈다. 스튜디오도 달라지는 뉴스와 함께 젊고 도시적인 세련미를 더한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했다. 다양한 각도에 설치된 카메라와 조명을 활용해 스튜디오 내에서도 역동적인 뉴스 진행이 가능해졌다. 스포츠뉴스와 주말뉴스도 외부 스타 진행자를 영입하며 새롭게 단장했다. 주말 ‘뉴스A’는 KBS 9시 뉴스 앵커를 지낸 조수빈 씨가 단독 진행을 맡는다. 다양한 뉴스 진행 경험이 있는 조 앵커는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진행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중 스포츠뉴스는 KBS N 스포츠의 ‘아이 러브 베이스볼’을 진행하며 ‘야구 여신’으로 불린 윤태진 아나운서가 맡는다. 채널A는 “시청자들이 그날의 핵심 이슈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코너와 포맷을 준비 중”이라며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로 뉴스의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이서현 baltika7@donga.com·신규진 기자}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사진) 인사청문회에선 한 후보자의 이념적 편향성과 가짜뉴스 규제 등이 논란이 됐다. 이날 청문회에서 한 후보자는 “보수 언론이 무엇이냐”는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에 “보수, 진보 언론을 구분하는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한 후보자의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이력 등을 거론하며 이념적으로 편향돼 후보자로서 부적합하다고 비판했다. 한 후보자는 가짜뉴스 규제에 대해선 “현행법상 방통위는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 권한이 없다. 규제에 나서지도 않을 것”이라고 물러섰다. 한 후보자가 2009년부터 3년 동안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재직할 당시 8건의 MBC 관련 소송을 수임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최대한 자제했지만, 소홀했다”고 사과했다. 또 MBN이 출범 당시 자본금 중 600억 원을 직원 등의 명의로 대출받아 납부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선 “(종편 승인 취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사실 관계를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빙속 여제’ 이상화(30)와 가수 강남(32)이 부부가 된다. 각 소속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10월 1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들 소속사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결혼이란 사랑의 결실을 보게 됐다”며 “새 출발을 앞둔 이들의 앞날에 따뜻한 축복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둘은 지난해 9월 방송한 SBS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 in 라스트 인도양’에 출연해 친분을 쌓았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선수로 활약해 온 이상화는 5월 은퇴했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강남은 최근 한국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사진)가 30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KBS 수신료 인상, 지상파방송 중간광고 도입 등을 시사하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는 그동안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 악화를 이유로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비대칭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장을 대거 수용한 것으로 지상파 편향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는 2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서면질의답변서에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에 대해 “시청자의 불편 증가라는 부정적 효과도 있으나 제작 재원 확충을 통한 우수한 콘텐츠 제작 활성화와 복지 제고라는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답해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KBS 수신료에 대해서는 “38년간 동결되고 광고 수입이 감소해 재난, 교육 등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수행이 어려워졌다. 재정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며 인상의 필요성을 내비쳤다. 또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자는 주장에 대해선 “분리 징수로 인한 공영방송의 재정적 어려움과 국민 부담 가중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한 후보자는 또 유료방송채널(PP)이 종편을 의무 송출하는 규정에 대해선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의 의견을 존중해 의무 송출 폐지안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반대했다. 이 같은 한 위원장의 지상파 위주 입장에 대해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중간광고 등 첨예한 찬반 여론과 이해 당사자 간 논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방통위원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답변”이라며 “KBS 수신료 인상은 경영혁신 등 자구 노력과 정치적 독립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한 번만 다시 가볼게요.” 프로듀서 8명 앞에서 60초 동안 랩을 심사받는 Mnet ‘쇼미더머니8’ 2차 예선. 2일 방송에서 가사를 잊은 래퍼 윤훼이가 다시 해보겠다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은 20초 동안 랩을 두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치명적 실수였으나 그는 예선을 통과했다. 그를 합격시킨 래퍼 매드클라운은 “여성 래퍼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길 바란다. 제 혜안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가자의 실수에 엄격한 태도를 취해 온 ‘쇼미더머니’였기에 뜻밖의 결정이었다. 더구나 9일 방송에선 실수 없이 독특한 가사와 안무를 선보인 래퍼 지조가 탈락했다. ‘쇼미더머니2’에도 출연했던 그에 대해 프로듀서들은 “재지원한 분들에겐 조금 더 가혹하다”며 탈락 이유를 밝혔다. 이렇게 들쭉날쭉한 기준으로 통과와 탈락이 결정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 “심사 기준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투표 조작 의혹을 받는 Mnet ‘프로듀스’ 시리즈 등 최근 오디션 예능의 공정성에 대해 시청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특히 ‘쇼미더머니8’의 경우 ‘인맥 힙합’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나아가 프로듀서의 자율성에 기댄 심사가 모호하다며 뚜렷한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사 기준의 모호함과 더불어 “합격시킬 참가자를 미리 선정해 두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래퍼 22명을 선정한 23일 방송에선 경연 없이 9명이 방출됐다. 모두 더콰이엇, 양동근(YDG) 등 특별 심사위원 14명의 평가를 받고 일대일 경연에서 승리한 래퍼들이었다. 하지만 일대일 경연에서 패배했다가 패자부활전을 거쳐 다음 단계에 진출한 김승민, 릴타치는 22명에 포함됐다. 김승민은 프로듀서인 기리보이의 크루(Crew) ‘우주비행’, 릴타치는 역시 프로듀서인 스윙스가 이끄는 레이블 ‘위더플러그’의 소속 래퍼다. 스윙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합격, 불합격을 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절대 인맥힙합이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제작진은 “논란을 예상했지만 프로듀서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있는 출연자를 다루는 방식도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평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 의혹을 인정한 래퍼 영비는 ‘쇼미더머니8’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과거 단체 채팅방에서 여대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래퍼 킹치메인은 23일부터 모자이크 처리돼 방송됐다. 제작진은 “(학교 폭력 논란은) 인지하고 있었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프로듀스’ 논란 이후 오디션 예능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있다.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기준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한 번만 다시 가볼게요.” 프로듀서 8명 앞에서 60초 동안 랩을 심사받는 Mnet ‘쇼미더머니8’ 2차 예선. 2일 방송에서 가사를 잊은 래퍼 윤훼이가 다시 해보겠다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은 20초 동안 랩을 두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치명적 실수였으나 그는 예선을 통과했다. 그를 합격시킨 래퍼 매드클라운은 “여성 래퍼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길 바란다. 제 혜안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가자의 실수에 엄격한 태도를 취해 온 ‘쇼미더머니’였기에 뜻밖의 결정이었다. 더구나 9일 방송에선 실수 없이 독특한 가사와 안무를 선보인 래퍼 지조가 탈락했다. ‘쇼미더머니2’에도 출연했던 그에 대해 프로듀서들은 “재지원한 분들에겐 조금 더 가혹하다”며 탈락 이유를 밝혔다. 이렇게 들쭉날쭉한 기준으로 통과와 탈락이 결정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 “심사기준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투표조작 의혹을 받는 Mnet ‘프로듀스’ 시리즈 등 최근 오디션 예능의 공정성에 대해 시청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특히 ‘쇼미더머니8’의 경우 ‘인맥 힙합’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나아가 프로듀서의 자율성에 기댄 심사가 모호하다며 뚜렷한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사 기준의 모호함과 더불어 “합격시킬 참가자를 미리 선정해두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래퍼 22명을 선정한 23일 방송에선 경연 없이 9명이 방출됐다. 모두 더콰이엇, 양동근(YDG) 등 14명의 특별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고 1대1 경연에서 승리한 래퍼들이었다. 하지만 1대1 경연에서 패배했다가 패자부활전을 거쳐 다음 단계에 진출한 김승민, 릴타치는 22명에 포함됐다. 김승민은 프로듀서인 기리보이의 크루(Crew) ‘우주비행’, 릴타치는 역시 프로듀서인 스윙스가 이끄는 레이블 ‘위더플러그’의 소속 래퍼다. 스윙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합격, 불합격을 줄만한 이유가 있었다. 절대 인맥힙합이 아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작진은 “논란을 예상했지만 프로듀서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있는 출연자를 다루는 방식도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평이다. 학교폭력 가해자 의혹을 인정한 래퍼 영비는 ‘쇼미더머니8’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과거 단체 채팅방에서 여대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래퍼 킹치메인은 23일부터 모자이크 처리돼 방송됐다. 제작진은 “(학교 폭력 논란은) 인지하고 있었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프로듀스’ 논란 이후 오디션 예능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있다. 시청자들을 납득시킬 기준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국내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은 20여 년 동안 줄기찬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적 수준에 버금가는 진보를 이뤄냈다. 국내에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처음 등장한 영화는 ‘구미호’(1994년)였다. 당시 배우 고소영이 여우로 변신하는 과정은 하나의 형체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하는 ‘모핑’ 기술을 썼다. 물론 ‘쥬라기 공원’(1993년) 등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기술력은 격차가 컸다. ‘쉬리’(1998년)에선 고층 빌딩 폭파와 도심 총격전에 CG가 쓰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이후 조금씩 활용도는 늘어났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에선 팔다리가 잘려 나간 군인들을 비롯해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이 생생하게 구현됐고, ‘중천’(2006년)에선 실제 배우의 외모로 동작을 대신하는 ‘디지털 액터’ 기술을 선보였다. 그 성과로 한국의 CG업체들이 모여 만든 컨소시엄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포비든 킹덤’(2008년)의 특수효과 작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해운대’(2009년)는 CG작업에만 50억 원을 투입했다. 지진해일(쓰나미)이 부산을 덮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2017년부터 개봉한 ‘신과 함께’ 시리즈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약 90%에 CG를 사용했다. 드라마 역시 영화만큼 카메라 등 장비가 동일해지고 스태프 인적 교류가 정착되며 두 분야의 CG 기술 격차도 해소되고 있는 추세다. 중국 시장 진출은 2010년대부터 이뤄졌다. 덕분에 국내 업체 수도 100여 개로 늘었고, 100명 이상 인력을 가진 대형 업체들도 생겨났다. ‘적인걸2’(2013년), ‘미인어’(2016년), ‘홍해행동’(2018년), ‘유랑지구’(2019년) 등 중국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낸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매크로그래프, 덱스터스튜디오, 디지털아이디어 등 국내 업체들이 참여했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CG 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진출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업체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악조건이다. 한 VFX 업체 관계자는 “제작비에서 인건비를 제하면 연구개발에 비용을 투입할 여력이 없다. 일부 대형 업체를 제외한 군소 업체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도 걱정거리다. VFX 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제작 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지만 경쟁이 치열해 영업이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달빛을 받는 델루나의 외경이, 담쟁이 넝쿨로 꾸물꾸물 덮여간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대본에 실제 등장하는 글귀다. 밤이 찾아오며 낡은 건물이 고층 호텔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이 표현은 참으로 단출하다. 사실 드라마에서 전남 목포시에 있는 2층짜리 근대역사관이 모델인 건물은 해리포터 호그와트 마법학교보다도 근사한 초대형 호텔로 바뀐다. 이제 국내 영화나 드라마도 덜떨어진 컴퓨터그래픽(CG)을 ‘국뽕’으로 참고 보는 시대는 진즉에 지나갔다. 최고 시청률 10.45%(닐슨코리아)를 찍은 ‘호텔 델루나’는 특히 국내 시각효과의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에서 특화된 판타지 장르답게 CG 분량이 넘쳐난다. 귀신이 소멸되는 특수효과부터 간판이나 현장 스태프를 지우는 소소한 기술까지 이미 4000컷 가까이 CG 작업을 완료했다. 이 드라마의 CG 작업을 맡은 ‘디지털아이디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시각특수효과(VFX) 기술 업체다. 21일 경기 고양시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진 대표(41·사진)는 ‘호텔의 변신’ 역시 CG가 작품의 질을 끌어올린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실 처음엔 호텔이 한 5층 정도 높이로 변하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호텔이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바뀌어야 드라마 스타일에 어울린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사소한 대목도 CG로 디테일을 살린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는 “주인공 만월(아이유)이 매력적인 여성이라 판타지 효과도 더 반짝이고 예뻐야 했다”고 전했다. 디지털아이디어는 ‘퇴마록’(1998년)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 400여 편의 CG 제작을 담당해 왔다. 기차를 향해 질주하는 수백 명의 좀비 떼(영화 ‘부산행’)나 고구려와 당의 치열한 전투 장면(‘안시성’)도 이 업체가 맡았다. 판타지 드라마 ‘도깨비’(2016년)와 개화기 시대를 다룬 ‘미스터 션샤인’(2018년) 등도 마찬가지. 뭣보다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AR) 기술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VFX 업체지만 매주 밀려드는 촬영본 400여 컷을 작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호텔 델루나’는 전담인력만 250명이 넘게 투입됐다. 100% 사전 제작 드라마는 아닌지라, 대본과 촬영 일정이 밀려 마감 시간에 피가 마를 때도 여러 번이었다. “영화는 촬영 뒤 개봉할 때까지 4∼6개월 정도 시간이 있어요. 작업량도 2000컷 정도죠. 근데 드라마는 제작 기간도 유동적이고 분량도 훨씬 많아요. ‘미스터 션샤인’은 8000여 컷,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6000여 컷을 작업했어요.” 다행히 ‘호텔 델루나’의 CG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특히 드라마 초기부터 눈길을 끈 호랑이 CG는 “실제보다 더 사실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박 대표 역시 섬세한 공정을 거친 호랑이에 대한 애정이 크다. 이빨이나 눈알 등 신체를 꼼꼼히 디자인한 뒤 수만 개의 털이나 피부 질감, 무늬를 표현하는 텍스처 작업도 했다. 여기에 근육의 움직임을 얹고(리깅) 실제 촬영 장면에 호랑이를 배치하며(카메라 트래킹), 동작과 표정 등을 넣는 애니메이션 작업, 주변 환경에 따라 음영을 조정(라이팅 렌더링)하는 등 한 마리의 호랑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10단계 이상의 고난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이런 결과물은 그간의 기술이 축적돼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스터 고’(2013년)의 고릴라 링링을 만든 경험과 기술 덕분에 일부 공정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중국 영화 ‘몽키킹’(2014년)의 호랑이, ‘사바하’(2019년)의 뱀도 변형해 ‘호텔 델루나’에 재창조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열차는 ‘부산행’의 작업물을 바탕으로 재가공했다. 파란색 배경(크로마키)을 뒤로 우주인(이시언)과 만월이 만나는 3회 장면은 겨우 1분 내외지만, 촬영 화면에 3D 우주정거장을 입히는 작업만 40여 명이 3개월을 했다. 30여 종 귀신들의 서로 다른 디테일도 CG로 살렸다. 실제 촬영 본에 배우의 얼굴을 스캔해 작업한 CG를 덧입히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분장 후 파란 조명을 비추는 방법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점점 시청자들이 리얼리티를 원하다 보니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CG 장면은 단순히 때깔 좋은 화면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연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만월의 칼이 고목에 꽂히며 객잔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모형 칼과 나무 모양의 스펀지를 활용해 아이유의 이해를 도왔다. 호랑이 대역으로 현장 스태프가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는 모션을 연기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박 대표는 “CG로 대체할 도구를 보고 배우가 먼저 퀄리티를 걱정하기도 한다”고 웃었다. 2011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해 규모를 키워온 디지털아이디어는 지난해 반가운 계약도 따냈다. 지난해 ‘앤트맨과 와스프’, 올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등 마블 영화의 스크린X 가공 자격(영화관 좌우벽면 영상 제작)을 획득했다. 박 대표는 “한 달 반 정도 제작한 영상 (수준을) 보고 마블에서 깜짝 놀랐다”며 “제작비가 할리우드 수준만 된다면 그들보다 더 좋은 CG를 뽑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