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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이 개봉 닷새 만인 26일 관객 300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토요일인 25일에만 관객 약 94만9000명이 들며 역대 한국 영화 일일 관객 2위(1위는 ‘명량’의 약 125만7000명)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암살’ 개봉일인 2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제작사 케이퍼필름에서 최동훈 감독(44)을 만났다. 이미 ‘도둑들’(2012년)로 1298만 관객을 기록한 그이지만 순 제작비만 180억 원이 든 대작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다소 긴장돼 보였다. 한 시간 인터뷰 동안 커다란 머그컵에 커피를 두 번이나 더 부탁해 마셨고 대답을 망설일 때도 많았다. 최 감독의 사무실에는 염석진(이정재)이 끼고 나온 손가락 의수부터 안옥윤(전지현)의 안경집 등 각종 영화 소품과 사진, 스케치가 빼곡했다. ―일제강점기를 다뤄 성공한 영화가 별로 없다. 일종의 충무로 징크스인데…. “알면서도 너무 하고 싶었다. ‘타짜’(2006년)를 끝내고 처음 이 시나리오를 썼다. 그땐 성사가 안 됐지만 계속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전우치’(2009년) 속 영화 촬영장 장면에 ‘암살’을 찍는 모습을 넣기도 했다. 그 시대는 아무도 가지 않은 사막처럼 남겨진 시대다. 특히 독립군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드물다. 넓은 사막의 모래 한 줌을 관객들에게 선물처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1911년, 1933년, 1949년 세 시간대가 등장하는 데다 등장인물도 많다. 처음 출발점은 어디였나. “처음 구상 때는 추리극 느낌이 강했다. 이번에 시나리오를 다시 쓰며 시대와 인물에 좀 더 집중했다. 염석진과 안옥윤,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라는 인물을 먼저 떠올린 뒤 줄거리를 만들어 나갔다. 셋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친일파와 독립군,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방관자.” ―소품이나 세트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다. “차량 추격 신을 멋지게 찍고 싶었는데 옛날 차라 시속 30km밖에 속도를 못 냈다. 전 세계에 몇 대밖에 안 남은 차들이다 보니 차가 상전이었다. 한번은 중국촬영소에서 빌린 차로 찍다가 차 속도를 좀 냈는데 중국 직원이 마구 달려와서 차 키를 확 빼버리더라.”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들이 있다. 특히 말미는 교훈적으로 느껴지던데…. “그냥 암살 이야기를 할 거면 굳이 1930년대로 갈 필요가 없다. 그 시대를 관객이 엿보면서, 외롭고 쓸쓸한 정서를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끝 부분이 없다면 영화는 그냥 활극이 됐을 것이다. 그 마지막 장면들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속도가 빠르고 ‘쿨’한 범죄물을 주로 만들었는데 ‘암살’은 편집이나 인물을 그리는 방식 등 여러 면이 다르다. 심지어 ‘최동훈 감독의 영화라는 것만 빼면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게 대체 누구냐.(웃음) 영화를 만들다 보면 주변에서 자꾸 감독을 카테고리화한다. 그럼 나는 ‘이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도 모르는 나를 알려주는 건가?’ 하고 생각하지. 동시에 그런 평가에 내가 속박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암살’은 이전과 달리 영화가 막 달려가다 잠깐 멈춰 서며 그 장면 속의 인물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연속으로 흥행작을 냈는데도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전작은 나의 적’이라고 말한 적도 있던데….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충무로 흥행 공식이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언제나 새로운 걸 보고 싶어 한다. 편한 길을 가면 안 된다. 이전 영화도 만들 때는 안 될 거라고 욕 많이 먹었었다. ‘범죄의 재구성’(2004년)은 시나리오 써놓고 2년 반을 묵혔고, ‘타짜’도 워낙 원작이 유명해 오만하단 말을 들었다. ‘전우치’는 말할 것도 없고. 남들이 다 안 될 거라고 하는 그 긴장 속에서 영화를 만들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혹시 구상해 둔 후속작도 있나. “없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다. 3년에 한 편꼴로 찍고 있는데 10편 찍으면 30년 걸리는구나 생각을 하니까 덜컥 겁도 나고 영화를 더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감독 일이 삼한사온이다. 엄청나게 고생하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있다.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재벌 3세가 나쁜 짓을 한다. 형사가 그를 쫓는다. 모두가 질 거라고 한 싸움. 하지만 결국 형사는 재벌 3세를 잡는다. 8월 5일 개봉하는 영화 ‘베테랑’(15세 이상)의 줄거리는 간결하다. 꼬고 뒤집는 반전 없이 결말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린다. 그런데 재미있다. 속 시원한 액션과 현장감 넘치는 대사, 배우들의 차진 호흡이 빚어낸 결과다. ‘짝패’(2006년), ‘부당거래’(2010년) 등 독특한 액션영화를 만들어 왔고 ‘베를린’(2013년)으로 관객 약 716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감독 타이틀까지 얻은 류승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영화는 외제 중고차 밀매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광수대) 소속 오 팀장(오달수)과 서도철(황정민), 그리고 동료 형사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사건 수사를 도우며 서도철과 안면을 튼 중고차 트레일러 운전사 배 기사(정웅인)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자 하청업체의 본사인 신진물산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배 기사의 1인 시위는 회사의 실질적 오너이자 기획실장인 조태오(유아인) 눈에 띄고, 사무실로 불려가 일방적으로 폭행당한 뒤 회사 계단에서 떨어져 혼수상태가 된다. 뭔가 냄새를 맡은 서도철은 조태오를 쫓기 시작한다. 류 감독은 이미 2010년 ‘부당거래’에서 광수대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적이 있다. 당시 실제 광수대 형사들을 만났던 것이 인연이 돼 광수대를 이번 영화의 주요 무대로 삼았다. 류 감독은 “광수대 형사들은 한번 물면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는 이들”이라며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형사들의 실제 대화나 사건 얘기를 영화에 녹였다”고 말했다. 재벌 3세의 폭행 사건이라는 점은 과거의 몇몇 사건을 떠올리게 하지만 류 감독은 “무엇을 봤건 (영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단언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조태오가 해외로 도주하기 직전 환각파티를 벌이는 현장을 서도철과 동료들이 덮치고, 여기서 도망친 조태오가 서울 명동 한복판을 자동차를 탄 채 질주하는 장면이다. 명동에서 차량 추격전이 촬영된 것은 처음으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8차로와 그 일대 골목을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에 통제하고 하루에 2∼3시간씩 조금씩 촬영해야 했다. 제작사 외유내강의 조성민 프로듀서는 “약 3개월의 전체 촬영 기간 중 한 달가량을 마지막 작전 촬영에 썼다”며 “차량 100여 대가 동원됐고, 이 중 조태오가 탔던 7000만 원가량의 머스탱 차량를 포함해 차량 30여 대가 완전히 부서졌다”고 말했다. 재벌 3세 조태오는 열 받으면 사람 발목쯤은 아무렇지 않게 분지르는 악역이다. ‘완득이’(2011년), 드라마 ‘밀회’(2014년) 등에서 주로 가난하고 순수한 청년 역을 맡았던 유아인은 처음 맡은 악역에서 ‘이게 본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류 감독은 조태오를 재벌 3세이면서도 격투기 애호가로 설정해 마지막 장면에서 서도철의 ‘길거리표’ 액션과 조태오의 ‘배운’ 액션을 정면충돌시킨다. 황정민은 ‘신세계’(2012년) 속 정청의 껄렁함에 ‘국제시장’(2014년) 속 덕수의 수더분함을 더해 서도철을 연기하고 오달수는 그와 ‘국제시장’에 이어 다시 한번 절정의 호흡을 보여준다. 모델 출신다운 긴 다리로 시원한 발차기를 선보이며 푼수 여형사 미스 봉을 연기한 장윤주도 인상적이다. 다만 조태오의 참모 최 상무(유해진)가 재벌가답지 않은 어설픈 실수를 연발하며 사건 매듭이 너무 쉽게 풀려 버린다는 단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습도 90%를 넘나드는 짜증스러운 여름 날씨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액션 장면들의 쾌감이 단점을 상쇄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흔히 불륜 드라마라고 하면 ‘막장 드라마’를 떠올린다. 찢어질 듯한 음악을 배경으로 표독스럽게 눈을 치뜨고 상대방 뺨을 후려치는…. 하지만 이건 분명 오해다.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보더라도 불륜은 인간의 밑바닥, 적나라한 민얼굴을 강제로 노출시키는 장치로 이용돼 왔다. 지난해 가을 미국에서 방영된 ‘디 어페어’는 뻔한 불륜물에 각종 기법을 도입해 뻔하지 않게 가공해낸 연출력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첫 소설을 낸 작가이자 학교 교사인 주인공 노아(도미닉 웨스트)는 아내 헬렌, 아이 넷과 함께 뉴욕 브루클린의 집에서 장인의 집이 있는 해변가의 작은 마을 몬톡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언뜻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아이 넷을 건사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장인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감당해야 하는 노아는 사실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다. 중년의 위기를 겪는 40대에게 휴가지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인 앨리슨(루스 윌슨)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노아의 묘사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외로워 보이는 여자’인 앨리슨은 2년 전 아들을 사고로 잃고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 번째 책을 써야 하는 노아에게 앨리슨은 영감의 원천이 되고, 둘은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여기까진 흔히 보는 인물과 전개다. 하지만 ‘디 어페어’는 여기에 플래시백과 추리기법을 첨가한다. 한 회를 반으로 갈라 앨리슨과 노아가 각각의 관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두 사람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소는 바로 경찰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앞이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건만 두 사람의 기억은 입은 옷부터 그날 한 대화까지 서로 다르다. 회상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감정은 더욱 깊숙이 묘사되고, 기억 속에 묻힌 사건의 진상은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연출의 원천을 따지자면 고전 중의 고전 영화로 역시 남녀 간의 치정이 얽혀 있는 ‘라쇼몽’(1950년)이 있을 것이다. 요즘 작품 중에선 남녀가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의 사랑을 다르게 기억한다는 점에서 영화 ‘엘리노어 릭비’(2015년)를, 경찰서 심문 중 과거를 떠올리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미드 ‘트루 디텍티브’(2014년)를 닮았다. ‘디 어페어’는 독특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묘사,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올해 골든글러브 TV시리즈 드라마부문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소 저조한 시청률에도 시즌2가 확정돼 올해 하반기 방영된다. 사랑에는 죄가 없다고나 할까. 문제는 불륜이 아니라, 불륜을 어떻게 다루느냐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흔히 불륜 드라마라고 하면 ‘막장 드라마’를 떠올린다. 찢어질 듯한 음악을 배경으로 표독스럽게 눈을 치뜨고 상대방 뺨을 후려치는…. 하지만 이건 분명 오해다. 동서고금의 고전들을 보더라도 불륜은 인간의 밑바닥, 적나라한 맨얼굴을 강제 노출시키는 장치로 이용돼 왔다. 지난해 가을 미국에서 방영된 ‘디 어페어’는 뻔한 불륜물에 각종 기법을 도입해 뻔하지 않게 가공해낸 연출력의 결정체라 할만 하다. 첫 소설을 낸 작가이자 학교 교사인 주인공 노아(도미닉 웨스트)는 아내 헬렌과 아이 넷과 함께 뉴욕 브룩클린의 집에서 장인의 집이 있는 해변가의 작은 마을 몬톡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언뜻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아이 넷을 건사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장인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감당해야 하는 노아는 사실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다. 중년의 위기를 겪는 40대에게 휴가지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인 앨리슨(루스 윌슨)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노아의 묘사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외로워 보이는 여자’인 앨리슨은 2년 전 아들을 사고로 잃고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다. 두 번째 책을 써야 하는 노아에게 앨리슨은 영감의 원천이 되고, 둘은 걷잡을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든다. 여기까진 흔히 보는 인물과 전개다. 하지만 ‘디 어페어’는 여기에 플래시백과 추리기법을 첨가한다. 한 회를 반으로 갈라 앨리슨과 노아가 각각의 관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두 사람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소는 바로 경찰서,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 앞이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건만 두 사람의 기억은 입은 옷부터 그날 한 대화까지 서로 다르다. 회상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감정은 더욱 깊숙이 묘사 되고, 기억 속에 묻힌 사건의 진상은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연출의 원천을 따지자면 고전 중의 고전 영화로 역시 남녀 간의 치정이 얽혀 있는 ‘라쇼몽’(1950년)이 있을 것이다. 요즘 남녀가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의 사랑을 다르게 기억한다는 점에선 영화 ‘엘리노어 릭비’(2015년)를, 경찰서 심문 중 과거를 떠올리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미드 ‘트루 디텍티브’(2014년)를 닮았다. ‘디 어페어’는 독특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묘사,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올해 골든글러브 TV시리즈 드라마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소 저조한 시청률에도 시즌2가 확정돼 올해 하반기 방영된다. 사랑에는 죄가 없다고나 할까. 문제는 불륜이 아니라, 불륜을 어떻게 다루느냐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외화를 볼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막이다. 특히 음악영화나 코미디영화 같은 장르 영화에서 가사나 대사 속 농담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면 영화의 ‘맛’이 떨어지기 마련. 최근 자막 작업에 공을 들여 차별화를 꾀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9일 개봉한 영화 ‘러덜리스’(12세 이상 관람가)의 자막 작업에는 가수 호란이 참여했다. ‘러덜리스’는 총기 난사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샘이 생전에 아들이 작곡한 노래 CD와 작곡노트를 발견한 뒤 뒤늦게 아들을 알아가며 상처를 치유한다는 줄거리. 그만큼 노래 가사는 중요하다. 호란은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자막을 바탕으로 영화 속 노래 가사를 가수답게 수정했다. ‘그 천사와 악마는/남몰래 친한 사이/날 가운데 끼고/밤새도록 앉아있네’(전문번역가 번역)라는 가사는 ‘천사와 악마는/사실은 한패야/날 가운데 끼고/밤새도록 앉았네’(호란 번역)로 바뀌었다. 또 ‘아끼는 신발을/신고 깨어나/벌써 해가 넘어 갔어’(전문번역가)는 ‘아끼는 신발을/신은 채로 깨어나니/해는 져서 벌써 오후’(호란)처럼 운율을 살리는 방향으로 자막이 ‘업그레이드’됐다. 영화의 수입·배급사인 그린나래미디어는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마이 선(My Son)’ 후렴구에서 원래는 ‘내 아들’이라고 번역된 가사를 ‘내 아들아’라고만 바꿨는데도 곡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며 “가수이면서 전문적인 영어 책 번역 경험이 있는 호란 씨가 가사의 맛을 살렸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개봉한 ‘도쿄 트라이브’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배틀-랩 뮤지컬’을 표방한 영화. 일본 도쿄의 갱단들이 영역 쟁탈전을 벌인다는 줄거리로 할머니부터 어린 소년까지 대부분 배역의 대사가 랩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래퍼로 활동 중인 영다이스, KOHH 등이 배우들의 랩을 지도하고, 출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어 랩 가사를 한국어로도 랩처럼 느껴지도록 번역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번역을 맡은 정구웅 번역가는 “일본어 랩 가사의 내용을 반영하면서 한국어로도 라임을 느낄 수 있도록 번역했고, 가사에 맞춰 배우들이 취하는 동작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놈들에게 들리지 않도록/이곳을 선택했다/지금이야말로 단결해/우리들이 나설 차례다’라는 가사를 ‘놈들 눈에 띄지 않게/여기서 뭉친다/오늘만은 단결해/우리가 덮친다’라고 수정해 ‘∼친다’로 가사가 끝나도록 운율을 살렸다. 또 ‘패트롤, 수고하는 경찰, 감사/그자들이 관리하는 건 아냐, 도로’로 번역되는 가사를 ‘순찰하며 고생하는 경찰들의 노고/그자들이 통제하는 건 아니야 도로’로 라임을 맞춰 바꿨다. 또 자막을 한꺼번에 화면에 띄우는 대신 배우 동작과 가사에 맞췄다. 가령 ‘경찰들의 노고’ 부분의 랩 가사 자막을 경찰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동작에 맞춰 내보내는 식이다. 여기에 랩의 속도에 맞춰 자막의 색깔이 바뀌고, 자막이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게 하거나 심지어 자막이 화면 바깥으로 날아가는 특수효과식 ‘액션 자막’도 도입했다. 자막에 공을 들였다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5월 개봉했던 영화 ‘스파이’는 코미디영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tvN 코미디 프로 ‘SNL 코리아’의 작가진이 함께 자막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극중 여성 성기를 뜻하는 영어 욕설인 ‘선더컨트(thundercunt)’를 ‘개창녀’라고 번역한 점, 남성은 여성에게 반말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한 점, 몸매와 관계없는 대사에서 주인공을 ‘뚱땡이’로 부르는 것으로 번역한 자막에 대해 누리꾼들이 “여성 중심의 코미디 영화라는 영화의 진의를 왜곡했다”고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외화를 볼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막이다. 특히 음악영화나 코미디영화 같은 장르영화에서 가사나 대사 속 농담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면 영화의 ‘맛’이 떨어지기 마련. 최근 자막 작업에 공을 들여 차별화를 꾀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9일 개봉한 영화 ‘러덜리스’(12세 이상 관람가)의 자막 작업에는 가수 호란이 참여했다. ‘러덜리스’는 총기 난사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샘이 생전에 아들이 작곡한 노래 CD와 작곡노트를 발견한 뒤 뒤늦게 아들을 알아가며 상처를 치유한다는 줄거리. 그만큼 노래 가사는 중요하다. 호란은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자막을 바탕으로 영화 속 노래 가사를 가수답게 수정했다. ‘그 천사와 악마는/남몰래 친한 사이/날 가운데 끼고/밤새도록 앉아있네’(전문번역가 번역)라는 가사는 ‘천사와 악마는/사실은 한패야/날 가운데 끼고/밤새도록 앉았네’(호란 번역)로 바뀌었다. 또 ‘아끼는 신발을/신고 깨어나/벌써 해가 넘어 갔어’(전문번역가)는 ‘아끼는 신발을/신은 채로 깨어나니/해는 져서 벌써 오후’(호란)처럼 운율을 살리는 방향으로 자막이 ‘업그레이드’ 됐다. 영화의 수입·배급사인 그린나래미디어는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마이 선(My Son)’ 후렴구에서 원래는 ‘내 아들’이라고 번역됐던 가사를 ‘내 아들아’라고만 바꿨는데도 곡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며 “가수이면서 전문적인 영어 책 번역 경험이 있는 호란 씨가 가사의 맛을 살렸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개봉한 ‘도쿄 트라이브’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배틀-랩 뮤지컬’을 표방한 영화. 일본 도쿄의 갱단들이 영역 쟁탈전을 벌인다는 줄거리로 할머니부터 어린 소년까지 대부분 배역의 대사가 랩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래퍼로 활동 중인 영다이스, KOHH 등이 배우들의 랩을 지도하고, 출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어 랩 가사를 한국어로도 랩처럼 느껴지도록 번역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번역을 맡은 정구웅 번역가는 “일본어 랩 가사의 내용을 반영하면서 한국어로도 라임을 느낄 수 있도록 번역했고, 가사에 맞춰 배우들이 취하는 동작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놈들에게 들리지 않도록/이곳을 선택했다/지금이야말로 단결해/우리들이 나설 차례다’라는 가사를 ‘놈들 눈에 띄지 않게/여기서 뭉친다/오늘 만은 단결해/우리가 덮친다’라고 수정해 ‘~친다’로 가사가 끝나도록 운율을 살렸다. 또 ‘패트롤, 수고하는 경찰, 감사/그자들이 관리하는 건 아냐, 도로’로 번역되는 가사를 ‘순찰하며 고생하는 경찰들의 노고/그자들이 통제하는 건 아니야 도로’로 라임을 맞춰 바꿨다. 또 자막을 한꺼번에 화면에 띄우는 대신 배우 동작과 가사에 맞췄다. 가령 ‘경찰들의 노고’ 부분의 랩 가사 자막을 경찰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동작에 맞춰 내보내는 식이다. 여기에 랩의 속도에 맞춰 자막의 색깔이 바뀌고, 자막이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게 하거나 심지어 자막이 화면 바깥으로 날아가는 특수효과 식 ‘액션 자막’도 도입했다. 자막에 공을 들였다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5월 개봉했던 영화 ‘스파이’는 코미디영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tvN 코미디 프로 ‘SNL’의 작가진이 함께 자막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극중 여성 성기를 뜻하는 영어 욕설인 ‘썬더컨트’(thundercunt)를 ‘개창녀’라고 번역한 점, 남성은 여성에게 반말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한 점, 몸매와 관계없는 대사에서 주인공을 ‘뚱땡이’로 부르는 것으로 번역한 자막에 대해 누리꾼들이 “여성 중심의 코미디 영화라는 영화의 진의를 왜곡했다”고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흔히 공주라고 하면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동화 속 공주님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 공주, 혹은 왕비는 권력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성별 때문에 권력을 쥘 수 없었던 비극적 존재다. 이런 금기를 깼지만 그 대신 악녀라는 후세의 평가를 받았던 공주와 왕비 30명을 ‘전사’ ‘왕위 찬탈자’ ‘생존자’ ‘난잡한 여인들’ 등 7가지 주제로 소개했다. 오스만튀르크의 록셀라나는 술탄의 하렘에 노예로 들어가 왕비가 된 뒤 술탄을 보좌하는 역할까지 했던 인물이다. ‘투란도트’의 모델인 몽골 제국의 쿠툴룬, 당나라의 측천무후도 역시 자신의 능력으로 운명을 개척한 이들이다. 공주이기 때문에 미쳐 버렸던 이들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는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피해망상과 대인기피에 시달렸다. 가족과 친척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마저 정부와 동반 자살을 하는 등 잇따른 비극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1980년대 ‘TNT 공주’라는 별칭을 얻은 파티광 글로리아 공비와 같은 비교적 최근의 공주부터 자신을 로마노프 공주라고 주장했던 기억상실증 환자 프란치스카, 즉 가짜 공주의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수동적인 존재로 폄하됐던 공주들 중에 지략이 뛰어나거나 무예가 출중한, 한마디로 능력 있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음을 흥미롭게 일러주는 책이다. 이들은 사랑이나 권력 등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성들이기도 했다. 원제인 ‘나쁘게 행동한 공주들(Princesses behaving badly)’ 대신 ‘무서운 공주들’로 바뀐 제목은 이런 여자들을 괴기스러운 존재로만 단정하는 듯해 불편하다. 공주들을 실제 외모와 관계없이 예쁘게만 그린 일러스트도 오히려 아쉬움을 남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애니메이션 명가(名家)로 꼽히는 픽사가 1995년 첫 장편 ‘토이 스토리’를 내놓은 지 20년이다. 장난감을 시작으로 벌레(‘벅스 라이프’), 물고기(‘니모를 찾아서’), 아이들의 비명을 먹고 사는 괴물(‘몬스터 주식회사’)처럼 예상을 벗어난 소재를 설득력 있게 그려 온 픽사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바로 인간의 뇌 속을 그린 ‘인사이드 아웃’(9일 개봉·전체 관람가)이다. 주인공은 열한 살 난 소녀 라일리와 그 머릿속에 살고 있는 다섯 가지 감정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다.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는 다섯 감정은 저마다 성격이 제각각이다. 기쁨은 늘 활기차고, 슬픔은 축 처져 있고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식이다. 다섯 감정은 라일리와 함께 태어나 성장해 간다. 평화롭던 다섯 감정의 세계는 라일리가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하며 일대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어린 소녀에게 대도시의 낯선 환경, 친구들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감당하기 버겁다. 감정들 역시 라일리와 함께 요동친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기쁨과 슬픔은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뇌 속 어딘가로 떨어지고, 세 감정만 남은 본부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만다. 영화가 아직도 상당 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뇌를 그리는 방법은 기발하면서도 명쾌하다. 모든 기억은 ‘기억 구슬’에 저장되고, 그중 오래된 기억은 거대한 책꽂이처럼 생긴 ‘장기 기억 보관소’에 저장된다. 꿈을 연출하는 ‘꿈 제작소’, 생각을 실어 나르는 ‘생각의 기차’, 오래된 기억이 폐기 처분되는 ‘기억 쓰레기장’ 등 드넓은 뇌 속 장소들은 그대로 기쁨과 슬픔이 겪는 블록버스터 뺨치는 모험의 무대가 된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백미는 기억을 추상화된 개념으로 변환하는 ‘추상화 공간’이다. 영화는 우연히 이 공간에 들어선 슬픔과 기쁨이 서서히 추상화하는 과정을 3D 입체였던 캐릭터가 2D 평면으로 변하고, 다시 선과 점이 되어가는 모습으로 시각화했다.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색채가 풍부한 뇌 속 세계로 모험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한 부모, 그리고 ‘난 대체 언제 어떻게 어른이 된 거지’라고 한 번이라도 한탄해 본 어른이라면 누구나 영화의 매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카2’(2011년),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년)의 부진으로 “이제 한물갔다”는 평을 받던 픽사가 확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픽사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뒤집기(inside-out)’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아이언맨’ ‘어벤져스’ ‘다크나이트’ ‘해리포터’…. 모두 최근 몇 년 새 할리우드에서 ‘대박’을 터뜨린 시리즈라는 공통점이 있는 영화다. 요즘 할리우드는 속편에 푹 빠져 있다. 제목에 ‘2’ ‘3’ 숫자만 달라진 속편이 다가 아니다. 각종 형태의 ‘속편 전성시대’를 맞이한 할리우드 추세에 맞춰 알아두면 좋을 용어를 정리했다. ▽리부트(reboot)=2일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리부트’다. 컴퓨터를 껐다 켜는 ‘리부트’처럼 영화에서 리부트는 등장인물과 세계관 등 기존 영화의 골격만 남기고 나머지를 완전히 새로 설정해 사실상 새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반기 개봉하는 ‘판타스틱4’도 기존 영화의 리부트다. 리부트는 주로 유효기한이 다한 과거 시리즈물을 다시 시작할 때 사용한다. 2005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가 대표적. 기존 배트맨 시리즈는 참고만 하고 배트맨의 탄생부터 새로 다뤘다. 이어 ‘다크나이트’(2008년)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년)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할리우드의 리부트 열풍을 이끌었다. 제작진과 주연 배우가 교체되면서 시리즈를 리부트하는 경우도 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1∼3편의 샘 레이미 감독, 주인공 피터 파커 역의 토비 맥과이어 등이 하차하자 시리즈를 리부트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년)을 내놨다. ‘스파이더맨’은 2017년 또다시 리부트된다. 스파이더맨은 마블 코믹스의 대표 히어로지만 영화화 판권은 소니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어 정작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영화에는 등장할 수 없는 ‘비운의 히어로’였다. 올 초 두 회사가 다른 영화에 스파이더맨이 출연할 수 있도록 하고, 새 시리즈도 함께 제작하기로 합의해 리부트가 결정됐다. ▽시퀄(sequel)=흔히 알고 있는, 이전 영화의 다음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이다. 30일 개봉하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올해 하반기 개봉하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도 기존 스타워즈 시리즈의 속편이다. ‘메이즈 러너: 스코치 트라이얼’(9월) ‘007 스펙터’ ‘헝거게임: 더 파이널’(11월) 등의 속편들도 줄줄이 개봉될 예정이다. 수십 년 전 영화의 속편 제작도 붐을 이루고 있다. 상영 중인 ‘쥬라기 월드’는 ‘쥬라기 공원’ 3편(2001년)에 이어 14년 만에 나온 4편이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역시 1985년 3편 이후 30년 만에 나온 속편이다. 1996년 나왔던 SF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의 2편도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촬영하고 있다. ▽프리퀄(prequel)=시리즈 첫 편보다 앞선 과거를 다룬다. 줄거리와 주인공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줘 시리즈의 설득력과 당위성을 높인다. ‘엑스맨’ 시리즈의 4편 ‘엑스맨의 탄생: 울버린’(2009년)은 주인공 울버린이 어떻게 특수한 능력을 갖게 됐는지 보여주는 프리퀄이다. 하지만 ‘엑스맨의 탄생’이 전작보다 흥행하지 못하자 엑스맨들의 지도자인 자비에 교수와 악당 매그니토의 과거를 다룬 또 다른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2011년 개봉했다. ▽스핀오프(spin-off)=파생을 뜻하는 단어로 기존 영화 속 조연이나 소재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이 대표적이다. ‘신비한…’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등장했던 마법학교 교과서다.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같은 제목으로 쓴 책이 원작이다. 23일 개봉하는 ‘숀더쉽’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전설로 꼽히는 ‘월레스 앤 그로밋’의 양떼가 주인공이고, 30일 개봉하는 ‘미니언즈’는 2010년 개봉 영화 ‘슈퍼배드’에서 악당을 섬기는 단세포생물 미니언이 주인공인 스핀오프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애니메이션 명가(名家)로 꼽히는 픽사가 1995년 첫 장편 ‘토이스토리’를 내놓은 지 20년이다. 장난감을 시작으로 벌레(‘벅스라이프’), 물고기(‘니모를 찾아서’), 아이들의 비명을 먹고 사는 괴물(‘몬스터주식회사’)처럼 예상을 벗어난 소재를 설득력 있게 그려온 픽사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바로 인간의 뇌 속을 그린 ‘인사이드 아웃’(9일 개봉·전체 관람가). 주인공은 열한 살 난 소녀 라일리와 그 머릿속에 살고 있는 다섯 가지 감정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다.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는 다섯 감정은 저마다 성격이 제각각이다. 기쁨은 늘 활기차고, 슬픔은 축 쳐져 있고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식이다. 다섯 감정은 라일리와 함께 태어나 성장해간다. 평화롭던 다섯 감정의 세계는 라일리가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하며 일대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어린 소녀에게 대도시의 낯선 환경, 친구들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감당하기 버겁다. 감정들 역시 라일리와 함께 요동친다. 어느 날 갑작스런 사고로 기쁨과 슬픔은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뇌 속 어딘가로 떨어지고, 세 감정만 남은 본부는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만다. 영화가 아직도 상당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뇌를 그리는 방법은 기발하면서도 명쾌하다. 모든 기억은 ‘기억 구슬’에 저장되고, 그중 오래된 기억은 거대한 책꽂이처럼 생긴 ‘장기 기억 보관소’에 저장된다. 꿈을 연출하는 ‘꿈 제작소’, 생각을 실어 나르는 ‘생각의 기차’, 오래된 기억이 폐기처분되는 ‘기억 쓰레기장’ 등 드넓은 뇌 속 장소들은 그대로 기쁨과 슬픔이 겪는 블록버스터 뺨치는 모험의 무대가 된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백미는 기억을 추상화된 개념으로 변환하는 ‘추상화 공간’이다. 영화는 우연히 이 공간에 들어선 슬픔과 기쁨이 서서히 추상화하는 과정을 3D입체였던 캐릭터가 2D 평면으로 변하고, 다시 선과 점이 되어가는 모습으로 시각화했다.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색채가 풍부한 뇌 속 세계로 모험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한 부모, 그리고 ‘난 대체 언제 어떻게 어른이 된 거지’라고 한번이라도 한탄해본 어른이라면 누구나 영화의 매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카2’(2011년)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년)의 부진으로 “이제 한물갔다”는 평을 받던 픽사가 확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픽사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뒤집기’(inside-out)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최근 ‘먹방’ 열풍을 잇는 제1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가 9∼12일 서울 동작대로 메가박스 아트나인에서 열린다. 올해 제68회 칸영화제 초청작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개막작으로 음식 영화 30여 편을 상영한다. ‘바베트의 만찬’ ‘담뽀뽀’ 등 고전 음식 영화, 국내에서 처음 상영되는 ‘브라 씨 부자의 맛있는 가업 잇기’ ‘페이스트리의 왕’, 지속 가능한 밥상을 탐구하는 ‘푸드 체인스-착취의 역사’ ‘슬로푸드 이야기’ 등 다양한 음식 영화를 맛볼 수 있다. 치킨과 맥주, 초콜릿과 커피 등 음식을 먹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한여름 밤의 맛’ 등 부대 행사도 함께 열린다. 온라인 예매는 메가박스 홈페이지(www.megabox.co.kr)에서 가능하며 현장 매표소도 운영된다. 문의 영화제 블로그(blog.naver.com/seoulfoodfilm).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대한민국 건국 직후의 사회상을 볼 수 있는 영화 ‘해연’(海燕·1948년)이 일본에서 발견돼 7일 처음 공개됐다. 나운규 주연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년)로 유명한 이규환 감독(1904∼1982)이 전성기 때 만든 작품. 이 감독 작품 중 은퇴기념작인 ‘남사당’(1974년) 외에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것은 이 영화가 유일하다. 원로배우 조미령(86)이 19세 때 출연한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날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한국영상자료원(KOFA)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본 ‘해연’은 74분 분량의 흑백 영화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영화는 타락한 약혼자 철수(박학)에게 실망한 정애(남미림)가 부랑아를 교육하는 소년감화원 선생님으로 떠나면서 시작한다. 정애의 동생 정숙(조미령)은 계모와 살기 힘들어 감화원을 찾고, 말썽쟁이 소년 수길(최병호)과 가까워진다. 정애와 정숙의 노력으로 수길과 다른 소년들이 감화되는 내용. 장광헌 수집부장은 “2014년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 고베영화자료관을 방문했을 때 이 필름을 발견했다”며 “과거 수출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영화엔 건국 직후 경제 발전과 안정된 삶을 염원하는 사회 분위기와 길거리에 넘쳐나던 부랑아의 모습 등 당시 서울 풍경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료원은 15, 19일 시네마테크 KOFA에서 이 영화를 일반에 공개한다. 02-3153-2075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판 드라마 ‘심야식당’(SBS)이 4일 처음 그 ‘정체’를 드러냈다. 혹평이 쏟아졌다. “콘셉트는 사왔는데 철학은 사올 수 없었겠지” “어색해서 보는 내내 불편하다”…. (시청자 게시판) 도쿄 뒷골목을 서울 종로 뒷골목으로 설정한 것은 그럴싸했다. 1회 김에 싸 먹는 가래떡구이와 2회 메밀전이 나온 것도 서민적이면서 개성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일식인지 한식인지 영 국적 불명인 식당 인테리어나 주인의 복장, 그냥 ‘아저씨’나 ‘주인장’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마스터’라고 부르는 어색한 호칭도 뭐, 원작을 반영한 것이라 치고 얼렁뚱땅 넘어가 보자. 하지만 한국판은 ‘심야식당’의 리메이크라고 하기엔 몇 가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우선 음식드라마면서 음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원작인 일본 ‘심야식당’은 요리 과정이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꼭 보여준다. 한국판에는 이런 장면이 없다. 가래떡구이를 조미 김에 싸 먹으면 어떤 맛이 나는지, 메밀전에는 무슨 속 재료가 들어가 어떤 맛을 내는지 짐작할 길이 없다. 음식 맛이 와 닿지 않으니 음식이 주는 의미도 와 닿지 않는다. 2화에서 “마스터의 메밀전은 따뜻하고 진솔해서 좋았어요” 같은 대사가 억지스러워지는 이유다. 등장인물이 바뀌면서 원작의 의미가 퇴색된 것도 문제다. 일본판 ‘심야식당’에는 야쿠자, 건달, 게이바 마담, 스트립걸, 퇴물 포르노 배우 등이 등장한다. 남들이 잠든 시간까지 일을 하거나 대낮에 돌아다닐 수 없는 직업이라 자정이 넘어서야 밥집을 찾는, 소외되고 지친 이들을 따뜻한 음식 한 그릇으로 위로한다는 것이 원작의 메시지다. 그런데 한국판에서는 원작의 주요 인물인 게이바 마담 고스즈가 빠졌다. 제작진은 2일 제작발표회에서 “(한국에선) 소수자를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적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스즈를 대체한 등장인물은 직업이 불분명한 동네 아저씨 ‘김 씨’와 대를 이어 한의원을 하고 있는 한의사 ‘돌팔이’ 등이다. 과연 이들이 2015년 한국에서 ‘마음의 허기’에 시달리는 소외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명한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일은 늘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소규모로 개봉한 일본 극장판이 한 달도 채 안 돼 관객 10만 명을 모으고, ‘먹방’이 대세인 상황에서 원작의 이름값에 적당히 조미료만 치면 성공할 것이라고 한국판 제작진이 안이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형 평면 TV가 떡하니 달려 있고 고급 오디오가 놓인 한국판 ‘심야식당’의 풍경은 웃기는 것조차 실패한 시트콤에 가깝다. 귤이 바다를 건너 탱자가 됐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스포일러 ‘극혐’(극히 혐오)!” 엠넷의 힙합 오디션 프로 ‘쇼미더머니’ 시즌4가 스포일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5, 6일 각종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쇼미더머니 4’ 본선 진출자”라며 출연진 16명과 이들이 속한 팀 이름이 떠돌았다. 엠넷 측은 “출연진과 관계자에게 결과를 유출할 경우 제재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있으며 이번 건에 대해서도 서약서대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작진은 이미 예선전 장소와 출연 사실을 외부에 알린 8명을 강제 탈락시키기도 했다. ‘쇼미더머니’처럼 매회 탈락자를 가리는 녹화 경연 프로에서 스포일러는 경계 대상 1호다. 출연진 정체를 철저히 숨기는 MBC ‘복면가왕’은 해당 가수는 물론이고 매니저와 코디네이터까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아는 연예인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라’ ‘무대 위에서 장갑 착용 필수’ 등 상세한 행동 지침으로 화제를 모았다. ‘복면가왕’도 출연진, 일반인 판정단, 제작진 모두에게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있다. 누리꾼들은 “‘강경 대응한다’는 건 유출된 명단이 맞다는 얘기냐”며 명단의 진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일부에선 “제작진이 홍보를 위해 일부러 유출시켜 논란이 되는 걸 노리는 것 같다”며 의심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판 드라마 ‘심야식당’(SBS)이 4일 처음 그 ‘정체’를 드러냈다. 혹평이 쏟아졌다. “콘셉트는 사왔는데 철학은 사올 수 없었겠지” “어색해서 보는 내내 불편하다”…. (시청자 게시판) 도쿄 뒷골목을 서울 종로 뒷골목으로 설정한 것은 그럴싸했다. 1회 김에 싸 먹는 가래떡 구이와 2회 메밀전이 나온 것도 서민적이면서 개성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일식인지 한식인지 영 국적불명인 식당 인테리어나 주인의 복장, 그냥 ‘아저씨’나 ‘주인장’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마스터’라고 부르는 어색한 호칭도 뭐, 원작을 반영한 것이라 치고 얼렁뚱땅 넘어가 보자. 하지만 한국판은 ‘심야식당’의 리메이크라고 하기엔 몇 가지 핵심을 놓치고 있다. 우선 음식드라마면서 음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원작인 일본 ‘심야식당’은 요리 과정이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꼭 보여준다. 한국판에는 이런 장면이 없다. 가래떡구이를 조미 김에 싸먹으면 어떤 맛이 나는지, 메밀전에는 무슨 속 재료가 들어가 어떤 맛을 내는지 짐작할 길이 없다. 음식 맛이 와 닿지 않으니 음식이 주는 의미도 와 닿지 않는다. 2화에서 “마스터의 메밀전은 따뜻하고 진솔해서 좋았어요”같은 대사가 억지스러워진다. 등장인물이 바뀌면서 원작의 의미가 퇴색된 것도 문제다. 일본판 ‘심야식당’에는 야쿠자, 건달, 게이바 마담, 스트립걸, 퇴물 포르노 배우 등이 등장한다. 남들이 잠든 시간까지 일을 하거나 자정이 넘어서야 밥집을 찾을 수 있는, 소외되고 지친 이들을 따뜻한 음식 한 그릇으로 위로한다는 것이 원작의 주요 메시지다. 그런데 한국판에서는 원작의 주요 인물인 게이바 마담 고스즈가 빠졌다. 그 이유에 대해 제작진은 2일 제작발표회에서 “(한국에선) 소수자를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적은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대신 직업이 불분명한 동네 아저씨 ‘김 씨’와 대를 물려 한의원을 하고 있는 한의사 ‘돌팔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2015년 한국에서 ‘마음의 허기’에 시달리는 소외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명한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일은 늘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소규모로 개봉한 일본 극장판이 한 달도 채 안돼 관객 10만 명을 모으고, ‘먹방’이 대세인 상황에서 원작의 이름값에 적당히 조미료만 치면 성공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형 평면 TV가 떡하니 달려 있고 고급 오디오가 놓인 한국판 ‘심야식당’의 풍경은 웃기는 것조차 실패한 시트콤에 가깝다. 귤이 현해탄을 건너 탱자가 됐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2009년부터 고양이 2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고양이는 알다가도 모를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좋아하던 캔 사료를 따줘도 냄새만 맡고 고스란히 남기거나, 다가와서 쓰다듬으면 훌쩍 도망가 버리곤 한다. 꼭 이런 개인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고양이는 또 다른 반려동물 대표주자인 개에 비해 미지의 동물로 취급되곤 한다. 한국에서도 이제 반려 고양이(반려묘) 수는 120만 마리에 달하고(2012년 기준), 반려견 수는 줄어드는 데 비해 반려묘 수는 급증하는 등 ‘대세’다. 왜 고양이가 좋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나, 고양이를 키우면서도 고양이의 정체에 대해 통 헷갈린다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책 두 권이 함께 나왔다. ‘캣츠 갤러리’는 명화나 고전영화의 한 장면에 인간 대신 고양이를 그려 넣은 삽화를 모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가 직접 그려낸 수백 장의 그림 속에는 때론 천연덕스럽고 때론 귀여운 고양이들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고양이 초심자’라면 이 책으로 거부감을 줄여보는 것이 좋겠다. ‘캣 센스’는 고양이의 핏줄에서부터 생태,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자신이 고양이 ‘집사’(한국에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들인 사람들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양이는 아직 가축화가 진행 중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고양이는 애초에 혼자 살아가는 육식동물로 관계 맺기에 능숙하지 못한 편이다. 고양이들이 ‘개보다 까다롭다’거나 ‘음흉하고 교활하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생후 5∼8주에 인간의 애정과 손길을 충분히 받고 다른 고양이와 지낸 경험이 있다면 그 뒤로도 다른 고양이나 인간과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 증거 중 하나는 꼬리에 있다. 집고양이들은 서로 마주쳤을 때 보통 둘 중 한 마리가 먼저 자기 꼬리를 수직으로 세운다. 다른 쪽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역시 꼬리를 수직으로 세운다. 이런 행동은 야생고양이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고양이가 야옹거리는 소리도 주인의 관심을 사려는 일종의 애정 표현이다. 고양이는 원래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야옹거리는 소리를 듣고 주인이 화답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조금씩 더 말이 많아지면서 다른 고양이나 주인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게 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인터넷에 떠도는 고양이에 관한 여러 속설을 판별할 만한 근거를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고양이의 청각에 대해 저자는 “고양이는 음치”라고 말한다.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 위치를 파악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음의 높낮이는 구분할 수 없다. ‘고양이를 부를 때는 목소리 톤을 높여야 한다’ ‘고양이 이름을 지을 때는 된소리가 좋다’ 같은 속설들은 근거가 희박하다는 얘기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고양이 때문에 상처 받았던 주인들에게는 위로가 될 만하다. 고양이의 기원과 핏줄에 대해 설명한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고양이는) 놀고 싶은 때를 자기가 선택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기가 다가가서 시작되는 상호작용을 더욱 만족스럽게 생각한다”와 같은 고양이 집사들의 가슴을 울리는 조언이 눈에 띈다. “고양이 중성화가 인간에게 친밀한 유전자를 지닌 고양이의 개체 수를 줄일 수 있다”와 같은, 고양이의 복지를 위해 권장되어온 원칙을 뒤집는 주장도 담겨 있어 인간과 고양이의 미래를 위해 고민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에는 개인적으로 휴가차 온 적도 있고, 영화 홍보를 위해, 또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온 적도 있습니다. 다시 오게 돼서 기쁩니다.”(아널드 슈워제네거) 2일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주인공 터미네이터 T-800 역을 맡은 아널드 슈워제네거(68)와 사라 코너 역의 에밀리아 클라크(28)가 내한했다. 슈워제네거의 내한은 2013년 한국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지 2년 만이다. 1984년 1편이 나왔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이번 영화에서 다시 1편이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슈워제네거는 “처음 터미네이터로 돌아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훌륭한 대본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번 영화는 긴장감과 액션, 감정의 소용돌이, 반전이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액션 배우에서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 2003∼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그는 이후 ‘라스트 스탠드’를 비롯해 ‘이스케이프 플랜’ ‘사보타지’ 등에 출연하며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터미네이터’에선 1984년 당시와는 다른, 나이 든 T-800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사라를 마치 아버지처럼 돌보며 미래에 대비시키는 역할이다. 슈워제네거는 “오늘 아침에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1시간 운동했다”며 “1편 때와 같은 몸매가 되기 위해 4kg 정도를 찌웠다. 평소보다 운동을 두 배로 해야 했지만 40년 동안 액션 연기를 해왔던 터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클라크는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패망한 왕조의 공주이자 세 마리 용을 키우는 강인한 어머니 대너리스 역을 맡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과거 린다 해밀턴이 연기한 사라 코너가 워낙 유명한 데다 슈워제네거라는 전설과 연기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기쁘면서도 두려웠다. 하지만 슈워제네거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편안하게 대해줬고 촬영 내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클라크는 또 이번 영화에서 악역 터미네이터 T-1000 역을 맡은 이병헌에 대해 “그를 촬영장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울 정도였다. 특수효과가 필요 없는 연기를 하는 배우”라며 “‘터미네이터’ 다음 편을 촬영한다면 그도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슈워제네거와 클라크는 이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레드카펫 행사와 시사회를 가진 뒤 3일 일본으로 출국한다. 슈워제네거는 기자회견 내내 영화 속 흰 이를 드러내는 특유의 미소를 짓고,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 등 소탈한 모습이었다. “이번에 나오는 터미네이터 T-800의 대사 ‘늙었지만 아직 난 쓸모 있지’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일 비 백(I‘ll be Back).”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감정을 섬세하게 내비치는 쌍꺼풀 없는 눈,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앳된 얼굴, 낮고 힘 있는 목소리. 최근 개봉한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연출 이해영)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 소녀’를 궁금해할 것이다. 따돌림 당하는 주인공 주란(박보영)을 따뜻하게 감싸면서도 자신의 비밀에 힘겨워하는 기숙학교의 급장 연덕 역의 배우 박소담(24) 얘기다. 선배 연기자 사이에서 존재감을 빛내며 감정의 낙차가 큰 ‘경성학교’에 안정감을 불어넣었던 그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큰 화면에 내 얼굴이 계속 나오는 것이 어색했다. 아직 적응 중”이라는 박소담은 회사원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아래서 3남매 중 맏이로 자랐고, 추운 겨울에도 운동화를 신지 못하게 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굳이 특이한 이력을 꼽자면 초등학생 때 잠시 멀리뛰기 선수를 해 서울 송파구 대회에서 2등을 한 적이 있고, 학교 축제 때마다 밴드 보컬로 무대에 섰다는 것 정도일까.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본 뒤 며칠 동안 계속 가슴이 뛰어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도 색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휴학 한번 하지 않고 졸업할 때까지 무려 단편영화 15편과 연극 여러 편에 출연한 에너지는 범상치 않다. 장편영화 출연작도 벌써 10편이 넘는다. 지난해 ‘일대일’(연출 김기덕), ‘상의원’(연출 이원석) 등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쳤고 올해는 첫 주연작 ‘경성학교’ 외에도 ‘베테랑’(연출 류승완), ‘검은 사제들’(연출 장재현), ‘사도’(연출 이준익) 등에 캐스팅됐다. “10대 소녀 역할, 특히 아픈 사연을 감추고 있거나, 뭔가 귀신에 씌는 역할을 많이 연기했어요.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묘한 느낌이 있다고들 해주세요.” 그사이 배우로서 경험치는 훌쩍 늘었다. ‘검은 사제들’ 촬영 도중에는 삭발까지 감행했다. 인터뷰 내내 “지금 이 나이에 이 얼굴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경험해 보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하던 그에겐 삭발한 머리 역시 다른 역할로의 연결점이다. “제가 이런 머리를 또 언제 해보겠어요? 삭발한 상태로 할 수 있는 연기가 있을 텐데 이대로 머리가 자라는 게 아쉬워요. 주변에선 여전사 느낌이 난다고도 하던데….” 그는 뚜렷한 이목구비의, ‘연예인다운 외모’가 아니어서 배우의 꿈을 꾸면서도 대학 입학 때까진 자신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좀 더 긴 꿈을 꾸고 있다. “농담처럼 ‘못 걸어 다닐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얘기하곤 해요. 지금 제가 10대 소녀 역할을 많이 맡는 것처럼 제가 30대, 40대가 되면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이 또 있겠죠? 그러니 최대한 현재를 즐기면서, 나이가 들어 대사를 외우지 못할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감정을 섬세하게 내비치는 쌍꺼풀 없는 눈,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앳된 얼굴, 그리고 낮고 힘 있는 목소리. 18일 개봉한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 소녀’를 궁금해 할 것이다. 따돌림 당하는 주인공 주란(박보영)을 따뜻하게 감싸면서도 자신이 지닌 비밀을 힘겨워하는 기숙학교의 급장 연덕 역을 맡은 배우 박소담(24) 얘기다. “큰 화면에 내 얼굴이 계속 나오는 것이 어색했다. 아직 적응 중”이라는 박소담은 회사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아래서 삼남매 중 맏이로 자랐고, 추운 겨울에도 운동화를 신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본 뒤 며칠 동안 계속 가슴이 뛰어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도 크게 색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휴학 한번 하지 않고 졸업하는 사이 무려 단편영화 15편과 연극 여러 편에 출연한 에너지는 범상치 않다. 장편영화 출연작도 벌써 10편이 넘는다. 지난해 ‘일대일’(연출 김기덕) ‘상의원’(연출 이원석) 등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쳤고 올해는 첫 주연작 ‘경성학교’ 외에도 ‘베테랑’(연출 류승완) ‘검은 사제들’(연출 장재현), ‘사도’(연출 이준익) 등에 출연한다. 벌써부터 박소담이 ‘올해의 신인’으로 점쳐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배 연기자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빛내며 줄거리와 감정의 낙차가 큰 ‘경성학교’에 안정감을 불어넣었던 그를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주연작이다. 기분이 어떤가. “큰 화면에 내 얼굴이 계속 나오는 걸 보는 게 어색했다. 3개월 정도 연덕으로 살았는데 30분짜리 졸업작품에 출연한 뒤로 이렇게 오래 한 역할로 촬영한 건 처음이었다. 아직 적응 중이다.” -달리거나 뛰는 장면이 많고 수중촬영까지 했다. 촬영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어릴 때 별명이 치타였다. 초등학교 때 멀리뛰기 선수를 했었는데 송파구 전체에서 2등을 한 적도 있다. 매일매일 연습할수록 느는 게 재미있었다. 연덕 역도 달리기와 멀리뛰기를 잘 하는 역할이어서 이번에 다시 연습했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본 뒤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1년이 넘게 반대하셨다. 그래도 계속 하고 싶다고 하니 고2 끝날 무렵에 연기학원에 보내주셨다. 학교 수업이랑 달리 연기 학원 수업은 몸을 많이 쓰는 게 재미있었다.” -단편영화에 굉장히 많이 출연했다. “2학년 때부터 출연하기 시작했다. 학기 중에도, 방학 때도 늘 영화촬영을 하거나 연극연습을 했다. 여행도 한번 가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 졸업한 게 나 뿐이어서 좀 외롭기도 하다. 학교생활을 너무 즐기지 못한 건가, 하는 아쉬움도 있는데 그때의 경험이 이렇게 장편영화에 계속 출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출연했던 단편을 보고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 촬영장 분위기에도 더 잘 적응할 수 있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여배우의 외모는 아니다. “사실 한예종 입학할 때까지는 연극이나 뮤지컬이라면 몰라도, 내가 영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흔히들 말하는 이목구비 뚜렷한 연예인 외모가 아니니까.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한테 ‘무대화장 진하니까 화장하면 다 달라져, 눈 크게 만들 수 있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럼 친구들이 ‘소담아, 너 같은 눈의 시대가 언젠가는 꼭 올 거야’라고 위로해줬다. 그런데 대학 입학 때 낸 증명사진 한 장을 보고 처음 영화 출연 문의가 왔다. 굉장히 의외였다.” -성형수술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 “이상하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냥 내 얼굴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어려서부터 인정하니까 굳이 부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가진 걸 살려야지, 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이 나이에 내 얼굴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 -맡은 역할 중에 유난히 10대 소녀 역할이 많다. “단편 때부터 10대 역할을 계속 했었다. 특히 아픈 사연은 많지만 그걸 안에 담아두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역할이나, 아니면 귀신같은 것에 쓰인 역할을 많이 맡았다. 나한테 평범하면서도 뭔가 묘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베테랑’ ‘검은 사제들’ 등 출연작이 잇달아 개봉한다. “‘베테랑’은 학생 때 출연한 단편영화 ‘수지’를 본 류승완 감독님이 오디션을 보라고 해 캐스팅됐다. 신인 여배우 역할인데 배역 이름도 ‘앳된 막내’다. 처음에는 좀 순수하게 나오다 나중에는 조금씩 변한다. ‘검은 사제들’에서도 소녀 역할인데 삭발을 처음으로 해봤다. 지금도 머리가 아주 짧은 상태다.” -여자한테 머리카락은 꽤 의미가 깊은데 삭발할 때 겁이 나진 않았나. “처음에는 당연히 고민이 됐다. 그런데 엄마한테 ‘삭발해도 괜찮을까’하고 여쭤봤더니 엄마가 ‘머리는 또 자라잖아’ 하시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아, 그렇구나’ 싶어 편하게 결정했다. 지금은 조금 자란 상태인데 주변 사람들이 여전사 느낌이 난다, 평소 박소담과 달라 보인다는 말을 해준다. 이 머리로도 맡을 역할이 또 있을 텐데 머리가 자라는 게 아깝다.” -액션 연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전에도 싸움 잘하는 역할로 나온 적이 있지 않나. “‘플레이 걸’에서 액션 연기를 한 적이 있고 ‘수지’에서도 싸움 잘 하는 여고생으로 나왔었다. 그때는 촬영 환경이 아무래도 열악하다보니 좀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더 제대로 된 액션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배우로서 목표가 있나. “지난해는 박소담을 준비하는 한 해였다면 올해는 결과물이 나오는 해인 것 같다. 많은 분들이 그냥 이런 배우가 있구나 하는 것만 알아주셔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이 배우의 연기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그건 당장 눈앞의 목표이고, 배우라는 일 자체에 대한 더 큰 목표가 있나. “배우는 여러 개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삶에도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금의 저에게 맞는 역할을 연기하고, 30대, 40대, 자연스럽게 나이 들면서 그 때의 얼굴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60대 때는 지금 역할을 못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최대한 지금을 즐기고 싶다.” -갓 데뷔한 신인인데 60대까지 바라보는 건가. “농담처럼 못 걸어 다닐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 대사를 못 외우게 될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꿈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아일 비 백(I‘ll be back).” 이 한마디를 남기고 표표히 사라졌던 그가 약속대로 돌아왔다. 2일 개봉하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앨런 테일러 감독·15세 이상)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1, 2편(1984, 1991년)과 달리 다른 감독이 연출한 3, 4편(2003, 2009년)은 부진해 시리즈로서의 생명력을 잃은 상태였다. 이번 영화는 1편으로 돌아가 기존 설정을 뒤엎고 새롭게 시작했다. 》제목의 ‘제니시스(Genisys)’는 기계 군단 ‘스카이넷’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영화의 주 배경은 1984년. 사라 코너(에밀리아 클라크)와 터미네이터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 2029년 미래에서 1984년으로 보내진 저항군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는 제니시스에 맞서 싸운다. 앞선 시리즈와 달라진 설정을 정리했다.① 젊은 시절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한다. 영화의 기본 설정은 익숙하다. 스카이넷은 터미네이터를 1984년으로 보내 사라 코너가 아들인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를 낳기 전에 죽여 저항군의 싹을 없애려 한다. 미래의 존은 어머니 사라를 보호하도록 카일을 1984년으로 보낸다. 이때 과거로 보내진 T-800은 젊은 슈워제네거다. 제작진이 실물 크기의 실리콘 마네킹에 각종 특수효과를 입혀 30대 시절 슈워제네거 모습을 만들어낸 것. 젊은 T-800은 1984년에 도착해 68세의 슈워제네거가 연기하는 나이 든 T-800과 맞닥뜨리고, 두 명의 T-800은 사투를 벌인다.② 사라 코너에겐 1, 2편과 전혀 다른 과거가 있다. 이번에도 사라는 폭탄과 총을 능숙히 다루며 2편과 비슷한 여전사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전 시리즈에선 없었던 새로운 과거가 소개된다. 사라가 아홉 살 무렵 부모를 터미네이터에게 잃었고, 그때 자신을 구해준 ‘늙은’ 터미네이터 T-800을 유일한 가족 삼아 미래를 대비하며 살아온 것으로 그려진다.③ 시대를 앞당긴 이병헌의 T-1000 앞선 시리즈 중 1984년이 배경인 1편에는 T-800만 나오고 액체금속 터미네이터 T-1000은 2편에서야 등장한다. 이번에는 1984년을 배경으로 두 터미네이터가 함께 나온다. 이병헌은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는 능력을 십분 발휘해 1984년에 도착한 카일을 추격하는 T-1000을 연기했다. 이병헌의 T-1000은 사라와 T-800에 맞서 싸우며 전반부의 긴박감을 완성해 낸다. 이병헌은 진짜 기계로 착각할 만큼 차갑고 미끈한 눈빛과 표정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④ 터미네이터가 된 존 코너 예고편에서 이미 존의 얼굴 아래 감춰진 기계 모습과 함께 그가 또 다른 터미네이터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존은 기억과 감정을 지니면서도 스카이넷에 세뇌된 나노입자의 T-3000 로봇으로 변한다. 존 역시 과거로 돌아가 부모인 카일과 사라가 제니시스를 파괴하려는 걸 막는 임무를 맡는다. 기존 영화를 뒤집은 여러 설정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1, 2편의 팬이라면 열광할 만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특히 시리즈 그 자체인 슈워제네거는 딸과 투덕대는 ‘아버지 같은 기계’ T-800을 연기하며 때론 감동을, 때론 폭소를 자아낸다. T-800이 왜 사라의 어린 시절로 보내진 건지, 스카이넷이 어떻게 저항군에 침투해 존을 세뇌시킨 건지 등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남아 다음 편을 기다리게 한다. 업그레이드된 그가 약속대로 돌아왔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