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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왕가의 후손으로 아마존이 고향인 악어 찌빗. 그러나 아마존의 개발로 인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이 그의 꿈이다. 주인공 현이와 친구들은 찌빗과 함께 동네 하천을 무대로 ‘무심천 특공대’를 조직한다. 특공대는 하천을 돌보며 작은 생물들을 보호하고, 폐수를 몰래 버리는 공장을 발견한다. 강물 박사인 찌빗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낯선 곳에서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찌빗의 우직한 희생으로 아이들은 행복한 경험을 쌓아간다. 작은 하천을 누비는 악어와 친구들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기분 좋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연극, 뮤지컬 작품들이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창작산실’ 지원 사업에 대거 선정됐다. 같은 작품인데 지난해엔 탈락하고, 올해는 선정된 경우도 있다.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문예위 주최로 국내 최대 규모의 창작 지원 사업인 ‘2017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이 발표됐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전통예술 등 5개 분야에서 총 22작품이 뽑혔는데 지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배제됐던 극단 백수광부, 하땅세, 놀땅 등의 작품들이 선정됐다. 대표적인 극단은 하땅세.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 지원을 수십 번 받았던 이 극단은 2014년 11월 문예위 사회복지순회사업에서 떨어진 이후 2015년 민간국제예술교류지원사업, 지난해 ‘공연기획 및 경영 전문인력 지원’ 사업까지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무려 14차례에 걸쳐 정부 지원 사업 응모에서 배제됐다. 하땅세의 윤시중 대표는 “2014년 세월호 집회에 우리 극단이 음향 장비를 빌려준 이후로 계속해서 이유를 알 수 없이 정부 지원 사업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이번 첫 지원 사업에서 하땅세는 연극 ‘깨비가 잃어버린 도깨비방망이’로 선정됐다. 윤 대표는 “지난해엔 1차 대본 심사부터 떨어져서 올해 역시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극단 놀땅의 연극 ‘선을 넘는 자들’은 똑같은 작품인데도 지난해엔 떨어졌고 이번엔 선정됐다. 이 작품은 외국인, 탈북민 등 한국 사회로 이주한 이방인들의 삶을 다룬 연극이다. 최진아 놀땅 대표는 “지난해와 비교해 단어가 일부 수정됐거나 한 장면 정도 추가돼 거의 같은 작품인데 올해엔 지원을 받으니 얼떨떨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혀 정치적 색깔이 묻어나지 않는 작품인데 ‘문재인 후보 지지 예술가 성명 1000명’에 제 이름이 올라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갔다”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회를 놓쳤지만 뒤늦게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문예위는 블랙리스트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올해 심사 과정에선 관객평가단 제도, 심의 회피제, 옴부즈맨 제도 등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차민태 문예위 공연지원부장은 “신청 단체와 이해관계가 있는 심사위원은 회의에서 빠질 수 있게 조치했고, 언론·법조계 인사들로 구성된 옴부즈맨 제도를 신설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지 않게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연계에선 ‘예술이 정치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우려의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계 관계자는 “공정하게 심사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과거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유로 반대급부 차원에서 선정되는 신종 ‘화이트리스트’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선정작들은 다음 달 8일 무용 작품인 ‘퍼펙트 데쓰’를 시작으로 내년 3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등에서 100여 일간 공연된다. 02-3668-0007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사진)이 사의를 표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김 원장이 연말까지만 업무를 수행한 뒤 자리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라고 9일 밝혔다. 김 원장의 임기는 2018년 2월 16일까지로 임기를 한달여 가량 남겨두고 물러날 예정이다. 김 원장의 갑작스런 사임과 관련해 문학계에선 최근 추가로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과 관련 있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지난달 말 한국문학번역원이 박근혜 정부 당시 문체부의 지시를 받아 김수복, 김애란, 김연수, 박범신, 신경림, 이시영 등의 작가들을 해외교류사업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 원장은 1984년부터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서울대 출판문화원장과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장, 국제비교한국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한국문학번역원장으로 취임한 뒤 2015년 한 차례 연임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 문학 진흥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국립한국문학관이 서울 용산가족공원 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학진흥정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해 열린 ‘제1차 문학진흥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강형철 문학진흥정책위원회 부위원장(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전공 교수)은 “3차례 위원회 심의를 거쳐 용산공원 내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를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의 최적 후보지로 의결했다”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문체부는 올해 안에 ‘국립한국문학관 설립 협의체’를 구성할 방침이다. 협의체에는 문학계, 환경·도시계획·건축 분야 전문가와 서울시,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한다. 협의체에서 주변 지역과의 생태·문화적 적합성을 검토한 후 최종 부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우영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문학계에서 보면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은 일대 사건”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국민들과 교감하고 추진 일정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문체부는 지난해 공모를 통해 문학관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24개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자 공모 절차를 중단했다. 이후 토론회와 의견 수렴을 거쳐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부지, 용산가족공원 부지 등 3곳을 후보지로 추린 뒤 타당성 검토를 진행해왔다. 문체부는 당초 이 부지로 옮겨올 예정이던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에 조성될 국립박물관 단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문학관 부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위원회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건립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에선 ‘문학진흥기본계획안’도 공개됐다. 이 계획안은 지난해 2월 제정된 문학진흥법에 따라 마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 진흥 설계도다. 국립한국문학관 자료수집위원회(가칭)를 신설해 한국 문학 유산의 수집과 보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배경이 자녀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계층 이동이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용났다”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 똑똑한 이들에게 부와 권력, 명예를 가져다주는 것이 능력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 책은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 분석했다. 저자는 미국의 정치평론가로 미국 MSNBC에서 뉴스와 시사평론을 진행하고 있다. 책에선 미국의 사례로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양상이 한국과 매우 유사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능력주의의 핵심은 인종이나 성별, 출신 배경 등에 따른 차별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능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계급인 ‘재능 귀족’을 탄생시켰다. 흑인이지만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주류 사회에 편입해 대통령까지 지낸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재능 귀족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그들의 노력과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엄청난 보상과 특권을 거머쥔 이들이 자신이 타고 온 사다리는 걷어치운 채 가족과 동료들에게만 내려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979∼2007년 미국의 총소득 증가분의 88%가 상위 1%에게 돌아갔다는 경제학자 이매뉴얼 사에즈의 연구결과 등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책에선 대안으로 결과의 평등에도 신경 써야 한다며 사회보장제도 강화 등을 거론한다. 능력 있는 인사들의 몰락 소식을 자주 접하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참고할 만한 책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할인받고 도서를 구매할 수 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다. 지난달 5일 청원을 올린 시민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도서정가제를 ‘책통법’으로 비꼬기도 한다”라고 비판했다. 현재까지 이 청원에 함께한 사람이 4800명을 넘어섰다. 모든 책의 할인율을 1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도서정가제가 2014년 11월 도입 이후 일몰 예정인 3년을 맞이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이달 20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3년간 더 유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소비자들과 출판·서점업계의 반응이 엇갈려 제도 정착까지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일단 “책값이 비싸졌다”며 도서정가제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만난 박대현 씨(30)는 “할인 행사가 많았을 땐 책을 싸게 산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최근엔 책이 비싸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개정 도서정가제에 대한 인식 및 향후 방향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도서정가제에 반대한다는 소비자 응답이 29.4%로 찬성(28.2%)보다 더 높게 나왔다. 반면 출판·서점업계에선 도서정가제 이후 책 가격의 거품이 빠지고, 다양한 책과 서점이 증가했다며 제도의 효과가 있었다는 의견이 많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조사에 따르면 2014년 1만5631원이던 평균 도서 정가는 2015년 1만4929원으로 떨어졌고, 지난해와 올 상반기엔 각각 1만7007원, 1만6757원을 기록하는 등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주정관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정책위원장은 “할인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높이 책정하는 관행이 많이 없어졌고, 가격 대신 콘텐츠 중심의 경쟁이 자리 잡으면서 신간 발행부수와 작은 서점들이 증가해 도서생태계가 다양해졌다”고 밝혔다.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각종 카드사 제휴 할인과 굿즈(관련 상품) 제공 등의 편법이 근절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체부의 조사 결과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2014년 11월 이후 올 8월까지 1511건의 위반 행위가 적발됐다. 2014년 12월 한 달간 17건이 발생했고, 2015년에는 321건, 지난해에는 407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8월 말까지 766건이 적발돼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광주 동구에서 ‘검은책방 흰책방’을 운영하는 소설가 김종호 씨는 “대형 서점의 각종 사은품이나 온라인 서점의 배송비 무료 등의 혜택은 지방 중소 서점이 제공하기 힘들기 때문에 엄격한 도서정가제 시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체계 정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동네 작은 서점들이 도서정가제로 인해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여전히 유통·배급 문제 등 장애물이 많다”며 “출판 도매업계 지원과 작은 서점 진흥 정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엄격한 유교 문화가 지배한 조선시대의 아버지라고 하면 근엄한 이미지가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최근 박동욱 한양대 교수가 쓴 책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휴머니스트)에는 다소 낯선 옛 아버지들의 글이 소개돼 있다. “집에서는 중처럼 지내야 하고 마을에선 아낙처럼 처신하여라.”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1712∼1791)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조심스러운 처신을 당부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들이 병으로 자신보다 일찍 죽자 “잊어버리고자 하여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은 너의 효순한 행실, 아름다운 자태인데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구나”라며 애절할 부정(父情)을 담은 글을 남겼다. 좌의정과 우의정을 모두 지낼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채제공(1720∼1799)은 50이 넘은 나이에 아들을 얻었다. 그는 “네 살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총명함이 너무 사랑스럽다”라며 다소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사랑은 겉은 다르지만 속은 대개 비슷하다. 시대를 넘어 모든 아버지에게 존경과 경의를.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 석학들의 강연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특강’이 8∼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등에서 열린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한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가 8일 ‘세종 시대에서 배우는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이재영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교수는 9일 ‘공기방울과 미래사회’를 강연한다. 11일에는 정경량 목원대 명예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강연이 열린다. 올해로 10주년이 된 석학인문강좌는 매년 30회가 넘는 강연을 개최한다. 현재까지 누적 참여자가 10만 명을 넘는다. 수강료는 무료. 수강 신청은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 사무국(02-739-1223)으로 하면 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을 비롯한 중국, 네덜란드 등 8개국 14개 단체가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실패했다.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일본 정부의 방해를 이겨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31일 유네스코는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를 통해 우리 측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과 일본에서 신청한 ‘위안부와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 등에 대해 “대화를 위해 등재 보류 권고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은 위안부가 합법적으로 운영됐다는 내용을 담은 자료로 일본의 우익 단체에서 신청한 것이다. 반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알려주는 피해자의 증언 기록을 비롯해 위안부 운영 실태를 증명할 사료와 위안부 피해자 조사·치료 기록, 피해자 지원 운동 자료 등 2744건으로 구성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분담금 납부를 연기하며 본격적으로 등재 저지에 나섰다.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은 최근 탈퇴를 선언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가량을 차지한다. 일본의 방해는 지난달 24일부터 나흘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 제13차 회의까지 이어졌다. IAC는 당초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에 대해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발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 규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일본의 공세에 시달린 IAC는 등재 심사를 보류하는 권고안을 유네스코에 전달했고, 이 과정에서 내년도부터 시행 예정인 “유네스코는 이해 당사국 간에 역사 인식이 다를 경우 심사를 보류한다”는 제도 개혁안을 앞당겨 적용해 심사를 보류한 것으로 분석됐다. (등재 신청을 주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즉각 반발했다. 연대위는 31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다른 나라들과도 연대해 일본 정부가 자행한 유네스코에 대한 부당한 압력 행위를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기록물과 같이 등재를 신청한 조선통신사 기록물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번에 3건이 추가로 등재되면서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은 16건으로 늘어났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노방구학(路傍溝壑) 쌓인 주검 무주고혼(無主孤魂) 할 일 없다. 사지 해골은 제견(諸犬)의 상쟁(相爭)이다.”(임계탄·壬癸歎 중) 조선 후기 1732년(임자년·영조 8년) 전라도 장흥·강진 일대에서 발생한 대기근을 소재로 한 장편 한글가사 임계탄의 한 구절이다. 굶주림 끝에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길에서 죽어 까마귀나 개떼의 먹이가 되는 참혹한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문학 작품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정부의 공식 문서보다 현실을 자세히 묘사한 경우가 많다. 최근 조선 후기 자연재해를 주제로 한 문학만을 다뤄 당대 실상을 파헤친 연구가 나왔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의 ‘전근대 한국 문학 속의 자연재해’라는 논문으로 다음 달 단국대 일본연구소의 학술지 ‘일본학연구’에 실릴 예정이다. “우물에는 떠 마실 물이 없고/밭에는 먹을 만한 채소가 없네/산새는 저 혼자 무슨 마음으로/아침저녁 언제나 짹짹거리나.” 1782년(임인년·정조 6년) 경기 일대를 엄습한 가뭄 사태를 표현한 안산 지역의 양반사족 류경종(1714∼1784)의 시다. 그는 그해 3월부터 11월까지 가뭄과 피해 상황을 다룬 시만 20편 넘게 썼다. 정부 측 기록에선 정조의 반포문에서 “올해 농사는 경기의 흉년이 특히 심하고 경기 중에서도 연야(沿野)가 더 심하였다”고 기록된 것이 전부다. 1821년(신사년·순조 21년)에는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했다. 성해응이 지은 장편 4언시 ‘신사대수편’을 통해 당시 대홍수의 심각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수면에 둥둥 떠서 아직도 이불을 껴안고 엎어지고(浮于水面 猶擁綺衾)/젖혀진 시체에 참혹하여 놀라네(或覆或偃 慘目驚心).” 한강이 범람해 집이 통째로 물에 휩쓸려 내려간 모습을 표현한 시다. 성해응은 한양에 거주하던 관료로 한강 유역의 피해 상황을 주민들로부터 전해 듣고 이 같은 시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 조선 조정의 기록에 따르면 “6월 13일 북한산성에서 산사태로 11명이 죽고, 전국적으로 1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짤막한 보고만이 남아있다. 안 교수는 “정부 보고서 등 공공의 사료는 재해를 대하는 관리의 태도에 따라 과장되거나 축소되기 쉽지만 문학은 저자의 체험과 정서가 가미돼 실상과 공포, 감정이 한층 실감나게 서술돼 있다”며 “문학 작품들은 사료를 보완하거나 의도적으로 숨겨진 재해를 고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1822년 조선 전역을 휩쓴 집단 콜레라 사태를 기록한 신현(1764∼1827)의 ‘성도일록’, 1832년 잇따른 가뭄과 홍수로 인해 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서기수(1771∼1834)의 ‘희우(喜雨)’와 ‘추우탄(秋雨歎)’ 등 작품성과 현실 고발 기능을 갖춘 조선 후기의 문학 작품이 다양하다. 안 교수는 “천재지변 현상이 곧바로 국왕의 도덕성 내지 통치 능력과 깊이 연관된다고 믿는 인식으로 인해 이와 관련한 문학 작품 역시 많다”며 “재해를 기록하고, 이를 극복한 선조들의 지혜를 살펴볼 수 있는 연구”라고 밝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영화배우 김주혁 씨(45·사진)가 30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는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운전하다 추돌사고를 일으킨 뒤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아파트 출입문 입구에 충돌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목격자는 “김 씨가 추돌 직후 가슴을 움켜쥐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 경위와 김 씨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이르면 31일 김 씨를 부검할 계획이다.○ 두 차례 추돌 후 100m 돌진 사고는 이날 오후 4시 20분경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삼성 앞 영동대로에서 일어났다. 편도 7차로의 대로다. 김 씨의 SUV(벤츠 G63 AMG)는 2차로에서 영동대교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김 씨 차량은 3차로를 달리던 그랜저 승용차를 한 차례 들이받은 뒤 멈춰 섰다. 그랜저 운전자가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방향을 바꾼 순간 김 씨 차량이 갑자기 급가속하며 그랜저 옆 부분을 다시 들이받았다. 앞으로 돌진한 김 씨 차량은 우측 인도를 향해 3개 차로를 순식간에 가로질렀다. 그랜저 운전자는 경찰에서 “벤츠 운전자가 내 차를 들이받고 잠시 정차하는 사이 가슴을 움켜잡더니 갑자기 인도로 돌진했다”고 말했다. 김 씨 차량은 도로와 인도 사이에 있는 30cm 높이의 턱을 넘은 뒤 화단을 지나 40cm 높이의 철제 난간까지 뚫고 인도로 올라섰다. 김 씨 차량은 80m가량 인도를 질주하다 아파트단지 북문 기둥을 들이받고 경사진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김 씨 차량은 45도 경사에 1.5m 높이의 계단에서 빠른 속도로 구르며 천장과 운전석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인도 곳곳에는 검은색 스키드마크가 선명히 남아있었다. 김 씨가 인도에서 제동페달을 밟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 차량이 인도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사고 원인은 아직 분명치 않다. 일단 목격자 진술로 볼때 김 씨의 몸에 갑자기 이상이 생겼을 수 있다. 윤영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정확한 원인은 부검을 통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가슴을 움켜쥔 상태에서 돌진했다면 80% 이상은 심근경색이다. 가슴에 심한 통증이 오고 부정맥이 발생해 의식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 유족은 “지병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차량 결함 등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충격에 빠진 연예계 김 씨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연예계 동료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이 2013∼2015년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연출을 맡았던 유호진 전 KBS PD(몬스터유니온 PD)는 “급하게 연락을 받아서 경황이 없다. 지금은 도저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고인은 2005년 별세한 배우 김무생 씨의 아들로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드라마 ‘카이스트’ ‘프라하의 연인’과 영화 ‘YMCA 야구단’ ‘싱글즈’ ‘홍반장’ ‘방자전’ ‘광식이 동생 광태’ 등 멜로와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에서 매력을 선보였다. 2013년 12월부터 2년간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에 출연해 엉뚱하고 소탈한 모습을 드러내 친근한 배우로도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 함께 출연한 17세 연하 배우 이유영 씨(28)와 연인 사이로 발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올해는 그에게 ‘제2의 전성기’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아르곤’에서 열정적인 언론인 김백진 기자 역할을 맡아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안타깝게 유작이 됐다. 올 1월에는 현빈, 유해진 씨와 함께 출연한 영화 ‘공조’가 누적 관객 78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27일 열린 제1회 서울어워즈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고인은 “영화로 첫 상을 받았다. 연기한 지 20주년인데 큰 상을 받게 됐다”며 소감을 전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신규진·유원모 기자}
전·현직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적폐청산 행보’는 제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 장관이 있는 부처 6곳 가운데 4곳에는 현재 적폐청산 관련 기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장관으로 재직 중인 행정안전부는 올해 7월 청와대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공문을 받고도 회신하지 않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적폐청산은 우리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서 (TF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행안부에 구성돼 있는 지방분권 관련 TF와 대통령 기록물 관련 TF도 적폐청산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이는 김 장관의 정치 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서는 민감한 증세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 청와대의 캐비닛 문건 공개에는 “최선이었나 의문을 갖는다”고 하는 등 소신 발언을 해왔다. 김 장관의 지역구가 대구인 만큼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역 정서도 감안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반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민주당 의원)은 적폐청산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 직접 진상조사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도 장관은 6월 취임식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진상조사위도 당초 민간전문위원 3명을 두기로 했지만 문화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반발하자 현재 16명을 채용하는 등 조직도 키웠다. 하지만 문체부 내부에선 “이미 특검과 감사원에서 샅샅이 조사했는데, 진상조사위에서 새로운 사실이 나올지 의문”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양수산부(김영춘 장관·민주당 의원)에는 ‘해양수산 분야 3관 혁신 실무협의체’가 있지만 적폐청산보다는 조직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관’은 관행, 관망, 관권(갑질문화 청산)을 의미한다. 다만 박근혜 정부 시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적폐청산의 타깃으로 삼을 수는 있어 보인다. 해수부 관계자는 “워낙 추진력이 있는 장관이기 때문에 (적폐청산에)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림축산식품부(김영록 장관·전 민주당 의원)와 국토교통부(김현미 장관·민주당 의원), 고용노동부(김영주 장관·민주당 의원)에는 적폐청산 관련 기구가 없다. 다만 고용부는 김 장관의 취임이 늦어져 구성이 지연됐고 현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됐던 노동개혁 등을 들여다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송찬욱 song@donga.com·이유종·유원모 기자}

“지도교수가 불렀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외국인 학생의 논문이 무조건 통과돼야 하니 도우라는 지시였다. 납득이 안 돼 따르지 않았다. 돌아온 건 서류 복사와 영수증 챙기기 등 잡일뿐이었다. ‘요즘 애들은 공부 참 편하게 한다’는 비아냥거림까지. ‘시대 잘 만나 편하게 교수 됐네요’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도 익명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인문학 석사 과정 A 씨) 2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신진 인문학 연구자 50여 명이 자리를 메웠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비슷한 이야기에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때론 한숨을 같이 내쉬기도 했다. 이곳은 역사학계의 최대 연례행사 전국역사학대회의 사전 행사로 열린 ‘학문후속세대의 이상과 현실’ 발표장. 60회째를 맞은 역사학대회는 올해 처음으로 독특한 시도를 했다. 한국 인문학계의 현실을 젊은 인문학도의 시선으로 비판한 연구 세션을 진행한 것이다. 정태헌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장(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은 “한국사와 한국 사회가 역사적으로 전환기일 뿐 아니라 학계 역시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며 “학계를 제대로 비판하고, 젊은 학자들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처음으로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기성 학자들이 아닌 젊은 역사학 전공자들의 모임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가 주관했다. 가장 크게 지적된 것은 한국 학계의 고질적인 갑질 문화와 노동력 착취였다. 연구와 상관없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대학원생들의 열악한 환경이 결국 한국 인문학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국가장학금을 받으려면 4대 보험을 가입해선 안 된다. 제대로 된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조차 할 수 없다. 그나마 학회 간사, 조교라도 하면 다행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지킨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 구조와 시스템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인문학 박사 과정 B 씨) 이날 토론자로 나선 신정욱 전 동국대 대학원총학생회장(30)은 “대학원생을 단지 ‘학생’으로 규정하면서 신진 연구자들의 활동 대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연구자들이 연구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학계에 만연한 ‘순혈주의’와 성차별 문제도 함께 제기됐다. “타교 출신에 전공도 다르다. 더군다나 여자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없는 사람’ 취급 받는 게 당연해진다. 학문의 최고 과정이라는 대학원에서 오히려 인간성의 최악을 경험한다.”(인문학 박사 과정 C 씨)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슈퍼마켓에 가면 ‘아인슈타인 우유’가 있고 길을 걷다 보면 ‘모차르트 음악 학원’ ‘몬테소리 유치원’ 등 천재들의 이름을 활용한 각종 간판이 도처에 널려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천재를 특별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다. 1955년 미국 프린스턴 병원의 의사 토머스 하비는 “천재의 뇌는 특별할 것”이란 생각에 아인슈타인의 뇌를 240조각으로 해부했다. 이처럼 천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를 매혹시켜 왔다. 이 책은 천재와 천재성의 역사를 추적했다. 저자는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역사학과 교수다. 역사적 접근뿐 아니라 철학, 신학, 미술사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천재의 변화 모습을 꼼꼼하게 파헤쳤다.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천재 소크라테스부터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익숙한 신성의 표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 표지는 어렸을 때부터 귀에 들렸던 음성인 ‘다이모니온(daimonion)’”이라고 밝혔다. ‘악마(demon)’의 어원이 되는 다이모니온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결국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같은 천재는 다이모니온에게 선택된 것이라며 ‘천재=신성(神聖)한 인물’이라고 여겼다. 이후 천재의 의미는 조금씩 변해갔다. 중세시대를 지나며 미켈란젤로와 이마누엘 칸트, 모차르트 등 각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으로 창조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이들을 천재(Genius)라 부르면서 신성함보다는 특별함이 강조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천재의 지위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선동과 정치의 천재였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 신비로움을 더한 이미지를 활용해 정권을 잡고, 대중을 현혹시켰다. 하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히틀러가 비참한 최후를 맞으면서 대중이 천재 숭배를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이후 한 사람의 머리보다 집단지성이 중요하다는 믿음과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천재의 민주화, 보편화가 이뤄졌다고 책은 말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을 강제로 바꿀 수는 없다.”(7월 19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공공기관장도 철학이 맞아야 함께 갈 수 있다.”(9월 11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장에 대한 생각이 출범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장관들의 말이다. 정부는 출범 초 ‘낙하산 인사는 없다’는 방침을 내비쳤고, 과거처럼 기관장들에게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받아 강제로 인사교체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나면서 산업부와 문체부, 금융권 등에서 기관장 교체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기관장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나 개별 기관·단체에 유무형의 압박을 가해 자진 사퇴를 이뤄내는 형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10월 국정감사 종료 이후 주요 기관장 교체 및 공석인 기관장의 임명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 공기업 34%가 ‘사장 공석’ 공공기관장 물갈이 움직임이 가장 거센 부처로는 산업부가 꼽힌다. 동아일보가 25일 국내 공기업 35곳 전체의 기관장 임기를 조사한 결과 12곳(34.3%)이 기관장 사퇴 이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중 8곳이 산업부 산하 공기업이다. 산업부는 백 장관이 “철학이 맞는 공공기관장과 함께 가겠다”고 말한 지 이틀 만인 9월 13일 장재원 한국남동발전 사장, 윤종근 한국남부발전 사장, 정하황 한국서부발전 사장, 정창길 한국중부발전 사장 등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사장 4명의 사직서를 받았다. 길게는 임기가 2년 이상 남아있던 기관장들이라 ‘일괄 사표를 받은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기관 사이에서 퍼졌다. 대한석탄공사,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석유공사 등 3곳의 수장은 채용 비리가 적발된 뒤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임기 4개월을 남기고 전격 사퇴했다. 김 회장은 “새 정부의 사퇴 요구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공공기관장 인사 외압 논란에 불을 붙였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도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돼 이날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감사원은 김 회장이 2015년 금감원에 “지인의 아들을 합격시켜 달라”는 취지의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청탁을 받고 신입행원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최근 금융권을 덮치고 있는 채용비리 문제가 전 정권 인사들을 정조준하면서 이들의 교체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 ○ ‘적폐 청산’ 대상으로 내몰리기도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에선 주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국정 교과서 논란 등과 관련돼 기관장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는 박명진 전 위원장과 김세훈 전 위원장이 5월 사퇴했다. 현재까지 신임 위원장이 임명되지 않아 5개월째 공석이다. 콘텐츠진흥원은 송성각 전 원장이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지난해 10월 물러난 이후 1년가량 수장자리가 빈 상태로 남아있다. 김정배 전 위원장이 사퇴한 국사편찬위원회는 6월 조광 신임 위원장으로 교체됐고, 이기동 전 원장이 물러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장 등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가 신임 원장으로 취임했다. MBC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이사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옛 야권 이사들이 고 이사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다음 달 정기 이사회에 안건으로 제출했다. 고 이사장은 “여러 의견을 수렴해 자진 사퇴는 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추가로 문체부 산하 기관장들이 사퇴 의사를 밝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소속 조영선 변호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관리에 책임이 있는 기관장이나 부서 책임자들은 스스로 용퇴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공개적으로 사퇴 압력을 넣기도 했다.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 / 유원모·송충현 기자}

허름한 가방 안에는 한지(韓紙)에 그려진 한반도 지도 10장이 들어있었다. 지도는 독특했다. ‘동해물과’부터 ‘보전하세’까지 애국가 가사로 채워진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14년째 애국가 지도를 직접 만들고 있는 서예가 조용군 씨(82)의 작품이다. 독도의 날(25일)을 앞둔 20일 조 씨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지도에선 애국가 가사 ‘…화려강산’의 ‘산’으로 표현해 낸 독도가 유독 눈에 띈다. 태극기와 함께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문구도 함께 표시돼 있다. 208자의 가사로 채워진 지도는 모두 조 씨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내려간 것이다. 그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먹을 갈고, 붓을 잡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며 “가로 45cm, 세로 70cm 크기의 지도를 만들려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3∼4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2시간이면 완성한다”고 말했다. 조 씨가 애국가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 재단사와 건물 관리직 등을 마치고 퇴직한 그가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우연히 한자로 만들어진 애국가 지도를 발견한 것. 그는 “동해수(東海水) 백두산(白頭山)처럼 한자로 채워져 있다 보니 와닿지 않았다”라며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나이가 들면서 백내장이 찾아와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그는 “서예만큼 예민한 것이 없어서 한번 붓을 잡고 쭉 써 내려가지 않으면 지도를 망친다”며 “눈이 불편해 초점이 잘 맞지 않지만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더 수려한 글씨의 지도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지도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종 교육기관 등에 지도를 배포했다. 2004년부터 그가 배포한 애국가 지도는 올 10월 현재 2만 장에 달한다. 전국 초중고교부터 국립한글박물관,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청까지 다양한 곳에 기증돼 있다. 그가 이처럼 애국가 지도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뭘까. “국립해양수산학교를 졸업해 어렸을 때부터 늘 독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주위에선 누구나 아는 지도를 굳이 왜 애국가 가사로 표현하냐고 묻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전국의 학교, 집집마다 독도가 정확히 표기된 애국가 지도가 있다면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가장 큰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본관사또 큰 잔치를 베풀 때 명기명차 다 모아서… 가성은 요란하여 반공에 높이 떴다.”(장자백 창본 춘향가 중) 춘향전의 악역 변사또의 생일 축하연을 묘사한 부분이다. 제아무리 조선시대 수령(사또)이라 하더라도 기생과 광대들을 관아로 불러들여 생일잔치를 벌일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이 같은 일을 한다면 당장 주민소환 요구가 빗발칠 것이 뻔하다. 하지만 당대 18세기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했다고 한다. 김현주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당시 지방 관청의 공식 연회는 신임 축하, 외교사절 영접 등에 국한됐지만 사또는 왕의 대리자로서 각 지역의 절대 권력자였다”며 “비슷한 시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평안감사 향연도’를 보면 변사또의 성대한 축하연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한 번쯤 접했지만 제대로 분석하며 보는 이는 거의 없는 춘향전. 김 교수가 최근 펴낸 ‘춘향전의 인문학’(아카넷)은 당대의 관점에서 춘향전을 새롭게 조명했다. 김 교수는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춘향전을 이해하는 장애물로 작동하고 있다”며 “춘향전의 시대 배경에 독자들이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당시 제작된 지도, 문서, 그림 등과 함께 분석했다”고 밝혔다. “옥중에 들어가서 부서진 죽창 틈에 살쏘느니… 벼룩 빈대 만신을 침노한다.”(열녀춘향수절가 중) 변사또가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를 투옥시키는 유명한 장면이다. 수청을 거부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정답은 ‘아니요’다. 조선의 사또는 지방의 사법·행정권을 총괄한 직위였다. 그러나 이들의 형벌권은 태형 이하의 사건에만 국한됐다. 투옥 등 중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각 도의 관찰사 소관이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춘향은 퇴사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하고….”(열녀춘향수절가 중) 춘향의 신분 변화는 극적이다.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어머니 월매가 천민이었던 기생 출신인 탓에 춘향 역시 천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이몽룡과의 혼인 후 ‘정렬부인’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정렬부인은 절개와 지조를 지킨 여성에게 내리는 명예직 신분이다. 김 교수는 “천민인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가 숙종의 눈에 들어 연잉군(훗날 영조)을 낳아 인생 역전에 성공한 적도 있다”며 “엄격한 신분제였던 조선 사회에서 춘향의 신분 상승은 민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가 신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7인을 선임했다고 23일 밝혔다. 신임 위원은 강원숙 영화프로듀서(48), 김영호 영화촬영감독(47), 김현정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48), 모지은 영화감독(42),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60), 조영각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47), 주유신 영산대 게임영화학부 교수(52)다. 비상임 위원으로 임기는 2019년 10월 22일까지 2년이다. 이번 신임 위원들은 영화계 각계의 현장을 대표하는 인사로 구성됐다. 여성 위원이 총 4명으로 위원 정수 8명의 절반을 차지했다. 문체부는 올해 7월 영화 단체들을 상대로 후보자를 추천받았다. 조영각 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계에서 추천한 인사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추천한 이준동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의 동생이다. 두 형제는 2010년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시(詩)’, ‘오아시스’ 등을 함께 만들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등을 연출한 모지은 감독은 한국영화감독조합 분쟁조정위원으로 활동했다. 김현정 대표는 ‘스캔들’ ‘라듸오데이즈’, ‘덕혜옹주’ 등의 각본을 썼다. 주유신 교수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다. 영화계는 현장 인사가 대거 신임 위원으로 뽑혔다며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과거 영진위원들이 주로 행정가와 제작자 위주였다면 이번엔 촬영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 젊은 영화인이 대거 선출된 것이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영화계 현장 인사들이 많이 선출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영화계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위원들이 반영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정부가 임명하는 위원장을 포함한 9인의 위원이 운영하는 합의제 기관이다. 문체부는 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위원장 인사에도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부위원장은 31일 신임 위원들의 회의에서 호선으로 선출될 예정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영진위원장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게 돼 있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위원들의 호선으로 위원장을 선출할 계획이었지만 법 개정이 늦어져 이번 인사에선 적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양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공자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논어’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나온 세월 동안 논어의 20편 구성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학이(學而)’부터 ‘요왈(堯曰)’까지 20편의 편명은 각 구절의 첫 단어를 따왔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왜 논어를 편집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가. 논어의 다양한 가르침을 주제별로 새롭게 편집한 ‘논어신편’(이권효 지음·새문사·사진)이 최근 출간됐다. 동아일보 기자이자 동양철학 박사 출신인 저자가 공자의 가르침을 호학, 수신, 인격, 효도, 정치, 초탈 등 6가지 주제로 나눠 재구성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논어뿐 아니라 ‘맹자’ ‘순자’ ‘예기’ ‘주역’ ‘공자가어’ ‘효경’ ‘춘추좌씨전’ 등 주요 문헌에 흩어져 있는 공자의 말을 함께 녹여 풀어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논어 구절 대부분을 우리말로 풀어 썼다는 것이다. 논어의 핵심 개념인 ‘인(仁)’은 ‘생명력 있는 태도’, ‘군자(君子)’는 ‘인격 높은 사람’으로 바꿔 표현했다. 예(禮)와 도(道), 중용(中庸) 등 주요 용어도 우리말로 바꿔 썼다. 공자와 논어에 관한 책 가운데 ‘인’과 ‘군자’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은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출판사 측 설명이다. 저자는 “고전(古典)의 해석은 독점할 수 없으며 넓은 지평 위에서 개방적으로 접근할 때 오히려 생명력을 얻는다”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그의 명성이 얼마나 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실험과 일치하지 않는 법칙은 틀린 것이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과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말이다. 그의 말은 과학의 본질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과학은 실험(증명)을 통해야만 권위를 얻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류 과학사에서 혁신적인 100개의 실험을 소개했다. 저자 존 그리빈은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최고의 과학 작가’라고 표현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과학 저술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00여 권에 달하는 대중과학서를 집필했다. 이 책 역시 비전문가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190여 개에 달하는 이미지와 풀어 쓴 설명이 이해를 돕는다. 책은 인류 최초의 과학 실험으로 평가받는 기원전 3세기의 아르키메데스의 순금 검증 실험부터 살핀다. 목욕을 하다가 욕조에서 넘쳐나는 물을 보고, 부력과 부피 측정의 방법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 몸을 던진 실험 끝에 ‘유레카(알았다)’를 외친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읽는 이에게도 통쾌함을 선사한다. 저자는 특히 1600년 영국의 과학자 윌리엄 길버트에 주목한다. 그가 쓴 ‘자기에 관하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오직 과학실험에 의해서만 저술됐다. 저자는 이때부터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과학적 연구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알하젠의 광학 실험, 중력파를 검증해 낸 ‘라이고 실험’ 등 인류 과학사에 분수령이 된 각종 실험 이야기들이 총망라돼 있다. 과학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