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역사적인 첫 만남에 합의하면서 한반도가 ‘운명의 봄’을 맞게 됐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북핵 폐기는 물론이고 6·25 종전 이후 64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 체제는 그야말로 전혀 다른 격변의 시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는 물론이고 구체적인 의제도 정해지지 않은 만큼 당분간 ‘살얼음판’ 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미 정상의 ‘원샷 타결’ 방식으로 진행될 공산이 큰 이번 비핵화 시도가 좌초하면 한반도는 다시 한 번 걷잡을 수 없는 위기 국면을 맞게 될 수도 있기 때문.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목표가 아니라 첫걸음이란 말은 그래서 나온다.○ 정상회담 평양서? 워싱턴서?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듣고 그 자리에서 “좋다. 만나겠다”고 수락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 수락 이유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일가견이 있다”며 “김정은은 독특한 전체주의 체제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결정권자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 등 회담을 위한 디테일은 이제부터 정해야 한다. 북-미 간 실무 접촉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회담 시기는 ‘5월 안(by May)’이라고 돼 있다. 그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4월로 하자고 했다가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하자는 우리 측의 요청에 따라 바꾼 것이다. 그만큼 아직 구체적인 회담 일정은 정해진 게 없다. 정상회담이 어디서 열릴지도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김정은이 먼저 ‘초청’ 의사를 밝힌 만큼 평양에서 만남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이날 백악관에선 정상회담을 미국에서 열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면 북한으로선 북-미 관계 정상화의 극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94, 2010, 2011년 세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으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2009년 억류된 여기자 석방 협의를 위해 평양을 찾았다. 하지만 이는 퇴임 후라서 현직인 트럼프와는 파장이 전혀 다르다. 이 때문에 판문점과 서울, 제주 등 한국에서 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장소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직접 평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북-미 수교 일괄타결 시도될 듯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다. 북한이 이미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핵무기 소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완성을 앞두고 있는 만큼 미국은 줄기차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원칙을 강조해 왔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회담 의제에 대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와 이에 대한 검증이라는 결과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1, 2차 북핵 위기 당시 비핵화 협상과 달리 정상회담이라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회담에선 북핵 폐기와 북-미 수교를 한꺼번에 논의하거나 주고받는 일괄타결이 시도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큰 목표를 놓고 회담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은 핵 폐기,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들고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대북 특사단에 “미국은 우리를 정상국가로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는 등 ‘셔틀외교’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남북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큰 그림이 나오면 곧바로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이런 프로세스가 장밋빛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미 간 이견이 얼마든지 불거질 수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 시기를 정하는 데) 몇 주가 걸릴 것”이라며 “김정은과는 만나서 대화를 나누려는 것이며 (구체적인 협상 등) 그 이상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신나리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사진)을 미국 특사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8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익명의 한국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이 김여정을 한국에 보냈던 것처럼 미국에도 보낼 의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김여정은 현재 북한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어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직접 전할 메시지가 있다”며 “메시지 내용은 파격적이고, 매우 특이하다. (그렇다고) 미 정부가 이 메시지를 공개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김여정 특사에 상응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대북 특사로 갈 가능성도 나온다. 이에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해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 정부 관계자는 “김여정이라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 온다면 미국도 예를 갖추겠지만, 중요한 건 특사보다 특사의 메시지”라며 “뉴욕채널 등을 통해 북-미가 메시지를 조율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 여권 관계자는 “김여정이 특사로 한국에 왔고, 우리 대북 특사가 평양에서 김정은과 면담할 때 배석했다”면서 “김정은이 (김여정을) 후계자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김정은의 장남이 올해 8세로 어린 만큼, 만약의 급변사태에 권좌를 물려줄 대상으로 김정은이 여동생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한 김정은이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반도 대화 국면의 불씨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백악관이 환영 의사와 함께 완전한 비핵화를 재차 강조하면서 북-미가 실제로 마주 앉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청와대 역시 “한반도 평화 조성을 위한 실질적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8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을 시작으로 대북 특사단이 들고 온 결과를 토대로 미-일-중-러 설득에 나선다.》 ● 김정은의 전략은부인 만찬 동석-특사단 깍듯한 예우… 파격적 제스처체제보장-북미수교 염두 ‘불량국 아닌 정상국가’ 강조북한 김정은은 5일 우리 특사단과의 회동에서 내용과 형식 모두 파격적으로 비칠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인정하고, 노동당 청사 본관에서 만찬을 열고, 부인 리설주와 동행한 게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북한이 이상한 나라가 아닌 ‘정상 국가(normal state)’라는 점을 강조하려 했고, 더 나아가 미국이 이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정은이 꺼내든 정상 국가 요구 카드는 대북제재 완화 차원을 뛰어넘어 체제 보장, 북-미 수교까지도 포괄하는 ‘패키지’인 만큼 이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수용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7일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특사단과의 회동에서 대부분의 합의사항을 먼저 제안했다. 특사단이 준비해 간 내용을 김정은이 선제적으로 밝히면서 “북한이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한 것 아닌가”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청와대는 “다른 요구조건은 없었다”고 밝혔다. 대북제재 완화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명시적으로 없었다”고 했다. 그 대신 김정은은 정상 국가라는 더 큰 차원의 논의를 언급했다. 국제사회에서 테러지원국, 불량 국가로 낙인 찍혀 있지만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보편적인 국가로 대우해 달라는 것. 한 외교 소식통은 “도발에 나서지 않으면서 방어적 군사훈련을 인정하고, 정상 간 직통 라인을 구축하는 것 등은 국제사회의 규범상 당연한 일들”이라며 “보편적인 국가 간에 제재는 없기 때문에 정상 국가를 꺼낸 건 대북제재를 끝내 달라는 의미도 자연히 포함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정은은 특사단과의 만찬에서 서훈 국가정보원장 자리로 걸어가 건배를 청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두 손으로 받는 등 예의 있는 모습을 보였다. 여권 관계자는 “특사단과의 회동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안하무인의 독재자가 아닌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국가 원수의 모습을 보이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이런 요구를 내놓은 건 체제 안정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이 6년 동안 집권하며 내부 단속을 마쳤다고 생각한다. 2016년 헌법을 개정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하고 자신이 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정상 국가화(化) 로드맵을 추진해온 것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특사 접견 과정에서 보인 특유의 파격적인 행보도 정상 국가 인정 요구로 북-미 현안을 ‘원샷’에 풀려는 것과 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건은 김정은의 이런 요구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비핵화의 의지를 북한이 보인 만큼 미국이 북한의 체제 보장 등 후속 카드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쳤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체제 보장을 넘어 북-미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수 있는 정상 국가 카드를 트럼프가 현 단계에서 덜컥 받아야 할 계기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결국 대북제재 때문에 김정은이 대화 테이블에 나온 것인 만큼 트럼프는 북한을 정상 국가로 인정할지를 판단하기 전에 비핵화 의지가 검증 가능한 것인지를 살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김정은은 선언적 비핵화를 했을 뿐이고 트럼프와 국제사회는 검증된 비핵화를 원하고 있다. 정상 국가는 아직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 트럼프의 전략은“압박작전 효과… 前정권과 다르게” 제재 강화할수도北, 과거에 대화 제의뒤 핵개발… 美 “진의파악 우선”“우리는 전에 그런 영화를 여러 번 봤다. 결말이 매우 나쁜 영화의 최신 속편을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니다.”(미국 백악관 고위 관계자) 미 백악관은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사 표명에도 ‘최대한의 압박’ 작전을 늦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7년간 반복된 북-미 대화 실패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흔드는 ‘올리브 가지’가 핵무기 완성의 속내를 감추기 위한 ‘무화과 잎’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 최대한 압박 작전의 끈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간) 자신이 대북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무엇인지 다시 똑똑히 밝혔다. 바로 ‘뭘 하든 지난 정권과는 다르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를 돌이켜보라. 일이 풀린 적이 없다”며 “어떤 방향으로든 뭔가를 해야 한다. 상황이 더 썩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전임 행정부와 가장 차별되는 부분이 북한의 수출을 90%까지 차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와 미국의 제재 압박이라고 인식한다. 그는 북한의 대화 의사는 “북한에 대해 우리가 한 일과 제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대화 제의를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과 관련해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이 줄곧 반대해온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이해한다는 뜻을 전한 것이 워싱턴에 (진정성에 대한) 믿음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협상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할 경우 중국과 국제사회에 대북 압박을 더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전임 행정부와의 차별화 노력에도 북한의 대화 제의에 대해 “이미 여기까지 와 본 적이 많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과거 대화 제의가 숨은 의도를 감추는 무화과 잎으로 판명났었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깨고 핵 개발을 계속했고 2005년 9월 5자회담을 통해 ‘9·19공동성명’에 합의했지만 이듬해 미사일 및 핵실험을 강행했다. 2012년의 2·29합의도 장거리 로켓 발사로 깨졌다. 미 정부는 이번 주 워싱턴에서 대북 특사단을 만나 북한의 진의를 확인하고 북-미 대화 등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 당국자들과 만나 북한과 관련해 어떤 조치를 할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핵 동결 의사만으로도 북한과 대화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선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북한의 의도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미국 내에선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조건부 중단 의사를 밝힌 ‘핵미사일 모라토리엄’도 얻어낼 게 없으면 얼마든지 깰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의 ‘북한식 비핵화 공세’에 나서 한미동맹의 균열을 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도 “우리는 한국을 굳게 믿고 있으며 매우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다”며 “이번 주말 한국과 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패럴림픽이 끝나면 방어 목적의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한기재 기자}
감사원이 2003년 이후 15년 만에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기관운영감사를 다음주부터 실시한다. 감사 사각지대였던 국가정보원에 대해서도 사상 처음으로 감사를 실시한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7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8년 감사운영방향을 발표하며 “대통령실에 대한 감사 일정이 확정됐다. 현재는 예비조사 단계에 있고 다음주부터 감사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올해 상반기에는 검찰청, 하반기에는 국정원에 대해 재무부문 중심으로 감사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법무부가 주로 내부 감사했던 대검찰청과 일부 고검·지검에 대해서도 기관운영 감사를 처음으로 벌일 방침이다. 국정원은 2004년 김선일 피살사건과 관련해 ‘핀포인트 감사’를 받은 후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첫 ‘정책감사’인 4대강 사업 추진실태와 정책결정에 대한 감사결과는 올해 상반기에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은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빨리 발표하도록 노력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신나리기자 journari@donga.com}
5일 오후 평양 노동당 본관 진달래관 만찬장. 김정은 위원장이 중심에 앉아 대화를 주도하자 왼편에 있던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파안대소했다. 서 원장의 양옆에 착석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부인 리설주도 엷은 미소를 띠며 대화를 경청했다. 원탁을 둘러싸고 섞여 앉은 남북 인사들은 일어나 손에 든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6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10분 50초 분량의 영상엔 특별사절단의 방북 일정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방북 첫날부터 대북 특사단을 맞은 김정은 곁에는 항상 김여정이 함께했다. 노동당 본관을 찾은 정의용 수석특사 등 방남 이후 20여 일 만에 다시 만난 낯익은 얼굴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넨 김여정은 명실공히 북한 정권의 실세임을 드러냈다. 특사단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을 때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김정은을 보좌했다. 김여정은 전혀 주눅 드는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특사단과 면담을 나누던 도중 김정은의 발언에 메모를 멈추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특사단에 특유의 눈인사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김여정과 함께 가장 눈길을 끈 북측 인물은 단연 리설주였다. 연분홍빛 실크 원피스와 재킷을 걸치고 분홍색 하이힐을 신은 리설주는 정 수석특사와 서 원장 등에게 “반갑습니다”와 긴 인사말로 여느 외국의 퍼스트레이디 못지않게 특사단을 환대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부인이 동석해 외교사절을 맞는 장면이 공개된 적이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리설주의 참석을 두고 “북한이 정상 국가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북한 매체들은 지난달 8일 열병식 보도 때부터 리설주의 호칭을 ‘동지’에서 ‘여사’로 바꾸면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이날 만찬에는 김영철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맹경일 통전부 부부장, 김 씨 일가의 집사 격인 김창선 서기실장도 배석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대표단으로 참석했던 구면(舊面)들을 내세움으로써 남북 정보 당국인 통전부와 국정원 라인을 공식화해 향후 교류 채널을 다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특사단 방북 기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손기웅 통일연구원장은 “최룡해는 김정은의 정치적 라이벌이나 다름없다. 최룡해가 매스컴을 타게 되면 김정은의 권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5일 오후 평양에 도착한 대북특사단의 방북과 함께 ‘북핵 슈퍼위크’의 막이 올랐다. 지난달 강원 평창에서 시작된 대화 분위기는 평양으로 옮겨져 주말쯤 미국 워싱턴을 거쳐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석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행 특별기에 오르며 “북한과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와의 다양한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이목이 평양에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 평화 구축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한 문재인 정부는 흥행 면에선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방북 첫날 특사단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만찬까지 하면서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랐다. 그러나 정부가 내세우는 ‘중매외교’가 빛을 발하려면 북-미 양측이 만족할 만한 여건에서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 ‘무조건 비핵화 대화’를 고수하는 미국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또는 연기나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북한 사이에서 한국이 접점을 얻어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특사단이 미국보다 더 강하게 비핵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북-미 대화를 견인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사가 일단 확인된 다음에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며 “핵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가 우리 아닌가? 북한이 비핵화 얘기를 못 꺼내게 하면 (특사단이) 빈손으로 돌아올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계속 내놓는 게 우리로선 나쁘진 않다. 정 수석특사가 ‘미국에 가서 설명해야 하는데 당신들이 묘안을 내놓지 않으면 할 말이 없다’고 말할 각오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북한에 비핵화 대화를 촉구한 것은 정부의 스탠스를 엿볼 수 있다. 강 장관은 이날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세계기자대회’ 오찬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ID)는 타협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이 같은 발언으로 비핵화만큼은 한미가 물샐틈없이 공조하고 있으니 김정은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미국은 일단 대북 특사단 행보를 관망하는 모습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나서주는 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협상이 자칫 어그러지거나 북한이 도발하면 책임을 북한에 돌리고 압박하기에도 좋다”고 전했다. 미국은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내세워도 대화의 진짜 목적은 결국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제재 완화라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숨통을 조인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하고 싶은 미국을 설득해 북한과 적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서울대 교수는 “특사단의 방북 이후 방미 기간 사이 정치적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핵 슈퍼위크의 파장은 한반도 주변국에도 고루 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 안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도 추진하고 있다. 5일 중국 외교부는 특사단 방북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반면 일본은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이 완전하게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핵·미사일 폐기를 한다고 동의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손효주 기자}

5일 오후 대북 특별사절단이 특별기를 타고 방북하면서 서해 직항로가 다시 열리게 됐다. 특사 자격으로 지난달 방남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이 돌아간 지 22일 만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미국 정부에 독자제재 예외 허용을 한 번 더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대통령 행정명령 형식으로 ‘외국인이 이해관계가 있는 항공기는 북한에서 이륙한 지 180일 안에 미국에 착륙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1월 말 마식령스키장 남북 공동훈련을 위해 전세기를 이용한 갈마비행장 이착륙 시에도 미국과 막판 조율을 통해 예외를 인정받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사단 파견을 통보한 다음 날(2일) 전통문을 통해 북측에 서해 항공로를 이용한다고 연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절단은 서울공항에서 공군 2호기(보잉 737-3Z8)를 타고 방북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인천공항과 평양 순안공항을 잇는 서해 직항로는 인천공항에서 공해상으로 빠져나간 후 다시 북상해 평양 서쪽 바다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ㄷ’자 모양이다. 2000년 남북 합의에 따라 임시로 만든 항공로로,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북한조문단이 이용했으며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2015년 8월 방북했을 때도 이용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번 방북은 김정은 위원장이 파견한 김여정 특사 방남에 대한 답방의 의미가 있다.” 4일 청와대가 대북 특별사절단을 발표하면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방북 성과는 물론이고 5일부터 방북길에 오르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사절단 수석)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1박 2일간 김여정처럼 국빈급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먼저, 사절단을 맞을 북한의 첫 ‘얼굴’이 누구일지가 중요하다. 장관급 인사만 2명이 포함된 이번 사절단을 북한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 지난달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방남한 김여정 특사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영접하기 위해 우리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차관급) 등 3명이 나섰다. 정부도 내심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장관급 영접을 기대하고 있다. 북한이 기선 제압을 위해 고위급 영접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기대는 금물이다. 고위급을 내보내 예우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서 원장과도 친분이 있는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대남 일꾼’으로 꼽히는 맹 부부장은 김영철 부장과 함께 폐회식 참석차 방남해 체류 기간 중 이번 사절단에 포함된 김상균 국정원 2차장과 비밀리에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평양에 도착한 첫날 사절단은 북측 고위급 관계자들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여건 마련, 남북 교류 활성화와 같은 남북관계 개선 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정은과의 면담을 타진하는 동시에 면담이 이뤄질 경우를 대비한 의제 사전 조율 차원이다. 문 대통령이 김여정 등 고위급 대표단을 4차례 접촉했던 것처럼 김정은이 1박 2일간 사절단을 만날지, 만나면 어디서 몇 번 만날지는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다. 지난달 김여정 방남 시 우리는 문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 장관, 서 원장 등이 대거 나섰다. 이전 특사단처럼 이번 사절단 역시 북한의 대표적인 국빈급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에서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김정은을 이곳에서 만난다는 보장은 없다. 1, 2차 남북 정상회담은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앞서 1차 회담을 위한 특사로 온 박지원 당시 문화부 장관도 김정일을 백화원에서 만났다. 하지만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6자회담 참여를 설득하기 위해 특사로 찾았을 때 김정일 면담 장소는 평양 대동강 영빈관이었다. “내 책상 위에 핵단추가 있다”고 밝힌 김정은도 집무실보다는 외부에서 사절단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절단에는 취재진이 동행하지 않는다. 북한 취재기자단이 올림픽 개회식은 물론이고 폐회식까지 고위급 대표단의 동선을 함께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미국이 비핵화를 목표로 한 북-미 대화만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연일 강조하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1일 노동신문은 사설에서 “미국은 우리의 주동적인 노력으로 마련된 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북남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군사적 선택’과 합동군사연습의 재개에 대해 떠들어대며 긴장상태를 극도로 격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미 군사훈련의 추가 연기는 없다는 미국 정부에 정면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노동신문은 지난달 26일에도 “미국의 합동 군사연습은 북한에 대한 전면전쟁 도발을 가상한 것”이라며 훈련 취소를 요구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1절 신문 사설이 일본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던 데 비해 미국을 향한 언급이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신문은 “해방 후 일제를 대신해 우리 조국의 절반을 강점한 미국은 남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체제를 강화하면서 인민들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았다”면서 “남조선을 타고앉아 주인 행세를 하며 민족의 존엄과 리익(이익)을 악랄하게 해치고 있는 미국의 범죄적 책동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이용해 한미 간의 틈새를 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한이 오히려 미국과의 대화가 가까워지자 비핵화 조건을 받아들였을 때의 손익을 계산하며 내부 정비에 착수했다는 분석도 있다. ‘대미통’ 최선희가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에서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했다는 외신 보도 역시 대화 기류의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의 트랙 1.5(민관합동대화) 채널 대화 경험이 있는 최선희의 승진은 북한이 향후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것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사진)는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방한 기간 ‘북-미 대화 용의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북한이 비핵화로 이어질 수 있는 의미 있고 진지한 입장을 표명한다면 대화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설 것이라고 누가 봐도 수용할 만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명해야 북-미 대화에 나설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대화가 어렵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내퍼 대사 대리는 28일 서울 주한 미대사관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우리는 비핵화라고 표현된 목표가 없는 핵·미사일 개발 시간 벌기용 대화를 원치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은 대화의 기회를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로 사용한 전력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공개 촉구한 데 대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은 양보할 수 없는 ‘최소 조건’임을 주지시킨 것이다. 또 내퍼 대사 대리는 “북한이 우리에게 적절한 태도를 보여야 하고 올바른 결정도 해야 한다”며 비핵화 선언과 함께 북한의 협상 의지를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을 거듭 내비쳤다. 이어 “북한은 우리(미국)에게 연락할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며 뉴욕채널 등을 통한 접촉은 얼마든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계이자 대북 대화파로 분류되는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은퇴에 대해선 “우리(미국 정부) 정책은 똑같이 유지될 것이고, 한국 정부와의 협력 및 조율도 흔들림 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표의 은퇴로 미국의 대북 기조가 더욱 강경해질 것이라는 해석에 선을 그은 셈이다. 내퍼 대사 대리는 김영철의 방한에 대해선 “남북관계의 진전을 환영한다.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 상황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4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연습의 연기 가능성에 대해선 “추가 지연될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외교부 공동취재단}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북한 선수단, 응원단, 기자단이 26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귀환했다. 이날 오전 11시 38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한 북한 선수단 등은 다소 피곤한 기색에도 밝은 표정으로 수속을 기다렸다. 오랜 기간 머물며 안면을 익힌 한국 측 관계자들과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봅시다”라며 석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19일 만에 돌아가는 여성 응원단원들은 “남과 북이 언어도 핏줄도 같은 한겨레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 단원은 “북과 남의 선수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경기에서 땀 흘리고 열정으로 합치고 공동 응원을 나눈 게 제일 뜻깊었다”고 했고, 또 다른 단원은 “통일 열기가 더욱 고조돼 조국 통일의 그날이 하루빨리 앞당겨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이후 13년 만에 한국을 찾은 북한 응원단은 과거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때보다 현저히 주목도가 낮아졌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단 규모가 작아 응원단 노출 기회가 적었던 데다 북한 응원단에 익숙해진 한국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큼 눈에 띄는 응원을 선보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른바 ‘김일성 가면’ 논란을 일으킨 응원으로 응원단 책임자는 북한 당국의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응원단은 1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첫 경기에서 김일성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가면을 응원도구로 활용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직접 해명하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한 북한 소식통은 “당시 평양에서 ‘괜한 분란 일으켰다’고 (응원단 책임자를) 엄청나게 혼냈다고 한다. 남측 주민들에게 더 다가가라는 지시도 내려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남북 단일팀에 참여했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과 피겨스케이팅 선수들도 이날 북한으로 돌아갔다. 한 북측 아이스하키 선수는 “모든 경기가 다 인상 깊었다. 다음에도 단일팀 구성이 꼭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최종 13위로 북한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의 최고 성적을 낸 렴대옥, 김주식 선수도 “뜨거운 성원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북한으로 돌아가면서 취재진에게 직접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강국 조선중앙통신 기자는 “정말 특별했다. 특히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그런 유일팀을 계속 꾸려가길 바란다”고 말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파주=공동취재단}

25일 오전 9시 49분,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꼽히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측 땅을 밟았다. 4분 뒤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한 그는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영접을 받으며 10시 11분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안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점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나”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정부는 김영철에 대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굳은 표정의 북한 대남 총괄책임자는 주변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우리 정부가 준비한 검은색 제네시스 관용차에 올라탔다. 그를 두 발짝 뒤에서 따라가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도, 앞서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때도 김여정을 수행한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 대남통 리현,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 김명국 김주성 조봄순 등 수행원단 일동도 침묵했다. 북측 대표단이 숙소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김영철의 방남을 저지하기 위해 전날부터 밤샘 농성을 이어온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지지자들, 보수단체가 통일대교를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 결국 김영철 등 대표단은 통일대교 북쪽 삼거리에서 방향을 틀어 경기 파주시 파평면과 진동면을 연결하는 전진교를 건너 자유로 당동 나들목까지 약 14.7km를 우회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전진교는 일반 지도상에 나오지 않는 도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소속 김학용 국회 국방위원장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군 작전지역’을 거리낌 없이 내줬다”고 지적하자 국방부 대변인실은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이용한 ‘지방도 372호선 일반도로’는 군사도로나 전술도로가 아니다”라며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전진교는 372호선 도로 노선이 아니고 전진교 남단부터 당동 나들목까지 김영철 일행이 이용한 도로도 국도 37호선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철은 이날 공개적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주범의 방남 허용에 따른 거센 역풍을 의식한 듯 김영철 일행은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해서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또 다른 취재진의 질문에도 아무 말도 안 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방남 소감이나 점심 식사를 묻는 질문에도 입을 닫았다. 천 차관의 안내를 받으며 오후 4시경 KTX를 타고 평창 진부역에 내려 여러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아무 말 없이 역을 빠져나갔다. 김영철의 향후 일정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22일 “통전부장의 카운터 파트는 국가정보원장”이라고 밝힌 대로 서훈 국정원장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대북 정책 결정자들과의 면담도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가 김영철의 일정을 철저히 가리고 있어 이 역시 언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정부 안팎에선 김영철의 방남 비판 여론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평창 올림픽 북한 참가 종합설명자료’를 내고 “남북관계 진전과 한반도 비핵화의 선순환 구도를 형성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북한의 참가로 단절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하는 토대를 만들었다고도 자평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의 다양한 우려와 지적을 겸허한 자세로 수용하고, 국민들의 대북인식 변화 및 젊은 세대의 가치와 요구 등을 직시하겠다”고 했다. 파주=공동취재단·신나리 journari@donga.com·서형석 기자}

25일 오후 8시,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이 열리는 올림픽플라자에 입장한 문재인 대통령은 VIP석 앞줄에 앉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악수를 나눴다. 이어 뒷줄에 앉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도 웃으며 손을 잡았다. 3시간 전 회동에서 “북-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김영철과 문 대통령이 다시 만난 것이다. 한미와 북한 대표단은 VIP석에서 폐회식을 지켜봤지만, 이방카 보좌관과 김영철은 폐회식이 끝날 때까지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북한의 북-미 대화 거부로 꺼질 것 같았던 한반도 대화 기류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다시 타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대화 거부했던 北, 폐회식에선 “북-미 대화 용의”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부터 평창에서 김영철과 한 시간 동안 전격 회동을 가졌다. 김영철은 이 자리에서 “북-미 대화를 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에 문 대통령이 “북-미 간 조기 대화가 필요하다”며 북측에 공을 넘긴 상황에서, 김정은도 일단 김영철을 통해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개회식 전후로 문 대통령이 어렵게 마련한 북-미 대화를 성사 직전 걷어찼지만, 트럼프 미 행정부의 초강력 대북 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대화 국면을 마냥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북-미가 단기간 내 대화 테이블에 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방카 보좌관과 함께 방한한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기자회견을 하고 “북한과 대화하려면 비핵화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산적인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또는 추가 도발 중단이 대화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과 김영철의 회동에서는 10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의 회동에서처럼 비핵화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끊이지 않는 북-미 실무라인 접촉설 이날 폐회식 자리 배치는 개회식과 사뭇 달랐다. 당시엔 문 대통령 내외 바로 뒷줄에 김여정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앉았고,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내외는 문 대통령 내외 옆에 앉았다. 폐회식에서는 문 대통령 내외 옆에 이방카 보좌관이 앉았고 김영철은 문 대통령과 네 자리가량 떨어진 뒷줄에 자리를 잡았다. 김영철은 오후 9시 55분경 폐회식이 끝나기 전 먼저 자리를 떴다. 앞서 이방카는 24, 25일 이틀간 북한과 관련한 어떠한 행보도 하지 않았다. 23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만찬에서 “(이 자리는) 최대한의 압박을 위한 (한미) 공동의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라 생각한다”는 이방카 보좌관의 발언이 유일한 공개적 대북 메시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날 김영철을 통해 북-미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26일 이방카 보좌관이 떠나기 전 북-미 접촉 여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북한이 대표단에 외무성 대미 라인의 주요 인사인 최강일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을 포함시킨 것도 가능성을 증폭시켰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방카 보좌관과 수행단이 26일 오전 출국하지만, 한두 명이 개인적 용무 등을 이유로 출국일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2014년 김영철과 북한에서 만났던 앨리슨 후커 미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관이 서울에 남아 27일 떠나는 김영철 일행과 별도의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도 북한에 “대화 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김영철이 폐막식에 참석하기 전 만찬을 함께하며 후속 논의를 가졌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

천안함 폭침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수용에 대해 거센 역풍이 불자 각 부처가 일제히 “김영철이 주범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남북 대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오히려 역풍이 더 거세질 조짐이다. 통일부는 23일 이례적으로 A4 용지 6장 분량의 설명자료를 내 “일부 국민들께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문과 관련해 염려하는데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께서도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어 “천안함 폭침은 분명히 북한이 일으켰으며 김영철 부위원장이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던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 관련자를 특정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김영철을 배후로 지목해 왔지만 북한이 김영철의 방한을 통보한 뒤 정부가 전날에 이어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대북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김상균 국정원 제2차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영철에 대해 “추측은 가능하지만 명확하게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보고했다고 정보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이 전했다. 국방부 최현수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김영철의 주범 가능성에 대해 “공식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며 “(국방부 공식 문건에) 공식적으로 김영철이나 정찰총국을 언급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 국정원, 국방부 등 대북 관련 기관들이 일제히 ‘김영철 변호’에 나선 형국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남북 대화를 넘어 북-미 대화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김영철의 방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전부장은 북핵·미사일 문제 등을 총괄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실무 총책임자”라며 “(우리가 북한과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는 북-미 대화 문제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김영철을 보내겠다는데 우리가 마냥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서 북한 김여정에게 “남북 관계와 북-미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전한 메시지에 대한 답변을 김영철이 갖고 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과 김영철의 접견에서는 북-미 대화를 위한 여건 조성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다음 달 9∼18일 열리는 평창 패럴림픽의 북한 대표단 참가를 논의하는 남북 실무회담이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박훈상 기자}
지난해 남북한 평화지수 격차가 전년보다 더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세계평화포럼(이사장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통계 수집이 가능한 195개국을 대상으로 종합 분석해 발간한 ‘세계평화지수(WPI·World Peace Index) 2017’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화지수는 75.3점(70위)으로 2016년(72.7점)보다 2.6점이 상승했다. 북한은 2016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54.8점을 유지해 163위에 머물렀다. 세계평화포럼은 2016년까지 143개국을 대상으로 지수를 산정했다가 지난해 52개국을 새롭게 조사 대상으로 추가했다. 기존 조사 대상 143개국만을 추려서 보면 한국은 2016년 52위에서 지난해 46위로 6계단 올라왔고, 북한은 114위에서 116위로 2계단 떨어졌다. 이날 발표된 WPI는 2017년 1월 1일 0시를 기준으로 측정됐다. 따라서 WPI 산정 이후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화성15형’ 등의 시험 발사로 악화된 한반도 상황을 반영하면 남북한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또 한국의 국내 정치평화 수준은 46위(87.5점), 사회·경제평화 수준은 22위(82.6점)로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서도 평화시위가 유지됐던 점 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군사·외교 평화 수준에서는 173위(55.8점)로 나타나 악화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세계에서 평화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는 덴마크(90.8점), 가장 평화가 취약한 국가로는 남수단(20.2점)이 꼽혔다. 일본은 22위, 미국은 83위, 중국은 141위를 기록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김정은이 천안함 폭침사건의 배후이자 한국 미국 등 전 세계 31개국의 제재 대상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72)을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위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보내기로 하고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영철은 정부가 천안함 배후로 지목해 직접 사과까지 요구했던 인물이지만 정부가 이제 와서 “주역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며 청와대 예방까지 검토하고 있기 때문.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지난 방한에서 천안함 기념관을 찾은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천안함 배후’ 김영철을 보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한미동맹, 대북제재망의 동시다발적 균열을 노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철은 1989년 2월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북측 대표로 시작해 남북대화 대표 경력만 30년 가까운 ‘대남 사업’ 베테랑. 인민군 대장 출신의 군내 대표적 강경파이기도 하다. 2009년 대남공작 사령탑인 총참모부 정찰총국장, 2016년 통일전선부장(부총리급)을 맡으며 대남 정책을 지휘해 왔다. 올해 남북대화 국면에서 자신의 ‘오른팔’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내세웠지만 이번에는 직접 전면에 나선 것이다. 김영철은 2012년 8월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에 올랐고, 2016년 3월 우리 정부의 금융제재 대상이 됐다. 일본과 호주, 유럽연합(EU) 제재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폐막식 참가를 위해 오는 만큼 대승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받아들일 예정이다. 미국과도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당시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서도 누가 주역이었다는 부분은 없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천안함 사건과 무관하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김영철은 대남 도발을 인정하지 않거나 오히려 한반도 긴장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정부는 2014년 10월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군사당국자 간 접촉에서 북측 단장으로 나온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에게 천안함 폭침 책임 시인 및 사과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영철은 발뺌을 했다. 그 대신 북측은 우리 정부가 천안함 폭침 이후 취한 ‘5·24조치’의 해제를 요구했다. 물론 이와 별개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남북대화 기조를 올림픽 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실질적 파트너라는 데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했을 수도 있다. 대남 사업 전문가인 만큼 북핵 이슈 등 한반도 상황을 논의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 정부도 김영철 방남 수용 논란에 “결과로 말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은 25일 폐막식 당일 와서 이틀을 더 머무는데 이는 폐막식 이후 활동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청와대를 예방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고, 우리 측 카운터파트인 서훈 국가정보원장과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폐막 후 일정을 넉넉히 잡은 것은 결국 국정원과 얘기를 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이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 등 미국 인사를 공식 접촉할 가능성은 적지만 비공식 접촉 가능성은 열려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 대표단 중 김영철이 만날 사람이 딱히 없는 만큼, 한국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 인사들과 접촉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기자}
감사원이 올 상반기(1∼6월)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처, 국가안보실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청와대 기관운영 감사는 2003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감사원은 청와대에 대해 2004년부터 예산에 대한 재무 감사만 해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위 기관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지적과 함께 현 정부 청와대가 아닌 이전 정권에 대한 표적 감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감사원 관계자는 “최근 1년간의 업무를 중점적으로 볼 것”이라며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된 것은 열람이 어려운 만큼 지난 정부를 타깃으로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감사원은 자율주행차와 드론, 태양광에너지,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등 ‘혁신성장’을 이끌 신성장 산업 5개 분야에 대해서는 감사를 자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사 자제 대상은 5개 분야 총 13개 사업이다. △무인이동체(자율주행차, 드론) △정보통신기술(ICT) 융합(IoT·클라우드·로봇, 정보보호, 스마트시티·팜·공장) △바이오헬스(유전체·바이오, 의료기기) △신소재와 에너지신산업(바이오에너지, 태양광에너지, 풍력·조력·연료전지) △신서비스(O2O, 핀테크)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대상 산업을 선정했다는 게 감사원 설명이다. 박찬석 감사원 기획조정실장은 “신산업이 태동하는 단계에 감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줄이고 공무원들이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감사를 자제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회계 비리 등 명백한 위법행위는 예외 없이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평창에서 ‘진짜 이방카’가 한국인을 사로잡을 것이다.” 20일 정부 고위 당국자는 23일 방한할 것으로 알려진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사진)의 방한 효과를 이렇게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방남 활동을 두고 “북한의 이방카가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 것을 빗댄 것이다. 3박 4일간 한국에 머물 것으로 알려진 이방카의 일정은 스포츠와 인권 이슈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방카는 방한 첫날 평창에서 미국 선수단을 방문해 응원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김여정이 고위급 대표단으로서 북측 선수단을 응원하고 예술단을 격려 방문했던 것과 비슷한 행보다. 다만 김여정이 옅은 미소와 도도한 표정으로 공개적인 발언을 아낀 것과 달리 이방카는 적극적인 발언과 제스처로 시선을 끌어모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악관은 이방카의 방한 기간에 평창 겨울올림픽 스키 종목 경기를 직접 관전하는 일정을 정부와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츠광’인 이방카는 스키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체코 스키 선수 출신인 친모 이바나 트럼프의 영향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 소식통은 “이방카가 슬로프에서 직접 스키를 즐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방카가 탈북 여성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북한 인권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 김정은 정권 압박에 나설지도 관심이다.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취임 첫 국정연설에 탈북자를 초청한 데 이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한해 탈북자를 면담한 것과 같은 기조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박상학 북한인권단체총연합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 정부 인사로부터 탈북한 지 얼마 안 된 10, 20대 여성들을 (이방카 방한 시) 연결시켜 달라는 부탁을 최근 받았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이어 “미국 정부 관계자가 ‘이방카는 (탈북자에) 관심이 많다. 자신의 재단을 움직여 탈북 여성들을 도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만남이 성사되면 이방카는 방한 첫날인 23일이나 24일 4, 5명의 탈북 여성을 만나 북한 인권 실태를 듣고 이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회식에 참석했던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을 찾아 북한을 ‘감옥 국가’라고 쏘아붙인 것과 같은 직접적인 대북 압박 발언은 자제할 듯하다. 정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이 북한에 대해 ‘배드 캅(나쁜 경찰)’ 역할을 했다면 이방카는 상대적으로 ‘굿 캅(좋은 경찰)’ 역할을 맡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림픽 경기 관전과 폐막식 등 4일간의 일정 중 이방카에게 대북 정책과 통상 문제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방카 방한 시 유력한 카운터파트로 꼽혔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방카 접대’엔 한발 비켜설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열릴 올림픽 폐회식에 불참하기 때문이다.신진우 niceshin@donga.com·신나리 기자}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성과가 담보되지 않는 남북 정상회담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 교수는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19일 개최한 제8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북한이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완성했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훈풍이 부는 현재의 남북 관계를 ‘파시(波市·풍어기에 열리는 일시적인 시장)’에 비유하며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바뀔 듯한 착시 현상에 빠져 있지만 곧 맞닥뜨리게 될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평화 공세로 이어지는 남북 대화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이긴 하지만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라고도 했다. 현 교수는 “남북 대화를 진전시키겠다고 하면서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 및 중단이나 대북제재 해제 등 여러 가지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자질구레한 전제조건이 달린 대화는 해봤자 싹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요구를 하느냐 여부가 대화의 진정성과 의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1차 관문이 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현 교수는 대북특사 이슈가 부드럽게 풀려야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부에서 일했던)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작은 대화가 모여서 큰 대화가 되진 않았다. 큰 대화는 단번에 된다. 그리고 그것만이 한반도 위기 해결이라는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또 “남북 정상회담 추진 시 가장 어려운 사안은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낼 수 있느냐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2009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 사절로 방남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청와대에서 김정일의 초청장을 구두로 전했던 일을 언급하며 “그 이후 남북 간에 정상회담에 대한 후속 대화도 있었지만 결국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 무산됐다”고 했다. 현 교수는 북핵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북-미 간 빅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노 레짐 체인지’(체제 유지)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맞바꾸는 것만이, 가능성은 바늘구멍만큼 작아 보이지만 실낱같은 희망이자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북한 눈높이에 맞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단연코 실패할 것”이라며 “판을 더 크게 위에서 보고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해야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조언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정부는 14일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 숙식 지원 등을 위해 남북협력기금에서 28억6000만 원을 떼어내 마련키로 의결했다. 정부는 이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이하 교추협)를 열어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23억 원, 대한체육회에 1억8000만 원, 세계태권도연맹에 1억2000만 원을 지원하는 등 총 26억 원 규모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산정했다. 여기에 예비비 조로 10%를 얹어 지원 기금 규모를 확정했다. 이는 단일 스포츠대회 참석을 위해 방남한 북측 대표단을 위해 정부가 의결한 남북협력기금으로는 최대 액수다. 통일부는 당초 23억 원 규모로 내부 검토를 마쳤다. 그러나 현재 북측 대표단의 체류 상황 등을 고려해 조직위원회 지원액을 3억 원가량 늘렸다고 한다. 남북협력기금 지원은 사후정산 방식이어서 실제 집행액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의결한 금액의 70% 이하인 10억 원대 후반으로 집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마지막 공연을 한 북한 태권도시범단 31명은 15일 오전 인천공항(임원진 3명)과 경의선 육로(시범선수 28명)로 돌아간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