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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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6-02-27~2026-03-29
일본39%
국제일반18%
미국/북미13%
국제정세8%
칼럼5%
인사일반5%
러시아3%
중국3%
국제교류3%
중동3%
  • 현대시작품상 박상순 시인

    박상순 시인(51·사진)이 제14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을 비롯한 10편.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박 시인은 민음사와 웅진문학에디션 뿔 대표도 지냈다.}

    • 201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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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풀어 쓴 통일-다문화 문제

    이런 상상은 어떨까. 쿠웨이트 건설현장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파키스탄인 마우두디 씨. 그가 만난 남한 기술자 김기태 씨와 북한 일꾼 최해진 씨는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만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서먹하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서로 대화하지 않는 두 사람을/마우두디 씨는 안타까워했다/…/퇴근 후에 숙소에 돌아간/김기태 씨는 전공 서적을 펴놓고/밤늦도록 공부를 하였고/최해진 씨는 요기를 하고 나서/아침까지 잠에 곯아떨어졌다/그런 동안 마우두디 씨는 손전등을 켜들고/시간마다 건설현장을 순찰하였다’(시 ‘두 사람’에서) 10여 년 전부터 다문화와 남북문제에 관한 시들을 선보였던 하종오 시인(59·사진)이 시집 ‘남북주민보고서’와 ‘세계의 시간’(이상 도서출판 b)을 나란히 펴냈다. 남북한 주민들의 일상,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외국인 노동자의 시각을 담은 상상력 짙은 시편들이다. 리얼리즘 시를 쓰는 시인은 인물들을 바로 지켜보는 듯한 사실적인 묘사들로 남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그린다. 통일과 다문화 문제에 관심이 적은 요즘 문단에서는 반가운 작품들이다. 정치적으로 남북 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여론도 그렇다. 하지만 시인은 꾸준히 북에 손을 내미는 문학적 도전을 이어간다. 왜일까. “통일은 정치인이 아닌 남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희망에 의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의 소통이 우선이죠. 결과를 떠나 문학적으로 소통의 물꼬를 트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통일을 민족문제가 아닌 세계자본주의 체제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남북을 둘러싼 경제 현장을 담은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북한 기술자로부터 언어를 배운 인도인이 한국 공장에 취직하는 얘기(‘말씨’)나 몽골 의류공장에서 양털 깎던 몽골인이 한국으로 돈벌러 떠나자 그 자리를 북한 노동자가 메우는 얘기(‘양털 스웨터’) 등이다. 시들을 읽다보면 외국인 노동자라는 한 다리만 건너면 남북이 벌써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가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다. 시인도 이를 안다. 그래서 남북이나 다문화 문제도 결국 정서적인 교류와 상호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인이 노래하는 ‘빨랫줄 소통’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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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에 만나는 詩]고통의 장소에서 고통을 지우려 하지만 그 고통 지울 수 없네

    피아(彼我)가 불분명하네. 눅진한 공기에 실린 모래바람. 앞을 가늠하기 힘드네. 여기는 사막 식당. 삶의 고통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는 신기루 같은 곳. 내 아픔을 덜어줄 사람은 없네. 주검 같은 사람들이 부유하네. 지독한 허무와 고독만 가득한 곳. 여기는 사막 식당. ‘이달에 만나는 시’ 3월 추천작으로 김성대 시인(41)의 ‘사막의 식당’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막 식당’(창비·사진)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김성대 시인의 시는 쉽지 않다. “모호하게 윤곽을 잃고 사라져가는 사물과 감각이 격리되는 순간에 집중했다.”(장은석 문학평론가) 그의 시들은 뚜렷한 형체가 없는 추상화 같다. 시인에게 ‘해독’이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하니 그는 웃었다. “다들 어렵다고 해요.” 2005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2010년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그로테스크한 그의 시에 어떻게 다가설 수 있을까. ‘사막의 식당’을 풀어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막 식당은 고통의 장소예요. 사람들은 이 장소에서 고통들을 지우려고 하는데 지울 수 없죠. 유리종을 깨뜨린 것은 결국 자기 내면의 고통스러운 종소리죠….” 어렴풋 알 듯도 한 설명들이다. 작가는 “제가 쓴 시지만 한참 뒤 보면 제게도 전혀 다른 뜻으로 보인다”며 웃었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해석은 독자의 자유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김성대 시인은 낯설고 비대칭적인 화법으로 남루한 삶을 프리즘처럼 투영한다. 신음하고, 반성하고, 조롱하며 색색의 빛깔로 의미를 증폭시켜 시를 생(生)으로, 생을 시로 치환한다.” 이원 시인은 “김성대 시의 매혹은 ‘끝없는 벗어남’에 있다. 사막을 벗어난 사막 식당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이곳을 두 번 잊은 사람은 없다’는, 현실이 은폐하지 못한 목소리다”라며 추천했다. “전통 서정시의 문법을 통해서도 미지의 영역을 향한 모험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인은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는 낡고 오래 묵은 악기로 첨단의 음을 연주하는 악사다. 그 고투가 욱신욱신 빛난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건청 시인은 복효근 시인의 시집 ‘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을 추천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시가 진한 감동으로 읽히는 놀라움을 지니고 있다. 사소한 일상, 평범해 보이는 사물 속으로 깊이 침잠해서 도달한 발견의 말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장석주 시인은 우대식 시인의 시집 ‘설산 국경’(문예중앙)을 추천하며 “모래바람, 흐느낌, 국경 따위는 정주(定住)에의 욕망과 떠돎의 운명 사이에 있는 자들이 불가피하게 감당해야 할 현실의 은유들이다. 우대식의 서정적 자아들은 이 은유들 속에서 더 또렷해지고 풍성해진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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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도 못구한 4번째 ‘귀한 손님’ 찾아오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대전문학관은 24일까지 개관 기념 소장 자료전 ‘대전 문학의 향기’를 열고 있다. 이 전시에 ‘귀한 손님’이 얼굴을 드러냈다. 월북 시인인 백석(白石·1912∼1996·사진)이 1936년 1월 20일 펴낸 시집 ‘사슴’의 초판본이다. ‘사슴’은 희귀 시집 수집가 사이에서 보물로 꼽혀온 희귀본 중에 희귀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백석은 선광인쇄주식회사라는 업체를 통해 단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비매품으로 책을 낸 시인은 지인들에게 책을 건넸고, 수량이 적다 보니 당시에도 시집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시인 윤동주도 ‘사슴’ 출간 소식을 듣고 시집을 구하려 애썼으나 구하지 못해 직접 도서관에 가서 필사를 했다. 이번 시집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을까. 대전문학관 소장본은 송백헌 충남대 명예교수(78)가 기증한 것이다. 송 명예교수는 문학관 개관 소식을 듣고 ‘사슴’을 비롯해 소장 도서 1만3000여 권을 기증했다. 1950년대 중반 경북대 사범대를 다닐 때 대구의 한 헌책방에서 ‘사슴’을 구입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구입할 때만 해도 가치를 몰랐습니다. 당시는 월북 시인에 대한 평가는 고사하고, 그런 시집을 갖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울 때였죠. 나중에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았고, 오래전 ‘3000만 원 준다’는 제의도 받았지만 팔지 않았습니다.” 대전문학관에 전시된 ‘사슴’의 표지 안쪽에는 ‘永郞 兄 白石(영랑 형 백석)’이란 글씨가 있다. 백석이 시인 김영랑(金永郞·1903∼1950)에게 시집을 주며 쓴 친필로 보인다. 영랑은 백석보다 9세 연상이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백석과 영랑은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 선후배 사이로 백석이 후배다. 나이 차가 있어 수학한 기간은 겹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에 돌아와서도 선후배로 지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슴’은 사연이 있는 시집이다. 평북 정주 출생인 백석은 주로 북한에서 활동했으나 월북 시인으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수십 년간 유보됐고, 1988년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재조명됐다. 고서업계에 따르면 ‘사슴’은 2011년 문화재로 등록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1925년) 못지않게 구하기 어렵다. 반면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1948년)을 비롯한 광복 후 시집들은 상대적으로 전해지는 수량이 많은 편이다. ‘하늘과…’는 2011년 한 경매에서 17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사슴’은 현재까지 모두 4권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번 대전문학관 소장본 외에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도서관, 그리고 헌책방 ‘고구마’의 이범순 대표가 한 권씩 갖고 있다. 그 가치는 얼마일까. 이 대표는 “수년 전 구입했지만 경로나 구입가를 밝히기 어렵다. 예전에 한 구입 희망자가 5억 원을 부른 적은 있다. 앞으로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여 현재는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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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詩의 이슬론 배고팠다… 김수영의 아내는 외설소설을 썼다

    “우리 아이는 낳지 말고 문학만 하자!” 시인 김수영(1921∼1968)은 1950년대 초 신혼시절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인은 번역 일을 했고, 아내는 삯바느질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가난이 아이를 포기하자는 말로 나온 것이다. 형편이 더 어려워지자 아내는 재봉틀과 금가락지마저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영은 아내에게 외설적인 소설 한 편을 써보라고 권한다. 필명으로. 아내가 쓴 원고를 들고나간 시인은 받은 원고료를 모두 쓰고 만취해 들어온다. 그러곤 말한다. “그 따위 소설을 쓰게 해서 미안해.” 시인의 아내인 김현경 씨(86)가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지 45년 만에 털어놓는 첫 회고록. 평생 현실보다는 시(詩)라는 이상향을 쳐다보며 고독한 싸움을 이어간 김수영의 슬픈 얼굴이 가득하다. 병약한 소년이었던 김수영은 치질과 위산과다, 대장염을 앓았고 기관지염은 달고 살았단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시 ‘눈’에서)를 읽으면 겨울밤 쿨룩거리던 시인의 기침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는 아내. 시인과 20여 년을 함께 산 아내의 기억을 통해 ‘인간 김수영’을 만날 수 있는 책. 반갑고도 애잔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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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책 볼 시간이 없다? 독서는 인간기본권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책장을 펴면 ‘독자 권리 장전’이란 소제목이 먼저 눈에 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인간 기본권의 밑바닥에는 책을 읽을 자유와 권리가 깔려 있다. 독서할 권리, 그것은 양도할 수 없고 박탈할 수도 없는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냥 책을 읽으면 되지, 무슨 기본권까지 운운하나 싶었다. 하지만 저자가 나열한 권리장전의 17개 항목을 꼼꼼히 읽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권리를 마련하라’(1항 책을 읽을 권리), ‘강요와 강압에 의한 독서는 안 된다’(2항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베스트셀러만 권유해서는 안 된다’(9항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등…. 저자는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사회학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서울과 파리를 넘나들며 인문사회 관련 서적을 펴내고 있다. 독서에 대한 그의 진지한 성찰을 살펴보면 자신의 독서 습관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선택이 아닌 의무로 묵직하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한동안 멀어졌던 독서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데 이만큼 유혹적인 책이 없을 듯하다. 책인시공(冊人時空).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라고 풀이한 책의 제목대로 저자는 책 자체가 아닌 책을 읽는 행위에 집중한다. 책을 읽기 좋은 장소나 시간, 책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종이책과 전자책 가운데 선택은 어떤가. 저자는 아날로그적 체취가 남는 종이책의 손을 들어 준다. 세월과 함께 누렇게 변하는 책, 그 안에 적은 빛바랜 낙서가 주는 나와 책의 역사성. 책은 시각이 아니라 촉각과 후각으로도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종이책의 입체적 책 읽기를 전자책이 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가운데 3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평균 독서 권수는 9.9권으로 한 달에 한 권이 채 안 된다. 독서의 중요성은 익히 알지만 “시간이 없다”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꼬집는다. 배우이자 소설가로도 데뷔한 차인표는 부엌과 화장실, 침실 등 집안 곳곳에 책을 두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는다고 저자는 전한다. 가벼운 문고본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도 한 방법. 일정 시간을 정하는 것도 좋다. 점심 후 자투리 시간도 좋고, 출퇴근 지하철 안도 좋다. 바쁜 하루를 보냈다면 자기 전 30분만이라도 책장을 펴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책을 자주 접해 책장을 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중반을 넘기면서 저자가 경험한 인물이나 장소 얘기로 흘러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집에 책이 넘치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 된다”는 해법 같지 않은 해법은 소개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손에 잡히는 아무 책이나 읽고 싶게 된다.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 이제 당신 차례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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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투옥작가 실상 알릴 것” 망명北작가모임 본격 활동

    탈북 시인 도명학(사진)은 지난해 12월 동리목월문학상 시상식에 갔다가 수상자로 참석한 소설가 이문열을 만났다. 당시 이문열은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아직도 한국 문학 하면 분단 문학을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이를 제대로 소화하는 작가가 없다. 남한 작가들은 자신이 분단국가의 작가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북한의 현실도 잘 모른다. 탈북 작가들은 북한 현실을 잘 알지만 문학성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열린 제78회 펜(PEN)대회에서 145번째 펜센터로 가입한 ‘망명 북한작가 펜센터’가 이달 말 서울 합정동에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 단체는 올해 9월 아이슬란드에서 열리는 제79회 펜대회 참가 준비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총회에서 자신들의 증언에 집중했던 탈북 작가들은 이번에는 별도 보고서를 작성해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문제는 경비다. 탈북 작가들이 운영비 마련에 곤란을 겪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이사장 이길원)가 나서 지난해 12월부터 모금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300여만 원을 모았고, 상시 모금할 예정이다. 문의 02-782-1337∼8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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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랑시문학상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59·사진)이 제11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 특별상은 전석홍 시인(79)의 시집 ‘시간 고속열차를 타고’(시학)에 돌아갔다. 김영랑 시인(1903∼1950)을 기리는 이 상은 전남 강진군이 주최하고, 영랑시문학회와 계간 ‘시와시학’이 공동 주관한다. 시상식은 4월 26일 오후 6시 강진군 강진읍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열린다.}

    •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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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김종철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는 모두 못박힌 사람들”

    김종철 시인(66)이 시집 ‘못의 사회학’(문학수첩·사진)을 최근 펴냈다. 1992년 ‘못에 관한 명상’으로 시작해 ‘등신불 시편’(2001년) ‘못의 귀향’(2009년)으로 이어진 못에 관한 네 번째 연작 시집이다. 그는 왜 못에 천착하는 걸까. 시인은 1960년대 초 중학생 때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 수녀의 교리 공부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단다. 못을 박고 그 못을 뺀 수녀는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을 일을 하지 마라”라고 했다는 것. 못은 빠졌지만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가 받은 세례명은 교부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노(아우구스티누스). 시인이기도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천사 미카엘 같은 ‘멋진’ 세례명을 받았는데 저는 고작 시인이라서 속이 상했지요. 그런데 방학 때 일기를 썼는데 나중에 보니 시 같더군요. 그렇게 못과 시가 제 가슴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시집에 담은 못 연작시는 15편이지만 “넓게 보면 시집에 담은 모든 시가 못의 시”라고 시인은 말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 모두가 못 박힌 사람들이라는 게 그의 지론.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의 피해는 이렇게 그려진다. ‘나쁜 조련사일수록 일급이 되는/삼성 동물원과 LG 동물원/배상도 적고, 잡혀도 잠깐 사는 솜방망이 처벌/빼곡이 철창에 가둔 불공정 독점 계약/사는 게 별거냐고//죽어야만 빠져나갈 수 있는/을만 죽는 을사(乙死)조약’(시 ‘우리 시대의 동물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펴낸 문학수첩의 대표였던 김 시인은 맏딸 김은경 씨에게 1일자로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줬다. “이젠 술이나 먹어야지”라며 그는 호탈하게 웃었다. 2년 내에 일본군 위안부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못 박힌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시집을 낼 생각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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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번역원의 ‘어린이용 고전’ 출간 잇따라… 출판사들 “그나마 돈되는 시장 뺏길라”

    “공공기관이 출판사 영역을 침범한 거죠. 정부가 좋은 책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자칫 출판사들에 피해가 갈까 걱정입니다.” 한 대형출판사 어린이책 담당자의 하소연이다. 이 담당자가 우려하는 책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최근 출간한 ‘우리 고전 재미있게 읽기’ 시리즈.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은 5000여만 원의 사업비를 받아 1년여의 준비 끝에 이번 시리즈를 선보였다. ‘장복이, 창대와 함께하는 열하일기’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의 의산문답’이 최근 출간됐고, 연내에 새로운 4권을 더 펴낼 계획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우리 고전에 대한 교육 현장의 관심과 수요는 증대하나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우리 고전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우리 고전을 소개하고자 한다”고 사업 취지를 밝혔다. 고전에 관한 국내 대표적 연구기관이 직접 기획과 감수를 맡아 보다 정확한 내용의 어린이 도서를 만든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어린이책 출판사들의 심경은 불편하다. 출판계 불황 속에서도 그나마 형편이 나았던 어린이책 시장마저 공신력이 높은 고전번역원에 뺏길까봐 걱정이 돼서다. 다른 시각도 있다. 다른 대형출판사 어린이팀 부장은 “(번역원이 출간한) 홍대용에 관한 책은 거의 출판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고전을 새롭게 발굴한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고전번역원도 조심스럽다. 홍인국 기획조정실장은 “한문고전을 다룬 기존 어린이책의 내용이 미흡하거나 부정확한 면이 있어 이번 시리즈를 기획한 것일 뿐 어린이책 출판사와 경쟁할 생각은 없다. 애초 수익을 기대하고 기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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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영민의 그때 그곳]시인 공초 오상순과 서울 명동의 청동다방

    《 서울 명동은 항시 세일 중이다. 호화스러운 간판과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호객 소리가 요란하다. 1950년대 꿈과 낭만, 사랑과 열정의 공간이었던 명동은 가장 화려한 패션의 거리로 변했다. 명동예술극장 건너편으로 유네스코 회관을 지나 골목 모퉁이에 있었던 ‘청동(靑銅)다방’. 이제는 그 자리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청동다방의 주인공이라면 단연코 시인 오상순(1894∼1963)이다. 오상순의 ‘청동다방 시대’라고 해도 좋다. 아니 청동다방의 ‘오상순 시대’라야 더 어울릴 듯하다. 공초는 매일같이 다방 ‘청동’에 들렀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문인 예술가들을 반겼고, 낯선 손님들과도 흔쾌히 어울렸다. 청동다방은 연극인 이해랑이 운영하던 곳이었지만, 사람들은 터줏대감처럼 머물렀던 오상순을 더 많이 추억한다. 》 오상순이 언제부터 청동다방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는 1954년 무렵부터 전후(戰後)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 문학과 예술의 심장이 되었던 명동을 지켰다. 불교의 인연을 따라 조계사(曹溪寺)에 몸을 기탁했던 그는 다방에 머물며 여러 문인들과 어울렸다. 오상순은 공초(空超)라는 그의 호를 붙여 불러야 더 어울린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신학교를 다녔다. 일찍이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종교 철학을 공부했으며, 1920년 황석우 남궁벽 변영로 염상섭과 문학 동인 ‘폐허’에 참여했다. 한국 문단사의 첫머리에 오르는 ‘폐허’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가로서 명패를 달았지만 그는 문단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한때 불교중앙학림에서 가르쳤고 보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는데, 1926년 부산 동래 범어사(梵魚寺)에 입산해 선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 이미 속세의 삶을 등졌고 방랑의 객이 되어 전국의 사찰을 떠돌았다. 생전에 혼인하지 않았으니 그 자신에게 딸린 가족이 없었고, 방랑객으로 전국을 떠돌았으니 거처할 집도 없었다. 공초라는 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공초는 떠돌이가 되어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련을 피했다. 해방 공간의 문단이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에 휩싸였을 때 공초는 변영로 박종화 양주동 이헌구와 민족 계열의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고 문학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는 결코 문단 모임에 앞장서지는 않았다. 6·25전쟁을 겪으며 모든 것이 다 불타고 무너지고 부서졌을 때 그는 다시 선인(仙人)의 모습으로 서울 명동에 나타났다. 당시 명동은 국립극장을 중심으로 연극인들이 모여들었고 동방싸롱, 갈채, 청동 같은 다방은 가난한 문학예술인들의 근거지가 됐다. 한국 문학예술의 ‘살롱시대’가 바로 명동에서 펼쳐졌다. 소설가 이봉구의 ‘명동 엘레지’에서부터 명동은 예술의 혼을 낳았고, 사랑과 인생과 예술과 열정과 낭만으로 채워졌다. 공초는 다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종이를 내밀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게 했다. 그가 이렇게 취미 삼아 모은 청동다방의 ‘낙서첩(落書帖)’은 그대로 한 시대의 귀중한 기록이 됐다. 살아생전에 시집 한 권도 내지 않고 초연했던 그가 청동다방의 낙서첩에 그렇게 열을 올렸던 이유는 알 수 없다. 당시 명동의 청동다방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청동산맥(靑銅山脈)’이라는 이름의 이 낙서첩에 한두 개의 글 구절을 남겼고,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시인 공초의 이 새로운 사업은 십년의 세월 동안 무려 195권의 청동산맥을 이루었다. 공초의 청동산맥은 해외 문단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분량도 방대하고 그 내용도 다채롭다. 시인 이은상은 ‘오고 싶지 않은 곳으로 온 공초여, 가고 싶은 곳도 없는 공초여’라며 헛기침을 했고, 서정주는 ‘안녕하시었는가. 백팔의 번뇌 내 고향의 그리운 벗들’이라고 적었다. 박목월은 ‘우연히 다방에 들러 선생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고 소박한 인사말을 써넣었다. 당시 문단의 신참에 해당했던 김관식은 ‘슬픔은 차라리 안으로 굳고, 겉으로 피는 자조(自嘲)의 웃음’이라고 시 한 구절을 적었다. 소설가 박경리는 ‘자학(自虐)의 합리화가 종교이며, 자학을 벗어난 경지에서 신이 존재한다’라는 에피그램(경구)을 남겼고, 비평가 이어령도 ‘여기에는 시초(始初)도 종말(終末)도 없다’고 적었다. 고은은 담배를 물고 살아서 ‘꽁초’로도 불렸던 공초를 향해 ‘담배의 공복(空腹)이란 건 더 야릇할 거예요’라고 낙서했다. 공초를 문학의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시인 이근배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공초는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넓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공초는 누구든지 청동다방의 구석자리에 앉히고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말하며 말동무가 됐다고 들려주었다. 공초야말로 모든 것을 비우고 살았던 공인(空人)이며 모든 것을 초탈해버린 초인(超人)이었다고 했다. 공초가 남긴 이 희대의 낙서첩인 청동산맥은 지금 그대로 한국 문단의 가장 아름다운 ‘잠언집’이 되었다. 지난달 13일 이근배 시인과 함께 번잡한 명동 거리를 걸으며 청동다방의 흔적을 찾았다. 다방이 있던 자리는 형형색색의 여성복이 전시된 옷가게로 바뀌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수많은 한국인도, 외국 관광객들도 여기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적 성소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봄은 동방에서 꽃수레를 타고 온다는데 가을은 지금 머언 사방에서 내 파이프의 연기를 타고 온다’라고 썼던 공초는 1963년 세상을 떠났다. 벌써 50년이 흘렀다. 하지만 명동 어디선가 예의 그 뿌연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공초가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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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파란만장 가족史

    가벼운 시대다. 소설 시장도 다르지 않다. 대하소설은 고사하고 400쪽 넘는 두툼한 장편을 국내 창작소설 가운데서 찾기 힘들다. 내용 또한 굵직한 서사보다는 이미지의 나열이 앞선 감각적인 소설이 대세다. 이 소설의 문학적 완성도는 일단 제쳐두자. 13년 만에 펴낸 저자의 장편, 650쪽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유신, 1987년 민주화 열기, 이후 문민정부 수립까지 이어지는 시대적 배경,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3대에 걸쳐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가족사…. 책장을 펴는 순간 오랜만에 ‘물건’을 만난 듯 긴장했다. 그렇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은 일단 재밌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한 편의 정치 야사(野史)를 읽는 듯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사건은 두 남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폭력조직 ‘서의실업’의 행동대장인 선우활과 야당 거물의 아들인 소설가 윤완. 둘은 군대에서 만나 의형제가 된다. 윤완의 아버지가 정계에 입문한 뒤 사업을 하는 윤완의 이모가 서의실업 부하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선우활은 조직을 배신하고 윤완을 돕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선우활은 자신의 오른팔을 잃고, 자신도 조직에 쫓기게 된다. 한 편의 활극처럼 이어지던 이야기는 더 큰 밑그림을 그린다. 여당 편에 서서 골치 아픈 인물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서의실업, 그리고 운동권 비밀결사조직인 ‘아이제나흐’가 첩보전을 방불케 하며 대립을 이룬 것. 이 과정에서 서의실업 회장의 정부였다가 선우활의 애인이 된 남미현이 사실은 아이제나흐의 정보원인 것이 밝혀지며 소설은 탄력을 키운다. 1987년 거셌던 민주화운동이나 3당 합당, 문민정부 출현으로 이어지는 이 소설의 배경을 다룬 소설은 많다. 하지만 작가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집중하는 대신 당시 정치격변기에서 있을 법했던, 서의실업이나 아이제나흐 같은 조직을 앞세운 정보·테러전을 그려 신선함을 선사한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경찰이었다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했던 선우활의 할아버지 선우명, 그리고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월북한 뒤 다시 대남 간첩으로 활동한 선우활의 아버지 선우장의 얘기까지 그린다. 비록 1980, 90년대 이야기보다 긴박감은 떨어지지만 이런 과거사가 밀도 있게 펼쳐지며 장대한 스케일의 소설을 맛보는 즐거움을 준다.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궁금했다. 대체 이 거대한 서사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고. 결국 마무리는 힘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선우활의 복수는 급작스러웠고, 개연성도 부족해 보였다. 다른 중요 인물들의 결말도 후일담 형식으로 처리돼 아쉬웠다. 10년 넘게 공을 들인 역작. 작가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한 모양새다. 좀더 치밀한 후반부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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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편 ‘모르는 척’ 펴낸 소설가 안보윤 씨 “부조리한 사회 무너지는 가정 그렸죠”

    그의 소설은 불편하다. 잔혹한 폭력이 책장 가득 흘러넘치며 순환 또는 확대된다. 거대한 폭력 앞에 놓인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2005년 첫 장편 ‘악어떼가 나왔다’ 이후 최근 나온 다섯 번째 장편 ‘모르는 척’(문예중앙)까지. 문학동네작가상, 자음과모음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안보윤(32)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폭력성, 그 안에서 파괴되는 개인과 가정에 초점을 맞춘다. 25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행사 때문에 경호 인력이 새까맣게 거리를 뒤덮은 오후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날. 감상을 묻자 그는 이렇게 웃었다. “보통 광화문에 경찰이 깔릴 때는 집회나 시위를 막을 때인데, 오늘은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군요. 호호.” 신간 소설은 국가의 폭력을 말하지는 않는다. 소설은 폭력의 최소 단위를 다룬다. 가정, 그리고 개인, 더 나아가 그 개인의 내적 파괴 과정을 잔잔히 되짚는다. “결국 사회란 외부 구조의 잘못 때문에 사회의 가장 안쪽인 가정이 파괴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소설은 한 가정의 붕괴를 ‘복기’한다. 아버지를 돌연사로 잃고 남겨진 아내와 두 아들. 허름한 지방 도시로 이사 간 이 가족의 생계는 막막하다. 어느 날 형은 계단에서 사고로 굴러 떨어져 다치고, 보험금을 탄다. 쉽게 번 돈. 보험 판매를 하는 이모의 꾐에 형은 보험사기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고깃국과 생선도 밥상에 올라온다. 형의 보험사기는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를 파괴하며 생존해가는 모순에 휩싸이면서 괴로워한다. 작품은 2011년 강원 태백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보험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주민 400여 명이 병원과 짜고 140억여 원을 부정 수급한 사건이다. “보험사기라면 수억 원을 타서 흥청망청 쓰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건은 좀 다르게 보였어요. 일부 수급자는 다리가 골절됐다고 몇십만 원 타고, 모녀가 나란히 다리가 부러졌다고 몇십만 원 타는 식이었죠. 물론 범죄는 나쁘지만 이런 ‘생계형’ 사기의 모습이 안타깝게도 다가왔습니다.” 보험사기단 적발 같은 뉴스는 금세 잊혀진다. 하지만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보험사기단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찬찬히 그린다. 형은 몸의 곳곳이 부러진다. 이젠 항생제마저 듣지 않는다. 점차 정신도 혼미해진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멈출 수 없는 현실이 참혹하게 펼쳐진다. 그럼 누가 ‘모르는 척’ 하는가. 엄마, 동생, 이모가 그들이다. 하지만 모르는 척하는 게 이들뿐일까. “사실 보험사기는 일부예요.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대학생부터 취업이 안 돼 고민하는 사람들까지 사회엔 굉장히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죠. 사람들은 굉장히 이기적인 존재예요. 자신이 관련된 문제만 생각하고, 이마저도 너무 커지면 방관하거나 외면하려 하죠. 이런 ‘모르는 척’들을 얘기하고 싶었죠.” 폭력의 이면을 일관되게 그려온 작가는 이제 ‘안보윤의 소설 1기’를 마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주제로 옮겨 작품에 정진하고 싶단다. ‘평화는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폭력 얘기만 하다 널뛰듯 평화로 옮겨가면 가식적이 될 것 같다”며 깔깔댔다. “미묘한 극점에 놓인 사랑 얘기를 쓰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더 나이가 들면 가능할까요.” 미혼의 여성 작가에게 봄바람이 불까.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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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투병 소설가 최인호, 삶과 죽음-인연 성찰한 산문집 ‘인생’ 펴내

    작가 최인호(68)는 한국불교를 중흥한 경허 선사와 그 제자들을 그린 소설 ‘길 없는 길’을 쓰면서 불교에 심취해 1990년대 초 전국의 절을 돌아다녔다. 알고 지내던 무법 스님의 승복을 걸치고 밀짚모자를 쓴 채 화려한 압구정동의 밤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승복으로 갈아입자 세상과 절연하고 무소의 뿔처럼 유아독존이 되어 홀로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며칠 뒤 최인호는 법정 스님(1932∼2010)을 만났다가 “며칠 전 승복을 빌려 입고 밤거리를 걸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그래 기분이 어떻던가요?” 법정 스님이 웃으며 물었다. “스님께서 효봉 스님(법정 스님의 은사)으로부터 출가를 허락받았을 때 느끼셨다던 그 환희심을 느꼈습니다.” 최인호가 웃었다. “그럼 이 기회에 머리 깎고 출가하시지요.” 스님이 넌지시 말을 건네자 작가의 답은 이랬다. “저야 저의 가정이 바로 산문(山門)이지요. 아내가 바로 저의 효봉 스님이고, 저야 늦깎이 햇중이지요. 그러니 머리는 이미 깎은 셈이지요.” “허허허, 하기야 최 선생은 재속거사(在俗居士)이시니까.” 법정 스님이 웃고 최인호도 따라 웃었다. 시간이 흘러 2003년 봄. 둘은 다시 만났다. 최인호가 죽음에 관해 묻자 법정 스님이 답했다.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시 10년이 흘러 2013년. 봄의 기운이 움트는 이 계절에 최인호가 산문집 ‘인생’(여백)을 펴냈다. 2008년 5월 침샘암 수술을 받은 뒤 5년여의 투병 기간에 틈틈이 쓴 글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지난해 5개월간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에 연재한 글과 각종 산문을 모았다. ‘생(生)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命令) 그래서 생명(生命)’이란 짧은 글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는 그가 투병 이후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법정 스님과의 몇 번의 인연.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입적했고, 작가는 암 투병 중이다. 작가는 다시 스님을 떠올린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말대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육신의 껍질을 벗었다. 동시에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 그것이 우리의 일상사인 것이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로 유명한 이태석 신부(1962∼2010)와의 일화도 들려준다. 4차 항암치료를 위해 2010년 1월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을 때 옆 병실에 입원해 있던 이 신부를 만났다. 반가운 만남도 잠시, 얼마 뒤 이 신부가 퇴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끝인가 봐요”라는 이 신부 누이의 울먹임을 들은 뒤였다. 작가는 신부를 찾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를 껴안았다. 얼마 뒤 신부의 선종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가 함께 나눈 짧은 포옹은 생과 사가 교차하는, 지상과 하늘나라가 연결되는 찬란한 동산에서 나눈 날카로운 첫 키스와 같은 것이니. 신부님, 나의 이태석 신부님, 이 가엾은 죄인을 위해 우리 주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최인호는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청한 점심식사 자리를 마다한 게 두고두고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김 추기경과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으나 작가는 신문 연재 때문에 “바쁘다”며 자리를 떠야했다. 김 추기경은 “왜 함께 식사를 하지 그래”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요즘 나는 내 서재 벽 앞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초상을 내걸고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젠가 천상의 식탁에서 그분과 함께 지상에서 미뤘던 점심식사를 하게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 수술대에 누운 것은 포경수술을 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꼽을 정도로 건강했다는 작가는 투병 이후 많은 것을 새로 보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환자로 병원을 출입하게 되니 아아, 세상에는 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나는 글쟁이로서 지금까지 뭔가 아는 척 떠들고 글을 쓰고 도통한 척 폼을 잡았지만 한갓 공염불을 외우는 앵무새에 불과했구나.” 작가는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힘을 보탠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죽일 병은 없습니다. … 우리를 죽이는 것은 육체를 강한 무기로 삼고 있는 악입니다. 절망, 쾌락, 폭력, 중독, 부패, 전쟁, 탐욕, 거짓과 같은 어둠이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한꺼번에 죽이는 것입니다.” 서울고 2학년 때인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인호는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 동안의 작가 인생을 기념하는 문집인 탓에 ‘인생’이란 제목도 달았다. 까까머리 고교생 작가에서 반백의 노(老)작가가 된 그는 머리글에 이렇게 적으며 머리를 숙였다. “그동안 명색이 작가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지냈음이 느껴져 부끄럽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 작가는 이 책을 출간한 뒤 홀연히 길을 떠났다고 한다. 주위에 “피정(避靜·가톨릭 신자들의 수련생활)을 떠나겠다”는 말을 남긴 뒤였다. 그는 머리글을 이렇게 맺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어서 어서 꽃 피는 춘삼월이 왔으면 좋겠다. 혹여나 이 책을 읽다가 공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숨결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그 숨결들이 모여 내 가슴에 꽃을 피울 것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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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가 스크린을 만났을 때

    “어라? 스크린에 시(詩)가 나오네.” 요즘 영화관 메가박스를 찾은 관객들은 시 한 편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전에 나오는 광고 시간에 시를 소개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기 때문. 한국시인협회와 메가박스가 손잡고 진행하는 ‘다시 보는 우리 시’ 캠페인이다. 16일부터 김종해 시인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가 전국 367개 상영관에서 하루 평균 2200여 회(상영관당 하루 약 6회) 노출되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바로 그대 앞에 있다’란 시어가 영상과 함께 16초가량 나온다. 시가 왜 극장을 찾아간 것일까.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란 캠페인을 진행하는 메가박스는 광고 시간의 일부를 공익적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극장의 주요 관객인 20, 30대가 시와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행사를 시인협회에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취지에 공감한 시인협회가 시인과 시를 정했고, 메가박스가 영상을 만들었다. 김 시인의 시에 이어 3월에는 허영자 시인의 ‘마음’이 뒤를 잇는다. 이 행사는 6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김지헌 시인협회 사무국장은 “이번 캠페인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시를 좀 더 친숙하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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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지 바꾸고 머그컵 넣은 뒤 포장… 책값 두배로 인상한 출판사 꼼수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를 살펴보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의 러브에디션 광고였다. 원래 푸른색이었던 책 표지를 오렌지색으로 바꾼 양장본, 시인의 글이 새겨진 커플 머그컵, 이들을 담을 상자와 쇼핑백까지 함께 판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화이트데이를 겨냥한 선물 패키지였다. 지난해 7월 출간된 ‘바람이…’는 성적이 좋았다. 지금까지 30만 부 넘게 팔렸다. 이 책은 감각적인 사진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글들이 담겨 있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베스트셀러에 ‘스페셜’ ‘한정판’의 이름을 붙여 판매를 촉진시키는 것은 출판사가 흔히 하는 마케팅 방법이다. 하지만 이 러브에디션의 가격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원래 책의 정가는 1만3800원이지만 이번 에디션의 가격은 2만8000원. 양장본에 머그컵 2개, 상자와 쇼핑백이 추가되면서 가격이 두 배 넘게 뛴 것이다. ‘바람이…’를 출판한 문학동네의 계열사 ‘달’로 전화를 걸자 예기치 않은 답변도 나왔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디션으로 3만 부 한정판을 냈는데, 거의 판매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당시는 푸른색 표지의 양장본에 책 옆면을 은색으로 칠한 상품이었다. 가격은 1만3800원으로 원래 책값과 같았다. 쉽게 정리가 됐다. 크리스마스에디션이 잘 팔리자 표지색을 바꾸고 선물을 추가해 가격을 올린 것이다. “원가 상승분이 있다”고 출판사는 설명했지만 앞서 양장본으로 선보인 에디션은 가격이 동일했다. 그럼 머그컵 2개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문학동네 카페에서는 ‘꼬마 니콜라’ 구입자 80명에게 머그컵 2개를 무료로 주는 행사를 벌이고 있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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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말을 건네온다, 시인을 닮아 둥글고 따뜻한 詩가…

    시(詩)는 시인을 닮는다. 시가 시인의 내면에서 육화(肉化)돼 외부로 터져 나오는 것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와 시인의 합일점이 보다 뚜렷한 작가를 꼽는다면 함민복 시인(52)은 앞자리에 자리 잡을 것 같다. 넉넉하고 푸근한 그의 성정은 시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1988년 등단한 그가 25년 동안 사랑을 받는 것도, 독자들이 그의 따스함을 글에서 읽었기 때문이리라. 여기 양팔저울이 있다. 미량의 무게 차이에도 삐걱거리는 불안감. 이제 한쪽은 너가 되고 다른 쪽은 내가 된다고 시인은 속삭인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당신을 읽어나갑니다//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시 ‘양팔저울’에서) 상대에 나를 맞춰 서로 수평을 이루는 양보는 결국 삶의 짐을 더는 지혜다. ‘양팔저울’ 외에도 ‘줄자’ ‘수평기’ ‘직각자’ ‘나침판’ ‘앉은뱅이저울’ 등의 작품들을 담았다. 왜 온갖 ‘측정기’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가 피식 웃는다. “원래는 이런 측정 기구들만 다룬 시들로 시집을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받치고 있는 ‘약속’ 같은 것들을 새롭게 보고 싶었지요.” 측정기구가 받치고 있는 것은 계량적 토대로 이뤄진 물질적 세상, 즉 자본주의다. 시인은 측정기구들의 의미를 확장해 기구들이 잴 수 없었던 삶의 넓이와 무게까지 헤아려본다. 시인은 대중에게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를 쓰는 작가로 인식돼 있지만 ‘무른 사람’은 아니다. 관찰력은 섬뜩할 정도다. 시 ‘외바퀴 휠체어’의 일부는 이렇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외바퀴/휠체어 탄 사람이 주차되어 있다//그 위로/장애인 스티커 붙인 차가 진입한다//사각 보호선에 갇혀 비명도 없이/차에 깔리는 휠체어 타고 있는 사람….’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람이 또 다른 휠체어 탄 사람을 치는 아이러니라니! 8년 만에 나온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로 시작하는 그의 대표작 ‘긍정적인 밥’처럼,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편도 여럿 눈에 띈다. ‘달’ ‘흔들린다’ ‘봄비’ 등이다.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달은/마음의 숫돌//모난 맘/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달//그림자 내가 만난/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 전문) 시인은 2011년 3월 6일 나이 쉰에 동갑내기 아내를 맞았다. 부부 나이의 합이 100세였다. 늦깎이 결혼에 문단은 잔치를 벌인 듯 즐거워했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초지인삼센터에서 인삼가게 ‘길상이네’를 열고 있는 시인에게 ‘결혼 2주년에 뭐할 건가’ 묻자 더듬거리며 말했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선물 생각을 못했다…. 하루 쉬어야 하나….” 역시 그답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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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관능의 손짓 너머에 기다리는 진지함

    금기의 빗장이 열리는 것일까. 에로티시즘을 앞세운 책들이 출판시장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 불리는 E 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출간에 이어 이번에는 성애 소설의 고전들을 묶은 에디션 D(Desire) 시리즈가 전열을 정비했다. 에디션D는 이 책 ‘비터문’과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부영사’를 새로 출간했고,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 제임스 발라드의 ‘크래시’, 엘리자베스 맥닐의 ‘나인 하프 위크’를 재출간했다. 시리즈는 총 20권으로 완간된다. ‘비터문’은 한 호화여객선에서 만난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레베카에게 애인도 있는 디디에가 흔들린다는 내용. 1993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만든 ‘비터문’처럼 시리즈에 들어 있는 소설은 모두 영화화됐다. 화면에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대사와 상황의 함의를 텍스트를 통해 찬찬히 읽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다만 ‘단순하고 뜨거운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쉽다. 예스런 문체에 30여 년 전 발표된 소설의 시대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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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기현]4월 재·보선의 정치학

    20년 전 4월이었다. 김영삼(YS)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하자마자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군내(軍內) 핵심 사조직 하나회 숙정, 대대적 사정(司正) 등 고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동아일보 등 언론의 검증으로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박희태 법무부 장관 등 당정청 고위 인사가 낙마하는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초반 출발은 좋았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첫 시험대인 4·23 재·보궐선거를 맞았다.어떤 성적표를 받느냐에 따라 정권 초기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에 여권은 사활을 걸었다. 당시 이기택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4개월 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DJ)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난 뒤 표류하던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3개 선거구 중 YS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두 곳은 여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야세가 강한 경기 광명이 관건이었다. YS는 재야 운동권 출신 손학규라는 혁명적인 카드를 내세워 이곳에서까지 승리하며 첫 재·보선에서 전승을 거뒀다.반면에 참패한 민주당은 이기택 대표와 DJ 동교동계의 어색한 동거관계에 본격적인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2년 뒤 DJ의 정계 복귀를 불러오는 단초가 됐고 돌아온 DJ는 결국 1998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해의 4월 재·보선은 이처럼 새 대통령에 대한 첫 평가일 뿐 아니라 정권 5년의 향방과 차기 대선 구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15년 전 DJ 정부 1년차인 1998년 4·2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들어왔다. 대구 달성에서 박근혜가 당시 여권의 거물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을 꺾은 데 힘입어 야당이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대선 패배 뒤 첫 재·보선의 4곳 모두에서 이겼다.박 당선인으로선 20년 전 YS나 15년 전 자신처럼 올해 4·24 재·보선에서도 성공적인 출발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전부터 인선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거구로 이미 확정된 서울 노원병과 부산 영도는 새누리당에 쉬운 곳이 아니다.여권에서 새누리당 중진 김무성 전 의원이 전격적으로 영도 출마를 선언한 것을 신호탄으로 4월 재·보선을 향한 ‘게임’이 벌써 시작됐다. 원내 진입으로 정치 복귀를 노리는 김무성은 당권까지 염두에 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다음 10월 재·보선 때는 여권 내의 정치지형과 민심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그때는 공천도, 당선도 보장받기 힘들다는 판단이 그의 결정을 재촉했을 것이다.반대편에는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있다. 20년 전 4월 민주당은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에 가 있던 DJ만 쳐다봤다. 이번에도 민주당 대신 미국에 있는 안철수가 야권의 ‘메인 플레이어’다. 다음 달 귀국할 것으로 보이는 안철수가 직접 선거에 나서지 않더라도 측근 인사를 출마시키고 지원에 나서면 재·보선은 순식간에 차기 대선 레이스의 전초전이 돼 버린다.벌써부터 안철수 진영 주변에선 김성식 전 의원, 금태섭 정연순 변호사 등 출마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의 이름까지 나온다. 안철수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야권 표가 많은 영도와 진보진영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노원병 모두 ‘해볼 만한 곳’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반면에 박근혜가 미국 벤처업계의 영웅 김종훈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을 ‘안철수 견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안철수 ‘백신 신화’를 한순간에 덮어버렸다는 것이다.그러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다시 정치게임이 시작되는 상황이 올 경우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민심은 한순간의 자만도 허용하지 않는다. 1993년과 1998년 4월 재·보선에서 각각 전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출발했던 민자당과 한나라당은 5년 뒤 대선에서 모두 졌다.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kimkihy@donga.com}

    •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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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문집 ‘김수영의 연인’ 펴내는 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 씨

    《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그러나 너의 얼굴은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그 찰나(刹那)에 꺼졌다 살아났다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은― 김수영의 시 ‘사랑’ 》“김 시인(김수영)은 초고를 원고지에다 안 쓰고 백지에 썼어. 이 양반은 원고지도 뒤집어서 백지에 썼지. 초고가 완료되면 무조건 나를 부르는 거지. 제일 왕성할 때는 마포 구수동에 살림을 차렸을 때였어. 구공탄에 밥을 짓는데, 그 밥이 부글부글 끓을 때 서재로 나를 부르는 거야. 그러면 나는 밥이 탈까 아예 솥을 내려놓고 들어갔지.” 김수영(1921∼1968)의 아내는 1950년대 후반의 서울 마포로 가 있었다. 시인을 떠올리는 그의 눈망울이 촉촉하다. “얼마나 까다로운지 원고지를 앞에 딱 내놓고 정좌 상태로 앉아 있어. 그러면 (내가) 시 제목, 그리고 김수영이라고 쓰고 한 자 한 자 정서를 했어. 행여 한 자라도 잘못 쓰면 ‘다시!’라고 했지. ‘땜질’이 안됐어.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썼지. 그렇게 써서 한 통은 잡지사에 보냈고, 하나는 간직했고….” ‘풀’ ‘폭포’를 비롯해 수많은 현대시의 걸작들을 남긴 김 시인. 지금 전해 내려오는 그의 육필 원고들은 대부분 부인 김현경 씨(86)의 글씨다. 1942년 문학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난 이들은 부부의 연을 맺었고, 두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났고, 1968년 시인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떴다. 시인의 부인은 그가 떠난 지 45년 만에 그 추억을 담은 첫 산문집 ‘김수영의 연인’(실천문학사)을 이달 말 펴낸다. 18일 경기 용인시 마북동에서 김 씨를 만났다. 여든을 훌쩍 넘긴 시인의 아내는 지금도 고왔다. 가볍게 화장을 했고, 헤어밴드와 팔찌로 포인트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 그는 포도주와 육포, 딸기를 내왔다. “손님이 오면 한 잔씩 내와요.” 세련된 손님맞이였다. 그는 신(新)여성이었다. 문단이란 말도 생소했던 1940년대. 이화여대 문과생이었던 그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폴 발레리의 시를 읽었다. 이화여대 교수였던 정지용의 예쁨을 받았고, 김소월의 ‘산유화’에 곡을 붙인 작곡가 김순남이 오촌 당숙이다. 김순남의 집에 놀러가서 자연스럽게 임화 오장환을 비롯한 문인들과 어울렸다. 미와 지성을 겸비한 그는 남성 문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김수영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이자 도쿄 유학시절 친구였던 이종구를 통해 1942년 김수영을 처음 만났다. 이듬해 김수영이 귀국하며 둘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 양반이 시를 쓰니까 같이 문학에 ‘턱’ 빠졌지. 박인환이 하던 마리서사(종로의 서점)에 가서 일본 전후파 시집들을 같이 읽고 흥분하고 했어.” 하지만 김 씨에게 김수영은 첫사랑이 아니었다. 이른바 ‘흑인 시’를 쓰던 배인철(1920∼1947)과 사귀었던 그는 1947년 남산에서 데이트를 하다 한 괴한이 쏜 총에 애인이 죽는 것을 옆에서 봤다. 그도 옆구리에 총을 맞았다. ‘배인철이 공산주의자였다’란 소문이 돌자 함께 있던 김 씨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났다. 하지만 김수영만은 예외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외면했지만 김수영만은 제게 남았어요. ‘네 재주가 아깝다. 너는 문학을 해야 한다’며 저를 다독여줬죠.” 1949년 초겨울부터 동거에 들어간 김수영과 김현경은 1950년 4월 결혼한다. 하지만 둘의 행복은 짧았다. 6·25전쟁이 터지자 김수영은 징집당해 전선으로 갔고, 포로가 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머물게 된 것. 1952년 김수영이 수용소에서 나온 뒤 둘은 피란 수도 부산에 살았지만 판잣집 생활을 면치 못했다. 김현경은 취직하기 위해 이종구를 찾아갔다가 그 집에 머물게 된다. 그를 흠모했던 이종구가 김현경을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김수영은 이종구의 집에 왔다가 아침 밥상을 차리는 김현경을 보고 말없이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김현경은 “먼저 가세요”라고 말한다. 이종구의 부친은 김현경에게 “이혼을 하고 새로 결혼하게 김수영의 도장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그 등쌀에 밀린 김현경은 서울을 찾는다. 종로 보신각 옆에 있던 주간잡지 ‘태평양’ 건물. 2층에 올라가자 김수영이 보였다. “1년 만의 재회였는데 제 얼굴을 보고 좋아하더군요. ‘저기 뒤에 조그만 여관이 있는데 거기 가서 좀 있으라’고 하데요. 말이 떨어지지 않아 ‘저기…도장…’이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알아채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군요.” 김현경은 김수영의 도장을 받아왔다. 하지만 차마 이종구의 부친에게 전달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종구 집을 나와 서울 성북동에 방을 하나 얻었지요.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서 밤낮으로 문학을 했지요. 몇 달 뒤 제 결심을 알리고 싶어 김수영에게 엽서를 보내 성북동 다방에서 보자고 했어요.” 자신을 버렸던 여자의 느닷없는 엽서. 김현경은 김수영이 안 나올 줄 알았단다. 약속한 오후 5시를 일부러 넘겨 30분 늦게 찾아간 다방. 김수영은 출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말쑥한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1954년 둘이 헤어진 지 2년여 만의 해우였다. “차를 시키고, 둘이 말 한마디 없었죠. 한참 있다가 ‘나가자’ 하더군요. 대뜸 ‘약수동(당시 김수영의 집) 가자’ 하더군요.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은 용기가 안 나서 ‘내가 성북동에 방 한 칸 얻어놨어요’라고 말했죠. 그 길로 성북동으로 들어가 다시 부부가 됐고, 15년을 함께 살았죠. 다시 만난 날 밤 ‘나 평화신문 가서 취직하고 올게’라고 말하더군요. ‘아이 러브 유’라는 말보다 더 좋았죠. 돈 벌어온다는 얘기였으니까요. 이튿날 정말 취직해서 오더군요.” 이후 김수영은 번역일도 많이 하고, 서울대와 연세대 강단에도 섰다. “그 사람이 집에서 글 쓰고 내가 바느질할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가 집에 있어도 그리웠지요. 가만히 서재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그는 이런 말을 했어요. ‘야, 너 말야. 어젯밤에 내가 해줬는데 뭐가 더 궁금해서 왔냐.’ 뭐 이랬죠. 사실은 전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놀렸죠.” 김수영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40년 넘게 그는 문단을 멀리 했다. 이번 책을 낸 것은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같이 산 20여 년의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세월이 두 배가 넘지만 아내는 남편을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 아내는 책 말미에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라는 편지글을 붙였다. ‘1940년대에 처음 당신을 아저씨로, 그저 꿈 많던 한 문학소녀의 선생님으로 맺은 첫 인연이 부부의 연으로 이어져 이렇게 질길 줄이야…. 당신보다 반세기를 더 살고 있는 내 인생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모든 시가 나의 버팀목이 되었고…. 당신, 수영. 꿈에서라도 나타나주기라도 하면, 이 책과 함께 당신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용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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