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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희곡, 아니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고교 자퇴 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라 불안감을 분출하는 통로로 역사와 철학 등 인문 서적을 읽으며 머릿속 오만 가지 잡생각에 동네를 홀로 돌아다니며 의미 없이 걸었던 시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이런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대학에 갔고 그곳에서조차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홍익대 사거리에서 처음 본 연극이란 장르는 내 안의 무언가를 홀렸고 그 후 무조건 희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연극과 영화를 보고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공연을 제작하며 밤을 새우고 자취방에 돌아와서는 연극·영화 관련 서적을 읽고 쓰는 걸로 다시 날이 밝고,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재미란 것을 느낀 순간 지난 20여 년간 있었던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시간이 오히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소재가 되었고, 연극이란 것에 티끌만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썼던 희곡들이 지금의 당선 전화를 받게 한 것 같습니다. 희곡의 텍스트를 보고 감동하게 해준 이강백 교수님, 희곡 쓰는 법을 알려준 윤조병 교수님,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것인지를 알려준 오태석 교수님, 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저의 꿈같은 첫 당선이었던 원광대문학상의 심사위원 신귀백 님과 이상복 교수님, 늘 함께하며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경 쓰지 않고 술 먹으러 가자며 전화하는 내 진짜 친구들… 그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198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극작과 2학년}

지난 한 해 동안 ‘상처’를 주제로 두 작품을 썼습니다. ‘당부’는 그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한 영화의 장소 헌팅을 위해 강원도를 찾았습니다. 눈이 쌓인 어느 어둑한 산길을 지나면서 ‘당부’ 속 주인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지나갔을 눈길이 아마도 이런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이 어디에선가 실제 살고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강하게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인물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외롭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을 이제 조금은 덜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익숙한 요즘입니다. 고단하고 힘든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그럴수록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의 이야기’만큼 ‘당신의 이야기’가 소중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고 한걸음씩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썩 괜찮은 연출자(영화감독)로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1978년 부산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일기도 쓰지 못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고,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내 안에 머물던 말과 기억들이 흩날려 사라졌던 것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나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어렵고 조심스럽게 서툰 문장을 쓴다. 서른 살이 되는 순간을 간절히 바랐던 시간들도 있었다. 어쩐지 서른 살이란 내게 어른의 나이처럼 느껴졌다. 그땐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스물 언저리의 시간들이 내겐 너무 어렵고 버거웠다. 빨리 그 시간들을 건너뛰고만 싶었다. 사실은 지난 몇 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작년과 재작년, 올해의 기억들을 바르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그 시간들은 괄호 안에 뭉뚱그려진 채 생략되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 글을 쓰지도 못했고,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도 어려웠다. 이상한 사춘기였다. 선생(先生)님,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에 담긴 따뜻한 의미를 좋아하고, 그 말을 머금는 동안 입안에 남겨지는 둥근 여음(餘音)을 좋아한다. 긴 망설임 끝에 냈던 용기가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지키지 못한 약속들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보면 거짓말이 되어 있어서 죄스러운 일이 많다. 긴 시간 동안 이상한 제자를 돌봐주시고 늘 토닥여주신 박광현 선생님께, 이제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 번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드리고 싶다. 선생님이 내게 펼쳐 보여주셨던, 그 환한 꿈같았던 기쁨의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소설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던, 스무 살 여름밤의 수줍은 고백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아마도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고 말해도 될까. 그 처음으로 향했던 거칠고 서투른 고백을 보듬어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1984년 대전 출생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영화는 나로 하여금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게 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했으며, 닮고 싶은 사람들을 보여줬고, 꿈을 꾸게 했다. 그런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만난 세계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응답이고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나의 글을 어떤 식으로든 공적인 장(場)에 드러낸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나 나름대로의 ‘말 걸기’ 방식이다. ‘신춘문예’라는 공적인 제도의 문을 두드린 것 또한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하고 싶어서였고 그 문이 열린 것에,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음에 감사한다. 인문학도로서 오랫동안 공부했고, 강의실 안과 밖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와 함께했던 이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특히 이재선 선생님, 우찬제 선생님, 김승희 선생님, 이상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은 언제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귀감이 되어 주셨으며 부족한 제자를 믿어주셨다. 또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면서 늘 나를 깨어있게 했던 후배들과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나를 지지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 승희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내게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힘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이번 당선을 계기로 더 많은 영화를 보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더 많은 채널을 가지게 될 것 같아서 아이처럼 웃음이 나온다. △1967년 경기 동두천시 출생 △서강대 국어국문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석·박사(문학박사)}

기다림이 있으므로 시간은 더디게 갔고, 더딘 만큼 견뎌야 할 생의 길이는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생의 길이만큼 또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달려 날마다 초조해하는 것보다 희망도 소원도 없는 게 훨씬 더 편할 거 같아요”라는 김수현 선생님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미자’의 대사를 내 것처럼 중얼거리고 다녔으나 늘 바라는 것들은 더욱 커지고, 시간은 주체할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어젯밤 꿈에 스마트폰으로 합격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꿈처럼 2013년 신춘문예 수상 소감을 씁니다. 고맙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때때로 무너질 때 힘을 북돋아 주신 김봉집 선배님, 그리고 이 길을 가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없이 목 젖혀 바라보았던 하늘을 우러릅니다. 기쁨도 감당하기 힘들면 울음이 되는가 봅니다. 세상 600개의 언어로도 통역되지 않는 눈물의 빛깔은 투명합니다. 그 투명함 속에 내 어머니가 있고, 평소 ‘조 시인’이라고 불러 주시던 먼 유년의 아버지가 계시고, 가까이 있어서 소홀했던 내 가족이 있고, 너무 가까우므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이웃이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하므로 용서받고 용서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풋것들’ 가운데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절을 올립니다. 우리의 숨결, 우리의 정신이 녹아 있는 현대시조의 마당에 한 계절 밝히는 꽃을 피우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 이 땅의 위로가 되겠습니다. △1965년 충남 공주 출생 △드라마 ‘사랑과 야망’ 등에 연기자로 참여 △숭실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응모작 33편 가운데 최종 후보로 선택된 것은 두 편이었다. ‘비극적 스투디움과 일상적 푼크툼의 세계-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와 김기덕의 ‘피에타’를 중심으로’와 ‘문제적인, 그러나 전복적이지 않은…‘피에타’를 향한 질문’이다. 고심하며 재독 끝에 결국은 후자를 택했다. 그 까닭은 (영화)평론은 무엇보다 ‘문제제기적’이어야 한다는 내 특유의 비평관 때문이다. ‘문제적인, 그러나 전복적이지 않은…’은 글쓰기의 완성도 면에서 ‘비극적 스투디움과 일상적 푼크툼의 세계’에 비해 다소 미흡하다. 비문적 대목이 거슬리기도 한다. 영화의 기표인 비주얼과 사운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피에타’의 내러티브 및 의미 속으로만 파고든 것도 유감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제기적 비평의 어떤 전범으로서 손색없다. 이 전범은 감독을 포함한 세간의 주장처럼 ‘피에타’가 과연 ‘반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영화인가에 대해, ‘자비’와 ‘구원’이란 ‘피에타’의 대주제와 ‘폭력’ ‘복수’ ‘모성 신화’ ‘가족주의’ ‘정글’ 속 ‘먹이사슬’ 등으로 나열될 수 있을 서브테마들의 유기적 연결성에 대해 의구심 짙은 물음들을 던진다. 그 문제제기가 집요하고 논리 전개도 정치해 가독성도 빼어나다. 그에 비해 ‘비극적 스투디움과 일상적 푼크툼의 세계’는 지나치게 스투디움과 푼크툼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다. 다분히 설명적이며 동어반복적이다. 그 두 개념의 영화적 적용에 더 큰 힘을 쏟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승자와 패자, 모두의 건필을 소망한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우주놀이 해요! 우주놀이 해요!” 반복이의 우주놀이가 또 시작됐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보드게임에 빠져 있는데도 반복이는 오로지 우주놀이밖에 모른다. 반복이는 3학년이지만 유치원생보다도 말을 못하는 현수의 별명이다. 늘 두 번 이상 반복해서 말한다고 내가 지어줬다. 현수는 전에 특수학교를 다녔었다. 하지만 아빠를 따라서 이사 온 이곳 주변에는 특수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한 반이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현수를 같은 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현수는 늘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빨간 바구니를 뒤집어썼다. 빨간 바구니는 엄마가 빨래를 모아 놓는 둥근 바구니처럼 생겼다. 머리에 쓰면 쏙 들어가 마치 깡통인형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현수 머리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반복이 아저씨, 또 나물 캐러 가세요? 웬 바구니예요? 네?” 내가 툭툭 바구니를 치자 바구니는 현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화를 낼 줄 알았던 현수는 오히려 박수를 치며, “와! 멋져요! 멋져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곧 바구니를 벗어서 내 머리에 씌우려고 했다. “같이 해요, 우주놀이! 같이 해요, 우주놀이!” “하하. 반복이 우주로 날아갈 기세네. 내가 이 바보 같은 짓을 왜 해. 너 같은 반복이도 아니고! 야, 김창우! 받아랏!” 나는 현수의 빨간 바구니를 휙 던졌다. 창우는 엉겁결에 빨간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쫓아오는 현수를 이리저리 피하다가 다시 나에게 패스해주었다. 마치 농구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우주놀이 주세요! 우주놀이 주세요!” 현수는 수비수처럼 두 팔을 내뻗으며 소리쳤다. “하하! 이거 신나는데! 자! 여기, 여기!” 이번에는 보드게임에 열중하던 미영이에게 던졌다. 미영이는 어디로 패스할지 우물쭈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으악! 야! 너 뭐하는 거야!” 현수가 미영이를 그만 와락 안아버렸다. 순식간에 온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얼레리 꼴레리! 미영이랑 반복이랑 안았데요∼! 안았데요∼!” 미영이는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현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부르르 부르르 입으로 반복되는 소리를 냈다. “누구야! 누가 미영이를 울렸어?” 선생님은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하신다. 선생님은 가장 먼저 날 쳐다보셨다. 이미 선생님한테 여러 번 찍힌 나다. 반복이가 우리 반에 전학 오면서 나는 선생님께 미운털이 박혔다. 사실 우리 반에서 제일 인기남은 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늘 교실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고 예뻐하셨다. 그런데 이제 선생님의 관심사는 오로지 반복이 녀석인 것 같다. 반복이 녀석이 하는 짓에는 모두 관대하시다. 반복이가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아도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늘 현수만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반복이 녀석처럼 막 나가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관심 못 받나 저렇게 관심 못 받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나 선생님께 혼나는 사람은 늘 나다. “박민철! 또 네 짓이지? 네가 또 아이들을 괴롭힌 거지?” 역시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선생님, 미영이를 울린 건 제가 아니라 현수가…….” “현수 너, 미영이를 울렸니?” 선생님의 물음에 현수는 계속 부르르 부르르 이상한 소리만 반복해서 낼 뿐이었다. “민철아, 선생님이 현수를 잘 챙겨줘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선생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셨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현수의 바구니로 장난하긴 했지만 미영이를 울린 건 정말 내가 아니다. “선생님! 왜 매일 현수만 감싸세요?” 나는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께 대들듯 말했다. 내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마도 무척 놀라신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몇 번을 얘기해야 하니? 너희들도 알다시피 현수는 장애가 있는 아이잖니? 그러니까 간혹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해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선생님! 지난번에는 현수가 장애를 가졌을 뿐 우리와 동등하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말했다. 선생님은 코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손등으로 코를 닦아댔다. 선생님의 꽁꽁 언 얼굴을 보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선생님이 동등하다고 한 건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런데 민철이, 너! 계속 그렇게 선생님 말에 대들거니?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지금 당장 선생님 따라와!” 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셨는지 교실문을 쾅 닫고 나가셨다. 나는 현수를 있는 힘껏 흘겨보았다. “이게 다 반복이 너 때문이야!” 그 순간 현수의 빨간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저벅저벅 현수 앞으로 걸어가서 빨간 바구니를 쾅 하고 있는 힘껏 밟았다. 빨간 바구니는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현수는 부서진 빨간 바구니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주놀이! 우주놀이! 우주놀이!” 주위에 서성이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내게 일주일 내내 급식당번을 하라는 벌을 주셨다. 그나마 가벼운 벌이어서 마음이 조금 풀렸다. ‘반복이 바보 자식. 우주놀이하자고 조르지만 않았어도.’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꾸 현수의 빨간 바구니가 생각났다. 현수는 교과서는 잊어도 빨간 바구니는 늘 챙겨왔었다. ‘바구니가 많이 비싼 건 아니겠지? 엄마가 알면 혼날 텐데…….’ 이 찜찜한 기분으론 도저히 그냥 집에 갈 수가 없다. 나는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현수와 선생님이 보였다. 나는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은 깨진 바구니를 접착제로 일일이 붙이고 있었다. “우주놀이 안 돼요? 우주놀이 안 돼요?” 현수가 선생님한테 물었다. “아니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우리 현수가 좋아하면 계속 하는 거야.” “우주놀이 좋아. 우주놀이 좋아.” “다른 아이들은 이 엄청난 우주놀이를 상상도 못할걸? 네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모두들 너의 기발한 우주놀이를 이해 못하는 거야. 현수 최고! 멋져!” 선생님은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현수 최고! 현수 최고!” 현수도 손에 든 빨간 바구니 조각을 치켜들고 말했다. 나는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복도를 빠져나왔다. 운동장을 나서려는데 우주놀이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현수는 왜 빨간 바구니를 우주놀이라고 하는 걸까? 바구니는 엄마가 빨래를 모아두거나 채소를 씻을 때 쓰는 것이지 우주가 아니다. 우주는 과학체험관에서 보았던 멋진 곳이거나, 불을 끄면 천장 가득 야광별이 빛나는 내 방 같은 곳인데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깟 플라스틱 바구니가 왜 기발하고 멋지다고 하셨을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선생님과 반복이 녀석 사이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샘이 났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른 주방으로 뛰어갔다. 싱크대 맨 아래 칸을 열고 엄마가 국수 건질 때 쓰던 큰 바구니를 찾아냈다. 현수의 바구니처럼 머리가 다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모양은 비슷했다. 나는 바구니를 현수처럼 머리에 써보았다. 순간, 촘촘한 바구니 틈새로 불빛이 들어왔다. 나는 머리에 쓴 바구니를 빙빙 돌려보았다. 그러자 마치 수많은 별들이 눈앞에 와르르 쏟아지는 듯했다. “민철아! 너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야?” 엄마의 잔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우주에 온 것만 같았다. 다음 날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보드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수는 구석에서 더덕더덕 붙여진 빨간 바구니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야, 박민철! 너도 껴! 나 지금 영국에 빌딩 샀어.” 창우가 두 손으로 보드게임 머니를 세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가방에 챙겨온 바구니를 꺼내 들고 현수 앞으로 갔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바구니를 든 내 모습에 주목했다. “야, 반복이! 우리 우주놀이 할까?” “우주놀이 좋아요! 우주놀이 좋아요!” 현수가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어느 때도 들을 수 없었던 가장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나는 현수와 함께 바구니를 뒤집어썼다. “뭐야, 박민철! 너 반복이 넘버 투냐?” 창우의 말에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까르르 웃어댔다. 하지만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오로지 멋진 우주만 보일 뿐이었다.}

작가들의 당선 소감을 읽는 밤이다. 아르바이트 공고를 읽던 밤보다는 훨씬 운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세계의 예측 불허함엔 항상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 불허에도 불구하고, 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것을 소감이라기보다는 러브레터라고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라도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 기쁘다.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유치하게, 억지 눈물이라도 한 방을 묻히고 싶다. 먼저 사람이 아닌 것들에게―함께 새벽을 지새운 나의 고양이 두 마리, 마감만 끝나면 부수겠다고 다짐한 노트북(그러나 지금 소감을 쓰고 있다), 이력서를 냈지만 받아주지 않았던 회사들, 내가 가졌던 방들, 치킨마요. 그리고 사람들에게―슬픔 또한 농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부모님과 가족들. 언제나 함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경기예고 친구들. 인사할 구실이 생겨 좋은 서울예대 동기들과 한강 선생님, 김혜순 선생님, 조동범 선생님. 자존감 하락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동국대 대학원 동기들와 선배들, 그리고 교수님들. 겨우 따라잡아 보폭을 맞추게 된 발상스터디와 엉덩이와 식사 멤버들. 조우리 선생님과 김혜정 선생님, 곁에서 항상 욕해준 곰과 그 친구들. 따로 이름 넣어달라고 한 민주. 퇴미 부부. 나를 스쳐갔거나 내가 지나친 많은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과 평화를 (곧 마실 알코올과 함께) 전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버려진 소설들에게―늘 AS 기사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살겠다. 사실 많이 무섭다. 하지만 무서울 수 있어서 고맙다. 심사위원 두 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어 다행이다. △1987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

본심에 올라온 여섯 편을 읽었다. 서사력이 문제였다. 최근 종종 논란이 되고 있는 서사력 문제가 신춘문예 응모작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서사력은 말 그대로 힘(力)이어서 권력화 될 수 있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서사력 무력화 전략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은 서사력 무용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서사력 미흡이 무력화 전략으로 간주되거나 미화될 수 없다. ‘형식주의자’는 자동기술법도, 의식의 흐름 기법도 아니면서 그것처럼 보이게 썼다. 치기가 패기로 읽히려면 어떤 게 더 필요할까 고민하길 바란다. ‘아름답고 비정한 나의 이웃들’은 시점이 불안하고 내레이션이 수다로 흐른 흠이 보인다. 비정하기만 하고 아름답지 않아서 그 좋은 입심이 그만 빛을 내지 못했다. 서사력이 돋보이는 ‘발신자 표시제한’은 안타깝게도 흔한 방식의 내용전개 때문에 서사력에서 얻은 점수를 깎아먹고 말았다. 뭉크의 ‘사춘기’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감성의 ‘소파 위의 개’는 기대작이었으나 개 사육장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무기력의 대비가 지나쳤다. ‘신의 희작’에 관한 3개의 주석’은 발상과 형식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다름 아닌 그 발상과 형식이 소박한 오마주적 결말과 서사 조형능력 부족에서 기인했다는 게 유감스러웠다. 지금까지 거론한 작품이 선정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한 편의 당선작만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교도’는 서사의 강점을 발휘했다. 푹 빠져들 만큼 인물에 대한 천착이 남달랐다. 다만 세속적 성공에 초연하다 하여 ‘루저’나 예비범법자 취급을 하는 세태를 꼬집는 방식에 새로울 건 없었다. 정진해야 할 숙제로 남긴다.조남현 문학평론가, 구효서 소설가}

전국 지명 150여만 개 가운데 뱀(巳)과 관련된 지명은 208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토지리정보원은 뱀의 해인 2013년 계사년을 맞아 뱀과 관련된 지명을 분석한 결과 ‘사동’이 전국에 15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뱀골’ 10개, ‘뱀재’와 ‘사도’ 각 4개, ‘사포’와 ‘장사도’ 각 3개 순이었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41개로 가장 많았고 경북과 충남이 각 31개, 경남 29개, 전북 27개 순이었다. 지명 종류별로는 마을 명칭이 157개로 가장 많았고 섬 15개, 산과 고개가 14개씩이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지혜, 풍요, 불사를 상징하는 뱀은 우리 문화에서 숭배와 질시를 동시에 받아왔다. 집과 재물을 지켜주는 업구렁이로,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인간을 위협하는 두려운 동물로 표현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십 년 넘게 나는 필명(고수유)으로 살아왔다.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쓰면서 시로 데뷔할 때의 본명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필명이 십 년 넘게 나를 벌어먹여 주었고, 그 사이에 나는 고향도 부모도 형제도 문우도 다 잃어버렸다. 언젠가부터 희망, 기쁨과 더불어 절망, 슬픔에도 무감각해진 채로 단지 매일같이 글을 써댔다. 소설류도 쓰고 비소설류도 쓰고 그랬다. 그래서일까? 동아일보 당선 통보 전화는 우주 저 너머에서 보내오는 파장만 같았다. 꿈만 같고 어제 같고 또 몽상만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믿기지 않은 그 전화에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찰싹 뺨을 때려보았다. 하도 오래 나는 무감각하게 살아온 탓이라 본다. 지나보니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나에겐 부처이자 예수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난 특정 종교를 믿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바로, 지금, 여기가 극락정토이자 천당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니 내 옷깃을 스쳐간 분 모두 부처이자 예수이다. 오늘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다. 먼저, 이문열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번 생에선 갈림길을 걸어가게 될 줄 알았던 선생님과 기사회생하듯이 인연이 닿게 되었다. 또한 졸고를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 그리고 내가 지쳐 쓰러지려고 할 때 조우해 나에게 ‘빛’을 주신 정광호 학회장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 외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다시, 예전처럼 홀로 쓰고 또 쓰는 일만 남았다. 이제부터는 조금 욕심을 부려볼까 한다. 능력이 닿는 대로, 삶의 의미와 영성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는 소설을 꾸준히 써볼 작정이다. 눈부시게 희디흰 계절이다! △1968년 제주 출생 △홍익대 국문학과 박사 수료 △1995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시 데뷔}

예년에 비해 편수도 늘고 평론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많이 향상되었다. 많은 경우 다양한 작품을 아우르고 관통하는 문학적 주제를 발견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안정된 문장력과 섬세한 분석력으로 작품이 내장한 깊이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려는 시도들이 돋보였다. 나아가 작품이 징후적으로 포착한 삶의 감각을 명징한 현실적 언어로 분석하려는 노력도 주목할 만했다. 최종 경합한 작품은 총 네 편이다. 우선 박범신의 ‘은교’를 타나토스와 에로스라는 두 가지 욕망의 범주로 분석하고 있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이중주’와 언어를 불신하고 소설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유주 소설 내면에 들끓는 새로운 언어와 소설에 대한 욕망을 발견하고자 한 ‘의심과 불신의 소설쓰기’. 둘 다 부분적으로 탁월한 분석력이 돋보이기는 하나 지나치게 작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따르는 독법 때문에 텍스트라는 한계 안에 갇히고 말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선 여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한 ‘분열증적 탈주에서 생성의 상상력으로’는 윤이형 소설이 제기한 분열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금의 문학이 공유하는 불안의식과 연결 짓는 안목이 돋보였으나 분열에서 생명으로 변주되는 분석 과정의 소박함이 아쉬웠다. 당선작은 황정은 소설을 대상으로 한 ‘없음으로서의 유토피아: 언어의 (불)가능성에 대하여’로 결정했다. 황정은 소설의 소멸하는 인간, 탈의미화되는 언어 등을 통해 ‘없음’의 존재론을 발견하고 이를 텍스트 너머에서 새로운 존재론과 연결하고자 하는 비평적 노력이 돋보였다. 당선자에게 축하 인사를 보내며, 아울러 안타깝게 당선되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권성우, 심진경 문학평론가}

대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창이 나 있었습니다. 늘 한쪽 창의 불이 꺼져 있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던 때가 있습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켭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고 빈방에서 저와 아버지에 대한 시를 씁니다. 월미도 유람선에서 쓴 시를 교실 뒷벽에 붙여놓았던 고등학교 2학년에서 어느덧 미끄러져 서른을 훌쩍 넘겼습니다. 신문에 제가 쓴 시가 놓이게 된다니 제 마음에 창 하나가 밝게 빛나게 되네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올해 생일이 (양력으로 치면) 1월 1일인데, 생일 선물을 너무 거창하게 받네요. 밖에 내놓은 아들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그 곁에 함께하는 분당에 계신 아버지께도 감사 드려요. 최원식 선생님, 김명인 선생님을 비롯한 인하대학교, 대학원 선생님들과 동문들께도 감사합니다. 탁경순 선생님, 꼭 찾아뵐게요. 그리고 지금 옆에서 절 응원하고 같이 웃어주는 그녀, 고마워요. 그저 말 많은 선배에서 그래도 신춘문예 당선된 선배로 남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네요. ‘멋진수요일’ ‘청하’ ‘시선’. 대학 때 만난 학회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숱한 세미나와 술자리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그 곁을 함께한 선후배 모두 고맙습니다. 이제 즐겁게 시, 쓰겠습니다. △1980년 인천 강화군 출생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인하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어스름 새벽, 베란다에 나가 보니 눈이 옵니다. 불현듯 타닥타닥 아궁이에서 장작 타는 소리가 기억났습니다. 탁탁, 자글자글. 불꽃이 튀어 오르고 장작 틈새에서 송진이 끓었습니다. 잘근잘근 소가 여물을 씹었습니다. 엄마는 어떤 요리를 하느라 솥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했습니다. 아버지는 간혹 헛기침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간혹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셨습니다. 여태껏 이보다 더 평온하고 달콤한 하모니는 없었습니다. 그 하모니는 나에게 좀더 자도 된다는 일종의 자장가와도 같았습니다. 동화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난 후, 내내 원인 모를 막막함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당선 소식은 또 하나의 평온한 하모니가 되었습니다. 끝도 없던 불안함과 막막함을 잠재우는 또 하나의 자장가입니다. 이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마음껏 동화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참 기쁩니다. 너무나 감사해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항상 저를 믿어주시고 지원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안겨줬던 조카 현서, 아련이, 지율이, 그리고 곧 태어날 고쇼기, 늘 아낌없이 내 글을 응원해주었던 여러 지인, 예대 유스 친구들, 숭실대 헤이거울 멤버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저에게 동화가 무엇인지 가장 먼저 깨우치게 해주셨던 황선미 선생님, 늘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김서정 선생님,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셨던 숭실대 교수님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이 저를 응원해주셨던 김남극 선생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좌우명처럼 항상 속보보다 방향을 중요시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1982년 강원 평창군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및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현재 방송작가로 활동 중}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증성(明證性)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 만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껍질을 깨라! 도약하는 힘을 보여라! 마치 “알맹이의 과잉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 그렇듯이. “제가 발견한 것들의 힘에 겨워 파열”하고, 사물의 새로움과 내면의 고매함을 융합하며 붉은 보석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발레리의 시 ‘석류들’에서 일부 인용) 상상력은 늘 그렇게 독자를 익숙한 것들에 대한 놀라운 개안(開眼)으로 이끈다. ‘이모의 가까운 해변’ ‘골목을 들어올리는 것들’ ‘향리의 저녁 일지’ ‘발의 원주율’ ‘어제의 인사’ ‘끌어안는 손’ ‘오늘 너의 이름은 눈’ ‘친구들’ ‘가난한 오늘’ ‘迷路庭園’ ‘밀의 기원’ ‘꽃 앞의 계절’ 등을 최종심에서 읽었는데, 그것은 개성과 환유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속에서 무르익어 스스로 내면을 깨고 터져 나오는 시를 찾는 일이다. 익숙한 서정을 찾기 힘든 대신에 낯선 감각과 의도된 착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흐름은 주목할 만했다. 우리는 서너 편의 시를 손에 쥐고 오래 망설였다. ‘가난한 오늘’을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고심 끝에 골랐다. 신체 말단이 잘리고 헐고 바랜 자는 상처 받은 자이고, 그 상처는 가난의 흔적일 것이다. 일절 엄살이 없다. 아픔을 과시하는 헤픔을 절제하고 가난에 형상을 부여하는 힘은 정신의 야무짐에서 나온다. 시구와 시구 사이의 여백이 그 시적 물증이다. 수사가 덜 화사하고 주제가 소박했지만 아픔과 미망에 대한 표현의 간결함에서 사물에 감응하는 시인의 정직과 내핍의 염결성을 느꼈고, 그것에 깊이 공감했다. 이 시인의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장석주, 장석남 시인}

“‘얘야, 내가 너의 두 손목을 자르지 않으면 악마가 나를 데려가겠다는구나. 나는 겁이 난 나머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소녀가 말했다. ‘아버님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저는 아버님의 자식인걸요.’ 소녀는 두 손을 내주고 자르게 했다.”무슨 엽기적 소설일까. 아니다. 그림 형제의 작품 ‘손이 없는 소녀’ 일부다. 형 야코프(1785∼1863)와 동생 빌헬름(1786∼1859)이 독일에서 전해내려 오는 민담을 묶어 1812년 12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의 초판을 펴냈을 때 독일 부모들은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아이에게 어떻게 읽힐 수 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잔인한 폭력성뿐만 아니라 과도한 성적 표현도 들어 있었기 때문.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그림형제의 작품은 대부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풀어내고 표현을 순화해 만든 ‘동화’다. 올해 ‘어린이와…’의 출간 2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그림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현암사)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그림형제는 1812년 ‘어린이와…’의 초판을 펴낸 이후 개정 증보를 거듭해 1857년 최종판(7판)을 냈다. 문장이 유려해지고 문학성이 깊어진 최종판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지만 초기 판형들은 민담 원형에 가까워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번 기념도서는 각 판에 수록된 작품을 총망라했다. 모두 251편의 이야기가 1076쪽에 걸쳐 펼쳐진다. 이번에는 번역뿐만 아니라 편집과 디자인 작업도 성인의 눈높이에 맞춰 했다.‘헨젤과 그레텔’ ‘라푼첼’ ‘개구리 왕자’ ‘브레멘의 음악대’의 이야기를 원문에 가깝게 읽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태껏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초역 41편이 추가된 것에 눈길이 간다. 초역 작품 가운데 하나인 ‘까마귀’는 우리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과 구성이 비슷하다. 동료의 배신으로 위기에 몰린 한 남자가 우연히 까마귀가 흘려 말하는 얘기를 듣고 횡재한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가 다시 그 까마귀를 찾아 갔다가 이번엔 화를 입는다.국내 대표적 아동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김경연 씨가 번역을 맡았다. 1995년 동화에 적합한 내용만 발췌해 풀어낸 ‘그림동화’(전 10권·한길사) 이후 17년 만에 완역을 마쳤다. 김 씨는 “그림형제가 민담을 수집한 데는 당대 낭만주의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민간전승 문학을 인류의 ‘모든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샘’에서 나오는 ‘영원히 타당한 형식’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와…’는 초판본 1, 2권이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문서부문)에 등재됐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 공연으로 만들어지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비교적 높은 가격(4만5000원)이지만 그림형제의 팬이라면 구미가 당길 듯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 한 해 행복하셨습니까?” 잠시 머뭇거렸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내년은 행복할까요?” 바쁘게 달려온 한 해의 끝자락에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어떨까.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사람도 연말이면 이렇게 되짚어 보게 된다. ‘내가 잘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행복한가.’ 한 해를 정리하며 읽기 좋은 책이다. 신달자 김별아 노경실 허영자 방귀희 서정윤 윤후명 장석주 등 문인부터 황수관 박사, 김병준 변호사, 손욱 전 농심 회장까지 총 23명의 각계 인사가 쓴 행복 에세이를 모았다. 행복은 어딘가에서 불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소중한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소설가 김별아가 전하는 행복은 한 마리 백로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전거 타기가 취미인 작가의 동생은 천변을 달리다 백로 한 마리를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꺼내 다가가자 백로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날아간다. 다시 쫓아가면 다시 도망가는 반복 끝에 동생은 수십 마리의 백로가 모인 곳에 닿는다. 장관을 봤으니 기뻤다고? 아니다. 당황했고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토록 쫓던 백로가 한 마리였을 때는 유일하고 소중한 가치였지만, 수많은 다른 ‘가치’들이 등장하는 순간 이내 종전의 빛을 잃어버렸기 때문. 백로는 우리가 쫓는 행복이다. 다른 사람이 쫓는 것과는 다른, 나만의 흰 새 한 마리를 찾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역경은 때로 행복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인 수필가 방귀희는 장애가 자신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장애가 씻을 수 없는 낙인이지만 장애 때문에 얻은 프리미엄도 많다. 만약 내 인생에서 장애를 빼고 나면 난 그저 아주 평범한 여자였을 것이다”라고 털어놓는다. 소설가 이채윤은 한때 섬유공장 사장이었지만 공장이 부도난 뒤 전업 작가로 인생행로를 바꿨다. 그는 사업하는 옛 지인들이 과로사로 쓰러지는 것을 본 뒤 뜻하지 않은 부도가 귀한 ‘선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일상에서 행복 찾기’ ‘자신만의 행복 찾기’ 등 책이 전하는 행복론은 익히 들은 듯하며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정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에는 공통된 정답이 없으며, 자신의 행복을 채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너그럽고 관대하며 긍정적일 것. 그러면 내 행복 점수가 좀 올라가지 않을까. 양애경 시인의 시 ‘조용한 날들’의 일부를 덧붙인다. 새해에는 소소한 일상에 숨은 행복을 찾는 밝은 눈을 갖기 바란다. ‘행복이란/사랑방에서/공부와는 담쌓은 지방 국립대생 오빠가/둥당거리던 기타 소리/우리보다 더 가난한 집 아들들이던 오빠 친구들이/엄마에게 받아 들여가던/고봉으로 보리밥 곁들인 푸짐한 라면 상차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 출판사 대표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그는 “김도언이란 작가가 요즘 작가들 가운데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큰 것 같다”며 극찬을 이어간 것이다. 기자는 ‘가장’ ‘열정’ 등의 단어가 부담스러워 “좋은 작가지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김도언(40)과는 몇 차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다른 몇몇 시인과 함께 집에 초대해 저녁을 겸한 술상을 대접한 적도 있다(막판에 김도언은 한 평론가와 목소리를 높여 언쟁을 했고, 기자는 옆집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올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대한 인상은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쓰고 편집자(웅진문학 임프린트 ‘곰’ 대표)로 일하는 부지런한 문인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나온 그의 산문집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이른아침·사진)를 보고 생각이 변했다. 문학에 대한 성실하고 고결한 마음가짐이 따뜻하면서도 처연하게 다가왔다. 등단 14년차를 맞았지만 문학적 결기도 서 있다. 소설 6권을 낸 뒤 올 2월 ‘시인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으로 ‘망명’한 그는 시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이렇게 적었다. “시인은 행복해서도 안 되고 부자여서도 안 되고 인기가 많아서도 안 된다. (중략) 시는 혹독한 결핍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 결핍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이어서 참혹하다. 시 쓰기는 이 참혹의 진창을 뒤져 사금을 줍는 행위다.” 산문집은 2010년 1월부터 올 11월까지 작가가 주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소설이나 시가 쓰이지 않아도 작가는 어딘가에 꾸준히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왜 쓰는가. 글 쓰는 행위가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임을 그는 이렇게 토로한다. “글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되묻는 행위입니다. 자신과 다투고 불화하다가 결국 화해하고 마침내 용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활의 궁극에 해당하는 경지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소가 여물 씹듯 느리게 질겅거린 뒤 힘겹게 삼킨다. 날카로운 가시들도 곳곳에 박혀 있다. 이를테면 문단 권력 문제를 다룬 대목은 이렇다. “지금 작가들은 어떤가. 문단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문학 메이저 출판사 ‘빅4’(창작과비평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의 관리 체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안다.” “한국 문단은 문학을 교환가치로 여기는 자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산업적 상상력이 문학 주체들의 윤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겁지만은 않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처음 만나는 길에 샌들을 신고 간 에피소드나, 7년 동안 한집에 살았던 신동옥 시인을 떠나보내는 감상을 적은 뭉클한 글도 있다. 김요일 류근 구경미 신승철 박장호 박후기 등 교류 문인들의 뒷얘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해가 지면’ ‘홍대나 합정, 좀더 나가면 공덕역 인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마시는’ ‘40대 전후 시인들’의 ‘오늘’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답이 될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해의 책’은 독자들이 직접 뽑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래서 의미가 크지요. 10년 넘게 이어온 역사성, 연속성과 함께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 관련 온라인 투표 행사라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매년 연말 ‘올해의 책’을 발표하는 인터넷서점 예스24의 김기호 대표는 “단순히 온라인 투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4권의 책이 선정되면 해당 출판사와 작가들을 위한 축제의 자리도 마련해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와 출판사, 독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서점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GS 홈쇼핑 전무, GS 강남방송 대표를 역임한 김 대표는 지난해 9월부터 예스24 대표를 맡고 있다. 출판 시장이 불황을 겪고 있지만 그는 모바일과 전자책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2010년 3월 인터넷 서점 업계 최초로 시작한 모바일 서점은 2년 9개월 만에 누적거래액 200억 원을 돌파했으며 2013년에는 300억 원의 연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올 9월 출시한 터치형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 터치’가 3개월 만에 예스24에서만 8000대가 팔렸다. 예스24는 내년에 ‘크레마 터치’ 업그레이드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작가들이 콘텐츠를 등록만 하면 별도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독자들이 바로 구독할 수 있는 ‘연재 플랫폼’을 열 예정이다. “2012년에는 10만원대 ‘크레마 터치’로 국내 전자책 시장 확대의 포문을 열었으며, 2013년에는 좋은 콘텐츠 확보와 진화하는 단말기가 전자책 시장 성장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수한 콘텐츠와 전자책 단말기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 대표는 또 “무엇보다 책을 읽게 만드는 분위기 조성과 독자층 확대가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점은 서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죠. 독자들이 서점에 자주 찾아오게 만들고, 작가와 출판사가 독자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만들고 쓸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강연회와 시사회 같은 오프라인 행사들을 앞으로도 다양하게 개최할 생각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란민들은 “남으로” “남으로”를 외쳤다. 당시 부산은 인구 20만 명 정도의 도시였지만 전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인산인해의 불안하고 지친 풍경. 이 가운데는 문인들도 있었다. 피란민들은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땅의 끝, 국토 남단의 항구도시에 도달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하루하루의 생존이 급한 상황. 하지만 문인들은 이 절박한 피란도시에서도 예술의 꽃을 피웠다. 부산 광복동에 위치했던 다방 ‘밀다원(蜜茶苑)’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1950년대 초 부산 광복동, 남포동 일대에는 줄잡아 20여 곳의 다방이 성행했다. 광복동 네거리에서 시청 쪽으로 향한 길가 건물 2층에 있는 밀다원에는 유독 예술가들의 발길이 잦았다. 밀다원 바로 아래층에 피란 시절 ‘문총(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의 임시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술가들은 밀다원에서 만나 자신의 피란 체험을 털어놓으면서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자 했다. 서로의 생존과 안위를 물었고 동질감과 존재감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 다방에서 작곡가 윤용하는 시인 박화목과 만나 유명한 가곡 ‘보리밭’을 만들었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 김환기, 백영수, 장욱진이 고통의 삶 속에서도 자신의 창작욕을 불태웠던 곳도 여기다. 이중섭은 이 다방 어느 구석에 앉아 유명한 은박지 그림들을 그렸다. 백영수는 피란지에서의 개인전을 이곳에서 열었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밀다원에서 실의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꿈을 얻었다. 이름 그대로 밀다원은 척박한 임시 수도에서 예술인들이 잠시나마 숨통을 틔우는, ‘꿀물이 흐르는 찻집’이 되었다. 보통 다방 밀다원은 소설가 김동리의 단편 ‘밀다원 시대’(1955년)를 통해 기억되기 때문에 허구 속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이 소설은 ‘현실’에 가깝다. ‘밀다원 시대’에는 가난한 소설가 이중구가 등장하는데, 소설가 이봉구(1916∼1983)가 그 모델이다. 이중구는 서울을 떠나 피란길에 오르면서 병든 노모를 이웃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면서 한강을 건넜다. 아내와 자식들도 충청도 시골의 처가에 보내고는 혼자서 부산에 떠밀리듯 내려온다. 그가 낯선 부산 땅에서 멈춰 찾아든 곳이 바로 밀다원이다. 이중구와 같이 이 좁은 다방을 찾은 사람들은 마치 꿀을 찾아 잉잉거리며 모여든 벌 떼 같다. 이들에게 꿀은 무엇인가. 바로 문학이고 미술이고 음악이었다. 밀다원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을 논했고 창작에 나섰다. 소설 속의 비평가 조현식은 실제의 인물 조연현을 암시하며 오정수는 소설가 오영수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밀다원 시대는 피란 예술가들의 당시 상황을 그린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밀다원 시대’는 부산 피란 당시 예술가라는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작가 자신이 그려내고 있는 인간상의 적나라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다원이라는 다방의 공간 그 자체다. 삶과 예술, 절망과 고통, 사랑과 비애, 배신과 갈등 등이 모두 함께 녹아들어 있는 이 특이한 공간은 바깥세상에서 전개되고 있던 전쟁과는 상관없이 강한 정서적 유대감으로 여기 모여든 예술가들을 한데 묶어놓는다. 밀다원은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의식주마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허덕이는 이들을 훈훈하게 보듬어준다. 결국 작가는 피란지 속에서 발견한 밀다원을 하나의 유별난 안식처로 그려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밀다원은 가난한 시인 박운삼의 자살로 그 시대적 역할을 마감한다. 사고 후 실제로 다방은 1951년 12월 문을 닫았다. 문학이 지향하는 이상의 세계와 전쟁을 피하기 어려웠던 고통스러운 삶 사이에서 고뇌하던 시인은 두 개의 원고뭉치와 한 편의 마지막 유작시(遺作詩)를 남긴 채 이 안식의 공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난다. 7일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부산에 내려가 광복동 네거리를 서성였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광복동 네거리는 인파로 붐비는 번화가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여러 휘황찬란한 불빛이 요란스러운 2012년의 광복동. 그곳에 이제 밀다원은 없다. 1950년대 초 성했던 다방들은 모두 사라졌다. 임시수도기념관과 부산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허택 씨의 도움을 얻어 수소문 끝에 밀다원의 위치를 더듬었다. ‘광복동2가 38-2’로 추정되는 당시 밀다원 위치에는 번듯한 의류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밀다원의 흔적을 찾기 힘든 그 언저리를 한참이나 서성였다. 아쉬움에 맞은편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셨다. 1950년대 초 밀다원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는 임시수도기념관(임시수도기념로 45)을 찾았다. 아쉽게도 당시 밀다원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 자료가 없어 추정으로만 밀다원 모습을 복원했다.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가 발표된 현대문학 1955년 4월호가 전시돼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부산 시민들, 부산을 찾은 외지인들이 광복동 거리를 걸으며 연말연시 분위기를 만끽하는 요즘이다. 이 거리에 몰려드는 사람들 가운데 이제 다방 밀다원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밀다원은 그렇게 시간 속으로, 사람들의 기억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하나의 작은 공간이 한 시대를 오롯하게 담아내고 그 시대의 삶을 그대로 표상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공간이 시대를 담아내기보다는 시대 속에 공간이 특정 장소로 자리 잡는다. 거대한 피란의 물결이 그대로 멈춰 선 곳, 핍진했던 예술가들이 지친 몸을 잠시나마 누일 수 있었던 곳. 밀다원은 한때 현대 예술가들의 삶이 응축됐던, 그런 특별한 곳이었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