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센 청년도 8분간 신호위반 5회… 중앙선 넘어 ‘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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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1>소주 두병 마시고 가상운전 해보니

“나 하나도 안 취했어!” 술에 취한 지인이 운전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난감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한 적은 있으신가요? 쉽게 빠지기 쉬운 음주운전의 유혹, 그 위험성은 얼마나 될까요. 기자가 직접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음주운전 실험을 해봤습니다.

《 소주 두 병을 마셨다. 술기운이 올랐지만 혀도 안 꼬였고, 정신도 말짱해 보였다. 운전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익숙하게 시동을 걸고 야간 시내도로에 나섰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08%의 음주 상태였지만 조심만 하면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 

 
하지만 깜빡이를 켜고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자 회전 반경이 너무 커 중앙선을 침범했다. 교차로에서 직진 신호가 빨간불이었지만 앞차가 통과하자 따라서 통과해 버렸다. ‘그래도 이쯤이면 양호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도 좀 낮추세요. 110km가 넘었습니다.” 결국 기자는 편도 2차로에서 차의 중심을 잃고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실제였다면 목숨을 잃을 뻔한 대형 사고였다.

다행히 실제 도로 상황은 아니었다. 기자가 26일 경기 화성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가상주행실험장비(VRDS)를 이용해 음주 운전 실험에 나서 발생한 상황이다.

연말 모임이 잦은 11월과 12월은 음주 운전 피해가 느는 때다. 지난해 2만9093건의 음주 운전 교통사고 가운데 11월이 2727건으로 발생 건수가 가장 많았고, 12월은 2494건으로 4위를 차지했다. 봄나들이 철인 3월(3위·2640건), 4월(2위·2708건)과 함께 음주 운전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시기가 요즘이다.

○ 소주 두 병 마시고 운전해 보니

기자는 음주량에 따른 혈중 알코올 농도와 음주 운전의 위험성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실험에 나섰다. 경찰의 협조를 얻어 음주측정기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고 가상의 음주 운전 실험은 교통안전공단의 도움을 받았다.

26일 오후 6시 반부터 쇠고기 등심구이를 안주 삼아 소주 두 병을 두 시간 동안 마셨더니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13%까지 올라갔다. 연구원으로 이동해 오후 9시 40분부터 시뮬레이션 기기를 통해 음주 운전에 나섰다.

실험은 가상의 시내 도로에서 시행됐으며, 전체 길이가 2.5km, 교차로가 17개 있는 도심 도로였다. 연구원의 육성 지시에 따라 ‘직진’ ‘우회전’ ‘좌회전’을 반복했는데 8분가량의 실험 동안 신호 위반만 5회를 범했다. 한두 박자씩 반응 속도가 느려진 탓이었다.

속도도 문제였다. 이따금 속도계를 살펴보며 조심했지만 시속 80∼90km로 달리는 경우가 많았고 앞 차량이 없을 때는 최고 시속 110km로 시내를 질주했다. 이호상 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은 “음주하면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 신속하게 판단을 못 한다. 마음이 느긋한 것을 넘어 무모한 운전을 하기 쉽다”고 말했다.

○ 4시간 반 자고 일어나도 음주 단속 수치 넘어

1차 실험을 마치고 기자는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소주 한 병과 맥주 1000cc를 더 마셨다. 오전 2시 반 잠자리에 들기 전 측정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37%였다. 4시간 반 동안 잠을 잔 뒤 오전 7시에 일어났다. 얼마나 술이 깼을까.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54%였다.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단속 기준인 0.05%를 웃돌고 있는 것이다.

숙취 상태로 오전 8시부터 실험을 이어 갔다. 이때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52%. 전날 밤처럼 대형 사고를 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할 때는 중앙선을 넘었고, 시속 80∼90km로 달렸다. 특히 끼어드는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급정거를 두 번이나 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11월 22일∼12월 1일 열흘 동안 음주 운전 특별단속에 적발된 건수는 6963건이었고 이 가운데 오전 4∼8시 적발 건수가 626건으로 9%에 달했다. 아침에 술이 덜 깬 채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술을 마시면 상황 판단이 느릴 뿐만 아니라 반응 속도로 떨어진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시속 80km로 주행을 할 때 술을 안 마신 운전자의 급제동 제동거리는 47.5m인 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05% 때는 53.3m, 0.1% 때는 55.5m로 제동거리가 늘어난다. 그만큼 사고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술을 입에 대면 아예 운전대를 잡지 않는 교통문화를 만들기 위해 단속 기준을 소주 1잔만 마셔도 걸릴 수 있는 수준인 혈중 알코올 농도 0.03%로 낮추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소주 1병 마시면 8시간 지나야 단속 안걸려 ▼
음주운전 궁금증 Q&A

술 약속이 잦아져 음주 운전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연말연시가 돌아왔다. 음주 운전과 관련된 여러 궁금증을 경찰청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풀어봤다.

―술을 얼마나 마시면 단속 기준인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넘나요.

“체중 65kg의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보통 소주 2잔이나 맥주 2잔(용량 200cc 기준)을 마시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를 넘습니다. 체중이 가벼우면 혈액량도 적어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술 마시면 바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올라가나요.

“술 마신 뒤 보통 30∼50분이 지났을 때 혈중 알코올 농도가 최대치를 기록하고 이후 점점 낮아집니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 아침에 운전을 해도 되나요.

“체중 65kg의 성인 남성이 소주 한 병을 마시면 보통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86%까지 올라갑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의 소거 수치가 시간당 약 0.017%인 것을 감안하면 8시간이 경과해야 단속 수치 이하인 0.047%로 떨어집니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면 아침에 운전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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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청심환, 구강청정제가 혈중 알코올 수치를 낮춰 준다는 얘기가 있는데 맞나요.

“초콜릿과 청심환이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를 낮춘다는 것은 근거 없는 속설에 불과합니다. 구강청정제는 성분에 포함된 알코올 때문에 되레 알코올 농도를 높일 수도 있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반칙운전#음주운전#알코올 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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