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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신뢰와 끊임없는 혁신으로 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미래를 완성합니다. 이게 GS건설의 새로운 비전입니다.” 허윤홍 GS건설 대표가 12일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GS건설이 새 비전을 내놓은 건 2012년 이후 12년 만이다.12일 GS건설에 따르면 허 대표는 이날 사내 게시판에 올린 4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새 비전을 임직원들에게 공개했다. 새 비전은 신뢰와 혁신을 바탕으로, 단순 시공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허 대표는 그 의미에 대해서 “단순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정량화된 경영 목표를 제시하기보다는 GS건설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규정하고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담았다”고 강조했다. 또 새 비전을 만든 배경에 대해 “지난해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도 불확실한 경영환경은 지속될 것”이라며 “임직원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GS건설은 임직원이 추구해야 할 6대 핵심 가치도 발표했다. 핵심 가치는 고객지향, 신뢰, 자율과 책임, 정도경영, 미래지향, 전문성 등이다. 허 대표는 “항상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대내외적 신뢰를 구축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며 “책임의식을 갖고 윤리적으로 일하는 게 중요하며, 각자 전문성을 갖춰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도 했다. GS건설은 모든 직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안하고 일할 수 있도록 호칭 단일화를 추진한다. 현재 임원 이하 직원들은 ‘전임’과 ‘책임’으로 구분해 부른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업무 인프라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창의성과 협업을 촉진하고 조직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허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우리 모두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저와 함께 회사를 이끌어나가달라”고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했다. 이어 “저도 앞으로 임직원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이를 위한 소통 창구를 만들겠다”며 “임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경쟁력 강화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요즘 토요일이면 집 보려는 예약이 매물 하나당 대여섯 팀씩 됩니다.” 11일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는 “매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9510채 규모 매머드급 단지인 이곳에서 이달 4일 전용면적 84m²가 22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2021년 10월 거래된 역대 최고가(23억8000만 원) 턱밑까지 가격이 오른 것. 공인중개사는 “지난달 1일에는 하루에 6채가 계약됐다. 대부분 서울 다른 지역의 집을 팔고 ‘갈아타기’를 하려는 30, 40대”라고 귀띔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5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이 1년 넘게 오르고 있는 데다 신축 공급이 더디자 주택 구입을 미루던 수요가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거나 내 집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3기 신도시 조성이나 1기 신도시 재건축 등도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 지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매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1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동향에 따르면 7월 둘째 주(11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값은 전주(0.20%)보다 0.2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16주 연속 상승으로, 주간 단위 상승 폭으로는 2018년 9월 셋째 주(0.26%) 이후 최대다. 특히 주거 선호도가 높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과 ‘강남 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오름폭이 컸다. 성동구 아파트 값의 전주 대비 상승률은 서울 25개구 중 가장 높은 0.52%였다. 이어 △송파구(0.41%) △서초구(0.4%) △용산구(0.36%) △서대문구(0.35%) △마포구(0.35%) 순이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재작년과 작년 금리 인상기에 주택 구입을 미뤘던 수요가 앞으로도 공급이 부족할 것이란 우려에 주택 구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셋값과 분양가 상승도 집값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0.20%)보다 0.20% 오르며 60주 연속 올랐다.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분양가가 크게 오르고, 사업 지연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전세에 눌러앉았던 이들이 분양가와 공급 시기가 불확실한 청약 대신 기존 아파트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3월 착공한 인천 계양을 포함해 3기 신도시 5개 지구 1만 채를 연내 착공할 계획이다. 2026년 입주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시장 상황에 대해 “추세적 상승으로 전환하는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과거처럼 몇 년간 오르는 상황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조만간 만만치 않은 물량이 좋은 지역에 공급될 예정”이라며 수도권 공급 물량이 충분하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이미 사전 청약을 받은 단지마저도 본청약이 취소되는 등 주택 공급 차질은 계속되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장은 “공사비 상승 등으로 착공하지 못하는 현장이 많아 3기 신도시 공급이 늦어지면 집값 상승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며 “정부가 더 공격적으로 공급 시그널을 주고 대출도 단단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요즘 토요일이면 집 보려는 예약이 매물 하나당 대여섯 팀씩 됩니다.” 11일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는 “매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9510채 규모 매머드급 단지인 이곳에서 이달 4일 전용면적 84㎡가 22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2021년 10월 거래된 역대 최고가(23억8000만 원) 턱밑까지 가격이 오른 것. 공인중개사는 “지난달 1일에는 하루에 6채가 계약됐다. 대부분 서울 다른 지역의 집을 팔고 ‘갈아타기’를 하려는 30, 40대”라고 귀띔했다.서울 아파트 가격이 5년 10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이 1년 넘게 오르고 있는데다 신축 공급이 더디자 주택 구입을 미루던 수요가 ‘똘똘한 한채’로 갈아타거나 내 집 마련에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3기 신도시 조성이나 1기 신도시 재건축 등도 공사비 급등에 따른 사업 지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매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11일 한국부동산원 주간동향에 따르면 7월 둘째 주(11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0.20%)보다 0.2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16주 연속 상승으로, 주간 단위 상승 폭으로는 2018년 9월 셋째 주(0.26%) 이후 최대다.특히 주거 선호도가 높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과 ‘강남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오름폭이 컸다. 성동구 아파트값의 전주 대비 상승률은 서울 25개구 중 가장 높은 0.52%였다. 이어 △송파구(0.41%) △서초구(0.4%) △용산구(0.36%) △서대문구(0.35%) △마포구(0.35%) 순이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재작년과 작년 금리 인상기에 주택 구입을 미뤘던 수요가 앞으로도 공급이 부족할 것이란 우려에 주택 구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셋값과 분양가 상승도 집값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0.20%)보다 0.20% 오르며 60주 연속 올랐다.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분양가가 크게 오르고, 사업 지연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전세에 눌러앉았던 이들이 분양가와 공급 시기가 불확실한 청약 대신 기존 아파트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3월 착공한 인천 계양을 포함해 3기 신도시 5개 지구 1만 채를 연내 착공할 계획이다. 2026년 입주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시장 상황에 대해 “추세적 상승으로 전환하는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과거처럼 몇 년간 오르는 상황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조만간 만만치 않은 물량이 좋은 지역에 공급될 예정”이라며 수도권 공급 물량이 충분하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이미 사전청약을 받은 단지마저도 본청약이 취소되는 등 주택 공급이 차질은 계속되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장은 “공사비 상승 등으로 착공하지 못하는 현장이 많아 3기 신도시 공급이 늦어지면 상승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며 “정부가 더 공격적으로 공급 시그널을 주고 대출도 단단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2021년 1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이 1년 넘게 오르고 있는 데다 앞으로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할 거라는 예상에 주택 매수세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비 급등 등으로 서울의 주택 공급은 당초 정부 계획의 5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수급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5188건(9일 기준)으로, 전월(4990건)보다 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집값이 급등했던 2021년 1월(5952건)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은 거래 건수다. 지난해 말에 1841건이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1월 2612건, 3월 4253건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6월 거래량은 신고 기간이 약 20일 남았는데도 5월 거래량을 넘어선 것.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를 제외한 한강변에서 특히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강동구 아파트 거래 건수는 올해 5월 308건에서 지난달 438건으로 1.4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동구는 291건에서 376건으로 1.3배로 늘었다. 동작, 마포, 영등포구도 6월 거래량이 5월 수준을 앞섰다. 거래량 증가는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59주 연속 오르면서 내 집 마련이나 ‘갈아타기’에 나서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3%대로 내린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거래량이 늘면서 아파트 가격도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1일 기준 서울아파트 가격은 15주 연속 상승세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서울에서는 전셋값 상승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갭투자 움직임까지 일어나는 등 거래량이 늘고 있다”며 “올해 말 기준금리 인하 전까지 공급 확대 기조를 명확히 해 매수 심리를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공급 불안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정부의 공급 대책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공급한 주택은 인허가 기준 전국 51만3000채로 집계됐다. 2년 전 ‘ 8·16 공급 대책’에서 올해 말까지 100만 채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서울의 공급 실적은 3만5000채로 목표치(19만 채)의 18.4%에 그쳤다. 애초에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목표치를 높게 설정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공사비 인상 여파로 사업 지연까지 겹치며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공사비 급등 이슈가 워낙 커 정부가 추진한 도심 정비사업 요건 완화, 소형주택 촉진책 등 공급대책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삼성물산이 자사 홈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 ‘홈닉’에서 다양한 브랜드의 스마트홈 기기를 제어하는 서비스를 도입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이날 사물인터넷(IoT) 전문기업 아카라라이프와 스마트홈 국제 표준인 매터 기반의 스마트홈 기기 연동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9일 밝혔다. 이전에도 IoT 기술을 활용해 전등이나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다른 브랜드 제품과는 호환되지 않아 불편함이 있었다. 매터 인증을 얻은 기기와 플랫폼을 도입하면 이를 해소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이번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가정 내 가전 제품과 사물인터넷 기기를 브랜드와 상관없이 홈닉 앱에서 직접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삼성물산 측은 “신축 단지는 물론이고 기존 단지 입주민들도 홈닉을 통해 통합 제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2021년 1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이 1년 넘게 오르고 있는데다 앞으로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할 거라는 예상에 주택 매수세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비 급등 등으로 서울의 주택 공급은 당초 정부 계획의 5분의 1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수급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5188건으로, 전월(4990건)보다 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집값이 급등했던 2021년 1월(5952건)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은 거래 건수다. 지난해 연말에 1841건이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1월(2612건), 3월(4253건)을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6월 거래량은 신고 기간이 약 20일 남았는데도 5월 거래량을 넘어선 것.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를 제외한 한강변에서 특히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강동구 아파트 거래 건수는 올해 5월 308건에서 지난달 438건으로 1.4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동구는 291건에서 376건으로 1.3배로 늘었다. 동작, 마포, 영등포구도 6월 거래량이 5월 수준을 앞섰다.거래량 증가는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59주 연속 오르면서 내집 마련이나 ‘갈아타기’에 나서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3%대로 내린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거래량이 늘면서 아파트 가격도 오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1일 기준 서울아파트 가격은 15주 연속 상승세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서울에서는 전셋값 상승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갭투자 움직임까지 일어나는 등 거래량이 늘고 있다”며 “올해 말 기준금리 인하 전까지 공급 확대 기조를 명확히 해 매수 심리를 잠재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하지만 공급 불안 우려를 잠재울 수 있는 정부의 공급 대책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문직선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공급한 주택은 인허가 기준 전국 51만3000채로 집계됐다. 2년 전 ‘ 8·16 공급 대책’에서 올해 연말까지 100만 채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서울의 공급 실적은 3만5000채로 목표치(19만 채)의 18.4%에 그쳤다. 애초에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목표치를 높게 설정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공사비 인상 여파로 사업 지연까지 겹치며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공사비 급등 이슈가 워낙 커 정부가 추진한 도심 정비사업 요건 완화, 소형주택 촉진책 등 공급대책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올해 5월 경기 아파트 거래량이 2021년 8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은 계속 오르는데 공사비 인상 여파로 공급이 충분하지 않자 ‘내 집 마련’과 ‘갈아타기’ 매수세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월 시행된 신생아 특례대출의 지원 기준이 9억 원 이하 주택인데, 해당 매물이 경기에 많다는 사실이 거래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7일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올해 5월 경기 아파트 매매 건수는 1만200건으로, 전월(9851건)보다 3.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집값 급등기였던 2021년 8월(1만4379건)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은 거래 건수다. 서울과 인접한 지역 위주로 거래량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과천 아파트 거래 건수는 올해 1월 32건에서 5월 95건으로 3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성남시 거래 건수는 303건에서 641건으로 2배 이상으로 뛰었다. 안양시, 하남시 거래 건수도 4개월 전보다 각각 1.8배, 1.6배로 늘었다. 거래량 증가세는 6월에도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기준 6월 거래량은 9448건이다. 계약 체결 후 신고 기간이 최대 한 달인 점을 고려하면 6월 거래량은 5월 수준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 수원 성남 용인 하남 등은 이미 6월 거래량이 5월 거래량을 넘어섰다. 거래량 증가는 내 집 마련에 나선 무주택자들이 주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법원 등기광장의 ‘생애 첫 부동산 구입’ 현황에 따르면 1월 아파트와 빌라, 오피스텔 등 집합건물 매수인은 7915명에 그쳤다. 5월에는 1만3754명으로 74% 늘었다. 이 가운데 30대가 6372명에 달해 신혼부부나 젊은 무주택자들이 주택 구매에 적극 나선 것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수도권의 분양 아파트 물량 공급 속도가 더디고 분양가 수준도 매우 높다 보니 신축이나 역세권 등 입지가 좋은 단지 위주로 내 집 마련이나 갈아타기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생아 특례대출 영향도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주택 구입 목적의 신생아 특례대출 신청액은 총 4조4050억 원이었다. 경기 소재 주택을 구입한 것이 1조6171억으로 전체의 36.7%였다.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서울과 인천은 각각 10.0%, 8.6%였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2년 이내 출산한 가구에 주택 구입 자금이나 전세자금을 최저 연 1%대로 빌려주는 제도다. 단, 대상 주택이 9억 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로 제한돼 있다. 함 랩장은 “젊은 세대 비중이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9억 원 이하 아파트가 많은 경기에서는 신생아 특례대출이 거래량 증가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도심에 있는 노후 공공청사와 폐교 부지를 공공임대주택으로 복합 개발해 2035년까지 최대 5만 채를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2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민간 임대주택도 도입된다. 정부가 3일 발표한 ‘역동경제 로드맵’ 중 주택부문에는 이 같은 내용들이 담겼다. 우선 공공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청사 외 남은 공간은 공공임대주택, 공익시설 등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국·공유지, 공공기관 사옥, 폐교 등 30년 이상 지난 공공 건축물이 대상으로 청년이 선호하는 도심 위주로 공급한다. 공공청사를 공공임대로 복합개발하면 최대 용적률을 적용하고, 주택도시기금 출자를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올해 9월 세부안을 마련해 공공청사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에 시범사업지 10곳을 선정할 계획이다. 또 ‘신(新)유형 장기임대’를 도입해 2035년까지 10만 채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임대사업자가 100채 이상 주택을 20년 이상 의무 임대하면 규제 완화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현재 민간 임대사업자는 임차인은 바뀌어도 임대료 인상은 5% 이내로 제한되는 등 여러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 때문에 수익을 내기 어려워 의무 임대기간인 10년이 지나면 임대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양질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려면 미국과 일본처럼 기업형 민간 임대사업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규제를 풀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신유형 장기임대 사업자에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등 세제 혜택을 주고, 보험과 같은 장기투자성 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제도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중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1∼6월) 중 시범사업에 나선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올해 2월부터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하면서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 여럿을 만났다.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스물셋 여성이었다. 작고 마른 체구에 서투른 화장법까지 더해져 외모는 고등학생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2년간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강 실장’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 경찰이 추산한 강 실장 조직의 불법대출 규모는 1000억 원대. ‘천 부장’으로 불린 그는 자금 관리를 맡았다. 재판 내내 고개를 들지 않던 그는 판사가 직업을 묻자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회사원과 대학생까지 사채 조직원이었다 취재 초기엔 서민의 고혈을 빨아내는 불법사채 배후에 당연히 폭력조직이나 검은돈을 대는 전주(錢主)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취재팀이 마주한 불법사채 조직의 ‘민낯’은 천 부장처럼 평범해 보이는 20, 30대들이었다. 이삿짐센터 직원, 식당 종업원, 화장품 도매업자, 휴대전화 판매업자, 회사원, 대학생까지. 판결문으로 확인한 대다수 조직원들은 흔히 떠올리는 범죄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처음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 불법사채에 발을 들인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전현직 조직원을 하나둘 인터뷰하고 나니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불법사채로 돈을 벌기가 너무 쉽다”고 설명했다. 먼저 목돈이 없어도 된다고 했다. 30만 원을 빌려주면 일주일 뒤 50만 원을 갚는 게 불법사채의 ‘공식’으로 통한다. 이자도 말이 안 되지만 상환 시간이 1분만 지나도 연체료가 붙는 게 더 큰 문제다. 연체료는 사실 ‘부르는 게 값’이라서다. “300만 원만 있어도 할 수 있다”는 전직 조직원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가입 절차가 까다로워져 요즘 보이스피싱 조직들도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불법사채 조직은 채무자들에게 빚을 깎아주는 조건으로 휴대전화와 통장을 넘겨받으면 그만이었다. 빚 탕감을 미끼로 조직원을 불리는 사례도 흔했다. 불법사채의 세계에서는 채무자에게 돈을 뜯어내면서 범행 도구와 인력까지 조달하는 완벽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셈이다. 과거처럼 거리에서 명함이나 전단을 돌릴 필요도 없다. 대부업 등록증을 구해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광고를 올리면 돈이 급한 사람들이 먼저 연락해 오기 때문이다. 등록증은 ‘통장 잔액 1000만 원’을 인증하고, 18시간짜리 강의를 들은 뒤 서류상 사무실만 갖추면 발급받을 수 있었다. 바지사장 명의의 등록증도 허다했다. 정식 대부업체인 척하며 피해자를 속여 불법사채로 끌어들이는 ‘플랫폼 사채’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결국 불법사채를 하는 데 두둑한 밑천이나 기술, 인맥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2년간 불법사채 업계에 몸담았던 한 남성은 “1, 2개월만 배우면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 검거된 20대 불법사채 업자는 직원 없이 홀로 3년간 40억 원을 굴렸다고 한다.“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부터 뿌리 뽑아야 총책인 강 실장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대출 계약을 맺는 상담팀과 추심을 담당하는 수금팀 간 접촉을 엄격하게 금지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돈을 빌려주고 뜯어내는 두 가지 노하우만 익히면 누구라도 독립해 다른 조직을 차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다.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그리고 여당은 지난달 30일 플랫폼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나 등록증을 만들지 못하도록 자본금 요건과 같은 ‘진입 장벽’을 높이는 데는 신중한 분위기다. 한 불법사채 조직원은 “방법만 알면 진짜 별거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사채를 뿌리 뽑으려면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호경 8기 히어로콘텐츠 팀장 kimhk@donga.com}
서울 양재역과 청량리역 일대를 층수나 용적률 제한 없이 자유롭게 개발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토교통부는 1일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 후보지 16곳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2월 개정된 국토계획법에 따라 도입되는 공간혁신구역은 복합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토지 용도와 용적률, 건폐율 등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공간혁신구역은 △도시혁신 △복합용도 △입체복합 등 3가지로 나뉜다. 도시혁신구역은 한국판 ‘화이트존’을 표방하며 용도 제한을 없애고 용적률, 건폐율을 지방자치단체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가 화이트존을 통해 개발됐다. 인구 밀집 및 산업·경제활동 중심지로 성장이 예상되는 교통 거점이 대상이다. 도시혁신구역 후보지로는 서울에서 양재역, 청량리역, 김포공항역 등 3곳이, 경기에서도 양주시 덕정역, KTX 광명역, 의정부시 역전근린공원 등 3곳이 선정됐다. 양재역 일대에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C 정거장과 서초구청, 쇼핑몰 등이 들어서는 복합환승센터를 짓는 방안을 추진한다. 청량리역 일대는 고밀도로 개발해 광역환승센터와 사무실, 청년 주거 시설이 어우러진 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다. 복합용도구역은 용도 제한 없이 다양한 시설을 허용하는 구역을 말한다. 후보지로 서울 독산공군부대, 부산 영도구 청학동 일대, 인천 인천역 등 6곳이 선정됐다. 예를 들어 독산공군부대는 기존 군부대를 압축해 재배치하고 군부대만 허용됐던 나머지 땅에 첨단 산업·주거·복합업무시설을 조성하는 식이다. 입체복합구역 후보지로는 대전 반석역 환승주차장, 울산 언양 임시버스터미널 등 4곳이 정해졌다. 반석역 주차장에 청년 임대주택과 주민 편의시설을 복합 개발하는 등 기존 기반시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선정된 지역은 관할 지자체가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담은 공간 재구조화 계획을 수립하고,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1∼6월) 공간혁신구역으로 지정하게 된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당정이 불법사채 조직들의 ‘주요 무대’로 전락한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와 협력해 불법사채 광고를 미리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대통령실과 정부, 국민의힘은 30일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불법사채 근절 방안을 논의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고위당정협의회 종료 후 언론 브리핑에서 “불법사금융(사채) 범죄는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심각한 폐해를 유발하고 있지만 처벌이 미온적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플랫폼은 정식 대부업체의 광고를 보여주는 사이트로, 정식 업체에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하지만 플랫폼에 광고하는 업체 가운데 정식 업체로 위장한 불법사채 조직들이 많아 불법사채로 연결되는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플랫폼을 감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와 금융 당국, 경찰 등이 나서 플랫폼 합동점검을 벌였지만 여전히 불법사채로 연결될 위험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안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까지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불법추심 피해자들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지원하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의 지원 대상을 피해자 가족과 지인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가 무료로 불법사채 피해자의 대리인으로 선임돼 추심에 대응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대신해 주는 제도다. 지금은 피해자 본인만 지원하고 있다. 불법사채 조직이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지인까지 추심하는 수법을 쓰고 있어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는 설명이다. 당정 “포털 불법사채 광고 차단… 2차례 후속대책 내놓을 것”‘불법사채 근절’ 고위당정협의회“피해자 80% 대부 플랫폼서 접해”상습범 구속수사, 법정 최고형 구형가족-지인까지 법률지원 확대정부와 여당이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불법사채 근절 방안을 내놓은 건 피해가 커지기 전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부에서 확산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불법 사금융(사채)과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는 서민은 물론이고 중산층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는 만큼 회의에서 엄정하게 대처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건수는 1만2884건이다. 2년 전 9238건보다 39.4% 늘었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지속되고 경기가 악화하면서 불법사채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 불법사채 ‘통로’ 차단 대통령실과 정부, 국민의힘이 이날 개최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대출과 추심 등 전 과정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요즘 불법사채는 플랫폼을 통해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2022년 금융감독원의 설문 결과 불법사채 피해자 약 80%가 플랫폼을 통해 불법사채를 처음 접했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불법 사금융 범죄가 비대면 방식 등을 통해 계속 확산되는 상황인 만큼 대부중개 사이트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정은 플랫폼 바깥에서 피해자를 노리는 불법사채 광고도 차단하기로 했다. 불법사채 조직들은 플랫폼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카페에 게시물을 올려 광고하고 있다. 자체 사이트를 만들기도 한다. 일부 포털에서 ‘급전대출’로 검색하면 불법사채 업자의 사이트가 가장 상단에 노출되고 있다. 정부는 불법사채 광고를 차단하기 위해 포털에 불법적인 게시물에 대한 관리와 삭제 의무를 법에 명시하고 위반 시 벌금까지 부과하도록 한 영국 사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사채 총책, 조폭처럼 처벌한다 당정은 예방책뿐만 아니라 사후 처벌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2022년 8월 ‘불법 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한 직후 줄곧 엄벌 기조를 강조해왔다. 지난해 11월 악질적인 불법추심 행위자에 대한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상습범’에 대해서도 구속 수사하는 동시에 불법사채 조직에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했다. 대부업법 위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인데, 범죄단체 조직죄로도 의율해 더 센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불법사채 피해자에 대한 법률 지원을 가족과 지인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통해 무료로 피해자의 추심 대응을 대신해 주고 있다. 지난해 신청자보다 예산이 부족해 대기하는 사례가 생기자, 지난해 8억8600만 원이던 사업 예산을 올해는 12억5500만 원으로 늘렸다. 공단은 올해 초부터 불법사채 피해자 4명이 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 무효화 소송도 지원하고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지난달 24∼28일 플랫폼 사채의 실상을 고발한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시리즈를 연재했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서민, 특히 약자를 괴롭히는 악랄한 모습이 집중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단속이나 법·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됐다”며 “1, 2차에 걸쳐 관련 정부 대책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관련 부처를 모아 통합대응국을 구성해 대응할 계획이다. 국조실 관계자는 “이르면 7월 초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정부와 여당이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불법사채 근절 방안을 내놓은 건 피해가 커지기 전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부에서 확산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불법 사금융(사채)과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는 서민은 물론이고 중산층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는 만큼 회의에서 엄정 대처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건수는 1만2884건이다. 2년 전 9238건보다 39.4% 늘었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지속되고 경기가 악화하면서 불법사채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 불법사채 ‘통로’ 차단 대통령실과 정부, 국민의힘이 이날 개최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대출과 추심 등 전 과정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요즘 불법사채는 플랫폼을 통해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2022년 금융감독원의 설문 결과 불법사채 피해자 약 80%가 플랫폼을 통해 불법사채를 처음 접했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불법 사금융 범죄가 비대면 방식 등을 통해 계속 확산되는 상황인 만큼 대부중개사이트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정은 플랫폼 바깥에서 피해자를 노리는 불법사채 광고도 차단하기로 했다. 불법사채 조직들은 플랫폼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카페에 게시물을 올려 광고하고 있다. 자체 사이트를 만들기도 한다. 일부 포털에서 ‘급전대출’로 검색하면 불법사채 업자의 사이트가 가장 상단에 노출되고 있다. 정부는 불법사채 광고를 차단하기 위해 포털에 불법적인 게시물에 대한 관리와 삭제 의무를 법에 명시하고 위반 시 벌금까지 부과하도록 한 영국 사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불법사채 총책, 조폭처럼 처벌한다당정은 예방책뿐만 아니라 사후 처벌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2022년 8월 ‘불법 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한 직후 줄곧 엄벌 기조를 강조해왔다. 지난해 11월 악질적인 불법추심 행위자에 대한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상습범’에 대해서도 구속수사하는 동시에 불법사채 조직에게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했다. 대부업법 위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인데, 범죄단체 조직죄로도 의율해 더 센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불법사채 피해자에 대한 법률 지원을 가족과 지인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통해 무료로 피해자의 추심 대응을 대신해 주고 있다. 지난해 신청자보다 예산이 부족해 대기하는 사례가 생기자, 지난해 8억8600만 원이던 사업 예산을 올해는 12억5500만 원으로 늘렸다. 공단은 올해 초부터 불법사채 피해자 4명이 업자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 무효화 소송도 지원하고 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지난달 24~28일 플랫폼 사채의 실상을 고발한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시리즈를 연재했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서민, 특히 약자를 괴롭히는 악랄한 모습이 집중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단속이나 법·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됐다”며 “1, 2차에 걸쳐 관련 정부 대책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관련 부처를 모아 통합대응국을 구성해 대응할 계획이다. 국조실 관계자는 “이르면 7월 초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불법사채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앞으로 금융감독원이 직접 감독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과 정부는 법을 개정해 불법사채를 하다 걸리면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까지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아무나 대부업체를 차리지 못하게 등록 문턱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27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중개 플랫폼의 감독 주체를 현행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금감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대부업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한국대부금융협회, 대부업 전문가와 함께 불법사채 근절 대책을 논의해 왔는데, 그중 플랫폼 감독 강화를 서두르기로 한 것이다. 플랫폼은 정식으로 등록된 대부업체의 광고를 보여주는 사이트로, 약 30개가 운영 중이다. 모두 지자체에 ‘대부중개업자’로 등록돼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금감원은 인력을 비정기적으로 파견해 감독을 간접 지원해 왔다. 하지만 지자체엔 대부업 감독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적어서 사실상 촘촘한 감시가 이뤄지지 못했고, 플랫폼을 통해 불법사채로 연결되는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이 직접 감독하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금감원은 이와 별도로 올해 하반기(7∼12월)에 대형 플랫폼 업체가 몰려 있는 경기도부터 합동 점검을 하기로 했다. 국회에선 불법사채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하는 개정법도 이르면 다음 주 발의된다. 현재는 불법사채로 처벌돼도 원금과 법정 이자(연 20%)는 보장해 준다. 이를 바로잡는 법안에 다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이고, 국민의힘도 취지에 공감하고 있어 22대 국회에서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관련 법안이 발의되면 정부도 이를 지원할 방침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달 24∼28일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시리즈를 통해 플랫폼에 숨어 있는 불법사채 조직의 실태를 고발했다. ‘불법사채 계약 무효화’ 법개정 탄력… 민주당, 이르면 내주 발의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법 개정 땐 원금-이자 다 돌려받아… 피해복구-불법사채 처벌 동시효과금융당국 “국회 움직임 맞춰 개정… 대부업 등록 요건 개선에도 공감”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불법사채 근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불법사채 계약 무효화’다. 대부업법을 개정해 불법사채 계약을 무효로 하는 근거 조항을 추가하면,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돌려받게 된다. 피해 복구와 불법사채 조직의 일벌백계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불법사채 계약 무효화’ 법 개정 탄력 지금은 불법사채를 하다 걸려도 원금과 법정 상한(연 20%)의 이자를 보장받는다. 현행법상 20%를 초과한 이자만 범죄수익으로 보고 추징을 통해 국고로 환수할 수 있다. 또 피해자가 업자를 상대로 ‘부당이득을 돌려 달라’고 소송해서 이겨도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만 돌려받을 수 있다. 게다가 미등록 영업의 법정 형량도 5년 이하 징역과 5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금전적인 불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이 불법사채를 뿌리 뽑지 못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부와 국회는 2010년대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업법 개정을 시도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불법사채 계약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무효화하는 법안(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 발의), 연 40%를 초과한 고금리 계약의 경우 원금과 이자를 무효로 하는 법안(민주당 이재명 의원) 등 다양한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전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불법사채 계약과 정상적인 개인 간 거래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부는 차선책으로 불법사채 피해자가 조직을 상대로 낸 계약 무효 소송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피해 복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해당 소송을 대리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반사회적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민법 103조를 근거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조항으로 계약 무효가 인정된 사례가 없다. 공단 관계자 역시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는 다를 거란 기대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이르면 다음 주 불법 고금리나 미등록 영업을 하다 걸리면 모든 이자 계약을 무효화하는 취지의 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국민의힘도 올해 4월 총선 공약으로 불법사채 무효화를 내거는 등 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야 모두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정부도 국회 움직임에 맞춰 개정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법안을 어떻게 정교하게 만들지가 남은 숙제”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금전 거래였는데도 불법사채로 몰아가며 돈을 갚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계약 무효 범위와 대상을 세심하게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 “등록 요건 개선 필요성 공감” 금융당국은 대부업 등록 요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지금은 통장 잔액 1000만 원과 한국대부금융협회 18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정식 대부업체로 등록할 수 있다. 등록에 필요한 비용은 교육비와 수수료 등을 합쳐도 46만 원 수준이다. 불법사채 조직으로선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쓰고 영업하기에 더없이 손쉬운 조건인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등록 요건이 낮아 자격 미달 업체들이 쉽게 진입하는 문제가 있다”면서도 “등록 요건을 너무 높이면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영세 업체들이 음지로 숨어들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법 개정에는 다소 시일이 걸리는 만큼 정부는 채무자 대리인 지원제도를 적극 알릴 계획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가 무료로 불법사채 피해자 대리인으로 선임돼 추심에 대응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대신해 주고 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습니다.”2021년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했던 직장인 이철민(가명·33) 씨는 올 2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직에서 나온 뒤 지인과 함께 직접 조직을 차렸다가 2022년 10월 그만뒀다.이 씨는 한국에서 불법사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대변한다. 한국에선 대부업 등록이 식당을 차리는 것보다 쉽다. 자본 요건인 ‘통장 잔액 1000만 원’은 등록할 때 한 번만 증명하면 된다. 이후 출금해도 등록이 취소되지 않는다. 이론상 같은 돈을 입출금하며 대부업체를 무한정 만들 수 있다.‘고정 사업장’을 갖춰야 하지만 주택이나 숙박시설만 아니면 된다. 직원이 상주하지 않고 공유오피스 등에 주소만 올려두면 월세는 1만 원대로 낮출 수 있다. 이런 ‘페이퍼 대부업체’ 운영은 고정 사업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불법이지만 등록 시 현장실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적발될 가능성은 작다. 한국대부금융협회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교육비는 23만 원이고 총 18시간 중 11시간은 온라인 동영상 강의만 들으면 이수증이 나온다.여기에 손해배상 공제료, 등록 수수료, 면허세 등 약 33만 원을 더 쓰면 등록증을 구할 수 있다. 불법사채 조직은 이런 등록증을 약 200만 원에 사들여 여러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렸다. 이게 수많은 피해자를 속인 ‘정식 대부업체’라는 이름의 실체다.● 9년 전 잘못 끼운 첫 단추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현행 대부업 등록제는 2002년 도입됐다. 당시 등록 요건 자체가 없다가 2009년에야 교육 이수 의무가 부과됐다. 이후 소재가 불분명한 대부업체가 난립하면서 2010년 사무실 요건이 생겼다. 자본 요건은 2015년 추가됐다.원래 정부는 최소 자본 기준을 5000만 원으로 정할 방침이었다. 국회에는 이를 3억 원으로 정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허들이 높으면 영세 대부업체가 폐업하고 음지로 숨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렸다. 결국 2015년 개정된 법에는 최소 자본 기준이 1000만 원으로 정해졌다.자본금을 여러 업체를 설립하는 데 ‘돌려쓰기’ 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때도 나왔다. “등록 이후 자본금 유지 의무를 추가하자”는 국회 보고서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태생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자본 요건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불법사채 피해자를 돕고 있는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믿을 수 없는 대부업체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일본처럼 부채를 뺀 ‘순자산액’만 자본금으로 인정하고, 설립 기준액도 최소 3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채 10명 중 1명만 징역아무나 불법 업체를 차릴 수 있고, 검거마저 어렵다면 일벌백계로 범행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미등록 대부업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21년 전 법이 제정됐을 때 그대로다. 그나마 대다수는 실형을 받지 않는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9.1%만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39.2%, 벌금형이 39%로 훨씬 많았다.불법사채로 벌어들인 수익을 환수하는 건 더 어렵다. 현행법으론 법정 상한(연 20%)을 초과한 이자만 범죄수익으로 추징할 수 있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려도 빌려준 돈뿐 아니라 이자도 20%까지는 보장받는 셈이다.법정 형량을 높이는 게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다만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은 “불법사채 조직엔 전과자가 많아 감옥에 가는 걸 그리 무섭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2년 불법사채로 기소된 피고인의 51%가 전과자였다. 이는 마약 사건 피고인 중 전과자의 비율(47%)보다 높은 수준이다.따라서 불법사채를 뿌리 뽑는 데엔 금전적 불이익이 더 효과적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벌금을 올리고, 불법사채 계약 자체를 무효화해 업자에게 원금도 돌려주지 말자는 것이다.정부는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법 개정엔 신중한 태도다. 그 대신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불법사채 피해자 4명이 업자를 상대로 낸 계약 무효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공단은 ‘반사회적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명시한 민법 103조를 근거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방침이다. 단, 지금껏 이 조항으로 계약 무효가 인정된 사례는 없다. 박 회장은 “일본이나 독일처럼 불법사채 계약을 무효로 해서 원금까지 뱉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불법사채 연결창구 된 대부중개 플랫폼 “대부중개 플랫폼은 불법사채 조직의 무대입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수사 경찰과 전문가들은 채무자들이 불법사채를 접하는 주된 창구로 대부중개 플랫폼을 지목했다. 피해자들의 증언도 일치했다.대부중개 플랫폼은 대부업체 광고를 모아 보여주는 사이트다. 약 30개가 영업 중인데, 모두 ‘정식 대부업체만 광고 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검증한 플랫폼 광고 업체 62곳 중 36곳이 불법사채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다.정부와 플랫폼 업계는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아무나 플랫폼에 광고를 올리지 못하도록 플랫폼 업체들은 2017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등록증 제출을 의무화했다. 대출 상담을 위해 플랫폼에 남긴 연락처를 업체들이 마음대로 열람하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2월부턴 연락처를 못 남기게 바꿨다.대형 플랫폼 5곳을 회원사로 둔 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협의회 소속 플랫폼들은 등록증 사본을 확인하고 본인인증을 거친 뒤에 광고를 내보낸다. 폐업한 업체 광고가 노출되는 것을 걸러내기 위해 매주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구멍’은 여전했다. 불법사채 조직이 바지사장 명의로 등록증을 받고 본인인증까지 시키면 광고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것. 플랫폼에서 채무자 연락처를 직접 볼 수 없더라도 채무자가 광고를 보고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플랫폼 광고를 보고 전화한 이용자가 불법사채 조직에 넘겨져도 플랫폼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플랫폼은 ‘대부중개업자’로 분류되는데, 지금처럼 광고만 올려주는 건 ‘불법 중개’ 행위로 처벌하기 어려워서다. 관리·감독도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부중개업자가 광고만 하는 건 해외엔 없는 영업 방식”이라며 “법에 명시된 ‘중개’ 행위를 폭넓게 해석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지자체가 아닌 금융당국이 직접 플랫폼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2000년대 초반 일본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야미킨’으로 불리는 불법사채를 굴리는 조직의 악랄한 추심에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피해자가 급증했다. 지금 일본에선 더 이상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이 불법사채 ‘지옥’에서 벗어난 비결은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下)에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하는 일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지난달 29일 도쿄에서 만난 우쓰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78) 변호사는 정식 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 조직이 판치는 한국의 현실과 관련해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50년 넘게 불법사채 피해자를 지원해 온 대표적인 활동가다. 일본의 사채 문제를 다룬 소설 ‘화차’(1992년) 속 변호사의 모델이기도 하다.특히 대부업체 설립 문턱이 낮고 처벌이 약한 탓에 업체 등록증이 200만~300만 원에 암거래되는 국내 현실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일본에선 대부업 등록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앞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국내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서 광고 중인 대부업체 62곳을 검증한 결과 합법적으로 영업한 업체는 3곳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한국에선 아무도 (불법사채를) 단속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그의 사무실 책상엔 약 20년 전 야미킨(闇金), 즉 불법사채 피해자를 상담한 자료와 함께 신문 기사 스크랩이 앉은키 높이로 여러 더미 쌓여있었다. ‘야쿠자가 차주(채무자) 납치’, ‘일가족 자살’, ‘채무자 자살 명소로 전락한 후지산’…. 오늘날 한국보다 심각했던 일본의 불법사채 문제를 보여주는 제목들이다.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이런 광경을 상상하기도 어려워졌다. 2006년 대금업법(한국의 대부업법)을 뜯어고치고 연달아 제도를 개선한 덕분이다. 기상천외한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도쿄에서 만난 현지 전문가들은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나 대부업을 못 하게 한다. 걸리면 엄하게 처벌한다. 그 결과 불법사채 조직은 발을 붙이기 힘들어졌다.한국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업 진입 단계부터 불량 업체를 걸러내고, 위법을 일벌백계하려는 시도는 다른 현안에 밀리거나 ‘시기상조’라는 우려 속에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가 불법사채를 근절하겠다며 2년 전 출범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합동 단속이나 예방법 홍보 등 핵심을 비껴간 대책만 내놓고 있다. 불법사채가 비대면 플랫폼을 장악하도록 방치해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한국과 이를 해결한 일본. 두 나라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자살과 납치 횡행했던 2000년대 일본‘밤마다 걸려 온 추심전화에 죽음을 결심.’2003년 6월 15일, 일본의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야미킨을 쓰고 조직의 협박을 받던 일가족 3명이 전날 오사카에서 철로에 누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빌린 금액은 3만 엔(약 26만 원).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이처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후지산 자락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생을 내려놓는 채무자가 늘자 피해자 지원 단체가 숲길 입구에 “빚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어요. 일단 저희랑 상의해요”라고 적힌 자살 방지 안내판을 설치했을 정도다.● 대부업체 설립비용, 한국의 45배당시 일본 불법사채 시장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자격 요건이 헐거워 영세 대부업체가 난립했다. 불법사채 조직도 활개 쳤다. 더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다.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였다.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참고한 건 한국이었다. 당시 한국은 불법사채 억제를 위해 대부업법을 제정한 지 4년째였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2005년 ‘한국금리조사단’를 꾸리고 한국에 머무르며 물렀다. 결론은 ‘좌고우면하다가 제대로 된 규제를 도입하지 못한 한국처럼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규제가 약한 한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했다.일본에선 ‘역시 강력한 규제가 필수다’라는 여론에 힘이 실리면서 국회와 정부가 대부업 관련 법 개정에 착수했다. 2006년 개정된 법에서는 대부업 등록 요건을 대폭 높였다. 대부업체를 차리려면 순자산이 5000만 엔(약 4억3500만 원) 이상이어야 했다. 18년 전부터 오늘날 한국 기준(1000만 원)의 45배에 달하는 문턱을 세운 것.업체를 차리려면 3년 이상 대출 업무 경력이 있어야 하고, 대부업 자격시험을 통과한 직원을 꼭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시험은 관련법과 재무, 회계 지식을 평가하는 국가 공인 필기시험이다. 올 3월 기준 누적 수강생 10만793명 중 2만8244명(28.0%)만 합격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도, 인력 상주 규정도 없다.물론 법 개정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정식 대부업체의 문턱을 높일수록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은 불법사채로 내몰릴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 정부와 국회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면 시행 전까지 4년이나 계도 기간을 두고 준비했다.● “걸리면 원금까지 환수”2006년부터 불법사채 처벌도 강화됐다. 법정 상한을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불법 고금리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엔(약 8700만 원) 이하 벌금에, 미등록 영업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엔(약 2억6100만 원) 이하 벌금에 각각 처할 수 있게 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법 위반에 따른 가장 높은 벌금액이 5000만 원이다. 범죄수익의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물리는 특정경제범죄법이 불법사채에는 적용되지 않아서다.법이 바뀌면서 불법사채 수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이전에는 경찰이 ‘야쿠자에게 팔이라도 잘려야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라며 “하지만 법 개정과 시민단체의 집단 고소가 이어지면서 전국 경찰서가 ‘야미킨 대책본부’를 꾸리고 집중 수사했다”고 회상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가 이끈 시민단체가 2002~2010년 고소한 불법사채 사건은 6만3458건에 이른다. 일본 경찰청은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매년 백서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 검거 현황을 따로 공개하고 있다.사법부도 이런 사회적 변화에 화답했다. 2008년 6월 일본 대법원은 “불법사채는 위법한 계약이기 때문에 (사채 조직에) 원금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놓았다. 최대 규모의 야미킨 조직 ‘야마구치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이었다. 법조계는 이를 ‘불법사채 근절에 본보기가 된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불법사채로 처벌돼도 빌려준 원금과 법정 이자는 법으로 보장받는다.● 대부업체 한국의 6분의 1로 줄어일본의 정식 대부업체는 지난해 3월 기준 1548곳. 한국(8771개)의 6분의 1 수준이다. 인구 대비로는 한국의 14분의 1이다. 법 개정 여파로 영세 대부업체들이 문을 닫고 탄탄한 중견업체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업체 수가 줄면서 촘촘한 관리·감독이 가능해지면서 대부업 시장도 투명해졌다. 강력한 단속으로 불법사채 사건도 급감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검찰에 접수된 불법사채 사건이 2003년 1679건에서 2022년 231건으로 줄었다.물론 일본도 여전히 숙제가 남았다. 정식 대부업체의 대출 심사가 엄격해져 저소득층은 돈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서민 금융 제도를 확대하고 민간 차원의 채무자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병행하면서 이런 ‘풍선효과’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다. 도모토 히로시(堂下浩·60) 도쿄정보대 교수는 “정식 대부업체에 한해서는 법정 이율 상한을 높이는 등 ‘숨통’을 틔울 필요가 있다. 다만 불법사채는 수법이 교묘해짐에 따라 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한국…日 ‘채무자 탓 그만’불법사채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건 부실한 규제뿐만이 아니다. 사채를 쓰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시선도 장애물 중 하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31명의 불법사채 피해자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다. “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말과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한국보다 앞서 불법사채 문제를 겪은 일본은 일찍이 이런 인식의 개선에 힘썼다. 1970년대부터 사채 피해 구제에 힘써온 기무라 타츠야(木村 達也·80) 변호사는 서면 인터뷰에서 “당시엔 ‘차주책임론’(借主責任論·빌린 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이란 용어도 있었다”며 “이런 시선이 사채 피해가 고발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했다.1970년대 일본에서는 고리대금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과한 추심과 채무자의 자살이 늘었다. 샐러리맨이 주로 빌리는 사채, 이른바 ‘사라킨’(サラ金)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기무라 변호사는 1976년 오사카 변호사회 안에 사채 문제 연구회를 결성했다.“세간에는 다중 채무에 빠지는 사람들은 낭비나 도박, 유흥 때문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뤘지만, 변호사들은 대부업의 고금리·가혹한 추심·과잉 대출이 근원이라고 생각했어요.”이듬해에는 700여 명의 젊은 변호사와 학자 등이 모여 ‘전국사라킨문제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피해자 설득에 나섰다. 인식개선이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에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최소 1개씩, 총 85개의 피해자 단체가 생겼다. 매년 한 번, 전국의 변호사와 피해자 약 2000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생활고, 지병, 실업 같은 피해자들의 비참한 호소가 사회에 공유됐다.기무라 변호사는 “‘빌린 사람 책임’이라던 시각이 ‘소비자 보호’로 바뀌게 된 때”라며 “집회를 통해 사채업자들의 악질적인 수법이 고발되면서 사회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흐름을 타고 1983년 ‘대금업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대부업 등록이 의무화됐고, 대부계약사항과 추심에 관한 세부 조항이 생겼다. 다소 느슨했던 규제의 빈틈은 2006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일본과 달리 누구나 마음먹으면 불법 사채가 가능한 한국 상황은 ‘불법사채 못 막는 사회-(上) 한국편’에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도쿄=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습니다.”2021년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했던 이철민(가명·33) 씨는 올 2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직에서 나온 뒤 지인과 함께 직접 조직을 차렸다가 2022년 10월 그만뒀다. 지금 그는 평범한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불법의 세계에 발 담글 수 있다’는 그의 말투는 평온했다.이 씨의 한국에서 불법사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대변한다. 한국에선 대부업 등록이 식당을 차리는 것보다 쉽다. 자본 요건인 ‘통장 잔고 1000만 원’은 등록할 때 한 번만 증명하면 된다. 이후 출금해도 등록이 취소되지 않는다. 이론상 같은 돈을 입출금하며 대부업체를 무한정 만들 수 있다.‘고정 사업장’을 갖춰야 하지만 주택이나 숙박시설만 아니면 된다. 직원이 상주하지 않고 공유오피스 등에 주소만 올려두면 월세는 1만 원대로 낮출 수 있다. 이런 ‘페이퍼 대부업체’ 운영은 고정 사업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불법이지만 등록 시 현장실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적발될 가능성은 작다. 한국대부금융협회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교육비는 23만 원이고 총 18시간 중 11시간은 온라인 동영상 강의만 들으면 이수증이 나온다.여기에 손해배상 공제료(16만 원)와 등록 수수료(10만 원)와 면허세(6만5000원) 등 약 32만5000원을 더 쓰면 등록증을 구할 수 있다. 불법사채 조직은 이런 등록증을 약 200만 원에 사들여 여러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렸다. 이게 수많은 피해자를 속인 ‘정식 대부업체’라는 이름의 실체다.● 9년 전 잘못 끼운 첫 단추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현행 대부업 등록제는 2002년 도입됐다. 당시 등록 요건 자체가 없다가 2009년에야 교육 이수 의무가 부과됐다. 이후 소재가 불분명한 대부업체가 난립하면서 2010년 사무실 요건이 생겼다. 자본 요건은 2015년 추가됐다.원래 정부는 최소 자본 기준을 5000만 원으로 정할 방침이었다. 국회에는 이를 3억 원으로 정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허들이 높으면 영세 대부업체가 폐업하고 음지로 숨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렸다. 결국 2015년 개정된 법에는 최소 자본 기준이 1000만 원으로 정해졌다.자본금을 여러 업체를 설립하는 데 ‘돌려쓰기’ 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때도 나왔다. “등록 이후 자본금 유지 의무를 추가하자”는 국회 보고서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태생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자본 요건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믿을 수 없는 대부업체가 난립한 문제를 줄이려면 합리적인 진입 장벽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불법사채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의 송태경 사무처장은 “일본처럼 부채를 뺀 ‘순자산액’만 자본금으로 인정하고, 설립 기준액도 최소 3억3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채 10명 중 1명만 징역아무나 불법 업체를 차릴 수 있고,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쓰는 탓에 검거마저 어렵다면 일벌백계로 범행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미등록 대부업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21년 전 법이 제정됐을 때 그대로다. 그나마 대다수는 실형을 받지 않는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9.1%만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39.2%, 벌금형이 39%로 훨씬 많았다.불법사채로 벌어들인 수익을 환수하는 건 더 어렵다. 현행법으론 법정 상한(연 20%)을 초과한 이자만 범죄수익으로 추징할 수 있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려도 빌려준 돈뿐 아니라 이자도 20%까지는 보장받는 셈이다.법정 형량을 높이는 게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다만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은 “불법사채 조직엔 전과자가 많아 감옥에 가는 걸 그리 무섭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2년 불법사채로 기소된 피고인 51%가 전과자였다. 이는 마약 사건 피고인 중 전과자의 비율(47%)보다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불법사채를 뿌리 뽑는 데엔 금전적인 불이익이 더 효과적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벌금을 올리고, 불법사채 계약 자체를 무효화해 업자에게 원금도 돌려주지 말자는 것이다.불법사채 ‘무대’ 전락해도 책임 안 지는 플랫폼 “대부중개 플랫폼은 불법사채 조직의 무대입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수사 경찰과 전문가들은 채무자들이 불법사채를 접하는 주된 창구로 대부중개 플랫폼을 지목했다. 피해자들의 증언도 일치했다.대부중개 플랫폼은 대부업체 광고를 모아 보여주는 사이트다. 약 30개가 영업 중인데, 모두 ‘정식 대부업체만 광고 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검증한 플랫폼 광고 업체 62곳 중 36곳이 불법사채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다.정부와 플랫폼 업계는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아무나 플랫폼에 광고를 올리지 못하도록 플랫폼 업체들은 2017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등록증 제출을 의무화했다. 대출 상담을 위해 플랫폼에 남긴 연락처를 업체들이 마음대로 열람하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2월부턴 연락처를 못 남기게 바꿨다.대형 플랫폼 5곳을 회원사로 둔 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협의회 소속 플랫폼들은 등록증 사본을 확인하고 본인인증을 거친 뒤에 광고를 내보낸다. 폐업한 업체 광고가 노출되는 것을 걸러내기 위해 매주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구멍’은 여전했다. 불법사채 조직이 바지사장 명의로 등록증을 받고 본인인증까지 시키면 광고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것. 플랫폼에서 채무자 연락처를 직접 볼 수 없더라도 채무자가 광고를 보고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플랫폼 광고를 보고 전화한 이용자가 불법사채 조직에 넘겨져도 플랫폼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플랫폼은 ‘대부중개업자’로 분류되는데, 지금처럼 광고만 올려주는 건 ‘불법 중개’ 행위로 처벌하기 어려워서다. 관리·감독도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부중개업자가 광고만 하는 건 해외엔 없는 영업 방식”이라며 “법에 명시된 ‘중개’ 행위를 폭넓게 해석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지자체가 아닌 금융당국이 직접 플랫폼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2000년대 초반 일본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야미킨’으로 불리는 불법사채 조직의 악랄한 추심에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피해자가 급증했다. 지금 일본에선 더 이상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이 불법사채 ‘지옥’에서 벗어난 비결은 에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하는 일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지난달 29일 도쿄에서 만난 우쓰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78) 변호사는 정식 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 조직이 판치는 한국의 현실과 관련해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50년 넘게 불법사채 피해자를 지원해 온 대표적인 활동가다. 일본의 사채 문제를 다룬 소설 ‘화차’(1992) 속 변호사의 모델이기도 하다.특히 대부업체 설립 문턱이 낮고 처벌이 약한 탓에 업체 등록증이 200만~300만 원에 암거래되는 국내 현실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일본에선 대부업 등록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앞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국내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서 광고 중인 대부업체 62곳을 검증한 결과 합법적으로 영업한 업체는 3곳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한국에선 아무도 (불법사채를) 단속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그의 사무실 책상엔 약 20년 전 야미킨(闇金), 즉 불법사채 피해자를 상담한 자료와 함께 신문 기사 스크랩이 앉은키 높이로 여러 더미 쌓여있었다. ‘야쿠자가 차주(채무자) 납치’, ‘일가족 자살’, ‘채무자 자살 명소로 전락한 후지산’…. 오늘날 한국보다 심각했던 일본의 불법사채 문제를 보여주는 제목들이다.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이런 광경을 상상하기도 어려워졌다. 2006년 대금업법(한국의 대부업법)을 뜯어고치고 연달아 제도를 개선한 덕분이다. 기상천외한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도쿄에서 만난 현지 전문가들은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나 대부업을 못 하게 한다. 걸리면 엄하게 처벌한다. 그 결과 불법사채 조직은 발을 붙이기 힘들어졌다.한국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업 진입 단계부터 불량 업체를 걸러내고, 위법을 일벌백계하려는 시도는 다른 현안에 밀리거나 ‘시기상조’라는 우려 속에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가 불법사채를 근절하겠다며 2년 전 출범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합동 단속이나 예방법 홍보 등 핵심을 비껴간 대책만 내놓고 있다. 불법사채가 비대면 플랫폼을 장악하도록 방치해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한국과 이를 해결한 일본. 두 나라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자살과 납치 횡행했던 2000년대 일본‘밤마다 걸려 온 추심전화에 죽음을 결심.’2003년 6월 15일, 일본의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야미킨’, 즉 불법사채를 쓰고 조직의 협박을 받던 일가족 3명이 전날 오사카에서 철로에 누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빌린 금액은 3만 엔(약 26만 원).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이처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후지산 자락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생을 내려놓는 채무자가 늘자 피해자 지원 단체가 숲길 입구에 “빚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어요. 일단 저희랑 상의해요”라고 적힌 자살 방지 안내판을 설치했을 정도다.● 대부업체 설립비용, 한국의 45배당시 일본 불법사채 시장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자격 요건이 헐거워 영세 대부업체가 난립했다. 불법사채 조직도 활개 쳤다. 더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다.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였다.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참고한 건 한국이었다. 당시 한국은 불법사채 억제를 위해 대부업법을 제정한 지 4년째였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2005년 ‘한국금리조사단’를 꾸리고 한국에 머무르며 물렀다. 결론은 ‘좌고우면하다가 제대로 된 규제를 도입하지 못한 한국처럼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규제가 약한 한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했다.일본에선 ‘역시 강력한 규제가 필수다’라는 여론에 힘이 실리면서 국회와 정부가 대부업 관련 법 개정에 착수했다. 2006년 개정된 법에서는 대부업 등록 요건을 대폭 높였다. 대부업체를 차리려면 순자산이 5000만 엔(약 4억5000만 원) 이상이어야 했다. 18년 전부터 오늘날 한국 기준(1000만 원)의 45배에 달하는 문턱을 세운 것.업체를 차리려면 3년 이상 대출 업무 경력이 있어야 하고, 대부업 자격시험을 통과한 직원을 꼭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시험은 관련법과 재무, 회계 지식을 평가하는 국가 공인 필기시험이다. 올 3월 기준 누적 수강생 10만793명 중 2만8244명(28.0%)만 합격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도, 인력 상주 규정도 없다.물론 법 개정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정식 대부업체의 문턱을 높일수록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은 불법사채로 내몰릴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 정부와 국회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면 시행 전까지 4년이나 계도 기간을 두고 준비했다.● “걸리면 원금까지 환수”2006년부터 불법사채 처벌도 강화됐다. 법정 상한을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불법 고금리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엔(약 8700만 원) 이하 벌금에, 미등록 영업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엔(약 2억6100만 원) 이하 벌금에 각각 처할 수 있게 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법 위반에 따른 가장 높은 벌금액이 5000만 원이다. 범죄수익의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물리는 특정경제범죄법이 불법사채에는 적용되지 않아서다.법이 바뀌면서 불법사채 수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이전에는 경찰이 ‘야쿠자에게 팔이라도 잘려야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라며 “하지만 법 개정과 시민단체의 집단 고소가 이어지면서 전국 경찰서가 ‘야미킨 대책본부’를 꾸리고 집중 수사했다”고 회상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가 이끈 시민단체가 2002~2010년 고소한 불법사채 사건은 6만3458건에 이른다. 일본 경찰청은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매년 백서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 검거 현황을 따로 공개하고 있다.사법부도 이런 사회적 변화에 화답했다. 2008년 6월 일본 대법원은 “불법사채는 위법한 계약이기 때문에 (사채 조직에) 원금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놓았다. 최대 규모의 야미킨 조직 ‘야마구치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이었다. 법조계는 이를 ‘불법사채 근절에 본보기가 된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불법사채로 처벌돼도 빌려준 원금과 법정 이자는 법으로 보장받는다.● 대부업체 한국의 6분의 1로 줄어일본의 정식 대부업체는 지난해 3월 기준 1548곳. 한국(8771개)의 6분의 1 수준이다. 인구 대비로는 한국의 14분의 1이다. 법 개정 여파로 영세 대부업체들이 문을 닫고 탄탄한 중견업체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업체 수가 줄면서 촘촘한 관리·감독이 가능해지면서 대부업 시장도 투명해졌다. 강력한 단속으로 불법사채 사건도 급감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검찰에 접수된 불법사채 사건이 2003년 1679건에서 2022년 231건으로 줄었다.물론 일본도 여전히 숙제가 남았다. 정식 대부업체의 대출 심사가 엄격해져 저소득층은 돈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서민 금융 제도를 확대하고 민간 차원의 채무자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병행하면서 이런 ‘풍선효과’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다. 도모토 히로시(堂下浩·60) 도쿄정보대 교수는 “정식 대부업체에 한해서는 법정 이율 상한을 높이는 등 ‘숨통’을 틔울 필요가 있다. 다만 불법사채는 수법이 교묘해짐에 따라 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한국…日 ‘채무자 탓 그만’불법사채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건 부실한 규제뿐만이 아니다. 사채를 쓰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시선도 장애물 중 하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31명의 불법사채 피해자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다. “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말과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한국보다 앞서 불법사채 문제를 겪은 일본은 일찍이 이런 인식의 개선에 힘썼다. 1970년대부터 사채 피해 구제에 힘써온 기무라 타츠야(木村 達也·80) 변호사는 서면 인터뷰에서 “당시엔 ‘차주책임론’(借主責任論·빌린 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이란 용어도 있었다”며 “이런 시선이 사채 피해가 고발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했다.1970년대 일본에서는 고리대금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과한 추심과 채무자의 자살이 늘었다. 샐러리맨이 주로 빌리는 돈, 이른바 ‘사라킨’(サラ金)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기무라 변호사는 1976년 오사카 변호사회 안에 사채 문제 연구회를 결성했다.“세간에는 다중채무에 빠지는 사람들은 낭비나 도박, 유흥 때문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뤘지만, 변호사들은 대부업의 고금리·가혹한 추심·과잉 대출이 근원이라고 생각했어요.”이듬해에는 700여 명의 젊은 변호사와 학자 등이 모여 ‘전국사라킨문제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피해자 설득에 나섰다. 인식개선이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에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최소 1개씩, 총 85개의 피해자 단체가 생겼다. 매년 한 번, 전국의 변호사와 피해자 약 2000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생활고, 지병, 실업 같은 피해자들의 비참한 호소가 사회에 공유됐다.기무라 변호사는 “‘빌린 사람 책임’이라던 시각이 ‘소비자 보호’로 바뀌게 된 때”라며 “집회를 통해 사채업자들의 악질적인 수법이 고발되면서 사회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흐름을 타고 1983년 ‘대금업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대부업 등록이 의무화됐고, 대부계약사항과 추심에 관한 세부 조항이 생겼다. 다소 느슨했던 규제의 빈틈은 2006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일본과 달리 누구나 마음먹으면 불법 사채가 가능한 한국 상황은 ‘’에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https://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도쿄=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불법사채의 주 무대는 이제 거리가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이다. 대다수 조직은 더는 전단이나 명함을 뿌리지 않는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통해 전국에서 영업할 수 있어서다. 대출부터 추심까지 모든 게 비대면이라 흔적도 안 남는다. 지난해 3월 검거된 불법사채 조직 ‘강 실장’ 조직 역시 그랬다. 걸리지 않고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불법사채에 발을 들이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 실장은 검거됐지만, 지금도 플랫폼에는 수많은 강 실장이 ‘먹잇감’을 찾고 있다.“피고인,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93××××입니다.”5월 29일 춘천지방법원 102호 법정. 피고인 박성훈(가명)은 판사의 물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갈색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날은 박성훈의 항소심 첫 재판이었다.생년월일과 주소를 확인한 후 박성훈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양옆의 공범들보다 앉은키가 주먹 하나만큼 작았다. 볼은 폭 들어갔고 피부는 푸석했다. 박성훈의 변호인은 양형 부당 등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그는 앞서 2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자 공범 2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박성훈 혼자 판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박성훈은 재판에 넘겨진 지난해 4월 이후 이날까지 반성문을 230차례나 제출했다.지난해 봄까지 그는 불법사채 조직의 총책 ‘강 실장’이었다. 강 실장 조직은 2021년 2월부터 장사를 했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는 없었다. 강 실장을 수사한 경찰은 “젊은데도 돈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수를 꿰뚫고 있었다”고 했다.경찰이 압수한 강 실장 조직의 대포통장에는 피해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1000억 원대 불법사채를 굴린 흔적이 나왔다. 지난해 3월 붙잡혔을 때까지 강 실장이 챙긴 것으로 의심된 범죄수익은 약 300억 원이다. 하지만 추징이 명령된 돈은 6억6635만 원에 그쳤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강 실장 조직이 덫을 친 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직 조직원과 변호인, 피해자, 수사 경찰 등 1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판결문 26건을 분석해 사실과 주장을 골라냈다. 주먹을 쓰지 않고 오직 휴대전화로 돈을 뜯어내는 ‘플랫폼 사채’의 세계 한가운데 강 실장 조직이 있었다. 강 실장 조직이 거액을 굴린 첫 번째 비결은 ‘대부업 등록증’이었다. ● 스물셋 총책 ‘민 실장’강 실장이 되기 전, 박성훈은 ‘민 실장’이었다. 그는 스물세 살이던 2016년 7월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몇몇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아무나 광고할 수 있었다. 불법사채 광고가 문제가 되자 모든 플랫폼이 2017년부터 대부업 등록증을 요구했다. 이후 박성훈은 자기 명의로 정식 대부업체를 차렸다. 서울의 한 건물 지하에 작은 사무실을 빌리고 구청에서 대부업 등록증을 받아왔다.그렇게 박성훈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이자 정식 대부업체의 사장이 됐다. ‘소액 대출 당일 가능, 금리는 법정 이율 준수’. 거짓 광고를 올렸다. 민 실장 조직은 이 ‘미끼’를 보고 연락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다. 3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50만 원을 받아내는 연이율 3476% 고리 영업이 표준 방식이었다. 제때 안 갚으면 피해자를 겁박했다. 그렇게 1년 동안 21억 원을 뜯어냈다.박성훈의 이중생활은 피해자 신고로 2017년 경찰에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압수수색 당시 그의 집에선 일본 사채업계를 다룬 만화책 ‘사채꾼 우시지마’가 나왔다. 그에겐 대부업법 위반뿐 아니라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적용됐다. 박성훈은 정식 대부업체를 운영했을 뿐인데 일부 직원이 불법을 저지른 거라고 잡아뗐다.하지만 박성훈은 실명 석 자가 적힌 등록증으로 플랫폼에 광고를 냈을 뿐 아니라 구인 광고도 직접 올렸다. 조직원과도 얼굴을 맞대고 일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판사는 “사채 조직 전면에 나서서 조직 관리와 운영을 주도했고, (대부업 등록증은) 오직 그 명의로 광고를 내서 피해자의 전화번호를 얻는 데에만 썼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2020년 11월 출소한 그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출소 석 달 만에 새로운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고 ‘강 실장’이라는 새 가면을 썼다.● ‘강 실장’의 탄생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첫 번째 실수를 바로잡았다. 자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그늘에 숨겼다. 이번엔 대부업 등록증도 돈을 주고 사 오기로 했다. 등록증 조달은 ‘막 사장’에게 맡겼다.“저는 등록증이 뭔지도 몰랐어요. 관공서에서 발급해 주는 거니, 불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취재팀과 만난 막 사장은 자신은 ‘심부름꾼’이었다고 주장했다. 막 사장은 강 실장의 부탁대로 대부업체 바지사장을 수소문했다. 강 실장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대부업 등록 절차가 상세히 정리돼 있었다. 강 실장은 등록증 한 장당 300만~500만 원을 줬다. 그렇게 강 실장이 사간 등록증이 10장 내외였다고 한다.막 사장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을 피하기 위한 휴대용 와이파이를 구해줬다. 범죄수익을 배달하는 역할도 했다. 조직원이 야산 등 인적 드문 곳에 현금 상자를 숨겨두면 막 사장이 이를 도심 모텔이나 오피스텔로 옮겼다.현금을 나를 땐 강 실장이 정한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했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이동하기 △누구와도 잡담하지 않기 △퇴근할 때도 거처에서 3km 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하기. ‘안전운전’도 수칙 중 하나였다. 조직원의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현금을 옮길 때 대포차를 사용했는데, 교통사고가 나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막 사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강 실장 조직에서 이렇게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은 건 막 사장 외엔 거의 없었다. 1심 법원은 “(막 사장은) 총책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막 사장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제가 배달 사고는 안 냈거든요. 배달 물건이 뭔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딱 보면 현금인 거 알잖아요. 욕심도 났지만 괜히 건드렸다간 뒤탈이 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롱런’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강 실장이 그러더군요. ‘사장님은 착실히 일해주시네요’라고요.”● 그림자 총책강 실장은 조직 안에서도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민 실장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조직은 점조직으로 설계했다. 콜팀은 피해자의 연락처만 수집했다. 상담팀은 대출 계약을 맺고, 수금팀은 빚 독촉을 담당했다. 인출팀은 현금 출금을, 수거팀은 현금 배달을 맡았다. 조직원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섬처럼 각자 맡은 일만 처리했다. 이건 민 실장 때도 써먹었던 방식이다. 과거 항소심 재판부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했던, 검증된 방식이었다.달라진 건 강 실장 스스로 조직원의 한 명으로 위장한 것이다. 강 실장 조직에서 1년 넘게 일한 조직원은 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 실장은 목소리만 알았어요. 가끔 ‘자기 위에 누가 있다’고도 했어요. ‘실장’이었으니 그 말을 믿었죠. 그가 총책이라는 건 붙잡히고야 알았습니다.”신입 조직원이 들어오면 신분증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 10명 이상의 연락처를 받아뒀다. 조직원이 다른 마음을 품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상을 채무자나 경찰에 넘기겠다고 겁박했다. 일면식도 없는 조직원을 목소리만으로 통제했던 비결이자, 혹시 모를 ‘배신’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민 실장 재판에서 조직원들이 총책의 범행을 증언한 것을 강 실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수금팀 조직원은 2년 전 친구 소개로 조직에 합류할 땐 정식 대부업체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열흘 정도 일했을 무렵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총책이라는 사람이 ‘지금 관두면 네 신상 뿌려버린다’고 했어요.” 조직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강 실장은 채무자도 조직원으로 끌어들였다. 통제하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훗날 조직 서열 2위에 오른 ‘서 이사’도 처음엔 채무자였다. 조직원 중 30%가량을 이렇게 채무자 중에서 영입했다.● 고수익의 유혹나머지는 첫 조직 때 검증된 수법을 그대로 썼다. 조직원은 구인 사이트에 광고를 내서 구했다. 조직원에겐 같이 일할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강력했다. 조직원이 금세 80여 명으로 불어났다.신입 조직원은 합숙 교육을 받았다. 행동강령을 철저히 주입했다. 조직원끼리 이름 등 신상이나 사생활 묻지 않기, 업무 시엔 대포폰만 사용하기, 공용 와이파이 사용 금지…. 모든 보고와 지시는 대포폰과 텔레그램으로 이뤄졌다.조직원이 주로 고향 선후배를 새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면서 지역 기반이 생겼다. 콜팀은 광주, 상담팀은 서울과 부산, 수금팀은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전남 여수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 모든 업무가 온라인과 전화, 문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범위는 전국이었다.대출 수법도 같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에 접속한 피해자를 노렸다. 철저히 소액만 빌려줬다. 적게는 10만 원, 많아도 150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래야 채무자가 이자가 비싸지 않다고 착각해 돈을 더 빌리기 때문이었다. 혹시 채무자가 돈을 빌리고 잠적해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상담팀 조직원은 실적을 채우려고 동시에 같은 피해자에게 경쟁적으로 연락하기도 했다. 돈을 잘 빌리고 갚는 피해자의 번호를 공유하며 다른 업체인 것처럼 접근해 ‘돌려막기’를 유도했다. 사채를 사채로 갚기 시작하면 그 빚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강 실장 조직에서 25만 원을 빌렸던 한 50대 피해자의 빚이 1억5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총책의 아내얼마를 빌려주고, 누구를 추심하고, 현금은 어디로 배달할지까지.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은 총무팀에서 이뤄졌다. 자금도 총무팀이 관리했다. 총무팀을 이끈 건 박성훈보다 7세 어린 아내였다. 조직 내부에선 ‘아 주임’으로 불렸다. 총무팀은 이 부부의 지인으로만 채웠다. 이들만 부부의 진짜 이름을 알았다.아내는 박성훈과 따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총책의) 통제하에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으면서 배정된 업무를 수행했다”고 봤다.법정에서 만난 아내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죄송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조직원이 기억하는 모습은 달랐다. “악랄했죠. 총무팀 직원 중 아 주임만 전화로 ‘일 이따위로 할 거냐’고 막말을 자주 했거든요. 검거된 이후에야 걔가 총책 와이프라는 걸 알았죠.”● 비대면 추심의 비밀수금팀은 매일 낮 12시, 오후 2시, 4시 등 하루 세 차례 실적을 보고했다. 부진하면 윗선에서 폭언을 들었다. 심지어 맞기도 했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했다. 피해자보다 가족을 괴롭히면 더 빨리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악랄한 추심의 흔적은 경찰이 압수한 대포폰에 문자메시지 등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조직원은 인큐베이터에서 꼬물거리는 채무자의 갓난아기 사진을 보내며 ‘돈 안 갚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빚을 불리는 것도 수금팀 역할이었다. 상환 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넘기면 시간당 10만~20만 원을 연체료로 붙였다. 애초에 빌려준 적 없거나 이미 다 갚은 빚을 다시 받아내기도 했다. 조직에선 이걸 ‘돌림’이라고 불렀다. 여러 번 사채를 쓴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얼마를 빌리고 갚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단, 채무자를 직접 찾아가거나 물리력을 쓰진 않았다. 직접 만나면 흔적이 남아 붙잡힐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불법사채 피해자를 돕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장은 비대면 추심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과 지인에게 사채를 쓴 사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계속 돈을 뜯기게 되는 겁니다. 번듯한 직장인처럼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협박에 더 취약합니다.”● 배신의 왕국박성훈은 민 실장 시절 조직원에게 감금돼 폭행당한 뒤 돈을 뺏긴 적이 있었다. 그 조직원은 박성훈의 중학교 선배였다. 300만 원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박성훈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조직원을 믿지 않았다. 조직 2인자인 서 이사에게도 본명과 나이를 숨기고 대포폰으로만 연락했다.강 실장이 총책이라는 걸 아는 소수의 조직원도 강 실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밑에서 일한 건 돈 때문이었다. 약속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불만이 싹텄다. 2022년 가을, 서 이사 등 핵심 간부들이 강 실장을 몰아내고 조직을 장악하려는 ‘쿠데타’를 계획했다. 강 실장이 먼저 알고 쫓아내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조직원의 배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무렵 충북 진천에 있는 수금팀이 잠적했다. 강 실장 몰래 채무자 연락처를 빼돌려 따로 불법사채 조직을 꾸린 것. 강 실장은 인출팀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는 채무자 출신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들은 강 실장 조직처럼 치밀하지 못했다. 지인에게 현금 인출을 맡겼다가 흔적을 남겨 2022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피해자 가족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 만이었다.그렇게 강 실장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고, 경찰 수사는 윗선을 향했다.● 가짜 총책들수사망이 좁혀오자 강 실장은 ‘가짜 강 실장’을 내세웠다. 수거팀 조직원에게 거액을 주겠다며 거짓 자수를 요구했다. 그 조직원은 서울 한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가 “내가 강 실장”이라고 자수했다. 박성훈은 그에게 1000만 원 정도를 건네주고 경찰 출신 변호사도 소개해 줬다. 검찰 처분이 나오면 5000만 원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킬 약속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짓 자수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박성훈은 지난해 3월 검거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전날 필리핀으로 도주하려다가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 변호사를 급히 찾았다고 한다.수사팀 소속이던 배상민 경위(현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체포 당시 박성훈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하진 않았어요. ‘집 수색은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군요. 수갑 찬 모습은 가족들에게 보이기 싫었나 봅니다.”그는 검거 후에도 빠져나갈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석 부장’을 강 실장으로 몰아갔다. 석 부장은 고교 시절 박성훈을 폭행한 고향 선배였다. 그런데도 강 실장은 그를 핵심 측근으로 부렸다. 돈 앞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었다.올해 2월 14일 박성훈은 1심에서 징역 8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범죄단체조직과 대부업법 위반 말고도 범죄수익은닉, 범인도피교사 등까지 총 7개였다.박성훈은 항소했다. 변호인은 “죄는 인정하지만 징역 8년은 너무 과하다”며 “가족 재산을 처분해 합의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박성훈은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 29명에게 10억 원의 합의금을 줬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나머지 피해자와 모두 합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 빙산의 일각경찰은 8개월간 추적한 끝에 강 실장이 부린 조직원 80여 명뿐 아니라 대포폰, 대포통장 판매자까지 123명을 검거했다. 조직원 대다수는 20대였다. 조직폭력배는 없었다. 경찰이 압수한 대포통장만 300여 개. 그 명세로 파악한 피해자는 1000명이 넘었고, 불법 대출 규모는 1000억 원대로 추산됐다.강 실장의 수익은 그중 최소 3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는 월세 1800만 원짜리 서울 성동구 초고급 아파트인 트리마제에 살았다.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셰, 벤츠, BMW 등 초고가 외제차 7대를 몰았다.하지만 법원은 약 37억 원만 불법 대출 규모로 인정했다. 검경에 나와 진술한 피해자가 13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팀을 이끈 이정만 경감(현 정선경찰서 통합수사팀장)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해 모두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불법사채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고 숨는 경우가 많아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대표적인 암수(暗數) 범죄다. 금융감독원 미공개 조사에서 2022년 피해자가 82만 명으로 추정됐지만 그해 접수된 피해 신고는 1만350건이었다.강 실장의 경우 대출 원금과 법정 최대 이자(연 20%)를 제외한 약 15억 원만 범죄 수익으로 판단됐다. 현행법에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는 추징 대상이지만, 원금과 법정 이자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게 불법사채여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박성훈의 추징금은 고작 6억6635만 원이었다. 수익 배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른 공범과 똑같이 나눴다. 결국 강 실장은 대포통장에 기록된 불법 대출액의 1%도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공범조차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성훈보다 먼저 재판받은 한 조직원은 억울하다고까지 했다. “제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닌데요. 저랑 박성훈은 재판부가 달랐거든요. 저는 검사가 구형한 그대로 추징금이 나왔는데, 박성훈은 절반 가까이 깎였더라고요.”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박성훈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 이정만 경감은 “금을 사 모았다는 진술과 정황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박성훈 변호인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그 정도 자산이 있다면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가족 자산을 처분하겠냐”고 되물었다.이 같은 입장을 전하자 한 조직원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조직이 가장 컸을 때 하루 수익이 1억4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조직 규모가 줄었을 때도 하루 8000만 원은 벌었습니다. 박성훈이 적어도 150억 원 이상은 챙겼을 겁니다. 금으로 월급을 준 적도 있어요.”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불법사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사채로 돈 벌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었다. 불법사채를 막지 못한 원인과, 한때 불법사채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일본의 이야기는 26일 오후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에서 볼 수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돈을 급한 피해자를 먹잇감으로 삼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 ‘강 실장’은 스물셋에 처음 불법사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 없이 오직 휴대전화만으로 1000억 원대 불법대출을 굴린 강 실장의 수법은 ‘강 실장의 사냥법(上)’에서 볼 수 있다 ● 총책의 아내얼마를 빌려주고, 누구를 추심하고, 현금은 어디로 배달할지까지.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은 총무팀에서 이뤄졌다. 자금도 총무팀이 관리했다. 총무팀을 이끈 건 ‘강 실장’ 박성훈(가명·31)보다 7살 어린 아내였다. 조직 내부에선 ‘아 주임’으로 불렸다. 총무팀은 이 부부의 지인으로만 채웠다. 이들만 부부의 진짜 이름을 알았다.아내는 박성훈과 따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총책의) 통제 하에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으면서 배정된 업무를 수행했다”고 봤다.법정에서 만난 아내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죄송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조직원이 기억하는 모습은 달랐다. “악랄했죠. 총무팀 직원 중 아 주임만 전화로 ‘일 이따위로 할 거냐’고 막말을 자주 했거든요, 검거된 이후에야 걔가 총책 와이프라는 걸 알았죠.”● 비대면 추심의 비밀수금팀은 매일 낮 12시, 오후 2시, 4시, 하루 세 차례 실적을 보고했다. 부진하면 윗선에서 폭언을 들었다. 심지어 맞기도 했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했다. 피해자보다 가족을 괴롭히면 더 빨리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악랄한 추심의 흔적은 경찰이 압수한 대포폰에 문자 메시지 등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조직원은 인큐베이터에서 꼬물거리는 채무자의 갓난아기 사진을 보내며 ‘돈 안 갚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빚을 불리는 것도 수금팀 역할이었다. 상환 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넘기면 시간당 10만~20만 원을 연체료로 붙였다. 애초에 빌려준 적 없거나 이미 다 갚은 빚을 다시 받아내기도 했다. 조직에선 이걸 ‘돌림’이라고 불렀다. 여러 번 사채를 쓴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얼마를 빌리고 갚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단, 채무자를 직접 찾아가거나 물리력을 쓰진 않았다. 직접 만나면 흔적이 남아 붙잡힐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불법사채 피해자를 돕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장은 비대면 추심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과 지인에게 사채를 쓴 사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계속 돈을 뜯기게 되는 겁니다. 번듯한 직장인처럼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협박에 더 취약합니다.”● 배신의 왕국박성훈은 민 실장 시절 조직원에게 감금돼 폭행당한 뒤 돈을 뺏긴 적이 있었다. 그 조직원은 박성훈의 중학교 선배였다. 300만 원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박성훈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조직원을 믿지 않았다. 조직 2인자인 서 이사에게도 본명과 나이를 숨기고 대포폰으로만 연락했다.강 실장이 총책이라는 걸 아는 소수의 조직원도 강 실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밑에서 일한 건 돈 때문이었다. 약속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불만이 싹텄다. 2022년 가을, 서 이사 등 핵심 간부들이 강 실장을 몰아내고 조직을 장악하려는 ‘쿠데타’를 계획했다. 강 실장이 먼저 알고 쫓아내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조직원의 배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무렵 충북 진천에 있는 수금팀이 잠적했다. 강 실장 몰래 채무자 연락처를 빼돌려 따로 불법사채 조직을 꾸린 것. 강 실장은 인출팀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는 채무자 출신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들은 강 실장 조직처럼 치밀하지 못했다. 지인에게 현금 인출을 맡겼다가 흔적을 남기면서 2022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피해자 가족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 만이었다.그렇게 강 실장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고, 경찰 수사는 윗선을 향했다.● 가짜 총책들수사망이 좁혀오자 강 실장은 ‘가짜 강 실장’을 내세웠다. 수거팀 조직원에게 거액을 주겠다며 거짓 자수를 요구했다. 그 조직원은 서울 한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가 “내가 강 실장”이라고 자수했다. 박성훈은 그에게 1000만 원 정도를 건네주고 경찰 출신 변호사도 소개해 줬다. 검찰 처분이 나오면 5000만 원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킬 약속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짓 자수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박성훈은 지난해 3월 검거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전날 필리핀으로 도주하려다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 변호사를 급히 찾았다고 한다.수사팀 소속이던 배상민 경위(현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체포 당시 박성훈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하진 않았어요. ‘집 수색은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군요. 수갑 찬 모습은 가족들에게 보이기 싫었나 봅니다.”그는 검거 후에도 빠져나갈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석 부장’을 강 실장으로 몰아갔다. 석 부장은 고교 시절 박성훈을 폭행했던 고향 선배였다. 그런데도 강 실장은 그를 핵심 측근으로 부렸다. 돈 앞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었다.올해 2월 14일, 박성훈은 1심에서 징역 8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범죄단체조직과 대부업법 위반 말고도 범죄수익은닉, 범죄도피교사 등까지 총 7개였다.박성훈은 항소했다. 변호인은 “죄는 인정하지만 징역 8년은 너무 과하다”며 “가족 재산을 처분해 합의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박성훈은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 29명에게 10억 원의 합의금을 줬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나머지 피해자와 모두 합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 빙산의 일각경찰은 8개월간 추적한 끝에 강 실장이 부린 조직원 80여 명뿐 아니라 대포폰, 대포통장 판매자까지 123명을 검거했다. 조직원 대다수는 20대였다. 조직폭력배는 없었다. 경찰이 압수한 대포통장만 300여 개. 그 명세로 파악한 피해자는 1000명이 넘었고, 불법 대출 규모는 1000억 원대로 추산됐다.강 실장의 수익은 그중 최소 3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는 월세 1800만 원짜리 서울 성동구 초고급 아파트인 트리마제에 살았다.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쉐, 벤츠, BMW 등 초고가 외제차 7대를 몰았다.하지만 법원은 약 37억 원만 불법 대출 규모로 인정했다. 검경에 나와 진술한 피해자가 13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팀을 이끈 이정만 경감(현 정선경찰서 통합수사팀장)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해 모두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불법사채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고 숨는 경우가 많아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대표적인 암수(暗數) 범죄다. 금융감독원 미공개 조사에서 2022년 피해자가 82만 명으로 추정됐지만 그해 접수된 피해 신고는 1만350건이었다.강 실장의 경우 대출 원금과 법정 최대 이자(연 20%)를 제외한 약 15억 원만 범죄 수익으로 판단됐다. 현행법에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는 추징 대상이지만, 원금과 법정이자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게 불법사채여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박성훈의 추징금은 고작 6억6635만 원이었다. 수익 배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른 공범과 똑같이 나눴다. 결국 강 실장은 대포통장에 기록된 불법 대출액의 1%도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공범조차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성훈보다 먼저 재판받은 한 조직원은 억울하다고까지 했다. “제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닌데요. 저랑 박성훈은 재판부가 달랐거든요. 저는 검사가 구형한 그대로 추징금이 나왔는데, 박성훈은 절반 가까이 깎였더라고요.”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박성훈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 이정만 경감은 “금을 사 모았다는 진술과 정황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박성훈 변호인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그 정도 자산이 있다면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가족 자산을 처분하겠냐”고 되물었다.이 같은 입장을 전하자 한 조직원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조직이 가장 컸을 때 하루 수익이 1억4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조직 규모가 줄었을 때도 하루 8000만 원은 벌었습니다. 박성훈이 적어도 150억 원 이상은 챙겼을 겁니다. 금으로 월급을 준 적도 있어요.”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불법사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사채로 돈 벌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었다. 불법사채를 막지 못한 원인과, 한때 불법사채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일본의 이야기는 26일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에서 볼 수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불법사채의 주 무대는 이제 거리가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이다. 대다수 조직은 더는 전단이나 명함을 뿌리지 않는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통해 전국에서 영업할 수 있어서다. 대출부터 추심까지 모든 게 비대면이라 흔적도 안 남는다. 지난해 3월 검거된 불법사채 조직 ‘강 실장’ 조직 역시 그랬다. 걸리지 않고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불법사채에 발을 들이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 실장은 검거됐지만, 지금도 플랫폼에는 수많은 강 실장이 ‘먹잇감’을 찾고 있다.“피고인,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93××××입니다.”5월 29일 춘천지방법원 102호 법정, 피고인 박성훈(가명)은 판사의 물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갈색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날은 박성훈의 항소심 첫 재판이었다.생년월일과 주소를 확인한 후 박성훈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양옆의 공범들보다 앉은키가 주먹 하나만큼 작았다. 체격 차이는 더 났다. 볼은 폭 들어갔고 피부는 푸석했다. 박성훈의 변호인은 양형 부당 등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그는 앞서 2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자 공범 2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박성훈 혼자 판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박성훈은 재판에 넘겨진 지난해 4월 이후 이날까지 반성문을 230차례나 제출했다.지난해 봄까지 그는 불법사채 조직의 총책 ‘강 실장’이었다. 강 실장 조직은 2021년 2월부터 장사를 했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는 없었다. 강 실장을 수사한 경찰은 “젊은데도 돈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수를 꿰뚫고 있었다”고 했다.경찰이 압수한 강 실장 조직의 대포통장에는 피해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1000억 원대 불법사채를 굴린 흔적이 나왔다. 지난해 3월 붙잡혔을 때까지 강 실장이 챙긴 것으로 의심된 범죄수익은 300억 원이다. 하지만 추징이 명령된 돈은 6억6635만 원에 그쳤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강 실장 조직이 덫을 친 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직 조직원과 변호인, 피해자, 수사 경찰 등 1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판결문 26건을 분석해 사실과 주장을 골라냈다. 주먹을 쓰지 않고 오직 휴대전화로 돈을 뜯어내는 ‘플랫폼 사채’의 세계. 한 가운데 강 실장 조직이 있었다. 강 실장 조직이 거액을 굴린 첫 번째 비결은 ‘대부업 등록증’이었다. ● 스물셋 총책 ‘민 실장’강 실장이 되기 전, 박성훈은 ‘민 실장’이었다. 그는 스물세 살이던 2016년 7월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몇몇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아무나 광고할 수 있었다. 불법사채 광고가 문제가 되자 모든 플랫폼이 2017년부터 대부업 등록증을 요구했다. 이후 박성훈은 자기 명의로 정식 대부업체를 차렸다. 서울의 한 건물 지하에 작은 사무실을 빌리고 구청에서 대부업 등록증을 받아왔다.그렇게 박성훈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이자 정식 대부업체의 사장이 됐다. ‘소액 대출 당일 가능, 금리는 법정 이율 준수’. 거짓 광고를 올렸다. 민 실장 조직은 이 ‘미끼’를 보고 연락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다. 3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50만 원을 받아내는 연이율 3476% 고리 영업이 표준 방식이었다. 제때 안 갚으면 피해자를 겁박했다. 그렇게 1년 동안 21억 원을 뜯어냈다.박성훈의 이중생활은 2017년 경찰에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압수수색 당시 그의 집에선 일본 사채업계를 다룬 만화책 ‘사채꾼 우시지마’가 나왔다. 그에겐 대부업법 위반뿐 아니라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적용됐다. 박성훈은 정식 대부업체를 운영했을 뿐인데 일부 직원이 불법을 저지른 거라고 잡아뗐다.하지만 박성훈은 실명 석 자가 적힌 등록증으로 플랫폼에 광고를 냈을 뿐 아니라 구인 광고도 제 명의로 올렸다. 조직원과도 얼굴을 맞대고 일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판사는 “사채 조직 전면에 나서서 조직 관리와 운영을 주도했고, (대부업 등록증은) 오직 그 명의로 광고를 내서 피해자의 전화번호를 얻는 데에만 썼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2020년 11월 출소한 그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출소 석 달 만에 새로운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고 ‘강 실장’이라는 새 가면을 썼다.● ‘강 실장’의 탄생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첫 번째 실수를 바로잡았다. 자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그늘에 숨겼다. 이번엔 대부업 등록증도 돈을 주고 사 오기로 했다. 등록증 조달은 ‘막 사장’에게 맡겼다.“저는 등록증이 뭔지도 몰랐어요. 관공서에서 발급해주는 거니, 불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취재팀과 만난 막 사장은 자신은 ‘심부름꾼’이었다고 주장했다. 막 사장은 강 실장의 부탁대로 대부업체 바지사장을 수소문했다. 강 실장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등록 절차가 상세히 정리돼 있었다. 강 실장은 등록증 한 장당 300만~500만 원을 줬다. 그렇게 강 실장이 사간 등록증이 10장 내외였다고 한다.막 사장은 인터넷주소(IP) 추적을 피하기 위한 휴대용 와이파이를 구해줬다. 범죄수익을 배달하는 역할도 했다. 조직원이 야산 등 인적 드문 곳에 현금 상자를 숨겨두면 막 사장이 이를 도심 모텔이나 오피스텔로 옮겼다.현금을 나를 땐 강 실장이 정한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했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이동하기 △누구와도 잡담하지 않기 △퇴근할 때도 거처에서 3km 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하기. ‘안전운전’도 수칙 중 하나였다. 조직원의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현금을 옮길 때 대포차를 사용했는데, 교통사고가 나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막 사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강 실장 조직에서 이렇게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은 건 막사장 외엔 거의 없었다. 1심 법원은 “(막 사장은) 총책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막 사장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제가 배달 사고는 안 냈거든요. 배달 물건이 뭔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딱 보면 현금인 거 알잖아요. 욕심도 났지만 괜히 건드렸다간 뒤탈이 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롱런’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강 실장이 그러더군요. ‘사장님은 착실히 일해주시네요’라고요.”● 그림자 총책강 실장은 조직 안에서도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민 실장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조직은 점조직으로 설계했다. 콜팀은 피해자의 연락처만 수집했다. 상담팀은 대출 계약을 맺고, 수금팀은 빚 독촉을 담당했다. 인출팀은 현금 출금을, 수거팀은 현금 배달을 맡았다. 조직원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섬처럼 각자 맡은 일만 처리했다. 이건 민 실장 때도 써먹었던 방식이다. 과거 항소심 재판부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했던, 검증된 방식이었다.달라진 건 강 실장 스스로 조직원의 한 명으로 위장한 것이다. 강 실장 조직에서 1년 넘게 일한 조직원은 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 실장은 목소리만 알았어요. 가끔 ‘자기 위에 누가 있다’고도 했어요. ‘실장’이었으니 그 말을 믿었죠. 그가 총책이라는 건 붙잡히고야 알았습니다.”신입 조직원이 들어오면 신분증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 10명 이상의 연락처를 받아뒀다. 조직원이 다른 마음을 품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상을 채무자나 경찰에 넘기겠다고 겁박했다. 일면식도 없는 조직원을 목소리만으로 통제했던 비결이자, 혹시 모를 ‘배신’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민 실장 재판에서 조직원들이 총책의 범행을 증언한 것을 강 실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수금팀 조직원은 2년 전 친구 소개로 조직에 합류할 땐 정식 대부업체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열흘 정도 일했을 무렵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총책이라는 사람이 ‘지금 관두면 네 신상 뿌려버린다’고 했어요.” 조직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강 실장은 채무자도 조직원으로 끌어들였다. 통제하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훗날 조직 서열 2위에 오른 ‘서 이사’도 처음엔 채무자였다. 조직원 중 30%가량을 이렇게 채무자 중에서 영입했다.● 고수익의 유혹나머지는 첫 조직 때 검증된 수법을 그대로 썼다. 조직원은 구인 사이트에 광고를 내서 구했다. 조직원에겐 같이 일할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강력했다. 조직원이 금세 80여 명으로 불어났다.조직원이 주로 고향 선후배를 새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면서 지역 기반이 생겼다. 콜팀은 광주, 상담팀은 서울과 부산, 수금팀은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전남 여수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 모든 업무가 온라인과 전화, 문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범위는 전국이었다.대출 수법도 같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에 접속한 피해자를 노렸다. 철저히 소액만 빌려줬다. 적게는 10만 원, 많아도 150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래야 채무자가 이자가 비싸지 않다고 착각해 돈을 더 빌리기 때문이었다. 혹시 채무자가 돈을 빌리고 잠적해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상담팀 조직원은 실적을 채우려고 동시에 같은 피해자에게 경쟁적으로 연락하기도 했다. 돈을 잘 빌리고 갚는 피해자의 번호를 공유하며 다른 업체인 것처럼 접근해 ‘돌려막기’를 유도했다. 사채를 사채로 갚기 시작하면 그 빚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강 실장 조직에게 25만 원을 빌렸던 한 50대 피해자의 빚이 1억5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하루 수익 1억4000만 원에 이르는 거대한 불법사채 왕국을 세운 박성훈은 자신을 배신한 조직원들이 남긴 흔적 때문에 경찰에 쫓기게 된다. 가짜 총책까지 내세운 박성훈은 수사망을 피해 해외로 도주하려다 검거됐다. ‘강 실장’ 조직의 몰락과 법의 심판대에 선 박성훈의 이야기는 ‘강 실장의 사냥법(下)’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