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철

신희철 기자

동아일보 경영전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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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쉽게 읽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느낌을 주겠습니다. 머릿속에 정리가 안 된 기사, 팩트가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쓰지 않겠습니다.

hcshin@donga.com

취재분야

2024-05-18~2024-06-17
검찰-법원판결41%
남북한 관계20%
정당13%
사회일반10%
사건·범죄7%
대통령3%
정치일반3%
경제일반3%
  • 인수위, ‘여의도 저승사자’ 증권범죄합수단 2년만에 부활 추진

    대검찰청이 과거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사실상 부활시키는 방안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서울남부지검에 그 명맥을 잇는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협력단)이 지난해 9월부터 운영 중이지만 검찰 내부에선 직접 수사 기능이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원일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부대변인은 25일 “전날 대검찰청이 불법 공매도 근절 방안의 일환으로 협력단의 직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정식 직제에 포함돼 있지 않은 협력단을 대통령령인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명시된 직제상 조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2020년 1월 검찰개혁 명분으로 합수단을 해체했는데 당시에도 라임 펀드 사태 등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제기된 사건의 수사를 막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합수단 해체 후 금융위원회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은 사건의 처리 비율이 낮아지는 등 검찰의 증권범죄 대응 능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사와 수사관 등 인력을 보강하고 직접 수사 기능을 더하면 과거 합수단과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공약집에서 “미공개정보이용, 주가조작 등의 증권범죄 수사·처벌 전 과정을 개편해 제재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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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초원복집 사건’ 판례 25년만에 변경… “영업주 허락받고 출입, 주거침입죄 아냐”

    음식점에 영업주의 허락을 받고 출입했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992년 제14대 대선 직전 정부 기관장 등이 모여 지역 감정을 부추기려 한 사실이 도청으로 드러난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에 적용된 법리가 25년 만에 변경된 것이다.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화물운송업체 부사장 A 씨와 팀장 B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사람은 2015년 회사에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 뒤 중식당과 일식당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몰래카메라 설치 목적으로 음식점에 들어간 것은 영업주의 의사에 반한 것이므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각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음식점에 들어갔다”며 “몰래카메라 설치 목적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출입행위가 영업주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이 방 안에서 몰래 촬영한 것은 당사자 간 대화인 만큼 타인 간 대화 녹음을 금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1명의 다수의견 등을 통해 2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영업주의 승낙을 받은 만큼 주거침입죄 요건인 ‘평온 상태의 침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영업주가 피고인들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기존 대법원 판례도 변경됐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대선 직전 당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시장 등 지역 인사들을 모아 놓고 김영삼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한 방안을 논의한 사건이다. 대화를 정주영 후보 측이 몰래 녹음해 폭로했는데, 이후 영남표가 결집됐고 결국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정 후보 측 선거운동원들은 1997년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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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수위 “법무부-檢 따로 업무보고”…수사지휘권 충돌에 이례적 조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으로 여전히 필요하다.”(박범계 법무부 장관) “장관이 총장을 통해 사실상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검찰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대검찰청 관계자) 대검찰청과 법무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업무보고를 하루 앞둔 2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검찰 공약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그러자 인수위는 “법무부 장관이 당선인 주요 공약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대검 입장은 그와 다른 부분이 있다”며 24일 업무보고를 각각 받기로 했다. 역대 인수위에선 법무부가 대검 업무까지 한꺼번에 보고했는데 ‘법무부 따로, 대검 따로’ 업무보고를 하는 이례적 상황이 빚어지게 됐다.○ 수사지휘권, 직접 수사 확대 등 놓고 충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일종의 책임행정 원리에 입각해 있다”며 “아직 수사지휘권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검찰이야 ‘수사 잘할 테니 지휘하지 말라’고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일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어떻게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검은 윤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수사지휘권은 장관이 특정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다. 역대 4차례 행사됐는데, 현 정부에서만 3차례 행사돼 검찰 내부에선 수사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대검 의견은 김오수 검찰총장의 재가를 거쳐 법무부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과 법무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축소해 온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 확대에 대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은 공직자 범죄 등 6대 범죄만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여기에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대통령령을 통해 ‘4급 이상 공무원의 부패범죄’, ‘피해액 5억 원 이상의 경제범죄’ 등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제한했다. 대검은 “수사 범위를 제한한 결과 사건의 신속한 실체 규명이나 효율적 처리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박 장관은 23일 “수사를 많이 하는 것만이 검찰을 위해 좋은 길은 아니다”라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검찰의 독립적 예산편성권을 보장하겠다는 윤 당선인 공약에 대해서도 대검은 찬성하는 반면 박 장관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대검 따로 업무보고 당초 업무보고는 전례대로 24일 법무부 고위 관계자와 대검 간부가 함께 참석한 가운데 한 번에 실시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윤 당선인 공약에 대해 박 장관이 직접 반대 목소리를 내자 인수위는 23일 “법무부가 대검의 의견을 취합, 정리해 보고하게 되면 대검 의견이 왜곡될 수 있다”며 업무보고를 따로 받겠다고 했다. 법무부가 24일 오전 9시 반부터 한 시간, 이후 대검이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업무보고를 진행한다. 법무부에선 주영환 기획조정실장과 구자현 검찰국장이, 대검에선 예세민 기획조정부장과 권상대 정책기획과장 등이 보고자로 나선다. 한편 독립기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업무보고 대신 다음 주에 인수위와 간담회를 갖고 입장을 전할 방침이다. 공수처는 “공수처의 우월적, 독점적 지위 규정을 없애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전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조항을 없앨 경우 검찰 경찰 공수처가 같은 사건을 중복 수사하는 일이 벌어져 인권이 침해되고 수사 효율이 떨어질 것이란 논리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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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재판, 코로나에 확대… 1년새 4배로 늘어

    올 1월 19일 서울고법 민사12-3부에서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영상재판이 열렸다. 휴대전화 액세서리 제조사가 판매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변론기일에 피고 측 대리인이 부산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재판에 참여한 것. 이는 지난해 11월 민사·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법 개정 이전 민사의 경우 변론준비기일에서만 영상재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법 개정으로 민사에서는 변론기일, 형사에서는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영상재판이 가능해졌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및 영상재판 적용 범위 확대로 영상재판이 급속히 늘고 있다. 23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개정안 시행 후 11∼12월 두 달간 전국 법원에서 총 263건의 영상재판이 진행됐다. 전년 동기(63건) 대비 4배가 넘는 수치다. 올 1∼2월에는 이미 390건에 달해 지난해 상반기 총 건수(118건)의 3배가 넘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정 출석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고 코로나19로 인한 재판 지연도 막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판사와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 교도소 재소자의 증인신문, 구치소에 있는 피고인의 구속영장심사 등을 영상재판으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중앙지법 내에 대규모 영상재판실 추가 조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영상재판은 법정 출석을 꺼리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줄이는 것에도 활용되고 있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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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 “수사지휘권 폐지” 박범계 “필요” 정면충돌…인수위 업무보고도 따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으로 여전히 필요하다.”(박범계 법무부 장관)“장관이 총장을 통해 사실상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검찰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대검찰청 관계자)대검찰청과 법무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업무보고를 하루 앞둔 2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검찰 공약을 두고 정면충돌했다.그러자 인수위는 “법무부 장관이 당선인 주요 공약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대검 입장은 그와 다른 부분이 있다”며 24일 업무보고를 각각 받기로 했다. 역대 인수위에선 법무부가 대검찰청 업무까지 한꺼번에 보고했는데 ‘법무부 따로, 대검찰청 따로’ 업무보고를 하는 이례적 상황이 빚어지게 됐다.○ 수사지휘권, 직접 수사 확대 등 놓고 충돌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일종의 책임행정 원리에 입각해 있다”며 “아직 수사지휘권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검찰이야 ‘수사 잘할 테니 지휘하지 말라’고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일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어떻게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앞서 대검은 윤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수사지휘권은 장관이 특정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수사를 지휘·중단할 수 있는 권한이다. 역대 4차례 행사됐는데, 현 정부에서만 3차례 행사돼 검찰 내부에선 수사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대검 의견은 김오수 검찰총장의 재가를 거쳐 법무부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대검과 법무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축소해 온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 확대에 대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은 공직자 범죄 등 6대 범죄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여기에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대통령령을 통해 공직자 범죄 중에서도 ‘4급 이상 공무원의 부패범죄’ 등만 직접 수사할 수 있게 했다.대검은 “대통령령으로 수사 범위를 제한한 결과 사건의 신속한 실체 규명이나 효율적 처리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박 장관은 23일 “수사를 많이 하는 것만이 검찰을 위해 좋은 길은 아니다”라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검찰의 독립적 예산편성권을 보장하겠다는 윤 당선인 공약에 대해서도 대검은 찬성하는 반면 박 장관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대검 따로 업무보고당초 법무·검찰 업무보고는 전례대로 24일 함께 실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에 따라 예세민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업무보고에 함께 참석할 것으로 보고, 예 부장이 직접 검찰 의견을 전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윤 당선인 공약에 대해 박 장관이 직접 반대 목소리를 내자 인수위는 23일 “법무부가 대검의 의견을 취합, 정리해 보고하게 되면 대검 의견이 왜곡될 수 있다”며 업무보고를 따로 받겠다고 했다. 법무부가 24일 오전 9시 반부터 한 시간, 이후 대검이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업무보고를 진행한다.한편 독립기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업무보고 대신 다음 주에 인수위와 간담회를 갖고 입장을 전할 방침이다. 공수처는 “공수처의 우월적, 독점적 지위 규정을 없애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전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조항을 없앤다면 검찰 경찰 공수처가 같은 사건을 중복 수사하는 일이 벌어져 인권이 침해되고 수사 효율이 떨어질 것이란 논리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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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사무실의 변호사가 서울 재판 참여…영상재판 확대 넉달만에 4배로

    올 1월 19일 서울고법 민사12-3부에서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영상 재판이 열렸다. 휴대폰 액세서리 제조사가 판매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변론기일에서 피고 측 대리인이 부산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재판에 참여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민사·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같은 재판은 불가능했다. 법 개정 이전에는 민사소송의 경우 변론준비기일에서만 영상재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법 개정으로 민사에서는 변론기일, 형사에서는 공판준비기일까지 영상재판이 가능해졌다. 민사에선 원고와 피고 측의 합의 없이 한 쪽의 신청만으로도 영상재판이 열릴 수 있게 됐다. 영상재판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영상재판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23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개정안 시행 후 11, 12월 두 달 간 전국 법원에서 총 263건의 영상재판이 진행됐다. 전년동기(63건) 대비 4배가 넘는 수치다. 올 1~2월에는 총 390건에 달해 지난해 상반기 총 건수(118건)의 3배가 넘는 영상재판이 열렸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영상재판이 법정 출석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데 공감하는 판사들과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판 일정이 연기되는 일도 막을 수 있어 활용도가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재판은 법정 출석을 꺼리는 미성년 성폭력피해자의 증인신문 등 특수한 상황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올 1월 서울고법에선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 항소심이 영상재판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피고인 반대신문권 보장을 이유로 미성년 성폭력피해자의 영상 녹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하면서 피해자의 법정 출석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피해자가 서울고법이 아닌 거주지 인근 법원에 출석하도록 하고 영상 중계시설을 활용해 피고인과 분리된 상태에서 증인신문을 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미성년 성폭력피해자가 거주지 인근 법원뿐만 아니라 해바라기센터나 병원, 자택 등에서도 증인신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영상재판 활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으로 지난해 11월부터 형사재판에서 원격 증인신문이 가능해진 점도 영상재판 확대에 도움이 되고 있다. 기존에는 민사재판에서만 원격 증인신문이 가능했고, 형사재판에서는 성폭력피해자 분리 등 특수한 상황에서만 허용됐다. 이에 따라 지방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가 원격으로 서울에서 열린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하는 사례, 재판부가 구치소의 중계시설을 통해 구속기간이 만료돼가는 피고인의 구속영장심사를 진행하는 사례 등이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지방법원 법정에서 서울중앙지법의 재판에 참여하려고 하는 감정인이나 전문위원 등의 요청이 늘고 있다”면서 “영상재판 수요 증가에 대비해 중앙지법 내 영상재판 전용 법정을 대규모로 새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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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인사 발령 사고…제주지법 판사 2명 광주고법에 발령냈다 취소

    대법원이 지난달 인사 발령을 잘못 냈다가 뒤늦게 취소하며 혼선을 빚은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1일 지법 부장판사 이하 법관 정기인사에서 제주지법 합의부 소속 A 판사(사법연수원 42기)와 B 판사(42기)를 광주고법 제주원외재판부로 전보 발령했다. 광주고법 제주원외재판부는 1심에서 제주지법 합의부가 판결한 사건의 2심 판결을 담당하는 상급 법원이다. 제주지법은 전보가 이뤄질 경우 A 판사와 B 판사가 본인이 1심에서 심리했던 사건을 항소심 재판부에서 다시 맡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해 행정처에 알렸다.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은 판사가 동일한 사건 이전 심급 재판에 관여한 경우 이후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처는 뒤늦게 두 판사의 전보를 취소하고 다른 판사 두 명을 제주원외부로 전보 발령했다. 또 대구지법 소속 C 판사(42기)는 정기인사 당시 의정부지법으로 발령이 났지만 현재도 대구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행정처가 C 판사가 인사 당시 인사희망원에 ‘전보 희망’을 ‘전보 불희망’으로 변경 기재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뒤 인사발령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 같은 혼선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진해온 법원행정처 비법관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관 인사 업무에 대한 이해가 낮은 비법관 직원들이 인사를 담당하며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2020년 2월까지는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 총괄심의관과 심의관 등 판사 4명이 근무했지만 지난달 인사 당시엔 판사인 총괄심의관 1명과 일반직원인 인사담당관 3명이 근무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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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오수의 대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찬성” 법무부에 의견 전달

    대검찰청이 김오수 검찰총장(사진)의 동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으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까지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이번 주 예정된 법무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현안보고를 앞두고, 윤 당선인의 수사지휘권 폐지 입장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검의 의견은 김오수 총장의 동의를 거쳐 발송된 걸로 안다”고 전했다. 수사지휘권은 법무부 장관이 특정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를 지휘·중단할 수 있는 권한으로 검찰청법 제8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수사지휘권은 법 제정 이후 72년간 4번 행사됐는데, 이 중 3번이 문재인 정부에서 행사됐다. 검찰총장 시절 연이어 수사 지휘를 받은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반발했고, 대선 과정에서 검찰의 독립성을 해치는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대검찰청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구체적 사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폐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김 총장과 대검이 윤 당선인의 공약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박 장관이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장관은 14일에도 기자들과 만나 “수사지휘권은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실제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려면 국회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편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최근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사퇴하지 않고 ‘임기를 마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처장은 “초대 처장으로서 우리 처가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제 소임을 다하면서 여러분과 함께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선 이후 김 처장이 임기 완주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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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조카 잃은 후 1000일 하고도 68일…여전히 악몽의 웅덩이

    [안인득 방화살인, 그 후 1068일의 기록]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를 방문해 보세요. 인터랙티브 효과가 결합된 다큐멘터리 일러스트 형식으로 금세은 씨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또 늘었다. 금세은 씨(43)는 매일 10가지의 신경정신과 약 22알을 복용하고 있다. 추가된 약은 항우울제 0.5알과 불안, 경련을 완화하는 약 3알. 이제 하루에 알약 26개를 삼켜야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경남 진주시 경상국립대병원 신경정신과 진료실에서 세은 씨는 주치의 김봉조 교수와 마주 앉은 채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19년 11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2년 4개월. 알약 2만 개가 그의 몸 안에 쌓였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그날’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친다. 약은 순서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전신 떨림, 두통, 호흡곤란, 불면증을 잠시 멎게 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불면증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해서 약을 한꺼번에 다 먹었어요.”(세은 씨)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괴로우니 그렇지. 근데 약 한꺼번에 먹으면 절대 안 돼요.”(김봉조 교수) 세은 씨는 오늘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듣지 못했다. 진료실을 나온 그는 병원 1층 약국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멍한 눈으로 약사로부터 A4 용지 네 장에 달하는 복약지도서와, 약 봉투가 가득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악몽 같은 3년… “안인득 방치한 국가,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 10분 만에 달라진 삶1000일 하고도 68일 전, 2019년 4월 17일 전의 세은 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치위생학과를 나와 스물세 살 때부터 시작한 치위생사 일이 잘 맞았다. 환자 상담까지 도맡았다. “예전엔 사람 만나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어.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3남매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어머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편히 사는 게 세은 씨 소원이었다. 어머니를 위해 마흔 살까지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갚아가고 있었다. 매일 알약 26알로 버티는 생존자빗물만 봐도 ‘그날 핏물’ 트라우마… 20년 일했던 치위생사 결국 관둬“숨져가던 엄마 모습 아직도 생생” “가족 위해서 고생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좋은 옷 입고 편하게 살길 바랐지. ‘엄마, 이제 (통장) 플러스 된다. 쪼매만 기다려라’ 했는데….” 자칭 ‘일벌레’이자 효녀였던 세은 씨는 2019년 4월 17일,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 그날 오전 4시 25분, 경남 진주시 A아파트 303동. 조현병을 앓던 이 아파트 406호 주민 안인득(45)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미리 준비한 흉기를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휘둘렀다. 화재경보음에 잠에서 깨 비몽사몽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였다. 고작 10분 만에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숨진 5명 중 2명은 세은 씨의 가족이었다. 그는 불과 10분 사이 어머니 김모 씨(당시 65세)와, 딸처럼 예뻐했던 조카 금지윤(가명·당시 12세) 양을 잃었다. 세은 씨는 진주 방화·살인사건의 생존자이자 유가족이다.○ 웅덩이에 빠진 날세은 씨는 3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건 당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머니와 맥주 한 잔을 하고 오전 3시쯤 잠에 든 세은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소란에 눈을 떴다. “살려주세요!” 올케 차모 씨(44)의 비명이 들렸다. 세은 씨 오빠 금민수(가명·47) 씨 부부와 딸 지윤 양도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놀란 어머니가 복도로 뛰쳐나갔다. 5분 정도가 지나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세은 씨도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 뿌연 연기가 복도에 가득했다. 복도를 지나 방화문을 열자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경비원이 “수건 달라”고 외쳤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 수건을 챙겨 현관문을 다시 열자 바로 앞에 올케 차 씨가 서 있었다. “지윤이랑 어머니 죽는다! 신고해야 된다!” 차 씨도 안인득에게서 딸을 보호하다 옆구리를 흉기로 찔린 상태였다. 세은 씨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지금 아파트가 피바다예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요. 빨리 와주세요!” 비상계단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주민들을 지나 1층으로 내려온 그의 눈에 어머니와 지윤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어머니도 손녀 지윤이를 지키려다 부상을 입었다. “엄마 지혈을 (소방대원이) 저보고 도와 달랬어요.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지혈을 하는데 지혈이 안 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야….○ 빗물은 핏물이 됐다 세은 씨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 민수 씨네 가족은 비 오는 날엔 늘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사건 이후 비 오는 날은 세은 씨에게 공포가 됐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어느 날 나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비가 와서 문 앞에 물이 가득한 거라. 그걸 보는 순간 그날 복도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지.” 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년간 했던 치위생사 일도 그만둬야 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딸을 잃은 오빠 민수 씨의 삶도 여전히 2019년 4월 17일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민수 씨와 같은 통로에 살았다. 사건 당일, 문틈을 넘어오는 매캐한 연기에 잠에서 깬 민수 씨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그러곤 옆집 문을 두드려 이웃들을 깨웠다. 이웃들을 뒤따라 내려가던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딸과 어머니를 마주해야 했다.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딸)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연기 빼고 불났다고 문 두드리고…. 그게 제일 큰 실수라. 내가 미친놈이지.”○ 원망할 수 없는 이유민수 씨가 유독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민수 씨는 안인득의 형과 고등학교 친구였다. 민수 씨는 빵을 사다 주기도 하며 친구 동생을 챙겼다. 안인득 역시 처음에는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다. “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과자를 보따리로 사주고 한 놈이라. 조현병인 줄도 몰랐지.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근데 병이 심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본 기라.” 약도 먹지 않고 입원도 거부하며 안인득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사건 수개월 전부터 주민들을 향해 폭언을 하고 오물을 던졌다. “모두가 피해자” 국가에 손배소송안인득 형, 동생 입원위해 백방노력… 檢-警-동사무소 모두 책임 떠넘겨“조현병 환자가 왜 밉노?… 방치돼 있었던기 잘못이지” 사건 약 한 달 전, 안인득은 흉기를 사용한 폭행사건을 일으켜 경찰에 입건됐다. 동생을 걱정한 안인득의 형은 경찰서에 전화를 해 “조현병 환자인 동생을 강제입원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니 검사에게 문의하라”고 했다. 검찰청 민원실에선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법률구조공단은 “동사무소나 시청으로 가라”고 했다. 동사무소는 “강제입원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 그런 동생을 입원시키려 사방팔방으로 뛰었던 그의 형이자 자신의 친구. 민수 씨는 딸과 어머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원망할 수 없었다. ○ 국가에 책임을 묻다 사건 뒤 어려워진 생계보다도 힘들었던 건 누구도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경남지방경찰청 진상조사팀이 조사를 벌여 경찰 조치가 미흡했다고 인정했지만 관련 경찰 5명을 경징계하고 2명을 경고 처분하는 데 그쳤다. 갈 곳 없는 분노와 원망은 스스로를 향했다. 불면증과 불안 증세로 약을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술에 기대 하루하루를 보냈다.민수, 세은 씨 남매가 일상을 잃은 채 살아가던 2020년 봄,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한신경정신학회였다.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사건이 매년 반복되면서 학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선 상태였다. 학회는 중증정신질환자는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 개정을 위해 국가 대상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 달라고 했다. 소송을 위해 다시 사건을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남매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조현병 환자가 왜 밉노? 그 사람들도 아픈 사람이다. 방치돼 있었던기 잘못이지. 약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그 사람 가족까지 죄인이 되는 기고. 안인득도, 안인득 형도 피해자다.”(민수 씨) 세은 씨와 민수 씨 가족은 지난해 11월 8월 대한민국을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행정법원에 제출했다. “조금 괜찮아져서 소송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민수 씨가 답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소송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억울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 눈물의 웅덩이가 마를 때까지세은 씨는 매년 추석, 설날마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를 찾는다.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숨을 쉰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소장 제출 직후 아파트를 찾은 세은 씨는 아파트 정문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사건이 났던 303동을 향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검정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세은 씨는 한참 떨어진 309동 앞 벤치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303동을 바라보던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한참 동안 사진을 쳐다봤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사진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입구에 쓰러져 있던 사진은 없어.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 기억하게….” 오늘도 세은 씨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는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68일분의 고통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 ‘보호자 없는 정신질환자’ 관리 사각지대… “국가책임제 필요” 입원 거부자 경찰 호송 쉽지않고, 가족없는 1인가구는 더 어려워인권단체 “제도 개선 필요성 인정… 인권 살피고 예방 치료도 힘써야” 금민수(가명), 금세은 씨 가족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경찰이 법에 명시된 정신질환자 대응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범죄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차 공판 기일은 4월 21일로 약 한 달을 남겨두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본인 의사에 반해 입원시키는 ‘비(非)자의 입원’ 제도가 규정돼 있다. 하지만 금 씨 가족과 대한신경정신학회 등 관련 단체들은 이런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안인득은 △타인에게 위협을 가한 전력이 있고 △폭행, 욕설 등 공격적 성향이 지속된 경우로 비자의 입원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입원하거나 치료받지 못했다. 비자의 입원 중 행정입원은 전문의 진단이 필수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로 보이는 사람을 전문의에게 강제로 호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응급입원은 상황이 급박해 다른 절차가 불가능할 때에만 가능하다. 경찰이 인권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절차를 밟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가족에 의한 ‘보호입원’이 전체 비자의 입원 8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직계혈족, 배우자가 없는 경우 보호입원이 불가능하다. 직계혈족, 배우자, 민법상 후견인 중 2명이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학회 법제이사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정신질환자를 보살필 가족이 없어지고 있다.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비자의 입원 신청 권한을 광범위하게 열어둔다. 미국 32개 주에서는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일본도 ‘정신장애인 또는 그 의심이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신청 권한을 인정한다.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도 비자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극단적인 상황을 미리 방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박환갑 사무국장은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상담하고 외래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의 환자 관리 시스템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송, 치료 과정에 인권침해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 ‘웅덩이: 1068일의 기록’은 동아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기사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연결됩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기사 취재: 김재희 남건우 신희철 기자▽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남건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 ▽편집: 한우신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이트 개발: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동영상 편집: 김태희 인턴 김신애 CDQR코드를 스캔하면 기사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연결됩니다.}

    • 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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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분 만에 죽은 엄마와 조카…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안인득 방화살인, 그 후 1068일의 기록]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2/jinju)를 방문해 보세요. 인터랙티브 효과가 결합된 다큐멘터리 일러스트 형식으로 금세은 씨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이 또 늘었다. 금세은 씨(43)는 매일 10가지의 신경정신과 약 22알을 복용하고 있다. 추가된 약은 항우울제 0.5알과, 불안, 긴장, 경련 증상을 완화하는 약 3알. 이제 세은 씨는 하루에 알약 26개를 삼켜야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경남 진주시 경상국립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진료실에서 주치의 김봉조 교수와 마주 앉은 세은 씨는 약을 늘리자는 김 교수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2019년 11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 진단을 받은 그가 하루에 먹었던 알약은 20~30개 사이. 2년 2개월 동안 알약 2만 개가 그의 몸 안에 고스란히 쌓였다.베개에 머리만 대도 목 뒤까지 저릿해지는 편두통에 급격한 시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세은 씨는 며칠 전 같은 병원에서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었다. “뇌에 문제는 없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감이 든 것도 잠시. 2년 넘게 약을 먹었지만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내 그를 덮쳤다. 약은 순서를 바꿔가며 찾아오는 전신 떨림, 두통, 호흡곤란, 불면증을 잠시 멎게 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플 수 있어요? 이제 내 몸한테도 화가 나.” (세은 씨)“부작용 문제로 항우울제를 다 바꿨는데 2개월 넘게 기대하는 효과가 안 나와서…. 최근에 나온 약으로 바꿔 봅시다.” (김봉조 교수)“불면증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해서 약을 한꺼번에 다 먹었어요.” (세은 씨)“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괴로운 게 해결이 안 되니 짜증 안 나는 게 이상하지. 근데 앞으로 그렇게 약 한꺼번에 먹으면 절대 안 돼요.” (김봉조 교수)세은 씨는 오늘도 속 시원한 해결책을 듣지 못했다. 진료실을 나온 그는 병원 1층 약국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검정색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약사로부터 A4 용지 네 장에 달하는 복약지도서와, 약 봉투가 가득 담긴 검정색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엄청 심각한 병 걸린 사람 같죠? 이게 2주치야, 2주치. 2주 뒤에 와서 이만큼 또 받아야 돼.”주치의도 그런 세은 씨가 안쓰럽다. 김봉조 교수는 “시기에 따라 환자를 심하게 괴롭히는 증상이 달라질 뿐 처음 진료 때와 비교해 나아진 점은 없다”며 답답해했다. “환자가 겪은 외상이 워낙 크다보니 장기간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고, 다른 PTSD 환자에 비해 증상도 다양하고 깊게 나타납니다. 예전엔 잠을 못 자는 증상이 심했고 최근에는 두통, 시야 가림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요. 약을 바꾸며 다양한 시도는 하고 있지만 환자나 의사가 기대하는 효과에는 아주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10분 만에 달라진 삶2019년 4월 17일 이전의 세은 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일 중독’이었다. 치위생학과를 나와 스물세 살 때부터 시작한 치위생사 일이 잘 맞았다. 환자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거웠다. 일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치과 원장은 그에게 환자 상담도 맡겼다.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게 180도 변했어. 지금은 사람을 보자마자 꺼리기부터 하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도 잘 못 마주치겠고. 예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요. 지금은 내 자신이 바보 같아.”‘엄마는 내 삶의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끔찍한 효녀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3남매를 위해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엄마가 나이 들어서는 손에 물 묻히지 않고 편히 사는 게 세은 씨의 소원이었다. 엄마를 위해 세은 씨는 스물세 살부터 마흔 살까지 17년을 한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며 졌던 집안 빚도 다 갚아가고 있었다. “가족 위해서 고생만 했던 우리 엄마 이제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해외여행도 가고 좋은 옷 입고 편하게 살길 바랐지. 우리는 영세민이잖아. 빚 갚으면서, 그 와중에 되는대로 돈 모으면서 열심히 살았어. ‘엄마, 이제 (통장) 플러스 된다. 조매만 기다려라. 한두 달 안 남았다’했는데….”자칭 ‘일벌레’이자 효녀였던 세은 씨는 2019년 4월 17일, 180도 다른 사람이 됐다.그날 오전 4시 25분. 경남 진주시 A아파트. 조현병을 앓던 이 아파트 406호 주민 안인득(45)은 이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집 전체에 번지게 했다. 미리 준비한 흉기를 양손에 쥐고 비상계단에서 대기하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휘둘렀다. 화재경보음에 잠에서 깨 비몽사몽으로 계단을 내려가던 주민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얼굴, 목, 가슴 등에 상처를 입었다. 4시 32분, “누군가 흉기로 사람을 찌른다.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는 최초 112 신고가 접수됐다. 3분 뒤인 4시 35분 경찰 5명이 현장에 도착해 10분간 대치 끝에 안 씨를 검거했다.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뒤였다. 숨진 5명 중 2명은 세은 씨의 가족이었다. 그는 불과 10분 사이 ‘삶의 목표’였던 어머니 김모 씨(당시 65세)와, 딸처럼 예뻐했던 조카 금지윤 양(가명·당시 12세)을 잃었다. 세은 씨는 진주 방화·살인사건의 생존자이자 유가족이다.웅덩이에 빠진 날딸을 피지로 유학 보낸 세은 씨는 엄마와 함께 아파트 303동 304호에 살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엄마와 맥주 한 잔을 하고 17일 새벽 3시쯤 잠에 든 세은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소란에 눈을 떴다. 이내 “살려주세요!”라는 올케 차모 씨(44)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세은 씨 오빠 금민수 씨(가명·47)네 부부와 딸 지윤 양도 이 아파트 403호에 살았다. 놀란 엄마는 복도로 뛰쳐나갔다. 5분이 지나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세은 씨는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 뿌연 연기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어렴풋이 들리는 듯 했다. 복도를 지나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방화문을 열자 경비원이 있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수건 달라”고 외쳤다. 경비원 뒤로 보이는 복도 계단이 피로 가득했다. ‘뭔가 사달이 났구나.’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 화장실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수건을 여러 장 챙겼다. 다시 현관문을 열자 바로 앞에 올케 차 씨가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아비규환 속 차 씨의 울부짖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윤이랑 어머니 죽는다! 신고해야 된다!” 차 씨도 안인득에게서 딸을 보호하다 옆구리를 흉기로 찔린 상태였다. 세은 씨는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지금 아파트가 피바다에요. 조카랑 엄마도 칼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요. 곧 죽을 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신고를 마치고 비상계단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3층과 2층 사이엔 507호 주민 조모 씨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조 씨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3층을 지나 2층 계단으로까지 뚝뚝 떨어졌다. 그와 눈이 마주친 세은 씨는 몸에 수건을 덮어줬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을 전혀 움직이질 못했지. 그 상태로 나랑 눈이 마주친 거야.”1층으로 내려온 그의 눈에 엄마와 지윤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엄마도 손녀 지윤이를 지키려다 부상을 입었다. 2층 계단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을 민수 씨가 1층으로 옮긴 뒤였다. “우리 조카는 숨을 쉬고 있었어요. 근데 구조대원들이 지혈을 안 해. 지혈을 안 하니 피가 펑펑 나는 거야. 목에서도 나고 팔에도 나고. 내가 “지혈 안 하고 뭐 하냐”고 하니까 엄마 지혈을 (소방대원이) 저보고 도와 달래. 그래서 (엄마) 목을 받쳐갖고 지혈을 하는데 지혈이 안돼. 다리며 이마며 피가 흥건해. 엄마 눈을 봤는데 이미….”세은 씨는 지금도 자신의 손 안에서 온기를 잃어 가던 어머니의 피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빗물은 핏물이 됐다304호에 살았던 세은 씨와 엄마, 403호에 살았던 오빠 민수 씨네 가족은 1주일에 두 세 번은 함께 밥을 먹었다. 비 오는 날은 틀림없이 모였다. 땡초 넣은 ‘엄마표’ 된장찌개와 감자전, 삼겹살, 두루치기는 단골 메뉴였다. “비 오는 날 제가 ‘언니(올케), 비와요. 땡초전 묵으까?’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얼마 안 있어 새언니한테 전화가 와요. ”땡초 사오라.“ 그럼 퇴근길에 슈퍼 들러서 밀가루랑 땡초랑 맥주 사서 가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했는데…”가족들 맥주파티 하던 비 오는 날은 이제 세은 씨에게 공포가 됐다. 비 오는 날 물이 고인 웅덩이만 봐도 그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 복도에 창문이 없으니 비가 오면 다 들쳐요. 이사 오고 얼마 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어요.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물이 가득한 거야. 그걸 보는 순간 그날 복도에 고여 있던 피 웅덩이가 바로 떠올랐어요.”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20년 간 했던 치위생사 일도 그만 둬야 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 나는 피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 냄새를 맡으면 우리 엄마 응급처치 하면서 피가 펑펑 나던 그 모습이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해.” 사건 직전이었던 2019년 초 한 모임에서 세은 씨와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 김진석 씨(가명)는 사건 직후부터 그를 곁에서 지켰다. 호흡곤란, 전신 떨림, 해리성 기억장애, 불면증, 극심한 두통을 달고 사는 세은 씨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불치병인 것 같아요. 100미터만 걸어도 숨 차하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듯 놀라요. 식당 갔다 공황발작이 오기도 하고…. 당당하고 밝은 사람이었는데 모든 게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거죠.”김 씨는 세은 씨가 순간순간 기억을 잃는 증상을 가장 걱정한다. 주치의는 PTSD로 인한 해리성 기억장애라고 진단했다. 처음은 건망증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을 갔던 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지난해 8월에는 비 오는 날 한밤중에 두 시간동안 비를 맞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세은 씨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 한다. 자정 무렵 오빠 네에서 밥을 먹고 대리를 불러 집에 간다던 세은 씨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세은 씨 지인에게 연락을 돌리고 아파트 주변을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간에야 집 근처에서 비를 맞으며 멍한 눈으로 걷는 세은 씨를 발견했다. “세은아!”라고 불렀지만 세은 씨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날 김 씨 부축을 받아 집에 돌아온 세은 씨는 목 놓아 울었다.“증거 남기듯 사진을 찍는 게 습관이 됐어요. 어디 갔었는지도 기억 못 할 때가 있으니까 사진 보여주며 ‘우리 여기 갔었잖아’ 하려고. 둘 다 사진 찍는 것 정말 싫어하는데 계속 연습을 해요.” (김 씨)바꾼 이름, 바뀌지 않는 삶세은 씨의 오빠 민수 씨와 그의 아내, 첫째 딸은 2019년 말 이름을 바꿨다. ‘이름이 잘못 돼서 온 가족에게 이런 비극이 닥쳤나’ 하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명을 택했다. 늘 아빠 옆에서 잠을 자던 둘째 딸 지윤이,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 끓여놨다고 전화하던 어머니가 없다는 현실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이름은 바뀌었지만 민수 씨의 삶은 여전히 4월 17일에 멈춰 있다. 안인득은 그날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같은 층에 살았던 민수 씨네 집 현관으로 이내 연기가 슬금슬금 넘어왔다. 민수 씨는 아내와 딸 지윤이를 깨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수영선수인 첫째 딸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 집에 없었다.가족들을 내려 보낸 그는 옆집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알렸다. 다른 사람들 뒤를 따라 마지막에 내려왔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피를 흘리며 2층 계단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이 나서 가족들을 내려 보냈는데 애하고 할매(어머니)가 누워 있어. 같이 내려갔으면 내가 죽었어도 아는 살렸을 거 아이가. 내가 왜 연기 빼고 창문 열고, 불났다고 문 두드리고…. 그게 제일 큰 실수라. 내가 미친놈이지.”언니 금모 양(19)은 사건 1년이 지나고서야 가족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차 씨가 금 양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던 일요일이었다. 방에서 짐을 챙기는 금 양의 눈이 벌겠다. “울었나?” 묻는 엄마의 질문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차 안에서도 묵묵부답이던 금 양은 기숙사 앞에서 “도대체 왜, 뭐 땜에 그카노?”라는 엄마의 질문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다, 엄마. 운동장 뛸 때도 생각나고, 수영할 때도 생각나고, 밥 먹을 때도 생각난다. 그래서 미치겠다. 너무 힘들고 너무 보고 싶다. 미치겠다, 엄마.”원망할 수 없는 이유민수 씨는 안인득의 형과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사이였다. 진주는 동네가 좁아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알았다. 민수 씨는 빵을 사다 주기도 하며 친구 동생을 챙겼다. 안인득 역시 처음에는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다.“가(안인득)가 애들 먹으라고 과자를 보따리로 사 주고 한 놈이라. 그냥 낯을 좀 많이 가리는 줄 알았어. 내가 ‘밥 묵었나’ 하면 ‘예’ 하며 지냈어. 근데 조현병이 심해지니 (지윤이를) 못 알아 본 기라.”동생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안인득의 형은 민수 씨에게 ‘고함지르는 소리 안 들리드나?’ ‘시끄러운 일은 없었나?’라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술자리에선 “동생이 아픈데 약을 안 먹는다”며 걱정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엔 동생이 집에 있으면 연락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가면 문도 안 열어준다. 집에 있는지 확인해보고, 있으면 전화 좀 주라.” 형은 걱정을 하면서도 동생이 조현병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민수 씨는 “알겠다”고 하고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약도 먹지 않고 입원도 거부하는 동생을 두고 형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수개월 동안 주민들은 안인득의 오물투척, 폭행, 폭언 등으로 애를 먹고 있었다.안인득의 주요 타깃은 윗집인 506호 주민 최모 양(당시 19세)과 그의 숙모 강모 씨(57)였다. 안인득은 윗집에서 자신의 집에 벌레를 뿌린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2018년 9월부터 사건 전까지 다섯 번에 걸쳐 506호 현관문에 계란, 간장 등 오물을 투척했다. 직접 위협도 일삼았다. 2019년 2월 28일, 안인득이 출근을 하는 강 씨에게 계란을 던지고 욕설을 했다. 강 씨는 신고했지만 경찰은 “임대아파트라 이런 신고가 많다. 화해하라”고만 한 뒤 돌아갔다. 3월 10일, 안인득은 주차 시비가 붙은 사람의 얼굴을 가격하고 망치를 휘둘러 특수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형은 경찰에 “동생이 정신병력이 있다”고 알렸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 없이 안인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3월 12일과 13일, 안인득은 이틀 연달아 최 양을 따라가며 욕을 했다. 집에 들어가는 최 양을 뒤따라가 초인종까지 눌렀다. 최 양은 1급 시각장애로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뇌병변 장애로 몸의 반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고등학생이었다. 13일 강 씨가 경찰에 재차 신고해 “안인득이 더 이상 이런 짓을 못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안인득에 구두 경고를 주는데 그쳤다. 3월 말 안인득은 진주의 한 주방용품점에서 흉기를 샀다. 사건 당일 그가 주민들에게 휘두른 것과 같은 흉기였다.형은 연락이 닿지 않는 동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 걱정이 됐다. 4월 4, 5일 이틀에 걸쳐 안인득을 입건했던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동생을 강제입원 시킬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으니 검사에게 문의하라”고 답했다. 검찰청 민원실도 책임을 떠넘겼다. 직원은 “검사를 만나더라도 강제입원은 어렵다”며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법률구조공단은 “행정기관이 처리해야 한다. 동사무소나 시청으로 가라”고 했다. 동사무소에서는 “강제입원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건 당일인 4월 17일, 자정이 넘은 시간 안인득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샀다. 3시간 반 뒤, 안인득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안인득에게 집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최 양은 그날 안인득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세은 씨의 조카이자 민수 씨의 딸도, 두 사람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가족을 잃은 대가, 5000만 원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 그런 동생을 입원시키기 위해 사방팔방 뛰었던 그의 형이자 자신의 친구. 민수 씨는 딸과 엄마를 잃고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원망할 수 없었다. 분노와 설움은 스스로를 향했다. 하루에 소주를 6병 씩 비우는 날이 허다했다. 사건 직후 1년은 술과 정신과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매일을 보냈다.사건 후 나라가 피해자이자 유족인 세은 씨와 민수 씨에게 진 책임은 치료비 5000만 원이 전부다. 방화죄, 살인죄, 상해죄 등 강력범죄피해자는 연 1500만 원, 총 5000만 원 한도에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살해된 조카를 구하려다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은 506호 강 씨는 수술과 재활치료가 이어져 이미 5000만 원을 다 썼다. 강 씨의 딸은 때때로 전화로 안부를 묻는 세은 씨에게 늘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저희 같은 사람들은 정신과 상담하고 약 먹으면 돼요. 근데 506호 살던 숙모는 뇌수술을 또 해야 할 수도 있고, 손에 감각이 안 돌아와서 재활치료도 계속 받아야 한대요. 그런 분들은 치료비를 평생 받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나라에선 그 조차도 안 된다고 하대요.”부족한 치료비, 어려워진 생계보다도 힘들었던 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왜 주민들의 신고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는지, 왜 안인득은 제때 치료받지 못했는지, 속 시원히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경남지방경찰청 진상조사팀이 사건 이후 조사를 벌여 경찰 조치가 미흡했다고 인정했지만 관련 경찰 5명을 경징계하고 2명을 경고 처분 하는데 그쳤다. 잊지 않으면 고통스러웠다. 잊을 수가 없어 술에 기댔다. 세은 씨와 민수 씨가 일상을 잃고 시간의 흐름도 잊어가던 2020년 봄, 그들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한신경정신학회였다. 조현병 환자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학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선 상태였다. “지금 나라에서는 조현병 환자를 방치하고 있어요. 안인득처럼 치료를 거부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큰 환자는 경찰이나 지자체가 의사 판단을 받아 잠시라도 입원을 시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이런 사건이 또 나는 걸 막아야 합니다.”학회는 이들에게 국가 대상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 달라고 설득했다. 정신질환자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1년을 꼬박 고민했다. 변호사에게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를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돈 때문에 소송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서웠다.하지만 금 씨 남매는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조현병 환자가 왜 밉노? 그 사람들, 그냥 정신이 아픈 사람이다. 그렇게 될 때까지 방치돼 있었던 게 잘못이지. 약만 먹으면 괜찮았을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그 사람 가족까지 죄인이 되는 거고. 그걸 왜 못 막느냐는 거지. 안인득도 피해자다. 안인득 형도 피해자고.” (민수 씨)금 씨 남매는 국가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률사무소 법과치유는 지난해 11월 8월 대한민국을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행정법원에 제출했다. 사건 발생 2년 7개월 만이다. 원고는 민수 씨 남매 세 명, 민수 씨의 아내 차 씨 등 4명이다. 소송의 요지는 경찰이 법에 명시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아 범죄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조금 괜찮아져서 소송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민수 씨는 말했다. “괜찮아져서가 아니라 괜찮아지려고 소송을 하는 기다. 이렇게라도 해야 억울함이 풀릴 것 같으니까.”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을 때정신건강복지법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의 정신질환자를 자신의 의사에 반해 입원시키는 이른바 ‘비(非)자의 입원’을 허용하고 있다. 환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조치인 만큼 엄격한 절차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중 ‘행정입원’은 경찰이 정신과 전문의나 전문요원에게 요청해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지자체장이 절차를 거쳐 최장 2주 간 입원시키는 제도다. 긴급한 상황에는 경찰관과 의사 동의 아래 최장 3일 간 환자를 입원시킨 뒤 계속 입원이 필요한지 결정하는 ‘응급입원’ 제도도 있다. 안인득은 △타인에게 위협을 가한 전력이 있고 △폭행, 욕설 등 공격적 성향이 지속된 경우로 행정입원이나 응급입원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인득은 어떤 조치도 받지 않았다. 안인득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입원과 응급입원 모두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됐다.비자의 입원 중 행정입원은 유명무실하다. 행정입원에는 전문의 진단이 필요한데 정신질환자로 보이는 사람을 전문의에게 강제로 호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응급입원은 요건이 더 까다롭다. 자·타해 위험이 크고, 상황이 급박해 다른 입원절차가 불가능할 때만 가능하다. 당장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경찰이 인권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응급입원 절차를 밟기 어렵다.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족이 입원시키도록 하는 것이 논란을 피하는 길이기 때문에 행정입원은 입원시킬 가족이 마땅치 않은 경우로 제한된다. 응급입원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해 활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까다로운 절차 탓에 현장에서는 대부분 ‘보호입원’이 활용된다. 가족에 의한 보호입원이 전체 비자의 입원의 80~90%를 차지한다. 보호입원은 가족 중에서도 직계혈족, 배우자, 민법상 후견인 중 2명이 신청하고 의사 진단이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안인득처럼 혼자 살며 직계혈족이나 배우자가 없는 경우 적용이 불가능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한국 현실에서 점점 더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학회 법제이사는 “노부모 중 한 명과 살거나 직계 가족이 없는 조현병 환자들이 사각지대”라며 “1인 가구가 늘며 정신질환자를 보살펴줄 가족이 없어지고 있다.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지는 ‘국가책임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비자의 입원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광범위하게 열어둔다. 미국 32개주에서는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자의 입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일본도 ‘정신장애인 또는 그 의심이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 신청 권한을 인정한다. 영국은 신청권자를 정신보건전문요원 또는 환자의 가족 또는 친지로 규정하는데 직계가족이나 동거인은 물론 형제자매, 조부모, 조카 등이 포함돼 있다.일반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제안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법원이 입원을 결정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보장되고, 환자 본인이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의사를 법정에서 표현할 수 있는 절차도 포함돼 있다. 이동진 교수는 “비자의 입원은 강제조치인 만큼 국가가 책임을 지고 주도하고, 그 안에서 본인과 가족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래치료명령제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자체장이 정신의료기관장의 청구를 받아 비자의 입원 환자가 퇴원하는 대신 최장 1년까지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제도다. 퇴원한 환자가 아니더라도 의사 판단으로 위험한 환자는 외래치료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정신장애인 인권단체도 어쩔 수 없는 경우 비자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그런 상태까지 가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박환갑 사무국장은 “비자의 입원이 필요한 수준까지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미리 상담하고 외래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상태가 악화된 환자를 입원시키는 조치는 필요하지만, 폭력적인 병원 이송 과정, 환자를 폐쇄병동에서 강제로 치료하는 방식 등 문제점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 지적했다.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물웅덩이만 봐도 그 날이 떠오르지만 세은 씨는 매년 추석, 설날마다 사건이 발생한 A아파트 3단지를 찾는다. 엄마의 숨이 멎은 곳이지만 엄마가 마지막으로 숨을 쉰 곳이기도 해서다. “추석, 설날 때마다 와요.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니까…”지난해 11월 11일 아파트를 찾은 금 씨는 아파트 정문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사건이 발생했던 303동을 향했지만 그 앞까지 가진 못했다. “저 안에까지는 못 들어가요. 나 여기선 모자도 절대 안 벗어요.”시야를 차단하는 검정색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검정색 패딩 조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세은 씨는 303동과 한참 떨어진 309동 앞 벤치로 겨우 걸음을 옮겼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한동안 303동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그는 한참 동안 화면을 쳐다봤다. ‘그리움’이란 제목의 사진첩 폴더에 저장된 엄마의 생전 사진이었다. “우리 엄마 예쁘죠? 이렇게나 사진이 많은데 그날 아파트 입구에 쓰러져 있던 사진은 없어. 나라도 찍어 놓을 걸… 엄마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게 사진이라도 찍을 걸…”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 피지로 유학을 간 딸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머리 많이 길었네. 이제 진짜 숙녀 같다, 숙녀. 다 컸네.”세은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깨를 훌쩍 넘긴 머리를 매만지는 딸의 모습이 세은 씨는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어느덧 13살이 된 딸을 한국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현재 건강 상태로는 딸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세은 씨의 소원은 소박하다. 딸과 함께 살면서 좋아했던 치위생사 일을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라도 몸이 버텨줬으면 좋겠어. 지금 몸 상태로는 운전도 제대로 못 하니까.” 올해 2월 설 세은 씨는 아파트를 가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남긴 장소에 가면 병세가 악화될 수도 있다는 주치의의 말 때문이었다. 대신 엄마와 조카의 유골함이 모셔져 있는 진주 응석사를 세 번이나 찾았다.1000일이 지나도록 눈물의 웅덩이는 마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세은 씨에게는 키워야 할 딸이 있고,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야 할 가족이 있다. 오늘도 세은 씨는 그날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이들이 빠졌던 웅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1000일 분의 고통을 다져 길을 고르고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 ‘웅덩이: 1068일의 기록’은 동아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기사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 사이트(original.donga.com/2022/jinju)로 연결됩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기사 취재 : 김재희 남건우 신희철 기자▽사진·동영상 취재 : 송은석 남건우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 ▽편집: 한우신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이트 개발: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동영상 편집: 김태희 인턴 김신애 CD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남건우 기자 woo@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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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강원랜드 채용비리’ 염동열 前의원 징역 1년 확정

    ‘강원랜드 채용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염동열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염 전 의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17일 확정했다. 강원랜드 소재지 강원 정선군이 지역구였던 염 전 의원은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강원랜드 1, 2차 교육생 채용 과정에서 명단을 전달하는 방식 등으로 지인과 지지자 자녀 등 40여 명을 부정 채용시킨 혐의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1차 교육생 10여 명 채용과 관련한 일부 혐의만 유죄로 판단하고, 나머지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염 전 의원이 보좌관을 통해 강원랜드 측에 청탁 대상 명단을 전달해 이 중 일부가 실제로 채용된 점, 이로 인해 채용담당자 등의 업무를 방해한 점이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채용 청탁 행위가 국회의원의 직무권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직권남용죄는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염 전 의원의 항소를 기각했고, 대법원 역시 원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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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취 논란’ 김오수 “법-원칙따라 임무수행”

    김오수 검찰총장(사진)이 16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날(15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서 “거취를 결정하라”며 압박하자 하루 만에 진화에 나선 것이다. 김 총장은 이날 오전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검찰총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음”이라는 27자짜리 입장문을 냈다. 이를 두고 외부 사퇴 압박이 계속될 경우 검찰 조직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조기 차단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부장검사는 “정부가 교체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낼 수 있는 정제된 메시지를 낸 것 같다”며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한 대검 간부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제기된 사퇴 주장이 더 힘을 받기 전에 입장을 명확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 안팎에선 이날 입장문에 거취에 대한 언급이 없는 만큼 김 총장이 내년 5월 말까지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후 정권교체기에 있던 총장 5명은 모두 새 정부 출범 이후 자진 사퇴했다. 김 총장도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주변에 거취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장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 다음 날인 10일 대검 간부회의를 한 차례 주재한 이후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한편 윤 당선인과 각을 세웠던 친여권 성향 검사들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대검 안팎에선 윤 당선인의 징계를 주도했던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10일 총장 주재 간부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이번 주에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접속하지 않는 등 이상 기류를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한 감찰부장은 “10일 출근해 만난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간부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라며 “14일 부산지검 사무감사 때문에 외근을 했다가 대검에 복귀했을 뿐, 이번 주 계속 정상 출근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 등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에 대한 감찰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자리를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 담당관은 13일 페이스북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았고 버틸 만하니 감사하며 계속 가 볼 각오”라고 했다. 윤 당선인 징계 당시 검찰국장이었던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과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윤 당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김관정 수원고검장,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윤 당선인에 대한 징계 청구 실무를 담당했던 박은정 성남지청장 등도 현재 정상 출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16일 “그동안 뭉갠 수사에 대해 정확하게 사과하고 새로운 결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 불신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라며 김 총장을 비판했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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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성동 “김오수, 스스로 거취 정해야”… 검찰총장 퇴진론 논란

    두 달 뒤 집권여당이 되는 국민의힘 내에서 김오수 검찰총장 퇴진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다만 첫 검찰 출신 대통령인 윤석열 당선인은 김 총장의 남은 임기를 지켜주겠다는 뜻을 주변에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내건 윤 당선인은 헌법 정신을 강조하며 원칙론을 펼치되, 국민의힘이 대신 나서 김 총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윤 당선인이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6월 취임한 김 총장은 9개월째 근무 중이다.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이다. ○ ‘윤핵관’ 권성동 “스스로 거취 정해야” 국민의힘에서 김 총장의 퇴진론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맏형 격인 권성동 의원(4선·강원 강릉)이다. 권 의원은 15일 MBC 라디오에서 “김 총장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도 “윤 당선인은 (김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거나 종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장동 수사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며 “앞으로 자신이 검찰총장으로서 공명정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각오와 의지가 있으면 임기를 채우는 것이고 지금까지와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과 상의한 게 아니라 100% 나의 개인적 견해”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도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내에서 논의한 적은 없지만 (김 총장의 퇴진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며 “김 총장은 애초 검찰총장으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 원내대표는 “‘그 사람’은 감사원 감사위원으로도 제청되지 못할 만큼 정치적으로 편향적 논란이 있었던 인물”이라며 “검찰총장으로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인데 이런 잘못을 덮어두고 갈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의 자진 사퇴를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다만 윤 당선인의 최측근인 권 의원과 김 원내대표의 강경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야권 안팎에선 윤 당선인이 김 총장의 거취에 대해 직접 거론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윤 당선인 본인이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검찰총장직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 뒤 인사권자가 되는 윤 당선인이 직접 김 총장의 거취를 언급하거나 압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 檢 안팎에서도 엇갈리는 ‘김오수 거취’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도 반응이 엇갈린다. 정치적 외압으로 총장 임기를 마치지 못했던 윤 당선인이 김 총장의 임기를 보장해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현 정부에서 임명된 김 총장이 임기를 채울 명분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한 부장검사는 “정권교체 때마다 총장이 물러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검사 시절 검찰의 독립성을 강조했던 윤 당선인이 소신을 지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이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등을 지휘하며 내부 신망을 잃은 상태”라며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고 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12월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뒤 정권이 6번 바뀌는 동안 전임자가 임명한 검찰총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고 새 정부에서 임기를 마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김 총장도 본인의 거취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직 고검장은 “김 총장은 취임 전부터 정권이 교체되면 임기가 1년에 불과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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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수습기간도 퇴직금 산정에 포함해야”

    수습기간을 거쳐 채용됐다면 퇴직금 계산 시 수습기간도 반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 씨가 B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1999년 12월 1일부터 B사 수습사원으로 1개월을 보낸 A 씨는 2000년 1월 임시직으로 채용됐고, 2001년 8월부터 2018년 3월 31일까지 정규직 사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했다. 문제가 된 것은 B사의 보수 규정이었다. 규정상 2000년 1월 1일 이후 입사자에겐 퇴직 당시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퇴직금을 산정하는 ‘퇴직금 단수제’가 적용되고, 이전 입사자에겐 단수제 산정 금액에 근속연수에 따라 일정 비율을 곱해 더하는 ‘퇴직금 누진제’가 적용된다. B사는 A 씨가 2000년 1월 입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단수제를 적용한 퇴직금을 지급했다. 이에 A 씨는 1999년 12월 1일 입사한 것으로 봐야 하니 누진제를 적용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1, 2심은 수습기간의 성격에 대해 “수습기간은 ‘채용 확정’이라기보다 일종의 ‘실무전형’에 해당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습기간은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기간”이라며 “수습기간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근로기간에 포함된다”고 밝혔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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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합법 가장해 정적 통제한 민정실 폐지”… 첩보수집 유혹 차단

    “박근혜 정부도, 문재인 정부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문제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민정수석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았다고 본다.” 윤 당선인이 14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 방침을 거듭 밝히자 윤 당선인의 측근들은 이런 반응을 내놨다. 과거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오가며 각종 비위 첩보를 보고받고 수집했던 민정수석실을 윤 당선인이 검사 시절 수사하며 가졌던 문제의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 “민정 라인이 수집한 정보를 국정 운영에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당선인 스스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 尹, “누구보다 민정라인 문제 몸소 경험”윤 당선인이 이날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등과 가진 첫 차담에서 민정수석실 폐지를 거듭 강조한 것은 민정수석실 개혁이 청와대 개혁의 요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과거 사정(司正) 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라며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김영삼,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를 하면서 청와대에 보고했던 경찰 정보라인을 일컫는 ‘사직동팀’을 직접 거론하며 “(윤석열 정부에)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여기에 윤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 운영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직접 수사하거나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 당선인은 민정 라인이 법무부를 통해 수사에 외압을 끼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그의 동향은 당시 국가정보원 국내 파트의 주요 관심 사안이기도 했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이 민정 라인에서 무마되는 과정 전반을 수사했다. 여기에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에서는 울산 지역에서 생성된 비위 첩보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관계자에게 전달된 뒤 ‘청와대 첩보’ 형태로 둔갑되는 과정도 지켜봤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윤 당선인은 민정수석실이 검경 위에 군림하는 비정상적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구상을 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윤 당선인의 한 측근은 “청와대에서 특정인의 비위 첩보를 요구한 경우도 있고, 하급 기관에서 먼저 대상자를 찍은 뒤 비위 첩보를 민정 라인에 상납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굳건했던 민정수석실을 윤 당선인이 직접 초반부터 정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 민정수석실 폐지를 천명해 “검찰총창 출신 대통령이 검찰 공안 정국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 일각의 우려를 잠재우려는 의도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인사검증 전문 기능 신설 검토”민정수석실이 없어지면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공직자 특별감찰반 등도 폐지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 인사나 대통령 친인척 외의 인사들을 청와대가 감찰하는 건 감사원이나 부처 자체 감찰과 중복되는 측면도 있어 이번 기회에 청와대 특별감찰반이 정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더라도 인사 검증, 법률 보좌 등의 역할을 맡을 조직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공석이었던 특별감찰관도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현재 민정비서관이 맡고 있는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특별감찰관이 맡게 된다면 민정수석실이 없어진다 해도 특별한 업무 공백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장관석 기자 jks@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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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法 진보벨트’ 변할까… 김명수, 임기중 대법관 3명 제청 가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구축한 대법원의 ‘진보벨트’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현재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 중 8명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데 윤 당선인이 향후 대법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법관은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추천하지만 최종 임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임기가 내년 9월까지인 김 대법원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총 3명의 대법관을 제청하게 된다. 올 9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재형 대법관을 시작으로 내년 7월 조재연, 박정화 대법관의 후임을 윤 당선인에게 추천해야 한다. 대법관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복수의 후보자를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면 이 중 1명을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관례상 대통령과 대법원장은 후임 대법관 인사를 사전에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장이 추천위에서 올라온 명단과 자신의 의견을 대통령에게 전한 다음,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최종 후보자를 정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교체 후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대법관 인사를 제청할 때 후임 대통령과 의견 차를 보이는 경우가 생긴다. 과거에도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10년 김영란 대법관 후임 후보자로 당시 이상훈 법원행정처 차장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 대법원장은 2011년 양승태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 차장을 다시 제청해 관철시켰다.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 이 대법원장이 이상훈 후보자를 제청하는 데 이례적으로 열흘이나 걸렸다”며 “당시 이 대법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다만 이 대법원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차한성 양창수 민일영 등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 제청하며 임명권자의 뜻을 존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김 대법원장을 사법부 수장에 임명하면서 대법원에 ‘진보벨트’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법원장 임명 후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다수 임명되면서 현재 △인권법연구회 출신의 김상환 오경미 대법관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노정희 박정화 이흥구 대법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의 김선수 대법관 △젠더법연구회 회장 출신 민유숙 대법관 등 8명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은 인적 구성이 한쪽으로 기운 탓에 편향된 대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 때문에 윤 당선인과 새 청와대가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하려 할 경우 진보 성향인 김 대법원장과 의견 차를 보이며 파열음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 20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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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표후 투표지 촬영-훼손땐 형사처벌…취학아동 기표소 입장 금지

    3·9대선 투표 당일 유권자들이 받게 되는 투표용지는 어떤 경우에도 훼손하거나 촬영·전송해서는 안 된다. 하급심에서 확정된 판례를 보면 투표소에서 벌인 순간의 실수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기표한 ‘투표지’나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훼손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특히 기표를 마친 투표지 말고도 빈 투표용지나 무효표를 훼손하는 행위 역시 유죄가 인정될 수 있다. 2014년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교육감 선거에서 투표용지에 기표를 한 뒤에 후회가 돼 투표용지를 다시 달라고 했다가 직원이 들어주지 않자 단지 투표를 무효화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투표지를 찢은 A 씨에게 벌금 250만 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춘천지법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초등학생 이상인 아들을 기표소에 데리고 들어간 탓에 투표지가 무효가 되자 구기고 찢어버린 B 씨에게 벌금 25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기표소 안에서 투표지를 촬영하는 행위 역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투표지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거나 메신저로 전송하면 투표의 비밀침해죄가 적용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져 형량이 올라간다. 2018년 서울남부지법은 6월 지방선거에서 자신이 투표한 투표지를 기표소 내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단순히 집에 있는 딸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려고 투표지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전송한 C 씨에게 벌금 50만 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다만 기표 전 투표용지를 촬영하거나 전송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례가 엇갈리고 있다. 2012년 대구지법은 4월 총선에서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촬영한 뒤 SNS에 올린 D 씨에게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다. 반면 2017년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5월 대선에서 휴대전화로 투표용지를 촬영해 기소된 E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지가 아닌 투표용지를 촬영한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따로 없고, 공직선거법상 투표지는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기표를 마친 것으로 해석되기에 E 씨가 투표지를 촬영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었다. 선관위는 질서 유지를 위해 원칙적으로 투표소 내부에서는 모든 촬영을 금지한다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기표소 안에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와 함께 들어가는 것은 금지된다. 이 경우 공개된 투표지로 간주돼 투표지가 무효화될 수 있다. 투표소로부터 100m 이내에서 사람들에게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공직선거법상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김태성기자 kts5710@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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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명인간 하은이’ 없도록… 출생통보제 도입한다

    정부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안 해 ‘투명인간’으로 지내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출생 사실을 신고하게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생후 2개월 만에 숨졌지만 출생신고가 안 돼 10여 년 후에야 사망 사실이 드러난 ‘하은이(가명)’ 이야기를 동아일보가 2019년 보도한 지 약 3년 만이다. 법무부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4일 국회 제출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 개정안은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의 장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어머니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신생아 성별과 출생일시 등을 의무적으로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자체장은 의료기관 통보를 토대로 부모가 출생신고를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신고가 안 된 경우 지자체장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을 기록하게 했다. 동아일보가 2019년 1월 하은이의 죽음이 10여 년 만에 밝혀졌다는 내용을 보도한 후 출생통보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0년 5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6월 관련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행법에서 출생신고는 우선적으로 부모가 해야 하고 불가피한 경우 친족이 대신 할 수 있다. 의사와 조산사는 부모 등이 출생신고를 안 할 경우에만 신고할 수 있다. 출생신고가 안 되면 주민번호를 부여받을 수 없다. 국가가 아이들의 존재를 모르다 보니 영유아 예방접종도 못 받고 취학 연령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정신적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민단체는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최소 8000명에서 최대 2만 명가량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법무부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교육 의료 복지 등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신생아가 의료기관에서 태어나는 비율이 2020년 기준으로 99.6%에 달하는 만큼 출생신고 누락으로 인한 아동 인권 침해를 현격하게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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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 직원들 ‘통상임금 개별소송’ 1심 승소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며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낸 직원 2446명에게 총 479억여 원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1인당 평균 1960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판사 마은혁)는 이달 중순 기아차 일부 직원이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임금분을 돌려달라며 낸 ‘2차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앞서 기아차 노동조합은 2008년부터 2011년 10월까지 시기를 상대로 한 1차 임금 소송과 함께 2차 소송을 진행했는데 항소심 패소 이후 사측은 노조와 소송 취하를 전제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기로 특별합의했다. 1, 2차 소송에서 특별합의를 거부한 직원들은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 이 중 1차 소송에 참여한 직원들은 2020년 8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고 2차 소송에 참여한 이들이 이번에 승소한 것이다. 쟁점은 이미 노조가 대표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했는데도 다른 직원들이 개별소송을 낼 수 있는지였다. 기아차는 “원고들이 대표소송에 참여했으므로 개별소송을 내지 않기로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개별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하며 원고 측 주장을 인정했다.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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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 “尹, 100% 대장동 몸통”…野 “李가 ‘그분’ 곧 드러날 것”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3·9대선 막바지까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을 두고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겨냥해 “윤석열 게이트”라고 주장하고, 국민의힘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향해 “이재명 게이트”라고 반발하고 있다. 여야의 공방 속에 일각에서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현직 대법관이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후보는 23일 MBC 라디오에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사건은 ‘윤석열 게이트’다. 윤석열이 몸통이라고 100%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의혹에 대해 이 후보가 “윤석열 게이트”라고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이 후보는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과 관련해서는 “여태까지 ‘그분’이 저라고 (국민의힘이) 계속 몰아붙였다”며 “‘그분’이 현직 대법관이란 게 확실히 드러나서 그것을 문제 삼으니 (윤 후보가) 당황했던 것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21일 TV토론에서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게 지금 확인이 돼 보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대법관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만배 씨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단 한 번도 만난 일이 없고 일면식도, 단 한 번도 통화를 한 적도 없다”며 의혹을 정면 부인했다. 그는 김 씨가 자신의 딸에게 주거지를 제공했다는 정영학 회계사 녹취록 내용에 대해서도 “첫째 딸은 2016년 분가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둘째 딸은 작년에 분가해서 (경기 용인시) 죽전에 살고 있다. 막내딸은 계속 함께 살고 있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조 대법관은 이 후보를 겨냥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방송 토론에서 한 후보자가 직접 현직 대법관 성명을 거론했다”며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또 “타인의 명예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를 향해 “대장동 의혹이 ‘이재명 게이트’라는 명제는 국민들의 합리적 의심”이라며 “3월 9일 정권이 교체되면 대장동 ‘그분’은 금방 드러날 것”이라고 성토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장관석 기자 jks@donga.com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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