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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서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작황 부진으로 인한 공급 쇼크 탓이다. 글로벌 제과업체는 줄줄이 초콜릿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값싼 초콜릿 시대가 저물어간다. ● 카카오 가격, 1년 새 3배로 뛰었다 12일(현지 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카카오 선물 가격(5월 인도분)은 t당 7974달러. 지난달 초 사상 처음 t당 5000달러를 넘어섰는데, 이제 8000달러가 코앞이다. 올해 들어 가격이 91%, 1년 전과 비교하면 205% 급등했다. 카카오 가격이 오름세를 탄 건 지난해부터. 최근 헤지펀드까지 가세하면서 오름폭을 더 키웠다. 씨티그룹은 “카카오 가격이 1만 달러까지도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제과업계는 비상이다. 비용 압박이 커지자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미국 허쉬의 마이클 벅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카카오 가격 상승으로 올해 수익 성장이 제한될 것”이라며 “제품 가격 조정을 포함한 모든 도구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오레오로 유명한 몬덜리즈의 디르크 판더퓟 CEO 역시 지난달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멈추지 않고 있다”며 “올해도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은 꼬투리병과 엘니뇨의 습격 카카오 가격의 기록적인 급등은 서아프리카 지역의 심각한 공급 부족 탓이다. 세계 1, 2위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카카오 수확량은 1년 전보다 30% 넘게 급감했다. 두 나라는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카카오 흉작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상기후와 전염병이다. 지난해 여름 이 지역은 카카오나무에 치명적인 곰팡이병인 ‘검은 꼬투리병’이 농장을 휩쓸었다. 장마 기간 평년의 두 배에 달하는 비가 퍼부어 물난리를 겪은 탓이다. 이어 겨울엔 엘니뇨가 닥쳤다.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남은 카카오나무까지 시들게 했다. 내다 팔 카카오가 부족하다 보니 카카오 가격이 치솟아도 이들 수출국엔 돌아오는 게 없다. 보통 카카오는 공급 시점보다 12개월 앞서 수출계약을 맺는데,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이번 시즌 선도계약 판매를 중단했다. 작황 부진으로 기존 계약 물량마저 채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 투자하기엔 너무 가난한 농부들 국제카카오기구는 “현재 진행 중인 공급 부족 사태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그 구조적 문제의 중심엔 가난한 카카오 농부들이 있다. 코트디부아르는 약 100만 명, 가나는 80만 명의 소규모 자작농이 카카오를 재배한다. 연구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민 중 56%, 가나는 58%가 세계은행 절대빈곤선(하루 소득 1.9달러) 이하에 머문다. 카카오나무는 한번 검은 꼬투리병에 걸리면 되살릴 길이 없다. 미리 병충해와 기후변화에 취약한 수십 년 된 늙은 나무를 뽑아내고, 병에 강한 신품종으로 대체해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만약 감염됐다면 병든 나무를 얼른 잘라내고, 살균제를 뿌리고, 새 묘목을 심는 것만이 방법이다. 그러나 가난한 농부들은 묘목이나 살균제, 비료를 살 돈이 없다. 예방은커녕 복구도 불가능하다. 가나의 한 카카오 농부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카카오 농사를 시작한 이래 농장이 이렇게 심하게 공격당한 건 처음”이라며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농장에 다시 투자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수년간 이어질 공급 부족 카카오는 두 나라 수출의 30∼40%를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양국 정부는 뒤늦게 카카오 농장 재건에 나섰지만 쉽지 않다. 가나 카카오위원회 관계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생산을 정상화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콰도르, 브라질 같은 남미의 카카오 생산국은 이를 기회 삼아 카카오 재배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새로 심은 나무가 자라 카카오 열매를 수확하려면 3년이 걸린다. 앞으로 수년 동안 전 세계 카카오 공급이 부족할 거란 뜻이다. 전문가들은 카카오 가격 상승세가 더 이어질 거라고 본다. ING의 워런 패터슨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카카오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시장이 균형을 되찾기엔 충분치 않다”면서 “상당한 수요 감소가 나타나는 수준까지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중국발 융단폭격, 차이나커머스의 공습, 초저가 싹쓸이, 미친 가성비…. 요즘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이 쇼핑앱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1년 반 만에 전 세계 50개국에 진출해 유통·광고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테무(Temu)’입니다.테무가 왜 이렇게 잘나가는지 알려면 모기업 핀둬둬(拼多多)가 어떤 기업인지를 알아야죠. 을 통해 핀둬둬의 성장 역사를 한번 정리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핀둬둬·테무 심화편’입니다. 관대함과 무자비함의 양면성,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핀둬둬와 테무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전 세계 휩쓰는 ‘테무 쇼크’각국이 중국 직구 택배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지난해 중국 직구 거래액이 전년보다 121% 급증하면서, 처음으로 미국 직구를 제쳤고요(중국 직구 3.3조원, 미국 직구 1.8조원). 미국에선 관세면제 혜택을 받는 800달러 미만 소포 물량이 지난해 10억개가 넘어서, 2019년의 두배 수준이었다는데요. 그중 3분의 1이 테무 또는 중국 패스트패션 브랜드 쉬인(Shein)의 택배였다죠.택배물량 폭증으로 페덱스 실적을 웃게 하고, 온라인 광고 폭탄으로 메타플랫폼 주가를 뛰게 만든 테무. 2022년 9월 해외시장 중 처음으로 미국에 앱을 론칭한 뒤, 불과 1년 반 만에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함 50개국으로 영역을 넓혔는데요. ‘도대체 테무와 핀둬둬는 누구인가’에 대한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옵니다.테무와 핀둬둬의 급부상에 가장 놀라는 건 중국 언론입니다. ‘싸구려 저질 제품 파는 쓰레기 앱’이라며 중국에서도 멸시당했던 핀둬둬이건만. 어떻게 창업 9년 만에 전자상거래의 리더로 올라서게 됐는지를 두고 각종 분석이 이어지는데요. 특히 지난해 11월 한때나마 핀둬둬 시가총액이 알리바바마저 제쳤던 게(이후 다시 역전)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를 한탄하는 알리바바 직원의 인트라넷 게시글에 마윈 창업자가 직접 댓글을 달았을 정도(댓글 내용은 ‘AI 전자상거래 시대가 이제 막 시작했고, 이는 누구에게나 기회이자 도전입니다. PDD(핀둬둬)의 지난 몇 년간의 결정과 노력을 축하해야 합니다’).이 정도면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핀둬둬(또는 테무) 쇼크’가 닥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런데 핀둬둬의 성공엔 대단한 비밀이 숨어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비결은 매우 단순하죠. 바로 가격입니다. 다른 경쟁사는 물론 소비자 기대치마저 뛰어넘는 초저가.싸게 팔면 많이 팔리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가격은 거의 모든 소비 결정에 있어 핵심 요소이죠. 제품 가격이 훨씬 더 싸진다면 확실히 잘 팔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어떤 물건이 안 팔린다면 가격이 충분히 저렴하지 않다는 뜻이겠죠.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 이런 뻔한 전략을 다른 데는 쓰지 않는 걸까요. 왜 유독 핀둬둬만 그렇게 계속 싸게 팔 수 있을까요. 바로 핀둬둬만큼 ‘낮은 가격’에 대해 진심으로 올인한 전자상거래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낮은 가격에 진심이다구글 엔지니어 출신 황정(黃崢, Colin Huang)이 중국에서 핀둬둬를 창업한 2015년을 생각해 볼까요. 당시 중국은 이미 전자상거래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알리바바(티몰)나 징둥닷컴 같은 중국의 초대형 쇼핑 플랫폼은 ‘소비 업그레이드’가 추세라고 봤죠. 그래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입점시키거나, 배송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요즘 한국의 온라인쇼핑몰과 비슷한 전략이죠.하지만 핀둬둬는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어떻게 더 가격을 낮출까’만 고민했죠. 핵심 타깃고객은 이른바 ‘제5 순환도로 바깥’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베이징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 순환도로 바깥에 사는 이들, 즉 아직 온라인쇼핑을 누리지 못한 저소득층과 농촌인구의 잠재력에 주목한 겁니다.그렇다고 이런 저가정책이 돈 없는 소비자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황정 창업자는 과거에 핀둬둬의 가성비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죠. “제 어머니는 식료품이나 휴지를 살 땐 여전히 1~2위안 차이를 신경 쓰면서도 고급 아이폰을 구매합니다. 소비능력과는 관련 없습니다. 가성비는 보편적인 요구사항입니다.”‘더 저렴하게 사는 것=소비자의 본능’임을 간파한 건데요. 그게 바로 테무가 부자나라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소비자는 분명 중국보다는 품질에 더 까다로울 가능성이 크지만, 그들도 가격에 민감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황정의 표현대로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망고 한 상자를 9.9위안(1800원)에 사려는” 소비자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가성비를 향한 소비자 열망은 다르지 않다는 걸 테무가 증명하고 있습니다.벌금으로 단련한 공급망저가정책의 성패는 공급망에 달렸습니다. 제품을 싸게 만들어 팔 수 있는 공급업체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죠. 중국에 있는 수많은 중소·영세 제조업체는 핀둬둬의 강력한 성장 기반이 됐습니다. 핀둬둬는 ‘판매수수료 제로’ 정책으로 이들 업체를 빠르게 흡수합니다. 판매자는 결제업체 수수료 0.6%만 내면 되는 구조이죠. 또 주요 제품의 공장을 직접 입점시켜 중간 유통비용을 줄였고요.문제는 저렴하지만 품질이 형편없는 쓰레기 같은 제품도 너무 많다는 겁니다. 중국 핀둬둬 플랫폼은 약간의 보증금(2000위안, 36만원)만 내면 쉽게 셀러가 될 수 있는데요. 이런 경우 자칫 싸구려 저질제품만 플랫폼에 넘쳐날 우려가 크죠. 판매자는 허위 마케팅으로 불량제품을 잔뜩 팔아치운 뒤 튀면 그만이지만, 플랫폼은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핀둬둬 역시 이런 이유로 초기에 품질 낮은 불량, 짝퉁 제품으로 악명 높았습니다.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핀둬둬는 아주 엄격하면서도 무자비한 벌칙 규정으로 대응합니다. 위조·불량품을 판매하거나 허위배송·배송지연, 상품설명과 제품이 다른 경우, 고객 문의에 대한 응답률이 50% 미만으로 저조하면 사전 계약에 따라 판매자에 벌금을 부과하는데요. 특히 위조품을 판매하다 걸리면 누적 판매금액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물어내야 합니다. 이는 중국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강한 규정인데요.판매업체들은 이 벌금 규정이 너무 가혹하고 부당하다며 반발합니다. 2018년엔 벌금을 얻어맞은 판매자들이 핀둬둬 본사 앞에 “핀둬둬가 상인의 판매대금을 횡령했다”는 현수막을 내걸며 항의하기도 했죠. 한 판매자는 현지 언론에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핀둬둬 공급업체 중 벌금을 내지 않은 곳이 없고, 그 액수도 적지 않습니다. 벌금 때문에 파산한 업체도 많아요.”하지만 이런 잡음에도 이런 강력한 통제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입니다. 이제 중국에서 핀둬둬는 단순히 싸구려 불량 위조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가격을 생각하면 품질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쇼핑몰로 통하기 시작했죠(물론 여전히 ‘조잡하다’는 비판도 많음). 벌금이란 채찍질을 휘두르며 혹독한 단련시킨 덕분에 공급망이 다듬어진 겁니다. 핀둬둬의 저가 공급 생태계를 ‘잔인한 정글’에 비유하는 이유입니다.소말리아 테무의 최저가 입찰핀둬둬의 해외판인 테무는 이보다 한발짝 더 나아갑니다. 일단 알아두실 점은 테무와 핀둬둬는 운영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큰 차이라면 핀둬둬 앱엔 장바구니가 없고 테무는 있다는 거죠. 즉, 핀둬둬는 판매업체가 소비자에 각각 물건을 직접 배송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핀둬둬는 창고를 운영할 필요가 없고요.반면 테무는 중국 내 창고를 운영합니다. 해외 소비자가 제품을 주문하면 중국 판매업체가 물품을 테무 창고로 보내고, 테무 측이 이걸 모아 포장해서 해외로 배송하죠. 중국 중소제조사 입장에선 테무가 해외 판매·보관·배송·유통을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해외진출이 간편하는 장점이 있습니다.테무도 핀둬둬처럼 엄격한 벌금 규정을 운영합니다. 배송이 지연되거나 고객 불만이 제기되는 경우엔 판매자에 벌금을 물리죠. 특히 제품 품질에 문제가 있다면 판매금액의 최대 5배를 물어내야 한다는데요. 핀둬둬의 10배보다는 약하지만, 이 역시 너무 지나치다는 불만이 나옵니다. 실제 ‘저작권 침해’라는 문제제기로 인해 테무로부터 판매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판매자가 테무 본사에 항의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죠.벌금보다 더 가혹한 건 가격압박입니다. 핀둬둬와 달리 테무에선 아무나 물건을 판매할 수 없습니다. 판매자는 테무의 심사와 승인을 거쳐야 물건을 팔 수 있죠. 또 반드시 주 1회 입찰을 거쳐야 하는데요. 최저 입찰가를 제시해서 낙찰받은 업체에만 테무에서 제품을 판매할 권리가 부여됩니다.만약 현재 테무에 15위안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번 주에 다른 업체가 같은 제품에 입찰하면서 14위안을 제시한다면? 선택지는 둘 중 하나밖에 없습니다. 테무 판매를 포기하거나, 14위안보다 낮은 가격을 쓰거나. 아마 많은 경우 후자를 택하겠죠.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할 사람이 없을 때까지 입찰은 계속됩니다.이게 바로 이미 저렴한데도 테무에선 가격이 더 내려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같은 판매자가 다른 플랫폼(쉬인, 틱톡, 알리익스프레스 등)보다 테무에서 더 싸게 물건을 팔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테무는 판매자를 최대한으로 쥐어짜는 데 매우 효과적인 플랫폼입니다.중국 네티즌들은 이런 테무의 최저가 입찰 방식을 가리켜 이렇게 부릅니다. ‘소말리아 해적 플랫폼’. 가격압박과 벌금 때문에 테무 판매를 포기하고 떠난다는 판매자들의 사연도 SNS에선 이어지는데요.그럼에도 이런 테무의 전략이 먹힐 수 있는 건 지금이 ‘공급과잉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업체가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간다 해도, 제품을 공급할 중국 중소 제조사는 여전히 넘쳐납니다. 중국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내수 소비가 위축된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공장을 계속 돌리고 생존하려면 제조사는 원가에 가까운 가격에라도 물건을 팔아넘겨야 하니까요. 즉, 테무의 탄생과 성공 자체가 공급과잉 시대의 반영입니다. 어쩌면 테무 입장에선 가장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마지막 한 곳의 공급업체만 남아도 상관없을지 모릅니다.계획된 적자 전략은 들어맞을까정리하자면 핀둬둬와 테무는 ‘초저가’라는 목표를 향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합니다. 소비자한테는 한없이 관대한데(예-테무는 90일 안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품), 공급업체엔 가혹하기 짝이 없죠. 사람에 비유하자면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 같은 느낌이랄까요.이런 최저가를 향한 무서운 집중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테무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마침 ‘소비 양극화’라는 전 세계적 흐름과도 맞아떨어졌고요. 테무가 지난해 상반기 2023년 연간 매출 전망을 150억 달러라고 밝혔을 땐 다들 달성 가능성을 의심했는데요. 연간 실적 발표(18일 예정)를 앞둔 지금은 모두가 이 목표를 초과달성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만큼 성장세가 압도적이기 때문이죠.물론 테무 자체는 아직 적자입니다. 셀러에게 광고를 팔아서 돈을 버는 핀둬둬와 달리, 테무는 현재 광고수익 없이 판매 수수료로 돈을 버는 수익구조이죠. 테무가 판매한 소비자 가격에서 제품 납품가격과 물류비용, 마케팅 비용까지 다 제하고 남는 게 있어야 이익이 날 텐데요. 지금으로서는 테무가 SNS 광고에 쓰는 마케팅 비용이 워낙 커서, 적자가 불가피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테무가 지난해 메타플랫폼(페이스북+인스타)에 쓴 광고비만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였다고 하죠. “광고로 쏟아지는 돈의 소방호스를 열었다”(리테일시장 분석가인 스카이 카나베스의 뉴욕타임스 인터뷰)며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인데요. 이 때문에 골드만삭스는 테무가 지난해 주문당 7달러의 손실을 보았을 거라고 추정합니다.하지만 핀둬둬 플랫폼 역시 2015년 설립 뒤 줄곧 적자이다가 2020년 3분기에야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일단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자, 순이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죠. 테무 프로젝트 역시 막대한 초기 투자로 인해 3년 동안은 손실을 입을 거라고 예상하고 뛰어든 겁니다. 지금은 성장을 위한 ‘계획된 적자’ 구간인 셈이죠.그럼 언제쯤 테무가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까요. 전망은 엇갈리는데요. JP모건체이스는 신중한 편입니다. 지난해 테무가 30억 달러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을 거라며, 2027년에야 35억 달러 흑자로 전환될 걸로 전망하죠. 물론 테무가 고객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거란 전제에서 말이죠. 최근 미국에서는 낮은 품질에 대한 실망 때문에 테무의 재구매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데요. JP모건은 테무가 저가·저품질 이미지에서 점차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이와 달리 HSBC는 테무가 2025년이면 흑자로 전환할 거라는 상당히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습니다. 공급망에 대한 강력한 교섭력과 차별화되는 초저가 전략으로 테무의 강력한 성장이 이어질 거라고 보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165억 달러로 추정되는 테무의 상품거래량(GMV)이 올해 480억 달러, 2027년엔 1400억 달러로 불어날 거라고도 내다봤습니다. 테무는 이미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 1%를 차지했다는데요. HSBC는 2027년이면 주요 선진시장(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3~6% 점유율을 기록하게 될 거라고도 덧붙입니다.과연 어느 쪽일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죠. 일단 18일 실적 발표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중국 언론에 따르면 핀둬둬는 군대처럼 효율적이고 민첩하면서 추진력이 강한 조직입니다. 생각보다 더 강하고 빠르죠. 그리 만만하게 볼 상대는 절대 아니라는 점은 알아두십시오. By.딥다이브5개월 만에 핀둬둬를 또 다루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테무 때문에 워낙 난리이니, 한번 더 들여다 보게 됐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핀둬둬(테무)의 급부상에 놀라고 있습니다. 핀둬둬의 성공 비결은 단순 명료합니다. 바로 낮은 가격이죠. 저렴한 가격에 대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집요할 정도로 초점을 맞췄습니다.-싸게 파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잘못하면 품질이 형편없는 저질 불량품만 넘쳐날 수 있으니까요. 핀둬둬는 무지막지한 벌금 규정으로 이를 통제했습니다. 불이익 받은 판매자들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결과적으로 공급망을 다듬게 됐습니다.-핀둬둬의 해외판매용 플랫폼 테무 역시 공급자를 강력하게 규제합니다. 최저 입찰을 통한 무자비한 가격 경쟁으로 제품 가격을 계속 낮추는 데 성공합니다. 공급 과잉 시대이기에 가능한 전략입니다.-테무는 막대한 광고비로 인해 적자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과연 핀둬둬의 계산대로 2025년이면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애널리스트의 분석은 엇갈립니다. 솔직히 이런 전자상거래 기업은 처음 봐서 예측이 쉽진 않습니다.*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 발표를 앞두고 과연 금리인하 시점이 언제가 될지를 저울질하며 눈치싸움을 하는 모습입니다. 11일(현지시간) S&P500은 0.11%, 나스닥은 0.41% 하락했고요. 다우지수는 0.12%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2일 발표될 예정입니다. 다우존스 조사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전년 동기대비 3.1% 상승을 예상합니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연간 3.7% 상승이 전망되고요. 이번 발표는 연방준비제도가 3월 FOMC를 열기 전 마지막으로 나오는 중요한 경제지표라는 점에서 특히 관심이 쏠리는데요. 이미 시장이 조기 금리인하 신호를 기대하고 있는 만큼, 실제 데이터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주식시장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FS인베스트먼트의 라라 레임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은 연준이 올해 금리를 대폭 인하할 능력이 있다고 여전히 너무 낙관한다”면서 “2월 물가 지표는 연준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이날 눈에 띄는 건 금값입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올해 4월물 금값은 3.1달러(0.14%) 상승해 온스당 2188.60달러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1979년 금 선물이 거래된 이래,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입니다. JP모건의 분석가들은 “금이 새로운 최고치로 급격히 뛰어올랐고, 그 강도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고 말합니다. 금값은 왜 뛸까요. 일단 최근 몇주 동안의 가격 상승은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때문으로 보입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채권 같은 자산에 비해 금의 매력도가 올라간다는 설명이죠.하지만 그 이전부터 금값은 뛰었는데? 이는 경제적·지정학적 위험이 커진 것과 연관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국의 부동산 위기, 영국의 경기침체 같은 요인이 모두 금 수요를 부추긴다는 거죠. 자고로 금은 전통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졌으니까요. 금 랠리는 얼마나 더 이어질까요. 씨티그룹이나 JP모건은 2300달러를 목표 가격으로 제시합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데이터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금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보는 건데요.이미 금값이 많이 오른 만큼 이젠 다른 귀금속에 눈을 돌리라는 조언도 나옵니다. 휘튼프리셔스메탈의 CEO 랜디 스몰우드는 “은은 일반적으로 금보다 나중에 움직인다”면서 “금이 먼저 오른 다음엔 은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날이 갈수록 쿠키와 비누는 작아지고, 휴지는 얇아지고, 음료수병은 날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양반김의 한봉지 용량은 5g에서 4.5g으로, 서울우유 체다치즈 한봉지(20매)는 400g에서 360g으로 각각 10%나 줄었다죠.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여서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유럽·일본 등 전 세계 소비자 분노가 폭발하고 있죠. 지난달엔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초콜릿바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언급했을 정도인데요. 그런데 냉정하게 한번 따져봅시다. 왜 이렇게까지 제조업체들은 제품 용량을 줄이려고 안달일까요. 또 이에 대해 소비자는 왜 그렇게 화가 나는 걸까요. 이를 다룬 최신 경제학과 마케팅학 논문 세 편을 기반으로 슈링크플레이션과 그 혐오증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수십 년째 이어진 수축수축(shrink)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용어는 2009년 영국 출신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창안했는데요. 사실 이는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국제적 현상입니다.학계에 잘 알려진 사례 중엔 1988년 미국 커피 브랜드 촉풀오넛츠(Chock full o’Nuts)가 있죠. 당시 가루 커피 한캔 용량은 1파운드, 즉 16온스가 표준이었는데요. 이 회사는 은근슬쩍 용량을 13온스로 줄입니다. 용량을 표시한 글꼴 크기도 일부러 작게 줄였죠. 교묘하게 단위가격을 23%나 올린 이 전략은 성공했고, 다른 커피 회사도 이를 따라 하면서 ‘가루 커피 한캔=13온스’가 대세가 됩니다(이후 11온스로 더 줄임).슈링크플레이션은 소비자 기만행위라고요? 네, 동의하지만 법적으로는 좀 따져볼게요.대부분 국가는 포장지에 제품가격뿐 아니라 단위당 가격도 함께 표시하도록 의무화합니다. 미국은 1967년부터, 한국도 1999년부터 ‘단위가격 표시의무제도’를 운영 중이죠. 현재 우리나라에선 84개 품목이 대상이고요. ‘100g당 500원’, ‘100㎖당 1000원’ 식으로 가격을 표시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비교할 수 있게 말이죠. 만약 기업이 이 단위 가격을 명확하게 제품에 표시했다면, 대부분 국가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은 합법적입니다.①정신물리학; 크기 인식의 오류인플레이션이야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죠. 원자재나 인건비 같은 비용이 상승할 때, 기업의 선택지는 보통 세 가지입니다.1. 제품 가격을 올린다.2. 더 저렴한 재료로 만든다.3. 제품 용량을 줄인다.그리고 많은 경우 3번을 선택합니다. 토블론은 삼각형 사이 공간을 늘려서 초콜릿바 용량을 10% 줄였고요. 게토레이는 ‘더 잡기 쉽고 공기역학적’이라며 병 모양을 바꿔 용량을 14% 줄였죠. 왜 그럴까요.일단 정신물리학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크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물체의 실제 크기와 다릅니다. 일종의 착시현상인데요. 특히 크기 변화가 삼차원으로 발생하면 소비자는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대표적인 게 ‘높이 편향’이죠. 가늘고 높은 물체는 굵고 낮은 물체보다 용량이 커 보입니다. 너비보다는 높이가 가장 눈에 띄는 치수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용량이어도 길쭉한 병에 든 주스, 길쭉한 상자에 든 과자가 소비자에겐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죠. 만약 제품 높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밑면적을 줄인다면? 아마 대다수 소비자는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또는 차이가 얼마 안 된다고 과소평가하겠죠. 제조사 마케팅 담당자들은 이 점을 이용해, 소비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제품 용량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②인지 편향=소비자는 가격만 본다게다가 소비자들은 또 다른 강력한 인지 편향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격에 집중하는 편향인데요. 호주 맥쿼리대학의 야오 준 박사팀이 2022년 발표한 연구 결과가 이를 보여줍니다.연구진은 호주 브리즈번 슈퍼마켓에서 5개 제품(코코넛롤, 과자, 비스킷, 두유, 코코넛워터)을 가지고 실험했습니다. 4주에 걸쳐 매주 이 제품의 가격 안내판을 바꾼 뒤 판매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했죠. 사실 이 기간에 실제 제품 가격이나 용량엔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요. 마치 큰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이전 판매가와 제품 크기에 대한 정보를 바꿔 표시했습니다.실험 결과가 흥미로운데요. 4주 동안 판매량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1. 용량은 그대로, 가격만 올렸음 = 391개2. 가격은 그대로인데 용량은 줄었음 (일반적인 슈링크플레이션) = 435개3. 용량이 늘었지만 가격도 올림 = 448개4. 가격이 내려갔지만 용량도 줄어듦 (변형된 슈링크플레이션) = 530개네 경우 모두 단위 가격은 똑같이 올랐다고 안내했거든요(코코넛롤 10g당 38센트→43센트). 그러니까 상식적으로는 판매량이 크게 달라질 이유는 없었는데요. 실제로는 차이가 꽤 컸습니다. 소비자들은 제품 가격만 올리는 것(1번)보다는 차라리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2번)일 때 더 많이 구매했고요. 특히 용량과 가격이 동시에 다운되는 ‘변형 슈링크플레이션’(4번)은 엄청난 호응을 끌어냈습니다. 왜일까요? 야오 준 박사는 ‘실버 라이닝 효과(silver lining effect)’로 설명합니다. 작은 이익(더 낮은 가격)을 큰 손실(더 작은 용량)에서 분리하면(4번), 그냥 손실만 있는 경우(1번 또는 2번)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이는 겁니다.그래서 결론은? 야오 준 박사는 “쇼핑객에겐 크기나 무게보다 가격이 더 눈에 띈다”면서 “사람들은 낮은 가격을 선호하는(그게 적은 용량을 뜻하더라도) 타고난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가격만 보는 인지 편향은 매우 강력하고, 그게 바로 제조사들이 제품 용량 줄이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라는 겁니다.③용량 감소보다 가격 인상에 4.6배 민감소비자가 용량 줄이기보다는 가격 인상에 더 민감하다는 건 경험적으로도 확인됩니다. 그럼 그 민감도 차이가 얼마나 될까요.서강대 김인경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연구했는데요. 김 교수는 2018년 남양유업이 맛있는우유GT 1000㎖ 제품 용량을 900㎖로 줄인 뒤 판매량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가지고 분석했습니다. 결론이 좀 놀라운데요.제품 용량을 10% 줄인 건 단위 가격을 11.1%나 올린 것과 똑같거든요. 아시다시피 수요는 가격에 반비례하죠. 김 교수가 시뮬레이션한 결과, 이 정도 가격 인상이면 관찰 기간(61주) 동안 이 제품 판매량이 4600만 리터로 줄어든다는 예측이 나왔는데요.실제 판매량은 무려 5500만 리터. 예측치를 20%나 웃돌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팔린 거죠. 이를 시뮬레이션과 비교한 결과, 용량을 그대로 두고 제품 가격을 2.4% 올린 것과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남양유업 전략이 맞아떨어진 겁니다. 만약 용량을 줄이는 대신 제품 가격을 11.1% 인상하는 정공법으로 갔다면 판매량 타격이 훨씬 컸겠죠. 이를 두고 김 교수는 “소비자들은 다운사이징(용량 감소)보다 제품가격 인상에 약 4.6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하는데요. 민감도 차이가 그렇게 크기 때문에 기업은 슈링크플레이션이란 꼼수를 써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겁니다. 그만큼 소비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손실을 입고 있고요.슈링크플레이션 혐오증여기까지만 보면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용량을 줄여도 소비자들이 많이 사잖아? 그럼 소비자들이 슈링크플레이션을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라고요.그런데 인지편향(높이와 가격이 눈에 더 띔)과 정보마찰(단위 가격 변화를 인식 못함)로 인해 구매가 줄지 않는다고 해서, 그 소비자가 그걸 실제 용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슈링크플레이션 혐오증’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라몬율대학교의 이오아니스 에반젤리디스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연구 결과인데요.에반젤리디스 교수는 소비자들에게 가격인상(용량은 그대로)과 용량 감소(가격은 그대로), 두 가지 상황을 주고, 각각 얼마나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다섯 가지 종류의 설문을 거쳤지만 응답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생산비용이 증가해서 제품 가격을 올린 경우’를 두고는 ‘공정하다’고 평가한 응답이 생각보다 많았는데요(대체로 50% 이상). ‘생산비용이 증가해서 제품 크기를 줄인 경우’는 불공정하다는 답변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최대 70%가 불공정하다고 응답). 가격을 올리든, 용량을 줄이든 사실 단위 가격은 똑같이 올랐는데도 말이죠. 명백히 소비자들은 슈링크플레이션을 더 싫어했습니다.연구진은 이런 슈링크플레이션 혐오 현상이 “제품 가격을 그대로 두고 용량을 줄이는 건 기만적인 행위라는 소비자 믿음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연구에 참여한 소비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크기를 줄이는 것보단 가격을 올리는 게 정직하죠. 소비자는 제품 크기가 줄어든 걸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서 불공정합니다. 제조사가 ‘이제 감자칩 수가 25% 줄어듭니다’라고 라벨을 붙이진 않잖아요?”달라지는 용량 표시잘 모르는 채 당해서, 알고 나면 더 기분 나쁜 게 슈링크플레이션입니다. 그래서 이를 연구한 학자 공통된 결론은 이겁니다. 더 이상은 소비자들이 꼼수에 넘어가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강화된 규제가 필요합니다. 만약 우유팩 용량이 10%가 줄었다면 ‘단위 가격이 11.1%나 올랐잖아’라고 소비자가 바로 알아채야죠. 비싸진 제품 대신 더 저렴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하고요.이를 위해 브라질에선 2021년 규정을 바꿔 제조사가 용량 변경 사실을 제품 포장에 써넣도록 의무화했고요(변경 뒤 최소 6개월간 공지해야). 프랑스 대형마트 까르푸는 지난해부터 26개 제품에 대해 용량이 감소한 경우 큼지막한(가로 세로 13㎝) 슈링크플레이션 경고 스티커를 선반에 붙이고 있습니다.그럼 한국은? 내년부터 강화된 용량표시 규제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브라질 모델을 따라가는데요. 식품이나 생활화학제품의 용량이 줄어 단위 가격이 오르면, 변경 내용을 3개월 이상 표시하도록 의무화합니다. 내년부턴 쇼핑할 때 제품 겉면의 용량 표시를 좀더 유심히 살펴보세요.제품의 크기, 가격 변화를 추적하는 플랫폼도 도움될 겁니다. 일본엔 민간이 운영하는 ‘가격인상비망록’이란 사이트가 있는데요. 과자부터 샴푸까지, 온갖 제품의 가격 인상과 제품 용량 감소와 그 이유를 세세하게 기록해 공개합니다. 모리나가 밀크 캐러멜의 경우 1913년 첫 출시 이후 가격뿐 아니라 한 갑에 몇알이 들어있는지까지 빼곡히 기록돼 있을 정도.우리나라도 소비자원의 ‘참가격’ 사이트를 통해 슈링크플레이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개편한다는데요. 더 투명한 정보, 더 촘촘한 감시가 과연 수십년째 이어진 ‘같은 가격, 더 작은 초콜릿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인지편향을 극복하는 소비자의 각성도 함께 필요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 입장에선 똑똑한 마케팅 기법입니다. 마치 새로운 패키지로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홍보하며 교묘하게 가격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이를 깨닫고, 분노하면서 이젠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세계 각국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이 화두입니다. 제품 가격을 줄이면서 가격은 그대로 두는 겁니다. 제품 가격을 인상해서 고객을 잃는 것은 막으면서도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입니다. -사람들이 인지하는 크기가 실제 크기와 다를 수 있다는 점, 일종의 착시효과를 노린 겁니다. 가격에만 집중하는 소비자의 강력한 인지편향도 슈링크플레이션이 수십년 째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는 제품 가격에 대해 용량감소보다 4.6배나 민감합니다. -하지만 이제 고객들은 슈링크플레이션에 지쳤고, 이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더 투명하게 용량 변동 정보를 표기하도록 규제가 바뀔 테니, 앞으론 좀 달라지길 기대합니다. *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발언에 힘입어 이틀 연속 상승했습니다. 7일(현지시간) S&P500은 1.03% 뛰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요. 나스닥지수는 1.51%, 다우지수는 0.34%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파월 의장은 이날 미국 상원의회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신호가 협조한다면 금리 인하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죠. 전날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선 “경제가 예상 경로로 움직인다면 올해 어느 시점에 현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되돌리는 완화책을 시작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답변했는데요. 이보다 더 진전된 발언이 나오면서 주식시장이 환호한 겁니다. LPL파이낸셜의 수석기술전략가 아담 턴퀴스트는 “시장은 이를 기대하고 있었고, 마침내 연준 관계자로부터 이를 듣게 됐다”면서 “금리인하가 다가오고 있다는 자신감이 더해졌다”고 말합니다. 이날 매그니피센트7 주식은 애플을 제외하곤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무려 4.47%나 뛴 926.69달러로 거래를 마쳤죠. 주당 900달러를 돌파한 건 처음입니다. 엔비디아가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애플과의 시가총액 격차가 3000억 달러 미만으로 좁혀졌는데요. 미즈호증권이 엔비디아 목표가를 850달러에서 1000달러로 상향하는 등, 주가가 더 오를 거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혹시 이러다가 엔비디아가 애플 시총마저 추월하려나요.이날 눈에 띄는 종목으로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있습니다. 이날 주가가 8.95% 급등하면서 시가총액이 비자와 테슬라를 넘어섰습니다. 글로벌 시가총액 12위로 올라섰죠. 이날 새로운 비만치료제가 임상실험에서 기존 제품보다 체중감량에 더 큰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한 영향입니다. 노보노디스크에 따르면 알약 버전의 새 비만치료제 ‘아미크레틴(amycretin)’의 임상 1상 시험 결과 참가자 체중이 12주 만에 13.1% 감소했다는데요. 블록버스터급 성공을 거둔 위고비의 효과(같은 기간 6% 감량)를 압도합니다. 2상 시험 결과는 2026년 초에나 발표될 예정이기 때문에 아직 출시까진 시간이 걸리는데요.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시장에서의 위상이 한층 확고해진 건 분명해 보입니다.또다른 특징주로는 여성 속옷 업체 빅토리아시크릿이 있습니다. 이날 주가가 29.7%나 급락했죠. 4분기 매출은 증가했지만, 올해 예상 매출 가이던스를 시장 예측(61억8000만 달러)를 밑도는 60억 달러로 제시했기 때문인데요. 회사 측은 새로운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주가를 방어하진 못했습니다. 주요 투자은행 역시 이날 줄줄이 빅토리아시크릿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올해 들어 주가지수가 20% 뛰며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핫한 주식시장은 어디일까요. 아마 많은 분이 일본을 떠올릴 텐데요. 일본 말고 여기도 있습니다. 바로 튀르키예.튀르키예는 경제 상황이 썩 좋다고 말하기가 어렵죠. 오히려 67%에 달하는 인플레이션과 사상 최저로 떨어진 통화가치, 극과 극 통화정책까지. 혼란이 상당한데요. 그럼에도 튀르키예 증시가 3년째 급등세를 이어가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오늘은 뜨거운 튀르키예 증시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엔비디아보다 낫다? 튀르키예 기술주‘엔비디아는 잊어라. 튀르키예 기술주는 두배로 올랐다.’며칠 전 튀르키예 현지 언론의 기사 제목입니다. 튀르키예의 대표지수인 ‘보르사 이스탄불(BIST) 100’은 지난달 90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죠.이 지수 상승세를 이끈 건 단연 기술주입니다. IT 관련주만 묶은 BIST 정보기술 지수는 올해 들어 두 달여 만에 93% 뛰었습니다. 예컨대 소프트웨어 기업 MIA테크놀로지 같은 종목은 같은 기간 주가가 104% 올랐죠. 미국 엔비디아 주가가 올해 들어 70% 올랐는데, 그보다도 수익률 면에서 앞섭니다.혹시 튀르키예 기술주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요? 사실 인공지능(AI)과 관련한 특별한 호재 거리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무섭게 뛴 종목들도 대부분 고만고만한 중·소형주들이고요. 그런데 왜 이 난리인지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답은 이렇습니다. 개인과 기관, 외국인 투자자까지 다들 튀르키예 주식에 투자하고 싶어서 안달났기 때문입니다. 신흥시장 전문 펀드매니저인 엔레 아카크마크는 FT 인터뷰에서 튀르키예 증시의 뜨거운 투자 열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이고, 좋은 소식도 좋은 소식입니다.”67% 초인플레이션과 주식 투자일단 튀르키예 현지 투자자, 특히 개미들 입장에서 한번 볼까요. 튀르키예 개인투자자라면 주식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주식시장이 빠르게 우상향하며 260% 넘게 지수가 올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초인플레이션 탓에 아무 투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돈이 증발해 버릴 판이기 때문이죠.2월 튀르키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67.07%. 한때 85%(2022년 10월)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이 좀 잡히나 싶더니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뛰고 있습니다.물가가 뛰는데 금리가 낮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앉아서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죠. 은행예금은 당장 깨고 수익률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게 살길입니다. ‘내 돈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 그게 바로 2021년 말부터 튀르키예 개미투자자들을 움직인 원동력입니다.그런데 지난해 6월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과감하게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죠. 어느 정도냐면 기존에 8.5%였던 기준금리가 총 7차례에 걸친 인상으로 올 1월엔 45%가 됐습니다. 물가를 잡겠다며 중앙은행이 통화긴축 정공법을 쓴 겁니다.주식투자자분들은 경험으로 알겠지만, 대체로 ‘금리 인상=주식시장엔 악재’입니다. 금리가 뛰면 예금과 채권의 투자 매력이 커지면서 주식시장으로는 돈이 덜 몰리게 되죠. 그래서 일반적인 공식대로라면 증시 열기가 좀 식어가야 할 텐데, 웬걸. 금리를 올리기 전의 두배 수준으로 주가지수가 뛰었습니다.기준금리 인상이 호재?금리인상이 왜 튀르키예 증시에선 호재로 작용하는지를 알려면, 이 나라 통화정책 스토리를 좀 알아야 합니다. 지난 2년여간 그야말로 극과 극을 오갔는데요.“고금리는 모든 죄악의 부모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전에 했던 말이죠. 2021년 말 터키 정부는 신경제 모델을 선포하고 독특한 경제실험을 합니다. ‘물가 상승의 원인이 금리’라며 금리 인하에 나선 건데요. 금리를 내리면 물가도 떨어지고 경상수지도 흑자가 될 거란 논리를 펼쳤죠. 좀 이상하다고요? 네, 물론 경제학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19%였던 기준금리를 2023년 2월까지 8.5%로 뚝 떨어뜨려 버립니다.그래서 결과는? 당연히 물가는 치솟았죠. 살인적으로 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서민들이 집에서 쫓겨날 지경이 되면서 세입자와 집주인 간 칼부림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리라화 가치는 폭락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개입을 하면서 외환보유액은 대폭 쪼그라들었죠. 경상수지 적자는 신기록을 경신했고요.경제는 대혼란에 빠졌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튀르키예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놀랍게도 연임에 성공했죠. 그리고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경제 정책을 유턴해버립니다.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 CEO 출신인 하피제 게이 에르칸을 중앙은행 총재로 영입한 게 대표적이죠. 에르칸 총재는 취임하자마자인 지난해 6월 8.5%인 기준금리를 15%로 올리며 ‘통화정책 정상화’를 전 세계에 알립니다.그리고 연이어 기준금리를 팍팍 올리며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섰는데요. 그러자 해외 투자자들이 튀르키예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①리라화 통화가치가 역사적으로 바닥인 데다(=앞으로 리라화 가치가 오를 가능성 큼), ②다른 신흥국 주식과 비교하면 아직 주가가 저렴하다(=12개월 선행 PER 신흥시장 평균 12배, 튀르키예 4배)는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죠. 게다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드디어 각성해서 경제정책까지 멀쩡해졌으니? ‘이제는 좀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투자를 좀 해도 되겠네’라고 시각이 바뀝니다.그 결과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투자자의 튀르키예 주식 순매수 행렬이 시작됐고요. 올해 들어서도 두 달 동안 주식 1억1540만 달러어치를 순매수했습니다. 그동안 증시에서 빠져나갔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외국인 시총 보유 비중 2021년 말 40.5%→2023년 5월 27.4%→2023년 12월 38%).외국인의 귀환은 당연히 증시엔 큰 호재인데요. A1캐피탈의 유제이어 도안 부사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장밋빛 전망을 내놓습니다. “BIST 지수가 과도하게 할인된 상태인데다, 환율 흐름이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 주가 상승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최근의 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상승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1만 포인트가 심리적으로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첫 번째 목표라고 봅니다.”개미들의 식지 않는 공모주 사랑외국인 귀환 전까지 증시를 떠받쳐온 튀르키예 개미들의 투자 열기도 여전합니다. 튀르키예 중앙등록청이 최근 발표한 주식 투자자 수는 823만명(주식 잔고가 있는 사람 기준). 1년 전(425만명)과 비교하면 두배 수준입니다. 개인투자자 수는 지난해 말 살짝 줄어드는 듯하다 2월 들어 다시 크게 늘었는데요.금리가 올랐다곤 하지만(주요 은행 예금금리는 42.5~47% 수준), 물가상승률(2월 67%)보단 아직 한참 낮죠. 그러니 여전히 주식이 매력적이고요.무엇보다 개미들의 ‘공모주 대박’을 향한 기대감이 투자 열기를 달아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IPO 열광자들이 2월 들어 주식시장으로 돌아왔다’는 게 현지 언론 분석인데요.2020년 국내 주식시장에서 ‘따상(공모가 두배 시초가+상한가)’ 대박이 이어지면서 공모주 열풍이 불었던 것 기억하시죠. 지난해 튀르키예 증시가 딱 그 분위기였습니다. ‘공모주의 마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단 상장하면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찍으며 급등하는 종목이 줄이어 나왔는데요. 변압기 제조사 애스터 에네르시(ASTOR) 주가는 공모가(12.37리라)의 약 10배, 농업회사 타르킴 플랜트 프로텍션(TARKM)는 공모가(107.5리라)의 약 7배 정도로 뛰었습니다. 튀르키예 중앙등록청에 따르면 지난해 IPO에 참여한 누적 투자자 수가 약 1억 명에 달합니다(참고로 튀르키예 인구는 약 8500만명).공모주 마법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상장된 설탕 제조사 보르스크(BORSK) 주가는 공모가의 약 90%, 시멘트제조사인 리막 동부 아나톨리아 시멘트(LMKDC)는 100% 넘게 주가가 올랐으니까요. 대박 내지 한탕을 노린 초보 개미들이 여전히 계속 신규 유입되는 이유입니다.물론 이쯤 되니 걱정의 목소리도 이어집니다. 공모주를 노리는 개인들은 증권신고서조차 보지 않고 뭘 하는지도 모르는 기업에 투자하곤 하죠. 외국인 투자자가 주로 투자하는 지수에서 가중치가 높은 대형 우량주와는 거리가 먼데요. 현지 언론은 공모주 투자자가 “대부분 젊고 야심이 많은 소액 투자자들”이라며 이들에게 “게임하듯 주식시장에 뛰어들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참 익숙한 얘기입니다.주가지수 1만 포인트 찍나여기까지만 보면 튀르키예 주가지수가 2년 반 전 2000포인트에서 9000포인트까지 뛴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전망일 텐데요.튀르키예의 투자 전문가들은 대체로 낙관적입니다. 올해 들어 지수가 워낙 빠르게 올라 일시적으론 차익 매도가 나올 순 있지만, 증시엔 호재가 남아있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①국가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CDS프리미엄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②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조만간 국가신용등급을 올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하죠. 이제 지수 1만 포인트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대세로 자리 잡아 갑니다.하지만 주의할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던 에르칸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달 초 돌연 사임했는데요. 그는 X(트위터)에 남긴 장문의 글에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사퇴 이유를 밝혔죠.(부연 설명=에르칸 총재의 친정 부모님이 매일 중앙은행으로 출근해 일종의 ‘비선 실세’ 노릇을 했다고 지난 1월 직원이 폭로. 이후 부모님이 사무실에 온 건 에르칸 총재의 모유 수유를 위해서였다-아들은 지난해 6월 임명 당시 생후 9개월-는 해명성(?) 기사가 이어지면서 들끓던 여론에 기름을 부음.)에르칸 사임을 두고 튀르키예 야당이 내놓은 논평에 뼈가 있습니다. “에르칸 사임의 가장 큰 이유는 물가상승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아르헨티나가 되려고 할 때, 에르칸은 상황을 깨닫고 일찍 떠났습니다.”(참고로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211.4%)야당 말대로 튀르키예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다시 심상찮습니다. 슬금슬금 오르더니 어느새 다시 70%를 코앞에 뒀는데요. 새 중앙은행 총재인 파티 카라한은 현재 45%인 기준금리를 올해 “추가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죠. 인플레이션이 올 5월까지 72~73%까지 오르긴 하겠지만 이후 가파르게 하락해 연말이면 36%로 진정될 거라고 전망하는 겁니다.그런데 과연 이 정도 기준금리로 물가가 잡힐까요. 또 아무리 금리 올리면 뭐 하나요. 정부는 지난주 1700만명의 퇴직자에게 5000리라(약 21만원)의 현금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발표하며 예산을 펑펑 쓰고 있는데요. 마침 3월 말이 튀르키예 지방선거이거든요. 선거 앞두고 재정지출 수도꼭지가 열렸습니다.“4~5월 인플레이션이 80% 넘게 상승하고, 연말에도 잘해야 60%”(시난 알신 키르클라넬리대 교수)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이제 나옵니다.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긴축정책이 한계에 이르렀는데도 튀르키예 인플레이션 문제가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살아있다”(실바 바하르 바지키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코멘트에도 귀 기울일 만합니다. 만약 튀르키예가 여기서 금리를 더 올린다면 그땐 증시에 호재일까요, 악재일까요. By.딥다이브예금금리가 45%라기에 놀랐는데, 물가상승률이 67%라니. 튀르키예 주식 투자자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예전 우리 동학개미 모습도 오버랩되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튀르키예 주가지수가 올해 들어서만 20% 오르면서 잘 나가고 있습니다. 2021년 말부터 시작된 랠리가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그동안 주식 호황은 고물가에 습격당한 개미투자자들의 절박함 덕분이었습니다. 높은 수익률을 좇아 위험을 감수하며 주식투자에 뛰어든 겁니다.-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외국인 투자자도 합세했습니다. 비상식적인 경제정책을 펼쳤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연임 이후 경제정책의 정상화를 꾀하고 있는 덕분입니다.-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더 오를 거란 낙관론이 파다합니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이 튀르키예 경제와 금융시장 모두엔 큰 변수로 남아있습니다.*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으로 마감했습니다. 지난주 나타났던 S&P500과 나스닥의 신기록 경신 행진이 멈춘 겁니다. 4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25%, S&P500 -0.12%, 나스닥 -0.41%로 거래를 마쳤죠. 이날도 엔비디아의 질주는 계속됐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돌파했던 엔비디아는 이날 주가가 3.6% 더 올랐죠. 하지만 나머지 ‘매그니피센트7’ 주식-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MS, 테슬라-는 모두 하락했죠. 특히 테슬라 주가는 이날 7.16%나 빠졌는데요.지난해 미국 증시 상승세를 이끌었던 매그니피센트7 종목 간의 차별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데요. 크로스마크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밥 돌 최고투자책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그룹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때로 부딪히는 일 없이는 하늘까지 올라갈 수 없죠.”AI 열풍을 타고 몇주 동안 극적으로 오른 뉴욕증시. 혹시 이건 거품의 징조일까요? 이를 두고 월가가 주목하는 두 전략가의 의견이 엇갈리는데요.JP모건체이스의 수석시장전략가인 마르코 코라노빅은 그렇다고 봅니다. 그는 4일 투자메모에서 “주식이 계속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비트코인이 6만 달러 이상 급등하는 것은 시장에 거품이 쌓이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분석합니다. “투자자들은 수익률 증가가 경제성장을 반영한다고 가정하지만, 2024년 수익 전망은 낮아지고 있고 시장은 사이클에 너무 안주해있다”고도 언급하죠. 투자자들이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이와 달리 골드만삭스 수석 미국주식 전략가인 데이비드 코스틴은 지금의 랠리가 과거 버블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2021년과 비교하면 극단적인 가치평가를 받는 주식이 훨씬 적다는 거죠. 2021년엔 ‘닥치고 성장주 투자’였다면 지금은 지수에서 비중이 큰 대형 기술주에 투자가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코스틴은 “이번은 다르다”면서 “우리는 현재 매그니피센트7의 가치가 펀더멘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믿는다”고 분석합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미국주식 책임자인 사비타 서브라마니안도 낙관론에 힘을 보탭니다. 이날 그는 S&P500 연말 목표를 5000에서 5400으로 상향 조정했는데요. 현재보다 지수가 5% 더 오를 여력이 있다고 본 겁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어떤 질문에도 척척 대답하는 ‘챗GPT’부터 간단한 문장만 주면 고품질 동영상을 뚝딱 만드는 ‘소라(Sora)’까지.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공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 원장, 박재흥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20일 서울대 AI연구원에서 만났다.● 스스로 학습하는 AI 로봇“지금의 AI는 글자·이미지·영상으로 세상을 감지한다. (물컵을 들며) 하지만 이게 뭔지 진짜 알려면 만져보고 들어보면서 배워야 한다. 그래야 훨씬 똑똑해진다. AI가 몸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장 원장이 내다보는 생성형 AI의 다음 단계는 바로 ‘AI 로봇’이다. 몸과 센서, 액추에이터(Actuator·구동기)가 있어서 움직이며 학습하는 AI를 뜻한다. 스스로 학습한다는 점에서 사람이 일일이 프로그래밍해야 하는 기존 로봇과는 다르다. 김 교수는 “기존 로봇은 로봇 팔 길이와 무게가 얼마인지 재서 수식으로 개발했다면, AI 로봇은 그런 정보 없이 학습해 나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공부에 비유하자면 암기식이 아닌 자기주도형 학습인 셈이다. AI 로봇의 사례로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지난달 공개한 ‘모바일 알로하’가 있다. 두 팔을 가진 이 로봇은 새우 요리와 설거지, 청소까지 척척 해낸다.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복제하는 훈련을 수십 차례 거치자, 혼자서 간단한 집안일을 수행하게 됐다. 장 원장은 “몸만 있고 말은 못 했던 로봇과 말은 많은데 몸은 없는 챗GPT, 그 둘이 결합하는 시도가 이제 막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치고 나갈 수 있는 분야지금의 AI는 정신노동만 수행한다. 그런데 몸을 가지면 육체노동을 대신할 수 있다. 고령화로 인력이 부족한 시대엔 이런 로봇이 필요하다.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할 법한 로봇도 AI와 결합하면 현실화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서빙로봇 같은 현재의 로봇은 정해진 일만 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애매하다”며 “이것저것 다 해주는 범용 로봇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AI 로봇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도 기회가 열려 있단 뜻이다. “우리가 챗GPT 같은 걸 만들기엔 이미 많이 늦었다. 반면 오감을 데이터화해서 로봇이 학습하게 하는 건 이제 시작이고 똑같은 출발선에 있다. 로봇에 집중하는 AI는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다. 제조업하고도 연결된다.” 장 원장은 이렇게 자신감을 보였다. 서울대 AI연구원이 개발 중인 AI 로봇팔은 지난해 국제 AI 로봇 대회인 ‘로봇컵’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미국은 로봇 투자 붐 문제는 AI 로봇이 아직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2022년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옵티머스를 개발해 2만 달러(약 2700만 원)에 팔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 로봇팔 하나에 드는 원재료비만 약 2만 달러. 지난해 12월 영상이 공개된 테슬라 ‘옵티머스 2세대’는 한 대에 30만 달러(약 4억 원) 정도 들었을 걸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미국 휴머노이드 로봇 업계의 낙관론을 전했다. “진짜 원재료, 즉 쇠값만 따져보면 차보다 쌀 수 있다. 결국 대량 생산의 문제다. 만약 휴머노이드 로봇이 정말 자동차만큼 필요해진다면, 2만 달러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미국은 이미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장 원장은 “실리콘밸리에선 투자자들이 ‘다음’을 찾아서 이미 그리로 가고 있다”며 “그래서 미국이 선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개발 인력 수에서 압도적이다. 박 교수는 “요즘 미국의 AI 관련 논문을 보면 저자 중 중국인이 없는 경우가 없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은 자금과 인력에서 모두 밀린다. 대학원 졸업생들도 한국 대기업보다 초봉을 3∼4배 더 주는 미국 기업을 선망하는 게 현실이다. 아직 시장이 보이지 않는 AI 로봇 산업에 선뜻 거액을 투자하려는 대기업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쓴소리를 했다. “한국 대기업도 로봇이 언젠가는 뜰 거라는 걸 10년 전에 이미 알았다. 그런데 기업에선 공공연하게 ‘1조 원의 시장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얘기하더라. 그렇게 때를 놓쳤는데, 과연 10년 뒤에 들어가서 주도할 수 있겠나.” 덩치 큰 대기업이 혁신을 선도하지 못하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구글 역시 AI 챗봇 출시를 머뭇거리다 스타트업인 오픈AI에 선수를 빼앗겼다. 김 교수는 “대기업이 돈이 없거나 미래를 모르진 않지만 나서서 하기 어려운 분야가 있다”며 “그런 걸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키워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새로운 동영상 생성 AI 서비스 ‘소라(Sora)’를 공개하면서 전 세계가 들썩이죠. 텍스트만 입력하면 고품질 동영상을 뚝딱 만들어준다는 점이 경이로운데요.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까지 학습한 생성형 AI의 진화가 놀랍습니다.그럼 우리도 얼른 뒤쫓아가자고요? 글쎄요. 어차피 이미 늦었는데, 건너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어떨까요. 그 다음이라 함은 바로 AI 로봇을 일컫습니다. 글·이미지·영상 자료로 학습하는 게 아니라, 오감을 사용해 사람처럼 스스로 체험하면서 학습하는 AI이죠. 서울대 AI연구원 교수 세 분과 함께 인공지능의 미래, AI 로봇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 원장, 박재흥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함께 만났습니다.*이 기사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오감으로 학습하는 AI 로봇이 온다-챗GPT 탄생 이후 생성형 AI 서비스로 세상이 들썩이죠. 세분은 AI와 로봇을 일찍부터 연구하셨는데요. 이런 시대가 곧 올 거라고 생각하셨나요?장병탁 원장=“옛날 AI는 사람이 아는 지식을 자꾸 넣어주려고 했어요. 전 그렇게 해선 멀리 못 간다, 자기가 스스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기계가 학습한다’는 개념인데요.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이게 이렇게 파급 효과가 클 줄은 몰랐는데요. AI 기술이 달라지면서, 이제 AI 로봇이 만들어질 수 있는 때가 됐습니다.”-지금도 산업현장에서 로봇이 많이 쓰이죠. 하지만 그건 일일이 사람이 프로그래밍해야 작동하는데요.김현진 교수=“예컨대 로봇 팔 길이가 얼마, 무게가 얼마인지 알면 수식을 쓸 수 있죠. 그 수식을 풀면 로봇이 어떻게 동작할지 알고요. 제가 예전에 공부했던 제어 분야에선 그렇게 했는데요. 요즘 AI 쪽에서 로봇을 연구하는 분들은 ‘그런 거 다 몰라도 돼. 나는 모른다고 하고 개발할 거야’라고 합니다. 물론 처음엔 당연히 잘 안되죠.”-그렇겠네요, 처음엔.김 교수=“그래서 옛날식으로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거 우리가 재면 되는데 왜 모른다고 하고 시작하니?’라고 하고요. AI 쪽은 ‘지금 우리는 그 정보를 안 쓰니까 처음엔 못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계속 학습해나가면 너네보다 나중엔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철학이에요.”-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르군요. 로봇이 스스로 학습하면 팔 길이가 더 길든 짧든 상관없이 거기 맞춰갈 수 있겠어요.장 원장=“프로그래밍한 건 사람이 생각한 디자인은 잘하지만 확장성이 없죠. 지금 챗GPT가 이전과 다른 것도, 옛날엔 ‘무슨 단어가 나오면 다음엔 무슨 단어라고 말해’라고 프로그램 해줬어요. 지금은 그렇게 안 하죠. ‘I love’ 다음에 뭐가 나오는지 문장을 다 학습해서, 확률적으로 답을 해요. 그래서 엉뚱한 말도 하지만.”-로봇이 ‘제어’의 영역일 땐 정확성은 뛰어나도 확장성이 없다 보니, 산업적으로 확 커가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겠군요.장 원장=“로봇은 범용적인 걸 해야 하거든요. 한가지 정해진 것만 하는 건 옛날 방식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 지금 공장에서 쓰이는 로봇이 그렇죠. 그런데 (탁자 위 물컵을 가리키며) 이걸 치우는 로봇이라면 물컵이 이쪽에 있거나, 저쪽에 있거나 다 치울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걸 다 프로그래밍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몸을 가지고 배우는 알로하-최근에 ‘AI가 몸을 가지고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더라고요.장 원장=“챗GPT는 글자만 가지고 세상을 감지합니다. 전 세상 문서를 다 읽은 셈이죠. 그다음 이제 영상이 오고 있는데, 아직은 잘 못해요. (생수병을 들면서) 이걸 보면 ‘물병이다’라고 인식하는 정도이고요. 제가 (생수병을 반쯤 숨기며) 이렇게만 보여주면 알지 못하죠. 그런데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은 이쪽 편으로 와서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몸이 있으면 훨씬 똑똑해질 수 있습니다. (물컵을 들며) 이게 뭔지 진짜 알려면 만져 보고 들어 보고 하면서 배워야 하거든요. 이제 AI가 그렇게 가야 하죠.”-그런 AI 로봇 연구 사례 중에 재미있는 게 있으면 소개해주시죠.질문을 하자마자 세 교수 모두 ‘알로하’를 떠올렸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구글 딥마인드와 협력해서 개발한 가사노동 AI 로봇이다. 프라이팬에 새우를 굽고 설거지도 척척 하는 양팔 로봇의 영상이 지난달 공개됐고, 세계 로봇 연구계가 뒤집혔다.장 원장=“박재흥 교수가 연구하는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 원격으로 사용자가 로봇을 제어)로 연구자가 물건을 잡으면, 저 멀리서 로봇 팔도 이걸 잡아요. 그게 데이터가 되고 그걸로 학습하죠. ‘아바타 로봇’으로 사람이 하는 걸 흉내 내서 학습하면, 나중엔 사람이 없어도 혼자 하게 돼요.”-아바타 로봇이 단순히 사람 동작을 따라만 하는 게 아니라, 그걸 데이터 삼아 스스로 학습하기까지 하는군요.박재흥 교수=“지금 기술 수준은 거기까지(동작을 따라 함)인데, AI 기술을 합하면 되는 거죠.”-일단 새우 굽는 법을 가르치면 AI 로봇이 나중엔 다른 요리까지 만들게 될지도 모르겠어요.장 원장=“AI 발전 관점에서 로봇이 진짜 중요한 이유가 그거예요. 몸과 센서, 액추에이터(원동기)가 있으면 기계 스스로 학습할 수 있어요. 지금은 ‘이건 물컵이야. 떨어뜨리면 깨져. 소리가 나’라고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는데요. 로봇이 듣고 움직일 수 있으면 안 가르쳐줘도 스스로 알 수 있죠. 지금 세상을 바꾼 게 ‘머신러닝’인데, 그 머신러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게 AI 로봇이에요.”-서울대에선 지난해 3월부터 팔을 가진 AI 로봇를 연구하셨죠?장 원장=“챗GPT가 전 세상 인터넷 문서를 다 읽어 머릿속에 넣어놓고 즉답을 하거든요. 그런데 로봇은 따로 있었어요. 로봇은 몸만 있지 말은 못 했고, 챗GPT는 말은 많은데 몸은 없죠. 그 둘이 결합되는 시도가 지금 막 일어나는 겁니다.”-서울대가 개발한 로봇팔은 ‘빨간 컵 집어줘’라고 명령하면 척척 하더라고요.장 원장=“그 로봇은 말로 가르칠 수도 있어요. 예컨대 ‘손가락을 열고, 물병에 가까이 가서 집어’라고 말을 하면 로봇이 그 행동을 따라 해서 물병 집는 법을 배우죠.”범용 로봇은 코딩 대신 AI가 필요하다-AI가 몸을 가지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선 간병인력이나 택배기사 부족과 관련해 로봇을 대안으로 많이 제시하더라고요.장 원장=“그게 사실 지금의 AI 서비스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죠.”-박 교수님이 개발하신 심폐소생술 로봇도 그런 점에서 필요한 기술이죠.박 교수=“심폐소생술 로봇은 특수목적인데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매우 범용적인 로봇이죠.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는.”김 교수=“예를 들면 휴머노이드(인간 같은 로봇) 한 대가 이 건물에서 경비도 서고, 조리도 하고, 심폐소생도 하고, 안내도 하고, 무거운 것도 들어주고. 이런 걸 생각하죠.”-결국 범용으로 가긴 가야 할 텐데, 아직은 특수한 목적의 로봇 위주이로군요.박 교수=“그게 가격 경쟁력과도 연관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서빙로봇이 많이 나오지만 사람은 서빙만 하지 않거든요. 청소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기도 하고 가치가 더 크죠. 지금의 로봇은 특수목적이니까 가격이 싼 것 같으면서도 약간 애매해요. 그래서 사기엔 부담되죠.”장 원장=“식당은 새마을식당도 있고 아웃백스테이크도 있잖아요. 다양한 상황이 있다 보니까 그동안은 범용으로 가기가 어려웠죠. 로봇이 지각을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개발하는 방법은 일일이 다 코딩해주는 거였으니까요. 아이들 교육하는 것과 비슷해요. 자꾸 암기식으로 집어넣어 주면, 당장은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 못 가죠. AI는 그게 아니라 애들을 박물관 데려가고 놀게 해주는 셈이죠.”김 교수=“내일 시험을 잘 보려면 내용은 잘 몰라고 무조건 외우면 조금이라도 맞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만 할 순 없는 거죠. 수년 후에도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스스로 학습하게 해야 해요. 지금 AI가 그렇게 가는 거죠.”LLM은 늦었지만 AI로봇은 이제 시작 -AI 로봇 기술에 있어서는 한국이 많이 뒤처져있진 않나요?장 원장=“텍스트를 가지고 챗GPT를 만드는 건 사실 이미 많이 늦었어요. 그건 이제 자본 싸움, 컴퓨팅 파워 싸움이죠. 하지만 로봇이 오감을 데이터화해 학습하게 하는 건 이제 시작이에요. 똑같은 출발이죠. 그래서 로봇 개발에 집중하는 AI는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죠. 제조업하고도 연결되니까요.”-거대언어모델을 우리가 새로 구축하자는 식의 작업은 돈도 많이 들고, 이미 늦었는데요. 그에 비하면 AI 로봇은 늦지 않았군요?김 교수=“거대언어모델(LLM)을 쓰는 로봇 연구가 한 1년 정도 전에 시작된 수준이거든요. 아까 본 알로하 로봇도 세계에서 제일 잘한다고 하지만 (연구 기간이) 5년 안쪽이고요.”장 원장= “어떻게 보면 AI 연구자들이 그걸 놓친 거예요.”-그동안 남들이 놓쳤기 때문에 우리가 잘할 수 있겠군요.장 원장=“못할 게 없어요.”중국의 로봇 굴기가 걱정스러운 이유-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족보행 로봇과 유사한 걸 중국이 이제 따라서 만든다고 하죠. 아무래도 중국은 시장이 크다 보니까 로봇이 좀 허접해도 팔리고, 그 결과 기업도 기술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데요.김 교수=“중국은 키워야 하는 분야는 정부가 무조건 밀어주는 데다, 중국 시장 안에서 자급자족이 됩니다. 그게 바로 선순환 사이클의 시작이죠.”-하지만 중국이 아직 ‘스스로 학습하는’ AI 로봇에 있어서는 기술력이 앞서 나가진 못하겠죠?김 교수=“네. 아마 우리와 비등비등할 것 같은데, 문제는 인력 숫자죠. 예를 들면 우리 연구실에서 10명의 대학원생이 아바타 로봇을 통해 데이터를 모으는 것과 중국에서 1000명이 모으는 건 비교도 안 되잖아요.”박 교수=“개발 인력도 차이가 크죠.”김 교수=“보통 AI나 로봇 분야는 논문을 쓰면 코드를 공개하거든요. 그 코드가 올라가면 중국 기업과 대학엔 그걸 열심히 뒤지는 사람들이 충분한 거죠. 그래서 괜찮은 게 새로 나오면 바로 갖다 써보고, 고칠 부분은 고쳐보니까요. 약점을 파악해서 더 나은 것을 만드는 걸 훨씬 빨리할 수 있어요.”장 원장=“인구나 투자 면에서 중국이 무섭긴 무서워요.”박 교수=“요즘 미국에서 나온 (AI나 로봇 관련) 논문을 보면 저자 중에 중국인이 없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저자 중 한 명은 중국인이죠. 그 사람은 언젠가 중국에서 뭔가 할 거고요.”김 교수=“저희 대학원생이 구글과 AI 논문을 쓰는 중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틱톡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기네 인턴으로 오라고요. 틱톡이 제시한 조건이 미국 빅테크보다 좋더라고요.”-중국 출신만이 아니라 전 세계 인력 중 좋은 사람을 계속 찾아서 데려가고 있군요. 엄청 빠르네요. 한국 기업들은 그렇게 빠릿빠릿하진 않나요?김 교수=“학생들 입장에선 매력이 없죠. 외국 기업은 제시하는 연봉 숫자가 한국의 몇 배이거든요. 제가 졸업할 때만 해도 구글이 10만 달러 준다고 들었는데, 요즘엔 톱 수준 졸업생은 40만 달러를 제시한다더라고요.”미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투자 붐 시작-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개발 중이죠. 어떻게 보세요? 아직 완성된 상태는 아니긴 한데요.김 교수=“발전 속도를 보면 훌륭하죠.”-옵티머스는 범용 로봇이 될 수 있을까요.박 교수=“기본적으로는 테슬라 공장에서 쓰려는 거죠.”김 교수=“그런데 휴머노이드 로봇이 잘 동작하면 사실 집에 넣을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예를 들면 문턱이 있어도 되고, 계단이 있어도 되니까요.”장 원장=“다만 가격이. 애초에 2만 달러로 만든다고 했는데,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죠. 로봇팔 하나만 해도 2000만원이 들거든요.”김 교수=“박 교수님이 보시기에 옵티머스를 똑같이 연구실에서 만들면 얼마나 돈이 들까요?”박 교수=“아마 한 30만 달러 정도 들겠죠. 인건비 계산 안 하고, 원가만 했을 때. 그런데 지난해 휴머노이드 학회에 갔을 때 한 회사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진짜 원재료, 즉 쇠 값만 따져보면 차보다 쌀 수도 있다’고요.”-차보다 크기가 작으니까요?박 교수=“그러니까 결국 생산의 문제인 겁니다. 자동차가 사실 되게 복잡하거든요. 그런데 엄청나게 발전해서 이 정도 가격이 된 거예요. 휴머노이드 로봇이 진짜로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노력해서 자동차보다 싸질 수도 있다고 얘기하는 거죠.”-로봇이 자동차만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죠?박 교수=“차는 너무나 유용한데,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직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이게 유용하다는 걸 보여주면 결국 발전할 수 있다, 왜 2만 달러가 안 되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장 원장=“로봇이 노동자 1명을 명확히 대체할 수 있으면 사실 가능하죠.”박 교수=“테슬라는 자동차 조립 공정에서 사람 노동자를 없애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거든요. 옵티머스를 통해 사람을 아예 다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장 원장=“좁은 공간에서 몸을 비틀어서 해야 하는 일, 기본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일도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해요.”-지금 공장에 세팅된 그런 로봇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어서 진짜 사람처럼 일을 시킬 수 있으면 생산성은 엄청나겠네요. 그런데 언제나 될까요?박 교수=“빨리 될 수도 있죠. 지금 테슬라를 포함해 미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진짜 투자를 많이 합니다.”-투자자들은 정말 그게 곧 된다고 보는 건가요?장 원장=“투자자들은 ‘다음’을 찾아야 하니까요. 전 그게 부러워요. 우리나라에선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데 실리콘밸리는 이미 그리로 가니까요. 그래서 미국이 선도하는 거예요. 지금 보면 그들이 너무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투자자들이 만들어가는 거죠.”-‘다음은 이거다’라고 여기면 ‘이게 될까?’라는 의문이 있어도 일단 가는군요.장 원장=“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면 거기에 똑똑한 사람들이 와요. 그럼 생각하지 못한 게 나오죠. 지금 챗GPT도 바로 그런 겁니다. 그래야 선도하는 거고요.”대기업이 로봇 투자 화끈하게 못 하는 이유-솔직히 걱정이 듭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잘하고 있지만 돈과 시장이 탄탄한 미국이나 중국처럼 갈 순 없는 것 아닐까요? 한국에서 범용 AI 로봇에 투자할 회사도, 그걸 살 소비자도 없어 보이는데요.장 원장=“부가가치가 높다는 건 남들이 다 알 때 시작한 게 아니라 먼저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그 격차를 벌려놓은 거고요. 그렇게 해야 때를 만나면 막 치고 나갈 수 있죠.”김 교수=“한국 대기업도 로봇이 언젠가는 뜰 거라는 걸 10년 전에도 알았죠. 그런데 당시엔 시장이 안 보였죠. 공공연하게 기업에선 얘기하더라고요. ‘1조원의 시장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들어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때를 놓치면 10년 또는 20년 뒤에 들어가서 주도할 수 있을까요.”장 원장=“로봇은 AI 응용의 임팩트가 확 달라요. 지금까진 AI가 정신노동만 했는데, 로봇은 몸으로 하는 일을 할 수 있죠. 고령화, 인구감소, 노동력 감소 문제는 올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일을 AI가 대신해준다면 그게 바로 로봇이에요. 또 원천기술 관점에서 ‘할루시네이션(환각, Hallucination)을 없애는 방법이기도 해요. 지금은 언어와 시각 데이터만 있는데, AI 학습에 터치(촉각) 정보만 추가돼도 할루시네이션은 확 줄일 수 있죠.”-명백히 로봇이 다음 AI 기술 발전의 단계인데, 문제는 대기업 입장에선 아직 시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로군요.김 교수=“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시장에 내놓고 팔 만큼 자신있는 로봇을 만들 수가 없는 거죠. 착용형 웨어러블 로봇이라고 부르는 보행을 도와주는 로봇이 있는데요. 삼성이 그걸 출시할까 말까 고민하다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삼성의 브랜드를 달고 나갔는데 만약 그 이용자가 실수로 넘어져요. 그래도 고객이 제품 때문에 넘어졌다고 할 수 있잖아요. 삼성은 기업 이미지가 너무 중요한데, 그 작은 시장을 위해 그런 걸 감수할 수가 없는 거죠.”장 원장=“구글이 오픈AI보다 AI 챗봇에서 늦은 이유가 그거죠. 할루시네이션은 생성형 AI의 근본적인 문제인데, 구글이 그것 때문에 계속 머뭇머뭇했고요. 오픈AI는 스타트업이니까 잃을 게 없었고요.”-오픈AI는 ‘일단 서비스하고, 그다음에 고치자’라는 식이로군요.장 원장=“챗GPT의 경우, 전 인류가 AI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에요. 여전히 학습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하니까 구글이 하지 못한 걸 스타트업이 먼저 해낸 거죠.”김 교수=“한국 같은 작은 나라에선 대기업이 돈이 없거나 미래를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나서서 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죠. 그런 걸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더 키워주거나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 아닐까 싶어요.” By.딥다이브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인터뷰 기사가 꽤 길어졌습니다. 벌써부터 ‘너무 길다’는 반응이 올 게 걱정되네요. AI가 아니라 인간이 쓰다 보니, 화끈하게 팍팍 잘라서 쳐내는 게 잘 안되는 점 이해해주십시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글, 이미지, 영상만 가지고 학습하던 AI가 몸을 가지면 어떻게 진화할까요. 오감을 느끼며 직접 세상을 체득하는 AI 로봇 시대가 다가옵니다. -AI와 로봇이 만나면 우리가 꿈꾸던 ‘범용 로봇’이 가능해질 겁니다. 생성형 AI의 약점인 환각 현상도 크게 줄일 수 있겠죠. AI가 정신노동뿐 아니라 육체노동까지 대신해준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입니다. 이 분야는 전 세계가 출발하는 단계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물론 가격은 가장 큰 걸림돌이죠. 하지만 AI 로봇이 그 필요성을 입증해서 대량생산 시대가 열린다면 가격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미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투자 붐이 일고 있습니다. AI의 다음 단계를 선점하려는 발 빠른 움직임인데요. ‘시장이 보이지 않는다’며 주저하다가는 영영 산업을 선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물가 지표 발표를 앞두고 소폭 하락했습니다. 26일(현지시간) 3대 지수 모두 하락으로 마감했네요. 다우지수 -0.16%, S&P500 -0.38%, 나스닥지수 -0.13%. 엔비디아발 AI 열풍에 힘입어 지난주 금요일 S&P500과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죠. 하지만 이날은 다시 이번 주 발표될 주요 경제 데이터(27일 내구 주문, 28일 도매 재고, 29일 소비자지출과 PCE 수치)를 앞두고 숨 고르기 장세를 보였습니다.특히 이날 지수 하락을 부추긴 건 구글 모기업 알파벳이었죠. 주가가 4.44%나 급락했습니다. 구글의 생성형 AI 서비스 ‘제미나이’의 이미지 생성 기능에 대한 비판이 커진 것이 악재로 작용했는데요. 아인슈타인을 흑인으로 묘사하거나, 독일 나치군을 아시아인종으로 묘사하는 식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인물 이미지를 생성했기 때문이죠. 결국 24일 구글은 이 기능을 중단했는데요. 이에 대해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이런 오류가 “다양성 반영이 너무 모든 것에 걸쳐 직설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라며 “(오류를 수정해) 몇주 안에 해당 기능을 다시 활성화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엔비디아 주가는 이날도 0.35% 올라 790.92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지난주 금요일 장중에 잠깐 달성했던 시총 2조 달러엔 아직 미치지 못하는데요.AI 주도의 주식시장 랠리는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까요. HSBC 전략가들은 글로벌 주식에 대한 투자 견해를 비중축소에서 중립으로 상향 조정했는데요. AI 주식의 반등을 1월엔 예측하지 못했고, 따라서 당시의 투자등급 하향 결정이 틀렸다고 인정한 겁니다.증시 낙관론이 퍼지면서 전문가들은 성장주에 주목합니다. 랜스버그베네트 프라이빗웰스매너지먼트의 최고 투자책임자인 마이클 랜스버그는 “성장을 보이는 부문과 기업에 계속해서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합니다. “기술, 의료 같은 종목은 강력한 수익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미국 이외 지역에서도 발생한다”는 거죠.AI 낙관론을 펼치는 인물 중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도 포함되는데요. 다이먼은 이날 공개된 CNBC 인터뷰에서 “이것(AI)은 과대광고가 아니라 진짜”라고 말합니다. 그는 JP모건에서 약 200명의 직원이 AI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도 전하는데요. 그는 “AI가 결국 모든 작업에 사용될 것”이라며 자신이 AI 기술의 “큰 낙관론자”라고 말합니다. 특히 사이버 보안과 제약 분야를 AI의 도움을 받을 영역으로 꼽았죠. “인간의 정신으론 할 수 없는 일을 (AI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언급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초콜릿 좋아하시나요. 옛 중남미 아스테카 제국 왕이 즐겨 마셨던 초콜릿 음료가 1500년대 유럽으로 건너가 특권층 사치품이 되었고, 1800년대 들어 우리가 아는 고체 형태 초콜릿이 생겨났는데요. 이 초콜릿이 다시 비싼 사치품이 되게 생겼단 얘기가 나옵니다. 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코코아 가격이 왜 이렇게까지 뛸까요. 흔히 기후변화와 질병 확산을 이유로 꼽는데요. 한 꺼풀 아래를 들춰보면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드러납니다. 포퓰리즘과 인플레이션, 부패한 관료와 중국자본의 침공까지. 생각보다 복잡하고 중요한 이야기, 아프리카 코코아 공급 쇼크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초콜릿·초코과자 가격 오른다초콜릿으로 유명한 미국 제과업체 허쉬가 지난 8일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애널리스트 질문이 가장 많이 쏟아진 주제는 코코아 가격. 마이클 벅 CEO는 코코아 가격이 “역사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며 “올해 수익 성장이 제한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동시에 “코코아 가격을 고려해, 제품가격 조정을 포함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초콜릿 가격 인상을 예고한 셈이죠.오레오로 유명한 제과업체 몬덜레즈는 이미 2023년 초콜릿 제품 가격을 12~15% 올렸는데요. CEO인 더크반데풋은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코코아 인플레이션에 맞서 올해도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도대체 코코아 가격이 얼마나 올랐냐고요.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준과 속도로 값이 뛰고 있습니다. 21일 기준 코코아 선물 가격은 t당 6198달러. 사상 최고가일 뿐만 아니라, 지난 1년 동안 126%나 상승했죠. 특히 올해 들어서만 42% 올랐을 정도로 최근 상승세가 가파른데요. 2월 들어서는 거의 매일 신고가를 기록 중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헤지펀드들이 앞다퉈 코코아 선물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 상승폭을 더 키우고 있죠.씨티그룹은 최근 고객에 보낸 메모에서 “코코아 가격 리스크가 t당 7000달러, 또는 1만 달러(!)까지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혀 업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물론 1만 달러는 좀 극단적인 전망이긴 한데요. 금융위기 이후 약 15년 동안 유지된 t당 2500달러 안팎의 ‘값싼 코코아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수출할 코코아가 없다그럴 수밖에 없는 게 코코아 최대 산지인 서아프리카의 작황이 극히 부진합니다. 서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세계 1, 2위 코코아 산지이죠. 전 세계 코코아의 60%가 여기서 나옵니다.2월은 이들 지역의 코코아 수확이 정점이어야 하는 시기인데요. 코코아를 실어 나르는 트럭이 꽉 들어차서 정신없이 바빠야 할 주요 항구가 한산합니다. 두 나라 모두 전년보다 수확량이 35%나 급감했기 때문입니다.오죽하면 자국의 코코아 판매를 독점하는 코트디부아르 정부기관이 최근 선도계약 판매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해마다 정부기관은 실제 공급 시점보다 12개월 앞서 해외 고객사와 수출 계약을 맺어왔는데요. 작황이 워낙 불확실하다보니, 이번엔 포기한 겁니다. 기존에 계약해둔 물량조차 도저히 맞출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가격이 급등한 시점에 판매를 못 하게 됐으니,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코코아 흉작 때문에 큰일 났단 얘기는 지난해 여름부터 나왔습니다. ‘검은 꼬투리병’이란 코코아나무엔 치명적인 곰팡이 감염병이 이 지역을 휩쓸었죠. 이상기후로 평소 강우량의 2배에 달하는 장맛비에 홍수가 났고, 그게 병으로 이어진 건데요.악천후와 질병 때문이라니. 그럼 지금의 코코아 공급 쇼크는 천재지변인 걸까요. 국제코코아기구(ICCO)를 포함한 업계 얘기는 다릅니다. ICCO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하죠. “현재 진행 중인 공급 부족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 견해입니다.”투자하기엔 너무 가난한 농부서아프리카 코코아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겁니다. 너무 가난한 코코아 농부들.앞에서 검은 꼬투리병이 휩쓸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병 확산을 막으려면 살균제를 사서 뿌리고, 인력을 동원해 병든 나무는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 묘목을 심어서 다시 수확량 늘리기에 나서야 하는데요. 그 모든 것엔 돈이 드는데, 코코아 농부들은 그럴 돈이 없습니다. 가나의 코코아 농부 사무엘 아도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죠. “코코아 농사를 시작한 이래 농장이 이렇게 심하게 공격당한 건 처음이에요.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농장에 다시 투자하기에 충분치 않아요.”코트디부아르엔 약 100만명, 가나엔 약 80만명의 코코아 농부가 있습니다. 코코아는 두 나라의 중요한 수출품이자 외화벌이 수단이죠. 특히 이 지역 코코아는 지방함량이 높고 풍미가 뛰어나서 글로벌 시장에서 더 높게 가치를 쳐준다는데요. 하지만 코코아 농부들은 한 번도 부유해진 적이 없습니다. 이 소규모 자작농들은 늘 가난합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 농민 절반이 하루 1.2달러(약 1600원) 미만으로 생활하죠.왜 농부들은 가난할까요. 혹시 중간 유통업자의 착취 때문일까요. 그렇게 보긴 좀 어렵습니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에서 코코아의 원산지 가격을 정하는 건 업자가 아니라 정부입니다. 정부가 1년에 한번 그해 코코아 구매가격을 결정해 발표하죠. 정부와 여당은 대체로 해마다 그 가격을 인상해오며 농부들을 달래왔습니다.가나의 경우를 볼까요. 지난해 9월 가나 대통령은 새 시즌(2023년 10월~2024년 9월) 코코아 한봉지(64㎏) 가격을 800세디에서 1308세디로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무려 63%나 한번에 올린 거죠. 대통령은 “서아프리카 코코아 농부에 지급되는 것 중 최고의 가격이다. 정부가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라고 연설했고요. 발표 현장에 있던 가나 농부들이 우렁찬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기뻐했는데요.아니, 이렇게 가격을 올려주면 농부들 형편이 조금이나마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다 까먹었다2016년 가나의 코코아 콩 구매가격은 봉지당 475세디. 이후 정부가 해마다 가격을 올려서 2023년 1308세디가 됐으니 명목상으론 농부들이 버는 돈이 3배 가까이로 늘어났죠.그런데 이걸 달러로 환산해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같은 기간 가나 통화가치는 급락했고요(2016년 1달러당 3.9세디→2023년 11.05세디). 따라서 달러로는 코코아 가격이 121.8달러에서 118.4달러로 오히려 떨어졌다는 계산이 나옵니다.동시에 인플레이션은 극심합니다. 2022년 12월 가나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54%. 이후 조금 안정됐다지만 2023년 12월에도 23%를 기록했는데요. 비료·살충제 가격은 물론 인건비와 생활비, 교육비까지. 모든 게 다 뛰면서 농부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도 남는 게 없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코코아 농부의 부를 죄다 까먹고 있습니다.그럼 왜 통화가치는 급락하고 물가는 급등했을까요. 정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탓이 큽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선거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인데요. 대신 선거철만 되면 정부가 퍼주기 정책을 남용합니다. 예를 들어 고교 수업료를 폐지하고, 전력기업에 대출을 연장해줘서 전기요금을 낮추고, 부도 위험 은행에 자금을 투입해 살렸죠.그러느라 국가부채가 급증하면서 외환보유고가 텅 비고 국가신용도는 뚝뚝 떨어졌고요. 해외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게 되자 정부는 중앙은행을 동원해 돈을 찍어내서 펑펑 썼습니다. 결국 2022년 말 가나 정부는 해외 채권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고요. 지난해 5월 또다시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됐습니다. 방만 재정의 끝은 파탄 난 경제와 고통받는 서민입니다. 코코아 농부들의 가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죠.산유국과 코코아 수출국의 차이점그렇다고 코코아 수출국의 가난이 전부 정부 탓이라고만 보긴 어렵습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석유가 많은 중동과 달리 코코아가 많은 서아프리카는 가난한 건 왜일까요. 석유와 코코아가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죠.산유국은 생산량과 가격에 대한 통제권이 있습니다. 가격을 높이고 싶으면 유정의 파이프 밸브를 잠그기만 하면 됩니다. 석유는 땅속에 묻혀있을 거고, 어디로 사라지거나 썩지 않죠. 반면 코코아나무는 잠깐 성장을 멈추게 할 수도, 갑자기 빨리 자라게 할 수도 없습니다. 수확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으니, 생산국이 국제 가격을 통제할 수 없죠. 환율은 더 예측 불가이고요. 애초에 코코아콩을 팔아 부자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게다가 석유와 달리 코코아는 한정된 경작지를 두고 다른 자원과 경쟁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선 그 상대가 고무이죠. 타이어 관련 수요가 늘면서 광대한 고무나무 농장이 이곳에 속속 들어서는 추세인데요. 고무나무는 코코아나무보다 관리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코코아를 버리고 빠르게 고무로 돌아섰고 있는 겁니다. 가나에선 코코아가 금과 맞서야 합니다. 가나는 아프리카의 최대 금 생산국인데요(세계 7위). 이른바 ‘갈람세이(galasey)’라고 부르는 불법 소규모 금 채굴광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코코아 농장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가나의 한 농부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 채굴업자들에게 코코아 농장을 내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그들은 내게 매달 500달러를 줘요. 나는 코코아 재배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그걸로 만족해요.”여기서 알아둘 점은 갈람세이 업자 중 상당수가 중국인이란 점입니다. 곡괭이와 삽을 이용하던 과거의 영세 채굴업자와 달리, 2006년부터 가나로 몰려든 중국인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금을 파냅니다. 이로 인해 코코아 경작지는 더 황폐화되고 있고요. 이들이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며 활개치게 된 건 가나 이민 당국과 경찰 등 관료들의 무능과 부패 탓이 큽니다.서아프리카의 코코아 공급 쇼크를 파헤치다 보니 이와 연관된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데요. 그래서 시장 원리대로라면 ‘코코아 가격 급등→코코아 재배 증가→공급량 확대→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겠지만, 이 지역에선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가나 정부기관인 코코아위원회 관계자는 “코코아 농장 재건에 5년이 걸릴 것”이라면서 “국가 경제위기가 이런 노력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전하는데요.이런 상황은 서아프리카 이외 코코아 생산국엔 기회이죠. 에콰도르·브라질·페루·인도네시아·베트남 같은 나라에선 코코아나무 심기 붐이 일지 모릅니다. 그럼 이 작은 원자재 시장은 또 어떻게 출렁거리게 될까요. 혹시 ‘가나는 코코아, 코코아는 가나’라는 말(OECD 보고서에서 인용)이 옛날얘기가 되는 날도 오려나요. By.딥다이브화요일 뉴스레터에서 블룸버그의 코코아 관련 기사를 짧게 전해드렸더니, 한 구독자분이 ‘코코아 재배 농민 수익을 유통업자가 확보해줘야 하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통업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니 정부이더군요. 그때부터 파고 들어가 이 기사를 쓰게 됐습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주요 제과업체가 초콜릿 가격 인상을 예고했습니다. 코코아 가격이 무섭게 뛰면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기 때문인데요.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코코아 생산량이 35%가량 급감해 공급 부족에 시달립니다.-표면적으로 수확량 급감의 원인은 ‘검은 꼬투리병’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코코아 농부들이 너무 가난해서 살균제나 새 묘목을 살 돈이 없다는 거죠. 정부는 해마다 코코아 구매 가격을 높여줬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농부들은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결국 경제를 파탄 내고 인플레이션을 치솟게 만든 정부 탓이 큽니다. 동시에 수확량을 수시로 마음껏 조절할 수도 없고, 경작지를 두고 다른 자원과 경쟁해야 하는 코코아라는 원자재가 가지는 한계이기도 하죠. 정말 코코아 가격은 씨티그룹 전망대로 t당 1만 달러까지 뛰게 될까요. 이제 ‘값싼 초콜릿 시대’는 저문 듯합니다.*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엔비디아발 인공지능(AI) 열풍이 또다시 주식시장을 달아오르게 만들었습니다. 2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S&P500과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요(S&P500 +2.11%, 다우지수 +1.18%). 나스닥 지수는 2.96% 급등해 사상 최고치에 바짝 다가섰습니다.이날 주인공은 단연 엔비디아입니다. 전날 장 마감 뒤 깜짝 실적을 발표한 엔비디아는 이날 주가가 16.4%나 폭등했죠. 블룸버그와 로이터에 따르면 이로써 엔비디아는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2770억 달러(약 368조원)나 불어났는데요. ‘일일 시가총액 최대 상승폭’ 신기록을 세운 겁니다. 하루 시총 증가액이 코카콜라 전체 시총(2650억 달러)을 넘어섰을 정도인데요. 스탠포드번스타인 애널리스트 스테이스 라스곤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회사(엔비디아)는 현재 돈을 인쇄하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성장 전망은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날 월가는 앞다퉈 엔비디아 목표 가격을 높였습니다. JP모건은 기존 650달러였던 목표주가를 850달러로, 뱅크오브아메리카는 800달러에서 925달러로 상향 조정했죠. 엔비디아의 이날 종가는 785.38달러입니다.특히 전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생성형 AI가 티핑 포인트에 도달했다”라는 발언은 전 세계 증시에서 AI 투자 열기에 불을 지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이날 유럽의 스톡스유럽600지수와 일본 니케이225지수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죠. 이에 대해 씨티그룹의 전략가 비샬 비벡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렇게 말합니다. “(AI 투자) 열정이 식을 거라는 우려가 일부 있었습니다. 이것(젠슨 황 발언)이 보여주는 건 AI 테마가 살아있고 활발하다는 겁니다. 시장은 바로 이를 주요 시사점으로 받아들입니다.”엔비디아의 강력한 실적이 미국 주식시장의 금리 불안을 잠재울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JP모건체이스의 트레이딩 데스크는 이날 낸 보고서에서 엔비디아 실적이 연준 통화정책에 대한 최근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봤는데요. “매그니피센트7(빅테크 7종목)이 금리 환경에 관계없이 수익 기대치를 충족하는 것으로 입증됐기 때문에 주식과 금리의 디커플링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엔비디아뿐 아니라 AI 성장의 수혜주로 꼽히는 AMD(10.69%)와 브로드컴(6.31%) 주가도 급등했습니다. 미국에 상장된 반도체 ETF 중 가장 규모가 큰(160억 달러) 반에크반도체ETF(티커 SMH)도 6.8% 상승했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땅을 파면 천연수소가 펑펑 나온다. 아마도 무한대로 계속 생성될 거다.’이런 얘기, 어떤가요. 웬 허무맹랑한 소리냐고요? 틀림없는 사기꾼이라고요? 최근 유명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와 미국 지질조사국 같은 신뢰할 만한 기관과 과학자들이 이 스토리를 진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천연수소, 지질학적 수소, 백색(White)수소, 골드(Gold)수소 등. ‘지각에서 자연 생성되는 수소’를 일컫는 용어도 참 여러가지인데요. 어쩌면 세상을 바꿀 발견일지 모르는 천연수소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과학상식 깬 천연수소보글보글, 동굴 안에 고인 물속에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프랑스 그로노블알프스대학 연구진이 2월 9일 자 사이언스지를 통해 공개한 영상인데요. 활발하게 방출되는 이 기체의 정체는 바로 수소(H₂)입니다.발견지는 알바니아의 깊은 지하에 있는 크롬철광 광산. 연구진 측정 결과 매년 최소 200t의 수소가 이곳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발견은 특정 오피올라이트(지표에 올라온 해양판 암층)가 경제적으로 유용한 수소 축적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전하죠.땅속에서 순수한 수소가 펑펑 솟아 나오고 있다고? 이게 무슨 상식을 깨는 소리인가 싶죠.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는 워낙 작은 데다 반응성이 커서 단독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게 그동안의 상식이었습니다.‘탄화수소(석유나 천연가스)를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수소는 이미 산화되어 연료로 사용할 수 없다. 결합되지 않은 풍부한 수소를 얻고 싶다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태양 표면이다.’ 2007년 보수 색채의 미국 잡지 ‘뉴 아틀란티스’는 ‘수소 사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죠. 외계가 아닌 지구에선 수소를 얻으려면 복잡하고 값비싼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수소가 어떻게 미래의 에너지원이 되겠냐는 비판이었습니다.그런데 그 상식이 틀렸습니다. 지구에 수소가 묻혀있고, 그 양이 꽤 많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수소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수소를 자연 발생시키는 원리는 12가지 이상으로 추정되는데요. 연구자들은 그중 가장 많은 천연수소를 만들어내는 게 ‘사문석화’ 작용이라고 봅니다. 용어는 어렵지만 개념은 간단합니다. 철이 풍부한 암석이 매우 뜨거운 물과 반응해 녹슬면서 산화철과 수소가스를 생성하는 거죠. 일종의 ‘철이 풍부한 물웅덩이’에서 수소가 퐁퐁 솟아나고, 그 수소가 땅속에 갇혀서 모여있는 건데요. 그 반응은 무한대로 계속 일어날 거고 수소는 재충전될 겁니다. 그 암석과 물은 지구에 너무나 풍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죽은 동물(유기물)이 쌓여 만들어낸 석유나 천연가스(=매장량에 한계 있음)와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지금은 수소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요. 천연가스의 개질반응(분자구조를 바꿈)으로 만들거나(그레이수소), 전해조라는 설비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죠(그린수소). 그레이수소는 생산비가 저렴하지만(㎏당 1달러 안팎) 더럽고, 그린수소는 깨끗하지만 너무 비싼 게 문제인데요(㎏당 3~7.5달러). 천연수소, 즉 지하저장고에서 수소를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면? 경제성을 따질 때 기준선이 되는 생산비 ㎏당 1달러 이하를 달성할 수 있으면서도(시추업체의 주장)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제로 수준입니다. 수소시대로 가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었던 수소 생산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죠. 물론 저장과 운송의 문제는 여전히 남겠지만요.수소 골드러시가 시작됐다땅속에서 수소가 관찰된 건 꽤 오래전부터입니다. 100여년 전인 1921년 호주 지질학자들이 남부의 한 광산에서 높은 농도(80%)의 수소를 발견한 기록이 남아있고요. 냉전시대 구소련 과학자들이 지각 속 수소 발견과 관련해 남긴 연구기록은 500건이 넘죠. 튀르키예 안탈리아의 올림포스산에서 2800년 동안 꺼지지 않고 있는 신비의 불꽃 ‘야나르타쉬’ 역시 천연수소 존재의 증거입니다.다만 아무도 수소를 찾아내려 애쓰지 않았죠. 돈이 된다고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동안은 석유나 천연가스를 찾으려고 땅을 파다가 실수로 수소를 발견하는 식이었습니다. 수소는 무색무취잖아요. 작정하고 달려들지 않는 한 매장지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는데요.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미 미국·호주·캐나다·스페인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수소 시추를 시작했습니다. ‘수소 우물’을 파고 있는 곳은 미국 네브래스카주와 캔자스주, 아프리카 말리의 부라케부구, 호주 남부 민라톤 근처, 스페인 피레네 산맥 기슭 등이죠. 이밖에 브라질, 콜롬비아, 오만에서도 천연수소가 발견됐고요. 프랑스 연구자들은 알자스-로렌 탄광지역을 유력 매장지로 보고 탐사 중입니다.이 ‘수소 사냥꾼’ 기업에 기대를 거는 투자자들도 상당합니다. 호주의 하이테라(HyTerra)나 골드하이드로젠(Gold Hydrogen)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이미 수백만 달러를 유치했고요. 미국 스타트업 콜로마(Koloma)는 무려 2억4500만 달러를 유치했습니다. 특히 콜로마 투자자 중엔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설립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가 있죠. 빌 게이츠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천연 수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거대할 수도 있고 파산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면… 와우!”지금의 이 열기는 딱 ‘수소 골드러시’라 부를 만합니다. 대규모 수소 매장지를 남들보다 먼저 찾아내기 위한 돌진이 시작된 거죠.그중 눈에 띄는 선구자 중엔 말리 출신으로 지금은 캐나다 스타트업 하이드로마(Hydroma)를 운영 중인 알리우 디알로가 있습니다. 그는 말리의 시골마을에서 1987년 우연히 발견됐다가 버려졌던(저주받았다고 여겨서) 수소우물을 2012년 개발했죠. 거기서 나온 수소는 마을의 전기 공급원이 되고 있습니다. 말리에서 이미 24개의 수소우물을 시추한 그는 이렇게 확신합니다. “수소는 인류의 게임체인저입니다.”“전 세계 천연수소 매장량 5조t”자, 그런데 좀 냉정하게 따져보자고요. 아직까지 수소 시추는 꽤 리스크가 커 보이는 사업입니다. 일단 수소가 어디에 얼마나 많이 묻혀있는지,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얼마나 땅을 깊이 파야 하느냐에 따라 경제성 차이가 크죠. 현재 시추 중인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수소우물은 이미 3400m를 팠지만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시추의 안전성은 보장되는 건지, 기존 화석연료 시추방식을 그대로 쓸 수 있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하고요. 기왕 뽑아낼 거라면 수소의 생성양을 자연 상태보다 확 늘릴 방법도 고안해 내야 할 겁니다.아마 실제 지하에서 천연수소를 대량으로 뽑아내서 이걸 시장에서 판매하게 되기까진 수년이 걸리겠죠. 그래도 일단 분위기는 긍정적입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서 천연수소 프로젝트를 이끄는 제프리 엘리스 박사가 17일 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회의에서 미발표 연구결과를 미리 공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전 세계 지하에 최대 5조t의 수소가 존재한다고 합니다.5조t이라니, 잘 와닿지 않는데요. 그는 “이 중 몇 퍼센트만 회수하면 연간 5억t에 달하는 모든 예상 수요를 수백년 동안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발이 불가능한 매장지도 많지만, 전체의 2~3%만 개발해도 전 세계 수소 수요를 충족시키기 충분할 거란 겁니다.한편 USGS는 천연수소 매장과 관련해 가장 유망한 지역에 대한 평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죠. 일종의 ‘보물 지도’가 공개되는 셈입니다. 그럼 천연수소 개발 열기는 더욱 달아오를지 모릅니다. 다들 찾고 싶어하는 ‘천연수소의 사우디아라비아’는 과연 어디가 될까요.170년 전 석유시대도 그렇게 열렸다땅속에 파묻힌 보물 같은 수소를 찾기 위한 무한 경쟁. 참 영화 같은 스토리인데요. 이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운 건 과거 석유시대 개막과 참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땅에 구멍을 뚫어 매장된 석유를 퍼 올린다’는 개념. 지금이야 다들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데요. 1850년대까지도 지금의 ‘천연수소’ 개발론보다 더 미친 소리로 취급당했습니다. 그때 연료로 쓰이던 가장 중요한 기름은 석유가 아니라 고래기름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선 고래의 지방을 끓여 녹인 기름으로 램프등을 밝혔죠(다행히 아직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입니다).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출판한 1851년, 당시 포경은 미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산업이었습니다. 연간 8000마리의 고래가 도살돼 전 세계 등잔에 기름을 제공했죠. 고래기름과 포경업의 지위는 매우 단단했습니다. 포경업자들은 다른 기름(예-냄새나는 돼지기름)이 고래기름을 대체할 거란 신문기사를 두고 “사기꾼들의 소음”이라며 코웃음 쳤죠.그때도 석유가 있긴 있었죠. 하지만 암석층 틈으로 흘러나오는 걸 모으는 수준이었습니다. 땅을 드릴로 뚫으면 땅속에서 석유가 펑펑 솟아나오지 않을까. 당시로선 몽상에 가까운 이런 생각을 한 모험가 중 하나가 에드윈 드레이크였습니다. 그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펜실베이나주 타이터스빌에서 1년 넘게 땅을 팠죠. 투자금이 바닥나기 직전, 그는 최초로 석유를 시추하는데 성공해냅니다. 1859년 근대적 석유산업의 시작입니다. 이로써 고래기름은 등유로 대체됐고 포경산업은 순식간에 쇠락합니다.고래기름에서 석유로의 전환이 알려주는 것은? 뉴욕타임스의 16년 전 기사 속 표현을 빌리자면 “한 시대의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원이 다음 시대의 유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더 새롭고 깨끗하고 적합한 에너지원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한순간에 대체될 수 있는 거죠. 그럼 다음번엔 혹시 그게 수소일 수도 있을까요?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하나 알아둘 점은 그 석유 유전을 처음 개발한 에드윈 드레이크의 그 이후 이야기입니다. 그는 유전 개발로 약간의 돈을 벌었지만 결국 말년엔 무일푼으로 잊혀지고 말았죠. 결과적으로 동시대에 미국의 ‘석유왕’이 된 건 석유를 뽑아내는 시추업자가 아니라 석유를 정제하는 정유업자 록펠러였습니다.어쩌면 천연수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이야 누가 더 빨리 시추에 성공하느냐를 두고 경쟁하지만 빨리 간다고 진짜 승리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참고로 쉘, BP, 셰브론 같은 대형 에너지 기업은 아직 수소 시추에 뛰어들지 않은 채 관망 중입니다.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그들이 나선다면 판도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By.딥다이브천연수소와 관련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현재까지 확인된 점 중 하나는 발견되는 곳이 석유나 천연가스와 겹치지 않는다는 거죠. 솔직히 그래서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땅속 깊은 곳엔 석유 말고 수소도 묻혀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발생된 천연수소가 세계 곳곳에 매장된 것이 확인됩니다.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거의 없어 친환경적이면서도 생산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수소입니다.-천연수소 시추에 뛰어드는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소 골드러시의 시작입니다. 빌 게이츠가 지난해 투자한 콜로마처럼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는 곳이 생겨났습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지각에 매장된 천연수소가 5조t에 달한다고 봅니다. 이 중 아주 일부만으로도 전 세계의 수백년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양입니다. -하지만 정말 경제성과 안전성이 보장될 수 있을까요. 상업화까지 가려면 수년은 더 걸릴 텐데요. 과연 고래기름을 대체했던 석유처럼, 천연수소가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열게 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상상력으로 많은 부분을 채워야하는 단계입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지난주 5000선을 돌파한 S&P500지수는 또다시 새로운 기록을 쓸 수 있을까요. 뉴욕증시가 ‘대통령의 날’을 맞아 휴장한 19일(현지시간), 시장 참가자들은 주요 기업 실적에 눈을 돌립니다. 이번주엔 증시에 영향력이 큰 두 기업의 실적이 발표될 예정이죠. 바로 엔비디아와 월마트입니다. 최근 아마존과 알파벳을 차례로 제치고 미국 증시 시총 3위에 오른 엔비디아.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게 약 8개월 전인데 어느덧 시총이 1조800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뒤를 잇고 있는데요.올해 1월에 끝난 회계연도에서 엔비디아 매출은 590억 달러에 달할 걸로 전망됩니다. 전년도의 두배 이상이죠. 이른바 메가캡 기술 기업 중 이렇게 빠른 속도로 매출이 두배로 불어난 사례는 없다는데요. 덕분에 엔비디아 주가가 그렇게 뛰었는데도 여전히 12개월 선행 PER(주가수익비율)은 33배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아마도 엔비디아는 21일 또다시 강력한 실적을 발표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투자자들이 더 궁금해하는 건 이 AI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입니다. 특히 올해와 내년 AI 반도체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들 텐데요.현재까지 월가는 꽤 낙관적입니다.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지만, 엔비디아는 올해 말 신제품 B100을 내놓으며 치고 나갈 거기 때문이죠. 얼마 전 UBS는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850달러로 상향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시총 2조 달러를 돌파할 거란 전망이죠.월마트는 엔비디아보다 하루 앞서 20일 실적을 발표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월마트가 또다시 강력한 실적을 내놓을 거라고 보죠. 고물가 상황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가성비 좋은 월마트를 더 많이 찾고 있기 때문인데요.하지만 실적 호조만으로 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경영진이 올해 실적 전망과 관련해 신중한 어조를 취한다면 말이죠. 에버코어ISI 애널리스트 그레그 멜리츠는 월마트 실적이 예상을 충족할 거라면서도 “보수적인 가이드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실적 발표 후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지난번 실적발표 때도 더그 맥밀런 CEO는 ‘디플레이션’을 언급해 투자자들을 당황케 했죠(당시 주가 8% 급락).다만 만약 주가가 하락한다면 이는 매수 기회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 몇 분기 동안 월마트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일시적으로 하락했다가 회복되곤 했죠. 오펜하이머의 루페쉬 파리크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12~18개월 동안 지속적인 실적 개선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유권자만 2억명 넘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가 14일 치러졌죠. 여론조사 결과, 예상대로 현 국방장관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합니다. ‘독재자의 오른팔 출신’의 승리에 민주주의 후퇴가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오는데요.우리가 인도네시아 대선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사실 경제 때문이죠. 자원부국 인도네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상당한데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성향의 새 리더를 맞이하게 된 인도네시아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인니판 트럼프’의 당선에서는 2024년 인도네시아 대선에 대해 이렇게 예측(?)했습니다. ‘누구든 조코위 현 대통령이 미는 사람이 당선될 확률이 커 보인다’고요. 그리고 역시 그렇게 됐습니다.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인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37)를 러닝메이트로 삼은 프로보워 후보가 3수 끝에 대선 승리를 선언했죠. 사실 공식 선거 개표 결과는 한 달 뒤에나 나오지만, 표본 출구조사 결과(득표율 58%)가 꽤 정확해서 뒤집힐 일은 없어 보입니다. 과반수 득표에 성공하면 6월에 결선투표를 치를 필요 없이 바로 당선이 확정됩니다.프라보워(72세)와 조코위(62세). 정반대 캐릭터이죠. 프라보워가 명문가 출신의 거만한 전직 장군이라면, 조코위는 서민 출신의 부드러운 전 가구 제조업자입니다. 프라보워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닮았다면, 조코위 별명은 ‘인도네시아 오바마’이죠. 특히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를 30년 넘게 통치한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수하르토가 하야한 1998년 이혼)이자 친위대장 출신으로, 민주화 운동가 탄압에 관여한 전력이 있습니다. 소통에 강한 문민 정부 지도자인 조코위와는 도통 닮은 점을 찾을 수 없죠.그런데 그 둘이 손을 잡았습니다. 아무리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정치판이라지만, 참 놀라운 일인데요. 도대체 왜? 조코위 대통령이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거겠죠. 친족주의와 정실주의. 인도네시아 정치의 오랜 폐습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인구 2억7600만명인 인도네시아는 세계 세 번째로 큰 민주주의 국가(1위 인도, 2위 미국)이죠. 하지만 아직도 정치와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건 수하르토 시절부터 부를 축적한 지배층입니다. 재벌이 정치까지 주무르는 ‘그들만의 세상’이죠.조코위가 2014년 당선됐을 때만 해도 이 낡은 구조를 일소할 거란 기대를 받았는데요. 조코위 대통령은 그 대신 실용주의를 택했습니다. 영리하게 기득권층을 달래고 어르고 타협하면서 자신의 개혁안(규제 개혁, 신수도 건설 등)을 통과시켰죠. 덕분에 경상수지 균형, 5%대 경제성장률, 수천 ㎞의 도로를 포함한 인프라 건설 같은 눈에 띄는 성과도 올렸고요.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조코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70%가 넘었습니다.하지만 국제투명성기구의 2023년 부패인식지수에서 인도네시아는 180국 중 115위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 이후 점수가 오히려 떨어졌죠.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층의 대표 주자 프라보워가 권좌에 오르게 된 겁니다. 인도네시아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누리 옥타리자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기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육, 의료인프라, 빈곤, 일자리 창출, 부패 근절 문제가 여전히 주요 초점이죠. 프라보워의 군사주의적 배경과 포퓰리즘적 성향을 고려할 때 그가 어떤 지도자가 될지는 매우 불확실합니다.”니켈 부국이 불안한 이유전 세계가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 건 그 경제적 잠재력 때문이죠. 인구대국이자 자원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최근 2년 연속 5%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강한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아직은 GDP 기준 세계 16위이지만 이런 성장세라면 10여 년 뒤엔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전망이죠. 물론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보다 더 야심 찬 계획(2030년 세계 10위, 2045년 세계 5위)을 밝혔지만요.이런 성장 배경엔 니켈 중심의 산업정책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이죠. 인도네시아는 니켈 매장량 세계 1위 국가이고요. 지난해 글로벌 니켈 시장에서 이 나라는 무려 점유율 55%를 차지했는데요.2020년 인도네시아는 니켈 원광(가공 전 단계) 수출을 전격 금지해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니켈을 가공하도록 강제했고, 그 결과 인도네시아에 니켈 제련공장과 배터리 제조 공장을 만들기 위한 외국기업 투자가 밀려드는 효과를 거뒀죠. 자동차 산업이랄 게 없던 이 나라에 BYD, 포드, 그리고 현대자동차까지 앞다퉈 진출했습니다.여기까지만 보면 ‘자원 무기화의 승리’라 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글로벌 니켈 시장이 지난해부터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겁니다. 공급 과잉 때문에 니켈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 건데요. 2022년 3월 t당 4만8000달러를 찍었던 니켈 가격은 이제 1만6000달러로 3분의 1토막 났습니다. 1년 전과 비교해도 40% 가까이 떨어졌죠.니켈 공급 과잉의 주범은 누구일까요. 세계은행도, 맥쿼리도 모두 인도네시아를 지목합니다. 맥쿼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의 니켈 생산량이 지난해 30% 급증하면서 다른 국가에선 수익성 없는 니켈 광산을 폐쇄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BHP그룹, 파노라믹 리소시스, 와일루 메탈스 같은 굴지의 호주 광산기업이 니켈 채굴을 중단했습니다. 이 가격으론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죠.경쟁자들이 나가떨어졌으니, 이제 인도네시아가 시장을 장악할 기회일까요?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니켈 공급 홍수로 인해 인도네시아 니켈산업조차 휩쓸려버릴 위험에 처했는데요.인도네시아 광산전문가협회의 리잘 카슬리 회장이 최근 CNBC와 인터뷰한 내용이 무시무시합니다. 그는 현재 건설 중인 니켈 제련소가 모두 완공되면 “거의 1200만t 정도 공급이 늘어나게 된다”고 전하죠. “세계 시장에 니켈이 넘쳐날 것”이라며 걱정하는데요. 지난해 인도네시아 전체 니켈 생산량은 약 200만t. 그 6배 물량이 앞으로 더 쏟아져나온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이미 공급 과잉인데, 그 많은 물량을 어떻게 소화할까요. 공급 폭탄이 현실화하면 니켈 가격 붕괴는 피할 수 없습니다.‘조코위 2.0’ 기대하지만요약하자면 인도네시아 경제 성장을 이끈 조코위 대통령의 ‘니켈 무기화’ 약발이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팜유나 석탄 같은 다른 주요 수출품 가격도 하락세에 있고요.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의 성장 둔화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수출 전망은 썩 밝지 않습니다. 게다가 심각한 빈부 격차와 고질적인 부정부패 문제는 여전히 골칫거리인데요. 즉, 인도네시아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려면 앞으로 10년이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10월 대통령에 취임할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 경제를 어떻게 이끌까요? 일단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조코위 정책 계승’을 내걸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정책입니다. 니켈을 포함한 천연자원을 활용한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을 더 확대하고(이른바 ‘다운스트림’ 정책),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규제를 개혁하고, 새로운 수도 누산트라 건설을 계획대로 진행해나가겠다는 거죠. 바로 그 점-크게 달라지지 않고 안정적일 거란 기대- 때문에 그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특히 많았습니다.프라보워의 승리 소식이 알려진 15일 인도네시아 증시는 1%대 상승으로 마감했는데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긍정적인 것도 프라보워 정부가 ‘조코위 2.0’이 될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JP모건은 현재 7300포인트 수준인 자카르타종합지수가 올해 7500까지 오를 걸로 내다봤고요. 씨티그룹은 7750포인트를 제시합니다. 투자회사 야누스헨더슨의 펀드매니저 샛 두흐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코위 정부는) 오랜 경상수지 적자와 외국인 직접 투자 문제를 해결했고 인프라 측면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와도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기대합니다.”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인도네시아 전문가인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알렉산더 아리피아노 연구원 분석은 좀 다릅니다. 그는 상당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얘기하죠. “프라보워는 지금 조코위에 경의를 표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도네시아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가 되길 바랍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 자원을 투입할 겁니다.”걱정스러운 ‘판차실라 경제관’괜한 의심이 아닙니다. 프라보워는 이미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관을 밝힌 적 있는데요.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인도네시아가 ‘판차실라 경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판차실라 경제? 도대체 그게 뭘까요. 일단 판차실라(Pancasila)는 1945년 제정된 인도네시아 헌법 전문에 실린 건국 이념인데요. 다섯개 원칙(신에 대한 믿음, 인도주의, 통합, 민주주의, 사회 정의)으로 구성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통합을 추구하는 정신이라 하겠는데요. 참 이대로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은 이념이긴 합니다.문제는 판차실라가 과거 정권에서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곤 했다는 거죠. 수하르토 시절 악명 높았던 극우 정치깡패 집단 이름이 ‘판차실라 청년단’이었으니까요.어찌 됐든 판차실라 자체는 우리나라 ‘홍익인간’처럼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념인데요. 프라보워는 자신의 국수주의적 경제관을 판차실라로 교묘하게 포장합니다. 그는 판차실라 경제론을 이렇게 설명했죠. “이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 즉 중도의 길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항상 중간 길을 택했습니다. 제로섬 게임이 아닌 타협입니다.” 그러면서 생산 부문은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 개인이 아닌 국가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 평등주의적이고 대중적인 경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칩니다.아울러 “현재 인도네시아 경제는 신자유주의로 향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규제완화와 금융시장 개방, 국영기업 민영화와 재정건전성 강화 같은 조코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죄다 신자유주의적이라고 낙인찍은 겁니다. 갑자기 웬 신자유주의 타령인가 싶을 텐데요. 그는 신자유주의란 용어를 ‘국가의 부를 해외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매판 자본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로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게 만든 경제정책들이 죄다 국가의 번영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거죠.어떤가요. 이해되시나요? 인도네시아 경제는 이제 간신히 재정 건전성 높이고 외국 투자자 신뢰를 되찾고 있거든요.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오기 위해 발벗고 나서도 모자랄 판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운운하는 건 너무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오죽하면 해외에서도 유능한 경제관료로 명성이 높은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이 지난달 사임하려고 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죠. 그는 그동안 국방장관인 프라보워와 예산 때문에 번번이 충돌해왔는데요. 조코위 대통령이 대선에서 프라보워 편에 서는 걸 보고 열 받아서 장관을 관두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가 실제 물러나진 않았지만(후임자의 예산 낭비가 걱정돼서 사임하지 않았다고), 이 소문만으로 인도네시아 통화가치가 한때 출렁거렸을 정도로 금융시장엔 충격을 줬습니다.아직은 공식적으로는 프라보워가 후보자 신분이니 ‘조코위 정책 계승’ 약속을 바로 뒤집지야 않을 텐데요. 막상 권좌에 오르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도 인도네시아 시장을 유망하게 보고 많이 진출해왔죠. 인도네시아판 트럼프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By.딥다이브프라보워 후보는 한국과 악연이 있습니다. 2019년 국방장관이 되자마자 한국과 공동개발한 KF-21 전투기 사업 분담금 지급을 중단해버렸기 때문이죠. 그는 지난해 카타르에서 중고 미라지 전투기 12대를 구매키로 해서 또다시 한국 뒤통수를 쳤는데요. 이 계획은 스리 물야니 재무장관이 예산을 주지 않고 버티면서 결국 무산되긴 했습니다. 국가간 약속도 쉽게 깨버리는 프라보워에게 과연 신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인도네시아 대선이 프라보워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조코위 현 대통령의 장남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운 것이 결정적인 승리 요인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친족정치, 정실정치 악습이 되살아났습니다.-자원 부국 인도네시아 경제는 양호한 성장을 기록 중이지만, 걱정거리도 있습니다. 성장의 큰 축인 니켈산업이 공급과잉 여파로 가격 폭락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앞으로 10년이 인도네시아 경제엔 중요한데요. 일단 프라보워는 대선 공약에선 ‘조코위 경제 정책 계승’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국수주의적 경제관을 볼 때, 그가 약속을 지킬지 의문입니다. 그는 규제개혁이나 재정건전성 강화 같은 기존 경제 정책을 ‘외국 기업만 배불리는 신자유주의’로 매도합니다. 솔직히 좀 우려스럽습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 3대 지수가 15일(현지시간)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이로써 이틀 전 ‘물가 쇼크’로 급락했던 걸 만회했는데요. S&P500은 0.58% 상승해 또다시 사상 최고치(5029.73)를 기록했고요. 다우지수는 +0.91%, 나스닥지수는 +0.3%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날 아침에 나온 1월 소매판매는 예상보다 더 나쁜 0.8% 감소를 기록했는데요. 이 소식이 주식시장엔 오히려 호재로 통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경기가 좀 꺾이는 신호가 나타난다면 연준이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앞서 13일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주식시장이 심하게 요동쳤었는데요. 이제 와선 그게 너무 과잉반응이었다고 보고 되돌림이 나타나는 겁니다. B릴리 웰스 매니지먼트의 아트 호간 최고시장전략가는 CNBC에 이렇게 설명했죠. “적당히 높은 CPI에 시장은 엄청난 반응을 보였고, 그중 일부를 되돌리기 위해 남은 주를 보낼 겁니다.”이날 증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업종은 상업용 부동산 관련 주식입니다. CBRE,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JLL 모두 주가가 8%대로 급등했죠. 세계 최대 상업용 부동산 그룹인 CBRE가 “사무실 임대에 대한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는 낙관론을 표명했기 때문인데요.이날 컨퍼런스콜에서 CBRE는 미국의 사무실 수요가 6개월 동안 증가세를 보였고, 올해 말 미국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서 거래량이 증가할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엠마 지아마르티노 CFO는 애널리스트들에게 “2025년엔 과거의 핵심 주당순이익(EPS) 정점을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 소식에 CBRE 주가는 8.53% 급등하면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그동안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원격근무 확대와 고금리가 겹치면서 어려움에 처했었죠. 특히 부동산 소유주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이어지면서 대출해준 은행에까지 충격파가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 컸는데요. 아직 우려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끝이 보인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에 대격변이 일고 있다. 전통의 강자였던 미국 아이로봇은 중국 경쟁사에 밀려 빠르게 쇠락 중이다. 중국 에코백스가 1위로 떠올랐지만 중국 내수시장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위는 위태롭다. 그러자 중국 업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로봇청소기의 한국 시장 공습도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밀려난 아이로봇 룸바 미국 로봇청소기 제조사 아이로봇(iRobot)이 지난달 말 직원 31%(약 350명)를 해고하고 최고경영자를 교체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아이로봇 인수를 추진해온 아마존이 인수 포기를 발표한 데 이은 조치다. 아이로봇은 2002년 가정용 로봇청소기 ‘룸바(Roomba)’를 출시하며 로봇청소기 시장을 개척한 기업. 2016년엔 세계시장 점유율 64%에 달하는 절대강자였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고 2022년부터 적자의 늪에 빠졌다. 아이로봇은 아마존으로의 매각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 경쟁 규제당국의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아이로봇을 인수하면 아마존이 경쟁사를 도태시키게 될 것”이란 우려였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엘리자베스 워런이 아이로봇을 중국에 바쳤다”고 비판했다. 빅테크 인수합병을 강하게 반대해온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같은 강경파 때문에 아이로봇과 경쟁하는 중국 기업만 웃게 됐단 뜻이다. ● 중국의 프리미엄 전략 현재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 1위 기업은 중국 에코백스(중국명 커워쓰)로 추정된다. 공식 점유율 수치는 없지만, 에코백스 매출은 이미 2022년부터 아이로봇을 추월했다. 에코백스의 지난해 1∼3분기(1∼9월) 매출은 아이로봇의 2배가 넘는다. 에코백스를 비롯한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2010년대 말부터 두각을 보이는 건 기술력 때문이다. 로봇청소기 성능을 가르는 건 내비게이션 능력이다. 집 안 구조를 빠르게 파악해 지도를 만들고, 장애물을 피하면서 효율적인 경로로 청소해야 한다. 중국 제조사는 드론이나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고급 첨단 라이다(LiDAR) 센서를 탑재해 이 성능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제품 가격은 비싸졌지만 한층 똑똑해졌다. 뉴욕타임스의 제품 리뷰 서비스 ‘와이어커터’가 지난달 ‘최고의 로봇청소기’로 꼽은 제품 역시 중국 2위 업체 로보락(중국명 스터우커지)의 ‘Q5’였다. 아이로봇 룸바에 대해서는 “매핑(집안 지도 제작) 시간이 3배 이상 걸렸다”, “자주 장애물에 부딪혔다”며 추천하지 않았다. 먼지 흡입과 걸레질 기능을 통합한 제품을 일찌감치 내놓은 것도 중국 제품의 인기 이유다. 집 바닥에 카펫이 깔린 미국과 달리 바닥재가 마루나 타일인 아시아권에선 물걸레질이 필수여서다. 고급화 경쟁에서도 앞서갔다. 걸레를 자동으로 빨아주고 열풍 건조까지 시키는 이른바 ‘올인원’ 제품을 2021년부터 앞다퉈 내놨다. ● 내수 경쟁에 주가는 급락 중국 로봇청소기가 세계 시장을 휩쓸지만, 정작 선두기업 주가는 신통찮다. 에코백스 주가는 1년 새 65% 추락했다. 고점(2021년 7월 225위안)과 비교하면 7분의 1토막 수준이다. 중국 내수시장 경쟁이 너무 과열됐기 때문이다. 에코백스는 지난달 ‘연간 실적 예비 발표’를 통해 “2023년 순이익이 전년보다 60∼65% 감소할 걸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매출은 소폭 증가했지만 치열한 경쟁 탓에 판매 비용이 급증했다. 에코백스는 최신형 제품 ‘디봇 X2 프로’를 중국에서 정가보다 26% 할인 판매 중이다. 경기 둔화로 중국 소비가 위축되면서 비싼 로봇청소기가 잘 팔리지 않는다. 중국은 로봇청소기 제조사만 200곳 넘는 레드오션이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 살길은 해외 진출뿐이다. 에코백스 역시 성장세 회복을 위해 “올해엔 해외 사업 비중을 키우는 데 주력한다”고 밝혔다. 이미 로보락이 해외 진출 효과를 입증했다. 일찍부터 해외로 나선 로보락은 높은 해외 비중(52%) 덕분에 지난해에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주가도 지난 1년 동안 40%나 뛰었다. 한국은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노리는 주력 시장이 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전략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한 로보락은 2022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고, 지난해 상반기(1∼6월)엔 약 7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판매가격이 180만 원 전후인 최고가 제품이 홈쇼핑 방송에서 5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LG전자가 2003년, 삼성전자가 2006년 로봇청소기를 처음 출시했을 정도로 한국 기업은 이 시장에 일찍 뛰어들었다. 하지만 2013년 LG전자 전직 연구원이 중국 가전회사로 로봇청소기 핵심 기술을 유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중국 기업은 이 분야 연구개발에 열을 올렸고, 지금은 성능이 앞선 제품을 내놓고 있다. 김현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은 1000명 넘는 연구원이 전담 투입되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30명 수준”이라며 “중국의 인해전술에 국내 기업이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발랄한 숏폼 동영상으로 가득한 틱톡(TikTok)에서 음악이 사라지면 어떨까요.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요. 2월 1일부터 유니버설뮤직그룹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용한 틱톡 영상이 음소거됐습니다.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재계약 협상이 깨졌기 때문이죠.음반 레이블과 기술기업 간의 음원 사용료를 둘러싼 전투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긴 하죠. 상대가 유튜브에서 스포티파이, 틱톡으로 달라졌을 뿐인데요. 이번 갈등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란 더 중요한 이슈까지 자리 잡고 있답니다. 음반업계 최대 거물,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설뮤직 회장이 던진 승부수가 과연 통할까요.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싸움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틱톡 ‘음소거’ 이유는 돈. 얼마인데?‘이 사운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 제한으로 인해 소리가 제거됐습니다.’틱톡에서 이런 설명과 함께 음소거 처리된 영상이 크게 늘었습니다. 바로 세계 최대 음반 제작사 유니버설뮤직그룹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이죠. 여기엔 테일러 스위프트, 드레이크, 아리아나 그란데, 올리비아 로드리고, 더 위켄드 같은 해외 정상급 뮤지션이 속하고요. BTS와 뉴진스, 블랙핑크 같은 K팝 아티스트 음원도 포함됩니다(유니버설뮤직이 해외 유통을 맡음). 이들의 음악은 기존 영상에서 묵음처리될 뿐 아니라, 새로 만드는 영상에도 쓰일 수 없게 됐죠.유니버설뮤직과 틱톡 간 콘텐츠 사용료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입니다. 일단 양측의 계약은 1월 31일 자로 종료됐습니다. 1월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유니버설뮤직 측은 협상이 결렬된 이유로 세 가지 문제를 거론했는데요(①아티스트와 창작자에 대한 보상 ②AI의 유해한 영향 ③틱톡 사용자의 온라인 안전). 가장 큰 건 역시 돈 문제이죠. 유니버설뮤직은 “틱톡이 유사한 위치의 주요 소셜 플랫폼이 지불하는 요율의 일부에 불과한 요율을 제안했다”면서 “음악에 대한 공정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고 음악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아울러 “틱톡은 우리 총수익의 약 1%만을 차지한다”고도 밝혀버렸죠.이거 참 솔깃한 팩트인데요. 유니버설뮤직의 2023년 매출이 115억 달러로 추정되거든요. 따라서 틱톡이 현재 유니버설에 연간 약 1억1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가 유니버설뮤직에 지불하는 금액은 이보다 2~3배 수준이라고 하죠(구겐하임파트너스의 마이클 모리스 애널리스트).유니버설뮤직에 준 게 이 정도라면 틱톡이 전체 음악 권리자에게 연간 3억~4억 달러를 지급한다는 뜻이 되거든요. (유니버설뮤직의 전 세계 음반시장 점유율은 약 32%, 음악 퍼블리싱 시장 점유율은 약 23%). 틱톡의 2023년 글로벌 광고 매출이 약 150억~18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요. 이는 곧 틱톡이 매출의 2~3%를 음악 이용료로 쓰고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이 정도 금액이면 많은 걸까요, 적은 걸까요. 입장 따라 판단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죠. 유니버설뮤직 측은 틱톡 영상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며 너무 턱없이 적은 보상이라고 분노하고요. 반면 틱톡 측은 자기네 영상은 실제 음원 구매를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프로모션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반박합니다. 틱톡이 낸 짤막한 반박 성명엔 이런 입장이 담겨 있죠. “그들(유니버설뮤직)은 자신의 재능을 위한 무료 홍보·발견 수단 역할을 하는 10억 명 넘는 사용자를 보유한 플랫폼의 강력한 지원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습니다.”누가 권력을 쥐고 있나양측의 정면 충돌과 이로 인한 음소거 사태. 영상을 만드는 이용자뿐 아니라, 음반을 홍보하려는 가수와 그들의 팬들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로 인해 아주 흥미로운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과연 음반사와 틱톡, 누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틱톡엔 얼마나 음악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음반사엔 틱톡이 얼마나 필요할까요.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몇 가지 과거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2008년 워너뮤직의 유튜브 철수이죠.워너뮤직은 2008년 12월 유튜브와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자 유튜브에서 모든 콘텐츠를 삭제해버렸습니다. 소속 아티스트의 공식 동영상을 전부 내렸죠. 그리고 9개월 뒤 워너뮤직은 “가능한 최고의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자평하며 다시 유튜브로 돌아와서 내렸던 영상을 되살렸는데요.그럼 당시 재계약의 승리자는 워너뮤직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9개월 동안 워너뮤직은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저작권 침해 게시물을 감시하기 위해 수십명을 동원해 ‘두더지 잡기’를 했는데요. 한 달에 수만 건씩 잡아내느라 총 200만 달러 넘게 썼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 저작권 침해로 차단해도, 유저가 이의를 제기하면 다시 복원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워너뮤직은 2016년 의회에 제출한 서한에서 “2009년 9월 워너뮤직그룹이 유튜브와 체결한 계약 조건은 2008년 12월 거부한 조건보다 약간 나아진 것에 불과했다”고 패배를 인정했죠.최근 사례에선 좀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틱톡은 지난해 2월 호주에서 테스트를 하나 진행했죠. 일부 호주 이용자를 대상으로 게시물에 주요 음반사 음악 대부분을 이용할 수 없게 제한한 겁니다. 과연 음악이 틱톡 사용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실험해본 셈인데요.결과는 어땠을까요. 테스트를 시작한 이래 3주 연속으로 호주의 틱톡 활성이용자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앱 사용시간도 줄었고요. 블룸버그는 “이 테스트는 음악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려는 노력이었다”면서 “그러나 초기 결과는 정반대로 음악이 틱톡 매력의 핵심임을 강화했다”고 설명합니다.파장은 일파만파결국 유니버설뮤직과 틱톡, 양측이 어떤 식으로든 합의하게 될 거란 전망이 대세이긴 합니다. 유니버설뮤직의 광범위한 음악 산업 영향력이 그 이유로 꼽히는데요.유니버설뮤직은 2022년 말 기준으로 약 300만개의 음원을 보유하고 있죠. 이게 이미 틱톡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요. 여기에 더해서 약 400만곡에 대해 작곡가의 저작권을 관리합니다. 이걸 ‘퍼블리싱권’이라고 부르는데요. 녹음 작업은 다른 음반사와 했지만, 퍼블리싱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유니버설뮤직이 소유한 음악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예컨대 아델은 소니뮤직 소속 아티스트이지만, 저작권 관련해서는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과 계약했죠.요즘엔 곡 하나에 작곡자가 4~5명씩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중 단 한명이라도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 소속이라면, 그 음악은 틱톡에서 쓸 수 없게 되는 거죠. 만약 30일의 유예기간이 지나도록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재계약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곡들까지 모두 틱톡에서 듣지 못하게 되는 게 법적으로 맞습니다.만약 정말 그렇게 되면? 아주 난리가 날 겁니다. 미국의 음악 매체 ‘뮤직 비즈니스 월드와이드’는 익명의 음악업계 고위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하죠. “스트리밍과 소셜 플랫폼의 모든 음악 콘텐츠의 최대 80%는 어떤 형태로든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 소속 작곡가가 권리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즉 유니버설뮤직이 단 1%라도 권리를 가진 음악은 전부 틱톡에서 내리게 한다면, 남는 음악이 별로 없게 되는 겁니다. 이건 틱톡에도 큰일이지만, 유니버설뮤직 측도 곤란해질 수 있는 일인데요. 다른 음반사 소속 가수가 이에 대해 ‘왜 내 노래를 틱톡에서 홍보하지 못하게 하냐’고 문제를 제기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음악계 거물의 베팅물론 그는 이런 걸 다 감수하고서라도 이번에 틱톡을 길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가 누구냐고요? 타자 공인 전 세계 음악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설뮤직그룹 회장 겸 CEO입니다.45년 동안 음악 산업에 몸담아온 그레인지는 LP판이 CD로, 다시 MP3와 스트리밍 시대로 바뀌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왔는데요. 음악산업이 바닥으로 추락했던 2011년 회장 겸 CEO에 올라, 유니버설뮤직그룹을 지금의 독보적인 위상으로 끌어온 인물입니다. 그는 기술기업이 음악 업계에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압박하는 싸움에서 항상 선두에 서 왔죠.2011년 미국에 진출한 스포티파이와의 협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당시 음악 산업이 어땠는지 기억하시나요? 1999년 파일 공유 사이트 냅스터 등장 이후 불법 디지털 복제가 판치면서 전 세계 음악 시장은 매출이 뚝뚝 떨어졌죠. 음악 산업은 사양 산업으로 전락했고, 음반 제작사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는데요.이 때문에 음악 업계는 스트리밍서비스에도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레인지 회장은 거기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가장 먼저 뛰어들었죠. 대형 음반사 중 처음으로 스포티파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건데요. 이때 음원의 스트리밍 점유율에 따라 구독료의 3분의 2를 로열티로 받는 방식이 탄생합니다. 그 결과 음악 산업은?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 호황기를 누리게 됐습니다. 그레인지 회장을 음악 산업의 구원자로 칭하는 이유이죠. 물론 유니버설뮤직의 높은 시장 점유율 덕분이 이런 협상력을 갖게 된 거긴 한데요. 이후 그는 2017년 주요 음반사와 페이스북과의 계약 체결 협상도 주도했고요. 지난해에는 스포티파이와 디저(프랑스 스트리밍서비스 기업)가 전문적 아티스트 음악에 더 많은 로열티를 지급하도록 하는 변화도 이끌어냈습니다. 음악 업계 전체가 더 많은 수익을 배분 받도록 하는 데 총대를 맨 겁니다.그는 지난달 진행된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죠. “나는 가치가 수조 달러에 달하는 회사들(테크 기업)과 협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피라미입니다.”그레인지 회장은 음악 산업이 다음 기술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지를 열정적으로 연구 중입니다. 바로 생성형 AI인데요. 유니버설뮤직 측이 이번 틱톡과의 협상 결렬 원인 중 하나로 AI 문제를 거론한 건 바로 이런 그레인지 회장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유니버설뮤직은 성명에서 이렇게 밝혔죠. “틱톡이 플랫폼 자체에서 AI 음악 창작을 활성화하는 도구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이런 콘텐츠가 인간 아티스트의 로열티를 크게 희석시킬 수 있는 계약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AI로 인간 아티스트를 대체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보입니다.”그레인지 회장의 AI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한쪽으로는 어떻게 하면 AI가 음악 또는 아티스트와 관련한 권리를 무단 도용하는 것을 막을 것이냐이죠. 이와 관련해 유니버설뮤직은 지난해 10월 AI 기업 앤트로픽에 “노래 가사를 무단으로 AI 학습에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요. 아울러 미국 의회에 로비를 펼쳐 지난달 하원이 ‘AI 사기 방지법(No AI Fraud Act)’을 발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그의 인터뷰 멘트가 인상적입니다. “나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업계를 만들기 위해 여기서 45년을 보낸 게 아닙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또 다른 중요한 관심사는 과연 AI가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느냐입니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미래엔 스포티파이처럼 돈을 벌게 될 거고, 그 수익을 아티스트가 분배받게 될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거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지난해 닐 모한 유튜브 CEO가 취임하자마자 만났고요. 이후 유튜브와 손잡고 소속 아티스트들이 AI 도구를 실험하는 ‘음악 AI 인큐베이터’를 가동 중입니다. AI 시대에도 음악 산업의 주도권은 뺏기지 않으려는 그의 발빠른 행보가 놀라운데요. 그가 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틱톡의 AI 이용 계획을 단호하게 거부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과연 생성형 AI와 인간 아티스트의 상생이란 가능할까요. AI가 음악산업의 몫을 빼앗지 않고 더 많은 수익을 배분해 줄 길이 열릴까요. 아직 그 답을 알긴 너무 이른데요. 낙관주의자인 그레인지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냥 준비합시다.” 유니버설뮤직과 틱톡의 이번 싸움이 음악 산업의 역사엔 어떤 식으로 기록될지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이번 사태를 뉴욕타임스가 오픈AI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비슷하다고 평가하는 기사가 있더군요. 콘텐츠 창작 집단과 AI 기술 기업의 수익배분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에선 비슷한데요. 유니버설뮤직엔 테일러 스위프트로 상징되는 강력한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포진돼있다는 점에서, 뉴욕타임스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도 따라붙습니다(스위프트가 ‘틱톡 아웃’을 외치면 게임이 끝날지도?). 흠. 역시 언론보다는 음악 산업이 유망해보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세계 최대 음반회사 유니버설뮤직과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재계약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유니버설뮤직의 음원이 기존 영상에서 음소거 처리되고, 새로운 영상에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역시 가장 큰 건 돈 문제입니다. 유니버설뮤직은 “틱톡이 정당한 음악의 가치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틱톡은 “우리는 음악 홍보 플랫폼”이라고 받아칩니다.-과연 둘 중 어디가 더 권력을 쥐고 있을까요. 2008년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지웠던 워너뮤직은 9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는데요. 음악이 중요한 틱톡 플랫폼은 다를지도 모릅니다.-유니버설뮤직을 이끄는 루시안 그레인지 회장은 그동안 기술기업과의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음악산업을 구원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생성형 AI라는 기술 격변을 맞이한 지금, 그의 베팅은 또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요.*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역시 3월 기준금리 인하는 물 건너간 걸까요. 중앙은행이 기대만큼 일찍 금리를 내리지 않을 거란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국채 금리는 뛰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71%, S&P500 –0.32%, 나스닥지수 –0.20%를 기록했죠.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4일 방송된 CBS와의 인터뷰에서 금리인하와 관련해 언급했는데요. 그는 올 한해 0.25%포인트의 금리 인하만을 예상한다면서 “예측을 극적으로 바꿀 거라고 생각할 만한 일은 없다”고 밝혔죠. 당장 3월부터 6차례에 걸쳐 금리 인하가 이뤄질 거라는 시장의 기대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이날 발표된 미국의 서비스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예상치(52)를 웃도는 53.4를 기록했는데요. 미국 경제가 매우 탄탄하다는 걸 보여주는 이 신호에 주식시장은 실망했습니다. 맥쿼리의 티에리 위즈먼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미국 고용시장의 강세로 소비도 강세를 유지하면서 디스인플레이션 추세를 되돌리고 긴축적 통화정책을 더 연장하게 될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죠.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이 꺾이면서 이날 미국 국채 가격은 급락했습니다(금리 상승). 10년물 국채금리는 0.139%포인트 오른 4.171%, 30년물 금리는 0.121%포인트 상승한 4.348%를 기록 중이죠. 달러 가치는 뛰었습니다. 이날 6개 주요 통화 바스켓을 기준으로 한 달러인덱스는 이날 0.55% 상승해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주가지수는 정체됐지만, 이날도 AI 열풍은 이어졌습니다. 엔비디아 주가는 4.79%나 올라 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골드만삭스가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625달러에서 800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한 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토시야 하리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4분기에도 엔비디아 핵심 사업인 데이터센터 실적은 CPU의 범용 컴퓨팅에서 GPU의 가속 컴퓨팅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여줄 것”이라며 이런 추세가 1분기에도 이어질 거라고 전망했는데요. 엔비디아는 오는 21일 장 마감 뒤 실적을 공개할 예정입니다.이날 실적을 발표한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 주가가 12.05%나 급등한 것도 눈에 띄는데요.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매출과 순이익을 발표했지만 전 세계 직원의 3~5%를 감원한다는 소식이 주가엔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6만2000명에 달하는 직원 중 최대 3100명을 감축하겠다는 건데요. 에스티로더는 주력인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죠. 파브리치오 프레다 CEO는 “재고를 줄이고 비용을 관리해 진전을 이뤘다”면서 “변곡점에 와있다”고 밝혔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이른바 ‘3대 이모님’으로 통하죠. 식기세척기·건조기, 그리고 로봇청소기.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부담을 줄여줘서 요즘 인기 끄는 가전제품입니다.스웨덴 일렉트로룩스가 2001년 세계 최초의 로봇청소기 ‘트릴로바이트(삼엽충이란 뜻)’를 선보인 지 23년. 과거보다 한층 똑똑해진 로봇청소기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시장이 쑥쑥 커가는데요. 하지만 무한경쟁에 놓인 제조사들 간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시장 구도가 빠르게 변해갑니다. 서비스 로봇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로봇청소기 시장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중국에 아이로봇을 바쳤다?아이로봇(iRobot), 또는 룸바(Roomba)를 아시나요? MIT 출신 로봇공학자가 설립한 미국 아이로봇은 오랫동안 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을 선도해온 점유율 1위 기업입니다. 아이로봇이 2002년 내놓은 룸바는 출시와 동시에 각종 언론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발명품’에 오르며 히트를 쳤죠. 룸바가 채택한 자동 충전기능이나 낭떠러지 인식 기능, 사이드 브러시은 청소 로봇의 바이블이 되었습니다. 탄탄한 로봇공학 기술과 함께 충격적인 가성비(초기엔 199달러)가 인기 비결로 꼽혔는데요. 룸바가 로봇청소기의 대중화 시대를 열면서, 미국에선 룸바라는 명칭이 로봇청소기를 일컫는 보통명사처럼 쓰일 정도입니다.그런 아이로봇이 실적 악화에 시달리다가 2022년 8월 아마존의 인수 선언으로 반짝 관심을 끌었는데요. 하지만 인수가 미뤄지더니 결국 지난달 아마존이 14억 달러 규모의 아이로봇 인수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했죠.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의 경쟁 규제 당국이 ‘시장 경쟁을 약화할 수 있다’라며 딴지를 걸자 아마존이 두손을 들어버린 겁니다.빅테크 규제에 앞장서는 엘리자베스 워렌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를 처음부터 강하게 반대해왔죠. 아마존이 아이로봇 주인이 되면 경쟁업체는 쇼핑몰에서 공정한 경쟁이 어려워질 거란 이유였는데요. 동시에 스마트 로봇청소기 기능을 이용해 아마존이 미국 가정을 감시하게 될 거란 다소 특이한 논리도 펼쳤습니다.EU 집행위원회 역시 “아이로봇 인수로 아마존이 경쟁사를 도태시킬 수 있다”라며 지난해 11월 반대 입장을 냈죠. 아마존이 쇼핑몰에서 경쟁 로봇청소기를 목록에서 빼버리거나 잘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었습니다. 결국 아마존의 포기로 매각이 무산된 아이로봇은 직원의 31%인 350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했고요. 주가는 급락했습니다.이런 규제당국의 입장, 동의하시나요. 적어도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1월 29일 사설을 통해 “엘리자베스 워렌이 중국에 아이로봇을 선물했다”며 강하게 비판했죠. “2025년까지 로봇 공학을 장악하는 목표를 가진 베이징(중국) 외에 이 거래 실패로 누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워렌 같은) 진보주의자들이 걱정하는 아이로봇의 라이벌은 중국 기업”이란 지적입니다.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 포기가 결과적으로 로봇청소기 시장을 중국에 내주는 결과를 가져올 거란 뜻이죠.결국 기술의 차이미국 언론의 이런 걱정은 꽤 일리 있어 보입니다. 실제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중국기업의 공세가 상당히 위협적이죠.과거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아이로봇 점유율은 46%에 달했습니다. 2016년 64%에 비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2위인 중국 에코백스(중국명 커워쓰·科沃斯, 17%)와 격차가 꽤 있었죠.이후 정확한 세계시장 점유율 통계는 집계된 게 없는데요. 대신 매출로 변화를 추정할 수 있겠죠. 아이로봇은 지난해 1~9월 매출이 전년보다 29%나 줄어든 5억8303만 달러(약 7771억원)에 그치며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는데요. 에코백스의 같은 기간 매출은 105억3200만 위안(약 1조9520억원)에 달합니다. 이미 매출에서 중국 경쟁회사가 크게 앞서가죠. 시가총액을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큽니다. 아이로봇 시총(3.79억 달러, 약 5000억원)은 에코백스(194.84억 위안, 약 3조6100억원)와 비교해 7분의 1 수준이죠.로봇청소기 시장 개척의 일등공신이었던 기술기업 아이로봇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밀리게 됐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기술과 성능에서 경쟁업체에 뒤지고 있기 때문이죠.일반적인 무선 진공청소기에선 높은 흡입력(모터 성능)과 배터리 수명이 중요하죠. 하지만 로봇청소기에선 내비게이션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집안의 벽·방·장애물을 빠르게 파악해 지도를 만들고(매핑), 장애물을 피해가며 정확하고 효율적인 경로로 청소를 해내야 하죠.에코백스를 비롯한 중국 제조사들은 자율주행을 위한 최첨단 센서 기술을 채택해 이 내비게이션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로보락(중국명 스터우커지·石頭科技)은 라이다(LiDAR), 에코백스는 dToF(direct Time-of-Fligh) 센서를 탑재하는데요. 그 결과 가격은 룸바보다 오히려 비싸졌지만, 성능 면에서 크게 앞서갑니다. 한층 똑똑해진 거죠.한국이나 중국에서 필수인 ‘물걸레 기능’을 통합한 것도 중국 제품이 인기를 끈 이유입니다. 문화권에 따라 바닥 재질이 다르죠. 미국은 집에 카펫이 깔려있기 때문에 물걸레는 별로 필요 없고 먼지를 잘 빨아들이는 게 중요했는데요. 동양권에선 마루 걸레질까지 빤짝빤짝하게 해야 청소한 기분이 들잖아요. 바로 이런 수요에 맞춰 먼지를 흡입하는 동시에 물걸레질까지 하는 겸용제품을 내놨고, 이게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대세가 됩니다.더 나아가 에코백스나 로보락은 2020년 말부터 ‘올인원 로봇청소기’로 불리는 고급형 제품을 내놨는데요. 청소를 마치면 걸레를 자동으로 빨아서 열풍건조까지 해줍니다. 바닥을 쓸고 닦는 건 물론이고, 걸레 빠는 것조차 하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제품인데요. 물론 가격은 기존 제품의 두배로 뛰었지만 그 수요가 꽤 있습니다.결국 가성비에 연연하지 않는 로봇청소기 고급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이런 트렌드에 둔감했던 아이로봇은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잃게 됐습니다. 지난달 뉴욕타임스의 제품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가 13개 로봇청소기 성능을 비교하는 기사를 게재했는데요. 뉴욕타임스는 그중 최고의 로봇청소기로 중국 브랜드 로보락의 Q5를 꼽았습니다. 아이로봇 룸바에 대해서는 “로보락보다 매핑 시간이 3배 이상 걸렸다“, ”자주 장애물에 부딪혔다”며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혔죠.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이제 똑똑하지 못한 로봇청소기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됐습니다.에코백스 주가는 왜 이래?여기까지만 보면, 중국 제조사의 압도적 승리로 보일 텐데요. 정작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엔 지금이 상당한 위기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잘 나가는데 왜 위기이냐고요? 중국 내수 시장 경쟁이 치열해도 너~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은 꽤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아직 보급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죠.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미국의 로봇청소기 보급률은 14%, 독일은 9%에 그친다고 합니다. 2029년까지 글로벌 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16.6%에 달할 거란 전망치도 있죠.하지만 중국에선 오히려 로봇청소기 판매가 확 줄고 있습니다. 2018~2020년 매해 600만대를 넘었던 로봇청소기 판매대수가 2022년엔 441만대로 줄었고 지난해엔 그보다도 크게 감소한 걸로 추정되죠.부동산 경기 침체로 중국 경제가 꺾이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탓이 큽니다. 또 아까 말씀드린 고급화 경쟁으로 인해 로봇청소기 가격이 너무 비싸진 것도 원인이고요. 대당 5000위안(약 93만원)이 넘는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척척 살 수 있는 중국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그 결과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로봇청소기 제조사 주가는 놀랍도록 추락했습니다. 중국시장 1위 에코백스는 ‘로봇청소기계의 마오타이’로 불릴 정도로 주가가 급등해서 2021년 7월엔 주당 220위안을 넘었는데요. 2월 1일 종가는 그 7분의 1인 31.6 위안입니다.전망도 별로인데요. 에코백스의 지난해 3분기 실적은 상당히 우울했습니다. 매출은 소폭 늘었지만 순이익이 1년 전보다 92%나 폭락하고 말았죠.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마케팅 비용을 과도하게 쓴 영향입니다. 실제로 중국 시장에서 로봇청소기 판매 가격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할인 경쟁이 한창이죠.중국엔 이미 200개 정도 되는 로봇청소기 제조사가 있거든요. 가전 대기업인 메이디그룹과 그리일렉트릭까지 진출했으니 정말 붐빕니다. 특히 후발주자들이 빠르게 뒤쫓으면서 선두기업 에코백스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데요.중국 내 2위 기업 로보락은 매출과 이익 모두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지난해 3분기 매출 58%, 순이익 160% 급증). 로보락은 시가총액이 348.58억 위안(약 7조1300억원)으로 에코백스의 두배 수준이죠. 또 다른 중국 제조사인 유니콘 스타트업 드리미(중국명 追觅科技·주미커지) 역시 파격적인 가격 할인으로 점유율을 키워가고 있고요. 오죽하면 에코백스 치안쳉 CEO가 지난해 8월 공개 행사에서 “모방품은 외관만 원본과 유사하다”면서 드리미를 견제하는 발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이죠. 그만큼 쫓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국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잔디깎기 로봇, 세탁기 등) 해외시장 개척에 열심히 나서야죠. 로보락뿐 아니라 에코백스까지 모두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150만원이 넘는 로보락의 고가 신형 제품이 홈쇼핑에서 5분도 안 돼 매진됐을 정도로 한국에선 불티나게 팔리죠. 오랜 세월 로봇청소기를 만들어온 한국의 대기업(LG전자는 2003년, 삼성전자는 2006년 첫 출시)까지 중국의 공세에 밀리는 상황이 아닌가 싶은데요. 소비자는 지갑을 열 때 아주 냉정한 법이죠. 결국 혁신과 기술 업그레이드를 통해서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결론입니다. By.딥다이브개인적으로 아이로봇은 십수년 전 결혼 선물로 받아서 썼던, 추억의 가전제품입니다. 물론 당시 부실한 성능 때문에 기대만큼 많이 쓰지 못하고 고철 신세가 됐지만요. 한때 혁신의 대명사였던 아이로봇이 이렇게 밀려나는 신세가 될 줄이야.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가전 시장에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가 규제 당국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습니다. 로봇청소기 대중화 시대를 연 아이로봇은 중국 경쟁업체의 공세로 내리막을 걷고 있는데요. 미국 언론도 ‘중국에 아이로봇을 바쳤다’고 지적합니다.-로봇청소기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건 이제 중국 제조사입니다. 발빠르게 최신 첨단 기술을 채택해서 로봇청소기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정작 중국 기업들은 실적 압박에 시달립니다. 중국 내수 시장이 포화상태에 다다르면서 중국 안에서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인데요. 중국 1위 기업 에코백스 주가는 폭락했습니다.-결국 중국 기업의 살길은 해외 진출이죠. 한국 시장에서 중국 로봇청소기가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갑니다. 로봇청소기 개발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던 한국 가전 대기업이 과연 시장을 방어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