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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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4-04-23~2024-05-23
음악57%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칼럼10%
문화 일반3%
  • 해금으로 펼쳐낸 드보르자크 선율… 해금 연주자 고수정 새 앨범 발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해금 연주자 고수정이 앨범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를 내놓았다. 표제곡인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외 우리 민요 ‘아리랑’과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 마누엘 폰세 ‘작은 별’ 등을 담았다.‘대니 보이’와 ‘아리랑’에는 국악 민속 장단의 구성진 느낌과 산조에서 볼 수 있는 해금의 농현이 담겨 독특한 느낌을 준다. 고수정은 “오후의 홍차 한 잔과 함께 하고 싶은 음악을 담아보려 했다”고 밝혔다. 기타리스트 박윤우가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재즈피아니스트 데이브 유와 베이시스트 송미호가 연주에 함께 했다. 고수정은 서울대 국악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한 뒤 지난해 한국 전통음악 연주자로서는 최초로 독일 뮌헨 국립음대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최근 ‘2023년 뮌헨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젊은이들’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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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루흐 협주곡과 함께 자라난 느낌”… 에스더 유, 6년 만에 새 앨범 출반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29)가 독일 명문 음반사 DG에서 6년 만에 세 번째 협주곡 음반을 내놓았다. 20세기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협주곡과 19세기 독일 작곡가 브루흐의 협주곡을 바실리 페트렌코 지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2021년 로열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페트렌코가 이 악단과 처음 내놓은 스튜디오 녹음 음반이기도 하다. 1월 26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에스더 유는 “각각 브루흐가 28살, 바버가 29살 때 작곡한 곡이다. 지금 내 나이와 어울리는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브루흐의 협주곡은 어릴 때부터 익혔고 인생의 여러 단계를 경험하면서 이 작품과 ‘함께 자라난’ 느낌이 들어요. 바버의 곡은 최근 연주하기 시작했지만 익힐 때부터 친숙한 느낌이었죠.”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6살 때 벨기에로 이사했다. 이 음반에는 미국과 유럽의 성장배경이 모두 담긴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두 협주곡 외에 브루흐의 ‘아다지오 아파쇼나토(열정적인 아다지오)’와 벨기에 작곡가 뷔탕의 ‘아메리카의 추억-양키 두들’도 담았다. 뷔탕의 곡은 “벨기에 작곡가가 미국의 추억을 묘사했으니 내게 꼭 맞는 셈”이라며 그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16살 때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바이올린계의 주목을 받았다. DG 전속 아티스트가 되면서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시벨리우스와 글라주노프의 협주곡을 시작으로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영화 ‘체실 비치에서’ OST 음반 등을 내놓았다. 이른 나이에 탄탄한 커리어에 들어섰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도 경험했다. “벨기에에서 여러 연주가가 참여한 콘서트를 가진 후 왕실 가족을 접견하러 가는데, 먼저 들어간 상급자가 문을 쾅 닫아버리더군요.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 순간이 생각났는지 그의 말이 잠시 멈췄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유행 시기에 대부분 한국에서 지내면서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가장 먼저 배운 말도, 집에서 쓰는 말도 한국어고, 외국에서도 도시락으로 쌀밥과 계란말이를 가져갔죠. 된장찌개도 직접 끓입니다.(웃음)” 그는 친한 사이인 첼리스트 나레크 하크나자랸, 피아니스트 장 주오와 3중주단 ‘젠 트리오’도 결성해 활동 중이다. DG에서 쇼스타코비치의 3중주 2번 등을 담은 음반 두 장도 발매했다. 그는 젠 트리오 내한 공연도 기회가 되는 대로 열고 싶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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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링의 현대음악가’ 리히터가 온다

    “이런 느낌, 이런 소리가 현대음악이라면 나도 팬이 될 수 있겠다.” 독일 출신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56)의 음악에 대해 흔히 나오는 청중의 평가다. 음악을 듣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색, 위안, 힐링을 위해 음악을 듣는다면 리히터의 음악은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 말러의 느린 악장과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무대 음악과 오페라, 발레, 영화, TV 음악에서 종횡무진 활약해 온 리히터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콘서트 ‘막스 리히터: 레볼루션’이 2월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아드리엘 김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연주를 맡고, 2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협연한다. 리히터는 피렌체에서 이탈리아 전위음악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루차노 베리오를 사사했지만 주된 음악문법은 1970년대 이후 세계 작곡계를 휩쓴 미니멀리즘(극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간명한 동기 또는 주제를 반복하며 서서히 변주하는 기법이다. TV 드라마나 영화, 무대에서 듣는 그의 음악은 미니멀리즘과 대중적인 이지리스닝 계열의 오케스트라 음악, 뉴에이지 음악 등 주변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음악적 경향을 떠올리게 한다. 콘서트 첫 곡은 리히터가 아닌 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68)의 ‘프리마베라(봄)’가 장식한다. 에이나우디도 베리오를 사사했으며 그의 음악 역시 ‘세계 민속음악과 팝음악,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양식이 혼합돼 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자연에서 얻은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해 많은 팬이 있다. 리히터의 작품은 2002년 앨범 ‘메모리하우스’ 중 하이라이트 다섯 곡으로 시작한다. 영국 BBC가 ‘신고전주의 작품의 걸작’으로 소개한 이 앨범은 코소보 전쟁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에 작곡가 자신의 유년기 추억을 엮었다. 이어 공상과학(SF) 영화 ‘어라이벌’에 삽입된 ‘On the Nature of Daylight(햇빛의 성질에 대하여)’로 1부를 마친다. 2부는 리히터가 재작곡한 비발디 ‘사계’ 한 곡으로 꾸민다. 편곡(Arrange)이 아닌 재작곡(Recompose)이란 표현을 사용한 데서 보이듯 비발디의 주제들에서 영감을 받아 완전히 새로운 음향의 물결로 채운 실험적 작품이다. 대니얼 호프가 솔로를 맡은 음반은 2012년 발매 즉시 아이튠스 클래식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2021년 지휘자 아드리엘 김이 창단한 신생 악단이다. 가상현실(VR)을 이용한 영상 작업 등 실험적인 작업과 함께 연주를 통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드리엘 김은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지냈고, 영화 ‘승리호’ 음악의 지휘를 맡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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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알프스, 베네치아… 황홀한 선율이 이끄는 곳으로

    만든 지 3세기 이상 지났는데 여전히 현역일 뿐 아니라 최상의 품질로 평가받는 도구가 있다. 스트라디바리 가문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산(産) 바이올린이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1716년 제작한 ‘메시아’ 바이올린은 2000만 달러(약 25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인으로, 이탈리아 문화 전문 작가인 저자는 웨일스 한 작은 마을의 콘서트에서 들은 바이올린 소리에, 엄밀하게는 그날 연주된 악기에 매료됐다. 연주자는 이 악기를 전 소유자의 이름에 따라 ‘레프의 바이올린’이라고 불렀다. 그에게서 “러시아에서 구입했다. 크레모나에서 제작된 악기지만 가치는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저자는 이 악기와 동시대 크레모나 악기들이 거쳤을 여정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의 전설로 불리는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가문의 자취를 둘러본 뒤 이 악기들의 앞판을 공급해준 이탈리아 알프스의 가문비나무 숲을 찾아간다. 나무들은 포(Po)강을 따라 베네치아로 옮겨졌고, 이곳 상인들이 최상의 나무를 선별했다. 악기와 범선의 돛대 모두 옹이 없는 나무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제작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크레모나의 명장들이 사라진 뒤의 이야기는 악기 거래상과 수집가들이 대신한다. 다음 세대의 악기 명장 과다니니는 부호 코치오가 크레모나 명품들을 수집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코치오가 소유한 명품들은 19세기 초 악기상 타라시오의 손을 거쳐 프랑스의 명제작자 뷔욤에게 이어진다. 이렇게 명품 악기들의 ‘유랑사’를 살펴본 저자는 레프의 바이올린이 러시아 남부까지 흘러갔다가 영국으로 오게 된 경로도 샅샅이 탐색한다. 레프의 바이올린의 진짜 정체는 허망했다. 지문처럼 나이테를 스캔해 성장 연대와 지역을 밝히는 연륜연대학(年輪年代學) 전문가는 이 악기가 크레모나산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독일산 악기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이 악기를 둘러싼 남다른 열정은 저자에게 바이올린에 대한 거대한 지식과 추억을, 우리에게는 이 책을 안겨주었다. 원제 ‘Lev′s Violin’(2021).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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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흡수하며 점점 커가는 ‘눈사람’ 같은 피아니스트 되고싶어”

    피아니스트 김준형(26)은 2021년 12월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에 이어 지난해 9월 독일 ARD 콩쿠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시대 주목해야 할 피아니스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의 ‘아름다운 목요일’ 주인공으로 26일 리사이틀을 연다. 독일 뮌헨음대에서 현대음악 연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를 13일 전화로 만났다. ―올해 독일의 겨울이 따뜻하다고 들었습니다. “날씨도 엊그제까지 좋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뮌헨 올림피아 공원에 가서 해지는 걸 보고 사진을 찍기도 했죠. 기름값과 전기요금, 집세가 많이 오른 것 외에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ARD 콩쿠르 준우승을 했는데 1, 2위는 ‘간발의 차’일 수 있잖아요. 아쉬웠겠습니다. “일정이 빡빡해서 정신이 없었기에 아쉽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어요. 결선 지정곡을 4, 5곡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열심히 준비했던 베토벤 협주곡 4번이 있어서 그걸 택했죠.” ―뮌헨음대 스승인 안티 시랄라 교수(핀란드)가 칭찬하시던가요. “크게 좋아하시는 티는 안 내시던데 주변에 자랑을 많이 하셨더라고요.(웃음) 교수님이 2월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여시는데, 일정이 맞아 보러 가려고 합니다.” ―이번 연주곡은 무엇이고 어떻게 골랐는지요. “1부 프로그램으로는 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을 생각하다 현대 작곡가 외르크 비트만의 ‘유머레스크’와 슈만의 ‘유머레스크’를 골랐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 작품이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곡들이죠. 슈만은 유머레스크에서 자신의 두 가지 다른 자아를 표현했는데, 비트만도 로맨틱한 면과 현대적인 면을 대립시키면서도 조화롭게 표현했습니다. 2부에서는 리스트 ‘순례의 해’ 중 제2년 ‘이탈리아’를 연주합니다. 엄두를 못 냈던 곡인데, 지금 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7개 곡으로 구성돼 있지만 한 번에 연주했을 때 훨씬 그 서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박사과정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쓴 곡을 만날 때의 재미가 있어요. 실내악 연주를 많이 하고 싶었는데 현대음악과에서는 앙상블의 일원으로 실내악을 꾸준히 하게 됩니다. 마음에 들었죠.” ―카카오톡 프로필에 ‘눈사람’이라고 썼습니다. “첫 스승인 정경록 선생님이 ‘눈사람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요. 점점 많은 것을 흡수해서 큰 존재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전석 3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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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김준형 “점점 커져가는 ‘눈사람’ 같은 연주자가 목표”

    피아니스트 김준형(26)은 2021년 12월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에 이어 지난해 9월 독일 ARD 콩쿠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시대 주목해야 할 피아니스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26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 ‘아름다운 목요일’ 주인공으로 리사이틀을 연다. 독일 뮌헨음대에서 현대음악 연주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는 그를 13일 전화로 만났다.―올해 독일의 겨울이 따뜻하다고 들었습니다.“날씨도 엊그제까지 너무 좋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뮌헨 올림피아 공원에 가서 언덕에서 해지는 걸 보고 사진을 찍기도 했죠. 기름값과 전기세, 집세가 많이 오른 것 외에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지난해 ARD 콩쿠르 준우승을 했는데 1, 2위는 ‘간발의 차’일 수 있잖아요. 아쉬웠겠습니다.“규모가 큰 콩쿠르고 일정이 빡빡해서 정신이 없었기에 아쉽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어요. 결선 지정곡이 매우 적어 4~5곡 중에서 골라야 하는데,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열심히 준비했던 베토벤 협주곡 4번이 있어서 그걸 택했죠.”―뮌헨음대 스승인 안티 시랄라 교수(핀란드)가 칭찬하시던가요.“크게 좋아하시는 티는 안내시던데 알고 보니 주변에 자랑을 많이 하셨더라고요.(웃음) 교수님이 2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여시는데, 일정이 맞아 보러 가려고 합니다. 사실은 교수님의 리사이틀을 그동안 볼 기회가 없었어요.”―이번 연주곡은 무엇이고 어떻게 골랐는지요.“1부 프로그램으로는 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을 생각하다가 현대 작곡가 외르크 비트만의 ‘유머레스크’와 슈만의 ‘유머레스크’를 골랐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 작품이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곡들이죠. 슈만은 유머레스크에서 자신의 두 가지 다른 자아를 표현했는데, 비트만도 로맨틱한 면과 현대적인 면을 대립시키면서도 조화롭게 표현했습니다. 2부에서는 리스트 ‘순례의 해’중 제2년 ‘이탈리아’를 연주합니다. 그동안 엄두를 못 냈던 곡이고, 지금 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곱 곡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 번에 연주했을 때 훨씬 그 서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박사과정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하기로 한 이유는.“전혀 몰랐던 새로운 방식으로 쓰인 곡을 만날 때의 재미가 있고요, 실내악 연주를 많이 하고 싶었는데 현대음악과에서는 앙상블의 일원으로 실내악을 꾸준히 하게 됩니다. 그게 마음에 들었죠.”―서울국제음악콩쿠르 1위 입상 때 심사위원들의 평에는 ‘객관성, 차분함, 노련함, 설득력’ 같은 표현들이 두드러졌습니다. 성숙한 연주면서 튀지 않는다는 느낌이 읽혔는데요.“성격이 내향적인 편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겐 감정 표현을 곧잘 하는 편입니다. 그런 면들이 음악에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카카오톡 프로필에 ‘눈사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첫 번째 스승인 정경록 선생님이 ‘눈사람 같은 사람이 되어라’고 하셨죠. 점점 많은 것을 흡수해서 큰 존재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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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 미래에 동아시아 역할 중요… 서울시향과 함께하는 여정 기대 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시향과 함께하는 여정에 기대가 큽니다.” 2024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지휘자 야프 판즈베던(63·사진)이 취임 후 계획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열었다. 판즈베던은 사고로 부상을 입은 오스모 벤스케 전 음악감독 대신 12,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지휘해 예정보다 반년 일찍 서울시향 무대에 데뷔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가 함께 참석했다. 판즈베던은 서울시향 음악감독을 수락하게 된 동기에 대해 “16세 때부터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면서 강효 교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에서도 한국 출신 연주자를 많이 만났다. 클래식의 미래에 동아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위대한 오케스트라는 카멜레온처럼 여러 다른 작곡가들의 색채를 구현해 내야 한다”며 “꽃이 자라게 하려면 땅에서 뽑아 올려선 안 되고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허설에서 단원들을 두렵게 만드는 지휘자라는 평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으로 무대에 오르려면 110%를 준비해야 한다. 리허설에서 까다로운 것은 개인적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휘자 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민주적 리더십에도 공감한다”며 “한 번도 지휘자로서 단원을 해고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음악을 맡았던 정재일 작곡가처럼 재능 있는 한국 작곡가들의 곡을 많이 발굴해 소개할 예정이다. 2025년 이후엔 대략 프로그램의 30%를 창작음악에 할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는 그는 네덜란드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을 지원하는 ‘파파게노 재단’ 활동을 부인과 함께 펼쳐왔다. “38명의 음악치료사가 음악치료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폐 스펙트럼 아동과 가족을 돕고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는 ‘아이 콘택트’가 필요해 음악치료가 특히 중요하죠. 눈을 맞추는 것은 마음과 마음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축구 감독 거스 히딩크도 이 재단에 도움을 주고 있다. 판즈베던은 서울시향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콘서트를 매년 가질 계획이라고 했다. 판즈베던은 앞서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음악감독 임명장을 받았다. 판즈베던은 이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이 서울시향 홍보대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전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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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즈베던 음악감독 “한국 작곡가 창작음악 적극 소개할 것”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시향과 함께 하는 여정에 무척 기대가 큽니다.” 2024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지휘자 얍 판 즈베던(63)이 취임 이후의 계획을 밝히는 기자간담회를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가졌다. 즈베던은 갑작스런 사고로 부상을 입은 오스모 벤스케 전 음악감독 대신 12,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지휘해 예정보다 반 년 일찍 서울시향 무대에 데뷔했다. 간담회에는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가 함께 참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서울시향 음악감독 직을 수락하게 된 동기는.“바이올리니스트로서 16살 때부터 미국 줄리어드음대에서 수학하면서 강효 교수에게서 음악가로서의 직업윤리 등 많은 것을 배웠다. 뉴욕 필 등에서도 한국 출신 연주자를 많이 만났다. 클래식의 미래에 동아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2년부터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서울시향의 연주 색깔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나. 5년의 임기는 충분하다고 보나.“위대한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완전히 다른 작곡가들의 색채를 구현해내는 데 있다. 오늘은 렘브란트처럼, 내일은 고흐처럼. 오늘 바흐 곡을 하고 내일은 스트라빈스키를 연주하며 카멜레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5년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충분한 시간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네 차례 서울시향 정기공연을 지휘하니 실질적으로 5년 반이며 계약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다. 그러자면 나와 악단 서로가 원해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는 매우 좋다. 지금은 씨앗을 뿌리는 시기다. 꽃이 자라도록 하려면 땅에서 뽑아내려 해서는 안 된다.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리허설에서 단원들이 두려워하는 지휘자로 알고 있고,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인정해 왔다. 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식의, 단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는 의견들도 있는데….“오케스트라 단원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18년 동안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내며 연주자를 존중하는 걸 배웠다. 하지만 높은 수준으로 무대에 오르려면 110%를 준비해야 한다. 내가 리허설에서 까다로운 것은 개인적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위한 것이다. 아바도의 민주주의에 공감한다. 나는 38세에 지휘를 시작했는데, 한 번도 지휘자로서 단원을 해고해본 일이 없다.”―4월에 신규 단원을 채용할 예정인데. 단원 채용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다.“오디션을 할 때 기존 단원 수준과 맞아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연주자를 넘어 오케스트라 음향에 참여할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하다. 옆 사람의 연주를 들을 줄 알야 한다. 내가 18살 때 콘세르트헤바우 단원이 되었을 때 음악감독 하이팅크도 ‘전체 음향의 일부가 되라’고 가르쳤다.―콘세트르헤바우에서 악장을 지냈는데, 악장과 지휘자의 차이를 든다면.“콘서트마스터는 자기 연주 뿐 아니라 매우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지휘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의 준비다. 뮌헨 오페라와 발레 감독을 지낸 지휘자 앙드레 프레서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콘세르트헤바우 단원 시절에는 게오르그 솔티,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등 많은 대지휘자들로부터 ‘무료 레슨’을 받은 셈이다. 지휘자가 단원들 앞에 섰을 때 느끼는 건 권력감이 아니라 ‘모든 단원들과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원들의 맨 앞줄부터 맨 뒤까지 모든 걸 알아야 한다. 뉴욕 필에서는 단원들이 나를 가리켜 ‘모든 걸 다 보고 있다’고 말한다. 오케스트라는 가족과 같으므로, 음악 뿐 아니라 그들에게 일어난 가능한 모든 일들을 다 알아야 한다.”―동시대 창작음악을 많이 소개할 계획인가.“뉴욕필 음악감독으로서 거의 2주마다 한 곡씩 세계 초연곡을 소화한다. 일종의 ‘소리의 사파리(탐험)’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서울의 외교관 역할을 하므로 재능 있는 한국 작곡가들을 가능한 많이 찾아내고자 한다.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맡았던 정재일 작곡가는 특히 환상적인 음악을 쓰는 작곡가이므로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 2025년 시즌에는 대략 프로그램의 30%를 동시대 창작음악에 할애하려 한다.―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2024년은 오스트리아 교향곡 작곡가 브루크너의 탄생 200주년이 된다.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내놓은 바 있는데….“브루크너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작곡가다. 말러가 음악에서 신을 찾고자 노력했다면 브루크너는 신을 찾아냈다. 말러가 감정의 롤러코스터와 같다면 브루크너는 감정을 넘은 영원의 빛을 보여준다. 2024년에 브루크너 곡을 한 곡 또는 그 이상 연주할 것이다. 하지만 첫 시즌이니만큼 한 작곡가보다는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선보이려 한다.”―네덜란드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을 지원하는 ‘파파게노 재단’ 활동을 부인과 함께 펼쳐온 것으로 알고 있다.“38명의 음악치료사가 음악치료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폐 스펙트럼 아동과 가족을 돕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에게는 ‘아이 컨택트’가 필요하므로 음악치료가 특히 중요하다. 눈을 맞추는 것은 마음과 마음을 맞추는 것과 같다.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도 이 재단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간담회에서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는 현 세종문화회관 시설 일부에 들어설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에 대해 “현재 타당성조사 단계이며 2028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가 즈베던 감독의 자문을 받아 진행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즈베던 감독은 기자간담회에 앞서 12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음악감독 임명장을 받았다. 즈베던 감독은 이 자리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친분이 있다”며 “히딩크 감독이 서울시향 홍보대사를 해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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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의 여신은 없다, 행동하는 인간이 있을 뿐

    선박 설계 기사였던 야마구치 쓰토무는 1945년 여름 히로시마로 출장을 갔다.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그는 폭심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화상을 입고도 목숨을 부지한 그는 사흘 뒤 나가사키의 회사로 출근해 무시무시한 폭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 사흘 전 봤던 새하얀 광선이 다시 사무실을 채웠다. 야마구치는 2010년 93세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운(運) 좋은 사람’과 ‘가장 불운한 사람’으로 함께 오르내린다. 두 번 원폭을 경험한 그는 운이 나빴을까, 두 번이나 죽음을 모면했기에 운이 좋았던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 블룸스버그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북미 인(燐)·무기물·질소난연제 협회의 경영 컨설턴트다. 인문학과 과학의 두 세계에 발을 걸쳐온 이력을 증명하듯 이 책에도 신화와 철학사를 넘어 과학사와 수학 공식이 오간다. 그런 그가 들여다본 ‘운’의 실체는 무엇일까. 앞부분에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운에 대한 관념을 소개한다. 로마시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변덕스러운 우연에 당하지 않으려면 정념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녀나 친구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게 미덕이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불운을 맞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중세에 운명의 여신을 경계한 시 ‘오 포르투나’로 시작된다. 포르투나는 ‘가난한 자도 권력자도 얼음처럼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하고 심술궂은’ 존재다. 중간부에서 저자는 운에 대한 세 가지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확률 이론과 양상(樣相)이론, 통제 이론이다. 확률 이론에 따르면 ‘중요한 일이면서 확률이 낮은 일’이 행운 또는 불운이다. 양상 이론에서는 ‘실제 사례에 아주 근접한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 운의 영역에 속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총알 6개가 들어가는 리볼버 권총에 한 발을 넣고 쏘는 러시안 룰렛에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면 그 확률이 6분의 5나 되므로 확률 이론에서는 행운이 아니다. 반면 바로 한 칸 차이로 총을 맞을 수도 있었으므로 양상 이론에서는 행운이 된다. 두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통제 이론이다. 러시안 룰렛에서 살아남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므로 행운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통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앞 두 이론의 반복에 그칠 수 있다. ‘도덕적 운’과 ‘지식에 관한 운’도 있다. 악행의 크기는 같은데도 왜 살인범은 살인미수범보다 크게 처벌받는가. 이것은 도덕적 운의 영역이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우연의 결과지만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우연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행운일까. 이것은 ‘지식에 관한 운’의 영역이다. 확률과 양상, 통제 등 세 이론은 이 같은 운을 설명하는 데 벽에 부딪힌다. “운에 반대한다.” 결국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우리는 운을 정복할 수 없다. 무찌르고 말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운이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에 불과하다.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관점이다.” 이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그동안 우리의 발목을 끈덕지게 붙잡아 온 운명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운수를 본 뒤 개운치 않은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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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운과 불운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

    선박 설계 기사였던 야마구치 쓰토무는 1945년 여름 히로시마로 출장을 갔다.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그는 폭심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화상을 입고도 목숨을 부지한 그는 사흘 뒤 나가사키의 회사로 출근해 무시무시한 폭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 사흘 전 봤던 새하얀 광선이 다시 사무실을 채웠다. 야마구치는 2010년 93세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운(運) 좋은 사람’과 ‘가장 불운한 사람’으로 함께 오르내린다. 두 번 원폭을 경험한 그는 운이 나빴을까, 두 번이나 죽음을 모면했기에 운이 좋았던 것일까. 미국 펜실베니아 블룸스버그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북미 인(璘)·무기물·질소난연제 협회의 경영 컨설턴트다. 인문학과 과학의 두 세계에 발을 걸쳐온 이력을 증명하듯 이 책에도 신화와 철학사를 넘어 과학사와 수학 공식이 오간다. 그런 그가 들여다본 ‘운’의 실체는 무엇일까.앞부분에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운에 대한 관념을 소개한다. 로마시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변덕스러운 우연에 당하지 않으려면 정념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녀나 친구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게 미덕이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불운을 맞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중세에 운명의 여신을 경계한 시 ‘오 포르투나‘로 시작된다. 포르투나는 ’가난한 자도 권력자도 얼음처럼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하고 심술궂은‘ 존재다.중간부에서 저자는 운에 대한 세 가지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확률 이론과 양상(樣相)이론, 통제 이론이다. 확률 이론에 따르면 ‘중요한 일이면서 확률이 낮은 일’이 행운 또는 불운이다. 양상 이론에서는 ‘실제 사례에 아주 근접한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 운의 영역에 속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총알 6개가 들어가는 리볼버 권총에 한 발을 넣고 쏘는 러시안 룰렛에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면 그 확률이 6분의 5나 되므로 확률 이론에서는 행운이 아니다. 반면 바로 한 칸 차이로 총을 맞을 수도 있었으므로 양상 이론에서는 행운이 된다. 두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통제 이론이다. 러시안 룰렛에서 살아남거나 복권에 당첨되는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므로 행운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통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앞 두 이론의 반복에 그칠 수 있다.‘도덕적 운’과 ‘지식에 관한 운’도 있다. 악행의 크기는 같은데도 왜 살인범은 살인미수범보다 크게 처벌받는가. 이것은 도덕적 운의 영역이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우연의 결과지만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우연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행운일까. 이것은 ‘지식에 관한 운’의 영역이다. 확률과 양상, 통제 등 세 이론은 이같은 운을 설명하는데 벽에 부딪힌다.“운에 반대한다.” 결국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우리는 운을 정복할 수 없다. 무찌르고 말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운이란 끈덕지고 골치 아픈 환상에 불과하다.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관점이다.” 이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그동안 우리의 발목을 끈덕지게 붙잡아온 운명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운수를 본 뒤 개운치 않은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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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선 “인디애나대서 평생 현역 지도자로”

    서울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58)이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Jacobs School of Music) 교수로 임용됐다. 1921년 설립된 이 학교는 미국 중동부를 대표하는 명문 고등 음악교육기관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 미리엄 프리드, 소프라노 실비아 맥네어,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 등 유명 연주가들을 배출했다.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10일 출국이어서 열심히 짐을 싸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내가 가르친 학생들도 미국에 유학 갈 때는 대개 이 학교나 뉴잉글랜드음악원, 줄리아드 음악원, 커티스 음악원 중 한 곳을 택한다”고 했다. “팬데믹 직전, 서울대 음대 동창인 ‘절친’으로 이 학교에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임성미 교수의 제안으로 함께 연주하고 마스터클래스도 열 기회가 있었어요. 행사가 끝난 뒤 현악 주임 교수께서 ‘이 학교에 와서 가르칠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 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됐고, 2년이 지나 다시 연락이 왔어요. ‘종신 재직권(테뉴어)을 주겠느냐’고 물어봤고, 승낙을 받았습니다.” 이 학교에는 임 교수의 남편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 교수가 타계 직전인 2014년까지 재직했다. “학교로서는 배 교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제가 2001∼2006년 오벌린 음대 교수를 지냈는데, 당시 제가 ‘너무 한국 학생들을 끌어들인다’며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었어요. 한국 음악도가 전 세계에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제 한국 음악계의 위상이 올라가고, 그 혜택을 보게 된 거죠. 감사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오벌린 음대와 휴스턴 음대에 이어 2009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서울대는 제 모교니까 애정이 크죠. 하지만 정년까지 남은 시간이 이제 7년뿐이고,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어 과감히 선택했습니다. 제자들도 미국에 공부하러 와서 저를 만난다면 아쉽지 않은 일이 되겠죠.” 그는 음악가로서 연주도 매력 있는 일이지만 가르치는 일도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고 했다. “90세, 100세까지 오래 가르치는 선생님들처럼 ‘길게 보며’ 가고 싶어요. 미국에서도 대학에 속하지 않은 음악원은 종신제가 없어요.” 인디애나대에는 올해 100세가 되는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제 고국 무대에서는 그를 보기 힘들까. 그는 “5, 6월은 한국에서 지내며 청중과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감독을 맡고 있는 실내악단 ‘서울 비르투오지’를 비롯해 창원국제음악제, 여성 중견 연주자 6명이 함께하는 ‘그리움 앙상블’ 활동도 이 시기에 가질 예정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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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인디애나대서 교수 생활 2막”

    서울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58)이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Jacobs School of Music) 교수로 임용됐다. 1921년 설립된 이 학교는 미국 중동부를 대표하는 명문 고등 음악교육기관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 미리엄 프리드, 소프라노 실비아 맥네어,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 등 유명 연주가들을 졸업생으로 배출했다.“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긴골드나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 같은 전설적인 교수들이 이 학교에서 가르치셨죠. 1990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 참가하러 왔다가 이 학교 캠퍼스를 구경하게 되었어요. 긴골드 교수가 재직하실 때였고, 캠퍼스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학교에서 지내봤으면’하고 생각했었죠. 현실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10일 출국이어서 열심히 짐을 싸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내가 가르친 학생들도 미국에 유학을 올 때는 대개 이 학교나 뉴잉글랜드 음악원, 줄리어드 음악원, 커티스 음악원 중 한 곳을 택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오기 직전, 서울음대 동창인 ‘절친’으로 이 학교에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임성미 교수의 제안으로 함께 연주하고 마스터클래스도 열 기회가 있었어요. 행사가 끝난 뒤 현악 주임 교수께서 ‘이 학교에 와서 가르칠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러고는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됐고, 2년이 지나 다시 연락이 왔어요. ‘종신 재직권(테뉴어)를 주겠느냐’고 물어보았고, 승낙을 받았습니다.” 이 학교에는 임 교수의 남편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 교수가 타계 직전인 2014년까지 재직했다. “학교로서는 배 교수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미국도 음악 학교들이 ‘힘을 쓸 수 있는 교수’를 뽑으려 하죠. 제가 2001~2006년 오벌린 음대 교수를 지냈는데, 젊은 교수이기도 했지만 당시 제가 ‘너무 한국 학생들을 끌어 들인다’고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었어요. 한국 음악도들이 전 세계에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제 한국 음악계의 위상이 올라가고, 그 혜택을 보게 된 거죠. 감사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오벌린 음대와 휴스턴 음대에 이어 2009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제 모교니까 애정이 크죠. 하지만 정년까지 남은 시간이 이제 7년뿐이고, 평생 현역으로 살고 싶어 과감히 선택했습니다. 제자들도 아쉬워했지만 혹 미국에 공부하러 와서 저를 만난다면 아쉽지 않은 일이 되겠죠.”그는 “음악가로서 연주도 매력 있는 일이지만 가르치는 일도 그 이상 매력이 있다”고 했다. “잘 하는 학생이든 못 하는 학생이든 발전하는 걸 보는 게 선생으로서 힐링이 되죠. 90세, 100세까지 오래 가르치는 선생님들처럼 ‘길게 보며’ 가고 싶어요. 미국에서도 대학에 속하지 않은 음악원은 정년이 있어요.” 인디애나대에는 올해 100세가 되는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제 고국 무대에서는 그를 보기 힘들까. 그는 “5월에서 6월은 한국에서 지내며 청중들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감독을 맡고 있는 실내악단 ‘서울 비르투오지’나 여성 중견 연주자 6명이 함께 하는 ‘그리움 앙상블’ 같은 챔버뮤직 활동도 이 시기 위주로 가질 생각이다. 그가 감독을 맡고 있는 창원 국제음악제도 계속 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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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항구의 창고가 360도 전망대 갖춘 랜드마크로

    북해로 흘러들어가는 엘베강 하류의 도시인 독일 함부르크는 중세 시대 북해 무역으로 번영한 한자동맹(독일의 여러 도시들이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의 일원이었다. 오늘날 독일 제2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함부르크는 독일 연방 주(州) 중 하나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 성벽 바로 앞에 있던 그라스브로크섬은 19세기 옛 항구가 포화상태가 되자 새로운 항구로 개발됐다. 1880년대에는 섬 전체가 창고로 가득 찼다. 유럽이 철도망과 고속도로망으로 통합되면서 20세기 후반에는 항구의 물동량이 감소했고, 이제 시내 중심부에 있는 이 지역은 퇴락의 기미를 감출 수 없었다. 2000년 함부르크시는 이 지역을 재개발하는 ‘하펜시티(항구도시) 함부르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5만 명을 고용하는 기업 및 상업 시설과 1만4000명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짓는다는 구상이었다. 콘서트홀은 이 거대한 구상 위에 뒤늦게 올려진 꽃송이였다. 2003년 민간 부동산 개발업자가 옛 창고 자리에 콘서트홀을 포함하는 함부르크 최고층 주거건물을 짓기로 하고 스위스 건축회사 헤르초크 운트 드뫼롱의 설계안을 받아들었다. 시 정부는 2007년 이 계획을 인수해 직접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건립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예정 부지에 있던 창고는 지어진 지 4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건축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밝혀지면서 건축문화재로 지정됐다. 헐어버릴 수 없게 되자 함부르크시는 기존 창고 건물 위에 새 건물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3년 걸릴 예정이었던 건축 기간은 9년을 넘기게 됐고 2억4100만 유로를 예상했던 예산은 한없이 늘어났다. 주의회에서 야당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되돌리기는 더 힘든 일이었다. 옛 벽돌색 창고 위에 푸르게 굽이치는 유리 건물이 올라가면서 여론은 회의보다는 기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11일, 새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의 첫 콘서트가 열렸다. 엘베강을 뜻하는 ‘엘프’와 필하모니를 합친 말이었다. 콘서트에 출연한 옛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의 이름도 ‘NDR(북독일방송)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로 바뀌었다. 최종 공사비는 당초 예상보다 네 배 가까이로 늘어난 8억6600만 유로(약 1조1500억 원)였다. 건설 기간 내내 ‘엘베강의 말썽꾸러기’였던 이 홀은 이후 엘베강의 보물로 변신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록다운(이동중단)을 하기 전까지 모든 공연이 매진 행렬을 이뤘다. 무엇보다 건물 자체가 볼거리였다. 이 건물은 복합시설로 개발돼 콘서트홀 외에 호텔과 스파, 레스토랑, 대규모 실내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26층 중 기존 벽돌 창고 위에 들어선 상부 18층은 파도 모양의 유리 구조물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함부르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꼽힌다. 관객은 지상에서 에스컬레이터로 8층 ‘더 플라자’까지 직접 들어가게 된다. 37m 높이에서 함부르크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더 플라자는 엘프필하모니의 인기를 끌어올려준 최고의 매력 요인으로 평가됐다. 메인 홀은 2100석 규모로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본보 1월 10일자 A20면 참고)와 마찬가지로 객석이 무대를 둘러싼 비니어드(포도밭) 스타일이다. 벽체가 오목하게 파인 무늬들을 수놓아 잔향 흡수 효과와 함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메인 홀 외에 550석 규모의 리사이틀홀과 170명이 사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 ‘카이스튜디오’도 갖추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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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항구의 창고가 전망대 갖춘 랜드마크로…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북해로 흘러들어가는 엘베강 하류의 도시 함부르크는 중세 시대 북해 무역으로 번영한 한자동맹의 일원이었다. 오늘날 독일 제2의 도시이며 독일 연방주(州) 중 하나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를 가지고 있다. 중세시대 성벽 바로 앞에 있던 그라스브로크 섬은 19세기에 옛 항구가 포화상태를 이루자 새로운 항구로 개발됐다. 1880년대에는 섬 전체가 창고로 가득 찼다. 유럽이 철도망과 고속도로망으로 통합되면서 20세기 후반에는 항구의 물동량이 감소했고, 이제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게 된 이 지역은 퇴락의 기미를 감출 수 없었다. 2000년 함부르크 시는 이 지역을 재개발하는 ‘하펜시티(항구도시) 함부르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5만 명을 고용하는 기업 및 상업 시설과 1만4000명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짓는다는 구상이었다.콘서트홀은 이 거대한 구상 위에 뒤늦게 올려진 꽃송이였다. 2003년 민간 부동산 개발업자가 옛 창고 자리에 콘서트홀을 포함하는 함부르크 최고층 주거건물을 짓기로 하고 스위스 건축회사 헤르초크 운트 드뫼롱의 설계안을 받아들었다. 이 계획에 매혹된 시 정부는 2007년 이 계획을 인수해 직접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건립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예정 부지에 있던 창고는 40여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건축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밝혀지면서 건축문화재로 지정됐다. 헐어버릴 수 없게 되자 함부르크시는 기존 창고 건물 위에 새 건물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3년이 걸릴 예정이었던 건축 기간은 9년을 넘기게 됐고 2억 4100만 유로를 예상했던 예산은 한없이 늘어났다. 주의회에서 야당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되돌리기는 더 힘든 일이었다. 옛 벽돌색 창고 위에 푸르게 굽이치는 유리 건물이 올라가면서 여론은 회의보다는 기대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11일, 새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의 첫 콘서트가 열렸다. 엘베강을 뜻하는 ‘엘프’와 필하모니의 복합어였다. 콘서트에 출연한 옛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의 이름도 ‘NDR(북독일방송)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로 바뀌었다. 최종 공사비는 당초 예상보다 네 배 가까이 늘어난 8억 6600만 유로(현재 가치 약 1조 1500억 원)였다.건설기간 내내 ‘엘베강의 말썽꾸러기’였던 이 홀은 이후 엘베강의 보물로 변신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록다운(이동중단)이 일어나기 전까지 모든 공연이 만석 매진 행렬을 이뤘다. 무엇보다 건물 자체가 볼거리였다. 이 건물은 복합시설로 개발돼 콘서트홀 외 호텔과 스파, 레스토랑, 대규모 실내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26층 중 기존 벽돌 창고 위에 들어선 상부 18층은 파도 모양의 유리 구조물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함부르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꼽힌다. 관객은 지상에서 에스컬레이터로 8층 ‘더 플라자’까지 직접 들어가게 된다. 37미터 높이에서 함부르크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더 플라자는 엘프필하모니의 인기를 끌어올려준 최고의 매력 요인으로 평가됐다.메인 홀은 2100석 규모로 필하모니 드 파리와 마찬가지로 객석이 무대를 둘러싼 비니어드(포도밭) 스타일이다. 벽체가 오목하게 파인 무늬들로 수놓아져 잔향 흡수 효과와 함께 독특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메인 홀 외에 550석 규모의 리사이틀홀과 170명을 수용하는 교육시설 ‘카이스튜디오’도 갖추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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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 떠나 변두리 이민자촌 명소 된 공연장

    2015년 1월, 프랑스 파리 북부 라빌레트 공원 남동쪽에 은빛 우주선과 같은 형체가 내려앉았다. 파리의 새 음악 공연장 ‘필하모니 드 파리’였다. 미래와 상상력을 상징하는 시각적 충격으로 화제가 됐던 이 공간은 올해로 건립 8주년을 맞았다. 청년층과 미래의 예술 애호가를 끌어들이고 교육하는 젊은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2006년 프랑스 문화부와 파리시, 파리 중심가의 콘서트홀 살 플레옐의 감독인 로랑 베일은 “파리 북동쪽 19구(區)의 라빌레트 공원에 콘서트홀과 음악교육 시설, 전시회장 등을 갖춘 복합시설 ‘필하모니 드 파리’를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에 새 콘서트홀을 짓기로 한 데는 청년층과 서민층을 공략하겠다는 뜻도 있었다. 파리 19구는 저소득층과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프랑스 정부는 강도, 마약 등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이유로 2012년 이곳을 ‘특별치안지역’으로 지정했다. 파리 중심가 콘서트홀인 살 플레옐은 젊은 관객들이 줄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주변의 고답적인 분위기로는 청년층을 끌어들이기 어려웠다. 이에 비해 파리 북쪽 지역은 서민과 청년층 주민의 비율이 높았다. 베일은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청중에게 다가가고 교외와 도심을 통합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랑 파리(Grand Paris·대(大)파리)다”라고 말했다. 새 콘서트홀은 클래식에 국한하지 않고 재즈와 대중음악, 각국 전통음악에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전시장도 마련하기로 했다. 공모에 의해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의 건축 계획안이 최종 채택됐다. 누벨은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아랍문화원과 카르티에 재단,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설계한 건축계 거장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2015년 1월 14일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포레 ‘레퀴엠’ 연주로 문을 열었다. 안정된 분위기는 아니었다. 바로 일주일 전,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게재한 데 격분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총격을 가해 편집장을 포함한 직원 10명과 경찰 2명이 숨진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건 주범들의 집도 파리 19구였다. 포레 레퀴엠은 이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이 되었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중심 공간은 메인 콘서트홀인 ‘피에르 불레즈 그랜드 홀’이다.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의 이름을 딴 이 홀의 내부도 외관만큼이나 파격을 넘는 낯섦을 준다. 2층과 3층에 발코니형 객석들이 공간을 비죽비죽 치고 나와 있다. 관객이 사방에서 무대를 감싸는 비니어드(포도원)형 콘서트홀의 객석을 마치 집게로 여기저기 잡아당겨 놓은 것 같다. 2400석 규모의 객석을 갖춘 공연장이지만 무대에서 가장 먼 객석까지의 거리가 32m밖에 되지 않아 좌석 등급 간 격차감이 작은 ‘가장 평등한 콘서트홀’로 꼽힌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콘서트홀들은 대부분 40∼50m 간격을 두고 있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교육센터에서는 독주부터 갖가지 규모의 합주까지 다양한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청년층에게 다가가겠다는 생각이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공간이다. 관람객은 걸어서 지붕 위 37m 높이 전망대에서 파리의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도 있다. 티켓 가격은 클래식 음악의 경우 100∼160유로(약 13만2800∼21만 원) 정도로 청년층에게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이다. 클래식 이외 장르의 경우 절반이 안 되는 40유로(약 5만3000원) 이하의 가격에 하루 저녁 멋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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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두리 이민자 지역이 ‘청년 문화교육 중심’ 됐다

    2015년 1월, 파리 북부 라 빌레트 공원 남동쪽에 은빛 우주선과 같은 형체가 내려앉았다. 파리의 새 음악공연장 ‘필하모니 드 파리’였다. 미래와 상상력을 상징하는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 이 공간은 이제 탄생 8년이 지나 청년층과 미래의 예술 애호가를 끌어들이고 교육하는 젊은 프랑스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2006년 프랑스 문화부와 파리시, 파리 중심가의 콘서트홀 살 플레옐의 감독인 로랑 베일은 “파리 북동쪽 19구(區)의 라 빌레트 공원에 콘서트홀과 음악교육 시설, 전시회장 등을 갖춘 복합시설 ‘필하모니 드 파리’를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중심가에서 떨어진 곳에 새 콘서트홀을 짓기로 한 데는 청년층과 서민층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파리 19구는 저소득층과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프랑스 정부는 강도 마약 같은 범죄가 빈발한다며 2012년 이곳을 ‘특별치안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기존의 중심가 콘서트홀인 살 플레옐은 젊은 관객들의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주변의 고답적인 분위기부터 청년층을 끌어들이기 어려웠다. 반면 파리 북쪽 지역은 서민과 청년층 주민의 비율이 높았다. 베일은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청중에게 다가가고 교외와 도심을 통합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랑 파리(Grand Paris)다”라고 말했다. 새 콘서트홀은 클래식에 국한하지 않고 재즈와 유행음악, 록음악, 세계음악에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예술전시장도 마련하기로 했다. 공모에 의해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의 건축 계획안이 최종 채택되었다. 누벨은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아랍문화원과 카르티에 재단, 서울의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설계한 건축 거장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2015년 1월 14일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포레 ‘레퀴엠’ 연주로 문을 열었다. 안정된 분위기는 아니었다. 바로 1주일 전 풍자 만화잡지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주범들의 집도 파리 19구였다. 포레 레퀴엠은 이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이 되었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중심 공간은 메인 콘서트홀인 ‘피에르 불레즈 그랜드 홀’이다.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의 이름을 딴 이 홀의 내부도 외관만큼이나 파격을 넘는 낯설음을 안겨준다. 2층과 3층에 발코니형 객석들이 공간을 비죽비죽 치고 나와 있다. 관객이 사방에서 무대를 감싸는 비니어드(포도원)형 콘서트홀의 객석을 마치 집게로 여기저기 잡아당겨 놓은 것 같다. 객석 수 2400석이나 되는 공간이지만 무대에서 가장 먼 객석까지의 거리가 32미터밖에 되지 않아 좌석 등급간의 격차감이 적은 ‘가장 평등한 콘서트홀’로 꼽힌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콘서트홀이라면 40~50미터의 거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필하모니 드 파리의 교육센터에서는 독주에서부터 갖가지 규모의 합주까지 다양한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청년층에게 다가가겠다는 이념이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걸어서 지붕 위 37m 높이 전망대에서 파리의 멋진 전망을 조감할 수도 있다. 티켓 가격은 클래식 음악의 경우 100~160 유로 정도로 청년층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다. 록이나 세계음악 등의 장르 경우 절반 정도는 40유로 이하의 가격에 하룻저녁의 멋진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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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습 침수지역을 年 600만명 찾는 ‘런던관광의 중심지’로

    《도시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은 침체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어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해외에서는 콘서트홀을 통해 도시를 활성화한 사례가 많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의 콘서트홀 ‘필하모니 드 파리’를 찾아 “세종문화회관을 새로 단장해 강남과 강북의 문화 격차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예술을 즐길 기회를 늘리고 지역 발전에 기여한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콘서트홀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영국의 수도 런던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템스강 남동쪽 유역의 사우스뱅크 지역이다. 대관람차 런던아이와 유람선 선착장에 관광객이 길게 줄을 서고, 온갖 거리공연자가 볼거리를 선사한다. 강 건너엔 국회의사당의 시계탑 빅벤을 비롯해 런던의 스카이라인이 위풍당당하게 펼쳐진다. 본디 이곳은 겨울마다 템스강의 범람으로 침수가 거듭되던 지역이었다. 1948년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새 정부는 3년 뒤 ‘브리튼 페스티벌’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전쟁으로 지친 영국에 활력소를 선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개최지로 공장이 난립하고 폭격의 상흔도 채 지워지지 않은 런던 사우스뱅크 지역이 선택됐다. 강변의 공장들을 철거하고 수많은 축제용 임시 건물을 세웠다. 그중 단 하나의 건물은 축제의 추억을 오래 간직할 공간으로 지었다. 2900명을 수용하는 콘서트홀인 ‘로열 페스티벌 홀’이었다. 1951년 5월 3일,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새 콘서트홀이 문을 열었다. 개관 콘서트에 참석한 한 기자는 “아름다운 홀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나를 미래로 데려다주는 것 같았고 다른 행성에 온 기분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모든 참석자들의 감회를 대변한 말이었다. 로열 페스티벌 홀은 침수를 막기 위해 지반을 높여 로비가 2층에 있다. 1940년대에 설계된 건물로는 드물게 로비 전면이 유리로 덮여 넓고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바로 앞 강변의 보도를 오가는 사람들, 유유히 흐르는 템스강과 유람선, 강 저편의 건물들이 풍경화첩처럼 내려다보인다. 1967년에는 바로 옆에 900여 석 규모의 중간 규모 음악회장 ‘퀸엘리자베스 홀’과 370석의 ‘퍼셀 룸’이, 이듬해에는 전시장인 ‘헤이워드 갤러리’가 들어서 로열 페스티벌 홀과 함께 공연 전시 예술 콤플렉스인 ‘사우스뱅크 센터’를 이루게 됐다. 이후에도 로열 페스티벌 홀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1983년 런던시는 “로열 페스티벌 홀의 로비를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인파가 오가는 길목 바로 코앞의 로비는 시민에게 늘 열려 있는 쉼터가 됐다. 무료 전시회와 런치 콘서트, 재즈와 소규모 앙상블의 연주가 끊이지 않는다. 2005년, 반세기가 넘은 로열 페스티벌 홀은 2년간의 음향 개선 공사에 들어갔다. 벽면과 의자 마감재들이 교체됐고 좌석 수를 줄여 음향 반사 공간을 늘렸다. 1951년 건축비가 200만 파운드였던 데 비해 리모델링 비용은 그 50배인 1억 파운드가 넘을 것으로 전망됐다. 부담이 큰 액수였다. 해결책은 있었다. 1층 보도와 접한 공간이 식당으로 변했다. 임대료로 공사비를 회수하겠다는 착상이었다. 효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새 식당들은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고 늘 인파로 북적이면서 로열 페스티벌 홀의 매력은 한층 높아졌다. 음향 개선 공사로 연주가들에게도 더욱 환영받았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현대 악기와 옛 악기를 적절히 결합한 ‘시대연주’ 콘셉트로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계몽시대 오케스트라’가 이곳을 터전으로 활동하고 있다. 퀸엘리자베스 홀 외에 퍼셀 룸, 헤이워드 갤러리를 포함해 매년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열리는 유료 공연은 2000건이 넘는다. 무료 공연과 교육 프로그램도 2000건 이상이다. 사우스뱅크 센터는 전체 방문객이 매년 600만 명을 넘어서며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예술 복합단지’로 자리를 잡았고 문화도시 런던의 자부심과 매력을 높여주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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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왈츠와 폴카… 비엔나 인 서울… 클래식계 새해맞이 풍성

    세계 클래식계의 한 해는 빈 왈츠와 폴카로 열린다. 올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는 빈 국립오페라 총감독을 지낸 오스트리아 토박이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2011, 2013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지휘봉을 들었다. 1939년 시작된 이 음악회에서 영향받은 왈츠와 폴카 콘서트는 오늘날 오스트리아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콘서트홀의 신년을 장식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신년음악회 ‘왈츠와 폴카’로 한 해를 시작한다. 빈 폴크스오퍼(국민오페라) 극장 관현악단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독일 지휘자 게리트 프리스니츠가 지휘봉을 잡는다.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폴카뿐 아니라 올해 빈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새롭게 주목받은 그의 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신나는 폴카들도 만날 수 있다. 서울시향은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이들 300명을 초대한다”고 밝혔다. 전석 1만 원.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8일 김광현 지휘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마련한 신년음악회 ‘비엔나 인 서울’이 열린다. 2021년 BBC 카디프 콩쿠르 오페라 아리아 부문 우승자인 바리톤 김기훈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모차르트 ‘마술피리’ 밤의 여왕 역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박소영, 미성의 소유자인 신예 테너 김민석이 출연해 슈트라우스 일가의 관현악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의 아리아 및 듀엣, 빈의 세기말을 화려하게 장식한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대표곡을 들려준다. 5만5000∼12만1000원. 국립오페라단은 6, 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신년음악회 ‘희망의 소리’를 개최한다. 박준성이 지휘하는 6일 공연은 오페레타 ‘박쥐’ 서곡으로 시작해 유명 오페라 합창과 아리아로 프로그램을 엮었다. 홍석원이 지휘하는 7일 공연은 새해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맥베스’ 하이라이트를 미리 들려준다. 소프라노 서선영 임세경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양송미, 테너 국윤종 정의근, 바리톤 양준모 등 화려한 성악진과 클림오케스트라, 노이오페라코러스가 츨연한다. 2만∼5만 원. 거의 매년 초 한국을 찾아온 빈 소년합창단은 2월 4,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콘서트를 연다. 마놀로 카닌 지휘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성가곡, 세계 민요, 독일 가곡, 영화음악까지 이 합창단의 5세기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3만3000∼11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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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트라우스의 빈 왈츠와 폴카로 맞는 새해

    세계 클래식계의 한 해는 빈 왈츠와 폴카로 열린다. 올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는 빈 국립오페라 총감독을 지낸 오스트리아 토박이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2011, 2013년에 이어 세 번째로 지휘봉을 들었다. 1939년 시작된 이 음악회에서 영향 받은 왈츠와 폴카 콘서트는 오늘날 오스트리아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콘서트홀의 신년을 장식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신년음악회 ‘왈츠와 폴카’로 한 해를 시작한다. 빈 폴크스오퍼(국민오페라) 극장 관현악단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독일 지휘자 게리트 프리스니츠가 지휘봉을 잡는다.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폴카 뿐 아니라 올해 빈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새롭게 주목받은 그의 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신나는 폴카들도 만날 수 있다. 서울시향은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문화예술 향유에서 소외되기 쉬운 이웃 300명을 초대한다”고 전했다. 전석 1만 원.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8일 김광현 지휘 코리아쿱오케스타가 마련한 신년음악회 ‘비엔나 인 서울’이 열린다. 2021년 BBC 카디프 콩쿠르 오페라 아리아 부문 우승자인 바리톤 김기훈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모차르트 ‘마술피리’ 밤의 여왕 역으로 출연한 소프라노 박소영, 미성의 소유자로 알려진 신예 테너 김민석이 출연해 슈트라우스 일가의 관현악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의 아리아와 듀엣, 빈의 세기말을 화려하게 장식한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대표곡을 들려준다. 5만5000~12만1000원. 국립오페라단은 6, 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신년음악회 ‘희망의 소리’를 개최한다. 박준성이 지휘하는 6일 공연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으로 시작해 유명 오페라 합창과 아리아로 프로그램을 엮었다. 홍석원이 지휘하는 7일 공연은 새해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맥베스’ 하이라이트를 미리 들려준다. 소프라노 서선영 임세경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양송미, 테너 국윤종 정의근, 바리톤 양준모 등 화려한 성악진과 클림오케스트라, 노이오페라코러스가 츨연한다. 2만~5만 원. 경기 용인 포은아트홀도 12일 조인성 지휘 용인시립합창단과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함께하는 신년음악회’를 연다. 1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네 곡, 2부는 폴카 다섯 곡을 선보인다. 1만~2만 원.거의 매년 초 한국을 찾아온 빈 소년합창단은 2월 4,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콘서트를 연다. 마놀로 카닌 지휘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성가곡, 세계민요, 독일가곡, 영화음악까지 이 합창단 5세기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3만 3000~11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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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왈츠 ‘왕제’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재발견

    “니체는 말했죠, 음악이 없는 삶은 오류일 거라고.” 1일 빈 무지크페어아인 황금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매년 앙코르곡으로 선사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 연주에 앞서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해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 콘서트로 희망을 전해 왔습니다. 커다란 낙관주의를 갖고 새해를 축하합니다.” 그가 말한 ‘희망과 낙관주의’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거의 매해 이 콘서트에는 ‘개그 코드’가 끼어들어 왔다. 2006년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전화 폴카’ 연주 중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려 관객들을 웃게 만든 것이 한 예다. 올해는 관객이 특별히 웃음 지을 만한 순간이 없었다. 벨저뫼스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전쟁이 벌어지는 시기에 콘서트에서 장난을 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빈 신년음악회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따로 있었다. 메인 프로그램 15곡 중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곡은 두 곡뿐이었다. 대신 절반을 넘는 여덟 곡이 그의 동생 요제프 슈트라우스(1827∼1870)의 곡이었다. 거의 매해 요제프의 곡이 한두 곡씩은 들어 있었지만 그가 이렇게 콘서트의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선 일은 처음이다. ‘왕제(王弟)의 부활’이라 할 만하다. 요제프 슈트라우스는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여섯 아이 중 둘째다. 형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보다는 두 살이 어리다. 마흔세 살 때 연주여행 중 쓰러져 형보다 29년이나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재발견은 코로나19 덕분이었다. 2020년 봉쇄(록다운)가 시작되자 벨저뫼스트는 빈 필하모닉 문서보관소에서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훌륭한 왈츠와 폴카들을 다음 자신이 신년음악회를 지휘할 때 선보이기로 결심했고, 그 대부분은 요제프의 것이었다.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폴카에서 형과 다른 특징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론도 형식의 전형적인 빈 왈츠 구조나, 현악기 선율에 크림처럼 부드러운 호른을 더하고 달콤한 피콜로 음색을 올려 마무리하는 식의 관현악법도 비슷하다. 그러나 독일의 문화 전문 월간지 메르쿠어는 “요제프가 (막내 에두아르트를 포함한) 형제 중 가장 뛰어난 작곡가였다”고 소개했다. 독일 바이에른 방송은 “요제프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선율과 화성 감각으로 전문가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전했다.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의견은 어땠을까.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그는 자식들이 음악 교육을 받는 것을 반대했고 결국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렸다. 올해 신년음악회가 주목받은 점을 하나 더 꼽자면 ‘빈 소녀합창단’의 첫 등장이다. 2004년 빈 소년합창단의 부속 단체로 창단된 이 합창단은 빈 소년합창단과 함께 무대에 올라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밝은 기분 폴카’를 노래했다. 빈 필하모닉 이사회 의장 다니엘 프로샤워는 “앞으로 여성들이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여성 지휘자가 지휘대에 오를 수도 있죠. 빈 필은 요아나 말비츠(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차기 예술감독) 같은 훌륭한 여성 지휘자들과 일해 왔습니다. 시간은 걸릴 겁니다. 10년 이상 같이 일해 온 지휘자들만 신년음악회에 초대하거든요.” 한국인이 지휘대에 오르는 일은 없을까. 이 음악회를 지휘해온 지휘자들은 모두 빈과 상당한 인연이 있다. 동양인으로서는 인도인 주빈 메타와 일본인 오자와 세이지가 빈 필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오자와는 2002∼2010년 빈 필하모닉이 반주를 맡는 빈 국립오페라 수석지휘자로 일했다. 메타는 청년기에 빈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올해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벨저뫼스트가 2014년 빈 국립오페라 총감독에서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사임했을 때, 그가 지휘하기로 예정됐던 공연들을 갑자기 떠맡은 주인공은 한국인 정명훈이었다. 이 극장에 데뷔한 지 3년 만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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