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수

이문수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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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사회정책을 취재합니다. 정책의 이면에 담긴 사람들의 땀과 눈물, 욕망과 이상을 보고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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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노동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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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아이파크’ 붕괴 3년, 원청-하청 네탓만… “6명 죽음에도 바뀐게 없어”[히어로콘텐츠/누락 번외편]

    “HDC현대산업개발은 ‘동바리(임시 거치대)’ 해체를 지시한 적이 없습니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하청업체는 동바리 해체 과정을 절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하청업체 가현) 지난해 11월 4일 오후 2시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201호. 2022년 1월 11일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1심 결심 공판 최후 변론이 이어졌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현산)’과 하청업체 ‘가현’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 붕괴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 동바리 해체를 누가 지시했는지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법정 밖 ‘재판 안내 게시판’에는 현산, 가현, 감리업체인 건축사무소 ‘광장’을 포함해 관계자와 법인 등 총 20명이 ‘피고인’으로 적혀 있었다. 당시 사고로 총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는 사고 발생 3년 만인 지난달 20일 내려졌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고상영)는 원청인 현산과 하청인 가현 모두에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며 양측 현장소장 2명에게 최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다만 기소된 이들 중 경영진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1심 결심 공판을 참관해 피고인들의 최후 변론을 들었다. 붕괴 사고 이후 책임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안전한 건설 현장을 만들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은 지켜졌는지 사고 3년 후의 상황을 추적했다.● ‘동바리 해체’ 경위 명확한 진술 없어 법원의 선고 전 검찰 구형 이후 피고인 최후 변론이 시작됐다. 그 누구도 건물이 어쩌다 무너졌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3년 전 사고 당일, 원청 현장소장은 부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다. 안전 총괄 담당자는 사고 나흘 전부터 가족 휴가를 떠나 현장을 비웠다. 붕괴된 201동의 담당 감리는 개인 사정으로 다른 감리에게 일을 부탁하고 현장을 비운 사이 일이 벌어졌다.‘동바리 해체’를 누가 지시했는지, 잘못된 지시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피고인 중 한 명인 원청 계약직 사원은 “현장을 감독해야 할 직원이 충원되지 못해 현장에서 채용했다”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서포트(지지대)가 정말 ‘제대로’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 있었을까”하고 말했다. 하청 현장소장은 “어느 하나라도 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이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했다.1심 법원은 권순호 현산 전 대표이사 등 경영진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추상적인 지휘 감독의 책임’은 있지만 직원의 과실에 대한 직접적인 주의의무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감리업체 ‘광장’ 소속 감리들은 징역 1년 6개월~3년에 집행유예 3~5년을 선고받았다. ‘원청과 하청이 공사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집유 선고 이유였다. 현산, 가현, 광장 각각 법인에는 5억 원, 3억 원, 1억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다.광주지검은 항소했다. 1심이 원청과 하청 경영진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어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았다”며 “피해 규모가 컸음을 고려하면 더 무거운 형이 선고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섯 명이 죽었지만 바뀌는 것 없어”히어로팀은 지난해 11월 4일 오후 2시 광주 북구 ‘경동택배’ 창고에서 아이파크 붕괴 사고 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인 안정호 씨를 만났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안 씨는 작업 일정과 대금 등을 조율하느라 분주했다.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리는데 창고로 배송된 매트리스, 합판, 카펫 등 택배 물품도 정리해야 했다.그 시간 광주지법에서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지만 안 씨는 가지 않았다. 당시 붕괴로 안 씨는 매형 유모 씨를 잃었다. 매형은 안 씨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준 사범이자 함께 체육관을 운영했던 인생의 동반자였다. 사고 날, 안 씨는 일을 하다가 변고를 접했다.안 씨는 검찰이 구형하는 결심 공판에 안 갔다. 다른 유가족들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안 대표는 “유가족들은 재판이 시작될 무렵만 해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처벌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며 한동안 재판도 꾸준히 참관했다고 했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하지만 재판은 다르게 흘러갔다. 현산과 가현은 붕괴의 책임 소재를 두고 긴 공방을 벌였다.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이러다 재판이 ‘꼬리 자르기’ 식으로 결론 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안 씨는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이 처벌받는 일이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느 정도 지켜본 뒤 ‘이미 끝났구나’ 생각했습니다.”안 씨는 결심 공판에 불참하며 “여섯 분의 죽음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잖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노가다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일이 됐다”며 “누구 하나만 잘못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닌데 유족들은 누구를 붙잡고 원망해야 하냐”고 했다.● 시공사-감리사는 아직 영업 중사고 이후 2022년 3월 국토교통부는 서울시 측에 현산에 대해 ‘등록 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의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산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처분 권한이 있는 서울시는 이달 3일 현재까지 영업 정지 등 어떤 행정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감리업체 광장은 화정 사고 이후 2022년 9월 경기도로부터 영업 정지 1년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제기한 행정취소소송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영업을 재개했다. 광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인천 서구 검단 아파트 공사 감리와 설계를 맡았다. 2023년 4월 29일 오후 11시 반경 검단 아파트는 공사 도중 지하 주차장이 붕괴됐다. 유력한 원인은 ‘철근 누락’이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광주=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광주=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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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가사관리사, 수요 적고 예산 없어 전국확대 안갯속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이달 말 종료된다. 지난해 9월 도입된 이후 6개월 만이다. 당초 고용부와 서울시는 시범사업 종료 이후 본사업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규모를 늘리고, 서비스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각 지방자치단체의 수요가 적은 데다 고용부 역시 올해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재원 확보가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고용부가 지자체별 외국인 가사관리사 수요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서울 900명, 부산과 세종에서 각각 20명 이하를 제출했다. 3개 지역 외 14개 지자체 수요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각 지자체들은 사업 자체에 국비 지원이 없다는 점에서 가사관리사 관리 및 교육 등에 부담이 크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가사관리사의 숙소, 교통, 통역비에 예산 1억5000만 원을 투입했다. 고용부와 서울시는 시범사업 종료 이후 본사업에서 운용 인원을 현행 100명에서 1200명으로 늘리고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도 가사관리사를 추가 선발할 계획이었다. 다만 예상보다 지자체 수요가 적어 서울시를 중심으로 하는 시범사업을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서비스 이용료는 시간당 1만3700원으로 내국인 가사관리사보다 저렴하다. 서울시와 고용부에 따르면 현재 공공 아이돌보미보다 9.2%, 민간 가사관리사 평균보다 20% 이상 저렴한 수준이다. 서비스 특성상 민간업체가 인력 공급 과정에 참여하는데, 이 업체들은 홍보 효과 외에는 현재 경제적 이윤을 거의 보지 않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지원책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업 지속성 차원에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부처 차원의 관련 예산이 없어 재원 조달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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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N수생 20만명 안팎, 25년만에 최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응시하는 N수생(대입에 2번 이상 도전하는 수험생)이 20만 명 안팎에 이르며 2001학년도 이후 25년 만에 최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게다가 2026학년도는 출산 붐이 일었던 2007년 ‘황금돼지띠’에 태어난 고3 현역 수험생 수(45만3812명)가 전년도(40만6079명) 대비 4만7733명(11.9%) 더 많다는 점에서 입시업계는 “올해 대학 입시에서 유례없는 경쟁률이 예상된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2일 종로학원은 연도별 재수생 유입 추세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2026학년도 수능 지원 N수생 예상 수는 20만2762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의대 증원 여파로 N수생 응시자 수(18만1893명)가 2004학년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된 2025학년도 대비 11.5% 늘어난 규모다. 2025학년도 수능 접수자 현황을 살펴보면 고3 수험생이 34만777명, N수생은 18만1893명으로 각각 65.2%, 34.8% 비율이었다. 종로학원은 2026학년도에도 이들 비율이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2026학년도 수능 접수자는 고3 수험생 38만5593명, N수생 20만2762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1994년 수능 도입 이래 고3 수험생과 N수생의 비율은 대체로 7 대 3 수준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N수생이 20만 명을 돌파한다면 2001학년도 26만9059명 이후로 최대 규모가 된다. 수능 도입 이후 N수생이 20만 명을 넘긴 건 1994∼2001학년도 총 8번이었다. 그중 역대 최대는 31만3828명을 기록한 1996학년도였다. 2002학년도부터 2025학년도까지 N수생 규모는 10만 명대를 유지했다. 입시업계에서는 의대 증원을 비롯해 현재 방식의 수능이 2026학년도, 2027학년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도 N수생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2028학년도부터는 대입 개편으로 수능에서 국어·수학·탐구 영역의 선택과목이 사라지고,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치러야 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최근 취업난 여파로 상위권 대학 선호가 뚜렷한 상황에서 정시 지원에서도 상향 지원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학 진학 후에도 반수 등을 통해 상위권 대학에 재도전하는 심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정원 조정 변수가 N수생 규모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입시업계에 따르면 의대 증원이 이뤄진 2025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전국 98개 의·치·한·약대 등 이른바 메디컬 학과의 정시 탈락 인원은 전년도 대비 3112명(18.9%)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25학년도 정시 4년제 대학 202곳의 모집 인원 대비 지원자 수를 살펴보면 탈락자는 전년도 대비 3.0% 증가한 1만1763명으로 예상된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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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히어로콘텐츠/누락④-하]

    서울 강남에서 공사 중인 총 17층 규모의 소형 A아파트. 2019년 책정된 공사비는 53억3500만 원이었다. 하지만 공사 초기 건설사 부도로 한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물가 인상 탓에 공사비는 지난해 79억4000만 원으로 늘었다. 5년 새 150% 증액됐다.●눈에 보이는 외장재 위주로 공사비 올려5년새 타일-유리 ‘외장재’ 4배↑철골 등 안전비용은 사실상 삭감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A아파트 전체 공사 비용 자료를 입수해 항목별 증감을 분석했다. 가장 많이 늘어난 항목은 부대 공사 비용으로 613% 올랐다. 타일 공사(448%), 미장 공사(443%), 유리 공사(425%) 등 주로 외부 마감재 항목도 많이 올랐다. 고급 대리석 마감재 비용은 152% 올랐다.반면 아파트 전체 구조나 안전과 연관된 비용은 증액 폭이 작거나 일부는 사실상 삭감됐다. 철근콘크리트 공사비는 120%, 골재비는 128% 올라 외장재보다 증가 폭이 작았다. 철골 공사비는 5년 전의 83%로 줄었다. 총 18개 항목 중 유일하게 감액된 항목이다. 건축 구조 설계비는 총 840만 원으로 5년 전과 똑같았다. 총 공사비의 0.01%. 물가 인상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됐다. 김지상 한국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발주처가 요구하는 건설비에 맞춰야 하니 겉에서 잘 보이는 마감재 비용을 늘리고, 눈에 잘 안 보이는 철골 구조체 물량은 줄인다”고 설명했다.현장 관계자들은 “건설사는 속은 부실한데 겉은 화려한 아파트를 지어 이윤을 남기고, 입주자는 외관과 브랜드에 만족해한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 전문가는 “마치 예쁜 사치재를 구입하듯 집을 산다”며 “현재 한국의 아파트는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ing) 것’”이라고 비판했다.●안전보다는 대리석… “쪽대본 드라마처럼 지어”안전 외면한 설계 변경 비일비재주민들 “집값 떨어질라” 하자 쉬쉬“아휴, 우리 아파트 아무 문제없다니까. 이런 거 물어보시면 집값만 또 떨어져요.”지난해 8월 히어로팀이 찾은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민에게 ‘추가 하자가 발생하지 않았냐’고 묻자 힐난이 돌아왔다. 2023년 이 아파트의 한 동에서는 철근 다발이 외벽을 뚫고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공사는 안전진단을 거쳐 문제의 철근이 주철근이 아닌 ‘잉여(남는) 철근’으로 확인됐다며 하자 보수를 완료했다고 했다. 사고 직후 입주민들은 오히려 시공사를 두둔했다.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된 아파트 매매 관련 애플리케이션(앱) 게시판에는 “전문가들이 문제없다네요” “이런 걸로 안 무너져요” 등의 입주민 글이 올라왔다. ‘부실 아파트’라는 오명이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서다.구축 아파트를 신축으로 재건축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소유자들로 이뤄진 재건축 조합이 시공사에 무리한 단가 인하, 공기 단축을 요구하거나, 부실 공사를 ‘쉬쉬’ 하기도 한다.히어로팀은 현재 시공사 선정 작업이 한창인 서울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과 관련된 국내 5대 대형 건설사의 사업 제안서 일부를 입수했다. 각 건설사는 ‘가장 낮은 물가지수 적용’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없음’ 등 돈과 관련된 공약을 앞세웠다. 공사 기한에 대한 확약성 문구도 다수 등장했다. 하자 보수나 안전 관련 내용은 드물었다. 한 대형 건설사 제안서에는 “공사 기간을 43개월로 단축해 가장 빠른 입주를 실현시키겠다”며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 등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공사를 정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건설사는 “공사비 증액 없는 확정 지분제”를 앞세웠다.이를 본 현장 시공 전문가들은 “원자재값이 오르는데 공사비 인상을 안 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짓말’”이라며 “공사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손해를 안 보는 방법은 구조물 설계를 변경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10대 대형 건설사의 한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사업 담당자는 “조합이 공사비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러면서 마감재, 외장재는 ‘고급화’ ‘화려한 조경’ 등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그 요구를 들어주려면 안전 구조 비용에서 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은영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은 “조경이나 외부 마감재 변경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의 논의가 길어지면 공사가 시작된 뒤에도 설계를 변경하는 현장이 많다”며 “쪽대본 드라마처럼 아파트를 짓는 셈”이라고 비유했다.부실시공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파트 주민들도 ‘집값 걱정’에 부실을 덮는다.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본부 대표는 “입주민이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하면 입주자대표협의회가 ‘외부에 알리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보수 보강을 못 하게 하는 사례들이 많다”며 “협의회 쪽이 건설사 편을 드니 문제를 제기한 입주민도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한국 아파트는 투자 자산 개념이 강해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 비용에는 그동안 소홀했다”며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해진 만큼 미관도 중요하지만 구조 설계비 등 안전 관련 비용을 늘려야 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국토부 퇴직하면 건설사-협회에 재취업정부 안전대책 19개중 시행은 7개뿐전관들, 협회 등 포진해 ‘법안 로비’정부나 국회에서 발의된 건설 안전 관련 법안은 상당수가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히어로팀은 2022년 1월 광주 화정 아파트 붕괴 사고 직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9가지 부실시공 근절 대책의 이행 여부를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현재 시행된 대책은 7개에 불과했다.전문가들은 건설업계에 포진한 ‘국토부 전관’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토부에 따르면 2018년 이후 7년간 국토부 출신 퇴직공무원 107명 중 25명(23%)이 건설·주택 관련 협회나 건설업체에 재취업했다. 이 중 23명은 4급 이상 고위직이다. 국회 국토위 소속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각종 건설협회에 소위 ‘국토부 카르텔’이 많다. 건설사에 불리한 법안을 막기 위해 국회나 관계 부처에 일종의 ‘로비’를 하는 것이 이들의 주 업무”라고 전했다.대규모 주택 공사는 지역 현안과 밀접해 국회의원도 안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공사 지연을 막으려는 지역구 의원들이 표를 의식해 안전 규제 법안을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국토위 소속 한 여당 의원 비서관은 “(국토위) 법안 소위까지 올라가려면 여야 합의가 필요한데 여기서부터 막히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건설사 입김에 의원 1명이라도 반대하면 본회의에도 오르지 못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전문가들은 2015년 대법원이 철근 누락이 발견된 인천 청라푸르지오 아파트의 시공사 직원과 감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부실 확산에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시공사는 일부 구조물에 철근을 설계보다 적게 넣었다. 대법원은 “시공사 측이 지키지 않은 기준은 ‘설계도서’가 아닌 ‘시공상세도면’”이라며 “사건 직후 철근 보강 공사를 진행해 안전진단 결과 안전성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건설 전문가들은 “부실시공의 ‘촉매제’가 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전공 객원교수는 “법원은 부실시공이 있어도 전면 재시공보다 일부만 보강하라는 판결을 낸다”며 “건설사도 부실시공에 대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 왔다”고 비판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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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히어로콘텐츠/누락④-상]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감리는 부실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레드팀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시공사, 시행사의 압박에 철근 누락을 못 본 척 넘긴다. 어쩌다 문제를 제기한 감리는 해고되고, 때론 감리사 전체가 교체되기도 한다. 완공된 아파트에 부실 시공 논란이 불거지면 모든 화살은 감리에게 돌아온다. 제 역할을 못 하는 감리와 그로 인한 부실의 실체를 파헤쳤다.“황 씨 말은 알겠어요. 그런데 책임질 수 있어요?”2023년 9월 황우진(가명) 씨가 LH 아파트 A건설현장 감리단장으로 일할 때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담당자가 “철근 누락 사실을 절대 입 밖에 꺼내선 안 된다”며 경고 섞인 당부를 했다.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게 불과 5개월 전 일이었다. 사건을 들은 황 씨는 자신이 감리를 맡은 A아파트 외벽 철근 시공 상태를 다시 조사했다. 한쪽 벽에 철근이 70%나 빠져 있었다.●‘철근 70% 누락’ 지적, 돌아온 건 ‘해고’공사중단 권한, 소송 우려에 못쓰고시공사는 문제 생기면 “감리 탓”인건비 아끼려 인원 기준도 안지켜“3개동에 주차장까지 혼자 감독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구조”황 씨는 LH에 알렸다. 하지만 LH는 공사를 강행하려 했고 황 씨는 “안 된다. 이러다 무너진다”고 버텼다. 시공사는 ‘재시공’ 대신 ‘일부 보강’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비용 때문이었다. LH 담당자는 “당신이 재시공 비용을 낼 거냐. LH 아파트가 또 문제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씨는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고 그 여파로 공사가 중단됐다. 황 씨는 소속 건축사무소에서 잘렸다. 업계에서는 ‘내부 고발자’로 낙인찍혔다. 황 씨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나 “그때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건설 현장에서 감리는 부실 시공을 막을 ‘최후의 보루’다. 공사 기간 내내 문제점을 찾아내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건설 현장의 감독관이자 레드팀이다. 설계 도면에 따라 철근이 제대로 설치됐는지, 콘크리트 강도가 적정한지 확인하고 문제점을 찾아 지적해야 한다.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파트는 ‘제멋대로’ 지어진다. 감리가 시행사, 시공사 등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아파트 완공 전에는 시공사, 시행사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부실을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완공 뒤 문제가 불거지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소송, 수사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다. 히어로팀이 인터뷰를 시도한 감리들 대부분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업계에 금방 소문이 퍼져 일하기 어렵다”며 고사했다.그럼에도 오랜 설득 끝에 히어로팀은 30년 차 베테랑 감리부터 업계 4년 차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여성 감리까지 총 10명의 감리를 만났다. 그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감리가 소신대로, 원칙대로 일할 수 없는 현장 시스템과 그 결과가 어떤 부실을 낳는지 들을 수 있었다.●시공-시행사, 마음에 안 드는 감리사 통째로 교체현재 경기 지역에서 건설 중인 대규모 오피스텔 현장 관리 감독을 맡은 김모 감리는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했다가 교체당했다. 김 감리는 지반(땅) 공사에 사용된 콘크리트 말뚝 강도, 말뚝이 지하에 묻히는 깊이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히어로팀이 접촉한 이 건설 현장의 다른 시공 관계자들도 똑같이 우려했던 부분이다.하지만 시공사는 감리의 문제 제기 때문에 공사가 지체되자 감리사 전체를 교체했다. 아파트 감리 선정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지만 오피스텔 등은 시행사(발주처)가 선정하기 때문에 맘대로 바꿔버린 것. 히어로팀은 해당 지자체에 제출된 김 감리의 교체 사유 문건을 확보했다. 주 교체 사유는 ‘권한 남용’, ‘월권행위 빈번’이라 적혀 있었다. “설계자와 발주자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검측을 중단했다”는 내용도 있었다.같은 현장에서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한 시공 관계자 박명훈(가명) 씨는 “감리원 교체는 건설 현장에서 자주 봤던 일이지만 공사 중 감리사를 통째로 바꾸는 건 이례적”이라며 “감리가 완강히 버티며 두 달 넘게 공사가 지체되자 마음이 급해진 시공사가 ‘트집’을 잡아 조치를 취한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히어로팀이 6개월간 살펴본 건설 현장에서는 이같이 감리가 소신대로 제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다. 감리들은 스스로를 ‘심부름꾼’, ‘귀찮은 존재’, ‘부실공사의 총알받이’라며 자조했다. 30년 차 임모 감리는 “열심히 일한 감리는 다음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거수기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털어놨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너무 깐깐하다’ ‘횡포를 부린다’며 다음 일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역설적인 구조가 숨어 있었다.●‘공사 중단’ 권한 있어도 소송 우려에 행사 어려워감리에게는 ‘공사 중단’ 권한이 있다. 하지만 공사를 중단했다가는 송사에까지 휘말릴 수 있다. 예정보다 공사가 늦어지면 시공사는 입주 예정자에게 입주가 늦어진 만큼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하는데, 감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장모 감리는 “시공사에서 ‘감리가 공사 진행을 방해한다, 사업적으로 큰 손해를 봤다’며 민사 소송을 건 적이 있었다”고 했다. 30년 경력 유모 감리는 “문제를 발견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 시공사로부터 손해배상 등 민사 소송이 들어온다. 이를 피하려 문제를 눈감고 넘어가서 붕괴 사고라도 나면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한테 자폭 버튼을 준 셈”이라고 말했다.감리는 ‘돈’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감리사는 발주처 용역을 수행해 받은 돈으로 소속 감리에게 월급을 준다. 공사 발주처는 근본적으로 아파트나 건물을 빨리 올려 이익을 남기는 게 목적인데, 감리가 자꾸 문제를 제기하면 ‘눈엣가시’로 여긴다. 25년 경력의 이모 감리는 “발주처가 감리사를 선정할 때 소속 감리가 검사를 깐깐하게 했다는 평을 들으면 용역 계약을 안 하려 한다”며 “용역을 못 딴 감리사는 업체 유지가 어려워지고 감리도 월급을 못 받게 된다”고 말했다.시공사는 감리사를 선정하고 나서도 감리들이 까다로운지 ‘뒷조사’에 나선다. 과거 시공사와 갈등을 빚은 감리는 다음번 같은 시공사 현장에 선임되기 어렵다. 유 감리는 “감리사에서 (시공사가 원하지 않아) 해당 감리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시켜 월급을 절반만 주거나 눈치를 줘서 쫓아내기도 한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급여를 제대로 못 받거나 일자리를 잃을 우려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2시간 걸릴 철근 검사, 10분에 마쳐감리 투입 인원은 건설기술진흥법상 공사비, 공사 종류 등에 따라 기준이 정해진다. 기준 인원을 지키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할 수 없고, 계획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2000만 원을 부과한다.하지만 현실은 법과 다르다. 법적 기준대로 감리를 투입해도 인력이 충분치 않은데, 현장에서는 인건비와 공사비를 아끼려 이마저 지키지 않는다. 감리 기준 인원을 서류상으로만 충족시키기 위해 투입되지 않은 감리를 ‘가라(가짜)’로 명단에 넣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리 10명이 필요한 현장에 절반이 투입되는 것도 쉽지 않다. 품질 관리에 집중해야 할 감리 1명이 안전, 공무, 자재 관리, 환경, 민원, 사무실 관리까지 겸임한다. 유 감리는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34층 2개 동, 51층 1개 동, 지하주차장 1∼3층 건축 감리를 나 혼자서 했다”며 “아파트 1개 층 철근 간격을 제대로 검사하려면 최소 2시간은 봐야 하는데 10분만 봤다”고 말했다.감리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검측, 감독은 현장 관리자나 작업반장 보고에 의존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눈에 잘 띄는 주철근과 띠철근 간격 정도만 빠르게 훑고 넘어가는 식이다. 이 감리는 “감리 적정 인원은 아파트 180가구당 1명 정도지만 실제로는 1000가구에 2, 3명인 게 현실”이라며 “공사 마감 기한이 있으니 다른 현장 작업자들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완벽하게 설치됐다’고 보고한다는 걸 알지만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문제 생기면 ‘감리 탓’… “내가 업을 잘못 택했나”시공사와 시행사는 부실시공 논란이 불거지면 많은 경우 감리에게 책임을 미룬다. 임모 감리는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는 ‘심부름꾼’, 책임질 일이 생기면 ‘총알받이’로 쓰인다”고 말했다. 장 감리는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인데 정부는 감리 책임을 늘리는 법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살기 위해 어떻게든 책임에서 빠져나가게끔만 점검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감리 고모 씨도 “감리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14년 차 최호민(가명) 감리는 여전히 회사에서 ‘막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감리는 이미 ‘리스크는 큰데 보상은 적고 욕은 욕대로 먹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신입이 들어오지 않는다.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동기 가운데 유일하게 감리를 지망했습니다. 안전을 지켜낸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하지만 금세 깨달았습니다. 감리는 건설 현장의 책임 회피용 직책일 뿐이라는 걸요. 책임은 너무 큰데 권한은 없습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제가 이 업을 선택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죠.”〈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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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역까지 있어야 하는 공사현장… 철근이 지시대로 박히지 않았다[히어로콘텐츠/누락③-상]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바닥, 벽, 천장 등 사방에 거미줄처럼 철근 가닥들이 시공되고 있었다.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가운데 철근을 담당하는 철근공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기자가 다가가 국적을 묻자 서툰 한국어나 짧은 영어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0명 중 9명꼴로 외국인이었다.철근 시공을 지휘하는 한국인 ‘철근 부장’은 이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릴 때마다 멈칫하며 누군가를 불렀다. 외국인 중 조금이나마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임시 통역 담당’ 철근공이었다. 언어별로 1, 2명가량이 이런 역할을 했다. 철근 부장이 도면을 손에 들고 한국말로 지시 사항을 쏟아내면 통역 담당이 동료들에게 모국어로 옮겨 손짓하며 설명했다. 그래도 몇몇 외국인 철근공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기자가 직접 본 철근 시공 현장은 뭐가 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사방에 깔리고 박힌 철근마다 지름, 모양, 길이, 형태, 종류가 모두 달랐다. 설계 도면은 그보다 더 복잡했다. 관리자와 철근공 사이에 정교한 의사소통 없이는 시공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커 보였다. 철근 소장 진모 씨는 “도면은 까다로운데 소통은 안 되니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철근이 누락되는 등 부실이 생긴다”고 했다. 히어로팀은 지난해 11월 수도권 아파트 공사장에서 철근공 보조, 신호수, 잡부 등으로 취업해 일하며 현장을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근로자 증가가 어떻게 철근 시공 오류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팀이 만난 철근공 등 건설 관계자 47명은 저마다 ‘누락’의 경험들을 털어놨다.히어로팀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기간에 ‘철근 부장’과 베트남 등 외국인 철근공들이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한국인 임모 작업반장은 “철근 쪽은 요즘 대부분이 불법 체류 외국인이다. 한국인 철근공은 점점 줄고 외국인 철근공이 90%인데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시공 오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촉박한 공사 기한 안에 빨리빨리 아파트를 올려야 하는데 철근 공정은 복잡하다”며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시공해야 할 철근 개수나 간격을 틀리거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오해하거나, 엉뚱한 철근을 박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고 말했다.● 철근 작업 지시는 복잡한데 의사소통은 ‘버벅’철근공 10명 중 9명 꼴 외국인외국어 뒤섞인 현장 서로 말 안통해“복잡한 철근 공사 작업지시 어려워”건설 현장에 점심시간이 되면 외국인 철근공들은 같은 국적끼리 모여 밥을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곳곳에서 중국어, 러시아어, 베트남어를 비롯해 분간이 어려운 외국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베트남 철근공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름이 뭔가요”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기만 했다. 스마트폰으로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을 켜서 한국말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보여주자 그제야 자기 이름을 “풍반탕”이라고 대답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황이라 복잡한 철근 시공 지시는 전달되기가 더욱 어려워 보였다.외국인이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관리자나 현장소장이 애를 먹기도 한다. 형틀 소장 최모 씨는 “천장 마감 작업을 제대로 안 했길래 담당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뜯고 다시 시공하라고 지시했더니 거절해 버렸다”며 “문제를 지적하면 ‘우리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기나 하는 줄 아냐’고 나온다”고 했다. 철근 소장 신모 씨는 “떠난 외국인들이 다시 일하게 하려면 사정사정해서 돈을 올려줘야 한다”며 “우리도 내키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건설 현장에서 외국인의 ‘세(勢)’가 커지면서 국가별 근로자 조직도 생겨났다. 과거 건설 현장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비(非)노조가 일자리를 놓고 다퉜다면 최근에는 조선족팀, 베트남팀, 동남아팀 등이 각자 뭉쳐 일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국가 대항전’을 벌인다.●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 교육 없이 바로 투입시공 오류와 현장 갈등에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외국인을 계속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이다. 한 건설 관계자는 “임금이 한국인보다 저렴하니까 시공사는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외국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히어로팀이 일한 현장에서 한국인 일당은 25만 원, 외국인 일당은 19만 원이었다. 6만 원이 저렴하다. 이 현장은 약 400명의 근로자가 작업 중이었다. 절반만 한국인 대신 외국인을 고용해도 시공사는 하루 1200만 원, 한 달에 3억6000만 원의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아파트 건설에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총 130억∼170억 원가량을 아끼는 셈이다.문제는 현장 외국인 근로자 중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라는 점이다. 지난해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건설 현장의 외국인 42만2765명 중 24만2913명(57%)이 불법 체류자로 추정됐다. 히어로팀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대부분은 “내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 발각되면 잡혀가 추방될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외국인이 정식으로 E-9(비전문 취업)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오면 현장 관련 교육을 3∼5일 정도 받는다. 최소한의 사전 지식을 습득하는 셈이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는 이런 교육을 안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말은 잘 안 통하는데 철근 시공법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공사 기한 압박도 문제… 철근 안 묶고 매립기한 압박에 “철근 한두개 빠져도 뭐”철근 고정 결속선 안묶는 경우 허다지연비용 시공사 떠안아 대충대충“콘크리트 치면 진실도 묻히는거죠”히어로팀이 만난 한국인 철근공 이민형(가명) 씨는 외국인에게 ‘몸값’이 밀려 지난해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4년간 철근공으로 일하면서 설계보다 훨씬 얇은 철근을 깐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철근 반장은 지름 22∼25mm 바닥(슬래브) 철근이 들어갈 자리에 10mm대 철근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철근이 두껍고 무거우면 비싸고, 가늘고 가벼우면 싸다. 이 씨는 “소시지 같은 철근을 넣어야 하는데 이쑤시개를 깐 거죠.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생계가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했다.외국인 근로자 증가 외에도 철근 부실시공을 초래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이 씨는 ‘공기(공사 기한) 압박’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특히 철근과 철근을 고정시키는 ‘결속선’을 안 묶는 경우가 현장에선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결속선은 콘크리트를 부었을 때 철근이 휘거나 이탈하는 것을 막아주는데 이를 묶지 않는 것이다. 이 씨는 “10곳을 묶어야 하면 그중 1곳만 묶고 끝낸다”며 “하루에 정해진 할당량이 있으니 일일이 묶다 보면 기한 내 일을 못 마친다”고 말했다. 결속선이 없는 철근은 덜렁덜렁 흔들린다. 이 씨는 “저는 건설 현장 내막을 알잖아요. 아무리 싸게 나와도 제가 지은 아파트엔 솔직히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히어로팀이 취재한 건설 현장 역시 공기를 맞추기 위해 폭우나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도 야외 공사를 강행했다. 한 날은 오전 작업이 늦어지자 하청업체 반장이 팀장과 심각한 얼굴로 상의하며 “오후 3시에 콘크리트 타설 감리 검사가 있는데 진행 속도가 나지 않아 큰일인데요”라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날 콘크리트 타설 검사를 못 하면 전체 공정이 하루씩 밀린다는 설명이었다.콘크리트는 빗물이 섞이거나 매우 추운 날 작업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콘크리트가 굳기도 전에 추위 탓에 얼었다가 기온이 올라간 뒤 녹는 현상을 ‘동결융해(凍結融解)’라고 한다. 콘크리트 속 수분이 얼면 그 부피가 9%가량 팽창한다. 이 얼음이 녹으면 콘크리트는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약해진다.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건설사, 시공사는 공기를 맞추려 공사를 강행한다. 수분양자들의 입주가 늦어지면 지연 비용은 고스란히 시공사 몫이기 때문이다. 철근공 김모 씨는 “위에서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해 빨리빨리 하라고 압박한다”며 “‘철근 한두 개쯤이야 빠져도 괜찮겠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고 했다. “월급쟁이 입장에서 뭘 어쩌겠어요.”● 부실 철근은 시멘트로 덮어… “저 말곤 몰라요”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부실시공하는 것을 넘어, 다 지은 아파트의 부실을 감추기도 한다.30년 차 방수 기능공 김용학 씨는 2023년 11월 충청 지역의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밖으로 돌출돼 심하게 휘어 있는 철근 더미를 한 작업자가 시멘트로 덮어 버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당시는 국토교통부가 현장 점검을 나오기 3일 전이었다. 이를 미리 전해 들은 건설사는 문제 부분을 재시공하는 대신에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 김 씨는 히어로팀에 “부실시공의 ‘마지막 증거’를 몰래 사진으로 남겨 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보강 공사 없이 시멘트로 덮은 철근은 나중에 부식돼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사람들은 번지르르한 겉모습만 보고 좋은 아파트라고 생각하면서 비싼 돈을 대출까지 끌어 지불해요. 하지만 이런 감춰진 부실이 있다는 건 저나 작업자 말고는 알 수 없죠. 공구리(콘크리트) 치면 결국 ‘진실’도 같이 묻혀 버리는 거니까요.”〈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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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는 것 거의 없는 4차 하청… 금 간 기둥 알면서도 썼다”[히어로콘텐츠/누락③-하]

    “모르는 척 균열이 있는 기둥을 그냥 박았습니다.”지난해 11월 아파트 건설소장인 정민호(가명) 씨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난 자리에서 울먹였다. 침묵 뒤에 나온 고백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말이었다.정 씨는 자신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균열이 간 기둥을 그냥 설치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원래대로라면 품질 문제가 있는 기둥은 돌려보내고 정상 기둥을 설치해야 하는 게 맞다”며 “그런데 원청에서 약속과 달리 돈을 다 떼어 가고 모른 척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미 제 돈으로 적자 메워 일하고 있었다”며 “올바른 기둥을 다시 받아서 설치하려면 손해가 너무 막심하니까 그럴 여력이 안 됐다”고 했다.불법 하도급 문제는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는 고질병으로 꼽힌다. 실제 투입되는 공사비가 줄어들면서 부실 공사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그 핵심에 불법 하도급 업체들이 있다. 히어로팀은 4차 불법 하도급사 직원이었던 정 씨와 서른네 번의 통화, 세 번의 대면 인터뷰를 거쳤다. 정 씨가 대기업 건설사부터 1차, 2차, 3차 하도급사들과 나눈 320건, 총 18시간 44분 분량의 통화 녹음을 모두 살펴봤다. 거기에는 불법 하도급이 초래한 아파트 부실 공사의 실체가 담겨 있었다.● 재하청도 불법인데 ‘4차 재하청’까지‘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불법 구두 계약에 공사대금 못받기 일쑤 1, 2, 3차 업체서 수수료 떼가면 발주액의 30% 쥐꼬리 공사비 남아“불량 자재 돌려보내는 게 맞지만기둥 운송비-추가 인건비 부담적자 보며 공사… 부실유혹 빠져”정 씨는 건설업 경력 30년 차 베테랑이다. 현재 경기 지역 모 아파트 건설 현장의 기둥 설치를 담당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대기업 건설사에서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받은 불법 하도급 업체다.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원칙적으로 ‘하청의 하청’, 즉 재하청(재하도급)은 위법이다. 그런데 그의 업체는 재하청도 아닌 네 번째 하청 업체였다.지난해 3월 정 씨는 한 건설업체 대표에게서 “아파트 기둥을 설치하고 3억7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해 보지 않겠냐”란 제안을 받았다. 건설업계가 불황인 데다 설치 공법도 어렵지 않아 일을 받았다.불법 하도급이었기 때문에 서면 계약서는 없었고, 모두 구두 계약으로 이뤄졌다. 물론 정 씨도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일하고 싶었지만 ‘계약서를 쓰자’고 말하는 순간 “너 말고 할 사람은 많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거리가 사라진다.정 씨 회사의 하도급 관계는 이러했다. 대기업 원청 종합건설업체 A사는 전문건설업체에 1차 하청을 맡겼다. 1차 업체는 2차 업체에, 2차 업체는 3차 업체에 맡겼다. 3차 업체는 정 씨 업체(4차 불법 하도급 업체)에 일을 줬다. 결국 일은 정 씨 회사가 하는데 앞의 업체들은 일을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떼어 간다.건설 현장에서는 정 씨를 ‘3차 업체’로 알고 있었다. 정 씨에게 일을 준 3차 업체 대표가 다른 업체에 재하청 사실을 알리지 않고 몰래 일을 줬기 때문이다. 3차 업체 대표는 정 씨와의 통화에서 “내가 하도급 줬다는 얘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정 씨도 익숙했다. “하루이틀 하나요. 걱정 마세요.”현장 출근 첫날,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사전에 구두로 계약한 기둥이 아닌 다른 시공 방식의 기둥을 설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설치가 훨씬 까다롭고 설치 비용도 1.5배가량 더 드는 방식이었다. “시공법이 다른 기둥인데 어떻게 된 겁니까.” 정 씨가 따졌다. “아, 그래? 잘못 알았나 보네.” 3차 업체 대표의 대답은 그뿐이었다. 이대로 공사를 맡으면 정 씨 회사가 오히려 손해를 볼 상황이었다. 정 씨는 “업계가 워낙 좁아 신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일을 하려면 ‘못 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추가 인건비 등 5000만 원가량을 손해 볼 상황이었지만 3차 업체는 달랑 1000만 원만 보전해 줬다.● 내려갈수록 공사비 줄어… 하자 있어도 방치정 씨는 일을 시작한 지난해 3월 초부터 5월까지 약 두 달 치의 ‘기성’(결제대금)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3차 업체는 기존에 없던 청구서를 내밀었다. 지난해 1, 2월 정 씨가 일을 맡기 이전에 다른 업체가 사용한 중장비 대여료 1800만 원을 정 씨에게 줄 돈에서 공제한다는 것이었다.정 씨는 참다 못해 2차, 3차 업체와 통화를 했다. “내가 일하기 전 다른 업체가 사용한 중장비 대여료를 왜 내가 내야 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두 업체의 공통된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1차 업체에도 연락했지만 “우리는 3차 업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이번 일로 공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순간에 다른 업체의 중장비 대여료를 ‘꼬리’인 정 씨가 떠안았다.그는 2024년 3월부터 지금까지 일한 돈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시공비, 인건비 등 받아야 할 돈만 7000여만 원인데 그중 5000만 원가량을 못 받았다. 3차 업체는 지난해 5월부터 지급을 미루고 있다. 전화 통화에서 3차 업체는 정 씨에게 “2차 업체가 돈을 안 주니 우리도 못 주는 거다. 2차도 돈이 없나 봐. 나도 집 내놨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2차 업체로 전화했다. 그러자 2차 업체는 “우리는 3차 업체에 돈을 지급했다. 3차는 소장님한테 돈 줬다고 하던데?”라고 했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대금을 못 받은 지 8개월째. 당장 협력업체에 줘야 할 대금 결제가 위태로웠다. 이미 정 씨 앞으로 날아온 내용증명도 한가득이었다.현장에서 공사를 직접 진행하는 정 씨에게 돈이 없으면 이는 자연스레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균열이 간 기둥 등 문제가 있는 요소를 확인하고 바로잡으려면 비용이 드는데, 그러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금이 간 기둥은 그대로 아파트에 설치됐다. 겉에 칠을 하고 외장재를 덮으면 수분양자는 기둥에 금이 갔는지, 하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말단 업체는 공사비의 30%만 가지고 시공”히어로팀은 ‘4차 하청’ 정 씨의 사례에서 계약서 미작성, 공사 대금 미지급 등 불법 하도급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위험은 이런 불법 하도급이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 씨도 “공사 대금을 주지 않아 기둥 운송비와 추가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며 “문제가 있는 기둥도 돌려보내지 못하고 그냥 설치한 것”이라고 고백한 이유다.취재 결과 2차, 3차, 4차 업체는 모두 불법 하도급에 해당했다. 대형 건설사가 전문건설업체(1차)에 기둥 설치 공사를 맡겼는데 허락 없이 2차, 3차, 4차까지 일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발주처 동의 없이 재하도급을 하거나, 하청 받은 공사 전체를 재하도급하면 불법이다.2차, 3차 업체는 현장에서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일정 부분의 공사 대금만 수수료로 챙겼다. 실제 공사를 맡는 마지막 업체를 제외한 중간 업체들이 일을 넘기고 돈은 받는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한 셈이다.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 업체는 전국에 1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불법 하도급 집중 단속 결과 현장 508곳 중 35.2%(179곳)에서 불법 하도급 업체가 적발됐다. 건설 현장 10곳 중 4곳은 불법 하도급 업체가 시공 중인 셈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하도급까지 포함하면 훨씬 높은 비율로 불법 하도급이 현장에 만연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법인 공정 황보윤 변호사는 “최종 하도급사에는 발주 금액의 극히 일부만 떨어지니 공사 비용을 맞추려 부실 공사 가능성이 커진다”며 “심지어 발주 금액의 30% 정도만 갖고 최하단 업체가 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https://www.donga.com/news/Series/70000000000703)[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영상: 김지희 안정용 PD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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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부 ‘부실시공 0건’ 오류 시인…“철근 누락 보고서 오판독”

    국토교통부가 2023년 10월 ‘부실시공 0건’이라고 발표한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중 1곳에서 시공 하자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앞서 같은 해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이후 국토부는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부실시공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시공 하자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24일 국토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이 해당 단지를 조사한 점검업체에 직접 확인한 결과 측정지점 1개소에서 시공 하자 우려가 있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료에 언급된 단지는 경기 A아파트로, 안전진단 보고서상 지하 주차장 천장 부근에서 철근 누락이 1건 확인됐다. 이후 입주민 측의 자체 조사 끝에 천장에서만 총 33개의 철근이 빠진 것이 뒤늦게 발견됐다(본보 24일자 A1면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A아파트 입주자협의회 측에 따르면 보고서상 철근 누락이 발견된 후 이를 국토안전원에 알렸으나 “오타일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입주자 측이 직접 조사 업체를 추궁한 끝에 철근 누락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에 국토부 측은 “국토안전원이 점검업체의 현장조사 보고서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보고서상의 탐사결과 사진을 오판독하여 초기에 잘못된 답변이 안내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국토부는 “국토안전원이 해당 내용을 (입주민 측에) 추가로 설명했다”며 “시공사가 하자보수 공사를 실시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A아파트 입주자협의회 측은 “국토안전원으로부터 ‘전수조사 대상은 전단보강근과 콘크리트 강도 뿐’이라는 해명만 들었다”고 반박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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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누락 알리자, 지자체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히어로콘텐츠/누락②-상]

    “검단 아파트처럼 무너진 건 아니잖아요?”지난해 1월 경기 A아파트에 사는 이동민(가명·입주자협의회장) 씨는 관할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통화하다 돌아온 답변에 말문이 막혔다. 앞서 이 씨는 A아파트의 국토교통부 안전진단 보고서를 받아 살펴봤다. 지하 주차장에 시공된 철근 개수가 도면보다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파트에 다녀간 국토부 정밀안전진단업체 관계자는 ‘화재 시 물을 가득 실은 소방차가 못 들어올 수도 있다’며 위험성을 구두로 경고했다. 이 씨는 사용 승인을 내어준 지자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별문제 없지 않냐’는 투였다. 국토부,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에도 전화를 걸었지만 “보고서가 오타일 거예요”란 답변이 돌아왔다. 부실 시공 가능성을 일축했다.그로부터 열 달 뒤인 11월 27일.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찾아간 이 씨의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 천장 전면 보수작업이 한창이었다. 입구에는 ‘보수 공사로 이용 불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사다리 사이로 인부들이 철근 누락 지점마다 보강 작업을 했다.이 씨는 철근 누락을 찾아내고 보강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 인식이 어떤 수준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씨의 아파트는 2023년 4월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같은 해 10월 국토부가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안전점검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문제없다’고 한 아파트 중 하나였다. 발표대로면 A아파트에 부실시공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이 씨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 민간전문업체와 시공사의 재조사 결과, 지하 주차장 철근이 33개나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시공사조차 부실을 인정했다. 이 씨는 “정부나 지자체의 말을 믿고 내 아파트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정부 발표에 대한 불안감과 의문점에서 시작해 홀로 ‘누락’을 추적해 온 지난 1년 4개월을 떠올렸다.“여기가 맨 처음 철근 누락이 발견된 기둥입니다.”지난해 11월 27일 경기 A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주자협의회장 이동민(가명) 씨가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한 기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니 말했다. 주차장은 2주 전부터 철근이 누락된 자리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탄소보강섬유를 덧대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존 천장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보강섬유를 시공했다. 누락된 철근 33개를 대신해 건물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누락’을 찾아내기 위해 홀로 정부, 지방자치단체와 맞서 고군분투한 1년 4개월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화재 때 소방차가 못 들어올 수도 있어요”〈의심〉“주차장 하중 계산 잘못, 붕괴 위험”구조기술사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국토교통부의 민간 무량판 아파트 1차 조사(설계 도면 검증) 직후였던 2023년 8월 16일. A아파트를 조사하러 온 건축구조기술사는 도면을 살펴보더니 이 씨와 입주민들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지하 주차장의 하중(무게) 계산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는 “물을 가득 실은 소방차가 주차장 위 1층에 진입하면 붕괴 위험이 있을 수 있다” “20층 이상 건물은 불이 나면 소방굴절사다리차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 차가 무겁다. 이 아파트는 그 차가 못 들어올 구역들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씨와 입주민들은 가슴이 철렁했다.3주 뒤 국토부 2차 조사(주차장 전단보강근 조사)가 시작됐다.마침 지자체에서 아파트 사용승인을 담당하는 책임자가 현장에 온 것을 본 이 씨는 다급하게 다가가 설명했다. “전문가가 말하는데 여기 붕괴 위험 때문에 소방차가 못 들어올 수도 있답니다. 불나면 고층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좀 해주세요.” 이를 들은 책임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분(구조기술사)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거예요. 아니 진짜 설계 문제가 있었다면 아파트 사용승인이 안 나왔겠죠.” 말이 안 통하자 이 씨는 현장에 온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 수도권지역본부장에게도 다가갔다. “여기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데요. 어떡합니까.” 이를 들은 본부장은 이 씨를 안심시키듯 “아 네네, 주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곤 자리를 떴다. 이후 그는 소식이 없었다. 이 씨의 우려는 점점 절박함으로 변해갔다.●‘부실시공 없다’는데 보고서가 이상하다〈누락〉국토부 조사 “문제없다”지만 찜찜보고서 뒤져보니 ‘철근 부실’ 명확두 달 뒤인 10월 23일, 국토부는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조사 결과 부실시공 없어’라는 발표를 했다. 그때까지도 A아파트 조사 결과는 이 씨에게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씨는 관할 지자체에 아파트 조사 보고서를 요구했지만 ‘우리도 없다’는 답변이 왔다. 국토부는 여전히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씨는 재차 지자체에 보고서 입수 방법을 수소문했고, 이에 지자체 주무관이 업체에서 보고서를 받아 이 씨에게 건네줬다.마침 같은 아파트에 건설 전문가가 살고 있었다. 이 씨는 그와 함께 국토부 보고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구조도면은 구조계산서와 일치한다. 구조체 보강공사는 필요 없다….’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가던 와중에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설계도면에는 천장 주철근(건물을 지탱하는 직선 모양의 핵심 철근) 시공 간격이 165mm였다. 그런데 조사업체가 측정한 실제 간격은 320mm였다. 간격이 약 2배였다. 이 씨와 함께 보고서를 분석한 전문가가 “이건 중간에 박혀 있어야 할 철근이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그런데 국토부 보고서 말미의 철근 탐사 결론은 ‘적정’(문제 없음)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거짓이다.’●“오타”라는 국토부-“안 무너졌잖아”란 지자체〈방관〉누락 찾으려 1년4개월 고군분투국토부도 지자체도 ‘나몰라라’만이 씨는 보고서에서 찾아낸 문제를 국토부, 국토부 산하 국토안전원에 알렸다. “아 그거, 아마 오타일 거예요 오타.” 허무한 답변이 돌아왔다. 믿을 수 없었던 이 씨는 조사업체에 직접 연락해 “철근이 누락된 게 맞습니까. 국토부는 오타라고 합디다” 하고 물었다. 업체는 이틀 뒤 고심 섞인 답변을 보내왔다. “엔지니어의 양심으로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오타가 아닙니다.” 국토부 해명과 달리 철근이 누락됐다는 말이었다. 국토부 보고서의 결론이 거짓이었고, 국토부의 해명도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동시에 ‘우리 아파트가 정말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국토안전원에 이 사실을 알리자 국토부는 바빠졌다. 내부 회의를 거치더니 ‘우리는 전단보강근, 콘크리트 강도를 조사했지 천장 주철근은 조사하지 않았다. 천장 주철근이 없는 건 맞지만 우리 판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주철근은 조사를 안 했으니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불과 두 달 전 ‘부실시공은 없다’고 발표한 것과는 다른 태도였다.2023년 7월 31일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천장의 판, 바닥이자 천장을 이루고 있는 이 판에 여러 층으로 철근이 가로세로로 다 들어가 있다. 그것을 빼먹은 것이라면 우리나라가 정말 대한민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철근을 빼먹으면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그 주철근이 이 씨의 아파트에는 빠져 있었다. 이 씨는 “본인들(국토부)이 철근 누락 사실을 문서에 써놓고, 전단보강근만 조사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건 궤변 아니냐”고 말했다.●“아파트가 무너져야 공무원들이 후회할까요”〈인정〉철근 33개 누락 확인 후 보강공사“우리 아파트는 운이 좋았어요”정부와 지자체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A아파트는 결국 지난해 2월부터 민간 안전진단업체를 선정해 넉 달간 재조사를 진행했다. 시공사, 국토부의 간섭을 우려해 일부러 지방 업체를 골랐다. 이 업체가 철근 탐사 장비로 지하 주차장의 천장을 검사한 결과 철근 2000여 개 중 총 33개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공사도 와서 살펴본 뒤 자신들의 부실시공을 인정하고 보강 공사비를 전액 지불했다.이 씨는 히어로팀에 “우리 아파트는 운이 좋았다”며 “국토부 보고서에서 철근 누락 1개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단순 오타라는 말을 믿었다면 계속 안전하다고 믿고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철근 누락은 오타가 아니라 진짜라고 알려준 조사업체의 양심고백 덕분에 보강공사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국토부가 ‘부실시공이 없다’고 밝힌 아파트는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427곳(준공 기준 288곳) 전부다. 이 씨는 “우리 아파트처럼 철근이 빠진 아파트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 씨처럼 철근 누락을 직접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일부 아파트는 국토부에 조사 보고서 공개를 요청했지만 ‘영업상 비밀침해’를 이유로 비공개 처리됐다.이 씨는 국토부와 지자체가 문제를 외면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검단 아파트처럼 또 다른 아파트가 무너진 뒤에야 정부가, 공무원들이 후회할까요?”〈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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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절반 빠진 20층 건물, 지진 7초만에 S자로 휘며 바로 붕괴[히어로콘텐츠/누락②-하]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아파트 철근 누락과 부실시공 문제를 취재하는 7개월여 동안 건설 현장 안팎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철근 몇 개 빠져도 안 무너져요”였다. 반면 앞서 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건의 핵심 원인은 전단보강근 누락, 즉 철근 누락이었다. 일각에서는 건설 현장의 느슨한 안전 인식이 실제 사고로 이어진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히어로팀은 철근 누락이 건물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내진 및 구조설계 전문업체인 ‘SH구조엔지니어링’의 정승열 대표와 함께 일주일간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했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 ‘1세대 내진 설계 전문가’로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구조 설계에 참여했다. 시뮬레이션에는 미국 CSI(Computer and Structures Inc.)사의 ‘퍼폼3D’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내진 설계에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그램이다.히어로팀은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난 상황을 가정했을 때 철근 시공 상태가 건물 붕괴에 미치는 영향을 3차원(3D) 시뮬레이션으로 알아봤다.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사례를 감안했다. 국내 언론에서 부실시공과 지진, 아파트 붕괴 사이의 연관 관계를 검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철근 24% 빠진 건물, 지진 24초 뒤 와르르높이 80m 빌딩에 규모 6.7지진 가정철근 100%땐 흔들리다가 중심 회복“철근 부족하면 하부 벽부터 타격한순간에 무너지는 ‘취성파괴’ 발생”평상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부실시공 부분이 ‘시한폭탄’ 작용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리히터 규모 3.0 이상의 지진은 2021년 5회, 2022년 8회, 2023년 16회 발생하며 점점 늘고 있다. 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에서 규모 5.1∼5.4 지진이 발생했을 때 포항에서만 총 754개 주택이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아파트 등 7곳은 기둥이 건물을 버틸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돼 철거 판정을 받았다. 2011년 준공된 4층 규모 건물은 기둥 8개 중 3개가 주저앉았는데 기둥 속 철근이 절반가량 빠져 있었다.이를 감안해 히어로팀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서울에 있는 높이 80m(지하 1층∼지상 20층) 빌딩’을 가상 설계했다. 일반 아파트로 치면 30층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에 규모 6.6∼6.7 지진 상황이 발생했을 때 건물이 버틸 수 있는지 검증했다.히어로팀은 건물에 시공된 철근량을 100%(정상 시공), 76%, 57%로 바꿔가며 지진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알아봤다. 공사 현장에서 실제 사용되는 철근 지름은 보통 25mm, 22mm, 19mm인데 이를 반영했다. 특히 자재비를 아끼기 위해 값비싼 굵은 철근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값싼 가는 철근을 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감안했다. 인장력(잡아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은 건물이 기울거나 휘어도 곧바로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콘크리트는 적정 강도인 35MPa(메가파스칼)로 시공됐다고 가정했다.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철근 100% 시공’ 건물은 지진이 일어나자 아래쪽부터 물결치듯 흔들렸다. 이후 한쪽으로 기울다가도 ‘오뚝이’처럼 중심을 회복했다. 60초간 지진이 계속됐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최종적으로 ‘안전’ 판정을 받았다.그다음은 ‘철근 76%만 시공’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지진이 시작된 뒤 24초 만에 폭삭 무너졌다. 처음에는 건물 전체가 조금씩 흔들리더니 15초가 지나자 건물 맨 아래 벽부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건물 전체가 왼쪽으로 기울며 무너졌다.마지막으로 ‘철근 57% 시공’ 건물을 시험했다. 실제 공사 현장에서 아파트 전체 철근의 절반을 빼먹는 사례는 매우 드물 것으로 보이지만 철근 누락의 위험성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실험이었다. 이 경우 건물은 지진 시작 7초 만에 매우 빠르게 무너졌다. 지진 직후에는 미동도 없다가 갑자기 S자형으로 크게 휘더니 순식간에 무너졌다.히어로팀과 함께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정 대표는 “철근이 부족하면 건물 아랫부분 벽부터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고 결국 한순간에 무너지는 ‘취성파괴’(한계 이상의 충격이나 무게가 가해지면 물체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급속도로 부서지는 현상)가 발생한다”고 했다.●지진 아니어도 부실은 위험… 건물 한계 넘어서히어로팀은 지진 등 대재난이 아닌 일상 상황에서 철근 누락과 부실시공이 건물에 미치는 위험성도 함께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먼저 철근과 콘크리트가 모두 100% 설계대로 잘 시공됐을 경우에는 건물의 내력비가 ‘0.743’으로 나타났다. ‘내력비’란 건물이 최대한으로 버틸 수 있는 무게와 현재 가해지는 무게 사이의 비율이다. ‘내력비 0.743’은 ‘건물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 힘의 74.3%만 쓰고 있다’는 뜻이다. 나머지 25.7%는 일종의 ‘남는 힘’이다. 지금보다 25% 더 무거운 무게가 가해져도 건물이 버틴다는 뜻이다.철근량을 56%로 줄여 봤다. 그러자 천장을 받치는 긴 형태의 ‘보’와 기둥 철근 내력비가 모두 1을 넘어섰다. 버틸 수 있는 한계치보다 더 많은 무게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실제 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한 무게가 추가된다면 붕괴 가능성도 높다. 특히 보는 내력비가 1.63까지 치솟았다. 실제 상황이라면 해당 건물은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계획에 없는 조경 공사로 흙더미 무게가 더해지거나 하는 상황에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정 대표는 “부실시공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며 “지진 같은 극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철근이 많이 빠지면 부실시공 부분에서 문제가 터져 건물 전체로 연쇄 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美마이애미-검단 주차장 붕괴 원인도 철근외국에서도 철근 누락이 실제 붕괴로 이어진 사건이 있다. 2021년 6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 서프사이드에서 12층짜리, 136채 규모의 아파트 ‘챔플레인 타워스 사우스’가 무너져 98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입주민들이 잠든 새벽에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아파트가 무너졌다. 마치 팬케이크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붕괴돼 ‘팬케이크 붕괴’라고도 불렸다.지난해 3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발표한 ‘사고 예비 조사 보고서’에는 최초 붕괴 지점인 주차장 쪽 기둥의 철근이 일부 누락됐을 가능성이 담겼다. 설계도면에 따르면 기둥과 1층 로비 바닥을 연결하는 철근이 총 8개 들어갔어야 했는데 실제로 보니 절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철근 부실시공이 붕괴로 이어진 적이 있다. 2023년 4월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현장을 조사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일부 지점에 전단보강근이 미설치된 곳들이 발견됐다. 1995년 6월 29일 벌어져 500명이 넘게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역시 가격이 비싼 L자형 철근을 써야 할 자리에, 저렴한 I자형 철근을 쓴 것이 붕괴의 한 원인으로 밝혀졌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하려면 설계대로 철근과 콘크리트를 시공하는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번 시뮬레이션은 철근 누락과 건물 붕괴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첫 사례”라며 “실험 결과는 대부분 고층 아파트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철근이 조금이라도 빠지면 보강 공사로 구조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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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부 “문제없다” 덮었는데, 보고서엔 11곳 ‘철근-콘크리트 부실’[히어로콘텐츠/누락①-하]

    288곳중 철근 1개 이상 누락 8곳3곳은 콘크리트 강도 부적합 판정전단보강근 ‘간격 미흡-누락’ 확인돼도정부, 전문가 내세워 “그래도 안전”조사방식도 ‘정밀→신속’으로 바꾸고기둥 주철근 조사 빼 ‘답정너 진단’2023년 10월 23일 국토교통부는 “입주민이 직접 입회한 가운데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며 ‘민간 무량판 구조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부실시공은 없다’고 발표했다. 총 427곳(시공 중 139개, 준공 288개) 무량판 아파트를 전수 조사했는데 철근 누락 등 부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히어로팀은 국토부 발표에 의문을 품고 준공을 마친 288곳의 국토부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국토부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보고서로 총 1102쪽 분량이다. 이를 건축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정밀 분석한 결과, 보고서에 담긴 아파트들 중 최소 11곳(3.8%)에서 부실이 발견됐다. 8곳은 ‘철근 누락’이 있었고, 3곳은 콘크리트 강도가 법적 최소 안전 기준(85%)보다 낮았다. 부실이 없다던 국토부 발표와 달랐다.● 철근 빠졌는데 국토부는 “누락 0건” 발표국토부의 G아파트 조사보고서에는 총 10곳의 철근 조사 구역 중 1곳에서 ‘전단보강근을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전단보강근은 기둥이나 벽체가 천장, 바닥과 연결되는 부위를 잡아주는 철근이다. 당시 조사를 수행한 안전진단업체는 ‘도면에는 전단보강근이 표기돼 있지만, 현장조사에서는 철근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어놨다. 도면에 있는 철근이 실제로는 없다는 뜻이다.H아파트 국토부 보고서에는 철근 조사가 실시된 4개 구역 모두에 ‘부적정’ 판정이 적혀 있었다. 도면대로면 10cm 간격으로 설치해야 할 철근이 실제로는 20cm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다는 것. 철근 절반을 빼먹은 셈이다. 해당 조사 업체는 “전단보강근이 일부 누락됐거나 시공 간격이 미흡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남겼지만, 국토부의 공식 발표에 전혀 없었다. 그 대신 국토부는 보고서에 ‘그래도 안전하다’는 취지의 전문가 자문단 의견을 넣어놨다. 해당 자문단은 “천장(슬래브)이 충분한 강도를 확보하고 있어 전단보강근 시공이 더는 필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게재했다.히어로팀은 위 보고서들을 전문가들에게 가져가 검증을 의뢰했다. 보고서를 살펴본 홍건호 호서대 건축공학부 교수(전 검단사고조사위원장)는 “철근을 설계와 달리 빠뜨렸다면 수분양자에 대한 계약 위반”이라며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보수, 보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콘크리트, 설계 강도의 76%에 그쳐보고서에는 2023년 국토부가 조사한 아파트 288곳 중 16곳의 콘크리트 강도가 설계 기준(100%)에 미달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중 3곳은 시설물특별법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하면 ‘부적합 구조물’에 해당됐다. 콘크리트 설계 강도가 85% 미만인 경우가 부적합 구조물이다. 콘크리트 강도가 76.7%에 불과한 I아파트도 있었다. 참고로 2023년 붕괴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경우 콘크리트 강도가 70.4%에 불과한 구역도 있었다. 김강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한국콘크리트학회 부회장)는 히어로팀에 “85% 미만인 구조체는 품질 저하로 구조적 보수나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 외에도 국토부 보고서에는 전단보강근이 제대로 시공됐는지 불분명해 ‘보류’ 판정이 내려지거나, 조사 자체를 못 한 아파트도 16곳 있었다. 부실 여부 자체를 아예 파악하지 못한 곳들이다. J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11개 구역 중 7곳에서 ‘전단보강근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판정 보류다.● 부수지 않으면 정확히 확인 어려운 전단보강근히어로팀이 한국콘크리트학회에 이 같은 국토부 보고서 내용을 검증 의뢰한 결과 “전단보강근은 철근 탐사 장비로 탐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파괴 철근 검사기로 겉면을 훑는 식으로는 제대로 검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전단보강근은 천장과 기둥의 철근을 엮어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전단보강근이 매립된 천장 부분을 비파괴 철근 검사기로 훑으면 철근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점’만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철근에 가려져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히어로팀은 국토부 보고서에 ‘전단보강근이 설치됐다’고 적혀 있는 아파트 3곳의 조사 보고서를 전문가들에게 검증 의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히어로팀에 ‘판독 불가’라는 결론을 전달해 왔다. 안전진단업체인 황두엔지니어링 이우진 대표는 “(국토부가) 전단보강근이 설치됐다고 판정한 일부 보고서 내용을 살펴봤는데, 저라면 철근이 설치됐는지 안 됐는지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4개월 필요한 조사가 2개월에 끝나”정부가 발표 데드라인을 미리 정한 뒤 기한에 맞추려 조사 방식을 축소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7월 31일 국토부에 조사를 지시했고, 일주일 뒤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은 한국시설안전협회와 회의를 열어 논의했다. 여기서 8가지 이상 방식으로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두 달 내 끝내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협회는 4개월가량 필요하다며 기한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협회 관계자는 “그러자 용산(대통령실)과 행정부(국토부)에서 두 달 안에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며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것만 하면 (두 달 내) 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결국 국토부는 조사 기간을 두 달로 맞추려 조사 항목을 4개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기둥, 벽체의 주철근 조사 등은 생략됐다.전문가들은 촉박한 조사 기간과 축소된 조사 방식이 부실 조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안전진단업체가 아파트 전수조사 현장에 인력을 실제 투입한 기간은 9월 1∼25일로 25일에 불과했다. 주영규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전 검단사고조사위원)는 히어로팀에 “안전진단업체가 제대로 조사하려면 한 단지에 ‘올인’해도 최소 3개월은 필요하다”며 “근본 원인들을 조사하지 않고 발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안전관리원에서 추가 검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문제없음’을 확인했다”면서도 “저희는 2개 항목(전단보강근 유무, 콘크리트 강도)만 안전점검을 했기 때문에 아파트 전체가 100% 자신 있게 부실시공이 없다고 말씀드릴 사항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사 일정 축소에 대해선 “LH 아파트 조사와 동일하게 진행했으며 (축소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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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근 8개 있어야할 기둥, 실제론 4개밖에 없었다[히어로콘텐츠/누락①-상]

    지난해 11월 경기 A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각기둥 한 곳 표면에 비(非)파괴 철근 검사기를 갖다 대고 왼쪽부터 천천히 훑었다. 검사기 액정 화면에 ‘철근’을 나타내는 파란 수직선이 하나씩 나타났다. 총 4개. 표면에서 깊이 3cm 안에 철근 4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8개여야 하는데 4개가 안 보이네요.” 설계 도면대로면 철근은 8개여야 했다. 기둥의 다른 3개 면도 검사기로 훑었다. 그 결과 기둥 속에 있어야 할 주철근 총 24개 중 12개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과 검사에 동행한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전공 객원교수는 “기둥이 잘못 설치됐다”고 말했다.2023년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뒤 국토교통부는 같은해 10월 23일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427곳(시공 중 139곳, 준공 288곳)을 2개월간 전수 조사한 결과 ‘철근 누락 등 부실 시공이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토부는 결과만 발표하고 아파트 명단, 세부 안전진단 결과는 비공개에 부쳤다.아파트는 한국인에게 ‘집’을 넘어 재산 대부분이자 정체성이다. 한국인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정부 발표대로 우리 아파트는 안전할까. 검증이 필요했다. 히어로팀은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1102쪽 분량(준공 288곳)의 무량판 아파트 안전진단 보고서 전체를 입수해 전문가들과 수개월간 분석했다. 철근 누락 8곳, 콘크리트 강도 미달 3곳 등 최소 11곳에서 부실이 발견됐다.히어로팀은 아파트를 직접 찾아가 조사했다. 국토부 조사팀이 다녀갔던 아파트 중 히어로팀이 설계도면을 확보한 21곳을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에 걸쳐 조사했다. 국토부가 사용한 장비와 똑같은 전문장비로 지하주차장 기둥 총 850여 개를 조사하고, 문제가 있는 곳은 전문가와 함께 찾아가 재검증했다. 그 결과 9개 단지(43%) 기둥 25개에서 철근 누락을 발견했다. 도면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누락된 철근은 총 60개였다.히어로팀은 더 나아가 아파트의 ‘뼈대’인 철근이 어떻게, 왜 누락되는지 이유를 취재했다. 철근이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봤다. 이를 위해 붕괴 위험을 3차원(3D) 시뮬레이션으로 실험하고 건설 현장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근로자, 감리, 구조기술사 등 182명은 ‘누락’의 실체를 털어놨다. 이 기획은 그간 7개월을 담은 ‘부실과 누락에 대한 보고서’다.“이곳 지하 주차장은 여러 종류의 기둥들이 모여 있어 복잡합니다. 시공자가 헷갈려 설계도면과 다른 기둥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최 교수는 도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주철근 절반이 빠진 기둥의 주변에는 다른 종류의 기둥이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최 교수는 “이 기둥은 공장에서 철근을 모두 넣은 완제품을 현장에서 설치한 방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도면 속 기둥과 실제 설치된 기둥은 철근 개수가 달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최 교수와 함께 부실 기둥의 위쪽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1층에 가 보니 비상시 소방차가 다니는 보행자 통행로가 있었다. 최 교수는 “만약 고층 건물 아랫부분이었다면 하중이 커 위험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1곳 아파트 중 9곳 철근 누락주철근은 건물을 지탱하는 여러 소재 중 콘크리트와 함께 가장 중요한 ‘뼈대’ 역할을 한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전단보강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부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주철근은 건물 무게를 직접 지탱한다. 건물의 붕괴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부위지만 정작 국토부 조사에서는 대상에서 빠졌다.히어로팀은 지난해 5개월간 전국 5개 시도의 21개 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기둥의 주철근 시공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9개 단지에서 주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기둥 숫자로는 총 850여 개를 조사했는데 그중 25개(약 3%) 기둥에 철근 총 60개가 빠져 있었다.경기 B아파트 주차장에선 기둥 30개 가운데 6개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기둥 1개당 적게는 1개, 많게는 5개의 철근이 빠져 총 17개 철근이 빠졌다. 그 위에는 어린이집, 상가 등이 있었다. 이곳의 주차장 도면을 보면 크게 두 종류의 기둥이 설치됐다. 한 종류는 사각 기둥의 한 면에 철근 3개씩, 다른 종류는 5개씩 들어갔다고 도면에 쓰여 있었다. 3개씩 들어가는 기둥이 전체 기둥 139개 중 94개(68%)였다. 이들은 철근에 문제가 없었다. 반면 철근이 5개씩 들어가야 할 기둥에서는 누락이 발견됐다. 현장을 동행한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장(건축구조기술사)은 “5개씩 철근이 설치돼야 할 기둥에도 3개씩만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전남 C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연속된 기둥 3개 전부 철근이 2개씩 빠져 있었다. 대구 D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는 기둥 3개에서, 대구 E아파트에서는 기둥 5개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전남 F아파트에서는 기둥 콘크리트 밖으로 철근 일부가 튀어나와 있었다. 부식의 위험이 커 보였다.● 철근 1개=사무실 하나 버틸 힘… “1개라도 누락 땐 보강해야”철근 24개중 절반 12개 빠진 기둥도1개 빼면 사무실 하나 버틸 힘 사라져“하나쯤 괜찮겠지 관행이 붕괴 불러무게 버틸 수 있게 반드시 보강해야”히어로팀은 현장에서 얻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구조설계 전문업체 ‘한구조엔지니어링’에 분석을 의뢰했다. 철근이 빠진 기둥은 무게를 버티는 힘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분석 결과 A아파트 기둥(철근 24개 중 12개 누락)이 설계대로 시공됐을 경우 견뎌낼 수 있는 무게는 약 300t이다. 하지만 철근 누락 시공 탓에 지탱 한계가 4분의 3인 226t으로 줄었다. 철근 총 20개 중 2개가 빠진 B아파트 기둥이 견딜 수 있는 최대 무게는 294t이다. 철근 20개를 모두 넣었더라면 306t까진 버틸 수 있었다. 이길림 한구조엔지니어링 이사는 “B아파트 기둥의 경우 철근이 하나 빠지면서 사무실 하나 정도(㎡당 350kg)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기둥뿐 아니라 천장에도 주철근이 빠졌다면 어떤 영향이 있을까. 천장 철근을 5개에서 4개로 줄였다고 가정해 분석하자 ‘부적격 건물’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기둥 철근이 빠졌을 때보다 영향이 컸다.아파트 설계 및 시공에는 ‘안전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버틸 수 있는 최대 무게를 실제 가해지는 무게로 나눈 숫자. 안전율이 1보다 낮으면 붕괴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구조기술사들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대비해 안전율에 1.2∼1.5배 이상의 여유분을 두고 건물을 설계한다. 철근 10개가 필요한 지점에 12∼15개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 2개가 빠져도 당장 붕괴가 일어나진 않는다.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철근 누락 지점을 반드시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감정인(건설) 오석진 진이엔씨 대표는 “신차 타이어 부품 1개가 없어도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 아파트도 같다”고 말했다. 구조설계전문업체 정승열 SH구조엔지니어링 대표는 “철근 한 개라도 빠지면 그만큼 무게를 버틸 여유가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최근 건설 현장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밸류엔지니어링(VE)’이 확대되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율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1.5배 이상 두던 안전율을 1에 가깝게 타이트하게 수정하는 식이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시공 관리 감독 역량이 떨어진다”며 “무턱대고 안전율만 타이트하게 가져가면 붕괴 위험만 높아지는 꼴”이라고 했다.● “철근 하나쯤이야 관행 계속되면…”지난해 9월 서울 구로구의 공사 현장에서 만난 신상준 철근소장은 “철근이 빠져도 콘크리트에 묻히고 나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철근 하나쯤은 빼먹어도 괜찮을 것. 모를 것”이라는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게 현장 이야기다. 철근 탐사를 마친 안 전 학장은 이 같은 업계 관행에 대해 “설마 하며 넘어갔던 안전불감증 끝에 발생한 사고를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하냐”라며 ‘하인리히 법칙’을 예로 들었다. “330번 중앙선을 침범하면 300번은 문제가 없고 29번은 경미한 사고, 1번은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는 게 하인리히 법칙입니다. ‘철근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관행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대형 붕괴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히어로팀 어떻게 조사했나국토부 쓰는 장비로 기둥 1개당 30번 이상 주철근 탐지히어로콘텐츠팀은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자기장 활용 비(非)파괴 검사 장비로 조사 대상 아파트 기둥과 철근을 탐사했다. 콘크리트를 깨부수지 않고 철근 시공 유무를 검사할 수 있는 유일하고 검증된 방식이다. 히어로팀은 리히텐슈타인 ‘힐티’사의 최신 철근 탐지기인 ‘PS(페로스캔) 300’ 모델을 사용했는데, 국토교통부 전수조사 시행 당시 조사업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장비다. 기자들은 서울 송파구 힐티코리아 본사에서 전문가에게 장비 사용 교육도 받았다. 이 장비는 콘크리트 깊이 최대 20cm 안까지 철근 확인이 가능하다.히어로팀은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나의 기둥당 위, 중간, 아래 부위를 총 30회 이상씩 검사했고 전문가와 동행해 재검증을 받았다. 결과 데이터는 건축구조기술사 등에게 의뢰해 다시 검증을 받았다.국토부는 2023년 조사 당시 철근 중 ‘전단보강근’을 조사했는데 이 철근은 기둥과 천장, 바닥의 연결 지점에 묻혀 있어 검사 장비로는 제대로 탐지가 안 된다. 전문가들은 “콘크리트를 부수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파괴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전단보강근은 외부에서 장비로 검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철근들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판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히어로팀은 이런 점을 감안해 기둥에 수직으로 설치되는 ‘주철근’을 탐사했다. 건물의 붕괴를 막는 데 있어 전단보강근보다 훨씬 중요한 핵심 부위가 주철근이라는 점, 외부에서 장비로 탐지하기가 매우 쉽고 빠르다는 점, 검사 결과가 정확히 나온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히어로팀은 철근 누락이 발견된 아파트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입주민 등에 재산상 피해를 줄 수 있는 점, 특정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 아파트의 문제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히어로콘텐츠팀 ‘누락’ 시리즈 모음〉()[④-상] “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 [④-하] “조경비용 늘면 철근서 빼…‘쪽대본 드라마’ 찍듯 아파트 지어”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 공개됩니다.▽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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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가정 양립 제도 효과… 여성 경력단절 줄고 남녀 고용률 격차 완화

    최근 10년간 전체 연령에서 여성 고용률이 상승하고 남녀 고용률 격차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대 여성의 경력 단절이 크게 완화됐고 일을 하지 않는 여성 비경제활동인구도 줄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여성가족부와 함께 국내 여성들의 경제 활동 변화를 담은 ‘2024년 여성경제활동백서’를 발간했다. 백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여성 취업자는 1246만4000명으로 고용률은 54.1%였다. 2013년(48.9%) 대비 5.2%포인트 올랐으며 직전 해(52.9%)보다 1.2%포인트 상승했다. 남성 고용률은 71.3%로 남녀 간 고용률 성별 격차는 17.2%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남녀 간 고용률 격차는 여성의 고용률이 10년째 꾸준히 올라 2018년 20%포인트 미만으로 낮아지는 등 격차를 좁혀 오고 있다. 2013년과 비교할 때 경력 단절이 시작되는 나이인 30∼34세(14.6%포인트 상승)와 55∼59세(11.3%포인트 상승) 연령층에서 고용률 증가 폭이 컸다. 10년 새 경력 단절이 주로 시작되는 연령대에서 고용률이 증가한 이유는 여성의 경력 단절 예방 및 일-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 개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고학력(전문대 졸업 이상) 여성 고용률 역시 68.2%로 전년 대비 1.3%포인트 올랐다. 2023년 전체 연령대 여성 경력 단절자 규모도 134만9000명으로 전년 대비 3.4%(4만8000명) 감소했다. 2014년 전체 여성 경력 단절자 규모는 216만4000명이었는데 9년간 여성 경력 단절자 규모가 꾸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여성 실업자는 전년 대비 3만2000명 줄어 35만3000명이며 실업률은 0.3%포인트 감소한 2.8%다. 여성 비경제활동인구 역시 2020년 이후 감소세인데 2023년 기준 1022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21만4000명 줄었다. 여성이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가사(56.3%·576만1000명)가 가장 많았다. 2023년 시간당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의 비율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경력 단절 여성 규모는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성별에 따른 고용 격차가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여전히 크게 나타났다. 여성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남성의 71% 수준으로 분석됐다. 여성 근로자(정규직, 비정규직)의 2023년 시간당 평균 임금은 1만8502원, 월 임금은 278만3000원으로 조사됐다. 남성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2만6042원, 월 임금은 426만 원이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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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팡 기사, 근로법상 근로자 아냐”… 노동계 “불법 경영 면죄부 준 격”

    심야 배송을 하던 정슬기 씨는 지난해 5월 경기 남양주시 자택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정 씨의 유족은 “높은 강도의 육체적 업무와 정신적 부담, 누적된 과로로 숨졌다”고 했다. 고인은 평소 오후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하루 약 10시간 30분 일했고 주 6일에 주 평균 노동 시간은 63시간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정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쿠팡CLS)에 대해 실시한 3개 분야의 종합 근로감독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3개 분야는 산업안전보건 기획 감독, 기초노동질서 감독, 배송기사 불법 파견 감독이다. 고용부는 “쿠팡 배송기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업규칙-복무규정 등 적용받지 않아” 쿠팡 배송기사들은 현재 택배 영업점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개인사업자다. 하지만 정 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쿠팡CLS의 지휘와 감독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법 파견 의혹이 일었다. 노동계는 산업재해 등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사업자’인 쿠팡 배송기사들을 사실상 파견 형태로 고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2023년 10월 경기 군포시 주택 복도에서 60대 쿠팡 배송기사가 숨진 채 발견되자 쿠팡은 “배송기사는 쿠팡 직원이 아니라 전문 배송업체와 계약한 개인사업자”라고 밝혔다. 고용부는 쿠팡CLS 본사, 11개 배송캠프, 34개 택배 영업점 등을 대상으로 배송기사들이 실제 근로자인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137명을 대면 조사했고 최근 1년간 배송기사 1245명의 SNS 내용을 분석했다.조사 결과에 따르면 배송기사들은 본인이 소유한 배송차량을 본인이 직접 관리하며 제품을 배달했다. 배송 업무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었고 개인의 재량에 따라 입차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으며 배송을 마치면 업무가 종료됐다. 쿠팡CLS나 영업점에서 별도 지시를 받지 않았으며 취업규칙과 복무규정 등도 적용받지 않았다. 급여도 고정된 기본급이 없이 배송 수량에 따른 수수료 형태로 받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배송기사들의 SNS 내용을 분석해 봤더니 배송 확인이 90%, 배송 독려가 9.6%, 기타 내용이 0.4%였다”며 “배송 독려나 지원 요청 등이 일부 업무 지시의 성격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화물 배송 준수 독려는 화물 운송 계약을 고지하는 것이라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말했다.● 야당-노동계 “불법 경영에 면죄부” 주장 고용부의 발표에 택배기사들은 반발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논평을 통해 “과로사 원인 규명과 해법 마련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과 다름없다”며 “택배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보다 법과 제도적 보장이 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점을 분명히 해 고용부가 자신의 책임을 덜어내는 꼴이 됐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열악한 쿠팡의 노동 현실을 은폐하고 쿠팡에 면죄부를 줬다”며 “고용부가 택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 했다면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이라는 고용 형태의 한계와 별개로 최대한 실효적인 근로감독을 했어야 했다”고 했다.국회에서도 고용부의 근로감독을 비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근로감독 결과 어디에도 배송기사들의 야간 노동 시간과 강도를 조사했다는 내용이 없다”며 “임금 착취이자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 되는 상차 분류 작업에 대해서도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 분류 작업이 업무 과중 요인일 뿐 문제가 없다는 쿠팡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고 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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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메프 사태’에 국가가 대신 지급한 체불임금은 80억 원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사와 관련해 지급된 실업금여와 대지급금이 1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20일 고용노동부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큐텐코리아 및 계열사 관련 실업 급여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7월 7일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큐텐코리아과 계열사에 지급된 실업급여는 35억9000만 원이었다. 신청자는 954명으로 이중 943명이 수급대상으로 선정됐다.티몬·위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는 지난해 7월 발생한 e커머스 정산 대금 미지급 사태로 큐텐그룹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결제대금 정산 기간을 이용한 ‘판매 대금 돌려막기’ 등으로 발생했다.지난해 말 기준 큐텐 계열사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에 대해 대지급금을 받은 근로자는 1176명(중복인원 포함)으로 집계됐다. 대지급금 총액은 80억여 원으로 체불 근로자 80명에 대한 생계비 융자 63억 원도 지급됐다. 대지급금은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에게 정부가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 범위의 체불액을 대신 지급하는 제도다. 실업급여는 다시 취업하지 않으면 최소 120일 간 지급되기 때문에 전체 실업급여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큐텐코리아 계열사별 실업급여 지급액은 위메프(15억3000만 원), 인터파크커머스(9억7000만 원), 티몬(9억 5000만 원), 큐텐테크놀로지유한회사(1억5000만 원) 순이었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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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임금체불액 1조8659억원…2년 연속 역대 최고치

    연간 임금체불액이 2년 연속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가 임기 초부터 임금 체불 근절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임금 체불 규모가 2년 연속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임금체불 예방 및 대응 조치가 미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 임금체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임금체불액은 1조8659억 원으로 역대 최고액이었던 2023년 1조7845억 원을 넘어섰다. 12월 임금체불액이 포함되면 사상 처음으로 연 임금체불액이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간 임금체불액은 2020년 1조5830억 원, 2021년 1조3505억 원, 2022년 1조3472억 원으로 감소세였지만 2023년부터 체불액이 크게 늘었다. 4년간 약 17%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전체 임금체불액 뿐만 아니라 1인당 체불액도 늘어났다. 1인당 체불임금액은 2020년 1인당 약 537만 원이었지만 2024년 11월 기준 1인당 약 710만 원으로 32% 증가했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도 취임 직후 여러차례 임금체불 근절을 강조해왔다. 고용부도 상습 임금체불자에 대한 경제적 제재 강화방안을 발표하는 등 임금체불 예방 및 처벌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임금체불에 취약한 산업구조의 개선 없이 효과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금체불이 자주 발생하는 건설업, 제조업, 조선업 현장에서는 원청에서 일을 수주해 다른 하도급사에 일을 넘긴 뒤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식의 ‘다단계 하도급’ 업체들이 많다. 현행법상 원청의 동의없이 수주한 일을 그대로 재하도급을 주는 것은 불법이지만 건설업, 제조업 현장에서는 공사 비용을 아끼고 작업상 하자 책임을 넘기기 위해 암암리에 횡행하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불경기로 인해 하도급사들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계약 조건 상의 불이익이나 임금체불 문제 역시 심화되고 있다. 계약서를 쓰자고 하거나 도급 비용을 협상하려고 하면 도급사에서는 ‘당신 아니어도 할 사람은 많다’라는 식으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이나 기성(공사 대금) 체불이 발생해도 업계 평판과 다음 일감을 따는 데 불이익을 받을까봐 쉽게 신고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불법 하도급의 구조 개선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임금체계 등을 명시한 표준계약서 확산 등 근로기준법상 기본적인 부분들부터 지켜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업 하도급사를 운영 중인 30년 경력 건설업자 전모 씨는 “계약상 분쟁이 생기면 하도급사는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하도급이든 재하도급이든 구조적으로는 없어져야하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 정상적인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서 안했을 때 발주처가 큰 페널티를 받는 등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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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 육아휴직 작년 4만명 돌파…2년새 1만명 늘었다

    남성 육아휴직자가 9년 새 5배 늘었다. 지난해 민간 부분 남성 육아휴직자는 4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민간 부문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는 3만9463명이었다. 2023년 대비 19.9%가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12월 육아휴직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고려할 때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4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용부 통계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육아휴직 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공무원·교사·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공무원, 교사 등을 포함하면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아빠 근로자’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9년 처음 2만 명을 돌파한 뒤 2022년 3만 명을 넘었다.올해는 처음으로 4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2016년 7616명과 비교해 볼 때 5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육아휴직자의 비율은 31.7%에 달했다. 육아휴직자 10명 중 3명이 남성인 것이다. 정부는 일·가정 양립 제도를 개선하고 확대한 게 부부간 맞돌봄 문화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 가정 총 소득 문제를 지원해준 점이 큰 효과를 봤다고 본다.고용부는 2022년 ‘3+3 부모육아휴직제’, 지난해 ‘부모함께육아휴직제(6+6 부모육아휴직제)’를 신설했다. 해당 제도는 시행 6개월 여 만에 2023년 육아휴직 수급자 수(3만 5336명)를 뛰어넘었다.2023년 시행한 ‘3+3 제도’의 연간 전체 수급자 수는 2만3910명이며 2024년 6+6제도를 이용한 수급자는 4만8781명이다. 육아휴직 부부의 소득 문제를 추가 지원해주자 육아휴직 제도 사용자가 1년새 2배로 늘어난 것이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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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육아휴직 급여 늘고 중장년 취업지원 확대

    정부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잠재성장률 수준에 못 미치는 1.8%로 전망한 가운데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한국 경제에 연일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여러모로 암울한 새해를 맞이했지만, 한국 경제를 이끄는 근로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올해는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이래 37년 만에 처음으로 시간당 시급 1만 원을 넘게 되는 기념비적인 해다. 육아휴직 제도와 업무 공백에 따른 대체인력 채용 지원 제도도 확대, 개편된다. 올해부터 새롭게 바뀌는 고용노동 분야 상식을 정리해 봤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0원으로 지난해(9860원)보다 1.7% 인상된다. 일급 환산 시 8시간 기준 8만240원, 주 40시간 근로 기준 월 환산액은 209만6270원이다. 월 지급하는 상여금 및 식비, 숙박비, 교통비 등 근로자의 생활보조 또는 복리후생을 위한 성질의 임금도 최저임금에 전부 산입된다. 수습 시작일부터 3개월 이내 근무 중인 근로자는 최저임금액의 10%를 감액할 수 있다. 다만 1년 미만으로 짧게 근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단순 노무 업무로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해 고시한 직종의 근로자는 감액이 불가능하다.● 육아휴직 급여, 대체인력 지원금 인상 육아휴직 급여액도 늘어난다. 기존 월 상한 150만 원(통상임금의 80%)에서 육아휴직 기간 첫 3개월은 월 상한 250만 원(통상임금의 100%), 이후 4∼6개월은 월 상한 200만 원(통상임금의 100%), 7개월 이후는 월 상한 160만 원(통상임금의 80%)으로 확대 조정된다. 또 휴직 기간 동안 육아휴직 급여의 75%를 받고 남은 25%는 복직 후 6개월 이상 근무 시 사후 지급받던 구조를 변경해 앞으로 육아휴직 기간 내 급여를 100%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부모가 전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혜택도 늘어난다. 부모가 각각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하거나 한부모, 또는 중증 장애 아동 부모의 경우 육아휴직 사용 가능 기간이 기존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어난다. 또한 생후 18개월 이내 자녀를 둔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첫 6개월 동안 육아휴직 급여를 상향 지원한다. 첫 달 상한액은 25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인상되고, 2∼6개월간은 현행과 동일(250만, 300만, 350만, 400만, 450만 원)하게 지원된다. 또한 한부모 근로자에 대해서도 첫 3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현재 250만 원에서 월 300만 원으로 상향한다. 이후 지원액도 현행 150만 원에서 4∼6개월 200만 원, 7개월 이후부터 160만 원으로 확대 지원한다. 생활비 부족으로 인해 육아휴직을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하던 근로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육아휴직, 출산전후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업무 공백을 대체인력을 고용한 300인 미만 중소기업 사업주에 대해 지급되는 대체인력 지원금은 월 80만 원에서 올해부터 월 120만 원으로 인상된다.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으로 업무를 분담한 근로자에게 금전적 지원을 한 중소기업 사업주에 대해 업무분담 지원금 월 20만 원이 지원된다. 이 외에도 ‘육아지원 3법’ 개정 시행으로 배우자 출산휴가 역시 기존 10일에서 20일로, 난임치료휴가도 기존 3일(유급 1일)에서 6일(유급 2일)로 늘어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자녀 연령 8세(초2) 이하에서 12세(초6)로 확대 조정된다.● 청년, 중장년 가리지 않고 일자리 창출 지원 청년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청년일자리 도약 장려금’ 사업도 도약장려금 유형Ⅱ를 신설해 지원한다. 기존에는 우선지원대상기업에서 15∼34세의 취업애로청년을 정규직 채용 후 6개월 이상 고용 유지 시 사업주에게 최장 2년간 최대 1200만 원을 지원했다. 올해부터는 5인 이상 빈일자리 업종 기업이 청년을 정규직 신규 채용 시 기업에 1년간 채용장려금으로 최대 720만 원을 지원하고, 청년 채용자에게는 장기근속 인센티브(12개월, 24개월 차에 각 240만 원)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개편된다. 일자리 창출 및 취업 지원 혜택은 중장년층에도 열려 있다. 고용부는 올해부터 ‘중장년 경력지원제’를 신설해 운영한다. 주 업무에서 퇴직한 사무직 등 중장년에게 일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는 취지다. 자격 취득 등으로 경력을 전환해 재취업하고자 하는 퇴직 중장년에게 1∼3개월간 직무 교육과 직무 수행을 제공하며 참여 수당으로 월 최대 150만 원을 지원한다. 전기기사, 공조 기능사, 사회복지사 등 자격 또는 기술이 필요해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참여 기업도 프로그램 운영 수당으로 참여자 1인당 월 최대 40만 원을 지원받는다. 이 외에도 올해 6월 1일부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돼 폭염 등에 대한 사업자 보건 조치 의무화가 실시된다. 지난해 10월 22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폭염 등에 근로자가 장시간 노출됨으로써 발생하는 건강 장해를 예방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실질적 보호 조치는 전문가와 노사 의견 수렴을 통해 마련될 예정이다. 고용부는 건설, 물류, 위생 등 소규모 폭염 취약 사업장에 대한 이동식 에어컨 등 온열 질환 예방 물품을 지원할 계획이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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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습 임금 체불 사업주, 10월부턴 국가 지원금-사업 참여 등 불이익

    올해 10월 23일부터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강화된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지난해 누적 임금체불액이 11월 기준 역대 최고액을 넘어선 가운데 실질적인 임금체불 제재 수단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임금체불액은 1조8659억 원이다. 기존 역대 최고 임금체불액은 2023년의 1조7845억 원이었는데, 이를 11개월 만에 돌파한 것이다. 월평균 임금체불액이 1696억 원임을 고려했을 때, 역대 최초로 체불액이 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한 건설업 근로자는 “노조가 좀 강하게 움직였을 때는 임금 체불이라든지, 추가 근무 수당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그나마 잘 지켜졌었는데 노조가 힘을 잃은 뒤에는 ‘형님, 나 돈 떼먹힌 거 좀 받아줘’라고 말하는 동료들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악의적인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 10월부터 상습 체불 사업주를 지정하고, 이들의 체불자료를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에 제공하기로 했다. 상습 체불 사업주로 지정되면 국가나 자치단체, 공공기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이나 지원금 신청에서도 제한을 받는다. 또 국가 등이 발주하는 공사에 참여가 제한되거나 감점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제재 대상은 1년간 근로자 1명당 3개월분 임금 이상 체불(퇴직금 제외) 또는 5회 이상 임금을 체불하거나 체불 총액이 3000만 원 이상(퇴직금 포함)인 사업주다. 상습 체불자에 대한 강제 수사도 강화된다. 임금 체불로 명단이 공개된 사업주가 체불 임금을 청산하지 않은 채 도피할 수 없게끔 출국 금지될 수 있다. 또 명단 공개 사업주가 다시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에는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게 된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범죄를 의미한다. 그간 임금체불의 경우 반의사불벌 조항이 적용돼 업주가 체불액 일부만 주면서 합의를 종용하는 등 제도가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다만 여전히 노동계를 중심으로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적용이 전면 폐지된 게 아니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가로 현재 퇴직자에게만 적용되는 체불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100분의 20)가 재직 근로자에게도 적용되며, 상습적인 체불 등으로 손해를 입은 근로자가 법원에 손해배상(3배 이내 금액)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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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여성 고용률 61.4%, OECD 31위…20년 새 4계단 하락

    한국의 여성 고용률과 경제활동 참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이 OECD 38개국의 15~64세 여성 고용지표를 분석한 결과 2023년 기준 고용률은 61.4%, 경제활동 참가율은 63.1%로 3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2003년에는 여성 고용률이 27위, 경제활동 참가율은 32위였는데 20년 만에 고용률은 4계단 떨어지고 경제활동 참가율은 1계단 오르는 데 그쳤다. 대표적인 성평등 고용지표들이 20년째 OECD 국가 중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21년 기준 한국에서 1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고용률은 56.2%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 규모와 인구 수가 비슷한 국민소득 3만 달러·인구 5000만 이상 국가들 7개국(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이탈리아,한국) 중 가장 낮은 수치다. 7개국의 평균 1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고용률은 68.2%였다.일본의 경우 1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고용률이 74.8%에 달했으며 이탈리아(57.2%), 미국(67.1%) 제외한 모든 나라가 70%를 넘는 고용률을 기록했다. 한국도 지난 20년간 성평등, 기혼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정책적 지원을 해왔음에도 타 선진국 대비 실제 성평등 고용 지표는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인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의 비경제활동인구가 취업 및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의 64.3%는 육아와 가사 때문인 것으로 집계됐다. 기타 이유는 재학 및 수강(15.7%), 연로(10.6%), 기타(7.9%), 심신장애(1.5%) 등으로 조사됐다. 한경협은 이들 7개국 중 여성 고용률이 70%를 넘는 높은 수치를 기록한 독일, 일본, 영국 3개국과 한국의 고용환경을 비교했을 때 유연한 근로환경 및 가족 돌봄 지원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분석했다. 경우 1주 연장근로 가능 시간을 최대 12시간으로 정한 반면 3개국의 경우 월 단위 이상의 연장근로 시간 제도를 운영해 탄력적인 근무 시간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노사 합의를 통해 업무량에 따른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적 근무 시간제도는 한국의 경우 최대 6개월 단위로 운영할 수 있는 반면 3개국의 경우 최대 1년 단위 운영이 가능하다.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 정책 지출 비중도 한국(1.5%)에 비해 독일(2.4%), 영국(2.3%), 일본(2%)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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