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변영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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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영욱 기자입니다.

cut@donga.com

취재분야

2026-02-23~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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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연휴 남사당 묘기 보다 박수가 절로

    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공연마당에서 열린 ‘버나돌리기’ 공연을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관람하고 있다. 버나돌리기는 남사당패의 두 번째 재주로 대접과 쳇바퀴 등을 앵두나무 막대기로 돌리는 놀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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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지켜보고 있다!

    건물 주차장 입구의 나무에 인형이 올려져 있습니다. 마치 외부 차량이 주차하러 들어오는지 지켜보는 듯하네요.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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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날이 공휴일이 아니던 시절의 고향 방문 풍경[청계천 옆 사진관]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백년 전 풍경사진을 하나 골라보았습니다. 1925년 1월 25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색동옷을 비롯한 설빔을 입고 세배를 다니는 소녀들 모습입니다. 가운데 자그마한 어린이는 기쁨이 온 얼굴에 묻어있습니다. 세뱃돈을 받는 즐거움 때문일까요? 앞의 네 명 뒤로 흐릿하게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 무리가 보입니다. 지금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지만 설을 보내던 옛날 한국의 모습입니다. 사진 오른쪽의 흰 무명저고리를 입은 사람은 엄마일수도 있지만 맏언니일 수도 있겠습니다. 형제자매가 많던 시절이라 맏딸들이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고보니 같은 설명절이지만 신문에 실리는 사진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도심을 활보하는 사람들보다는 이제는 긴 연휴를 맞아 해외로 나가는 인파로 가득한 인천공항 출국장 풍경이 2025년 설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아일보 DB에 접속해서 옛날 설 풍경 사진을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저 어린이들 사진이 나온 후 50년이 조금 넘은,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조금 안되는 중간 쯤 되는 1978년도 사진입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누군가가 사람들 머리 위로 긴 나무 막대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어깨에 계급장이 있고 목에 털이 달린 점퍼를 입고 있습니다. 경찰인지 아니면 질서유지를 위한 별도의 공무원인지 제가 과문해서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은 고향으로 가는 차표 예매를 위해 줄을 서 있는 시민들입니다. 지금의 인권 기준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왜 저런 풍경이 벌어졌을까요? 기를 써서라도 고향을 가려고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늘이 두쪽 나는 일이 있어도, 집에 누가 큰 병을 앓거나 죽는 일이 아니라면 추석과 설에는 고향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문제는 연휴가 길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설날은 1989년 이전까지 정부와 기업이 인정하는 공식 휴일이 아니었습니다. 개인 휴가에서 제하는 방식이었을테니 휴가가 짧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989년부터 설날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설날 전날, 당일, 다음 날까지 총 3일이 연휴로 확정되었습니다. 중간에 휴일이 낄 경우 하루를 더 쉬는 대체 공휴일 제도는 2013년에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대체 공휴일과 주5일제 정착으로 1주일 가까운 휴가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새마을호 무궁화호 같은 철도가 편하기 하지만 인원 제한이 있었을 것이고 기차가 가지 않는 지역은 고속버스가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모든 가정에 자가용이 있는 시대도 아니다보니 고속버스 터미널은 명절 때면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많은 인원이 몰리다보니 공권력이 질서 유지를 위해 시민들에게 큰 막대기를 휘두르는 사진까지 등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그러나 여러분들과 부모님들이 주인공이었던 우리의 설날 전후 풍경 사진 몇 장을 함께 감상하시면서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 설날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으신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추억을 나눠주세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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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쓸쓸할 때 더 잘 보이는 것

    나뭇잎이 무성하던 계절에는 보이지 않던 담벼락 타일이 보입니다. 누군가 남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쓸쓸한 겨울이 돼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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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엔 구룡포 대게를 즐겨보세요”

    21일 오전 경북 포항시 구룡포항에서 대게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3∼4일 전 조업에 나갔다가 들어온 배들에서 내린 대게들은 경매를 통해 전국으로 배달된다. 포항=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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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앞두고 제수용 생선 준비

    21일 오전 경북 포항시 죽도시장에서 시민들이 제수용 생선을 사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올해 4인 기준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으로 평균 28만7606원이었다. 포항=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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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겉만 봐선 몰라요

    겉보기엔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뭇가지이지만 옻, 오가피, 느릅 등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각종 약용수 가지입니다. 들여다보니 보이네요. ―서울 중구 서울중앙시장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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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별 따러 가자

    지붕 위 철로 만든 인형이 사다리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별을 따러 가는 걸까요? 조금 짧다면 옆집 사다리를 빌려서라도 꼭 성공하길 바랍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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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명사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아야할까 - 52세 독립운동가의 증명사진[청계천 옆 사진관]

    두번째 임기를 앞두고 공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초상사진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정면을 강하게 응시하는 모습입니다. 본인의 마음에 쏙 들었기에 선택된 커트일 것입니다.여러분은 평생 몇 번 증명사진을 찍어보셨나요?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 여권과 비자 발급, 운전면허나 주민등록증 발급, 입사 시험 등으로 대략 20여 차례 증명사진을 찍은 것 같습니다. 증명사진은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개인의 얼굴 변화를 기록하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최근 저는 증명사진이 기록이 아니라 피사체인 저를 미화하는 도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해 말,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동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었습니다. 동네 사진관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으러 와 있었습니다.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 가족사진을 찍으러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간단한 헤어 고정 제품과 빗을 받아 머리를 정리한 후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셔터가 10번도 채 눌리지 않은 채 촬영이 끝났습니다. 보통 사진기자들이 피사체를 촬영할 때 100장 이상을 찍어서 가장 자연스럽고 뉴스에 적합한 표정을 골라내는 과정과는 차이가 컸습니다. 이어서 저는 사진사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사진사가 고른 3장의 베스트 컷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1시간 후 사진을 찾으러 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사진 속 저는 너무 어려 보였습니다. 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다듬어져 있었고, 피부는 지나치게 뽀얗게 보정되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눈가의 주름도 모두 펴져 있었고, 눈꼬리도 살짝 올라간 듯했습니다. 규정상 6개월 이내에 촬영한 사진을 제출해야 했고, 젊어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그대로 주민센터에 사진과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이 과정에서 한 선배 사진기자가 떠올랐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딸의 증명사진을 보고 다시 찍으라고 했다는 일화였습니다. 저도 다시 찍어야 했던 걸까요?보름 후, 주민등록증을 수령하며 지갑에 ‘몰래’ 넣었습니다. 사진 속 모습이 내 기억 속의 젊은 시절 같기는 했지만, 현재의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진작가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미국 입국 심사대에서 사진과 얼굴이 달라 혼란을 준다며 “죄송합니다”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5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나이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이 오히려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럴듯하게 기록”하는 게 정답인가하는 질문을 다시 해봅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5년 1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의 증명사진입니다.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습니다. 함경남도 단천 출신이며 호는 성재(誠齋)입니다. 이날부터 닷새간 동아일보는 이동휘 선생이 국내 시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연재했습니다. 1873년에 태어나 1925년 당시 52세였던 선생의 모습은 지금의 50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의 무게를 짊어진 어른의 모습입니다. DB에는 선생의 사진이 5 종류 정도 남아 있으며, 그 중 증명사진 형식은 2장뿐입니다.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사진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구요. 사진을 보며,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좋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이동휘 선생의 철학과 그가 꿈꾸었던 미래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100년 전 신문에 연재된 글을 읽기 쉽게 정리해서 아래 첨부합니다. 사랑하는 내지 동포에게-러시아에서, 성재 이동휘-나는 지금 동아일보를 통해, 극심한 기근에 고통받고 있는 수백만의 형제들의 고통에 함께 울며, 이 고통을 해결할 길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살펴보려 합니다.현재 우리 민중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혹독한 억압을 받으며, 굶주림까지 겪게 된 것은 그야말로 눈 위에 또다시 서리를 맞는 격입니다.기근은 자연재해가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자연재해와 인위적인 착취가 겹치면서, 조선의 무산 계층은 생존의 길을 찾으려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지주들의 창고에는 곡식이 썩고, 부자들의 금고에는 돈에 녹이 슬어가지만, 사회에는 ‘형이 배부르면 동생이 굶주린다’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현대 사회 제도의 부끄러운 유산입니다.얼마 전, 통천의 한 학교에 다니던 14세 박춘혁 군이 책보를 맨 채 길에서 얼어 죽은 사건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비극입니다.조선의 무산 계층은 굶주림을 피해 만주와 시베리아로 흩어지고 있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우리는 이제 사회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민중의 의식으로 사회를 지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비정한 세상은 계속될 것입니다.열심히 일하고도 굶주리는 노동자들, 이 불합리하고 비정한 세상을 누가 그대로 둘 수 있겠습니까?동아일보에서 해외 동포를 위로하기 위해 성금을 모아, 중러 국경 지역의 학교와 공공단체에 기부해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고려도서관에도 많은 책을 기증해주신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내지 동포들은 해외 생활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이곳의 현실은 단조롭고 문화적으로 매우 빈약합니다. 과거 러시아의 구황제 시절, 이민족에 대한 억압이 심했을 뿐 아니라, 우리 동포들 대부분이 생활기술이 부족했던 탓입니다.다행히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 이후, 계급과 민족의 차별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국이 있다는 원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약 20만 명에 달합니다.그러나 60여 년 동안 입적한 고려인 중 실제로 땅을 분배받은 사람은 30여 가구에 불과했고, 그나마 대부분이 소작농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하지만 1922년 소련이 연해주까지 점령한 후, 불과 2년 만에 고려인들에게 분배된 땅의 규모가 이전 60년 동안과 맞먹게 되었습니다.또한 교육 측면에서도, 과거 40여 개 학교에서 러시아어만 가르치던 것을 현재는 200여 개 학교에서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이 같은 변화는 소련 헌법과 공산당의 방침 덕분이며, 현재 노동자와 농민의 문화 수준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습니다.최근 동아일보에 ‘연해주 고려인이 자치공화국을 세웠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는 다소 성급한 보도입니다. 소련 헌법상 각 민족은 자유롭게 자치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구의 통계와 특정 지역에의 집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현재 준비 중입니다.러시아 당국은 1918년 이전 이주한 고려인에게는 입적권을 허용하고, 그 외에도 가난한 농민에게는 최소 3만 4천 평의 땅을 나눠줄 방침입니다.고려인 대표들은 모든 고려인에게 제한 없이 러시아 시민권을 부여하고, 사회주의 공화국의 공민권으로서 토지를 나누어줄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무제한 시민권 부여는 일본의 토지 공황을 완화시키고, 조선 내 무산자의 해외 이주로 인해 국내 혁명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이 말을 들으며 우리는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토지를 아끼기 위함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무산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것임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 앞에서 말한 것처럼 러시아 영토에서 고려족의 장래 생활은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 자치가 성립됨으로써 정치적으로 발전할 것은 물론이며, 그 지도 역시 특정 개인이 좌우할 수 없고, 세계 혁명을 지배하는 중심 기구의 계획에 따라 우리는 이를 따르고 실행할 뿐입니다. 러시아 영토의 주민은 자신의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하여 내지나 다른 동포들의 생활이 파괴되는 것을 방관할 수 없습니다.이제 중국 영토의 동포들에게 한 마디 하고자 합니다. 그들도 러시아 영토 주민들과 함께 60~70년의 이주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길림성 동남로 연길도 8현(연길, 화룡, 왕청, 훈춘, 동녕, 영안, 돈화, 액목)을 중심으로, 연길과 화룡 두 현만 해도 거의 10만 호에 달합니다.1920년에 일본이 북간도에서 무명 지휘관으로 토벌을 감행하면서 정치적 관계자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현재는 수백 호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이주할 장소는 충분합니다. 만일 길회 철도가 개설된다면, 일본의 군사적, 경제적 이익은 불분명하지만, 고려 이주민들에게는 많은 편의를 제공할 것입니다.그리고 봉천성 전 현에 흩어져 있는 주민 수는 10만 호가 넘지만, 일정한 지역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욱이 소작 생활로 인해 북간도 일대의 주민만큼 생활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입니다.장래 이주가 유망한 지역은 중동선 일대와 길림성 동북로 의란도이며, 송화강 연안의 부금, 보청, 요하, 수원 등의 현은 중국 토착민이 적고, 기름진 땅이 수천 리에 달하며 수리 농업이 유망합니다. 이 지역들은 저도 일찍이 답사한 바 있으며, 지금도 우리 동포들이 개척 중입니다. 교통의 편리성과 미개간지의 개척 가능성을 고려할 때, 위의 지역들이 가장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최근에 일부 인사들이 하얼빈을 중심으로 위 지역 개척 운동을 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만일 정치적 목적이나 대자본 투하를 통한 중국 관료들과의 결탁으로 농민 착취를 경영한다면, 이는 허황된 광고일 뿐, 실제로는 여러 난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지에서 신뢰할 수 있는 단체, 더 나아가 동아일보의 중재로 이루어진다면 성공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 우리는 자신의 금수강산을 버리고 남의 영토에서 황무지를 개척한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고달픕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정치적으로 차별받고, 동양척식회사의 횡포와 지주의 착취로 생활의 안전이 없는 현실입니다. 일본인을 우선시하는 총독정치는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가까운 예로, 최근 진주 도청을 부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조선인을 무시하고 일본인의 번영만 도모하는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이에 경남도민이 결사적으로 반대 운동을 한다는 귀보의 특파원 보도는 저의 상념을 자극합니다.이런 점을 고려할 때, 조선의 무산 대중과 일본의 무산 대중은 자연히 연대하여 생활의 쾌락과 자유를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최근 세계 정세, 특히 동양에서 중국의 군벌들이 제국주의자들의 분열 정책에 이용당해 동족 간의 싸움이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하여 봉옥상이 갑작스럽게 반란을 일으켜 오패부가 타도되고, 조곤이 퇴위하자 단기서가 집권하게 되었고, 장작림이 실권을 장악하며 손문의 이상적인 정책이 발표되는 등 흥미로운 정국이 펼쳐졌습니다. 마치 사냥터에서 누가 사슴을 차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사슴을 얻는 것은 중국 군벌들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제국주의자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요즘의 정세를 보면 안복파가 득세하고, 봉천군이 일본 군벌의 조종을 받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큰 이익을 얻고 있으며, 남북 만주의 세력권은 여전히 존재하고, 장강 일대에서 영국과 미국의 기득권을 빼앗을 기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제 자본들이 시장을 놓고 다투며 전쟁을 벌이는 이유라고 합니다.우리 조선인의 입장에서 일본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는 것을 반길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지혜롭게 이용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이번에 손문이 제시한 정책이 일부라도 실현된다면, 중국령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새로운 정부에 정치적 참여를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점진적으로 자치 운동을 펼치며 생활의 실력을 기르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저는 현재 러시아령 주민들의 경험을 보며, 중국령 주민들도 정치적 실력을 갖추기를 갈망하고 꿈꾸어 봅니다. 이는 현재 중국령 주민들이 국적과 정치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압록강과 두만강 건너편에서 무모한 희생을 치르는 것보다, 운동 방식을 바꿔 대세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현명한 혁명 지도자의 역할일 것입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제가 미숙한 정치적 논평을 늘어놓아 다소 경솔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미 말문을 연 김에 감추지 않고 솔직히 밝히는 것은 저의 성격이며,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현 상황의 흐름이라 여깁니다.일본의 현재 상황은 신문 보도만 보더라도, 지난해 대지진의 충격으로 국민들의 불안이 커졌고, 여러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듯합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학교에 군사 교육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에 학생들과 재야 인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수주의 세력의 발호와 무산계급 운동의 좌경화, 보통선거 실시로 무산 정당의 조직 가능성이 커진 것도 흥미로운 문제입니다.조선의 무산계급 대중은 일본의 무산계급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기에 함께 행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포 수단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운동이 아직 기반이 확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압박이 심해 선전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발표된 언론을 조선에서는 금지하고, 일본에서 출판된 서적을 조선에서 압수하는 것만 보더라도, 조선총독부의 지배가 얼마나 특별하게 차별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최근 세계 정세와 동양에서의 변화는 특히 중국 군벌들이 제국주의자들의 분할 지배 정책에 이용되어,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참혹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펑위샹(馮玉祥)의 갑작스러운 반란으로 우페이푸(吳佩孚)가 무너지고, 차오쿤(曹錕)이 퇴위한 후, 돤치루이(段祺瑞)가 정권을 잡고 장쭤린(張作霖)이 실권을 쥔 가운데, 쑨원(孫文)이 자신의 이상적인 정치 견해를 발표한 일은 무척 흥미로운 정국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혼란의 결과로 중국의 미래가 누구 손에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상황이 결국 중국 군벌들이 아닌, 그 배후에 있는 제국주의 세력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최근 정세를 보면, 안푸파(安福派)가 고개를 들고 펑텐 군벌(奉天軍)이 일본의 조종을 받으며 움직이는 듯합니다. 이를 보면 일본 군벌들이 큰 이득을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그들은 남북 만주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장강(長江) 지역에서 이미 확보했던 영국과 미국의 영향력마저 되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세는 결국 국제 자본의 시장 쟁탈전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우리 조선인들의 입장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는 것을 기쁘게 바라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이번 쑨원의 정책이 실현된다면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은 신정부에 정권 참여를 적극 요구해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자치 운동을 벌여 생활 기반을 확보해야 합니다. 저는 러시아에 있는 동포들의 현재 경험을 보며, 우리도 정치적 실력을 갖추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지금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정치적으로나 국적상으로도 주장을 펼쳐야 할 중요한 시점입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편에서 무모하게 희생되는 것보다, 오히려 운동 방식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현명하게 이끄는 혁명 지도자가 필요합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제가 다소 미숙한 정치적 견해를 펼친 것 같아 송구합니다. 그러나 이미 말을 꺼낸 이상, 제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 제 본성이고, 이 시대의 흐름을 보며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일본의 현 상황을 신문 보도만 보아도, 지난해 대지진의 충격으로 민심이 불안정하고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듯합니다. 최근 일본 정부가 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강제하자,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국수주의 세력의 날뛰는 모습, 무산운동의 좌경화, 보통선거법의 시행으로 무산정당이 결성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조선의 노동자 대중도 일본의 노동자 대중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만큼, 이들의 움직임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지만 우리는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운동 기반이 아직 취약할 뿐 아니라, 탄압이 극심해져 선전 활동에 지장을 줄 것입니다. 일본에서 발표된 기사조차 조선에서는 허용되지 않고, 일본에서 출판된 서적이 조선에서 압수되는 현실만 보아도 총독부의 특별한 차별 정책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공포 수단에 대한 것은 나의 의견만이 아닙니다. 1921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레닌 동지를 만났을 때의 대화가 떠오르는군요. 그때 그는 특히 소규모의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일본의 무산자와 연대할 것, 대중을 선전으로 각성시킬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조선 철도 노선을 가리키며, 조선의 3.1운동이 이 교통의 편의를 이용했다고 하면서, 조선의 민족운동은 이제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했습니다.그런데 지금 조선에서 모든 운동의 경향을 보면, 각 단체의 발표된 정강을 막론하고 모두 사회운동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큰 진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무산운동 단체들이 상호 연대하여 실행에서도 일치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무산계급을 대표하는 운동의 지도자들은 이상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와 농민이 직접 참여하는 운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더욱이 비밀 지역에서 활동하는 방법, 국제적 운동과의 연계, 조직의 중심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현재 조선의 무산운동은 다만 경성을 중심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상호 경쟁하며 실제 노동자와 농민 계층에 기반을 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따라서 지도자들은 서울에서 광고성 운동만 하지 말고, 각 지방으로 흩어져 실제 노동자, 농민 계층과 접촉하여 그들의 기초 문화부터 계몽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생활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은 모든 대중이 일치단결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레닌 동지는 말하기를, 혁명 사업은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노동자는 공장에서, 농민은 들판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여성은 부엌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혁명 정신만을 일관되게 유지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지금 의회를 통한 문화운동이 ‘제3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한창입니다. 첫 번째 전선은 사회를 건설하는 시기였고, 두 번째 전선은 파괴된 경제를 회복하는 시기였으며, 현재의 세 번째 전선은 문화를 일으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 조선의 무산운동은 첫 번째, 두 번째 전선보다도 세 번째 전선에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 현세의 요구에 맞는 운동일 것입니다. 따라서 대학을 운영하는 것보다 강습소나 강연회를 열어 노동자와 농민의 무지를 퇴치하고, 인격 향상과 생활 평등을 점진적으로 깨우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과거 민족운동은 분열로 인해 대동단결이나 기관 통일 등을 주장하며 위기를 타개하려 했지만, 이익의 상충과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언제나 대동통일은 불가능했습니다.그러나 무산운동은 반드시 단결할 수 있으며, 다만 지도자들 간의 의견 충돌로 인한 분열이 문제일 뿐, 결코 무산계급 자체가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운동이든 지도자의 책임은 무겁고도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동아의 동지들이여!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준비 없이 흥분된 언어를 쓰거나 조리가 부족하고, 문맥이 연결되지 않거나 혹은 모순된 구절은 없는지 검토해 주시고, 많이 다듬어 주시기 바랍니다. (끝)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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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르신, 마스크 단단히 하세요”

    16일 서울 성동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환자들의 마스크 착용을 돕고 있다. 이날 성동구는 법정 감염취약시설인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독감(인플루엔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지난해 12월 말 국내 독감 의심 환자 수는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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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위 주춤하자 초미세먼지 기승

    서울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 상공이 뿌옇게 흐리다. 이날 오후부터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초미세먼지는 점차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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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꽃보다 더 활짝 피거라

    13일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을사년 새해맞이 미디어아트 전시회 ‘미디어 풍광(風光): 찬란하고 조화로운’을 찾은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전시는 김혜경 작가의 개인전으로, 전통의 가치를 디지털 기술로 재창조한 미디어아트 작품 4점을 선보인다. 전시회는 3월 31일까지 열린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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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장면, 다른 사진-대통령 관저 철조망 사진의 미묘한 차이[청계천 옆 사진관]

    2025년 1월 3일 새벽,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집행하려 했습니다. 5시간 30분 만에 철수했지만, 속보를 따라 현장에 사진기자들도 망원렌즈를 들고 출동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대통령 관저 주변은 일종의 숨바꼭질 무대가 되었습니다.1월 5일 일요일, 사진기자들과 방송 카메라맨들은 대통령 관저에서 약 1km 떨어진 남산 자락에 진을 쳤습니다. 완벽한 보안은 불가능했기에 나뭇가지 사이로 관저 입구를 일부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탄핵이 여름에 이뤄졌다면, 나뭇잎이 우거져 촬영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대치 상황이 뉴스 사진의 주제였던 첫째, 둘째 날과 달리, 셋째 날의 주요 피사체는 새로 설치된 철조망이었습니다. 담벼락을 따라 설치된 윤형 철조망은 망원렌즈로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쪽문 근처 도로를 가로질러 설치된 6~7미터 높이의 철조망은 바닥에 쌓인 흰 눈 덕분에 뚜렷이 보였습니다.이 사진을 처음 포착한 사람은 아마도 통신사 사진기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다른 사진기자들도 망원렌즈를 이리저리 돌리며 발견했거나, 누군가 집중해서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렌즈를 돌려 담아냈을 것입니다. 사진기자들의 경쟁은 원죄와도 같습니다. 방송 영상도 마찬가지지만, 신문 사진의 경쟁은 특히 더 치열합니다. 이 경쟁은 100년 전에도 동일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슷해 보이는 사진인데 왜 하나만 찍고 나눠 쓰지 않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차별화된 기사와 사진을 제공하려는 노력 때문입니다.1925년 1월 5일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도 얼핏 보면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사진입니다. 등장인물은 같으나 카메라의 위치가 미세하게 다릅니다. 동아일보는 정면에서, 조선일보는 약간 측면에서 촬영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각 신문사의 사진기자가 찍어 온 사진이기 때문입니다.당시 동아일보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같은 날 열빈루에서 재경 사회운동자 간친회가 열렸고,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 운동의 현황과 기근 구제, 청년운동자 연령 제한, 운동선 통일 등의 결의문이 채택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사진 속 상황에 대한 기사를 보겠습니다. 1925년 1월 5일자 동아일보 지면입니다. 예정과 같이 그제 오후 6시 반부터 시내 열빈루 에서 재경 사회운동자 간친회를 개최하였다는 데, 김찬(金燦)씨 사회 아래에서 순서를 따라 회 의를 진행하여 과거 1년 간의 사회 운동을 여러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보고를 마친 후에 각 항의 토의를 마치고 아래와 같은 결의문을 작성한 후 에 재미스러운 여흥으로써 끝을 마치고 11시 반 경에 폐회하였다는데, 그날 밤에 출석한 인원은 150여 명의 다수에 달하였으며 그중에는 인천 과 충남 당진, 경북 예천 등지로부터 온 운동자도 15명이나 참가하였으며, 그날 밤의 대성황은 근래 드문 일이었다더라.결의문1. 기근에 대하여는 각자가 노력하여 조선 기근 구제회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할 일2. 두 총동맹 집회 금지에 대하여는 위원 3명을 선정하여 당국에 질문케 할 일위원 : 김찬(金燦), 김약수(金若水), 임세희(林世熙)3. 청년 운동자의 연령은 30세로 제한하기로 함4. 운동선의 통일을 각자가 적극적으로 노력할 일5. 운동 단체의 강령 문제에 대한 구체적 결의는 보류함사진기자들은 경쟁만 하는 직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기자들은 같은 현장에서 20~30년씩 얼굴을 마주하며, 때로는 협력도 합니다. 혼자 갈 수 없는 현장에 함께 요구해 들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관계를 두고, 외국의 누군가는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오늘은 100년 전 신문에 실린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두 장의 사진을 통해 사진기자들의 협력과 경쟁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하셨나요? 좋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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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서운 바람 불 땐 잠시 쉬어 가세요

    8일 오전 서울 성동구의 마을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비닐 텐트형 추위 대피소 ‘온기누리소’에서 주민들이 추위를 피하고 있다. 성동구는 강력 한파에도 주민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41개의 온기누리소, 139개의 온열 의자, 48곳의 한파 쉼터 등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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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노동자 위해 ‘찾아가는 쉼터’ 마련

    7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야외 주차장에 마련된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다. 서울시는 한파 속 야외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의 건강을 위해 이달 24일까지 여의도와 길동사거리 등 주요 업무 지역에 쉼터를 운영한다. 쉼터 정보는 서울노동권익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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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새해엔 금연을

    길고양이가 흡연 금지 입간판에 아예 등을 돌리고 있네요. “저도 담배 연기 싫어요. 2025년에는 꼭 금연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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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당신의 새해 인사는 얼마나 진심인가요?: 손글씨 연하장의 추억 [청계천 옆 사진관]

    ● 새해 인사, 어떤 이미지를 보내셨나요?여러분은 2025년 새해 인사를 전하면서 어떤 이미지를 함께 보내셨나요? 이모티콘, 해돋이 사진, 뱀 그림, 혹은 AI로 제작한 이미지를 사용하셨나요? 요즘은 보기 힘든 광경을 하나 소개합니다.지난주 퇴직을 앞둔 선배의 책상 위에 한 장의 연하장이 도착했습니다. 우편엽서 뒷면에 정성과 독창성이 담긴 붓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 연하장이었고, ‘을사년 첫날을 기념한다’는 인사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인스턴트식 새해 인사가 주류인 요즘, 400원이라고 인쇄된 엽서 가격과 직접 쓴 손글씨는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연하장은 저에게도 익숙한 인사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선생님께 보내는 정도였죠. 1960년대생 선배들과 70년대생 X세대 사이를 가르는 상징 중 하나가 연하장이 아닐까 합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익숙했지만, 연하장은 그렇지 않았죠. 1980년대 이후로는 더욱 낯선 단어일지도 모릅니다.그럼에도 여전히 연하장의 이미지는 새해 인사의 일부입니다. 문자 메시지에 첨부하는 산수화 느낌의 이미지나 십장생 그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미지를 보내는 모습이 그 연장선입니다. 그러나 과거엔 이런 그림이 인쇄된 엽서나 8페이지짜리 편지로, 종이에 정성껏 손글씨를 써서 존경하는 분들에게 보내곤 했습니다.연하장은 우체국과 집배원을 거쳐야 전달되는 만큼, 12월 26~27일 즈음에는 미리 우체통에 넣어야 했습니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는 정성과 번거로움이 필요했던 인사법이었습니다. 때를 놓치면 새해 인사를 건네지 못한 셈이 되니까요.● 100년 전, 연하장 200만 장이 유통되었다고 합니다1925년 1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시 경성의 다섯 개 우체국에서만 하루에 160만 장의 연하장이 배달되었습니다.2백만의 연하장(年賀狀)어제 아침 첫 회 배달 양이부내 5국(局)에 165만 장어제 아침 첫 회 우편으로 시내 각처에 배달된 연하장의 총 숫자를 듣건데, 경성작일 아침 제 일회 우편으로 시내 각처에 배달된 연하장의 총 수효를 듣건데, 경성(京城)우편국에 84만, 광화문(光化門)에 41만1천5백14장, 남대문(南大門)에 39만, 서대문(西大門)에 8만2천4백35, 룡산(龍山)에 23만2천4백60장. 다섯 군데를 합하면 모두 1백6십3만2천4백60장이나 된다는데 이것도 어제 아침 첫 회로 배달한 것이므로 올해 경성 시내에 떨어질 연하장은 2백만장이 넘을 터이더라.연말까지 총 200만 장이 넘을 것이라 예측했죠. 1925년 한반도 인구가 약 1952만 명(출처: 국가통계포탈) 이었으니, 인구 10명 중 1명이 연하장을 보낸 셈입니다.집배원들은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우편물을 배달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담긴 사진은 오늘날엔 보기 힘든 장면이 되었습니다.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집배원 사진을 보며, 손편지로 전하던 따뜻한 새해 인사를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오늘은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집배원 사진에서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연하장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동아일보 DB 사진 몇 장을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근하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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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ristmas 1924[청계천 옆 사진관]

    올해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저작권 문제로 거리는 물론이고 방송에서도 캐럴을 듣기 어려워졌고 특히 올해는 12·3 불법 계엄 선포와 12·14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까지 벌어지면서 사회 전체가 상당히 위축된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명동 입구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외벽의 대형 미디어아트에서 그나마 축제와 송년의 기쁨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12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 사진입니다. 주일 학교에서 연극 공연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진이 실린 날짜 이외에 25일자와 26일자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기사가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여러 가지 전설◇ 성탄절이란 무엇인가?12월 20일부터 25일까지를 성탄절이라 하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시기를 축하하기 위해 크게 준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를 명절로 삼아 새 음식을 준비하고 새 옷을 입으며, 서로 새해 축복 인사를 나누고 예물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새해보다 성탄절을 더 성대한 명절로 여긴다.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조차 이 절기를 하나의 명절로 즐긴다.◇ 성탄절의 의미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날을 축하하는 명절이다. 하지만 예수가 정확히 어느 날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날에 가족과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기를 바라지만, 예수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굳이 세상에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 결과, 예수가 태어난 정확한 날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존경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어찌 그 거룩한 탄생을 기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그날을 알 수 없어도, 우리 마음과 정성을 다해 축복하자.”그리하여 예수 탄생 약 360년 후, 로마에서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정하고 축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왜 12월 25일인가?12월 25일이 예수 탄생일로 정해진 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옛날 성도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날이 춘분 무렵이라 생각했다.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다. 따라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날과 비슷한 날에 예수를 보내셨을 것이라 믿었다. 이를 바탕으로 마리아가 춘분에 예수를 잉태했다고 가정하면, 12월 25일이 열 달이 되는 날이므로 이 날을 탄생일로 본 것이다.또한, 12월 25일은 1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이다. 이때부터 태양이 다시 북쪽을 향해 빛을 내기 시작한다. 로마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는데, 기독교인들은 이 날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빛을 비춰주는 것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로마와 그리스의 차이로마에서는 12월 17일부터 23일까지도 성대한 축하 행사를 열었다. 예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정한 것도 이러한 로마의 전통적 축하 행사와 맞물렸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희랍(그리스)교에서는 예수 탄생일을 1월 6일로 기념한다. 창세기 1장에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는 기록에 따라, 예수를 ‘새로운 아담’으로 보고 1월 6일을 성탄일로 삼았다.게재지: 동아일보게재일: 1925년 12월 24일, 석간1924년 12월 26일자 신문에 실린 “구세군과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걸인 수용소 설치”기사도 소개해 드립니다. ◇ 조선 전역은 농촌과 도시를 막론하고 극심한 생활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쓰러져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쌓였고, 이는 매일같이 늘어만 갔다. 이대로라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직면한 부유층도 구제책 마련에 나섰으며, 그와 함께 외국인 선교사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서울에 머물던 외국인 선교사들은 날로 늘어나는 걸인과 고아들을 보며 인도적 차원에서 긴급히 구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스미스 목사를 비롯한 유지들이 협의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재작일(12월 24일) 오후 4시 30분, 서대문 밖 외국인학교에서 구빈상담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서울에 있는 외국인과 조선인 목사들, 조선총독부 외사과장 대리 소덴(小田) 씨, 경찰부장 대리 삼천 경부(森川警部) 등 40여 명이 모였다.이날 회의에서는 첫 번째 조치로 고아와 걸인들을 수용할 시설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아래 세 곳을 임시 수용소로 정했다.죽첨정 구세군 본영낙원동 제2구세군영죽첨정 예배당더 나아가 1925년 1월부터는 서대문통 171번지의 민간 가옥 한 채를 매입해 영구적인 수용소를 설립할 계획도 논의되었다.이날 위원으로는 네 명이 선출되었다.구세군 서기관장 대좌 도원의군쓰 부인소전 외사과장대리오극선◇ 인도적 견지로, 자금은 본영에서여기에 대하여 구세군 본영에서 ‘도원의’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 사업은 인도주의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 착수할 예정입니다. 이 자금은 영국 런던 구세군 본영에서 지원받고, 우리들의 기부와 민간 회사의 후원을 통해 마련할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아 우리 본영에서는 빈민 1,000명에게 점심을 대접할 계획입니다. 대구에서도 200명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조선의 기근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 널리 알려 본국에서도 동정을 구할 계획입니다.”게재지: 동아일보게재일: 1924년 12월 25일오늘은 100년 전 크리스마스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시작으로, 그즈음 기사 두 건을 살펴 보았습니다. 두 건의 기사는, 성탄절이 종교적 축제의 의미를 넘어 당시 조선 사회가 직면했던 극심한 빈곤과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 선교사들과 구세군이 펼쳤던 인도주의적 노력을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길거리에서 생명을 잃는 이들이 늘어나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이들의 구제 활동은 조선의 빈민들에게 작은 희망의 빛이 되어주었습니다.특히 구세군과 외국 선교사들의 노력은 단순한 시혜적 행위를 넘어 인도주의와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빈곤과 불평등에 맞서 연대와 자비를 실천했던 당시의 구체적인 노력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러한 나눔과 실천에 있지 않을까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p.s. 1960년대~ 1980년대 서울의 크리스마스 풍경 사진 몇 장도 감상하시죠.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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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얼음나무

    얼음나무 얼음땡 놀이에선 땡! 하면 얼음이 풀리는데 진짜 언 나무들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날씨야, 도와줘∼ ―경기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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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도전, 인생샷

    즉석 사진기 안 두 사람, 아주 제대로 표정 잡고 있겠죠? 먼 훗날 인생샷으로 남을지도 모르니까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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