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윤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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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장을 거쳐 정치부장으로 있습니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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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3-14~2026-04-13
칼럼100%
  • “항구 넓히고 철도-전력 연결땐… 나진 인근 제2 개성공단 가능”

    한-러 양국 정부가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의 후속 사업을 물색하고 나선 것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과 극동 지역에서 경제 활로를 찾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러시아 극동개발장관은 지난달 29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에 150억 달러(약 16조6275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남-북-러 3각 협력인 이 사업에 한국 측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는 후속 사업은 나진항 현대화, 북한 철도 현대화, 남-북-러 전력망 연계 등이다. 전문가들은 나선 인근 북-러 접경지대에 남-북-러 합작으로 제2의 개성공단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나진항에선 석탄 등 원자재만 소화하는 원시적 수준의 협력이 가능하다. 러시아에서 석탄 수입하는 것밖에는 할 게 없다”고 말했다. 나진항을 전면 현대화해 명실상부한 수출입 창구로 만들어야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는 매력적인 물류 기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뱃길 개척에 머무는 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을 오가는 러시아 철도와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기업 컨소시엄을 내세워 약 26조 원을 들여 북한 철도 3500km를 현대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구애에 무작정 호응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갈루시카 장관은 지난달 27, 28일 방한해 한국 고위 관료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남-북-러 가스관 사업 참여”를 요구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극동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러시아 푸틴 정부가 안정성이 부족한 대북 투자에까지 한국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미끼를 던진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 측 3개 기업 컨소시엄이 북-러 간 합작사인 ‘나선콘트란스’의 러시아 측 지분을 사들이는 데 앞서 실제 러시아의 투자 금액과 이들이 주장하는 투자 금액이 일치하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유입 차단을 위해 외부인 입국 불허와 격리 조치를 해오던 북한이 이번 나진-하산 프로젝트 시범운송 사업에선 한국 측의 현장 점검에 적극 협조하고 나섰다. 북한이 한국 점검단의 방북은 ‘예외’로 인정해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었지만 한국 관계자들과 현지에서 접촉한 북한 나진항 관계자 및 시 인민위원회 관계자들은 격리 조치될 예정이라고 한다.윤완준 zeitung@donga.com·김정안 기자}

    •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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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러 후속 협력 ‘나진항 현대화’ 등 검토

    정부가 남북한과 러시아 간 물류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후속 사업 찾기에 나서는 등 남북러 3각 협력 확대에 나설 방침이다. 러시아도 남북러 경제협력의 지속적인 참여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나진-하산 프로젝트 후속 사업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로 현실성 있는 남북러 협력 사업을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머물지 않고 남북러 3각 협력을 대폭 확대할 구상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북한과 러시아 지분이 각각 3 대 7인 것으로 알려진 나진-하산 프로젝트 컨소시엄인 나선콘트란스의 러시아 지분 가운데 49%를 한국 기업이 구매하는 본계약 체결을 가급적 내년 초에 완료할 계획이다.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후속 사업으로는 나진항을 전면 현대화해 한국과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물류기지로 만드는 방안이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 시범사업으로 시베리아산 석탄(유연탄)을 실은 중국 선적의 배 신훙바오스는 지난달 27일 나진항을 떠난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 앞바다에 도착했다. 석탄 4만500t은 1일 하역된다. 하지만 나진항은 현재 석탄 수입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남북러 협력의 핵심은 남북러 철도 연결”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후한 북한 철도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러시아 정부가 최근 발표한 철도 현대화 사업에 한국의 참여 방안이 거론된다. 러시아가 최근 발표한 국영 수력발전회사 루스기드로의 남북러 전력망 연계 사업에 한국이 참여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지난달 27, 28일 방한한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은 “북한이 남북러 협력 의지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남북러 철도 연결 및 에너지와 가스관 등 북-러 경제협력에 한국이 참여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해 주목된다. 윤완준 zeitung@donga.com·김정안 기자}

    • 201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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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대통령의 강 스매싱… ‘문화가 있는 날’ 맞아 탁구-체조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탁구 라켓을 잡고 취임 후 처음으로 운동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열리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스포츠센터를 찾아 탁구동호인들을 격려했다. 유남규 탁구국가대표팀 감독과 3분여간 경기를 즐겼다. 공은 높이 뜨는 경우가 많았지만 자세는 안정적이었다. 동호인들이 ‘스매싱’을 외치자 세 차례 스매싱을 시도했다. 한 번은 구석에 정확히 꽂혀 유 감독이 받아내지 못했다. 나머지 두 차례는 실패. 유 감독은 “한 달에 10분씩만 해도 탁구를 잘 칠 것 같다”고 촌평했다. 박 대통령은 영애 시절부터 탁구를 즐겼다.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은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구기 사상 최초로 세계를 제패한 뒤 청와대의 초청을 받았다. 당시 본관 접견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 편을 이뤄 혼합복식 경기를 하고, 박근혜 대통령과는 단식 경기를 했다. 이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탁구 실력은 박 대통령이 가장 나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못 쳤다”며 웃었다. 이날 행사에선 에어로빅을 결합한 새로운 국민체조인 ‘늘품건강체조’가 처음 선보였다. 박 대통령은 “(예전에) 운동을 굉장히 좋아해 뜨거운 여름에도 2시간씩 테니스를 친 기억이 난다”며 “그 덕분인지 지금 고된 일이 많아도 그런대로 잘 견디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다음 달 2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마지막 회의를 주재한다.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무산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내놓을 대북 메시지가 주목된다. 통일준비위는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남북 농업협력 방안을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재명 egija@donga.com·윤완준 기자}

    •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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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柳통일 “北에 비료지원 고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5일 정부 차원의 대북(對北) 비료 지원 방침과 함께 ‘규모가 큰 남북 협력’ 의지를 밝혔다. 류 장관은 이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로 열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북한 사회간접자본 개발협력 추진 방향’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투명성만 담보된다면 농업과 산림지원 사업에서 소규모 비료 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지원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사업들이 원만히 추진된다면 보다 큰 (남북) 협력사업도 추진할 수 있고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다면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비전코리아프로젝트를 통해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높이고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 장관의 이날 발언은 정부 차원의 쌀 비료 지원과 대북 경제협력을 중단시킨 5·24조치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앞서 정부는 나진-하산 물류프로젝트를 통해 대북 신규 투자를 금지한 5·24조치를 우회하는 등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류 장관은 “(드레스덴 구상에서 밝힌) 복합농촌단지 조성의 경우 농업 축산 산림을 함께 구축하는 민생인프라 사업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민족동질성 회복에 기여하고 공동의 이익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더 큰 (남북) 협력을 낳는 모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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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레스덴 구상 복합농촌단지… 북한 개성-북청에 조성해야”

    북한 개성공업지구와 함경남도 북청군 일대 북청농업개발구 등에 복합농촌단지를 조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관호 농어촌연구원 연구위원은 24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주최로 코엑스에서 열린 ‘남북농업협력’ 세미나에서 “북한의 경제특구 및 지방개발구를 중심축으로 복합농촌 단지 조성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지역 민생인프라 구축을 위한 복합농촌단지 건설은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3월 독일에서 발표한 드레스덴 구상의 주요 내용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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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정은, 금강산관광 16주년 행사차 18일 방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사진)이 금강산관광 16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18일 금강산을 방문한다. 통일부는 16일 “현 회장과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 등 22명의 방북을 허용했다. 기념행사 이외에 현 회장 등 현대 관계자와 북한 측 관계자의 별도 면담 계획은 없다”며 “순수한 기념행사와 관련한 방북은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에도 매년 승인해 왔다”고 말했다. 현 회장의 방북은 현대 측의 금강산관광 재개 노력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아 왔다. 현 회장이 금강산관광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2009년 11주년 행사 이후 5년 만이다. 지난해 8월 현 회장이 고 정몽헌 전 회장 10주기 추모식을 위해 방북했을 때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통해 현 회장에게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구두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9년 8월에는 현 회장이 방북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최근 정부는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최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 허용이 대표적인 경우. 박근혜 대통령 면담 직후 방북을 허용하는 모양새를 취해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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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쌀쌀한 中 대신 러에 눈 돌려… 외교고립 탈피 안간힘

    ‘돌고 돌아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을 향해 외교 공세를 펼치던 북한이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러시아 특사 파견 카드를 꺼냈다. 김정은 체제 들어 러시아에 파견하는 최고위급 인사다. 심화되는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겠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한중 관계를 의식한 행보이자 냉각기인 북-중 관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려는 움직임으로도 보인다. 다음 달 17일 아버지 김정일 ‘탈상’ 3주기, 내년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둔 김정은으로서는 내부 결속을 다지고 해외 협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김정은, 국제외교무대 데뷔할지 주목 이번 특사 파견은 연내 또는 내년 초 북-러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14일 언론보도문을 통해 “최 비서가 모스크바 방문에 이어 극동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도 방문한다”며 “정치 대화 수준 격상, 통상경제관계 활성화 방안,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등을 포함한 양자 관계 현안과 상호 관심사인 일부 국제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일부 국제 문제’. 북한 핵문제 논의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문제를 두고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북한과 러시아 정부 간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러시아의 북한 철도 개·보수 투자 등 최근 부쩍 가까워지고 있는 북-러 경제협력에 대해 총정리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포괄적인 상호 경제협력 조약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양측이 1961년에 체결했지만 옛 소련 붕괴 이후 사문화됐던 경제협력 성격의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업그레이드하는 형식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가 서방 등 미국과 관계가 굉장히 나쁘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로 몰리고 있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면 러시아의 반(反)서방 노선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기에 러시아도 북-러 정상회담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 마지막 승부수는 러시아? 그동안 북한은 최근 한반도 주변국은 물론이고 유럽까지 겨냥해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쳤지만 별다른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러시아만이 대조적으로 북한과의 고위급 ‘셔틀 외교’를 이어왔다. 이번 특사 방문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외교적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선 러시아가 중국을 제치고 김정은 시대 북한의 최대 우방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이번 특사 방문 발표는 중국에 대한 우회적인 불만 표시라는 분석이다. 한편으로는 중국도 북-러 관계 개선 기류에 반색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중국 인사들을 연쇄 접촉한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묻자 중국이 꺼릴 이유가 없다고까지 말하더라”며 “위태로운 북한 경제를 살리고 국제사회의 중국책임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김정안 jkim@donga.com·윤완준 기자}

    • 201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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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의 ‘메구미 거짓말’ 증거 나와… 전면 재조사 요구해야”

    정부가 인정한 6·25전쟁 이후 납북자는 517명이다. 그중 탈북에 성공한 사람은 모두 9명. 8명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62)가 2000년 이후 북한에서 탈출시켰다. 나머지 1명은 스스로 탈북했다. 정부가 공식 귀환시킨 납북자는 한 명도 없다. 통일부 장관들을 상대로 호통을 마다하지 않는 최 대표를 보면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뜬 초강성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그런 그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라고 고 김애란 씨(2005년 사망)를 부르며 한참을 울었다. 그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가방 속 붉은 주머니엔 화장한 ‘엄마’의 유해 일부가 있다. 지칠 때마다 주머니를 꺼낸다. 김 씨는 최 대표가 21년간 납북자 구출에 온몸을 던지게 한 버팀목이다. “납북자를 구출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어떻게든 납북된 아버지의 뼈라도 구해 오라’는 엄마의 한(恨) 어린 ‘지시’에서 시작됐어요. ‘아부지’가 납북된 뒤 엄마가 생선장사로 모은 돈을 쏟아부었죠. 북한 내부 정보원들이 늘어나면서 납북자 국군포로와 관련된 정보가 내게 모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대북첩보 임무를 맡았던 ‘8240유격백마부대(켈로부대)’ 출신 고 최원모 씨. 1967년 납북돼 북한에 의해 처형됐다. 올해 6월 부친의 위패가 대한민국 호국의 성지인 국립현충원에 봉안됐다. 김애란 씨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최 대표가 손때 가득한 납북자 명단을 보여줬다. 1997년 한국 정보당국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낱장 여러 개이던 이 명단을 김애란 씨가 과거에 직접 바느질로 다 꿰맸다고 한다. 납북자를 구출할 때마다 최 대표는 이 명단을 보여준다. “명단 순서대로 내려가며 ‘이 사람 아냐’고 묻습니다. 우리 아부지 순서가 될 때마다 가슴이 쿵쾅쿵쾅 떨립니다.” 초강성 이미지 내면에는 분단의 질곡으로 얼룩진 가족의 슬픔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엄마, 아부지’에겐 언제나 아버지가 납북됐던 그해, 열다섯 살 아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다. 최 대표는 2004년부터 일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와 관련된 정보를 접하게 됐다. 납북자 문제를 오래 다루다 보니 관련 정보가 그에게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15일은 메구미가 1977년 11월 15일 납치된 지 37년이 되는 날이다.▼ “납북자 517명 외면하는 한국 정부, 너무해” ▼최성용 대표 인터뷰 ―메구미의 남편이 납북된 한국인 학생이라는 얘기를 처음 알렸는데…. “2004년 북한 관계자로부터 ‘메구미의 남편 김철준은 한국에서 끌려온 학생’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직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 당시 일본 외무상,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현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한일 정부가 공동으로 조사해 달라’는 청원서를 속달로 보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일본 총리가 관방장관이었던 때다.” ―어떻게 됐나. “한국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일본 정부는 1주일 만에 응답했다. 일본 외무성 고위관계자와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일본 정부는 메구미 딸의 DNA를 확보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와 함께 한국에서 납북된 학생 5명의 남쪽 가족 DNA를 구했다. 혹시라도 외교 문제가 될까 싶어 한국 외교부에 전화했더니 ‘대표님이 알아서 하세요’라는 답만 돌아왔다. 통일부는 가관이었다. ‘조사 자체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김영남 씨가 메구미의 남편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후 일본 정부의 납치문제담당 부서와 계속 협력해 왔다.” ―이번 메구미 사망 조사에 대해 일본 정부가 부인하는 등 반응이 묘한데…. “메구미 사망 당시 북한 병원에 근무했던 관계자의 존재를 파악하고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대책본부가 조사를 결정해 질문서를 직접 만들었다. 일본 국민 세금으로 납치 문제의 진실을 조사한 공무원을 부정하는 정부가 어디 있나.” ―일본 정부가 어떻게 해야 순리에 맞는 것일까. “메구미의 죽음이 북한 주장과 달리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며 북한이 시신을 유기했다는 인권 유린의 증거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거짓말에 초점을 맞춰 진상조사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 정부가 솔직하지 않다는 뜻인가. “북한의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교섭담당 대사는 협상 때마다 일본 기자들과 저녁 술자리를 하며 공공연히 ‘2002년에 일본에 통보한 공식 납북자에 대한 보고(메구미 등 사망 8명)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만났던 일본의 납치문제담당 고위 공무원들도 메구미의 사망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했다. 사람의 생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어떤가. “정부가 납북자 생사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정부에 알리는 실정이다. 상봉은 기회 몇 번 없는 이산가족 상봉 때 비공개로 납북자 몇 명 끼여서 만나는 게 전부다. 북한은 대남 선전에 적합하지 않은 납북자를 모두 ‘생사확인 불가’라고 통보한다. 그간 통일부 장관들을 만나 ‘생사확인 불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물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한 답만 들었다. 정부가 역할을 못하다 보니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처럼 극우적 일본 인사와 납북자 운동을 이유로 손을 잡고, 정부는 이런 한국 단체에 지원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지난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 증인으로 나와 호통을 쳤는데…. “김정일은 일본에 납북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한국 정부는 납북자에 대한 인정조차 못 얻어냈다. 범죄를 쉽게 시인하는 범죄자가 어디 있나. 노력을 해야지. 국회의원들에게 ‘517명이 눈 뜨고 북한에 납치당했는데 전담부서 하나 없다. 그러고도 외국 나가 선진국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느냐, 창피하지 않느냐’고 했다. 조국을 위해 죽은 사람도 외면한다. 아버지가 있었던 켈로부대에서 552명이 산화했지만 국회는 예우 법안 통과마저 방치하고 있다.”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박근혜 정부가 헌법 가치인 자국민 보호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박 대통령이 납북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서 위로했다.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 대표는 1977년 납북된 이민교(납북 당시 18세) 씨 얘기를 꺼냈다. 이 씨의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을 그리며 집 뒷산 나무를 껴안고 운다고 했다. 매일 아들을 위한 밥상을 차린다고 했다. 하도 껴안다 보니 나무가 닳았다고 했다. “북한의 범죄를 용서해줄 테니 만나게만 해달라는 게 이 씨 어머니 소원이다. 그 소원 못 들어주면…, 나라도 아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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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측, 납치담당상에 메구미 사망 조사내용 보고”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측이 일본 납북자 문제의 상징 요코타 메구미(橫田惠)의 사망 배경 조사 과정에서 조사에 참여한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에게 “조사 결과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보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메구미의 사망과 시신 유기에 대한 증언이 담긴 보고서에 대해 7일 한 일본 방송에 출연해 “신빙성이 없다”고 부정했다. 최 대표는 10일 “올해 9월 11일 메구미의 사망과 시신 유기를 목격한 북한 병원 관계자의 증언을 듣기 전까지 서울의 내 사무실에서 납치문제대책본부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조사를 위한 협의를 했다”며 “이때 대책본부 관계자가 아베 총리에게 보고하겠다는 말을 해 증언 조사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증언을 들은 뒤 대책본부 측은 최 대표에게 “(일단) 야마타니 에리코(山谷えり子) 납치문제담당상에게 보고했다”고 전했다고 한다. 한편 일본 내에서 “아베 내각이 메구미 사망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망 및 시신 유기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만큼 이를 활용해 북한에 메구미 사망 진실에 대한 집중 조사를 요구하는 게 맞다”는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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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과 뻔한 납북자 재조사… 메구미 시신유기 보위부가 주도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교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납북자 문제 재조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바로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라는 점에서다. 국가안전보위부는 우리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6일 입수한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사망 배경 극비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메구미를 집중 감시해왔고, 사망한 뒤에는 직접 시신 유기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납북자 인권 유린의 책임자가 이 사건 재조사를 주도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가 만든 7개 질문에 자필로 답변한 증언자들은 “1977년 납치된 메구미는 건강, 정신상태가 좋았으나 국가안전보위부의 심한 조사로 건강 상태가 악화됐다”고 밝혔다. 메구미가 사망한 평양 49호 예방원(정신병원)에서 완전격리병동에 수용됐을 때도 국가안전보위부가 수시로 감시하고 방문자까지 차단했다고 한다. 1994년 4월 10일 메구미가 사망한 뒤 같은 달 15일 메구미의 시신을 다른 시신 5구와 같이 구덩이에 파묻으라고 지시한 장본인도 보위부였다. 그런데도 북한과 일본은 올해 7월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교섭 사실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납북자 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서대하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발표했다. 공동 부위원장은 김명철 보위부 참사이고, 4개 조사 분과 중 핵심인 납치피해분과 위원장은 강성남 보위부 국장이었다. 납북 문제 재조사의 핵심을 모두 보위부가 맡은 것. 그야말로 “범죄자가 수사에 나섰다”는 점에서 북-일 교섭에 험난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정부 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서대하와 면담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방북 보고를 받은 뒤 “북한이 과거 일본인 납치 조사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각도에서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북한이 조사 진행 상황을 설명했으나 구체적인 정보가 새로 포함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은 “납치 피해자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9일 “북-일 교섭은 사실 납북자 문제 해결이라는 본궤도에도 못 들어가서 전망이 어둡다”며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먼저 얘기하자고 했지만 북한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북한 지역에 남은 일본인 배우자,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 등을 먼저 얘기하자고 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 정부가 인정한 공식 납북자 중 4명의 납북 사실을 부인했다가 이 중 2명의 납북을 북한이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메구미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일본 여론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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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對北공조, 한중 對日공조 모두 난기류

    북한이 8일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의 방북과 억류 미국인 석방을 허용한 것은 9월 이후 지속한 외교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 강석주 당 비서와 이수용 외무상을 내세운 ‘인권’과 ‘경협’ 외교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주변국 외교로 눈을 돌린 결과가 한국 대외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북, 일→한→미 순으로 대화상대 옮겨 북한은 먼저 일본에 집중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9월 말에 북-일 납북자 문제 1차 교섭 결과물이 나왔어야 했지만 납북자 범위와 재조사 방법 등의 문제로 협상이 벽에 부딪치자 남북관계 개선 카드를 꺼냈다. 10월 4일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황병서 3인방’이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일주일 만에 경기 연천군에서 총격을 가하며 대북 전단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자 남북 관계는 급랭했다. 지난달 30일로 제안했던 2차 남북 고위급접촉도 무산됐다. 결국 남북 관계에서도 돌파구를 만들지 못한 북한은 북-미 관계로 다시 방향을 돌렸고, 억류 미국인 석방으로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한국과의) 사전협의에서 누차 강조한 것은 (클래퍼 국장의 방북이) 인도주의적 목적이며 미국의 대북정책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데도 미국 설명에만 안주한다면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북-미-중-일-러 모두에 주도권 상실 미국은 이번 교섭에서 누가 방북하는지, 구체적인 석방조건은 무엇인지 한국에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11월 중간선거로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에 뺏긴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정국 주도권 회복이 절실한 만큼 북-미 관계에 무리수를 둘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제는 북-미가 속도를 내도 당국 간 채널이 끊긴 한국은 북한에 쓸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이르면 이달 말 방북을 앞둔 이희호 여사가 유일한 끈이다. 북-러 관계도 상승세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국방부장관에 해당)이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고 9일 보도했다. 드미트리 야조프 전 소련 국방장관의 90세 생일 축하차 방문한 현 부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인사를 전했고 푸틴 대통령은 감사를 표시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중일이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한 것도 한국에 숙제를 던졌다. 불편한 중일 관계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 하여금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하고 방공식별구역(ADIZ) 문제에서 한국 의견만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일 관계가 개선되면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낮아진다. 최근 불거진 독도 입도지원시설 공사 중단처럼 잡음을 일으킬 게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를 좀 더 전략적으로 활용했어야 한다는 비판론이 나오는 이유다. 한일은 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내년 국교 수립 50주년 공동행사 개최 등 산적한 과제를 두고도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핵 문제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북-미 접촉이 급진전되긴 어려워 한국이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주변국이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현상 유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조숭호 shcho@donga.com·윤완준 기자}

    •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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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언자 보호’ 日정부 약속 명시… 납치담당상 “노코멘트”

    일본 정부가 올해 9월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의 사망 배경을 극비 조사한 사실을 부인하면서 거짓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7일 기자회견에서 조사보고서 작성과 일본 납치대책본부의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동아일보가 입수한 극비 자료에는 일본 정부의 개입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기획관 등 관계자 명함이 첨부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보고서에는 또 ‘질문들을 통해 얻은 정보 등 증언자 정보’에 대한 비밀 확약 문구와 함께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무국’도 적시돼 있다. 증언자를 상대로 메구미 사망의 원인을 묻는 질문의 주체가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증언자가 일본어를 못하는 북한 출신임을 감안해 질문과 ‘정보 비밀 확약’ 문구가 모두 한글로 작성됐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스가 장관과는 달리 야마타니 에리코(山谷えり子) 납치문제담당상은 이날 납치문제대책본부의 조사 관여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삼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가 메구미 사망과 시신 유기 증언이 담긴 조사 내용을 부인한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진행 중인 북-일 교섭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북-일 교섭은 메구미의 생존을 매개로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빅딜’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메구미의 타살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나오면서 북-일 교섭의 기본 전제가 무너진 셈이다. 아베 정권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한미일 3국의 대북 제재 공조 체제를 깨면서까지 대북 제재를 일부 풀었던 만큼 대외적 파장도 우려되는 사안이다. 스가 장관이 메구미가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했다는 병원 관계자의 증언이 담긴 조사보고서에 대한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삼가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파장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스가 장관의 발언은 거짓말 논란으로 번지면서 정치적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그는 ‘메구미가 사망했다는 이번 정보의 신빙성은 정부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가 직접 만든 질문에 따른 증언까지 스스로 부정한 것이기도 하다. 대책본부는 9월 조사에서 “메구미가 죽었을 때 곁에 사람이 있었나?”라고 묻기도 했다.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와 함께 조사에 참여한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6일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로부터 ‘관계자 신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보고서 내용을 공개해도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런데도 스가 장관이 보고서가 정부와 관련이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납치문제대책본부는 아베 총리가 처음 총리에 올랐던 2006년 9월 내각에 설치됐다. 총리가 본부장이며 모든 각료가 참여하고 있다. 정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주요 업무는 납치 관련 정보 수집과 국민 계몽, 대북 라디오방송 운영 등이다. 메구미 사망을 목격한 북한 관계자 면담은 정보수집 활동에 해당한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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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대통령 野시절 “자국민 구출은 정부 의무”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던 2006년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橫田滋) 씨와 김영남 씨(메구미의 남편)의 어머니 최계월 씨를 직접 만난 일이 있다. 메구미 사망 배경에 대한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의 조사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박 대통령의 당시 언급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상적인 정부라면 자국민이 납치된 것에 대해 소극적으로 할 수 있느냐”며 “만사 제쳐놓고 자국민을 구해 가족과 만나게 하는 게 정부의 최고 의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당시 “북한의 비민주적 납치 문제, 인권 문제는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사안이 됐다.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서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현 정부의 노력은 당시 박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권 2년째인 박근혜 정부는 납북자 문제 해결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 2월 이산가족 상봉에서 2명의 납북자가 남측 가족을 만났을 뿐이다. 정부는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사되면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협상 의제로 올릴 계획이었지만 고위급 접촉도 무산된 상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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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은 비밀조사라도 하는데 한국은…”

    “일본 정부는 비밀 조사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자국민 납북의 진실을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국회는 납북자 문제 해결에 너무 소극적이다. 슬픈 자화상이다.” 일본 정부의 납치문제대책본부와 함께 9월 일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의 사망 배경 조사에 참여한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사진)는 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토로했다.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일본인 납북자는 17명이지만 한국 정부가 인정한 한국인 납북자는 517명이나 된다. 한국의 납북자 가족들이 원하는 건 일본처럼 귀환도 아니다.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0∼2014년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북한에 비공식적으로 생사 확인을 요청한 납북자는 140명. 이 가운데 생사가 확인된 사람은 46명뿐이다. 북한은 나머지 94명에 대해 ‘확인 불가’라고 통보했다. 전체 납북자 517명 가운데 무려 377명은 생사 확인 요청도 하지 못했다. 남한 가족과 상봉한 납북자는 18명밖에 안 된다. 최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납북자 문제 해결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내게 ‘국민들이 납북자 문제에 관심이 너무 없다. 납북자가족모임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납북자 문제 해결은 정부가 해야 할 몫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와 납북자가족모임 관계자들은 이날 통일부를 찾아 정부의 납북자 문제 무관심에 대한 항의 표시로 모임의 법정단체 자격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는 “납북자가족모임도 과거엔 대북 전단을 날려 보냈지만 지난해부터는 정부의 남북 대화 진전에 기여하기 위해 보내지 않고 있다”며 “이런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2006년 납북자 가족들을 만날 당시의 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번 메구미 사망 배경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납북자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땅에 시신을 유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은 ‘인권국가’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며 “북한인권결의안을 추진 중인 유엔이 이번 조사 결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메구미가 한국인 납북자는 아니지만 보편적 인권에 관련된 사안이니만큼 한국 정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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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메구미 사망 조사’ 증거에도 발뺌

    일본 정부가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의 사망 배경을 놓고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와 공동 조사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동아일보가 7일 입수한 A4 용지 9쪽짜리 극비 보고서에는 조사에 관여한 일본 정부 인사 3명의 명함이 첨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정부가 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문서로 분명히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공개된 뒤에도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어서 논란이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보고서 마지막 부분에는 일본 내각관방 납치문제대책본부 기획관(한국의 국장급 또는 심의관급) 1명과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무국 내각사무관 2명의 명함이 최 대표의 명함과 함께 붙어 있다. 명함 위에는 ‘질문들을 통해 얻은 정보에 대해서는 응답자 성명과 생년월일 등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음을 확약합니다.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무국’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동아일보가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도 조사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다”고 보도한 데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 납치된 메구미가 과다한 약물 투여로 사망했다는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이날 밤 BS후지 TV에 출연해 본보 보도와 관련해 “여러 정보가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신빙성이나 증거가 없다. 이번 정보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성용 대표는 “납치문제대책본부 측과 조사 보고서를 잘 받았다는 수령증을 교환했으며 기획관 명의의 수령증을 보관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로부터 조사 결과가 납치문제담당상에게 보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야마타니 에리코(山谷えり子) 납치문제담당상은 이날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보고서의 존재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삼가고 싶다”고만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도쿄=배극인 특파원}

    • 201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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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메구미, 北의 약물 과다투여로 숨졌다”

    일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1977년 납북)가 북한의 독극물이나 약물 과다 투여로 사망한 뒤 관(棺)도 없이 다른 시신과 뒤섞여 야산에 묻혔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같은 사실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교섭을 진행 중인 일본 정부의 극비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메구미가 생존해 있을 수도 있다”며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 왔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메구미가 자살했다”고 주장한 것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번 증언에 따라 대북제재를 풀면서 대북 교섭에 나섰던 아베 정권은 “결국 북한에 농락당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출범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일보는 6일 메구미의 사망을 목격했던 북한 관계자를 면담한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와 한국의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의 공동 조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아베 내각에 보고된 보고서에는 양측이 9월 11일 메구미가 사망한 정신병원인 평양 49호 예방원 관계자 2명을 제3국에서 만나 조사한 내용이 들어 있다. 아베 정권이 국민적 관심사였던 메구미 문제를 두 달 가까이 숨겼다는 논란을 일으킬 사안이다. 증언에 따르면 메구미는 ‘완전격리병동’에 갇혔다가 서른 살이던 1994년 4월 10일 사망했고, 15일 인근 야산에 묻혔다. 증언자들은 “정신병 약인 정신진정제 수면제 약물 위주로 먹고 주사받았다(주사를 맞았다)”며 수면제 하이미날 등 약의 종류와 복용량을 언급했다. 이들은 “환자가 죽었을 당시 온몸에 청색 반점이 있었다”며 “독극물이나 지나친 용량의 약물을 먹거나 주사로 맞았을 때 볼 수 있는 소견”이라고 밝혔다. 이어 “(메구미의) 시체는 (국가안전)보위부 (노동)당 조직의 지시로 뜨락또르(트랙터) 적재함에 다른 시체 5구와 함께 실어 산으로 옮겨 관도 없이 그냥 같은 구덩이에 묻었다”고 했다. 북한이 2004년 일본에 보낸 유골의 유전자(DNA)가 메구미와 일치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열쇠인 셈이다.:: 메구미 납북 사건 ::일본인 납북 피해자의 상징적 사건. 요코타 메구미는 중학교 1학년(13세)이던 1977년 11월 니가타 현의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다 실종됐고 김정일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그의 납북 사실을 인정했다. 북한은 2004년 메구미의 유골을 전달했으나 유전자(DNA) 검사 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확인됐다.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 도쿄=배극인 특파원}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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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납북 메구미, 약물 과다투여 사망]“정신병동 수용… 死後 온몸에 청색반점”

    《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일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의 사망 배경을 공동 조사한 극비 보고서에는 북한 당국이 자행한 인권 유린 등 비참했던 메구미의 북한 내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A4 용지 9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가 만든 7개 질문에 증언자들이 수기(手記)로 답변하는 형태로 작성됐다. 보고서 마지막에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무국’이 만든 문건임을 명시했다. 그 아래에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관계자 3명과 최 대표의 이름을 함께 적시했다. 보고서 원본은 일본 정부가 갖고 있으며 한국 정보당국도 사본을 확보했다. 다음은 보고서 전문이다. 》 ■ “병원 왔을때 건강 좋았지만 심한 조사로 악화”[1] 그 여성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인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요코타 메구미는 언제 어디서 ①봉화진료소로 왔습니까? 요코타 메구미가 왔을 때 그의 정신 및 신체 상태는 어땠습니까?“병력서(진료기록서)에 ②류명숙 녀자(여자) 1964년 10월 5일생. 1977년 일본에서 조선(북한)으로 붙잡혀 들어왔고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처음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건강상태, 정신상태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심한 조사를 받으면서 건강 상태가 나쁘게 되여(되어) (국가안전)보위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저에게 일본에 있는 고향 주소를 알려주면서 자기 소식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봉화진료소는 ③이 녀성(여성)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①평양의 고급간부 전용병원 ②메구미의 북한 이름 ③‘메구미가 있던 병원’이 봉화진료소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 것) ■ “약물 먹기도 하고 주사 맞기도 해”[2] 요코타 메구미의 주치의는 누구였고 어떤 경력을 가진 의사였습니까? 그 주치의는 메구미에게 어떤 치료를 했습니까? 요코타 메구미의 간호를 담당한 다른 간호원이 있었다면 성명과 주소, 직업과 지위를 설명해 주십시오.“그 일본 녀성은 정신과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담당한 주치의사는 남 선생이었습니다. 정신병 약인 정신진정제, 수면제 약물을 위주로 먹기도 하고 주사받기도 하였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명절날에는 의사 간호원들이 교대하여 근무하였습니다. 평양시 **구역 **동 **반 ④○○○”(④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증인 2명 중 1명”이라고 말했다. 증언자의 안전을 위해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다) ■ “밤마다 ‘아버지 어머니’ 부르며 서럽게 울어”[3] 요코타 메구미는 진료소에서 하루를 어떻게 지냈습니까?요코타 메구미와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요코타 메구미를 병문하거나 병세를 확인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있었습니까?“⑤같이 끌려온 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서 조선에 들어온 사연, 고향에 있는 부모님 이야기, 조선(북한) 간부들이 조선에서 교육받은 후 일본으로 다시 보내준다고 약속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약속대로 부모님께 서신을 보내고 련락(연락)하자는 문제를 가지고 심하게 다투었고 그 후 남편이 그 녀자를 멀리하였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부모님을 찾는 서러운 울음소리(⑥오상오상)가 들렸습니다. 국가보위부가 수시로 감시하였고 방문자도 차단하였습니다. 해외동포영접부 사람들도 가끔 들르기도 하였습니다. 인민반장과 주변사람들 중에 비밀정보원을 잠입시켜 감시하였습니다. 그 녀성은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에는 특별히 격리병동에 따로 입원하였습니다. 그 ⑦정신병원은 기차역에서 도보로 몇 시간 걸어야 갈 수 있는 산골짜기에 있었습니다. 간혹 탈출할 수도 있고 그러면 주택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외진 곳에 병동을 지었다고 합니다.” (⑤1978년 납북된 한국인 김영남 씨 ⑥‘오토상(아버지)’, ‘오카상(어머니)’을 잘못 들은 것으로 보인다. ⑦평양 49호 예방원) ■ “진정제-수면유도제 등 치사량 가깝게 투여”[4] 요코타 메구미에게 어떤 약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느 정도 투약했습니까?“⑧디아제팜(Diazepam) 0.002 1정 용량. 1일 2∼3회 1회 2정∼5정 내복. 정신환자의 진정 목적으로 처방. ⑨하이미날(Hyminal) 0.1 1정 용량. 1일 2회 1회 2∼4정씩 내복. 강력한 수면작용 있음. 5정 이상 투여 시 20여 시간 수면 유도할 수 있고 10정 이상 투여 시 치사량이 될 수 있음. ⑩아미나진(aminazin) 알약(Tab) 주사(inj)로 각각 처방받음. 주사 2ml∼5ml 정도 주사(근육주사함). 진정 및 수면유도 작용함. 치사량이란? - 생명을 잃을 정도의 과량을 의미함.”(⑧정신안정제 ⑨신홍범 코슬립수면센터 원장은 “하이미날은 5mL 짜리를 하루 최대 8번 복용하면 40mL로 이는 상당히 높은 투여량이며 치사량 수준이다. 노인이나 몸이 약한 사람들은 하루에 10mL만 먹어도 많이 복용하는 셈이다. 하이미날은 호흡을 억제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⑩신경증이나 정신병에 쓰는 진정제의 일종. 북한식 표현임)■ “사망하자 보위부-黨 지시로 구덩이 파고 묻어”[5] 요코타 메구미가 사망했다면 어떤 원인으로 언제 사망했습니까? 요코타 메구미가 죽었을 때 곁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까? 있었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요코타 메구미가 죽은 후에 시신을 처리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요코타 메구미의 시신이 어떤식으로 처리됐다 등 들은 바가 있습니까?“저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본 병원에 근무하였습니다. 그 환자는 1994년 4월 10일 사망하였습니다. 며칠 후 4월 15일 산에 묻었습니다. 시체는 (국가안전)보위부와 당 조직의 지시로 산에 직파하였습니다. 직파란 관도 없이 그냥 구뎅이(구덩이) 파고 그대로 묻는 것을 말합니다. 뜨락또르(트랙터) 적재함에 다른 시체 5구와 함께 싣고 같은 곳에 묻었습니다. 당일날 의사 1명 간호원 1명 간병원 5명이 처리작업을 하였습니다. ⑪그 녀자 환자가 죽었을 당시 온몸에 청색 반점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망 환자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소견입니다. 독극물이나 지나친 용량의 약물을 먹거나 주사했을 때 볼 수 있는 소견으로 알고 있습니다.”(⑪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독극물이나 약물을 과다 복용하면 온몸에 청색 반점이 생길 수 있다. 독극물이 담긴 약물로 피하 치료 등을 시도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출혈 부위가 푸르게 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법의학 전문가들은 “시반 색깔만 가지고 사인을 추정하는 건 어렵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외부와 철저히 격리… 밖에서 자물쇠 채워”[6] 봉화진료소 소재지는 어디입니까? 봉화진료소 및 그 부속 시설들의 위치관계를 그림으로 그려주십시오. 북조선은 요코타 메구미가 입원한 것은 49호 예방원이라고 주장했었는데 봉화진료소와 49호 예방원은 같은 시설입니까? 요코타 메구미는 진료소 몇 동 몇 층 몇 호실에 있었습니까? 봉화진료소 전체의 의사 간호원 입원 환자 수는 몇 명 정도였습니까?“(봉화진료소와 49호 예방원은 같은 시설이) 아닙니다. 평양시 49호 병원(예방원). 평양시 **구역 **리 **1동 **반 ⑫○○○. 의사 10명 간호원 11명 간병원 15명 경리과 직원 4명 약국 직원 3명 식당 식모 3명. 격리병동(입원실) 특별격리병동은 따로 있었음. 남자 병동 여자 병동. 침대 수는 모두 100개. 1개 호실에 2∼5개 침대가 있고 침대가 없는 장판 호실도 있음. 1인용 호실도 있음. 식당, 병원장실, 의사실, 간호원실, 처치실, 주사실, 청년학교, 비서실, 경리과가 있었음. 완전 격리병동에는 의식장애가 심한 환자들이 따로 격리되어 있음. 매 호실에는 출입문에 밖에서만 열 수 있는 자물쇠가 있음. 식사는 심한 환자들은 운반 식사하고 경한 환자들은 식당에 와서 먹습니다.⑬”(⑫증언자 2명 중 또 다른 인물 ⑬이 말을 한 뒤 병원 시설들을 그림으로 그렸음)[7] 요코타 메구미 이외의 다른 일본인 납치 피해자에 대해 보거나 듣거나 한 적은 없습니까?“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2014년 9월 11일.”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최지연 기자}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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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증언자 2명, 현재 北 탈출… 메구미 부모와 면담 추진

    “요코타 메구미의 타살과 시신 유기를 증언한 관계자들과 메구미 부모와의 직접 면담을 추진할 것이다.” 일본 정부의 납치문제대책본부와 함께 메구미 사망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한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6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런 계획을 일본 정부에 전했다”고 밝혔다. 증언자 2명은 메구미가 1994년 사망할 당시 정신병원인 평양 49호 예방원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들이다. 증언자들은 현재 북한을 탈출한 상태이며 신변 안전이 보장된 곳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와 최 대표는 제3국에서 비밀리에 증언자들을 면담 조사했다. 조사에는 이틀이 걸렸고 증언자들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자필로 기록을 남겼다.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무국은 이들의 증언이 담긴 보고서 마지막에 “질문들을 통해서 얻은 정보에 대해서는 응답자 성명과 생년월일 등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음을 확약한다”라고 명시했다. 그만큼 증언자 보호에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증언자들은 △사망한 메구미의 시신과 유기 장면을 목격했고 △메구미에게 투여한 약품의 종류와 투여량, 위험성까지 자세히 밝혔을 뿐 아니라 △메구미가 갇혀 있었던 평양 49호 병원의 종사자, 병동 배치까지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만큼 이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최 대표는 “증언자의 존재를 확인한 뒤 올해 7월부터 일본 정부와 함께 조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2006년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 씨라는 사실을 DNA 조사로 밝혀내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공동작업을 했다. 이후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와 계속 협력해 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4-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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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동창리 발사대, 은하3호때의 2배 높이 완공”

    북한이 2012년 12월 발사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보다 상당히 크고 무거운 발사체를 장착할 수 있는 발사탑 건설을 끝낸 사실을 정부가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5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기지에 높이가 60m에 조금 못 미치는 발사탑 건설이 완공 단계”라며 “은하 3호 발사 이후 증축된 발사탑 높이가 당시보다 훨씬 높아진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사탑만 보면 사거리 1만3000km, 높이 30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됐던 은하 3호보다 높이가 2배 가까이 되는 발사체를 장착할 수 있는 셈이다.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올해 몇 차례 고폭실험(핵무기 기폭장치의 정상 작동을 확인하기 위한 고성능 폭발 실험)을 했으며 이는 예년에 비해 횟수가 늘어난 것”이라며 “북한은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고 폭발력을 키우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기술이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미사일 엔진 성능을 높이기 위한 시험도 수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아직 기존 은하 3호의 사양을 능가하는 북한의 발사체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발사대의 높이가 상당한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에서 북한이 개발하는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와 무게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발사하려는 장거리 로켓의 연료량이 많아지고 로켓의 엔진 출력도 커졌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은하 3호보다 사거리가 늘어나고 폭발력이 커진 ICBM 발사를 북한이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북한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발사탑에 로켓을 올리는 발사 임박 징후는 아직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 201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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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30일’ 하루前까지 삐라 타령만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남북 고위급 접촉의 전제조건으로 삼아 30일 접촉을 무산시켰다. 북한 국방위원회 서기실은 29일 새벽 서해 군 통신선 채널을 통해 대통령국가안보실 앞으로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남측이) 법적 근거와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삐라(대북 전단) 살포를 방임하고 있다”며 “(남측은) 관계 개선의 전제, 대화의 전제인 분위기 마련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합의한 2차 고위급 접촉을 무산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전통문에서 회담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정부도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은 부당한 요구”라며 수용 불가로 맞서 30일 회담은 무산된 것.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 또한 불가피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북한의 태도는 한국 정부가 이번에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 시늉이라도 보여주길 바란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TV를 보는 김정은이 TV에 나온 대북 전단 얘기를 보고 화내면 관계 기관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그래서 총격까지 벌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남북대화도 없다는 식으로 협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일행의 4일 깜짝 인천 방문도 ‘조건 없는 관계 개선’ 메시지가 아니었다”며 “대북 전단 문제 등 군사적 문제가 해결돼야 고위급 접촉이 가능하다는 북한의 접근방식을 한국 정부가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설령 정부가 전단 살포를 막는다 해도 북한이 다른 시비를 걸고 나와 대화에 진전이 없으면 정부는 코너에 몰려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를 잃을 것”이라며 “북한의 꼼수에 넘어가지 않게 행보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북한이 결국 대화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난 해결이라는 ‘대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겨울로 접어드는 11월부터 북풍이 불면 민간단체들은 전단을 살포하지 않는다. 그때 북한이 대화 공세를 다시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대북 전단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불편한 상황에서도 ‘아량’을 베풀어 대화에 나왔다며 한국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북 2차 고위급 접촉 30일 개최 제의(13일)와 수용 촉구(28일) 모두 판문점 연락관 채널로 보낸 남측과 달리 북한은 판문점 채널을 가능한 한 피하고 있다. 북한은 서해 군 통신선 채널로 연락하면서 청와대를 협상장으로 불러내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김정안 jkim@donga.com·윤완준 기자}

    •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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