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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설을 맞아 가족과 함께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국 각지의 박물관과 고궁 등에서 풍성한 볼거리와 다양한 즐길 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15일부터 18일까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궁과 종묘, 조선 왕릉을 무료로 개방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하는 종묘도 연휴 기간에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할인 행사에서 제외된다. 궁궐은 함께 어울리며 체험하는 다양한 설맞이 문화 행사도 마련했다. 경복궁 집경당에서는 16일부터 이틀간 전각 아궁이에 불을 피워 온돌을 체험하며 어르신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는 ‘온돌방 체험과 세배 드리기’가 열린다. 덕수궁과 영릉(英陵·세종대왕 능), 현충사, 칠백의총 등을 방문하면 윷놀이, 투호 같은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전국 국립박물관들은 16일 설날 당일만 휴관하고 나머지 연휴 기간 내내 다채로운 행사를 벌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5일부터 18일까지(16일 휴관) ‘2018 무술년 설맞이 한마당’을 개최한다. 17, 18일 박물관 로비를 찾아가면 한복 입는 법과 함께 세배하는 법을 직접 배울 수 있다. 박물관 앞마당에선 복주머니와 복조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떡국과 가래떡, 한과를 나눠 먹는 자리도 함께 마련한다. 무술년 개띠를 맞아 설 연휴 기간 박물관을 방문한 개띠 관람객에게는 복주머니를 선착순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어린이박물관 앞마당에선 개 모양 가습기 만들기와 개 그림 판화를 찍어보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흥겨운 우리 농악과 전통연희도 준비해 15일에는 파주농악 한마당과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기원 ‘서울 천신굿’을 진행한다. 17일엔 전통 연희와 사자놀이 국악실내악이, 18일에는 이리농악 한마당과 다채로운 한국 무용을 즐길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5, 18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을 위해 인기 애니메이션 ‘개구리 왕국2’ ‘산타의 매직 크리스탈’ ‘아기 배달부 스토크’ ‘눈의 여왕2’를 오후 1시, 4시 하루 두 번 박물관 강당에서 상영한다. 17일에는 마리오네트 공연을 신라미술관 앞마당에서 진행한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관람객이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떡메치기, 삼색 쌀강정 및 다식 만들기, 인절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자리를 신라역사관 앞마당에서 마련한다. 15일과 17일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아가면 새해 다짐을 간직할 수 있는 가훈과 명언 쓰기를 해볼 수 있고 전통 연과 윷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국립광주박물관은 다양한 전통놀이를 준비했다. 설 연휴 기간 내내 도롱테 굴리기,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팽이치기, 복주머니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올해 운수가 궁금한 관람객을 위한 ‘재미로 보는 윷점’과 가정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부적 만들기’ 등도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선 한국 근현대사를 노래로 조명하는 공연 ‘역사를 담아 노래하다’를 14일에 즐길 수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려시대 제작된 국내 최대 석불인 ‘은진미륵(恩津彌勒 ·사진)’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충남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미륵보살입상이어서 ‘은진미륵’으로 불리는 이 불상은 높이가 18.12m로 국내 최대 규모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이 받침인 대좌를 합쳐 5m인데 이보다 3배 이상 큰 것이다. 고려 4대 임금 광종의 재위 기간인 968년경 고려 왕실의 지원을 받아 승려 조각장 혜명이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 불상은 좌우로 빗은 머리 위에 커다란 원통형 보관(寶冠·불상에 얹는 관)을 쓰고 있고 체구에 비해 큰 얼굴의 이목구비가 명료하고 인상적이다. 정제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통일신라시대 불상과는 달리 압도적 크기와 육중함, 파격적이고 대담한 미적 특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은 “고려 불상 중 월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을 국보로 승격함으로써 고려의 불교조각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보 가운데 고려시대 불상은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제45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제48-2호),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제58호), 금동삼존불감(제73호),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제124호),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제308호) 등 6점뿐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국보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선사시대부터 고대 국가까지 사회를 이끈 리더는 으레 남성이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통념을 뒤집는 청동기시대 문화재가 출토됐다. 여성이 부족을 이끈 제사장이나 정치체제 수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人骨)이 국내 처음으로 확인됐다. 강원대 중앙박물관은 “2016년 강원 평창군 하리 발굴 현장에서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된 인골을 분석한 결과 인골의 성별이 여성으로 확인됐다”고 13일 밝혔다. 청동기시대 여성 인골이 한반도에서 출토된 적은 있으나 당시 지배층의 전유물인 동검과 함께 발견된 것은 사상 최초다. 고고학계와 고대사학계에선 청동기시대의 정치체제에 대한 재접근이 필요할 만큼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인골은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이 진행한 2016년 발견 당시부터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인골과 동검이 따로 발견된 적은 있으나 한반도에서 두 유적이 함께 나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2년 동안의 분석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김재현 동아대 고고미술학과 교수팀이 대퇴골 크기와 근육, 치아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인골의 성별이 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의 나이는 20대 초반, 신장은 160.4cm로 추정됐다. 초기 철기시대 여성으로 알려진 경남 사천시 늑도 유골보다 10cm 이상 월등히 클 정도로 신체 조건이 좋았다. 청동기시대에 동검과 함께 매장하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동검은 제례 의식을 지낼 때 이용되는 제기(祭器)로 제사장이나 정치적 지도자의 무덤 등지에서만 출토된다. 이번에 발견된 비파형동검은 길이 26.3cm, 폭 3.8cm로 두 동강 난 채로 석관 동쪽 측면에 묻혀 있었다. 출토 동검의 양식은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의 특징을 지녀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경 인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한국 선사·고대사에서 여성이 제사장이나 정치 지도자였던 기록은 신라 2대 왕인 남해차차웅의 여동생 아로공주(阿老公主)가 가장 빨랐다. 김창석 강원대 중앙박물관장(강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은 “삼국시대 초기 여성이 제사를 주관했다는 극히 적은 기록이 있지만 이보다 앞선 선사시대엔 여성 제사장이나 지도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며 “고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시사하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성 인골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래한 청동기문화의 양상을 새롭게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본에선 청동기시대였던 야요이(彌生)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에 여성 제사장이었던 히미코가 왕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김재현 교수는 “그동안 한반도의 비파형동검 등 물질 중심으로 청동기문화가 일본에 전래됐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 발견을 통해 여성의 사회 참여 등 사회·정치적인 제도 역시 일본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강원대 중앙박물관은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0일부터 평창 하리 일대에서 발굴한 석관묘와 인골, 관옥과 토기 등을 복원한 모습으로 전시한다. 김 관장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강원도의 유구한 역사와 고대 문화를 널리 알리고 관련 연구를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석굴암과 불국사 등 한국의 아름다운 불교 문화유산을 보면서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과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8일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만난 쑴 맙 캄보디아 압사라청장(43)은 환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압사라(APSARA)청은 캄보디아의 상징인 앙코르 유적지 보존 복원, 활용 등을 담당하는 특별 행정기구다. 쑴 맙 청장은 한국 문화재 보존 현황을 보고 느끼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앙코르 유적은 캄보디아 국민들의 정신적 수도로 여겨질 만큼 상징성이 크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보존 상태가 열악해 당시 유네스코는 등재 조건으로 전담 관리기구 설치를 주문했다. 이때 탄생한 것이 압사라청과 ‘앙코르 역사유적 보호개발 국제협력위원회(ICC-Angkor)’다. ICC에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문화재 보존기술 선진국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 앙코르 유적지 내 프레아 피투 복원 사업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힌두사원 4개, 불교사원 1개로 구성된 피투 사원은 12∼15세기경 건축물로 추정되며 규모는 약 12만6000m²에 이른다. 하지만 주변 수목 환경에 의한 영향 및 오랜 기간 이뤄진 풍화작용으로 전반적인 석재 보존 상태가 취약했다. “한국은 ICC 국가 중 가장 뒤늦게 참여한 막내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복원기술을 지닌 데다 캄보디아 연구진과 결과 공유에도 적극적이죠. 심지어 현지에 구조 실험실까지 지어줬습니다. 캄보디아 문화유산 역량 강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가장 많이 준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에요.” 한국문화재재단은 2015년 9월부터 진행된 피투 유적의 1단계 복원사업을 올해 9월 마무리할 방침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예산 40여억 원을 투입했다. 문화재청의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 복원사업과 함께 한국 문화유산 분야 공적개발원조(ODA)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쑴 맙 청장은 “한국 문화유산 복원팀의 뛰어난 성과 덕분에 앙코르의 유명 유적지인 ‘코끼리 테라스’ 복원사업에도 추가 참여를 부탁하기도 했다”며 “한국과 캄보디아는 불교와 석재 문화재가 많다는 공통점을 지녀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는 13일 방송심의소위원회(방송소위)를 열어 최근 선정성 폭력성 논란을 빚은 SBS 드라마 ‘리턴’에 대해 법정제재에 해당하는 ‘경고’를 건의하기로 했다. 드라마 ‘리턴’은 17일 방영된 1, 2회에서 15세 이상 시청가능 등급임에도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을 많이 방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방송소위는 1, 2회의 시청등급을 19세 이상 관람가로 상향하는 방안도 함께 요구할 예정이다. 법정제재와 등급조정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추후 열릴 전체회의에서 결정된다. 리턴은 1, 2회 방송에서 속옷 차림의 여성을 세워둔 채 남성들이 파티를 벌이는 모습과 여성의 머리를 피가 나도록 유리컵으로 내려친 뒤 돈을 던져주며 무마하는 장면 등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내보내 시청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도 28건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소위에서는 주인공 최자혜를 연기하다 도중하차한 배우 고현정 씨와 담당 연출자인 주동민 PD와의 불화설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현장에서 폭행과 인신모독이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소위에 출석한 박명수 책임프로듀서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며 “시청자에게 혼란을 일으킨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방심위는 프로그램 내용이 심의규정을 크게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과징금, 정정·수정·중지, 관계자 징계, 경고, 주의 등 법정제재를 결정하고, 위반 정도가 가볍다고 보면 권고나 의견제시 등 행정지도를 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친숙한 레고 장난감이 1000년 전 신라인들의 토우와 함께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종목인 스키와 아이스하키를 즐기고 있다. 스타워즈의 주인공으로 변장해 당장이라도 외계인을 무찌를 듯한 앙증맞은 포즈를 취하는 토우(土偶)까지…. 신라의 왕성 경주 월성(月城·사적 제16호)의 발굴 현장과 출토 유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전시회가 열린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기획전 ‘프로젝트전 월月:성城’을 12일부터 4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획전에는 이상윤 배재대 교수, 양현모 일스튜디오 대표, 이인희 경일대 교수 등 미술작가 3명이 월성 발굴 현장을 주제로 만든 작품을 선보인다. 1부 ‘문라이트 오브 팰리스 앤드 미스터리’는 월성에서 나온 토기를 달로 형상화한 사진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월성 발굴 현장에서 나온 토기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평면이 깨진 정도에 따라 마치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이 연상된다. 또 월성은 모양이 반달과 비슷해 오랫동안 반월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자(垓字)에서 나온 동물 뼈에 특수 플라스틱인 에폭시를 부어 만든 독특한 설치물 역시 즐길 수 있다. 2부 ‘토우, 레고와 함께 놀다’는 흙으로 만든 자그마한 인물상인 토우와 레고를 조합한 작품을 전시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아이스하키를 하는 듯한 토우와 이슬람 문화권의 옷과 모자를 착용한 이색적인 토우도 공개된다. 레고 전시를 담당한 양현모 작가는 “삼국 중 신라에서만 볼 수 있는 토우의 크기가 평균 5∼6cm라 소형 레고 인형과 매우 잘 어울린다”며 “누구나 쉽고 편하게 문화재를 즐기자는 생각에 이 같은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마지막 제3부 ‘AD(기원후) 101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발굴 현장을 적외선 카메라와 3차원 입체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주 월성은 신라 파사왕 재위 시절인 101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935년 신라가 몰락할 때까지 궁성으로 사용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12월부터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이백과 두보, 한유와 백거이까지. 중국 고전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당(唐)나라(618∼907) 시기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당나라는 오랜 기간 전쟁 없는 평화의 시기를 보냈고, 실크로드를 통한 활발한 교역으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태평성대’를 누린 제국이다. 그 덕분에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던 이전 제국들과 달리 자신감과 풍요로움, 화려함이라는 키워드를 중국 문화 속에 뿌리내리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당시(唐詩) 100여 편을 통해 화려했던 당나라의 일상을 들쳐본다. 옷차림과 음식, 결혼과 축제 등 당대의 실생활을 보려면 딱딱한 역사책보단 일상을 기록한 시가 더 정확한 사료(史料)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를 통해 본 당나라는 넉넉하다 못해 호사스러웠다. “사방 이웃에서 꽃이 다투어 피니, 높은 누각에서는 지금부터 발을 내리지 말지니”라는 사공도(司空圖)의 시처럼 집집마다 꽃을 키우는 문화가 유행했다. 여성들은 3월이 되면 머리에 꽃을 가득 꽂고는 누가 더 아름다운지 경쟁한 ‘투화(鬪花)’를 즐겼다고 한다. 문학이 넘치는 시대이기도 했다. 특히 시가 유행했는데, 작은 널빤지인 시판(詩板)에 시를 적거나 병풍을 시로 채우는 문화가 퍼졌었다. 백거이가 원진에게 남긴 시를 보자. “그대는 내 시로 사원의 벽을 가득 채우고, 나는 그대의 시로 병풍을 채웠네. 그대와 서로 만나는 곳은 부평초 두 개가 큰 바다에 있는 꼴이니” 시로 우정을 나눈 당나라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풍요로운 삶과 함께 자신감 역시 넘쳤다. 두보는 당시 승상에게 바치는 시에서 “스스로 자못 빼어나다고 여겨서 곧장 중요한 지위에 올라, 임금을 요순 위에 이르게 하고 다시 풍속을 순후하게 하고자 했다”라며 자신의 능력을 적나라하게 뽐냈다. 간알(干謁)로 불리는 이 같은 자기 홍보 문화는 당나라 시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다. 시를 통해 당나라의 여유로움을 즐겨보는 것은 덤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일제강점기 경북 경주에서 강제로 서울로 옮겨져 현재 청와대 경내에 있는 신라 석불좌상(石佛坐像·사진)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8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청와대 석불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의 보물 승격 안건을 심의해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지정 예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명 ‘청와대 불상’이라고 불리는 이 불상은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이 매우 유사하다. 높이 108cm, 어깨 너비 54.5cm, 무릎 너비 86cm로 풍만한 얼굴과 약간 치켜 올라간 듯한 눈이 특징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팔각형 대신 사각형 대좌가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청와대 불상은 1912년 경주에 시찰 온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눈에 띄어 이듬해 당시 서울 남산 왜성대(倭城臺)에 있던 총독 관저로 옮겨졌다. 1939년 총독 관저가 경무대(청와대 이전 명칭)로 이전한 이후 현재까지 청와대 경내에 그대로 남게 됐다. 한편 청와대 불상이 보물로 지정 예고되면서 경주 이전 문제가 재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주 지역 문화계에선 불상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다만 문화재청 관계자는 “보물 지정은 문화재의 학술적·예술적 가치만 판단해 결정할 뿐 이전 문제는 정해진 것이 없다”며 “원래 위치를 찾아내 복원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수렴해 청와대 불상의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최근 중국 시안(西安)을 다녀왔다. 고대 중국의 14개 왕조가 1100년간 수도로 삼은 장안(長安)이 있던 곳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진시황의 무덤과 병마용갱부터 중국의 절세미녀 양귀비의 목욕탕 화칭츠(華淸池) 등 다양한 문화재가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시내에 위치한 장안성은 높이 12m, 성벽 위의 폭 12∼14m, 총길이 13.74km에 이르는 압도적인 위용과 각양각색의 조명장치가 뿜어내는 야경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긴 성벽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자전거 대여소가 성벽 위에 설치된 것. 남녀노소 누구나 자전거를 타며 성벽을 돌아다니는 광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성벽 아래에는 아치형 통로를 뚫어 차량 통행이 자유롭게 이어졌다. 찬란한 역사유적을 활용하는 중국의 방식이다. 숭례문은 복원된 이후 굳게 닫혀 있다. 일부 기간을 제외하곤 밤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경복궁과 창덕궁 등 조선의 고궁들, 북악산 등 일부를 제외하곤 흔적조차 사라진 서울성곽까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재를 보니 아쉬움이 커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귀한 예복도 네가 간직하고 허름한 도롱이도 네가 간직하지. 말끔한 옷이라고 좋아하지 않고 남루한 옷이라고 싫어하지도 않는다네’(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중) 옷장은 누구나 매일 보는 사물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에겐 색다른 시선이 느껴진다. 어떤 옷이든 넉넉하고, 공평하게 받아들이는 옷장의 모습을 이같이 표현한 것. 정조 때 재상을 지낸 채제공(1720∼1799)은 ‘붓’의 역할에 주목했다. ‘너를 잘 사용하면 천인성명과 같은 심원한 이치 모두 묘사할 수 있지/너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충의와 사악, 흑과 백 같은 양극단 모두 뒤바뀌고도 남지’(번암집·樊巖集 중) 이처럼 우리의 조상들은 아끼던 물건에 글을 새겨 넣는 ‘명(銘)’을 즐겼다. 최근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출간한 ‘명, 사물에 새긴 선비의 마음’(사진)은 정도전, 이황, 이익 등 고려와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명 60여 편을 모아 담았다. 그릇, 목침, 부채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삶의 본질을 깨닫고 자신을 성찰했던 옛 선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으로 일했던 임자헌 씨가 글을 썼고, 정민주 씨가 그림을 그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예비타당성 결과 경제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의 정책은 각종 포장을 통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십만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던 민간투자 고속도로가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은 어떤가.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승객들이 매일 밀어닥치면서 ‘지옥철’이 된 지 오래다. ‘국가의 사기’는 이처럼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의 이면을 들춰 본다. 2000년대 후반 ‘88만 원 세대’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경제학자인 저자는 부동산부터 주식 교육 원전 자원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가 수십조 원씩 쏟아부었던 각종 정책을 해부했다. 특히 피부에 와 닿는 대목은 국민들이 매일 마주하는 일상과 관련한 정책들이다. 대표적인 사례인 ‘버스 준공영제’를 살펴보자. 이 제도는 환승과 노선 변경에 따른 버스회사의 손실을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메워 주는 방식이다. 해마다 보조금은 눈덩이처럼 커져 가고 있지만, 정작 버스 운수 종사자들의 삶은 나아진 게 없다. 대부분 가족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버스 회사 소유주들만 이득을 가져갔다. 이 밖에도 정부 예산 ‘빼먹기’ 전쟁터가 된 연구개발(R&D) 관련 정책과 원주민을 내쫓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일으킨 도시재생 정책 등을 낱낱이 검증했다.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내실은 엉망이었던 정책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국가의 정책을 꼼꼼히 따져 보는 눈을 가진다면 외피와는 전혀 다른 속살을 지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똑똑한 시민이 되도록 견인해 주는 좋은 안내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가왕(歌王) 조용필(68·사진)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 투어 콘서트가 5월부터 열린다.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는 5월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을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에 대구와 광주, 의정부, 제주 등에서 공연을 진행한다고 2일 밝혔다. 추진위는 “조용필은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한 유일무이한 음악인이자 우리 시대의 자랑”이라며 “그의 음악인생을 조명하는 것은 한국 가요사와 시대를 돌아보는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발족한 추진위는 조용필의 음악을 사랑하는 학계·공연·미디어·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었다. 앞으로 공연을 포함해 그의 50년 가수 인생을 조명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1968년 데뷔해 ‘20세기 최고의 가수’로 군림했던 조용필은 2013년에도 19집 ‘헬로’를 대형 히트시키며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군에게 약탈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조선 왕실의 문화재가 150여 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했다. 주인공은 1819년 제작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 冊封 竹冊)’.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월 3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효명세자빈 죽책이 지난해 6월 프랑스의 한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확인한 후 협상을 거쳐 올 1월 20일 국내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이날 처음 공개한 죽책은 1819년(순조 19년) 효명세자빈(1808∼1890)을 책봉할 때 수여한 대나무로 만든 책이다. 크기는 높이 25cm, 너비 17.5cm. 6장으로 구성된 죽책을 모두 펼치면 102cm에 이른다. 조선 왕실에선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왕비, 세자, 세자빈을 책봉할 때 옥이나 대나무로 제작한 어책(御冊)을 만들었다. 효명세자빈은 후대에 고종을 수렴청정한 ‘조대비(趙大妃)’로 잘 알려져 있다.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로, 남편인 효명세자(1809∼1830)는 요절했지만 아들 환이 조선 제24대 왕 헌종에 올랐다. 학계에서는 그간 효명세자빈 죽책이 병인양요 당시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1857년 강화도 외규장각의 물품 목록인 ‘정사외규장각형지안(丁巳外奎章閣形止案)’에는 올라 있었지만 당시 프랑스군이 남긴 약탈 문화재 목록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프랑스의 한 개인소장자가 경매에 내놓으며 죽책은 다시 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장자는 파리에서 보석상을 운영한 할아버지 쥘 그룸바흐로부터 상속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재단은 소장자와의 협의와 국제법 검토를 거쳐 약 2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 구매 비용은 외국계 온라인 게임 회사인 ‘라이엇게임즈’가 모두 부담했다. 재단 관계자는 “효명세자빈의 죽책은 크기, 재질, 죽책문의 서풍과 인각(印刻) 상태가 매우 뛰어난 조선 왕실 공예품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웅장하고 화려한 신라 왕실사찰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 1000여 점이 경북 경주 황복사(皇福寺) 터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 중인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8월부터 낭산 일원 4670m²를 조사한 결과, 크고 정교한 돌로 조성한 건물지와 십이지신상 기단의 건물지 등을 비롯해 유물 1000여 점을 찾아냈다”고 31일 밝혔다. 황복사는 ‘삼국유사’에서 654년 의상대사가 29세에 출가한 절이라고 기록돼 있다. 1942년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했을 때 나온 금동사리함 뚜껑에서 ‘죽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신성한 영령을 위해 세운 선원가람’이란 뜻의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이라는 글자가 나와 왕실사찰로 추정됐다. 이번 조사 결과 회랑(지붕이 있는 긴 복도) 터, 도로, 연못 등 황복사의 건물 배치를 알려주는 대규모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확인됐다. 출토된 유물 1000여 점 중에는 금동입불상과 보살입상, 신장상(神將像·부처를 수호하는 신장을 새긴 조각상) 등이 포함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군에 약탈당했던 것으로 보이는 조선 왕실의 문화재가 150여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했다. 주인공은 1819년 제작한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 冊封 竹冊).’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월 3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효명세자빈 죽책이 지난해 6월 프랑스의 한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확인한 후 협상을 거쳐 올 1월 20일 국내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이날 첫 공개한 죽책은 1819년(순조19년) 효명세자빈(1808~1890)을 책봉할 때 수여한 대나무로 만든 책이다. 크기는 높이 25㎝, 너비 17.5㎝. 6장으로 구성된 죽책을 모두 펼치면 102㎝에 이른다. 조선 왕실에선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왕비·세자·세자빈을 책봉할 때 옥이나 대나무로 제작한 어책(御冊)을 만들었다. 효명세자빈은 후대에 고종을 수렴 청정한 ‘조대비(趙大妃)’로 잘 알려져 있다.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로, 남편인 효명세자(1809~1830)는 요절했지만 아들 환이 조선 제24대 왕 헌종에 올랐다. 학계에서는 그간 효명세자빈 죽책이 병인양요 당시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1857년 강화도 외규장각의 물품 목록인 ‘정사외규장각형지안(丁巳外奎章閣形止案)’에는 올라 있었지만, 당시 프랑스군이 남긴 약탈 문화재 목록에는 포함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프랑스 한 개인소장자가 경매에 내놓으며 죽책은 다시 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장자는 파리에서 보석상을 운영한 할아버지 쥘 그룸바흐로부터 상속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재단은 소장자와의 협의와 국제법 검토를 거쳐 약 2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 구매 비용은 외국계 온라인 게임회사인 ‘라이엇 게임즈’가 모두 부담했다. 재단 관계자는 “효명세자빈의 죽책은 크기, 재질, 죽책문의 서풍과 인각(印刻)상태가 매우 뛰어난 조선 왕실 공예품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올겨울 시베리아의 날씨보다 매섭다는 강추위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에선 체감온도가 영하 70도까지 떨어지는 등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 국가들이 기록적인 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북극해 얼음이 급격히 사라지면서 대기로 많은 양의 열과 수분이 방출됐다. 이로 인해 추운 공기를 북극에 가둬주는 극소용돌이가 약해지면서 매서운 한파가 중위도를 강타했다.” 북극에서 해빙을 연구한 국내 연구진은 최근 한파의 원인을 지구온난화에서 찾았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대서양에 인접한 시베리아 북부의 ‘카라-바렌츠해’ 해빙의 감소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북극. 이곳에서 20여 년간 기후, 생명, 토양, 경제, 법 등을 연구한 전문가 25인이 북극의 현장을 담은 책이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이끌고 북극해 탐사를 나선 이들의 경험담뿐 아니라 각종 학술적 성과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썼다. 책을 통해 본 북극은 과학 연구의 보고다. 동물생태학자의 눈에서 사향소와 북극토끼 등 희귀 동물의 자연 적응 능력이 발견됐고, 토양과학자는 북극해의 퇴적물을 분석해 애초 이곳이 바다가 아닌 담수호였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아름다운 북극 밤하늘의 오로라를 통해 고층대기권의 기후 현상을 분석하는 연구진의 경험담을 읽을 때는 황홀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북극은 이미 전쟁터다. 미국은 이곳에서 석유 시추를 계획 중이다. 러시아는 야말반도에서 ‘야말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고, 덴마크는 희토류를 생산하고 있다. 과학, 경제, 외교의 각축장이 된 북극의 현재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아일보의 지령(紙齡) 3만 호를 축하하는 ‘동아일보 지령 3만 호 기념식’이 26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겸 채널A 사장은 기념사에서 “3만 호는 97년 9개월 넘게 쉼 없이 달려온 결과로, 1920년 4월 1일 창간호부터 오늘 3만 호까지 모든 신문이 온전히 보존돼 있는 국내 유일의 신문사이기에 더욱 값지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4차례 무기 정간과 1940년 8월 강제 폐간을 비롯해 무려 63차례의 판매 금지와 489회의 압수 등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다.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다 광고 탄압을 받았다. 김 사장은 “동아일보는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문화를 가꾸고 키우는 역할을 다해왔다”며 “청년 인촌의 창간 정신처럼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기억하고, 과감한 변화와 혁신의 미래를 맞이하자”고 강조했다. 동아일보가 3만 호를 발행할 때까지 여러 분야에서 묵묵히 기여한 이들에게 감사패도 수여했다. 30년 넘게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장기 독자 오연완 씨와 43년간 광고를 이어 온 한화생명을 비롯해 이상순 경남 창원독자센터 사장, 정주하 경기 동평촌독자센터 관리소장, 김순임 뤼드코리아 팀장, 김영규 동영통운 기사, 남헌일 동아프린테크 안산공장 기술지원팀장, 이진호 전주페이퍼 상무, 박노정 광명잉크 상무, 권재우 아그파코리아 상무, 유병동 영남프린테크 이사 등 11명이 감사패를 받았다. 25년간 동아일보에 신문용지 공급을 담당한 전주페이퍼 이진호 상무는 답사에서 “영화 ‘1987’을 보며 동아일보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고, 동아일보가 고객이어서 자랑스러웠다”며 “신문용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추구하는 동아일보의 열정과 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동아미디어그룹 임직원과 독자, 기업 관계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신문의 역사는 지령(紙齡)으로 기록된다. 3만 호를 돌파하려면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켜내야만 가능하다. 1920년 4월 1일 창간호부터 기록된 동아일보의 3만 번째 역사는 순탄하게 발행을 이어왔다면 이미 수년 전에 이뤄졌어야 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을 비롯해 조선총독부에 의해 4차례에 걸쳐 609일간 무기정간을 당했다. 1940년 8월 11일자 지령 6819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되는 등 일제강점기 동아일보는 무려 2440일 동안 정·폐간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민족지 중 가장 길고, 가혹한 탄압이었다. 복간한 건 광복 후인 1945년 12월 1일이다. 이로 인해 창간 후 35년이 지난 1955년 8월 19일에야 지령 1만 호를 기록할 수 있었다. 단지 숫자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는 창간호부터 3만 호까지 모든 신문의 기록을 완벽하게 보관 중인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신문사다. 이뿐만 아니라 창업자 인촌 김성수 선생부터 현재까지 운영 주체가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 왔다. 특히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라는 창간 ‘사시(社是)’가 있는 신문으로서 3만 호를 맞는 첫 번째 주인공이다. 지령 3만 호를 넘긴 신문사는 미국의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영국의 더타임스, 일본의 아사히, 요미우리 신문 등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다. 미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뉴욕타임스는 1851년 9월 18일 창간했다. 1940년 3월 14일에 지령 3만 호, 1995년 3월 14일에 지령 5만 호를 돌파했고, 26일자는 5만7854호다. 워터게이트 특종 등 미국 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한 워싱턴포스트는 1877년 창간해 지령 4만 호를 넘겼다.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화를 이끈 영국의 신문 역사는 더 길다. 더타임스는 1785년 창간돼 26일자로 지령 7만2442호라는 역사를 자랑한다. 1821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정론지 가디언은 지령 5만 호를 넘어섰고, 1888년 창간된 파이낸셜타임스는 2019년 초 5만 호를 돌파할 예정이다. 아시아에선 일본 신문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다. 가장 오래된 신문은 1872년 창간한 마이니치신문으로 2015년 2월 12일자로 지령 5만 호를 기록했다. 요미우리신문(1874년 창간) 역시 2015년 지령 5만 호를 돌파했고, 니혼게이자이신문(1876년) 아사히신문(1879년) 등도 지령 4만 호가 넘는다. 중화권에선 1903년 창간한 홍콩 최대 영자신문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령 4만 호를 넘겼다. 1902년 창간돼 일본의 침략에 맞서 중국의 민족의식을 고취한 신문으로 평가받는 다궁(大公)보도 지령 3만 호를 넘긴 역사를 기록 중이다. 이 신문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후 홍콩에서만 발행하고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2016년부터 중단된 개성 만월대의 남북 공동발굴조사와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유물을 국내에 전시하는 데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가 고려 건국 1100주년인 만큼 남북 공동으로 고려 유물 전시회를 여는 방안을 올림픽 이후에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문화재계는 남북 간에 문화유산·학술 교류 협력이 다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우리 정부는 9일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개성 만월대에서 남북이 함께 발굴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등 고려 유물을 올림픽 기간 동안 강원 평창군에서 전시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북측은 시일이 촉박하고, 유물의 국외 반출 절차가 복잡해 당장 올림픽 기간에는 보낼 수 없다는 뜻을 밝혀왔다. 만월대 발굴조사에는 여러 의미와 사연이 담겨 있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 발견 만월대는 440년간 고려의 황궁이 있던 개성의 옛 궁궐터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 때 불에 타 없어진 후 600년 넘게 폐허로 방치됐다. 만월대란 이름은 조선 건국 이후 폐허가 된 고려 궁궐터의 산세와 땅 모양이 보름달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2007년부터 8년간 진행된 남북 공동발굴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2015년 11월 발견된 고려의 금속활자다. 가로 1.36cm, 세로 1.3cm, 높이 0.6cm의 이 활자는 고려 황실의 문서 생산을 담당한 장서각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만월대가 1392년까지 황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1455년 제작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최소 60년 이상 앞선 것으로 학계에선 추정했다. 수천 점의 토기와 기왓장을 비롯해 학계에서 보고된 바 없는 원통형 청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고려 황실의 제2정전으로 사용된 건덕전과 사당 역할을 한 경령전의 위치도 확인됐다. 공동발굴조사를 진행한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안병우 이사장(한신대 교수)은 “지하에 묻힌 기단과 유물의 상태가 양호해 당시 발굴단에서 ‘기적에 가깝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남북의 ‘인디아나 존스들’ 남북 연구진이 공동 작업을 하며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2007년 첫 발굴조사를 진행할 당시 ‘개토제’를 둘러싸고 실랑이가 벌어진 것. 한국의 문화재계에서는 발굴조사 전 안전을 기원하며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사인 개토제(開土祭)를 지내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다. 그러나 북한 발굴단에서 “사회주의는 과학인데 그 같은 미신 행위에 동조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남한 발굴단이 제사를 지내고 북한 측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합의했다. 당시 제사 준비가 돼 있지 않아 급하게 돼지머리 그림을 그려 개토제를 지낸 후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정태헌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부위원장(고려대 교수)은 “남한에서 3D 스캐너 등 최신 문화재 복원 기술을 전수하고 북한의 발굴 노하우도 공유했다”며 “남북 교류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인 개성 만월대 발굴조사가 빠른 시일 내에 재개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올림픽 기간인 다음 달 9일부터 18일까지 개성 만월대의 발굴 성과를 조명하는 ‘고려 황궁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평창 특별전’이 평창군 상지대관령고등학교에서 열린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주관하는 이 전시회는 한국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관련 유물을 선보이고 3D 프린팅과 홀로그램,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 정보단말기) 기술도 활용할 예정이다. 전시는 무료. 02-725-7705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민족은 곰과 호랑이,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에서 시작됐다.” 일연(1206∼1289)의 삼국유사에서는 호랑이를 한민족의 뿌리 중 하나라고 서술한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으로 이뤄진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아 ‘호랑이의 나라’로 불릴 정도였다. 그만큼 호랑이를 표현한 미술 작품도 많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고대 중국에선 상대(商代·기원전 1600년∼기원전 1046년) 청동기 시대부터 호랑이 무늬가 등장할 정도로 호랑이 숭배 문화가 널리 형성됐다. 호랑이가 서식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아스카(飛鳥·592∼710년) 시대 때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호랑이를 그린 불교 그림이 전해지면서 이후 호랑이를 신성시한 작품이 유행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수호와 길상의 상징이었던 호랑이를 조명하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중국 국가박물관과 함께 한국, 중국, 일본에서 호랑이를 다룬 미술 공예 조각 작품 145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한국·일본·중국’을 26일부터 3월 18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의 주인공인 호랑이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여는 호랑이 전시이자 한중일 국립박물관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세 번째 특별전이다. 전시에는 진귀한 호랑이 작품이 가득하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작품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맹호도(猛虎圖)’ 3점을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또 현존하는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 중 가장 큰 작품인 ‘용호도(龍虎圖)’가 비슷한 크기의 용 그림과 함께 공개된다. 이 그림은 한 변의 길이가 약 2.2m로, 조선시대 관청의 문이나 대청에 붙인 세화(歲畵·새해를 축하하는 그림)로 추정된다. 일본 작품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소가 조쿠안(曾我直庵)과 18세기 화가인 가노 미치노부(狩野典信)의 ‘용호도(龍虎圖)’ 병풍이 출품됐다. 중국은 자기로 만든 호랑이 모양 베개와 3000년 전에 제작된 호랑이 장식 꺾창을 볼 수 있다. 전시는 5부로 구성된다. 1∼3부는 ‘한민족의 신화’, ‘무용(武勇)과 불법(佛法)의 수호자’, ‘벽사의 신수(神獸)’라는 주제로 한국, 일본, 중국의 호랑이 미술을 각각 소개한다. 4부는 동아시아 3국의 호랑이 미술 중 걸작들로 꾸몄다. 5부에서는 근현대 호랑이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