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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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5-15~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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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넬슨 코츠 “12개국 팀원과 함께 제작… 다양성이 힘 있는 콘텐츠 원천”

    “미친 듯이 돈 많은 사람들의 결혼식이니 교회에 정원을 만들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4일 반밖에 없었답니다.” 지난해 할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아트 디렉터 넬슨 코츠를 싱가포르에서 7일 만났다. 영화의 모든 세트 디자인을 총괄한 코츠는 1994년 TV 시리즈 ‘더 스탠드’로 에미상을 수상한 베테랑. 이번 영화로도 ‘할리우드 아트 디렉터 조합’의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코츠는 ‘2019 싱가포르 디자인 위크’에서 마련한 ‘브레인스톰 디자인’의 연사로 이날 참석했다. 영화 속 화려함의 극치였던 결혼식 장면의 뒷이야기는 아슬아슬했다. 싱가포르의 유명한 성당인 ‘차임스’에서 촬영한 장면은 세트 설치부터 촬영, 철수까지 정확히 4일 반의 시간이 주어졌다. 압권인 버진 로드에 물이 흐르는 장면은 테스트 없이 진행해야 했다. “결혼식장의 화려한 꽃 속에 물을 뿜는 제트와 댐이 숨어 있었어요. 물이 필요 없는 장면을 촬영한 다음 존 추 감독과 손을 붙잡고 물을 틀었죠. 운 좋게 모든 장치가 잘 돌아갔고,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충분한 돈과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고 하자 “작은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블랙팬서’ 같은 영화라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시아인이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그 자신도 이번 작업으로 다양성의 힘을 믿게 됐다고 했다. 그가 함께 일한 디자인팀만 해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 등 12개국 출신으로 구성됐다. 제작진은 우스갯소리로 자신들을 ‘유엔’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카메라 앞뒤에 다양한 구성원이 있어 더 힘 있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었다고 코츠는 자신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카데미 회원인 코츠는 “전통적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진지한 장르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할리우드에 뜸했던, 키스하고 사랑하는 아시아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화가 성공했으니 이제 시작이다”라고 했다. 그는 삶의 모든 것이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의 시각을 이해하고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디자인입니다. 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 의사나 엔지니어만큼 가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길 바랍니다.” 싱가포르=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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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非주류의 고집… ‘현대조각의 구상’ 전外

    현대 미술은 매체의 구분이 없다고 하지만, 미술 시장에선 여전히 ‘회화’가 주류로 꼽힌다. 이런 흐름에도 조각을 꾸준히 고수하고 있는 작가들의 그룹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열리는 ‘현대조각의 구상과 추상 사이’는 원로 작가 전뢰진(90)과 유영교(1946∼2006) 등 작가 10여 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서양 조각처럼 해부학에 충실하기보다, 박수근의 회화처럼 네모나게 각진 얼굴들은 푸근함을 자아낸다. 유영교는 푸른색이 나는 대리석인 ‘청석’을 재료로 주로 작업했다. 단단해서 조각이 쉽지 않지만 손가락 표현에서 유영교만의 특색이 드러난다.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유영교의 작품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좋아했다”며 “고인의 유작도 이 회장의 두상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 나무, 흙, 유리, 한지는 물론 동전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작품도 등장한다. 독특한 재료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작가들의 면면이 보인다. 다만 기술적 측면에만 몰두하다 보니 예술로서의 새로운 가능성보다 장르의 테두리에 갇히는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전시 기회조차 많지 않기에 여러 작품을 한데 모아 보는 의미가 작지 않다. 16일까지. 무료. 서울 용산구 갤러리조은에서는 프랑스 출신 그라피티 작가 탕크(40)의 개인전이 열린다. 탕크는 16세 때부터 스프레이 캔을 들고 파리 거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에서도 그라피티는 불법이기에 그림을 그리다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수차례. 그럼에도 살아있는 거리의 맛을 잊지 못해 작가는 종종 그라피티를 그린다고 한다. 그런 그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라피티 기법을 캔버스로 옮긴 것들이다. 캔버스에서 그라피티를 그리는 것은 뉴욕 출신 유명 작가인 장미셸 바스키아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바스키아 작품만큼 공간 구성이 탁월하거나 이미지가 신선하진 않지만, 탕크의 작품에서는 그라피티의 특성인 즉흥성이 두드러진다. 그의 작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씨가 새겨진 것이 특징. 이 글씨들은 스프레이 물감을 캔버스에 뿌리며 캔으로 표면을 긁어서 만들었다. 작가 나름대로 즉흥성을 캔버스에 구현하기 위해 고안한 기법으로 보인다. 그 결과 보이는 이미지도 유럽 거리에서 본 그라피티가 떠오른다. 2011년 한국인 사진가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그는 “한국이 아침의 나라임을 생각하며 일출 장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22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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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미술 교류협력 통해 분절된 미술사 복원”

    “임명을 받은 입장에서 외부적인 요인을 언급하기 난감하지만 역량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 생각합니다. 훌륭한 미술관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 성과로 답하겠습니다.” 윤범모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68)이 취임 한 달 만에 공모 과정에서 일어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윤 관장은 5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코드 인사’와 논란에 대한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또 “1980년대 초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미술 평단에 나온 이래 30여 년간 미술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언론의 여러 반응에 놀랐지만 격려의 채찍으로 생각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 관장은 선임 과정에서 역량 평가를 두 번 치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과거 관장 공모에서 역량 평가 통과자가 없을 경우, 재공모를 실시한 적은 있지만 ‘재시험’은 전례가 없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규정상으로는 재평가가 가능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윤 관장은 민중미술 전시를 열 계획에 대해서는 “민중미술의 장점을 비교적 이해하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1000편 정도 발표한 글에서 민중미술 관련은 10%도 안 된다”며 “전시 계획은 없지만 필요하면 열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남북미술 교류협력을 기반으로 분절된 한국미술사를 복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관장은 “남북 문제는 정치 환경과 직결돼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사전에 필요한 부분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내용에 관해 “정부로부터 미션을 받은 부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공동 연구 및 전시를 추진할 계획도 내비쳤다. 그는 “식민지와 분단 상황으로 인해 ‘우리 미술의 골간’을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며 “과거 역사와 현대미술을 연결짓는 공통분모를 찾겠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도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제대로 다룬 책이 없다고 봅니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연구를 확대 심화하겠습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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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 중심서 탈피… 소리와 빛의 향연 펼칠것”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움직이는 몸과 소리, 빛의 향연이 매혹적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5일 열린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김현진 예술감독(44·사진)이 올해 한국관의 전시 계획을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예술을 통해 한국과 동아시아 근대화의 역사를 다시 상상하는 원동력은 젠더 다양성”이라며 “서구 중심, 남성 중심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서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재일교포를 통해 동아시아 난민과 여성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파친코’는 이번 전시의 맥락과 맞아 떨어졌다. 한국관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도 남화연(40), 정은영(45), 제인 진 카이젠(39) 등 모두 여성. 제인 진 카이젠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계 덴마크인이다. 공교롭게도 세 작가의 작품은 모두 영상이다. 각국의 다양한 작품이 쏟아지는 비엔날레 특성상 관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영상은 돋보이기 어려울 수 있다. 김 감독은 “비디오 장르를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초대하고 보니 모두 비디오를 매체로 했다”며 “영화적인 서사보다는 시각적 리듬이나 미학적 볼거리를 강조할 예정”이라고 했다. 랄프 루고프 영국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이 총감독을 맡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5월 11일 공식 개막해 11월 24일까지 약 200일간 펼쳐진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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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뉴욕의 추상’에 젖다… ‘로버트 마더웰-비가’전

    미술의 역사를 보면 시기별로 흐름을 주도한 ‘종주국’이 있다. 19세기는 인상파를 태동시킨 프랑스 파리가 중심지였다면, 20세기 후반은 추상표현주의를 유행시킨 미국 뉴욕이 그 자리를 꿰찼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빌럼 더코닝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을 장식하는 작가들이 추상표현주의의 주역이다. 백남준이 ‘왜 뉴욕에서 활동하느냐’는 질문에 “뉴욕이 미술사를 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미술사의 중심지는 독일로 이동했고, 뉴욕의 화려한 시절은 역사가 됐다. 로버트 마더웰(1915∼1991)은 이 화려한 시절이 시작할 무렵 뉴욕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유명 미술사가에게 그림을 배우며 유럽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미국에 연결해 주는 역할도 했다. 그의 ‘스페인 공화국에의 비가’ 연작과 판화 등 작품 23점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 마더웰의 개인전 ‘로버트 마더웰―비가(悲歌)’가 서울 종로구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특정 형태를 표현하지 않는, 의미가 없는 그림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는 미국의 유명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학에서 시작된 오해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진영과 대립하던 냉전 상황에서 추상화를 ‘자유’의 대표 이미지로 내세웠다. 그 가운데 폴록의 다양한 액션 페인팅 작품이 있다. 당시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정치적 선전을 위한 리얼리즘 회화가 유행했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1층 전시장에 걸린 마더웰의 그림들은 그린버그의 지적과 달리 뚜렷한 감정을 표현한다. ‘비가’ 연작은 1948년부터 시작된 마더웰의 대표작으로 이 무렵 마더웰은 첫 번째 부인 마리아와 이별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흰 대형 캔버스에 굵직하게 그어 내린 검은 선이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 속 커다란 사각형과 원형이 반복되는 것은 그가 읽은 시에서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제목에 ‘스페인’을 언급한 것은 피카소의 영향으로 보인다. 당시 피카소는 세계적 거장이었고, 스페인 내전을 비판한 ‘게르니카’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게르니카’는 독재로 박해받는 시민들을 돕기 위해 미국에서 순회 전시된 적도 있다. 정작 ‘비가’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스페인에 가본 적이 없던 마더웰은 그림을 그린 후 “나의 멕시코인 아내, 멕시코로의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했다. 스페인과 멕시코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할 정도로 마더웰에게 스페인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간 뜸했던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보고 당시 뉴욕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마더웰의 개인전이 국내에서 열리는 것도 처음이다. 5월 12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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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사카 감독의 따스한 손길이 스민 정통 애니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다. 이제는 실사인지 그래픽인지 헷갈릴 정도로 현란한 그래픽이 스크린을 장식한다. 그런데 잊고 지냈던 따스한 손맛이 듬뿍 느껴지는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고사카 기타로 감독이 연출한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 영화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12세 초등학생 ‘옷코’의 이야기를 그린다. 혼자가 된 옷코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여관인 ‘봄의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도시에 살다 시골에 간 옷코는 애벌레와 도마뱀을 보고 기겁한다. 어릴 적 왠지 유령이 나올 것 같았던 할머니 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옷코는 할머니 집에서 여러 유령을 마주하게 된다. 옷코는 학교생활과 여관 일을 돕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신이 내려준 온천물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옷코가 할머니 집에서 만나는 유령들은 그의 조력자가 된다. 영화는 어린 관객들에게 전통에 대한 사랑을 일깨운다. 영화를 연출한 고사카 감독은 ‘귀를 기울이면’, ‘원령 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스튜디오 대표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탄생시켰다. 감독의 첫 연출작인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은 제56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도 그림이다. 옷코가 슬플 때 굵은 눈물을 펑펑 떨구는 모습이나 뜨끈한 온천물에서 김이 나오는 모습 등 생생한 표현이 CG 부럽지 않다. 지난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우수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으로부터 “훌륭하다. 몇 번을 울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고사카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배려’를 통한 ‘성장’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온천은 전통이 사라지는 지금 선조의 지혜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라며 “옷코는 이곳에서 혼자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치유받는다”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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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닐로 만든 怪생명체… 화려함 속에 깃든 허무

    화려한 비주얼의 ‘인스타그램’용 카페와 식당이 가득한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이 길 끝 가파른 언덕 위 윈도 갤러리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음산하게 퍼져 나온다. 이병찬 작가(32)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P21이다. 갤러리에는 괴물 ‘키메라’ 같은 모양을 한 형형색색의 물체가 숨을 쉬듯 부풀었다 꺼지고 있다. 동네 아이들에게 최고 화제가 되고 있다는 이 기괴한 물체는 이 작가의 작품 ‘크리처(Creature·생명체)’다. 무당의 알록달록한 옷을 연상케도 하는 ‘크리처’는 비닐이 주재료다. 작가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온갖 정크 푸드를 담는 비닐을 가깝게 느꼈다. 비닐을 모아 라이터로 지져 연결시키고 형태를 만들며 작업을 시작했다. 서낭당의 분위기를 내려고 싸구려 구슬 조각이나 발광다이오드(LED) 호스도 늘어뜨렸다. 전시 제목 ‘흰 코끼리’는 경제 용어로 ‘유지를 위해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지만 실상은 무용한 존재’를 뜻한다. 인천 출신인 작가는 송도국제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겉만 번지르르한 도시의 모습에 박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모습을 품은 작품은 겉은 화려하지만 손으로 쥐면 푹 꺼져버려 허무하다. 3월 3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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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스틱으로 가득찬 새의 배, 세상에 충격을 던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해군 항공기지였던 태평양 미드웨이섬. 지금은 폐허가 된 군사시설만 남았지만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인간들 간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아름다운 새 앨버트로스가 플라스틱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 사진가 겸 영화감독 크리스 조던(56·사진)은 2009년 이 섬을 처음 찾았다. 섬에서 그는 배 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앨버트로스의 사체를 발견한다. 새들은 바다로 떠내려 온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삼키고 있었다. 조던은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았고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의 참혹한 결말을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조던은 이후 8년에 걸쳐 미드웨이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사진 작품과 영화를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아름다움 너머’에서 만날 수 있다. 20일 한국을 찾은 조던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의 거대한 힘에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며 “인류가 이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어떻게 일으키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 아래 조던의 작품은 우리가 잊고 사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5월 5일까지. 6000∼1만 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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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주행’ 오스카, 상 몰아주기보다 화제작에 나눠주기

    24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배우 라미 말렉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편집상, 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 트로피까지 가져갔다. 말렉은 수상 소감에서 “동성애자, 난민인 스스로를 긍정하며 살았던 남자의 이야기가 상을 받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원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추락하는 시청률 걱정에 ‘오스카’는 모험 없이 안정적인 길을 택했다. 1989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사회자 없이 진행된 시상식은 다양한 작품에 골고루 상을 나눠 줬다. ‘미투’ 운동 지지 소감이 쏟아졌던 지난해에 비해서도 차분한 분위기였다. 넷플릭스가 제작해 관심을 모은 ‘로마’는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작품상 트로피는 영화 ‘그린북’에 돌아가 넷플릭스의 독주를 견제했다. ‘그린북’은 196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우정을 그렸다. ‘그린북’ 역시 각본상과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등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그린북’은 개봉 후 여러 논란에 시달렸다. 주연 비고 모텐슨이 홍보 중 흑인 차별적 단어를 사용해 비판을 받는가 하면, 돈 셜리의 실제 삶을 왜곡했다는 유족의 항의도 받았다. 피터 패럴리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사랑하라는 것,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작품상이 발표되는 순간 ‘블랙클랜스맨’의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가 항의하듯 시상식장을 떠나려다 스태프의 설득으로 돌아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보헤미안…’ 제작 도중 성추문으로 하차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이름도 시상식에서 들리지 않았다. 여우주연상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올리비아 콜먼이 받았다. 콜먼은 욕망에 휩싸여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폭군처럼 행동하는 여왕 앤을 연기해 찬사를 받았다. 콜먼의 수상으로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스는 일곱 번째 도전한 오스카에서 또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콜먼이 이를 인식한 듯 웃으며 “이렇게 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하자 객석에서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 짓는 클로스의 얼굴이 포착됐다. 동성애 비하 발언으로 하차한 사회자 케빈 하트의 빈자리는 여러 분야의 인물들로 채워졌다.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는 영화 ‘스타 이즈 본’을 소개했다. 존 루이스 하원의원은 ‘그린북’을 소개하며 “당시 흑인은 2등 시민으로 대우받고 생계에도 위협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계 배우 아콰피나도 단편 애니메이션 시상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올해 시상식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은 빠지지 않았다. 각색상을 받은 스파이크 리 감독은 “2020년 대선에서 힘을 모아 역사의 바른 편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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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을 뛰어넘은 체험… 역사의 주인공은 민초

    그라피티처럼 화려하고 복잡하게 얽힌 그림 가운데 한 여인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옷엔 수인번호와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다. 서대문감옥에 수감되기 직전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다. 그녀의 주변엔 조선인들이 총칼을 든 일제 순사와 엉겨 붙어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 그림은 프랑스 작가 파비앵 베르셰르의 작품, ‘독립기념일’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의 ‘불멸사랑’전은 책 속의 역사가 아닌 예술가들이 몸으로 겪은 역사를 보여줘 눈길을 끈다. 국내외 작가 6명이 참가해 일민미술관 1∼3층은 물론이고 신문박물관 5층에도 작품이 전시된다. 글이 곧 권력이었던 과거, 역사는 승자의 기록과 마찬가지였다. 한편 이번 전시는 외국인이 체화한 한국의 이미지, 기록에 남지 않은 역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과거 역사의 의미에 의문을 던진다. 일상의 수많은 기록이 온라인에 남겨지는 지금, 역사의 주인공은 곧 개인이라는 의미다. 1층 전시관을 장식한 베르셰르는 서울, 부산, 제주도에 머물며 신화, 전통문화, 역사를 조사한 뒤 이를 이미지로 풀어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빨간 십자가가 인상 깊었다”는 그는 한국인에겐 익숙하지만 자신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끄집어낸다. 번화가에서 자주 보이는 풍선 기둥이 현대적 장승으로 느껴졌다는 베르셰르는 흰 풍선 기둥에 그림을 그려 전시장 한가운데에 놓았다. ‘독립기념일’을 그릴 때 기분은 어땠을까. 베르셰르는 한국과 프랑스의 신화, 역사의 유사성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역사에서 일제는 프랑스가 생각하는 나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속 ‘비행기’는 일제를 암시한다고도 하는데, 나는 나쁜 의미를 좋게 포장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담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단종애사’ 등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표현한 작가 서용선은 신문박물관에 작품을 설치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딱딱한 활자로 적힌 신문지 위에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이미지가 놓여 마치 ‘승자의 역사’에 저항하는 듯하다. 박물관에 놓인 커다란 윤전기 뒤에도 대형 회화 작품이 놓였고 ‘호외’ 신문들 앞에는 조각 작품 ‘감시 08’이 있다. 전시장 곳곳에 숨겨진 드로잉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권하윤 작가는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다.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했던 병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489년’은 가상현실(VR)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또 작가의 스승인 다니엘의 기억을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한 작품 ‘새 여인’의 스크리닝 버전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밖에도 휴대전화 속 그림을 만화나 웹툰의 형식으로 다시 그려 일상을 기록한 이우성 작가의 작품, 조은지 작가의 퍼포먼스 설치와 영상, 강이연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4월 13일에는 이인범 상명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서용선 작가,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등이 참가하는 ‘동시대미술과 미디어, 진실과 탈―진실’ 학술세미나도 열린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 5000∼7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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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지정학적 관점으로 본 분쟁-위기 등 세계 이슈

    서구 중심의 패러다임은 조만간 전 세계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인 미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 브렉시트를 앞둔 유럽도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런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는 데 지정학의 이해가 필수라고 말한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쓰인 책은 지정학의 이해를 돕는 학술적 가이드북에 가깝다. 서두에서는 지정학의 다양한 정의를 시간순으로 소개한다. 이어 현 시점의 지정학적 주요 문제와 지정학적 도발, 주요 분쟁과 위기, 또 구조적 경향과 지정학적 문제 제기를 소개한다. 다양한 이슈를 간략한 글로 소개해 세계 정치의 흐름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도 추천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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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꼴라쥬’ 책 펴낸 ‘씨엘 아빠’ 이기진 서강대 교수

    정리되지 않는 막다른 골목, 질겅질겅 씹는 ‘무(無)맛’의 절편, 을지로3가의 노가리. 누군가에겐 낡은 모습이지만,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59)에겐 서울만의 매력적 풍경이다. 이 교수는 훌륭한 술인 막걸리를 양은 잔에 담기 아까워 이 빠진 백자 사발을 갖고 다니고, “스타벅스에서 디저트로 절편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서울을 그림과 글로 담은 ‘서울 꼴라쥬’(디자인하우스·1만5800원)를 최근 발간했다. 서울 종로구의 작업실에서 19일 만난 이 교수는 허름한 서울을 예뻐하는 것 같다고 묻자 “실제로 예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리, 뉴욕, 도쿄 등 도시는 모두 개성이 있어요. 서울만의 색과 감각이 있는데 이것을 흠이라 하면 밉지만 멋있다 보면 그 자체로 매력이 될 수 있죠.” ‘씨엘 아빠’로도 잘 알려진 그가 서울을 다루게 된 건, 7년 전 집필한 ‘꼴라쥬 파리’를 본 편집자의 제안 때문이었다. ‘꼴라쥬 파리’는 공동 연구로 자주 방문한 파리의 소소한 매력을 담았다. 이 교수는 제안을 받고 “서울은 당연히 써야 한다”고 흔쾌히 응했단다. “서울의 풍경엔 시간의 축적, 응집, 지혜 모든 게 녹아 있어요. 식당의 사소한 그릇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죠. 저는 이런 것들이 시간이 만든 추상화라고 생각해요.” 을지로3가의 노가리는 ‘탱고’라 표현할 정도로 애정이 깊다. 최근 논란이 된 을지로 재개발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프랑스에도 낡은 집이 많은데, 그들은 어떻게 고칠까를 생각하거든요. 어차피 10년에 한 번은 고쳐야 하니 그것도 산업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깡그리 없애고 새로 지을 생각만 해 안타까워요. 그 자리에 빌딩이 놓이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런 그의 작업실도 200년 된 한옥을 개조한 공간이다. 작업실에는 그가 모은 오래된 빗자루, 주둥이가 깨진 기름병, 플라스틱으로 만든 알록달록한 수저통 등이 쌓여 있었다. 무작정 해외로 떠나보고, 동화책도 내며 ‘일단 해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딸 ‘씨엘’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하자 이 교수는 “함께 성장한 것”이라고 했다. “채린이(씨엘)가 데뷔하기 전부터 함께 ‘퀸’을 듣고 동화책을 그렸어요. 그 모든 게 함께 만든 세계인데 이제 책을 내면 ‘또 냈어? 어 그래’ 이래요. 아마 안 읽는 것 같아요.”(웃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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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세대와 모바일 시대 감성 사이에서…

    타이핑하면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는 각진 키보드가 놓인 오래된 컴퓨터. ‘PC통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디자인의 화면을 클릭하면 20년 전 열린 전시의 톡톡 튀는 서문이 쏟아진다. “최정화말일세… 나는 정말 그의 가벼움을 참을 수가 없었네. 대만 재래시장에서 수입한 플라스틱향 접시 수십 개와 남대문시장의 쇠구슬 수백 개가 만들어내는 유치찬란함, 소란스러움, 뻔뻔함은 나를 짜증나게 만든다네.” ‘의기양양한 예술 애호가 홈즈’라는 필명의 누군가가 1999년 4월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전시 ‘홍대 앞 재탕 버전으로 보는 최정화―정서영 2인전’에 쓴 서문이다. 최정화는 소쿠리, 대야 같은 플라스틱 제품을 쌓은 작품으로 알려진 설치 작가. 그의 초기 전시 소개글의 독특한 문체에서 90년대 말 예술인들로 북적였던 서울 홍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무렵 홍대 품에서 태어난 ‘대안공간 루프’가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 ‘예술, 시대의 각인’이 12일부터 서울 마포구 루프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컴퓨터에선 그간 치러진 164개 전시 목록과 서문을 읽어볼 수 있다. 열린 순서대로 글을 읽어나가며 변화를 포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초기 글은 도발적인 ‘X세대’의 분위기. 그러다 루프가 점차 ‘기성세대’가 되며 철학적 개념이 섞인 난해한 글이 늘어난다. 이때 논문처럼 길어졌던 글은 최근에서야 다시 간결해졌다. 양지윤 디렉터는 “모바일 영향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서두에 쓰면 지금은 아예 읽질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하로 내려가면 지금까지 열린 전시 포스터와 각종 자료, 영상을 만날 수 있다. 김은형 작가의 벽화 ‘타임머신’이 전시장에 함께 그려졌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연도별 주요 사건을 함께 정리해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보여주려는 의도. 최정화 정연두 함경아 등 2000년대 활발히 활동한 작가는 물론이고 안창홍 정복수 등 비중 있는 중견 작가도 눈에 띈다. 양 디렉터에 따르면 루프는 처음 개관할 당시 해외 유학파 예술가들이 금융위기로 대거 귀국한 게 계기였다. 기존 미술계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해 세운, 말 그대로 ‘대안공간’이다. 실험적인 미술가를 지원하고, 국내외 미술 흐름을 시민과 공유하는 것이 목표였다. 20년 동안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는지는 물음표가 붙지만, 수많은 대안공간이 사라졌음에도 루프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열린 젊은 작가들의 개인전 ‘이은새: 밤의 괴물들’이나 ‘권병준: 클럽 골든 플라워’도 관객 호응이 뜨거웠다. 20년을 맞은 루프는 현재 새로운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 22일 오후 20년간 루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한 기획자들이 각자의 경험과 의견을 나누는 대담 프로그램 ‘큐레이터 라운드 테이블’도 열린다. 양 디렉터는 “‘대안’ 공간으로서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지금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루프는 공모로 선정한 작가와 기획자의 전시도 선보인다. 민예은 김우진 작가의 개인전과 대만 출신의 큐레이터 지아 전 차이의 전시 ‘We are bound to meet’ 등을 준비하고 있다. 20주년 전시는 3월 3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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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관순 역 고아성 “다 찍고 난 뒤 배우들과 함께 울었어요”

    1920년 3월 1일 서울 서대문 감옥. 3·1운동 1주년을 맞은 이날 감옥에서 다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진원지는 ‘여(女)옥사 8호실’. 이곳에는 유관순 열사는 물론이고 수원에서 30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한 기생 김향화, 다방 직원 이옥이,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등 다양한 여성이 있었다. 이들의 저항을 그린 영화가 27일 개봉한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에서 만세를 부르다 서대문 감옥에 수감된 뒤 1년여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를 연출한 조민호 감독은 “우연히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보고 새삼스럽게 17세였다는 게 다가왔다”며 “슬프지만 강렬한 눈빛과 그의 정신을 되살리게 해주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여옥사 8호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관순이 수감된 1년을 조명하기에 공간도 감옥으로 한정된다. 그 대신 화면을 흑백으로 처리해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을 더 강렬히 전달한다. 회상 장면은 컬러로 연출해 우울한 수감 생활과의 대조를 극대화한다. 가장 돋보이는 건 열악한 환경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수원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이었던 김향화(김새벽)는 경찰서 문 앞에서 만세를 부른 ‘강심장’으로 그려진다. ‘언니는 아무한테나 술을 안 따라 준다고 들었다’는 이옥이(정하담)의 말에 김향화는 “나 좋다고 한 사람한텐 다 따라줬다. 딱 하나, 왜놈만 빼고”라고 응수한다. 간수들이 동료를 끌고 가려고 하면 모두가 손을 뻗어 말린다. 한겨울 감옥에서 태어난 아기를 위해 체온을 조금씩 빌려주기도 한다. 유관순은 감옥 밖이 궁금해 노역을 자처하는 호기심 많고 영리한 인물로 그려진다. 끝까지 스스로를 죄수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당당함도 보인다. 다만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이러한 캐릭터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유관순 역할을 맡은 배우 고아성은 “감옥에서 만세를 외치는 장면은 부담됐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며 “촬영할 때 긴장해 심장 소리가 정말 크게 나기도 했고, 다 찍고 난 뒤 배우들과 함께 울었다”고 했다. ‘항거…’ 외에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당시 조선인 최초 자전차대회 우승자를 그린 ‘자전차왕 엄복동’은 27일, 유관순 등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1919 유관순’은 다음 달 3일 개봉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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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감 뒤 1년, 감옥에서 다시 외친 ‘만세’…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1920년 3월 1일 서울 서대문 감옥. 3·1운동 1주년을 맞은 이날 감옥에서 다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그 진원지는 ‘여(女)옥사 8호실’. 이곳에는 유관순 열사는 물론 수원에서 30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한 기생 김향화, 다방 직원 이옥이,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등 다양한 여성이 있었다. 이들의 저항을 그린 영화가 27일 개봉한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에서 만세를 부르다 서대문 감옥에 수감된 뒤 1년여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를 연출한 조민호 감독은 “우연히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보고 새삼스럽게 17세였다는 게 다가왔다”며 “슬프지만 강렬한 눈빛과 그의 정신을 살아나게 해주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여옥사 8호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관순이 수감된 1년을 조명하기에 공간도 감옥으로 한정된다. 대신 화면을 흑백으로 처리해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이 더 강렬히 전달한다. 회상 장면은 컬러로 연출해 우울한 수감 생활과의 대조를 극대화한다. 가장 돋보이는 건 열악한 환경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여성 인물들의 모습이다. 수원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이었던 김향화(김새벽)는 경찰서 문 앞에서 만세를 부른 ‘강심장’으로 그려진다. ‘언니는 아무한테나 술을 안 따라 준다고 들었다’는 이옥이(정하담)의 말에 김향화는 “나 좋다고 한 사람한텐 다 따라줬다. 딱 하나, 왜놈만 빼고”라고 응수한다. 간수들이 동료를 끌고 가려고 하면 모두가 손을 뻗어 말린다. 한 겨울 감옥에서 태어난 아기를 위해 체온을 조금씩 빌려주기도 한다. 유관순은 감옥 밖이 궁금해 노역을 자처하는 호기심 많고 영리한 인물로 그려진다. 끝까지 스스로를 죄수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당당함도 보인다. 다만 실화 기반이기에 이러한 캐릭터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유관순 역할을 맡은 배우 고아성은 “감옥에서 만세를 외치는 장면은 부담됐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며 “촬영할 때 긴장해 심장 소리가 정말 크게 나기도 했고, 다 찍고 난 뒤 배우들과 함께 울었다”고 했다. ‘항거…’외에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당시 조선인 최초 자전차대회 우승자를 그린 ‘자전차왕 엄복동’은 27일, 유관순 등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1919 유관순’은 다음달 3일 개봉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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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현직 금융사CEO가 쓴 주요 7개국 투자 전망

    불확실성, 저성장 등 세계 경제가 우울한 전망으로 가득한 가운데 해외 투자를 쉽게 풀어 쓴 입문서가 발간됐다. 현직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이자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30여 년간 근무한 저자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터키, 유럽연합(EU), 미국 등 7개국의 경제 현황과 전망을 쉽게 풀어 썼다. 저자는 한 국가의 경제 상황은 그곳의 정치 역사 문화와 연결됐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경상수지, 물가, 환율 등 수치만이 아니라 역사와 지리,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분석을 곁들였다. 금융 시장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만큼 책에서 해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해외 각국의 상황에 관한 기초 지식을 통해 최소한 유행에는 휩쓸리지 않게 만들어 줄 참고서로 볼 만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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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화-사진-미디어아트… 현대미술의 다양성 만끽

    이불 작가의 ‘The Secret Sharer’,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등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현대 미술 작품이 처음 공개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개관 후 첫 소장품 특별전인 ‘APMA CHAPTER ONE―FROM THE APMA COLLECTION’을 14일부터 개최한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현대 미술 작품 4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사진, 조각,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국내외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공간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 및 미술관 입구 로비 등 총 8개의 전시실로 구성된다. 미국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는 뉴욕 맨해튼 55번가에 설치한 작품과 동일한 에디션이다. 이불 작가의 작품은 국내 미술관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APMA 가이드’ 앱을 내려받으면 큐레이터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 해설을 전시장에서 들을 수 있다. 고해상도 이미지와 작품 관련 인터넷 정보, 링크 검색 기능도 제공된다. 전시장 1층의 전시도록 라이브러리(apLAP)에서는 소장 중인 전시 관련 도록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등 관련 정보는 미술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5월 19일까지. 무료∼9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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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의 우상에 거침없는 ‘낙서 폭탄’… 해티 스튜어트

    킴 카다시안, 퍼렐 윌리엄스, 아리아나 그란데, 카일리 미노그…. 대중이 선망하는 스타들이 세련된 포즈를 취한 잡지 커버들. 영국 일러스트 작가인 해티 스튜어트(31)는 이 화려한 커버 위에 장난기 가득하게 혓바닥이나 하트, 소용돌이 무늬를 그려 넣는다. 13일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만난 스튜어트는 이를 “낙서 폭탄을 퍼붓는다”고 표현했다. 고상한 척 멋 부린 스타들의 모습은 스튜어트의 손길 한 번에 왁자지껄한 낙서로 전락한다. 이 거침없는 작품을 세계 6개국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16명이 함께한 전시 ‘I draw: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에서 만날 수 있다. 스튜어트의 ‘낙서 폭탄’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에서 일하다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일이 따분해 ‘집에 가면 무슨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다 바에 놓인 그림 위에 무심코 낙서를 했어요. 그게 너무 재밌어서, 집에 쌓아둔 잡지 표지들에 대량으로 낙서를 하면서 시작됐죠.” 누구나 한번쯤은 학창시절 수업 시간이 지루해 교과서 속 얼굴에 그림을 그려본다. 스튜어트는 그 친밀한 낙서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승화시켰다. 반응은 뜨거웠다. 나이키나 애플뮤직, 마크바이 마크제이콥스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왔다. 스튜어트는 그런 자신이 “어느 순간 ‘전업 낙서가’가 됐다”며 웃었다. 그만의 ‘표지를 고르는 기준’이 궁금했다. 스튜어트는 “눈에 보이는 표지 가운데 20%만 뭘 그릴지 확신이 선다”며 “나머지는 다양한 과정으로 그려 보다 결과에 이르는 편”이라고 했다. 그럼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완벽했던’ 표지는? 잡지 ‘페이퍼’에 실린 카다시안의 사진을 주저 없이 꼽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카다시안의 뒷모습이 담긴…. “왜 완벽한 커버였냐고요? 커다란 엉덩이가 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죠! 하하하.” 최근 젊은 작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그 역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을 줄 알았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인 건 맞아요. 하지만 수개월간 고민해서 만든 프로젝트가 순식간에 소비되고 뒤로 밀려나는 걸 보면 때론 숨 막힌단 느낌을 받습니다. 창작자에겐 ‘시간’이 가장 좋은 친구인데, SNS는 느긋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거든요.” 이번 전시에서 스튜어트는 전시 공간에 거울을 여러 개 배치했다. “관람객이 잡지 커버 속 스타이자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길 바라는 의도라고 털어놨다. “바깥세상에 신경을 끄고 ‘릴랙스’하는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제 그림을 보고 그저 ‘행복하고 재밌다’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3000∼1만2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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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아웃사이더, 내 힘은 불만과 빚” 여든까지 붓 달리다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는 교수가 없어서’라며 미술대를 자퇴했다는 청년 김구림(83). 마흔 살에 한 달 생활비를 털어 그림을 시작한 주부 윤석남(80). 어느덧 팔순을 넘긴 두 예술가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출발도 독특했지만 각각 실험미술과 개성 있는 회화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5월 6일까지 열리는 전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에 참여한 두 사람을 최근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날 처음 만난 두 작가는 서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했다. 윤 작가가 “김 선생님이 정통의 길을 가다 나오셨다면, 난 엉뚱한 데 튀어나온 잡초”라고 하자, 김 작가도 질세라 “나도 정통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며 응수했다. 윤 작가가 그간 “화단의 운동 자체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하니, 김 작가는 “홍익대, 서울대가 끼리끼리 전람회 하는 것이 안 되겠다”싶어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만들었다고 했다. 김 작가는 1960, 70년대 주로 퍼포먼스나 영화 등 실험 미술을 선보였다. 당시 언론엔 ‘기행’ ‘괴짜 화가’로 소개됐다. 그는 “퍼포먼스가 정권에 눈엣가시로 여겨져 경찰에 연행되고 신문도 받았다”며 “그 뒤 잊혀졌다가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기획전에 초대됐는데 ‘김구림이 누구냐’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이듬해 열린 국내 전시회 제목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였다. 윤 작가가 그림을 시작한 계기도 드라마틱하다. 영문학도로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다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였다. 작가는 그 날짜를 지금도 기억한다. “1979년 4월 25일.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는 날이었거든요. 홍익대 나온 후배에게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푸념했더니, 후배가 ‘언니 당장 합시다’라고 해요. 그 길로 한 달 생활비를 몽땅 털어 그림을 그렸죠.”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망에 이끌린 것은 두 작가의 공통점. 김 작가는 “부잣집에 외동아들로 태어나 세상 물정 모르고 ‘금이야 옥이야’ 자라 고집이 세다”고 했다. 극장과 백화점을 운영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처음엔 외과 의사나 영화감독과 같은 다른 길을 꿈꿨다. 하지만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맘에 온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예술가가 됐다. 윤 작가 역시 영화와 인연이 깊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윤백남(1888∼1956)을 아버지로 둔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술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경제 사정이 넉넉지 못해 연필과 원고만 있으면 되는 글을 썼단다. “나중엔 글도 포기하고 결혼을 했는데 2년쯤 지나니 정신이 이상해졌어요. 내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었죠. ‘엄중한 세월에 한가롭게 그림을 그려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견딜 수 없었어요. 예술의 복잡한 정의나 사조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그리기로 했어요. 그게 ‘어머니’였죠.”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는 두 작가에게 왕성한 작업의 원동력을 물었다. 김 작가는 ‘욕심’과 ‘불만’을, 윤 작가는 ‘빚’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불만이 많아요. 나보다 젊은 사람도 작품이 팔리는데 나는 왜 안 될까라는 생각도 때로 합니다. 그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있습니다.”(김구림) “한국이란 나라가 남편을 통해 내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운을 얻었으니 이 빚을 죽을 때까지 작품으로 열심히 갚고 싶습니다.”(윤석남)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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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증 자극하는 그림 속 보이지 않는 이야기

    커다란 바위에 놓인 조그마한 쪽지, 벽에 비스듬히 기대 경치를 바라보는 듯한 우산, 고요한 실내에 문을 열자 펼쳐지는 호수.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지만 미묘한 구도가 자아내는 낯선 느낌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하고 궁금증을 자극한다. 4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화가 황규백(87)은 “재미있게 즐기며 행복하게 그렸다”면서 그림들을 소개했다. 서정적인 판화로 잘 알려진 황 작가가 이번에는 캔버스에 그린 유화, 아크릴화 20점을 내놨다. 그는 “판화는 체력 소모가 심해 회화로 옮겼다”며 “붓으로 작업해 사물들을 내 뜻대로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고 했다. 모두 최근 1∼2년간 작업한 그림들로, 남북 정상회담을 본 느낌을 담은 ‘SOUTH AND NORTH SUMMIT’도 있다. 그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웃으며 회담하는 모습을 본 게 유별나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창문 너머 아무도 없는 도보다리가 보이고, 창틀에는 비스듬히 기댄 우산과 시계가 있다. 황 작가는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낼 수 있고 모양도 예뻐서 그렸고, 우산은 남북 정상이 무슨 얘기를 하나 엿듣는 나의 모습을 의미한다”며 웃었다. 황 작가의 대표작은 1970년대 잔디밭 위에 펄럭이는 손수건을 표현한 연작이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와 섬세한 메조틴트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1968년 프랑스로 건너가 판화가의 길을 걸으며 ‘판화의 재창조’라는 평가를 받고 파리와 미국 뉴욕에서 활동했다. 그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진취적인 세계를 보고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고민을 하다 잔디밭에 누워 손수건을 펴보고 소름이 돋아 만들게 된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주목받게 해준 은인과 같은 작품이다. ‘손수건’이 없었으면 배추장사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 그림을 상상으로 시작했다는 작가는 “그림 속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관객들이 즐기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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