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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을 고대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강 장관은 6월 취임 1주년 간담회 때부터 11년 만의 남북 외교장관 회담 성사에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리 외무상의 거절로 짧은 회동에 만족해야 했다.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협의체인 ARF에서 비핵화 중재 역할을 자임한 한국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외교적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개국 만나면서 ‘코리아 패싱’한 北 강 장관은 5일 싱가포르에서 가진 결산 브리핑에서 남북 회담 무산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타진했지만 3일 ARF 환영만찬장에서 조우한 리 외무상이 우리 측의 대화 의지에 ‘아직 응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는 점도 소개했다. 강 장관은 “충분히 그 뜻을 존중해 드려야 할 것 같다”면서 “진솔한 분위기에서 한반도 정세 진전 동향과 향후 협력 방향에 대해 짧지만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교환했다. 언젠가는 남북 외교당국이 서로 협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의 태도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에 임하는 북한의 폐쇄적인 소통 기조를 엿볼 수 있다. 북-미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굳이 한국을 따로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한국을 제외하고 11개 나라와 전례 없이 활발한 양자 외교장관 회담을 펼쳤다. 3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리 외무상 및 북측 대표단이 ARF를 계기로 이틀 동안 회담을 가진 곳은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유럽연합(EU), 뉴질랜드 등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북한이 ARF에 앞서 먼저 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북한이 ARF 폐막 후 양자 공식 방문으로 싱가포르에 이어 6일 이란까지 찾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재 완화 또는 체제 보장에 대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광폭 행보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북-중과 종전선언 주파수 맞추려고 한 한국 북한의 ‘코리아 패싱’에도 정부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부각하며 북한이 요구하는 동시적 비핵화 조치에 결과적으로 힘을 실었다. 강 장관은 “북한만이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원하는 평화체제, 안전보장 차원에서도 논의가 함께 이뤄질 것”이라며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이 필요하다고 워싱턴을 압박하고 있는 북한, 중국과 주파수를 맞췄다. 정부 당국자들은 “종전선언을 동시 논의한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 이행을 소홀히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했지만, 정작 ARF에서 미국과도 비핵화 이슈를 놓고 별다른 진전 없이 원칙론만 재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청와대는 “북-미 간 쟁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ARF에서 벌어진 북-미의 치열한 신경전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종전선언과 대북제재를 놓고 북-미 간 전선(戰線)이 명확해졌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친서 교환으로 대화 의지는 재확인된 만큼 양측 간 외교적 해결 노력이 본격화될 계기가 마련됐다는 논리다.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북한과, 종전선언에 앞서 비핵화 신고 단계 이행이 필요하다는 미국이 대치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1차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프로세스에 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나 북한의 핵무기 및 핵시설 신고 등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종전선언 채택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 역시 북-미 대화에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은 이번 ARF 이후 북-미가 어떤 구상을 갖느냐에 따라 시기나 의제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싱가포르=신나리 journari@donga.com / 문병기 기자}
“아무래도 조선말이 더 편하시죠?” 4일 오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북한대표단에 소속된 수행원 강명철이 7장짜리 한글(한국어) 연설문을 배포하면서 한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가국 27번째 중 15번째로 발언한 리 외무상 연설 후 미디어센터를 찾은 그는 일본 등 다른 외신 기자들이 접근하자 “한국 기자들을 불러달라”고 부탁한 뒤 이같이 말했다. 강 수행원은 “아무나 주면 안 되는데”라며 취재기자들의 비표를 일일이 보며 한국 국적임을 확인한 뒤 “우리 (외무상) 동지가 발표한 성명이니 입장을 잘 좀 보도해 주시라”고 말했다. 그동안 어떤 질문에도 입을 열지 않던 북한 대표단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 한국 기자를 불러 모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한글본이 동나자 두툼한 종이 뭉치 속에 준비해온 영문본을 외신기자들에게 뿌려 연설문을 둘러싸고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다자안보협의체인 ARF는 이렇게 해마다 북한 대표단의 동선과 그들을 쫓는 국내외 취재진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날 오후도 올해 북측 대표단 대변인 격인 정성일 외무성 연구원이 앞서 강 수행원이 나눠준 동일한 연설문을 들고 호텔 로비에서 기자들을 맞았다. 그는 북한의 양자회담 일정을 밝힌 뒤 남북 회담, 북-미 회담 무산 배경을 묻는 질문에 “제가 오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게 다입니다”라며 돌아섰다.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미 외교장관의 싱가포르 회동으로 기대를 모았던 3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회담은커녕 조우조차 없었다. 대북제재에 쐐기를 박겠다고 ARF를 찾은 미측에 맞서듯 리 외무상이 양자회담 계기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ARF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모두 모이는 환영만찬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회담은커녕 인사도 안 한 北-美 비핵화가 먼저냐 체제 보장이 먼저냐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북-미 간의 만남 여부는 ARF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날 오전 차례로 도착한 리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은 양자 대면 없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대북제재를 강조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촉구하려는 미국과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이 지지 세력을 모으는 기 싸움을 벌인 것. 지난해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사실상 ‘왕따 신세’였던 리 외무상은 이날 하루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 7개국과 양자회담을 가지며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비핵화 협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상태에서 미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지렛대로 대북제재를 꺼내 들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들(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 하나 또는 둘 다 위반하고 있다.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도 “이번 ARF에서 제재 이행 의무를 상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리 외무상은 이날 유엔의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한 아세안 회원국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언급하면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많은 진전이 이뤄졌는데도 왜 아직 유엔 제재가 해제되지 않느냐”고 반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미군 유해 송환 직후 “북한이 한 약속들이 지켜질 것이라는 추가적 증거에 대해 매우 희망적”이라고 말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아 북-미 간 논의가 도돌이표로 변했다.○ 종전선언으로 북-미 달래기 나선 韓中 냉랭한 외교라인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군 유해 송환을 기점으로 친서를 주고받으며 유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백악관은 “계획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2차 정상회담 개최설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위터에 “폼페이오 장관에게는 방북 일정이 끝나자마자 비판을 보냈던 북한이 트럼프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관료들 사이에서 트럼프를 떼어 놓으려는(decouple) 시도”라고 경계했다. 종전선언도 한반도 주변국으로부터 끊임없이 화두에 올랐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남북미 외교장관과 연쇄 회동을 하며 ‘4자 종전선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부장은 “종전선언은 비핵화를 견인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고 유용한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한 북측 관계자는 북-중 회담 내용에 대해 “조선반도의 평화 보장과 관련돼서 두 나라 사이에 전략전술적 협동 토의를 했다”고 밝혀 종전선언이 심도 있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환영 만찬장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이 리 외무상에게 별도 남북 외교장관 회담 필요성을 밝혔지만 북측은 응할 입장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우리 외교당국자가 밝혔다.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종전선언 문제에 관련 당사자들이 모여 앉아 진중한 토론을 하고 전쟁을 끝내려는 제스처는 긍정적”이라며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할 뜻을 드러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왕 부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연내 추진하려는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왕 부장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데는 법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모여 앉아 진중한 토론을 하고 관련 당사자들이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확인돼야 한다”고 했다.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는 북한에 힘을 실어주면서 연내 종전선언 추진을 꺼리는 대미 압박용 메시지로 풀이된다. 정부도 비핵화와 동시에 반대급부도 논의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비핵화와 함께 체제보장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이나 핵을 가지려 했던 것은 체제보장, 즉 억지력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남북 외교장관회담을 염두에 둔 유화적인 제스처로 보인다. 전날까지 북측으로부터 회신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담 가능성이 닫히지는 않았다. 강 장관은 2일 오후 러시아, 일본과 잇달아 외교장관회담을 가지면서 대북제재 이행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예정돼 있던 중국과의 회담은 중국 측 사정으로 하루 순연됐다. 특히 북한산 석탄 반입 문제는 일본과 러시아를 막론하고 양자회담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과 관련해 미국이 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며 환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유체이탈’식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과의 회담을 앞둔 이날 오전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외교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회담 테이블에는 재판 관련 논의가 올랐다. 고노 장관은 “강제징용 문제가 양국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사진)의 지난달 초 방북 이후 20여 일 만에 북-미 고위급이 재회하게 될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분위기는 사뭇 냉랭하다. 6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때와는 다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움직임이 공개되면서 미국이 대북 압박 기류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의 제재 강화 연타 북한이 매년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다자안보협의체인 ARF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북-미 외교장관회담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췄기 때문. 이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양자회담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도 “북-미 접촉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계획된 (회담) 일정은 없다”고 밝혔다. 6월 정상회담 전후만 하더라도 “만나길 고대한다”는 답변이 나왔을 텐데 그만큼 김정은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것이다. 올해 ARF는 한반도 대화라는 국면 전환 속 북한에 대한 주변국들의 태도 변화나 북-미 외교장관 회담 가능성 등이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북한과의 회담에 공개적으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최근 북한의 ICBM 제조 및 비밀 핵시설 가동 정황과도 연결된다. 여기에 미국이 대북제재 강화와 함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다시 들고나오면서 외교장관 회담은커녕 ARF가 이전의 ‘북한 성토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일 ARF 의장성명서 초안을 공개하며 “CVID를 명기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하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성명이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성명 초안엔 △북-미 정상회담 성과 환영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에 유의할 것 △납치 문제 조기 해결 등의 내용과 함께 CVID에 대한 노력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북-미 사이서 눈치 보는 한국, 국무부 “9월 종전선언 어렵다” 전달받아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북-미 사이에서 정부 대표단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회원국들이 ARF 폐막을 전후로 내는 의장성명에 대해 “이번에는 남북, 북-미 대화에 대한 지지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담겨 큰 갈등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CVID가 의장성명에 명시될 것이 점쳐지면서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추진 중인 남북, 남북미 외교장관회담 성사 여부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대화 국면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간 정부는 의장성명 초안 작성 과정에서 한반도 대화 분위기와 긴장 완화를 부각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비난과 함께 강력한 제재 및 압박 필요성을 넣으려고 했던 노력과는 정반대다. 당시에는 우리 정부가 마련한 한반도 이슈 관련 문구가 그대로 성명에 반영됐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싱가포르를 비롯한 몇몇 회원국이 초안을 마련할 때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대북제재 강화와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적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귀띔했다. 미국은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으면 여전히 북측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있고, 미국이 요구해 온 핵·미사일 리스트를 제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검토할 수 없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라며 “우리 정부에도 이 같은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비핵화 조치가 진전되지 않는 한 미국에 종전선언을 촉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양제츠(楊潔篪·사진)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이달 11∼12일 극비리에 한국을 찾아 종전선언을 포함한 비핵화 이슈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세 번째 방북 직후라 중국이 한국과의 긴밀한 소통 필요성을 느껴 급히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고위급 외교소식통은 이날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25일부터 27일까지 방북하기 전 양 위원을 수행해 한국을 비공개로 다녀갔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앞서 3월 방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으며, 이번 일정을 비공개로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회동에서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해제 차원에서 5가지 조치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고 한다. 이 조치들은 △중국인 한국 단체관광 정상화 △롯데마트 원활한 매각 절차 진행 △선양롯데월드 공사 재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문제 △한중 환경 문제 등이다. 양 위원의 방한 상황을 잘 아는 소식통은 “5개 조치는 상당 부분 진척됐다. 그런데 양 위원이 방한해 이런 조치를 논의했다는 게 알려지면 중국 내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어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양 위원 정도의 거물이 직접 방한해 사드 보복조치 해제 5개항에 대해 설명한 만큼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한 비핵화 이슈와 관련해 모종의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 협상 및 종전선언에서의 중국 참여를 보다 확실히 하고자 하는 강도 높은 요구가 있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한국이 듣기 싫은 소리, 불편한 이야기를 강한 톤으로 하고 돌아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등에 무게를 실었던 정부가 양 위원으로부터 4자회담과 같은 구속력 있는 협상 틀을 본격화하도록 요구받았을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베이징 소식통은 “종전선언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열어놓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종전선언은 법적 제도적 종결이 아닌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의 정치적 선언으로 추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기자}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첫 조치로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유해 55구를 27일 송환했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이날 북측이 싱가포르 성명 이행의 첫발을 떼면서 지지부진했던 북-미 협상과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다시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이날 오전 5시 55분 미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가 유엔군사령부 및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PAA) 관계자들을 태우고 경기 평택 오산미군기지를 이륙해 북한 원산비행장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수송기는 미군 유해 55구가 안장된 나무상자들을 싣고 미군 전투기 2대의 엄호를 받으며 오산기지로 돌아왔다. 백악관은 송환 직후 성명을 내고 “북한의 행동과 긍정적 변화에 고무됐다”고 밝혔다. 또 “오늘 조치는 북한에 남은 유해 송환과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한 약 5300명의 미국인을 찾기 위한 중대한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 측은 유해 확인 절차를 밟은 뒤 다음 달 1일 오후 5시 오산기지에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주관하는 공식 송환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7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이번 조치는 많은 (미군) 가족에게 위대한 순간이 될 것”이라면서 “김정은에게 고맙다(Thank you to Kim Jong Un)”라고 직접 사의를 표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주성하 기자}

북한이 27일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미군 유해 송환을 했다. 미국은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작업에 이어 한 달 넘게 지지부진하던 유해 송환까지 이뤄지자 “의미 있는 조치”라며 반색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비핵화 협상이 변곡점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졌다. 하지만 북한은 6·25전쟁 정전협정 65주년에 맞춰 유해를 송환하면서 미국이 종전선언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압박하고 있다. 종전선언을 채택하기 위해선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미국은 노골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북한의 ‘유해 송환 선물’에 마땅한 대응 카드를 찾지 못해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 유해 송환도 ‘살라미식’으로 이날 오전 11시 북한 원산에서 유해함을 싣고 온 미군 수송기 C-17은 우리 영공에서부터 주한미군 F-16 전투기 2대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안착했다. 의장대를 따라 연합사 소속 군인들이 11명씩 5줄을 맞춰 행진하며 약식 의장 행사를 거행했다. 정복을 입은 이들은 차례로 수송기 안으로 들어가 푸른 유엔기로 조심스럽게 감싼 유해함을 들고 나와 차량으로 옮겼다. 도열한 장병들은 유해를 운구하는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수경례로 예를 표했다. CNN은 수송기가 원산을 떠나기 전 유해함을 하나씩 개봉해 사진을 찍는 절차를 거쳤다고 전했다. 포렌식(증거 분석) 전문팀을 오산기지로 파견한 미군은 앞으로 5일간 군복 잔해나 군번줄, 서류 대조 등을 통해 정밀 유해 검사를 진행한 뒤 다음 달 1일 오산기지에서 추모식을 갖고 하와이로 유해를 옮겨 DNA 정밀검사를 거칠 예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6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유해를 맞게 된 미국의 반응은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김정은에게 고맙다”고 했고 백악관은 대변인 공식 성명을 내 “북한의 행동과 긍정적 변화에 고무됐다”고 밝혔다.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북한이 유해 중 일부를 돌려보내면서 주춤했던 북-미 비핵화 대화도 재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3차 방북에서 합의한 비핵화 워킹그룹 회의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생큐 김정은” 했지만 고민 깊은 트럼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북한이 이날 보낸 미군 유해는 55구로 당초 예상했던 200구에 못 미친다. 이 때문에 북한이 싱가포르 공동성명 합의사항 중 가장 쉬운 유해 송환조차도 ‘살라미식’으로 쪼개 이행하며 미국에 체제 보장을 위한 종전선언 채택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많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은 대화 판을 깨지 않되 언제든 복구할 수 있는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적절히 해체하고 유해도 조금씩 송환해서 협상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해법을 고수하며 협상 판을 흔들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미국이 선(先)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협상카드가 여전히 마땅치 않다는 점. 북한이 비핵화 핵심 조치에서 벗어난 유해 송환으로 사안의 본질인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성명 합의를 나름대로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 송환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성에 차지 않는 조치가 많다는 게 미국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유해 공동발굴사업을 위해 북한에 전달해야 할 비용도 문제다. 대북 압박의 유일한 수단인 대북제재를 미국 스스로 완화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유해 송환에 드는 비용을 활용해 촘촘한 제재를 흔들려고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평택=외교부 공동취재단한성희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북한 강원 원산에서 미군 유해 55구가 송환되는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향한 곳은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사망자 묘역이었다. 정전협정 체결 65돌을 맞아 미국에는 ‘선물’을 안기고 중국과는 양국 우호를 다지는 등 ‘김정은식 등거리 외교’를 선보인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김정은이 6·25전쟁에서 숨진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묘를 찾아 추모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조국해방전쟁 시기 중국의 당과 정부와 인민은 건국 초기의 많은 곤란을 무릅쓰고 아들딸들을 서슴없이 파견해 피로써 도와주고 전쟁 승리에 불멸의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중 관계는 결코 지리적으로 가까워서만이 아니라 서로 피와 생명을 바쳐가며 맺어진 전투적 우의와 진실한 신뢰로 굳게 결합돼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미중을 향해 동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조속한 시일 내에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위한 양동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미국에 종전선언 요구로 압박을 가하면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폐쇄 작업이나 유해 송환처럼 정상 간 약속을 이행하되, 그 과정에서 중국이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줄 전형적인 김정은식 등거리 외교”라고 설명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동아태부차관보 대행이 최근 방한 기간 정부 인사들과 만나 이례적으로 동남아시아 지역 정보기술(IT)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에 대한 협력을 협의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북한이 동남아에 IT 분야 노동자들을 대거 파견한 만큼 외화벌이 창구를 틀어막아 대북제재 고삐를 죄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램버트 대행은 방한 기간 “해킹에 취약한 동남아 국가들의 IT 역량을 강화하는 데 협력해 달라”고 제안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와는 북한이 동남아에 파견한 IT 인력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라 북한 노동자들이 내년 12월 27일까지 본국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 전까지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북한 IT 관련 종사자들의 활동과 이들에 대한 제재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23일(현지 시간) 발령한 대북제재주의보엔 IT 분야 북한 합작기업(Morning-Panda Computer Company Limited) 한 곳과 거래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북한의 IT 노동자들이 파견된 국가로는 앙골라, 방글라데시, 중국, 라오스, 나이지리아, 우간다. 베트남 등 7개국을 적시했다. 이 중 동남아 국가가 3곳이다. 2016년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IT 인력 1500명 이상을 10여 개국에 파견해 연간 4000만 달러(약 450억 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IT 해외노동자들이 전 세계 금융·안보망을 뚫고 해킹을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기자}
북한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첫 이행조치인 미군 유해 50여 구의 송환을 앞두고 미국과 돈 문제로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작업으로 들떴던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 번째 고리였던 유해 송환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다.○ CNN, “27일 유해송환도 불확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27일로 예상됐던 유해 송환을 앞두고 생각보다 많은 돈을 요구해 협상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태도를 바꿔 소정의 대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취지다. 로이터 통신도 24일(현지 시간) 전직 미 행정부 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협상 과정이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북한의 현금보상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1구당 가격으로 계산하지 않고 발굴작업 건수당 비용으로 계산한다”며 “작업에 필요한 연료나 장비, 농작물 제거 등에 드는 직접적인 비용들이 지불될 것”으로 내다봤다. CNN은 24일 미 국방부 관리들이 27일 유해를 돌려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면서도 “미국 또는 한국 정부에 북한이 송환 작업을 최종 승인하지 않아 유해를 이날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유해 송환만으로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날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이달 초 함북 당 위원회에서 핵심간부회의를 불시에 소집해 6시간 동안 회의를 열었다”며 “마지막 강연자가 ‘핵’은 선대 수령들이 물려준 우리(북한)의 고귀한 유산으로 우리에게 핵이 없으면 죽음’이라고 강조하면서 회의가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국제사회에 핵 포기를 약속했던 북한이 입장을 뒤집은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미사일시설 연속 해체로 트럼프 붙잡기 동시에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뿐 아니라 평양 인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립시설도 해체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북한이 당초 이 구조물을 완성하는 데 불과 3일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해체한 시설을 언제든 다시 재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캘리포니아의 스탠퍼드대에서 미-호주 외교·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에 북한의 미사일 엔진 실험장 해체에 관련해 “우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약속과 부합하도록 오래된 시험장이 해체될 때 현장에 감독관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며 “그들은(북한은) 완전하고 완벽한 비핵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해외참전용사회(VFW) 전국대회 연설에서 “나는 매우 빨리(very soon) 이 전몰장병들이 집으로 돌아와 미국의 땅에서 편히 쉬기를 희망한다. 그것(유해 송환)이 프로세스를 시작할 것”이라며 김정은과의 약속을 거듭 강조했다. “오늘 새로운 사진들이 북한이 핵심 미사일 실험장의 해체 절차를 시작했다는 걸 보여줬다”며 “우리는 그것에 감사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종전선언 설 냉온탕을 오가는 북한의 행보는 결국 미국에 ‘상응하는 조치’, 즉 종전선언에 대한 요구 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미국과 북한에 중국을 포함시킨 4자 종전선언 가능성에 무게를 옮기는 모양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국의 건설적인 참여로 같이 가는 게 장기적으로 더 합의에 무게 같은 것을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8월 4자(남북미중) 종전선언 구상이 나오는데 종전선언은 그 형식과 시기를 모두 다 열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25일 방북해 리길성 외무성 부상과 회담했다.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핵심 인사인 쿵 부부장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인 상황에서 북한 측과 ‘선(先)종전선언 후(後)비핵화’ 방안 견지 등 공동 관심사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인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작업에 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해체를 약속해 놓고도 뜸을 들이던 북한이 뒤늦게 이행에 나선 것은 미국에 ‘대화는 지속하겠다. 대신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대북제재 주의 권고안’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본격적인 협상 카드를 주고받는 게임이 시작됐다. ○ 조용히 공개한 北의 협상 카드 미 스팀슨센터 산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20일 촬영된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동창리 발사장의 발사 직전 발사체를 조립하는 궤도식(rail-mounted) 구조물과 시험용 발사대의 상부 구조물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23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틀 후인 22일 위성사진에서는 건물 한쪽 모서리 부분이 철거되고, 해체된 구조물이 바닥에 놓여 있는 등 작업이 더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8노스는 “해체 작업은 약 2주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연료 및 산화제 벙커와 주 처리 건물, 발사탑은 해체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한미 정보당국도 발사장의 타워크레인 등 일부 설비가 부분적으로 해체된 것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당국은 위성사진 판독 등을 통해 정밀 추적,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6년 2월 ‘광명성 4호’가 발사된 서해위성발사장은 2012년부터 인공위성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기술의 실험, 발사가 이뤄져온 북한의 주요 미사일 시설 중 하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폐기를 약속했던 미사일 엔진 실험장으로 지목돼온 곳으로, 고체연료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액체연료 발사체를 실험해온 시설인 만큼 폐기 부담이 크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당초 미사일 엔진 실험장의 폐기는 북-미 대화가 교착 국면에 놓인 상태에서 북한이 또 하나의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북한은 5월 외신기자를 초청해 공개했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조용히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북한이 핵시설의 신고와 검증 같은 본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발사장 해체 같은 이벤트는 협상 카드로 쓰기에는 약하다”며 “북한이 미국에 향후 협상의 ‘미끼’로 쓰면서 자신들의 내부 로드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 북-미 대화 동력 되살아날까 지지부진한 비핵화 협상 속 동창리 발사장의 해체 움직임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비핵화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기대감을 비쳤다.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은 징조”라며 “북한이 (발사장 해체를) 이벤트로 만들지 않고 진행하는 것은 북한 나름대로 시기를 조절하기 위한 것인지 그 의도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체제 안전 보장 조치를 요구하며 비핵화 조치 이행을 늦추던 북한이 실험장 폐쇄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대화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시기적으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27일 미군 전사자의 유해 송환과도 맞물려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만큼 북한이 선거 국면을 활용하기 위해 베팅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북한의 엔진 실험장 해체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달 초 평양에 방문했을 때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면담 자리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의 움직임이 선의의 조치일지, ‘마이웨이’ 비핵화 행보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인내심을 언제까지 간직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협상 과정에서 추가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트럼프 행정부가 23일(현지 시간) 국무부와 재무부, 국토안보부 합동으로 ‘대북제재 주의 권고안’을 발령하면서 북-미 협상의 향방은 가늠하기 더 어려워졌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신나리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북핵 협상이 촉진되기 위해선 강력한 압박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한미 공조를 공고히 하고, 남북 경제협력은 자제해야 한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사진)은 23일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개최한 제13회 화정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강력한 대북 압박이 최근 지지부진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원장은 “제재가 형해화(내용 없이 뼈대만 남은 상황)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 북한에 전략적 손실이 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구조를 풀어놓으면 핵 문제 해결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윤 전 원장은 ‘김정은, 핵 폐기 할 수 있나’란 주제의 이날 강좌에서 “결론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직 핵무기 폐기 결단을 내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앞서 9·19공동성명, 제네바 합의 등과 비교했을 때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윤 전 원장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중국이나 베트남 모델을 좇아 경제 발전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에도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베트남과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은 절대 권력의 유연함이라는 전제가 있다”면서 “권력 집중을 유연화하는 체제 전환 과정에 있어서 김정은이 절대 권력의 50%는 양보해야 베트남과 중국 모델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북한이 ‘파키스탄식 전략’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등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해 핵 보유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사례들을 북한이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언급한 ‘새로운 관계’가 곧 전략적 관계를 의미한다고도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북한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원하며 미국에 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의 위협에 대해 미국의 대중 전략에 협력할 수 있다’는 카드로 나설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북한이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하는 천재일우를 만났다. 미중 대립이 심할수록 최후의 승자는 김정은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전 원장은 “핵 포기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북한이 하면 된다”며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와 같은 담론이 시장에 나오면 (비핵화에) 희망이 없다”고도 했다. 이어 “정부가 수도권을 방어할 미사일 방어막을 만드는 등 북한에 대해 실효성 있는 억지력을 갖는 식으로 여러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이우연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졸업}

유엔 안보리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지난해 10월 들여온 의혹을 받는 선박 두 척이 3월 ‘우범선박목록’에 오르기 전까지 국내에 11차례 들어왔지만 당국의 선박 검색을 받지 않고 출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산 석탄뿐 아니라 다른 금수품목의 유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검색 공백이 드러난 셈이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지난해 10월 석탄을 싣고 온 파나마 선적 ‘스카이에인절’호와 시에라리온 선적 ‘리치글로리’호는 올해 3월 초에야 관세청 전산시스템상 우범선박목록에 올랐다. 앞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보고서로 북한산 석탄 환적 문제가 제기된 17일, 정부 당국자가 “2월 스카이에인절호와 리치글로리호가 입항했을 때 (이미) 우범선박목록에 올라 있어 검색했다”고 설명한 것과는 다르다. 관세청 관계자는 “(3월 초) 우범선박목록에 오르기 전까지 국내에 입항했을 때 검색을 별도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모든 선박이 검색 대상인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전수검색이 어렵다. 살펴볼 대상 선박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우범선박목록에 올리면 자동적으로 전산상에 떠서 검색을 나간다”고 했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해 10월 이후 의심 선박에 대한 ‘검색 구멍’이 5개월 동안 이어진 것이다. 다만 해당 선박들이 2월에 검색을 받은 것은 외교부가 “지난해 제재 위반 의심을 받는 선박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알려줘 관세청이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우범선박목록에 오르지 않았더라도 외교부 등 관련 부처의 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검색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스카이에인절호는 2월 18일, 리치글로리호는 2월 20일 검색을 받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당시 선박회사와 선주, 선장, 선원 등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북한산 석탄인지 몰랐다’고 부인했다고 한다. 해당 검색을 받기 전까지 스카이에인절호는 부산항과 옥포항에 2차례, 리치글로리호는 포항과 묵호, 울산, 평택, 부산에 9차례 국내에 입항했다. 그러나 검색 없이 무사통과했다는 게 관세청 설명이다. 이 기간 금수품목을 싣고 왔어도 막을 길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범선박목록에 올라도 검색 자체의 맹점이 있었다. 관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석탄과 같은 현물(화물)에는 손을 대지 않고 서류 위주로 검색한다”며 “북한을 다녀왔느냐, 접촉했느냐가 검색의 관건인데 환적한 물품은 서류만 제대로 있다면 금수품목 여부는 조사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상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이 지적하거나 당국이 제재를 위반한 것 같다는 첩보를 입수하지 않는 한 러시아 등에서 환적해 북한산임을 속이는 선박들을 일일이 감시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편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19일(현지 시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따른 수입금지 품목인 북한산 석탄이 한국에 유입됐다’는 미국의소리(VOA) 방송 보도와 관련해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주체에 대해 단호한 행동을 취하겠다”며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손택균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월 유엔 총회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한영 외교장관 전략대화 참석과 유럽지역 공관장회의 주재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한 강 장관은 18일(현지시간)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유엔 총회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예단하기도 어렵고 구체적으로 협의 중인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간 외교가에서는 유엔 총회를 계기로 미국 뉴욕에서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이날 강 장관의 발언을 두고 남북과 미국이 이미 물밑에서 어느 정도 의견을 교환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연내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희망과 기대가 많이 반영된 발언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 장관은 가을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선 “과거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몇 달이 걸렸지만 이제는 그 차원을 넘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그 사이에도 정상 간에 어떤 소통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이미 남북미 사이에 실무적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핵화 논의가 더딘 상황에서 정상회담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일은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의 늪에 빠지면 실무 또는 후속협상에서 막힐 때마다 정상회담을 하려들게 되고, 정상회담이 자주 열릴수록 당초 기대하고 목표로 했던 성과를 거두기 힘들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덩달아 고위급협상이나 워킹그룹 단계의 실무협상에서도 어떤 결정이나 합의를 이루기 어려워진다. 이런 가운데 일본 아사히신문은 18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후속논의를 위해 구성키로 했던 워킹그룹에 대해 북측이 난색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달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고위급후속협상을 위해 방북했을 때 워킹그룹 구성을 요구했으나 북측에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협의하는 틀이 있다. 워킹그룹에서 결정해도 김영철 부장에게 보고하므로 결국은 같은 일이 된다”며 거절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워킹그룹 논의를 미루면서 미국의 기대치를 낮추는 전술적 행보를 구사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북미 양측 간 준비가 이뤄지고 있지만 개최 시기나 장소 등이 미처 실무적으로 협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최근 미국을 방문해 워킹그룹 등을 두루 면담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미 간 후속협상이 곧 개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대북제재의 ‘구멍’으로 지목돼온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금수 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국내로 운반한 선박의 운영 회사 사무실 소재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여전히 제재가 가장 느슨하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중국이 해상을 통한 북한산 석탄, 석유 거래에 연루돼 제재 위반 여부를 다투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에서 환적한 뒤 들여왔다가 이번에 우리 당국에 적발된 파나마 선적 ‘스카이에인절’호와 시에라리온 선적 ‘리치글로리’호를 소유한 회사는 모두 중국 다롄에 사무실이 있다. 다롄은 북-중 경협지역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북한 선박에 유류를 건넨 혐의로 지난해 12월 평택·당진항에 억류된 파나마 유조선 ‘코티’호의 선사도 다롄이 소재지였다. 중국 회사인 이들 선사가 보유한 선박이 왜 중남미나 아프리카 선적일까. 해당 국가에서 국기를 사서 바꿔 달면 세금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규제를 적게 받고 선원 고용 및 조업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 제도 때문이다. 편의치적은 일반적인 해운업계 관행이어서 그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처럼 공해상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선박에 대한 관할과 통제 책임은 선박이 달고 있는 깃발, 즉 기국(旗國)에 있다는 원칙 때문에 제재가 어려워진다. 가령 이번 북한산 석탄 수출 책임을 중국 선사에 추궁하면 “파나마 배니 파나마에 따져라. 우리는 모른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관세청은 9개월째 북한산 석탄의 수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조사는 수입업체 관계자들의 엇갈린 진술과 선사의 비협조로 조사는 답보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당국에 따르면 그 사이 스카이에인절호와 리치글로리호는 올 1월부터 6월 말까지 6개월 동안 각각 15차례, 7차례나 인천 군산 평택 부산 등 국내에 수시로 입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북한 석탄의 해상밀수에 관여한 선박들을 나포하거나 검색 또는 억류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선박들은 자유롭게 항행한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문제가 된 배들은) 우범선박 목록에 올라 있어 집중 검색을 받는다. 하지만 아직 지난해 10월 조사가 완료되지 않아 혐의가 명확하지 않고 이후로는 추가 위반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기자이우연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졸업}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을 국내에 들여왔다는 의혹을 받는 파나마와 시에라리온 선적의 선박 2척이 모두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 소재한 회사에서 관리하는 선박으로 확인됐다. 중국이 제3국으로 국기를 바꿔 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망을 회피한 정황이 포착된 셈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 안전검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일 인천에 입항한 파나마 선적 ‘스카이에인절’호는 ‘다롄 스카이 오션 인터내셔널 시핑 에이전시’가, 같은 달 11일 경북 포항에 들어온 시에라리온 선적 ‘리치글로리’호는 ‘싼허 마린’사로 운영회사가 표기돼 있다. 스카이에인절호는 올해 4월부터 파나마에서 남태평양 섬나라인 ‘바누아투’로 선적을 바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 무로란항에 입항한 사실도 드러났다. 스카이에인절호와 리치글로리호는 올해 상반기에만 각각 7차례와 15차례 국내에 입항했지만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국이 선박을 검색만 하고 억류하거나 압수하지 못한 점도 확인됐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대북제재가 한층 강화됐던 지난해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 9000t이 2차례에 걸쳐 국내에 들어와 유통된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금수품 지정 후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17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지난달 27일 수정해 제출한 연례보고서는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 홀름스크항에서 선적돼 지난해 10월 2일 인천에, 11일 경북 포항에 들어왔다고 적시했다. 수입 석탄량은 2일 파나마 선적의 ‘스카이에인절’호에 실려 인천으로 들어온 것이 4000t, 11일 시에라리온 선적 ‘리치글로리’호로 포항에 들어온 석탄이 5000t이다. 당시 t당 가격이 65달러임을 감안하면 모두 58만5000달러(약 6억5900만 원)어치다. 지난해 8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 2371호는 북한산 석탄을 전면 수출 금지하고, 다른 국가들은 자국민이나 자국 국적 선박 및 항공기를 통해 조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산 석탄이 하역돼 유통된 뒤에 관련 정보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입항 전) 수입신고 접수가 완료된 상태여서 선박이 한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하역 처리됐다”며 “관련 당국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세관당국은 지난해 해당 선박이 정박해 있을 때 조사에 나섰지만, 당시에는 의심 선박을 억류할 국제법 또는 유엔 안보리 결의 등 근거가 없어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문제의 선박들은 ‘우범 선박 목록’에 오른 올 2월에도 한국을 찾았지만 대북제재 위반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사통과된 것으로 알려졌다.신나리 journari@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대북제재의 목소리가 높던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 9000t이 우리 정부의 감시망을 벗어나 국내 유입된 것은 그만큼 ‘제재 구멍’을 막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수입신고서에 기재된 석탄 원산지는 러시아. 수입업체가 신속한 통관을 위해 수입신고를 먼저 마쳤고 입항과 동시에 하역돼 유통됐다. 석탄은 러시아산 등과 섞일 경우 북한산으로 판명하기 어려울뿐더러 이렇게 신속히 유통돼 ‘소진’되면 추적하기가 더욱 어렵다. ○ 러시아산으로 둔갑한 북한산 석탄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이 지난달 내놓은 연례보고서에는 지난해 인천과 포항으로 유입된 북한산 석탄의 이동 경로가 비교적 상세히 나온다. 능라2호 운봉2호 을지봉6호 등 북한 선박들이 원산과 청진에서 처음 석탄을 싣고 출항해 지난해 8월 초부터 9월 하순까지 러시아 사할린 남부 홀름스크항에 환적한 것만 7건이다. 이후 10월 북한산에서 러시아산으로 ‘둔갑’한 석탄들이 홀름스크에서 출발해 스카이에인절호에 실려 4000t, 리치글로리호를 통해 5000t이 인천과 포항에 각각 도착했다. 지난해 8월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결의 2371호는 석탄을 포함한 북한산 광물의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비록 러시아를 거쳤지만 한국에 유입된 북한산 석탄은 제재결의 위반에 해당된다. 그러나 제재 시행 첫해부터 허점은 드러났다. 문제의 선박들이 지난해 10월 입항했을 때는 의심 선박을 묶어둘 국제 규정이 없어 선박업체만 조사해서 보내야 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항만국통제위원회 검색 결과 두 배가 처음 입항한 후 4개월 뒤인 올해 2월 하순 군산항(스카이에인절)과 인천항(리치글로리)에 또 들어왔지만 역시 풀려났다. 관세청 관계자는 “제재 이후 북한을 거쳤는지가 관건인데 위반 사항이 없어서 보냈다”고 밝혔다. ○ 우리 해역이 ‘대북제재’ 구멍 되나 앞서 한국은 ‘제재 구멍’이 된 사례가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정유제품을 선박 간 거래로 북한 선박에 넘겨줬다는 혐의를 받는 홍콩 선적 ‘라이트하우스 윈모어’호와 파나마 선적 ‘코티’호 등도 여수항과 평택·당진항에 억류된 바가 있다. 북한이 제재망을 피해 금수품목을 거래하는 무대로 한국 해역을 삼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북한 선박이 가장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해역이 우리 작전 수역”이라며 “남북 해운 합의서에 유엔 안보리 제재가 없어도 의심 화물을 싣고 다니면 검색을 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우리 정부가)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산 석탄이 반입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관련 조사는 마무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은 한국 수입업체에 대해 관세법에 따른 부정 수입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해당 업체가 결의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면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이 제재 대상으로 올릴 수 있지만, 안보리 이사국 15개국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는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기자}

16일 오전 10시 반경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에 올해 첫 폭염경보가 내린 이날,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지만 37명 청년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2018년 대학생 비무장지대(DMZ) 통일발걸음 발대식’은 이렇게 시작부터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엔 페루, 이탈리아, 파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대학생 7명과 우리 대학생 60명(이 중 30명은 탈북 대학생)이 참가했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은 예년보다 높은 3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이다. 최용재 통일발걸음 기획팀장은 “올해 통일 분위기가 고조된 덕”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참가자는 이날부터 22일까지 6박 7일간 김포, 강화, 파주 등 서부전선 120km를 걷는다. 한상대 6·25공원국민운동본부 이사장은 발대사에서 “요즘 통일의 소리가 들린다. 통일을 향해 앞으로 가자”고 독려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대한 걱정보다는 향후 일정에 대한 기대감이 학생들에게는 더 큰 듯했다. 한 탈북 대학생 참가자는 “파주에서 남한 청년들과 북한을 바라보며 그들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고 말했다. 페루 출신으로 동국대 연극학부에 재학 중인 키아라 씨(25)는 “원래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많다. 탈북 청년과 친해져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은 낮에는 행군을 하고, 저녁엔 박관용 전 국회의장,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등에게 강연도 듣는다. 행사는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와 6·25공원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한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이우연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