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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날아가는 새가 허공에 안겨 허공을 드러내듯이, 아, 그대 참사랑이여, 내 이 초라한 삶과 죽음이 그대 품에 안겨 그대를 드러내는 것이기를!’ ‘동양학 하는 목사님’으로 유명한 이현주 목사가 우리 나이로 칠순을 맞아 불가의 스님에게 어울릴 법한 제목의 책을 냈다. 신간 ‘공’(샨티·사진)이다. 부제는 ‘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있게 하는…’이다. 책에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그가 먹을 묻힌 붓으로 선물 포장지나 판지 같은 쓸모없는 종이에 그린 다양한 형태의 ‘空(공)’ 글씨 70점과 공을 화두로 붙잡고 쓴 글 149편이 담겨 있다. 글씨를 보고 있자면 불가의 달마도가 생각날 정도다. 2004년부터 충주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10일 전화를 걸었다. “마침 오늘이 생일이에요. 칠순이 되니 손님들이 종종 찾아와서 자비로 책 200부만 찍어 선물로 나눠 주려고 했다가 정식 출간하게 됐어요.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 정직하게 썼고, 그저 자유롭게 읽어주시면 그만입니다.” 이 목사는 몇 년 전부터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입으로 ‘공공공공…’ 하고 읊조리며 다양한 모양의 ‘공’자를 썼다. 그러곤 마치 표구하듯이 둘레를 다른 종이로 풀칠해 붙였다. 재작년 사별한 아내는 생전에 그 모습을 보고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지 왜 그러고 있느냐”며 한마디씩 했단다. 완성된 작품은 주변 사람들에게 “공을 공짜로 드립니다”라며 나눠 줬다. 이 목사는 평생 수십 권의 철학서, 동화, 번역서를 내며 왕성한 저작 활동을 벌여 왔다. 특히 ‘대학중용읽기’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 ‘장자산책’처럼 유불선 사상을 넘나드는 책이 많다. “갓난쟁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남이 알려주는 예수에 대한 이해나 설명보다 직접 배우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자 공자 부처도 만나게 됐습니다.” 개신교 목사인 그에게 불가의 화두처럼 들리는 공이란 무엇일까? “허공이 없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손을 머리 위로 드는 것도 허공이 있어서 가능한 것처럼 아무 데도 없지만 다른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게 허공입니다. 저도 허공처럼 존재하면 좋겠는데 육신이 있어 불가능하죠. 그래서 마음만이라도 허공처럼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허공이 닮았다고 했다. 그는 “‘허공=예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형상이 없는 하나님을 몸으로 경험한다면 가장 근접한 것이 허공 같다”며 “유불선과 기독교의 경계도 그 앞에서 다 허물어진다”고 했다. 그런 그가 ‘고마운, 정말 좋은 친구’였던 아내가 별세한 다음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아내가 임종할 무렵에 이 책에 담길 글을 마쳤어요. 책을 낼 땐 마지막이란 생각도 했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제가 할 말은 거의 다 했단 생각은 드네요.” 마지막으로 종교인으로서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고민을 털어놓지만 그저 들어드리기만 한다. 다들 열심히 사니까 그저 하시는 일 거리낌 없이 하시면 좋겠다”며 더는 말을 아꼈다. 통화 내내 그의 목소리는 가벼웠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달 8일 인천에서 50대 기러기 아빠가 자살을 택했다. 4년 전 아내와 중고등학생 두 아들을 유학 보내고 외로움을 자주 호소했다고 한다. 당시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아빠처럼 살지 말란 당부도 덧붙였단다. “아버지처럼 살지 마라.” 한국 보통 아버지들이 한 번 이상 내뱉었을 말.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저 말을 검색해 보니 저마다 사연이 쏟아진다. 아버지들은 마치 본능인 양 자식들은 자기와 달리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에 다니길 소원한다. 가족을 찢어 외국에 보내서라도 성공하길 바란다. 책은 우리에게 다른 삶을 보여 준다. 부제는 ‘닮고 싶은 삶, 부모와 함께 걷기’다. 가업을 이어받은 대장장이, 시계수리공, 장돌림, 농부, 떡장수, 두석장 가족을 만나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충북 충주시 엄정면 ‘엄정 임경옥 족발’ 대표 소성현 씨(31)는 전국 장터를 돌며 족발을 파는 13년 차 장돌림이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 장돌림이라 ‘학사 노점상’으로 불리는 장터 명물이다. 2000년 그의 어머니 임경옥 씨는 장터 노점을 접고 족발 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니를 돕던 아들은 힘든 하루를 마감하며 소주 한 병을 비워야 잠이 드는 어머니의 고된 삶을 보면서 애틋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아들도 어머니를 따라 자신도 장터에서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는 저희에게 남들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장터에서 잡화를 팔던 아버지는 반대했다. “부모가 고생하는 이유는 가난과 멸시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다. 대학을 졸업하고 넥타이 매고 펜대 굴리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서인데, 어릴 때부터 부모 잘못 만나 장터를 떠돌아다닌 것만으로도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족발은 잘 팔렸다. 아버지가 하던 일이 망해 쫓기듯 내려온 고향에서 번듯한 가게도 열었다. 몇 해 전 뇌출혈로 숨진 어머니에 이어 소 씨가 대표가 되어 어머니 이름을 건 족발가게를 프랜차이즈로 키울 꿈을 꾸고 있다. 소 씨는 장사 노하우만 물려받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처음 가게를 열면서 지역 학생들에게 매달 장학금을 줬다. 가난한 부모의 아픔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며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아들도 장학금 사업을 이어 가며 시골에 작은 도서관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가 경제력에 좌우되는 가족 해체 시대에 잃어 가는 가족의 가치를 다시 짚어 보고자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서 만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기술 성실 끈기 땀 정직 같은 유산을 아낌없이 물려줬다. 자식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유통 경로를 개척하고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마케팅 기법을 고안하며 보답했다. 가끔 부모가 생업에서 벗어날 여유도 줬다. 부모님과 함께 떡집을 운영하는 김진희 씨(23)의 말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님 아래서 사업을 한다는 건 커다란 축복입니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 주고 나의 성장을 지지하는 부모님을 통해 내가 꿈꾸는 모든 것들을 용기 있게 시도하고 모험할 수 있으니까요. 설령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비난보다 격려하는 가족들과 함께라면 언제까지나 자신 있게 두려움 없이 나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처음 시행한 우수출판기획안 지원 사업 대상 수상작이다. 심사평은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를 포착하고 주제에 대한 진정성을 담았기에 선정됐다고 밝힌다. 저자는 백창화 작가,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 장혜원 편집자가 함께 썼다. 이들은 2년여 동안 밀착 취재를 통해 10여 가족을 만났고 그중에서 진정 가업을 이을 각오가 선 가족만 추려 책에 담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성북동 토박이들이 뭉쳐 마을 잡지를 펴냈다. 지난달 20일 출간된 계간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다. 3일 저녁 서울 성북동 카페 티티카카에서 이 잡지를 만든 두 주역을 만났다. 편집을 맡은 최성수(55·시인), 김홍식 씨(47·서울대병원 직원)다. “우리 둘이 성북동에서 산 햇수를 합치면 90년이 넘습니다. 잡지 제작에 참여한 성북동을 사랑하는 주민 모임 ‘성북동천’ 멤버와 성북동에 사는 기고자들까지 합치면 300년을 훌쩍 넘습니다.” 성북동천은 7월 성북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성북동 옛날사진전, 마을학교, 마을 잡지 사업을 시작했다. 잡지를 만든다는 소식에 성북동 주민과 상인, 예술인들이 글과 그림, 사진을 내놨다. 잡지에는 성북동 30년 토박이인 소설가 김선정 씨가 쓴 시 ‘성북동에서’와 김철우 화백이 그린 성북동 풍경이 함께 담겨 있다. 카페 티티카카 김기민 대표는 성북동 1인 가구 독거 생활자의 식사 모임인 ‘성북동 부엌’을 소개한다. 성북동에 살지는 않지만 이경돈 성균관대 연구교수와 신현수 시인은 각각 성북동 문인 이태준의 이야기와 성북동 골목길 기행기를 기고했다. 2000부를 발행한 잡지는 성북동 주민센터, 가게, 은행에서 무료로 배포한다. 최 씨는 “요즘 동네 잡지, 마을 잡지가 많이 늘었는데 우리는 성북동의 트렌디한 변화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람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 내려 노력했다. 다음엔 성락원 주변 부촌에 사는 주민들도 참여하면 좋겠다”고 했다. 성북동의 장점을 묻자 두 사람 표정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어스름한 저녁 서울성곽의 스카이라인, 꼬불꼬불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토박이들, 성락원 심우장 선잠단지 최순우 옛집 같은 문화재까지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최 씨는 “성북동엔 문화재가 많지만 사람과 따로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이곳 주민, 문화인들과 함께 숨결을 같이하기에 더 소중하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성북동에 부는 재개발 바람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다. 김 씨는 “투기 바람이 불면서 토박이가 떠나고 외지인이 들어오며 주민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잡지가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해 말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북유럽식 자녀양육법을 추구하는 30대 젊은 엄마 ‘스칸디 맘’을 올해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실제로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책 육아’가 인기를 끌었고, 아빠들도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의 출연진처럼 자상한 부성애를 가진 ‘스칸디 대디’로 변신했다. 또 트렌드 연구가인 김용섭 씨는 ‘좀 놀아 본 오빠들의 귀환’을 2013년 트렌드로 전망했다. 1970, 80년대 문화는 반짝 유행에 그칠 것이지만 1990년대 문화의 인기는 장기간 지속된다고 봤다. 올해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전작 ‘응답하라 1997’을 능가하는 관심을 모으며 1990년대 복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러나 일부 트렌드는 이미 해묵은 유행이거나 제대로 적중하지 못한 것도 있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미래에 대한 통찰은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존 언론보도를 짜깁기한 한계가 엿보이는 경우도 있다”며 “트렌드 적중에 실패한 곳은 독자들의 항의에 시달리거나 슬그머니 트렌드 시리즈 출간을 접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4년 갑오(甲午)년을 앞둔 연말, 어김없이 트렌드 적중을 자신하는 책들이 출간됐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4’(미래의창), 김용섭 씨의 ‘라이프트렌드 2014’(부키), KOTRA의 ‘2014 한국을 사로잡을 12가지 트렌드’(알키)가 제시한 공통 트렌드와 엇갈린 전망을 정리했다. 공통점은 ‘몸’이다. 김난도 교수는 ‘나포츠(night+sport)족’과 ‘노동 세러피’를 내년 트렌드로 뽑았다. 정신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땀을 내는 운동이나 육체노동으로 달래는 트렌드가 급속히 확산될 거란 전망이다. 김용섭 씨는 신조어 ‘애그리테인먼트(agritainment)’를 제안했다.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 세대도 농사짓는 불편함을 재밌는 놀이로 즐기는 문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올해 서울에만 70만 명 이상이 도시농업 활동을 하고 있다. 내년 소비 트렌드를 이끌 세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김난도 교수는 ‘어른아이 40대’에 주목했다. 내년이면 1990년대 문화를 이끈 X세대(1966∼1974년생)가 모두 40대가 된다. 수적인 규모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보다 약 50만 명이 더 많다. 1990년대 압구정동 오렌지족으로 활약하던 소비 본능과 함께 수백만 원짜리 장난감도 구매하는 놀이 본능도 갖고 있어 문화 소비의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KOTRA에 따르면 영국에도 어린 아기가 스마트폰을 갖고 노느라 장난감을 멀리하지만 ‘키덜트(kid+adult)’ 어른들이 비싼 장난감을 구매해 오히려 완구산업이 증가세에 있다. 반면 ‘라이프 트렌드 2014’는 소비 빙하기를 맞아 2030세대 젊은 여성들의 활약에 주목했다. 젊은 여성들의 소비 여력도 하락세지만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고급 과자나 프리미엄 생수, 네일 아트에 주저 없이 지갑을 열 것으로 봤다. 2014년에는 2월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6월 브라질 월드컵, 9월 인천 아시아경기와 같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가 열린다. 김난도 교수는 스포츠 행사가 침체된 사회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봤고, 김용섭 씨는 국산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이 줄어 애국 마케팅이 예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산부인과 의사인 현직의(필명·37·여)는 2011년 봄 의사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닥터스 로맨스’를 썼다. 만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원고를 들고 종이책, 전자책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이야기가 너무 방대하다” “소설 작법이 아니다”라며 거절당했다. 그는 ‘개인출판’으로 활로를 뚫었다. 2011년 가을 전자책 오픈마켓인 유페이퍼에서 ‘닥터스 로맨스’를 판매했다. 이후 ‘펜트하우스’ ‘유리파편 위의 사랑’을 속속 발표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 독자층이 확보되자 종이책도 냈다. 그는 “외과의사인 남편의 조언과 의학서적을 참고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랑 이야기를 성의학으로 풀어내 독자에게 의학 정보를 함께 준 것도 경쟁력이 됐다”고 자평했다. 기존 출판사의 높은 문턱을 피해 개인출판으로 독자를 공략하는 작가가 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듯 전자책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자책을 만들어 오픈마켓에 올린다. 독자의 주문을 받아 책을 찍어내는 주문출판(POD·Publish On Demand) 방식으로 종이책도 내고 있다. 전통적인 조판인쇄 방식이 아닌 프린트 인쇄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POD는 재고 걱정이 없다. 유페이퍼의 경우 작가 1800명이 전자책 8000종을 올리고, 이는 인터넷서점과 이동통신망에서 유통된다. 교보문고 POD 서비스의 판매량도 지난해 7000부에서 올 10월 현재 1만2000부로 늘었다. 이들은 직업이나 취미를 살려 세분된 주제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마니아인 손갑철 씨(53·무역업)는 지난해 ‘FSX로 파일럿 되기’를 썼다. 1994년 ‘컴퓨터 파일럿’(크라운출판사)을 출간했던 손 씨는 이후 20년간 바뀐 비행 시뮬레이션 기술을 반영한 이 책의 출판을 의뢰했다. 하지만 출판사들은 불황이라 초판 1000부도 팔기 어렵다며 퇴짜를 놨다. 손 씨는 지난해 POD로 2만2400원에 책을 내놓았고, 지금까지 500권 이상 팔렸다. 그는 “비행 시뮬레이션 분야에선 유일한 필자라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그때 책을 찍어내기에 망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한국계 미국작가 수전 이의 판타지소설 ‘엔젤폴’(제우미디어)도 개인출판 전자책으로 성공을 거둬 19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에서도 개인출판 시장이 커지면 새롭고 다양한 필자를 발굴하는 마이너리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울릉도는 원래 신라에 속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점거됐다가 도쿠가와 막부 때 한국이 되찾았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후에는 그대로 조선 경상북도 관할로 소속됐다. 죽도(竹島·독도)는 울릉도의 속도(屬島)가 된다. 인구는 1928년 조사에 따르면 1만466명이고 이 가운데 일본인은 겨우 600명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울릉도와 죽도는 일본에 귀속돼서는 안 된다.’ 1947년 작성된 중국 외교문서 ‘일본 영토처리 변법 초안’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중국 정부가 독도를 울릉도의 속도로서 조선 영토로 여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을 지낸 유미림 한아문화연구소 대표가 1940년대 중국 외교문서를 수록한 ‘우리 사료 속의 독도와 울릉도’(지식산업사·사진)를 펴냈다. 이 책에는 ‘일본 영토처리 변법 초안’ ‘유관 일본강역문제 자료’ ‘한국강역문제의견-주일대표단’ ‘구 일본 영토’ 등이 수록돼 있다. 유 대표는 이 문서들을 중국 외교부 사료관인 중국 난징의 제2역사당안관에서 찾아냈다고 밝혔다. 중국은 한국 신탁통치 방안이 논의되던 시기에 작성된 이 외교 문서들에서 한국 영토 처리 방침을 제시했다. 유 대표는 “중국 정부가 자료 촬영이나 복사를 금지해 일부를 필사했다. 독도에 대한 당시 중국의 생각을 처음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여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 책에는 독도 연구가인 유 대표의 독도 관련 논문과 자료도 수록돼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휴)이 7주째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책은 한국출판인회의가 11월 넷째 주(22∼28일)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 8곳의 판매량을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10월 7일 출간된 ‘인생수업’은 10월 둘째 주에 베스트셀러 6위로 진입하고, 같은 달 셋째 주부터 당시 8주째 1위를 지키던 조정래의 ‘정글만리’(해냄)를 따돌리고 1위에 올라섰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신작 ‘제3인류’(열린책들) 출간을 기념해 방한했지만 ‘인생수업’의 인기를 따라잡지 못했다. ‘인생수업’은 법륜 스님이 대중강연 ‘즉문즉설’에서 청중에게 받은 질문 가운데 ‘인생을 어떻게 살면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정리한 책. 이에 앞서 스님은 결혼을 앞둔 미혼 남녀에게 주는 조언을 담은 ‘스님의 주례사’(2010년·48만 부 판매), 어머니의 자녀 양육법을 다룬 ‘엄마 수업’(2011년·35만 부)을 낸 바 있다. 책이 팔리는 속도는 전작들보다 빠르다. 출간 이후 지금까지 20만 부 넘게 출고됐다. 책은 주로 30, 40대 여성 독자가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대 온·오프라인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산 독자는 30대 여성(26.9%), 40대 여성(17.4%), 20대 여성(13.9%) 순으로 많았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법륜 스님이 예능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출연해 대중의 인기를 확보한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영 휴 편집인은 “처음엔 중장년층을 주독자층으로 보고 기획했지만 인생 경험이 풍부한 50, 60대보다 여전히 고민이 많은 30, 40대가 인생의 후반전을 설계하기 위해 책을 구매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30, 40대의 고달픈 삶의 반영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죽음, 늙음, 인생을 다루는 시니어 출판물은 정작 중장년층보다 자녀 세대가 가장 많이 읽는다”며 “힘든 아버지 세대 이야기를 보고 자신을 반추해 보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고달픈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 속엔 ‘후회를 남기지 말라’ ‘마음을 편하고 가볍게 하라’ ‘사는 데 정답은 없다’는 식의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인터넷서점 후기에는 “스님이 내 속을 들여다보듯 말씀을 하니 불안한 마음이 진정됐다”는 반응도 있지만 “방송에서 하셨던 말씀과 그 전에 나온 책과 겹치는 내용이 많다”는 시각도 있다. 자기계발서를 비판한 책 ‘거대한 사기극’의 저자 이원석 씨는 “세련된 심리적 자기계발서이기에 독자를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역할은 충실히 한다. 하지만 간편하고 간단한 제안일 뿐 사람의 근본적인 조건을 바꿀 순 없다”고 평가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아, 내 인생길이/왜 이다지도 가시밭길인가. 찌를 때마다 피 흘러/걸을 때마다 핏자죽이었네.”―이말란 할머니의 자작시 ‘내 인생길’ 중 책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인생을 몇 줄로 요약하기란 어렵다. 그는 1927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녀를 다녔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지만 집안 형편은 넉넉했다. 오빠와 두 언니는 광복 전 일본으로 이주했다. 부산고녀 재학 시절 한센병과 임신이란 불행이 한꺼번에 닥쳤다. 일본인 대학생 마쓰시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 불러오는 배를 고민하는 건 사치였다. 곧 한센병이 몸을 덮쳤다. 동네 주민들은 산기슭 움막으로 내몰았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돌봐주던 어머니가 이듬해 숨지고 삶의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입양 보내야 했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은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라고 썼다. 할머니의 인생도 다르지 않았다. 평생 차별 속에서 살며 입양 보낸 아들과 첫사랑을 그리워했다. 나중에 가족을 꾸렸지만 상처를 꺼내 보이지 못했다. 그저 “차라리 이 땅 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이라며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며 살았다. 간호사 출신인 저자는 문학과 의학을 융합한 ‘치유 시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2006년 7월 ‘시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고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2007년 2월까지 20여 차례 저자를 만나 시를 쓰며 자신의 억누르던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아름다운 영혼과 화해한다. 책에는 2009년 6월 사망한 할머니의 구술사와 시 11편이 수록돼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참선 잘하그래이(김형효 한승원 외 지음·김영사)=‘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란 법어로 큰 깨우침을 준 성철 스님이 열반한 지 20년이 됐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 마음을 일군 저명인사 27명이 쓴 추모 에세이를 모았다. 1만5000원.꼬리 치는 당신(권혁웅 지음·마음산책)=시인인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부터 공룡처럼 세상에서 사라진 동물까지 모두 500여 종에 대해 생물학 철학 문학을 넘나드는 사유를 하고 이를 짧은 글로 옮겼다. 꼭지마다 동물 수채화를 곁들였다. 1만5500원.가와이이 제국 일본(요모타 이누히코 지음·펜타그램)=일본 메이지가쿠인대 예술학과 교수인 저자가 일본 대중문화 성공의 밑바닥에 깔린 ‘가와이이’(귀엽다) 미학을 분석했다. 가와이이가 대중문화를 넘어 정치적 퇴행을 불러왔다는 주장은 곱씹어 볼 만하다. 1만3000원.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이명옥 지음·시공아트)=사비나미술관 관장인 저자가 창의성을 ‘키워드’로 삼아 색다른 미술 감상법을 제안한다. 익숙한 그림의 재발견과 독특한 그림에 대한 창의적 해석을 만날 수 있다. 1만7000원.나는, 오늘도(미셸 퓌에슈 지음·이봄)=프랑스 소르본대 철학 교수인 저자가 사랑하다, 설명하다, 걷다, 먹다 같은 9개 일상 키워드에 대한 철학적 단상을 담았다. 전 9권의 그림 작가가 모두 다르다. 각 9000원.생각의 궤적(시오노 나나미 지음·한길사)=‘로마인 이야기’를 쓴 저자가 1975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양한 매체에 쓴 글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냈다. 소설 창작 과정, 역사와 문명에 대한 생각, 이탈리아 생활까지 작가의 여러 면모를 만날 수 있다. 1만6000원.그때 우린 열세 살 소년이었다(나일성, 사가에 다다시 지음·북치는 마을)=1945년 함북의 한 중학교에서 무심코 조선말을 내뱉은 조선인 소년과 그를 감싸 준 일본인 소년의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 1986년 헤어진 지 41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친구의 우정을 글로 옮겼다. 1만3000원.바비레따(전건숙, 이서원, 김해자 지음·수필세계사)=울산을 무대로 활약하는 시조시인 이서원, 수필가 김해자, 문인화가 전건숙이 힘을 합쳐 시와 수필, 그림이 어우러진 책을 냈다. 책 제목은 러시아에서 여름과 가을 사이 두 주간 정도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뜻한다. 1만5000원.}
“이정명 작가의 ‘The Investigation’(원제 ‘별을 스치는 바람’)이 한국 문학을 영국에 알리는 데 돌파구가 되길 바랍니다. 한 작품만 터지면 다른 작품들도 줄줄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2014년 런던도서전 주빈국에 한국이 선정된 것을 기념해 영국 주요 출판사 대표와 편집장 6명이 한국을 찾았다. 28일 오전 서울 신문로 주한 영국문화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영국 최대 출판사인 팬맥밀런 계열사 맨틀의 마리아 레즈트 대표는 내년 3월 윤동주 시인의 형무소 생활을 다룬 ‘별을 스치는 바람’ 영역판을 출간한다고 밝혔다. 그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번역한 사람에게 이정명 작가의 작품 번역을 맡겼다. 런던도서전에 이 작가를 초대해 다양한 홍보활동을 벌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콤마프레스의 케이티 슬레이드 편집장은 “서울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집을 낼 계획이다. 아직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김영하 작가를 만나지 못했지만, 영국은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고립 침울함 어두움을 다룬 그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매클리호스프레스의 폴 엥글스 편집장은 “한국 작가도 추리소설 같은 장르소설 분야를 공략하는 방법을 고민해볼 만하다. 영국에서 출간 예정인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성인을 위한 동화물도 한국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염소가 ‘음매’ 하고 소리 내듯 아이들도 말수가 줄고 ‘대박’ ‘헐’ 같은 감탄사만 내뱉고 있어요. 아이들이 계속 자라는데 우린 권위적인 말만 하고 있으니 우리부터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마포구립 성산글마루 작은도서관 회의실. 어머니 독서모임 ‘책과 노니는 사람들’ 회원 9명이 함께 본 뮤지컬 ‘위키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뮤지컬 속 염소교수가 마법사의 저주로 언어를 잃게 되는 장면을 놓고 단순히 재밌다, 좋았다는 인상비평을 넘어 마법사·마녀의 역사적 의미, 말의 소중함, 소통의 중요성까지 논의가 확장돼 갔다. 이들의 수다 속에는 1년 반 동안 이어온 내공이 묻어났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주부 최경미 씨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웃음을 찾았다. 최 씨는 “아이를 키우며 인생을 희생해 왔는데, 여기서 내 인생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책을 손에 잡고 나서 삶의 지혜도 배우고, 이제는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한다”고 말했다. 중학생 쌍둥이를 둔 성은숙 씨(43)도 “사춘기 자녀와 소통이 안 돼 늘 고민이었다. 청소년 책을 읽다 보니 자녀의 고민이 나도 겪었던 문제였음을 알았고 아이들과 대화도 잘 통하게 됐다”며 웃었다. 성산글마루는 2011년 12월 문을 열었다. 아파트 주민이 자발적으로 도서관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주민의 요구를 들은 마포구는 시설비와 운영비, 도서구입비를 지원했다. 도서관 단체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초기 건립을 도왔고, 위탁 운영은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맡았다. 장서 1만1000여 권을 갖춘 도서관에는 하루 평균 100∼150명이 찾는다. 반면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북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5월 관내 주민센터에 만든 어린이 작은도서관. 이곳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기존 새마을문고에 간판만 바꿔 단 이곳 서가에 꽂힌 책은 성인, 어린이로만 구분돼 있어 어린이가 원하는 책을 찾기도 힘들었다. 자동차로 10여 분 떨어진 민간 어린이 작은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가 어린이들로 북적거리고, 도서관이 마련한 어린이 독서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 중인 모습과 대비됐다. 해당 지자체는 10여 개의 작은도서관을 한꺼번에 개관하며 “지역 문화공동체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은도서관 운영 노하우를 익히기는커녕 경험 없는 자원봉사자를 뽑아 관리를 맡겼다. 자원봉사자는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어린이들 대부분이 주민센터에 볼일 보러 온 부모를 따라왔다가 잠시 들른다. 아직 지역주민과 연대하는 프로그램도 없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규정된 작은도서관은 건물 면적 33m², 열람석 6석, 보유장서 1000권 이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작은도서관은 2010년 3349개에서 2012년 3951개로 2년 새 600여 개 늘었다. 전국의 서점 수 1752개(2011년 현재)의 2배가 넘는다. 지난해 8월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는 ‘작은도서관 진흥법’이 시행되고, 올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작은도서관을 모범 복지 사례로 언급함에 따라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작은도서관을 세운 뒤에는 관리 소홀로 방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마을작은도서관협의회 공동대표인 김소희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관장은 “작은도서관은 규모가 작다고 작은도서관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주민이 함께하고 같이 성장하는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지자체가 작은도서관 수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지역에 어떤 도서관이 필요한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에 어떤 작은도서관이 있는지 궁금하면 작은도서관 포털사이트(www.smalllibrary.org)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웃 간 전쟁 유발자’로 불리는 층간소음. 올해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방화 폭력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됐다. 책은 아파트 중심 사회에서 공포로 떠오른 층간소음을 소리공학에 근거해 설명해 준다. 충격음은 바닥이나 벽의 콘크리트, 철근을 타고 위아래층으로 전달되는데 특히 저주파 소음이 크게 전달된다. 층간소음은 50Hz 이하 저주파로 이뤄져 있다. 저주파 소음은 공명을 일으켜 거실이나 방에 큰 울림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저주파 소음이 사람의 귀보다는 신체나 촉감을 자극해 머리나 가슴에 통증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실제 실험에서도 저주파 소음을 들은 사람들이 어지러움과 가슴울림을 호소했다.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소음이라면 귀를 막으면 그만이지만 신체나 촉감을 자극하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아파트 구조도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거대한 울림통으로 변하고 있다. 아파트 높이가 올라갈수록 층간은 좁아지고 건축 자재는 가벼워져 소리는 더 크게 울린다. 사람의 코 고는 소리도 저주파로 이뤄져 있다. 코 고는 사람 옆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띵한 것도 저주파가 머리를 울리는 공명 특성이 있어서다. 물론 사람을 살리는 소리도 있다. 책은 여름철 해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해변을 소개한다. 몽돌해변에는 주먹돌이 깔려 있어 파도가 밀려 나갈 때면 ‘짜자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백령도 해변은 손톱만 한 크기의 굵은 모래가 있어 ‘싸∼’ 하는 소리를 낸다. 파도 소리는 3∼7초 주기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음이 편안할 때 하는 심호흡과 주기가 비슷해 졸음을 유발한단다. 이런 자연이 내는 소리는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가지 무지갯빛으로 나누어지듯, 음폭이 넓어 백색소음이라 부른다. 대중매체에 자주 출연해 우리에게 익숙한 배명진 교수는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를 만들고 소리공학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 배 교수는 소리공학자답게 소리 분석과 소리 활용에 대해 썼고, 같은 대학 영어영문학과의 김명숙 교수는 사람의 목소리에 얽힌 이야기를 썼다. 책은 재밌는 TV 교양 프로그램을 보듯 잘 읽힌다. 1, 2초 찰나에 담긴 살인자의 목소리를 분석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 ‘개도 웃을 일’이란 표현의 진위를 가리려고 개가 웃는 소리를 녹음해 다른 개에게 들려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굵어지는 이유도 들려준다. 배 교수의 꿈은 늙지 않게 만드는 소리라는 의미의 ‘불로(不老) 톤’을 찾는 것. 소리로 질병과 탈모, 마음의 병을 고친 사람들의 체험도 소개한다. 책에서 이미 불로 톤을 찾는 해법을 알려 줬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답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내부고발자의 용기가 사회를 정의롭게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공익을 위해 희생한 대가가 컸습니다. 조직은 조용히 넘어갈 일을 쓸데없이 문제 삼아 분란을 일으켰다며 교묘하게 보복하고, 내부고발자는 배신자란 낙인이 찍혀 재취업도 못한 채 숨어 살아야 했어요.” ‘고발 역사의 수레바퀴’(이담북스)의 저자는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심의관 곽형석 씨(49). 행정고시 출신인 그는 2001년 부패방지법 제정 이후 부패방지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부패방지 업무를 맡아왔다. 지난달까지 신고심사심의관으로 일하며 내부고발 신고, 보상, 보호업무를 총괄했다. 곽 씨는 내부고발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로잡을 방법을 고민하던 중 역사에서 길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주말이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했다. ‘고발’을 키워드로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를 정리해 나갔다. “고발을 수용하는 기관인 고발관아(告發官衙), 고발을 유도하는 불고지죄(不告知罪), 불법을 행한 자가 자수하면 죄를 감경하는 자수지례(自手之例), 적극적인 고발자 보호가 네 개의 바퀴가 되어 역사를 이끌어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죠.” 고발 풍토가 생긴 것은 고려 광종 때다. 광종은 미약한 왕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급관리나 노비들까지 귀족이나 지방호족을 고발하도록 권장했다. 조선시대에는 고발정치가 제도로 자리 잡아 신문고(申聞鼓)가 생겼다. 고려·조선시대 조정은 봉사(封事), 밀봉(密封)같이 상소를 비밀리에 할 수 있는 제도도 운영했다. 특히 내부고발자를 보복한 자를 찾아 벌을 주고 고발한 노비는 면천시켜주거나 양인이면 관직을 주고 관리이면 승진을 시켰다. 오늘날보다 진일보한 정책을 펼친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고발자를 ‘의리를 저버린 배신자’로 낙인찍는 정서는 어디서 왔을까. 고려·조선시대에는 탐욕에 눈먼 관리들에 저항해 민란을 일으킨 임꺽정 같은 인물을 고발한 자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내부고발을 식민지 지배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자기들에게 유익한 밀고를 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정책을 폈다. 그런 밀고로 독립군이나 의병장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며 ‘모든 내부 고발은 나쁘다’는 인식이 쌓였다. “역사를 보면 고발을 이용해 자신의 죄를 덮거나 경쟁자를 무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짐을 수레에 올려도 수레는 앞으로 갑니다. 긴 역사 속에서 내부고발자는 분명 공신이었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비싼 대학(앤드루 해커, 클로디아 드라이퍼스 지음·지식의 날개)=평균 25만 달러(약 2억6000만 원)의 등록금을 받는 미국 명문대의 교육 내용이 형편없음을 폭로한다. 학생 교육은 외면하면서 시간강사만 착취하는 종신교수 연봉에 가장 많은 등록금이 지출된단다. 등록금은 싸지만 교육이 알찬 대학정보도 담겼다. 1만7800원.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김용희 지음·작가세계)=중견 평론가 김용희의 첫 소설집. 영화와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해 온 저자의 2009년 소설 데뷔작 ‘꽃을 던지다’를 비롯해 8편의 단편을 엮었다. 1만2000원.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김은식 지음·한겨레출판)=굴곡 많은 인천 야구 100년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야구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장감 넘치는 사진과 기록을 바탕으로 개항 이후 사회사도 함께 풀어냈다. 1만1000원.어쩐지 돌연변이(조유현 지음·21세기북스)=2002년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페리에서 바다로 투신한 천재 극작가 강월도의 삶을 추적한 논픽션. 그가 남긴 일기, 수첩, 편지, 사적 자료를 통해 그의 고뇌를 엿보고 그가 남긴 유산을 집중 조명했다. 1만5000원.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청어람미디어)=달라이 라마는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20세기 인도 사상가인 저자를 추앙했다. 저자가 숨지기 전 2년간 녹음한 27개의 녹음일기를 담았다. 1만4800원.교양인의 독서생활(시미즈 이쿠타로 지음·기담문고)=일본 대표 지식인인 저자는 책읽기를 고독함으로 정의한다. 고독은 성숙한 내면의 강화를 이뤄 내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것은 교양인의 특권이란다. 1만3800원.Hi, 미스터 갓(핀 글·파파스 그림·위즈앤비즈)=가정에서 학대받는 일곱 살 꼬마로부터 어른도 몰랐던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인생 통찰을 배운다. ‘무지개 원리’의 저자 차동엽 신부가 편역했다. 1만2000원.누군가는 나를 바보라 말하겠지만…(김남희 지음·이와우)=저자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형 로펌 소속 억대 연봉의 변호사로 일했다. 연봉을 버리고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으로 변신해 행복을 찾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1만4000원.문성실의 요즘 요리(문성실 지음·상상출판)=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단하지만 폼 나는 요리를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밥숟가락 하나로 재료를 계량하는 방법처럼 실용적인 정보를 알차게 담았다. 1만6800원.장사 잘되는 카페(전기홍 지음·마일스톤)=대기업 마케터 출신인 저자는 부업으로 카페를 창업해 하루 15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을 거뒀다. 카페 장사 10년 노하우를 전수한다. 1만5000원.}

《 #1장: 2013년 겨울 숨바꼭질 영화 ‘숨바꼭질’을 보면 남의 집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나는 학교에 숨어 산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다음 달이면 꼬박 1년째다. 노숙인이냐고? 천만에! 비록 나이는 스물여덟이지만 난 엄연한 대학 2학년생이다. 내 집 주소는 경기 의왕시 모락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계원예술대 캠퍼스 평생교육관 1층. 원래는 학생회에서 쓰는 창고였지만 현재는 ‘디자인 그룹 점, 점’이라는 동아리방이다. 내가 여기 산다는 것은 교직원이나 대부분 학생에겐 비밀이다. 밤늦게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동아리방에서 잠드는 친구도 많으니까 잠자는 건 큰 문제가 안 된다. 빨래를 해결하고 몸을 씻는 게 큰 문제다. 》 빨래를 해야 할 때는 야음을 틈타 10L 세탁기가 실린 손수레를 민다. 새벽 2시 학교 경비원도 잠들었을 시간, 세탁기 호스를 공용화장실 안 대걸레 씻는 수도꼭지에 연결한다. 사람들이 대소변을 해결하는 공간에서 내 옷들은 때를 벗는다. 9월 중고 가전센터에서 10만 원을 주고 산 구형 세탁기는 늘 소리가 요란하다. 일주일 치 빨래를 먹은 세탁기가 힘이 부치는 듯 윙윙거리며 몸을 떤다. 나도 혹시 누군가가 볼까 불안에 떤다. 손수레를 밀고 텅 빈 복도를 지나 다시 방에 들어선다. 사람들 눈을 피해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하던 때를 떠올리면 호사가 따로 없다. 자취방 살림은 단출하다. 책상, 책장, 접이식 침대와 매트리스, 소형 냉장고. 모든 살림은 학교 주변 폐기물재활용장에서 주워 온 것이다. 겨울엔 역시 주워 온 전기요 위에서 잠을 청한다.#0장: 2013년 여름 투명인간 겨울보다 무서운 게 여름이었다. 방은 손이 닿는 곳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질퍽거렸다. 곰팡이가 눈에 띈다 싶더니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곰팡이가 방을 삼키는 건 찰나였다. 옷걸이에 걸어둔 겨울 코트 지퍼를 내렸더니 검은색 안감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곰팡이의 습격을 피한 건 매일 입는 여름 티셔츠 몇 벌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곰팡이가 몸에 옮겨 붙지 않았는지 살폈다. 학교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동기보다 예닐곱 살 많다는 이유로 학부 대표가 되면서부터였다. 신입생을 맞을 준비로 매일 밤늦게까지 학부학생회 회의실에서 회의를 했다. 동기들이 집에 돌아가면 할 일이 더 있다며 회의실에 남아 잠을 잤다. 눈치가 보이면 학생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다른 동아리방에 갔다. 당장 쓸 물건은 가방 서너 개에 나눠 담고 옷가지는 캐리어에 넣어 끌고 다녔다. 무거운 짐은 박스에 넣어 건물 후미진 곳에 보관해뒀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완벽한 투명인간이 될 순 없었다. 나의 숨바꼭질 생활을 눈치 챈 몇몇 술래가 압박을 해왔다. “형. 여기 우리 학생회 공간인데, 올 때마다 형 집에 오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주섬주섬 짐을 쌌다. 동기들은 어질러진 이불과 옷가지를 훑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3월 총학생회에 부탁을 해 창고로 쓰던 공간을 얻었다. 하지만 9월 학비 마련을 위해 휴학을 하자 다시 문제가 제기됐다. 나를 안쓰럽게 여긴 친구 20여 명이 동아리를 만들어 내가 안거할 공간을 마련해줬다. 다음 학기에 복학할 몸이지만 여전히 신분이 불안한 나는 더욱 숨죽여 산다.#2장: 기자의 현장답사 기자가 그의 사연을 접한 것은 10월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비밀리에 숨어 살 수 있단 말인가. 반신반의하며 그가 ‘자취방’이라고 주장하는 동아리방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자 동아리방에 있어야 할 커다란 회의용 탁자나 의자들은 없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 천장에 걸린 속옷, 양말, 수건이 영락없는 자취방 모양새였다. 바닥에는 목욕 바구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방 크기는 싱글 침대 4개를 넉넉히 놓을 수 있는 크기였다. 집주인은 계원예대 2학년 조선종 씨. 조 씨가 정말 1년 동안 살았을까. 자취방 앞에서 조 씨와 마주친 청소부 아주머니는 자주 봐서 친근하다는 듯 서로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청소부 아주머니와 학교 경비원은 “집이 멀어서 여기서 자주 잠을 자는 학생” 정도로 알고 있다고 했다. 9월 학생 자치공간을 점검하러 나온 한 교직원에게 자취방이 발각되기도 했단다. 교직원은 “동아리 공간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돌아갔다고 한다. 조 씨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한 학생은 9월 총학생회를 찾아가서 자취방 점거를 문제 삼았다. 조 씨 동급생인 여학생 A 씨(21)는 “친한 친구들은 신기하다, 딱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싫어하는 친구는 학교 전기와 물을 공짜로 쓰니까 뻔뻔한 도둑놈 심보라고 욕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도중 바로 옆방인 학생회 사무실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그의 목소리는 쪼그라들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취방을 문제 삼을까 봐 늘 불안에 떨며 산다”고 했다. 잘 살고 있어도 불안한 20대 후반인데, 불안한 주거공간에 홀로 누워 있으면 외로움과 설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부터 ‘고다미’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를 친구에게 얻어 동거하고 있다.#3장: 투명인간의 변명 “방값 벌려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잠깐이지만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이지만 학교에 살 권리는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도 원래 학교 앞 고시텔에서 살았다. 한 달 방값은 48만 원. 방은 침대와 책상만으로 꽉 찼다. 딸린 화장실은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았다. 주말이면 인근 지하철역 커피전문점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시급 5000원. 방값을 내면 남는 돈은 없었다. 그는 2001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 학교를 관뒀다. 그가 드러머로 활동했던 밴드 ‘워터멜론’은 같은 해 10월 국내 록페스티벌 원조 격인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 8개 팀에 뽑혀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도 포기한 음악에 대한 아쉬움은 음악활동을 이어간 나머지 밴드 멤버의 공연 무대 사진을 찍으며 달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연평도 포격 현장,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현장을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현장에서 홀로 뛸 때마다 사진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었다. 배움의 갈증이 극에 달해 대학 문을 두드렸다. 창의적인 예술가를 키우는 학교 커리큘럼과 교수진이 좋아 12학번으로 아트앤플레이군(群·학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는 대신에 학비, 생활비를 모두 책임지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했다. 입학금 500만 원은 벌어둔 돈으로 충당했다. 1학년 2학기부터 학자금 생활자금 대출을 받았다. 꿈에 그리던 학교에 왔는데 교수들은 주말에 각종 전시회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과제를 자주 냈다. 주말에 커피숍에서 일하느라 번번이 전시회를 가지 못했다. 주중에 배운 게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까, 늘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제게 주어진 대학생활은 딱 2년밖에 없어요. 잠은 어디서든 잘 수 있지만 예술 공부는 지금 아니면 할 수가 없어요.”#4장: 지금도 어디선가 숨바꼭질 벌일 청춘들 계원예대는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했던 고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가 만든 설계도에는 기숙사가 포함돼 있었다. 학교에는 기숙사 예정용지임을 알리는 팻말과 함께 공터가 있었다. 지금은 팻말은 사라지고 텃밭으로 변해 있었다. 기숙사 문제는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소재 주요 43개 대학 기숙사 수용률도 9.6%에 불과하다. 청년주거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민달팽이 유니온’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지난달 펴낸 ‘청년 주거빈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청년(20∼34세)의 14.7%인 139만 명이 지하 방과 고시원 같은 주거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 최저 주거기준인 4평(약 14m²)을 마련하는 데 월 평균 50만 원이 든다. 시급 5000원을 고려하면 월 평균 10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에필로그 마지막으로 기자가 물었다. “기사화되면 시끄러운 일이 생길 수 있고 자취방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 씨가 답했다. “1980년대 대학생 선배들처럼 짱돌을 던지면서 시위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대신 저는 예술대 학생이니까 청년 주거문제를 학교에 직접 살아봄으로써 퍼포먼스 아트로 풀어낼 순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쫓겨나면 학교에서 노숙하던 그때부터 다시 시작해야죠.”의왕=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름 전정식. 피부색깔 꿀색. 정이 많고 마른 편이다. 음식은 맛있게 먹는다. 뭐든 잘 소화한다. 배설 능력 완벽. 순하고 친절하며 매우 착하고 귀엽다. 입양에 추천한다.’ 벨기에 입양아 출신 만화가 전정식(융 헤넨·48) 씨는 1970년 다섯 살 때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굶주린 아이를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겼고, 아이는 다음 해 이런 메모와 함께 벨기에 가정에 입양됐다. 그가 그린 자전 만화 ‘피부색깔=꿀색’(길찾기·사진) 개정증보판이 이달 출간됐다. 낯선 땅에서 한국계 입양아로 자란 성장기를 담은 2009년 한국어판에 2010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소회를 더했다. 그가 감독한 장편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은 지난해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 관객상과 유니세프상을 수상했고, 7∼11일 열린 제15회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 2013)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1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그를 만났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씨는 벨기에, 프랑스에서 판타지 만화 작가로 두꺼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만화에는 일본 중세를 배경으로 사무라이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어릴 때는 한국을 외면했다. 차라리 나와 피부색은 같지만 나를 버리지 않은 일본인이 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버려짐, 뿌리가 뽑힌 삶,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는 “만화를 그릴 때마다 겉도는 느낌이었다. 에둘러 가기보다 내 이야기를 직접 그리자고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생애 처음으로 붓을 들고 수묵화 양식으로 만화를 그린 작품이 ‘피부색깔=꿀색’이었다. 판타지 만화를 그릴 땐 종이를 화려한 색채로 가득 채웠지만 이번엔 흑백 그림에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토리에 더 집중하게 했다. 그의 만화에는 페이소스 넘치는 유머와 절절한 슬픔이 교차한다. 어린 나이에 성적 호기심을 못 이겨 동갑내기 벨기에인 자매의 가슴을 몰래 만지는 장면에 웃음이 터지고, 벨기에 어머니가 내뱉은 ‘썩은 사과’란 욕설에 절망하고 잠재의식 속에 남은 친어머니 얼굴이 늘 우산으로 가려져 있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해진다. 만화는 같은 학교를 나온 한국인 입양아 친구들의 불행한 삶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고, 목을 매달고, 손목을 그어 목숨을 끊었다. 살아남은 친구도 정신병원을 오갔다. “그 장면을 그리며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친구들이 자살한 장면을 그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전적 이야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기에 참고 그렸어요.” 전 씨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 여성과 결혼해 피부색이 똑같은 딸을 낳았다. 그리고 다시 찾은 한국에서 끊어진 인생의 줄을 이으려면 자기 뿌리를 받아들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에게 ‘한국어를 배울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어를 ‘다시’ 배울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다섯 살 때까지 한국말을 했을 테니 다시 배우는 셈이죠. 언젠가 프랑스어를 잊고 한국말만 하고 살지 않을까요. 한국과 관련된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도 내년 4월경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그는 입양인 유럽인보다 한국인이 자신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 주길 기대했다. “한국인이 (입양아인)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 대답이 듣고 싶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말(馬)의 해인 2014년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로 ‘다크호스(DARK HORSES)’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2007년도부터 매년 유행할 핵심 트렌드의 영어 알파벳 첫 자를 엮으면 그 해 간지(干支) 동물로 치환되는 키워드를 선정해왔다. 19일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14’(미래의창·사진)에서 그 첫 번째 트렌드인 D는 ‘Dear, got swag?’(‘스왜그’의 가벼움). 스왜그는 ‘멋지다’ ‘뻐기다’란 의미의 힙합 용어로 ‘쿨하다’에서 한 단계 진화한 ‘정형화되지 않은 자기 고유의 멋과 느낌을 표현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김 교수는 ‘경박단소’한 가벼움이 때론 참기 어렵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의 주된 흐름이라고 봤다. 이어 A는 ‘Answer is in your body’(몸이 답이다)를 함축한다.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찾으려는 현상이 확대되는 것을 뜻한다. 밤에 달리는 ‘나포츠족’, 블루칼라의 노동과 화이트칼라의 전문성을 접목한 신종 직업 ‘브라운칼라’의 출현을 예로 들었다. R는 ‘Read between the ultra-niches’(초니치, 틈새의 틈새를 찾아라). 니치(틈새)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작고 협소하지만 특출한 시장의 출현을 예고한다. K는 중년의 생활방식과 결별하는 ‘Kiddie 40s’(어른아이 40대)의 확산을 의미한다. 또 HORSES에 맞춰 △여러 산업이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패치워크’(Hybrid Patchworks) △소비자가 직접 판을 펼치는 ‘판 2.0시대’(Organize your platform)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해석의 재해석’(Reboot everything) △탄탄한 시나리오로 짜릿한 우연을 연출하는 ‘예정된 우연’(Surprise me, guys!) △대중문화 시장에서 확산되는 관음증의 일상화(Eyes on you, eyes on me) △직설화법이 각광받는 ‘직구로 말해요’(Say it straight)를 제시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부제는 ‘건축 거장 15인, 그들의 생각과 스케치를 훔치다’. 앞뒤 표지는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이 책 내용을 전한다. 앞쪽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거장 15명의 얼굴 스케치가 하얀 바탕에 새겨져 있다. 뒤편에는 대표 건축물 스케치가 있다. 건축가인 저자가 20여 년간 건축물을 답사하고 쓴 글과 스케치, 직접 찍은 사진을 책에 담았다. 건축물을 만나기 전에 건축가의 건축 세계부터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연두색 바탕 종이 위에 담아 그들의 철학과 생각을 강조했다. 또 건축가가 쓴 글이나 말을 담은 문장은 다른 색깔로 처리해 눈에 더 잘 띄게 했다. 책 말미에는 건축 답사를 위한 안내, 함께 읽으면 좋은 책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독일 베를린의 ‘유럽 유대인 학살 추모관’에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이곳에는 검은색 노출 콘크리트 석비 2711개가 모여 장관을 이룬다. 가로(95cm)와 세로(2.375m)는 같지만 높이는 최대 4m까지 다양하다. 석비 사이의 간격은 95cm.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굴곡진 구릉지 지면과 다양한 석비의 높이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곳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고 애통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석비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어른도 있고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아이도 있다. 저자는 “설계의 개념인 불안정성과 혼돈이 인간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아름다운 결과를 낳은 것은 작은 기적이다”라고 썼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남과 북(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문학과 지성사)=영국 빅토리아 시대 남부 여성 마거릿 헤일과 냉정한 북부 출신 사업가 존 손턴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사회소설.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른 신흥 산업자본가와 임금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그렸다. 2만2000원.인간의 조건(고미카와 준페이 지음·잇북)=일본의 소설가 고미카와 준페이가 쓴 대하소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에 끌려간 주인공 가지의 눈에 비친 침략국가 일본의 만행과 잔학성을 고발했다. 전 6권, 각 권 1만3000원.신경 과학의 철학(맥스웰 베넷,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 지음·사이언스북스)=생리학자와 인지철학자가 철학적 함의를 간과한 신경 과학 연구를 비판하며 인간의 심적 속성이 뇌의 부분이 아닌 인간 전체의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학자 6명이 함께 번역했다. 4만 원.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김영숙 지음·휴먼아트)=‘손 안의 미술관’ 시리즈 첫 책.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 회화 갤러리에 소장된 6000여 작품 중에서 놓쳐선 안 될 그림 100점을 골라 추천한다. 1만4000원.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백영서 지음·창비)=연세대 국학연구원장인 저자가 핵심현장, 복합국가, 근대의 이중과제론, 이중적 주변의 시각이란 4개의 키워드로 동아시아 평화 공생의 길을 모색했다. 1만6000원.예수 모습·성경 미술(정양모 정학모 정웅모 지음·수류산방)=‘삼형제 신부’로 유명한 신부들이 성서학과 미술사 내공을 살려 낸 첫 공동 저서. 성서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미술사에서 돋보이는 그림과 조각을 소개한다. 2만9000원.검은 고독 흰 고독(라인홀트 메스너 지음·필로소픽)=저자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신화를 세운 전설의 등반가다. 저자의 동생이 낭가파르바트 등반에서 눈사태로 숨진 뒤 8년 만에 낭가파르바트에 오르며 담은 내면의 기록. 1만4500원.명의 14인의 365일 건강 밥상(강재헌 외 지음·서울문화사)=음식으로 암도 잡을 수 있다. 국내 명의들이 각종 질병을 고치는 데 이로운 건강 밥상을 소개한다. 2만 원.2014 세계업계지도(글로벌기업조사회 지음·알에이치코리아)=세계경제를 9개 산업군, 45개 업종으로 나눠 분석해 내년 세계경제 지형도, 기업별 세력도를 그려냈다. 1만6000원.}

나무는 인생을 나이테에 기록한다. 나무 에세이 ‘나무가 청춘이다’의 저자 고주환 씨(53)는 나무가 곧 인생이고 운명이었다. 그는 치악산 자락 복자기나무숲이 울창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황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6·25전쟁으로 피란 갔다가 돌아왔을 때 마을 집들의 나무문짝은 군인들이 땔감으로 쓰느라 모조리 떼어낸 뒤였다. 아버지는 나무문을 짜서 팔아 생계를 잇겠다며 목수로 변신했다. “아버지가 쉰여덟에 낳은 막내라 목수 일을 하실 때 늘 곁에 붙어 함께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무의 쓰임이나 성질에 익숙해졌어요. 아비 없이 살아갈 날이 많은 막내를 걱정하느라 엄한 모습도 보이셨지만 물참대(속이 빈 낙엽관목) 피리를 손수 만들어 건네주시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고 씨는 ‘민초 작가이자 토속식물의 어원 연구가’를 자처한다. 나무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을까 궁금해서 다방면으로 공부했다. 책에서는 고로쇠가 뼈에 이롭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됐다는 설을 반박한다. 오히려 튼튼한 고로쇠나무가 농사기구로 쓰여 왔기에 농사타령 ‘땅 고르세’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음운은 발음하기 쉬운 쪽으로 변하는데 발음이 쉬운 골리수가 발음하기 어려운 고로쇠로 변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손톱 밑에 때 안 묻은 학자들은 나무 이름을 우리 삶과 상충되게 짓는데 어원에 대한 공개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조 씨는 과거 사대부가 칭송하고 예술적 대상으로 삼았던 소나무 전나무보다 잡목들에 더 진한 애정을 갖는다. 민초의 아들이기에 삶 속에 쓰임이 많았던 싸리나무 물푸레나무를 가장 아낀다. 그는 “나무는 우리 가까이 있는 생활도구 놀이도구였는데 이젠 중장년층마저 나무에 대한 기억을 잊고 단절된 채 살아간다. 자라나는 후손들도 교과서에 실린 충절 기개 같은 나무의 박제된 이미지를 배우고 있는데 그들과 나무를 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책은 3부작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1부 격인 ‘나무가 민중이다’(2011년)에선 궁핍한 부모 세대에게 도구로, 식량으로 힘이 돼 준 나무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청년이 돼 만난 나무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다. 다음 ‘나무가 인생이다’에선 단란한 가정을 꾸려 인생을 알아가며 만난 나무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고 씨는 경기 부천 공단의 금속 제조업체 사원으로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주중에는 금속을 만지고 주말에는 산천을 돌며 나무를 만나고 주말농장에서 농사도 짓는다. 나무와 더불어 살다 보니 생각도 나무와 닮아 있었다. “나무가 그냥 있는 것처럼 보여도 뿌리와 줄기, 잎사귀는 살아남으려고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툭 떨어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죠. 요즘 청춘이 어렵다며 성공한 어른들은 무작정 위로만 건네는데,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지 말고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삶이 값어치가 있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