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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 그대로다. 미국의 속국(屬國)처럼 행동하는 일본의 정치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일본의 젊은 정치학자와 리버럴(진보적 자유주의자) 논객 2인의 솔직한 대담을 묶었다. 일본이 미국에 지나치게 저(低)자세를 취한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선 “미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라고 저자들은 입을 모은다. 우치다 다쓰루는 2006년 9월 ‘9조 어떻습니까’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 속국이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저자는 “호되게 비판받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일본 사회의 의도적 무시가 더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저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속국 현상을 가속화시킨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패전’이라는 단어 대신 ‘종전’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이웃나라들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하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태도”라고 일갈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동북아 평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위 국가들의 반대에도 안보 관련 법안을 밀어붙이고 2015년 급작스럽게 한일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한 배경에는 일본의 속국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아쉬운 점은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일본의 현실이다. 아베 총리와 같은 세계관이 일본인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 윤리성 강화 등 원론적인 대안만 제시한 점도 뻔해 보인다. 책은 정치와 외교뿐 아니라 일본 사회의 경제, 문화 등 전반을 분석한다. 한국과 놀랍도록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도 큰 시사점을 던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유관순 열사 등 수많은 독립지사가 갇혔던 서울 구(舊) 서대문형무소(사적 제324호·사진)를 일제강점기인 1936년 당시 모습으로 복원한다. 문화재청은 28일 “문화재위원회가 사적지 확대와 발굴 조사를 거쳐 일부 건물을 복원하는 내용을 담은 ‘서대문형무소 종합정비계획’을 심의해 조건부 가결했다”고 밝혔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가 1910년 경술국치 이전인 1908년 이 자리에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조건물 ‘경성감옥’을 세운 게 시초다. 1912년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을 신축하면서 서대문감옥으로 명칭을 바꿨고,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다시 개칭했다. 서대문형무소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1936년 건물 배치 도면을 기준으로 복원된다. 올해 현재 2만8000여 m² 규모인 사적지를 약 5만5000m²로 확대하고, 내년부터 2020년까지 확대된 사적지에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찾는 발굴 조사를 시행할 방침이다. 2021년 이후에는 구치감과 부속창고, 의무실, 병감, 공장 등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건물을 고증을 통해 복원할 예정이다. 다만 문화재위원회는 사적 확대 지정 등 분야별 의견을 수렴하고, 주변 여건을 고려해 정비계획을 보완하라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44년 3월 1일. 중국 시안의 중심가에 있는 ‘량푸제 칭녠탕(梁府街 靑年堂)’ 공연장에서는 3·1운동 25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극인 ‘아리랑’이 무대에 오른 것. 항일정신을 담은 이 공연은 5일간 모두 4만 명이 관람해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1940년대 시안은 ‘항일연극’으로 대표되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펼쳐진 터전이었다. 99주년 3·1절을 앞두고 동아일보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함께 올해 1월 시안에서 문화와 예술로 독립을 이루고자 했던 한국 청년들의 발자취를 확인했다. 시안 시내 중심에 위치한 얼푸제(二府街) 거리. 1939년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자리 잡았던 지역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10분가량 걸어가면 시안의 가장 큰 거리인 장안대로의 한편에 ‘5·4극원’이라는 간판이 걸린 공연장이 나온다. 푸른색 통유리로 마감된 5층 건물로 중국의 3·1운동 격인 ‘5·4운동’을 기념해 새로 설립됐다. 고층빌딩과 국립병원 등이 밀집한 시내 중심에 있지만 최근 공연장으로서 용도가 사라져 건물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다. 유리문 너머 보이는 건물 안쪽에는 폐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건물 터가 바로 가극 ‘아리랑’이 울려 퍼진 공연장인 ‘량푸제 칭녠탕’이 있던 곳이다. 최근 ‘한국독립운동세력의 재중 항일예술활동’ 논문을 발표한 양지선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는 “1937년 중일전쟁 후 시안이 중국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많은 예술인들이 활동했다. 항일연극을 펼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환경이 마련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안에서 항일연극이 처음 열린 것은 1940년부터다. 1939년 설립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시안으로 옮겨오면서 본격적인 문화예술 선전활동이 시작됐다. 음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유한(본명 한형석·1910∼1996)이 만든 ‘아리랑’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리랑’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바이올린, 피아노 등 서양악기와 북, 징 등 동양악기 20여 개를 조합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화려한 볼거리와 장엄한 서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중국으로 건너온 목동과 시골소녀 부부가 항일투쟁을 펼친다는 내용으로, 중국인에게 한국과 공동으로 항일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지를 고취시켰다. 공연 수익금은 한국과 중국 군대에 군자금으로 전달돼 독립운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한유한을 포함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의 제5지대로 합류하며 광복 직전까지 항일 문화예술 활동을 했다. 양 연구교수는 “항일연극으로 확보한 수익금으로 전쟁고아 수백 명을 구제하고 군복 2000벌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술은 금전적인 수익과 함께 정신적 무장도 가능하게 해 정치·군사적 방법과 더불어 독립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시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미국 군관들의 요청에 따라 비밀훈련을 받은 학생들을 실제로 실험해 볼 목적으로 두곡(두취)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40리 떨어진 종남산(중난산)의 한 고찰(비밀훈련소)까지 자동차로 갔다. 산기슭까지 가서 다시 5리가량 걸어서 도착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1945년 8월 ‘백범일지’에는 이 같은 기록이 나온다. 이 비밀훈련은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가 공동으로 진행한 ‘독수리작전’이다. 대원들이 독수리처럼 낙하산을 타고 한반도에 침투해 정보수집과 거점 확보 등을 통해 광복을 실현한다는 군사계획이었다. 당시 백범이 찾아간 학생들은 그해 5월 11일부터 8월 4일까지 3개월간의 교육을 끝낸 1기 광복군-OSS 대원들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군함도’에서 광복군-OSS 대원으로 나오는 박무영(송중기 역)의 실제 모델이다. “평가단지는 독수리기지 훈련본부에서 26km 떨어져 있는 버려진 절에 마련했다. 훈련본부에서 트럭을 타고 도로 끝에서 내려 1.6km 정도 되는 좁은 길을 올라가야 했다.” 백범일지의 기록과 같은 내용이 미국 OSS의 기밀문서 ‘독수리작전 관계서신 및 평가계획’에도 있다. 독수리기지 훈련본부는 중국 시안시 두취진의 광복군 제2지대 본부와 같은 건물을 썼다. 본보는 지난달 28일 백범일지와 OSS 자료를 바탕으로 훈련장소를 추적해 확인했다.○ 절벽 오르고 사격, 폭파 훈련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황허강을 경계로 화북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과 마주한 최전선이 됐다. 시안 시내에서 남쪽으로 19.5km를 내려가면 광복군 제2지대 본부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20여 km를 이동하자 국가산림공원으로 지정된 중난산 입구가 나타났다. 찻길이 정비돼 있었지만 2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도로가 마비됐다. 백범이 갔던 방법 그대로 5리(약 1.9km)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민가 30여 채를 지나고 나니 미퉈구사라는 절이 나왔다. 588년 수나라 때 세워진 이 절은 1939년 중국 국민당 중앙군관학교 제7분교(황포군관학교의 후신)가 사용한 곳이다. OSS의 ‘독수리작전’ 문건에는 교량 건설, 폭파, 절벽 오르기, 사격 등 실제 훈련은 이 절에서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진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절을 끼고 500여 m 더 올라가니 가파른 협곡이 등장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협곡을 가리키며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절벽 두 개가 마주하고 있어 야전 훈련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1945년 광복군 대원들이 치열한 특수 훈련을 진행한 바로 그 장소”라고 말했다. “종남산(중난산) 봉우리에서 오로지 밧줄만을 지닌 청년들이 매듭을 짓고, 절벽을 오르내렸다. (미국 교관에게) ‘중국 학생들에게도 발견하지 못한 해답(성과)을 귀국(貴國) 청년들에게서 발견했다. 참으로 전도유망한 국민이오’라는 찬사를 받았다.”(백범일지) 백범이 표현한 그대로였다. 지금은 일부 등산객들만 찾지만 73년 전 나라를 잃은 한국 청년들의 뜨거운 발자취는 남아 있었다.○ “미완의 계획, 기억은 완성돼야” 광복군-OSS 대원들은 야전훈련뿐 아니라 엄격한 이론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론 교육은 광복군 제2지대 본부에서 진행됐으며 심리전술, 비행장 정보 같은 첩보 교육을 비롯해 위장술과 정보원 모집이 포함된 작전 교육 등으로 구성됐다. 1기 교육생 가운데 12명이 탈락해 최초 모집 50명 중 38명의 정예 대원만이 1945년 8월 4일 1기 광복군-OSS 훈련을 마쳤다. 이들 중에는 장준하(1918∼1975)와 광복 후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1920∼2011)이 포함됐다. 실력과 의지를 모두 갖췄던 광복군-OSS 대원들의 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허망하게 항복을 선언하면서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은 한국광복군을 승전국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광복군의 역사는 지금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미퉈구사 훈련지에는 광복군-OSS의 훈련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두취진의 한국광복군 2지대 본부에는 2014년 이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다. 하지만 광복군-OSS 훈련장소라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반쪽짜리 역사만 기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교수는 “광복군-OSS의 훈련 장소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독립을 이루려 했던 한국사의 가장 의미 있는 장소 중 한 곳이다”며 “광복군-OSS 훈련장소를 기억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관리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시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미국의 전략첩보부대(OSS)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반도 진공 계획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이 실제 준비됐던 중국 산시성 시안시의 광복군-OSS 훈련 장소가 처음 확인됐다. 동아일보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함께 지난달 27∼30일 시안시의 두취(杜曲)진과 중난산 미퉈구(彌陀古)사 일대에 자리한 광복군-OSS 훈련장소를 현지 취재했다. 기밀 해제된 OSS 비밀문서와 백범일지, 광복군에 참여한 인사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곳이다. 미퉈구사 일대에서 사격, 교량 파괴 등 야전훈련이 진행된 사실을 확인했다. 두취진에 있던 광복군 2지대 본부는 OSS 본부로도 함께 사용되며 이론 교육 등이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광복군은 1919년 3·1운동의 염원을 담아 그해 4월 11일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45년 4월 3일 “임정 요원들을 동반한 연합군의 한반도에 대한 공격작전을 지원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15일 광복을 맞으며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한시준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장은 “광복군-OSS 훈련장은 73년 전 한반도로 진공해 연합국의 일원으로 당당히 서길 바랐던 한국 청년들의 혼이 서린 곳”이라고 말했다.시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문화재청은 이육사(1904∼1944)의 친필 원고 ‘편복’과 윤동주(1917∼1945)의 친필 원고 등 항일독립 문화유산 5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작가가 쓴 원고가 문화재로 등록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편복’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댄 작품이다. 당시 일제의 사전 검열로 발표하지 못했지만 1956년 ‘육사시집’에 처음 수록돼 일반에 알려졌다. 육필 원고는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다가 경북 안동시 이육사문학관에 기증했다. 윤동주 친필 원고는 고인이 남긴 유일한 원고로, 개작한 작품을 포함해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담겼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와 같이 개별 원고를 하나로 묶은 시집 3권과 산문집 1권, 낱장 원고로 구성됐다. 윤동주의 누이동생 윤혜원과 연희전문학교 동문인 강처중, 정병욱이 보관해오다가 2013년 연세대에 기증했다. 1919년 4월 11일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이 그해 8월 17일까지 진행한 회의록 문서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유일하게 펴낸 역사서인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장효근(1867∼1946)이 1916년부터 1945년까지 기록한 일기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광복 후 귀국한 동포와 6·25전쟁 피란민을 위해 소를 키우던 막사를 주거시설로 바꾼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역시 함께 등록 예고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한국여기자협회(회장 채경옥)는 26일 서울 동작구 삼일공원에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제99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1902∼1920)상(像)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날 삼일공원에 설치한 유관순 열사상은 유 열사의 만세 시위 모습을 형상한 것으로 이용덕 서울대 미대 교수가 제작했다. 시민들이 일상의 공간에서 순국선열의 숭고한 삶과 역사의식을 기억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세워졌다. 한국여기자협회와 국가보훈처, 동작구가 공동으로 건립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이창우 동작구청장, 강만희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류정우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장, 정재진 광복회 서울시지부장, 이용덕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배우 고현정이 제작진과 갈등을 빚어 도중하차했던 SBS 드라마 ‘리턴’(사진)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로부터 26일 법정제재인 경고 조치를 받았다. 방심위는 이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으로 방송한 ‘리턴’에 대해 경고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드라마는 지난달 17일 방영된 1회와 2회에서 남성이 여성의 머리를 유리컵으로 내리치는 등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 방송해 민원이 제기됐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온라인 폭로로 번지던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경찰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제기된 폭로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피해까지 샅샅이 확인할 방침이다. 첫 대상은 미성년 여제자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50)다. 경찰은 미투에 연루된 문화예술계 인사 중 처음으로 26일 조 대표를 체포했다. 경찰은 2013년 6월 이전 성폭력 의혹만 제기된 인사라도 최근 사례를 확인해 처벌키로 하고 광범위한 피해자 조사에 나섰다. 문화예술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미투! 김석만 선생, 당신도 이제 멈출 시간이야’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김석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명예교수(67)를 지목한 게시물이다. 이 여성은 “21년 전 서울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김 교수가 갑자기 강제로 입을 맞췄다. 이후 택시는 종로구의 한 여관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여성은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김 교수는 이날 오후 “저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자가 오랫동안 느꼈을 고통과 피해에 대해 뼈아프게 사죄한다. 남은 일생 동안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극단 연우무대 대표와 서울시극단 단장,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해 말 국립극장장 최종 후보자에 올랐다. 유력 후보로 사실상 ‘내정자’였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그의 후보자 지위를 박탈했다. 문체부는 “마땅한 후보자가 없어 새로 모집 공고를 내기로 했을 뿐 이번 일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유명 시사만화가인 박재동 화백도 후배 작가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직 웹툰 작가인 이태경 씨는 “2011년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 박 화백의 손이 치마 속으로 들어와 허벅지를 만졌고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본보 기자가 박 화백에게 연락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인 배우 최일화 씨(59)는 스스로 과거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피해자 폭로에 앞서 가해 사실을 고백한 건 최 씨가 처음이다. 최 씨는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 여성은 26일 “최 씨는 25년 전 제가 연극배우 지망생일 때 연기를 못한다고 한 번, 며칠 뒤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기절시킨 뒤 성폭행했다”고 폭로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밀양연극촌장인 인간문화재 하용부 씨(63)는 뒤늦게 “공인으로서 못할 일이 벌어졌으며 법적인 처벌도 받겠다”며 인간문화재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시인 감태준 씨(71)도 이날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2007년 중앙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발돼 교수직에서 해임됐다.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 조사를 맡아온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43)도 최근 성추행 전력이 폭로되면서 위원직에서 물러났다. 김 국장은 이날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직에 이어 서울시 인권위원직에서도 사임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는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성폭행 시도 의혹을 받고 있는 한모 신부가 주임신부로 있던 경기 수원시의 성당은 3월 2일까지 미사를 중단했다. 하지만 24일 신자들에게 “사흘 정도만 보도거리가 없으면 잠잠해진다”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한 신부에 대해 정직을 내린 가운데 면직(免職·사제직 박탈) 등 추가 징계를 검토 중이다.김동혁 hack@donga.com·이지훈·유원모 기자}

지난해 여름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하시마(端島) 탄광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아픔을 그렸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긴 했지만 그들이 겪은 참담한 현실은 실제 역사다. 1939년부터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7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일본 각지로 끌려가 지옥 같은 현실을 견뎌야 했다. 이 책은 일제의 조선인 동원이 왜 그렇게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당시 일본 정부의 각종 법령과 회의록, 통계 등을 통해 파헤친다. 저자는 일본 도쿄대 교수로 그동안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다. “일제에 의해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공통된 기억으로 해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일제의 강제연행은 식량 공출과 함께 조선인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 ‘문어방’이라 불리는 감방생활을 강제했고, 가족을 일본으로 초청해준다는 약속 역시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2년간의 노동 계약이 끝난 뒤 강제로 계약을 갱신하는 등 고향을 떠난 이들이 겪은 인권 침해의 현실을 각종 사료를 통해 낱낱이 고발한다. 저자는 강제연행 정책이 오히려 일본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실패한 정책이라고 일갈한다. 실제로 조선인 노동자가 많이 끌려갔던 탄광의 경우 1933년 1인당 석탄의 연간 출탄량은 226t이었지만 1943년엔 150t까지 주저앉는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신랄하고도 정확하게 비판한 일본인 학자의 지적이 새로운 울림을 선사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문화재청은 21일 열린 문화재위원회의 회의 결과 충남 아산시 현충사(사적 제155호)에 걸려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사진)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충사 현판 교체 논란은 이순신 가문의 15대 종부인 최순선 씨(62)가 지난해 9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충사 현판을 숙종이 1707년 하사한 친필 한자 현판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현재 현충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6월 중건된 구 현충사와 6·25전쟁을 거친 뒤 성역화 사업을 통해 만든 신 현충사가 함께 있다. 구 현충사에는 충무공 후손이 보관해 오던 숙종 현판이 걸려 있고 박 전 대통령 현판은 신 현충사에 있다.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1706년 사당이 세워졌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의 대표적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 3점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추사의 서예 작품 중 ‘침계(Z溪)’, ‘대팽고회(大烹高會)’, ‘차호호공(且呼好共)’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침계’는 예서(隷書·중국의 옛 서체인 전서보다 쓰기 쉽도록 고안된 서체)로 두 글자를 쓴 것으로 왼쪽에는 8행에 걸친 발문을 썼다. 침계는 김정희와 교유한 윤정현(1793∼1874)의 호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30여 년을 고민한 김정희의 작가적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팽고회’는 김정희가 세상을 뜬 해인 1856년(철종 7년)에 쓴 작품이다.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의 ‘중추가연’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성대한 연회는 부부 아들 딸 손자라네”라는 뜻이다. ‘차호호공’은 “잠시 밝은 달을 불러 셋이서 벗을 이루고, 좋아서 매화와 함께 한 산에 사네”라는 문장을 쓴 대련(對聯·문이나 집 입구 양쪽에 거는 대구의 글) 형식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받은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금은을 비롯해 눈이 부실 것 같은 진귀한 보물이 많은 나라”(일본서기·日本書紀), “부가 많고, 땅이 비옥하며 귀중한 보석이 지천에 많았다.”(이슬람 역사지리서 ‘황금초원과 보석광’) 천년왕국 신라와 교역했던 국가들의 문헌에는 화려한 신라의 모습이 이같이 기록돼 있다. 특히 경주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고구려나 백제 유적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재가 있다. 바로 유리그릇이다. 장식이나 재질이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등 서역 문화의 특징을 지녀 고대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경로가 밝혀지지 않아 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최근 신라의 유리그릇과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각 국가의 출토품을 분석해 고대 한반도까지 이어진 실크로드의 경로를 밝혀낸 연구가 나왔다.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가 쓴 ‘유리기로 본 동부유라시아 실크로드의 변천’ 논문이다. 박 교수는 20일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존 신라의 실크로드 연구는 중국 중원의 실크로드를 경유한 사막로를 가정해 왔지만 실제 분석한 결과 시기별로 다양한 경로가 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초원로 통해 실크로드와 연결 신라의 고분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경주의 황남대총. 5세기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의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는 그물무늬 유리잔이다. 투명한 유리 재질의 전형적인 로만글라스(Roman glass·로마와 속주에서 제작된 유리그릇)의 모습이지만 당시 한반도에는 유리 제조 기술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유리잔은 어떻게 신라까지 흘러왔을까. 실마리는 중앙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다. 카자흐스탄 카라아가치 지역에서 출토된 유리잔을 보면 담녹색 빛깔에 3줄의 유리띠로 장식한 문양까지, 밑받침 부분을 제외하고 똑같은 모습이다. 이 같은 유리잔은 중국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장안(長安·현 시안)에서 떨어진 동북부 지역의 랴오닝성 베이퍄오시에서도 5점이 발견됐다. 반면 같은 시기 중국 중원의 황제와 귀족묘에서는 이 같은 유리그릇을 부장한 예가 없다. 박 교수는 “중국 중원을 통하지 않고, 북방 초원로인 카자흐스탄과 몽골초원을 지나 만주를 거쳐 경주까지 전해진 것”이라며 “북연∼고구려∼신라로 이어지는 동부 유라시아의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가 독자적으로 서역 문화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초원에서 사막으로, 다시 바다로 신라는 국제 정세에 따라 다양한 실크로드를 운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6세기 들어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한 신라는 중국과 활발하게 직접 교역했다. 초원로를 거치지 않고, 사막로를 통해 서역과 교류하면서 당시 유행했던 사산조 페르시아 양식의 유리그릇을 받아들였다. 통일신라 시기였던 9세기 이후엔 장보고 등 해상세력이 주도한 사(私)무역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부턴 이집트 등지에서 만들어진 이슬람글라스가 유행했는데, 경주 안압지와 사천왕사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베트남의 꾸라오짬 유적지와 중국 남부 광저우시의 남한(南漢·909∼971) 황제묘에서도 이슬람 유리그릇이 발견돼 해로를 통한 실크로드가 활발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신라는 시기별로 초원과 사막, 바다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서양과 교류한 글로벌 제국이었다”며 “한국 고대사 역시 실크로드와 뗄 수 없다는 점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의 대표적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 3점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추사의 서예 작품 중 ‘침계(梣溪)’, ‘대팽고회(大烹高會)’, ‘차호호공(且呼好共)’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침계’는 예서(隷書·중국의 옛 서체인 전서보다 쓰기 쉽도록 고안된 서체)로 두 글자를 쓴 것으로 왼쪽에는 8행에 걸친 발문을 썼다. 침계는 김정희와 교유한 윤정현(1793∼1874)의 호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30여 년을 고민한 김정희의 작가적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대팽고회’는 김정희가 세상을 뜬 해인 1856년(철종 7년)에 쓴 작품이다.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의 ‘중추가연’이라는 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성대한 연회는 부부 아들 딸 손자라네”라는 뜻이다. ‘차호호공’은 “잠시 밝은 달을 불러 셋이서 벗을 이루고, 좋아서 매화와 함께 한 산에 사네”라는 문장을 쓴 대련(對聯·문이나 집 입구 양쪽에 거는 대구의 글) 형식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받은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문단 내 성추행 논란의 중심에 선 고은 시인(85)이 2013년부터 거주하던 경기 수원시 거처에서 조만간 떠나기로 결정했다. 고은재단 측은 18일 “시인이 지난해 5월 주민들의 퇴거 요구 뒤 시에서 제공한 창작 공간에 거주하는 걸 부담스러워해 이주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재단은 “(시인은) 더는 수원시에 누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곳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원시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성추문 논란과 상관없이 주민들의 퇴거 요구를 감안해 시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올해 열기로 한 문학행사도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2013년부터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문화향수의 집’에 머물러 왔다. 수원시가 지하 1층, 지상 1층, 연면적 265m² 규모의 개인주택을 리모델링해 제공한 곳이다. 한편 한국극작가협회는 18일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66)을 회원에서 제명한다고 발표했다. 극작가협회는 “시대적 분위기와 연극계에 끼친 업적을 이유로 지금의 사태를 외면하지 않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설 연휴 이윤택 연출가와 연극단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17일에는 연희단거리패 단원이었다고 밝힌 A 씨가 “2001년과 2002년 두 번 성폭행을 당했다”고 추가 폭로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공연장에서 직접 공개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미투’ 폭로도 잇따랐다. 여배우 박모 씨는 1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출가 B 씨가 여러 차례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일각에서는 가해자로 지목된 B 씨 역시 연극계 거물이란 소문이 돌고 있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유원모 onemore@donga.com / 수원=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내 가슴과 머리에 항상 한반도가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성사 여부와 북-미 관계 개선에 각별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16일(현지 시간) 이백만 주교황청 신임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민족이 하나의 깃발 아래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해 보기가 좋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이 신임 대사에게 “최고의 평화를 전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도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친필 메시지를 전하며 한반도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홍보수석을 지냈던 이 대사가 “성모님이 매듭을 풀듯 한반도에 얽혀 있는 매듭이 순조롭게 풀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자 교황은 “내 가슴과 머리에 항상 한반도가 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이 보여준 사랑이 고마웠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전부터 평창 올림픽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자주 표명해왔다. 개막 직전인 7일 일반 알현에서도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함께해 한반도 화해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다”고 기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와 올림픽 개회식에 처음으로 정식 초청을 받아 멜초르 산체스 데 토카 교황청 문화평의회 차관보가 이끄는 대표단을 평창에 공식 파견하기도 했다. 토카 차관보는 올해 6월 바티칸에서 남북한 태권도의 합동 시범을 제안했다. 이날 이 대사는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꼬인 매듭을 푸는 모습을 그린 심순화 화백의 성화 ‘매듭을 푸는 성모’를 교황에게 선물로 전했다. 외교관 임명 절차인 신임장 제정은 외교 사절이 주재국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자신의 부임을 알리는 신임장을 전달하고 동의를 구하는 행사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집안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는 어진 부인과 해로하고, 자식들은 일찌감치 급제해 높은 관직에 오르네. 귀도 밝고 눈도 밝으며 술과 음식도 잘 먹는 데다가 책읽기도 거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완벽한 노년의 삶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조경(1586∼1669)은 저서 ‘용주유고(龍洲遺稿)’에서 행복한 노년의 기준을 이렇게 제시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장수를 기원하고 올바르게 늙는 방법을 담은 글을 쓰는 ‘축수(祝壽)’라는 전통이 있었다. 김우정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축수의 문학적 전통과 노년 인식’ 등에서 과거 이상적으로 여겼던 노년의 삶을 살펴봤다. ○ 피할 수 없는 슬픔, 노화 축수는 중국에서 유래됐다. 춘추시대부터 시작해 위진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던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 발달했고, 명나라 때 꽃피웠다. 한반도에서는 조선중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오히려 분별할 수 있는데 눈을 크게 가까이 보면 도리어 희미해진다. 배고픈 생각은 자주 있으나 밥상을 대하면 먹지 못한다.” 성호 이익(1681∼1763)은 ‘노인십요’에서 노화로 인한 신체 변화를 재치 있으면서도 씁쓸하게 묘사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피해 갈 수 없는 노화에 대한 한탄은 축수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다. 노화를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수용한 경우도 있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여유당전서’에서 “감고 빗는 수고로움 없고, 백발의 부끄러움도 면한다”며 탈모의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풀어냈다. 평생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다산은 말년에 노안(老眼)으로 고생했다. 그러나 “강호의 풍광과 청산의 빛으로도 한계를 채우기에 충분하다”며 늙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 행복의 조건, ‘건강과 경제력’ 전통 사회에서 노인은 자식에게 봉양을 받아야 했기에 자녀들에게 윤택한 경제생활을 넌지시 주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방 만리를 떠도느라 부모는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고, 소식조차 서로 전하지 못하다가 늘그막에 혹 미관말직을 받아본다 한들 평생 저버린 바를 어찌 보상할 수 있겠는가.” 고려의 문신 최해(1287∼1340)가 남긴 ‘졸고천백’의 한 구절이다. 축수라는 형식을 빌려 아들에게 빨리 출세해 부모를 넉넉히 봉양하라는 압박을 담고 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메시지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정원용(1783∼1873)은 보수적인 사대부 가문의 양반이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아내와 며느리에게 축수를 남기기도 했다. “그대처럼 좋은 아내 있으니, 산업이야 내 걱정할 일 아니지요. 비록 배고픔과 추운 걱정 있더라도 마음이 편하면 아무 두려움이 없소.” 부부의 해로를 노년의 조건으로 꼽은 사대부의 글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 노인의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김우정 교수는 “축수를 통해 오래 사는 것 자체보다도 품격 있는 노년의 삶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며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늙음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민족의 명절 설을 맞아 가족과 함께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국 각지의 박물관과 고궁 등에서 풍성한 볼거리와 다양한 즐길 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15일부터 18일까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궁과 종묘, 조선 왕릉을 무료로 개방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하는 종묘도 연휴 기간에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할인 행사에서 제외된다. 궁궐은 함께 어울리며 체험하는 다양한 설맞이 문화 행사도 마련했다. 경복궁 집경당에서는 16일부터 이틀간 전각 아궁이에 불을 피워 온돌을 체험하며 어르신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는 ‘온돌방 체험과 세배 드리기’가 열린다. 덕수궁과 영릉(英陵·세종대왕 능), 현충사, 칠백의총 등을 방문하면 윷놀이, 투호 같은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전국 국립박물관들은 16일 설날 당일만 휴관하고 나머지 연휴 기간 내내 다채로운 행사를 벌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5일부터 18일까지(16일 휴관) ‘2018 무술년 설맞이 한마당’을 개최한다. 17, 18일 박물관 로비를 찾아가면 한복 입는 법과 함께 세배하는 법을 직접 배울 수 있다. 박물관 앞마당에선 복주머니와 복조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떡국과 가래떡, 한과를 나눠 먹는 자리도 함께 마련한다. 무술년 개띠를 맞아 설 연휴 기간 박물관을 방문한 개띠 관람객에게는 복주머니를 선착순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어린이박물관 앞마당에선 개 모양 가습기 만들기와 개 그림 판화를 찍어보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흥겨운 우리 농악과 전통연희도 준비해 15일에는 파주농악 한마당과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기원 ‘서울 천신굿’을 진행한다. 17일엔 전통 연희와 사자놀이 국악실내악이, 18일에는 이리농악 한마당과 다채로운 한국 무용을 즐길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5, 18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을 위해 인기 애니메이션 ‘개구리 왕국2’ ‘산타의 매직 크리스탈’ ‘아기 배달부 스토크’ ‘눈의 여왕2’를 오후 1시, 4시 하루 두 번 박물관 강당에서 상영한다. 17일에는 마리오네트 공연을 신라미술관 앞마당에서 진행한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관람객이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떡메치기, 삼색 쌀강정 및 다식 만들기, 인절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자리를 신라역사관 앞마당에서 마련한다. 15일과 17일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아가면 새해 다짐을 간직할 수 있는 가훈과 명언 쓰기를 해볼 수 있고 전통 연과 윷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국립광주박물관은 다양한 전통놀이를 준비했다. 설 연휴 기간 내내 도롱테 굴리기,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팽이치기, 복주머니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올해 운수가 궁금한 관람객을 위한 ‘재미로 보는 윷점’과 가정의 평안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부적 만들기’ 등도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선 한국 근현대사를 노래로 조명하는 공연 ‘역사를 담아 노래하다’를 14일에 즐길 수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려시대 제작된 국내 최대 석불인 ‘은진미륵(恩津彌勒 ·사진)’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218호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충남 논산시 은진면에 있는 미륵보살입상이어서 ‘은진미륵’으로 불리는 이 불상은 높이가 18.12m로 국내 최대 규모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이 받침인 대좌를 합쳐 5m인데 이보다 3배 이상 큰 것이다. 고려 4대 임금 광종의 재위 기간인 968년경 고려 왕실의 지원을 받아 승려 조각장 혜명이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 불상은 좌우로 빗은 머리 위에 커다란 원통형 보관(寶冠·불상에 얹는 관)을 쓰고 있고 체구에 비해 큰 얼굴의 이목구비가 명료하고 인상적이다. 정제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통일신라시대 불상과는 달리 압도적 크기와 육중함, 파격적이고 대담한 미적 특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재청은 “고려 불상 중 월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을 국보로 승격함으로써 고려의 불교조각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보 가운데 고려시대 불상은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제45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제48-2호),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제58호), 금동삼존불감(제73호),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제124호),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제308호) 등 6점뿐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국보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선사시대부터 고대 국가까지 사회를 이끈 리더는 으레 남성이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통념을 뒤집는 청동기시대 문화재가 출토됐다. 여성이 부족을 이끈 제사장이나 정치체제 수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人骨)이 국내 처음으로 확인됐다. 강원대 중앙박물관은 “2016년 강원 평창군 하리 발굴 현장에서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된 인골을 분석한 결과 인골의 성별이 여성으로 확인됐다”고 13일 밝혔다. 청동기시대 여성 인골이 한반도에서 출토된 적은 있으나 당시 지배층의 전유물인 동검과 함께 발견된 것은 사상 최초다. 고고학계와 고대사학계에선 청동기시대의 정치체제에 대한 재접근이 필요할 만큼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인골은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이 진행한 2016년 발견 당시부터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비파형동검과 함께 출토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인골과 동검이 따로 발견된 적은 있으나 한반도에서 두 유적이 함께 나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2년 동안의 분석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김재현 동아대 고고미술학과 교수팀이 대퇴골 크기와 근육, 치아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인골의 성별이 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의 나이는 20대 초반, 신장은 160.4cm로 추정됐다. 초기 철기시대 여성으로 알려진 경남 사천시 늑도 유골보다 10cm 이상 월등히 클 정도로 신체 조건이 좋았다. 청동기시대에 동검과 함께 매장하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동검은 제례 의식을 지낼 때 이용되는 제기(祭器)로 제사장이나 정치적 지도자의 무덤 등지에서만 출토된다. 이번에 발견된 비파형동검은 길이 26.3cm, 폭 3.8cm로 두 동강 난 채로 석관 동쪽 측면에 묻혀 있었다. 출토 동검의 양식은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의 특징을 지녀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경 인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한국 선사·고대사에서 여성이 제사장이나 정치 지도자였던 기록은 신라 2대 왕인 남해차차웅의 여동생 아로공주(阿老公主)가 가장 빨랐다. 김창석 강원대 중앙박물관장(강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은 “삼국시대 초기 여성이 제사를 주관했다는 극히 적은 기록이 있지만 이보다 앞선 선사시대엔 여성 제사장이나 지도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며 “고대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시사하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성 인골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래한 청동기문화의 양상을 새롭게 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본에선 청동기시대였던 야요이(彌生)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에 여성 제사장이었던 히미코가 왕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김재현 교수는 “그동안 한반도의 비파형동검 등 물질 중심으로 청동기문화가 일본에 전래됐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 발견을 통해 여성의 사회 참여 등 사회·정치적인 제도 역시 일본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강원대 중앙박물관은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20일부터 평창 하리 일대에서 발굴한 석관묘와 인골, 관옥과 토기 등을 복원한 모습으로 전시한다. 김 관장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강원도의 유구한 역사와 고대 문화를 널리 알리고 관련 연구를 촉진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