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유원모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구독 114

추천

동아일보 법조팀 유원모 기자입니다.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onemore@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검찰-법원판결60%
사회일반17%
사법10%
정치일반7%
사건·범죄6%
  • ‘편법 청부심의’ 방심위 간부 파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위원장 강상현) 직원이 2011∼2017년 외부인의 명의를 빌려 최소 46건의 민원을 대리 신청한 사실이 적발됐다. 그간 제기됐던 ‘정치적 편파 심의’ 논란의 실체적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방심위는 해당 직원인 김모 씨를 파면하고,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방심위는 최근 업무감사를 벌인 결과, 방송심의기획팀장이던 김 씨가 사무실이나 외부에서 친인척 등 지인의 명의를 빌려 민원을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대리 민원을 신청한 안건 46건 중 33건은 방심위 회의에서 법정 제재(19건)와 행정지도(14건) 등의 결정이 내려졌다. 방심위는 “홈페이지 개편 과정에서 김 씨의 컴퓨터로 수십 건의 민원이 제기된 것을 확인하고 조사에 착수했다”며 “(감사 과정에서) 김 씨는 전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적발된 대리 민원 사례에는 2013년 MBC 뉴스데스크의 ‘박근혜 대통령의 국산 헬기 수리온 실전 배치 기념식’ 보도와 2015년 KBS 광복 70주년 특집 ‘뿌리 깊은 미래’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많았다. ‘뿌리 깊은 미래’는 당시 “건국 가치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방심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방영 직후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해당 프로그램을 문제 삼았던 점을 들어 ‘청와대 청부 심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경중 방심위 사무총장은 “편법으로 안건을 상정한 것은 청부 심의에 해당한다”며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인 만큼 조속하게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민 총장은 또 “4기 방심위는 강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방심위를 둘러싼 ‘편파 심의’ ‘표적 심의’ 등의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는 원칙을 지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용필-이선희, 南예술단 평양공연 무대 선다

    가수 조용필 씨(68)와 이선희 씨(54)가 다음 달 초 평양에서 열리는 남한 예술단 공연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가요계에 따르면 조 씨 등은 예술단 수석대표 겸 음악 감독을 맡은 윤상 용인대 실용음악과 교수가 이끄는 예술단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미 평양 공연 경험이 있다. 조 씨는 2005년 8월 23일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단독 공연 ‘조용필 평양 2005’를 열었고, 이 씨는 앞선 2003년 같은 곳에서 열린 통일음악회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북한 예술단이 지난달 서울과 평창 공연에서 이 씨의 ‘제이(J)에게’를 부르는 등 북한에서 인지도가 높고 현지 정서에도 잘 맞는다는 평가다. 가수 백지영 씨와 윤도현 씨가 속한 록밴드 YB도 출연 제의를 받아 평양 공연 합류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YB는 2002년 ‘MBC 평양 특별공연’에 참여해 그해 월드컵 응원가인 ‘오! 필승 코리아’를 개사한 ‘오! 통일 코리아’를 불러 뜨거운 반응을 이끌기도 했다. 아이돌 가수도 여럿 출연할 계획이다. 윤 교수가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던 걸그룹 ‘러블리즈’와 인기 남성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 등도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북한 예술단 공연에 깜짝 등장했던 소녀시대의 멤버 서현도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보아 엑소 등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 가수들도 합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방북 공연 가수를 비롯한 세부 계획은 20일 열리는 남북 실무접촉회담에서 확정된다. 우리 측에선 윤 교수와 박형일 통일부 국장 등이, 북측에선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과 김순호 행정부단장 등이 판문점 통일각에서 만나 실무회담을 진행한다. 황성운 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은 “다양한 가수들이 폭넓게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공연 내용과 구성은 20일 예정된 실무회담 이후 자세히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신사임당 파우치… 가례의궤 우산… ‘국립 굿즈’ 불티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층 뮤지엄숍. 평일임에도 가게 안에는 물건을 구매하려는 수십 명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단순한 기념품 가게라고 생각하면 오산. 우리나라 전통회화와 문화유산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재해석한 상품들의 개성과 품질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날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그려진 노트 3권을 구입한 박수정 씨(30)는 “최근 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노트나 볼펜, 파우치 등을 구입한다”며 “외국인 친구들에게 선물해도 너무 좋아할 만큼 상품 수준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최근 2030 젊은층 사이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상품화한 굿즈(goods·관련 상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 효자손, 하회탈 등의 전통문화 상품이 촌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최근엔 세련된 디자인과 실용성을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상품은 전국 주요 국립박물관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국립 굿즈’다. 외규장각 의궤를 모티브로 한 손수건과 우산,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을 모티브로 한 유리컵과 노트 등이 있다. 지난해 매출은 40억 원 규모로 10년 사이 2배가량 늘었고 온라인 판매는 전년 대비 140% 이상 성장하기도 했다. 구매자 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관계자는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 등 상품 개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성과가 최근 들어 두드러졌다”며 “실용적이고 고품질일 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적 의미까지 담고 있어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세련된 문화적 기호로 사회 정체성을 인식하고 소비한다”며 “국립 굿즈의 인기는 이러한 정체성을 방증하는 가장 좋은 예”라고 분석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취향-신념 패션으로 밝힌다… 난 ‘미닝아웃족’

    #1. 얼마 전 가수 수지가 한 음악방송에 하고 나온 귀걸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귀걸이에 새겨진 ‘걸 파워(GIRL POWER)’라는 문구 때문. ‘걸 파워’란 말은 자기 주장이 확실한 젊은 여성들의 독립적인 태도를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다. 최근에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힘이나 독립성, 자신감을 북돋우고 그에 찬사를 보내는 슬로건으로 쓰인다. 작은 액세서리에 불과하지만 이를 두고 여성들은 “당당하게 소신을 내비치는 그가 멋있다”며 환호했다. #2. 대학생 임두준 씨(22)는 ‘메시지 스티커’ 마니아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언제쯤’ ‘#다스는 누구겁니까’처럼 사회적 이슈가 담긴 스티커를 주문 제작해 노트북과 여행가방 등 소지품에 장식처럼 붙이고 다닌다. 그는 “내 생각을 드러내는 걸 즐긴다. 사회 현상에 대해 관심을 표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닝아웃(meaning out)’의 시대다.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한 반대나 찬성, 동성애나 페미니즘 등에 대한 지지처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개인의 취향과 정치, 사회적 신념을 거침없이 ‘커밍아웃’하는 젊은이가 늘면서 ‘미닝아웃’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미닝아웃족(族)’은 주로 해시태그(#)가 달린 정치 관련 문구부터 육식주의를 반대하는 ‘낫 아워스(NOT OURS)’나 ‘PLEASE STOP(아동학대 반대)’ ‘SAVE ME(유기동물 보호)’ 등 사회적 메시지가 새겨진 티셔츠나 열쇠고리, 가방을 착용하는 게 특징이다. 애국심을 드러내기 위해 태극기와 무궁화가 크게 그려진 ‘광복절 굿즈’ ‘3·1절 굿즈’를 패션 아이템처럼 착용하기도 한다. 비거니즘(채식주의) 패션 브랜드 ‘낫 아워스’의 신하나 대표는 “예전에는 크게 드러난 슬로건이나 메시지가 부담스럽다던 소비자가 많았지만 이제는 자부심을 느끼고 먼저 관련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미닝아웃족’이 늘어난 데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놀이처럼 ‘쿨’하게 표현하는 젊은 세대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패션에서 메시지를 드러내는 행위는 내가 사회를 바꾸고 있고 의식도 갖췄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다른 사람들과 미닝아웃 행위를 공유하며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놀이’가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88만 원 세대’ ‘삼포세대’ 등 수동적인 이미지로 비치던 젊은 세대들이 세월호 사태, 촛불 집회 등을 경험하며 변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젊은 세대들이 외부의 담론이나 주장을 수용하고 확산시키는 중간 매개자 역할에 그쳤다면 이제 자신의 신념을 신속하고도 개성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장선희 sun10@donga.com·유원모 기자}

    • 2018-03-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커밍아웃? ‘미닝 아웃’의 시대…#해시태그부터 굿즈 아이템 착용까지

    #1. 얼마 전 가수 수지가 한 음악방송에 하고 나온 귀걸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귀걸이에 새겨진 ‘걸 파워(GIRL POWER)’라는 문구 때문. ‘걸 파워’란 말은 자기 주장이 확실한 젊은 여성들의 독립적인 태도를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다. 최근에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힘이나 독립성, 자신감을 북돋고 그에 찬사를 보내는 슬로건으로 쓰인다. 작은 액세서리에 불과하지만 이를 두고 여성들은 ‘당당하게 소신을 내비치는 그가 멋있다’고 환호했다. #2. 대학생 임두준 씨(22)는 ‘메시지 스티커’ 마니아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언제쯤’ ‘#다스는 누구껍니까’처럼 사회적 이슈가 담긴 스티커를 주문 제작해 노트북과 여행 가방 등 소지품에 장식처럼 붙이고 다닌다. 그는 “내 생각을 드러내는 걸 즐긴다. 사회 현상에 대해 관심을 표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닝 아웃(meaning out)’의 시대다.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한 반대나 찬성, 동성애나 페미니즘 등에 대한 지지처럼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개인의 취향과 정치, 사회적 신념을 거침없이 ‘커밍아웃’ 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미닝 아웃’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미닝 아웃 족(族)’은 주로 해시태그(#)가 달린 정치 관련 문구부터 육식주의를 반대하는 ‘낫 아워스(NOT OURS)’나 ‘PLEASE STOP(아동학대 반대)’, ‘SAVE ME(유기동물 보호)’ 등 사회적 메시지가 새겨진 티셔츠나 열쇠 고리, 가방을 착용하는 게 특징이다. 애국심을 드러내기 위해 태극기나 무궁화가 크게 그려진 ‘광복절 굿즈’ ‘3.1절 굿즈’를 패션 아이템처럼 착용하기도 한다. 비거니즘(채식주의) 패션 브랜드 ‘낫 아워스’의 신하나 대표는 “예전에는 크게 드러난 슬로건이나 메시지가 부담스럽다던 소비자가 많았지만 이제는 자부심을 느끼고 먼저 관련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미닝 아웃족’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놀이처럼 ‘쿨’하게 표현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정미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패션에서 메시지를 드러내는 행위는 내가 사회를 바꾸고 있고 의식도 갖췄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다른 사람들과 미닝 아웃 행위를 공유하며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놀이’가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등 수동적인 이미지로 비춰졌던 젊은 세대들이 세월호 사태, 촛불 집회 등을 경험하며 변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젊은 세대들이 외부의 담론이나 주장을 수용하고 확산시키는 중간 매개자 역할에 그쳤다면 이제 자신의 신념을 신속하고도 개성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18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살인범의 변호인, 그가 지켜낸 것은

    2011년 7월 22일 북유럽의 조용한 나라 노르웨이에서 역사상 최악의 테러가 발생했다. 범인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당시 집권여당인 노동당의 청소년캠프가 열린 우퇴위아섬에서 청소년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이슬람을 혐오하고,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극우주의자에 의해 77명이 희생됐다. 다음 날인 7월 23일 이른 새벽.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예이르 리페스타드 변호사님이시죠. 테러리스트가 당신이 변호를 맡아주길 원합니다.” 혼란스러웠다.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고,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를 자신이 변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대학병원 간호사이자 늘 현명한 기준을 제시하는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다. “만약 그 남자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온다면 의사는 수술하고 우리 간호사는 그를 돌봐야 해요.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또는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묻지 않죠. 그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당신의 일 아닌가요?” 이 책은 최악의 테러범을 변호한 저자가 ‘악마의 변호사’로 활동한 13개월간의 기록을 담았다. 그가 복기해 낸 일련의 재판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과 북유럽 국가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 범인이지만 철저하게 민주적인 과정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노르웨이의 법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저자는 많은 인명을 살상한 살인범이라도 요식적인 재판과 허술한 변론으로 심판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노르웨이 사회가 법치국가로 남도록 지키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범인이 파괴하려고 했던 바로 그 체계를 보호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브레이비크는 2012년 8월 법정 최고형인 2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日, 모든 학생 대상 독도영유권 교육… 우리도 수업 내실화로 맞대응해야”

    “일본의 모든 학생들이 ‘독도는 일본 고유의 땅’이라는 교육을 받게 됐다. 한일 미래세대의 새로운 역사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14일 열린 ‘일본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검토 전문가 토론회’에 참가한 학계 전문가들은 일본의 역사·영토 왜곡 교육을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이날 토론회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달 공개한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의 특징과 문제점을 분석해 대응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에 공개된 학습지도요령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기술을 필수과목인 ‘역사 총합(總合)’과 ‘지리 총합’을 포함해 모두 6개 과목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은 한국의 교육과정에 해당된다. 법적 구속력이 있어 향후 교과서 검정뿐 아니라 교육 내용과 수업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는 2022년부터 일선 고교 현장에서 적용될 예정이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은 “2001년 처음으로 독도 왜곡 기술을 반영한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보다 훨씬 더 악화된 내용이 일본 교육의 표준이 된 것”이라며 “지난해 초중학교의 학습지도요령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기술했기 때문에 초중고교 전 과정에서 독도 왜곡 교육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강력한 대응 조치와 실효성 있는 독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나선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우리나라의 독도 교육은 역사 수업의 맨 마지막 동아시아 평화 부분에서 주로 다루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수업 진도 등을 이유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동북아 영토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현장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수호랑·반다비 역사박물관서 만나요

    수호랑과 반다비(사진)가 박물관에 간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3일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사용된 응원도구와 경기용품, 홍보물 등 각종 자료를 23일까지 공개 수집한다”고 밝혔다. 수집한 자료는 심의를 거쳐 일부를 선정해 전시 및 교육 연구에 활용할 방침이다. 박물관은 올림픽 기간에 강원 평창군과 강릉시 일대에 직원을 파견해 자료 318점을 수집해 왔다. 수집 자료에는 남북 여성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세라 머리 감독과 첫 골의 주인공인 랜디 희수 그리핀의 사인, 응원 피켓, 입장권, 배지 등이 포함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부처 없는 불화 ‘신중도’… 한국 불교만의 독특한 자산”

    오랜 고민 끝에 2002년 출가했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사미(예비 스님)로 매일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드렸다. 예불을 드리기 전, 법당 안 한쪽 벽면에 있는 그림이 항상 눈에 들어왔다. 스님이 밧줄로 용을 낚시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2007년 정식 스님이 되고 나서 결심했다. 불화(佛畵)를 공부하기로. 11년이 지났다. 불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스님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주인공은 경기 화성시 보림사 주지인 현주 스님(42)이다. 지난달 동국대 미술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신중도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가 됐다. 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스님은 “현직 승려로서 신중의례를 집전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 그림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불화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스님이 주목한 불화는 신중도(神衆圖)다. 여러 등장인물을 빽빽하게 그린 그림으로, 불화이면서도 부처나 보살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인 신중은 부처나 보살처럼 깨달음을 얻은 존재는 아니지만 신묘(神妙)한 능력이 있어 중생들이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현주 스님은 “불교의 신을 그린 신중도는 신자들에겐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가장 서민적이고 개방적인 불화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중도가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조선 후기인 17∼18세기다. 당시 조선은 세계적으로 이상저온 현상이 나타난 ‘소빙기(小氷期)’로 인해 ‘경신대기근’(1670∼1671년) 등 극심한 자연재해에 시달렸다. 그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조선 민초들이 선택한 종교가 불교의 신중이란 분석이다. 때마침 조선 불교는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춘 시기이기도 했다. 백암 성총 스님(1631∼1700)이 중국에서 전래한 가흥대장경을 집대성한 ‘화엄경소초’와 신중신앙을 강조한 ‘정토보서’를 간행했다. 18세기에는 신중의례의 절차와 의식을 담은 의식집에서 “불전에 신중도를 모시고, 매일 기도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신중도가 전국 사찰로 퍼져 나갔다. 불교를 수용한 인도와 중국, 일본 등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다. 현주 스님은 “억불숭유 정책을 펼쳤던 조선이지만 대다수 민중은 유교보다 내세의 행복을 꿈꿀 수 있던 불교를 믿는 이가 많았다”며 “다양한 역사적 환경과 결합해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신중도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중도는 기복(祈福)적인 대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친숙한 등장인물이 주로 나온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에 등장한 염라대왕과 재판관인 시왕을 포함해 뒷간신, 우물신, 디딜방아신 등 100여 종의 신중이 표현된다. 현주 스님은 “불교 어느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토속적인 신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기 위한 신중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면모”라고 말했다. 지역별 특징을 분석한 점도 흥미롭다. 경상도에선 팔이 여러 개 달린 모습으로 인도 시바신에서 유래한 ‘대자제천’이 등장하고, 서울과 경기 지역 사찰에선 관우를 신격화한 관성제군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주 스님은 “신중도는 한국만의 고유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 콘텐츠”라며 “이번 연구를 계기로 학계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중도가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후쿠시마 원전 사고, 처음부터 대비책은 없었다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시스템의 국가, 매뉴얼의 나라로 불릴 만큼 철두철미한 준비성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말이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이어진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본의 상식과 자존심, 그리고 안전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일본 사회의 지식인들이 쓴 원전 관련한 책들이 잇따라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정부의 급격한 탈(脫)원전 정책과 원전 밀집 지역인 경북 포항과 경주 지역의 지진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큰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국정의 총책임자였던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썼다. 사고의 발생과 수습, 그리고 이후 그가 펼친 탈원전 운동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중대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원전을 54기나 만든 것도 이런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도 제도도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문화조차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고 해도 맞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응할 수 없었다.” 간 총리는 책에서 일본 사회가 원전 사고를 대비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관련법인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은 정작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고, 주무부처인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수장은 경제산업성의 소속기관이라는 이유로 낙하산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간 총리가 보안원장에게 “당신은 전문가인가”라고 묻자 “저는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입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는 대목에선 묘한 씁쓸함을 전한다. 총책임자로서의 인간적인 고뇌 역시 묻어난다. 원자로 자체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을 막기 위해 누군가는 후쿠시마 원전으로 가야 하는 상황. 간 총리는 “내각총리대신인 나는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갔다 와’ 하고 명령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간 총리는 “나 자신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인간이 핵반응을 이용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고, 핵에너지는 인간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탈원전 운동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도쿄 최후의 날’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자본 네트워크’를 추적했다. 일본의 반핵 운동가인 저자는 전 세계 우라늄 광산을 지배한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방사능 원자론’을 처음으로 주창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원자력 발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분석하며 ‘원전 카르텔’의 실체를 파헤친다. ‘소와 흙’은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서 안락사를 피한 소들이 초원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번식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책은 “씹는 것을 일로 삼는 소들은 뛰어난 제초 역할을 하며 땅의 황폐화를 방지한다. 사람이 귀환하는 날까지 농지를 계속 유지하는 데 소의 역할이 크다”며 원전 사고로 인해 삶의 방식이 변한 인간과 동물, 우리 주변의 환경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보유자로 이준아 씨 인정

    문화재청은 이준아 씨(58·사진)를 국가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歌詞) 보유자로 인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씨는 가사와 가곡 종목 보유자였던 이주환(1909~1972) 선생에게서 9세부터 가사와 가곡을 배웠고, 이주환 선생의 계보를 이은 이양교 가사 명예보유자로부터도 가사를 익혔다. 2008년 12월 가사 전수교육조교로 인정된 이 씨는 전통적인 창법에 기반을 둔 가창 능력과 오랜 경험에 따른 교수 능력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를 받았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9
    • 좋아요
    • 코멘트
  • “임시정부 수립일, 4월 13일 아닌 11일”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이 제정됐고, 4월 13일 선포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의 성립 역사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1989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1990년부터 매년 4월 13일을 임정 수립일로 기념해오고 있다. 하지만 1919년 4월 11일이 헌법 제정뿐 아니라 선포까지 완료된 임정 수립일임을 밝혀주는 새로운 사료가 최근 발견됐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역사비평’ 최신호에 실은 논문에서 “1919년 중국 신문 보도와 임정 인사의 기록 등에서 4월 11일 수립이 확인됐다”며 “당장 올해부터 임정 수립일을 제자리인 4월 11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임정 수립일이 4월 11일이라는 사실은 1920년 6월 일재(一齋) 김병조(1877∼1948)가 편찬한 ‘독립운동사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는 “4월 11일 임시정부를 상해에 두고 정부 성립을 중외에 선포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병조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된 인물로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정 사료편찬위원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독립운동사략에서 이 내용을 발견한 윤 연구교수는 “김병조 선생은 1919년 임정에서 발간한 ‘한일관계사료집’ 편찬을 주도하는 등 임정의 기록·편찬을 담당한 핵심 인물”이라며 “임정의 공식기록에서 정부 수립일은 4월 13일이 아니라 4월 11일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임정이 활동하던 상하이의 언론 기사에서도 나타난다. 상하이의 유력지였던 시사신보(時事新報)는 1919년 4월 11일자 ‘대한신민국 출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는 내각 명단과 헌장, 서약문 등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그렇다면 1989년 정부가 임정 수립을 4월 13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정부는 ‘조선민족운동연감’ 자료를 근거로 4월 13일이 수립일이라는 주장을 수용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조선민족운동연감은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경찰이 임정의 활동을 날짜별로 정리한 책이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 의거 직후 임정 사무실을 급습해 확보한 ‘한일관계사료집’이 바탕이 됐다. 실제로 연감의 4월 13일자에는 “베르사유 평화회의와 국내외 인민에게 정부 성립을 선언하고, 김규식에게 외무총장 겸 전권대사의 신임장을 발송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임정의 공식 회의록인 임시의정원 기사록에 따르면 김규식이 외무총장에 임명된 것은 4월 22일로, 잘못된 기록이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한일관계사료집을 보면 여러 날짜에 발생했던 사건을 4월 13일에 몰아서 썼다”며 “비판적 검토 없이 이를 수용하다 4월 13일 수립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역사학계를 비롯해 보훈단체들은 임정 수립일을 4월 11일로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임정 수립일 변경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올해 당장 임정 수립일을 바꾸기는 곤란하다”며 “학계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해 4월 11일로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 4월 11일은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훈 “공직자, 난중일기 읽고 모범 보고서 삼아야”

    “난중일기에는 해군들이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아 먹었는지, 화살촉이 몇 개가 남았는지 등 사실에 입각한 기록만을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보고의 정직성에 의해서만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 소설 ‘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김훈 작가(70·사진)는 공공언어를 바로 세우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공무원이 쓴 보고서의 모범을 충무공 이순신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서울시청과 서울 중구청, 대전시청 등 전국 각지의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20여 명이 모였다. 우리글진흥원에서 주최한 ‘공직자를 위한 언어 능력 향상 프로그램’에 참가한 공무원들이다. 그는 “공공의 언어는 법과 개인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라며 “공직자에게 말과 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언어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헌법의 서술이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며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헌법 전문을 보면 중요한 가치들을 한 문장에 다 넣으려고 하다 보니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쓰여 있다”며 “개헌을 한다면 헌법의 문장을 쉽게 다듬는 작업이 꼭 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중섭 ‘소’ 47억원에 낙찰…박수근의 ‘빨래터’ 넘어서

    8년 만에 경매시장에 나온 이중섭의 대표작품 ‘소’(사진)가 47억 원에 낙찰됐다. 경매에 나온 이중섭 작품 중 최고 금액이다. 이전까진 2010년 경매에서 35억6000만 원에 낙찰된 ‘황소’가 가장 높았다.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본사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중섭 ‘소’가 현장과 전화로 진행된 경합 끝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중섭의 ‘소’는 2007년 경매에서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 기록도 넘어섰다. 이중섭은 근현대 작가 중 추상화가 김환기 다음으로 최고가 기록을 갖게 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대사 복원의 실마리 찾아… 3년간 고구려 산성 73개 답사

    “고구려의 옛 이름 중 하나는 성을 뜻하는 ‘구루(溝‘)’였습니다. 그만큼 고구려 문화의 핵심은 산성에 고스란히 녹아 있죠. 이것이 광활한 제국을 일군 고구려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산성에 꽂힌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고구려 산성에 단단히 빠져 있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 요동(랴오둥·遼東) 지역의 73개 고구려 산성을 모조리 답사하고, 이를 사진과 글로 기록했다. 고구려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통나무)를 낸 하이코리아 중국부문 대표이자 대련 한국국제학교 재단이사로 활동 중인 원종선 씨(63·사진)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2001년 중국과의 무역을 위해 항저우로 이주한 원 씨. 이곳에서부터 베이징까지 연결된 중국 내륙 운하를 마주하면서 고구려 산성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운하를 지으면서 물류 이동과 경제가 꽃핀 당시 수나라는 동쪽의 거대한 제국 고구려를 침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습니다. 그들이 정복하려 했지만 끝내 실패한 고구려의 힘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책은 고구려 역사를 총망라한다. 주몽이 첫 도읍으로 세웠던 흘승골성(졸본성)부터 수나라의 침공에 끝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요동성,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함락된 이후에도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안시성까지. 이름으로만 들었던 고구려 옛 성들의 실제 모습을 사진과 지도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원 씨는 “고구려 산성의 가장 큰 특징은 험준한 주위 산세를 이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것”이라며 “중국 중원의 국가들에 비해 인구나 규모가 열세였던 고구려가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눈여겨볼 점은 원 씨의 현장 답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구련성, 복주고성 등 13개의 고구려 산성을 추가로 밝혀냈다는 것이다. 추천사를 쓴 도올 김용옥은 “이번 연구는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는 실마리를 찾아가는 지석(誌石)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원 씨는 “채석장으로 산성 자체가 통째로 날아가거나 밭으로 개간돼 흔적이 없어지는 등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가는 고구려 산성이 많다”며 “고구려 산성에 대한 관심과 보존 대책이 함께 논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일제 맞서 韓美 작전” 이승만이 김구에 보낸 비밀편지 첫선

    “백범 인형께. 지금 미국은 은밀한 준비에 열심인데… 만일 전쟁이 벌어지면 해상에서의 충돌이 먼저 있게 될 것이니 이때 제 도움을 바란다고 합니다.” 1940년 2월 2일 미국 워싱턴에 머물던 우남 이승만(1875∼1965)은 중국 치장(D江)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1876∼1949)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한 개인 소장자가 제1회 동아옥션에 처음으로 공개한 이 편지에는 조국 독립을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력한 두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행동으로 할 일은 군함, 병영, 관공서, 군수공장 등을 파괴, 방화하는 일, 사보타주, 비행기를 포격하고 시위할 것, 또는 군인 수백 수천으로 습격 항전할 것 등을 빨리 고민해보시고, 상세한 절차를 보여주십시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한 해 전, 우남은 백범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미국과 일본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으니 한미 공조 군사 작전을 통해 일제에 대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남은 외교독립론을 중시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 편지에는 오히려 적극적인 군사행동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학계에선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연구교수는 “자유롭게 흘려 써내려가는 독특한 필체와 우남이 미국에 머무를 당시 주로 사용하던 짙은 미색 종이 등을 볼 때 그가 쓴 편지들과 일치한다”며 “외교독립론과 함께 전시에는 철저한 무장투쟁론을 강조한 우남의 사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사 18층에서 14일 열리는 ‘제1회 동아옥션’에는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자료와 미술품 116점을 포함해 고문서 61점, 양장고서 18점, 도자기 등 260여 점이 출품된다. “못닛도록 사모차게 생각이 나거든, 야속하나마 그런데로 살으십시구려.” 1923년 3월 23일 안서 김억(1896∼?)이 친구였던 유봉영(1897∼1985)에게 보낸 편지다. 김소월(1902∼1934)이 1923년 5월 ‘개벽’ 35호에 발표한 시 ‘못니저’와 거의 똑같은 내용이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김소월을 발굴해 문단에 데뷔시킨 김억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년)를 내는 등 한국문학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박대헌 삼례 책박물관장은 “김소월의 작품으로 알려진 ‘못니저’의 원저자가 실은 김억이었음을 알려주는 의미 깊은 사료”라고 평가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1912∼2002)는 일본 대표로 뛰었다는 사실에, 시상식에서 머리를 푹 숙인 채 기뻐하지 못했다. 가만히 있을 일본이 아니었다. 조선총독부는 그해 9월 손 선수에게 우승 소감을 강제로 녹음시킨다. “무의식중에 죽을힘을 다하여 더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승리는 결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전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할 것이외다.” 이번에 출품된 ‘손기정 우승 기념 녹음’ LP레코드에는 이 내용이 담겨 있다. ‘일장기’, ‘일본 국민’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목소리가 작아지는 손 선수의 슬픔이 전해져 온다. 손 선수가 말하기 전, “크게 읽어”라며 강압적으로 재촉하는 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당시 녹음기술로는 음원을 편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1913∼1974)가 직접 표지 그림을 그린 단행본 43권과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자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경매에 나온 물품은 7일부터 14일까지 충정로 동아일보사 18층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 02-362-5110 ▼ 조선왕실 12폭 거대 병풍 국내경매 처음 나와 ▼ 역사적 가치 큰 조선 문화재 다수“내 나이 많아 정절 강요 못할 노릇” 정약용, 본처-첩 갈등 고민 편지조선후기 유행 12폭 수렵도 공개…절기별 일출-일몰처 과학 작품도 12폭의 거대한 병풍 안에 동자(童子)들이 부귀한 저택을 배경으로 노닐고 있다. 제기차기와 연날리기, 닭싸움을 하는 해맑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14일 열리는 제1회 동아옥션에 출품된 ‘백동자도 12곡병’의 모습이다. 지금껏 6∼10폭의 병풍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12폭의 거대한 병풍이 우리나라 경매에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시대 왕실 혼례에 사용된 것으로 주로 세자의 침소에 배치됐다. 화려한 장식성과 고급 비단에 채색된 것으로 볼 때 조선 왕실 화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번 동아옥션에서는 출품된 다양한 고문서와 미술품을 통해 조선시대의 고풍스러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이 쓴 원본 편지도 눈에 띈다. “내 나이가 이처럼 많으니 남에게 정절을 지키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1820년 8월 3일 다산이 쓴 편지에는 그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당시 다산은 전남 강진에서의 오랜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경기 남양주로 귀향했다. 그가 강진에 있을 때 만난 첩과 그 사이에 낳은 딸로 인해 본처와 갈등을 겪는 상황을 토로한 것이다. 수신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편지를 검토한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첩으로 인해 집안에 분란이 생기면서 다산이 겪은 곤혹스러운 상황이 녹아있다”며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다산과 관련한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동아옥션에는 다산의 아버지인 정재원과 손자 정대무가 쓴 편지도 함께 출품됐다. 조선시대 작품 중 보기 드문 12폭 수렵도도 공개된다. 17세기 후반∼18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등장인물들이 청나라 사람으로 보이지만 산수 배경은 조선의 모습이다. 수렵이 중요 생활수단이었던 고구려 때까지는 다양한 수렵도가 남아있지만 농경 사회였던 고려와 조선시대에선 수렵도를 찾아보기 힘들어 희귀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해진 조선 후기에 들어서 조선에서도 수렵도가 유행했다”며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수렵도의 시초격으로, 작품성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선조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도 다양하다. 24절기별 일출·일몰처, 적도와 황도, 남북회귀선이 표시돼 있는 ‘지구전후황도남북항성합도’와 1899년 전남 31개 군의 풍속과 지리를 상세히 담은 ‘전라남도각군읍지’ 책 등이 공개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일본은 왜 미국의 속국이 되려하는가”

    도발적인 제목 그대로다. 미국의 속국(屬國)처럼 행동하는 일본의 정치 현상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일본의 젊은 정치학자와 리버럴(진보적 자유주의자) 논객 2인의 솔직한 대담을 묶었다. 일본이 미국에 지나치게 저(低)자세를 취한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선 “미국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라고 저자들은 입을 모은다. 우치다 다쓰루는 2006년 9월 ‘9조 어떻습니까’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 속국이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저자는 “호되게 비판받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일본 사회의 의도적 무시가 더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저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속국 현상을 가속화시킨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패전’이라는 단어 대신 ‘종전’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이웃나라들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하고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태도”라고 일갈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동북아 평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위 국가들의 반대에도 안보 관련 법안을 밀어붙이고 2015년 급작스럽게 한일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한 배경에는 일본의 속국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아쉬운 점은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일본의 현실이다. 아베 총리와 같은 세계관이 일본인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 윤리성 강화 등 원론적인 대안만 제시한 점도 뻔해 보인다. 책은 정치와 외교뿐 아니라 일본 사회의 경제, 문화 등 전반을 분석한다. 한국과 놀랍도록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도 큰 시사점을 던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서대문형무소 1936년 모습 복원한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유관순 열사 등 수많은 독립지사가 갇혔던 서울 구(舊) 서대문형무소(사적 제324호·사진)를 일제강점기인 1936년 당시 모습으로 복원한다. 문화재청은 28일 “문화재위원회가 사적지 확대와 발굴 조사를 거쳐 일부 건물을 복원하는 내용을 담은 ‘서대문형무소 종합정비계획’을 심의해 조건부 가결했다”고 밝혔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가 1910년 경술국치 이전인 1908년 이 자리에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조건물 ‘경성감옥’을 세운 게 시초다. 1912년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을 신축하면서 서대문감옥으로 명칭을 바꿨고,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다시 개칭했다. 서대문형무소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1936년 건물 배치 도면을 기준으로 복원된다. 올해 현재 2만8000여 m² 규모인 사적지를 약 5만5000m²로 확대하고, 내년부터 2020년까지 확대된 사적지에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찾는 발굴 조사를 시행할 방침이다. 2021년 이후에는 구치감과 부속창고, 의무실, 병감, 공장 등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건물을 고증을 통해 복원할 예정이다. 다만 문화재위원회는 사적 확대 지정 등 분야별 의견을 수렴하고, 주변 여건을 고려해 정비계획을 보완하라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장엄한 아리랑 공연, 항일의 혼 일깨우다

    1944년 3월 1일. 중국 시안의 중심가에 있는 ‘량푸제 칭녠탕(梁府街 靑年堂)’ 공연장에서는 3·1운동 25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극인 ‘아리랑’이 무대에 오른 것. 항일정신을 담은 이 공연은 5일간 모두 4만 명이 관람해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1940년대 시안은 ‘항일연극’으로 대표되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펼쳐진 터전이었다. 99주년 3·1절을 앞두고 동아일보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함께 올해 1월 시안에서 문화와 예술로 독립을 이루고자 했던 한국 청년들의 발자취를 확인했다. 시안 시내 중심에 위치한 얼푸제(二府街) 거리. 1939년 결성된 독립운동단체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자리 잡았던 지역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10분가량 걸어가면 시안의 가장 큰 거리인 장안대로의 한편에 ‘5·4극원’이라는 간판이 걸린 공연장이 나온다. 푸른색 통유리로 마감된 5층 건물로 중국의 3·1운동 격인 ‘5·4운동’을 기념해 새로 설립됐다. 고층빌딩과 국립병원 등이 밀집한 시내 중심에 있지만 최근 공연장으로서 용도가 사라져 건물 입구는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다. 유리문 너머 보이는 건물 안쪽에는 폐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건물 터가 바로 가극 ‘아리랑’이 울려 퍼진 공연장인 ‘량푸제 칭녠탕’이 있던 곳이다. 최근 ‘한국독립운동세력의 재중 항일예술활동’ 논문을 발표한 양지선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는 “1937년 중일전쟁 후 시안이 중국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많은 예술인들이 활동했다. 항일연극을 펼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환경이 마련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안에서 항일연극이 처음 열린 것은 1940년부터다. 1939년 설립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시안으로 옮겨오면서 본격적인 문화예술 선전활동이 시작됐다. 음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유한(본명 한형석·1910∼1996)이 만든 ‘아리랑’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리랑’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바이올린, 피아노 등 서양악기와 북, 징 등 동양악기 20여 개를 조합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화려한 볼거리와 장엄한 서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중국으로 건너온 목동과 시골소녀 부부가 항일투쟁을 펼친다는 내용으로, 중국인에게 한국과 공동으로 항일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지를 고취시켰다. 공연 수익금은 한국과 중국 군대에 군자금으로 전달돼 독립운동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한유한을 포함한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의 제5지대로 합류하며 광복 직전까지 항일 문화예술 활동을 했다. 양 연구교수는 “항일연극으로 확보한 수익금으로 전쟁고아 수백 명을 구제하고 군복 2000벌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술은 금전적인 수익과 함께 정신적 무장도 가능하게 해 정치·군사적 방법과 더불어 독립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시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3-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독립 열망으로 뭉친 전사들, 절벽 오르며 사격-폭파 훈련

    “미국 군관들의 요청에 따라 비밀훈련을 받은 학생들을 실제로 실험해 볼 목적으로 두곡(두취)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40리 떨어진 종남산(중난산)의 한 고찰(비밀훈련소)까지 자동차로 갔다. 산기슭까지 가서 다시 5리가량 걸어서 도착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1945년 8월 ‘백범일지’에는 이 같은 기록이 나온다. 이 비밀훈련은 한국광복군과 미국 OSS가 공동으로 진행한 ‘독수리작전’이다. 대원들이 독수리처럼 낙하산을 타고 한반도에 침투해 정보수집과 거점 확보 등을 통해 광복을 실현한다는 군사계획이었다. 당시 백범이 찾아간 학생들은 그해 5월 11일부터 8월 4일까지 3개월간의 교육을 끝낸 1기 광복군-OSS 대원들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군함도’에서 광복군-OSS 대원으로 나오는 박무영(송중기 역)의 실제 모델이다. “평가단지는 독수리기지 훈련본부에서 26km 떨어져 있는 버려진 절에 마련했다. 훈련본부에서 트럭을 타고 도로 끝에서 내려 1.6km 정도 되는 좁은 길을 올라가야 했다.” 백범일지의 기록과 같은 내용이 미국 OSS의 기밀문서 ‘독수리작전 관계서신 및 평가계획’에도 있다. 독수리기지 훈련본부는 중국 시안시 두취진의 광복군 제2지대 본부와 같은 건물을 썼다. 본보는 지난달 28일 백범일지와 OSS 자료를 바탕으로 훈련장소를 추적해 확인했다.○ 절벽 오르고 사격, 폭파 훈련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황허강을 경계로 화북 지역을 점령한 일본군과 마주한 최전선이 됐다. 시안 시내에서 남쪽으로 19.5km를 내려가면 광복군 제2지대 본부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20여 km를 이동하자 국가산림공원으로 지정된 중난산 입구가 나타났다. 찻길이 정비돼 있었지만 2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도로가 마비됐다. 백범이 갔던 방법 그대로 5리(약 1.9km)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민가 30여 채를 지나고 나니 미퉈구사라는 절이 나왔다. 588년 수나라 때 세워진 이 절은 1939년 중국 국민당 중앙군관학교 제7분교(황포군관학교의 후신)가 사용한 곳이다. OSS의 ‘독수리작전’ 문건에는 교량 건설, 폭파, 절벽 오르기, 사격 등 실제 훈련은 이 절에서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진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절을 끼고 500여 m 더 올라가니 가파른 협곡이 등장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협곡을 가리키며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절벽 두 개가 마주하고 있어 야전 훈련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1945년 광복군 대원들이 치열한 특수 훈련을 진행한 바로 그 장소”라고 말했다. “종남산(중난산) 봉우리에서 오로지 밧줄만을 지닌 청년들이 매듭을 짓고, 절벽을 오르내렸다. (미국 교관에게) ‘중국 학생들에게도 발견하지 못한 해답(성과)을 귀국(貴國) 청년들에게서 발견했다. 참으로 전도유망한 국민이오’라는 찬사를 받았다.”(백범일지) 백범이 표현한 그대로였다. 지금은 일부 등산객들만 찾지만 73년 전 나라를 잃은 한국 청년들의 뜨거운 발자취는 남아 있었다.○ “미완의 계획, 기억은 완성돼야” 광복군-OSS 대원들은 야전훈련뿐 아니라 엄격한 이론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론 교육은 광복군 제2지대 본부에서 진행됐으며 심리전술, 비행장 정보 같은 첩보 교육을 비롯해 위장술과 정보원 모집이 포함된 작전 교육 등으로 구성됐다. 1기 교육생 가운데 12명이 탈락해 최초 모집 50명 중 38명의 정예 대원만이 1945년 8월 4일 1기 광복군-OSS 훈련을 마쳤다. 이들 중에는 장준하(1918∼1975)와 광복 후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1920∼2011)이 포함됐다. 실력과 의지를 모두 갖췄던 광복군-OSS 대원들의 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허망하게 항복을 선언하면서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은 한국광복군을 승전국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광복군의 역사는 지금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 미퉈구사 훈련지에는 광복군-OSS의 훈련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두취진의 한국광복군 2지대 본부에는 2014년 이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다. 하지만 광복군-OSS 훈련장소라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반쪽짜리 역사만 기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교수는 “광복군-OSS의 훈련 장소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독립을 이루려 했던 한국사의 가장 의미 있는 장소 중 한 곳이다”며 “광복군-OSS 훈련장소를 기억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관리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시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