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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자동차가 반파돼 죽지 않은 게 기적이라 할 정도의 사고가 났어요. 그때 깨달음을 얻었죠.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예의와 미안함이 필요가 없구나….’” 22일 인천 강화도 작업실에서 만난 제4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 박미화 작가(62)는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운명”이라고 했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넓은 작업실은 엄두를 못 냈던 그는 사고를 겪은 뒤 뭔가에 휩쓸리듯 움직였다. “남편에게 ‘많이 생각했는데, 필요한 것 같아 계약했어’라고 통보했어요. 미친 짓을 한 게 아닌가 걱정도 했죠. 그런데 그 뒤로 작업도 인생도 바뀌고 있습니다.” 아내이자 엄마로 살았던 박 작가의 작업 활동엔 많은 ‘운명’이 작용해야만 했다. 그녀가 서른 살 무렵 미국 유학을 떠난 것도 우연한 기회였다. “처음 미국에 간 건 남편의 업무 때문이었어요. 그때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 일하면서 준비를 했어요. 1년 뒤 한국에 돌아와 남편은 시댁에 보내고, 아이는 친정에 맡기고 2년 동안 유학을 떠났습니다.” 해외여행도 흔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일이다. 그는 “가정을 버리고 떠난, 한마디로 나쁜 여자였다”고 했다. 아이가 보고 싶어 눈물도 흘렸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를 했다. 그러나 40대에 다시 한번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개인전을 다시 연 것이 12년 만인 2007년. ‘늦깎이’ 전업 작가라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엔 여린 것들, 버려진 것에 대한 따스한 공감이 묻어난다. 박 작가의 작업실 한 구석에는 버려진 목재가 울타리처럼 세워져 있다. 이처럼 버려진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스티로폼을 활용한 ‘버드나무 비석’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물질이 있는데, 굳이 무언가를 새로 사고 소비할 필요가 있나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박수근미술상 심사위원단이 그의 작품에서 ‘휴머니즘’을 끄집어낸 것은 “신기했다”고 털어놨다. “특별히 ‘휴머니즘’을 의식하고 작업하진 않았어요. 그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업을 했을 뿐인데 그렇게 읽힌다니 신비로웠죠. 시각예술이 거짓말을 하기 힘든 장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피에타’ 도상은 세상의 모든 만물이 쓸쓸하고 불쌍한 어린 양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이미지라고 했다. 또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관념보다는 몸으로 느껴지는 물질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도 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자기 손가락이 다치면 아픈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런 몸으로 하는 공감으로 다른 생명을 이해하면 평화가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박 작가는 폐광촌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는 ‘할아텍(할 예술과 기술)’의 ‘철암 그리기’에도 10년 넘게 참여하고 있다. 할아텍은 2001년 작가 서용선, 이경희, 류장복이 설립한 비법인 문화활동단체.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성장했기에 수상 전화를 받았을 때도 “가장 먼저 할아텍이 생각났다”고 했다. “4, 5년 동안 꾸준히 달려와 잠시 작업을 쉴까 했는데, ‘박수근미술상’이 다시 채찍질을 해줬어요. 상을 주신 분들에게 죄송하지 않도록 해왔던 대로 열심히 작업하겠습니다.”강화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화가 변월룡(1916∼1990)의 개인전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6·25전쟁 이후 활동한 변월룡은 1950년대 평양미술대학의 학장 및 고문으로 파견돼 활동했다. 그러나 북한으로 귀화를 거부해 배척당했으며 남한에서는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 첫 전시였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러시아 동포 3세로 고려인 사회의 지원을 받아 스베르들롭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러다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재정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된다. 담당 교수의 도움으로 러시아 예술아카데미(레핀 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에 진학해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수 활동을 했다. 러시아 아카데미에서 활동한 만큼 작품 곳곳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교수가 되기 전에도 ‘파시즘을 타도하자’ 등의 선전 포스터를 그렸다. 인체나 풍경 표현에서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교과서적으로 풀어내는 방식도 엿보인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를 존경했다고 한다. 전시는 유족 소장품 중 회화 64점, 판화 71점, 데생 54점 등 총 189점을 소개한다. 출품작 가운데 절반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전시 기획은 25년 동안 변월룡을 연구한 문영대 미술평론가가 맡았다. 문 평론가는 “통일 한국미술사에서 남과 북을 잇는 연결고리 구실을 할 작가”라고 설명했다. 5월 19일까지. 3000∼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그곳에서 나온 뒤 40년 뒤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작가인 엘리 위젤은 프리모 레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다. 위젤과 같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레비는 1987년 4월 이탈리아 토리노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화학자였던 그는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 문학 작품을 통해 참혹한 시대의 진상을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도 “이야기가 최고의 치료제”라며 과거를 극복하려 했던 레비는 끝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레비가 생을 마감하기 전 세 차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의 문학 교수로, 레비와 10년 동안 우정을 나눈 조반니 테시오가 인터뷰어다. 두 사람은 레비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녹음기를 사이에 두고 과거를 차츰차츰 더듬는다. 세 번째 만남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직전, 레비의 사망으로 인터뷰는 중단됐다. 인터뷰는 매우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레비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등 시간 순서대로 삶을 훑는다. 레비는 침착한 어조로 솔직하게 자신의 기억을 털어놓는다.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여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거나, 주변 사람들에 대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도 말이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길 꺼려하는 모습도 보인다. 갑작스레 멈춘 인터뷰 탓에 아우슈비츠에 관한 직접적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작품을 먼저 보는 것이 더 와닿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글을 감명 깊게 본 독자라면, 책을 집필하게 된 다양한 내막을 짐작할 수 있어 흥미로울 듯하다. 또 직접적 언급이 없더라도 파시즘의 광풍이 어떻게 일상을 서서히 망가뜨리는지 간접적으로 그 분위기를 감지해볼 수 있다. 죽고 나서야 알려진 그의 우울증과 죄책감, 트라우마의 흔적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0, 90년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단선적인 내러티브를 이야기해 왔기에 이제 그 틀을 깨려고 합니다. 특정 역사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담는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것이죠.” 글렌 로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장은 앞으로 MoMA가 미국 모더니즘 중심의 미술사를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 용산구의 한 공연장에서 16일 만난 그는 새롭게 증축해 개관할 MoMA가 기존에 공개하지 않았던 소장품을 선보일 것이라며 그 맥락을 설명했다. “MoMA는 30, 40년 동안 (미국과 유럽 중심의) 특정한 역사와 연결지어 생각돼 왔어요. 앞으로는 절대적인 사실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겁니다.” 2017년 첫 증축 계획을 밝혔던 MoMA는 6월 15일부터 미술관 문을 닫고 10월 21일 재개관한다. 공사를 마치면 갤러리가 37% 확장되고 전시 방식도 바뀐다. 전통적 방식을 벗어나 회화 조각 드로잉 등을 혼합해 공간을 구성할 예정이다. 빈센트 반 고흐를 포함해 많은 관객이 찾는 인상파 화가의 작품은 계속 전시한다.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도 기존 미술사적 개념에 따른 소장품 전시를 지양하며 2017년 새 건물을 증축한 후 주류 미술사 이외 지역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로리 관장은 “MoMA의 풍부한 소장품 중 소개되지 않은 것들을 끄집어내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미술관의 역할이 ‘답이 아닌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미술관이 보여줬던 단선적인 미술사는 아주 간단해서, 강력했지만 그것이 예술을 대표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해하긴 쉽지만 진실되지는 않았던 것이죠. 물론 MoMA가 모든 미술사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한 많은 예술과 대화하고자 합니다.” 서울에서 이러한 계획을 발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의 관객이 MoMA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름 휴가철 미술관이 문을 닫을 동안 MoMA는 일본 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 등을 다니면서 새로운 미술관의 전략을 홍보할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붉은 산수’로 알려진 화가 이세현(52)의 개인전이 대구 중구 갤러리분도에서 열린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그림에서는 섬과 바다, 포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수가 붉게 변한 것은 군 생활의 영향이라고 한다. 휴전선의 전방 부대에서 경계근무를 하며 적외선 투시경으로 바라본 풍경을 화폭으로 옮겼다. 마흔 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도 ‘붉은 산수’의 계기가 됐다. 서양 회화 전통과 개념미술 사이에서 한국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지금의 스타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붉은 산수’ 시리즈 위주로 구성됐다. 5월 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근대 한국화를 대표하는 두 화백 청전 이상범(1897∼1972)과 소정 변관식(1899∼1976)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의 기획 전시 ‘한국화의 두 거장-청전(靑田)·소정(小亭)’은 두 화백의 1940년대부터 작고하기까지의 작품 8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현대화랑(구관)과 갤러리현대(신관)에서 각각 청전과 소정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현대화랑 1층은 청전의 1950, 60년대 대표작으로 구성했으며, 2층은 1940년대 작품이 주를 이룬다. 2층의 ‘효천귀로’는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 갤러리현대 1층과 2층은 소정의 1960년대 작품을, 지하 1층은 1970년대 작품을 전시한다. 두 화백을 주제로 한 전시가 처음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아 서로의 화풍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청전은 전통 산수화 기법에 원근법적 요소를 수용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산수’를 탄생시켰다. 한 덩어리처럼 흐르는 산등성이와 나무의 표현은 그림 속에서 부는 바람이 느껴진다. ‘청전양식’으로 불리는 산수가 때로 식민사관적 시각에서 ‘평범함’이나 ‘소박함’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청전은 기존 관념적 산수화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은 독창적 화풍을 일궈냈다. 청전 화백은 1927년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입사해 소설 삽화를 담당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보도하면서, 당시 체육부 이길용 기자와 상의해 일장기를 지운 주역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40일 동안 구속된 청전은 일제에 의해 ‘언론기관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강제로 동아일보를 떠나야 했다. 소정은 선과 형태를 극도로 강조한 화풍을 통해 개성을 추구했다. 특히 8년 동안 금강산을 사생하고, 이곳을 다양하게 변주해 ‘금강산 화가’로도 불린다. 이번 전시도 금강산의 독특한 바위나 나무의 일그러진 형태를 그린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6월 16일까지. 3000∼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가 박미화 씨(62·사진)가 제4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12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강원일보, 동대문미래재단, 서울디자인재단, 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6년 제정됐다. 서울 출신인 박 작가는 따뜻한 휴머니즘을 담은 도자와 회화, 설치 작업을 해왔다. 시상식은 박 화백 기일인 다음 달 6일 즈음인 4일(토)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공위성이 기록한 전남 진도 앞바다 사진 두 장. 2012년 사진 속 바다는 고요하지만 2014년 4월 23일 바다엔 작은 배들이 흰 먼지처럼 세월호를 에워싼다. 먼 하늘에서도 보이는 참사의 흔적은 마음속 응어리진 기억을 되살린다. 사진은 이의록 작가의 작품 ‘침묵의 거리’. 그는 “아무리 걷어내도 (우리의 감각은)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서울 5개 전시공간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가 열리고 있다. 안산에서는 16일까지, 서울에서는 21일까지 열리는 짧은 일정이다. 서울에서는 종로구 일대의 공간일리와 통의동 보안여관, HArt, 공간291, 아트 스페이스 풀을 잇따라 방문하는 순례 형식으로 전시가 펼쳐진다. 전시는 세월호 참사가 뒤흔들어 놓은 우리의 감각을 조명한다. 달콤한 바나나우유는 팽목항에 놓이면서 간절한 바람이 되고(성남훈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_팽목항, 진도’), 거리의 학생 무리를 그린 그림은 미안함과 슬픔이 된다(최진욱 ‘북아현동 3’). 작가 흑표범의 ‘Drawings of the MOTHERS’와 ‘VEGA’는 주변을 맴돌지 않고 엄마들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결과물이 돋보인다. 정치적 공방에 외면받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했던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슬픔이다. 평온한 마음으로 보기 쉽지 않은 전시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조예가 없어도 마음을 흔드는 경험은 흔치 않다. 전시 기간에 인근 공연장과 서점에서 강연, 공연, 낭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평소 막연하게 박수근 화백의 이름을 딴 미술상이 가장 명예롭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그 상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너무 구식으로 작업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는데, 이런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14일 오후 인천 강화도 작업실에서 전화를 받은 제4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 박미화 작가(62)는 조금 떨리지만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는 ‘박수근미술상’의 존재는 알았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일로만 생각했단다. 심사 결과가 나온 12일에도 전화를 받지 않아 늦은 밤에야 수상 소식을 듣게 된 그는 깜짝 놀라 “어머, 저 상 신청도 안 했는데요!”라고 답했다. 박수근미술상은 신청 없이 심층 리서치를 통한 후보군을 추천받아 수상 작가를 선정한다. 박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학과 미국 템플대 타일러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미국 필라델피아 펜로즈갤러리, 국내에서는 1991년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도예 작업은 물론이고 평면과 설치 작업을 함께 해왔다. 그의 작업은 상처 받은 사람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두드러진다. 연민과 슬픔을 암시하는 ‘피에타’상이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또 그는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거나 서대문형무소 달력을 보고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규모 폐광촌을 찾아 예술 작업으로 치유를 시도한 ‘철암 그리기’ 프로젝트, 전남 해남의 귀농 부부와 함께 연 갤러리 ‘베짱이농부네 예술창고’의 전시 등에도 참여했다. 올해 박수근미술상 심사위원회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이영철 계원예술대 교수, 김영호 중앙대 교수, 김현숙 KISO 미술연구소장이 맡았다. 심사위원회는 추천위원의 심층 리서치로 추린 후보 작가 20명 중에서 수상 작가를 최종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박미화의 작품 세계에는 박수근의 작품에 담긴 깊은 고뇌와 울림, 따뜻한 휴머니즘이 녹아 있다”며 “인간적인 주제와 재료, 형식적 측면이 박수근 작품세계의 맥락과 이어진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심사위원회의 심의 진행을 맡은 조은정 박수근미술상운영위원장은 “각 시대마다 미술의 경향성과 유행을 따르는 작가가 있는데,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박수근에게 가까운 예술적 태도, 삶의 태도, 예술성이 부합하는 작가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시상식은 박수근 화백의 기일(1965년 5월 6일)에 맞춰 다음 달 4일 오후 2시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 박 작가에게는 상금 3000만 원과 조각 상패가 주어진다. 같은 날 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이재삼 작가(59)의 개인전 개막식도 열린다. 이 작가의 개인전은 박수근미술관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문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박 작가의 수상작가전은 2020년 5월 열릴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돈을 냈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발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턱대고 만지는 인간 사물화가 진행된다.” 그룹 ‘빅뱅’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와 가수 정준영, 로이킴 등의 민낯을 드러낸 ‘버닝썬 사태’의 출발점은 바로 서울 강남 클럽이다. 강남 클럽을 대표하는 공간 ‘아레나’를 생생한 경험과 통찰로 풀어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저자는 아레나를 공간으로 먼저 접근한다. 옥외간판도 없고, 입구도 숨겨진 이곳은 은밀함을 지향한다. 경매 방식의 테이블 구매, 인형 뽑기 하듯 테이블로 여성을 끌어 올리는 성 상품화 등 룰에 동의하는 사람만 와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야 알 수 있는 사례들이 풍부하다. 클럽 ‘버닝썬’의 고액 주문자를 위한 전광판이 인기를 끌자, 아레나도 비율이 맞지 않는데 굳이 그 전광판을 설치한다. 아레나에서는 절대 색다르거나 다양한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음악은 오히려 영업에 찬물을 끼얹을 뿐이기 때문이다. ‘떼창’을 유도하면 2, 3년 전 유행한 음악도 끊임없이 튼다. 저자는 선정적 일화로만 알려졌던 클럽 문화를 냉소적으로 관조한다. 그의 시선을 통해 아레나는 ‘강남’ 속물적 문화의 극단이 모여드는 배출구임이 드러난다. 해외 도시와 비교해 서울 특유의 ‘욕망’에 관해 자세히 다룬 이야기도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예가 죽암 여성구(59)의 개인전 ‘도필자적’(刀筆自適·칼과 붓으로 유유자적을 즐긴다)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중국 명나라 말기 홍자성의 어록 채근담 전문을 옮긴 작품을 포함한 전각 502방, 서예 402점을 공개한다. ‘나물 뿌리를 씹으며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뜻의 채근담은 유교 도교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인생의 처세 등을 담고 있다. 한글로 쓴 이은상의 시 ‘조국강산’, ‘명심보감’ 계선편 구절 등도 전시한다. 여성구는 초등학교 시절 처음 서예를 접하고, 아버지가 글씨 쓰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36년간 서예 작업을 해왔다. 2004년과 2009년, 2014년에 이어 네 번째 개인전이다. 1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정소연 작가(52)의 개인전 ‘면벽수행’이 서울 종로구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린다. 정 작가는 2011년 ‘홀마크 키드’, 2014년 ‘각종 도감’, 2016년 ‘건축 모형’ 등의 작품을 통해 실재와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이번에는 벽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가 노트에는 “나는 갱년기 여성 작가다. 육체도 정신도 예전 같지 않다. 체력이 달리고 우울하다. 하염없이 벽을 보고 앉아 있다. 벽을 보고 있자니 웬만한 그림보다 벽지가 낫다”고 적혀 있다. 이른바 ‘면벽수행’의 결과가 이번 작품들이다. 벽지는 원래 벽화에서 시작된 것인데 전시된 회화 작품들은 다시 벽을 그림으로 그려 선후관계를 뒤집는다. 회화와 설치가 결합된 작품, 드로잉도 만날 수 있다. 정 작가는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공과대 커뮤니케이션아트 석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공학과 예술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회화 작가 홍정희(74) 초대전이 서울 강남구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20일까지 열린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홍 작가는 1967년 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부터 1년 동안은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미국 미시간대 미술대학에서 연구를 했다. 작품에서는 유년기 접했던 한복과 단청을 떠올리며 색채를 연구하거나 재료에 톱밥, 커피가루, 생선뼈를 갈아 넣는 등의 시도를 했다. 이번 전시는 2014년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그간 작업했던 ‘나노(Nano)’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이 공개된다. 그는 1970년대 중반에는 ‘자아―한국인’ 연작, 1980년대에는 ‘탈아’, 1990년대 ‘열정’ 연작을 선보였다. 2005년에 시작한 ‘나노’ 시리즈는 생명력을 갖는 작은 응집체를 표현하려고 했다. 홍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한국 사회가 겪었던 격변의 시절과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저는 1945년에 태어나 남북 분단과 6·25전쟁, 이로 인한 파괴와 가난, 비극적 삶의 어두운 파편들이 널린 유년 시절을 보냈고, 4·19와 5·16 그리고 유신시대, 1980년대 격변의 시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작지만 강하고 모든 것을 이겨낸 나라의 작가로서 작품을 해왔습니다.” 그는 작품에 구체적 대상을 묘사하거나 특정 풍경을 재현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보다는 색채 그 자체를 우선시하는 작품이다. 이는 1960년대 미국에서 출발한 미니멀리즘 예술의 미학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색채가 갖는 물질성이 매료됐습니다. 색채 자체가 곧 작품의 구성이며, 그 구성은 의도된 것이기보다 우연적이며 제작 과정에서 전개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노’ 시리즈를 하게 된 것은 작고 빠른 것에서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보 기술, 나노 기술, 바이오 기술, 이 작고 빠른 세 가지가 인체에 이롭게 됨으로써 사회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백운아 이길이구 갤러리 대표는 “홍 화백은 198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 해외에서도 수차례 작품을 선보였으며 제7회 석주미술상을 비롯해 한국일보 주최 미술대전 특별상, 제2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장관상 등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며 “근작인 ‘나노’ 시리즈는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의 질서에 관한 작품으로 기존 색면추상보다 더 간결하고 최소화된 형태가 작품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67년 ‘세계의 기운이 모이라’는 꿈을 품고 지었던 세운상가는 길이 1km에 이르는 초대형 상가군이다. 당시만 해도 개발시대의 유토피아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지역의 개발을 가로막는 애물단지가 됐다. 2014년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를 공공영역으로 재구축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개발을 통해 사익을 얻으려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아 세운상가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상충하고 있다. 2019년의 세운상가는 어떤 방향성을 지닌 공간이 돼야 할까. ‘2018년 제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엔이이디건축사사무소의 김성우 소장은 일방통행 재개발을 막는 세운상가의 역할을 표현한 ‘급진적 변화의 도시’를 출품했다. 이 작품을 비롯해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에서 선보인 작품들을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해 한국관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선보였다. 박성태 예술감독(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과 공동 큐레이터인 최춘웅 서울대 교수, 박정현 마티 편집장,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기획한 전시는 19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싱크탱크였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기공)’를 조명했다. 1960년대 억압적 정부 체제 아래에서 ‘아방가르드’를 꿈꿨던 기공의 작업은 한국 사회의 역설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에서는 2대 사장 김수근과 그 팀이 주도한 네 가지 프로젝트인 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에 초점을 맞췄다. 기공은 1960년대 한국 건축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구축되지 않은 상태다. 서울에서 열리는 귀국전은 지난해 베니스 현지 한국관에서 약 15만 명 이상이 관람한 전시를 아르코미술관의 공간 구조에 맞춰 새롭게 재구성했다. 기공에 대한 2개의 아카이브와 김경태, 정지돈, 설계회사, BARE, 김성우, 최춘웅, 선현석, 로랑 페레이라 등 건축가와 아티스트 8인(팀)의 신작을 소개한다. 5월 26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리겠다며 가져간 포트폴리오에는 순수예술에 가까운 그림이 가득했어요. 디자인이라고 하기엔 초현실적인, 너무 어둡고 불편한 것들이었죠. 수차례 거절당한 뒤 마지막으로 찾아간 DC코믹스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면을 좋게 봐줬습니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마더!’,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년 개봉한 세 영화는 모두 작품 포스터를 한 사람이 그렸다. 바로 대만계 미국인 일러스트 작가인 제임스 진(40·사진)이다. 진은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를 졸업하고 DC코믹스 버티고에서 출간했던 만화 ‘페이블스’ 표지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8년부터는 프라다와 협업해 특유의 몽환적, 상징적 이미지를 뽐내기도 했다. 그의 첫 국내 전시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3일 전시장에서 만난 진은 ‘셰이프 오브 워터’ 작업 당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너를 위한 완벽한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 폭스 스튜디오에서 만났다고 했다. “기예르모의 제작사 이미지를 그린 적이 있어요. 사무실에 갔더니 그가 ‘폭스’ 로고가 새겨진 메모지에 음양의 두 캐릭터가 겹쳐진 스케치를 그려주더군요.” 진은 수천 장의 촬영장 사진과 참고 이미지를 보고, 푸른 바닷속 헤엄치는 이미지를 그려냈다. 영화 주인공이 목탄으로 몬스터를 그리는 것에서 착안해 목탄 드로잉으로 포스터를 그렸다. 한 해에 세 작품의 포스터를 그리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세 감독에게 같은 달 제안을 받았어요. 나중에 대런에게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될 거라고 안심시키느라 혼났죠. 저도 잇따른 제안에 삶이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상적, 상징적 이미지에 대한 욕망이 당시 할리우드의 ‘집단 무의식’에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죠.”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그린 포스터와 ‘페이블스’의 커버, 드로잉, 대형 회화와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작업은 비교적 밝은 색채가 두드러진다. 진은 “아이를 갖고 아버지가 되는 경험이 변화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가 학생일 때만 해도 그림이 너무 어둡고 복잡해 일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단다. 다른 잡지의 커버는 ‘표준’적이었지만 자신의 그림은 그렇지 않아 불안할 때도 있었다. 그림 자체는 자신이 있었지만 ‘표지에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독창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표지 작업은 ‘만화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상 6년 연속 수상, 하비 어워즈 ‘최고 커버 작가’ 4회 수상의 결실을 가져다줬다. 진은 “세 살 때 대만에서 이주해 너무나 미국적인 환경에서 자라면서 ‘트라우마’에 가까운 적응기를 겪었다”며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그림에 더 매달렸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림은 나를 다른 곳에 안착하게 해주는 낙하산”이라며 “그래서 내 그림이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는 이탈리아 선교사 출신으로 중국 청나라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한 주세페 카스틸리오네(1688∼1766)에게 관심이 많다. 카스틸리오네는 서양 회화 기법을 동양화에 접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번 전시도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를 담는 ‘오방색’을 주제로 했다. 9월 1일까지. 9000∼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커피 잔 두 개만 놓아도 꽉 찰 만큼 작은 테이블. 게다가 한 모금 마시려면 모이 쪼는 닭처럼 고개를 숙여야 할 만큼 낮기까지 하다. 의자라고는 딱딱한 나무 벤치에 동그란 쿠션 하나. 구인서(가명·46) 씨는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배된 명소라기에 찾아갔지만 허탈했다. “손님이 많아 겨우 한 자리 잡고 앉았는데 실망했습니다. 겉보기에만 화려하더군요. 독특해 보이는 의자와 탁자는 이용하기에는 불편했어요. 카페란 편안하게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공간 아니었나요?” SNS 사진에 최적화된 공간 구성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릴 만한가, 아닌가’가 공간 소비의 절대 기준이 되면서 일어난,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의 역습이다. “찰칵, 찰칵!” 5일 오후 찾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의 카페 골목에서는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한 블록에만 대여섯 곳의 예쁜 카페가 늘어선 이곳은 요즘 SNS에서 뜨겁다. 특이한 색채와 공간감이 넘쳐나는 카페, 입체적으로 디자인한 디저트를 향해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인스타그램에 수만 건 언급된 카페는 해외 관광객까지 몰리는 명소가 되는 등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는 카페들의 생명줄이 됐다. ‘인스타그래머블’은 공간뿐 아니라 카페의 중심 콘텐츠인 메뉴까지 장악하고 있다. ‘더티 커피’가 한 예다. 커피가 잔을 넘어 잔받침까지 흘러내린 모양새가 독특해 인기다. 디저트도 입체적 장식을 얹은 것을 선호한다. 초점은 미각보다 시각이다. 최근 유행한 ‘목욕탕 카페’는 말 그대로 옛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카페다. 일부 점포에서는 음료 테이블 앞에 곰팡이 낀 타일과 수도꼭지가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카페 주인들은 “젊은 고객들에게 알릴 창구가 인스타그램으로 일원화하면서 거기 맞게 꾸미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마포구의 공연장 겸 카페 ‘살롱 문보우’의 임대진 대표는 “인스타그램용 메뉴를 개발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서도 “콘텐츠보다는 겉보기에 치중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식당가에서도 ‘인스타그래머블’은 트렌드가 아닌 필수다. 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F&B 컨설턴트)는 “요즘 인기 있는 이자카야나 내추럴 와인바는 예약을 인스타그램으로만 받을 정도”라며 “요리사들이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의 맛을 음미하기보다 인증샷에만 집중하는 고객들 때문에 아쉬워하기도 한다”고 했다. 호텔에서는 인피니티 풀(바다나 하늘과 연결된 듯 테두리를 마감한 수영장)이 인기다. 수영장이지만 정작 수영을 하는 이들은 별로 없고 ‘셀카’ 촬영을 위해 수영장 가장자리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일부 미술 전시장도 포토존처럼 바꿨다. ‘사진발’에 초점을 맞춰 전시품과 공간을 기획한 탓에 ‘사진과 달라 실망스럽다’거나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듣다 왔다’는 고객 불만이 이어지기도 한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는 “인스타그램에서는 말초신경을 단숨에 자극하는 ‘1초 게임’에 최적화한 이미지 전쟁이 벌어진다”며 “동선, 분위기, 향기, 서비스에 관한 정보가 배제된 채 특정 경향의 이미지로 설계된 공간에서는 제대로 된 경험을 바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김민 kimmin@donga.com·임희윤 기자}

사진 한 장에 공간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을 모두 담을 수 있을까? 공간을 사려 깊게 들여다보고 공을 들여 촬영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순간 촬영해 타임라인 위에서 몇 초 만에 소비하는 사진에서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런 ‘인스턴트’ 사진을 위한 공간이 되길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커피정’은 주말에 한해 과도한 사진 촬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욕설을 하거나 신발을 벗는 행위를 삼가 달라는 글귀도 부착했다. 임정훈 대표는 “커피는 분위기와 맛,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커피를 마시는 경험에 집중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연남동은 최근 카페가 많아진 지역이다. 인근 카페에 비해 고객의 연령대가 높은 커피정은 단골이 편하게 올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한 덕분에 올해 5년 차를 맞으며 이 거리에서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외에서는 ‘푸드스타그램’, ‘인증샷 금지’ 움직임이 몇 년 전부터 생겼다. 2013년에는 미국 뉴욕의 프렌치 레스토랑 ‘불리’가 식당 사진 촬영을 금지했다. 그 대신 주방에 들어와 사진을 찍도록 해 긴 줄이 늘어서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셰프 데이비드 불리는 당시 뉴욕타임스에 “식사할 때 이곳저곳에서 플래시가 터지면 좋은 추억을 남기기 힘들다”고 했다. 영국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더 워터사이드 인’은 입구에 ‘사진 금지(No photos, please)’ 문구를 달았다. 셰프 미셸 루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사진 촬영을 참을 수 없다”며 “스마트폰 사진이 맛을 담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해에도 영국의 패밀리레스토랑인 ‘프랭키 앤드 베니’가 저녁 시간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 화제가 됐다. 영국 전역 250곳에 체인을 갖고 있는 이 식당은 “이곳을 찾는 가족들이 서로 대화하고 가까워지길 바란다”며 이런 조치를 내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커피 잔 두 개 놓아도 꽉 찰 만큼 작은 테이블. 게다가 한 모금 마시려면 모이 쪼는 닭처럼 고개를 숙여야 할 만큼 낮기까지 하다. 의자라고는 딱딱한 나무 벤치에 동그란 쿠션 하나. 구인서 씨(46·가명)는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배된 명소라기에 찾아갔지만 허탈했다. “손님이 많아 겨우 한 자리 잡고 앉았는데 실망했습니다. 겉보기에만 화려하더군요. 독특해 보이는 의자와 탁자는 이용하기에는 불편했어요. 카페란 편안하게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공간 아니었나요?” SNS 사진에 최적화된 공간 구성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릴 만한가, 아닌가’가 공간 소비의 절대 기준이 되면서 일어난,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의 역습이다. “찰칵, 찰칵!” 5일 오후 찾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의 카페 골목에서는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한 블록에만 대여섯 개의 예쁜 카페가 늘어선 이곳은 요즘 SNS에서 뜨겁다. 특이한 색채와 공간감이 넘쳐나는 카페, 입체적으로 디자인한 디저트를 향해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인스타그램에 수만 건 언급된 카페는 해외 관광객까지 몰리는 명소가 되는 등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는 카페들의 생명줄이 됐다. ‘인스타그래머블’은 공간뿐 아니라 카페의 중심 콘텐츠인 메뉴까지 장악하고 있다. ‘더티 커피’가 한 예다. 커피가 잔을 넘어 잔 받침까지 흘러내린 모양새가 독특해 인기다. 디저트도 입체적 장식을 얹은 것을 선호한다. 초점은 미각보다 시각이다. 최근 유행한 ‘목욕탕 카페’는 말 그대로 옛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카페다. 일부 점포에서는 음료 테이블 앞에 곰팡이 낀 타일과 수도꼭지가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카페 주인들은 “젊은 고객들에게 알릴 창구가 인스타그램으로 일원화하면서 거기 맞게 꾸미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을 상황이 됐다”고 말한다. 마포구의 공연장 겸 카페 ‘살롱 문보우’의 임대진 대표는 “인스타그램용 메뉴를 개발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면서도 “콘텐츠보다는 겉보기에 치중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식당가에서도 ‘인스타그래머블’은 트렌드가 아닌 필수다. 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F&B 컨설턴트)는 “요즘 인기 있는 이자카야나 내추럴 와인 바는 예약을 인스타그램으로만 받을 정도”라며 “요리사들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의 맛을 음미하기보다 인증샷에만 집중하는 고객들 때문에 아쉬워하기도 한다”고 했다. 호텔에서는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바다나 하늘과 연결된 듯 테두리를 마감한 수영장)이 인기다. 수영장이지만 정작 수영을 하는 이들은 별로 없고 ‘셀카’ 촬영을 위해 수영장 가장자리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일부 미술 전시장도 포토존처럼 바꿨다. ‘사진발’에 초점을 맞춰 전시품과 공간을 기획한 탓에 ‘사진과 달라 실망스럽다’거나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듣다 왔다’는 고객 불만이 이어지기도 한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는 “인스타그램에서는 말초 신경을 단숨에 자극하는 ‘1초 게임’에 최적화한 이미지 전쟁이 벌어진다”며 “동선, 분위기, 향기, 서비스에 관한 정보가 배제된 채 특정한 경향의 이미지로 설계된 공간에서는 제대로 된 경험을 바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임희윤기자 imi@donga.com}

작품이 최악은 아니지만 시상식 무대에 설 정도로 인정받지는 못했던 소설가. 친한 사람들이 ‘천재’라 종종 함께 거론되지만 그들과 ‘세트’로 있어야만 기억되는 작가. “새롭게 주목받기엔 너무 늙었지만 재발견되기엔 너무 젊은 나이.” 주인공 아서 레스는 바로 그런 뜨뜻미지근한 상태, 지옥도 천국도 아닌 ‘연옥’에 머물고 있는 예술가다. 이 책이 지난해 퓰리처상을 수상했을 때 ‘100년 만의 과감한 선택’으로 회자됐을 만큼 독특한 주인공이다. “선생이나 우리는 천재를 만나봤죠.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람들 같지 않다는 걸 알잖아요. 자기가 천재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계속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요? 내 생각엔 그게 최악의 지옥인 것 같아요.” 누군가 레스에게 건넨 말. 그는 오랫동안 함께한 파트너와 이별하고 충동적으로 세계를 일주하고 있다. 그동안 거절해 왔던 문학 관련 행사에 모두 참석하기로 하면서 여행은 시작됐다. 뉴욕에서 유명 작가를 인터뷰하고, 멕시코에서 문학 콘퍼런스, 이탈리아의 문학상 시상식,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5주간의 강의, 프랑스 파리를 경유한 뒤 모로코 인도 일본을 거치는 여정. 책은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을 통해 레스를 조명한다. 50세 생일을 앞둔 늙은 게이이자 싱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레스는 끊임없이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는다. 뉴욕에서 대담을 함께하기로 한 ‘과대평가된’ 작가는 레스의 얼굴을 보고 “당신은 누구야?”라고 소리친다. 멕시코에선 미국의 유명 작가의 천재성을 이야기하는 콘퍼런스에 참석했는데, 그 작가가 레스의 전 연인이다. 여정을 밟아갈수록 레스는 자신이 늙어 영영 혼자이고 말거라는 걱정에 사로잡힌다. 이야기는 분명 비참하고 절망적이어야 하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터진다. 프리랜서 작가의 삶을 “따뜻하긴 한데 발가락까지는 절대 덮어지지 않는 조각보”라고 표현하거나 자신이 참석한 이탈리아의 시상식을 “자기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마련하는 슬픈 닭싸움”이라고 하는 등 시니컬하면서 연민을 자아내는 비유가 반짝인다. 우디 앨런 영화에 나올 법한 자학적 유머에, 독자는 비참한 레스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점점 그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레스의 친구 조라는 “백인 중년 남자의 삶을 가여워하긴 쉽지 않다”고 하지만, 책은 재치 있는 화법으로 그걸 해낸다. 게다가 소설가에 관한 소설이라니 왠지 자기 연민 아니면 자화자찬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큰 사건은 없지만 담담하게 털어놓는 사건들 사이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고독과 불안,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찰나의 행복이 펼쳐진다. 삶의 의미는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명예를 얻는 때가 아니라 사소한 마들렌 향기에서 피어난다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 김봉곤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샌프란시스코에 살았다면 바로 이런 소설을 썼을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절정은 베일에 휩싸인 화자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레스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묘사하고 있는 사람은 책 3분의 2 지점 즈음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다. 그가 늘어놓는 신랄하고 톡톡 튀는 비유의 향연을 즐기다가 마지막 순간엔 감동의 미소를 짓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람이 자연을 보고 감정을 느끼는 건, 그의 신체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관념적이거나 전형적으로 자연을 담는 ‘풍경화’로는 이러한 몸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작가 서용선(68)은 이런 ‘풍경화’를 넘어 현장의 몸이 느낀 자연을 담는다. 이렇게 그려낸 회화 19점과 드로잉 14점을 서울 종로구 누크갤러리의 개인전 ‘서용선-산을 넘은 시간들’을 통해 공개한다. 전시하는 작품은 서울 인왕산부터 부여 낙화암, 오대산 노인봉, 해남 달마산은 물론이고 미국 뉴욕과 워싱턴, 애틀랜타, 올버니의 도시 풍경을 담았다. 낙화암과 인왕산 등은 작가의 손을 거쳐 궁녀 수천 명이 몸을 던진 곳, 세조에게 목숨을 잃은 안평대군이 살았던 곳이라는 ‘스토리’를 품은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또 미국 도시 풍경에선 대중교통 속 무심코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성격이 드러난다. 1980년대부터 단종애사, 동학운동, 6·25전쟁 등 역사의 풍경을 그려왔던 작가는 기록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들에 주목했다. “세조가 주도한 계유정난은 그의 조카를 비롯해 수백 명이 죽은 사건인데, 500년 동안 왜 어떤 화가도 그걸 그리지 않았을까 의아했죠.” 과거 단종에게 관심을 뒀던 그는 최근엔 세조도 인간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게 됐단다. 결국 이렇게 사물과 산, 자연을 통해 작가가 마주하는 건 그 속에 비친 인간의 모습이다. “그림 속 장소가 무척 다양하지만, 이 모든 곳은 결국 내 몸이 다니면서 엮은 것들이지요. 내가 관심이 있었던 사건과 일, 인간에 대한 해석. 이것이 자연에 투사돼 드러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5월 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