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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실상 해산 수순에 접어들게 됐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한일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로 설립됐으며 이듬해 7월 개소식을 열었다. 사실 재단 폐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부터 논의됐다. 지난해 말엔 민간 이사진이 모두 사퇴했다. 최근 관련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일본이 재단을 위해 출연한 10억 엔(약 99억 원)을 정부 예산(양성평등기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여기에 재단 운영을 위한 자금이나 인건비, 건물 임차료가 월 수천만 원에 이르는 현실적인 문제도 겹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조속히 재단 해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 처리와 관련된 세부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관련 부처 간에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화해·치유재단 정관 33조에 따르면 해산을 위해서는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여가부 장관은 외교부 장관과 협의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26일 취임 인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산물인 화해·치유재단 처리 문제는 철저히 피해자 관점에서 하루속히 마무리짓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해산 작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지만 여러 문제점은 남는다. 우선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2015년 한일 정부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해 모든 전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기존의)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진 않겠다”고 했지만 향후 일본이 일방 파기를 주장할 수 있다.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의 처리 문제도 논란거리다. 이번 한일 회담에서 재단의 향방과 달리 10억 엔 반환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은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치유금 지급 사업을 했고, 이미 생존 피해자 34명(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시점 기준), 사망자 58명에게 총 44억 원을 지급한 상태다. 물론 10억 엔을 전액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해 이미 지급한 44억 원은 결과적으로 정부 예산으로 잡혀 있다. 10억 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전에 정부가 해당 방침을 외교채널을 통해 귀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 문제라는 큰 불이 있고, 북-미 관계에 숟가락을 얹고 싶은 일본으로선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깨져봐야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김하경 기자}

2박 3일 일정의 방북을 마치고 20일 오후 5시 36분경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로 향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입장한 문 대통령은 약 30분간에 걸친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눴던 대화와 비핵화 협상, 종전선언, 북-미 대화 등에 대한 구상을 비교적 자세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될 여건이 조성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언제든 검증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핵심 의제였던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내용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사용한 ‘참관’이나 ‘영구적 폐기’라는 용어는 결국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CVID)’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와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언급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큰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유일한 풍계리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핵실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므로 언제든지 검증을 받을 수 있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소개했다. 국제기구를 통한 비핵화 검증에 김정은도 동의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폐기한다면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도 못하게 되고 미사일을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며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미국 측에서도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종식시켜 나가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해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것 외에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문제’라며 우리와 논의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며 “그러나 북-미 대화가 순탄하지만은 않고 북-미 대화의 진전이 남북관계 발전과 연계된다는 사실에 인식을 같이하게 되면서 북한도 우리에게 북-미 대화의 중재를 요청하는 한편 비핵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석론’으로 상징되는 중재 역할이 비핵화 논의에서 주효했다는 자평이다. ○ “트럼프에게 전할 김정은의 메시지 있어” 방북을 마친 문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구두로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눈 바 있다”며 “(김정은과) 논의한 내용 가운데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도 있다. 그 내용은 앞으로 제가 방미해 미국 측에 상세하게 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조치와 단계는 북-미 간에 협의가 돼야 할 내용들이다. 그래서 평양공동선언에 담을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우리가 사용하는 종전선언의 개념은 65년 전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 그해 안에 하기로 했던 전쟁을 종식하겠다는 선언이다.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설명했다.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평화협정의 체결 시점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라고 못 박았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도 같은 개념으로 종전선언을 인식하고 있다”며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평화협정은 최종 단계에서 이뤄지게 된다. 그때까지 주한미군의 필요성이나 유엔군사령부(지위)는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에 대해선 “이번 남북관계(합의) 중 가장 중한 결실은 군사 분야 합의다. 정전협정 이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종전하는 데서 나아가 미래의 전쟁 가능성까지 원천적으로 없애는 일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담지 않았지만 구두로 정상 간에 합의된 사안들도 공개했다. 남북 국회 회담을 가까운 시일 안에 열기로 하고, 지방자치단체 교류 활성화에도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의 가동을 위해 북측에 ‘몰수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 위원장도 동의했다”고 했다. 이어 고려 건국 1100년을 맞아 12월 개최되는 전시회에 북측 문화재도 함께 전시할 수 있도록 북측이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의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하면서 북-미 협상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새롭게 전열을 정비한 양측 협상팀이 당장 다음 주부터 미국 뉴욕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수정 및 추가된 협상카드를 갖고 잇따라 회담에 나서게 된다. 특히 평양공동성명에 적시되지 않은 김정은의 ‘비공개 메시지’가 교착 상태였던 협상을 얼마나 뚫어낼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뉴욕, 빈에서 투 트랙 비핵화 논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9일 평양공동선언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성명에서 북한과의 투 트랙 협상을 제안했다. 다음 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별도로 초청함과 동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보낼 테니 실무회담을 하자고 한 것. 양측은 뉴욕 장관급 회담에서 큰 틀의 비핵화 로드맵을 논의하고, 빈에서는 실무대표급 회담을 통해 핵 사찰의 기술적인 세부 사항들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서울-평양-워싱턴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기존의 3각 협상 구도가 확장되면서 최고위급부터 실무 단계까지 다양한 수준의 협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협상 테이블에는 평양공동선언에 언급되지 않은 김정은의 비핵화 이행 조치 약속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에서 “미국과 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남북 정상이 논의했다고 명시했다. 남북 정상회담 전후로 이뤄진 양측의 물밑 조율 과정에서 영변 핵시설의 핵사찰을 포함한 ‘플러스알파’ 조치가 논의됐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백악관 기자들과 만나 “사흘 전 김 위원장으로부터 엄청난 친서(a tremendous letter)를 받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김정은이 편지에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IAEA 사찰을 언급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외교채널을 통해 이런 뜻을 전달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상응 조치’와 관련해서는 북-미 관계 개선 관련 부분이 눈에 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북-미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각적으로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관계 전환’이라는 단어를 두 차례 연속해서 언급했다. 관계 정상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교역법 해제 및 테러지원국 리스트 제외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비건 특별대표 빈 체류, 주말부터 실무접촉 예상 북-미 협상 ‘2라운드’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협상에서는 난관이 여전하다. 북한이 핵 신고서 제출 대신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카드를 새롭게 꺼내 들긴 했지만, 양측이 요구하는 조치 및 보상의 순서와 수위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무엇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보상을 어떻게 ‘동시 행동’으로 연결시킬 것인지가 모호하다. “종전선언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및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의 대가”라고 주장해온 북한이 태도를 바꿨다는 정황은 아직 찾기 어렵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중 플루토늄을 생산해온 5MW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시설 등을 순차적으로 나눠서 ‘살라미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 조치라는 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며 “보상에 대한 서로의 인식과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실무협상을 통해 맞춰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과 빈에서 양측이 마주 앉아 보기 전에는 답을 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비건 특별대표가 17∼21일 빈에서 진행되는 IAEA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이미 현지에 머물고 있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19일 “(빈에) 북측 대표를 초청했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빈으로 건너가 주말부터 양측의 실무협상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신나리 기자}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보다리 회동’이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면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백두산 방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20일 오전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백두산 정상에서 환한 표정으로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며 화합과 평화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백두산 천지는 1년에 맑은 날이 100일이 채 안 되는데 이날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빛이었다. 문 대통령은 직접 천지의 물을 떠 한라산에서 가져온 물과 합쳤고 김정은을 한라산에 초청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두 정상은 헤어지기 전 삼지연초대소 다리에서 수행원 없이 산보하며 ‘도보다리 회동’을 재현했다.○ “소원 이뤄졌다”,“사진 찍어 드리겠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 39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떠나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평양 시민들이 길거리에 도열해 인공기와 한반도기, 조화를 흔들며 환송했다. 순안공항에선 공군 2호기를 타고 직선거리로 약 370km 떨어진 양강도 삼지연공항으로 이동했다. 삼지연공항의 활주로가 좁아 1호기 대신 기체가 작은 2호기를 이용한 것. 특별수행원들과 기자단은 북한의 고려항공 여객기로 따로 이동했다. 삼지연공항에선 김정은이 미리 와 영접했다. 두 정상은 자동차로 북한 측 정상인 장군봉(해발 2750m)까지 이동했다. 등산 마니아인 문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중국 쪽 백두산에 오를 때 나는 반드시 우리 땅으로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세월이 금방 올 것 같더니 멀어져 영 못 오르나 했는데 소원이 이뤄졌다”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또 “남쪽 국민들이 백두산 관광을 올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분단 이후 (백두산은) 남쪽에선 그저 바라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다”며 “오늘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론 남측 인원(사람)들, 해외동포들이 와서 백두산을 봐야 한다”고 화답했다. 김정은이 “백두산 천지 물에 붓을 담가 북남의 새로운 역사를 계속 써 나가자”고 하자 문 대통령은 웃으며 “제가 새로운 역사를 좀 썼지요.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도 다 하고”라며 말을 받았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는 문 대통령을 향해 “백두산에는 전설이 많은데 두 분이 오셔서 또 다른 전설이 생겼다”고 했다.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던 문 대통령은 결국 “여기선 아무래도 위원장과 함께 손을 들어야겠다”며 즉석에서 김정은의 손을 잡고 들어올리자 수행원과 기자단의 박수가 터졌다. 김정은은 “남측 대표단도 대통령을 모시고 사진을 찍어야죠. 제가 찍어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깜짝 제안을 했다. 남측 대표단은 “아이고, 무슨 말씀을…”이라며 웃으면서 말렸다.○ “서울 오시면 한라산 모시겠다” 제안도 문 대통령은 “오늘 천지에 내려가시겠느냐”는 김정은의 제안에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담가보고 싶다”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천지에 도착해선 미리 준비해 놓은 한라산 물이 담긴 생수통의 물을 덜어내고 천지 물을 손으로 떠 담는 합수의식을 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김정은에게 “서울에 답방을 오시면 한라산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문 대통령도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 서울로 오신다면 (한라산 방문으로) 답해야겠다”고 동의했다. 동행한 가수 알리는 두 정상 앞에서 진도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삼지연초대소로 이동해 김정은 내외와 마지막 오찬을 했다. 두 정상은 초대소 야외 다리에서 한동안 배석 없이 대화를 나눴다. 새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자연 속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4월 상회담 때와 유사해 ‘도보다리 회담의 재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오후 3시 반에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북에서 첫날 오찬을 제외한 모든 오찬·만찬(네 차례)을 김 위원장과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저녁 남측 인사끼리 하기로 했던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 만찬에도 깜짝 등장했다. 문 대통령이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대국민 보고에서 “천지에 올라 국민들이 북한 땅에서 백두산을 관광할 수 있는 시대를 하루빨리 열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백두산=공동취재단 /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협상이 펼쳐질 새로운 무대로 오스트리아 빈이 떠올랐다. 빈은 북-미 간 핵협상 장소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과거 북핵 검증을 맡았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본부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있다. 2015년 이란 핵협상(JCPOA)이 최종 타결됐던 자타 공인 세계의 ‘핵 사찰 수도’다. 미국이 북핵 실무협상 장소로 빈을 지목한 것은 비핵화 검증에 대한 압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협상이 진전될 경우 핵 사찰 절차를 염두에 둔 선정이라는 관측 가운데 북한이 사찰 구상을 일부 수용했다는 메시지라는 관측도 있다. 비건 특별대표의 상대역으로는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측 실무 협상팀을 이끌었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편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다음 달 10일부터 남북미 트랙 1.5(반관반민) 대화가 열릴 예정이다. 판문점에서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올해 3월엔 북측에서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이 참석한 트랙 1.5 대화가 있었으나 트럼프 행정부 관료와는 접촉하진 않았다. 이번 대화에서 북-미 관료의 접촉이 이뤄진다면 빈 채널에 이어 북핵 실무그룹 간 논의가 유럽 무대에서 동시다발로 열리게 되는 셈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남북 정상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19일 밝혔다.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란 전제가 붙었지만 4·27판문점선언에서 구체화하지 않았던 상징적인 남북 경협사업들을 명시한 것이다. 두 정상은 또 연내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 착공식을 하기로 합의했다. ○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경협 우선 과제’로 이번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경협은 두 번째 합의 사항으로 적시돼 있다. 판문점선언에선 남북관계 개선 관련 여섯 번째 합의로 등장했던 사안이 네 단계나 뛰어올랐다. 남북 정상 간 경협의 필요성과 이행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가 공동성명에 적시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여건만 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겠다고도 명문화했다. 금강산관광 사업은 2008년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전면 중단됐고,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문을 닫았지만 향후 비핵화 협상이 잘 풀리면 언제든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판단이 반영된 듯하다. 개성공단을 축으로 한 서해경제특구와 금강산∼원산으로 이어지는 동해관광특구 후속 논의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구상을 뒷받침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는 북한이 가장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경협 분야다. 리룡남 내각부총리는 18일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에게 “북남관계에서 철도 협력이 제일 중요하고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남북은 전염성 질병 유입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의료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환경 협력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산림 분야 협력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도 비쳤다.○ 美의 ‘경협 경계심’ 높아지나 문제는 남북 간 합의만으론 남북 경협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가 남아있는 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정상화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수시로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앞서 나갈 수 없고 둘은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며 속도 조절을 강조해 왔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이날 언급한 비핵화 조치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이행 기미가 없다고 판단하면 남북 경협에 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낼 수도 있다. 남북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선언에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란 단서를 붙였다. 현재로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경협 사업에 필수적인 대북제재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금강산관광 사업과 개성공단이 언제 정상화될지는 미국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미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전력과 석유 공급이 제재 위반인지를 두고 정부가 미측과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개소가 늦춰진 전례가 있다. 야당도 이 점을 파고들고 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도 받지 않고 납세자인 국민의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철도와 도로 연결 착공식을 연내에 하기로 못 박은 것은 초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철도 및 도로 연결이나 개성공단 재개 등은 현실적으로 비핵화 진전과 대북제재의 완화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평양=공동취재단 /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남북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별도 조항으로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공동선언에서 밝혔다. 이는 4월 판문점선언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 조항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세부사항으로 포함시킨 데서 한발 나아간 것이다. 김정은이 19일 평양공동선언 서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직접 밝힌 것도 이전에 없던 것이다.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도 공동성명에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는 문구는 있었지만 김정은이 육성으로 ‘핵무기나 핵 위협이 없도록 노력한다’고 발언한 적은 없었다. 4월 판문점선언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은 ‘비핵화’의 ‘비’자는커녕 핵조차 언급하지 않아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번 평양공동선언은 남북 문화예술 등 소프트파워 교류를 앞세우고 군사적 긴장 완화나 안보 문제를 뒤로 했던 판문점선언과 달리 군사적 긴장 완화-남북 경협를 앞세운 것도 이전 선언과는 다르다. 판문점선언에서 ‘연내 추진’으로 시한을 못 박았던 종전선언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그 대신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취해야 할 ‘상응 조치’라는 조건부로 숨겨 뒀다. 향후 북-미 추가 협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동선언 서문에 민족자주원칙을 적시한 점도 눈에 띈다. 외부 요인에 휘둘려 한반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공교롭게도 13년 전 같은 날 발표된 2005년 9·19공동성명과도 비교가 된다. 북한은 당시 한반도 주변국인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의 6자회담 결과 핵 계획 포기를 비롯해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를 약속하는 대가로 에너지 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평양공동선언은 북측이 조건부이지만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밝힌 만큼 북핵 불능화를 위한 실천적인 조치를 담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등 정상회담 대표단 영접을 위해 북한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이어 공식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필두로 권력서열 3위인 최룡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이 나란히 문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최룡해가 올해 펼쳐진 남북관계 무대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김영남 최룡해 옆에는 리수용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김수길 총정치국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능오 평양시당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장 등 7명이 레드 카펫 위에서 영접에 나섰다.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그리고 김정은을 자주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함께했다. 북한의 ‘경제사령탑’ 박봉주 내각총리(서열 4위)는 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문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김정은이 영접에 북한의 당정군 핵심들을 총출동시켰다는 점에서 ‘파격적 의전’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안보 및 대외 관계에 관련된 북한 핵심 인사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북한이 회담에 힘을 실으려는 의지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태운 ‘공군 1호기’가 막 착륙한 평양 순안공항. 주기장으로 향해 난 공항청사 유리문이 열리자마자 숨죽이고 있던 북한 주민들은 꽃술과 인공기, 한반도기를 흔들며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깜짝 등장’한 것. 김정은이 5·26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가을 중 평양을 방문하면 성대하게 맞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 문 대통령에게 “각하” 호칭에 첫 예포 발사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오자 ‘왼쪽, 오른쪽, 왼쪽’ 순으로 볼을 맞대며 포옹하는 스위스식 인사법으로 적극 환영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때도 영접을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포옹을 했지만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파격 의전은 우리 군 의장대 격인 북한군 명예위병대 사열 및 분열에서 절정에 달했다. 명예위병대장은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적국 군통수권자에게 ‘각하’라는 최고 존칭을 쓴 것.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당시엔 ‘노무현 대통령’이라고만 칭했다. 통상 명예위병대장이 북한 최고지도자 이름 및 직함을 먼저 외친 뒤 외국 국가원수 이름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식으로 사열 및 분열 보고를 해온 것과 달리 이날은 김정은 이름 및 직함은 아예 외치지 않았다. 남측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만 집중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환영행사 땐 볼 수 없었던 예포 21발도 이날 처음 발사됐다. 앞선 4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선 명예위병대 및 한국군 의장대 사열은 진행됐지만 외국 국가원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포 21발 발사는 남북 모두가 생략했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도 남한을 정상국가로, 남한 정상은 정상국가 정상으로 예우할 테니 남한이 나서 미국을 설득하고 종전선언을 이끌어내 북한도 정상국가가 되게 해달라’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환대라고 볼 수 있다”며 김 위원장식 의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평양 시민들의 열렬한 환대에 감사드린다”며 “정말 기대 이상으로 환대해 주셨다”고 했다. 올해 대화 무드로 돌아선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환대하면서 ‘정상 국가’ 의지를 안방에서 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1년 말 집권 이후 사실상 ‘중량감 있는 외국 정상’의 첫 평양 방문인데, 적극적인 환대를 표시하면서 세계에 “평양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환대는 북-미 평양 회담으로 가기 위한 북측의 전략적 노림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내 편 만들기’ 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은 “북한은 이번에 한국을 확실한 자기 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향후 미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협상 레버리지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남북 정상 카퍼레이드, 예우 가장한 선전?이날 북한이 문 대통령이 공항에서 백화원 영빈관으로 가는 평양 시내 거리에서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환영 인파를 동원해 카퍼레이드를 한 것을 두고는 파격 의전을 가장한 북한 체제 선전 전략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정상이 각자 차량에서 내려 북측이 준비한 벤츠 리무진 오픈카로 갈아탄 곳은 평양 도심 초입에 위치한 3대 혁명전시관 앞이었다. 카퍼레이드 출발점이 된 이곳은 북한이 사상·기술·문화의 3대 혁명노선 성과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이어 영생탑을 지나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 여명거리도 거쳤다. 김정은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여명거리는 지난해 4월 완공된 뒤 북한의 화려한 발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두 정상이 탄 차량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도 지나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카퍼레이드 구간을 비롯해 총 4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첫날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공동취재단 / 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 기자}
외교부가 내전으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리비아에 체류 중인 한국인 전원에 대해 여권 무효화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정부가 정세 불안 지역에 가지 말라고 여행금지나 철수권고 조치를 한 적은 있지만 이보다 수위가 높은 여권 무효 조치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수의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외교부는 리비아 전역에 체류 중인 한국인 36명에 대해 다음 달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리비아 내 무장세력 간 유혈충돌이 격화되면서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국인들이 업무 등을 이유로 체류를 고집하자 여권 무효화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게 된 것. 외교부는 이후에도 계속 체류하면 강제 소개 조치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에는 7월 초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 남성 1명도 여전히 억류돼 있다. 정부가 물밑 교섭을 통해 구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리비아 당국과의 접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피랍자의 신속하고 안전한 구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위험에 노출돼 있는 다른 국민들도 보호해야 한다”며 “출국과 철수를 강하게 권고하고 있지만 실행에 어려움이 있어 1단계 조치로 여권을 무효화해 출국을 강제로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출하기 전까지 억류자 여권은 무효화하지 않기로 했다. 여권법 17조는 천재지변, 내란, 폭동, 테러 등으로 국민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 또는 체류하는 것을 중지할 필요가 있을 때 외교부 장관이 여권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 체류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가 정상 간 의제로 올라온 적은 없었다. 반면 이번에는 비핵화라는 무거운 의제가 정상회담을 누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하루 앞둔 17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청와대 역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성패가 결국 비핵화에 대한 어떠한 진전된 조치를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것. 진전된 비핵화 조치 없이는 문 대통령이 바라는 “북-미 간 접점 찾기”를 시작도 못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은 2박 3일 일정의 방북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최대한 설득하겠다는 계획이다.○ 文 “남북 간 새 선언이나 합의, 중요치 않아”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번 회담에서 두 가지 문제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첫째는 남북 사이에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인한 긴장과 무력충돌 가능성, 그리고 전쟁의 공포를 우선적으로 해소하는 것, 둘째는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저는 이제 남북 간의 새로운 선언이나 합의를 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앞선 두 차례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6·15 및 10·4 남북 공동선언을 채택한 것과 달리 이번 방북에선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 선언 국회비준이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정치적 선언문을 채택하기보다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구속력 있는 합의문 채택을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임 실장 역시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로 남북 관계 개선,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촉진,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 종식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러면서도 비핵화 논의에 대해선 “구체적 진전에 대한 합의가 나올지는 모든 것이 블랭크(빈칸)”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비핵화) 문제는 우리가 주도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비핵화 조치 요구와 북측의 적대관계 청산과 안전 보장을 위한 상응 조치 요구 사이에서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김 위원장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방북에서 어떤 식으로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계속 대화 테이블에 붙잡아둘 수 있는 추가적 비핵화 카드를 김정은에게서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7일 통화를 해 한미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 장관이 정상회담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을 항목별로(item by item) 40분간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같은 날 외교부를 방문해 이도훈 한반도교섭본부장을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로 대화 기조 유지할 듯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이번 회담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 관련 조치에 대해서는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임 실장은 “무력충돌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전쟁의 위험을 해소하는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남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육해공 무력충돌 방지와 적대행위 금지 방안을 골자로 한 ‘포괄적 군사합의서’를 채택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남북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국 군 최고 관계자가 합의서에 서명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서엔 남북 군 수뇌부와 상급 부대 간 핫라인(직통전화) 가동 등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치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만약 비핵화 논의의 성과가 없더라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로 북-미 협상의 끈을 유지하겠다는 ‘플랜B’의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를 줘서 북-미 대화의 판을 완전히 깨진 않겠다는 것이다. 임 실장 역시 “남북 간의 (군사적) 합의 진전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을 촉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평양 정상회담 남측 선발대가 16일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거쳐 방북했다. 선발대 단장인 서호 대통령통일정책비서관을 비롯해 권혁기 춘추관장과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 취재진, 보도·의전·경호 등 기술 관계자 93명이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으로 향했다. 11년 만에 열리는 평양 정상회담을 위해 선발대는 4·27 판문점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남북 합동 리허설을 통해 북측과 호흡을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선발대가 낮 12시 15분 고려호텔에 도착했다”며 “오후 3시 10분 평양과 서울 정부종합상황실 간 시험 통화에 성공했으며 현재 팩스 송수신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은 방북 공식수행원 숙소로 백화원초대소를, 특별수행원과 기자단 숙소로 고려호텔을 확정했다. 백화원초대소는 북한이 국빈급 외빈들에게 제공하는 영빈관격 고급 숙소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내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00년, 2007년 각각 방북했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이곳에서 묵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호텔은 양각도호텔과 함께 평양의 대표적인 국제 호텔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이 이곳에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회담을 가진 바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사진)가 방한 뒤 중국 일본 일정을 마치고 15일 사흘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15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비건 대표는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났다. 비건 대표가 12일부터 15일까지 중국과 일본을 방문해 카운터파트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대표가 10일부터 12일까지 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등을 접견한 뒤 사흘 만에 재방한한 것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비핵화 의제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비핵화 선조치에 대한 백악관의 원칙과 입장을 재확인한 비건 대표는 중국과 일본을 방문한 후 비핵화 관련 이슈를 다시 한국 측과 논의했다는 점에서 한미 공조에 긍정적인 시그널이란 평가가 많다. 정부 안팎에선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주요 외교 일정이 줄지어 있는 이달 내에 비건 대표와 이 본부장의 접촉이 더 빈번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15일 일본 외무성 소식통을 인용해 비건 대표가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국장과의 회담에서 “미일 당국자가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에 나설 때까지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에 일치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단은 5일 예정에 없던 만찬 때문에 이날 밤늦게 서울공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식사는 특사단끼리 했다고 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6일 “남북 간에 정상회담을 위한 협의가 길어지면서 북측에서 내놓은 저녁을 특사단 5명끼리 하고 돌아왔다”고 밝혔다. 귀환 일정이 만찬 때문에 늦춰지면서 김정은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야기가 잘 풀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던 상황. 하지만 특사단이 김정은을 접견한 것은 오전에 1시간 40분 내외였다. 평양에 도착해 고려호텔로 이동한 뒤 38층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남북 고위급 협의를 가진 특사단은 뒤이어 김정은과의 면담 후 다시 호텔로 돌아와 김영철 리선권과 오찬을 가졌다. 김 대변인은 “오찬을 마친 뒤 오후 3시부터 남북 간 정상회담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고, 협의가 길어지면서 특사단끼리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권 일각에선 “특사단이 평양까지 갔는데 ‘혼밥 만찬’을 하고 온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이번 방북을 두고 정부 안팎에서는 “3월 특사단이 갔을 때와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평이 나온다.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특사단이 방북했던 3월 초에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특사단과 김정은과의 면담에 배석했고, 만찬에 부인 리설주까지 참석했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6개월 만에 평양을 다시 찾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별사절단이 북측과 면담을 하기 위해 처음 향한 곳은 고려호텔 38층 회의실이었다. 앞서 5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두 번째 방북했을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하기 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겸 노동당 부위원장과 북-미 고위급 회담을 마쳤던 곳이기도 하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대북특사단이 고려호텔 38층 미팅룸에서 오전 9시 35분부터 김 부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환담을 나눴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20분 뒤 자리를 떴고 특사단은 리 위원장과 10시 14분까지 39분간 회의를 계속하다가 10시 22분경 공식 면담을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고 윤 수석은 설명했다. 특사단이 오전에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려호텔에서 이때쯤 나섰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호텔은 주로 평양이나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묵는 숙소로 이용된다. 5월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위원장이 38층에서 회담을 하고 39층에서 철갑상어와 오리, 랍스터, 스테이크 등 고급 요리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정 실장 등 우리 특사단이 3월에 처음 방북했을 때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내린 뒤 평양 대동강변의 고급 휴양시설이었던 고방산초대소로 안내받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정권수립(9·9절) 70주년 계기 방북이 일단 무산됐다. 중국은 대신 상무위원(최고지도부)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사진)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한국의 국회 격) 상무위원장을 시 주석의 특사로 북한에 보낸다.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를 담당하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대변인은 4일 오후 “리잔수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북한 정부 초청에 응해 시 주석의 특별대표로서 공산당 대표단을 이끌고 8일 방북해 (9일) 북한 건국 7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리 위원장은 한국으로 치면 국회의장급이다. 상무위원 7명 가운데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다음의 최고위급이다. 시 주석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시 주석이 북한 문제를 담당해온 상무위원 서열 5위 왕후닝(王호寧) 당 중앙서기처 서기를 놔두고 리잔수를 파견하기로 한 것은 ‘시 주석은 방북하지 못하지만 최측근을 특사로 보내 중국이 북-중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는 점을 북한에 강조하려는 외교적 제스처로 풀이된다. 특사로 방북하는 만큼 북-중 경제협력 등의 의지가 담긴 시 주석의 친서 등 메시지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때는 왕후닝의 전임인 당시 상무위원 서열 5위 류윈산(劉雲山)이 방북했지만 시 주석의 특사 자격은 아니었다. 중국은 지난달만 해도 시 주석 방북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시 주석이 방북하지 않기로 한 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북핵 문제에 돕지 않는다”며 ‘중국 책임론’으로 압박하는 데 따른 중국의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리 위원장의 방북 사실을 미리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신나리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 특별사절단 방북을 하루 앞둔 4일 전격적으로 통화를 가졌다.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와 범위를 놓고 한미 간 갈등이 불거졌지만, 특사단의 방북이 비핵화 논의의 경색을 풀 계기가 될 수 있는 만큼 한미 공조를 재확인하기 위한 행보다. ○ 트럼프 “비핵화 이행으로 이어져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행과 향후 대화를 위해서도 좋은 성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특사단의 방북과 이를 통해 확정될 남북 정상회담이 따로 가면 안 되고 비핵화의 진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전을 위해선 북한의 가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84일 만에 이뤄진 이날 통화에서 두 정상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날 통화는 통상 30분 정도였던 두 정상 간 통화 시간보다 긴 50분가량 이뤄졌다. 두 정상이 북-미 관계는 물론이고 최근 남북협력을 놓고 불협화음을 낸 한미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지금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있어 중대한 시점이며 이는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가는 것”이라며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 완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협력이 궁극적으로는 비핵화 없이는 진전될 수 없다며 트럼프에 동조하면서도, 동시에 남북관계가 꽉 막힌 비핵화 프로세스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당초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시점을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특사 방북을 앞두고 미국이 연일 남북관계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만큼 자칫 정상 통화가 한미 간극을 더욱 벌릴 수도 있기 때문. 그동안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라인 등을 총동원해 특사 방북이 비핵화 진전을 위한 것이라고 백악관을 설득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튼 이날 통화로 트럼프의 메시지를 문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은 특사단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가능성은 높아졌다. 특사단은 5일 오전 9시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과의 만찬 여부 등에 따라 방북 일정이 하루 연장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새로운 카드’ 내놓을까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긴급 외교안보 장관 회의를 열어 특사단의 보고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외교안보 장관들을 소집한 것은 9, 10월 중 어떻게든 남북, 북-미 대화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박감을 반영한 것이다. 이달 말 유엔 총회 전후 남북 및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비핵화 대화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문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에게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용 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 정착을 추진해 가는 초입 단계에서 종전선언은 매우 필요한 과정”이라며 “금년 중 종전선언이 이뤄지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적어도 미국의 중간선거(11월 6일) 이전인 10월 말까지는 꽉 막힌 북-미 관계를 풀어 종전선언을 채택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결국 관건은 김정은이 비핵화 논의를 다시 가동시킬 새로운 카드를 내놓느냐다. 하지만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핵시설 신고는 본격적인 비핵화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만큼 북-미가 선뜻 입장을 맞추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도 “미국은 어째서 북남관계 진전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과잉반응을 보이는가”라며 미국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의 정권수립(9·9절) 70주년을 기념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대신 왕후닝(王滬寧) 당 중앙서기처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할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복수의 정부 당국자와 중국 소식통들은 “3, 4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시 주석이 9·9절에 맞춰 방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며 “북-중 관계를 고려해 영향력 있는 왕 서기를 보내 격을 갖추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 서기는 북한 문제와 사상·선전을 담당하고 있어 ‘대리 방북’의 적임자라는 평이다. 올해 세 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두 영접을 나갔으며 북-중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왕 서기는 미국 방문학자 경험이 있는 유일한 상무위원으로 향후 대미관계 조율이나 북한의 개혁개방과 관련해 조언할 수 있는 적절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외교가는 시 주석의 방북이 사실상 무산된 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비난과 경고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무역분쟁이나 대만 문제보다 한반도 문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인데 시 주석이 굳이 정치적 부담을 지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열병식 규모를 축소했던 2월 70주년 건군절과 유사한 수준으로 9·9절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개 징후도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대북제재 때문에 열병식에 물자를 쏟아부을 여력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청와대가 2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대표단을 발표하면서 꽉 막힌 북-미, 남북관계를 뚫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청와대는 특사단 방북에 이어 대미(對美)특사 파견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다.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과 6차 핵실험 1주년(3일)을 앞둔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과 회유에도 침묵을 지키는 상황. 한국을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특사단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북한의 빗장을 풀어낼 수 있느냐가 집권 2기 문재인 정부 외교의 1차 관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월 대북특사단 재출격, 대미특사 염두 대북특사단은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등 5명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 직후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왔던 올 3월 특사단과 동일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방북의 효과적인 목적과 대북 협의의 연속성 유지를 주효하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특사단의 방북 목표로 이달 추진 중인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고 비핵화 조치 이행과 종전선언 채택으로 교착된 북-미관계의 돌파구 마련을 꼽았다. 김 대변인은 “종전선언과 비핵화 문제, 항구적 평화체제 정착 문제도 협의 내용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당초 특사단을 이끌 대표로 청와대 2인자이자 ‘판문점 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중재외교에 대한 불만을 여러 경로로 접하고 있는 청와대로선 북한에 기운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에는 적잖은 부담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결과적으로 정 실장의 특사 파견은 이후 미국과의 협상까지 감안한 카드.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따라 정 실장이 곧바로 미국을 방문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다. 3월 정 실장을 북한과 미국에 잇따라 보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면서 성공을 거뒀던 특사외교를 다시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면담 성사가 관건…“중재보단 중개 필요” 문제는 남북미 관계가 1차 대북특사를 보냈던 6개월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 이행 지연을 이유로 남북 정상회담 날짜 확정도 미루고 있고, 한미 공조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주인론’을 둘러싼 이견으로 공공연하게 균열을 노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미 국무부는 1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한국의 대북특사 파견과 남북 정상회담 추진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남북관계의 진전은 반드시 비핵화의 진전과 보조를 맞춰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청와대가 “미국과 긴밀한 사전조율을 했다”고 밝힌 대북특사 파견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우려를 드러낸 것. 이 때문에 특사외교의 성공 여부는 김정은이 어떤 대미(對美) 메시지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으로부터 직접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선언을 받아 왔던 인사들을 특사단에 다시 배치한 것도 이런 기대와 무관치 않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전략센터장은 “특사단이 비핵화 진전 없이 남북 교류만 앞당기면 최악의 결과가 될 수 있다”며 “무리하게 북-미 간을 중재하기보다는 미국의 정확한 비핵화 의향을 전달하고 북한의 입장을 확인해오는 ‘중개자’ 역할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특사단의 방북과 함께 시작되는 이달 첫 주는 한반도 대화 전개에 중요한 분수령이다. 9·9절을 전후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여부도 이르면 주초쯤 가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북한이 어떻게든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한 침묵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대북특사 방북을 통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 일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올해까지 중단키로 했던 한미 연합훈련 재개 가능성을 밝히며 선(先)비핵화 요구를 거절하고 있는 북한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북한이 가시적 비핵화 조치를 보여주지 않으면 한반도 비핵화 시계를 6월 북-미 정상회담, 더 나아가 2월 평창 겨울올림픽 이전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 이는 북한과 중국은 물론이고 남북경협 속도를 놓고 백악관과 이견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포괄적 경고로도 해석된다. 김정은이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등 올해 하반기 한반도 정세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28일(현지 시간) 브리핑을 갖고 “만약 (대통령이) 지시한다면 중단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더는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할 계획이 없다(We have no plan at this time to suspend any more exercises)”고 밝혔다. 매티스 장관은 “(미군이 하는) 가장 큰 규모의 훈련 중 몇 개를 유예했던 것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선의의 조치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핵·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유예)’을 깰 수 있다고 협박하자 한미 연합훈련 재개라는 최고 수준의 맞대응 카드를 꺼내 든 것.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이후 일주일 사이 대북 추가 제재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연기, 한미 연합훈련 재개 방침 등 트럼프식 ‘벼랑 끝 전술’로 김정은의 선택을 종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장 12월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 재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미 군사당국은 올해 말까지 연합훈련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한 상태다. 한미 연합훈련 재개는 북-미 비핵화 대화를 통째로 뒤흔들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과 함께 비핵화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줄기차게 쌍중단(핵·미사일 발사와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을 요구해 왔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은 이날 “북남 관계와 조국통일 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민족의 자주적 의사와 요구에 맞게 민족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이어 미국을 겨냥해 “시대착오적인 대결 정책을 고집하면서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가로막으려는 내외 반통일 세력의 책동은 우리 겨레의 단죄 규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트럼프 특유의 압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발표한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간에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며 “북한의 비핵화 진전 상황을 봐 가면서 한미 간에 협의하고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 소식통은 “스티븐 비건 신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한의 건국절인 9·9절 직후인 다음 달 10일부터 2박 3일간 방한해 협상 카운터파트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