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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아직 실패할 수 있는 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7대륙 최고봉 최고령 완등자’로 2007년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재미동포 산악인 김명준 씨(71·사진)가 27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신간 ‘라이프 노 리미츠’(동아일보사)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그는 월간지 ‘신동아’의 제49회 논픽션 우수작으로 뽑힌 ‘나의 에베레스트’를 바탕으로 수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등반과 모험의 여정을 책에 담았다. 김 씨는 평안남도 안주군 출신으로 어머니와 누나 둘과 함께 월남했다. 그는 연세대 전기공학과 졸업 후 KBS와 대림산업에서 근무하다가 197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정착했다. 의류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그는 50대에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1999년 56세에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부터 시작해 남미 아콩카과, 유럽 엘브루스, 북미 매킨리, 남극 빈슨 매시프, 오세아니아 카르스턴스 등 각 대륙의 최고봉을 차례로 오르고 64세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그는 “산속에는 역경, 죽음, 공포가 가득했지만 크레바스를 넘는 것이 무엇보다 신명났다”고 회고했다. 2003년부터는 북극과 남극 마라톤을 포함해 8개 대륙의 대표적 마라톤을 모두 완주하기도 했다. 김 씨는 실버세대에겐 영감을 주는 존재가, 후배 산악인에겐 목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제 또래 세대가 노년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도전은 끝까지 하는 것이란 영감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후배 산악인은 나를 넘어선다는 목표를 갖길 바랍니다.” 71세 올드보이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다부진 자세로 연단에 서서 “일본 후지 산처럼 주변에 산맥 없이 홀로 우뚝 솟은 세계 50개의 독립봉을 오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29개를 올라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달콤한 성취감을 위해서라도 모두 오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토지문화재단이 박경리문학상을 해외 작가에게 준다는 사실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해상국가가 얼마나 다른 문화에 열려 있고, 얼마나 그에 대한 탐사를 열심히 즐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입니다.” 제4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씨(70)는 25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박경리 선생의 위상만큼이나 크고, 이전 수상 작가들의 명성만큼이나 훌륭한 상을 제 이름으로 이어가게 된 것은 영광”이라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박경리문학상은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와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다. 올해 수상자인 슐링크 씨는 ‘책 읽어주는 남자’ ‘귀향’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반인간적인 학살과 문명의 파괴에 대한 독일인의 무한책임을 중심 주제로 다뤄왔다. 그는 “우리는 열린 마음과 호기심으로 이 문화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다름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고, 서로간의 만남을 통해 풍요로워지며 새로운 인식과 질문에 도달한다”며 “각 나라는 하나의 문화적 섬이며 여러분에게 독일이, 제게는 한국이 꾸준히 탐사해야 할 문화적 섬”이라고 말했다. 슐링크 씨는 박경리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과 만났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박경리 선생의 작품뿐 아니라 다른 한국 작가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똑같은 유행과 패턴을 따르는 획일화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다양성과 새로움을 접할 수 있는 영역은 저마다의 특색이 살아 있는 문화뿐이다”고 말했다. 이어령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정창영 삼성언론재단 이사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슐링크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독일의 과거 역사와 그 세대의 아픈 상처를 과감히 드러내 열어본 다음 다시 봉합하고 치유하는 데 평생을 바친 용기 있는 작가”라며 “비슷한 상황과 고뇌 속에서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글을 썼던 박경리 선생의 문학세계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오탁번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김기선 새누리당 의원, 원창묵 원주시장,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슐링크 씨는 28일 낮 12시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란 주제로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 초청 강연회를 갖는다. 30일 오후 7시에는 주한 독일문화원에서 작가낭독회를 연다.원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41)과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 씨(37)가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두 사람은 7월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신혼집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차릴 예정이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을 지냈다. 김 씨는 2001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뉴스9’ 앵커를 지냈고 ‘스펀지’ ‘열린음악회’ 등을 진행했다. 2012년 퇴사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야하다. 살구색 바탕에 청색 브래지어와 팬티가 그려진 표지가. 만져보면 이미 브래지어는 올리고 팬티는 내렸다. 여성의 몸을 흉내 낸 ‘W X V’ 모양을 도톰하게 속옷 아래 처리해 두었다. 읽어 보란 것이냐, 만져 보란 것이냐. 전후좌우를 살피고 스윽 표지를 쓰다듬은 뒤 책장을 넘긴다. 소설은 ‘시작하다’ ‘사랑하다’ ‘다시 시작하다’까지 모두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프랑스의 클레브란 작은 마을에 주인공인 초등학교 고학년 소녀 솔랑주가 산다. 또래들이 섹스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 그는 제 안에 “화냥년이 숨어” 있다고 믿는 남다른 소녀다. 교실에서 압정을 몸에 박는 상상을 하며 자위행위를 하고 범퍼카를 타고 돌아온 날 생리를 시작한다. ‘사랑하다’ 장에선 솔랑주와 친구들은 경쟁적으로 첫 경험에 몰두한다. 솔랑주도 여러 남자의 난폭한 손길 속에서 감미롭지 않은 첫 경험을 시작한다. 온갖 성관계를 시도한 끝에 성병까지 얻는다. 그렇다고 섣불리 동정하진 말자. 그는 ‘교접’ ‘음경’ 같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며 스스로 성을 깨칠 정도로 주체적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나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하다. ‘다시 시작하다’ 장은 조금 슬픈데, 무관심한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준 이웃집 아저씨와도 성관계를 맺는 아찔한 과정 속에 여성이 돼 간다. 줄거리만 건조하게 정리했을 뿐 소설 속 적나라한 이야기는 지면에 옮기지도 못했다. 짐작만 하시라. 소설에서 남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 63회 나온다(직접 세진 않았다. 옮긴이의 말을 참고했다). 여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도 그에 버금가는 횟수로 나온다. 저자는 어릴 적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일기를 다시 듣고 그 일기에서 많은 부분을 소설로 옮겼다. 일기를 옮겨서일까, 소설은 10대들이 쓰는 비속어로, 그들의 첫 경험을 완벽히 재현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언급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안네 하면 강제수용소의 비극만 떠올리는 솔랑주에게 친구는 “안네 프랑크는 생리에 관해 쓴 세계 최초의 작가야. 그의 일기는 정확히 그녀가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을 때 끝났어. 그러니 수용소에 관해서는 쓰지 않았지”라고 말한다. 엄숙주의에 빠진 우리가 안네의 영혼만 보고 그의 호르몬 변화는 외면한 것이 아닐까. 소설 원제는 가상 마을 이름인 클레브(Cl`eves)다. 소설에선 “클레브는 입술(레브르)을 연상시키니까. 그리고 클리토리스로 시작되니까”라고 설명한다. 클레브가 한국 독자에게 낯선 것을 우려한 한국 출판사는 제목을 솔랑주의 이미지에 쩍쩍 달라붙는 ‘가시내’라고 바꿨다. 저자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꼽힌다. 가난한 여인이 성매매로 많은 돈을 벌지만 점점 암퇘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1996년 데뷔작 ‘암퇘지’ 등 그의 작품들에 녹아 있는 적나라한 묘사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시내’도 프랑스 언론마다 찬반 의견이 엇갈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호불호를 떠나 10대 소녀의 실제 속내를 자신의 경험에 빗대 문학이란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만큼은 인정해주고 싶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1500년 동안 잠자던 백제 금동 신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등 부분에 자리한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듯하다. 바닥에 새겨진 연꽃과 용의 얼굴은 화려하면서 위엄이 넘친다. 백제의 뛰어난 공예 기술과 디자인 감각이 결합된 걸작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발굴된 금동 신발 17켤레 중 가장 빼어나고 완벽하게 보존된 이 신발은 과연 누가 신었을까.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랑동마을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정촌 고분 정상에 올라서자 시원하게 펼쳐진 영산강 물줄기와 일대 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5세기 후반 묻힌 무덤 주인의 권력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복암리의 기존 고분군과 가까운 곳에서 마한, 백제권 초기 대형 돌방무덤 가운데 가장 크고 도굴 흔적이 없는 정촌 고분이 발견돼 금동 신발 등 유물이 대량 출토됐다고 23일 밝혔다. 정촌 고분은 봉분 하나에 여러 무덤이 있는 ‘벌집형 고분’으로 돌방무덤, 돌덧널무덤, 옹관묘 등 9기의 매장시설이 확인됐다. 금동 신발이 출토된 1호 돌방무덤은 최대 길이 4.85m, 너비 3.6m, 높이 3.1m다. 어른이 허리를 숙이고 간신히 들어설 수 있는 석재 문틀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천장 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게 만들어졌다. 이번에 출토된 백제 금동 신발은 지금까지 마한, 백제권에서 출토된 17켤레의 금동 신발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돼 있고 작품성도 뛰어나다. 금동 신발은 길이 32cm, 높이 9cm, 너비 9.5cm 크기. 한 짝에는 발등 부분에 용이 승천하는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다. 탈부착이 가능한데 남은 한 짝에선 사라진 상태다. 발목 부분에 덧댄 금동판도 전북 고창군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것보다 2cm가 더 긴 4.5cm다. 이 신발은 크기가 너무 크고 재질이 약해 실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망자를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의미를 담아 무덤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신발 바닥은 정면에서 바라본 용 얼굴과 연꽃 모양을 투조(透彫·금속판을 도려내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와 선각(線刻·선으로 새긴 그림이나 무늬) 기법으로 꾸몄다. 바닥 중앙에는 연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했고 눈을 부릅뜬 채 입을 크게 벌린 용이 묘사돼 있다. 바닥에는 스파이크 모양의 징 24개를 붙였다. 당시 용은 지배 계층의 문장이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백제의 금동 신발 제작 기술의 최정점에 있는 것”이라며 “백제가 영산강 유역의 지배세력인 마한지역 권력자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금동 신발을 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에서는 대도, 금제 귀걸이, 장신구, 마구, 화살통 장식과 화살촉, 옥토기, 석침(돌베개) 등이 함께 출토됐다. 이 물건들에서는 가깝게는 가야와 신라, 멀리는 일본 양식까지 보여 영산강 지역 세력들이 이웃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볼 수 있다. 도굴 흔적이 없는 고분이 발굴된 것도 이례적이다. 정촌 고분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정자가 일제강점기까지 있었다. 아직도 정자 터가 남아 있는데, 도굴꾼도 정자 아래에 고분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자가 철거된 뒤에는 고분 위에 나무가 우거져 겉으로 보기에 고분인지 야산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현장발굴에 참가한 오동선 연구사는 “정자 기반 공사와 나무뿌리의 영향으로 돌덩이가 군데군데 무덤 내부에 떨어졌지만 기적처럼 금동 신발을 비켜갔다”고 전했다. 이상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발굴을 통해서 마한 세력이 국가 단계에 이르진 못했지만 상당한 세력을 갖고 주변 문화를 흡수한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정촌 고분과 주변 고분에서 발굴된 인골의 DNA 조사를 통해 마한인들의 얼굴과 생활상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나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80년대를 생각하면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 앞에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단단한 철의 장막과 푸른 생명의 대비가 강렬해서 제목도 ‘청동정원’이라고 지었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작가(53·사진)가 자전적 성격의 두 번째 장편소설 ‘청동정원’(은행나무)을 출간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1년간 계간지 ‘문학의오늘’에 ‘토닉 두세르’란 이름으로 연재한 소설을 다듬어 단행본으로 묶었다. 맛있는 음식과 옷에 탐닉하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던 80학번 여대생 ‘애린’이 격동의 시대에 휘말려 변모하다가 작가가 돼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청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최 작가는 1988년 여름 원고지 450장 분량의 초고를 썼으나 25년 동안 비밀 일기처럼 남몰래 보관해 두었다. 그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낸 1994년엔 1980년대와 너무 가까웠다. 그래서 손대기가 너무 뜨거웠다. 지금에야 비로소 80년대가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큰 강물이 흘러가고 나니 작은 물줄기들이 보여요. 운동을 한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였죠. 애린이처럼 주변부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들의 고민이 더 깊었습니다. 시대에 묻힌 주변부의 작은 목소리들을 제 문장으로 복원하고 싶었어요.” 1985년부터 1990년까지를 다룬 5장 ‘쇠와 살’ 부분은 연재할 때도 쓰지 못했다가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서야 겨우 담았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든 자전적 소설이지만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그는 기자나 역사학자처럼 이 소설을 썼다. 그는 신문사 자료실을 찾아 당시 기사를 꼼꼼히 찾아 읽고, 1980년 광주항쟁을 묘사하기 위해 현장에 있었던 동창을 찾아가 녹취했다. 그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꼼꼼하게 고증을 했다”며 “80년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책을 읽으면서 당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26년 만에 숙제를 끝내니 후련하다는 그는 직접 고른 소설의 문장을 인용해 달라고 했다. “스무 살의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중략) 이십여 년의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나는 자유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노는 법을 터득했다.”(46쪽)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길거리에서 남의 가게 간판을 달아주는 막노동꾼으로, 공사판 철근장이로, 답답하고 위험한 철길을 달리는 노동자로, 힘든 사회복지사로, 밥 먹듯이 한뎃잠을 자는 희망버스 기획자로, 빈 들녘을 지키는 산골 마을 농부로, 가난한 시인으로….’ 노동자 시인동인 ‘일과시’가 창간 20주년 기념 시집 ‘못난 시인’(실천문학사·사진)을 펴냈다. ‘일과시’의 유래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기업마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보가 제작됐다. 노보에 글을 쓰거나 노동문학회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시인들이 모여 동인을 만들었다. ‘일과시’는 일하면서 시 쓰는 사람이란 뜻. ‘일과시’는 1993년 첫 시집 ‘햇살은 누구에게나 따스히 내리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2005년까지 8권의 시집을 냈다. 지난해 20주년 기념 시집을 내기로 했다가 준비가 늦어져 올해 발간했다. 여기엔 10명이 각 10편씩 모두 100편의 시를 실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김해화 시인은 전국을 다니며 공사판 철근장이로 일한다. 그는 밀린 임금을 요구하다가 현장소장이 휘두른 물건에 맞아 숨진 동료를 추모하는 시를 썼다. ‘밤낮없이/너는 죽어버려서 떠날 수 없고/나는 살아 있어서 떠날 수 없는 공사장/누운 채 비에 젖는다//죽은 너는 좀 짧고/살아 있는 나는 좀 길다/같이 녹슨다’(‘산 철근이 죽은 철근에게’ 중) 간판장이로 일하는 김용만 시인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동생이다. 그는 전국으로 흩어진 여섯 남매 이야기를 시로 풀었다. ‘우리 여섯 남매/전국적으로 흩어져/보고 싶어도 살기 위해/그야말로 전국적으로 산다//(중략) 우리는 가난 때문에/뿔뿔이 흩어져/그야말로 전국을 점령했다’(‘전국적으로’ 중) 노동의 최전선에서 일궈낸 그들의 노동시는 어떤 의미일까. “일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느낀 기쁨과 슬픔, 보람, 아픔을 시로 쓰고 노래하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때 세상도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 겁니다.”(서정홍)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러분,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읽으면서 저의 낭독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 소설가 쓰지하라 노보루 씨(69)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수상작인 자신의 소설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을 일본어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한국 독자들은 낭독 목소리에 귀를 열고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눈으로 따라 읽었다. 행사장에 온 출판사 마음산책 박지영 편집자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작가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며 “낭독자가 지금 어떤 문장을 읽고 있는지 신기하게도 다 알 수 있는데 문학이기에 가능한 일 같다”고 말했다. 21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쓰지하라 씨와 함께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소설가 정이현(42), 에쿠니 가오리 씨(50)가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는 제목의 낭독회를 열었다. 한일문화교류회의(위원장 정구종)와 일한문화교류회의(위원장 가와구치 기요후미)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한일 문학가들의 교류가 이어져 양국 간의 넓고 큰 소통의 장이 열리길 바라는 자리였다. 지난해에도 일본 요코하마에서 쓰지하라 씨의 사회로 에쿠니 씨와 정 씨가 ‘말의 음률을 타고’를 주제로 낭독회를 열었다. 정 씨는 한국어로 소설집 ‘말하자면 좋은 사람’ 중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에쿠니 씨는 일본어로 나오키 상 수상작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 ‘생쥐 마누라’를 낭독했다. 참가 작가들은 한일 양국의 소통과 교류를 기대했다. 정 씨는 “문학은 서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외국인과도 닿을 수 있게 이어주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라고 말했다. 에쿠니 씨는 “문학이 통로라면 그 통로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란 생각을 했다. 소설을 읽으면 자신에게 들어가는 작은 길을 걷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했다. 한편 22일 오후 8시에는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한일 문화교류 ‘동행’ 공연이 열린다. 한국은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 이애주 씨의 ‘태평무’와 디딤무용단의 구정놀이,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강강술래 등을 선보인다. 일본은 중요무형문화재 종합지정 보유자 사쿠라마 우진 씨의 ‘노(能)’ 등을 준비했다. 정구종 위원장은 “한일 간 정치, 외교적인 냉기류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으나 문화교류는 스스럼 없이 두 나라 사이를 넘나들면서 정서의 공유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7월에 별세한 김종철 전 한국시인협회장의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문학세계사·사진)이 출간됐다. 유고 시집에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인 6월 22일 연세의료원 암병동에서 마지막까지 다듬은 유고시 ‘절두산 부활의 집’ 등 미발표시 37편, 발표했지만 시집으로 묶지 못한 시 43편 등 모두 80편의 시가 실렸다. 시인은 세상과 작별 준비를 하면서도 시집을 완성하는 데 힘을 다했다. 그는 서문에 “이것저것 끌어 모아 시집을 낼까 두렵다. 그래서 작은딸의 힘을 빌려 눈에 뜨이는 원고부터 힘겹게 정리했다”고 적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 씨는 “(김 시인이 30여 년간 추구해온) ‘못’ 시학의 정점이자 완결판에 근접했으며 영원한 이별을 통한 죽음과의 친화, 죽음 길들이기와 화해가 주된 내용”이라고 평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소설가 복거일(68)이 제17회 동리문학상, 시인 김명인(68)이 제7회 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복거일의 장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와 김명인의 시집 ‘여행자 나무’(문학과 지성). 동리·목월 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와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제정했다. 경주시와 경북도,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가 공동 주최를 맡고 있다. 상금은 각 7000만 원. 시상식은 12월 5일 경주시 The-K 경주호텔에서 열린다. 》 ▼ “생애 첫 문학상 즐겁고 고마워” ▼동리문학상 복거일“문학상은 처음 받아봅니다. 생각지도 못한 상이 오니까 참 즐겁네요. 높이 평가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소설가 복거일의 목소리가 크고 밝아졌다. 그는 “아무리 성스러운 것이라도 문학 앞에 수식어를 붙이지 말자고 생각했고 민족문학, 노동문학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복도 없었다”고 했다. 올해 출간된 수상작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는 앞서 나온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년), ‘보이지 않는 손’(2006년)에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완결작이다. 주인공 현이립은 30대 젊은 청년에서 말기 간암 판정을 받은 병든 노인이 됐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항암 치료를 받기를 거부한다. 복 작가도 사정이 똑같다. 그도 꼭 써야 할 작품을 쓰기 위해서 치료도 받지 않고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복 작가는 수상작을 ‘지식인 소설’이라고 불렀다. 그는 “주인공이 과학과 경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엔 주류 소설 요소를 잘 융합하고 싶었다. 독자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한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복 작가는 생전 동리 선생을 만나본 인연은 없지만 문학을 공부할 때 큰 영향을 받은 작가로 동리 선생을 꼽았다. 그는 “‘사반의 십자가’를 보면 선생은 토속적인 작가였지만 안목은 늘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국경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동리 선생은 반세기 전에 전범(典範)을 보이셨다”고 했다. 동리문학상 심사위원회(이어령 김지연 김주영 문순태 전영태)는 “‘모든 사람은 죽음이 끝이나 작가는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복거일은 이 작품을 통해 힘차게 선언한다”며 “몇 차례의 봄을 맞을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사내가 이 우주의 나이인 137억 년의 100억 곱절의 세월 뒤에 나올 일을 걱정하고 있다”고 평했다. ▼ “지훈 제자로 목월상 받아 기뻐” ▼목월문학상 김명인올해 목월문학상 수상자인 김명인 시인은 대학 4학년이던 1968년 5월 먼발치에서 박목월 시인을 바라봤다. 당시 목월은 그의 은사인 조지훈 시인 영결식에서 조시(弔詩)를 낭독했다. 김 시인은 “선생의 목소리가 하도 맑고 청아하고 뚜렷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지훈 선생의 제자로 목월 선생 이름의 상을 받게 되니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수상 시집인 ‘여행자 나무’는 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김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자 2012년 고려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 후 쓴 첫 시집이다. 그는 시집에 수록된 시 ‘살’에서 “말씀드리면 머지않아 내 살도 새털처럼 가벼워져/푸른 하늘에 섞이는 걸까?/털리는 것이 아니라면 살은 아예 없었던 것/이승에서 꿔 입는 옷 같은 것”이라고 썼다. 이태수 시인은 늙어가는 육신에 대한 사유를 담은 시에 대해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성찰하면서 오랜 연륜이 안겨준 원숙한 깨달음의 경지, 죽음(소멸)마저도 너그럽게 끌어안는 순응과 달관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30년째 살고 있는 집에 작은 집필실을 마련하고 걷고 읽고 쓰는 생활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는 “보다 웅숭깊고 투명해지는 세계가 펼쳐지길 바라고 있다”며 “돌은 길항하는 정서, 상충되는 모습인데 앞으로 내 시에서 통합해 보려고 한다”고 했다. 특색 있는 시집도 낼 계획이다. 그는 “정지용 선생의 ‘유리창’처럼 10행 안에 최대한 시적 분위기를 가두는, 서사 리듬 삶과 이미지가 집약되는 세계를 묶은 시집을 내년 초에는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목월문학상 심사위원회(신달자 문효치 신규호 이태수 정호승)는 “김명인의 시는 중후하면서도 섬세하다. 꾸준하고 성실한 정진을 거듭하면서 흐트러짐이 없는 지속성 속의 변모를 끊임없이 추구하는가 하면, 내면 탐색의 폭이 넓으면서도 치밀하다”고 평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마르지 않는 한국 문학의 샘’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을 추억하는 후배 소설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소설은 후배들에게 소설을 쓰게끔 충동을 불러일으켰고 좋은 소설가가 되게끔 자극했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다. 17일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제6회 이청준문학제 ‘내가 읽은 이청준’ 시간에 소설가 이승우(55), 이기호(42), 정용준(33) 등이 참가했다. ‘생의 이면’으로 해외 문학계의 뜨거운 찬사를 받은 이승우는 “나를 소설가로 만든 것이 이청준 선생”이라고 했다. 그는 이 선생과 같은 전남 장흥 출신이다. “저에게 쓰기에 대한 최초의 충동을 불러일으킨 소설은 이청준 선생님의 ‘나무 위에서 잠자기’입니다.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의 재미나 감동, 어떤 사상의 심오함이 아니라 그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동원하고 배치하고 설계하는 작가의 수고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승우는 1981년 첫 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당시 심사위원이 이청준 선생이었다. 그는 “편집부 직원에게 전해 들은바 이 선생이 내 소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며 “끈기 없는 내 성격상 그때 떨어졌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르니 내게 소설가란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라고 했다. 습작 시절부터 이청준의 소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공부했다. 그는 “글의 길이 막힐 때마다 선생의 소설을 펼쳐 읽으면, 신기하게도 막혔던 글의 길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러면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다시 쓰면서 최초의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바벨’을 쓴 소설가 정용준도 스승 이승우 소설가의 추천으로 ‘소문의 벽’을 읽게 됐다. 그는 “‘소문의 벽’을 읽고 소설이 인간을 다루고 인간의 삶을 탐구할 때 얼마나 강력해지는지 알았다. 좋은 소설에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모순이 있고 그 모순 속에 인간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기호는 이청준 연작소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에 대해 “기억과 망각의 가위눌림 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고자 분투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있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리얼리즘 소설, 후일담 문학이 득세하던 시기에 반대 방향으로 가려 했던 작가의 윤리 의식을 볼 수 있다”며 “소설은 내용이 아니라 문장이고, 새로운 태도나 내면을 만드는 것이 작가의 문장인데, 이 선생의 소설은 문장의 힘이 지면을 뚫고 나온다”고 했다.광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얇은 담배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성냥개비로 담배 가루를 파낸다. 깔아둔 종이판에 담배 가루가 흩어진다. 들리는 것은 고요함뿐. 탁자 옆에 앉아 우린 이미 한 대를 피웠다.”(6쪽) 그들이 피운 것은 마리화나(대마초)였다. 주인공 ‘나’는 이별을 통보하러 애인 ‘에바’를 찾아간다. 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애인이 건네준 마리화나를 입에 문다. 그러고 환각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소설은 그 환각을 불규칙적으로 줄바꿈하며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문장으로 옮겼다. “느낌은 내 안에 있고, 광경은 내 밖에, 그리고 이것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말해야 한다. 나는 너를 보고 있지만 너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볼 수 없는 리듬을 느낀다.”(39쪽) 헝가리어로 사랑을 뜻하는 ‘세렐렘(Szerelem)’의 저자 나더시 페테르(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헝가리의 대표 작가다. 그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된 것은 처음. 소설 읽기의 즐거움은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는 대리체험에 있다. 마리화나가 명백히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사이키델릭한 도취 상태에 빠져 거품처럼 부유하는 사랑의 실체를 포착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문학적 체험이 아닐까. 문학을 통해 맛보는 타락은 무죄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 발췌문에서 당신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폐위되어 감옥에 갇힌 왕이 이렇게 독백을 시작합니다. ‘내가 거하는 이 감옥을 세상에 어떻게 비교할지 곰곰이 궁리해 보았다. 세상은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이곳은 나 외에 어떤 생명체도 없으니 비교할 수 없구나.’”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2003년 죄수들에게 이런 문제를 냈다. 죄수 대부분은 짧게 휘갈긴 답을 제출했다. 그런데 살인죄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갇힌 래리 뉴턴은 달랐다. 종이 앞뒤로 꽉꽉 자신의 생각을 채웠다. “무(無)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거나 만족할 때까지… 사람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기뻐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즉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기도 합니다.” 빈민 출신이었던 저자는 자원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1983년부터 교도소에서 기초 문학 프로그램을 교육했다. 2003년부터는 시카고 시와 인디애나 주의 여러 교도소에서 셰익스피어를 강의했다. 특히 가장 위험한 죄수들을 독방에 장기간 격리 수용하는 ‘슈퍼맥스’에서 셰익스피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거기서 뉴턴을 만났다. 교도소에서 셰익스피어와 죄수가 만나는 풍경은 독특했다. 저자는 복도 가운데 의자에 앉고, 죄수들은 복도 양옆으로 나란히 붙은 독방 안에서 갇힌 상태로 토론했다. 셰익스피어를 읽고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 죄수들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일단 복수부터 생각했던 죄수들이 왜 자신이 복수하고 싶은지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죄수 20명은 그동안 교도소 내에서 600건의 범죄를 추가로 저질렀으나 참가 이후 2건으로 줄었다. 일부는 몇 년간 단 한 건의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뉴턴은 독방에 갇혀 매일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죄수였다. 뉴턴의 삶은 불우했다. 부모의 보살핌,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채 10세 때 절도죄로 소년원 생활을 시작했고, 17세 때 친구들과 총기로 대학생을 살해했다. 그는 ‘킬러 도그(살인견)’라 불리며 독방에서 매일 자살하거나 극악한 추가 범죄를 저질러 사형당할 생각에 몰두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만난 뒤 점차 바뀌었다. 문학박사의 꿈을 키우고 “다시는 살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저자와 함께 ‘죄수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전집 안내서’를 완성한다. 이 같은 셰익스피어 프로그램은 2003년부터 10년간 1000여 시간, 500여 회에 걸쳐 진행됐다. 범죄자만의 독특한 셰익스피어 해석은 재미를 준다. 맥베스가 덩컨 왕을 살해하는 장면을 읽고선 뉴턴은 이렇게 해석했다. “이 공포와 혼란과 불안이라니! 작가(셰익스피어)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마치 사람을 죽이려는 시도를 해봤거나, 살인하려는 순간에 그 공포와 극심한 불안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처럼요!” 무엇보다 뉴턴이 남긴 이 한마디가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귓가를 울렸다. “모든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누리고 살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들은 그저 무수한 자신들의 감옥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다자이 오사무는 천재 소설가였다. 그는 가짜 제국주의자였고 가짜 일본 공산당원이었으며 가짜 군인이었다. 그는 처와 연애와 창녀를 진짜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자살했다.”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73)는 2011년경 출판사 열림원 편집부에 일본 천재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를 정의한 짧은 글을 보냈다. 노작가는 오사무를 정말 좋아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그의 작품 선집을 내자고 제안했다. 2012년 본보와 인터뷰에서 “오사무가 유물론에 심취했다가 결국 신에 귀의한 점에서 나와 공통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출판사와 선집을 내기로 한 노작가는 뇌중풍으로 불편한 몸에도 직접 작품을 고르고 번역가를 섭외했다. 그는 당시 시대 상황을 잘 이해하는 번역자가 필요하다며 선배 소설가 이호철(82), 문학평론가 전규태(81)에게 번역을 맡겼다. 1930년대에 태어난 두 사람은 일본 소설을 원서로 읽은 세대. 전 평론가는 “오사무의 작품이 여러 번 번역됐지만 이번에 진짜 오사무를 만날 수 있도록 번역에 완벽을 기했다”며 “번역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섬세한 감수성과 스토리텔러로서의 천부적 재능을 흠뻑 느꼈다”고 평했다. 1909년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1936년 단편집 ‘만년’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인간실격’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를 오가며 고통 받다가 1948년 애인과 함께 투신자살해 생을 마감했다. 열림원은 최근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1939∼1941년 발표한 단편소설을 담은 ‘달려라 메로스’, 전후 몰락하는 일본 귀족을 다룬 ‘사양’, 여성 1인칭 시점으로 쓴 단편소설을 묶은 ‘여학생’ 등 3권을 출간했다. 내년 가을까지 ‘만년’ ‘인간실격’ ‘비용의 아내’ ‘석별’ ‘쓰가루’ ‘옛날이야기’ ‘사랑과 고뇌의 편지’를 더 내 모두 10권으로 완간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도상 작가(54)는 2005년 중학생이던 큰아들을 잃었다. 아들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혼으로 하나’였던 아들의 죽음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2012년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달았다. 그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쓴 소설이 최근 출간한 ‘마음오를꽃’(자음과모음·사진)이다. 정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아들을 잃고 몸소 겪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청소년에게 자신의 자살로 부모가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가정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자살을 결정하는 순간에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썼습니다.” 주인공 소년, 소녀는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살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소년 우규. 어머니를 ‘엄마느님’이라 부르며 과보호 속에 컸다가 친구들의 미움을 산 소녀 나래. 둘은 자살로 목숨을 끊고 ‘가운데 하늘’인 저승에서 다시 만난다. 이곳에서 세상의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뒤늦게 참회한다. 정 작가는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와 제주도 설화 ‘서천꽃밭’을 기본 얼개로 소설을 썼다. 제목 ‘마음오를꽃’은 서천꽃밭에 피는 환생의 꽃 중 하나. 뼈오를꽃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오를꽃을 먹어 육체를 완성하고 마지막에 ‘마음’을 만들어주는 마음오를꽃을 먹으면 인간계로 환생한다. “자살하면 이생을 다시 살아야 하는 형벌인 환생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잘 견뎌내는 힘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사진)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1940년 전북 고창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고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거쳐 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와 이화여대에서 후학을 지도했고,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과 세계기호학회 이사 등을 지냈다. 4·19세대인 고인은 대학 시절인 1963년 시인 최하림, 평론가 김현, 소설가 김승옥과 함께 한국 문단 최초로 한글세대의 등장을 알린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했다. 하숙집에서 합숙하며 산문시대를 만든 ‘문우(文友)’들은 훗날 한국 문단의 거목이 됐다. 1970년 평론가 김병익 김주연 씨 등과 계간 ‘문학과 지성’의 창간을 주도했고 1975년 출판사 ‘문학과 지성’ 설립에도 앞장섰다. 고인은 2006년 이화여대 정년퇴임을 계기로 한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대에 문학의 영토가 좁아질 수는 있겠지만 문학은 죽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며 문학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토로했다.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2006년)과 올해의 예술상(2006년), 프랑스 정부 문화훈장(1995년)을 받았다. 유족으로 용대(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용욱 씨(미국 뉴욕 맨해튼칼리지 토목공학과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8시. 02-2072-2091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매년 10월이면 고은 시인 등 한국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그리고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뀐다. 정작 세계 문학계에서는 한국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한국인들의 염원보다 낮게 본다. 어떻게 하면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까. 국내외 출판계와 한국문학번역원 전·현직 관계자들에게 수상 가능성이 있는 한국 작가와 선결 과제를 물었다. 》 ○ “한국 노벨문학상 2018년을 노려라” 한국문학번역원을 비롯해 전문가 집단은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로 10명 정도를 꼽았다. 1세대 후보군으로 고은(81) 황석영(71) 이문열(66)이 꼽혔고, 차기 후보군에 이승우(55) 은희경(55) 신경숙(51), 차차기 후보군에 김영하(46) 박민규(46) 한강(44) 김애란(34)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최소 요건인 ‘6과 6.6’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숫자 6은 6년 주기를 뜻한다. 1994년 이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시아권 작가는 오에 겐자부로(일본·1994년), 가오싱젠(중국·프랑스로 망명·2000년), 오르한 파무크(터키·2006년), 모옌(중국·2012년)으로 6년 주기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역대 노벨문학상 흐름을 보면 지역과 국가를 안배한다”며 “작품의 질은 기본이고 4, 5년간 꾸준히 요건을 채워 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10년간 수상자들의 평균 나이는 70세다. 이를 감안하면 2018년경 고은 황석영 이문열, 셋 중 한 사람에게 기회가 올 가능성이 높다. ○ 스웨덴어 번역 평균 6.6권을 채워라 두 번째 숫자 6.6은 최근 10년간 노벨상을 받은 작가들이 수상 전 스웨덴어 번역본을 낸 작품 수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모두 스웨덴 사람들이다. 모국어인 스웨덴어로 번역된 책에 더 눈길이 갈 뿐 아니라 스웨덴 내에서의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1960∼2004년 수상자들은 노벨상을 받기 전 평균 5권을 스웨덴어로 번역해 현지 출간했다. 스웨덴어 번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최근 10년간 그 수치는 6.6권으로 늘었다. 스웨덴어 번역본이 없는 상태에서 상을 받은 이는 그리스 작가 이오르고스 세페리아데스(조지 세페리스·1963년)와 오디세우스 엘리티스(1979년) 단 둘뿐이다. 한국 작가 중 6.6권에 도달한 이는 한 명도 없다. 문학상 수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고은 시인도 4권, 황석영 이문열 작가는 각각 2권이고, 차기 후보군인 이승우,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번역조차 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출간될 때마다 스웨덴어로 번역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된 작품도 중국이나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지금까지 스웨덴어 번역은 안데르스 칼손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 한국학과 교수와 그의 아내인 박옥경 씨의 작업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김윤진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본부장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제외하면 한국 소설을 번역할 현지 전문 번역가가 10명도 안 된다”며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된 작품을 스웨덴어로 번역하는 중역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문단과 교류 확대, 국내 문화 전체 질 업(UP) 아시아 지역 노벨상 수상 작가들은 수상 이전에 국제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고, 해외 문단과 활발하게 교류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계문학계의 헤게모니를 영미권이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프란츠 카프카 상, 세계환상문학 대상, 스페인예술문학 훈장, 카탈루냐 국제상 등을 수상했다. 유력한 후보인 중국 시인 베이다오도 뉴욕주립대 등에서 교수로 일하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수차례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은 그나마 고은 시인이 노르웨이 비에른손 훈장(2006년)을 받고 해외에서 시낭독회를 개최해 왔다. 스웨덴 한림원의 문학상 관계자를 만난 김주연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문학상 심사 관계자들은 한국 문학, 나아가 문화 수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민족문학적 사고를 철저히 버리고 인류 보편의 명제와 정서에 입각한 세계문학으로서 한국 문학을 꾸준히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윤종 기자}

‘그래픽 노블의 거장’ 프랑스 작가 자크 타르디(68)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출판사 ‘길찾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젊은 포로들의 참혹한 삶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포로수용소’(사진)를 펴냈다. ‘포로수용소’는 타르디 부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2012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작가의 최근작이다. 타르디의 부친은 1935년 19세 때 프랑스 전차병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4년 8개월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타르디는 흑백만화의 힘을 빌려 포로수용소에 갇힌 청춘들의 잔혹한 삶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고발한다. 타르디는 올 1월 열린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주요 이벤트 작가로 초청받았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상 거부 이유는 이랬다. “사상의 자유, 창작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정부를 비롯해 어떠한 정치세력이 주는 상도 받지 않겠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팔은 개뿔. 팔 하나 잃으면 잃는 거지 뭐. 팔 하나 잃는 것보다 더한 일도 있어. 사람한테는 팔이든 뭐든 두 개씩 있지만, 팔이든 뭐든 하나만 있어도 남자는 남자야. 개뿔 같은 소리. 그 얘긴 하고 싶지 않아.” 잠시 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직 그거는 두 개야.”(111쪽) 쿠바 키웨스트에서 낚싯배를 모는 바다 사나이 해리 모건. 그는 여름이면 낚시꾼을 배에 싣고 데리고 다니면서 돈을 번다. 여름 한 철 번 돈으로 1년 동안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어느 날 수고비를 모두 떼이는 사기를 당한다. 결국 생계를 위해 거절해왔던 밀수업에 손을 댔다가 총에 맞아 한 팔과 배까지 모두 잃는데…. “내 집에서 행복을 누릴 기회가 다시 있을까? 어째서 난 출발점보다 더 못한 곳으로 돌아왔을까?”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국내 초역 소설. 헤밍웨이가 1934년 단편소설과 1936년 후속편으로 발표한 중편소설을 1937년 한데 묶은 책이다. 소설은 시나리오로 각색돼 4번이나 영화화됐다. 1944년 당시 최고의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주인공 해리를 맡아 화제가 됐다. 당시 상대역이 훗날 보가트와 결혼한 로런 바콜이다. 삶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이 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93년 서른여섯 구효서 작가는 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신세대 작가로 불린 그는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에서 파격적인 글쓰기를 선보였다. 바코드 기호, 컴퓨터 화면을 소설 속에 그대로 옮기고 군대 사체검안서, 공문서, 계약서 형태로 글을 썼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선배 문인과 평론가들의 욕뿐이었다. 훗날 등단한 후배들이 “그 소설 정말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실험을 멈춘 뒤였다. 21년이 흘러 그도 내일모레면 환갑이다(정확히는 57세).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가 됐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그는 “장난, 유희, 도발 같은 파괴적인 엉큼한 취향이 내 안에 있었다. 항상 그것이 고개를 들려고 했는데 가장 노릇, 가장적 작가로서 의식이 있다 보니 늘 저 밑에 가려져 있었다”고 했다. 그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며 실험을 감행했다. 독자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서사, 읽는 맛을 돋우는 구수한 입담은 새 소설에 없다. 최근 출간된 소설 ‘타락’(현대문학)은 그의 대표작 ‘비밀의 문’ ‘랩소디 인 베를린’ 등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 서사는 납작하고 한 편의 정물화를 감상하듯 이미지가 풍성하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낯선 이국 땅 버스정류장에 선 ‘산’의 두 팔 위에 ‘이니’란 여인이 뚝 떨어진다. 둘은 교외의 오래된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사랑의 크기를 키우지도 않는다. 잘 씻지도 먹지도 않고 출생 이전 자궁으로 죽음으로 다가서려 한다. 이소연 평론가는 작품 해설에 “독자는 그 앞에 놓여 있는 작품과 더불어 한 작가가 구축해온 세계 자체가 와해되는 놀라운 광경을 필경 목도하고 만다”고 썼다. ―새로운 구효서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정통소설을 쓴 것을 후회하거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하고 싶은 방향이 생겼다. 작가란 무엇인지, 소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을 던졌는데, 나이가 드니까 조금 무뎌졌다. 남들이 알아주는 맛, 돈 맛…, 그것 달콤하잖아. 그런데 이제는 비겁하지 말고 솔직해보자, 문학과 일대일로 맞대면하자고 결심했다.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만 잘 팔린다. 솔직히 빨리 읽히지 않았다. “재밌으면 빠르게 읽히고, 공감과 감동도 빨리 오고, 더 많은 사람이 읽고, 그러면 책이 더 잘 팔리겠지. 하지만 거부하고 싶다. 내 소설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반영이었다. 이번엔 일부러 모호하게, 묘하게, 아슴아슴하게 만들었다. 소설에 구체적인 지명도 없고 캐릭터도 순수기호로만 남았다. 독자는 읽으면서 낯설고 이상해서 짜증 나서 책을 버릴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목적은 달성했다.” ―쉽게 안 써졌겠다. “일종의 ‘몰자각의 글쓰기’를 했다. 내 안의 자각, 자의식을 최소화하고 직관적으로 용인하려 했다. 주관을 최소화하면 소설이 어떤 무늬로 달라질까 궁금했다. 글 쓰는 속도가 빨라지면 어느새 옛날 습관처럼 쓰고 있었다. 그러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시 앉아서 쓰다가 습관이 나오면 멈추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다.” 인터뷰하던 날 작가는 멋스러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아들뻘이 입는 유행 타는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들과 옷을 돌려 입는다고 했다. “신체의 ‘조락(凋落)’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고목에서 새순이 나는 것처럼 회춘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옷맵시를 보니 엄살 같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