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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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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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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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움만이 예술일까… 안창홍 개인전 ‘화가의 심장’

    중견작가 안창홍(66)이 대형 부조 신작을 들고 개인전을 연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안창홍 개인전 ‘화가의 심장’에서는 ‘화가의 손’ 3점과 ‘화가의 심장’ 1점, 회화 소품 등 26점이 전시된다. 지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대형 부조는 가로세로 2m가 넘는다. 작가가 물감 찌꺼기를 버리던 쓰레기통을 확대한 모습이다. 캐스팅으로 형태를 제작하고 작가가 직접 채색했다. 가운데 놓인 심장과 백골이 된 팔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암시한다. 작가는 “유사 금박을 입힌 부조와 잿빛 부조의 대조는 성공한 예술가와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의 삶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1층 입구에 전시된 푸른 배경 위 ‘화가의 손’은 심지어 24k 금박을 입혔다. 2층 전시장에는 회화 소품 ‘이름도 없는…’이 전시된다. 작가는 이들이 “이름만 없는 이들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묻혀버린 익명의 인물들”이라고 설명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당해 기억 속에 사라진 소시민들을 표현했다고 한다. 1970년대 말부터 선보인 그의 작품은 거침없고 도발적인 시각 언어로 주목을 받았다. 권위적인 사회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군중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 ‘가족사진’ 연작, ‘49인의 명상’ 등이 대표적이다. 일상 속 평범한 소시민의 개성을 생생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드러낸 ‘베드 카우치’ 연작도 있다. 이런 과거 작품과 비교했을 때 신작은 다소 장식적 측면이 강하다. 삶의 현장으로 향했을 때 폭발적 에너지로 꿈틀댔던 시선이 작업실로 향하자 얌전해진 듯한 인상이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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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의 화가’ 이경순 개인전

    화가 이경순(92)이 서울 강남구 갤러리오에서 30일부터 6월 12일까지 개인전 ‘데코룸, 밀고 당기는 꽃의 리듬’을 연다. 라일락, 나리꽃 등을 그린 미공개작 중심으로 구성했다. 꽃이 담긴 화병과 탁상, 창문 너머 펼쳐지는 풍경의 조화에서 느낀 감동을 표현했다. 국내 1세대 원로 작가인 이경순은 1953년 2회 국전부터 출품했고 이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추천작가로도 참가했다. ‘한 아름 장미’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전시 이후 개인전은 근 10년 만이다. 이 화백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이를 화폭에 담고 나누며 살아온 인생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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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각형 평면 사진을 ‘구’형태 입체로 구현하다

    “사진의 프레임 밖 공간을 개념적으로 드러낼 순 없을까. 이런 고민 끝에 ‘구’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독일 출신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베른트 할프헤르(55)의 개인전 ‘Same same but different’가 서울 종로구 갤러리나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구(球)의 형태에 사진을 담은 ‘Sphere(구)’와 동영상의 정지 화면을 평면에 나열한 ‘Stories(이야기들)’ 연작으로 구성된다. 15일 전시장에서 만난 할프헤르는 ‘구’ 시리즈가 1994년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360도 카메라는 물론이고 파노라마 촬영 기법도 없었습니다. 완전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서로 연결시켜 작업했어요. 데이비드 호크니의 ‘포토 콜라주’와 비슷한 방식이었죠.” 독일 울름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과 물리학을 함께 배워 공학에도 관심이 많다. 온전한 구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사진이 빈틈없이 이어지도록 붙인 다음 에폭시 코팅을 수차례 덧씌우는 ‘구’ 작품 제작에 통상 한 달이 소요된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공예적 측면이 강하다. 전시 제목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점을 염두에 뒀다. 그리고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 ‘성스러운 에밀리’의 구절 ‘장미는 그냥 장미이다(Rose is a rose is a rose)’를 차용했다. 그는 “온라인에 수많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 속에서도 다른 뉘앙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미지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할프헤르는 2011년부터 중앙대 미술학부 조소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년 처음 여행으로 한국을 찾은 뒤 2000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등으로 독일과 한국을 오갔다. 한국에 정착하게 된 것은 2006년 경기 파주 하제마을의 예술가 레지던시에 머물면서부터다. “정치적, 사회적 작품을 선호하는 독일과 달리 한국에선 개념적인 측면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정치적 이슈를 다루지만 간접적인 방식을 한국에선 더 좋게 보는 것 같습니다.” 또 영상 스틸컷을 나열한 ‘이야기들’ 시리즈는 동영상의 시간 개념을 드러내고 싶어서 만들었다. 할프헤르는 “카메라를 브러시처럼 사용해보고 싶었다. 다만 특정한 개념을 겨냥하기보다 우연히 나오는 훌륭한 이미지를 좋아해서 그런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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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상처, 올바른 사회를 위한 재료로 써야” 한반도평화나눔포럼 기자회견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의 비핵화 협상 과정을 아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20일 서울 중구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2019 한반도평화나눔포럼’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구스만 카리키리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부의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북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까운 사이인 그는 “몇 달 전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공식 초청은 분명 없었으며 현재도 준비 모임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독일 출신인 요제프 클레멘스 주교(전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차관)는 “한 민족이었던 독일이 합쳐지길 열망하고, 통일이 되는 과정을 직접 겪었다”며 “아무리 상처가 깊거나 실망이 있어도 멀리 보고 하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치와 화해”라고 말했다. 헝가리 에스테르곰-부다페스트 대교구장인 에르되 페테르 추기경은 “깊이 상처받은 피해자는 가해자가 용서를 청하지 않아도 먼저 용서하라는 불림을 받는다”며 “사회의 불의를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와 교훈을 올바른 사회를 건설하는 재료로 써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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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울한 선율-침울한 스토리… ‘우울함’에 빠져들다

    “여기 혹시 빌리 아일리시 주황색 카세트테이프 있어요? 와, 여기 있다!” 17일 서울 마포구의 음반 매장 ‘도프 레코드’. 한 고교생이 들어오더니 아일리시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자마자 계산대에 들이밀었다. 18세의 아일리시는 올 들어 가장 뜨겁게 떠오른 신인 팝스타다.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찍더니 노래 ‘bad guy’는 멜론 등 국내 음원차트 10위 안까지 치고 올라왔다. 팬 충성도의 척도인 실물 음반 판매량도 압도적이다. 김윤중 도프레코드 대표는 “‘보헤미안 랩소디’ 이후 퀸 열풍을 아일리시가 이어받았다. 카세트테이프만 200장 가까이 팔렸고 LP레코드와 CD 판매량도 올 상반기 압도적 1위”라고 했다. 그는 “구매자의 절대다수가 10대로, 그들이 이렇게 어두운 음악에 열광하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몽유병, 잔혹극, 공포물을 뒤섞은 음악과 영상이 아일리시의 전매특허다. 서브컬처(주변부 문화) 마니아의 전유물이던 음울한 콘텐츠, 이른바 ‘글루미(gloomy) 콘텐츠’가 주류 문화계를 점령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제2의 세기말 최고 흥행을 기록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드라마 ‘왕좌의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리즈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이 작품들은 어두운 분위기의 화면, 영웅들의 잇따른 참패나 죽음으로 블록버스터로서는 이례적인 음울함으로 도배됐다. 일부 관객들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봤다가 더 침울해졌다”고 호소한다. ‘킹덤’ ‘블랙미러’ ‘기묘한 이야기’ ‘버드박스’ 등 기괴하고 어두운 콘텐츠를 내세운 넷플릭스의 대중화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다. 팝 음악계에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커트 코베인(너바나)이 대표한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열풍 이후 자기 파괴적 음악이 이만큼 대중적 열광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글루미 콘텐츠는 자기 과시와 힘자랑 이미지가 세던 힙합도 접수했다. 지난해 요절한 래퍼 엑스엑스엑스텐터시온이 대표적이다. 그의 곡 ‘SAD!’는 스포티파이 단일 곡 일간 스트리밍 역대 최고 기록(약 1040만 건)을 갈아 치웠다. 강일권 대중음악 평론가는 “요즘 대세인 내면의 어두움을 담은 이모 랩(emo rap)은 아예 자살충동, 약물중독, 패배감, 우울증이 주요 소재가 됐다”며 “2017년 래퍼 릴 핍, 2018년 엑스엑스엑스텐터시온이 실제로 비극적 죽음을 맞으며 10, 20대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고 했다. 영국의 BBC와 텔레그래프, 미국의 바이스 등도 ‘다크 팝’ ‘테러 팝’ 같은 용어를 쓰며 ‘팝은 왜 점점 더 우울해지는가’ 같은 분석 기사를 앞다퉈 내고 있다. X세대와 Z세대의 연결고리를 찾기도 한다. 밝고 힘찬 댄스 팝이 점령한 듯 보이는 국내 음악계에서는 신세대 R&B 가수들이 이런 조짐을 보인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수민, 수란, 제이클레프 등 음악 팬들이 열광하는 신진들의 음악에 어둡고 축축하고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관통한다”고 했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제이클레프의 앨범 타이틀곡은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이었다.○ 냉소, 절망… 디스토피아적 심리 발현 직장인 김아름 씨(32)는 얼마 전 서점에 갔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만화 ‘기분이 없는 기분’(창비)을 구매했다. 김 씨는 “주인공 부친의 고독사 이후 우울감을 다룬 내용에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때로는 ‘괜찮아질 거야’ ‘힘내’란 말조차 작은 폭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성피로처럼 우울감에 빠져 있었는데 고개를 푹 숙인 주인공의 모습부터 빨려들었다”고 했다. 성인은 물론이고 아동 출판 시장에서마저 죽음을 다룬 ‘3일 더 사는 선물’(씨드북), 가정폭력 문제를 짚은 ‘아빠의 술친구’(씨드북) 같은 작품이 속속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음울함에 대한 열광은 여러 분석을 낳는다. 밝고 예쁘장한 것들로만 가득한 인스타그램 세상에 대한 피로와 상대적 허탈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추론도 나온다. 어두운 사회상을 그대로 비추는 것뿐이라는 일반론도 세다. 미묘 편집장은 “남들의 불행을 보며 이를 관망하는 자신의 처지를 즐기는 심리도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무한 생존경쟁 구도가 더 고착됐다. ‘더 이상 메시아는 없다’는 절망감이 영웅에 대한 냉소, 디스토피아적 사고로 나온 것 같다. 밝은 쪽에서는 소확행과 워라밸 추구로, 어두운 쪽으로는 글루미 콘텐츠 붐으로 발현한 셈”이라고 분석했다.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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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 다룬 드라마 영향 자살률 증가?… 美선 경고 문구-영상

    우울하고 어두운 ‘글루미 콘텐츠’가 보는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까? 그렇다면 그 영향은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이미 미국에서는 이런 콘텐츠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를 둘러싼 ‘자살 조장’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9일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루머의…’가 공개된 뒤 청소년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파장이 일었다. 연구는 드라마가 공개된 2017년 4월 미국의 10∼17세 청소년 자살률이 28.9%나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와 자살률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힌 것은 아니며, 다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는 단서가 달렸다. 그러나 드라마의 직접적 묘사를 지적해 온 이들은 넷플릭스가 ‘무책임했다’고 비판했다. 제이 애셔의 2007년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루머의…’는 주인공 해나 베이커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설정의 드라마다. 10대 소녀인 그는 자신이 목숨을 끊은 13가지 이유를 테이프에 녹음해 남긴다. 해나의 친구와 가족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하나씩 추적하며 타인의 고통에 무심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2008년 개봉한 영화 ‘다크 나이트’도 악역 ‘조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부모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15세 관람가로 개봉한 영국에서는 영화등급위원회 사상 가장 많은 컴플레인을 받았다. 조커의 사이코패스 같은 성격과 폭력성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였다. 거센 항의에 국회의원도 지지 성명으로 동참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의식해 넷플릭스 측은 ‘루머의…’의 두 번째 시즌을 공개한 뒤부터 첫 에피소드에 경고 문구와 영상을 삽입했다. 영상에는 출연진이 등장해 “나는 연기자이며 이 드라마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그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픽션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심리적 이슈가 있다면 시청하지 않길 권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지역 상담소나 홈페이지를 참고하라”고 직접적으로 안내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출연진이 학교 폭력에 관한 내용을 상담하는 토크쇼도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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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골-오물 바라보며 힐링… 명상 화두 기획전 ‘멈춤과 통찰’

    몸은 예술에서 끊임없이 상기되는 주제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역사를 몸으로 쓰다’를 주제로 한 기획전이 열렸고, 일민미술관도 작가의 몸이 겪은 역사를 강조한 ‘불멸사랑’전을 최근 열었다. 현실이 아닌 관념을 생각했던 흐름을 거부하고 일상의 몸과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수에서는 명상을 화두로 한 기획전 ‘멈춤과 통찰’이 열리고 있다. 전시 기획자 변홍철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명상 수행법을 예술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 이야기는 김용호, 서고운, 이피, 최선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장에서 눈길을 끄는 건 서고운의 작품이다. 동물의 사체나 해골 등 죽음의 이미지가 가득한 그의 회화는 공포와 불안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인체가 부패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담은 ‘사상도’는 일본의 불화 ‘구상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구상도’는 백골을 보며 몸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에 다가가는 ‘백골관 수행’을 바탕으로 한다. 최선의 회화는 오물, 폐수 등을 재료로 활용했다. 잉크를 입으로 불어 패턴을 만든 ‘나비’는 호흡을 활용했다. 하수 위의 기름이나 폐수의 패턴을 그대로 형상화한 ‘오수회화’는 색을 달리해 한눈에 오수라는 걸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기획자는 이것이 원효의 ‘일체유심조’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제단화처럼 그려진 이피의 ‘난 자의 난자’는 작가가 자신의 몸에 온전히 포커스를 둔다.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의 형상 좌우로 몸속에 고인 작가의 환상과 희망, 절망이 풍선처럼 줄줄이 달려 있다. 사진작가 김용호의 ‘피안’은 소금쟁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연잎을 담았다. 변홍철은 “‘나는 영적이나 종교적이진 않다(I am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명상 자체가 이슈가 되고 있다”며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감기처럼 흔한 요즘, 멈춤과 호흡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데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6월 1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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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소, 절망’ 콘텐츠 시장은 제2의 세기말? 글루미 콘텐츠 붐

    “여기 혹시 빌리 아일리시 주황색 카세트테이프 있어요? 와, 여기 있다!” 17일 서울 마포구의 음반 매장 ‘도프 레코드’. 한 고교생이 들어오더니 아일리시의 카세트를 발견하자마자 계산대에 들이밀었다. 18세의 아일리시는 올 들어 가장 뜨겁게 떠오른 신인 팝스타다.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찍더니 노래 ‘bad guy’는 멜론 등 국내 음원차트 10위 안까지 치고 올라왔다. 팬 충성도의 척도인 실물 음반 판매량도 압도적이다. 김윤중 도프레코드 대표는 “‘보헤미안 랩소디’ 이후 퀸 열풍을 아일리시가 이어받았다. 카세트테이프만 200장 가까이 팔렸고 LP레코드와 CD 판매량도 올 상반기 압도적 1위”라고 했다. 그는 “구매자의 절대다수가 10대로, 그들이 이렇게 어두운 음악에 열광하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몽유병, 잔혹극, 공포물을 뒤섞은 음악과 영상이 아일리시의 전매특허다. 서브컬처((Sub-Culture·주변부 문화) 마니아의 전유물이던 음울한 콘텐츠, 이른바 ‘글루미(gloomy) 콘텐츠’가 주류 문화계를 점령하고 있다.●콘텐츠 시장은 제2의 세기말 최고 흥행을 기록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드라마 ‘왕좌의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리즈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이들은 어두운 분위기의 화면, 영웅들의 잇따른 참패나 죽음으로 블록버스터로서는 이례적인 음울함으로 도배됐다. 일부 관객들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봤다가 더 침울해졌다”고 호소한다. ‘킹덤’ ‘블랙미러’ ‘기묘한 이야기’ ‘버드박스’ 등 기괴하고 어두운 콘텐츠를 내세운 넷플릭스의 대중화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다. 팝 음악계에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커트 코베인(너바나)이 대표한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열풍 이후 자기 파괴적 음악이 이만큼 대중적 열광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글루미 콘텐츠는 자기 과시와 힘자랑 이미지가 세던 힙합도 접수했다. 지난해 요절한 래퍼 엑스엑스엑스텐터시온이 대표적이다. 그의 곡 ‘SAD!’는 스포티파이 단일 곡 일간 스트리밍 역대 최고 기록(약 1040만 건)을 갈아 치웠다. 강일권 대중음악평론가는 “요즘 대세인 내면의 어두움을 담은 이모 랩(emo rap)은 아예 자살충동, 약물중독, 패배감, 우울증이 주요 소재가 됐다”며 “2017년 래퍼 릴 핍, 2018년 엑스엑스엑스텐터시온이 실제로 비극적 죽음을 맞으며 10, 20대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고 했다. 영국의 BBC와 텔레그라프, 미국의 바이스 등도 ‘다크 팝’ ‘테러 팝’ 같은 용어를 쓰며 ‘팝은 왜 점점 더 우울해지는가’ 같은 분석 기사를 앞 다퉈 내고 있다. X세대와 Z세대의 연결고리를 찾기도 한다. 밝고 힘찬 댄스 팝이 점령한 듯 보이는 국내 음악계에서는 신세대 R&B 가수들이 이런 조짐을 보인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수민, 수란, 제이클레프 등 음악 팬들이 열광하는 신진들의 음악에 어둡고 축축하고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관통한다”고 했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제이클레프의 앨범 타이틀곡은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이었다.●냉소, 절망…디스토피아적 심리 발현 직장인 김아름 씨(32)는 얼마 전 서점에 갔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만화 ‘기분이 없는 기분’(창비)을 구매했다. 김 씨는 “주인공 부친의 고독사 이후 우울감을 다룬 내용에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때로는 ‘괜찮아질 거야’ ‘힘내’란 말조차 작은 폭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성피로처럼 우울감에 빠져 있었는데 고개를 푹 숙인 주인공의 모습부터 빨려들었다”고 했다. 성인은 물론 아동 출판 시장에서마저 죽음을 다룬 ‘3일 더 사는 선물’(씨드북), 가정폭력 문제를 짚은 ‘아빠의 술친구’(씨드북) 같은 작품이 속속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음울함에 대한 열광은 여러 분석을 낳는다. 밝고 예쁘장한 것들로만 가득한 인스타그램 세상에 대한 피로와 상대적 허탈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추론도 나온다. 어두운 사회상을 그대로 비추는 것뿐이라는 일반론도 세다. 미묘 편집장은 “남들의 불행을 보며 이를 관망하는 자신의 처지를 즐기는 심리도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무한 생존경쟁 구도가 더 고착화됐다. ‘더 이상 메시아는 없다’는 절망감이 영웅에 대한 냉소, 디스토피아적 사고로 나온 것 같다. 밝은 쪽에서는 소확행과 워라밸 추구로, 어두운 쪽으로는 글루미 콘텐츠 붐으로 발현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두운 ‘글루미 콘텐츠’ 청소년에 악영향, “무책임하다” 논란 일자… ▼우울하고 어두운 ‘글루미 콘텐츠’가 보는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칠까? 그렇다면 그 영향은 어떻게 조정해야할까. 이미 미국에서는 이런 콘텐츠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를 둘러싼 ‘자살 조장’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9일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루머의…’가 공개된 뒤 청소년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파장을 일었다. 연구는 드라마가 공개된 2017년 4월 미국의 10~17세 청소년 자살률이 28.9%나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와 자살률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힌 것은 아니며, 다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는 단서가 달렸다. 그러나 드라마의 직접적 묘사를 지적해 온 이들은 넷플릭스가 ‘무책임했다’고 비판했다. 제이 애셔의 2007년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루머의…’는 주인공 해나 베이커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설정의 드라마다. 10대 소녀인 그는 자신이 목숨을 끊은 13가지 이유를 테이프에 녹음해 남긴다. 해나의 친구와 가족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하나씩 추적하며 타인의 고통에 무심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2008년 개봉한 영화 ‘다크 나이트’도 악역 ‘조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부모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15세 관람가로 개봉한 영국에서는 영화등급위원회 사상 가장 많은 컴플레인을 받았다. 조커의 사이코패스 같은 성격과 폭력성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였다. 거센 항의에 국회의원도 지지 성명으로 동참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의식해 넷플릭스 측은 ‘루머의…’의 두 번째 시즌을 공개한 뒤부터 첫 에피소드에 경고 문구와 영상을 삽입했다. 영상에는 출연진이 등장해 “나는 연기자이며 이 드라마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그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픽션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심리적 이슈가 있다면 시청하지 않길 권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지역 상담소나 홈페이지를 참고하라”고 직접적으로 안내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출연진이 학교 폭력에 관한 내용을 상담하는 토크쇼도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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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인간과 다른 모습의 문어… 어떻게 높은 지능 갖게 됐을까

    구리가 들어있는 문어의 피는 청록색이다. 또 단단한 곳이 거의 없이 신경질로만 이뤄진 문어의 몸은 눈보다 조금 더 큰 구멍은 거의 모두 통과할 수 있다. 정해진 형체가 없어 흐물흐물한 이 독특한 생명체는 인간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어도 인간처럼 의식을 갖고 있다. 문어의 높은 지능은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문어는 실험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수조의 하수구를 막아 사방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하고, 연구원을 향해 물을 뿌리기도 한다. 또 냉동식품을 먹이로 주자 어떤 문어는 연구원을 향해 보란 듯 먹이를 하수구에 던져버린다. 저자와 문어의 만남은 2009년 호주 동부의 푸른 바닷속에서 이뤄졌다. 조가비가 산더미처럼 쌓인 이곳에 문어들의 집단 서식지가 있었다. 여기서 만난 문어와 갑오징어들은 새로운 대상에게 왕성한 호기심을 보였다. 어떤 개체는 다리로 저자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헤엄쳐 다니기까지 했다. ‘옥토폴리스’라고 명명한 이곳에서 경험한 문어와의 만남과 직접 촬영한 사진을 저자는 사고 실험과 곁들여 제시한다. 이를 통해 인간과 정반대의 모습인 문어가 어떻게 지능을 갖게 됐는지 진화론과 철학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 결과 깨닫게 되는 건 겸허함이다. 정신과 신체를 이원론적으로 떼어놓고, 정신은 인간만이 신에게 받은 특권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가. 언어가 없어도 동물들은 사람처럼 얼굴을 기억하고, 인과 관계를 유추하며, 사고에 따라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능력은 뉴런과 신체의 발달, 즉 몸의 진화를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다. 바다는 많은 생명이 의식을 갖게 된 기원이다. 이런 바다를 무한정 주어진 선물로 여겼던 인간에 의해 바다가 망가지고 있다. 산소가 없어 생명이 살 수 없는 ‘데드존’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을 갔더니 비닐봉지가 발견됐다는 우울한 뉴스에 더 많은 인간이 죄책감을 느끼길 바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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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자 “정체성의 혼란 겪으며 나만의 새전통 만들어”

    “마고할미 나가신다!” 10일 오후 베니스(베네치아) 비엔날레가 한창인 자르디니 공원. 둥둥대는 장구 소리와 우렁찬 한국어에 놀란 군중이 길을 비켜선다. 관객이 물러나 즉흥적으로 생긴 공간에 무용가 5명이 퍼포먼스를 벌이기 시작했다. 한국계 캐나다인 제이디 자(36·차유미·사진)의 ‘마고할미’ 작품이었다. 자는 랠프 루고프(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와 에런 세자(델피나파운데이션 디렉터)가 기획한 ‘Meetings on Art’에 초청받았다. 8일부터 12일까지 매일 선보인 그의 작품은 마고할미, 탈춤 등 한국적 전통을 서양적 이미지와 결합했다. 그 결과 한국도 서양도 아닌 ‘차유미’만의 새로운 전통이 탄생했다. 현지에서 만난 그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충분히 캐나다인도, 한국인도 아닌’ 어색한 위치에 있다고 느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늘 불안했죠. 정해진 국가적 정체성을 따르기보다 나만의 정체성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옷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녀의 작업은 스케이트보더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천 조각을 기워 붙이는 패치워크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작업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이것이 ‘보자기’와도 연결되며, 여러 문화를 혼합하는 이민자의 정체성과도 비슷하다고 봤다. 그는 “쓰고 남은 천으로 만드는 ‘보자기’의 형태와, 여러 사람의 협동으로 제작되는 방식이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녀가 만든 새로운 전통에선 여성이 중심이다. 거인인 데다 힘이 장사인 여신 ‘마고할미’가 작품의 중심에 선 이유다. 그 자신도 한국인 어머니와 이모 4명의 강인한 모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편 강인한 여성을 그린 ‘마고할미’ 이야기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 안타깝다고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 황혜숙이 마고할미를 연구한 ‘마고웨이’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마고할미를 세계 보편적 창조신으로 해석한 책을 보고, 서구 남성 중심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가 가능할 거라고 봤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단순한 어린이용 동화로만 소비된다니 아쉬워요.” 누군가가 정해준 정체성이 아닌, 주도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만들어가는 그의 작업은 디아스포라뿐 아니라 불안한 시대를 사는 모든 현대인에게 용기를 준다. 이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 영국 서펜타인갤러리, 헤이워드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베니스를 시작으로 더 많은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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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면에 내세운 젠더 이슈… 대형 영상-음악 ‘관객 압도’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장애여성극단 연출가, 드래그 킹(남장 여성)….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영상이 전시 공간을 채운다. 3개 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영상 속 등장인물, 빠른 템포의 음악과 커다란 소리가 관객을 압도한다. 마치 이곳에서만큼은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듯하다. ‘여성 국극’을 조명해 온 정은영 작가(45)의 작품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이다. 제58회 베니스(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 11일 공식 개막했다. 김현진 예술감독이 전시를 총괄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가 커미셔너를 맡은 한국관의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남화연(40),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작가(39)가 참여해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 되살아난 여성 서사 한국관의 주제는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을 차용했다. ‘파친코’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으로 살아야 했던 ‘자이니치(재일동포)’의 비극을 그렸다. 반면 한국관은 ‘역사의 실패’를 젠더 이슈로 한정하고, 역사 속 잊혀진 여성과 소수자의 구체적 사례를 연구해 되살렸다. 정은영은 여성 국극의 현대적 형태를, 남화연은 최승희의 국제적 면모(반도의 무희)를, 제인 진 카이젠은 바리 설화의 재해석(이별의 공동체)을 소재로 했다. 김 감독은 “서구와 남성 중심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한층 더 풍요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관은 모든 작가의 작품이 영상이었다. 한국관은 1995년 마지막으로 자르디니 공원에 들어선 탓에 공간이 협소하다. 이에 작품들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헤드셋과 가벽을 적절히 활용한 공간 배치가 눈길을 끌었다.○ 국제전, ‘분열의 긍정’ 총감독 랠프 루고프가 기획한 국제전은 사뭇 결이 달랐다. 한국관이 철저히 한쪽의 입장에서 역사의 복권을 주장했다면, 국제전은 한 사안을 두고도 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파생되는 시각을 보여줬다. 기후 변화, 난민, 소셜미디어, 인종 문제 등 개인의 욕망이 폭발하고 정치적 요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분열’ 자체가 축복이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우선 참여 작가 79명 모두가 전시장 두 곳(아르세날레, 자르디니)에 각기 다른 형태의 작품을 설치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 결과 한 작가라도 공간과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 언어를 선보일 수 있었다. 영국 작가 에드 앳킨스가 아르세날레에서는 가상 캐릭터를 활용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자르디니에서는 자신을 타란툴라로 형상화한 회화를 전시하는 식이었다. 두 전시장의 입구를 양 갈래로 나눈 공간 구성도 ‘분열’을 형상화했다. 아르세날레는 두 인물이 서로를 노려보며 건배를 하는 조지 콘도의 ‘더블 엘비스’를 중심으로 입구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자르디니 전시관도 앙투안 카탈라의 설치 ‘It‘s Over’의 좌우로 난 복도 형태의 입구를 관람객이 선택해 입장한다. 한국 작가 이불과 강서경의 작품도 국제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불은 남북의 이데올로기 갈등 극복을 기원하는 듯한 기념비 ‘오바드V’를, 강서경은 정간보(井間譜), 화문석 등 한국 전통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치 연작을 선보였다.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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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 해변으로 탈바꿈한 해군 박물관

    베니스 해군 박물관의 한 공간이 인공 해변으로 탈바꿈했다. 2층 난간으로 들어서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해변에는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오페라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상적인 고민을 털어놓던 오페라는 조금씩 심각한 주제를 노래한다. 기후 변화를 ‘반오페라’의 형태로 풀어낸 리투아니아 국가관의 작품 ‘태양과 바다(마리나)’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됐다.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11일 공식 개막식 겸 시상식에서 리투아니아관에 최고상을 수여했다. 리투아니아관은 루치아 피에트로이우스티(영국 서펀타인갤러리 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고, 작가 루질레 바르즈드지우카이테, 바이바 그라이니테, 리나 라펠리테가 참여했다. ‘태양과 바다’는 시각 예술은 물론이고 연극, 음악, 문학의 형태를 결합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해변의 즐거운 풍경과 아름다운 노래가 관객을 부담 없이 끌어당겼고, 이후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를 제시한 점이 돋보였다. 최근 각 국가관의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서 기업의 후원이 늘어나는 가운데,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제작비를 모금한 것도 눈에 띄었다. 벨기에관은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몬도 카네’(기괴한 영상을 모아 문명사회의 그늘을 보여준 1962년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제로 한 벨기에관 역시 연극적 요소가 두드러졌다. 제빵사, 화가, 음악가 등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마네킹들이 시간에 따라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 관객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다. 예술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만드는 경향은 ‘인기 국가관’들의 특징이었다. 살아있는 새와 피리 부는 소년, 문어 배를 형상화한 영상 전시관 등 초현실적이면서 시적인 공간 구성이 돋보였던 프랑스관도 관객들이 길게 늘어서 2시간 동안 대기해야 볼 수 있었다.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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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가깝고도 먼 사이, 가족이란 무엇인가

    “경찰서입니다. 아버님이 사망하셨어요. 3, 4주 된 것 같습니다.” 30대 혜진은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따로 살던 아버지가 ‘고독사’했다는 소식.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놀랄 만큼 기계적이다. 장례를 치러야 하나, 언니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나…. 그녀는 덤덤하다. 슬픔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태도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다.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다단계에 빠져들며 방황한 아버지는 그녀에게 가정불화의 원인이다. 신용불량자로 사업을 할 수 없으니 명의를 빌려 달란 말을 거절한 뒤로 아버지는 연락이 두절됐다. 그런 아버지가 쓸쓸히 사망했지만 혜진은 슬퍼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 ‘기분이 없는 기분’이 된다. 가부장제는 아버지에게 권위를 줬지만 동시에 책임마저 모두 그에게 돌렸다. 그 짐을 감당하지 못한 아버지와, 그의 실패를 원망하는 딸 모두가 피해자다. 사실은 아버지도 삶의 모든 순간이 처음이고, 실패를 극복해내지 못할 수 있는 인간인데. 아버지를 늘 가장으로만 상정하는 가부장제는 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받아들이기를 가로막는다. 급속도로 가치관이 변화한 한국 사회.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저자의 경험에 비춰 솔직하게 그린 만화다. 혜진은 상담을 통해 어렵사리 다정했던 아빠의 모습을 떠올린다. 온갖 어려움에도 무엇이 가족을 지탱해주는 것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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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앤드루 숀 그리어 “소소한 이야기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퓰리처상 100년 만의 가장 과감한 선택.’ 지난해 소설 ‘레스’의 퓰리처상 픽션 부문 수상은 미국 문단을 들썩이게 했다. 코맥 매카시 같은 무거운 주제를 선호하던 퓰리처가 읽는 내내 웃음 터지는 코믹 소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퓰리처의 ‘깜짝 선택’은 소소한 이야기나 유머를 경시하는 비평의 권위적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럴 때가 됐다”, “이런 소설을 더 보고 싶다”는 평단의 환영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2일 e메일로 만난 ‘레스’의 작가 앤드루 숀 그리어(49)는 “소소한 이야기의 힘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고 말했다. “크고 진지한 주제의 소설은 읽는 사람에게 왕이나 정치인, 때론 살인자나 신을 쳐다보게 만들어요. 작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야기했다. “유럽 문학의 걸작인 프루스트의 책에선 평범한 디너파티, 오랜 정원 산책 외엔 별일이 일어나지 않죠.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내용도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가는 장면뿐이에요. 그럼에도 이 소설은 제가 아는 어떤 것보다 인간의 진실을 가장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 ‘레스’에서도 멋지거나 웅장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레스는 실연의 아픔을 끌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겪는다. 그리어에게 ‘왜 그렇게 주인공을 힘들게 했느냐’고 물었다. “하하. 세상엔 이보다 더 힘든 일이 많다는 건 인정하시죠? 그러나 제가 주인공에게 굴욕적인 경험을 차례차례 안겨준 건 사실이에요. 여기엔 아주 강한 이유가 있었죠. 저는 ‘기쁨’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거든요.” 기쁨과 굴욕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까? “저도 처음엔 기쁨을 표현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만약 등장인물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뒤, 그걸 다시 하나하나 돌려준다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독자는 인물에 공감하고, 그와 함께 웃고, 때론 그를 향해 웃다가 마지막에 ‘행복 폭탄’을 맞게 되는 거죠.” 그리어의 유쾌한 유머는 굴욕적 상황에 처한 레스를 독자가 사랑하게 만드는 무기였다. 그는 “유머가 가혹한 비난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을 연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서 레스를 절대 폄하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화자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친절하죠. 제 책은 보잘것없는 사람에 대한 찬사이자 일종의 연애편지예요. 그 목소리 덕분에 저처럼 많은 사람들이 레스의 바보 같은 모습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의 유머가 마냥 즐겁고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문학 시상식을 ‘재능 없는 사람들의 닭싸움’이라거나, 프리랜서의 삶을 ‘따뜻하지만 다 덮어지지 않는 담요’라고 하는 등 날카로운 비유가 반짝였다. 사람이 언제 비참해지는지 너무 잘 아는 그리어에게 ‘당신은 냉소주의자인가?’를 물었다. “저는 감상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물론 세상의 모든 징후들이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고, 세계가 점점 더 이상한 장소로 변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친절하지 않다는 걸 느껴요. 그 점에서 저는 현실주의자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는 믿음을 멈출 수 없어요. 제 책도 그런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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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보다 관객에 초점… 예술, 시대를 말하다

    “이번 비엔날레는 감동과 비판적 사고를 일으키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조명할 것이다. 전시된 예술 작품보다 관객이 하게 되는 새로운 생각이 중요하다.” 11일 공식 개막하는 제58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의 프리뷰가 8일 시작된다. 영국 헤이워드갤러리의 디렉터 랠프 루고프(62)가 총감독을 맡아 ‘당신이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을 주제로 국제전(본전시)을 선보인다. 각국 큐레이터가 담당하는 국가관은 총 91개다.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2017년)의 주제는 ‘예술 만세’였다. 그러나 브렉시트, 난민 등 국제사회가 요동치는 가운데 예술만을 앞세운 전시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에 루고프 총감독은 “예술이 정치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순 없지만, 간접적으로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변화시킬 순 있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올해 본전시의 모든 작가는 생존 작가다. 루고프는 미국 아트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가와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120명(팀)이었던 작가 수도 79명으로 현저히 줄었고, 절반이 여성 작가로 구성된 것도 특징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 이에 대해 비엔날레 대표인 파올로 바라타(79)는 보도자료에서 “베니스를 향한 비판에 이솝 우화의 ‘당나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한 부자(父子)가 당나귀를 끌고 마을로 갔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당나귀를 타자 ‘이기적’이라고 했고, 아들이 타자 ‘불효자’라고 했다. 부자가 함께 타자 ‘동물 학대’라고 비판받아 당나귀를 들고 가던 두 사람은 비웃음을 샀다. 비엔날레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고 관람객이 예술을 깊이 느끼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끊임없는 비판에 장단을 맞추기보다 비엔날레의 목적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해명의 배경엔 지난 10여 년간 베니스를 향해 꾸준히 제기돼 온 ‘서구 중심성’과 ‘상업성’에 대한 지적이 자리한다. 1895년 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만국박람회’ 형태로 출발했다. 이런 역사에 자연스럽게 서구 선진국 국가관이 좋은 위치를 차지하는 등 ‘서구 중심의 문화를 전파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더 심각하게 제기된 것은 상업성 문제다. 각 국가관의 전시 비용은 비엔날레 주최 측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여기에 정부 지원조차 줄어들어 사기업이나 상업 갤러리의 후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베니스가 좋은 타이틀이 되기에, 특정 집단의 작가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지는 이유다. 바라타 대표는 “우리는 미술시장에 끌려다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들을 벗어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장은 엄연히 존재하고, 시장이 비엔날레를 이용하는 것도 알기에 필요하면 주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한 미술평론가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탈리아가 미술 중심지로서 빼앗긴 명성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에서 시작했다”며 “참가국에 상을 주는 ‘줄 세우기’로 권위를 확보하는 전략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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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에 대한 연민, 박수근 휴머니즘과 통해”

    “평소 제 작품이 재료나 기법 면에서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마음을 읽어주신 박수근미술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일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 ‘제4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박미화 작가(62)는 “가족, 오랫동안 몸담아 온 할아텍(할 예술과 기술) 작가들, 꾸준히 초대해주는 화랑 대표에게 감사하다”며 “박수근 선생과 저의 공통적인 부분은 앞으로 작품을 통해 더 많이 보여드리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로 네 번째 수상자를 낸 박수근미술상은 동아일보와 양구군, 강원일보, 동대문미래재단, 서울디자인재단, 박수근미술관 공동 주최로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 혼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이날 행사는 박 화백 기일을 맞아 마련한 야외시상식장에서 개최했다. 또 지난해 수상자인 이재삼 작가(59)의 개인전 개막식도 함께 열렸다. 이 작가는 “오늘 미술관 옆 박수근 선생 산소에 인사를 드렸다. 머리 깎고 옷도 갈아 입으셨더라”며 “이번 전시를 권투에서 가장 힘든 의무방어전처럼 준비했고, 왁자지껄한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인 조은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은 “심사위원단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담은 박미화 작가의 작업이 소박하지만 진지한 박수근의 작품 세계와 이어진다고 평가했다”며 “박수근 선생의 열망과 휴머니즘을 공유한 작가로 박미화를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박 작가에게는 상금 3000만 원과 조각 상패가 수여됐다. 내년 5월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문과 박수근미술관에서 수상 기념 개인전이 열린다. 시상식에는 조인묵 양구군수, 이상건 양구군의회 의장, 김순덕 동아일보 전무, 김동호 동대문미래재단 이사장, 박 화백의 장남 박성남 작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양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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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도난, 밀거래… 다빈치 작품 둘러싼 검은 욕망

    불과 1만 달러(약 1170만 원)에 구입한 그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바로 2017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5030만 달러(약 5268억5100만 원)에 낙찰된 ‘살바토르 문디’다. 다빈치를 평생 연구한 권위 있는 학자인 저자는 이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의 눈을 통해 다빈치를 둘러싼 여러 뒷이야기들이 속속 밝혀진다. 2003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버클루 공작이 소장하던 ‘성모와 실패’ 도난 사건도 있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도둑들은 도끼로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그림을 떼어내 폭스바겐 골프를 타고 순식간에 달아난다. 도난 직후 전화를 받은 저자는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며 그림 환수를 돕는다. 결국 4년 뒤, 극비리에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밀거래 현장에서 그림을 되찾는다. 그러나 범인의 행방은 묘연하다. ‘다빈치 진품’으로 한몫 챙기려던 중개인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처벌받지 않고 도리어 경찰을 맞고소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저자는 이 사건을 회고하며 아직도 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절도와 강도 전문’임에도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스코틀랜드 경찰의 노고를 높이 산다. 다빈치의 주변에는 천재 예술가에 대한 존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가치 뒤에 돈을 향한 탐욕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저자는 이를 ‘레오나르도 다빈치 산업’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는 ‘살바토르 문디’ 같은 ‘잭팟’을 노리는 수집가는 물론이고 그림 속 미스터리를 좇는 아마추어 음모론자도 있다. 책에서 돋보이는 건 이런 ‘다빈치 산업’의 잘못된 상업성을 경계하는 학자의 태도다. 저자뿐 아니라 내셔널갤러리 같은 미술관은 전시하거나 연구하는 작품이 미술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을 늘 경계한다. 그들 같은 권위 있는 기관과 학자의 전시와 저술은 누군가의 사익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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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겐 색채를 향한 욕망이 있다” 103세 현역 최고령 김병기 화백 개인전

    국내 최고령 현역 작가인 김병기 화백(103)의 개인전 ‘여기, 지금’이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최근 작업한 새로운 회화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욕을 보여준 그는 “이제 장수 비결에 대한 질문보다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근 작품에는 마스킹테이프를 붙여서 만든 선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노랑 빨강 주황 등 원색을 사용했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또 ‘다섯 개의 감의 공간’이나 ‘역삼각형의 나부’ 등 구체적 형상을 담은 그림도 보인다. 그는 “우리 민족은 오방색을 갖고 컬러풀하게 살아왔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색채를 활용하고 싶다”며 “한국은 백색이 좋다고 말한 것은 일본인의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김 화백은 1933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이듬해 일본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추상과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했다. 1939년 한국에 돌아와 ‘50년미술협회’를 결성하고, 1965년에는 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참가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이후 다시 국내 화단에 복귀한 것은 70세가 넘어서였다. 전시는 5월 1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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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극단의 시대 제3의 길을 걷다…덴마크 작가 아스거 욘 展

    1950년대 세계 미술계에는 잭슨 폴록(1912∼1956)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만 있었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덴마크 작가 아스거 욘(요른·1914∼1973) 역시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곤 했다.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이 추상표현주의 ‘핵심’ 작가라면 욘은 그를 따르는 추종자 가운데 하나로 치부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는 이런 오해를 바로잡을 기회다.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욘의 ‘진면모’를 정리했다.○ 그림의 의미를 제거하다 이번에 만나는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나 ‘세속의 마리아’는 전통 서양화를 낙서로 덧칠한 작품이다. 마르셀 뒤샹이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린 ‘L.H.O.O.Q’처럼 회화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술사에서 수백 년 동안 내려온 방식을 해체하고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한다. 전시를 기획한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예술의 의미를 해체하는 ‘다다’나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엿보이는 작품”이라며 “욘이 결성한 대안 문화그룹 ‘코브라(CoBrA)’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이미지가 가장 진실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해체’의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있다. 덴마크에서 나치 지배를 겪고 절망한 욘은 저항예술그룹 ‘지옥의 말’을 결성했다. 자신들의 문화가 최고라 생각했던 유럽 사람들에게 전쟁은 허무와 의심을 일으켰다.○ 예술을 통한 사회 변화 ‘해체’의 관점에서 욘의 작업은 시기상 뒤떨어진 편이다. 뒤샹이나 만 레이 등 다다이즘 작가들이 1910년대에 이미 선보였기 때문이다. 욘은 오히려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북유럽 전통을 연구하며 ‘사상가’ 역할을 활발히 했다. 이번 전시도 이런 역할을 집중 조명했다. “욘은 유명 정치이론가 기 드보르와 함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을 결성한 멤버입니다. SI는 프랑스 68혁명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죠. 드보르와 의견 차이로 SI를 탈퇴한 뒤에는 그간 서유럽 중심 미술사에서 평가 절하된 북유럽 문화를 연구했습니다.” 첫 번째 전시장 쪽문을 통과하면 등장하는 공간에서 욘의 북유럽 이미지 연구를 확인할 수 있다. 칠하지 않은 날것의 벽과, 욘의 작품을 운송했던 박스를 그대로 활용한 전시 공간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최고 인기 코너는 욘이 구겐하임재단에 보낸 편지를 전시한 공간이다. 1963년 재단으로부터 국제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욘은 “당신들의 어처구니없는 경기에 참가하지 않겠다”며 상을 거절했다. 한편 박 학예사가 이런 욘의 정치적 측면에 관심을 갖자 덴마크에선 의아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현지에서도 욘을 여전히 추상회화 작가로 자주 조명한다. 그러나 박 학예사는 미국·소련 중심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제3세계 목소리를 높인 욘의 모습이 국내 관객에게 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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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세계 최대 공룡화석 ‘수’는 어떻게 박물관에 오게 됐나

    흔히 ‘큐레이터’라고 하면 떠올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 기획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화석과 표본을 발굴, 채집하고 연구해 전시하는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들에 관한 서사시가 펼쳐진다. 아주 오래된 과거를 탐구하는 사람들 일이라니 정적이고 고지식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특히 16년 동안 2500만 명가량 다녀간 박물관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말이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에서 30여 년간 근무한 큐레이터이자 저명한 학자. 필드박물관은 미 3대 자연사박물관으로 꼽히며 영화 ‘쥬라기 공원’의 실제 모델인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수(SUE)’가 전시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거대하고 화려한 이 화석이 필드박물관에 오기까지, 그리고 전시되기까지는 그 과정이 험난하기만 했다. ‘수’의 사나운 운명은 상업적 화석 사업체인 블랙힐스가 먼저 발굴하면서 시작됐다. 역사적 규모의 유물이 발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땅 주인부터 지역 사회, 나중에는 연방정부까지 나서서 소유권 다툼을 벌였다. 이 사건에 증인으로 불려 다녔던 저자의 경험을 통해 다른 측면에서 ‘수’ 분쟁 사태를 읽어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여러 다툼 끝에 ‘수’가 필드박물관에 오기까지의 과정이다. 박물관은 달력용 사진을 소더비 측에 제공하다 우연히 경매에 ‘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안다. 당시 갓 취임한 대표는 ‘수’가 아이콘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확보 작전’에 돌입한다. 디즈니, 맥도널드 등 후원 기업과 전문 딜러, 경매사 등 많은 사람이 합심한 작전이었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도 비밀리에 참여한 가운데 승리는 필드박물관에 돌아갔다. 그 긴박한 과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박물관은 정적이다’는 편견을 깨부수기에 충분하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수’를 공개하기 위한 준비 과정도 흥미롭다. 거대한 공룡 뼈를 전시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박물관은 외주 입찰에 나선다. 다른 박물관에서 일하던 전문가가 가장 높은 가격에 제시한 방법이 채택된다. 뼈를 손상시키지 않고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연구를 위해 하나씩 빼낼 수도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일하는 박물관에서 휴직을 허락하지 않자 그 전문가는 퇴직하고 업체를 따로 차린다. 또 ‘수’의 발 복원 조립을 마쳤을 때는 ‘쥬라기 공원’ 두 편을 완성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박물관을 찾았다. ‘수’는 현재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큰 티라노사우루스였지만, 스필버그 감독은 뼈를 보고 “생각보다 작네”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 속 티라노사우루스 크기를 감안하면 그럴 법한 반응이다. ‘수’ 말고도 박물관을 채우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연구도 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저자는 친절히 들려준다. 새로운 연구를 위해 수십 쪽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어 1년 동안 관련 재단을 설득한 일, 물고기 표본을 확보하기 위해 심해 낚시 대회에 가서 사람들에게 “살을 발라줄 테니 뼈를 달라”며 ‘딜’에 나서는 일 등 생각보다 낯설지 않은 일도 많다. 이렇게 박물관 속 다양한 인간 군상, 역동적인 모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저자는 큐레이터의 일도 결코 고고한 연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음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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