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중요한 숙제입니다.” 인문 에세이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 등으로 잘 알려진 한국 국적의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 세이가쿠인(聖學院)대 총장(64·사진)이 첫 소설 ‘마음’(사계절출판사)의 한국어판을 출간했다. 지난해 출간된 이 소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을 위로했다는 평을 받으며 일본에서 30여만 부가 팔렸다. 소설은 아들을 잃은 대학교수와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서 시신 인양 활동(Death Saving)을 하는 대학생이 주고받는 문답으로 구성돼 있다. 두 사람의 문답 속에서 삶과 이웃한 죽음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주인공 대학교수는 강 총장과, 대학생은 2009년 숨진 그의 아들과 이름이 같다. 강 총장은 아들을 잃은 아픔과 대지진 현장을 누비며 취재한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강 총장은 19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후쿠시마에서 만난 사람들은 왜 누군 죽고 누군 살았는지를 많이 되물었다. 국가와 공적인 영역이 완전히 붕괴한 상황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참사 이후 살아남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한국어판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는 책 서문에 ‘전대미문의 해난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그 비극으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작은 위안이라도 된다며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썼다. 그의 눈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세월호 사태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는 “큰 비극을 겪은 세월호 유가족에게 죽음을 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내각이 동일본 대지진의 의미를 2020년 도쿄 올림픽과 우경화 움직임으로 망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으로부터 치유됐느냐는 질문에 “전혀 치유되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은 나에게 처음으로 죽음이 삶과 이웃하고 있음을 가르쳐줬다. 하지만 죽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는 것은 깨달았다. 죽은 사람이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다름 없다”라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이 올해 4회를 맞는다.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한 ‘토지’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이 상은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와 원주시, 동아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며, 상금은 1억 원. 초대 수상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 제2회 수상자는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제3회 수상자는 미국 작가 메릴린 로빈슨이었다. 올해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유럽 지역 후보 작가 13명을 심사해 최종 후보 5명을 최근 결정했다. 수상자는 다음 달 말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심에 오른 후보 가운데 첫 번째로 영국 소설가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를 소개한다. 한국문학번역원장이자 서울대 교수인 김성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했다.》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 작가인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78)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포스트모던 주제와 인식을 다루는 대표적인 영국 소설가다. 1936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와 요크대에서 공부했다. 1972년부터 런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미문학을 강의하다가 1983년 대학을 떠나 전업 작가로 변신했다. 부커상 수상작이자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소유’에는 존 파울스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처럼 시공을 초월해 19세기와 20세기를 오가면서 과거와 현재를 서로 거울삼아 비춰보는 포스트모던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소설은 롤런드 미셸과 모드 베일리가 우연히 19세기에 살았던 두 시인인 랜돌프 애시와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숨겨진 로맨스를 밝혀주는 편지를 발견한 후 두 시인이자 연인에 얽힌 진실을 복원하고 탐색하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그 과정에서 현대의 두 학자이자 연인은 자신들의 관계를 선배들의 로맨스에 비춰 재조명한다. 빅토리아 시인 애시와 라모트의 로맨스는 실제 영국 시인들인 로버트 브라우닝과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유명한 로맨스를 연상시킨다. 소설에서 미셸과 베일리는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두 연인의 편지와 일기를 찾아내 그들의 숨겨진 로맨스의 진실을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미셸은 애시의 친필 편지를 도서관에서 훔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에서 애시의 무덤 속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편지로 인해 갑자기 또 다른 진실이 드러나고, 그 결과 지금까지 그들이 찾아낸 진실의 유효성은 의심되고, 모든 것은 다시 불확실해진다. 또한 베일리가 애시와 라모트가 낳은 사생아 딸의 직계 자손임이 밝혀지면서, 미셸과 베일리는 서류도둑과 그의 공범이 아니라 그 서류의 합법적인 ‘소유’자라는 것이 밝혀진다. 학자인 그들을 괴롭히던 윤리적 문제가 갑자기 해결된 것이다. ‘소유’는 절대적 진리를 발견해 소유하려는 강박관념과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려는 집착이 사실은 불가능하고 위험한 추구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바이어트는 이 시대의 복합적인 시각과 인식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포스트모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유’에는 포스트모던 소설양식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명칭(로맨스 소설, 미스터리 소설, 풍자소설, 역사추리소설, 역사 메타픽션)이 따라 붙는다. 국내에 번역된 ‘천사와 곤충’에서는 곤충사회의 습성을 인간사회에 비유해 순혈주의의 위험과 닫힌 체계의 파멸을 경고했다. 가난한 노동자 가문 출신 박물학자 윌리엄 애덤슨은 몰락한 귀족 하랄드 알라바스터 경의 딸 유지니아와 결혼해 처가살이를 한다. 윌리엄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처가에서 자신이 겪는 차별과 소외감, 그리고 어느 날 목격한 아내 유지니아와 그녀의 오빠 에드가의 정사가 곤충사회(특히 개미와 나비)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소설에서 그는 함축적인 은유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예컨대 애덤슨(아담의 후손이라는 뜻)과 유지니아(좋은 가문 출신이라는 뜻)라는 이름, 둘 다 날개가 달렸지만 본질은 정 반대인 천사와 곤충, 그리고 스펠링 배열만 다른 Insect(곤충)와 incest(근친상간) 등이 그러하다. 바이어트는 ‘소유’에서 학자와 시인, 진실과 허구, 사랑과 소유, 기록문서와 구전 이야기를 대칭시켜 놓고, 그 절대적 경계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천사와 곤충’에서는 폐쇄된 사회와 순혈주의는 필연적으로 부패하며 붕괴한다고 경고하며 그것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열린 사회의 건설과 혼혈시대 즉 하이브리드 시대의 도래라고 주장한다. 그의 문학세계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는 포스트모던 인식에 근거해 있다.○ 김성곤 심사위원은…서울대 명예교수. 한국문학번역원장, 미국 뉴욕주립대 영문학 박사. 저서로 ‘경계를 넘어서는 문학’, ‘하이브리드 시대의 문학’, ‘글로벌 시대의 문학’ 등이 있다. 국제비교한국학회장, 문학사상 편집주간, 서울대 언어교육원장 등을 지냈다.}

염수정 추기경이 18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앞서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관(사진)과 ‘파티마의 성모상’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봉헌했다.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이 아닌, 겸직하고 있는 북한 평양교구장 자격으로다. 원래 가시관은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지만 염 추기경은 이에 더해 철조망이 상징하는 분단국의 아픔과 휴전선의 의미 등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교황은 파티마의 성모상과 발아래 놓인 가시관 앞에 서서 2, 3분간 묵상과 기도를 올렸다. 가시관은 미사가 끝난 뒤 교황청 측이 챙겨 갔다. 두고 간 90cm 높이의 성모상은 명동대성당에 전시된다. 가시관에 쓰인 철조망은 1953년 휴전선에 설치됐다가 교체를 위해 철거돼 강원 DMZ박물관에 보관돼 왔던 것이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서울시립대 안병철 교수가 가시관을 제작했다. 가시관 받침대 한가운데는 한글과 라틴어로 ‘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라는 표지문이, 테두리에는 라틴어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문’이 적혀 있다. 함께 봉헌된 파티마의 성모상은 남북 평화와 일치를 기원한다. 파티마의 성모상은 1917년 5월 성모 마리아가 포르투갈 파티마에 발현해 사람들에게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한 데서 유래됐다. 염 추기경도 평소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회개를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출국 직전 갖는 방한 마지막 행사인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맨 앞자리에 초대됐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는 18일 오전 9시 45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리는 이 미사에 “총 1000명이 초청된 가운데 김군자 김복동 강일출 이용수 길원옥 할머니 그리고 경남 창원에서 올라오는 할머니 2명까지 모두 7명을 제대(祭臺)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모신다”고 17일 밝혔다. 고령인 할머니들이 휠체어를 타고 올 것을 고려해 앞줄 긴 의자를 빼서 발치에 넉넉하게 공간을 마련했다. 방한위는 “교황이 성당에 들어와 제대로 들어가는 길에 할머니들 옆을 지나며 인사를 나눌 것 같다. 강론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에 사는 이용수 할머니는 세례명이 비비안나로 요즘도 매주 성당에 나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15세 때 일본군에 끌려간 이 할머니는 30년 전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통해 얻은 용기로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할머니들은 교황에게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 그림 액자를 선물하고 편지도 전달할 예정이다. 교황이 집전하는 이 미사는 일반 미사와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교황은 17일 충남 서산시 해미성지에서 진행된 아시아주교단과의 만남에서 북한 중국 등 교황청과 완전한 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들에 대한 관개 개선 의지를 밝혀 미사에서 구체적인 메시지를 보낼지도 주목되고 있다.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교황이 미사에서 어떤 메시지를 밝힐지는 알 수 없다”며 “남북한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내용을 포함해 다양한 메시지가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우리 사회 갈등과 대립으로 고통 받아 평화와 화해가 절실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 참사 철거민 가족,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 주민 등도 3명씩 참석한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도 함께한다. 분단국인 우리의 현실을 고려해 새터민, 납북자 가족, 북한 평양 함흥 원산교구에서 서품을 받거나 활동한 사제와 수녀, 신자들도 초청됐다. 16일 북한을 거쳐 육로로 입국한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사업추진회 관계자도 참석한다. 불교와 개신교 등 국내 12개 종단 지도자와 한국의 평화를 위해 일한 메리놀 수도회, 한국 카리타스, 가톨릭노동장년회, 가톨릭농민회 회원들도 초청자 명단에 포함됐다. 또 중고등학생 50명, 묵묵히 사회를 위해 일하는 환경미화원, 경찰 등도 함께 미사를 드린다. 자리 배치에 대해 방준위 관계자는 “위안부 할머니, 장애인,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 분들이 교황과 가까운 자리에 앉고 천주교계 인사들은 그분들보다 뒤에, 가장자리에 앉을 예정”이라며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은 뒤늦게 초청이 결정돼 뒷자리에 배정됐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쏘울 타는 모습이 놀랍나요? 아르헨티나에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만나 뵙던 분인데요 뭐.” 15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만난 부에노스아이레스 성령쇄신운동회 회장 피노 스카프로 씨(48)와 회원인 아나 게레로 씨(61·여)는 “늘 보던 모습”이라며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 시절 성령쇄신운동회 지도사제를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특히 게레로 씨는 1980년대부터 교황과 한 동네에서 살아온 이웃사촌이다. 성령쇄신운동회는 2009년부터 음성 꽃동네와 인연을 맺었고 지난해 8월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교황을 알현하는 데 도움을 줬다. 두 사람은 교황 방한에 맞춰 꽃동네를 찾았다. ―가까이서 모셨으니 습관도 잘 아나. “파파(교황) 사생활을 모두 말씀드릴 순 없지만 군것질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단 음식을 좋아하는데 다디단 아르헨티나 전통과자 알파호르를 즐긴다. 이번에 선물하려고 아르헨티나에서 잔뜩 가지고 왔다.”(게레로 씨) ―교황의 축구 사랑이 굉장히 유명하다. “응원하는 팀이 있고 축구 보는 걸 무척 좋아하신다. 연세가 꽤 있을 때 만나서 직접 축구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다른 주교께 살짝 들었는데 축구를 좋아하는 데 비해 뛰어난 실력은 아니라고 했다.(웃음)”(스카프로 씨) ―교황에게 혼난 적도 있나. “딱 한 번 있는데… 이유는 말할 수 없다.(웃음) 잘 혼내지 않지만 싫은 소리를 할 땐 꼭 유머를 섞어서 재밌게 말한다. 교황 하면 유머다. 지금도 소년의 신선한 유머를 구사한다. 언젠가 성령쇄신운동회 모임 때 딱 들어갔더니 ‘너 여기 왜 왔어. 악령 쫓으러 왔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이 농담이 왜 재미있느냐고 했더니 스페인어로 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했다).”(게레로 씨)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추기경 시절 미사를 집전하면 넓은 성당 안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미사가 끝나면 추기경과 인사하려고 신자들이 몰려들어 교황이 넘어질 뻔한 적도 많다. 내가 덩치가 있으니까 교황 옆에 딱 붙어서 밀리지 않도록 호위했다. 한 번은 교황께 딱 한 계단만 올라가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단호히 ‘아니, 한 계단 위에서는 안 된다. 같은 눈높이에서 인사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스카프로 씨) 교황과의 일화를 더 알려 달라고 하자 두 사람은 “아, 이런 얘기들이 있다”며 서로 맞장구쳤다. “대주교 시절 교황을 만나러 회의실에 가면 크고 편한 의자, 작고 불편한 의자까지 다양한 의자가 있었다. 우리가 가장 낡은 의자부터 골라 앉으면 비서가 와서 거긴 절대 앉지 말라며 ‘그분 자리’라고 했다.”(스카프로 씨) “가난한 사람을 자주 찾았다. 빈민가나 위험한 동네도 걸어서 다녔다. 병자를 위로하고 발도 씻어주었다. 고통받는 이에게 동전을 주는 일보다 손을 만져주고 눈을 바라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게레로 씨) ―교황이 되실 줄 알았나. “2012년 12월 교황 생신 때 인사도 할 겸 상의를 드리러 갔다.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했는데 이듬해 3월 로마에 가더니 교황이 돼 돌아오지 않았다. 교황이 되고 나서 다시 만났을 때 행동과 말씀은 여전했다. 단지 가난한 이의 추기경에서 이제 가난한 이의 교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선출됐을 때 기뻤지만 곁에 있던 분이 떠나서 많이 아쉬웠다.”음성=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들어 보아라. 이것은 이 땅의 황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 장군의 통치 시절 이야기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보육원 출신인 주인공 나복만(羅福滿)은 복이 가득하다는 이름과 달리 박복했다. 그는 1982년 강원 원주시 회사택시 신입기사였다. 성실한 그는 개인택시 면허를 따고 동거하던 애인과 결혼하는 소박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해 3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한 문부식과 김은숙이 원주에 왔고, 나복만은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교통사고를 냈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나복만은 교통사고를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가지만 글을 읽을 줄 몰라 교통과 대신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정보과를 찾아가 제 이름을 적는다. 독재정권은 까막눈이 나복만을 빨갱이로, 수배자로 둔갑시킨다. 원주 출신인 저자는 걸출한 입담을 뽐내는 변사(辯士)다. 소설의 장마다 “들어 보아라” “읽어 보아라”라며 나복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복만이 잠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애인과 엉덩이를 반쯤 깐 채 키스하는 장면을 들려줄 땐 광대 목소리고, 복만의 소박한 꿈이 고문과 수배로 물거품처럼 사라질 땐 먹먹한 목소리다. 특히 괄호 속에 쓴 부연 설명들이 눈물나게 웃기거나 슬프다. 요즘 말로 개웃프다. 이야기의 힘은 우리를 꽉 쥐고 ‘누아르’ 정권의 죄를 똑똑히 보게 만든다. 소설은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2009년 가을부터 2010년 겨울까지 연재됐던 ‘수배의 힘’의 제목을 바꿨다. 저자의 첫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가 개인과 개인 사이 죄의식을 다뤘다면 이번 소설은 개인과 국가 사이의 죄를 다뤘다. ‘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개인과 제도·문화 사이의 죄가 될 거라고 한다. 차남은 어디서 나온 걸까. “우린 모두 형제들이고, 이 세상은 두려운 한 명의 형과, 두려움에 떠는 수많은 동생들로, 차남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더 큰 문제는 우리 차남들 스스로가 형을 두려워하다가 숭배마저 하게 된 상황, 신보다 형을 더 믿게 된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셨지요.”(279쪽)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교황은 14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포프모빌(POPE Mobile·교황 차) ‘쏘울’ 뒷자리에 올랐다. ‘뉴포트 블루’ 색상의 쏘울은 바로 뒤따르는 교황 경호차량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의 우람한 크기와 비교돼 더 작고 앙증맞아 보였다. 교황청이 이번 방한 기간에 기아자동차 1600cc급 준중형 다목적차량(MPV) 쏘울을 타기로 한 것은 소박하면서도 차고가 일반 세단보다 높아 고령인 교황이 타고 내리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 “가장 작은 한국산 차를 타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와 준비위원회 측은 국산 준중형 차량 목록을 교황청에 보냈고 교황청은 ‘쏘울’을 선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 나이엔 잃을 게 많지 않다”며 방탄차를 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쏘울에도 유리창을 제외하고는 방탄 처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15일 대전과 16일 서울에서 카 퍼레이드를 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포프모빌’로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차 ‘카니발’을 개조한 무개차를 탈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이 이동 중 넘어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설치하고 앞에 바람막이용 유리를 세우는 정도로만 개조하고 방탄유리는 설치하지 않았다. 방탄유리로 가리면 대중과 가까이 접촉할 수 없다는 교황의 평소 소신에 따른 것이다.강유현 yhkang@donga.com·박훈상 기자}

1984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 도착해 우리말로 방한 소감을 밝혔다. 한국 국민 모두 요한 바오로 2세의 유창한 한국말 실력에 깜짝 놀랐다. 이는 장익 주교(81) 덕분이었다. 장면 총리의 아들인 장 주교는 1980년부터 로마 그레고리안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계획이 나오자 고 김수환 추기경이 영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장 신부를 교황의 한국어 가정교사로 추천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일곱 차례나 장 주교의 도움을 받아 개인 경당(예배실)에서 한국어 미사 예행연습을 하기도 했다. 장 주교는 춘천교구장으로 사목하다 2010년 은퇴하고 강원 춘천시 실레마을에 머물고 있다. 13일 전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소감을 묻자 장 주교는 “좋죠. 고맙고 반갑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분인가요. “훌륭하신 분입니다. 교황은 진실성이 있습니다. 꾸밈없이 살았고 살아온 대로 이야기하십니다.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는 의식을 안 하시죠.” ―교황 방한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나라가 분단국인 걸 비롯해 최근 어지럽고 마음 아픈 일이 많았습니다. 교황 방한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에게도 더 다가가야 하고 품어줘야 합니다. 남에게 아픔 주는 사람이 결국 스스로 해치는 사람들인데 단죄만 한다고 치유되지 않습니다.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 편에 서 있다고 오만에 빠지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과 같아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려면 이 같은 교황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할 겁니다.” ―방한 이후 우리 사회가 변화할까요.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가신 뒤에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교황 방한 자체만으로도 큰 사건이지만 교황을 마주한 사람들이 스스로 변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다들 희망을 말하는데, 진정한 희망은 서로를 살리기 위해 먼저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질 때 찾아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어 실력은 어땠나요. “당신께서 굉장히 공을 들였습니다. 강대국에 시달렸던 폴란드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한국의 고난을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방한이 결정되고 우리말부터 배우겠다고 하셨죠. 여러 언어에 능통했던 교황은 한국말도 흥미로워했고 40여 차례 공부했는데 습득 속도가 빨랐습니다. 처음엔 1시간 40분씩 하다가 나중엔 점점 줄어 50분 정도 했습니다. 방한 때 하실 말씀을 타자기로 직접 작성하셨습니다. 제게 깍듯하게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하고 부르던 게 기억에 생생합니다.” 장 주교는 14일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리는 교황과 한국 주교단의 만남의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와 함께 ‘현대 환상문학의 3대 거장’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사진) 전집이 국내 처음으로 출간됐다. 민음사는 2017년까지 총 13권 완간을 목표로 1차분 6권을 이달 출간했다. 1차분에는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소설인 ‘교차된 운명의 성’,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와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인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등이 포함됐다. 칼비노의 소설은 환상과 현실을 미로처럼 오가며 기발하고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교차된 운명의 성’의 배경은 중세 유럽의 어느 성이다. 소설 속 여행자들은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타로 카드를 한 장씩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보여준다. 타로 카드가 텍스트 기호가 돼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칼비노 신작을 읽던 남성 독자가 책의 인쇄가 잘못돼 첫 부분만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고 전체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렸다. 이 모험을 통해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지닌 10편의 이야기가 소설에서 교차된다. 민음사는 “칼비노의 문학적 성과에 비해 국내 독자들에겐 낯선 작가였다. 그의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전집을 기획했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박경리문학상은 한국에서 제정한 최초의 세계문학상입니다. 그동안 한국, 러시아, 미국 작가가 그 영광을 차지했는데 올해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권의 유럽 작가들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올해 4회를 맞는 박경리문학상의 심사위원장인 시인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71)가 12일 후보들을 공개했다. 박경리문학상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심사위원은 오 위원장을 비롯해 한국문학번역원장인 김성곤 서울대 명예교수, 김승옥 고려대 명예교수, 유석호 연세대 교수, 이세기 소설가, 최현무 서강대 교수이며 1∼2월 유럽지역 후보 13명을 심사해 최근 5명을 최종 후보로 압축했다. 최종 후보자는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 존 반빌, 줄리언 반스 등 영국 작가 3명,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와 밀란 쿤데라(체코 출신 프랑스 망명) 등이다. 오 위원장은 심사기준에 대해 “문학이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가 지녀야 할 인간관, 자연관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과 통한다”며 “사회적 정치적 이념이나 보수-진보의 대립을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 대립하고 화해하는 현장을 어떻게 형상화시켰는가를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벨 문학상처럼 작품 한 편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작가의 문학 세계 전반을 살폈다”고 했다. 오 위원장은 후보자 선정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바이어트는 진실을 탐색하고 소유하려는 삶의 다양한 형태를 학자-시인, 진리-허구로 대칭시켜 나가는 서사구조가 현란하다. 슐링크는 나치즘의 실상을 바라보는 전후세대의 시각을 탄탄한 서사구조 속에 작품화시켰다. 반빌은 찰나로 스쳐가는 삶의 순간과 떠난 사람들에 대한 상실감을 유려한 문체로 전개했다. 반스는 역사가 패자도 승자도 아닌 살아남은 자들이 펼치는 과거에 대한 회고라는 성찰을 형상화했다. 쿤데라는 공산주의 독재체제에 대한 고발과 유럽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한 점이 돋보인다.” 심사위원회는 이르면 9월 말 제4회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시상식은 ‘2014 원주 박경리문학제’에 맞춰 10월 25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다. 동아일보는 최종 후보 작가 5명의 작품 세계를 차례로 지면에 소개할 예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살인자와 그림자들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시체를 자루에 싸서 옮기려 한다. 일당은 순찰 중인 경찰관과 마주치지만, 경찰은 시체의 허벅지살을 보고도 모른 척한다. 한 패가 된 경찰 눈엔 시체도 지푸라기와 고구마로 보일 뿐이다. 심지어 한입 깨어 물기까지 한다. 섬뜩한 시엔 마침표가 없다. ‘이달에 만나는 시’ 8월 추천작은 정재학 시인(40)의 ‘공모(共謀)’다. 1996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시인이 6년 만에 내놓는 세 번째 시집 ‘모음들이 쏟아진다’(창비)에 실렸다. 추천에는 김요일 신용목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참여했다. 정재학 시인은 정치적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불신이 누적돼 시를 썼다. 정 시인은 ‘공모’ 시작(詩作) 메모에 이렇게 썼다. “때로 진실은 너무 깊숙이 감추어져 있어서 우리는 어떤 부패에 대해 심증만 가질 뿐 교묘하게 조작되어 있는 상황에 농락당하기 쉽다. 권력이 강하면 더욱 쉽게 불리한 상황을 빠져나간다. 우리는 농락당하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밝혀져야 한다.” 시집 해설을 쓴 조강석 평론가는 정 시인을 ‘200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의 선두 주자’로 꼽고 2000년대 한국시의 젊은 시인을 ‘정재학 이전’과 ‘정재학 이후’로 나눴다. 시집에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시와 음악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한때는 시를 쓰면서 음악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음악은 능력 부족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시인에게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지만 음악가에게 열등감을 느낀 적은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시에 많이 담긴 것 같습니다. 김요일 시인은 “정재학이 단선율 음계로 연주한 몽환의 선율은, 다양한 색채의 기표가 되어 ‘한여름 밤의 음악회’를 더욱더 비밀스럽고 신비하게 만든다. 시집을 덮어도 끊임없는 배음(倍音)이 되어 귀를 때리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다”라고 했다. 이원 시인은 “시집에서 재즈와 씻김굿을 넘나들며 ‘전위적 굿판’을 만들어냈다. 그의 초현실적 상상력이 이토록 생생한 것은, 바로 이것이 은폐하고 싶었던 우리 사회의 민얼굴이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신용목 시인도 “정재학은 ‘풍경의 해부학자’다. 그는 우리 시대의 아픈 장기들을 꺼내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다. 보라, 보라, 보라고 외치는 그의 발밑에는 늘 피가 흥건하다”고 추천했다. 장석주 시인은 김근 시집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문학과지성사)를 추천하면서 “김근의 시는 불편하다. 한데 그 불편함이 어딘지 익숙하다. 어디선가 불쑥 나온 젖은 손 하나가 발목을 붙잡고, 모르는 손이 내장을 끄집어내는데, 이렇듯 몸은 온전성을 잃고 해체된 지체들로 저마다 현실을 감당할 때, 현실은 낯섦과 기이함으로 물든다”고 했다. 이건청 시인은 조정권 시집 ‘시냇달’(서정시학)을 꼽았다. “시집에서 삶을 바라보는 깊고 원숙한 통찰을 본다. 존재의 근원까지 하강해가면서 정제된 말을 찾고, 찾은 말들을 질서화해가는 그의 시업은 지루한 진술의 시들이 판을 치는 요즘 한국시에서 귀한 개성으로 읽힌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2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인 교황은 어떻게 뽑히고 어떤 권한을 가질까. 교황청은 교회법에 따라 교황 궐위 후 15∼20일 사이에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개최한다. 콘클라베는 바깥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채 철통 보안 속에서 진행된다.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이탈리아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다. 투표에 앞서 비밀 엄수와 외부 개입 배제를 서약한다. 시스티나 성당도 도청장비 검사를 마치고 전파 차단기를 가동한다. 과거 로마 귀족 같은 외부 세력이 교황 선거에 입김을 불어넣을 소지를 차단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된 전통이다. 투표는 3분의 2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무기명으로 계속된다. 보통 2∼5일이 소요되지만 1268년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을 선출할 때는 회의가 열리고 2년 9개월 2일 동안 투표가 계속됐다. 1851년에도 54일간 투표하기도 했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시스티나 성당 굴뚝으로 흰 연기를 피워 올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직을 자진 사임하면서 새 교황에 올랐다. 교황이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드물다. 보통 선종(善終·가톨릭 신앙인의 죽음)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최고의 권한을 행사하는 교황이 스스로 사임을 발표하면 막을 수 없다. 폰시아노, 그레고리오 6세, 베네딕토 9세, 첼레스티노 5세, 그레고리오 12세가 사임했다. 교황은 로마 가톨릭 교회 최고 수장으로 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절대 권력을 가진다. 교황 말은 거역할 수 없고, 모든 법령도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독립 자치국인 ‘바티칸 시국’의 원수이기도 하다. 역대 교황을 국적별로 보면 이탈리아 출신이 210명으로 가장 많다. 평균 재위 기간은 8년, 최장수 교황은 초대 베드로 교황으로 34년이었다. 최단기 교황은 1590년 우르바노 7세로 말라리아에 걸려 즉위식도 갖지 못한 채 12일 만에 선종했다. 레오 8세는 역사상 첫 평신도 출신 교황으로 먼저 주교로 서임된 뒤 즉위했다. 종교적 영성과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 대교황 칭호를 받은 교황은 레오 1세와 그레고리오 1세 둘뿐이다. 레오 1세는 고대 교회의 초석을 다지고 그가 쓴 서간과 강론은 라틴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평가를 받는다. 중세 교황권을 확립한 그레고리오 1세는 미사 전례곡과 성가를 정리해 그레고리오 성가를 보급했다. 역사상 최악의 교황으로는 알렉산데르 6세가 꼽힌다. 정조를 지킬 것을 설교하면서 정작 정부를 거느리고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다. 여러 여인 사이에 많은 자녀를 두고 아들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줬다. 야사(野史)에는 여자 교황 요한나(?∼857)도 있다. 여성임을 숨기고 교황위에 오른 그는 임신했고 행차 중에 길에서 출산하고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후대 교황 선출 때 하위 성직자가 고환을 만져보고 남자임을 증명하고 “그에게 고환이 달려 있다”고 외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베스트셀러 저자인 이나미 정신건강전문의가 이달에 신간 ‘행복한 부모가 세상을 바꾼다’(이랑)와 ‘다음 인간’(시공사)을 동시 출간했다. ‘행복한 부모가…’는 아이를 망치는 ‘좋은 부모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무조건적 희생과 무작정 방목’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새로운 지침을 준다. “현명하고 이기적인 부모가 되라.” 이 전문의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2010년경. 이 전문의는 “5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 귀국했을 때 부잣집 어린 자녀가 가사도우미에게 반말로 ‘가서 빨래나 하라’고 말하는 모습에 놀랐다. 한국에서 아이들은 돈 많은 부모에게 태어난 것을 자기 성취로 생각하고, 부모도 제 자식 챙기는 일엔 뻔뻔하게 굴었다”고 했다. ‘행복한 부모가…’ 초고를 들고 한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부모들을 야단치면 아무도 사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2011년 출간된 10대의 고민을 다룬 ‘괜찮아, 열일곱 살’(이랑)이 인기를 끌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이 전문의는 부모들에게 “완벽한 부모는 없다. 좋은 부모가 아니어도 좋다”고 격려했다. 강연을 들은 부모와 자녀는 서로 기대를 낮추고 화해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이랑 출판사가 강연 내용을 보강해 책을 내자고 먼저 권했다. 이 책에는 부모와 아이의 유형 및 상황에 맞는 자녀 교육 원칙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이 전문의가 1986년부터 수만 명과 심리상담을 하며 쌓은 내공을 발휘했다.직장인과 대학원생인 두 아들을 둔 그는 “일하는 어머니여서 입시 정보에도 어두웠고 오히려 아이가 먼저 요구하면 수동적으로 따라갔다. 하지만 착한 부모 콤플렉스에 시달리지 않았다. 두 아들과는 함께 저녁 먹고 영화도 보러 가는 파트너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다음 인간’은 기술이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미래 인간은 어떤 모습일지 심리학을 통해 본 미래학 책이다. 이 전문의는 “두 아들 모두 정보기술(IT)을 전공했는데 아들과 함께 기술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대화하고 싶었다. 디지털 미래를 기술 중심으로만 보는데 인간에게 집중해서 보고 싶었다”고 했다. 책 속에서 그려진 가족의 미래는 잿빛이다. 부모에게 기대는 자녀들이 밉고 무능해도 감싸 안는 베이비부머와 달리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X세대는 무책임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21세기 자녀들과 관계를 완전히 끊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썼다. 이 전문의는 “우리가 자녀 교육에 실패한다면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전문의는 지금까지 책 13권을 썼다. 다작의 비결이 무엇일까. “책을 많이 읽는데 평소엔 말도 안 하고 거의 듣기만 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할 말이 고이고 그때 쓰고 싶은 것을 씁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집을 펼치면 고단한 삶의 단내가 난다. “그래, 까짓것. 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라며 가진 것 없어도 아랫도리에 빳빳하게 힘을 팍 주는 쉰일곱 살 육체노동자 경구를 만나서다. 그의 인생은 꼬였다. 1억 원 넘는 덤프트럭은 도박 빚에 날리고, 그가 이 두 개를 부러뜨린 아내는 집을 나갔고, 당연히 임대아파트에 함께 사는 다 큰 자녀들은 그와 말을 섞지 않는다. 갑갑한 그의 인생에 냉동 칠면조 고기가 뚝 떨어진다. 그걸 손에 들고 집으로 오다가 외상술값 받으려는 건방진 술집 사장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훔친 트럭을 몰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빳빳한 그에게 박수를(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등단 11년째인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2010년 가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문예지에 실린 단편 8편을 엮었다. 대략 난감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줄기차게 등장한다. 외제차를 모는 성공한 동창생을 만날까 걱정하는 대리운전자(핑크), 로맨틱한 전원생활을 꿈꾸고 귀농했다가 농사도 가정도 망친 초보 농사꾼(전원교향곡)까지. 저자는 작가의 말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라고 썼다. 문단에선 그를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부른다. 단편이라 짧아서 아쉽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깃털 달린 모자와 파랑 빨강 노랑 세로 줄무늬 옷으로 유명한 교황청의 스위스 근위대(Papal Swiss Guards·사진)가 한국에 온다. 6일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방준위)에 따르면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수행단 29명에는 고위 성직자 외에도 바티칸 궁을 지키는 군대이자 교황 ‘보디가드’인 스위스 근위병 2명이 포함돼 있다. 방준위 측은 “교황청이 별도의 경호팀을 꾸렸지만 스위스 근위병은 교황청의 유일한 군사조직이란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수행단에 포함된 것 같다”고 밝혔다. 스위스 근위대는 500년 넘게 교황청을 지키고 있다. 1527년 스위스 근위병 189명이 교황청을 침략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 군대에 맞서다 147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후 공을 인정받아 교황청 수비는 스위스 근위병이 전담하고 있다. 스위스 근위병은 엄격한 기준 속에 선발되고 있다. 스위스 태생 가톨릭 신자로 키 174cm 이상의 미혼 남성만 입대할 수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방준위)는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와 18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입을 제의(祭衣)를 5일 공개했다. 시복미사 제의는 붉은색으로 교황 방한 기념 로고와 성작(聖爵), 칼을 형상화했다. 성작은 미사용 포도주 잔을 상징하면서 찬미의 손짓을 표현했고, 칼은 순교자의 수난을 뜻한다.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리는 미사 제의는 백색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구원을 뜻하는 올리브나무 가지를 이미지로 표현했다. 두 제의 모두 가난한 이를 사랑하는 교황의 뜻에 따라 값싸고 얇은 소재를 썼지만 수작업으로 공들여 지었다는 것이 방준위 측 설명이다. 제의를 만든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황에스텔 수녀는 “얇은 천으로 제의를 만들다 보니 기계로 수를 놓을 수 없어 손바느질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교황이 제의 안에 입을 발끝까지 내려오는 희고 긴 장백의(長白衣)는 ‘솔샘일터’에서 만들었다. 이곳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이기우 신부 등이 강북구 삼양동 산동네 주민들과 함께 만든 봉제협동조합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어떤 사람이 “만약 교황이 동성애자들을 승인한다면”이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저(프란치스코 교황)는 다른 질문으로 이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이 게이를 보시면 사랑으로 지지하실까요, 아니면 거부하고 책망하실까요?” 우리는 항상 사람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신비 안으로 들어갑니다. 삶에서 하느님은 사람들과 동반하시고, 우리는 그들의 처지에서부터 그들과 동반해야 합니다.(책 중·2013년 8월 19일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의 인터뷰에서 교황 말씀) 저자는 앞서 출간한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치스코’에 실린 교황 말씀 중 90가지를 엄선해 실천편을 출간했다. ‘코이노니아(Koinonia)’란 그리스어로 소통, 친교, 공동체를 뜻한다. 책에는 가정, 교회, 사회, 개인까지 총 4부에 걸쳐 우리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꼬인 문제(매듭)를 풀어 줄 교황 말씀이 담겨 있다. 교황 말씀은 신학적이거나 철학적이지 않다. 단순명료하게 정곡을 찌르기에 비가톨릭 신자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매듭을 푸는’이란 표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1980년대 초 독일 유학 중 찾은 성 베드로 암 페를라흐 성당에서 요한 슈미트너가 그린 ‘매듭을 푸는 마리아’(그림)를 보고 감동한 이야기에서 딴 것이다. 마리아는 악의 상징인 뱀을 밟고 손으로 매듭을 풀고 있다. 교황은 그림 복사본을 갖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대주교 시절 ‘매듭을 푸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문’을 직접 작성하기도 했다. 교황 말씀은 인류의 가장 기초 집단인 가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작한다. 지난해 7월 교황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정은 중요하고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합니다. 가정이 없으면 인류의 문화적 생존은 위험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가정은 기초입니다”라고 말한다. 가정을 지킬 ‘본질적인 세 단어’도 일러준다.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동성애자까지 품은 교황은 인간 존엄성과 인권 존중을 실천했다. 늘 환하게 웃지만 인간 존엄성이 배제된 모든 것은 단호히 거부한다. 교황은 첫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에서 “부의 재분배, 가난한 이들의 사회 통합, 인권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배부른 소수를 위한 잠시뿐인 평화나 허울뿐인 서면 합의를 이룬다는 구실로 짓누를 수 없습니다.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은 자신의 특권을 좀체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안위보다 훨씬 드높은 것입니다. 이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합니다”라고 했다. 90일 동안 매일 한 말씀씩 읽고 실천한다면 삶까지 바꿀 수 있다. 책에는 교황의 한국 방문 주요 일정과 그 의미가 실려 있어 가이드북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역자 제병영 신부 인터뷰▼“살면서 꼬인 매듭, 교황님 말씀으로 풀리길…”“우리가 살면서 꼬인 매듭들, 사회에 얽힌 매듭들이 교황님 말씀으로 풀리길 기대하면서 책을 번역했습니다.” ‘코이노니아로 매듭을 푸는 교황님’은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인 제병영 신부(56·사진)가 번역했다. 제 신부는 2007년부터 6년 동안 캄보디아 예수회 미션 한국 관구장 대리를 맡아 캄보디아 현지에서 장애인기술학교 설립, 마을 재건 사업을 이끌었다.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교황의 연설, 강론, 담화 등을 모조리 찾아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교황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뛰고 벅차서 눈시울이 젖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교황님과 사랑에 빠진 거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제 신부는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했던 말씀을 모은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과 교황 선출 과정과 교황의 생애를 담은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를 번역해 출간했다. 대학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한 제 신부는 학창시설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예수회에 입회했다. 그는 “책을 번역하면서 내 삶의 매듭이 풀리고 있음을 알았다. 교황님은 말씀과 행동이 같은 분이고 그분 메시지가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제 신부는 책에서 “교황이 현대사회를 인간 위기의 시대라고 규정했다”고 말했다. “교황님 방한을 앞두고 그분의 삶과 생각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천대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원했고 그들 편에서 낮은 자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슬픔에 빠진 한국 국민들에게 부처님 진신사리가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도 니르바나(열반)에 들고, 극락왕생하길 빌겠습니다.”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수도 콜롬보 대통령궁 보리수나무 정원에서 열린 부처님 진신사리 이운식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했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이날 부처님 진신사리 1과가 보관된 황금빛 사리탑을 경기 부천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에게 직접 전달했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이운식 뒤 한국 취재진에게 “진신사리를 기쁜 마음으로 한국에 기증한다. 이번 기증으로 양국이 더욱 친밀해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영담 스님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부당대우를 받지 않고, 부처님 공덕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영담 스님을 비롯해 남해 화방사 주지 종호 스님, 불교국제개발협력단체 하얀코끼리, 스리랑카 불교 지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석왕사는 “스리랑카를 비롯해 외국에서 기증받은 진신사리들은 사찰 간 교류 차원에서 이뤄진 기증이라 진위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며 “진신사리가 진품임을 스리랑카 정부가 공인하고 대통령이 직접 기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스리랑카 정부가 기증한 진신사리는 3mm 크기의 좁쌀 모양으로 어느 부위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리는 기원전 2세기경 스리랑카 남부 루후누 왕국 초기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암바란토타 지역 테네콘 가문에서 가보로 보관해왔다. 대통령이 테네콘 가문을 설득해 한국에 기증하게 됐다. 진신사리는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운식 전날 밤 대통령궁 옆 다르마키트야라마야 사원에 진신사리가 임시 봉안됐을 때에는 진신사리를 친견하러 온 스리랑카 불교 신자들로 사원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27일 콜롬보 스부티 사원에서도 부처님 진신사리 이운식이 열렸다. 스부티 사원이 석왕사에 기증한 진신사리는 1898년 영국 고고학자가 부처님 고향인 인도 카필라 성에서 발굴한 진신사리 21과 중 하나로 당시 발굴지역 토지 주인이 스부티 사원에 진신사리를 기증했다. 유리로 된 사리탑에 밀봉된 진신사리는 2cm 크기로 치아 모양과 비슷하다. 이 사리도 정확한 부위는 확실치 않다. 스부티 대사원 주지 마힌다완사 스님은 “부처님 진신사리는 곧 부처님의 육신과 같다. 부처님 고향에서 석가모니 가족들이 만든 불탑에서 나온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부처님 진신사리 2과 기증은 스리랑카와 석왕사의 오랜 인연 덕분에 성사됐다. 영담 스님은 스리랑카 스님이 석왕사에서 기거한 인연으로 1990년 한국-스리랑카 불교회를 결성하고 스리랑카 현지 불교 사찰을 지원해왔다. 1995년에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을 만들어 스리랑카 이주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복지에 힘썼다. 2008년 라자팍세 대통령은 감사의 뜻으로 석왕사에 불상을 기증하기도 했다. 영담 스님은 “종교가 민간 외교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그런 결실로 스리랑카 정부가 공인한 부처님 진신사리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봉안한 데서 부처님 진신사리 이운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석왕사는 2일 스리랑카 사절단을 초청해 봉안법회를 연다. 기증받은 진신사리는 스리랑카식 사리닫집(법당의 불좌 위에 다는 집 모형)에 봉안될 예정이다.콜롬보=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인도 국경도시 고라크푸르의 한 판잣집.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자 남자 5명이 침대 위에 누워 있다. 한 남자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동안 그의 피는 관을 따라 혈액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다. 지역 낙농업자가 이끄는 범죄조직은 버스 정류장에서 납치한 사람들의 피를 강제로 뽑아 팔았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피를 뽑힌 피해자들은 몇 주 만에 쇠약해져서 탈출 시도조차 못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메가 쓰나미’는 인도 타밀나두 지역을 덮쳤다. 이 재난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또 한 번 재앙이 닥쳤다. 장기 브로커들은 이곳을 찾아 절망에 빠진 난민에게 신장 등 장기를 팔라고 권유했다. 많은 여성이 가족을 위해 단돈 몇백 달러에 장기를 팔았다. 물론 건강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이곳의 마을 이름도 ‘신장 마을’로 바뀔 정도였다. 탐사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체 각 부위를 사고파는 ‘레드마켓’ 현장에서 5년을 보냈다. 책에는 뼈, 난자, 모발, 피부, 입양아, 대리모 매매 현장이 낱낱이 담겼다. 구매자들은 매매 과정은 외면한 채 병든 자신의 장기를 타인의 것으로 갈아 끼웠다. 한국에서도 한 해 유통되는 인체 조직은 30만여 개로 이 중 78%를 수입에 의지한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레드마켓의 고객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비극을 막기 위한 대안은 이타적인 기증이 늘어나야만 한다. 이 책은 참혹한 고발을 통해 이 단순한 결론을 이끌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55년 배우 제임스 딘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청바지에 흰 티셔츠, 가죽점퍼를 입고 출연했다. 그가 입은 청바지는 반항적인 젊은이를 상징하는 문화가 됐다. 당시 한국에선 청바지 하면 미군을 떠올렸다. 미군이 입던 구제(중고) 청바지가 남대문시장에서 팔렸다. 이태원에 살던 이광희 씨(78)는 “당시 블루진은 뻣뻣해서 패션이 아닌 작업복이었다. 물이 묻어도 뻣뻣하고 비에 금방 젖지도 않았다”고 했다. 당시엔 상표에 그려진 말 두 마리를 따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쌍마표’라고 불렀다. 한국에 청바지가 들어온 지 60여 년. 국립민속박물관 강경표 학예연구사와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학생들은 10∼80대 일반인 154명을 만나 한국의 청바지 역사와 문화를 구술 받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10월 15일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청바지 물질문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1960년대 “청바지는 깡패다” 그때 그 시절 청바지는 보기 드물었다. 서울 종로 등 번화가에서도 찾기 힘들었고 이태원 등 미군 부대 인근에서나 볼 수 있었다. 미제 청바지 대신 미군 부대 등에서 나온 군복에 물을 들여 청바지 흉내를 내기도 했다. 당시 청바지에 대한 기억은 부정적이었다. 조찬형 씨(80)는 “청바지를 깡패들이나 입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깡패들이 많이 입고 다녔다. 나쁜 이미지 때문인지 사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자녀들에게 사준 적도 없다”고 했다. 이광희 씨도 “미군들이 먼저 입으니까 그냥 입은 거다. 옷 잘 입는 사람들은 청바지 안 입고 신사복을 챙겨 입었다”고 했다. 대중에게 청바지를 알린 것은 배우 트위스트 김이었다. 그는 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에 청바지, 청재킷을 입고 나와 이후 ‘청바지 1호’ 스타로 꼽혔다. 2010년 작고하며 “청바지를 입혀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1970년대 “청바지는 청년이다” 10, 20대가 청바지 유행을 이끌었다. 주영희 씨(60·여)는 “1973년 대학 다닐 때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패션에 앞서가는 사람들이 주로 입었는데 대부분 나팔바지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10대였던 조해영 씨(54)는 “청바지에 쫄티, 빨간색 베레모와 머플러, 배지를 코디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색깔로 멋을 표현했다”고 했다. 청바지를 입을 때 목에 스카프도 꼭 둘렀다. 진한 파란색뿐인 청바지가 지겨워 수세미로 문대거나 락스로 색을 빼기도 했다. 국산 청바지가 하나 둘 생겼지만 사람들은 미제 청바지를 선망했다. 부산 국제시장의 일명 케네디 골목에서 미제 청바지는 고가로 팔렸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보니 가짜 미제 청바지도 등장했다. 서울 평화시장 피복도매상이 국산 청바지 수만 장에 미국 리바이스, 캔턴 상표를 붙여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신춘식 씨(52)는 “대부분 가짜 미제 청바지를 입다 보니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바지 안감에 침을 발라 밖으로 침이 배어 나오면 가짜라는 허황된 이야기까지 떠돌았다”고 했다. 1970년대 후반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양희은 등 통기타 가수들의 등장으로 청바지는 대세로 떠올랐다. 서울 명동과 이화여대 앞에는 ‘진 스타일’ 전문점이 생겼고 고급 양장점에서 맞춰 입기도 했다. 1974년 그룹 ‘사랑과 평화’는 노래 ‘청바지 아가씨’에서 ‘청바지의 어여쁜 아가씨가 날보고 윙크 하네’라고 노래했다.1980년대 “청바지는 교복이다” 1983년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면서 백화점 청바지 매장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값싸고 실용적인 청바지를 입히도록 유도했다. 모든 옷과 잘 어울리는 청바지는 코디하기도 편했다. ‘죠다쉬’ 등 외국 청바지와 함께 국내 정상급 인기 연예인이 광고하는 국내 브랜드 ‘뱅뱅’도 인기를 끌었다. 이지숙 씨(45·여)는 “다들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모두가 청바지를 입으니 그냥 청바지를 입어야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유행이 바뀌어 통 넓은 바지와 좁은 바지가 번갈아 유행했다고 한다.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는 ‘청청’ 스타일, 입으면 꽉 끼는 일명 ‘당꼬바지’도 인기를 끌었다. 어른들은 등산갈 때 청바지를 입었다. 당시 산에서는 등산 양말을 청바지 위로 끌어올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유순태 씨(54)는 “청바지는 등산복으로 입기 최고였다”고 했다. 가수 윤시내는 ‘공부합시다’(1983년)에서 ‘빨간 옷에 청바지 입고 산에 갈 생각하니’라고 노래했다. 1990년대 “청바지는 브랜드다” 1990년대 청바지 브랜드는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의미했다. 국내 청바지 업체 중 일부는 닉스, 스톰 등 한 벌에 15만 원이 넘는 고급 브랜드를 내세워 광고도 품질보단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했다. 당시 10, 20대들은 앞지퍼에 브랜드를 적은 ‘겟유즈드’처럼 상표가 눈에 확 띄는 것을 선호했다. 조영민 씨(32)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브랜드를 입느냐에 따라 계급이 달라졌다”고 했다. 거리의 먼지를 휩쓸고 다니는 힙합 청바지도 인기였다. 곽연희 씨(32·여)는 “요즘 노스페이스 패딩으로 애들 등급을 구분하듯 논다는 애들은 힙합바지를 입었다. 그들은 힙합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며 삐삐로 연락하던 남자아이들을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청바지가 모두의 일상은 아니었다. 댄스그룹 DJ DOC는 1997년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라고 노래했다. 2000년대 이후 “청바지는 체중계다” 2001년 통신업체 KTF의 CF 속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란 문구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보수적인 생각의 틀을 깨자는 메시지를 패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포장했다. 이후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회사가 늘고 격식을 갖춘 행사에서도 청바지를 입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배우 신민아가 캘빈클라인 청바지 광고에 출연해 S라인을 과시하면서 여성들에게 청바지는 몸매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다. 최솔바람 씨(22·여)는 “청바지를 입을 때면 언제나 체중계 위에 올라서는 기분이라 좋지 않다”고 불평했다. 한혜진 씨(30·여)는 “청바지하면 다이어트가 떠오른다. 청바지는 날씬하고 몸매가 좋은 여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옷”이라고 했다. 40대 이상 중년에게 청바지는 아웃도어룩에 밀려나고 있다. 안미경 씨(60)는 “청바지가 젊음의 상징이었지만 이젠 등산복도 기능성이 많아서 굳이 청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했다. 한숙희 씨(54)도 “청바지는 유행이 지난 것 같다. 얼마 전 모임에서 관광을 갔는데 청바지를 입고 온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고 했다. 강경표 학예연구사는 “60년 동안 청바지가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았다.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든 채 반미 촛불시위에 참석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10월 15일 열리는 학술대회에는 전 세계 청바지 대가들도 참석한다. 글로벌 데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책 ‘블루진’을 출간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대니얼 밀러 교수, 독일 리바이스트라우스 청바지 박물관 타냐 로펠트 관장, 일본 저팬블루그룹 마나베 히사오 회장 등이다. 또 청바지 역사를 볼 수 있는 특별전도 함께 열린다. ▼ 美‘시위-허드슨진-AG진’ 경영자는 모두 한국계 ▼지구촌 청바지… 문화 그리고 산업국립민속박물관은 인도 일본 미국 등지의 청바지 현지조사도 진행했다. 다른 나라는 미국의 상징인 청바지를 어떻게 소화했을까. 인도에서 청바지는 선망과 금기다. 인도 금융의 중심지인 뭄바이는 청바지에 개방적이다. 인도 디자이너 리투 데오라 씨(56·여)는 “요즘 뭄바이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는다. 더이상 소수의 패션이 아니라 중장년층도 입는 인기 의복이다”고 말했다. ‘발리우드’로 불리는 인도 영화 속 청바지도 인도인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영화 속에서 청바지를 입은 남자는 영웅으로 묘사되고 여자는 진취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프라사드 씨(47)는 “영화 속 도시에서 멋지게 일하는 역할은 쉴 때 항상 청바지를 입는다. 스타가 입은 청바지를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인도 남부 칸누르 지방에서 청바지는 금기다. 2008년 한 조사에서 여성의 청바지 착용률은 0%였다. 남자도 10%밖에 입지 않는다. 이곳에선 고온다습한 인도 기후에 어울리지 않는 청바지는 패션일 뿐 옷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청바지를 입던 젊은이도 결혼을 하면 전통의상이나 면바지를 선호한다. 일본은 청바지를 받아들여 현지화했다. 일본 오카야마 현 구라시키 시 고지마 지역은 일본 최초로 청바지를 생산해 ‘청바지의 성지’로 불린다. 일본은 돌을 넣어서 세탁하는 스톤 워싱, 모래분사를 활용한 샌드워싱 기법을 창안했다. 미국에서 수입한 청바지 천이 뻣뻣하고 두꺼워 부드러운 옷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에게 맞추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청바지 브랜드 이름은 미국식으로 ‘캔턴’이나 ‘빅존’으로 지었다. 마나베 히사오 저팬블루그룹 회장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부터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강했다. 자유를 만끽하는 미국이 어두운 일본과 대비됐다”고 했다. 미국은 1인당 청바지를 평균 7, 8벌씩 갖고 있는 청바지의 나라다. 평균 일주일에 4일씩 청바지를 입는다. 미국 기업과 단체에서는 청바지를 활용한 다양한 공익캠페인을 벌인다. 비영리법인 단체 ‘두섬싱’은 2008년부터 ‘10대들을 위한 청바지’ 캠페인을 벌인다. 학생들이 헌 청바지를 수집해 노숙인에게 기부하는 캠페인이다. 청바지 업체는 특정한 날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면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친한 사람들끼리 청바지를 돌려 입는 모임도 활발하다. 청바지가 좋은 일에 많이 쓰이다 보니 ‘친환경’ 이미지까지 갖게 됐다. 미국 프리미엄진 시장에선 한국계 미국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미국 여배우 메건 폭스, 린지 로언, 국내 스타 소녀시대, 고소영이 입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청바지 시위(Siwy)의 경영자는 1982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크리스 박이다. 허드슨진, AG진 대표도 한국인이 맡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김민재 인턴기자 연세대 행정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