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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미협상 실무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사진)이 6일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앞서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 머물렀던 최 부상은 모스크바에서 기자들과 만나 “3자회담을 하러 왔다”고 밝혔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최 부상은 8일 러시아와 차관급 양자회의를 갖고 9일 북-중-러 3자 확대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최 부상이 러시아에 방문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올해 안에 성사될 것으로 관측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조율하는 문제다. 또 하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목소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이뤄내기 위한 우군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중국 방문과도 맞닿아 있다. 최 부상의 행보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네 번째 방북 기간과 맞물려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폼페이오 장관의 7일 방북길에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동행하는 반면에 그의 유력한 카운터파트로 꼽히는 최 부상은 평양을 떠나 있기 때문. 미 측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새롭게 가동하려는 비핵화 실무 협상 채널의 주역들이 대면할 수 없게 됐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일본 도쿄에서 평양, 평양에서 다시 서울로. 2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진행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 관련 일정은 분초 단위로 이뤄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을 잇달아 만난 것은 물론이고 한미 외교장관 협의까지 폼페이오 장관은 숨 가쁜 당일치기 행보를 이어나갔다. 중요한 면담들이 짧은 시간 동안 집중되다 보니 세부 일정이 막판까지도 계속 뒤바뀌었다는 후문이다.○ 김정은 어깨에 손까지 얹은 폼페이오 이날 오전 7시 국무장관 전용기로 일본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폼페이오 장관은 곧바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2시간 동안 김정은과 회담한 뒤 백화원 영빈관에서 1시간 반 동안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오찬까지 모두 3시간 반 동안 김정은과 대화를 이어 나간 것. 회담을 마치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오찬 시작에 앞서 카메라 앞에서 김정은과 악수를 나눈 뒤 김정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소를 교환하기도 했다. 푸아그라와 송이버섯, 스테이크, 초콜릿 케이크, 레드와인, 소주 등으로 구성된 5가지 코스 오찬에 김정은이 동석한 것은 예정에 없던 ‘깜짝 일정’이었다고 한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인사말에 김정은은 “좋은 회담 후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 양국의 좋은 미래를 약속하는 매우 좋은 날”이라고 화답했다. 김정은은 또 미국 고위인사가 4차례나 평양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처음 방문했을 때의 낯선 기분은 이제 없겠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폼페이오 장관도 “멋진 방문이고, 매우 성공적인 아침(회담)”이라는 말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안부 인사를 전했다. 구체적인 비핵화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이뤄진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에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처음으로 동행했다.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담당 보좌관, 패트릭 머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 성 김 주필리핀 대사와 앤드루 김 CIA 코리아미션센터장도 함께했다. 비건 대표 합류로 완성된 트럼프의 대북 협상팀이 총출동한 셈이다. 회담에 동석한 북측 인사로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정은의 집사로 통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등이 카메라에 잡혔다. 특히 김영철은 비건 대표와 나란히 오찬 헤드테이블에 앉아 여전한 무게감을 과시했다. 미국이 군 출신의 강경파인 김영철 대신 외교관인 리용호 외무상으로 협상 카운터파트 교체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전달했음에도 북한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김영철을 통해 협상을 이어나갈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의 새로운 대북협상팀 남북한 총출동 어스름이 깔린 오후 5시 13분. 평양을 떠난 폼페이오 장관의 전용기가 미 공군 오산기지에 도착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영접을 받으며 청와대로 직행한 그는 오후 6시 56분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정은과의 면담 결과를 설명했다. 한미 외교장관 실무 만찬을 위해 급히 발걸음을 옮긴 폼페이오 장관이 남산 하얏트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49분.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폼페이오 장관은 일대일로 마주 앉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향후 협상 쟁점을 비롯한 구체적인 논의를 1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 중국 베이징에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 왕이 외교부장 등과의 회담이 예정돼 있는 만큼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여부 등이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만찬 후 기자와 만나 “성과가 있는 것 같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에서 좋은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정신없이 이어진 일정 속에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평양에서의 회담 결과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오산기지에 도착한 직후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과 찍은 사진과 함께 “우리는 (올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대해 계속 진전을 이뤄가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북한을 향해 “나와 국무부 팀을 환대해 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 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방북 결과를 전했다고 동행한 미국 측 관계자들이 전했다. 한미 양측은 이날 공유된 내용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로 말을 아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동행한 CBS 기자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대해 묻자 “협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고, ‘미국이 추가 조치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상한 방식으로 질문한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신나리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4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상응조치를 어떻게 연결해 갈지에 대해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강 장관은 이날 보도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면 검증 논쟁으로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면서 사실상 핵 신고 유예(hold off)를 제안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미국이 요구해 온 ‘선(先)사찰 및 검증, 후(後)보상’이라는 전통적 비핵화 방식과 다른 해법을 공개적으로 제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강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신고와 검증이 물론 비핵화에 분명히 필요한 핵심적인 부분”이라면서도 “비핵화와 관련된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상응조치를 한꺼번에 포괄적으로 고려하면서 로드맵을 만들어나가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7일 방북을 앞두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앞서 3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비핵화를) 빨리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시간 게임을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며 온도 차를 보였다. 이어 그는 “2021년 초 비핵화는 내 언급이 아니고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정상들 간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미 외교 수장이 같은 날 비핵화 협상에 미묘한 엇박자를 보이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미 양자가 다시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국면으로 큰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에 기조 자체는 긍정적”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전날 청와대가 11월 미 중간선거 전 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선거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 50 대 50인 상황”이라며 하루 만에 전망을 수정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외교부가 차관급과 1급에 해당하는 재외공관장 직위 가운데 25%(23개 내외)를 3년 안에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4일 외교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가진 브리핑에서 “인사혁신을 통해 현행 고위급 중심 인력구조를 업무중심·실무중심으로 개편하겠다. 차관급과 1급 상당 공관장 직위의 25%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부처 내 차관급 공관장은 13개, 1급은 80개로, 이 중 25%를 계산하면 차관급 약 3개, 1급 20개가 단계적 감축 대상에 해당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대사관에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직위를 없애는 것으로 현행보다 직급이 한 단계씩 낮아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차관급 공관장 3곳은 고위공무원단 가급으로, 1급 20곳은 나급으로 낮아진다는 것이다. 당국자는 또 “당장 내년 2월 공관장 인사부터 적용돼 대여섯 개를 교체할 방침”이라며 “특별한 일이 없다면 3년 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무를 분석해서 목표량만큼 대상을 선정하고 인사를 할 때마다 교체한다는 식이다. 이번 조치는 외교부 내 고위직급이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상부가 조금 비대한 구조를 슬림화해서 부족했던 재외공관의 실무인력을 확충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팔루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실종됐던 교민 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4일 인도네시아 현지 시간으로 오후 2시 50분경(한국 시간 오후 3시 50분경) 실종됐던 발리 거주 교민의 시신이 숙소인 로아로아호텔 잔해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교민 사망자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한국에 있던 실종자의 어머니는 2일 군수송기편으로 현지에 도착했지만 끝내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외교부와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유가족과의 협의를 통해 장례절차와 유가족 귀국 지원 등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현지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술라웨시섬을 강타한 규모 7.5 강진과 대형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 수는 1424명까지 늘어난 상황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외국에 나가 있던 외교관 2명이 최근 성 비위 문제로 귀국 조치돼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3일 외교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외교관 2명이 부하 직원을 성추행·성희롱한 혐의로 적발됐다. 올해 7월 주파키스탄 대사관에 근무하는 고위 외교관 A 씨는 부인이 한국으로 잠시 귀국한 사이 대사관 여직원을 집으로 불렀다. 망고를 나눠주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고 술을 권한 뒤 강제로 끌어안는 등 신체접촉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달 주인도 대사관에 파견 나가 있던 4급 직원 B 씨는 행정직원에게 자신이 머무는 호텔에서 술을 마시자고 강요하거나 방 열쇠를 줄 테니 언제든지 오라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의원에 따르면 문제가 된 두 사람은 현재 외교부 감사를 받은 뒤 대기발령 상태에서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박 의원은 “2015년 김문환 전 주에티오피아 대사의 성폭력 사건 이후 외교부가 특단의 예방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상호 존중하는 조직문화와 복무 기강을 확립하는 등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7일 방북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 국무부는 미국을 방문했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현지 시간) 뉴욕을 떠나 귀국길에 오른 지 채 하루도 안 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일정을 발표했다. 가능한 가장 빠른 시기를 택했다는 얘기다. 북한이 사전 신뢰 조치로 미국을 겨누는 동창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 및 사찰을 수용한 가운데 영변 핵시설 폐기 및 사찰 수용과 종전선언 등 미국의 상응조치를 맞바꾸는 ‘빅딜’의 실마리를 찾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급물살 타는 비핵화 협상, ‘빅딜’ 기대감 미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6∼8일 일본과 북한, 한국, 중국을 방문한다고 2일(현지 시간) 밝혔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갈 길이 멀지만 이번 대화를 통해 (북한의) 다음 조치를 고대한다”며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평양행 비행기에 올라탈 만큼 충분한 확신을 느낀다”고 말했다. ‘빈손’으로 돌아왔던 7월 3차 방북 때와 달리 이번 방북에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청와대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의제가 비핵화 진전과 종전선언,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정이 당겨진 것은 북-미 간 비핵화 물밑 협상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큰 틀에서 비핵화 부문에서 실질적 진전이란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물밑 접촉에서 사전 신뢰 조치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에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을 겨냥한 ICBM부터 검증 가능한 폐기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남북은 지난달 평양 남북공동선언에서 유관국 전문가 참관 아래 동창리 엔진시험장 등의 폐기를 합의한 상황. 이와 관련해 미국이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에 대해 보상조치를 약속하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등의 폐기 및 사찰 수용은 상응하는 보상 없이 이행할 수 있다는 뜻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종전선언과 함께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완료하면 ‘미래 핵’에는 불가역적인 폐기가 이뤄지는 만큼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 등 ‘현재 핵’을 폐기하려면 먼저 제재 완화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美 “FFVD까지 대북제재 완화 없다” 청와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11월 6일 치러지는 미 중간선거 이전에 열릴 가능성을 열어놨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이전으로 김정은과의 만남을 앞당길 만한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청와대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합의되면 김정은의 12월 서울 답방 이전에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 채택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나면 거기서 북-미 정상이 종전선언과 비핵화 진전 문제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은 그 뒤 어느 시점에 이뤄질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종전선언이 이뤄지고 난 뒤에 오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10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11월 남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채택하고 12월 김정은의 서울 답방으로 이어지는 구상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에 대해선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워트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제재 외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도 완전히 유효하다”며 “우리 입장은 한 점(one bit)도 변한 게 없다”고 일축했다. 청와대가 조기 종전선언 채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에서도 북-미가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지 못하면 비핵화 협상의 동력 훼손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미국에 제안한 추가 비핵화 조치 카드가 예상을 밑돌았다는 지적도 있다”며 “10월 북-미 정상회담 전망은 희망적인 얘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다음 달 평양을 방문한다. 미 국무부는 26일(현지 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뉴욕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회담을 갖고 다음 달 평양을 방문해 달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이날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이번 방북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 간에 이뤄진 약속 이행에 관련한 추가 진전을 만들어내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약속 이행에 관련한 추가 진전’에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가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리용호가 김정은의 메시지를 폼페이오 장관에게 전했지만 기대를 모았던 북-미 외교장관 간 공식 채널 구축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익명의 외교 소식통은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 측은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요청할 만큼 공식 외교장관 간 채널이 움직이길 희망했지만 리 외무상이 카운터파트로 임하라는 임무를 북측에서 받은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며 “이번 장관 회담에서는 리 외무상이 북한 지도부의 입장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당분간 대미 협상 창구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외교 수행 이후 뉴욕에 남아 외교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리용호와의 남북 외교장관 회담을 조심스레 타진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27일 “남북 외교장관 면담이 성사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간) 비핵화를 두고 북한과 “시간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은 비핵화 시간표를 따르기 위해 북한에 끌려다니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좋은 위치에 있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그들(북한)이 당신에게 그것(시간 싸움)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한 비핵화가 오래 걸린다고 지적하는 이들에게) 나는 ‘세상 모든 시간이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여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한 비핵화 협상은 미국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음을 내비쳤다.○ 北, 사찰 검증 수용 입장 전했을 가능성 제기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시간표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외교가는 북한이 핵시설 사찰과 검증을 수용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전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과 열린 자세를 전달받은 미국 또한 핵 물질 및 핵시설 신고 방식에 있어 일괄 신고를 고수했던 기존 입장에서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이나 영변 핵시설, 개별 미사일 등으로 쪼개 각기 신고로 선회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이 ‘특정한 시설, 특정한 무기’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시간을 벌어 주는 자충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3년은 앞서 미국이 언급했던 비핵화 타임라인에서 늦춰진 것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남북 정상이 1년 내 비핵화에 합의했다”고 몇 차례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19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인 2021년 1월까지로 비핵화 시점을 확인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북한과 길고 성과 없는 협상을 해 북한이 군비를 확장하게 내버려뒀다고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안보리 회의 주재한 트럼프, 대북 제재 유지 강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까지 직접 주재하면서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기 전까지 압박 강도를 유지하는 ‘선 비핵화, 후 체제 보장’ 원칙을 전 세계에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주재한 안보리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반도와 역내, 세계의 안전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한 준수에 달려 있다”면서 “북한과 협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진전이 계속되려면 비핵화가 일어날 때까지 안보리 기존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박 간 옮겨 싣기 방식으로 안보리 제재 위반 사례가 발견되고 있는데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결의해 온 안보리 회의를 주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비핵화 속도를 내는 데 지렛대로 쓸 대북 제재의 고삐를 직접 틀어쥔 것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제재를 느슨하게 풀어 주고 있는 정황이 발견되고 있는 데다 남북이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를 합의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비핵화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북한은 더 많이 해체할 것이다. 스스로 앞서 나가고 싶진 않지만 여러분이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보리 회의에서도 “언론에서 멀리 떨어진 뒤편에서 많은 일이 매우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약속한 미사일 기지 해체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핵 동결 조치 외에 기존 핵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신나리·위은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대한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조현 외교부 2차관이 1차관으로, 이태호 대통령통상비서관이 외교부 2차관으로 옮기는 등 외교·안보 분야에 중점을 뒀다. 이날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57·사진)의 국립외교원장 임명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서울 출신인 조 신임 원장은 외무고시 18회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외교부(옛 외교통상부)에서 주일 공사참사관, 동북아국장 등을 지낸 일본통이었지만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불거진 한일 정보보호협정 졸속 체결 논란으로 옷을 벗었다. 그해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라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점이었던 만큼 일본에 한국 군사 정보를 통째로 넘겨줄 수도 있는 협정을 밀실 처리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었다. 결국 청와대에선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외교부 동북아국장으로 실무책임자였던 조 원장은 이 사건으로 직위해제는 물론이고, 1년여 동안 보직 없이 지내다 2013년 외교부에 사표를 냈다. 당시 외교부 안팎엔 “청와대 지시대로 움직였는데 외교부 실무자가 책임을 졌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조 원장은 임명 발표 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서대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데 뿌듯함을 느꼈는데 젊은 외교관들을 양성할 뜻깊은 기회가 주어져서 보람되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외교부 안팎에서는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원칙과 소신이 뚜렷하다는 평을 받았던 조 원장의 복귀를 반기는 분위기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과 지난해 한일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 민간위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들어 “코드 인사가 아니냐”는 말도 없지 않다. 조 원장은 TF 활동 중 “속속들이 다시 들여다보니 위안부 합의에 정말로 문제가 많았다. 나도 외교부 출신이지만 어떻게 이런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주변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상준 기자조세영 국립외교원장 △서울(57) △신일고 △고려대 법학과 △주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 △주일본대사관 공사참사관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동서대 국제학부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실상 해산 수순에 접어들게 됐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한일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로 설립됐으며 이듬해 7월 개소식을 열었다. 사실 재단 폐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부터 논의됐다. 지난해 말엔 민간 이사진이 모두 사퇴했다. 최근 관련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일본이 재단을 위해 출연한 10억 엔(약 99억 원)을 정부 예산(양성평등기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여기에 재단 운영을 위한 자금이나 인건비, 건물 임차료가 월 수천만 원에 이르는 현실적인 문제도 겹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조속히 재단 해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 처리와 관련된 세부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관련 부처 간에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화해·치유재단 정관 33조에 따르면 해산을 위해서는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여가부 장관은 외교부 장관과 협의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26일 취임 인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산물인 화해·치유재단 처리 문제는 철저히 피해자 관점에서 하루속히 마무리짓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재단 해산 작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지만 여러 문제점은 남는다. 우선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2015년 한일 정부는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해 모든 전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기존의)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진 않겠다”고 했지만 향후 일본이 일방 파기를 주장할 수 있다.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의 처리 문제도 논란거리다. 이번 한일 회담에서 재단의 향방과 달리 10억 엔 반환은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은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치유금 지급 사업을 했고, 이미 생존 피해자 34명(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 시점 기준), 사망자 58명에게 총 44억 원을 지급한 상태다. 물론 10억 엔을 전액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해 이미 지급한 44억 원은 결과적으로 정부 예산으로 잡혀 있다. 10억 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해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전에 정부가 해당 방침을 외교채널을 통해 귀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 문제라는 큰 불이 있고, 북-미 관계에 숟가락을 얹고 싶은 일본으로선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깨져봐야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김하경 기자}

2박 3일 일정의 방북을 마치고 20일 오후 5시 36분경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로 향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입장한 문 대통령은 약 30분간에 걸친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나눴던 대화와 비핵화 협상, 종전선언, 북-미 대화 등에 대한 구상을 비교적 자세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간 대화가 재개될 여건이 조성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언제든 검증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핵심 의제였던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내용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사용한 ‘참관’이나 ‘영구적 폐기’라는 용어는 결국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폐기(CVID)’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와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언급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큰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유일한 풍계리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핵실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므로 언제든지 검증을 받을 수 있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소개했다. 국제기구를 통한 비핵화 검증에 김정은도 동의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대를 폐기한다면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도 못하게 되고 미사일을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며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미국 측에서도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종식시켜 나가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해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것 외에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문제’라며 우리와 논의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며 “그러나 북-미 대화가 순탄하지만은 않고 북-미 대화의 진전이 남북관계 발전과 연계된다는 사실에 인식을 같이하게 되면서 북한도 우리에게 북-미 대화의 중재를 요청하는 한편 비핵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석론’으로 상징되는 중재 역할이 비핵화 논의에서 주효했다는 자평이다. ○ “트럼프에게 전할 김정은의 메시지 있어” 방북을 마친 문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구두로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눈 바 있다”며 “(김정은과) 논의한 내용 가운데 합의문에 담지 않은 내용도 있다. 그 내용은 앞으로 제가 방미해 미국 측에 상세하게 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조치와 단계는 북-미 간에 협의가 돼야 할 내용들이다. 그래서 평양공동선언에 담을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우리가 사용하는 종전선언의 개념은 65년 전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 그해 안에 하기로 했던 전쟁을 종식하겠다는 선언이다.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설명했다.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다만 평화협정의 체결 시점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라고 못 박았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도 같은 개념으로 종전선언을 인식하고 있다”며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평화협정은 최종 단계에서 이뤄지게 된다. 그때까지 주한미군의 필요성이나 유엔군사령부(지위)는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에 대해선 “이번 남북관계(합의) 중 가장 중한 결실은 군사 분야 합의다. 정전협정 이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종전하는 데서 나아가 미래의 전쟁 가능성까지 원천적으로 없애는 일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담지 않았지만 구두로 정상 간에 합의된 사안들도 공개했다. 남북 국회 회담을 가까운 시일 안에 열기로 하고, 지방자치단체 교류 활성화에도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의 가동을 위해 북측에 ‘몰수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 위원장도 동의했다”고 했다. 이어 고려 건국 1100년을 맞아 12월 개최되는 전시회에 북측 문화재도 함께 전시할 수 있도록 북측이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의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하면서 북-미 협상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새롭게 전열을 정비한 양측 협상팀이 당장 다음 주부터 미국 뉴욕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수정 및 추가된 협상카드를 갖고 잇따라 회담에 나서게 된다. 특히 평양공동성명에 적시되지 않은 김정은의 ‘비공개 메시지’가 교착 상태였던 협상을 얼마나 뚫어낼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뉴욕, 빈에서 투 트랙 비핵화 논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9일 평양공동선언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성명에서 북한과의 투 트랙 협상을 제안했다. 다음 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별도로 초청함과 동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보낼 테니 실무회담을 하자고 한 것. 양측은 뉴욕 장관급 회담에서 큰 틀의 비핵화 로드맵을 논의하고, 빈에서는 실무대표급 회담을 통해 핵 사찰의 기술적인 세부 사항들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서울-평양-워싱턴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기존의 3각 협상 구도가 확장되면서 최고위급부터 실무 단계까지 다양한 수준의 협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협상 테이블에는 평양공동선언에 언급되지 않은 김정은의 비핵화 이행 조치 약속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에서 “미국과 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남북 정상이 논의했다고 명시했다. 남북 정상회담 전후로 이뤄진 양측의 물밑 조율 과정에서 영변 핵시설의 핵사찰을 포함한 ‘플러스알파’ 조치가 논의됐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백악관 기자들과 만나 “사흘 전 김 위원장으로부터 엄청난 친서(a tremendous letter)를 받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김정은이 편지에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IAEA 사찰을 언급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외교채널을 통해 이런 뜻을 전달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상응 조치’와 관련해서는 북-미 관계 개선 관련 부분이 눈에 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북-미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각적으로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관계 전환’이라는 단어를 두 차례 연속해서 언급했다. 관계 정상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북한은 미국의 적성국교역법 해제 및 테러지원국 리스트 제외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비건 특별대표 빈 체류, 주말부터 실무접촉 예상 북-미 협상 ‘2라운드’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협상에서는 난관이 여전하다. 북한이 핵 신고서 제출 대신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카드를 새롭게 꺼내 들긴 했지만, 양측이 요구하는 조치 및 보상의 순서와 수위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무엇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보상을 어떻게 ‘동시 행동’으로 연결시킬 것인지가 모호하다. “종전선언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및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의 대가”라고 주장해온 북한이 태도를 바꿨다는 정황은 아직 찾기 어렵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중 플루토늄을 생산해온 5MW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시설 등을 순차적으로 나눠서 ‘살라미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 조치라는 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며 “보상에 대한 서로의 인식과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실무협상을 통해 맞춰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과 빈에서 양측이 마주 앉아 보기 전에는 답을 내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비건 특별대표가 17∼21일 빈에서 진행되는 IAEA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이미 현지에 머물고 있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19일 “(빈에) 북측 대표를 초청했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빈으로 건너가 주말부터 양측의 실무협상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신나리 기자}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보다리 회동’이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면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백두산 방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20일 오전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백두산 정상에서 환한 표정으로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며 화합과 평화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백두산 천지는 1년에 맑은 날이 100일이 채 안 되는데 이날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빛이었다. 문 대통령은 직접 천지의 물을 떠 한라산에서 가져온 물과 합쳤고 김정은을 한라산에 초청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두 정상은 헤어지기 전 삼지연초대소 다리에서 수행원 없이 산보하며 ‘도보다리 회동’을 재현했다.○ “소원 이뤄졌다”,“사진 찍어 드리겠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 39분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떠나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평양 시민들이 길거리에 도열해 인공기와 한반도기, 조화를 흔들며 환송했다. 순안공항에선 공군 2호기를 타고 직선거리로 약 370km 떨어진 양강도 삼지연공항으로 이동했다. 삼지연공항의 활주로가 좁아 1호기 대신 기체가 작은 2호기를 이용한 것. 특별수행원들과 기자단은 북한의 고려항공 여객기로 따로 이동했다. 삼지연공항에선 김정은이 미리 와 영접했다. 두 정상은 자동차로 북한 측 정상인 장군봉(해발 2750m)까지 이동했다. 등산 마니아인 문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중국 쪽 백두산에 오를 때 나는 반드시 우리 땅으로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세월이 금방 올 것 같더니 멀어져 영 못 오르나 했는데 소원이 이뤄졌다”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또 “남쪽 국민들이 백두산 관광을 올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분단 이후 (백두산은) 남쪽에선 그저 바라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다”며 “오늘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론 남측 인원(사람)들, 해외동포들이 와서 백두산을 봐야 한다”고 화답했다. 김정은이 “백두산 천지 물에 붓을 담가 북남의 새로운 역사를 계속 써 나가자”고 하자 문 대통령은 웃으며 “제가 새로운 역사를 좀 썼지요.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도 다 하고”라며 말을 받았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는 문 대통령을 향해 “백두산에는 전설이 많은데 두 분이 오셔서 또 다른 전설이 생겼다”고 했다.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던 문 대통령은 결국 “여기선 아무래도 위원장과 함께 손을 들어야겠다”며 즉석에서 김정은의 손을 잡고 들어올리자 수행원과 기자단의 박수가 터졌다. 김정은은 “남측 대표단도 대통령을 모시고 사진을 찍어야죠. 제가 찍어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깜짝 제안을 했다. 남측 대표단은 “아이고, 무슨 말씀을…”이라며 웃으면서 말렸다.○ “서울 오시면 한라산 모시겠다” 제안도 문 대통령은 “오늘 천지에 내려가시겠느냐”는 김정은의 제안에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담가보고 싶다”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천지에 도착해선 미리 준비해 놓은 한라산 물이 담긴 생수통의 물을 덜어내고 천지 물을 손으로 떠 담는 합수의식을 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김정은에게 “서울에 답방을 오시면 한라산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문 대통령도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 서울로 오신다면 (한라산 방문으로) 답해야겠다”고 동의했다. 동행한 가수 알리는 두 정상 앞에서 진도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삼지연초대소로 이동해 김정은 내외와 마지막 오찬을 했다. 두 정상은 초대소 야외 다리에서 한동안 배석 없이 대화를 나눴다. 새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자연 속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4월 상회담 때와 유사해 ‘도보다리 회담의 재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오후 3시 반에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북에서 첫날 오찬을 제외한 모든 오찬·만찬(네 차례)을 김 위원장과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저녁 남측 인사끼리 하기로 했던 평양대동강수산물식당 만찬에도 깜짝 등장했다. 문 대통령이 “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대국민 보고에서 “천지에 올라 국민들이 북한 땅에서 백두산을 관광할 수 있는 시대를 하루빨리 열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백두산=공동취재단 /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신나리 기자}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협상이 펼쳐질 새로운 무대로 오스트리아 빈이 떠올랐다. 빈은 북-미 간 핵협상 장소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과거 북핵 검증을 맡았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본부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있다. 2015년 이란 핵협상(JCPOA)이 최종 타결됐던 자타 공인 세계의 ‘핵 사찰 수도’다. 미국이 북핵 실무협상 장소로 빈을 지목한 것은 비핵화 검증에 대한 압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협상이 진전될 경우 핵 사찰 절차를 염두에 둔 선정이라는 관측 가운데 북한이 사찰 구상을 일부 수용했다는 메시지라는 관측도 있다. 비건 특별대표의 상대역으로는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측 실무 협상팀을 이끌었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편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다음 달 10일부터 남북미 트랙 1.5(반관반민) 대화가 열릴 예정이다. 판문점에서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올해 3월엔 북측에서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이 참석한 트랙 1.5 대화가 있었으나 트럼프 행정부 관료와는 접촉하진 않았다. 이번 대화에서 북-미 관료의 접촉이 이뤄진다면 빈 채널에 이어 북핵 실무그룹 간 논의가 유럽 무대에서 동시다발로 열리게 되는 셈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남북 정상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19일 밝혔다.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란 전제가 붙었지만 4·27판문점선언에서 구체화하지 않았던 상징적인 남북 경협사업들을 명시한 것이다. 두 정상은 또 연내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 착공식을 하기로 합의했다. ○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경협 우선 과제’로 이번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경협은 두 번째 합의 사항으로 적시돼 있다. 판문점선언에선 남북관계 개선 관련 여섯 번째 합의로 등장했던 사안이 네 단계나 뛰어올랐다. 남북 정상 간 경협의 필요성과 이행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가 공동성명에 적시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여건만 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겠다고도 명문화했다. 금강산관광 사업은 2008년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전면 중단됐고, 개성공단은 2016년 2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문을 닫았지만 향후 비핵화 협상이 잘 풀리면 언제든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판단이 반영된 듯하다. 개성공단을 축으로 한 서해경제특구와 금강산∼원산으로 이어지는 동해관광특구 후속 논의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구상을 뒷받침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는 북한이 가장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경협 분야다. 리룡남 내각부총리는 18일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에게 “북남관계에서 철도 협력이 제일 중요하고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남북은 전염성 질병 유입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의료 협력 강화에도 합의했다. 환경 협력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산림 분야 협력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도 비쳤다.○ 美의 ‘경협 경계심’ 높아지나 문제는 남북 간 합의만으론 남북 경협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가 남아있는 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정상화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수시로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앞서 나갈 수 없고 둘은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며 속도 조절을 강조해 왔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이날 언급한 비핵화 조치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이행 기미가 없다고 판단하면 남북 경협에 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낼 수도 있다. 남북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선언에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란 단서를 붙였다. 현재로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경협 사업에 필수적인 대북제재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금강산관광 사업과 개성공단이 언제 정상화될지는 미국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미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전력과 석유 공급이 제재 위반인지를 두고 정부가 미측과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개소가 늦춰진 전례가 있다. 야당도 이 점을 파고들고 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도 받지 않고 납세자인 국민의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철도와 도로 연결 착공식을 연내에 하기로 못 박은 것은 초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철도 및 도로 연결이나 개성공단 재개 등은 현실적으로 비핵화 진전과 대북제재의 완화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평양=공동취재단 /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남북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별도 조항으로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공동선언에서 밝혔다. 이는 4월 판문점선언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 조항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세부사항으로 포함시킨 데서 한발 나아간 것이다. 김정은이 19일 평양공동선언 서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직접 밝힌 것도 이전에 없던 것이다.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도 공동성명에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는 문구는 있었지만 김정은이 육성으로 ‘핵무기나 핵 위협이 없도록 노력한다’고 발언한 적은 없었다. 4월 판문점선언 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은 ‘비핵화’의 ‘비’자는커녕 핵조차 언급하지 않아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번 평양공동선언은 남북 문화예술 등 소프트파워 교류를 앞세우고 군사적 긴장 완화나 안보 문제를 뒤로 했던 판문점선언과 달리 군사적 긴장 완화-남북 경협를 앞세운 것도 이전 선언과는 다르다. 판문점선언에서 ‘연내 추진’으로 시한을 못 박았던 종전선언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그 대신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취해야 할 ‘상응 조치’라는 조건부로 숨겨 뒀다. 향후 북-미 추가 협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동선언 서문에 민족자주원칙을 적시한 점도 눈에 띈다. 외부 요인에 휘둘려 한반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공교롭게도 13년 전 같은 날 발표된 2005년 9·19공동성명과도 비교가 된다. 북한은 당시 한반도 주변국인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과의 6자회담 결과 핵 계획 포기를 비롯해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를 약속하는 대가로 에너지 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평양공동선언은 북측이 조건부이지만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밝힌 만큼 북핵 불능화를 위한 실천적인 조치를 담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18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등 정상회담 대표단 영접을 위해 북한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이어 공식 권력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필두로 권력서열 3위인 최룡해 당 부위원장 겸 조직지도부장이 나란히 문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최룡해가 올해 펼쳐진 남북관계 무대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김영남 최룡해 옆에는 리수용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김수길 총정치국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능오 평양시당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장 등 7명이 레드 카펫 위에서 영접에 나섰다.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그리고 김정은을 자주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함께했다. 북한의 ‘경제사령탑’ 박봉주 내각총리(서열 4위)는 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문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김정은이 영접에 북한의 당정군 핵심들을 총출동시켰다는 점에서 ‘파격적 의전’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안보 및 대외 관계에 관련된 북한 핵심 인사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북한이 회담에 힘을 실으려는 의지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태운 ‘공군 1호기’가 막 착륙한 평양 순안공항. 주기장으로 향해 난 공항청사 유리문이 열리자마자 숨죽이고 있던 북한 주민들은 꽃술과 인공기, 한반도기를 흔들며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깜짝 등장’한 것. 김정은이 5·26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가을 중 평양을 방문하면 성대하게 맞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 문 대통령에게 “각하” 호칭에 첫 예포 발사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려오자 ‘왼쪽, 오른쪽, 왼쪽’ 순으로 볼을 맞대며 포옹하는 스위스식 인사법으로 적극 환영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때도 영접을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포옹을 했지만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파격 의전은 우리 군 의장대 격인 북한군 명예위병대 사열 및 분열에서 절정에 달했다. 명예위병대장은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해 정렬하였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적국 군통수권자에게 ‘각하’라는 최고 존칭을 쓴 것.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당시엔 ‘노무현 대통령’이라고만 칭했다. 통상 명예위병대장이 북한 최고지도자 이름 및 직함을 먼저 외친 뒤 외국 국가원수 이름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식으로 사열 및 분열 보고를 해온 것과 달리 이날은 김정은 이름 및 직함은 아예 외치지 않았다. 남측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만 집중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환영행사 땐 볼 수 없었던 예포 21발도 이날 처음 발사됐다. 앞선 4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선 명예위병대 및 한국군 의장대 사열은 진행됐지만 외국 국가원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포 21발 발사는 남북 모두가 생략했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도 남한을 정상국가로, 남한 정상은 정상국가 정상으로 예우할 테니 남한이 나서 미국을 설득하고 종전선언을 이끌어내 북한도 정상국가가 되게 해달라’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환대라고 볼 수 있다”며 김 위원장식 의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평양 시민들의 열렬한 환대에 감사드린다”며 “정말 기대 이상으로 환대해 주셨다”고 했다. 올해 대화 무드로 돌아선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환대하면서 ‘정상 국가’ 의지를 안방에서 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1년 말 집권 이후 사실상 ‘중량감 있는 외국 정상’의 첫 평양 방문인데, 적극적인 환대를 표시하면서 세계에 “평양 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환대는 북-미 평양 회담으로 가기 위한 북측의 전략적 노림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내 편 만들기’ 작전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은 “북한은 이번에 한국을 확실한 자기 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향후 미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협상 레버리지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남북 정상 카퍼레이드, 예우 가장한 선전?이날 북한이 문 대통령이 공항에서 백화원 영빈관으로 가는 평양 시내 거리에서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환영 인파를 동원해 카퍼레이드를 한 것을 두고는 파격 의전을 가장한 북한 체제 선전 전략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정상이 각자 차량에서 내려 북측이 준비한 벤츠 리무진 오픈카로 갈아탄 곳은 평양 도심 초입에 위치한 3대 혁명전시관 앞이었다. 카퍼레이드 출발점이 된 이곳은 북한이 사상·기술·문화의 3대 혁명노선 성과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이어 영생탑을 지나 초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 여명거리도 거쳤다. 김정은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여명거리는 지난해 4월 완공된 뒤 북한의 화려한 발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두 정상이 탄 차량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도 지나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카퍼레이드 구간을 비롯해 총 4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첫날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공동취재단 / 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 기자}
외교부가 내전으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리비아에 체류 중인 한국인 전원에 대해 여권 무효화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정부가 정세 불안 지역에 가지 말라고 여행금지나 철수권고 조치를 한 적은 있지만 이보다 수위가 높은 여권 무효 조치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수의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외교부는 리비아 전역에 체류 중인 한국인 36명에 대해 다음 달 여권 무효화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리비아 내 무장세력 간 유혈충돌이 격화되면서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국인들이 업무 등을 이유로 체류를 고집하자 여권 무효화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게 된 것. 외교부는 이후에도 계속 체류하면 강제 소개 조치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에는 7월 초 무장단체에 납치된 한국인 남성 1명도 여전히 억류돼 있다. 정부가 물밑 교섭을 통해 구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리비아 당국과의 접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피랍자의 신속하고 안전한 구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위험에 노출돼 있는 다른 국민들도 보호해야 한다”며 “출국과 철수를 강하게 권고하고 있지만 실행에 어려움이 있어 1단계 조치로 여권을 무효화해 출국을 강제로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출하기 전까지 억류자 여권은 무효화하지 않기로 했다. 여권법 17조는 천재지변, 내란, 폭동, 테러 등으로 국민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 또는 체류하는 것을 중지할 필요가 있을 때 외교부 장관이 여권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 체류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