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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 속에서 요즘의 ‘모래시계 세대’ 또는 ‘386세대’는 그리 매력적인 주인공이나 대상은 아니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등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의 저항뿐 아니라 그 이후의 지리멸렬함까지, ‘이미 잔치가 끝났기’ 때문이다. 창작자 입장에선 마치 청순하게 데뷔한 걸그룹을 섹시한 이미지로 바꿔 성공시킨 뒤 ‘이젠 어떻게 변신시켜야 하나’를 고민하는 연예기획사 사장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소설에선 1980년대의 기억을 곱씹는 후일담 소설이 이따금 나온다. 이들 소설은 한때 역사의 주체에서 일상의 장삼이사로 전락한 이들의 화려한 추억과 씁쓸한 현재를 담았다. 후일담 소설 계보의 마지막 자락을 차지하는 ‘레가토’(권여선·2012년)는 1980년대 농활과 데모를 거치며 운동권이 돼 가는 청년들의 모습과 유명 정치인, 출판사 사장, 국회의원 보좌관 등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열정을 빛내던 그들은 “늙은 인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럭저럭 조달하며 사는 데 익숙해진 존재”가 돼 버렸다. 최근 소설에서는 386세대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소외됐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차남들의 세계사’(이기호·2014년)의 나복만, ‘투명인간’(성석제·2014년)의 김만수 등이다. 이들은 역사의 주체가 아닌 ‘고통과 슬픔의 주인공’이다. 문학평론가 서희원 씨는 “경제개발과 군사정권의 희생양이지만 민주화의 주역들은 아닌 인물들, 당대의 민중이지만 주목받지 못한 채 형벌처럼 가난한 노동을 이어왔던 인물들이 최근 소설에 의해 비로소 이름을 얻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도 ‘속물이 돼 버린’ 386세대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매력이 없다. ‘속물 386’을 다룬 영화 중 가장 알려진 최근작이 ‘바람난 가족’(2003년)일 정도다. 반면 386세대가 이상을 잃지 않았던, 즉 주인공의 매력을 갖고 있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종종 등장한다. 1000만 관객 영화 ‘변호인’(2013년)을 비롯해 ‘화려한 휴가’(2007년) ‘오래된 정원’(2007년)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가 386세대의 ‘이후 모습’을 다룰 때도 ‘괴물’(2006년) 속 ‘남일’(박해일)처럼 ‘도바리’(도망)를 치거나 화염병을 던지는 80년대식 모습에서 매력을 얻는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386세대가 자본가, 소시민, 룸펜 등으로 변화한 뒤에 주역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변화 이후의 이 세대가 마주한 사회를 제 가치대로 조명하기에는 성찰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송희영)와 한국기자협회(회장 박종률)는 12일 “프랑스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는 언론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야만적인 폭력 행위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라고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두 협회는 성명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며 언론과 언론인을 상대로 한 테러는 어떤 이유로든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세계적으로 언론인 101명이 피살됐지만 이러한 시도가 결코 ‘무력이 펜을 꺾을 수 없다’는 불변의 진실을 위협할 순 없다”며 “반인륜적인 테러에 맞서 언론 자유의 가치를 함께 지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결국 배우 송일국이 머리를 숙였다. 그의 매니저를 어머니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이 보좌관으로 등록해 세금으로 월급을 줬다는 의혹을 반박한 아내 정승연 판사의 글이 물의를 빚자 사과한 것. 송일국은 12일 소속사를 통해 “이 일의 모든 발단은 저”라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깊은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의혹에 대해선 “7년 전 매니저가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바람에 (어머니 김 의원의) 인턴이 겸직도 가능하다고 하고 별도로 급여를 지급하면 문제가 안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정 판사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상처를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공직자로서 사적인 감정을 앞세우는 우를 범했다”고 사과했다. 정 판사는 앞서 8일 페이스북에 의혹 제기를 반박하면서 “인턴에 불과했다” “알바생에 불과했으니 4대 보험 따위 물론 내주지 않았다” 등의 거친 표현을 써 누리꾼의 비판을 받았다. 인터넷에선 송일국의 사과에 대해 “발 빠르게 사과하는 것을 보니 진심이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으나 “‘땅콩 회항’ 사건 뒤 섣부른 변명이 더 큰 화를 부른다는 교훈을 얻은 것일 뿐”이라는 글도 올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치정멜로 영화 ‘인간중독’과 애니메이션 ‘뽀로로 극장판’의 공통점은? 두 영화는 극장보다 인터넷TV(IPTV)를 비롯한 주문형비디오(VOD) 시장에서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5월 개봉한 ‘인간중독’은 144만 관객이 들어 연간 박스오피스에서는 41위에 그쳤지만 IPTV 3사(KT 올레TV, SK BTV, LG tvG)의 지난해 이용 횟수 등에서 10위 안팎의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 올레TV에 따르면 이 영화의 이용 횟수는 60만 건이 넘는다. 다른 업체와 모바일까지 감안하면 극장 밖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극장 관객 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초 개봉한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 역시 극장 관객 92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61위에 그쳤지만 지난해 올레TV 기준 이용 횟수만 50만 건이 넘었다. VOD 시장에서 영화의 인기는 박스오피스 순위와 비례하지 않는다. ‘역린’(384만 명)처럼 기대에 비해 부진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가 VOD 이용 횟수로는 변호인(1137만 명)을 앞섰다. 문지형 올레TV 홍보팀 과장은 “VOD 영화 시청은 변수가 많다. 극장 화제작이 선호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 못지않게 콘텐츠의 가격이나 장르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VOD는 통상 극장 동시상영작은 1만 원, 극장에서 내린 지 1년 이내는 4000원, 이후에는 더 내려간다. ‘역린’처럼 극장에서 뜨진 못했어도 인지도 있는 스타(현빈)가 출연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영화들이 VOD 시장에서 환영받는다는 것. 또 어린이를 겨냥한 애니메이션, 성적 표현 수위가 높은 멜로나 에로 영화도 인기 있다. 특히 19금 성인용 콘텐츠의 경우 IPTV뿐 아니라 ‘손안의 극장’ 모바일TV에서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모바일VOD 이용자가 많은 동영상 서비스 업체 ‘티빙’에서는 지난해 영화 콘텐츠 중 ‘인간중독’과 ‘마담뺑덕’이 매출액 순위로 각각 1위와 6위에 올랐다. ‘올레TV 모바일’에서는 ‘인간중독’(2위) ‘황제를 위하여’(3위) ‘맛 무삭제판’(4위) ‘밀애’(7위) ‘화려한 외출’(9위) 등 19금 영화가 대거 상위권을 차지했다. 2014년 개봉한 에로영화 ‘맛 무삭제판’과 ‘밀애’ 등은 극장 개봉 시 관객이 4000∼5000명에 그쳤으나 VOD 이용 횟수는 수십만 건에 달한다. 업계에 따르면 2011년 1300억 원대 규모였던 국내 VOD 시장은 지난해 3500억 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VOD 시장의 급성장은 영화 산업의 변화를 부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극장 개봉 없이 IPTV에서 개봉하는 영화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워너브러더스, 소니픽처스 등 해외 직배사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지난해 하반기 IPTV로 개봉한 ‘22 점프 스트리트’ ‘노 굿 디드’ ‘타미’ 등은 각각 북미 박스오피스 1위작이며, ‘스트레스를 부르는 직장상사2’의 경우 북미 개봉 시기와 비슷하게 12월 IPTV로 개봉했다. 또 VOD 시장을 겨냥해 영화 개봉작이 늘고, 인터넷 때문에 퇴출 위기에 놓였던 에로 영화도 활기를 띠고 있다. 2010년까지 400편 안팎이었던 영화 개봉작은 2013년 907편, 2014년 1117편까지 늘었다. 특히 지난해 한국 영화 개봉작 232편 중 에로 영화는 40∼50편이나 된다. 한 수입 배급사 관계자는 “극장을 거치지 않은 영화도 VOD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한국이 VOD 테스트 마켓으로 여겨지고 있어 앞으로 영화 제작과 유통의 변화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구가인 comedy9@donga.com·조종엽 기자 }
상금 1억 원을 받는 TV 프로그램 기획안 공모 당선작이 나왔다. 케이블·위성채널 KBSN은 “시청자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대학생 함초롱 씨(26)의 기획안 ‘5천만 주주 프로젝트’를 상금 1억 원을 받는 1등으로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이 기획안은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에 집단 투자하고, 그 진행 과정을 프로그램에 담는다는 내용이다. 2등(상금 3000만 원)에는 서근석 씨(33)의 ‘만원의 기적’이, 3등(1000만 원)에는 안효은 씨(27)의 ‘300줄을 당겨라!’가 뽑혔다.}

엉덩이를 앞뒤로 흔드는 것은 안 되지만, 빙빙 돌리는 것은 된다? 걸그룹 ‘EXID’의 ‘위아래’가 새해 첫 주(지난해 12월 28일∼올해 1월 3일) 가온차트 4개 부문(디지털종합, 다운로드, 스트리밍, 소셜)에서 1위에 올랐다. ‘위아래’는 지난해 8월 발표된 곡. 인기 순위가 통상 곡 발표 초기에 상승하다가 하락하는 것과 달리 ‘위아래’는 발표 3개월 뒤인 11월부터 뒤늦게 급속도로 상승하는 ‘차트 역주행’ 현상을 보였다. 여러 행사에서 선보인 수위 높은 섹시댄스를 관객들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직캠’ 영상이 호응을 얻은 덕이다. 이들의 섹시댄스는 가사 “위 아래, 위 위 아래”에서 절정을 이룬다. 행사에선 이 대목에서 앞뒤로 엉덩이를 흔든다. 하지만 최근 출연한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선 살짝 원형으로 돌리는 정도에 그쳤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동작 등도 순화됐다. EXID는 지상파인 점을 감안해 자발적으로 안무 수위를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안무 하나하나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청소년의 정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수준인지를 심의한다”며 “EXID의 경우 행사 안무가 그대로 방송됐다면 시청자 민원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고 법정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에는 지상파 3사의 가요 프로그램이 모두 방송통신심의위로부터 행정지도인 ‘권고’를 받았다. ‘걸스데이’와 ‘AOA’가 바닥에 엎드려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면서 튕기는 동작, 바닥에 누운 채 허벅지와 가슴 등을 훑는 동작, 다른 멤버의 손을 엉덩이에 올린 채 엉덩이를 돌리는 동작 등을 방송한 것이 문제가 됐다. 방송사도 심의를 피하기 위해 카메라워크를 통해 춤 동작의 수위를 낮춘다. PD들이 일부 춤동작을 멀리서 밋밋하게 잡거나 춤과 관계없는 부위를 보여주면서 ‘덜 섹시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신곡 ‘위글위글’의 안무는 가사 그대로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씰룩” 흔드는 춤동작을 강조했다. 지상파는 이 동작을 여러 명이 한 화면에 나오는 풀숏(머리부터 발끝까지 인물 전체를 보여줌)으로 보여주거나 허리 이상의 상반신을 보여준다. 물론 소속사가 유튜브에 공개한 ‘오리지널’ 안무 영상은 엉덩이 동작이 매우 강조돼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엉덩이를 앞뒤로 흔드는 것은 안 되지만, 빙빙 돌리는 것은 된다? 걸그룹 ‘EXID’의 ‘위아래’가 새해 첫 주(지난해 12월 28일~올 1월 3일) 가온차트 4개 부문(디지털종합, 다운로드, 스트리밍, 소셜)에서 1위에 올랐다. ‘위아래’는 지난해 8월 발표된 곡. 인기순위가 통상 곡 발표 초기 상승하다가 하락하는 것과 달리 ‘위아래’는 발표 3개월 뒤인 11월부터 뒤늦게 급속도로 상승하는 ‘차트 역주행’ 현상을 보였다. 여러 행사에서 선보인 수위 높은 섹시댄스를 관객들이 찍어 인터넷에 올린 ‘직캠’ 영상이 호응을 얻은 덕이다. 이들의 섹시댄스는 가사 “위 아래, 위 위 아래”에서 절정을 이룬다. 행사에선 이 대목에서 앞뒤로 엉덩이를 흔든다. 하지만 최근 출연한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선 살짝 원형으로 돌리는 정도에 그쳤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동작 등도 순화됐다. EXID는 지상파인 점을 감안해 자발적으로 안무 수위를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심의원회 관계자는 “안무 하나하나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청소년의 정서를 해할 우려가 있는 수준인지를 심의한다”며 “EXID의 경우 행사 안무가 그대로 방송됐다면 시청자 민원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고 법정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에는 지상파 3사의 가요 프로그램이 모두 방송통신심의위로부터 행정지도인 ‘권고’를 받았다. ‘걸스데이’와 ‘AOA’가 바닥에 엎드려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면서 튕기는 동작, 바닥에 누운 채 허벅지와 가슴 등을 훑는 동작, 다른 멤버의 손을 엉덩이에 올린 채 엉덩이를 돌리는 동작 등을 방송한 것이 문제가 됐다. 방송사도 심의를 피하기 위해 카메라워크를 통해 춤 동작의 수위를 낮춘다. PD들이 일부 춤동작을 멀리서 밋밋하게 잡거나 춤과 관계없는 부위를 보여주면서 ‘덜 섹시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신곡 ‘위글위글’의 안무는 가사 그대로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씰룩” 흔드는 춤동작을 강조했다. 지상파는 이 동작을 여러 명이 한 화면에 나오는 풀쇼트(머리부터 발끝까지 인물 전체를 보여줌)로 보여주거나 허리 이상의 상반신을 보여준다. 물론 소속사가 유튜브에 공개한 ‘오리지널’ 안무 영상은 엉덩이 동작이 매우 강조돼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이념·세대 간 논쟁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현대사와 관련해 ‘불티가 날아들기를 기다리는 기름 창고’와 같은 상황임을 보여 준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아직도 현대사에 대해 합의된 기억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시장’ 흥행 의미를 사회·심리학자들에게 들어 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을 배경으로 ‘당시 희생으로 지금의 한국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메시지가 현 정치 상황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커졌다. ‘변호인’ ‘광해’도 그렇지만 영화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정치적 논쟁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영화는 오락으로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중장년 관객의 호응은 현재 세대가 과거를 망각하는 것에 대한 과거 세대의 집단 무의식적 반격으로 보인다. 복합적 과거의 결과로서 현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집단적 기억을 합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거울 효과’가 50대 이상 세대에 심리적 치유 기능을 하는 것 같다. 거울효과는 자신과 공통점을 지닌 대상에게 호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것인데 영화를 통해 무의식 속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치유하는 셈이다. 특히 50대 이상은 그동안 적절히 평가받지 못했던 생애와 가치를 영화가 긍정적으로 인정해 줌으로써 오래된 응어리를 풀어 낼 수 있다. 정양환 ray@donga.com·조종엽 기자}

《 실적 깎이는 것, 승급 못하는 것, 그래서 도태되고 무시당하는 것이 너무 무섭다. 돈만 아니면, 자식만 아니면 여기 있고 싶지 않다. -임원급 직원그 상사가 부르면 몰래 소형 녹음기를 켠다. 끝없이 이어지는 폭언과 애매한 업무 지시를 모두 녹음한다. 나중에 녹음된 내용을 혼자 들으며 ‘내가 왜 이렇게 살지’라고 생각한다. 왜, 언제부터 녹음을 시작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30대 후반 직원야근과 특근만 반복될 뿐 주말이 없다. 월요일 오전까지 보내라던 자료를 주말 내내 밤새워 해놨는데 막상 월요일이 되면 일언반구 말이 없다. 가끔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공황장애 증세로 진단돼 약물 치료를 받는다. -30대 후반 직원 》 이들은 모두 취업준비생들이 선망하는 국내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를 다닌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이 있다. 정기 건강검진 등 사원 헬스케어를 제공해온 이 회사가 임직원들의 심리적 건강까지 담보하기 위해 2012년 신설한 곳이다. 이곳을 찾은 임직원들의 얼굴은 엘리트 화이트칼라의 모습과는 달랐다. 몇 시간이고 말이 없거나 울거나 욕설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 엘리트 화이트칼라의 그림자 14일 기자와 만난 김주영(가명·여) 씨는 사내 정신건강의학과 클리닉의 존재를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본사 안에서야 ‘쉬쉬’ 하는 일이죠. 오히려 지인들이 ‘너희 회사에는 정신상담센터가 있다며? 좀 이상해 보이면 불러서 상담 좀 받아보자고 한다며?’라고 하는데, 제가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쎄’했습니다.” 김 씨는 클리닉을 찾은 직원 중 한 명이다. 블루칼라 근로자와 다를 바 없이 이 시대의 화이트칼라는 치열한 생존 경쟁 아래 위협받고 있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일류 대기업 직장인, 공기업 직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올해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소속 연구원인 김인아 연세대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업무 스트레스 등 ‘산업재해로 인한 자살’로 인정해 달라고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156명 중 가장 많은 44명(28%)이 ‘관리자’였다. 화이트칼라들이 말하는 회사는 ‘서로를 밟기 위해 혈안이 된’ 전쟁터였다.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모인 곳에서 ‘평판 관리’ ‘내부 영업’ ‘라인 타기’는 경쟁 종목처럼 되어 목을 조여 왔다. 삼성전자 인사 평가에서 단위 팀원 중 10%는 무조건 최하점인 D를 받게 돼 있다. D가 떨어지는 순간 똑같이 입사한 동기들보다 승격은 늦춰지고 ‘출세’는 영영 끝이다. “평가 포인트와 승격은 돈과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평생 경쟁만 하고 결국 꼭대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상사가 평가하는 것들에 따라 자기 삶의 가치를 매기게 되는 거죠.” 김 씨의 말이다. 그 역시 ‘라인’을 만들려던 상사에게 응하지 않다가 결국 승격이 뒤처졌다. 자신의 험담까지 전해 들은 끝에 상담실을 찾았다. 금융계 증권 투자 엘리트들도 매일이 살얼음판이긴 마찬가지다. ‘장’이 열려 있는 동안 트레이더(주식, 외환, 채권 등을 거래하는 투자자)들은 하루 종일 ‘미친 사람처럼’ 욕을 하며 일하거나 점심도 앉은 자리에서 때우며 눈앞의 모니터를 좇는다. 해외 동향 하나를 놓쳐도 하루아침에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한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는 박모 씨(29)는 “모 대기업 자산운용은 주식 담당 매니저 한 명이 굴리는 돈이 수천억 원”이라며 “한국 주식시장을 닫아도 외국 장이 열리니까 자기가 맡고 있는 관련주가 있으면 밤낮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니 사람이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 아버지들이 위험하다 회사 내에서 어렵사리 관리자 자리까지 올라간 40, 50대 화이트칼라는 이후 커리어가 좌절되거나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스스로 무너지기 쉽다. 공기업 탐사 과장이었던 A 씨(사망 당시 40세)는 2011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 2년 전, 동료들 사이에서 기피 부서였던 중동탐사팀으로 배정됐다. 열악한 팀에서 밤새워 일하며 버텼지만 팀장마저 팀에서 나가버린 뒤 불면증과 불안, 망상 증상을 보였다. 회사 동료에겐 “사표 쓰고 싶다”고 하면서도 아내에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A 씨는 자살 한 달 전부터 휴일에도 방에 혼자 앉아 있었고 결국 2011년 6월 2일 중동 출장 통보를 받은 다음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진하 연세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경제위기와 경기침체,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던 시기부터 관리자 가운데 자살자가 급증했다. 2007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관리자 자살자 수가 3.7명에 그쳤으나 이듬해인 2008년 20.9명, 2009년 32.4명으로 크게 늘었다. 책임 소관이 넓어지고 그만큼 회사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중견급 이상 관리직은 회사의 감사를 받거나 사생활을 조사당하는 것 자체가 우울증이나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 증권업계 대기업에서 마스터 PB(자산관리자)로 일해 온 B 씨(44·여)는 2012년 사생활 문제를 명목으로 본사로 호출돼 감사인에게 조사를 받았다. 업무와 무관한 사생활 문제였음에도 이틀에 걸친 집중 조사는 B 씨에게 자괴감과 수치심, 커리어 단절에 대한 공포를 유발했다. B 씨는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산업재해 피해자로 인정됐다.곽도영 now@donga.com·조종엽 기자}

《 2012년 겨울 지하철 서울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김건희 씨(32·극단 ‘배우는 사람’ 대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던 노숙인이 점차 선로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발견했다. 김 씨는 그를 붙잡은 뒤 마침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갖고 있던 귤을 건넸다. 겉에 웃는 얼굴을 그려놓은 귤이었다. “선물은 사람한테 주는 것 아니오….” 자신이 짐승처럼 느껴져 죽으려 했다던 그 노숙인은 “나도 사람이니까 살아야겠네”라며 김 씨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김 씨는 이후 귤에 받는 사람의 캐리커처를 그려 보육원, 소년원생, 노숙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이처럼 지지와 공감의 작은 표시가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3년 자살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징후를 보인다. 연령대별 특징도 있다. 10, 20대는 부모에게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을 하거나 연예인의 자살 뉴스나 기사를 검색하는 경향이 있다. A 씨(22)는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 사진을 자살한 해외 록 가수의 사진으로 바꾸고 “나의 우상은 록의 선구자였지만 그의 생은 외로웠다. 나도 외롭다”라는 글을 남겼다. A 씨는 얼마 뒤 목숨을 끊었다. 다양한 자살 징후를 일반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평소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 자살할 사람은 미리 말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자살 징후를 그냥 넘기기도 한다. 복지부의 2013년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자살한다고 위협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살하는 경우는 드물다’라는 의견에 답변자의 절반 가까이(47.7%)가 ‘그렇다’고 답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살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의 자살 위험은 실제로 높다”며 “자살과 관련된 표현은 지나가는 말로 치부하지 말고 ‘구조 요청 신호’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변인이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 “요즘 무슨 일 있어?”라고 묻고 직접 만나야 한다. 이명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은 “이때 말을 잘 해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잘 듣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제대로 전해야 한다. 6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상담전화(마음이음)로 50대 후반의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혼 뒤 외로움과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 생업이던 택시 운전도 그만뒀고, 자식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상담원이 자살 생각을 되돌린 말은 대단한 명언이 아니라 “정말 많이 힘들고 외로웠겠다”는 공감과 위로의 말이었다고 한다. 이 남성은 매주 한 번씩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고 생업을 다시 시작했다. 섣불리 상대방의 마음을 모두 이해한다고 단정하거나 “마음의 문을 열라”고 강요하는 것도 오히려 대화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올 7월 연인과의 결별로 자살을 고민하던 20대 여성이 자살예방센터에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원은 “100%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복잡한 심정이 느껴진다”고 솔직히 말했다. 해당 여성은 “‘생명은 소중하다’는 이야기로 나를 설득할 줄 알았는데 내가 힘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 주려고 해서 고맙다”고 말했다. 설교조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 ‘너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자살하려는 생각을 자극할 수 있다. 무작정 ‘낙관적으로 생각하라’는 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정한 단어나 문장이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조언보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자살예방행동포럼(LIFE)의 이명수 운영위원장은 “살아가면서 심폐소생술을 실제로 해볼 가능성보다 주변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을 도울 가능성이 더 높다”며 “자살예방센터 등에서 그들을 돕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권하는 것이 좋다. 복지부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를 이용하면 된다. 보건복지콜센터(129)로 전화하면 각 지역의 정신건강증진센터로 연결해 준다.▼ “왜 죽고 싶은지 얘기할때 말허리 잘라선 안돼” ▼현장서 자살 기도자 만나는 사람들 “설득-조언은 역효과… 잘 들어줘야”“자살하려는 사람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죠.” 서울 마포대교를 담당하는 경찰관,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팀장 등 자살 기도자를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경청(傾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월 어느 날 오전 2시경 마포대교 남단 부근 다리 위에서 30대 중반 여성이 난간을 붙잡고 울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오희철 경위(54)가 출동해 여성을 난간에서 떼어냈지만 이 여성은 “내가 죽으려는데 왜 너희들이 말리느냐”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여차하면 다시 난간으로 달려갈 것처럼 보였다. 순찰차에도 타지 않겠다고 했다. 오 경위는 마포대교 남단에서 북단까지 함께 걸어가며 이 여성의 사연을 계속 들어줬다. 지병에다 애인과의 이별까지 겹쳐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한다. 이 여성은 마포역에 도착한 뒤 “다 털어놓으니 기분이 나아졌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오 경위는 “경험상 ‘소중한 생명을 왜 버리려고 하느냐’ ‘가족도 있는데 왜 죽으려고 하느냐’는 말은 별 도움이 안 된다”며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왜 죽으려고 하는지를 다 들어주고 그에 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경청 다음이라는 얘기다. 경찰관과 공감대가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간다고 한다. “말을 많이 한다고 마음이 통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경찰관들은 평소 달변인지 눌변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오 경위와 같은 지구대에 근무하며 마포대교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는 일이 잦은 이정남 경위(53)는 스스로 말재주가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경위는 “상대와 내가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며 “들어주지 않는데 나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은 역효과만 낸다”고 말했다. 통상 경찰관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사람이 다리 난간을 넘어가 있는 급박한 상황이 많다. 경찰은 자살 기도자가 일단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역할까지만 한 뒤 자살 기도자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 연결해 상담을 받도록 한다. 2005년부터 자살 상담을 하고 있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이구상 팀장은 “어떤 내담자든 적어도 15분 이상은 충분히 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 기도자가 무슨 말을 하든 실컷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상담원은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 팀장은 “자살 기도자들은 자신이 처한 문제를 상담원이 대신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다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두 번째로 통근시간이 긴(평균 56분) 나라. 한국 사회의 직장인들은 이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할까. 본보 취재팀은 10월 30일부터 일주일간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사는 남녀노소 직장인 159명(평균 나이 37세)에게 ‘나의 통근길’에 대해 물어봤다. 김대리(가명·37) 씨는 이 설문에서 나온 응답의 평균치로 도출한 인물이다. 기사에 묘사된 김 씨의 출근길은 이달 17일 취재팀이 실제 출근시간대 주요 ‘지옥철’ 노선들을 다니며 목격한 장면들이다. 이와 함께 취재팀은 한국스마트카드사·한국교통연구원과 함께 ‘2014 서울 및 수도권 출근 흐름도’를 분석했다. 통근 현황은 10월 29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시민들이 서울 및 수도권 지하철을 타고 내린 기록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괴롭고 숨막히는 ‘지옥철’ 월요일 오전 8시 9분. 김대리 씨는 앞사람이 멘 배낭을 안다시피 한 자세로 2호선 ‘지옥철’에 끼여 있었다. 숨이 막혔다. 열차가 신림역에 섰지만 이미 더이상 사람이 탈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자 승강장 앞에 양쪽으로 서 있던 사람 대여섯 명이 안간힘을 쓰며 비집고 들어왔다. 마지막에 탄 누군가가 지하철 문 위 노선도 판을 한손으로 붙들고 몸을 전동차에 밀어 넣었다. 한껏 힘을 준 손가락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여성 한 명이 “죄송해요, 내릴게요”라며 안쪽에서 밀고 나왔지만 결국 내리지 못한 채 문은 닫혔다. 직장인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통근시간에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41%(65명)만 ‘만족한다’고 답했다. ‘보통’이 25%(40명), ‘불만족(너무 길다)’은 34%(54명)로 3분의 1을 차지했다. 출근길에 가장 힘든 점으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혼잡한 교통’(45%·72명)을 꼽았다. 사람이 가장 붐비는 일명 ‘지옥철’ 역은 승차하는 쪽과 하차하는 쪽에 따라 달랐다. 출근시간대 가장 많은 승객이 탄 곳은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신림역(3만1099명)이었고 가장 많은 승객들이 내린 곳은 금천구 가산동의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4만4482명)이었다. ○ 허겁지겁 출근길 강남역 인근의 회사에 다니는 김 씨는 이날 오전 6시 40분 알람에 맞춰 눈을 떴다. 월요일은 주간회의가 있어 8시 반까지 출근해야 한다. 씻고 옷을 입은 뒤 아침식사로 때울 시리얼 바를 집어 들고 김 씨는 집을 나섰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도 변두리 언덕배기 빌라에 사는 김 씨는 마을버스로 목동역까지 간 뒤 지하철을 탄다. 회사 책상에 앉기까지는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응답자 70명(44%)이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92명(58%)은 오전 7시 이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159명 중 10명만이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직장을 두고 있었다.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은 40명이었다. 나머지 109명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다고 답했다. 출근 소요시간이 30분 이상∼1시간 미만인 응답자가 72명(45%)으로 가장 많았다. ‘수능 문제 오류 논란’ ‘슬픔의 김자옥 빈소’… 영등포구청역까지는 스마트폰을 들고 들여다볼 공간 정도는 있었다. 김 씨는 봉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아침 뉴스를 훑어봤다. 옆에 있는 한 여성은 아직 마르지 않아 물기가 밴 머리에 선 채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출근길에 많이 하는 일’ 1위로는 ‘뉴스 확인’(62명·39%)이 꼽혔다. ‘수면’(22명·14%)이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모든 연령대가 출근길에 뉴스를 가장 많이 보는 반면 40대 응답자 중에서는 ‘라디오 청취 및 음악 감상’을 하는 직장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7시 55분 영등포구청역. 환승한 2호선 지하철에도 자리는 없다. 앞에 앉아 있는 승객 7명은 모두 자고 있다. 넥타이에 검은 정장 차림의 30대 남자는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그 위로 고개를 떨어뜨렸고, 파마머리 아주머니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잔다. 사람들 틈 어딘가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서 있는 사람들이 눈길을 보냈다. 통근시간이 줄어든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가장 많은 답은 ‘수면’(66명·42%)이었다. 다들 잠이 모자란 것이다. ‘운동’(46명·29%), ‘개인 취미생활’(26명·16%)이 뒤를 이었다. ○ ‘지옥철’ 떠나지 못하는 이유 신림역∼강남역. 최악의 난코스가 시작됐다. 사람들 틈에 끼여 있느라 스마트폰을 꺼내 볼 공간도 없었다. 낙성대역쯤 오니 승강장 줄 맨 앞에 있던 사람들이 지하철 타기를 포기하고 지옥철 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이쿠” “죄송합니다”라는 말들이 배경음악처럼 들려왔다. 단순 ‘승차∼하차’ 구간의 쌍을 지었을 때는 신림역에서 타서 강남역에서 내린 승객이 2346명으로 가장 많았다. 7호선 ‘광명사거리역∼가산디지털단지역’ 구간을 제외하고 승객 최다 구간 10위가 모두 2호선 일부 구간(신림∼잠실)에 집중돼 있었다. 김 씨는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마을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들어갈 때마다 직장 근처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동료 사원 권모 씨가 미칠 듯이 부러웠다. 아내와 아이가 있으니 자취는 못 하겠고, 잠이라도 더 잘 수 있게 역세권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목동 역세권 집은 지금의 수입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다른 동네로 옮기자니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때문에라도 교육환경이 나은 이 동네에 있긴 해야 할 것 같았다. 통근시간에 불만이 있는데도 이사나 이직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다수의 응답자가 ‘경제적 이유’(43%·68명)를 꼽았다. ‘자녀 교육 조건 때문에’와 ‘직업 적성이 맞아서’가 13명씩 2위로 꼽혔다. 8시 28분. 강남역을 탈출한 김 씨는 회사 책상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회의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녹초가 된 것 같았다. 지하철 안 모니터에서 나오던 여행광고의 푸른 들판과 노을 지는 산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하철역 위치를 기준으로 서울 시내와 주요 수도권 구별 출근 경로를 추적해봤다. 평균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거주지와 다른 구로 이동했다. 이날 아침에만 2만6982명이 관악구에서 강남구로 빠져나가 이동 경로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송파구에서 강남구로의 이동이 1만7780명을 기록해 지하철 2호선 남쪽 구간의 혼잡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강남구에는 선릉, 역삼, 삼성, 강남역 등 주요 기업 본사와 오피스텔, 사무실이 밀집한 구역에 지하철역이 집중돼 있다.곽도영 now@donga.com·조종엽 기자}
‘사이버 사찰’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검찰이 지난달 18일 사이버 명예훼손 엄중 단속 방침을 밝히며 “(공개된 인터넷 게시판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표현을 쓴 게 일파만파 확대됐다. 하지만 논란이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3일 “검찰은 기사나 댓글 등 이미 인터넷상에 공개된 정보를 수집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일부 세력과 정치권에서 검찰의 사이버 사찰로 여론을 오도했다”고 지적했다. 본보 취재팀은 논란을 촉발했던 사이버 명예훼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경로로 이뤄진 허위사실 유포 등 범죄에 대한 법원 판결문을 분석했다. 법원도서관을 통해 올해 1∼9월 유죄 판결이 난 관련 사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모두 51건이 파악됐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형법상 모욕,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사건이었다. 분석 결과 치정이나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SNS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 28건(54.9%)으로 절반을 넘었다. 사회적 이슈나 공인과 관련해 명예를 훼손한 사건은 12건(23.5%)으로 비교적 적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모욕해 처벌받은 사건은 5건(9.8%)으로 나타났다. 범죄에 사용된 SNS별로는 단문의 메시지와 사진 등을 자신과 연결돼 있는 팔로어들에게 동시다발로 보낼 수 있는 트위터가 21건(41.1%)으로 1위였고 카카오스토리가 10건(19.6%)으로 뒤를 이었다. 백연상 baek@donga.com·조종엽 기자}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타결되고 이틀 뒤인 2일 의원들에게 e메일로 보낸 원내대표 사퇴서에 이렇게 썼다. 정치권은 이 ‘극단적인 주장’에 휘둘렸고 국회는 지난달 30일 협상 타결 전까지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5개월 동안 공전했다. 당초 세월호 특별법 초안이 마련될 때만 해도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조사 활동의 효율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항이 돼 버렸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내에서는 정의당 당원인 유경근 대변인 등 강경파들이 의사결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게 유가족들의 얘기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한 유가족은 “우리가 있을 곳은 광화문도 국회도 아니고 청와대 앞도 아니다”라며 “그분(일부 유가족 대표)들이 강압적으로 해 왔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개혁 이슈에서도 한 공무원은 “국가 재원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연금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공적(公敵)이 된다”며 “일종의 금기어처럼 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면 우린 다 죽는다” “△△ 결사반대”와 같은 결의에 찬 문구는 스펙트럼의 선두이자 해당 집단의 대표 의견으로 다수 국민에게 인식된다. 그렇다면 스펙트럼의 나머지 부분에 있는 이들의 ‘침묵’은 암묵적 동의를 의미하는 것일까. 드러나지 않고 묵살됐던 다른 의견이 실제로는 다수 의견인 것은 아닐까. 동아일보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지난달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목소리 큰 도우미’ 실험을 설계했다. 정답에서 가장 거리가 먼 답안을 제시하면서도 강경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도우미 앞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애초의 의견을 바꾸거나 토론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써서 제출한 답안과 실험 종료 후 인터뷰에서는 강경파 도우미에게 반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취재팀은 최근 사회적으로 갈등의 핵이 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공무원연금 개혁, 쌀 시장 개방 등의 이슈와 관련해 그동안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침묵하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일부 세월호 유가족과 현직 및 예비 공무원, 쌀 전업 농민의 목소리는 기존에 주목받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집단 내 강경한 주장에 드러내놓고 절충적이거나 현실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반복적인 묵살에 의한 무기력감’ ‘자칫하면 집단 안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강경파가 침묵하는 다수에게 ‘비겁자’라거나 ‘충분히 문제를 알지 못한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독선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곽도영 now@donga.com·조종엽 기자}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이 주장한 ‘침묵의 나선이론(The Spiral of Silence Theory)’은 일부의 의견이 대다수의 주장인 것처럼 드러나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개인이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의견이 집단 내에서 지배적이지 않다고 느끼면 침묵을 택하는 성향을 띠기 때문에 여론이 소용돌이처럼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선거에서 ‘숨은 표’가 때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침묵하는 다수’를 공론장으로 이끌어내려면 중간층을 결집시키고 다양한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영진 성균관대 갈등해결연구센터장은 “이념적으로는 중도층이 많지만 그 뜻이 조직화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미디어가 가교 역할을 하면서 중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어젠다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경파가 득세하는 원인에 대해 “구한말 이후 일제 때와 6·25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극단적인 생존 투쟁을 겪는 과정에서 온건한 사람들이 ‘기회주의자’ 등으로 오해됐던 탓”이라고 분석했다. 가상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소장은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가 교수는 “강경파들은 ‘상대방이 얻으면 우리는 잃는다’는 인식하에 갈등 상황을 ‘윈윈’ 게임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며 “갈등이 불거지기 전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협상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야 할 정치가들이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양극적 정당과 이념적 정치가 한국 사회를 둘로 가르고 있다”며 정당구조의 다원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중의 정치적 성향이 실제로는 반으로 나뉘지 않는데도 양당 구도 탓에 둘 중 하나로 쏠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강 교수는 “정당이 다원화돼 여러 개의 선택지가 있다면 타협과 합의의 가능성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선거법과 정당 관련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번 실험에서 A그룹 도우미는 “내가 미술사 전공”이라는 거짓말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권위에 의존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A그룹 도우미가 실제로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림의 제목이 ‘불만’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강경파도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이번 실험처럼 각종 논리 오류를 범하며 상대방을 압박하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인 것이 ‘편 가르기’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뤄지는 논쟁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다 ‘○○빠’들” 같은 댓글이 많이 올라온다. 서로를 ‘수꼴’과 ‘좌빨’로 비난하기도 한다. 논리학에서는 이 같은 오류를 ‘우물에 독 풀기(원천봉쇄의 오류)’라고 한다. 발언의 근원에 ‘독’을 풀어 버리기 때문에 더이상 대화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너 알바지?”라는 댓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올린 사람이 돈을 받고 그런 댓글을 썼다는 의심을 하는 것인데 이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들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건강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다. 비합리적인 강경파들은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에 기대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인 것이 원초적인 욕구인 안전이 위협당하는 공포를 자극하는 수법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군대 내 폭력과 가혹행위를 비롯한 후진적 병영 문화를 개선하고 사병 인권을 신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시기상조” “안보를 흔든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군 개혁이 강군(强軍)을 만들 수 있음에도 안보 공포에 기대어 개혁을 반대하는 것. 2008년 광우병 사태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9.9%”라는 식의 비과학적인 주장이 먹거리 안전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며 급속히 확산됐다. ‘마음의 사회학’의 저자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공론장의 파행이 “사회적인 분노와 고통이 올바르게 해소되지 못해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마땅히 전파돼야 할 목소리가 묻히는 일이 반복되면서 당사자들이 결국 악을 쓰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어느 사이트에서 보고 전화 걸었어요?”(‘오피방’ 접선책) “○○요.”(기자) 17일 오후 11시 25분. 취재진은 ‘오피방’(성매매가 이뤄지는 오피스텔) 단속에 나선 서울 강남경찰서 생활질서계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술에 취한 직장인으로 가장하고 인터넷에 나와 있는 오피방에 전화를 걸었다. 접선책은 “최근 어느 오피방에 다녀왔느냐”고 물었고 기자는 경찰이 알려준 또 다른 오피방 주소를 댔다. 실제 성매매 경험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약 5분 뒤 오피스텔 번지수가 적힌 ‘삼성동 1××’라는 문자메시지에 이어 “선릉역 10번 출구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전철역 앞에서 15만 원을 주자 눈치를 살피던 접선책은 그제야 ‘오피방’이 오피스텔 몇 호실인지 알려줬다. 이날 경찰은 손님을 가장해 삼성동 오피스텔 내부에 차려진 ‘오피방’과 변종 유사성행위업소인 ‘립카페’를 단속했다. 이날 단속된 30대 중반의 립카페 업주는 “평일에도 하루 평균 남성 50명가량이 찾아온다”며 “밤이 아니라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업소를 찾는 직장인도 많다”고 말했다. 2000년과 2001년 전북 군산시 대명동과 개복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로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2004년 9월 23일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성매매하는 여성을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하는 한편 성매매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성매매 산업은 건재하다. 그 중심에는 오피방, 건마(퇴폐마사지), 키스방, 핸플(손을 사용한 유사성행위 업소)등의 신·변종 업소가 있다.○ 신·변종 업소 대표주자는 ‘오피방’ 본보 취재진이 신·변종 성매매 업소 지도를 작성해본 결과 성구매 수요자가 몰려있는 대형 빌딩 밀집지역에 성매매 업소가 많았다. 광역자치단체별로는 서울에 전체 업소의 45.0%(272개)가 몰려 있었고 강남구에만 전체의 24.6%(149개)가 밀집해 있었다. 이 지역은 직장인이 많을 뿐 아니라 오피스텔도 많아 성매매 장소를 확보하기 쉽다. 이 업소들은 ‘역삼역 3번 출구, 도보 3분 거리’ 등 접근성을 내세워 홍보를 하고 있었다. 오피방을 운영하는 A 씨는 “역삼동에는 사실 건물 하나 건너마다 신·변종 성매매 업소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분석한 결과 사무용 빌딩 등이 아니라 주택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네에서도 신·변종 업소가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신·변종 성매매 업소가 발견된 동은 모두 128개. 이 중 상당수는 기존에 성매매 업소가 있다고 회자된 적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조사된 신·변종 업소 중 가장 많은 것은 단연 ‘오피방’이었다. 전체 신·변종업소의 45.6%(276개)를 차지했다. 뒤이어 건마가 31.4%(190개), 키스방이 14.5%(88개)였다.○ ‘바지사장’ 내세워 영업 지속 문제는 신·변종 업소의 단속이 어렵다는 점이다. 경찰청은 2006년 4월에도 서울 강남구 역삼동 A호텔 일대 등 신·변종 성매매 업소가 밀집한 지역 24곳을 ‘성매매 적색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도 서울 역삼동, 부산 부전동, 인천 부평동, 경기 수원시 인계동 등 7개 지역에서 여전히 신·변종 성매매 업소가 발견됐다. 신·변종 성매매 수법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화하지만 이를 근절하기 위한 법령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신·변종 성매매 알선은 유흥주점이나 단란주점, 퇴폐이발소 등과 달리 식품위생법 등이 규율하지 않는 자유업종 영업소에서 발생해 적발해도 영업장 폐쇄 같은 행정처분을 할 근거가 없다”며 “법으로 규율하지 않는 영업소도 성매매 알선이나 장소를 제공할 경우 영업 정지 및 폐쇄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업소의 매출과 비교하면 성매매 알선 벌금도 업주들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립카페 업주 C 씨는 “1년에 두 차례 정도 단속을 당하는 업소가 대부분이지만 벌금이 500만 원가량이어서 세금 낸다고 친다”고 말했다.○ 전국 성매매 집결지도 영업 여전 17일 오후 8시 서울 성북구 ‘미아리 텍사스’. 기자가 ‘미성년자 출입금지’라고 쓰인 발을 들치고 들어섰지만 골목길은 어두울 뿐 성매매 집결지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내 한 30대 남성 손님이 50대 여성(호객꾼)과 함께 오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 여성이 “어떤 스타일 좋아해?”라며 건물 미닫이문을 열고 검고 두꺼운 장막을 들추자 홍등(紅燈) 불빛이 밖으로 퍼져 나왔다. ‘미아리 텍사스’는 장막 뒤로 숨었을 뿐 수십 개 업소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한때 경찰이 뿌리를 뽑았다던 대전 중구 유천동을 비롯한 성매매 집결지 업소들도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룸살롱과 단란주점도 2004년에는 3만828개였지만 2014년에는 4만5032개로 늘었다.조종엽 jjj@donga.com·백연상·곽도영 기자}
‘성매매 공화국’은 건재했다. 성매매 특별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별법)이 시행된 지 23일로 만 10년이 되지만 한국의 성매매는 근절되기는커녕 신·변종 업소를 중심으로 여전히 활황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1일 대표적인 성매매 정보 공유 사이트 5개에 올라온 광고를 분석한 결과 신·변종 성매매 업소가 도심 한복판과 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성업 중이었다. 최소 수십 개로 추정되는 사이트 가운데 단 5개를 분석했는데도 소위 ‘오피방(오피스텔 성매매)’을 비롯해 ‘건마(퇴폐마사지)’ ‘키스방’ ‘립카페’ 등 은밀히 영업하는 605개 업체의 위치가 드러났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만 오피방 60개, 건마 28개, 키스방 10개, 휴게텔 5개 등 112개의 업소가 발견돼 전체의 18.5%를 차지했다.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변종 성매매 업소 적발 건수는 2010년 2068건에서 2013년 4706건으로 3년 만에 2.3배로 늘었다. 2010년 기준 성매매산업 규모는 6조8600억 원으로 당시 국내총생산의 0.65%를 차지했고 성매매 업체는 적어도 4만 개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성매수 남성들의 인식, 부족한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책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특별법 제정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단속 의지가 꺾인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성매매 검거 건수는 2009년 2만5480건에서 지난해에는 8668건으로 줄었다. 성매매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특별법에 따라 3년마다 국내외 성매매 실태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해야 하지만 현재 공개된 보고서는 2010년이 마지막이다. 여성부는 형사정책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2013년 성매매 실태조사를 마쳤음에도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정부 기관이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음성 산업이어서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통계청이 통계 승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의 ‘미아리텍사스’를 비롯해 주요 성매매 집결지가 여전히 성업 중이지만 경찰청도 2011년경부터 전국 성매매 집결지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단체 활동가는 “박근혜 정부의 근절 대상 ‘4대 사회악(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에서 성매매가 빠진 뒤 정부의 근절 의지는 크게 쇠퇴했다”며 “성매매가 온존하는 현실은 외면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조종엽 jjj@donga.com·백연상·곽도영 기자}

《병영 내 구타와 가혹행위는 ‘악마 같은’ 일부 사병만의 문제가 아니다. 입대 전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때려본 적이 없는 병사도 일부는 군대에서 후임병을 구타하게 된다. 형언하기 힘든 구타와 가혹행위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을 죽게 한 이모 병장(26)도 이등병 시절 선임병의 폭언 등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부대를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내가 선임병이 되면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이등병도 막상 선임이 되면 왜 아무 죄의식 없이 후임병을 구타하게 될까.》본보가 현역 사병 7명과 최근 전역자 3명 등 10명을 면담조사한 결과 군내 폭력이 대물림되는 배경에는 ‘계급·호봉별 내무반 군기 책임’이 깔려 있었다. ‘군기 유지’라는 미명하에 ‘내리 구타’가 이어지는 것이다. 최근 육군의 한 포병여단에서 전역한 병사가 복무한 중대의 사례는 적나라하다. 오전 점호가 끝난 뒤 병장이 “아침 구보 때 목소리가 왜 이리 작으냐”고 지적하면 병장 진급 직전의 상병들이 각 내무반 선임 상병을 밤에 창고나 보일러실 등 간부들의 감시가 소홀한 장소로 집합시켜 구타했다. 선임 상병 전체가 ‘원산폭격’을 하고 내무반별로 한 명씩은 삽자루, 대걸레자루, 텐트 기둥 등으로 맞았다. 일부는 주먹과 발로도 맞았다. 이어 내무반별 선임 상병이 내무반 상병들과 일병 선임을 집합시켜 때렸고, 그 다음 날 일병 선임이 중대 내 맡은 구역을 청소하러 가서 일병·이등병을 구타했다. 신병들은 취침 시간에 교육을 맡은 이등병 선임이나 일병들에게 침낭을 뒤집어 쓴 채 “군가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맞았다. 맞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상병, 일병 등이 이등병에게 “뽀뽀를 하기 전까지는 잠을 재우지 않겠다”며 성추행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 전역자는 “내가 (선임병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는 후임병을 때릴 수밖에 없다”며 “때리거나 성추행을 하는 사람들 모두 입대 전에는 ‘멀쩡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구타와 병사 간 얼차려를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대관리훈령’을 통해 군기 유지의 책임을 지휘관에게 지우고 있다. 또 ‘병의 계급은 서열을 나타낼 뿐 상호 명령·복종 관계가 아니며 분대장을 제외하면 명령·지시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군기 유지’라는 명분 아래 구타를 당하던 병사들은 구타가 당연하거나 필요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1963년 발표한 ‘복종 실험’에서 실험 도우미는 실험대상자들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실험 담당자의 권위적 지시에 따라 잔인하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자가 지시하면 평범한 이들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현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필립 짐바르도 박사의 1971년 실험에서도 평범한 대학생들을 2주간 폐쇄된 가짜 교도소에서 교도관과 죄수로 역할을 나누어 지내게 했는데 학생들이 교도관 역할에 몰입돼 죄수 역할의 학생들에게 가혹 행위와 위협을 가했다. 보복심리도 생겨난다. 8일 서울역에서 만난 한 육군 상병은 “후임병 때는 ‘내가 선임이 되면 악습을 끊겠다’고 다짐하지만 내가 ‘개고생’했는데 후임병들이 편한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상황이라고 모두 구타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병들 간의 폭행으로 군기를 유지하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는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최초의 선인(善人)’을 기대하기 어렵다. 구타를 근절하겠다고 마음먹은 병사가 고참 병장이 돼 “이제부터 폭행은 없다”고 선언해도 “곧 제대할 병장이라 한가한 소리 한다”는 인식 아래 후임들이 말을 안 듣게 되는 것이다. 한 육군 전역자는 처음 후임병을 때렸을 당시에 대해 “내가 안 때리니까 후임들이 나를 우습게 보고 일을 똑바로 안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위계적인 사회조직에는 ‘공식적 관료제’와 별개로 주먹다짐 같은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공존하는데, 사병은 계급이 오를 때 공식적 직위뿐 아니라 왜곡된 ‘비공식적 위계질서’가 같이 올라가는 것으로 인식한다”며 “암암리에 사병에게 부과된 군기 유지 책임을 덜어내야 폭력의 대물림을 근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조종엽 jjj@donga.com·곽도영 기자 }

《 너무 늦게 알았다. 우리는 동료 병사의 가혹행위와 간부의 방치, 군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윤 일병, 이 상병, 임 이병을 구하지 못했다. 때늦은 파장 끝에 확인된 것은 수많은 군 문화 개선 구호 속에서도 병사들의 인권은 철책 속에 감춰진 채 짓밟혀 왔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현직 장병과 군 관련 단체 및 기관, 전문가에게 자문했다. 이들은 ‘제2의 윤 일병’을 구하기 위해 ‘민간 참여’와 ‘3중 보호막’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윤 일병이 군홧발 아래 스러졌던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는 본부대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고립 지역’이었다. 간부 여럿이 함께 주둔하는 다른 부대와 달리 문제의 의무대에서 책임 간부는 폭행에 가담했던 하사 한 명뿐이었다. 사단장과 군단장조차 ‘사각지대’로 표현하는 곳이었다. 임 이병이 성 고문을 당했던 곳도 본대와 떨어진 의무대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외부와의 차단’ 조건이 가장 심각했던 곳에서 주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철저히 고립된 상황에서 외부 감시를 받지 않는 군 체제가 근본 문제이고, 그 정도가 특히 심각했던 곳에서 ‘위기 신호’가 실제 폭발한 셈이다.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대적인 개혁개방을 실시한 독일 군인 법제의 기본 원칙이다. 일시적으로 제복을 입었을 뿐 시민의 기본 인권은 보장된다는 이 원칙에 따라 독일 군대는 민간이 참여하는 공식 감시기관의 통제를 받는다. 1957년 공포된 ‘연방의회 군사 옴부즈맨에 관한 법률’은 의회 직속 기관인 군사 옴부즈맨에서 군 복무자의 청원을 받아 관련 정보를 군으로부터 제출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35세 이상 독일 국민이면 누구나 추천을 받아 옴부즈맨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한발 나아가 사전 고지 없이 군부대 현장을 직접 방문 조사할 수 있는 권한도 보장돼 있다. 그러나 한국군에 이 같은 ‘개방’은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다. 2005년 28사단 총기난사 사건 이후 설치된 국내 군 옴부즈맨은 실질적 권한 없이 방치되고 있다. 잇따르는 사건으로 군의 곪은 부분을 외부에 개방해 감시를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제도 정비’ 단계에서 민간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게 아니라 실질 운영에 외부의 독립적인 인사를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 온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군이 ‘오픈(개방)’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군 내부 상담관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심리 검사 자문은 외부 전문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 왔지만 실제 군 내부에서의 운영에 일반 민간인 전문가들이 투입돼야 실질적인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고 곽 교수는 지적했다. 박성남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조사팀장은 “국방부 차원에서 외부 기관과의 협의체를 수용하고 스스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일병 사고 이후 군 당국의 육군 가혹행위 전수 조사에서 유사 사례 3900건이 적발됐지만 각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징계 처분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꼭꼭 숨기는’ 군 풍토에 분노한 일각에선 “이런 식으로 내부에서 처리할 게 아니라 아예 매일의 자살 사고 병사 수를 국방부 홈페이지에 게재해야 한다” “자꾸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모병제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병사부터 장교까지 부대에 ‘3중 보호막’을 ▼① 구타 보고도 신고 안하면 ‘공범 처벌’ 인식 확산② 병사들 생활 잘아는 부사관에 인권교육 철저히③ 적극적으로 진실 밝히는 장교엔 人事 인센티브현역 장병과 전문가들은 군부대 내의 각 구성원들도 구타·가혹행위 감시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①최초 목격자, 동료 병사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사관학교에선 장교들이 자격이나 품위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이를 목격한 동료에게 ‘의무 신고’ 책임을 지운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 동료도 처벌 대상이 되는 제도를 일선 병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일병 사건을 방조하고 딱 한 대 때렸다가 불구속 기소된 A 일병의 사례처럼 단순 방조 수준의 행위도 ‘공범’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동료 병사들이 ‘1차 보호막’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②병사와 부대끼는 부사관 교육 확대 행정보급관·의무지원관 등 일반 병사와 접촉이 가장 많은 간부들은 원사·상사·중사·하사 계급에 해당하는 부사관이다. 부사관들은 병사와 병영 생활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핵심 간부다. 병사 근무 중 지원한 부사관도 많아 병사 실태를 잘 파악한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도 그러면서 배웠다”는 식으로 넘어가거나 오히려 폭행에 가담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하급 간부는 행정이나 작업 업무에 치이다 병사관리에 신경을 못 쓰는 구조”라며 “부사관들에게도 군부대 폭력 사례에 대해 철저히 교육하고 리더십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남 인권위 기획조사팀장은 “국방부에서 군 간부 양성이나 재교육 시 의무 과목으로 지정하는 ‘통제 과목’들이 있다. 인권 과목은 수년 전 이 과목에서 제외됐다”며 “간부급들에 대해서도 병영 문화와 인권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③장교에겐 문책보다 ‘진실 보고’ 장려해야 직접적인 병사관리 책임은 소위 중위 계급에 해당하는 소대장 중대장에게 있다. 하지만 부대 안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보직해임 등 처벌이 뒤따르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관행 때문에 장교들이 진실을 밝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당장 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5조 1항의 ‘부대지휘에 관한 모든 책임은 지휘관에게 있다’는 원칙에서 이 같은 관행이 이어져 온 것이다. 문무철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조사관은 “실제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극 대응하고 해결한 지휘관은 오히려 승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군 인사법이나 훈령 등의 개정, 부대별 내부 지침 등을 통해 적절히 사고 처리를 한 지휘관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단지 사고가 났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문화를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사고에 대해 윗선 지휘관이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장 지휘관들이 상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진실을 외면하는 현상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강원 육군 모 부대 예비역 장교 A 씨(26)는 “장교들은 부하 병사들을 도구로 취급하지 말고 인격체로 존중하며 책임감을 갖고 돌봐야 한다”며 “병사들의 생활 속 문제의 실체를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 역시 장교의 책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18일 오후 1시 15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정류장. 인천으로 가는 공항리무진 버스기사 박종호 씨(57)는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안을 돌기 시작했다. 박 씨는 10여 명의 승객에게 일일이 안전띠 착용을 권유했다. 대부분의 승객은 안전띠를 매지 않은 상태였지만 기사가 직접 착용을 권유하자 모두 벨트를 맸다. 박 씨는 모든 승객이 안전띠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자리로 돌아와 운행을 시작했다. 박 씨는 “평소 안전띠 매기를 귀찮아 하는 손님도 눈을 맞추면서 정중히 말씀드리면 착용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인천공항 노선 등 5개 공항버스 노선을 운영하는 ‘한국도심공항’은 이처럼 기사가 승객에게 안전띠 착용을 직접 권유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결과는 어떨까. 한국도심공항에 따르면 2011∼2013년 이 회사의 사고 건당 승객 경상자는 0.48명, 중상자는 0.04명에 불과했다.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같은 기간 일반 고속도로의 고속버스 교통사고에서는 건당 0.22명의 사망자와 6.32명의 부상자(중상자 2.34명, 경상자 3.98명)가 발생했다. 이처럼 안전벨트 착용은 사고 시 승객의 사망 부상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5월 14일 오전 9시 55분 인천공항 방향 영종대교 상부도로(왕복 6차로)에서 공항리무진버스(6100번)가 중앙분리대 청소 준비를 위해 서행하던 25t 신호트럭에 부딪친 뒤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사고가 있었다. 버스의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파되고 신호트럭 뒷부분이 반파될 정도로 큰 충격이 발생했지만 승객 10여 명은 대부분 경상에 그쳤다. 아무도 좌석에서 튕겨 나가거나 유리창 등에 부딪치지 않았다. 승객 모두 안전띠를 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전을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동아일보는 24일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일상 속에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일곱 가지 제언을 한다.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방안들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한다면 대한민국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①20명 모인 곳 대피안내 의무화하자노래방 구석에 대피도 1장… 불나면 우왕좌왕 불보듯②안전안내, 기계 아닌 사람이 하자녹음된 음성, 지루함 유발… 육성은 각성효과 가져와③안전 관련 종사자 제복 입게하자승객 생명 지킨다는 책무… 일상적으로 느낄수 있어④안전훈련 불시에 실시하자英금융가 예고없이 경보… 실전처럼 일사불란 대피⑤안전위반 신고포상금 도입하자“위반해도 안걸리면 그만”… 공익신고 활성화 시켜야⑥생존교육 필수교과로 지정하자독일 학교들 수영 수업… 인명구조 배워야 ‘졸업’⑦매뉴얼 기관별 공개 의무화하자독립기구서 매뉴얼 평가… 부실한 곳 불이익 줘야22일 오전 10시 25분 서울 강남구 롯데시네마 씨티강남점 4관. 영화 상영 전 비상대피로 안내 영상이 17초 동안 상영됐다. “대피 시에는 왼쪽 안전 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녹음된 여성 목소리와 함께 화면 왼쪽에 “가장 가까운 출입문을 확인해 주세요” 등의 글자가 나왔다. 비상대피 영상은 앞뒤로 20여 편의 광고가 상영되는 데다 고작 17초에 불과했다. 더구나 대피 안내 영상이 4관뿐 아니라 다른 상영관의 대피로를 함께 보여줬기 때문에 정작 기자가 있던 4관의 대피로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영상에는 소화기와 소화전 등의 위치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피로 안내 영상에 따라붙는 협찬 광고주의 홍보성 동영상이 배경에 깔리는 경우도 많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형우 씨(36)는 최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에서 영화 상영 전 광고가 붙은 대피 영상을 본 뒤 “대피 안내 영상이 ‘그냥 뛰어나가면 된다’는 것 말고 무엇을 알려주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업주는 위급 상황에서 이용객들이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도록 피난계단과 통로, 피난설비 등이 표시된 안내도를 갖추거나 피난 안내에 관한 영상물을 상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건물 내부 구조를 잘 모르기 때문에 건물주나 시설 담당자가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노래방이나 PC방, 고시원, 영화관, 대중목욕탕 등 23곳이 다중이용업소다. 하지만 이 법 규정은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극장뿐 아니라 노래방이나 PC방도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최소한의 정보만 담은 비상 대피도를 붙여놓은 게 전부다. 유사시에 대피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엉키면 대형 인명 사고로 번질 수밖에 없다. 기준을 정해 일정 인원 이상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관리 책임자가 방문객에게 대피 요령 안내를 직접 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숱한 인재를 겪으며 안전 관련 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켜 온 영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건물에서 행사가 열리면 방문객 대상으로 대피 요령 안내 및 대피 훈련을 먼저 한다. 영국은 ‘직장에서의 건강과 안전법(Health and safety at work ACT·1974년 제정)’에 따라 회사의 고용자나 사무실의 관리자에게 이 같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법은 사유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설에 적용된다. 콜린 그레이 주한 영국대사관 대변인은 “대사관에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근무 첫날은 안전 지침을 숙지하고 건물의 동선을 확인하고 이를 테스트하면서 하루가 다 간다”며 “안전관리 담당자는 대사관의 대피 훈련 결과를 영국 본국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피 요령을 미리 녹음된 음성으로 안내하면 실제 육성보다 사람들의 인지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지하철 열차에서 규칙적으로 흘러나오는 안전 관련 기계음성, 영화관에서 광고와 함께 섞여 나오는 대피 요령 방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직원이 대면해 안전 수칙을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사람은 규칙적인 기계음보다 불규칙적인 음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녹음된 음성처럼 일정한 음은 잠이 올 때의 뇌파인 ‘세타파’를 발생시켜 지겨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배 소장은 “사람의 육성처럼 불규칙한 음성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뇌파인 ‘베타파’를 유발시켜 각성하는 효과를 가져와 집중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택시 버스 운전사 등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진 대표적 안전 관리자들에게 제복 착용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제복을 통해 타인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주면서 스스로의 책무를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현재는 제복 착용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 이번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을 방치하고 자신들만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이 하나같이 제복을 벗고 사복 차림이었던 것도 제복이 갖는 책임감을 방증한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찰 및 군인 제복이 의무와 책임을 일깨워주는 것처럼 제복은 사회적으로 자기 통제와 책임성을 강화한다”며 “제복을 입은 사람이 사회적 책임에 맞춰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대피 요령 안내의 실질화 외에도 안전 시스템을 보완하고 강화할 부분이 많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가 제시된다. 초중고교에서 ‘생존교육’을 필수교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파리 15구의 공립초등학교인 ‘에콜드루엘’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일주일에 한 시간씩 ‘생존 수영’을 가르친다. 물 위에 떠 있기, 호흡하는 법, 물놀이를 하면서 물속에서의 기본적인 생존능력을 키워주는 게 목표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에게 물안경을 씌우지 않는다. 실제 사고 시에도 당황하지 않고 물속에서 눈을 뜨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일도 학교의 수영 수업 마지막 단계에 인명구조를 배우고 자격증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독일 공교육을 받은 모든 학생은 인명 구조요원과 같은 수준이 돼 졸업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안전에 대해 보건교과나 ‘창의학습체험’ 등을 통해 비정기적이고 부수적으로만 교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존 과목을 신설하고 관련 교과서도 발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가가 공인하는 안전 관련 공인자격증을 만들어 취득자에게 생명보험료를 할인하는 등의 혜택을 주는 안도 검토할 만하다. 또 사고가 불시에 닥치듯 훈련도 불시에 할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2005년 7·7 지하철·버스 테러 이후 다중이용 시설의 비상 대피훈련을 불시에 실시한다. 금융의 중심가인 ‘시티’의 30∼40층 고층빌딩에서도 불시에 소방벨이 울리면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비상구로 일사불란하게 내려온다. 시내의 고급 호텔에서도 새벽 두 시 반경 불시에 훈련 화재경보가 울리기도 한다. 중앙부처 및 지자체의 각종 방재 매뉴얼과 사고백서 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 각 기관이 각자 작성한 매뉴얼은 3400개나 있지만 유관 부서끼리도 내용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실정이다. 유사시에 부처들이 업무 구분이 뒤죽박죽된 채 서로 영역 다툼을 해서는 사고 피해 최소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부처 등이 작성한 매뉴얼은 독립적인 전문기구가 평가해 우수한 곳에는 혜택을 주고 부실한 곳에는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매뉴얼을 보완해야 한다. 안전 관련 신고포상금제 도입도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안전 관련 규정 준수율이 낮은 이유는 위반해도 적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시인력과 인프라를 무한정 늘리기도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이 공익신고 시스템 도입이다. 시민들의 반발로 시행이 중단된 교통법규 위반 신고 포상제도도 ‘카파라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재추진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의 재난 대비 컨트롤타워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해마다 9월을 재난 대비의 달로 정하고 지난 1년 동안 재난 대비에 탁월한 성과를 나타낸 개인과 단체 등에 상을 수여하고 있다. ‘개인 및 지역사회 준비 대상(FEMA Individual and Community Preparedness Awards)’이다. 국가 차원의 재난 대비 능력 강화와 아울러 아래로부터 지역사회와 개인의 자발적인 재난 대비 능력을 키우기 위한 인센티브인 셈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조종엽·박성진 기자파리=전승훈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