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유원모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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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법조팀 유원모 기자입니다.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onemore@donga.com

취재분야

2026-02-27~2026-03-29
검찰-법원판결63%
사회일반20%
사법10%
정치일반7%
  • 아, 또 장모 잔소리… ‘처월드’는 괴로워

    ■ 육아 맡는 장모님, 감사하고 죄송한데 사생활 간섭 너무해‘사위는 백년손님’이란 말이 있죠. 저에게는 참 어색한 말입니다. 저희 장모님은 절 귀하고 어려운 손님이 아니라 ‘모자란 자식’으로 보는 것 같거든요. 맞벌이인 저희 부부는 아이들의 육아를 장모님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처가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죠. 아이 둘의 육아를 맡아주시는 장모님께 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위를 손주 키우듯 대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회식이 너무 잦은 것 같네”라고 넌지시 한마디 건넬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은 “용돈을 너무 헤프게 쓴다” “양말을 거꾸로 벗어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 ‘잔소리 대마왕’이 따로 없습니다. 처남댁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장모님께선 ‘시댁 스트레스를 주는 시어머니가 되지 않겠다’며 친척들 생일이나 제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조심스럽게’ 며느리 참석 여부를 물으시죠. 정작 저는 온갖 집안 행사에 ‘당연히 와야 하는 사람’입니다. 행사가 있을 때 과일이라도 챙겨 가지 않으면 “빈손으로 왔느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입니다. 씨암탉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저는 장모님의 관심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처갓집이 편치 않은 건 저뿐인가요.   ■ 이혼사유로 고부갈등보다 장서갈등 더 높아‘웰컴 투 처월드!’ 가정 갈등의 ‘대표 선수’가 바뀌고 있다. ‘시월드’로 표현되는 ‘고부 갈등’ 대신에 처갓집과 사위 간 불편한 관계를 뜻하는 ‘장서(丈壻) 갈등’이 점점 늘고 있다. 올해 2월 재혼정보회사 온리-유와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가 이혼 남녀 5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 장서 갈등(10.9%)이 고부 갈등(2.3%)을 앞섰다. 장서 갈등의 급증은 일하는 여성이 늘면서 처가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주는 일이 잦아지면서다. 결혼 3년 차인 김정현(가명·34) 씨는 신혼집을 처갓집과 같은 아파트단지에 구했다. 맞벌이인 아내가 처음부터 “나중에 애들을 맡기려면 집은 무조건 우리 부모님 집과 가까워야 한다”고 요구해서다. 결혼 초에는 장모님이 매일같이 와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고,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대신해줘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스러운 일이 잦아졌다. 김 씨는 “속옷만 입고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장모님이 불쑥 집에 찾아와 까무러치게 놀란 적이 있다”며 “아내에게 ‘장모님이 너무 자주 오셔서 불편하다’고 말하면 ‘고마워하지는 못 할망정 웬 배부른 소리냐’고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중 시부모에게서 생활지원을 받는 비율은 2006년 14%에서 2016년 7.9%로 감소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처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고 답한 부부는 17%에서 19%로 증가했다. 처가와는 점점 밀접해지고, 시댁과는 점점 거리가 생기는 셈이다. “제 부모님은 며느리 비위를 거스를까 봐 일절 뭘 요구하지 않아요. 반면에 장인 장모는 제게 ‘자네, 교회는 꼭 다녀야 하네’부터 시작해 ‘보험 영업하는 친구가 있으니 계약 하나만 해 달라’는 요구까지 ‘청구서’를 끝없이 내미세요.”(결혼 5년 차 박모 씨·35) 결혼 3년 차인 김모 씨(33)는 “아내에게 장인 장모의 지나친 간섭을 하소연하면 아내는 늘 자기 부모님 편을 든다”며 “옛날 신파극에서 봐온 ‘며느리의 설움’이 뭔지 제대로 느끼고 있다”고 푸념했다. 여기엔 달라진 사회상이 투영돼 있다. 시어머니들은 자신들이 겪은 ‘시월드’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인식이 커진 데다 아들 못지않게 ‘잘난 며느리’를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반면 처가에선 ‘알파걸로 키운 내 딸’이 사위에게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딸 부부를 늘 가까이에서 보면서 딸을 힘들게 하는 사위의 부족한 면을 쉽게 눈감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위와 처가 간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신은숙 이혼전문 변호사는 “장서 갈등으로 이혼까지 결심한 부부들을 보면 대부분 처가에서 간섭과 관여의 선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처갓집에서 생활지원을 하더라도 자녀 부부의 가장으로서 사위가 존중받아야 할 어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처가뿐 아니라 부부의 노력 역시 필요하다. 고부 갈등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중재하는 아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처럼 아내 또한 장서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김미영 서울가족문제상담소장은 “남편들이 처가에 불만이 생기면 비난과 질타의 어투로 이를 표현하면서 결국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 아내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기(禮記) 전문가인 정병섭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예(禮)의 핵심은 상호 존중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며 “사위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무턱대고 못난 아들처럼 대하는 것은 아닌지 장인, 장모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유원모 onemore@donga.com·노지현 기자 ○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이나 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이 느낀 불합리한 예법을 제보해 주세요. 카카오톡에서는 상단의 돋보기 표시를 클릭한 뒤 ‘동아일보’를 검색, 친구 추가하면 일대일 채팅창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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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위가 ‘모자란 자식’? 장모님의 잔소리, 저만 불편한가요

    ‘사위는 백년손님’이란 말이 있죠. 저에게는 참 어색한 말입니다. 저희 장모님은 절 귀하고 어려운 손님이 아니라 ‘모자란 자식’으로 보는 것 같거든요. 맞벌이인 저희 부부는 아이들의 육아를 장모님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처가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죠. 아이 둘의 육아를 맡아주시는 장모님께 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위를 손주 키우듯 대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회식이 너무 잦은 것 같네”라고 넌지시 한 마디 건넬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은 “용돈을 너무 헤프게 쓴다” “양말을 거꾸로 벗어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 ‘잔소리 대마왕’이 따로 없습니다. 처남댁이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장모님께선 ‘시댁 스트레스를 주는 시어머니가 되지 않겠다’며 친척들 생일이나 제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조심스럽게’ 며느리 참석 여부를 물으시죠. 정작 저는 온갖 집안 행사에 ‘당연히 와야 하는 사람’입니다. 행사가 있을 때 과일이라도 챙겨가지 않으면 “빈손으로 왔느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입니다. 씨암탉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저는 장모님의 관심이 부담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처갓집이 편치 않은 건 저 뿐인가요. ‘웰컴투 처월드!’ 가정 갈등의 ‘대표선수’가 바뀌고 있다. ‘시월드’로 표현되는 ‘고부 갈등’ 대신 처갓집과 사위 간 불편한 관계를 뜻하는 ‘장서 갈등’이 점점 늘고 있다. 올해 2월 재혼정보회사 온리-유와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가 이혼 남녀 5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 장서 갈등(10.9%)이 고부 갈등(2.3%)을 앞섰다. 장서 갈등의 급증은 일하는 여성이 늘면서 처가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주는 일이 잦아지면서다. 결혼 3년차인 김정현(가명·34) 씨는 신혼집을 처갓집과 같은 아파트단지로 구했다. 맞벌이인 아내가 처음부터 “나중에 애들을 맡기려면 집은 무조건 우리 부모님 집과 가까워야 한다”고 요구해서다. 결혼 초에는 장모님이 매일같이 와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고,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대신해줘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스러운 일이 잦아졌다. 김 씨는 “속옷만 입고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장모님이 불쑥 집에 찾아와 까무러치게 놀란 적이 있다”며 “아내에게 ‘장모님이 너무 자주 오셔서 불편하다’고 말하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웬 배부른 소리냐’고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중 시부모에게서 생활지원을 받는 비율은 2006년 14%에서 2016년 7.9%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처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고 답한 부부는 17%에서 19%로 증가했다. 처가와는 점점 밀접해지고, 시댁과는 점점 거리가 생기는 셈이다. “제 부모님은 며느리 비위를 거스를까봐 일절 뭘 요구하지 않아요. 반면 장인 장모는 제게 ‘자네, 교회는 꼭 다녀야 하네’부터 시작해 ‘보험 영업하는 친구가 있으니 계약 하나만 해 달라’는 요구까지 ‘청구서’를 끝없이 내미세요.”(결혼 5년차 박모 씨·35) 결혼 3년차인 김모 씨(33)는 “아내에게 장인 장모의 지나친 간섭을 하소연하면 아내는 늘 자기 부모님 편을 든다”며 “옛날 신파극에서 봐온 ‘며느리의 설움’이 뭔지 제대로 느끼고 있다”고 푸념했다. 여기엔 달라진 사회상이 투영돼 있다. 시어머니들은 자신들이 겪은 ‘시월드’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인식이 커진 데다 아들 못지않게 ‘잘난 며느리’를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반면 처가에선 ‘알파걸로 키운 내 딸’이 사위에게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딸 부부를 늘 가까이에서 보면서 딸을 힘들게 하는 사위의 부족한 면을 쉽게 눈감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위와 처가 간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신은숙 이혼전문 변호사는 “장서 갈등으로 이혼까지 결심한 부부들을 보면 대부분 처가에서 간섭과 관여의 선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처갓집에서 생활지원을 하더라도 자녀 부부의 가장으로서 사위가 존중받아야할 어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처가뿐 아니라 부부의 노력 역시 필요하다. 고부 갈등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중재하는 아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처럼 아내 또한 장서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김미영 서울가족문제상담소장은 “남편들이 처가에 불만이 생기면 비난과 질타의 어투로 이를 표현하면서 결국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해 아내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기(禮記) 전문가인 정병섭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예(禮)의 핵심은 상호존중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며 “사위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무턱대고 못난 아들처럼 대하는 것은 아닌지 장인, 장모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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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멘트 땜질 벗고 눈부신 ‘백제의 자태’

    우리나라 최고(最古)이자 최대(最大)의 석탑인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간의 보수공사를 끝내고 재탄생했다. 1915년 일본이 붕괴된 면에 콘크리트를 덧씌워 흉측하게 남아 있던 모습을 완전히 거둬 냈다.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일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미륵사지 서쪽 석탑의 보수 정비사업 결과를 발표하고, 보수가 완료된 석탑을 공개했다. 새롭게 단장한 석탑은 높이 14.5m, 폭 12m에 석탑 무게만 약 1800t에 이른다. 이날 공개된 석탑은 원래 규모로 추정되던 9층이 아닌 6층 구조다. 원래 있던 부재(部材·탑의 재료)와 새 돌이 함께 섞이면서 얼룩이 진 듯한 인상도 준다. 이런 모습은 ‘고증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복원을 진행한다’는 문화재 수리·보수 원칙을 지킨 결과다.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원 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문화재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과학적 연구를 통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하다는 판단에 따라 해체·복원 작업이 시작됐다. 문제는 석탑의 원형을 알려주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1993년 명확한 고증 없이 졸속으로 진행해 ‘문화재 복원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히는 미륵사지 동측 석탑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다양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논의 끝에 전면 해체 뒤 6층까지만 부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함몰 정도가 큰 서측 면과 석탑의 중심을 잡아줄 1층 기단은 새 부재로 복원했지만 원형 유지 원칙하에 원래 있던 부재의 재사용률을 81%까지 끌어올렸다. 최신 기술도 총동원했다. 해체한 부재를 바탕으로 재조립할 석탑의 설계를 위해 3D 스캐닝으로 2800여 개의 돌을 일일이 측정했다. 부서진 옛 돌과 새 돌 사이에 티타늄 0.33%를 접합하는 황금 비율을 개발하는 등 관련 기술특허만 5개를 취득했다. 18년간 보존 과정에 참여한 김현용 학예연구사는 “복원 과정에서 얻은 문화재 복원 신기술을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지에서 진행하는 문화재 공적개발원조(ODA)에 활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보수에 소요된 20년 세월은 한국 단일 문화재 복원 역사상 최장 기간. 전례 없이 긴 시간인지라 2007년 전주지검이 횡령 혐의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복원사업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결국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서동요’의 주인공이자 백제의 중흥기를 이끈 무왕 시대(600∼641년)에 지어졌다. 3탑 3금당(金堂·부처를 모신 건물)의 가람 배치로 이뤄진 미륵사 서쪽에 자리했는데, 석탑임에도 목탑처럼 2800여 개의 석재를 짜 맞춘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2009년 심주석(心柱石·탑의 중심 기둥 돌) 내부에 있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면서 명확한 건립 연도(639년)도 확인됐다. 이때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보물로 지정됐다. 보수가 완료된 미륵사지 석탑은 외부 가설 구조물 철거와 주변 정비 등을 마치는 12월 일반에도 공개한다. 639년 석탑이 건립된 지 1380년이 되는 내년 3월 12일(음력 1월 29일) 준공할 예정이다. 익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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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가 강제로 옮긴 덕수궁 광명문, 80년 만에 제자리 찾는다

    덕수궁 안을 거닐다 보면 돌담길과 마주한 남서쪽 후미진 곳에서 광명문(光明門)을 발견할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와 팔각지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문으로서의 역할은 상실했고, 내부에 물시계(자격루)와 종(흥천사명 동종) 등이 놓여 있는 유물 전시 공간으로 쓰일 뿐이다. 원래 이 문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침전으로 사용한 함녕전(咸寧殿)의 남쪽에 위치하며 정문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덕수궁을 멋대로 쪼개고 허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1938년 덕수궁 내부에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광명문을 지금의 자리에 강제로 옮겼고,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80년 동안 엉뚱한 공간에 방치된 광명문이 제자리를 찾는다. 문화재청은 문화재계 인사 100여 명과 함께 19일 광명문 앞에서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을 열고, 광명문 이전 공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2016년 함녕전 남쪽 구역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광명문의 배치 상태와 평면 형태 등이 같은 건물지 1동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광명문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광명문 내부에 있던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신기전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은 경복궁 궐내각사지의 임시 처리장으로 옮겨져 보존 처리될 예정이다. 광명문 이전과 함께 돈덕전(惇德殿), 선원전(璿源殿) 등 덕수궁 복원 사업도 본격화된다.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맞아 서양식 연회장으로 지은 건물로, 1907년 순종이 즉위한 곳이다. 하지만 순종이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긴 후 덕수궁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왕의 초상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은 고종이 승하한 뒤 헐렸고, 광복 이후에는 경기여고 터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주한 미국대사관에 양도됐다. 우리나라에 다시 소유권이 넘어온 것은 2011년이다. 문화재청은 “돈덕전은 2021년, 선원전은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일제에 의해 변형·왜곡된 우리 궁궐의 위상을 회복하고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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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수궁 광명문, 80년 만에 제자리 찾는다

    덕수궁 안을 거닐다 보면 돌담길과 마주한 남서쪽 후미진 곳에 광명문(光明門)을 발견할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와 팔각지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문으로서의 역할은 상실했고, 내부에 물시계(자격루)와 종(흥천사명 동종) 등이 놓여있는 유물 전시공간으로 쓰일 뿐이다. 원래 이 문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침전으로 사용한 함녕전(咸寧殿)의 남쪽에 위치하며 정문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덕수궁을 멋대로 쪼개고 허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1938년 덕수궁 내부에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광명문을 지금의 자리에 강제로 옮겼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80년 동안 엉뚱한 공간에 방치된 광명문이 제자리를 찾는다. 문화재청은 문화재계 인사 100여 명과 함께 19일 광명문 앞에서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을 열고, 광명문 이전 공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앞서 2016년 함녕전 남쪽 구역에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광명문의 배치상태와 평면 형태 등이 같은 건물지 1동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광명문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광명문 내부에 있던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신기전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흥천사명동종(보물 제1460호)은 경복궁 궐내각사지의 임시 처리장으로 옮겨져 보존처리될 예정이다. 광명문 이전과 함께 돈덕전(惇德殿), 선원전(璿源殿) 등 덕수궁 복원 사업도 본격화된다.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맞아 서양식 연회장으로 지은 건물로, 1907년 순종이 즉위한 곳이다. 하지만 순종이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긴 후 덕수궁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왕의 초상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은 고종이 승하한 뒤 헐렸고, 광복 이후에는 경기여고 터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주한미국대사관에 양도됐다. 우리나라에 다시 소유권이 넘어온 것은 2011년이다. 문화재청은 “돈덕전은 2021년, 선원전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일제에 의해 변형·왜곡된 우리 궁궐의 위상을 회복하고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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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유럽서 자본주의 꽃피우던 18세기… 조선은 어땠을까

    “‘담배 사려!’ 외치는 소리 끊어졌다 이어지고, 행랑에는 등불 밝혀 골목길이 환하다. 한가로운 네댓 사람 팔짱 끼고 말하네. ‘밤새 군칠이 집에 술을 새로 담갔다더군’”(서명인의 ‘취사당연화록’ 중) 1766년 어느 봄날. 한양에 살던 선비 서명인(1725∼1802)은 친구와 종루(鐘樓·지금의 종로) 거리를 거닐다 이 같은 시를 남긴다. 여기서 ‘군칠’은 종로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이었던 ‘군칠이집’을 뜻한다. 직접 빚은 술맛이 일품일 뿐 아니라 개장국을 주 안주로 하는 각종 어육(魚肉)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18세기 한양은 당시 조선 인구 800만 명 중 30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한 도회지였다. 특히 술집이 가장 번성한 업종이었는데, 이로 인해 조선의 조종에선 금주령을 자주 내리기도 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17세기 ‘튤립 광풍’을 겪었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이 도시는 한 세기가 지나면서 오늘날의 선물 거래와 비슷한 금융 제도와 각종 거래소가 생겨나는 등 자본주의가 꽃피웠다. 그러나 유럽 각지의 빈민들이 모여들면서 심각한 빈부 격차와 계급 차별이라는 부작용을 앓기도 했다. 오늘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당시 이곳엔 원주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실제로 성벽(wall)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 책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25명이 조선의 한양부터 유럽과 북미, 아시아 각 도시의 18세기 사회상을 조명했다. 이들은 “18세기는 유럽에선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동아시아는 정치적 안정 속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시기로 현대적 도시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때였다”고 설명한다. 머리말에서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수천 년 역사의 옛 도시 구도심에 내려 호텔에 짐을 풀고 천천히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는 자세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독서 가이드를 제시한다. 천천히 18세기 도시들을 음미해 볼수록 읽는 맛이 좋아지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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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여행길 휴게소 ‘책 천국’ 열렸네

    “집을 아무리 잘 짓는 감기벌레도 손을 자주 씻고 양치를 잘하는 친구들 입에서는 집을 못 짓는대요.” 그림책 ‘감기벌레는 집짓기를 좋아해’의 작가 미우 씨(39·여)가 구연동화를 시작하자 20여 명의 아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떼지 못했다. 경기 이천시 영동고속도로 덕평자연휴게소를 10일 찾아간 이동도서관 ‘책 읽는 버스’ 안의 모습이다. 허브 식물 정원과 산책로, 반려견 테마파크를 갖춘 덕평휴게소는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필수 코스로 들르는 인기 휴게소다. 전국 200여 개 고속도로 휴게소 가운데 부동의 매출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휴게소에 깜짝 손님이 방문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운영하는 ‘책 읽는 버스’가 나들이하기 좋은 6월을 맞아 9, 10일 휴게소를 찾아간 것. 이날 버스를 본 김택수 씨(64)는 “우리나라 휴게소는 외국에 비해 먹을 것과 즐길 게 많아 자랑스럽다. ‘책 읽는 버스’에서 편하게 책을 읽으며 휴게소에서 멋진 추억을 하나 더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차를 타느라 지친 어린이들은 ‘책 읽는 버스’를 보고 반가워하며 뛰어왔다.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하고 돌아오던 소재윤 군(6)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동화책을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할머니 연순예 씨(70)는 “손주와 같이 바람을 쐬고 온 것도 좋은데 휴게소에서 책도 함께 읽으니 두 배 더 즐겁다”며 웃었다. 딸 장예린 양(2)이 구연동화를 즐기는 동안 버스에서 책을 읽은 김란아 씨(32·여)는 “버스라는 한 공간에서 아이와 같이 독서 체험을 하니 신기하면서도 뜻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버스에는 어린이 책 500여 권과 어른을 위한 책 500여 권이 비치됐다. 곤충도감을 읽은 이상우 군(10)은 “좋아하는 과학책이 가득해서 신났다. 집에 가서 책을 더 읽고 싶다”고 말했다. 책을 읽은 후 인상적인 장면이나 느낀 점을 그림으로 그리면 이를 배지로 만들어주는 행사도 진행됐다. 자신의 그림이 배지로 탄생하는 것을 지켜본 아이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송선미 씨(39)는 “아이가 배지를 만들고 싶어서라도 책을 읽으니 이래저래 좋은 선물이 됐다”고 말했다. ‘책 읽는 버스’ 앞에는 ‘#무슨 책 읽어?’라는 게시판을 설치해 시민들이 추천하고 싶은 책과 그 이유를 종이에 써서 붙이도록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그래, 엄마야’, ‘상실의 시대’ 등 책 수십 권이 소개됐다. 책을 추천한 이들에게는 탈무드 핸드북을 선물로 증정했다. ‘작은도서관…’과 한국도로공사는 ‘책 읽는 버스’가 휴가철에 전국 곳곳의 휴게소를 찾아가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이천=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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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임진왜란때 왜적 혼 빼놓은 ‘원숭이 기병대’ 실제 있었다”

    《 “명나라의 양호(楊鎬)는 원숭이(弄猿) 기병 수백 마리를 데리고 소사하(素沙河) 다리 아래 들판이 끝나는 곳에서 매복하게 하였다. 원숭이는 말에 채찍을 가해서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왜적들은 원숭이를 처음으로 보게 되자 사람인 듯하면서도 사람이 아닌지라 모두 의아해하고, 괴이하게 여겨 쳐다만 보았다. 혼란에 빠져 조총 하나, 화살 하나 쏴 보지도 못하고 크게 무너져 남쪽으로 달아났는데 쓰러진 시체가 들을 덮었다.” 》  1751년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이 쓴 택리지의 ‘팔도론·충청도’에는 이처럼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 나타나 있다. 현재 충남 천안 일대인 소사(素沙) 지역의 전설을 소개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평양, 행주산성 전투와 함께 육상에서 거둔 삼대첩(三大捷)으로 꼽히는 소사 전투(1597년)를 상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원숭이 기마부대의 활약상은 마치 판타지 영화나 군담소설(軍談小說)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극적이고 환상적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종전한 지 150여 년이 흐른 뒤에야 택리지가 작성됐고, 이전 조선의 문헌이나 명·일본의 사료에선 원숭이 부대의 활동을 찾아볼 수 없어 설화나 야사(野史)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명나라 원숭이 특수부대의 실체를 밝혀줄 연구가 나왔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인사들이 원숭이 부대의 존재를 기록한 문헌이 발견된 것.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사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임진왜란 소사전투의 명(明) 원군(援軍) 원숭이 기병대’를 연구모임 ‘문헌과해석’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올해는 임진왜란이 종전한 지 420주년이 되는 해다. ○ 참전 용사의 기록에 나타난 원숭이 기병대 임진왜란 기간 신녕현감(新寧縣監)으로 전투에 참가했던 손기양(1559∼1617). 1598년 7월 21일 그의 일기에는 명나라의 지휘관 유정(劉綎) 부대를 둘러보고 왔던 종의 눈에 비친 신기한 구경거리가 기록돼 있다. “유정의 군진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초원(楚猿·원숭이)과 낙타가 있다고 했다. 원숭이는 능히 적진으로 돌진할 수 있고, 낙타는 물건을 운반할 수 있다고 한다.” 손기양은 일기를 간단히 남긴 편이었는데 전쟁의 참혹한 전투 상황만큼 시선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원숭이와 낙타였다. 임진왜란 당시의 실기(實記)를 통해 원숭이 기병대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임진왜란을 가장 자세하게 서술했다고 평가받는 조경남(趙慶男·1570∼1641)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경남이 직접 명나라 부대를 확인한 후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원숭이 기동대의 존재를 묘사한 것이다. 그의 기록은 택리지의 설명과 거의 완벽하게 부합한다. “군사 가운데 초원 4마리가 있어 말을 타고 다루는 솜씨가 사람과 같았다. 몸뚱이는 큰 고양이를 닮았다.”○ 그림 속에 등장한 원숭이 병사들 그림을 통해서도 원숭이 부대의 실체가 확인됐다. 경북 안동의 풍산김씨 문중에 전해오는 ‘세전서화첩(世傳書(화,획)帖)’. 32점의 그림과 문헌 등으로 구성된 이 화첩 가운데 1599년 2월 명나라의 14만 대군이 본국으로 철군하는 장면을 그린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가 있다. 이 그림의 왼쪽 하단에는 ‘원병삼백(猿兵三百)’이란 깃발 아래서 유인원(類人猿) 열 두 마리가 칼을 들고 행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원숭이 병사 300명이란 의미다. 안 교수는 “서구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전투가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서 펼쳐졌다”며 “이번 연구를 계기로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원숭이 부대의 활약을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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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치안기관들 ‘순라길’ 돌아볼까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술래잡기 놀이의 어원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치안을 담당했던 포졸들이 순찰을 돌던 ‘순라(巡羅)’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은 조선시대 치안기관이 있었던 장소를 탐방하는 ‘서울 속 경찰 순라길’(약 8km·2시간 소요)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시작은 서울 종로구 서린동 동아일보사 자리에 위치했던 ‘우포도청’부터. 조선시대 죄인들을 검거하는 단속기관이었던 포도청은 좌우로 나뉘어 수도 한양과 경기 일대의 치안을 담당했다. 서울 중구 AIA타워 자리에 있었던 ‘순청(巡廳)’은 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4시 한양 도성의 야간 순찰을 관장했다.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앞에 있었던 ‘의금부’는 조선의 최고·특수 수사기관이었다. 현재 서울 종로구청 어린이집 앞에는 조선시대 궁중의 말을 관리한 관청인 ‘사복시(司僕寺)’가 있었는데, 실제로 1946년부터 1972년까지 기마경찰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박우현 서울경찰청 홍보담당관은 “서울 사대문 안을 거닐며 건강을 챙기고, 역사도 배우는 순라길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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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서울의 진짜 모습을 찾아 사대문 밖 ‘변두리’를 걷다

    우리 마음속에서 서울은 어디쯤일까. 살짝 역사학도로 빙의하자면, 조선의 수도 한양을 떠올릴 터. 사대문 안 지역인 현재의 종로구, 중구 일대가 원래의 서울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책은 서울을 소개하면서 그런 장소는 비켜 간다. 오히려 아파트 단지와 상가, 공단과 종교시설, 유흥가 등을 진짜 서울이라고 소개한다. 흔히 ‘변두리’라고 부르는 지역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현대 한국의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역동적인 변두리에서 탄생했다.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파악하려면 서울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를 걸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강변이다. 책에선 기존 서울을 다루는 인식이 궁궐이나 종묘 등 문화유산에 집중하는 게 ‘조선 왕조 중심주의’의 영향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인식은 실제 서울의 역사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강남을 개발하며 무수한 백제 고분과 왕릉이 망가졌고, 은평구 한옥 마을을 조성하며 5000여 기의 평민 무덤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저자는 서울이 “역사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문화유산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잦은 외세의 침략과 일제의 약탈을 탓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책임이 현대 한국에도 있다고 말한다. 사대문 안 조선 왕조는 열심히 복원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에 목을 매면서도, 사대문 밖 유적은 함부로 파헤치는 우리의 모습. 이젠 차분히 돌아볼 때가 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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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문명 개척의 길 밝혀준 등대의 역사

    1994년 프랑스 고고학 연구진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해변에서 약 6km 떨어진 수중에서 거대한 암석덩어리들을 발견했다. 호메로스 ‘오디세이’ 등에 기록된 전설의 등대 ‘파로스’의 흔적을 찾은 것이다. 기원전 3세기경 세워진 이 등대는 높이가 120∼140m 정도로, 50km쯤 떨어진 거리에서도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0여 년 전에 오늘날 40층 빌딩 높이에 맞먹는 건축물이라니. 파로스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이유다. 파로스는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등대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등대는 1세기 스페인 북서쪽 라코루냐에 지어진 55m 높이의 ‘헤라클레스’다. 로마의 정복자 카이사르가 지배하던 시기에 지어진 이 등대는 약 1900년이란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18세기에 증축되며 로마 건축 양식과 신고전주의 방식이 혼합된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헤라클레스 등대를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지금도 피카소 박물관에선 그 등대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제주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역사학 민속학 인류학 고고학 등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해양문명사에 매진해온 학자. ‘등대의 세계사’는 그의 장기를 십분 발휘해 인류와 함께한 등대의 역사를 꼼꼼히 짚어냈다. 직접 이집트와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답사해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다양한 등대를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다. 책에선 주로 서양의 등대를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저자는 서양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시종일관 강조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항해는 이슬람 유산에 기원을 두고 있고, 중국의 산정에 세워진 불탑과 일본의 항구나 사찰에 세워진 석등도 전통 등대였다고 말한다. 제주도의 토착 등탑인 도대불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바다를 향한 인간의 의지는 단절 없는 등대 건설로 표현돼 왔다”며 등대의 역사적 의의를 밝혔다. 한국 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책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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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 안창호 일기 문화재 된다…임시정부 활동 최초 공개

    도산 안창호(1878~1938)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할 당시 쓴 일기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도산 안창호 일기’와 ‘관동창의록(關東倡義錄)’ ‘파주 구 교하면사무소’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8일 밝혔다. 도산의 일기는 1919년 3·1운동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초일 대리를 지낼 당시 활동상을 담은 3권의 책이다. 작성 시점은 1920년 1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1921년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 임시정부가 사용한 용지에 적었으며 유족들이 보관해오다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은 “안창호가 직접 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임정에서 활동한 인물의 일기 중에서 유일하게 공개돼 임정 초창기의 활동과 조직운영, 참여인사의 면모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관동창의록은 1895~6년 강원 강릉시 일대를 중심으로 함경도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민용호(1869~1922)의 의병항전 기록을 담은 일기와 서한 등으로 구성돼있다. 파주 구 교하면사무소는 1957년에 건립한 건물로, 외벽을 석재로 마감하고 현관 상부에 봉황과 무궁화 문양으로 장식한 점이 특이하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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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의 왕국’ 아라가야 흔적 찾았다… 높이 8.5m 대규모 토성 발견

    문헌이나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왕성 실체가 처음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 일대에서 지난달부터 시작한 발굴조사 결과 5,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토성과 목책(木柵·울타리) 시설, 각종 토기 조각 등을 찾아냈다고 7일 밝혔다. 아라가야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 고문헌에서 ‘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안라(安羅)’와 같은 여러 이름으로 등장했지만 정작 자체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문헌에 따르면 아라가야는 금관가야, 대가야와 함께 가야의 중심세력을 이뤘고, 6세기에는 신라, 백제, 왜와 국제회의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사료 연구로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아라가야의 토목 기술과 방어 체계,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고고학 자료가 대거 출토돼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토성은 가야 권역에서 발견된 유적 가운데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축조 기법이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성 높이는 8.5m, 상부 폭은 20∼40m에 이른다. 강동석 가야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비슷한 시기 조성된 합천 성산토성과 양산 순지리토성의 높이가 4m이고, 김해 봉황토성이 2.8m임을 고려할 때 가야 토성 중 규모가 큰 편”이라며 “백제의 풍납토성 높이가 13m, 몽촌토성이 6m라는 점에서 가야리 토성도 왕성급 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벽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나무기둥을 설치하고, 흙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판촉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벽 상부에는 방어시설인 목책으로 추정되는 2열 나무기둥이 조사됐다. 토성 내부의 유적 중에서는 기반암을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가로 5.2m, 세로 3.4m, 높이 0.5m 구덩이가 발견됐다. 구덩이 내부에는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나타났고, 고분 등 의례 공간에서 주로 출토되는 통형기대(筒形器臺·원통모양 그릇받침)와 붉은색 연질토기도 함께 나왔다. 강 연구관은 “이 같은 구덩이는 가야 문화권에서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유적”이라며 “추가 연구를 통해 정확한 용도를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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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서 백제 무령왕릉 유사한 모습의 벽돌무덤 발견…80년 만에 확인

    백제 무령왕릉과 유사한 형태의 벽돌무덤(전축분·塼築墳)이 충남 공주에서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공주시와 공주대박물관은 충남 공주시 교촌리 일대에서 지난달부터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 내 무령왕릉이나 6호분과 유사한 웅진 도읍기(475~538) 백제시대의 벽돌무덤을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교촌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사이토 다다시(齊藤忠)와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 발굴조사를 진행했지만 당시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80여 년간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 벽돌무덤은 무령왕릉처럼 터널형의 구조를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무덤구덩이(묘광·墓壙)는 가로세로 3X6.1m에 높이 2m이며, 묘실은 가로세로 1.9mX3.4m에 높이 1.6m다. 그러나 연꽃무늬 벽돌을 사용하고 가로-세로 쌓기를 반복한 무령왕릉과 달리, 교촌리 무덤의 벽돌에선 무늬가 없고 가로로 쌓아서 만든 차이점을 보였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 무덤이 무령왕릉 축조를 위해 연습용으로 만든 미완성 무덤인지, 무령왕릉 이전에 조성한 왕릉 급 무덤인지는 추가 연구를 통해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교촌리 고분군에서 150m 떨어진 거리에 있는 교촌봉 정상에서는 석축 단 시설이 확인됐다. 이곳에선 무령왕릉에서 나온 연꽃무늬 벽돌이 출토돼 백제의 중요 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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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바보’ 조선 선비들의 절절한 사랑 고백

    “딸아이 처음으로 말 배우는데, 꽃 꺾고선 그것을 즐거워하네. 웃음 띠며 부모에게 물어보는 말, 제 얼굴이 꽃하고 비슷한가요?” 조선 중기 예조·이조·공조판서 등을 역임했던 신정(申晸·1628∼1687). 밖에서는 바르고 엄격한 정사로 칭송받은 그였지만, 집에 돌아오면 영락없는 ‘딸바보’로 변했다. 정치뿐 아니라 시에도 능했던 신정은 딸을 위한 시를 여러 편 남겼다. 실학자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잦은 밤샘 근무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격무에 시달리던 그의 피로를 날려준 ‘자양강장제’는 다름 아닌 딸들의 재롱이었다. “나흘에 한 번 겨우 집에 가는데, 어린 자식 오랜만에 나를 보더니 오려다간 다시금 머뭇거린다. 작은딸은 나이 이제 일곱 살이고 큰딸은 열 살이 조금 넘었네. 다퉈 와서 저녁밥을 권하더니만 무릎 앉아 다시금 옷깃 당기네.”(‘숙직을 마치고 나오다·出直’에서) 조선은 흔히 엄격한 유교 사상으로 강력한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인 사회였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당대 아버지들이 딸에게 남긴 글을 보면 이 같은 통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최근 박동욱 한양대 교수가 낸 ‘너보다 예쁜 꽃은 없단다’(태학사)는 조선 사대부 72명이 딸에게 쓴 한시(漢詩)를 현대어로 풀어 소개했다. 박 교수는 “조선시대에 ‘딸을 낳으면 미역국도 먹지 않았다’는 말처럼, 정말로 그 시대엔 딸에 대한 사랑을 가벼이 여겼는지 의문을 풀고 싶었다”며 “실제 남긴 글을 보면 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은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당시 남아 선호가 지배적 인식이었던 건 분명하다. 송몽인(宋夢寅·1582∼1612)은 딸을 얻은 뒤 “아들이라 기뻐하며 딸이라 슬퍼하랴. 끝까지 백도처럼 아들 없진 않으리라”는 시를 남겼다. 꼭 아들을 낳겠단 다짐엔 짙은 아쉬움이 배어 있다. 하지만 잘난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고 했던가. 딸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한시도 있다. 조선 후기 대사간 등을 지낸 정기안(鄭基安·1695∼1767)의 시를 보자. “아들 낳아도 만일 재주 없다면 세상 뜰 때 제사가 뚝 끊어지고, 딸 낳으면 도리어 좋은 일이 되니”라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조선 문인들이 딸을 향해 드러낸 가장 큰 감정은 뭘까. 역시 시대가 그런지라, 안타까움과 그리움에 사무친 내용이 많았다. 딸이 결혼을 하면 친정을 방문하는 근친(覲親)이 아니고선 만날 기회 자체가 극도로 제한되던 시절. 문인 김우급(金友伋·1574∼1643)은 시 ‘딸아이가 친정 오는 것을 기다리며’에서 동구 밖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간절함이 생생하다. “흰 저고리 입은 모습 눈앞에 어른거려, 문 나와 자주 볼 제 뉘엿뉘엿 해 기우네. 돌아와 슬픈 말을 많이는 하지 마렴. 늙은 아비 마음은 너무나 서글퍼지리니.” 박 교수는 “당대 사회는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의 길인지라 아버지들의 애석함은 더할 나위 없이 컸다는 걸 읽을 수 있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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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 “저 인간”… 무촌 부부, 무례 안돼요

    ■ 독설만 남기는 어긋난 소통… 존중받고 싶어요 “야, 이런 자리에 나올 땐 옷 좀 신경 쓰면 안 되냐?” 부부 동반 모임에 다녀오던 길. 아가씨처럼 예쁘게 꾸민 친구 부인들을 본 남편이 한 말입니다. 아기 이유식과 옷가지를 챙기다 보면 눈썹 한쪽 그릴 정신도 없는데…. 티셔츠 한 장 안 사주고 친구 부인들과 외모를 비교하니 저도 모르게 독설이 쏟아집니다. “이 인간이 돈도 쥐꼬리만큼 벌면서 바라는 것도 많네.” 부부는 어떤 혈육보다 가까워 무촌(無寸)이라죠. 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인지 남보다 더 큰 상처를 주고, 사과도 안 하게 되네요. 요새는 ‘성관계’로도 싸웁니다. “좋지도 않은 거 뭘 자꾸 하자고 보채?” 그러면 남편이 쏘아붙입니다. “그럼 나 밖에서 해결한다?” 한국이 예법을 중시하는 나라라지만, 부부 사이에선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의 관계처럼 부부 사이에도 필요한 예법이 있지 않을까요? ■ 낮춰 부르는 무례한 호칭, 갈등만 부채질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결혼이라지만 막상 부부가 된 뒤에는 크고 작은 갈등에 시달리는 이가 많다. 연애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결혼 생활의 현실 속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상대에게 던지는 칼날 같은 폭언’이다. 취재팀이 심층 인터뷰한 10명의 기혼자(모두 30대) 모두가 부부 갈등을 심화시키는 첫 번째 원인으로 무례한 소통방식을 꼽았다. 우선 ‘야’ ‘마누라’ ‘저 인간’ 등 상대를 낮춰 부르는 호칭이 문제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이런 호칭은 싸움을 더욱 격화시킨다. 주부 김지혜 씨(32)는 “호칭이 무례하면 뒤따라오는 말도 무례해진다는 걸 느꼈다”며 “서로 원하는 호칭을 알려주고 아무리 화가 나도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자 다툼이 줄어드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부부관계의 또 다른 ‘폭탄’은 상대방 부모나 집안에 대한 비난이다. 요즘은 배우자 집안을 흉보는 게 TV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처럼 돼 버린 시대지만 실제 부부 생활에서 이런 발언은 되돌리기 힘든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 이혼한 이모 씨(37)는 “아내가 나의 경제력을 비난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부모까지 욕하는 상황은 참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부부란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막상 현실에선 가장 뒷전이 되는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결혼 20주년을 맞은 김장훈(가명·51) 씨는 일부러 매주 목요일 ‘부부타임’을 갖고 아내와 단둘이 식사나 쇼핑, 운동을 즐긴다. 이 자리엔 자녀도 낄 수 없다. 그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서로 바쁘지만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당신에게 집중한다는 의미”라며 “각자의 관심사를 공유하다 보면 저절로 이해가 생기고 서로 존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남편은 게임만, 아내는 인스타그램만 하는 요즘 세대가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부부간 ‘성생활 예절’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찾아줄 때 고마워해라” “부부의 섹스는 근친상간” 등의 발언은 농담이라 해도 상대방은 모욕감을 느끼는 대표적인 언어폭력이라고 말한다. 미국 킨제이연구소 출신 백혜경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부부관계를 요구하든, 거절하든 갈등의 상황을 배우자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나(I) 대화법’이 필요하다”며 “당장 서로의 욕구를 맞추기 어렵다면 ‘침대에서 ○○분 대화하기’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성적 욕구를 주장하기에 앞서 물리적 친밀도를 높이며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 예절이라는 설명이다.김수연 sykim@donga.com·유원모 기자○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이나 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이 느낀 불합리한 예법을 제보해 주세요. 카카오톡에서는 상단의 돋보기 표시를 클릭한 뒤 ‘동아일보’를 검색, 친구 추가하면 일대일 채팅창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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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인간이 쥐꼬리만큼 벌면서…” 부부사이도 예절 필요해요

    “야, 이런 자리에 나올 땐 옷 좀 신경 쓰면 안 되냐?” 부부동반 모임에 다녀오던 길. 아가씨처럼 예쁘게 꾸민 친구 부인들을 본 남편이 한 말입니다. 아기 이유식과 옷가지를 챙기다보면 눈썹 한 쪽 그릴 정신도 없는데…. 티셔츠 한 장 안 사주고 친구 부인들과 외모를 비교하니 저도 모르게 독설이 쏟아집니다. “이 인간이 돈도 쥐꼬리만큼 벌면서 바라는 것도 많네.” 부부는 어떤 혈육보다 가까워 무촌(無寸)이라죠. 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인지 남보다 더 큰 상처를 주고, 사과도 안 하게 되네요. 요새는 ‘성관계’로도 싸웁니다. “좋지도 않은 거 뭘 자꾸 하자고 보채?” 그러면 남편이 쏘아붙입니다. “그럼 나 밖에서 해결한다?” 한국이 예법을 중시하는 나라라지만, 부부 사이에선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의 관계처럼 부부사이에도 필요한 예법이 있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결혼이라지만 막상 부부가 된 뒤에는 크고 작은 갈등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바쁜 현대인의 삶에 맞벌이 부부까지 급증하면서, 부부라는 이름은 말뿐, 실상은 서로의 일상과 감정조차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연애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결혼 생활의 현실 속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상대에게 던지는 칼날 같은 폭언’이다. 취재팀이 심층 인터뷰한 10명의 기혼자(모두 30대) 모두가 부부갈등을 심화시키는 첫 번째 원인으로 무례한 소통방식을 꼽았다. 우선 ‘야’ ‘마누라’ ‘저 인간’ 등 상대를 낮춰 부르는 호칭이 문제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이런 호칭은 싸움을 더욱 격화시킨다. 8년차 주부 김지혜 씨(32)는 “호칭이 무례하면 뒤따라오는 말도 무례해진다는 걸 느꼈다”며 “서로 원하는 호칭을 알려주고 아무리 화가 나도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자 다툼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부부관계의 또 다른 ‘폭탄’은 상대방 부모나 집안에 대한 비난이다. 요즘은 배우자 집안을 흉보는 게 TV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처럼 돼 버린 시대지만 실제 부부 생활에서 이런 발언은 되돌리기 힘든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 이혼한 이모 씨(37)는 “아내가 나의 경제력을 비난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부모까지 욕하는 상황은 참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신은숙 이혼전문 변호사는 “배우자와 부모를 향한 모욕적 발언이 파경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부란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막상 현실에선 가장 뒷전이 되는 것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자 결혼 20주년을 맞은 김장훈 씨(가명·51)는 일부러 매주 목요일 ‘부부타임’을 갖고 아내와 둘이서 식사나 쇼핑, 운동을 즐긴다. 이 자리엔 자녀도 낄 수 없다. 그는 “맞벌이를 하다보니 서로 바쁘지만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당신에게 집중한다는 의미”라며 “각자의 관심사를 공유하다보면 저절로 이해가 생기고 서로 존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조선시대 부부들은 다 가부장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16세기 문신 유희춘의 저서 ‘미암일기’를 보면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칭찬의 표현들이 곳곳에 나온다”고 말했다. ‘미암일기’에는 부인의 지적에 대해 “과연 부인의 말과 뜻이 다 좋아 탄복을 금할 수가 없다”며 자신의 부족함을 거리낌 없이 인정하는 대목도 나온다. 정 연구원은 “이들이 이렇게 가까운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시짓기, 바둑 등을 함께 하며 공감대를 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남편은 게임만, 아내는 인스타그램만 하는 요즘 세대가 참고할만한 부분이다. 부부간 ‘성생활 예절’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찾아줄 때 고마워해라”, “부부의 섹스는 근친상간” 등의 발언은 농담이라 해도 상대방은 모욕감을 느끼는 대표적인 언어폭력이라고 말한다. 미국 킨제이연구소 출신 백혜경 정신건강의학전문의는 “부부관계를 요구하든, 거절하든 갈등의 상황을 배우자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나(I) 대화법’이 필요하다”며 “당장 서로의 욕구를 맞추기 어렵다면 ‘침대에서 ○○분 대화하기’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성적 욕구를 주장하기에 앞서 물리적 친밀도를 높이며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 예절이라는 설명이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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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선배에게 감히…” 젊은 꼰대가 더하네

    “선배를 보고도 인사를 안 해서 내가 인사 받으러 나왔어. 너 안면인식장애 있니?” 후배 숨이 턱 막히게 하는 말. 후배를 이해하려는 의지라고는 없는 꽉 막힌 부장이 했을 법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주인공은 20대 여성.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에서 진태리(유라 역)가 후배에게 쏘아붙인 대사다. 극 중 진태리는 28세이다. 선생님, 아버지, 간부급 상사 등 기성세대로 향했던 ‘꼰대’ 딱지 붙이기의 대상이 젊어지고 있다. 꼰대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며 간섭과 지적, 충고를 일삼으면서 권위와 서열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꼰 표현. 최근에는 이런 행태를 답습하는 2030세대는 물론 청소년에게도 ‘꼰대’ 딱지가 붙을 만큼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이들을 가리켜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젊꼰’에 대한 비판은 잇따라 불거진 재벌 3, 4세의 갑질 논란이나 올해 초부터 확산된 미투 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아거 작가 ‘꼰대의 발견’)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막말과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꼰대 의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3일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젊은 꼰대’라는 키워드는 올해 3월부터 검색 빈도가 급증해 지난해 대비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한 콘텐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청률 30%를 넘긴 KBS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의 최문식(김권)은 젊꼰의 대표선수다. 스물일곱에 팀장 자리에 올라 부하 직원에게 “넌 평생 내 밑에 있을 테니 시키는 대로 해”라며 막말을 쏟아붓는다. 올해 영화로도 제작된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의 김상철도 마찬가지. “후배가 선배한테 먼저 인사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난 멋진 선배”라며 자평한다. 순끼 작가는 “어디에나 한 명씩은 꼭 있을 법한 인물”이라 평했다. 젊꼰을 비판하는 책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새내기 복장을 단속하는 대학 선배, 한두 해 먼저 입사한 걸 벼슬로 아는 회사원 등을 꼬집으며 “꼰대에는 나이도 성별도 없다”고 일갈한 ‘꼰대 김철수’(허밍버드)는 기폭제가 됐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블랙피쉬)를 출간한 사회학자 오찬호 씨는 “꼰대를 만나지 않고 한국에서 살기란 어렵다. 이들은 꼰대를 혐오하면서도 본인이 꼰대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일상에서도 젊꼰에 대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김동은(가명·25·여) 씨는 양치질을 하던 중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선배보다 먼저 입을 헹구었다가 버릇없다는 지적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수간호사 등 고참 간호사보다 1, 2년 위인 선배의 꼰대질이 더 심하다”며 “진료 차트로 머리를 때리거나 쿡쿡 찌르는 건 기본”이라고 한탄했다. 대학가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꼰대 선배의 만행을 꼬집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 “17학번 대학생이 ‘요즘 18학번들이 선배에게 기어오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젊꼰으로 낙인찍힐까 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젊은 세대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교사 박준혁(가명·28) 씨는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당연히 나눠서 해야 할 일인데도 선뜻 후배에게 맡기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에게 개인의 권리의식이 강해지면서 과거에는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던 행동도 ‘꼰대질’이라 여기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며 “주류사회로 편입해 살아남기 위해 기성세대의 위계질서를 그대로 답습하는 데 대한 비판”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운 easy@donga.com·유원모 기자}

    •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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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꼰대문화는 능력주의-무한경쟁의 그림자”… 아거 작가 ‘꼰대의 발견’서 분석

    “공감과 협력보다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가 젊은 꼰대를 양산하는 ‘꼰대의 조로(早老) 현상’을 일으킨 주범이죠.” 지난해 11월 출간한 ‘꼰대의 발견’(인물과 사상사·사진)을 통해 한국 사회 특유의 꼰대 문화를 분석한 아거(필명) 작가.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최근 등장한 ‘젊은 꼰대’를 비꼬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라고 해석했다. “과거에도 1, 2년 선배가 후배에게 막말을 하거나 훈계하는 모습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나이나 직급으로 자신을 찍어 내리거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했죠. 일상에서의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젊꼰’을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젊꼰’ 현상은 강한 서열의식과 뿌리 깊은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꼰대 행태를 보면 나이나 학번뿐 아니라 사는 지역, 부모의 직업 등 세분된 기준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어릴 때부터 성적과 재산에 따라 서열이 나뉘는 현상에 젖어든 이들이 ‘젊꼰’으로 변하게 된 겁니다.” 아거 작가는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능력주의’의 변질인 ‘능력 지상주의’가 꼰대 문화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일갈했다. “나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에게 ‘노력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능력 지상주의’가 꼰대를 만들어내는 병폐입니다.” 꼰대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꼰대짓은 아랫사람에게만 가해집니다. 결국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만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돈이 많거나 공부를 잘하면 권력이 생긴다’는 의식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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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꼰’으로 돌아온 2030 세대…상사 욕하더니 본인들도 ‘꼰대질’

    “선배를 보고도 인사를 안 해서 내가 인사 받으러 나왔어. 너 안면인식장애 있니?” 후배 숨이 턱 막히게 하는 말. 후배를 이해하려는 의지라고는 없는 꽉 막힌 부장이 했을 법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주인공은 20대 여성.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에서 진태리(유라 역)가 후배에게 쏘아붙인 대사다. 극 중 진태리는 28살이다. 선생님, 아버지, 간부급 상사 등 기성세대로 향했던 ‘꼰대’ 딱지붙이기의 대상이 젊어지고 있다. 꼰대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며 간섭과 지적, 충고를 일삼으면서 권위와 서열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꼰 표현. 최근에는 이런 행태를 답습하는 2030세대는 물론 청소년에게도 ‘꼰대’ 딱지가 붙을 만큼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이들을 가리켜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젊꼰’에 대한 비판은 잇따라 불거진 재벌 3, 4세의 갑질 논란과 올해 초부터 확산된 미투 운동 역시 꼰대 현상과 맥이 닿아있다는 분석(‘꼰대의 발견’ 아거 작가)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막말과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꼰대 의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3일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젊은 꼰대’라는 키워드는 올해 3월부터 검색 빈도가 급증해 지난해 대비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한 콘텐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청률 30%를 넘긴 KBS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의 최문식(김권)은 젊꼰의 대표선수다. 스물일곱에 팀장 자리에 올라 부하 직원에게 “넌 평생 내 밑에 있을테니 시키는 대로 해”라며 막말을 쏟아 붓는다. 올해 영화로도 제작된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의 김상철도 마찬가지. “후배가 선배한테 먼저 인사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난 멋진 선배”라며 자평한다. 순끼 작가는 “어디에나 한 명씩은 꼭 있을 법한 인물”이라 평했다. 젊꼰을 비판하는 책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새내기 복장을 단속하는 대학 선배, 한두 해 먼저 입사한 걸 벼슬로 아는 회사원 등을 꼬집으며 “꼰대에는 나이도 성별도 없다”고 일갈한 ‘꼰대 김철수’(허밍버드)는 기폭제가 됐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블랙피쉬)를 출간한 사회학자 오찬호 씨는 “꼰대를 만나지 않고 한국에서 살기란 어렵다. 이들은 꼰대를 혐오하면서도 본인이 꼰대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일상에서도 젊꼰에 대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김동은 씨(가명·25·여)는 양치질을 하던 중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선배보다 먼저 입을 헹구었다가 버릇없다는 지적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수간호사 등 고참 간호사보다 1,2년 위인 선배의 꼰대질이 더 심하다”며 “진료 차트로 머리를 때리거나 쿡쿡 찌르는 건 기본”이라고 한탄했다. 대학가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꼰대 선배의 만행을 꼬집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 “17학번 대학생이 ‘요즘 18학번들이 선배에게 기어오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젊꼰으로 낙인찍힐까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젊은 세대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교사 박준혁 씨(가명·28)는 “꼰대 소리를 들을까봐 당연히 나눠서 해야 할 일인데도 선뜻 후배에게 맡기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에게 개인의 권리의식이 강해지면서 과거에는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던 행동도 ‘꼰대질’이라 여기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며 “주류사회로 편입해 살아남기 위해 기성세대의 위계질서를 그대로 답습하는 데 대한 비판”이라고 분석했다. ▼ “ ‘젊꼰’ 현상은 강한 서열의식과 뿌리 깊은 차별에서 비롯” ▼ “공감과 협력보다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가 젊은 꼰대를 양산하는 ‘꼰대의 조로(早老)현상’을 일으킨 주범이죠.” 지난해 11월 출간한 ‘꼰대의 발견’(인물과 사상사)을 통해 한국 사회 특유의 꼰대 문화를 분석한 아거(필명) 작가.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최근 등장한 ‘젊은 꼰대’를 비꼬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라고 해석했다. “과거에도 1, 2년 선배가 후배에게 막말을 하거나 훈계하는 모습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나이나 직급으로 자신을 찍어 내리거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했죠. 일상에서의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젊꼰’을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젊꼰’ 현상은 강한 서열의식과 뿌리 깊은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꼰대 행태를 보면 나이나 학번 뿐 아니라 사는 지역, 부모의 직업 등 세분화된 기준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어릴 때부터 성적과 재산에 따라 서열이 나뉘는 현상에 젖어든 이들이 ‘젊꼰’으로 변하게 된 겁니다.” 아거 작가는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능력주의’의 변질인 ‘능력 지상주의’가 꼰대 문화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일갈했다. “고시에 합격해 고위 공직자가 되거나 기업을 세워 돈을 많이 벌면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사실 이 같은 능력이라는 게 순수히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망각하기 때문이죠. 나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에게 ‘노력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능력지상주의’가 꼰대를 만들어내는 병폐입니다” 꼰대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꼰대짓은 하는 대상은 아랫사람입니다. 결국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만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돈이 많거나 공부를 잘하면 권력이 생긴다’는 의식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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