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유원모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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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법조팀 유원모 기자입니다.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onemore@donga.com

취재분야

2026-05-25~2026-06-24
검찰-법원판결64%
사회일반23%
사법10%
정치일반3%
  • [문화好통/유원모]불친절한 문화재 안내판, 대통령이 나서야 고치나

    1. “남한강변의 요충지인 고지에 마련된 고대산성으로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包谷式)으로 이루어졌고 성벽의 축조 양식은 내외를 높게 축조해 올린 협축성(夾築城)이다.” 2. “불사리 신앙을 바탕으로 발생한 불교 특유의 조형물로서 흔히 대웅전 앞마당의 자오선상에 일탑 또는 상탑으로 배치된다.” 이 설명을 보고 과연 어떤 문화재인지 맞힐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일단 정답부터 보자. 1은 경기 여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 파사성(사적 제251호)이고, 2는 보물 제250호인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문화재 전문가도 알기 힘들다. 어디 문제가 이것뿐인가. 전국에 1만여 건이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은 그동안 오랫동안 끊임없이 원성을 들어왔다. 한자 투가 많은 데다 친절하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전문용어가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도 많이 찾는 21세기 현재에 걸맞은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은 대대적인 문화재 안내판 실태조사와 1차 정비 사업을 내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침류각(枕流閣·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의 안내판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글도 어렵고 딱히 알고 싶은 내용도 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간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해온 시민들의 목소리보단 대통령의 한마디가 더 ‘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그간 관련 당국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화재청은 2006년부터 문화재 안내판 가이드라인을 지방자치단체에 보급하고, 2016년에는 국립국어원과 함께 지침서를 발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펼쳐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왜 이런 변화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여전히 시민의 눈높이보단 관의 시각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곱씹어볼 대목이다. 누구 덕이건 기왕지사 대대적인 정비에 나선다고 하니 하나만 부탁드린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꼼꼼히 고쳐나가자. 많은 전문가들은 국민이 살아있는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식 안내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안내판이 안내를 해야지, 혼란을 주는 상황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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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이 춤추고 서늘한 소나무 숲길… 그 끝에서 부처를 만나다

    《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 7곳이 지난달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사찰들은 10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는 신앙·수도·생활 기능이 이어진 종합승원이자 각종 문화재가 가득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동아일보는 한국의 13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찰 7곳의 아름다운 모습과 숨은 역사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  장맛비가 오락가락 내린 9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입구에 들어서자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라는 이름처럼 바람이 춤추고 서늘한 소나무가 가득한 길. 시끌벅적한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듯한 오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통도사에 시주한 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바위 조각들이 오른쪽에 쌓여 있다. 쉽사리 지나치기 쉽지만,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와 그의 스승인 김응환(金應煥)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역사 속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숲길을 지나 일주문을 건너 사천왕문 사이로 들어섰다. 통도사 전각과 영축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통도사는 크게 상·중·하 노전으로 나뉜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중건·중수되면서 규모가 계속해서 커졌기 때문이다. 동서로 이어지는 이동 축을 따라 가장 먼저 하노전이 등장한다. 오른편에 위치한 극락보전에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승려와 백성이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담았다. 자세히 보면, 뱃사람 가운데 한 명만 뒤를 돌아보고 있다. 속세에 미련이 남아 이승을 바라보는 것. 사찰은 이런 ‘숨은 코드’를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하노전의 중심 전각인 영산전(보물 제1826호)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보물 제1041호)가 걸려 있다. 통도사는 팔상도를 비롯해 불교회화 작품만 600여 점을 소장한 보물창고. 이날 동행한 문화재위원회 위원인 명법 스님은 “통도사에는 예부터 유명 화승(畵僧)들이 계보를 이을 정도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중시했던 사찰”이라고 설명했다.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사찰의 가운데 공간인 중노전이 등장한다. 여기엔 스님들이 실제 수행을 하는 공간인 ‘원통방(圓通房)’이 있다. 매일 오전 6시 통도사 스님들이 다같이 발우공양을 드리고, 경전 공부 등을 진행한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사찰의 가장 큰 어른인 방장(方丈) 스님부터 막내 스님의 자리까지 벽면에 위치가 표시돼 있다. 명법 스님은 “일본의 산사들은 외형적 전통은 유지하고 있지만 승려들이 출퇴근을 하면서 생활 기능을 잃었고,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면서 전통 불교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며 “통도사는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통적인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상노전으로 가면 통도사의 대표 문화재인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을 만날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다른 사찰의 중심 전각과 달리 불상이 없다.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 놓은 금강계단을 바라볼 수 있게 한쪽 벽면을 뚫어놨기 때문이다. 사각형 2중 기단으로 구성된 금강계단은 소나무 숲과 대웅전에 둘러싸여 아늑하다. 볼록한 종 모양으로, 고대 인도의 부도와 같은 모습이다. 잠깐 발걸음과 숨소리를 멈췄다. 소나무 숲에선 딱따구리가 ‘똑똑똑’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정각마다 수행을 알리는 목탁소리도 함께 퍼져나갔다. 자연과 문화유산, 살아있는 신앙의 어울림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 세계유산의 품격을 지닌 통도사다. 양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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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송이 인사하는…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산 ‘통도사’ 가보니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 지난달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곳이다. 이들 사찰은 10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는 신앙·수도·생활 기능이 이어진 종합승원이자 각종 국보·보물이 가득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동아일보는 우리나라의 13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곳 사찰의 아름다운 모습과 숨은 역사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1회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명법 스님과 함께 경남 양산시 통도사를 찾았다.‘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문자 그대로 바람이 춤추고 서늘한 소나무가 반긴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숲을 적신 9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입구엔 수백 년 된 금강송 수천 그루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시끌벅적한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듯한 오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통도사에 시주한 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바위 조각들이 오른쪽에 쌓여 있다. 자세히 보면 여성 이름이 많다.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 지역 기생들이 시주를 많이 했기 때문이란다. 답답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염원은 얼마나 통했을까. 역사책에 등장하는 유명인사도 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1745~?)와 그의 스승인 김응환(金應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찬찬히 이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숲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사찰의 세계에 들어간다. 일주문을 건너 사천왕문 사이로 대웅전을 비롯한 사찰 전각과 통도사를 감싸고 있는 영축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 속이지만 비교적 평탄한 지대라 평면 가람배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 기법이자 자연의 풍경을 빌려 쓴다는 ‘차경(借景)’ 통도사는 조경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통도사는 크게 상·중·하 노전으로 나뉜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중건·중수되면서 규모가 계속해서 커졌기 때문이다. 동서로 이어지는 이동 축을 따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하노전. 가운데에 위치한 극락보전의 한쪽 벽에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십 명의 승려와 백성이 배를 타고 극락세계로 떠나는 모습을 담았다. 자세히 보면, 뱃사람 가운데 한 명만 뒤를 돌아보고 있다. 속세에 미련이 남아 이승을 바라보는 것. 눈을 크게 뜨고, 사찰이 지닌 ‘숨은 코드’를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려보자. 하노전의 오른편에 위치한 중심 전각인 영산전(보물 제1826호)에는 석가모니 일생을 8장면으로 나눠 그린 팔상도(보물 제1041호)가 있다. 조선 후기 통도사 소속 화승들이 직접 그렸다. 통도사는 팔상도를 비롯해 전통 불교회화 작품만 6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불교 예술 자료가 풍부하다. 명법 스님은 “통도사에는 예부터 화승들이 계보를 이을 만큼 수행과 신앙 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가치를 중시했던 사찰”이라고 설명했다.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사찰의 가운데 공간인 중노전이 등장한다. 중노전의 중심 전각인 대광명전(보물 제1827호)에는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비로자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앞쪽 용화전 앞뜰에는 밥그릇 모양의 봉발탑(보물 제471호)이 있는데, 석가모니가 미래의 부처인 미륵을 위해 준비한 공양을 뜻한다. 미륵과 화엄 사상 등 한국 불교의 변천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중노전의 특징은 스님들이 실제 수행을 하는 공간인 ‘원통방(圓通房)’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매일 새벽 통도사 스님들이 다같이 발우공양을 드리고, 경전 공부 등을 진행한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사찰의 가장 큰 어른인 방장(方丈) 스님부터 막내 스님의 자리까지 벽면에 스님들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입구 근처에는 독특하게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스님들의 찬상(반찬 그릇)을 옮기는데 쓰인다. 명법 스님은 “일본의 산사들은 외형적 전통은 유지하고 있지만 승려들이 출퇴근을 하면서 생활 기능을 잃었고,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면서 전통 불교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며 “통도사는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통적인 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상노전으로 가면 통도사 대표 문화재인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을 만날 수 있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불상이 없다.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 놓은 금강계단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쪽 벽면을 뚫어놨기 때문이다. 사각형 2중 기단으로 구성된 금강계단은 소나무 숲과 대웅전에 둘러싸여 아늑한 기분을 들게 한다. 볼록한 종 모양으로, 고대 인도의 부도와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통도사 입구에는 고승들의 부도를 모아놓은 부도전이 있다. 금강계단의 모습을 빌려 종을 형상화한 부도가 많은 게 특징이다. 대웅전 뒤편도 빼놓으면 아쉽다. 통도사 창건 설화가 깃든 연못인 ‘구룡지(九龍池)’가 나온다. 자장율사가 연못 속에 살던 용 9마리를 내쫓고, 한 마리만 남긴 채 연못을 메워 통도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지금 연못에 가들 용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물위로 비친 대웅전 처마 끝이 이동하는 이의 시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꽤나 신기하다. 상노전 가장 안쪽에는 참선을 수행하는 선원들이 모여 있는 ‘보광전’이 있다. “생각하기 어려운 경지를 볼 수 있다”는 뜻의 ‘능견난사문(能見難思門)’ 안쪽에 위치한다. 오직 선(禪)을 위해 정진하는 스님들만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어렴풋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스님들의 심정이 그려진다. 잠깐 발걸음과 숨소리를 멈췄다. 소나무 숲에선 딱따구리가 ‘똑똑똑’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정각마다 수행을 알리는 목탁소리도 함께 퍼져나갔다. 자연과 문화유산, 살아있는 신앙의 어울림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 세계 유산의 품격을 지닌 통도사다.양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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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한 마디에…너무 늦은 문화재 안내판 수정

    1. “남한강변의 요충지인 고지에 마련된 고대산성으로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包谷式)으로 이루어졌고 성벽의 축조 양식은 내외를 높게 축조해 올린 협축성(夾築城)이다.” 2. “불사리 신앙을 바탕으로 발생한 불교 특유의 조형물로서 흔히 대웅전 앞마당의 자오선상에 일탑 또는 상탑으로 배치된다.” 이 설명을 보고 과연 어떤 문화재인지 맞출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일단 정답부터 보자. 1은 경기 여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성관 파사성(사적 제251호)이고, 2는 보물 제250호인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문화재 전문가도 알아먹기 힘들다. 어디 문제가 이것뿐인가. 전국에 1만 여 건이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은 그동안 오랫동안 끊임없이 원성을 들어왔다. 한자 투가 많은 데다 친절하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전문용어가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도 많이 찾는 21세기 현재에 걸맞은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은 대대적인 문화재 안내판 실태조사와 1차 정비 사업을 내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침류각(枕流閣·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의 안내판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글도 어렵고 딱히 알고 싶은 내용도 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간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해온 시민들의 목소리보단 대통령의 한 마디가 더 ‘세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그간 관련 당국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화재청은 2006년부터 문화재 안내판 가이드라인을 지방자치단체에 보급하고, 2016년에는 국립국어원과 함께 지침서를 발간하는 등 나름 노력을 펼쳐왔다. 하지만 시민들은 왜 이런 변화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여전히 시민의 눈높이보단 관의 시각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니었던지 곱씹어볼 대목이다. 누구 덕이건 기왕지사 대대적인 정비에 나선다고 하니 하나만 부탁드린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꼼꼼히 고쳐나가자. 많은 전문가들은 국민이 살아있는 역사를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식 안내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환경을 활용하는 방법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안내판이 안내를 해야지, 혼란을 주는 촌극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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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댄 시원하십니까? 나는 민망합니다

    ■ 지하철이 피서지? 노출 너무 심해 난감합니다 여름이 되니 출근길부터 난감한 시선 처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양 어깨를 드러낸 오프 숄더를 입은 여성부터 겉옷인지 수영복인지 헷갈리는 탱크톱을 입은 대학생까지 곳곳이 노출의 연속입니다. 더워서 그런다지만 애꿎게도 제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아요. 괜히 드러난 몸매를 쳐다본다고 오해받을까 싶어 제 시선은 오늘도 휴대전화에 고정됩니다. 전 그래도 ‘양식 있게’ 갖춰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무실에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쿨비즈(Coolbiz·시원하고 간편한 비즈니스 복장)’가 대세인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부장님은 넥타이 없이 출근했다는 걸 에둘러 훈계하듯 “요즘 회사가 편하지?”라고 한마디하시더라고요. 자외선이 눈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했더니 건물 입구에서 절 본 동료 과장은 “연예인이냐”고 비웃고요. 여름철 복장, 대체 어디까지 벗고, 어디까지 입어야 하는 걸까요.  ■ 때-장소 맞는 의상 매너 지키는 게 멋쟁이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얼마 전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언뜻언뜻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에게 한마디 했더니 “대학생인데 옷도 맘대로 못 입어요?”라고 톡 쏘아붙이더라는 것. 그는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여름 옷차림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개성’과 ‘예절’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름철 대학가는 노출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곳이다. 대학생 장수민 씨(26)는 “교양 수업 때 ‘브라렛 패션’(브라톱을 겉옷처럼 입은)을 한 신입생이 들어왔는데 강의실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며 “패션 코드 자체가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게 대세가 되다 보니 여자가 보기에도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대학생들보다는 보수적인 여름 옷차림을 선택하지만 이 역시 세대차가 있다 보니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시원한 소재와 캐주얼한 스타일의 ‘쿨비즈 룩’이 도입되면서 난해한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권고된 ‘허용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직원이 늘어난 것. 2015년부터 쿨비즈를 도입한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정모 씨(33)는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거나 트레이닝복과 다름없는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동료를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정 씨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로마시대 무사 같은 샌들을 신고 온 후배를 볼 때면 한마디 할까 싶다가도 꼰대라는 지적을 받을까 봐 참는다”며 “치마 없이 레깅스만 입은 여사원을 보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단정함을 중시하는 성당이나 교회 등 종교시설도 여름철만 되면 신도들에게 ‘노출 자제’를 요청하느라 진땀을 뺀다. 천주교서울대교구는 매년 7, 8월이 되면 주보를 통해 ‘여름철 미사 때의 복장’을 공지한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교회법에서 옷 규정을 엄격히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심한 노출 패션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신자가 증가해 슬리퍼와 소매 없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고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여름철에도 단정한 정장 차림을 요구하는 법원 등 특정 업계에서는 ‘의상 자유’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법원에 협조 공문을 보내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관행과 분위기 때문에 넥타이를 매는 변호사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여름 옷차림 선택은 자신의 취향·개성과 상황별 의상규칙 사이에서 조율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청청 디자이너는 “이슬람 문화권에선 여성들이 수영장에서도 온 몸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듯이 어떤 상황에서 이상한 일이 어떤 상황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며 “직장과 종교시설, 학교 등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의상 매너를 숙지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직장인들의 경우 업무와 관련한 외부인을 만날 상황이 많은 만큼 사내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바깥에서도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을 ‘비즈니스 드레스 코드’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언영 장안대 스타일리스트과 교수는 “남성의 경우 유두점이 드러나는 얇은 셔츠나 통이 너무 좁거나 넓은 반바지 등은 글로벌 복장 매너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덥더라도 속옷을 갖춰 입고 남들이 언짢아할 만한 복장은 피하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속옷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나 가슴골이 너무 드러나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 상대방이 눈 둘 곳을 고민해야 하는 짧은 치마나 슬리퍼 등도 비즈니스 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이 교수는 “여름철엔 회사 내에 격식을 갖춘 신발이나 정장을 따로 준비해 두는 것도 요령”이라며 “출퇴근할 때는 편한 복장을 하더라도 보고나 회의에선 바꿔 입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이나 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이 느낀 불합리한 예법을 제보해 주세요. 카카오톡에서는 상단의 돋보기 표시를 클릭한 뒤 ‘동아일보’를 검색, 친구 추가하면 일대일 채팅창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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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겉옷인지 수영복인지…여름철 복장, 어디까지 벗어야 할까

    여름이 되니 출근길부터 난감한 시선처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양 어깨를 드러낸 오프 숄더를 입은 여성부터, 겉옷인지 수영복인지 헷갈리는 탱크톱을 입은 대학생까지 곳곳이 노출의 연속입니다. 더워서 그런다지만 애꿎게도 제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아요. 괜히 드러난 몸매를 쳐다본다고 오해받을까 싶어 제 시선은 오늘도 휴대전화에 고정됩니다. 전 그래도 ‘양식 있게’ 갖춰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무실에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쿨비즈(Coolbiz·시원하고 간편한 비즈니스 복장)’가 대세인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부장님은 넥타이 없이 출근했다는 걸 에둘러 훈계하듯 “요즘 회사가 편하지?”라고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자외선이 눈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했더니 건물 입구에서 절 본 동료 과장은 “연예인이냐”고 비웃고요. 여름철 복장, 대체 어디까지 벗고, 어디까지 입어야 하는 걸까요.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얼마 전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언뜻 언뜻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에게 한 마디 했더니 “대학생인데 옷도 맘대로 못 입어요?”라고 톡 쏘임을 당한 것. 그는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여름 옷차림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개성’과 ‘예절’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름철 대학가는 노출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곳이다. 대학생 장수민 씨(26)는 “교양 수업 때 속옷처럼 보이는 브라렛(브래지어 모양의 겉옷)을 입은 신입생이 들어왔는데 강의실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며 “패션 코드 자체가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게 대세가 되다보니 여자가 보기에도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대학생들보다는 보수적인 여름 옷차림을 선택하지만 이 역시 세대차가 있다보니 나름 고충이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시원한 소재와 캐주얼한 스타일의 ‘쿨비즈 룩’이 도입되면서 난해한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권고된 ‘허용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직원들이 늘어난 것. 2015년부터 쿨비즈를 도입한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정모 씨(33)는 몸에 쫙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거나 트레이닝복과 다름없는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동료를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정 씨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로마시대 무사 같은 샌들을 신고 온 후배를 볼 때면 한 마디 할까 싶다가도 꼰대라는 지적을 받을까봐 참는다”며 “치마 없이 레깅스만 입은 여사원을 보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단정함을 중시하는 성당이나 교회 등 종교시설도 여름철만 되면 신도들에게 ‘노출 자제’를 요청하느라 진땀을 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매년 7, 8월이 되면 주보를 통해 ‘여름철 미사 때의 복장’을 공지한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교회법에서 옷 규정을 엄격히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심한 노출 패션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신자들이 증가해 슬리퍼와 소매 없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고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여름철에도 단정한 정장차림을 요구하는 법원 등 특정업계에서는 ‘의상 자유’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법원에 협조공문을 보내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관행과 분위기 때문에 넥타이를 매는 변호사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여름 옷차림 선택은 자신의 취향·개성과 상황별 의상규칙 사이에서 조율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청청 디자이너는 “이슬람 문화권에선 여성들이 수영장에서도 온 몸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듯이 어떤 상황에서 이상한 일이 어떤 상황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며 “직장과 종교 시설, 학교 등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의상 매너를 숙지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직장인들의 경우 업무와 관련한 외부인들을 만날 상황이 많은 만큼, 사내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바깥에서도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을 ‘비즈니스 드레스 코드’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언영 장안대 스타일리스트과 교수는 “남성의 경우 유두점이 드러나는 얇은 셔츠나 통이 너무 좁거나 넓은 반바지 등은 글로벌 복장 매너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덥더라도 속옷을 갖춰 입고 남들이 언짢아 할만한 복장은 선택하지 않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속옷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나 가슴골이 너무 드러나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 상대방이 눈 둘 곳을 고민해야 하는 짧은 치마나 슬리퍼 등도 비즈니스 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이 교수는 “여름철엔 회사 내에 격식을 갖춘 신발이나 정장을 따로 준비해 두는 것도 요령”이라며 “출퇴근할 때는 편한 복장을 하더라도 보고나 회의에선 바꿔 입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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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삼국유사의 시조신화,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

    정사(正史)의 대표 선수로 여겨졌던 김부식(1075∼1151)의 ‘삼국사기’와 달리 승려 일연(1206∼1289)이 쓴 ‘삼국유사’는 야사(野史)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삼국사기가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나열된 데 비해 삼국유사에는 신화와 설화, 향가 등 문학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을 남기기 위한 별개의 아카이브로서 간행됐다”며 삼국유사의 신화적 요소에 숨겨진 우리 고대사회의 모습을 풀어낸다. 삼국유사를 새롭게 해석한 부분이 눈에 띈다. 단군신화로 알려진 ‘고조선조’는 총 437자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단군에 대한 내용은 191자이고, 환웅과 관련된 서술은 246자로 오히려 환웅에 대한 소개가 많다. 저자는 단군이 아닌 ‘환웅신화’로 접근해야 고조선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허황된 이야기로만 여겨진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 신화. 김알지가 알에서 깨어났다는 기존 견해와 달리 철제 제련이 발달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금함’에서 나온 아이로 해석하는 부분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서양문화의 근간이듯이 삼국유사에 실린 건국·시조신화가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이란 저자의 말처럼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 가능한 삼국유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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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동질성 회복의 장 열자” 연극교류위 출범

    남북한 연극인들이 만나 다채로운 활동을 함께하기 위해 남북연극교류위원회가 출범했다. 서울연극협회는 지난해 12월 발족한 남북연극인교류추진위원회를 남북연극교류위원회로 전환한다고 4일 밝혔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가 위원장을 맡았고 노경식 작가, 채승훈 연출가, 오태영 작가, 김정수 통일교육원 교수 등이 자문위원으로 임명됐다. 송형종 서울연극협회장은 “정치적 문제를 떠나 연극은 문화를 통한 남북의 동질성 회복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남북 연극인이 금강산에서 ‘세계평화연극제’를 함께 개최하자는 제안을 북측에 올해 4월 전달했다”고 말했다. 교류위원회는 북한 희곡 읽기와 북한 연극 및 연극인 초청 등을 통해 북한 연극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남북 연극인의 교류를 확대하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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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후 100년 만에…부여 능산리 고분군 재조사 완료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조사된 뒤 100여년 만에 다시 발굴조사를 진행한 충남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 내 서쪽 고분군에서 용 문양의 작은 금제 장식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와 부여군이 2016년 6월부터 2년 동안 능산리 서고분군 4기를 발굴 조사한 결과 금제 장식과 금송(金松) 목관 조각, 금동제 관 고리와 관 못 등을 찾아냈다”고 4일 밝혔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된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시대 왕릉 급 무덤 17기가 한데 모여 있다. 위치에 따라 중앙고분군(왕릉군), 동·서고분군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중앙고분군과 백제 금동대향로가 나온 서고분군 4기는 일제 때인 1917년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조사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능산리 왕릉군 서쪽 작은 계곡 너머에 있는 능선에서 무덤 4기를 확인하고 그중 2기를 발굴했다”는 기록과 간략한 지형도만 남겨 고분 규모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조사를 진행한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는 “능산리 서고분군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발굴조사 결과 일제강점기 조사와 도굴로 유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며 “2호분 돌방 바깥에서 나온 금제 장식은 길이가 2.3㎝로 작지만 끝이 뾰족한 오각형에 장식이 화려해 부장품 일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금제 장식과 함께 찾은 목관 조각은 일본 특산종으로 무령왕릉 목관 수종과 같은 금송으로 밝혀졌다. 서고분군은 능선을 따라 2·3호분, 1·4호분이 각각 다른 능선에 놓여 있다. 고분 양식은 모두 사비도읍기(538~660) 전형적 백제 무덤 형태인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이다. 시신을 안치한 방인 현실(玄室)에는 무덤길이 존재하고, 잘 다듬은 판석으로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2·3호분의 고분 지름은 20m 내외였고, 1·4호분은 15m 내외였다. 연구소 관계자는 “2·3호분과 1·4호분은 석실 규모, 석재 가공 정도, 입지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무덤 주인공의 위계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고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 유적도 확인했다. 서고분군을 중심으로 무덤을 만들지 않은 서쪽 능선에서 가로 4칸, 세로 2칸으로 추정되는 초석 건물터가 나왔고, 1호분과 4호분 사이에서는 구덩이(수혈·竪穴) 주거지 2기가 조사됐다. 연구소 측은 “건물터 위치와 구조를 고려할 때 무덤을 조성하면서 만든 임시 거처나 제사를 올린 시설로 판단된다”며 “삼국시대 고분군 중 고분 구역에서 건물 유적이 나타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백제시대 상장례(喪葬禮)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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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도 앞바다에 한때 조기잡이 배 가득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게 어장인 연평도 앞바다. 매년 봄, 가을 꽃게잡이 철에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어부들의 신경전이 뜨거운 곳이다. 사실 이곳이 꽃게가 아닌 조기잡이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1968년 이후 조기 어획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10개월간 연평도에 상주하며 민속 연구를 진행한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과거에는 조기가 남중국해에서 제주도, 흑산도, 위도를 거쳐 연평도까지 올라왔다. 1960년대부터 동력선이 등장하고, 그물의 소재가 면에서 나일론으로 바뀌면서 남획이 벌어져 조기의 씨가 말랐다”고 설명했다. 연평도와 강화도, 인천 시내의 각종 공단을 포함해 한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인천 일대의 속살을 분석한 인천 민속조사 보고서(사진)가 출간됐다. ‘2019년 인천 민속의 해’ 원년을 앞두고, 국립민속박물관과 인천시가 지난해 공동으로 진행한 민속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어촌, 농촌, 공단 등 주민의 삶을 기록한 민속지 6권과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6명이 집필한 주제별 조사보고서 6권 등 총 12권으로 구성됐다. 70년 만에 같은 지역을 재조사한 경우도 있다. 미국 예일대 교수를 지낸 인류학자 코넬리어스 오스굿(1905∼1985)이 1947년 7월 7일부터 9월 1일까지 민속조사를 벌였던 강화도 선두포(船頭浦)다. 이번에 다시 이곳 주민들의 생활상 변화를 조사했다. 민속박물관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인천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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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 된 일본식 가옥… 동양척식주식회사… 시간이 앉은 목포 유달동, 역사가 되었네

    목포 시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유달산 기슭에 위치한 유달동. 동네 어귀에는 겉모습만 봐서는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허름한 슈퍼마켓이 하나 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일본식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일본의 가정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1935년 식민지 조선에서 각종 농산물과 나무 등을 수탈해 가던 후쿠다농업주식회사의 사택으로, 80년 넘는 역사를 지녔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강록 씨(59)는 “10여 년 전 이 집을 구입했을 때 다다미 구조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다소 낡은 집이라 불편한 점도 있지만 오래된 역사와 함께 산다는 것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유달산 방향으로 걸음걸이를 옮기면 개교한 지 120년이 된 유달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한쪽에는 1929년 세워진 3층 규모의 옛 목포공립심상소학교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처럼 근대의 정취가 가득한 유달동 일대를 거닐다 보면 마치 1920년대 거리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 문화재청은 전남 목포시 유달동·만호동 일대 11만4038m²를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여 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고 예고했다. 근대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등록문화재는 2001년 도입한 후 건축물이나 서적처럼 개별 문화재 단위로만 등록이 진행됐다. 그러다 ‘목포 근대∼’를 포함해 전북 군산시와 경북 영주시 지역 일대가 공간 단위의 등록문화재가 된 것. 문화재청은 “선(線)과 면(面) 단위 등록제를 도입하면서 문화재를 맥락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찾은 목포시 유달동·만호동에서는 근현대사의 자취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897년 개항 이후 목포는 목포항과 목포역 등 교통의 요지로 자리매김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꽃핀 도시였다. 덕분에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번성한 지역에만 설치됐던 일본 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목포지점, 목포 화신백화점 등이 자리를 잡았고,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박윤철 목포시 학예연구관은 “일제강점기 때 호남 지역에서 수탈한 물자가 목포항에서 배에 실려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었다”며 “당시 관공서와 상업가가 혼재된 독특한 경관을 간직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문화재도 곳곳에 있다. 일제의 자본으로 세운 화신백화점에 대항해 조선 부녀자들이 직접 설립한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이 대표적이다. 1937년 11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동아부인상회가 목포의 대백화점”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민족자본의 저력을 보여준 곳이었다. 현재 ‘어쿠스틱 기타’ 가게로 사용되는 한 상점은 일제 때 지은 건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목포지역의 지도자 안철 장로(1945∼2003)가 운영하던 동아약국 건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김용희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사무관은 “미국 시애틀 등에서 성공을 거둔 ‘메인 스트리트’ 프로젝트나 일본의 근대 유산을 활용한 ‘삿포로 팩토리’처럼 지역 단위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유산과 도시재생 사업을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의 새 모델로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포=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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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1000년 山寺, 세계가 지켜야할 가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 7곳으로 구성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는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 이후 3년 만에 세계유산에 등재되며 총 13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30일(현지 시간)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한국의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최종 등재됐다”고 1일 밝혔다. 세계유산위원회는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 불교의 신앙·수도·생활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종합 승원인 한국의 산사는 세계유산의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등재된 한국의 산사는 △경남 양산시 통도사 △경북 영주시 부석사 △경북 안동시 봉정사 △충북 보은군 법주사 △충남 공주시 마곡사 △전남 순천시 선암사 △전남 해남군 대흥사 등 총 7곳이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들로 지금까지도 승려들의 수도 생활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고찰들이다. 순탄한 과정만은 아니었다. 지난달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한국이 신청한 7곳의 사찰 중 마곡사와 선암사, 봉정사 등 3곳을 제외한 4곳의 사찰에 대해서만 ‘등재 권고’ 판단을 내렸다. 다른 사찰에 비해 역사적 중요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봉정사의 경우에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코모스의 심사 결과가 알려지자 우리 정부는 7개 사찰을 모두 등재하기 위한 치밀한 교섭에 나섰다. 문화재청과 외교부는 세계유산위원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 막판 뒤집기를 위한 노력을 펼쳤다. 결국 21개국 위원회 국가 중 스페인을 비롯해 20개국이 한국의 산사 7곳 등재에 지지 입장을 표명했고, 최종 투표에서 21개국 만장일치로 7개 사찰의 동시 등재가 결정됐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사는 대표적인 불교유산일 뿐 아니라 빼어난 자연경관과 아름다운 건축물을 자랑하는 곳들이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의 배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는 676년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지은 절로,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불보(佛寶)사찰로 유명하다. 이곳의 대웅전 및 금강계단은 국보 제290호로 지정돼 있는 국내 불교 문화재의 보고다. 문화재위원인 명법 스님은 “이 사찰들에는 각종 문화재뿐 아니라 참선을 수행하는 공동체 문화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한국 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설명했다. 다만 유네스코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건물들의 관리 방안과 종합 정비 계획 수립, 앞으로 늘어날 관광 수요에 대비한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 사찰 내 건축물을 새로 지을 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협의할 것을 주문했다. 정병삼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세계유산 등재도 의미가 있지만 이들이 지닌 진정성과 완전성을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문화재청과 지자체, 조계종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체계적인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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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2막 깎고 다듬고…” 목공에 빠진 5060

    “평생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서류만 만지며 살아왔잖아요. 어느 순간 ‘내가 손 쓰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컨설팅업체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50)의 말이다. 그는 66m²(약 20평) 남짓 되는 사무실의 절반을 목공 작업실로 꾸몄다. 수저, 도마는 물론이고 사무실 책상과 의자까지 이 작업실에서 직접 만들었다. 이번 여름휴가 때는 미국 메인주에 사는 목공 장인을 찾아가 연수를 받을 계획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만든 작품을 판매하고 있는 그는 “5∼10년 안에 전문가 수준으로 기술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손맛 좀 볼 줄 아는’ 중년이 늘고 있다. 목공은 특히 5060세대에게 인기가 많아 취미로 목공을 즐기는 이들을 가리키는 ‘취목족’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다. ‘취미 목수’들의 인터넷 카페는 회원 수가 21만 명을 넘어섰고, 매일 200건 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목공 교실을 운영하는 유우성 씨(61)는 “최근 목공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급증했다. 정원이 다 찼는데도 배우겠다는 문의가 이어져 올해는 정원보다 더 많은 수강생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을 프로듀싱한 음반제작자 김웅 씨(46)도 틈날 때마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가구 공방을 찾는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겠다”는 다짐으로 가구 공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년차. 전시회를 열 정도가 됐고 은퇴 후에는 전문 목수가 될 계획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와 라이나전성기재단은 지난달 ‘대한민국 50+ 세대의 라이프 키워드’ 보고서에서 가족과 치열한 삶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고 ‘다시 태어나는’ 5060세대를 ‘리본(Re-born)’ 세대로 정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50∼64세 1070명 중 71%가 “생산적인 여가 활동을 원한다”고 답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5060세대가 원하는 것을 하며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도 이런 이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이들에게 전통 목공뿐만 아니라 옻칠, 나전칠기, 금속공예, 자수 등 15가지 전통 공예를 배울 수 있다. 수료 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예술가가 된 사람도 있다.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에서는 전통공예건축학교 저녁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50, 60대 ‘아재’들이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조종원 한국문화재재단 문화교육팀장은 “저녁반 수업의 수강생은 절반 이상이 50, 60대 직장인으로, 회사원 교수 건축가 등 직종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문진호 씨(56)는 이곳에서 전통자수를 배우는 아내 김애현 씨(55)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장롱, 탁자 등을 만드는 소목을 배우고 있다. 건축가인 문 씨는 “작은 한옥을 지어 내가 만든 가구와 아내가 만든 병풍으로 꾸민 후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웃었다. 회사원 송세근 씨(59)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숨 가쁘게 살아오다 한 작품을 몇 달씩 걸려 만드는 삶에 매료됐다. 옻칠과 나전칠기를 배우고 있는 그는 “친구들에게 ‘술만 마시지 말고 나전칠기를 배워 보라’고 권한다”며 작업 중인 옻칠함을 들어 보였다. 전문가들은 ‘리본 세대’의 수공예 취미는 더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수공예는 아날로그적 삶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향수를 달래준다”며 “은퇴 후 삶이 길어지고, 주 52시간 근무제로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공예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그 종류도 한층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운 easy@donga.com·유원모 기자}

    •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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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제화 공방서 느껴보는 장인의 손길

    손맛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낼까. 최근 장인(匠人)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색 전시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수제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높아진 관심과 장인정신에 대해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대를 넘어-수제화 장인’ 특별전은 한국 구두의 역사와 함께 수제화 장인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는 구두를 신은 고종황제의 사진, 산악인 허영호가 1995년 북극해 횡단 때 신은 특수 제작 등산화 등 구두와 관련된 유물과 기록 사진, 동영상 224개를 선보인다. ‘구두’의 어원은 구한말 신발을 뜻하는 일본어 ‘구쓰(くつ)’에서 유래했지만 ‘장인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도 대를 잇는 제화공 가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서울 중구 을지로 수표교 근처에서 4대에 걸쳐 83년간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림 수제화’가 수제화의 명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가문이다. 전시장에는 제작도구와 1950년대 만들어진 수제 등산화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발 상태도 많이 좋아지고 있어 고마운 시간들이랍니다”라고 적힌 고객의 감사편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의 백미는 수제 구두 공방을 그대로 옮겨와 재현한 공간이다. 손님을 맞는 접객부터 가죽을 재단하고, 바닥창을 제외한 가죽을 자르고 박음질하는 갑피, 바닥창에 갑피를 붙이고 밑창과 굽, 깔창 작업을 하는 저부 등 수제 구두 제작의 전 과정을 소개한다. 주말 전시장을 찾아가면 송림 수제화 장인들이 직접 구두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철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초청장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이번 특별전을 찾는 관람객 중에는 중장년층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며 “유행보다는 정성과 향수를 중시하는 5060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10월 15일까지. 무료.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무형문화재 전수자들의 작품을 즐길 수 있다. 29일 개막한 특별전 ‘장인의 손길, 일상을 꾸미다’로 갓, 신발, 나전칠기, 화각(華角·쇠뿔을 이용한 공예기법) 등 우리의 전통 기술을 그대로 살려 제작한 공예품 200여 점을 선보인다. 관람객이 손을 대면 꽃과 곤충이 반응하여 움직이는 초충도 인터랙티브 영상 등 체험형 프로그램과 전통 문양 스티커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낼 수 있는 우편엽서도 준비됐다. 8월 26일까지. 무료.  유원모 onemore@donga.com·이지운 기자}

    •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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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원숭이에서 달팽이로… 소주병 모델은 왜 바뀌었을까

    흔히 디자인을 다룬 책이라면 감각적이거나 아름다운 작품들이 수록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선 투박하고 오히려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사물들이 주인공이다. 라면, 화장품, 담배, 과자처럼 일상에서 친숙한 사물 15개의 디자인 역사를 짚어낸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가 시작될 때의 어설픔, 경제 발전시기의 자신감, 현대로 오면서 강조되는 자유분방함 등이 우리 주변 사물들에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술 ‘소주’. 소주병에도 독특한 디자인 코드가 숨겨져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소주 상표의 주인공은 원숭이였다. 사람과 생김새가 비슷하고, 술을 즐기는 기이한 짐승이라 여겨져 왔기 때문. 그러나 1955년 두꺼비가 원숭이의 자리를 차지한다. 속임수와 교활함을 상징하는 원숭이 대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떡두꺼비’가 더 인기를 끈 것. 2000년대 들어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나무와 달팽이가 두꺼비를 밀어내고, 소주의 대표선수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외관에도 시대상이 투영돼 있다. 1980년대 ‘마이카 시대’ 출발을 상징했던 엑셀, 르망, 프라이드 등의 소형차들은 군사정권이라는 당대 상황을 반영하듯 각진 세단형의 디자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1990년대 중산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쏘나타와 아반떼는 부드러운 미소를 형상화한 램프와 매끄러운 곡선 등이 강조됐다. 외환위기 직전의 풍요로운 사회 분위기가 배어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의 가치가 부각되지 못한 것은 서구와 일본의 문물을 급격하게 받아들이면서 ‘모방’이 성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최초의 보급형 전화기인 ‘체신 1호’는 미국의 AT&T의 302 전화기를 그대로 베꼈고, 1980년대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담뱃갑은 대부분 일본의 인기 담배였던 ‘피스’를 따라 했다. 효율성의 가치만 따지다 정작 아름다움은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마치 민속박물관의 전시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난 느낌을 준다. 매일 쓰는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보게 하는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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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재 예방 거북탑… 정진-회생 사슴탑… ‘동물농장’ 미황사 탑, 다양한 염원 담겨”

    전남 해남군 달마산 기슭에 위치한 미황사.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창건돼 1300여 년을 견딘 한반도 육지 최남단에 있는 절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름다운 동백나무와 대웅전(보물 947호), 웅진당(보물 1183호) 등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게다가 무려 27기의 탑과 탑비가 밀집해 있다.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처럼 본사(本寺)급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규모다. 특히 ‘동물농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탑과 비에 다양한 동물상이 조각돼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서울 동국대에서 23일 열린 동악미술사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미황사의 불교미술만을 다룬 연구들이 공개됐다. 신용철 양산시립박물관장은 이들 동물상의 숨겨진 코드를 분석했다. 미황사에는 총 10기의 탑과 비에 동물이 새겨져 있다. 가장 많은 건 게, 거북, 물고기 등 수중 생물이다. 해안과 가까운 곳이고, 화재가 나지 않기를 비는 뜻과 이상 세계인 용궁의 의미가 함축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다람쥐, 토끼, 사슴, 다람쥐 등 불교에서 정진, 회생, 석가모니를 뜻하는 동물상도 대거 등장한다. 미황사 승탑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인 17, 18세기에 조성됐다. 신 관장은 “억불정책이 강했던 조선 초·중기까지는 승탑 건립이 드물었고 16세기는 ‘무탑(無塔)’의 시기로까지 불렸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 불교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면서 18세기 ‘승탑의 전성기’를 맞았고 특히 미황사가 승탑 건립을 적극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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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오가던 조선통신사船… 200년만에 실물로 뜬다

    200년 전 일본으로 떠났던 조선통신사들이 출항한 날도 이처럼 맑았을까. 25일 찾은 ‘항구의 도시’ 전남 목포 앞바다는 장마 직전 뜨거운 햇살로 빛나고 있었다. 목포 도심에서 전남 영암군 방향으로 뻗어 있는 목포대교를 건너면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주둔했던 고하도가 왼쪽에 나타난다. 오른쪽엔 4년 만에 다시 우뚝 선 세월호가 있는 목포신항이 보인다. 여기서 다시 5km가량 더 들어가면 각종 조선소가 모여 있는 영암 대불산업단지가 있다. 거대한 선박들이 건조·수리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조선소 한 곳이 있다. 작업장 근처에는 두께만 1m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쌓여 있고, 송진 가루들이 목수들 사이로 휘날렸다. 조금 더 들어가니 육중한 목선(木船) 한 척이 등장했다. 2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바다를 오가던 ‘조선통신사선’이 복원되고 있는 현장이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뒤 실권을 잡은 에도 막부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1607년부터 시작됐다. 1811년까지 200여 년에 걸쳐 12차례 파견했다. 일본은 조선 사신의 방문을 통해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인삼 교역 등을 통한 상업 발전, 유학 등 선진 문물을 수용했다. 조선에선 일본의 의중을 현지에서 확인할 기회였다. 통신사선은 당대 기술력이 동원된 조선 최대 규모의 선박 가운데 하나. 보통 200∼500명 규모였던 통신사 일행은 선단 5척에 나눠 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정사(正使)가 탔던 배가 현재 복원되고 있다. 건조되는 통신사선은 길이 34.5m, 너비 9.3m, 깊이 3m에 무게는 137t에 이른다. 조선시대 모습과 거의 흡사한 구조로 배의 주요 치수가 적힌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와 선박 운항 실태를 기록한 ‘계미수사록(癸未隨사錄)’ 등 당대 문헌을 치밀하게 고증했다. 통신사선의 평면도가 남아있는 ‘헌성유고(軒聖遺稿)’에는 “배 밑은 너비가 한(一)자 반이 되는 네모진 통나무를 옆으로 열한 개를 잇고 가새(장삭)를 박는다”란 기록이 있다. 복원 중인 통신사선 저판(底板·물에 뜨도록 만든 밑판) 역시 11개의 소나무를 촘촘히 엮어 배를 지탱하고 있었다. 통신사선은 조선시대 한선(韓船)의 전형이자 배 밑이 평평한 평저선이다. 이번 복원 과정에서 배의 앞쪽인 선수(船首)는 평면이 아닌 활처럼 40도가량 가파르게 휘어진 구조란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복원 팀을 이끌고 있는 홍순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금강송 중에서도 송진을 많이 머금고 있어 썩지 않는 적심 부분을 주로 활용해 품질과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정은 약 83%. 저판과 좌우 외판을 비롯해 선수와 선미 등 배의 뼈대가 되는 작업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배의 갑판에 올라서니 2중 구조로 된 양측 난간이 눈에 띄었다. 홍 연구사는 “안쪽 난간은 통나무로 돼 있는데 물막이 역할을 위해 이같이 설계했다”며 “개흙이 많은 우리나라 해안의 특성을 반영해 저판에 일부러 홈을 파놓는 등 복원 과정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통신사선은 전시품이 아니라 선박안전법 기준을 모두 지키며 건조하고 있다. 완성하면 최대 7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여객선이 된단 얘기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배 내부에 선상박물관을 꾸며 통신사선을 비롯한 조선시대 해양문화유산을 전시할 예정이다. 또 양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조선통신사 축제에서도 활용할 방침이다. 통신사선은 10월 26일 진수식을 열고, 본격적인 출항에 나선다. 영암=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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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근길 문화] 200년 만에 복원 ‘조선통신사선’…137톤 실물크기로 제작

    200년 전 일본으로 떠났던 조선통신사들이 출항한 날도 이처럼 맑았을까. 24일 찾은 ‘항구의 도시’ 전남 목포 앞바다는 장마 직전 뜨거운 햇살로 빛나고 있었다. 목포 도심에서 전남 영암군 방향으로 뻗어있는 목포대교를 건너면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주둔했던 고하도가 왼쪽에 나타난다. 오른쪽엔 4년 만에 다시 우뚝 선 세월호가 있는 목포신항이 보인다. 여기서 다시 5㎞가량 더 들어가면 각종 조선소가 모여 있는 대불산업단지가 있다.거대한 선박들이 건조·수리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조선소 한 곳이 있다. 작업장 근처에는 두께만 1m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쌓여 있고, 송진 가루들이 목수들 사이로 휘날렸다. 조금 더 들어가니 육중한 목선(木船) 한 척이 등장했다. 2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바다를 오가던 ‘조선통신사선’이 복원되고 있는 현장이다.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뒤 실권을 잡은 에도 막부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1607년부터 시작됐다. 1811년까지 200여년에 걸쳐 12차례 파견했다. 일본은 조선 사신의 방문을 통해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인삼 교역 등을 통한 상업 발전, 유학 등 선진 문물을 수용했다. 조선에선 일본의 의중을 현지에서 확인할 기회였다. 통신사선은 당대 기술력이 동원된 조선 최대 규모 선박 가운데 하나. 보통 200~500명 규모였던 통신사 일행은 선단 5척에 나눠 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정사(正使)가 탔던 배가 현재 복원되고 있다.건조되는 통신사선은 길이 34.5m, 너비 9.3m, 깊이3m에 무게는 137t에 이른다. 조선시대 모습과 거의 흡사한 구조로 배의 주요 치수가 적힌 ‘증정교린지(增政交隣志)’와 선박 운행실태를 기록한 ‘계미수사록(癸未隨¤錄)’ 등 당대 문헌을 치밀하게 고증했다. 통신사선의 평면도가 남아있는 ‘헌성유고(軒聖遺稿)’에는 “배 밑은 너비가 한(一)자 반이 되는 네모진 통나무를 옆으로 열한 개를 잇고 가새(장삭)를 박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복원 중인 통신사선 저판(底板, 물에 뜨도록 만든 밑판) 역시 11개의 소나무를 촘촘히 엮여 배를 지탱하고 있었다.통신사선은 조선시대 한선(韓船)의 전형이자 배 밑이 평평한 평저선이다. 이번 복원 과정에서 배의 앞 쪽인 선수(船首)는 평면이 아닌 활처럼 40도 가량 가파르게 휘어진 구조란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복원 팀을 이끌고 있는 홍순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금강송 중에서도 송진을 많이 머금고 있어 썩지 않는 적심 부분을 주로 활용해 품질과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현재 공정률은 약 83%. 저판과 좌우 외판을 비롯해 선수와 선미 등 배의 뼈대가 되는 작업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배의 갑판에 올라서니 2중 구조로 된 양측 난간이 눈에 띄었다. 홍 연구사는 “안쪽 난간은 통나무로 돼 있는데 물막이 역할을 위해 이 같이 설계했다”며 “개흙이 많은 우리나라 해안의 특성을 반영해 저판에 일부러 홈을 파놓는 등 복원 과정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이번 통신사선은 전시품이 아니라 선박안전법 기준을 모두 지키며 건조하고 있다. 완성하면 최대 72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여객선이 된단 얘기다. 앞으로 배 내부에는 선상박물관을 꾸며 통신사선을 비롯한 조선시대 해양문화유산을 전시할 예정이다. 또 양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조선통신사 축제에서도 활용할 방침이다. 통신사선은 10월 26일 진수식을 열고, 본격적인 출항에 나선다.유원모 기자onemore@donga.com}

    •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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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인권 어디까지 왔나? 궁금할 땐 여기로

    올해 초부터 불거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한국 사회의 성범죄 현실을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성범죄는 얼마나 자주 발생할까.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대검찰청에서 매년 작성한 ‘범죄분석 통계’다. 2011년 1만9498건이던 성범죄는 2013년 2만2310건으로 증가한 뒤 2015년에는 2만1286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실제 범죄가 증가했을 수도 있지만 성범죄의 신고와 사건 접수가 원활해진 측면도 있다. 범인 검거 건수는 2011년 1만6404건에서 2013년 1만9774건, 2015년에는 2만52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성범죄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는 다양하다. 안전에 대한 인식, 노인학대 사건, 장애인 취업자 소득, 탈북자 포용 수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각각의 지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의 홈페이지를 찾아다니거나 정보공개를 개별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최근 한국의 인권상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생겼다. ‘숫자로 보는 인권(http://humanrightsdb.com)’이다. 458개의 사회조사, 행정통계를 한데 모았다. 2016년부터 국내외 주요 대학의 정치·경제·사회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SSK 인권포럼’(한국연구재단 지원) 소속 연구진이 만들었다. 포럼을 이끄는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범죄와 재벌 2, 3세의 갑질 사건에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는 등 인권 감수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며 “객관적으로 집계된 각종 자료를 인권의 관점에서 재가공해 법과 제도, 평등권, 자유권, 사회권 등 4가지 주제로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숫자로…’에서는 한국 인권 수준의 변화를 정확한 숫자로 파악할 수 있다. 탈북자에 대한 포용수준을 살펴보자. ‘숫자로…’ 홈페이지에 있는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을 친구나 직장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이 2013년 32.1%에서 2015년 43.3%로 늘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정보 접근권은 어떨까. 4대 취약계층(장애인 저소득층 농어민 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2015년 52.4%에서 2016년 58.6%로 소폭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미래창조과학부 ‘디지털정보격차실태조사’). 구 교수는 “국민들이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을 함께 점검하고 토론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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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태항아리엔 나라의 안녕 담겼네

    조선시대의 독특한 출산 문화 중에는 안태(安胎)가 있다. 갓난아이의 탯줄을 보관하는 것으로 특히 왕실에서는 후대의 건강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중요한 의식으로 다뤘다. 아기씨가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 탯줄을 태항아리에 넣는 세태 의식을 진행했고,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吉地)에 묻어 태실(胎室)을 조성했다. 조선의 국왕 27명 중 18명의 실제 태항아리를 볼 수 있는 이색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7일 시작하는 특별전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나라의 복을 담은 태항아리’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번 전시회에선 조선 왕실의 출산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과 문헌 300여 점을 공개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는 1부 ‘종사지경(종斯之慶), 왕실의 번영을 바라다’로 시작한다. 종사는 베짱이와 곤충이란 뜻으로 부부 화합과 자손 번창을 의미한다. 다산을 상징하는 백자도(百子圖) 병풍과 영친왕비가 소장했던 노리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2부 ‘고고지성(呱呱之聲), 첫 울음이 울려 퍼지다’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출산을 위해 설치한 관청인 산실청(産室廳), 아기씨 양육을 담당한 보양청(輔養廳), 아기씨를 돌본 유모인 봉보부인(奉保夫人)과 왕족의 출생 관련 의례에 관한 문헌 등을 전시했다. 3, 4부에서는 태조 이성계부터 세종, 정조 등의 태실을 공개한다. 조선 초기 도기 위주에서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변하는 태항아리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7월 26일과 8월 9일에는 전시와 연계한 특별 강연회를 연다. 무료. 9월 2일까지.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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