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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같은 거대 회사가 아니다 보니 물량 대신 감독을 갈아 넣는 식으로…. 엄청난 양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송)강호 형님은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쌍코피도 흘렸다.”(봉준호 감독) 아카데미상(오스카)은 심사위원이 아닌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약 8400명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배급사와 스튜디오가 엄청난 예산과 물량을 투입해 홍보전을 펼친다. 마치 선거운동을 방불케 해 ‘오스카 캠페인’이라고 부른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캠페인 전담팀이 상설 조직으로 있고, 통상 최대 3000만 달러(약 358억 원)를 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영화 최초로 ‘오스카 캠페인’에 뛰어든 ‘기생충’은 CJ ENM과 북미 배급사인 네온(NEON)이 나서며 100억 원대를 들였을 것으로 영화계는 추정한다. 미국 콜로라도주 텔루라이드 영화제(지난해 8월 30일)를 시작으로 토론토 영화제(9월 5일), 뉴욕 영화제(9월 27일) 등 북미권 영화제 참석으로 개봉 전 ‘붐 조성’ 작업을 했다. 봉 감독도 500번 이상의 외신 인터뷰, 100여 차례 GV에 나섰다. 미국감독조합 제작자조합 등 직능단체를 대상으로 시사회를 열고 파티도 가졌다. 그는 “첫 개봉 주에는 하루에 몇 군데씩, 봉고차 탄 유랑극단처럼 움직였다”고 했다. 캠페인의 목적은 결국 입소문과 흥행이다. ‘기생충’은 지난해 10월 뉴욕 로스앤젤레스 3개 상영관에서 개봉했으나 오스카상 후보 지명 후 미국 내 상영관이 1060개로 늘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북미 수익은 9일 기준 3437만 달러(약 410억 원), 글로벌 수익은 1억6426만 달러(약 1960억 원)에 이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샤론 최가 오늘 밤의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은 최성재(샤론 최·사진) 씨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9일(현지 시간) 시상식 후 영국 출신 언론인 피어스 모건(55)이 트위터에서 그를 ‘이름 없는 영웅’으로 칭송했다. 지난달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 씨를 비롯한 비영어권 영화감독들의 통역자 이야기를 엮어 별도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샤론 최가 화제였다’는 질문도 나왔다. 봉 감독은 “(최 씨가)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그 내용이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최 씨는 전문통역가가 아니며 한국 국적으로 미국 대학을 나와 영화를 공부했다. 본인의 영화도 촬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각국의 문화적 차이는 물론이고 영화라는 분야에 관한 이해도도 높아 매끄러운 통역이 가능했다. 여기에 감독의 말을 놓치지 않는 기억력과 맥락에 맞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발력도 갖췄다. 봉 감독은 “샤론 덕분에 모든 캠페인이 잘 굴러갈 수 있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 씨는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영화제부터 봉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같은 해 12월 미국 NBC ‘투나이트 쇼’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지난해 1월 넷플릭스로 공개된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의 프로그램은 ‘미니멀리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소비에 중독돼 ‘예쁜 쓰레기’(쓸모는 없지만 아기자기한 디자인 때문에 갖고 싶은 물건을 일컫는 말)를 사 모으던 세태에 ‘잘 버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의 이름을 줄여 ‘곤마리 정리법’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정리의 기술’은 곤도가 미국에서 출간한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2014년 출간한 ‘정리의 힘’으로 2년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8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정리의 힘’이 “정리는 마인드가 90%”라며 설레지 않는 물건 버리기를 강조했다면, ‘정리의 기술’은 ‘설레는 물건 구별법’ ‘공간 수납법’ 등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안내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의 확산으로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아트바젤 홍콩이 취소됐다. 아트바젤을 운영하는 MCH 그룹은 6일 보도자료를 내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및 확산으로 취소했다”고 밝혔다. 아트바젤은 1970년 스위스 바젤의 갤러리스트들이 시작한 아트페어로 바젤, 마이애미비치, 홍콩에서 매년 열린다. 아트바젤 홍콩은 주로 아시아 컬렉터가 모이는 행사로 국내는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학고재, 조현화랑 등이 참가하고 있다. 아트바젤 측은 보도자료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국제 보건비상사태로 선포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며 “대안을 찾기 위해 갤러리스트, 컬렉터, 외부 전문가 등과 논의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홍콩의 상업 갤러리들은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홍콩의 45개 갤러리로 구성된 홍콩아트갤러리협회(HKAGA)는 “서구에서 극히 제한적이고 근시안적인 보도와 코멘트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트바젤 개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참여 갤러리에 고지된 내용에 따르면 아트바젤은 이번 페어 취소로 부스비의 75%를 환불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참고로 아트 바젤 마이애미비치가 2001년 9·11 테러로 개최 두 달 전에 취소됐을 때는 다음해 개최될 페어의 부스비로 이월된 바 있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CONNECT, BTS’ 프로그램이 모두 공개됐다. CONNECT, BTS는 ‘국적 장르 세대가 다른 미술작가들이 방탄소년단과 협업한 글로벌 현대미술 전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에서 시작해 독일 베를린,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뉴욕과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 ‘다양성’ 주제, 간섭 없는 지원 CONNECT, BTS는 ‘다양성을 키워드로 각국에서 전시를 연다’라는 독립큐레이터 이대형 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씨는 “BTS가 다양성과 연결이라는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적 방향성을 즉각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이 씨가 총괄 기획을 하고 국가별 프로젝트 기획은 베를린 마르틴그로피우스바우 미술관 관장인 스테파니 로젠탈,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큐레이터인 벤 비커스와 케이 왓슨, 뉴욕 아트 딜러인 토머스 아널드 등이 맡았다. 런던에선 덴마크 출신 야코브 스텐센의 작품 ‘카타르시스’를 공개했다. 베를린에선 퍼포먼스 프로그램인 ‘치유를 위한 의식’ 그룹전(展)이 열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설치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가 ‘플라이 위드 에어로센 파차’를 공개했고, 뉴욕에서는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설치작품 ‘뉴욕 클리어링’이 전시됐다. 서울에서는 영국 작가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설치작품과 강이연 작가의 프로젝션 매핑 작업을 각각 선보이고 있다. 전시 작품 기획은 다양성과 연결이라는 화두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각 기획자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이 씨는 “기획자 선정에 BTS가 동의했고 참여하는 작가와 화상 통화도 진행했다”며 “강 작가는 BTS적인 요소를 작품에 넣었고 다른 작가들은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5∼10년간 고민했던 작업을 그대로 이어갔다”고 말했다. 곰리의 전시는 지난해 영국 로열아카데미 개인전에서 선보인 ‘클리어링’ 시리즈의 뉴욕 버전이고, 사라세노의 ‘에어로센’이 2015년 시작한 프로젝트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예술센터 등과 협업한 작품인 점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 ‘단발성 후원’에 그치지 않기를…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BTS가 협업한 흔적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CONNECT, BTS가 “엄밀한 의미의 협업이 아니라 재정적 후원”이라는 것이다. 구사마 야요이와 루이비통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가방 제작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협업과는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예술가를 후원해 후원자에게 돌아올 좋은 이미지를 취하는 ‘네이밍 스폰서’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는 CONNECT, BTS에 대한 후원 규모를 1000만 파운드(약 153억 원)로 추정했다. 해외 공공 미술관은 재정 부족 타개를 위해 기금 모금 전담 부서를 운영한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 큐레이터는 “후원자가 큰 결격 사유가 없고 조건 없는 지원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미술가를 좀 더 후원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묻어난다. 해외 미술계와 접촉이 잦은 한 기획자는 “저평가된 국내 작가의 신작 제작이나 해외 진출을 도왔다면 훨씬 뜻깊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TS가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이나 간송 전형필(1906∼1962)같이 작가를 지켜보는 인내심과 진정성을 갖고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를 지속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김민 kimmin@donga.com·임희윤 기자}

80대인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86)가 ‘핫한 신인 작가’로 떠오른 건 76세이던 2010년이었다. 당시 그는 영국 남동쪽에 있는 켄트주의 16세기 시골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시골집에는 팔리지 않은 그림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러다 미국 워싱턴 여성예술박물관에서 열린 ‘주목해야 할 여성’전에 영국 작가로 유일하게 출품하며 깜짝 주목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와일리의 판화 22점과 원화 1점을 볼 수 있다. ‘내가 입던 옷’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가 과거에 입었던 옷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간결한 선 드로잉에 노란색만 칠해진 ‘노란 수영복’, 눈에 멍이 든 것처럼 푸른 안경을 과장해서 표현한 ‘블루’ 등의 작품이 있다. 와일리의 그림은 이집트 고대 문명부터 영국의 축구 선수 존 테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등 친숙한 소재를 경계 없이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밀레니얼 작가의 그림이었다면 눈길이 가지 않았겠지만, 시골 마을에 작업실을 둔 70대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공책에 끼적인 낙서처럼 자유롭고 재기 발랄한 표현을 보면 왠지 모를 용기와 희망이 솟아난다. 지극히 회화적인 표현은 같은 영국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를 떠올리게 한다. 또 일상적 소재를 활용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에 팝아트적 요소도 다분하다. 이번 전시는 대형 작품이 적어 아쉽지만 12월 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별도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어 ‘맛보기’용 전시로는 괜찮을 듯하다. 1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동아일보의 100번째 생일상, 순백의 ‘내일을 담는 100년의 상(床)’ 위에 알록달록한 빛깔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미래의 100년을 함께할 젊음들이 자유롭게 꿈을 펼치길 희망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1064스튜디오가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길이 230cm의 대형 목걸이가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공개된다.》 백색의 ‘한국의 상(床)’ 위로 길이 230cm의 가느다란 금색 선이 찰랑이며 내려온다. 황동과 14K 금이 섞인 얇은 프레임 안에는 색색의 아크릴이 반짝인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로비에 설치된 ‘한국의 상’에서 4일부터 공개되는 1064스튜디오의 대형 목걸이 아트피스다. ‘한국의 상’은 올해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의 브랜드를 보여주는 ‘쇼룸’이자 모두에게 열린 개방형 아트 플랫폼이다. 특히 세계 무대를 향해 도전하는 국내 청년 작가와 100년을 젊은 감각으로 해석한 오브제를 선정해 전시를 연다. 이번에는 독특한 디자인만으로 해외에 진출한 1064스튜디오와 동아일보가 협업해 대형 아트피스를 제작했다. 3일 설치작업을 위해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노소담 대표(29·사진)를 만났다. 노 대표는 “동아미디어센터 외관에 ‘한국의 색’을 설치한 다니엘 뷔렌을 좋아한다”며 “뷔렌의 색에서 영감을 얻어 목걸이를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뷔렌의 대형 작품이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데 비해 노 대표는 목걸이 프레임의 금빛 톤에 맞춰 노란색과 오렌지 계열을 더 강조했다. 목걸이 형태는 2017년 선보인 ‘빛의 움직임(Movement of Light)’ 컬렉션을 확대하고 변형한 것이다. 이 컬렉션은 1064스튜디오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미국, 일본 디자인 스토어에 입점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1064스튜디오는 지난해 글로벌 온라인 쇼핑 사이트 ‘네타포르테’가 론칭한 ‘코리안 컬렉티브’에 포함되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2000년 설립된 네타포르테는 한 달 사용자가 7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쇼핑 사이트다. 지난해 이 사이트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내 브랜드는 단 5개로, 2015년 설립한 신진 스튜디오가 이름을 올려 관심을 모았다. 비욘세의 스타일리스트가 협찬을 요청하고 클로이 카다시안이 직접 주얼리를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 대표는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와 콩스탕탱 브랑쿠시(1876∼1957)를 꼽았다. 디자이너보다 건축가, 조각가를 좋아한다는 그의 성향처럼 1064스튜디오의 주얼리도 비정형이지만 단순하면서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조각작품같이 과감한 형태를 해외 바이어가 알아보고,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점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이번 ‘한국의 상’에 전시된 것처럼 대형 목걸이를 제작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스튜디오 구성원 5명이 수작업으로 한 달간 매달려 목걸이를 완성했다. 노 대표는 “도전을 좋아해 일을 벌였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언제 끝이 날까 막막했다”면서 “완성되는 걸 보니 ‘도전하면 못할 게 없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웃었다. 그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올해 설날 연휴가 지난 후 열린 첫 전시이기에 더욱 뜻깊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경제 전망도 좋지 않고 청년들은 때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죠. 저 역시 그럴 때가 있지만 반짝이는 색을 보며 함께 꿈과 희망을 가져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시는 28일까지. 자세한 내용은 한국의 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에서 ‘유재석’급 인기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가드 엘마레의 2017년 미국 공연 중 한 장면이다. “미국인들은 파리를 참 좋아해요. 제가 파리에서 왔다고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파리의 이야기를 늘어놓아요. 다 듣고 난 뒤 전 이렇게 말했죠. ‘도대체 그 도시는 어딥니까?’” 파리에 관한 미국인의 판타지를 총망라한 또 다른 콘텐츠로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년)를 꼽을 수 있다.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나 장 콕토,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를 만나고 19세기 말에는 로트레크, 드가, 고갱을 마주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파리가 낭만의 ‘원천’인 셈. 2010년대를 사는 엘마레가 당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는 세계인이 동경하는 낭만적 시기 파리의 문화사를 3권에 나눠 다룬다. 정확한 시기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직후인 1871년부터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다. 인상파 작가인 모네, 마네를 비롯해 에밀 졸라, 드뷔시,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샤갈, 프루스트, 샤넬,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 문화사가에게는 쓸 거리 가득한 화수분 같은 시기다. 1권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는 프로이센군에게 점령당하고 끝내 패전한 직후를 다룬다. 먹을 게 없어 쥐까지 잡아먹어야 했던 참혹한 비극이 파리지앵에겐 상처로 남았던 때다. 이때 예술가들은 전통을 벗어나 조금씩 ‘개인’의 가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권은 파리로 찾아온 스페인 청년 피카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900년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아프리카의 강렬한 시각 언어를 비롯한 유럽 밖 문명의 발굴을 파리는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장 콕토 등 많은 예술가가 ‘빛의 도시’로 이끌려 찾아왔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에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막스 자코브 등이 예술로 파리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군복을 만들고, 과학자인 마리 퀴리는 이동식 엑스레이 팀을 꾸렸다. 전쟁 후 파리는 ‘재즈 시대’, ‘광란의 시대’로 불리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3권 ‘파리는 언제나 축제’가 다루는 시기다. 과학의 비약적 발전은 물론 코르셋 없는 티셔츠 같은 코코 샤넬의 패션 혁신이 일어난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집들을 위한 ‘돔-이노 시스템’(표준화된 모듈식 주택)을 제안한다. 특별한 주제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파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의 방대한 문화사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그때 그 시절’ 파리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막 촬영을 처음 한 게 30년 전이죠. 미국 여행 중 만나게 된 사막에서 나를 더 벗겨 놓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 내려놓고 대면한다는 기분이었죠. 그 매력에 빠져 사막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작가 이정진(59)의 개인전 ‘보이스(VOICE)’가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이정진은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며 자연의 원초적 순간들을 포착해왔다. 한지 위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프린트한 사진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작업을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이정진: 에코―바람으로부터’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다시 디지털 방식을 결합한 작업을 내놓았다. 작가는 “아날로그 작업을 20년간 해왔는데, 물리적인 부분에서나 조정하는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며 “원래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더 미세하게 나타낼 수 있어 디지털에 매력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보이스’ 연작은 미국과 캐나다의 산, 바다, 숲을 담았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프린트한 작품들이다. 세로로 긴 족자 형태인 ‘오프닝’은 필름카메라로 촬영해 한지에 아날로그 프린트를 한 뒤 고화질 스캐닝 후 보정작업을 거쳐 다시 한지에 디지털 프린트한 작품이다. 작가는 ‘오프닝’의 세로 형태에 대해 “인간이 제한된 인식의 테두리를 넘어 무념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또 자연의 일부를 통해 전체를 통찰하는 ‘열림’의 의미에서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2월 1일에는 오후 2시부터 PKM갤러리 별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열린다. 3월 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암중모색(暗中摸索).’ 늘 어렵다던 국내 미술계와 미술시장의 실태는 지난해 수치로도 나타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2019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4482억 원이었다. 2014년부터의 성장세가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상황은 어둡지만 길을 더듬어서라도 찾아야 할 미술계 관계자 10명에게 2020년 전망을 물었다. 미술계 공공기관과 시장 종사자는 물론이고 전문가 개개인의 의견도 엇갈렸다. 중론을 찾기보다 각론을 최대한 소개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미술과 역사의 맥락을 잇다’ 미술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명제로 정립됐다. 나치 치하의 음울한 역사를 토대로 작품세계를 펼친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생존 작가 중 최고로 인정받는다. 올해 국내에서도 미술로 역사를 돌아보는 움직임이 꿈틀댄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을 서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만 타이베이, 독일 쾰른 등 4개 도시에서 준비해 비엔날레 기간(9월 4일∼11월 29일) 광주에서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도 한국전쟁 70주년 기획전을 개최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해 화두는 사회적 의제와 미술사의 맥락이 닿도록 해 미술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 미술가 약진 ‘주목’ 미술시장은 보합(保合)을 예상하는 의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크게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성 미술가의 약진을 전망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양혜규 작가는 5월 영국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함경아와 김수자 작가도 올해 처음 개최되는 미국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트리엔날레에 참가한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박래현 최욱경 구정아 남화연 등 여성 미술가의 활약과 함께 회화 이외의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단색화 작가의 건재함’을 화두로 꼽았다. 이 회장에 따르면 국제갤러리는 3월 박서보, 9월 이우환 개인전을 선보이고 독일 뒤셀도르프 제로 재단은 6월 권영우 개인전을 연다. 이 회장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재개관 소장 기념품전에서 하종현의 ‘접합’ 초기작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개선을 위한 해외 진출 절실 미술시장 개선을 위한 과제로는 해외 진출 등을 꼽았다. 김선정 대표는 “해외 미술계로 진출하지 않고서는 국내 미술시장 침체를 극복할 수 없다”며 “K-아트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수반되면 국내 시장도 탄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술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요구했다. 이현숙 회장은 “미술품을 사치품이나 재테크 수단으로 보는 경향은 여전하다”며 “작품을 구입해 작가를 지지하는 생산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컬렉터가 성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도 “미술 생태계 전반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후 안정기에 접어든 전국 국공립미술관 관장들이 차별화된 전시로 이슈를 선도하려는 물밑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기획자 출신인 주요 미술관 관장들이 서울 중심의 미술계 판도를 전국적으로 다양화하는 양상을 전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세계 미술계의 미션인 다양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객을 수용하는 미술관의 접근성 확보가 화두”라고 짚었다.○ ‘아티스트 피(fee)’ 해결해야 올해 해결 과제로는 ‘아티스트 피(artists fee·작가사례비)’를 들었다. 아티스트 피는 미술관 전시에 출품한 작가가 받는 대가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창작 대가 기준(안)’이 시범 운영 됐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일부 지적이 있었다. 최은주 관장은 “올해부터 현장에서 적용될 아티스트 피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데 정부가 적극 홍보하고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혜경 관장도 “문체부가 권고사항으로만 제시할 게 아니라 예산 등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정 대표는 “연구용역을 의뢰해 체계와 규정을 만들어 실행하는 단계인데 문제점이 많다”고 했다.설문 응답자 명단(10명·가나다순)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이사,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지호 화이트블럭 시각예술연구소장,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정재호 갤러리2 대표,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 최은주 대구미술관장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굽이굽이 펼쳐진 풍경의 한가운데 반사경이 톡 튀어 나왔다. 차를 운전하다 굽은 길을 만나면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듯,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는 이야기다. 한국화가 김선두(62)의 ‘느린 풍경’은 삶에서도 필요한 느림의 순간을 풍경으로 표현한다.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김선두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김선두의 작품은 장지(한지)에 바탕 작업을 하지 않고 바로 색을 중첩한다. 옅은 색을 겹겹이 올리면서 종이가 색을 머금게 한다. 흑백에 갇히지 않은 화려한 채색과 재기발랄한 구도가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소재를 활용한 것도 특징이다. 누구나 쉽게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전시장의 ‘철조망 블루스’(2018년)는 도시에서 흔히 보는 철조망을 활용해 굽이치는 선의 리듬감을 자아낸다. ‘마른 도미’(2019년)는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도미의 기괴한 모습을 강조해 그렸다. 작가는 “한 몸을 유지했을 때는 생명을 지닌 물고기가 양극단을 향해 찢어져 내면 없이 외피만 남은, 죽은 몸이 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자화상 ‘행―아름다운 시절’(2019년)은 20대 후반 시절 작가의 모습과 지워진 달력을 겹쳤다. 겹겹이 세월이 쌓이면서 먼지처럼 뿌옇게 되는 매일의 일상이 과거의 자신과 같다는 이야기다. 김선두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표지를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는 오원 장승업의 그림 대역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장지화 16점과 유화 3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모네에서 세잔까지’는 예루살렘 이스라엘박물관의 인상파 작품 컬렉션 중 106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클로드 모네, 폴 세잔, 폴 고갱 등 잘 알려진 인상파 화가들을 포함해 피에르 보나르(1867∼1947), 카미유 피사로(1830∼1903),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1796∼1875) 등이 그린 풍경화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전시장에 가면 세잔과 고갱의 풍경이 서로 마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짜임새 있는 구도를 갖춘 세잔의 풍경과 개성을 확실하게 밀고 나간 고갱의 풍경을 대비해 보는 것이 흥미롭다. 서울에서 여러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기회다. 아쉬운 건 전시의 기획력이다. 제목에는 국내에서 잘 알려진 모네를 앞세웠지만 모네의 작품은 3점만 전시된다. 또 ‘걸작전’이라고 하기엔 작품 사이즈가 크지 않다. 해외여행으로 주요 미술관을 돌아본 관객의 눈을 만족시키기엔, 작가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보여줄 만한 대표작도 충분하지는 않다. 현재 전시는 ‘수경과 반사’, ‘자연과 풍경화’, ‘도시 풍경’, ‘초상화’ 등 소재에 따라 나눠져 있다. 각 코너의 시작 부분에는 각 풍경의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보다는 인상파에 관한 거시적 설명만 나열돼 있다. 고갱과 세잔의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색채가 왜 특이한 지 등에 대해 초보 관객은 느낌만 갖고 떠날 수밖에 없다. 매년 방학 때마다 열리는 인상파 전시를 반복해 인상파에 대해 동경심을 품은 관객을 겨냥했다는 것 외에는 전시 주제나 구성의 차별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바닥에 책 무더기가 쌓인 어두운 방. 유일한 빛은 천장에 매달린 튜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상이다. 7개의 튜브 속 프로젝터는 사람의 얼굴, 몸통, 입, 손가락과 모리스 블랑쇼(1907∼2003)의 ‘최후의 인간’ 속 텍스트, 의자를 촬영한 영상을 책 위로 겹친다. 짧은 영상들은 계속 반복된다. 미국 작가 게리 힐(69)의 설치작품 ‘나는 그것이 타자의 빛 안에 있는 이미지임을 믿는다’(1991∼1992년)이다. 작품의 키워드는 ‘부분’이다. 책들은 펼쳐진 부분만을 내보인다. 영상의 사람 몸도 전체가 아닌 부분이다. 더 결정적 힌트는 블랑쇼다. 작가가 인용한 부분은 어두운 공간에 누운 화자가 직접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경험을 말하는 내용이다. 책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이 설치작품이다. 블랑쇼는 인간의 인식이 무수한 감각, 지각 경험으로 형성된다는 미셸 푸코, 질 들뢰즈 등의 후기구조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게리 힐: 찰나의 흔적’에서 이런 사상을 작품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후기구조주의와 맞물려 선보인 1980년대 개념미술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전시한다. 3월 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의 미술관이 성당의 역할을 대신한다(Art museums are the new churches).’ 스위스 출신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 교리로 얻었던 깨달음을 이제는 예술 작품이 주는 감각으로 얻는다는 이야기다. 사치나 장식이 아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 주는 예술이란 뭘까. 답을 얻고 싶으면 작품을 직접 봐야 한다. 동아일보는 올해 꼭 봐야 할 전시 8개를 엄선했다. 한중일과 영미 유럽권의 현대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술사 이해에 꼭 필요한 전시를 골랐다. 미술관들은 크게 △여성 작가 재발굴 △기후 변화 대처 △고야, 라파엘로 등 대가 재조명 등 세 가지 경향을 보였다. 또 미술사적으로 중요하지만 국내에 덜 알려진 작가, 동시대 ‘핫한’ 작가도 고려했다. 감상자별로 즐길 만한 정도는 ‘초심자, 애호가, 덕후(오타쿠)’의 3단계로 표기했다.》1 고야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 5월 17일∼8월 16일 어쩌면 피카소보다 더 국내에 소개되어야 할 작가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다. 고야는 컬렉터보다 미술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근대 미술의 문을 열었다. 스페인 궁정화가였던 그는 왕정 체제가 저물어가는 현실을 그대로 직시했다. 왕족의 허영을 은연중 초상화에 표현하고, 전쟁의 참상을 판화로 기록했다. 유럽 미술사가 이탈리아, 프랑스를 중심으로 알려져 스페인 출신의 고야는 국내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사실주의, 인상주의는 물론이고 20세기 초현실주의까지 뻗는다. 마네와 피카소가 고야의 그림을 그대로 차용해 ‘막시밀리안의 처형’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다. 바이엘러 미술관은 “고야는 유럽 왕정의 마지막 궁정화가이자 개인의 주관과 내면 표현의 창시자라는 두 개의 지위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2 게르하르트 리히터: 결국엔 회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3월 4일∼7월 5일 독일 출신 게르하르트 리히터(88)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회화로 되돌린 작가다. 작품도 생존 작가 중 최고가에 속한다. 사진을 초점 흐린 회화로 그려 불안한 시대를 표현했다. 이후 다양한 시리즈로 개념을 변주했다. 60년간 여정을 한 번에 볼 기회다. 상반되는 요소로 캔버스를 장악한 ‘기교의 맛’을 감상해 보자. 3 라파엘로 이탈리아 로마 스쿠데리에 델 퀴리날레 3월 5일∼6월 2일라파엘로(1483∼1520) 서거 500주기를 맞아 이탈리아 정부가 기획한 대규모 회고전. 협력 기관 면면부터 화려하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바티칸 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스페인 프라도 박물관….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4 이불―비기닝 서울시립미술관 12월 15일∼2021년 3월 국제 미술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시대 한국 작가를 꼽는다면 단연 이불(56)이다. 백남준과 이우환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이불은 한국에 기반을 뒀다는 점도 다르다. 2018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개인전 ‘크래싱’이 열렸을 땐 관객이 몰려 줄을 섰다. 그의 작품에는 전통적 가치관이 해체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겪는 감각이 직설적 언어로 펼쳐져 있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낙태’(1989년) 퍼포먼스를 선보였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특이한 여자’로 치부했다. 이제는 다수가 공감하는 이야기가 됐다. 전시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조각과 퍼포먼스를 집중 조명한다. 유럽 개인전에서 맛만 봤던 초기 날것의 작업들을 집중적으로 볼 기회다. 이런저런 이유에 앞서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제발 한국인이면 이 전시 좀 봅시다!” 5 앤디 워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3월 12일∼9월 6일 그 유명한 캠벨 수프 후 ‘팝 아트’는 불멸의 장르가 됐다. 그러나 오해도 많다. 국내 팝 아트에 코카콜라나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팝 아트는 세련된 수입 문화가 아닌 평범한 일상과 대중의 욕망을 차용한 예술이어서다. 이 전시로 팝 아트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6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애프터 라이프 영국 런던 로열아카데미 9월 26일∼12월 8일 세르비아 출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74)는 ‘핫한’ 동시대 퍼포먼스 예술가다. 관객과 지그시 눈을 맞춘 ‘The Artist is Present’(2010년)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최고 ‘히트’ 쇼였다.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지, 샤먼을 자처한 요제프 보이스의 퍼포먼스와는 어떻게 다른지 ‘매의 눈’으로 보자. 7 구사마 야요이 독일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 9월 4일∼2021년 1월 17일 ‘땡땡이’ 호박으로만 구사마 야요이(91)를 기억한다면 그녀를 반의 반도 모르는 것이다. 초기 드로잉부터 퍼포먼스, 설치, 회화까지 다양한 여정을 따라가면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했던 예술가를 만나게 된다. 8 저드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3월 1일∼7월 11일 도널드 저드(1928∼1994)는 미니멀리즘 예술의 대표 작가다. 미니멀리즘 예술은 작가의 의도보다 같은 사물도 달리 보는 다양한 관객에게 방점을 둔다. 현상학, 구조주의 등 철학과 맞물려 역사적 가치를 획득했다. 작품이 의도를 제거한 단순한 사물이기에 재미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은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하기에. ▼그 밖의 국내 전시▼‘임동식 개인전―일어나 올라가’―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6월 18일∼8월 16일 임동식은 1980년대 국내 최초 자연미술그룹 ‘야투(野投)’를 창립하고 ‘1991 여름 금강에서의 국제 자연 미술전’을 개최했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그를 “저평가된 작가”라고 말했다. 임 작가가 지난해 서울시에 기증한 1970∼2000년대 자료 1300여 건을 토대로 하는 전시다.‘탄생 100주년 기념―박래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7∼10월 운보 김기창의 아내이자 한국화가인 박래현(1920∼1976)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가 특징이다. 50세에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판화, 태피스트리, 파피에 콜레 등 기법을 익혀 한국화에 결합했다.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새로운 시(詩)의 시대’ ―경남도립미술관 2월 20일∼5월 17일 3·15 의거 60주년을 맞아 3·15 의거를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의 삶과 연결된 현상으로 접근해 기획했다. 서용선의 신작을 비롯해 홍순명, 박찬경 등 예술가 7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현재와 다음 세대를 전망하는 기표로서 역사를 바라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4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의 지하 공연장. 흰 벽 앞에 피아노가 놓여 있고 40여 개 객석에는 위스키, 칵테일을 든 관객들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자리를 가득 메웠다. 오후 5시가 되자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이 무대로 나온다.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린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 마포구 재즈클럽 에반스에서 잼 세션을 열고 있다. 이날의 주인공은 음악보다는 색도, 소리도 없는 무성영화였다. 윤석철은 버스터 키턴의 영화 ‘셜록 2세’에 맞춰 음악을 연주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소파에서도 화려한 그래픽의 영상을 언제든 볼 수 있는 시대다. 이런 독특한 자리를 만든 이유에 대해 김범상 글린트 대표는 “미국에서 우연히 무성영화를 본 기억에서 출발했다. 제한적 환경에서도 연출이 뛰어나 무성영화의 시대가 길었더라면 더 멋진 걸작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흑백의 화면이 지루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40분이 훌쩍 지나갔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나 슬랩스틱 코미디에 관객들도 편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공연을 마친 윤석철은 “컴퓨터 없이 사람의 손으로 연출한 화면을 보니, 컴퓨터로 대부분 소리를 만드는 요즘의 음악 제작 과정도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11일에는 생황 피리 양금으로 사운드를 만드는 음악가 박지하가 무르나우의 ‘선라이즈’에 맞춰 즉흥 연주를 선보였다. 18일에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키드’에 맞춰 기타리스트 이태훈이 무대에 오른다. 세 번의 연주는 피크닉이 겨울을 맞아 마련한 ‘무성영화극장’의 프로그램이다. 무성영화 대표 감독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비껴 선 영화들을 선정했고, 각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가가 선정됐다. 음악가들은 미리 영화를 보고 사운드를 구성해 연주를 선보인다. 전시 공간 2층에서는 ‘피크닉 겨울책방’ 두 번째 시즌으로 출판사 열린책들과 함께 구성한 전시도 무료로 볼 수 있다. 열린책들이 출간한 주요 책들의 표지와 일부 표지의 원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2월 2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5년 출간된 ‘시녀 이야기’ 속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최후는 어떻게 됐을까. 독자들의 끊임없는 질문이 이 책을 만들었다는 애트우드의 말처럼 ‘증언들’은 15년 뒤 길리어드가 맞게 되는 운명을 펼쳐 보인다. 길리어드는 가부장제를 극단까지 몰고 간 사회다. 미혼여성은 함부로 외출해선 안 되고, 욕망은 나쁜 것이라고 교육 받는다. 삶의 목적은 오로지 결혼. 10대 때 지위 높은 중년 남성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시녀’라 불리는 타락한 계급의 여성을 집에 들여 출산을 대신하게 한다. 소설은 길리어드 안팎의 세 여성, ‘리디아 아주머니’, 아그네스, 데이지의 증언을 교차해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길리어드의 ‘창설자’로 칭송받는 인물. 아그네스는 길리어드에서 태어나고 자라 사령관과 결혼할 운명에 처한다. 데이지는 길리어드 밖에서 살고 있던 10대로 자신의 부모가 가짜임을 알게 된다. 길리어드라는 기이한 세계의 풍습과 그 속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생생한 캐릭터가 책에 푹 빠져들게 만든다. 이들 인물의 정체가 궁금해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몰입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도 남아 있는 길리어드의 흔적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이갈리아의 딸들’이 남녀를 바꿔 가부장제의 모순을 폭로한다면 애트우드는 그 제도를 극단으로 몰고 가 민낯을 까발린다. 세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선택된 자’처럼 고난과 역경을 비교적 쉽게 헤쳐 나가는 결말은 다소 아쉽다. 그러나 ‘시녀 이야기’ 독자를 위한 선물로는 오래 기다린 값을 다한다. ‘시녀 이야기’를 TV 시리즈로 만들어 주목받았던 ‘핸드메이즈 테일’과의 연결성도 세심하게 고려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 작품을 꽁꽁 얼려 보관하는 냉장고 같은 전시가 아니라, 생기가 넘치고 활발한 소통이 오가는 부엌으로 만들어야죠.”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인 광주비엔날레에는 늘 딜레마가 있었다. ‘국제’에 방점을 두느냐, ‘지역’과 소통에 방점을 두느냐의 문제다. 초기 광주비엔날레는 국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갈수록 전시작품이 너무 난해하거나 규모가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등의 이유로 관심도가 떨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7일 만난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데프네 아야스(44), 나타샤 진발라(35)는 이런 부분을 인식한 듯 소통을 강조했다. “과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비엔날레가 그랬듯, 해외 작가가 갑자기 풍선을 타고 내려와 작품을 보여주는 형태는 지양하고 싶어요. 지난해 9월에 이어 오늘 공개 토크 프로그램을 개최합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두 사람은 아나 마리아 밀란, 펨케 헤레이라벤, 애드 미놀리티 등 참여 작가와 함께 이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GB토크: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을 개최했다. 작가와 감독의 국내 리서치 일정에 맞춰 열린 토크 프로그램으로, 그간 전시 진행 과정과 참여 작가의 콘셉트를 대중과 공유하는 자리였다. 터키 출신인 아야스는 “예술 작품의 외형적 결과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야스가 6년간 네덜란드 로테르담 현대미술센터 비터더비트의 디렉터를 맡으며 겪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비터더비트에서 프랑스 출신 작가 알렉상드르 싱과 함께 1년 6개월에 걸쳐 3시간짜리 공연 ‘더 휴먼스(The Humans)’를 만들었어요. 제작 과정 중 한 달에 한 번 중간 과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죠. 이를 통해 작품 속 다양한 참고 자료를 제공해 이해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올해 주제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 특히 ‘마음’을 강조하는데, 논리와 이성 중심의 서구 지식 체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세계를 다룬다. 전시는 특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세계의 토착 문화나 소수자를 조명할 예정이다. 인도 출신인 진발라는 “과거로부터 피를 타고 내려온 감각적 문화가 지구의 문제나 역사의 트라우마, 저항 문화에 답을 알려줄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다양성이 잘 보호되고 있는 것 같은 핀란드에서도 ‘사미족’처럼 언어와 문화를 위협받은 소수자들이 있어요. 이들은 수 세대에 걸쳐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체득했죠. 이런 토착 문화를 통해 전 세계의 소외된 목소리나 소수자를 연결해 보려고 합니다.”(진발라) 저널리즘과 사회과학도 연구했던 두 사람은 “전시장이 미술사적 공간을 넘어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지적 교류의 공간이 되도록 접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민의 참여를 당부했다. “미술계 관객을 넘어선 새로운 시민, 더 젊은 관객들과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한국에 수많은 비엔날레가 있다고 들었지만, 아직 아홉 달이 남았으니 찾고 싶은 열린 전시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차가운 눈밭 위 불타는 신문을 든 사람이 서 있다. 러시아 출신 사진작가 팀 파르치코프(37)의 작품 ‘버닝 뉴스(Burning News)’다. 작가는 “너무 많은 정보가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소식을 뜻하는 ‘버닝 뉴스’를 문자 그대로 구현해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종로구 공근혜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러시아의 유명한 신문인 ‘이스크라’는 불꽃을 뜻합니다. 과거 신문은 불꽃처럼 의식을 일깨우고 계몽하는 역할을 했죠. 그런데 요즘은 뉴스가 너무 많아 불과 하루만 지나도 어제 무슨 소식을 봤는지 기억하기 어려워요. 수백 년 동안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종이 매체가 변화를 겪는 과도기적 상황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러시아 국립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파르치코프는 촬영 및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단체가 그리워지면 영화를, 혼자 있고 싶을 땐 사진 작업을 한단다.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단순한 이미지가 특징이다. 또 다른 연작인 ‘비현실적 베니스(Unreal Venice)’는 햇살 가득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풍광이 돋보인다. “멀리서 보면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어요. 관광 도시인 베네치아를 가보고, 정작 관광객들은 실제 베네치아인의 삶을 만날 일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에서 강렬한 색채가 서로 부딪치면서 기하학적 추상화를 만드는 가운데, 빨래해 걸어 놓은 이불보처럼 생활의 흔적이 엿보인다. 2월 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젊은 미술가들의 전시와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송은미술대상전이 19회를 맞았다. 서울 강남구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본상 수상자 4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원자 260명 중 선정된 작가는 곽이브(36), 권혜원(44), 이은실(36), 차지량(36)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은실은 회화 작품을, 곽이브는 도시환경 건축을 재조명한다. 권혜원은 제주도의 동굴에서 시간이 없어진 듯한 경험을 토대로 한 영상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차지량은 2012년부터 7년간 한국을 떠나 살았던 여정을 영상설치로 다뤘다. 4명의 작가에게는 개인전 개최와 ‘송은문화재단―델피나 재단 레지던시’ 지원 자격이 부여된다. 이 중 1명은 이달 송은미술대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대상 수상자는 2000만 원, 우수상 수상자 3명에게는 각각 1000만 원을 수여한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6년 동안 서울 종로구 안국동을 지켰던 사비나미술관이 은평구로 이전하고 두 번째 신년을 맞았다. 미술관은 2020년을 맞아 기획전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를 연다. 전시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최초의 순간과 그것이 창작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근택 이세현 손봉채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작가 21명이 참여했다.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게 된 일화나 책, 작가 노트도 함께 소개한다. 유근택 작가의 분수 작품은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분수대 앞에서 쉬고 있다 물줄기에 매료된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는 1989년 군 복무 시절 비무장지대(DMZ)에서 야간 보초를 서다 야간 투시경을 사용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작가들마다 작품 세계를 펼치는 데 중요한 시점이 있다. 이 발견이 어떻게 작품으로 이어지는지 추적하고 싶었다. 사회가 어둡고 불안한 가운데 관객에게도 이런 우연한 발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월 2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