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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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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2026-02-06
칼럼100%
  • [횡설수설/이진영]“폭력적 포퓰리즘의 시대”

    1993년생 찰리 커크는 미국에서 가장 힘 있는 청년 우파 논객이었다. 18세에 보수 청년 단체 ‘터닝포인트 USA’를 설립해 진보가 주도하는 대학가에 3500개 지부를 두고 ‘트럼프 시대’를 예고한 뒤 트럼프 시대의 총아가 됐다. 그가 10일 한 대학교 야외 행사장에서 학생들과 토론하다 180m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날아든 총탄에 숨지자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진 이유다. 연방수사국(FBI)은 현상금 10만 달러를 내걸고 총격범을 쫓고 있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고위직 인사에까지 개입하는 실세였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방문 횟수가 약 100번이다. 트럼프 재선 땐 ‘킹메이커’로 불렸다. 터닝포인트를 통해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아 트럼프에게 젊은층 득표율 45%를 안기는 데 기여했다. J D 밴스를 부통령으로 추천한 이도 그다. 트럼프 취임식 전날 터닝포인트가 주최한 축하 행사엔 젊은 실세에게 눈도장을 받으려는 1500여 명이 최소 입장료 5000달러를 내고 몰려들었다. ▷2020년 트럼프가 패배한 후엔 대선 불복 시위를 주도했고, 2021년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의회에 난입한 1·6사태 땐 이른바 ‘애국자’들을 태운 버스 7대를 보냈다. 그의 입도 트럼프만큼 거칠었는데 유대인, 동성애자, 흑인들이 주요 타깃이었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에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쓰레기”라 불렀다. 커크가 피살되자 진보 매체 논객이 “끔찍한 말을 내뱉으면서 끔찍한 행동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순 없다”고 논평했다가 해고되는 일도 있었다. ▷미국 언론은 그의 피살 소식에 “정치 폭력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며 ‘폭력적 포퓰리즘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정치적 폭력이 빈발했던 1960년대와 비슷하게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의사당 난입 사태 후 지난 대선까지 정치 폭력은 300여 건 발생했다. 올 5월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의 40%가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무력 사용에 찬성한다’고 했고, 공화당 지지자의 25%는 ‘반정부 시위 진압을 위한 군 투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커크는 보수가 낳고 극우가 키운 운동가였다. 보수적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극우 논객 러시 림보의 라디오를 듣고 자랐다. 고교 시절 극우 인터넷 매체인 브라이트바트 뉴스에 ‘(진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교과서에 너무 많이 나온다’는 칼럼을 기고해 폭스뉴스에 소개됐고, 이를 본 보수 운동단체 ‘티파티’ 관계자에게 발탁됐다. 폭력적 주장을 쏟아내는 양극단의 매체와 단체들이 청년들을 정치적으로 고양시키기보다 싸움닭으로 키워 사회 곳곳에 화약고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아내와 두 자녀를 남기고 떠난 젊은 논객의 안타까운 죽음이 보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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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유튜브 권력에 머리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 없다”

    ‘노무현의 사위’라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여권의 실력자 김어준 씨를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다. 초선인 곽 의원은 ‘올해 8월까지 1년간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여당 의원은 65명에 불과하다’는 주간지 보도를 인용하며 “그 65명 중 한 명이 저 곽상언이다. … 저는 유튜브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어준의 유튜브 채널은 민주당과 좌파 정치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출연하고 싶어 하는 미디어 권력이다. 주간경향 집계 결과 1년간 여당 의원 106명을 포함해 119명의 국회의원이 832회 출연했다. 김민석 총리,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강유정 대변인과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장관 등 현 정부 고위직 인사들도 두루 포함돼 있다. 보수 쪽에서는 전한길TV가 새로운 유튜브 권력으로 부상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당 대표가 되려는 이들이 줄줄이 전한길TV에 출연해 ‘면접’을 봤다. ▷정치 유튜브의 힘은 구독자 수, 그리고 강성 당원들의 귀를 잡고 있는 데서 나온다. 곽 의원은 “우리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출연하면 후원금도 모으고 좋은데 왜 출연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여당 대표 선거는 여당 내 ‘보이는 손’이라 불리는 김어준 채널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정청래 대표의 이 채널 출연 횟수는 28회, 박찬대 의원은 2회였다.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뒷말이 나왔다. 전한길TV가 들었다 놨다 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전심’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처럼 정치 채널이 유튜브 실시간 방송 때 후원금 순위 상위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김어준이 ‘정치 무당’이라 불리듯 정치 채널 진행자들은 신생 교파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 같다. 선과 악이 분명한 세계관으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명쾌하게 해석하며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싶어 하는 신도들을 모은다. 정치 채널 경쟁은 선명성 경쟁이다. 유튜브 권력이 커질수록 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고 온갖 음모론에 공론장이 난장이 되는 이유다. ▷정치 유튜버들은 유명 정치인들을 출연시켜 돈 안 들이고 쉽게 조회수 장사를 한다. 최근엔 화장품, 흑염소, 소갈비 광고 패널을 걸어놓고 정치인들을 부른다. 사회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이 유튜브의 적대적 진영정치에 편승하는 것도 모자라 돈벌이에까지 동원되고 있다. ‘다음 경선은 어려울 것’이란 악플 세례를 받고 있는 곽 의원의 소신 발언이 힘만 있고 책임지지 않는 유튜브 권력에 머리 조아린 정치 권력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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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급증하는 유괴 사건

    서울 서대문구 한 초등학교 근처에서 초등학생들이 유괴될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경 귀가 중이던 초등학생 4명을 상대로 중학교 동창인 20대 남성 3명이 차를 타고 접근해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3차례에 걸쳐 유인을 시도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면서 미수로 그쳤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달 30일 최초 신고를 받고도 ‘오인 신고’라 했다가 추가 신고가 접수된 뒤 4일에야 이들을 긴급 체포했다. 피의자들은 “장난 치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어린 자녀를 둔 전국의 학부모들 모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온 사방에 깔린 폐쇄회로(CC)TV 덕분에 오프라인 범죄는 줄어들고 있지만 어린이 유괴 범죄는 최근 들어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미성년자 약취·유인 사건이 2020년 210건에서 지난해 316건으로 급증했다. 피해자 10명 중 6명꼴로 여자 어린이들이다. 61세 이상 고령자 유괴범 비중(25%)이 큰 것도 일반 범죄와 다른 특징. 7월엔 서울 서초구와 경기 남양주시에서 70대 여성과 남성이 “도와달라” “간식 줄게” 하며 아이들을 유괴하려다 실패했다. ▷어린이 유괴는 대개 몸값을 요구하거나 성적 착취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보다는 양육을 목적으로 유괴하는 경우가 더 많다(대검찰청 2023년 통계). 양육권 분쟁 중에 친부모가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거나, 불임 부부들이 아이 욕심에 유괴한다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7년엔 10대 소녀 2명이 “엄마에게 전화해야 하니 휴대전화 빌려 달라”는 초등학교 1학년 여아를 유괴해 살해했다. 범행 동기는 “예쁜 손가락을 갖고 싶어서”였다. 범인들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괴범 중 여성 비율(27%)이 다른 범죄보다 높은 것도 특징이다. 1990년 6월엔 20대 여성이 “변심한 애인에게 고통을 주려고” 6세 여자 유치원생을 유괴해 살해했다. 유치원 우산꽂이에서 아이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로 불러냈다. 1997년엔 만삭의 임산부가 목돈을 위해 서울 서초구 영어학원 앞에서 “재밌는 곳에 가자”며 초등 1년생을 꾀어 살해해 충격을 줬다. ▷유괴 사건은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 검거율이 높은 편이었다. 유일한 미제 사건이 영화 ‘그놈 목소리’로 제작된 1991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놀이터 유괴 살인 사건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사방에 CCTV가 있고 아이들 모두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데도 2023년 검거되지 않은 사건이 10건이다. 경찰은 이번 유괴 미수 사건의 경우 피해 어린이들 진술이 정확하지 않아 오인 신고로 인지했다고 해명했다. 유괴 범죄의 민감성과 사회적 파장을 감안하면 너무 안일한 대응이고 해명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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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왕비의 비극, 김 여사의 막장극

    역대 영부인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된 김건희 여사의 극적인 인생은 드라마와 역사 속 인물과 비교되곤 한다. 강한 권력욕으로 남편을 왕위에 올려놓고 함께 몰락하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맥베스 부인 같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친정 식구들을 동원해 국정 전반을 주물렀던 명성황후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명품백 스캔들이 터졌을 땐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로 불렸는데 남편과 동시에 수감돼 재판받는 요즘 처지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가장 닮은 듯하다. 오스트리아 공주로 15세에 프랑스 왕가로 시집온 그녀에 대해서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희대의 악녀라는 혹평과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희생자라는 동정론이 대립한다. 유럽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근거 없는 비방과 찬사들을 걷어내고 사실로 확인된 사료만 추려 가장 객관적이라 평가받는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썼는데 이에 따르면 왕비의 참모습은 폄훼와 미화 양 극단의 중간쯤에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그러하듯 이 전기 작가는 프랑스 왕정이 몰락한 단초를 국왕이 왕비에게 ‘예속’된 관계에서 찾는다. 윤 전 대통령이 ‘V1’과 ‘V0’의 관계로 김 여사에게 예속된 내막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이와 달리 프랑스 국왕 부부의 경우 남편의 귀책 사유로 결혼 7년 만에야 첫아이를 낳을 정도로 원만하지 못했던 부부 사이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젊고 아름다운 왕비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요구했고 무기력한 왕은 왕비가 해달라는 대로 해줬다는 것이다. 김 여사와 프랑스 왕비 모두 보석 욕심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대통령과 동급의 비화폰을 쓰며 국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듯 왕비도 “국왕에 대한 자신의 엄청난 위력을 자기가 총애하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사용”하고 “아무 일에나 참견하고 서툴게 나서서 마구 결정”했다. 오빠인 오스트리아 왕자가 “네가 무슨 권리로 프랑스 왕국의 문제에 간섭하느냐”고 질책한 적도 있다. 전기 작가 말대로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물고, 선동을 목적으로 인물을 그릴 때는 정의란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왕비의 낭비벽은 선정적 삽화와 부풀려진 일화를 담은 팸플릿으로 암암리에 유통되며 왕정 타도 여론에 불을 질렀다. 김 여사 특검의 수사 내용에 확인되지 않은 ‘전언’들로 살을 붙여 민심을 사납게 하고 조회수 장사를 하는 일부 유튜버들과 다를 것이 없다. 프랑스 왕비가 마지막까지 구명을 기대했던 상대는 친정인 오스트리아 황실과 혁명의 불온한 기운이 번질까 우려하던 이웃 나라 군주들이다. 하지만 국제 정치의 세계는 비정했다. 오스트리아 황제조차 폐위된 고모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 ‘트황상(트럼프 황제 폐하)’의 ‘숙청’ ‘혁명’ 발언에 잠시 고무됐던 한국의 왕당파들이 떠오르지 않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죄명은 남편의 왕위 회복을 위해 적군을 도운 반역죄다. 이를 입증하는 문서가 지금은 출판물로 남아 있지만 재판 당시엔 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배심원단 전원 일치로 유죄 결정이 났다. 여론 재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역사는 왕비에게 더 무거운 죄를 묻는다. ‘국왕의 아내가 자신의 왕국을 헤아려달라는 국민의 여망에 단 한 번도 응한 적 없는 죄’ ‘베르사유 궁전 밖 수백만 백성이 굶주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던 죄’다. 유럽을 600년간 호령했던 왕비의 친정 합스부르크 왕가가 ‘국민의 동의와 사랑’이 가져다준 지위를 정당하게 사용하지 않다가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될 것임을 거듭 경고했던 이유다. 절대왕정 시대에도 성난 민심에 배가 뒤집힐까 삼가고 경계했다니, 민주주의 시대 유한한 권력을 잠시 위임받은 대통령의 아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명품 목걸이와 금거북에 관직 내주고 국정과 당무에까지 개입했다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루이 16세 부부는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시대를 만났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그러나 극적으로 격앙된 시기에 대처할 줄을 몰랐다. 무엇인가에 압도당해 쓰러지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의미뿐만 아니라 죄과까지 있는 법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표현대로 ‘비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선 평범함도 죄’가 된다. 민심의 벼락을 맞고서야 오만과 무관심에서 깨어나 뒤늦게 품위를 보여준 프랑스 왕비는 연민을 자아내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평범한 시대, 높은 자리에서, 평균치를 한참 밑도는 도덕성으로 추락한 후로도 상식 밖의 언행을 보여주는 김 여사 이야기는 환멸의 막장극으로 흘러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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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

    김건희 여사는 12일 구속된 후 두 차례 특검에 출석했지만 의미 있는 진술은 거부하고 있다. 대부분 질문에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사실 밖에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첫 출석일인 14일엔 변호인단을 통해 “내가 다시 남편하고 살 수 있을까. 다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라는 감성적 소회를 전했다. 건강을 이유로 특검에 불출석한 20일엔 남편의 ‘멘토’ 신평 변호사를 통해 옥중 메시지를 냈다. ▷신 변호사가 19일 김 여사를 접견했다며 다음 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따르면 김 여사는 접견실 의자에 앉자마자 “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했단다. 신 변호사는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선 김 여사가 접견 당시 ‘그냥 (윤석열 전) 대통령은 풀어주고 내가 계속 여기 살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당시 김 여사는 ‘너무나 수척하여 앙상한 뼈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는 남편의 정치 인생을 끝장낸 자신의 과오를 뒤늦게나마 후회한다는 뜻에서 한 말일까. 김 여사는 2021년 허위 학력과 경력 기재에 대해 사과할 때도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공언은 취임식 첫날부터 헛말이 됐다. 윤 전 대통령이 초청한 인사는 765명인데 김 여사 초청 인사는 849명이었다. ▷김 여사는 접견 당시 “한동훈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며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앞길엔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단다. 윤 정부 ‘2인자’ 소리를 듣던 한 전 국민의힘 대표는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과 의혹 규명을 요구하면서 원수지간이 됐다. 계엄 실패와 탄핵이 모두 배신자 탓이란 말일까. 김 여사의 옥중 ‘한동훈 때리기’는 전당대회 개입용이란 말이 나온다. ‘반탄 진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김 여사는 지난 전당대회 때도 ‘한동훈 영부인 문자 읽씹’ 사건을 흘려 한 전 대표를 방해한 적이 있다. ▷김 여사는 ‘나토 3종’ 보석을 주고 인사 청탁을 했다고 자백한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에 대해 ‘(이재명) 정부와 협력해 우리를 죽이려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주가 조작, 공천 개입, 매관매직 혐의로 ‘첫 영부인 구속’이라는 기록을 세운 참담함에 대해선 함구하면서 “12·3 계엄은 절제력 갖춘 힘의 행사”라 주장하는 지지자의 입을 빌려 희생양 행세를 하고 있다. 2평 독방에서 어떻게든 살길을 찾아보려는 안간힘이겠으나 입을 열수록 여론의 냉소를 부르며 스스로를 더 좁은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듯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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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위고비 vs 마운자로… ‘모든 다이어트는 실패’ 법칙 깨지나

    식욕을 억제하는 비만치료제의 역사는 ‘삭센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4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비만치료제 ‘암페타민’을 비롯해 대부분의 비만약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감정 기복을 키우는 등 부작용이 작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출시한 삭센다는 음식을 먹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GLP-1)에 작용해 식욕을 조절하는 원리다. 이후 등장한 ‘기적의 비만약’들이 모두 같은 원리의 주사제이다.▷GLP-1은 인슐린 분비를 도와 혈당을 떨어뜨리고 위장 운동 속도를 늦춰 음식물이 장으로 천천히 이동하게 한다. 삭센다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는데 체중 감량 효과가 뛰어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비만약으로 쓰이게 됐다. GLP-1은 작용 시간이 짧아 밥때가 되면 배가 고파지지만 삭센다를 주사하면 GLP-1 작용 시간이 약 13시간, 삭센다 후속으로 2021년 같은 제약사에서 나온 위고비는 170시간으로 길어진다. 삭센다는 하루 한 번, 위고비는 주 1회 주사로 식욕 억제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위고비 독주 체제를 양강 구도로 재편하고 있는 제품이 효과는 더 좋으면서 값은 싼 ‘마운자로’다. 미국의 일라이릴리가 2023년 출시한 마운자로는 식욕 억제와 혈당 개선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허리둘레 감소 효과가 위고비는 평균 13cm, 마운자로는 20cm 정도다. 마운자로는 최근 국내에도 출시됐는데 4주분이 용량에 따라 28만∼52만 원 선. 80만 원까지 치솟았던 위고비 가격도 40% 떨어졌다. 위고비 주성분에 대한 독점권이 2030년대 초 만료돼 복제약이 나오면 가격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미국에선 식당 메뉴 사이즈가 줄어들 정도로 위고비와 마운자로 투약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주 1회 허벅지나 복부에 주사로 투약한다. 흔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이 구토, 복부 팽만, 변비다. 위고비 국내 판매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된 부작용 사례는 49건. 약물 투여를 중단하면 식욕이 돌아와 1년 이내 빠졌던 체중이 다시 늘어난다. 약물 투여 기간에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비만은 암과 당뇨를 비롯해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관문 질환’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공인했다. 비만 인구는 2035년 19억1400만 명으로 늘어나고 비만약 시장도 2040년엔 2800억 달러(약 389조 원)로 지금보다 10배 넘게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먹는 비만약, 근육은 그대로 두고 살만 빼주는 비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든 다이어트는 실패로 끝난다’는 경험칙을 깨는 꿈의 비만약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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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케데헌’, 세계가 만든 K팝의 확장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서 가상의 걸그룹이 부른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K팝 가수 중엔 BTS가 핫100, 싸이가 톱100 1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영미 차트 동시 석권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온라인에선 케데헌 세계관을 분석하고 캐릭터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는 영상이 줄을 잇고 있다. 케데헌 ‘현상’이라 할 만하다. ▷6월 20일 공개된 케데헌은 넷플릭스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1위 기록도 세웠다. 골든을 부른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가 몰래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며 악령 보이그룹 사자보이스로부터 팬들을 지켜낸다는 줄거리로, 국적을 초월한 협업의 산물이다. 서구의 악마 사냥과 한국적 무속신앙이 결합된 세계관부터가 그렇다. 제작사는 미국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이며, 노래는 K팝 작곡가들이 만들고 K팝 가수와 미국인 가수들이 불렀다. ▷그럼에도 케데헌은 K팝 콘텐츠로 분류된다. 춤추며 노래하는 아이돌과 ‘떼창’으로 환호하는 팬들이 만들어 내는 K팝 특유의 에너지가 영화의 핵심이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어두워진 앞길 속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같은 한국어 노랫말이 중간중간 나오는 것도 K팝 스타일. 케데헌의 주인공은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고 악령들과도 끝내 화해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영감을 주는’ 선한 영향력은 K팝을 다른 팝들과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케데헌 속 캐릭터들은 영어로 말하고 노래하지만 하는 행동은 한국인 같다. 소파에 기대어 바닥에 앉고, 김밥과 순대와 라면을 먹고, 국밥집에선 수저 아래 휴지를 깐다. 힘들 땐 한의원과 목욕탕도 간다.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강남과 종로 거리가 정겹고, 남산 서울타워와 낙산공원 성곽길을 보면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과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한국계 외국인 제작진들, 그들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낯설고도 친숙한 서울일 것이다. ▷아이돌 댄스 음악을 뜻하는 K팝의 시작은 1996년 H.O.T의 데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세 번의 기념비적 순간이 있었는데 첫째는 아시아의 뜨거운 한류 열풍을 실감케 했던 2000년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 두 번째가 유럽 진출의 신호탄이 된 2011년 SM타운의 프랑스 파리 콘서트, 세 번째가 ‘K팝 인베이전(침공)’이라 불렸던 2020년 BTS의 K팝 최초 빌보드차트 핫100 1위 등극이다. 세계가 만들고 가상의 아이돌이 부른 골든의 영미 차트 석권은 K팝 30년 역사의 또 다른 기념비적 순간으로 기록될 만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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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우크라 없는 미-러의 우크라 영토 주고받기 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15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발표했다. 8일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날리더니 D데이가 지나자 대화 모드로 돌변한 것이다. 2021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미-러 정상회담은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이 국제 외교 무대에 처음 등장하는 행사다. 외신은 휴전 약속도 없이 열리는 양국 정상회담 자체가 푸틴에겐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영토 협상이다. 전쟁 발발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러시아는 상대국 영토의 20%를 점령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의 0.00007%를 확보한 상태다. 트럼프는 자신처럼 뉴욕 부동산업자를 러시아 특사로 보내 사전 협상을 맡겼는데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핵심 광공업 지대인 돈바스 2개 주(루한스크, 도네츠크)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금지도 주장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 땅을 점령자에게 선물로 내주진 않을 것”이라고 반대하지만 알래스카 회담장에 그의 자리는 없다. 우크라이나 운명은 거래를 원하는 트럼프와 승리를 원하는 푸틴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로선 우크라이나와의 광물 협정 체결로 군사 지원에 따른 ‘투자비 회수’를 했으니 경제적 정치적으로 부담되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 중재자’의 공을 차지하고 싶을 것이다. 푸틴은 1년 6개월은 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 경제가 거덜나기 전에 우크라이나 병력부터 바닥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우크라이나 없는 정상회담 소식에 80년 전인 1945년 발칸반도의 휴양도시에서 열린 얄타 회담이 새삼 회자된다. 그때도 미영소 3국 정상들(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당사국들이 빠진 가운데 동유럽 국경선과 전후 독일 처리 문제 등을 결정했다. 회담장 안내 책자엔 회담 결과가 “공정했다”고 나오지만 “강대국 간 협상에 약소국 자유가 소모품으로 희생됐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다. 얄타 회담으로 냉전이 시작됐듯 15일 알래스카 회담 후 세계는 알래스카 체제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도 강대국 간 협상에 좌우돼 왔다. 얄타 회담 이후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일제 패망과 한반도 분단이 결정됐고, 6·25전쟁 정전협정 원문엔 한국 대표 서명이 없다. 그래도 한국은 남들이 우리 운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전후 100여 개 신생국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유일한 나라로 우뚝 섰다. 알래스카 회담을 남 일처럼 보고만 있어야 할 절망적인 우크라이나가 한국의 성공 사례를 보고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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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또 바뀐 ‘반클리프 목걸이’ 해명

    6일 김건희 특검에 출석한 김건희 여사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조사실로 들어갔지만 안에서는 모든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고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당시 서울대 석사과정 중이라 주식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했고, 명태균 씨로부터 공짜 여론조사 결과를 받은 혐의에 대해선 “명 씨가 갖다 바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누락했다는 프랑스 명품 ‘반클리프 목걸이’에 대해선 새로운 해명을 내놨다. ▷문제의 목걸이는 202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석이다. 진품은 6200만 원인데 김 여사는 특검에서 ‘2010년경 홍콩에서 엄마 선물용으로 200만 원 정도 주고 산 모조품’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나토로 떠나며 모친에게서 다시 빌려 착용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 목걸이가 공직자 재산 신고(보석류는 500만 원 이상) 목록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대통령실은 “지인에게 빌린 것”이라 했지 모조품이란 얘기는 없었다. ▷모조품이란 주장은 올 5월 김 여사가 검찰에 낸 진술서에 처음 등장한다. 올 7월엔 특검이 통일교 전직 간부가 건진법사를 통해 김 여사에게 전달하려던 또 다른 명품들을 찾으려 김 여사 오빠의 처가를 압수수색하다 뜻밖에 이 목걸이를 발견했다. 이땐 ‘오빠에게 선물한 모조품’이라고 다시 주장을 바꿨다. 진술이 오락가락하니 증거인멸 우려가 제기될 만하다. 심지어 이 목걸이의 진품은 2015년 처음 출시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실이라면 진품이 나오기도 전에 짝퉁을 샀다는 얘기여서 김 여사 해명이 더 꼬이게 된다. ▷통일교 측으로부터 각각 1271만 원과 802만 원짜리 샤넬백 2개를 받은 의혹을 의식해서였을까. 김 여사는 특검에 출두하며 정장 차림에 국산 에코백을 들었다. 정가는 15만 원, 온라인에선 9만 원대에 판매되는 가방이다. 김 여사는 디올백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 후인 지난해 6월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 나설 때도 소박한 에코백을 들었는데 ‘뒤에선 명품백 받아놓고 앞에선 에코백 든다’며 여론만 나빠졌다. ▷김 여사는 특검 포토라인에 서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명태균 의혹에 대해선 “힘도 없는 사람에게 자꾸 연락해 끊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 공적 지위와 권한이 없음을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그동안 검찰의 ‘서면조사’ ‘황제조사’ 특혜를 누렸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왜 대통령과 동급 비화폰 쓰고, 사석에선 대통령인 양 “남북문제 제가 좀 나설 생각”이라 했나. 앞뒤가 다르니 “항상 죄송하다” 사과받고도 조롱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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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尹의 속옷으로 가릴 수 없는 李의 책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을 소셜미디어로 전하며 “새 대통령의 선거 승리를 축하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공개적인 축하는 처음이라니 놀랍다. 그것도 관세를 0%에서 15%로 올리고, 3500억 달러 투자금 받고, 미국산 에너지 1000억 달러 사주기로 했다는 얘기 끝에 나온 축하 인사다. 이건 당선 축하용일 뿐이니 잘 보이려면 더 내놓으라 보내는 협박 문자 같다. 이 대통령은 “이빨이 흔들려”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국정 기조를 전면 수정하겠다는 뜻일까.이 대통령은 상충하는 국정 목표를 제시해 왔다. 하나는 ‘억강부약 대동세상’이다.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 대동세상을 이룬다는 건 좌파 운동권의 오랜 염원이다. 농업을 숭상하고 상업을 천시하며 가난해도 평등한 작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한물가도 한참 간 유교적 왕도정치에 뿌리를 둔 국정 철학이다.(함재봉 ‘한국 사람 만들기’)다른 하나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다. 최근 비상경제점검 회의에선 “기업 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대동세상 운운하는 586 운동권과는 다른 면모다.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재직 시절 롤모델이 이명박(MB) 전 대통령이었다는 유동규 씨의 법정 증언도 있다. 서울시장을 지낸 MB가 청계천 복원을 발판으로 대통령이 됐듯 이 대통령도 제2의 청계천 같은 랜드마크를 성남에 남기려고 애썼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사법 리스크로 기소되고도 실용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이미지 덕에 대통령이 됐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하지만 새 정부의 국정 방향은 세계 수출 5위국 위상에 걸맞지 않게 억강부약 대동세상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관세 협상부터 그렇다.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도 쌀과 소고기 추가 개방을 하지 않은 것을 큰 성과로 꼽았다. 그 대신 기업의 부담이 커졌을 것이다. 관세 협상 결과 한국의 투자 부담은 올해 정부 예산의 70% 규모로 한국은행 외환보유액(4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 중 상당 부분이 기업 몫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농업 비중은 2%, 제조업은 27.6%다. 작은 시장 지키자고 큰 시장에서 양보했으니 억강부약이 아니라 소탐대실 아닌가. 미국에 몰아주고 나면 한국에 투자할 여력이 있겠나.여당은 노란봉투법과 ‘더 센’ 상법 개정안을 이번 달 안에 일방 처리할 태세다. 수백, 수천 개 되는 협력업체와 1년 내내 협상 테이블에 묶여 있을 자신이 없거나, 가중될 경영권 위협이 싫으면 한국을 떠나라고 등 떠미는 ‘경제 폭망법’이다. 지난 좌파 정부가 노동 약자들에 ‘저녁이 있는 삶’을 주겠다며 도입한 주 52시간제가 ‘저녁밥 없는 삶’ ‘투잡 공화국’으로 귀결됐듯, 반기업법들은 부족한 일자리마저 날려버릴 것이다. 이번 대미 투자 계획 3500억 달러가 실행되면 일자리 160만 개가 미국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청년 취업자 수가 368만 명, 청년 백수가 56만 명이다. 160만 일자리 빼면 뭐가 남나.이 대통령은 올 5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가서 “노무현 정신 이어받아 대동세상 만들겠다”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간 뒤론 “세계 시장의 변화를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으로 달라졌다. 이번 관세 협상을 계기로 재평가받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고 이라크 파병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했다. 친중 위정척사파들이 고집했던 대동사회는 구한말 부국강병을 목표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들에 국권을 침탈당하면서 평가가 진즉에 끝난 시대착오적 망국의 구호임을 알았을 것이다.이 대통령도 국력을 키우겠다면 선택지는 분명하다. 대동세상은 잊어라. 규제지옥, 혁신천국이다. 자해적인 반기업 입법을 말려야 하고 통과된다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더러운 평화’가 어떤 평화를 말하는지 모르지만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평화를 말하기보다 이겨놓고 싸울 생각을 해야 한다.관세 협상이 타결되자 바로 앞서 협상을 마친 일본, 유럽연합(EU)과 비교 분석하는 국내외 평가가 잇따랐다. 전임자 기저효과 덕에 정시에 출근만 해도 일 좀 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대통령으로선 ‘허니문 끝났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 당장 이달 안에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고 나면 새 정부의 적나라한 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어떤 성적표를 받아 들진 몰라도 ‘전임 대통령 속옷 차림 논란’ 같은 이슈로 물타기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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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트럼프를 움직인 2가지… ‘마스가’와 ‘리스펙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분남(two-minute man)’으로 불린다. 주의력 지속 시간이 2분이라는 뜻인데, 트럼프 내각도 2분남 맞춤형으로 운영된다.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서는 5쪽 이내, 문자보다 직관적인 사진과 그림을 선호한다. 트럼프가 올 4월 국가별 관세를 발표할 땐 대형 그래픽 패널이 등장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한국 협상단이 제시한 가로세로 1m짜리 ‘마스가’ 패널이 돌파구 역할을 했다.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는 한국이 1500억 달러(약 210조 원) 펀드를 투자하는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다. 한국 협상단이 투자 규모 못지않게 신경 쓴 부분이 트럼프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와 비슷한 프로젝트 이름과 구체적 내용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래픽이다. 세종시 공무원들이 만들어 보낸 그림 파일을 미국 현지에서 출력해 스티로폼 패널에 붙여 완성했다. 관세 협상의 키맨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마스가 패널을 보여주자 “그레이트 아이디어”라고 했단다. ▷트럼프 마음을 연 두 번째 열쇠는 ‘리스펙트’였다. 러트닉 장관은 면담을 앞둔 한국 협상단에 트럼프 상대법을 알려주며 “트럼프가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리스펙트’라 말하고 ‘아부’라고 알아들었을 것이다. 정치 전문 더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주재하는 각료회의에선 ‘여기가 북한인가’ 싶을 정도의 아부 경쟁이 벌어진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이끄는 미군에 입대하고자 하도 많은 신병들이 몰려들어 수용이 어려울 지경”이라 보고하고,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대통령의 업적을 설명하고 싶은데 기밀 사항이라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한단다. ▷일방적 관세를 얻어맞은 외국 정상들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를 만난 일본 총리는 “신의 선택을 받은 남자”라 했고, 이스라엘 총리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영국 총리는 국왕의 국빈 방문 초청장을 건네며 “두 차례 국빈 방문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첨이야말로 돈도 들지 않으면서 트럼프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주의력 결핍에 어려운 얘기를 싫어하고 칭찬받기 좋아하는 트럼프와 회담을 준비하는 일은 ‘어린아이를 대하는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포린폴리시). 그래도 다들 수천억 달러의 선물 보따리를 안기며 트럼프 기분에 맞추려 안달이다. 정의란 힘이 대등한 사람끼리나 통할 뿐, 투키디데스의 명언대로 ‘강자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약자는 감내할 수밖에 없음(The strong do what they will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을 절감하는 시절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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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지게차에 결박당한 이주노동자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고용허가제 비자(E-9)는 전문 기술 없이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꿈의 비자다. 직장에 다니는 틈틈이 한국어 학원 다니고 비싼 응시료 내가며 시험 쳐서 비자 신청을 한다. 지원자가 많아 4, 5년을 기다렸다는 젊은이도 있다. 스리랑카 출신 A 씨(31)도 지난해 12월 E-9 비자로 입국했을 땐 ‘코리안 드림’에 가슴이 부풀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악몽 같은” 일을 당했다. ▷A 씨가 취업한 곳은 전남 나주의 벽돌 공장이다. 스리랑카, 동티모르, 중국 출신 노동자 10여 명이 일하는데 평소 한국인 간부가 상습적으로 욕을 했다고 한다. 올 2월엔 동료 스리랑카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게차에 결박당해 끌려다니는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동료 이주노동자가 찍어 뒀다 최근 시민단체에 제보한 58초짜리 영상엔 가혹 행위와 한국인이 “잘못했다고 해야지” 하고 조롱하며 웃는 목소리가 나온다. A 씨는 “수치스러웠다. 마음이 다쳤다”고 했다. ▷국내 이주노동자는 미등록(불법) 노동자를 포함해 144만 명이 넘는다. 대개 한국인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고된 일을 하는데 이 중 17%는 정부 실태조사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일부 고용주들의 문제라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당하는 비인격적 대우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농어업의 경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에서 깎는 일도 있다고 한다. 깻잎을 하루 1만5000장 땄다는 외국인도 있다. 최근엔 폭염 속에 일하던 20대 베트남 남성이 앉은 채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공사장엔 혹서기 단축 근무가 시행 중이었지만 외국인은 열외였다고 한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전체 노동자보다 2배 이상 높다(국가인권위원회). ▷이주노동자의 65%는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쓴다. 숙소에 잠금장치가 없거나 방마다 비밀번호가 똑같아 폭행의 위험을 호소하고, 냉난방 시설이 부실해 비닐하우스에서 자다 동사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인의 일터에서도 부당한 갑질이 벌어지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말이 서툴러서, 해고당할까 참고 넘어간다. 작업장과 숙소가 외진 곳에 있어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밖에선 알기 어렵다. ▷지게차에 묶인 피해자를 보며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 다녀온 남성의 회고 글이 떠올랐다. 사우디 발전에 기여해 번 돈으로 집안 빚 갚고, 동생 대학 보내고, 국가 경제에도 도움을 줬다며 “사우디에서의 노동이 새삼 고맙다”고 썼다. 벽돌 공장 사장의 사과와 단골 식당 주인의 따뜻한 밥상으로 기운을 차린 스리랑카인 A 씨는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모아 고향에 있는 약혼녀와 결혼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의 노동도 자부심과 감사함으로 떠올리게 해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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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보험 되면 1378원, 안 되면 50만 원… 같은 거즈인데

    의료 시장은 정보 불균형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전문가인 의사가 환자에게 해가 되진 않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나 투약을 권유해도 알 도리가 없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급여) 약이 있는데 보험이 안 되는(비급여) 비싼 약을 쓰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 가격을 따져본 결과 급여냐 비급여냐에 따라 가격이 수백 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실련이 22일 가격 실태를 공개한 의약품은 거즈나 솜 같은 지혈보조제 33개 제품과 내시경 검사 등에 활용되는 국소마취제 11개 제품이다. 지혈보조제는 급여 제품(9개)보다 비급여 제품(24개)이 훨씬 많았고 급여일 경우 1378원인 가격이 비급여가 되면 평균 50만1814원으로 364.2배가 됐다. 국소마취제도 급여(3개)보다 비급여(8개)가 많았는데 급여일 경우 489원짜리가 비급여가 되면 1만5199원으로 뛰었다. 나쁜 의사를 만날 경우 1378원이면 될 거즈에 덤탱이를 써 50만 원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급여와 비급여 제품이 뒤섞여 사용되는 이유는 의약품의 경우 의료행위나 치료 재료와 달리 건보 등재 신청 의무가 없어 제약사들이 이 틈을 이용해 유사 제품의 건보 등재를 회피하는 꼼수를 부리기 때문이다. 경실련이 조사한 A지혈보조제는 제약사가 건보 급여 등재를 취하하고 비급여로 돌렸는데 취하 전 8324원이던 제품이 12만6410원으로 15배 넘게 뛰었다. 병원도 가급적 비싼 비급여 의약품을 써서 환자에게 폭리를 취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게 경실련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제약사들은 의약품 수가가 원가 이하로 책정돼 비급여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수익성 저하로 아예 시장에서 철수해 공급이 끊길 위기에 놓인 의약품도 있다. 의사들은 환자가 실손보험에 가입한 경우 비용 부담이 없어 무조건 최고를 원하기 때문에 비급여 약품을 쓰게 된다고 주장한다. 싼 제품을 썼다가 잘못되면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어 방어 진료 차원에서라도 비싼 걸 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상 의료비 중 약제비 지출 비중이 1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4.2%보다 높고 회원국 중 순위가 7위다(2022년 기준). 제약사와 병원의 도덕적 해이와 환자의 과잉 의료 소비가 맞물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거나 비싼 약품을 쓰면서 선량한 건보 및 실손보험 가입자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원가도 못 맞춰 주는 수가를 현실화하고 실손보험 제도도 손봐야 한다. 의사는 양심껏 1378원짜리 거즈를 권하고,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50만 원짜리 거즈가 아니면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의료 개혁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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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尹의 한탄… “국무위원들조차 살길 찾아 떠났다”

    윤석열 전 대통령 곁에 누가 남아 있을까. 계엄의 ‘설계자’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님은 나라와 국민 생각만 하는 미련하신 분”이라 두둔했던 인물인데, ‘계엄 포고령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윤과 엇갈리는 진술을 했다. 계엄을 지휘한 사령관 3인방도 혐의를 인정하고 돌아섰다. ‘윤의 복심’인 대통령실 부속실장과 ‘호위무사’ 경호처 차장은 진술을 번복하며 윤의 구속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재구속되던 10일 새벽 법원 앞 지지자 규모는 확 줄었고, 올 1월 1차 체포영장 집행 때 관저 앞으로 몰려갔던 국민의힘 의원 45명 중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지금 변호인을 구할 돈도 없고 아무도 나에게 오려 하지 않는다.” 윤 전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진술을 강요하거나 회유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증거인멸 우려가 없으니 구속하지 말아 달란 뜻이다. 그는 “국무위원들조차 본인 살길 찾아 떠나려고 국회에서 없는 이야기 한다”고 했다.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은 ‘계엄에 반대했다’고 말해왔다. 내란특검이 출범한 후로는 회의 불참자들까지 줄줄이 소환당하고 있는데 이들이 어떤 ‘없는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통령 시절 장관들의 행태를 떠올리면 배신감이 클 것이다. 툭하면 격노하는 성정 탓이었을까. 그의 곁에는 아부꾼이 많았다. 5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해온 총리는 언론에 “대인이다.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라고 극찬했다. 사회부총리는 “대통령은 입시 수사를 여러 번 해서 내가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 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무회의를 해보면 인공지능(AI)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라며 “단연 발군”이라 추켜세웠다. ▷대선 후보 시절만 해도 “아부하는 공무원은 솎아내겠다”고 경고했다. 당선 직후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참모에게 “아부하지 말라”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용산에 들어간 후론 인사 때마다 ‘검찰 라인’ ‘김건희 라인’이라는 구설이 따라다녔다. 친분이 없으면 충성심이라도 보여야 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 업무를 맡았던 외교부 2차관은 “대통령 PT가 국면 전환의 분수령이 됐다”고 했는데 유치 실패 후 오히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격노에 겁먹고 아부에 취한 끝이 참담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후 “선거 때마다 애타게 나를 찾던 이들도 등 돌리더라”고 회고록에 썼다. 무사히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도 권좌에서 내려오는 순간 권력 무상을 느끼게 된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키우라”고 했다. 다 떠나고 키우던 개만 남더란다. 윤 전 대통령 곁에는 그 많던 반려견조차 없다. “혼밥 않겠다”며 임기를 시작했지만 10㎡(3평) 독방에 갇혀 버렸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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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꿈쩍도 않는 국힘 ‘쩍벌남’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닷새 만에 사퇴하고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2인’의 탈당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너무 빠른 철수의 속내가 의심스럽지만 인적 쇄신 요구는 정당했다고 본다. 안 의원은 혁신을 거부하는 당내 기득권 세력을 ‘수술 거부하는 중환자’에 비유했는데 필자는 지하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민폐를 끼치는 ‘쩍벌남’이 떠오른다. 쩍벌남 비유가 와닿지 않는다면 당 개혁안을 놓고 친윤과 비윤이 격돌했던 지난달 9일 국힘 의원총회 사진을 찾아보라. 회의장 앞줄에 김용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가 서로를 외면한 채 앉아 있는데, 김 위원장이 양손과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모습과 대조적으로 권 원내대표는 다리를 쩍 벌리고 있다. 당 관계자는 최근 라디오 시사프로에 나와 당내 주류들이 의총장 앞줄을 선호하는 이유는 쩍벌하기 좋아서라고 했다.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비윤과 무시하는 친윤의 차이를 이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도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부터 유명한 쩍벌남이다. 대선 주자 시절 온라인에서는 ‘아랫도리만 보고 누군지 맞히기’ 게임까지 벌어졌다. “쩍벌남은 100% 안 좋은 이미지”라는 전문가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 후로도 고쳐 앉지 않았다. “쩍벌과 쇄신이 무슨 상관이냐” “과도한 일반화다” 반박해도 소용없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쩍벌은 내가 편하면 됐지 남을 배려할 필요가 있느냐는 오만한 멘털리티의 문제다. 사람들이 계엄으로 피해를 입든 말든, 계엄 정당으로 낙인찍든 말든 내 지역구만 지키면 그만이라 생각한다면 그게 남자든 여자든 쩍벌남이다. 윤 전 대통령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후로도 쩍벌남들은 꿈쩍도 않는다. 쩍벌남이 앉았던 원내대표 자리에 또 다른 쩍벌남이 앉았고 당 3역도, 비상대책위 지도부의 다수도 윤을 옹호했던 ‘방탄의원단’ 혹은 ‘탄반모’ 지지 인사들이다. 다리 좀 모아 달라 지적하면 되레 성을 내는 게 쩍벌남의 특징이다. 인적 쇄신을 요구한 안 의원에게 “비열한 행태” “혁신의 대상”이라고 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도 5대 개혁안을 꺼냈다가 “사퇴하라”는 소릴 들었다. 혁신하지 않으면 절멸할 위기인데 이런 해당 행위도 없다. 쩍벌남들이 나라에 끼치는 민폐는 더 걱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 중엔 투기, 논문 표절, 이해충돌 의혹을 받는 이가 수두룩하지만 여당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전원 통과’를 자신한다. “대통령이 전과 4범이라 인사 기준 무뎌졌나” 따지면 “법정형이 사형이나 무기징역형밖에 없는 내란죄 피의자 싸고돌던 당이 할 소린가”라고 되치기당한다. 전한길 강사에게 “계몽령 가르쳐줘 감사하다”던 의원의 ‘배추 총리’ 임명 철회 농성은 촌극 같았다. 여당은 기업에 무거운 족쇄를 채우는 상법 개정을 시작으로 경제 사회 방송 각 분야에 악영향을 줄 입법 독주에 시동을 걸었다. 76년간 존속해 온 검찰청을 추석 전에 해체한다 하고, 이 대통령과 측근들이 기소된 사건을 ‘조작 기소’라며 이에 대응하는 특별팀도 꾸렸다. 쓴소리꾼이라는 법무장관 후보자까지 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하나같이 함부로 거론할 사안들이 아님에도 거침이 없다. 제1야당은 내란당으로 권위를 잃었고, 3개 특검이 윤 전 대통령 부부의 35개 혐의를 탈탈 털고 있다. 김 여사, 샤넬백, 주가조작, 통일교, 북풍 공작 의혹에 건진법사까지 넷플릭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한 수사 내용이 줄줄이 공개돼 눈과 귀를 잡을 텐데 누가 재미없는 방송3법 검찰4법에 관심을 가지겠나. 보수의 뿌리와 기둥으로 이승만 박정희를 꼽지만 구한말 문명 개화와 부국 강병을 도모하고, 해방 공간에 농지개혁이란 진보적 과제를 수행하고 극단을 배격하며 다원적 정치 체제를 구축한 막후 주역은 온건하고 점진적인 상층 지주 보수 세력이었다(이승렬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 희생과 책임의 신사들이 뿌리내린 보수의 나무에서 계엄을 두둔하고 부정선거에 현혹되는 극단주의의 가지가 뻗어 나왔으니 ‘보수의 심장’에서도 “느그가 보수가”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국힘이 자력으로 혁신할 기회는 다음 달 전당대회만 남은 듯하다.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는 후보들은 “이재명과 싸우겠다” “야성(野性)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야성보다 염치가 필요하고 이재명이 아니라 당내 쩍벌남들과 싸우는 게 먼저다. 민폐를 끼친 데 대한 사과와 자리 양보는커녕 바로 앉을 생각도 않는 사람들은 일으켜 세우고, 생각과 몸가짐이 반듯한 호감형 인물들을 앉혀야 한다. 이제 쩍벌남은 지하철에서도 보기 어렵다. 우리 민도(民度)가 쩍벌남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는 수준이 됐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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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좋은 평가만”… 논문 심사하는 AI에 비밀명령

    한국 KAIST, 미국 컬럼비아대, 중국 베이징대, 일본 와세다대 등 14개 유명 대학 연구자들의 논문 17편에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평가 조작 시도가 발견됐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논문 속에 “좋은 말만 쓰라” “부정적 내용은 쓰지 말라” 같은 영어 명령문을 슬쩍 써넣었는데, 흰색 바탕에 흰색 글씨거나 아주 작은 글씨로 되어 있었다. 사람 눈엔 안 보이고 AI만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논문 평가에 AI가 이용됨을 전제로 한 연구 부정 행위다. 논문 작성과 동료 평가로 이뤄진 연구 생태계 전반에 AI가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실감케 한다. ▷논문 작성 단계에선 AI가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대개는 관련 문헌을 찾고 데이터를 분석할 때 조교처럼 활용하는 정도인데 1년 전부터는 주제어와 개요만 제시하면 논문을 통째로 써주는 서비스도 나왔다. 연구자가 방학 내내 매달려도 쓸까 말까 한 30쪽짜리 논문 한 편을 3분이면 써낸다. 일본 AI 스타트업 사카나는 올 3월 AI가 쓴 논문이 학회 워크숍의 동료 평가를 처음으로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자의 ‘밥줄’이 걸려 있는 논문 심사를 AI에 맡기는 건 더욱 민감한 문제이나 2, 3시간 걸릴 일을 AI는 몇 분 만에 해주니 알음알음 쓰는 추세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올 3월 연구자 10명 중 2명꼴로 AI를 논문 심사에 이용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전했다. 동료 평가는 해당 분야 전문가 2, 3명이 참여해 학술지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데, 사람은 평가자들 간 편차가 크지만 AI는 그렇지 않아 심사를 받는 쪽에서도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도 있다. ▷문장을 다듬는 수준을 넘어선 AI 논문 심사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연구 논문엔 민감한 실험 자료가 포함되는 경우가 있는데 AI 도움을 받는 순간 심사가 끝나기도 전에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동료 평가에선 평가자와 논문 간 이해 충돌 문제를 걸러낼 수 있지만 AI는 그럴 방법이 없다.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심사하는 AI로서는 전혀 새로운 연구의 가치를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처는 동료 평가 시 AI 사용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미국 최대 연구 지원 기관인 국립보건원과 국립과학재단은 금지하고 있다. ▷이번 AI 평가 조작 보도에 언급된 KAIST 소속 연구자는 “AI에 긍정적인 동료 평가를 유도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논문 게재를 철회하기로 했다. KAIST는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한편으로 AI 활용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에 나섰다. 조만간 AI가 쓰고 AI가 심사한 논문까지 나올 것이다. 그 논문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기술 혁신이 일어날수록 연구 윤리에 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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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전기요금 통합 징수’ 해결되니 수신료 올려달라는 KBS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한다. 박장범 KBS 사장은 어제 열린 KBS 시청자위원회 전국대회에서 1981년 2500원으로 인상된 후 45년째 동결된 수신료 인상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KBS 내부에서는 수신료 인상 슬로건으로 ‘3·4·5’를 내걸었다고 한다. ‘3000원으로 44년 만에, 500원 인상한다’는 뜻이다. KBS의 수신료 인상 요구는 2007년(4000원), 2010년(3500원), 2013년(4000원), 2021년(3840원)에 이어 다섯 번째다. ▷수신료 인상 추진 배경엔 고질적인 경영 악화가 있다. KBS의 지난해 사업 손익 적자는 881억 원으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935억 원)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전체 수입의 49%를 차지하는 수신료를 올려 경영난을 덜어보겠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KBS 수신료 수입은 6516억 원. 수신료가 3000원으로 20% 인상되면 수신료로만 한 해 1300억 원 이상의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자구 노력 없이 준조세나 다름없는 수신료를 더 걷어 경영난을 해결하려는 계획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박 사장은 올 3월 “현재 5248명인 KBS 정원을 20% 감축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시행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역대 사장들도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감원을 공언했지만 KBS의 인건비 비중은 32%로 MBC(23%)나 SBS(16%)보다 훨씬 높다(2023년 기준). 수신료 인상이 국회 최종 승인 단계에서 번번이 무산됐던 이유다. ▷더구나 올 4월 여당 주도로 수신료를 예전처럼 전기요금에 합쳐 내도록 방송법이 개정돼 KBS로서는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상태다. 지난 정부가 공영방송 실패에 수신료 납부 거부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며 분리 징수제를 시행했으나 다시 통합징수제로 돌아간 것. KBS로서는 이것만도 큰 혜택인데 불황 국면에 수신료 인상까지 꺼내자 사내에서도 “여론 수렴 않고 성급하다”거나 ‘파우치 사장’의 흑역사를 언급하며 “편파 방송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에선 20년 가까이 수신료 인상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해외에선 공영방송 무용론이 제기된 지 오래다. 공영방송 의존도가 높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유료 방송에 넷플릭스, 유튜브까지 수많은 채널이 존재한다. 1만 원 넘는 넷플릭스 구독료는 기꺼이 내도 공영방송 수신료 지불의사액은 2006년 3775원에서 가장 최근 조사인 2019년엔 1667.45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일본 NHK가 수신료를 내리고 영국 BBC가 2년 후 수신료 폐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이유다. 지금은 수신료 인상이 아니라 제구실 못 하는 다수의 공영방송을 언제까지 공적 재원으로 유지해야 하나 검토할 때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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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수업 복귀 막는 의대 선배들 제적해 달라” 오죽하면…

    이달 말 전국 의대의 유급과 제적 처리 행정 시한을 앞두고 동료와 후배들의 막판 복귀를 막으려는 강경파 의대생들의 압박 행위가 도를 넘어섰다. “수업 듣고 시험 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협박 문자를 보내고, 학교 앞에서 스크럼을 짜 학생과 교직원들을 못 들어가게 막는다는 것이다. 급기야 후배들이 학교 측에 수업 복귀를 막는 선배의 제적을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차의과대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학생 14명은 “수업 거부로 제적 예정 통보를 받은 3학년 선배의 방해와 협박으로 수업과 시험 참여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교가 학칙대로 선배들을 제적하지 않으면 학교와 선배를 상대로 소송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문제의 3학년 학생들은 2학년 후배들을 불러내 대화 내용을 녹음하지 못하게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블랙리스트” 운운하며 수업 거부를 강요했다고 한다. 모든 학생이 수업을 거부해야 자신들도 제적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교육부에는 수업 복귀 방해를 막아 달라는 의대생과 학부모들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한 국립대 의대는 강경파 학생들이 간담회를 열어 수업 거부를 압박했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을지대 의대는 학생들에게 수업 참여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게 함으로써 수업 거부를 겁박했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을지대는 주동자 2명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수업 거부를 강요하거나 복귀 의대생 신상을 유포해 교육부가 의대생 수사를 의뢰한 사건이 18건이나 된다. ▷선배와 동료의 수업 거부 강요는 의대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까지 10년 넘게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동고동락하고 졸업 후에도 평판이 중요한 집단 내에서 ‘배신자’로 찍히는 건 제적이나 면허 정지보다 무서운 일이라고 한다. 지난달엔 집단행동을 거부한 의사와 의대생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유포한 사직 전공의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부당한 정책에 반대한다는 명분이라지만 비동조자에 대한 조리돌림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일 뿐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철회한 후로도 집단적 수업 거부로 의대생 40%가 유급이나 제적 예정 통보를 받았고, 나머지 60% 중 상당수도 한 과목만 수강하는 등 수업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내년에 3개 학년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을 완화하려면 이번 달 안에라도 복귀해 다음 달부터 계절학기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후배가 선배 제적을 요구할 지경이 되도록 학교와 정부는 무얼 한 건가. 정부는 학생들이 안심하고 복귀할 수 있게 현장을 챙기고, 의료계도 후배들의 수업 복귀를 독려하는 한편 이탈자를 매장해 버리는 비민주적인 집단문화를 돌아보기 바란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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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영 칼럼]‘멍청한 당’ 국민의힘

    ‘보수는 유능하고, 진보는 도덕적’이라는 통념도 옛말이다. 보수가 무능함을 보여주고 진보가 도덕성에서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미국에선 공화당은 멍청한 당(stupid party), 민주당은 사악한 당(evil party)이라고 한다. 공화당은 지적 역량이 떨어지고, 민주당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지금 한국 여당과 제1야당에 딱 들어맞는 이분법 같다. 여당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한 판사를 술잔도 안 나오는 사진 한 장으로 ‘룸살롱 접대’ 의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을 들고 싶다. 접대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계경후(殺鷄儆猴·닭을 죽여 원숭이를 훈계하다)란 말이 있듯 많은 판사가 ‘여당에 협조하지 않으면 X망신 당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참으로 사악한 당이다. 국민의힘의 멍청함을 보여주는 사례 역시 많은데 6·3 대선에서는 이보다 더 멍청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듯하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특수성, 대선은 중원 싸움이라는 경험칙을 더하면 윤과 멀고 중도에 가까운 후보를 내세우는 건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윤과 가장 가깝고 중도에서 가장 먼 후보를 뽑았다. 후보 바꿔치기하려고 벌인 소동은 그 불의함과 무능함이 실패 확률 제로라는 친위 쿠데타에도 실패한 옛 1호 당원의 그것과 닮았다. 이길 생각으로 그랬다면 참으로 멍청한 당이다.‘지혜로운 사람은 실패에서 배우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실패하면 다른 사람 탓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국힘은 후자 쪽이다. 패장이 된 대선 후보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신념이 없었다”며 당 탓을 하고, 친윤계 의원들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며 개혁하자는 젊은 비대위원장을 몰아세우고 있다. 윤의 폭정과 계엄을 싸고돌다 나라를 진창에 빠뜨리고 3년 만에 정권을 내준 ‘폐족’ 친윤이 무슨 낯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나. 우매한 탓에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 우매함이 더해지니 하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다. 10년도 안 돼 대통령 2명이 탄핵을 당해 쫓겨났고 2016년 20대(새누리당), 2020년 21대(미래통합당), 2024년 22대(국민의힘) 총선에서 내리 참패했다. 40%를 넘긴 이번 대선 득표율을 보고 ‘졌잘싸’ 한다면 오산이다. 이번이 총선이었다면 국힘 의석은 81석으로 개헌 저지선도 뚫렸다. 여당의 ‘부울경’ 지지율이 40% 안팎까지 치고 올라왔고, 4050세대는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굳어졌다. 선거 결과를 당 색깔로 보여주는 지도는 갈수록 파랗게 변하면서 빨간 지역은 소멸의 길로 빠져드는 추세다.‘보수는 멍청한 당’이란 표현의 원조는 영국 보수당이다. 19세기 지성 존 스튜어트 밀이 하원의원 시절 한 말인데, 영국 보수당은 그 당시 멍청했는지 몰라도 서구에서 가장 성공한 당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은 가끔 노동당에 투표하는 나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당 이름은 1830년대부터 줄곧 ‘보수당’이지만 지도부와 정책은 시대 변화에 따라 부단하게 쇄신해 온 덕분이다.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10세 이하 어린이 고용을 금지하는 입법을 주도한 정당이 보수당이다. 사립학교를 나온 백작, 후작, 남작들 차지였던 당 지도부도 공립고교 중퇴자, 잡화점 딸, 유대인, 힌두교도로 문호를 꾸준히 넓혀 왔다. 모범 사례를 찾으러 먼 곳까지 갈 필요도 없다. 국힘이 잠깐이나마 호평받던 시절을 돌아보라. 2012년 총선에서 ‘경제 민주화’로 담론을 주도해 제1당이 된 후 다음 대선에서 승리했고, 2021년엔 헌정사상 최초로 ‘0선’ 30대 당 대표를 뽑아 이듬해 대선에서 이겼다. 반대로 혁신한다면서 요란하게 당 이름만 바꾸고 알맹이는 ‘늙은 건물주와 퇴물 판검사들’로 채웠을 때, 의제를 주도하기보다 ‘운동권 청산’ ‘이재명은 아니다’라며 끌려다닐 땐 졌다. 이번 대선으로 입법과 행정 권력에 사법부 물갈이 권한까지 모두 쥔 전례 없는 절대 권력이 탄생했다.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사악한 당’이 갖고 있다. 그런 권력을 견제해야 할 국힘은 당내 계파 싸움엔 의욕적이면서도 여당에 대해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무력감을 호소한다. 여전히 107석을 가진 제1야당, 없는 나라 곳간 털어 지원해준 선거보조금으로 재산을 1200억 원으로 불린 부자당이 할 소린가. 이번에도 문패만 바꿔 달고 하던 대로 하며 상대가 자빠지는 요행만 바란다면 ‘멍청한 당’이란 욕도 아까운 당이 된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하네’ 싶을 만큼 쇄신해야 살길이 열린다.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당하는 수밖에 없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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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진영]사후 90년 만에 별 단 드레퓌스

    프랑스 대문호이자 언론인 에밀 졸라는 1898년 ‘여명’이란 뜻의 일간 신문 ‘로로르’ 1면에 프랑스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을 글을 기고했다. 펠릭스 포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제목은 ‘나는 고발한다’. 다들 쉬쉬하던 ‘드레퓌스 간첩 사건’이 조작됐고, 드레퓌스는 무죄이며, 조작에 가담한 이들을 고발하니, 나를 잡아가서 신문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졸라는 이 글로 군법회의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이 사건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캔들이 됐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육군 대위가 군사 기밀을 독일에 팔아 넘긴 혐의로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독불전쟁에서 패배한 후 희생양을 찾던 군부가 마침 전쟁에서 빼앗긴 독일 접경 지역 알자스 출신의 유대인을 반유대주의 분위기에 편승해 증거도 없이 스파이로 몰고 간 것. 드레퓌스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의 섬’에 유배됐다. ‘나는 고발한다’는 이후 진범이 잡혔는데도 군부가 진실 은폐를 위해 진범을 찾아낸 조르주 피카르 중령을 좌천시키고 진범을 풀어주자 게재됐다. ▷거대한 국가 권력에 맞서 개인의 무고함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 더욱이 드레퓌스 사건 당시 프랑스는 패전 후 민족주의와 유대인 차별 정서로 들끓었다. 프랑스인의 절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는데 로마 가톨릭교회도 드레퓌스 재심에 반대했다. 드레퓌스 무죄를 주장했던 이는 소수의 지성인과 양심 있는 군인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을 찾아낸 피카르 중령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유대인을 위해 애를 쓰느냐”는 상사의 질책에 답했다. “드레퓌스는 죄가 없으니까요.” ▷결국 세계 언론까지 주목하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게 됐다. 드레퓌스는 1906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복권돼 중령으로 제대했고,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최고 영예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이후 군부를 개혁하고, 공화정을 안착시켰으며, 프랑스식 정교분리인 ‘라이시테’ 원칙을 수립했다. 사족을 달면 군부 편에서 드레퓌스 재심을 거부했던 대통령은 1899년 엘리제궁에서 유부녀와 밀애 중 숨졌다. 프랑스에선 드레퓌스 얘기가 나올 때마다 졸라와 포르 대통령 이름이 거론된다. ▷프랑스 하원이 90년 전 작고한 드레퓌스 중령을 준장 계급으로 추서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하원은 “반유대주의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공화국은 모든 종류의 차별에 맞서 경계심을 유지하고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고 법안 제안 이유를 밝혔다. 세계 곳곳에서 차별과 증오가 마녀사냥에 나서고 불의한 권력이 개인의 인권을 유린할 때마다 131년 전 드레퓌스 사건과 진실의 편에 섰던 ‘나는 고발한다’가 행동하는 지식인의 다짐으로 소환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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