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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한국인은 일본의 어려움을 고소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인도 이 책을 경고의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전 세계 부(富)의 16%를 차지하며 세계를 호령했던 경제대국이다. 1990년대 들면서 침체에 빠지더니 정치도 퇴행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잃어버린 10년’ 혹은 ‘잃어버린 20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상황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전망을 시도한다. 저자인 브래드 글로서먼은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선임고문이다. 그가 1991년부터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27년 동안 도쿄에서 다양한 개인과 집단을 만나며 일본 사회를 관찰한 경험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일본이 이미 경제 성장의 마지막 정점을 찍었으며 현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 일본을 덮친 4가지 충격으로 저자가 제시한 키워드는 이렇다. 첫째,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등 금융위기, 둘째 민주당으로의 짧은 정권 교체와 이후 자민당 독주, 셋째 센카쿠 열도 분쟁, 넷째 동일본 대지진. 아베 신조 정권도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위의 네 번의 충격을 거쳤음에도 구조와 태도의 한계가 여전히 일본을 옥죄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한계 속에는 상대방을 좌절시키기 위한 ‘반대를 위한 반대’, 정치인이 전문성 없이 각료를 돌아가며 맡는 ‘가라오케 민주주의’ 등 정치의 무능이 있다고 분석한다. 게다가 시민사회에는 패배주의와 체념이 광범위하게 퍼졌으며 원전 사고가 총체적 인재로 드러나 일본의 ‘안전 신화’마저도 해체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이 같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익과 자원에 대한 정확한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후 정부가 일본의 힘과 목적의 현실성에 맞춘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만큼 심각한 인구 문제에 봉착했고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 않고 있는 한국 또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강조한다. 비생산적인 기업(한계기업)을 떨쳐내지 않으면 일본처럼 ‘좀비 기업’ 퇴출을 거부한 대가로 큰 압박에 직면할 것이란 조언은 의미심장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작품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며,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이 없는 한 사법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조수를 사용해 완성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미술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할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첫 판결이었다. 미술계의 조수 사용이 르네상스 시대부터의 오래된 창작 방식임에도 ‘작품은 손으로 직접 그려야만 한다’는 일반 인식을 새롭게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화단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은 조 씨가 화가 송모 씨의 그림에 덧칠과 서명만 해 자신의 것으로 속여 팔았다며 조수 송 씨를 ‘대작(代作)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수 송 씨는 작가가 아닌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며 작품 거래에서 친작(親作) 여부를 필요한 정보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2심 변론을 맡은 구본진 변호사는 “현대미술은 손기술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인식이 중요하기에 친작 여부가 작품 거래에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이 사건이 유죄라면 박서보, 김창열, 데이미언 허스트 같은 국내외 유명 작가도 사기 혐의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수 사용 여부가 작품의 시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국제적 기준임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다양한 외신 기사로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창작의 자유가 침해될 정도로 형벌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주요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창작 방식은 작가가 선택할 문제임을 인정한 것이다. 예술가의 조수 사용에는 영세한 규모부터 대규모 스튜디오, 전체 작품의 일부부터 전부를 의뢰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조수 사용을 사기로 본다면 그 방식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규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예술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고 사법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그림은 (예술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 ‘미술 전공을 해야 예술을 한다’는 화단 일각의 견해도 성찰에 직면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조영남을 비판하고 싶다면 비평으로 다룰 일을 법정에 가져갔던 것”이라며 “가수가 립싱크를 한다고 처벌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 조 씨는 이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을 출간했고 조만간 팝아트 관련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김민 kimmin@donga.com·신동진 기자}

“예술 작품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며,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이 없는 한 사법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조수를 사용해 완성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미술품 제작에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할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에 대한 첫 판결이었다. 미술계의 조수 사용이 르네상스 시대부터의 오래된 창작 방식임에도 ‘작품은 손으로 직접 그려야만 한다’는 일반 인식을 새롭게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화단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은 조 씨가 화가 송모 씨의 그림에 덧칠과 서명만 해 자신의 것으로 속여 팔았다며 조수 송 씨를 ‘대작(代作)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수 송 씨는 작가가 아닌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며 작품 거래에서 친작(親作) 여부를 필요한 정보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2심 변론을 맡은 구본진 변호사는 “현대미술은 손기술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인식이 중요하기에 친작 여부가 작품 거래에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지 않는다”며 “이 사건이 유죄라면 박서보, 김창열, 데미언 허스트 같은 국내외 유명작가도 사기 혐의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수 사용 여부가 작품의 시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국제적 기준임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다양한 외신 기사로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창작의 자유가 침해될 정도로 형벌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주요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창작 방식은 작가가 선택할 문제임을 인정한 것이다. 예술가의 조수 사용에는 영세한 규모부터 대규모 스튜디오, 전체 작품의 일부부터 전부를 의뢰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조수 사용을 사기로 본다면 그 방식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규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예술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고 사법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그림은 (예술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 ‘미술 전공을 해야 예술을 한다’는 화단 일각의 견해도 성찰에 직면하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조영남을 비판하고 싶다면 비평으로 다룰 일을 법정에 가져갔던 것”이라며 “가수가 립싱크를 한다고 처벌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보물로 지정된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이 경매에 출품된다. 케이옥션은 다음 달 15일 경매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796호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筆 海嶽八景-宋儒八賢圖 畵帖)’이 나온다고 23일 밝혔다. 추정가는 50억∼70억 원이다. 이 화첩은 겸재가 금강산과 동해안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 8점과 송나라 유학자를 소재로 한 고사인물화 8점 등 16점을 수록하고 있다. 서로 다른 주제인 산수화와 인물화로 구성한 것이 드문 예임을 인정받아 2013년 2월 28일 보물로 지정됐다. 현재 우학문화재단 소유로 용인대가 관리하고 있다. 진경산수화는 ‘단발령’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고성 문암’ ‘총석정’ ‘해금강’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해금강은 겸재의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에는 들어 있지 않다. 기존 고미술품 최고 낙찰가는 보물 제1210호 ‘청량산괘불탱’이다. 2015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 추정가 40억∼150억 원으로 출품돼 35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출품작은 다음 달 4일부터 경매일까지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사전 예약 후 관람할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무슨 육편(肉片)이 천 조각에 싸인 줄 알고 자세히 보곤 곧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시신이 조각나 널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러진 적군의 시체를 탱크가 뭉개고 지나가고 곧 다른 차량이 계속 지나 흩어진 게 분명했다.” 국내 시사만화의 대부 김성환 화백(1932∼2019)의 6·25전쟁에 관한 기억이다.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김 화백의 ‘고바우 영감’은 잘 알고 있지만, 그가 전투 현장을 드로잉으로 담았다는 사실은 생소하다. 25일 온라인 개막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낯선 전쟁’전에서는 6·25전쟁에 관한 이 같은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된다. 1부 ‘낯선 전쟁의 기억’은 6·25전쟁 당시를 기록한 작품을 전시하고, 2부 ‘전쟁과 함께 살다’는 전쟁 이후 사회문제에 주목한 작품들을 담았다. 3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는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신작 등을 선보이고, 4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평화를 모색한다. 이 가운데 역시 당시를 기록한 작품이 가장 눈에 띈다. 김 화백은 1950년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에 근무하며 시사만화와 삐라, 주간 만화잡지 제작에 참여했다. 이듬해 가을에는 미술대 소속 기자로 중부전선에 배치된 6사단을 방문해 전장(戰場)과 소년병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시장의 작품 대부분은 전쟁 직후 서울 모습이다. 1950년 9월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 쌓인 시신들, 서울 수복 이튿날인 같은 달 29일 도망치지 못하고 사살된 북한군 병사 등이 보인다. 북한군의 인민의용군 징집을 피해 다닌 김 화백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농사꾼 행세를 하며 스케치했다. 당시 그는 17세였다. 김 화백 외에도 김환기 윤중식 우신출 임호 등 많은 작가가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했다. 종군화가는 정식 군인은 아니지만 통행증과 신분증을 발급받아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윤중식 화백은 평양미술학교 출신으로 피란길에서 각종 드로잉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들 드로잉 뒤에 작가는 ‘언젠가 그림으로 그리고자 남겨둔다’고 적어뒀지만 회화 작품으로 그려내진 못했다. 전쟁을 겪으며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게 된 예술가가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남기는 사례는 적지 않다. 2차 세계대전 때 종군화가로 활동하며 전장의 참혹한 고통을 직시해 기록한 헨리 무어(1898∼1986). 그는 이후 ‘가족상’을 비롯한 인체 조각으로 영국 대표 작가가 됐다. 근대미술의 거장인 스페인의 프란치스코 고야(1746∼1828)는 18세기 말 나폴레옹군이 스페인을 침략한 현장을 담은 동판화 ‘전쟁의 참상’(1810∼1820)을 남겼다. 국가주의와 폭력에 맞서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성스럽게 그린 ‘1808년 5월 3일’(1814년)은 이후 마네와 피카소가 패러디하는 등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낯선 전쟁’전은 이수정 학예연구사의 설명과 함께 25일 오후 4시, 약 40분간 유튜브 생중계된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열리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때로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각자의 의견이 다르잖아요. 이러한 현상을 고민하며 탄생한 전시입니다.” 경기 파주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대표 이수문)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검은 해’에 대한 강성은 학예실장의 설명이다. 올 상반기 코로나19 확산과 n번방 사건이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지만, 곧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서로 유리하게 사건을 해석했다. 개표 결과 한반도의 동-서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했다. 이 기획전은 ‘해는 빨갛다’ 같은 고정 관념을 타파하자는 취지에서 전시 제목을 ‘검은 해’라고 붙이면서 사회 현상을 보는 유연한 관점을 제안한다. 전시회는 김무영, 김영은, 박병래, 송세진, 신정균, 진기종 등 젊은 작가 6명의 영상과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김영은 작가는 시위 현장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아”와 같이 무작위로 채집한 소리를 통해 작품을 구성했다. 김무영 작가는 반공 활동을 펼치는 유명 유튜버의 삶을 인간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25일 오후 5시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의 진행으로 임권택 감독의 작품 ‘짝코’를 무료 상영한다. ‘짝코’는 분단을 다룬 리얼리즘 영화로 남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객관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시는 28일까지.파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런 것까지 신경 쓰라고요?” “그게 어렵나! 라떼(나 때)는 말이야….” 10년 아니라 1년에도 강산이 변하고 다섯 살 차이만 나도 세대 차이 느낀다는 요즘. 서로 너무 다른 시대를 살아온 개개인이 모인 직장에서는 당연했던 관행의 적정선을 가늠하기 어렵다. 상사는 매너를 요구하다 ‘꼰대’ 소리 들을까, 젊은 직원은 악의 없는 행동이 무례하다 오해받을까 두렵다. 이런 세태 속에 최근 나온 책 ‘20세기 회사예절, 21세기 사원 매너’(더난출판)는 흥미롭다. 용모와 복장부터 인사 대화 출퇴근 매너까지 시시콜콜히 알려준다.》 책이 소개하는 매너 10개 항목에 대해 건설 금융 미디어 유통 정보통신 법조계에서 일하는 20∼50대 직장인 23명의 반응을 들어봤다. 항목마다 ‘매너다=○’ ‘상황 따라 다르다=△’ ‘라떼(과도함)다=×’를 표시하고 의견을 달도록 했다. 대체로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된다는 반응이었다. 다만 인사나 상석 관련 매너는 40, 50대와 20, 30대 의견이 명확히 엇갈렸다. 한 30대 직장인은 “실무적으로 매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업무 역량”이라고 했다. 다음은 주요 응답 내용.1. 남성은 코털 간과하지 말고 여성은 스타킹 구멍 안 나도록 조심하기 20대: ‘(×)능력과 상관없는 개인 문제’ ‘(△)스타킹 구멍은 불가항력이지만, 코털은 불가항력이 아니죠?’ 30대: ‘(×)악취, 청결만 신경 쓰면 된다’ ‘(△)개미 다리처럼 삐져나온 코털은 남녀노소 인종불문 싫다’ 40대: ‘(×)사원끼리 오래 쳐다볼 일도 없을 텐데’ ‘(○)김칫국물 묻은 옷 입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50대: ‘(○)자신에 대한 책임’ ‘(○)비즈니스 매너의 기본은 용모 단정, 의관 정제’2. 인사도 월급에 포함, 출퇴근할 때 상사에게 인사하자 20대: ‘(×)이러는 후배, ‘오버’스러워 놀랐다’ ‘(×)인사를 하고 싶도록 유대를 쌓자’ 30대: ‘(×)구시대 유물’ ‘(△)동료에게도 인사는 매너’ 40대: ‘(△)눈이 마주치거나 동선 겹치면’ ‘(○)누구든 먼저 본 사람이 인사하자’ 50대: ‘(○)인사는 동서고금의 매너’ ‘(○)상사에게 인사는 좋은 습관’3. 승용차에서 손님이나 선배를 상석에 앉게 하는 게 예의 20대: ‘(×)그래도 꼰대들과 택시 타면 네이버로 검색은 해본다’ ‘(○)상석이 따로 있긴 하다고 들었다’ 30대: ‘(×)먼저 앉는 순으로 간다’ ‘(○)서로 지키는 게 편하다’ 40대: ‘(○)별 차이 없으니 따지는 사람에게 양보’ ‘(○)식당처럼 차도 마찬가지’ 50대: ‘(○)내가 불편하면 지켜야’ ‘(○)승하차 편의를 위함이므로 경로 우대 차원’4. 벨소리 3번 이상 울리기 전에 전화받기 20대: ‘(×)별 신경 안 씀’ ‘(○)안 받으면 시끄럽다’ 30대: ‘(×)전형적 군대식 문화’ ‘(×)누가 벨소리를 세지…’ 40대: ‘(○)선배든 후배든 먼저 신경 쓰면 배려’ ‘(○)늦게 받으면 회사 이미지에 안 좋음’ 50대: ‘(×)늦게 받아도 업무규정 맞춰 응대하면 그만’ ‘(○)공동 공간에서는 진동이 매너’5. 오후 5시 59분 컴퓨터를 끄면 퇴근만 기다린 것 같은 인상. 마땅히 업무 없어도 늦은 오후 상사에게 할 일을 확인하자 20대: ‘(×)주는 만큼 일하자’ ‘(×)일 잘하는 놈에게 일 더 준다. 퇴근만 기다린 인상이라면 정확히 본 것’ 30대: ‘(×)업무 지시 원활히 하면 될 문제’ ‘(△)꼰대 의식 가진 1960, 70년대생이 많으면 생활의 지혜. 1980, 90년대생이 주를 이루는 스타트업에서는 불필요’ 40대: ‘(○)상사도 후배에게 도와줄 일을 물어보자’ ‘(×)할 일 있다면 이야기했겠지’ 50대: ‘(×)일은 스스로 하는 것’ ‘(×)분위기 보면 안다. 그렇다고 59분에 딱 맞춰 끄는 건 좀…’6. 책상은 제2의 얼굴. 2, 3일에 한 번 책상 닦기, 쓰레기는 눈에 보이는 대로 치우기 20대: ‘(×)남의 책상까지 간섭하는 건 피곤한 삶’ ‘(×)백색소음처럼 좀 더러워야 집중되는 사람도 있음’ 30대: ‘(×)개인 책상은 마음대로 쓸 권리 있다’ ‘(△)악취 해충 등 없으면 상관없음’ 40대: ‘(×)누군가는 정글에서 창의력을 끌어냄’ ‘(○)청결한 게 좋은 것은 당연’ 50대: ‘(×)개인의 스타일 인정해줘야’ ‘(○)사무 공간은 공동의 공간’7. 악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여성이 남성에게, 기혼자가 미혼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청하는 것 20대: ‘(×)듣도 보도 못한 매너’ ‘(×)위계질서 파악하려고 머리 굴리면 인생 낭비’ 30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게’ ‘(×)남녀가 무슨 상관. 악수가 화살표도 아니고’ 40대: ‘(×)만나서 반갑거나 헤어져서 아쉬운 사람이 먼저 청함’ ‘(△)격식은 맞지만 누가 먼저 건네도 좋다’ 50대: ‘(×)악수하는 의미가 중요’ ‘(×)위계를 따질 문제는 아님’8. 같은 말이라도 ‘쿠션 화법’ 등 활용해 완곡하게 의사 전달하는 게 배려 20대: ‘(×)쿠션어 없이 말하면 성질내는 줄 아는 꼰대 있다면 완곡한 의사 전달도 방법이나 과도함’ ‘(△)당장 듣기엔 좋을 수 있어도 경제적인 언어는 아니다’ 30대: ‘(△)상황과 내용, 상대에 따라 달라’ ‘(○)감정을 고려해야 효율적 소통’ 40대: ‘(△)맞는 말이나 아무리 써도 못 알아들으면 ‘직구’가 답’ ‘(△)상황에 따르면 됨’ 50대: ‘(△)명확한 의사 전달 생각하면 때론 불필요’ ‘(○)직장 내 갑질 근절 차원에서’9. 카카오톡은 근무시간 외 사전 양해 없이는 쓰지 않는다. 20대: ‘(△)급한 건 어쩔 수 없지만 답은 늦을 수 있음’ ‘(○)점심 시간에도 되도록 연락하지 않았으면’ 30대: ‘(○)퇴근 후 카톡은 인간적 기대 저버리는 것’ ‘(△)별도 사내 규정 없는 한 지양해야’ 40대: ‘(○)백번 지당한 소리’ ‘(△)업무용으로 불가피한 경우 있다’ 50대: ‘(△)전화가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업무 관계라면 충분히 사용 가능’10. 호칭은 상대 나이보다 직함에 맞추는 게 좋다. 20대: ‘(△)그렇게 서열이 좋다면 군대에 다시 가자’ ‘(○)나이는 나이일 뿐, 직급 우선’ 30대: ‘(○)일로 만난 사이니까’ ‘(×)직함 외우느라 머리만 더 터진다’ 40대: ‘(○)회사는 일하려고 모인 곳’ ‘(△)사내에선 직함, 사적 자리에선 합의에 따라’ 50대: ‘(○)업무 효율성 및 책임감을 위해’ ‘(○)회사는 나이보다 역할이 중요’ ▼ “평화로운 직장생활 위한 20.5세기의 소통 가이드” ▼ 저자 신혜련 대표‘20세기 회사 예절, 21세기 사원 매너’ 저자인 신혜련 아이비전컨설팅 대표(41·사진)는 “평화로운 직장생활을 위해 책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삼성에버랜드로 시작해 신세계, CJ 등에서 사원 교육 기획을 했다. 신 대표는 “여전히 많은 회사가 20세기형 예절을 중시한다”며 “조직 전체로 보면 ‘20.5세기’에 살고 있어 소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일부 항목이 개성을 과하게 제한한다는 지적은 인정하면서도 ‘필요악’으로 봐 달라고 했다. “20세기 문화가 바뀌는 데 20년은 걸릴 거예요. 1980, 90년대 출생자들이 관리자급이 돼야 할 것이기에 어느 정도 기성세대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면서 “상사도 ‘버릇없다’고 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애정을 갖고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통을 위해 에너지를 투자하는 건 조직 간 비효율 해소를 위한 관리자의 업무죠. 그런데 조직문화 강의를 다녀 봐도 관리자들은 교육에 참여하지 않아요. 상대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나 때는 말이야’ 하면 당연히 대화가 안 되죠. 세대 간 차이를 인정해야 창의적인 문화도 생깁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올 2월 말∼3월 초 확진자가 대량 발생해 의료진과 시민 모두 악전고투한 끝에 안정세를 이뤄낸 대구에서 코로나19를 주제로 기획전이 열린다. 코로나19로 2월 19일 휴관한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은 16일부터 재개관 첫 전시로 ‘새로운 연대’전을 선보인다. 개인 일상은 물론 인간의 존엄, 사회적 연대에 관한 문제까지 제기한 코로나19 사태를 돌아보고 개인과 공동체적 삶의 연대와 의미를 조명하는 전시다. 참여 작가 12명은 주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화가, 사진작가 등이다. 장용근은 코로나19 거점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의 이모저모를 사진에 담았다. 오정향은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은 작품을 내놨다. 권세진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교실 풍경을 먹으로 표현했다. 최근 온라인 수업으로 텅 빈 교실과 대비되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번 전시와 연계한 ‘희망 드로잉 프로젝트’도 열린다. 지역 작가들이 대구 시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드로잉과 영상을 릴레이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작가와의 대화, 강연 등은 다음 달부터 진행된다.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회차(2시간)당 50명으로 관람 인원을 제한한다. 하루 200명까지 관람 예약을 할 수 있다. 예약은 인터파크에서 신청하면 된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무당의 주문 외우는 소리는 찢어지는 고음으로 올라갔다 다시 졸린 듯 낮은 소리로 변해 후렴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 무당의 춤과 호곡(號哭)은 저 오래된 태곳적의 기이한 느낌을 인간의 의식 속으로 불러들이는 소환의 주문이었다.” 1919년 어느 봄날 서울의 낡은 성곽 밖, 계곡을 낀 언덕의 신당(神堂)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벽안(碧眼)의 자매가 지켜보고 있었다. 1946년 출간된 이 책은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출신인 두 자매 앞에 펼쳐진 일제강점기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동아시아의 국가들 모습을 목판화에 담았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와 1915년부터 남편과 일본 도쿄에서 출판사를 했던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이 주인공이다.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 석 달간 한국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것을 키스가 그렸고 스콧이 썼다. 서문에서부터 제국주의적 시선을 거두고 낯선 문화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이방인의 따스한 시각이 묻어난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그곳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 … 서울에 있는 동안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학생, 어른 등 여러 한국 사람이 투옥되고 고문당하는 등 온갖 처참한 대우를 받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고대 성직자처럼 가슴속에 불이 활활 타들어 가는 듯했다.”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던 때에 한국을 찾은 이들은 미국인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다. 일본에서 듣던 일본 중심적인 한국, 한국인 이야기가 정작 와서 듣고 보니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3·1만세운동은 놀라운 발상이었고, 영웅적인 거사였다. 빈손으로 독립을 촉구한 사람들은 보복이 얼마나 심할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서울에서만 20만 명이 길거리를 메웠고, 한반도 곳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비폭력적 저항을 했다.” 당시 한국인의 각종 풍습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묘사한다.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표정은 어떠하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등이 펼쳐진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며 동양 고전을 이야기하는 두 노인, 엄청난 양의 빨랫감을 들고 냇가에서 빨래하고 다듬이질하는 여인들의 고충 등이 눈앞에 생생하다. “동아시아 어디든 같겠지만, 아무 데서나 침을 뱉는 습관은 문제”라는 솔직한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삽화로 함께 곁들여진 키스의 그림은 시각적 재미를 더한다. 굿하는 무당의 모습이나 사당 풍경 같은 토속신앙을 묘사한 그림은 흔하지 않아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키스는 ‘독립청원서’를 조선 총독에게 제출했다 2년 형을 살고 출옥한 운양 김윤식의 초상화도 남겼다. 그 한 달여 뒤 김윤식은 숨졌다. 이 책을 옮긴 송영달은 키스의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해 왔다.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대의 정치학, 행정학 교수였던 그는 우연히 한 고서점에서 키스의 책과 작품을 발견하고 2006년 이를 한국어로 번역해 책으로 펴냈다. 이 초판본에는 키스의 그림 66점이 실렸는데 이번 ‘완전 복원판’에는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85점을 모두 소개했다. 송 교수는 2007년 키스의 조카 집에서 발견한 무명의 연도 미상 초상화가 이순신 장군의 것이라고 추정한다. 검증이 필요하지만 맞는다면 충무공 초상화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국내 학계에서는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의 초상화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세계적인 예술가 뱅크시가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와 관련한 새로운 작품을 공개하며 연일 동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뱅크시는 9일(현지 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드로잉 한 점을 공개했다. 앞서 7일 영국 브리스틀에서 17세기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시민들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그러면서 뱅크시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콜스턴의 동상을 그리워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를 위한 아이디어가 있다. 먼저 (호수에 던져진) 콜스턴 동상을 끌어올려 단상에 세우고 그 목에 밧줄을 건다. 그 옆에 동상을 끌어내렸던 시민들의 동상을 실물 크기로 제작해 세우자. 모두가 만족하고 역사적인 사건도 기념할 수 있는 해법이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름 없는 예술가’ 뱅크시는 브리스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그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경매에서 약 15억 원에 낙찰된 직후 저절로 파쇄돼 화제가 됐다. 뱅크시는 이 작품 액자 뒤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며 ‘파괴하려는 욕망도 창조적 욕망에 해당한다’는 피카소 발언을 올렸다. 뱅크시는 앞서 7일에도 인스타그램에 BLM 집회에 화답하는 그림을 올렸다. 숨진 조지 플로이드 씨를 연상시키는 영정 사진 앞에 꽃과 타오르는 양초가 있고, 촛불 위로 걸린 성조기 귀퉁이에 불이 붙어 있다. 뱅크시는 ‘인종차별은 백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처음엔 나도 백인이기에 조용히 흑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들이 아닌 백인의 잘못이다. 유색인이 백인의 시스템에 고통 받고 있다. 잘못된 시스템을 만든 것은 백인 잘못이다. 이를 고치는 일에 백인도 나서야 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영남은 대작(代作) 화가의 그림을 직접 그린 것처럼 속여 고액으로 판매했다.” (노정환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조영남의 그림은 그의 저작물이며 조수 사용을 밝혀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강애리 변호인)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사기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가수 조영남의 상고심 공개 변론이 열렸다. 조영남은 1심 유죄, 2심 무죄였다. 검찰 측과 변호인은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인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 같은 미술계의 흥미로운 주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날 법정에서 오간 주요 쟁점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차를 살펴봤다.》○ 조수냐, 대작 화가냐 “피고인(조영남)은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반면 (그림을 그린) 송모 씨 등은 전업 화가로 지식과 기술을 더 갖췄기에 대작 화가다.” 이날 검찰은 송 씨 등이 조영남의 조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대를 졸업하거나 전업 화가인 이들에게 전공자가 아닌 조영남이 지시나 감독을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변호인은 “송 씨 등은 지시를 벗어나거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며 이들은 조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조영남이 콘셉트를 구상하고 지시했으므로 작품은 그의 단독 저작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 양측의 주장은 예술작품에 대한 한국사회의 엇갈린 시각을 반영한다. 검찰은 밀레와 반 고흐의 작품 사진을 나란히 보이며 “회화는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탄생하므로 직접 그리는지가 중요하다”란 논리를 폈다. 참고인으로 나온 화가 신제남도 “조영남은 본업이 가수이며 그림은 아마추어 수준”이라면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을 묻는 대법관에게 이렇게 답했다. “전공, 전시 경력, 협회 가입 여부 등의 근거가 있어야 프로다. 그것이 부족하면 아마추어다.” 검찰 측 주장은 ‘그림은 손으로 그려야 한다’란 인식에 기반을 둔다. ‘손기술’이 중요하다고 보기에 전문 교육을 받았는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해야 예술가가 된다’는 논리는 유독 한국에서 강한 편견이라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1000억 원대에 작품이 거래되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도 비(非)전공자이며 백남준(1932∼2006)도 미술이 아닌 미학과 음악사를 전공했다. 변호인은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의 창작성은 손이 아닌 작가의 인식과 철학에 존재한다”며 “조영남은 작품의 본질이 칠하는 행위가 아닌 사상에 있다는 생각에 조수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활발한 논의로 간극 좁혀야” 변호인은 “이 사건이 유죄라면 데이미언 허스트도 국내에선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작가인 허스트는 작품 제작을 공장에 맡긴다고 알려져 있지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예술에 대한 인식 차이가 송사(訟事)로 번진 일은 외국에서도 있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화가 휘슬러와 평론가 존 러스킨이 명예훼손 소송을 벌였다. 러스킨의 변호인은 “이틀 만에 그린 그림에 200기니(옛 영국 화폐단위)나 받는 게 공정하느냐”고 휘슬러를 비난했다. 당시 아카데미 화가들은 수개월간 역사화 한 편을 그리곤 했다. 휘슬러는 “손으로 그린 시간이 아닌 일생에 거쳐 깨달은 지식의 가치에 매긴 값”이라고 응수했다. 휘슬러는 승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현대미술의 개념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가서 간극이 좁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원 선고는 25일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영남은 대작(代作)화가의 그림을 직접 그린 것처럼 속여 고액으로 판매했다.”(노정환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조영남 그림은 그의 저작물이며 조수 사용을 밝혀야 할 법적 의무도 없다.”(강애리 변호사)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사기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가수 조영남의 상고심 공개 변론이 열렸다. 조영남은 1심 유죄, 2심 무죄였다. 검찰 측과 변호인은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인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 같은 미술계의 흥미로운 주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날 법정에서 오간 주요 쟁점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차를 살펴봤다.● 조수냐, 대작화가냐“피고인(조영남)은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반면, (그림을 그린) 송모 씨 등은 전업 화가로 지식과 기술을 더 갖췄기에 대작화가다.” 이날 검찰은 송 씨 등이 조영남의 조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대를 졸업하거나 전업 화가인 이들에게 전공자가 아닌 조영남이 지시나 감독을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변호인은 “송 씨 등은 지시를 벗어나거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며 이들은 조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조영남이 컨셉트를 구상하고 지시했으므로 작품은 그의 단독 저작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양측의 주장은 예술작품에 대한 한국사회의 엇갈린 시각을 반영한다. 검찰은 밀레와 반 고흐의 작품 사진을 나란히 보이며 “회화는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탄생하므로 직접 그리는지가 중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참고인으로 나온 화가 신제남도 “조영남은 본업이 가수이며 그림은 아마추어 수준”이라면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을 묻는 대법관에게 이렇게 답했다. “전공, 전시 경력, 협회 가입 여부 등의 근거가 있어야 프로다. 그것이 부족하면 아마추어다.” 검찰 측 주장은 ‘그림은 손으로 그려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손기술’이 중요하다고 보기에 전문 교육을 받았는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해야 예술가가 된다’는 논리는 유독 한국에서 강한 편견이라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1000억 원대에 작품이 거래되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도 비(非)전공자이며 백남준(1932~2006)도 미술이 아닌 미학과 음악사를 전공했다. 변호인은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의 창작성은 손이 아닌 작가의 인식과 철학에 존재한다”며 “조영남은 작품의 본질이 칠하는 행위가 아닌 사상에 있다는 생각에 조수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활발한 논의로 간극 좁혀야”변호인은 “이 사건이 유죄라면 데미안 허스트도 국내에선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작가 허스트는 작품 제작을 공장에 맡긴다고 알려져 있지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예술에 대한 인식 차이가 송사(訟事)로 번진 일은 외국에서도 있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화가 휘슬러와 평론가 존 러스킨이 명예훼손 소송을 벌였다. 러스킨의 변호인은 “이틀 만에 그린 그림에 200기니(옛 영국 화폐단위)나 받는 게 공정하느냐”고 휘슬러를 비난했다. 당시 아카데미 화가들은 수개월간 역사화 한 편을 그리곤 했다. 휘슬러는 “손으로 그린 시간이 아닌 일생에 거쳐 깨달은 지식의 가치에 매긴 값”이라고 응수했다. 휘슬러는 승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현대미술의 개념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가서 간극이 좁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원 선고는 25일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모든 분야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 추이에 따라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미술관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국경을 넘어야 하는 국제 기획전은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시아 8개국(한국,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필리핀, 홍콩, 말레이시아, 중국) 출신 작가 15개 팀이 참가한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전은 한때 무산 위기도 겪었지만 ‘랜선 큐레이팅’과 ‘온라인 개막식’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지난달 22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했다. ‘또 다른…’전은 2017년 시작한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다. 세대나 사회·경제적 계급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장으로서 미술관을 제시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당초 개막일은 4월 3일이었지만, 작품 배송과 설치가 이뤄져야 할 3월 모든 일정이 중단됐다. 전시를 기획한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처음엔 일주일 뒤면 다시 진행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개막일이 네 차례 변경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중국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작품 운송도 어려워졌다. 배송료가 당초 예산의 3배로 불어나 ‘플랜B’를 찾아야 했다. “‘작가와 작품이 오지 못하면 전시를 할 수 없는가’라는 고민 끝에, 작품 제작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작가의 구체적 방향 제시에 따라 한국에서 작품을 구현하는 식이었다.” 이를 위해 화상 카메라와 마이크로 소통하는 ‘랜선 큐레이팅’을 도입했다. 영상 작품의 경우 온라인으로 데이터를 받아 매뉴얼대로 전시장에 설치했다. 다만 회화 작품은 전시장에 걸지 못했다. 3월 작가와 전시팀이 모여 갖기로 했던 토론회도 온라인으로 열었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코로나19 상황도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필리핀 작가는 “3주 동안 이동이 금지되어 갖고 있던 음식을 소분해서 먹었다”고 했고, 인도네시아 작가는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접촉 없이 음식을 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한 작가들을 위해 온라인 화상회의 형태의 개막식도 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으로 전시는 다시 문을 닫은 상태. 전시팀은 전시장을 가상현실(VR)로 보여주기 위해 3차원(3D) 스캐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계 프로그램도 대체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박 학예사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 모두가 고립되고 불안하지만 함께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지지를 보냈다”며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 간의 신뢰와 연대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스로의 모습을 낯설게 본 ‘자화상’을 그려 온 정의철 작가(42)가 ‘다르게 보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물을 서울 서초구 갤러리쿱에서 5일 개막한 ‘연상록 정의철 2인전’에서 볼 수 있다. 정 작가는 아세테이트지판 위에 그림을 그린 뒤, 굳은 물감 덩어리를 통째로 떼어내 뒤집어서 패널에 붙이는 기법을 활용한다. 물감 덩어리의 속살이 결과물로, 형태를 먼저 그린 뒤 배경을 칠했다. 이전까지는 거울 속 낯선 자신의 모습을 주로 표현했는데 이번엔 작업실과 집을 오가며 만난 풍경을 담았다. 그는 “10여 년 동안 그려온 자화상을 벗어나 대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려 시도했고, 전시장의 작품들은 그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남과 다른 표현을 하기 위해 고유한 내 몸의 감각이 중요했다”며 “풍경을 보더라도 사진을 남기지 않고 몸이 느낀 감각을 통해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연상록 작가(51)는 충남 금산군 적벽강 근처의 작업실에서 본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은 ‘고개 넘어 가는 길’ 시리즈 등을 선보인다. 흑백 톤의 질감을 살린 그림이나 풍경을 단순화한 추상화가 주를 이룬다. 전시는 1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팬데믹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서울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가 국립현대미술관(MMCA)을 찾았다. MMCA는 월드투어 팀과 협업해 만든 온라인 공연 ‘MMCA 라이브 × 오페라의 유령’을 12일 오후 4시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MMCA 라이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마련한 온라인 공연 시리즈다. 온라인 공연은 MMCA 서울관을 배경으로 주연 배우 3명이 대표곡을 선보이는 무대와 비하인드 영상으로 약 30분간 구성된다. 클레어 라이언(크리스틴 역)의 ‘다시 돌아와 주신다면’, 라이언과 맷 레이시(라울 역)의 듀엣곡 ‘바람은 그것뿐’, 조너선 록스머스(유령 역)의 ‘밤의 노래’ 등이다. 음악감독 데이비드 앤드루스 로저스의 피아노 연주 영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7년 만에 내한한 ‘오페라의 유령’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월드투어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국내 공연도 4월 연기자가 의심 증상을 보여 한때 중단됐지만, 재개된 후 주 8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 반복적 방역 작업으로 한국에서 안전한 뮤지컬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수십 년 동안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편견과 불평등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 일상에서 두려움 없이 경찰을 마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졸업하는 고등학생들에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언급하며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한국 시간으로 8일 오전 유튜브로 중계된 가상 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Dear Class of 2020)’을 통해서다. ‘디어 클래스 오브 2020’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유튜브가 주최한 온라인 졸업식이다. 오바마 부부 외에도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비욘세, 레이디 가가 등이 참여했다. 이 중 다수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언급하며 젊은이들의 참여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가가는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2주 전 써둔 원고를 새로 고쳐 썼다”며 “여러분은 미국이 진화하고 사회가 변화하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목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미국의 인종차별은 오래된 나무로 가득한 숲과 같다”며 “이 숲을 벗어나 새로운 숲을 만들어 낼 변화의 씨앗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사로 초청된 방탄소년단(BTS)은 12분 동안 축사를 했다. 리더 RM은 “저희에게 많은 것을 이뤘다고 하지만 저희는 여느 또래와 마찬가지로 학사모를 벗지 못한 채 날것의 세상과 마주하는, 아직도 서툰 20대”라고 했다. 이어 “우리도 중요한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면서 혼란을 겪었고 그 불안과 상실감은 아직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음악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는 팝스타들과 함께 졸업식의 ‘애프터 파티’ 격인 온라인 공연을 마련했고, BTS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셜미디어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이고 있다. 먼 한국 땅에서도 암울한 미국의 분위기가 물리적 거리와 시차를 넘어 고스란히 전달된다. 타인의 고통에 침묵하지 않고 동조하며 이를 알리는 시민들의 존재가 미국을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며 소신껏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 말이다. 저자는 ‘레드넥(redneck·미국 남부의 빈곤한 백인 농민, 노동자를 비하하는 말)’의 딸이다. 캔자스의 시골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균등한 기회’ ‘낙수효과’ 등으로 일컬어지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자신의 삶으로 고발한다. 그의 주변인들은 10대에 임신하고, 뼈 빠지게 일하며, 의료보험 없이 신이 부르면 죽음을 맞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의 중심에서 동떨어져, 일할수록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삶이다. 주어진 대로 살았더라면 자신도 10대에 낳게 됐을 가상의 아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책은 전개된다. 이 책을 ‘백인 빈곤 여성’의 범주로 한정시키는 것은 또 다른 인종주의로 느껴진다. 이러한 분류를 넘어 차별과 배제의 시스템을 고발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고 싶다. ‘흑인의 삶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집회에 흑인만 참가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인종을 넘어 소외된 모든 이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한 것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깊게 팬 주름과 소나무 껍질처럼 메마른 피부. 슬픔에 탄식하거나 때로 통곡하는 듯한 표정. K팝과 K뷰티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깊은 곳엔 이 얼굴들이 자리한다고 그림은 말한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권순철 화백(76)의 작품 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정체성은 동시대(컨템퍼러리) 미술에서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짐바브웨의 코끼리 똥으로 작품을 만든 크리스 오필리는 1998년 영국 저명 현대미술상인 터너상(賞)을 받았다.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75)는 나치와 전쟁의 역사를 직시한 작품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는 미국의 인종주의를 고발한 아서 자파(59)에게 황금사자상을 주며 ‘흑인의 삶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예견했다. 국제 미술계를 주도하는 미술관들은 유럽 백인 중심의 미술사를 반성하고 지역 미술사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때 ‘우리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맹목적인 국가주의나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사대주의의 이분법에 빠지고 말았다. 세계적 보편성을 바탕에 둔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소수의 영역이었다. 권순철은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1960년대부터 수십 년간 한국인의 얼굴과 넋, 산을 그리며 원형(原型)을 찾아갔다. 병원 기차역 시장 같은 길거리 스케치로 시작한 얼굴에 6·25전쟁, 4·19혁명 등의 역사가 얽혔다. 그림 속 얼굴은 ‘불쌍한 이웃’이 아니라 고된 역사를 겪어낸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1일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일제강점기부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얼굴에는 숭고함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서울의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가면 지방에서 자식들 보러 상경한 촌로들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도 땅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초연한 얼굴엔 압도적 기운이 있다. 이 얼굴의 겉모습뿐 아니라 정신까지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순철의 ‘얼굴’은 한국인의 고통 기쁨 울분 즐거움,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보편적 인류의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권순철 화백::▽1944년 경남 창원 출생▽1984년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1989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2003년 프랑스 트루아 현대미술관 개인전▽2006년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미술관‘경계선: 소나무협회 그룹전’▽2016년 대구미술관 개인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40년 동안 뉴욕현대미술관(MoMA)는 특정한 미술사의 내러티브(영미권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와 연결지어 생각됐다. 모마는 그러한 주입식 미술사를 버리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 작품을 더 연구하고 전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정해진 미술사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술사의 장이 될 것이다.” 지난해 글렌 로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장은 ‘새로운 모마’에 대해 전 세계를 돌며 설파했다. 위의 발언은 한국을 찾았던 지난해 4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로리 관장의 말처럼 국제 미술계는 유럽·미국 중심 미술사의 오류를 인정하고, 지역 미술사를 다시 보는 중이다. 동시대 미술에서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자 중요한 화두가 바로 ‘정체성’ 문제다.국내 문화계에서도 한 때 ‘한국적인 것을 찾자’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국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국가주의나, 이를 외면하는 사대주의의 이분법으로 빠지고 말았다. 세계적 보편성을 바탕에 둔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소수의 영역이었다. 권순철 작가(76)는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한국의 원형(原型)을 찾고자 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한국인의 얼굴과 넋, 산을 통해서다. 권 화백을 1일 경기 양주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1989년 이후 프랑스에 정착해 한국을 오가던 그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길거리 스케치로 시작된 얼굴 찾기 권 화백이 서울대 회화과를 다니던 1960년대 말~1970년대 무렵, 예술가들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나 파리의 앙포르멜 등 추상미술에 몰두했다. 그 또한 “추상 미술을 그리다가 머리가 아프면 길거리로 나가 스케치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서울대 문리대가 있을 무렵이었다. 권 화백은 서울대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한국 전역의 중환자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성’에 대한 문화계의 고민에 권 작가도 영향을 받았다. 미술학원에 가면 줄리앙이나 비너스 석고상을 그리는 관습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국전에 출품된 작품에도 인물은 서양인 닮은꼴 이었다. 서양 미술을 받아들이면서 실종된 ‘한국적인 얼굴’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권 화백은 하게 됐다. 이후 서울대병원은 물론 서울역, 동대문시장 등 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86년 개인전 서문에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스케치북과 한 두 권의 책을 그것도 겨울에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들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챈 행인에게 스케치북을 빼앗길 뻔 한 적도 있었다. 권순철의 ‘얼굴 탐구’는 단순한 겉모습 수집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한국인의 골상을 연구하기 위해 해부학적 자료를 찾는가 하면, 석사 논문으로 ‘한국 미술에 나타난 얼굴 형태에 관한 고찰’(1971)도 썼다.● 시대와 정신을 담은 얼굴그의 ‘얼굴’ 작품을 가까이서 보면 산맥처럼 겹겹이 쌓인 물감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색채와 질감이 마치 추상 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캔버스 위에 떠 있는 듯한 얼굴이 보인다. 해부학적 뼈대에서 출발해 그림의 논리를 고려하며 쌓아 올린 작품이기에 가능한 효과다. 이런 작업 방식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정신’을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1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일제시대나 한국 전쟁, 4·19 혁명 같은 굴곡진 역사가 담긴 얼굴이 한국적이라 생각했고, 그림 속의 얼굴에도 역사를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림에 정신성을 담고자 하는 표현 방식은 폴 세잔(1839~1906)의 영향이다. 세잔은 기존의 조형 언어를 벗어나 원근법을 파괴하고, 개인이 보는 방식의 산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세잔을 모르면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한다. 권순철은 세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칼 융이 말하는 ‘집단 무의식’을 개개인의 몸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또 앞서 인체를 그렸던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이나 에곤 실레(1890~1918)와도 다르다. 두 작가의 인체는 ‘육체’에 가깝다. 폭력적으로 비틀거나(베이컨), 성적인 요소를 강조(실레)하며 시대적 상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권 화백은 오히려 수많은 얼굴과 정신을 겹쳐가며 ‘원형’(原型)을 찾고자 한다. 이런 탐구는 얼굴을 넘어 인체 작업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미술사 차용과 정체성은 현대미술의 화두 작가가 자신의 의도에 맞게 과거 미술사의 방식을 차용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최근 현대 미술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3)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조형 언어를 속속들이 탐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젊은 미술가들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등 표현주의 미술가들의 언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권순철은 세잔이 생빅투아르 산에 담은 ‘정신성’에서 영향을 받았다.또 정체성이나 시대적 상황을 감각적으로 담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1998년 영국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크리스 오필리(52)는 자신의 선조가 살았던 짐바브웨의 코끼리 똥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영국에선 쓸모없는 코끼리 똥이 짐바브웨에서는 거름은 물론 연료이자 건축 재료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테이트모던에서 회고전을 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 마를렌 뒤마(66) 또한 얼굴로 시대성을 표현한다. 그가 그린 얼굴은 주로 언론에 보도된 기사나 대중 매체에 등장한 이미지를 변형시킨 것들이다. 종이 위에 잉크의 번짐 효과를 활용한 그림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현대 사회의 조건 속에서 불안한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권순철은 시대적 상황과 역사를 물감에 담아 쌓아 올리는 방식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편성을 추구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제시대부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얼굴에는 숭고함이 있다. 과거 서울의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가면 지방에서 자식들 보러 상경한 촌로들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들 겪으면서도 땅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초연한 얼굴엔 압도적 기운이 있다. 이 얼굴에 정신까지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세계적 대지 미술가 그룹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크리스토(1935∼2020·사진)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자택에서 별세하자 미술계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토는 그의 부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잔클로드(2009년 사망)와 함께 호주 시드니 해안의 100만 제곱피트 절벽부터 프랑스 파리 퐁뇌프 다리 등을 천으로 감싸 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스타’였다. 두 사람은 평생 정부 지원금이나 후원금을 받지 않았다. 오직 상상으로 출발한 작품은 토지 소유주부터 지역 주민, 그리고 관련 부처와 협의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설치 비용은 작품의 드로잉과 작은 모델을 컬렉터와 미술관에 판매한 대금으로 충당했다. 이 시간은 짧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걸렸다. 대표작 ‘퐁뇌프 포장’(1985년)도 10여 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은 프랑스와 파리시의 협조 요청에 쓰였다. 1980년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의 허가를 받았지만, 이후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허락을 기다려야 했다. 두 정치인의 미묘한 경쟁으로 허가가 늦어지자 크리스토는 “프랑스는 여전히 미테랑이 왕인 군주국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의 ‘라이히슈타크 포장(1995년)도 수년간 서독 정부의 허가를 기다리다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야 실현됐다. 생전 크리스토는 “나의 미학은 과정에 있다”고 했다. 1979년 기획한 미국 센트럴파크의 ‘The Gates’를 2005년 실현한 뒤에는 “이 작품은 수많은 서류 작성과 협상의 지난한 과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부고 기사에서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 낸 크리스토를 “미술계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표현했다. 작업실에서 조용히 제작된 뒤 새하얀 갤러리의 벽에서 공개되는 예술의 과정이 때로는 ‘그들만의 리그’로 느껴지기도 한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이런 예술을 일상에서 가까이 마주하며 당신도 그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따스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1962년 처음 구상해 유작이 된 ‘개선문 포장’은 2021년 9월 공개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