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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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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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여름 배꼽티 행인을 봤나요…1990년대 그 시절 패션이 돌아왔다

    반투명 색안경 위에 착용한 헤어밴드와 똑딱이 머리핀. 상반신에는 홀치기염색 크롭티(배꼽티)를 걸쳐 건강미와 활동성을 드러냈다. 한 손엔 형광색 파워숄더(어깨가 각진) 재킷을 들고 하의는 펑퍼짐한 배기팬츠(힙합 바지) 차림. 금방이라도 무리 지어 힙합 댄스를 출 듯하다. 1990년대 여성그룹 ‘디바’를 다시 본 이야기가 아니다. 제니, 설현, 선미, 현아 같은 아이돌 가수들의 요즘 공항 패션이나 화보 속 옷차림이다. 래퍼 비와이는 얇은 빨간 띠 로고가 선명한 벙거지 모자를 썼다. 1990년대 패션이 돌아왔다. 유별난 소수의 극한 ‘뉴트로(새 복고)’ 체험이 아니다. 올 여름 배꼽티를 입은 젊은 행인들에게서 20여 년 전의 환영을 봤다면 그것은 환영이 아닌 실제다. 시내 곳곳에선 요즘 1990년대 패션 파티도 열린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1990년대생 벨라 하디드, 켄덜 제너 같은 유명 모델이 약속한 듯 1990년대 스타일을 뽐내는 화보가 넘실댄다. 그 시절 그 패션은 어떻게, 왜 슬그머니 우리 곁에 다시 왔나.●‘내 파티에 이승연, 문희준이?’김혜영 씨(36)는 최근 출산을 앞두고 지인 15명을 초대한 베이비샤워 파티, ‘83년생 김혜영’을 열었다. 드레스코드는 ‘90년대 스타일’. 초청받은 참가자들은 행사 2주 전부터 분주해졌다. 서울 종로구 동묘와 광장시장부터 온라인 쇼핑몰까지 뒤지고 돌아다녔다. 눈길을 사로잡을 ‘그 시절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당일 파티 현장에는 어두운 색 립 라이너로 빈틈없이 입술을 채우고 베레모를 쓴 배우 이승연, 힙합 바지에 헤어피스를 단 가수 문희준이 등장했다. 물론 연예인 본인이 아니다. 1990년대의 그들을 흉내 낸 참가자들. ‘모조 이승연’은 1990년대 TV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진행 당시의 스타일을 감쪽같이 재현했다. 당대의 통신기기 삐삐부터 록 그룹 ‘Y2K’의 사인 CD, 루즈삭스, 헤어피스, 크롭티, 배기팬츠, 플라스틱 헤어핀과 베레모(빵모자)까지…. 이른바 세기말 감성이 폭발했다. 여성그룹 ‘샤크라’의 패션 콘셉트로 꾸며 파티에 참가한 박지훈 씨(33)는 “1990년대에 초중학생이었는데 당시에는 구매력이 없어서 해보지 못했던 루즈삭스 같은 것들을 이번에 직접 체험하니 즐거웠다. 이정현 같은 1990년대 가수를 보면 분장과 무대가 굉장히 파격적이다. 평소 무채색 옷만 입다 세기말 감성으로 꾸미니 자유로워진 느낌이다”고 말했다.●Z세대 울린 X세대 감성 “캘빈 (클라인)과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알아요? 아무 것도 없어요.” 1981년 배우 브룩 쉴즈가 모델로 등장한 캘빈 클라인 의류 광고 문구다. 당시 15세이던 쉴즈가 이 문구에 맞춰 도발적 포즈를 취했는데 논란과 함께 여성성과 섹시함을 강조한 캘빈 클라인의 인기도 반등했다. 38년 뒤, 캘빈 클라인의 새 모델인 17세 가수 빌리 아일리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펑퍼짐한 옷을 입지. 아무도 그 속을 모르니까 몸매 품평을 못하잖아. 난 내 캘빈 속에서 진실을 말해.” 근 40년 차의 두 광고는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내면은 판이하다. 전자가 사회가 만든 전형적 여성상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개성과 다양성을 내세운다. 19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와 보수적 분위기를 1990년대 X세대가 자유와 개성으로 탈피하려 한 움직임이 패션에 남아 Z세대에 울림을 주는 형국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1990년대 TV 뉴스 화면 속에서 배꼽티를 입은 여성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친숙함과 과감함 사이 1990년대 패션 붐은 업데이트나 재해석이 아닌 동일 재현으로 가고 있다. 패션 회사들도 적극적이다. 프라다는 얇고 붉은 띠 모양 로고인 리네아 로사를 부활시키고 당시 유행한 나일론 백팩을 그 모습 그대로 재출시했다. 토미 힐피거도 1990년대의 로고 장식을 다시 사용한다. 과장된 색채 등 맥시멀리즘의 이면에 담백한 미니멀리즘이 공존한 것도 1990년대 패션의 강점으로 꼽힌다. 진정아 더블유 매거진 디지털 에디터는 “(고 존 F. 케네디 2세의 부인) 캐롤린 베셋 케네디, 모델 케이트 모스가 1990년대에 보여준 정제되고 담백한 스타일이 현재 스타일리시하게 받아들여진다. 첨단 경향을 과하게 좇는 것을 촌스럽게 생각하는 20, 30대에게 1990년대 문화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친숙함이 있다. 1960~80년대 패션에 비해 동시대와 접점이 많고 실용적이란 점도 90년대 패션의 매력이다”고 했다. ▼ 시트콤 ‘프렌즈’ 재공개 후 90년대 패션까지 화제 ▼ “‘프렌즈’ 의상 담당자님 제 의상도 평생 맡아주시면 안될까요?” 90년대 패션 붐은 시트콤 ‘프렌즈’로도 불어오고 있다. 넷플릭스가 ‘프렌즈’를 지난해 다시 공개하자 영미권 국가는 물론 국내 소셜 미디어에서도 ‘프렌즈 패션’이 화제다. 여성 캐릭터인 레이첼, 모니카, 피비의 패션에서 각자 개성이 잘 드러나, 이들의 옷만 캡쳐한 이미지도 전 세계로 공유된다. 제니퍼 애니스톤이 연기한 레이첼 그린은 당시에도 패션 아이콘이었다. 풍성한 볼륨에 레이어드를 준 어깨 길이의 머리는 ‘레이첼 스타일’이라는 고유 명사가 됐다. 데님의 다양한 활용, 영화 ‘클루리스’식 체크무늬, 짧은 셔츠 끝단을 질끈 동여맨 스타일이 ‘레이첼표’ 패션이다. 보헤미안(집시)의 의상을 멋지게 재해석했다는 의미의 ‘보호 시크’라면 단연 피비 부페이(리사 쿠드로)다. 시트콤 속에서 ‘4차원’ 캐릭터로 등장한 그녀는 사이즈가 큰 꽃무늬 원피스나 갈색 계열의 스웨이드를 즐겨 입었다. 화려한 색감으로 자유분방함을 연출한 것도 특징이다. 당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모니카 갤러거(코트니 콕스)의 패션이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유명 글로벌 패션 브랜드 쇼핑몰인 ‘네타포르테’는 여름 트렌드로 모니카의 패션을 선보였다. DKNY를 연상케 하는 하이웨이스트 진이나 더블브레스트 재킷에 검은 쇼트커트 헤어까지. 단정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그녀의 패션이 90년대 ‘놈 코어’(평범함의 극치) 패션 아이콘이라면서 말이다. ‘그 시절 패션’을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 밀레니얼 세대의 열광 덕분일까? 넷플릭스는 지난해 ‘프렌즈’ 방영권을 올해 말까지 1년 연장하며 무려 1억 달러(약 1194억 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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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등 연휴 공짜관람 ‘쏠쏠’

    추석 연휴에 그간 미뤄뒀던 전시를 무료로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덕수궁, 과천, 서울 등 3관을 연휴 동안 무료로 개방한다. 청주관은 상시 무료. MMCA 서울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와 ‘김순기: 게으른 구름’을 열고 있다. 덕수궁은 ‘근대미술가의 재발견을’, 과천은 ‘젊은모색 2019’와 ‘곽인식 탄생 100주년 기념전’, 소장품 특별전 ‘균열 Ⅱ: 세상을 보는 눈’을 관람할 수 있다. 경기 수원시 화성행궁 옆에 있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도 휴관 없이 개관한다. 역시 모든 전시를 무료로 개방한다. 기획전 ‘셩: 판타스틱 시티’ ‘재-분류: 밤은 밤으로 이어진다’ ‘人―공존하는 공간’이 열린다. 수원컨벤션센터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광교에서는 ‘최정화, 잡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박생광’ ‘팝/콘’ ‘∼Kreuzen’이 열리는 대구시립미술관도 4일간 정상 개관하며 무료입장 이벤트를 진행한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는 설치미술가 루크 제람의 지름 7m 크기인 초대형 보름달을 볼 수 있다. 파라다이스시티 실내 광장에 전시하는 작품은 연말까지 모든 관람객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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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이 살아있었다면 브라운관 고집했을까?[현장에서/김민]

    1년 넘게 불이 꺼졌던 백남준(1932∼2006) 작품 ‘다다익선’(1988년)의 복원 방향이 결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11일 “브라운관(CRT) 모니터를 최대한 복원해 원본성을 유지하고, 불가피한 경우 최신 기술을 부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기술이 뒷받침하는 선에서 최대한 브라운관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다다익선’은 TV 수상기 1003대로 만든 높이 18.5m의 비디오 타워. 노후에 따른 화재 위험 등의 문제로 지난해 2월 상영을 중단했다. 그 후 복원 방향을 두고 MMCA는 국내외 전문가 40여 명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23명으로 브라운관 유지 의견(12명)보다 많았지만 MMCA는 신중한 접근을 택했다. MMCA가 공공 미술관으로서 원형 보존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은 존중한다. 세계적인 작품에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고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가치가 외적인 형태에만 국한되는지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개념 미술’의 창시자인 마르셀 뒤샹은 남성 소변기로 만든 대표작 ‘샘’ 원본을 잃어버린 뒤 벼룩시장에서 다른 소변기를 구해 사인을 했다. ‘샘’은 형태가 아닌 아이디어가 중요한 예술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엔지니어로 협업했던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도 같은 맥락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핵심은 백남준이 직접 편집한 영상과 소프트웨어”라며 “어느 순간 모니터가 곡면(브라운관)인지 평면(LED)인지에 논의가 집중돼 ‘다다익선’이 마치 브라운관을 위한 작품처럼 됐다”고 꼬집었다. ‘브라운관 유지’ 방향이 궁극적으로는 시한부라는 문제도 있다. 새로 브라운관을 교체한다고 해도 그 수명은 10∼15년에 불과하다. 최대한 물량을 확보한다고 해도 최후에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이 불가피하다. 베른하르트 제렉스 전 독일 예술과매체기술센터(ZKM) 수석큐레이터는 “1988년의 TV가 보존되지 않았고 맞지 않는 기술에 고군분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단기적 해결책이자 헛된 절차”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MMCA는 브라운관 모니터 복원의 사례로 미국 휘트니미술관에 있는 고인의 작품 ‘세기말 II’(1989년)를 들었다. 그러나 TV 203대로 구성한 ‘세기말 II’도 연구와 복원에 7년을 투자했다. ‘다다익선’은 5배 규모에 전시 기간도 훨씬 길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성급히 결정하기보다는 예술의 가치와 현대 미술에서 ‘원본’의 의미와 ‘다다익선’의 미술사·미학적 가치를 한국 사회가 활발히 논의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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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꺼졌던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 원형 보존해 유지키로 결론

    1년 넘게 불이 꺼졌던 백남준(1932~2006) 작품 ‘다다익선’(1988년)의 복원 방향이 결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11일 “CRT(브라운관) 모니터를 최대한 복원해 원본성을 유지하고, 불가피한 경우 최신 기술을 부분 도입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기술이 뒷받침하는 선에서 최대한 브라운관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다다익선’은 TV수상기 1003대로 만든 높이 18.5m의 비디오타워. 노후로 인한 화재 위험 등 문제로 지난해 2월 상영을 중단했다. 그 후 복원 방향을 두고 MMCA는 국내외 전문가 40여 명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LED 기술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23명으로 브라운관 유지 의견(12명)보다 많았지만 MMCA는 신중한 접근을 택했다. MMCA가 공공 미술관으로서 원형 보존에 최선을 다하는 선택은 존중한다. 세계적인 작품에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고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가치가 외적인 형태에 국한되는지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개념 미술’의 창시자인 마르셀 뒤샹은 남성 소변기로 만든 대표작 ‘샘’ 원본을 잃어버린 뒤, 벼룩시장에서 다른 소변기를 구해 사인을 했다. ‘샘’은 형태가 아닌 아이디어가 중요한 예술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엔지니어로 협업했던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도 같은 맥락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핵심은 백남준이 직접 편집한 영상과 소프트웨어”라며 “어느 순간 모니터가 곡면(브라운관)인지 평면(LED)인지에 논의가 집중돼 ‘다다익선’이 마치 브라운관을 위한 작품이 됐다”고 꼬집었다. ‘브라운관 유지’ 방향이 궁극적으로는 시한부라는 문제도 있다. 새로 브라운관을 교체한다고 해도 그 수명은 10~15년에 불과하다. 최대한 물량을 확보한다고 해도, 최후에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이 불가피하다. 베른하르트 제렉스 전 독일 예술과매체기술센터(ZKM) 수석큐레이터는 “1988년의 TV가 보존되지 않았고 맞지 않는 기술에 고군분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단기적 해결책이자 헛된 절차”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MMCA는 브라운관 모니터 복원의 사례로 미국 휘트니미술관에 있는 고인의 작품 ‘세기말 II’(1989년)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TV 203대로 구성한 ‘세기말 II’도 연구와 복원에 7년을 투자했다. ‘다다익선’은 5배 규모에 전시 기간도 훨씬 길었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성급히 결정하기보다, 예술의 가치와 현대 미술에서 ‘원본’의 의미와 ‘다다익선’의 미술사·미학적 가치를 한국 사회가 활발히 논의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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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 시대… 영상은 과연 믿을 만한가

    현대미술에서도 영상 작품은 난해하다고 여겨지고 진입 장벽도 높다.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유튜브로 언제든 영상을 볼 수 있지만 미술관에서 만나는 영상은 좀처럼 관객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미디어 펑크: 믿음 소망 사랑’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다. 최윤 이민휘의 ‘오염된 혀’는 영상 작품을 중심에 두고 영상의 내용을 담은 ‘지라시’를 벽에 함께 걸었다. 영상의 강렬한 이미지가 다소 부담스럽지만 ‘지라시’의 악보가 영상을 설명해 몰입을 돕는다. ‘지라시’에는 “나라를 부르지 마라, 가슴속에 가득 안고 사는 건 나라가 아닌 나였을 뿐”처럼 맹목적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가사가 애국가가 나올 법한 그림 위에 새겨져 웃음을 자아낸다. 이렇게 영상 작품을 보조적인 수단과 함께 전시하는 광경은 영상만으로는 완전한 메시지를 전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유튜브로 모든 정보를 검색하는 시대지만 영상 편집만 할 줄 알면 누구나 그럴듯한 이야기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 세태를 돌아보게 된다. 김웅용 김해민 노재운 파트타임스위트 함정식의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영상 비평 세미나 등 연계 프로그램도 있다. 10월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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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마저 금지당한 예술가, 마광수의 진심을 만나다

    “마 교수가 생전 가장 힘들어했던 건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상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단죄를 당했다는 점이었죠. 지금이라도 그의 예술 세계가 제대로 평가받길 바랍니다.” 마광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1951∼2017)의 유품 정리·기증을 맡았던 박혜진 북리뷰 편집장은 5일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마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된 날이었다. 같은 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박물관에서는 전시 ‘마광수가 그리고 쓰다’가 개막했다. 고인이 남긴 그림 100여 점 가운데 30여 점을 선보였다. 이에 앞서 유족은 고인의 책 1만여 권과 유품, 그림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가 사용했던 책상, 안경, 육필 원고는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태운 담배와 재떨이도 포함됐다. 박 편집장은 “생전 마 교수가 강단에 서는 일을 사랑했기에 학교로 돌아가 작품세계를 알리는 게 그의 정신을 추모하는 길이라 봤다”며 “학술정보원에 만들어진 ‘마광수 개인 서고’는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 교수는 생전에 예술에 있어서 글과 그림은 큰 차이가 없다고 자주 얘기해왔다. 본인이 예술에서 상징의 의미를 공부했기에, 시건 에세이건 소설이건 그림이건 표현의 출발점은 같다고 봤다. 전시된 그림의 다수는 책에 삽화로 실렸던 작품이다. 1994년 첫 개인전 도록에선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를 꿈꾸는 나의 미술가적 기질이 문학작품에도 반영돼 탐미적 묘사를 가능하게 한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989년 첫 신문 연재 칼럼에 삽화를 그리던 고인은 1992년 말 벌어진 ‘즐거운 사라’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구치소 신세를 지고 나서, 강의까지 쉬게 되어 갑자기 많은 시간을 갖게 됐다. 재판에도 신경 써야 하고, 표현의 자유가 어이없게 유린된 데 대한 울화도 삭여가며 하루하루를 때워 나갔기에 글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다 다도화랑 대표로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아 용기 내 화필을 잡았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활자공포증’으로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그는 동화책에 의지했다. 발가벗고 뛰어놀아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동심의 세계를 좋아했던 고인의 그림은 동화책을 닮았다. 그러나 ‘어려운 책은 못 쓴 책’ ‘거꾸로 본 세상은 아름다워’ 같은 그림에선 촌철살인의 철학적 메시지가 돋보인다. “한국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시와 소설일수록 더럽게 어렵게 읽힌다. 유식한 체하고 싶어 하는 ‘현학 취미’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려운 글은 심오한 글이 아니라 ‘못 쓴 글’이다.”(소년 광수의 발상) 이번 전시에는 그의 육필 원고도 처음으로 공개한다. 유족과 지인들은 “고인이 남긴 글과 그림을 통해, 윤동주와 상징 시학을 연구했던 학자이자 예술가였던 마 교수의 세계가 제대로 평가받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12월 3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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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머와 패러디로 표현한 ‘결혼 행진곡’

    유머러스한 그림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은 한국화가 김현정(31)이 개인전을 연다.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계란 한 판, 결혼할 나이’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30대에 진입하며 “올해는 우리 딸이 결혼하는 게 소원”이라는 엄마의 넋두리 등 결혼에 관한 고민과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작품은 결혼 뒤 맞이하는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한복 입은 여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표현이 특징인 작가의 기존 작품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여전히 스타벅스와 명품 백을 든, 작가를 닮은 한복 입은 여인이 그림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명화를 차용해 일러스트 느낌이 강한 그림들은 미술을 잘 몰라도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작가는 “결혼이라는 민감한 주제가 던지는 중압감을 명화의 유머러스한 패러디를 통해 누그러뜨리고자 했다”며 “추석 연휴에 결혼 적령기인 자녀와 부모가 함께 전시장을 찾는다면 재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관람객의 결혼관을 들여다보는 설문지 코너도 마련돼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부모님 세대와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을 공유하고,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불안이 가볍게 넘길 응석이 아니라는 것을 환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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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몸=인격’이라면 잘린 손가락은 누구의 것인가

    만약 목공일을 하다 실수로 스스로의 손가락을 자른다면 그것은 누구의 소유일까? 분리됐다고 하더라도 내 몸의 일부였으니 당연히 나의 소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잠시 기절한 사이 누군가가 그 손가락을 훔쳐가 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을 절도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쓰인 1992년 프랑스에서는 놀랍게도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88년 프랑스 법은 “사람의 몸이란 곧 인격이다”고 규정했고, 이 인격은 몸의 전체성 속에서만 인정된다. 따라서 잘린 손가락은 신체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물건’이 되고 만다. 내가 기절한 사이 나의 손가락은 ‘주인 없는 물건’이 돼버렸고, 그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정당한 소유권을 갖는다. 따라서 절도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위의 사례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5년 프랑스 아비뇽의 구치소 수감자였던 자넬 다우드는 자신의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법무부 장관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자신의 처지에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의 잘린 손가락은 유리병에 담겨 돌아왔지만 교정당국은 이를 압수한다. 다우드는 “잘린 손가락 속에도 나의 인격이 있다”는 취지로 인권과 사생활 보호법에 호소해 손가락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판사는 잘린 손가락을 물건이라고 판단해 돌려주지 않았다. 법학자인 저자는 이 황당한 사례에서 출발해 프랑스 민법의 구멍을 입증한다. 그 출발은 몸의 독특한 속성을 무시한 채 몸을 곧 ‘인격’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한정시킨 데 있었다. 인간의 몸은 생명을 담는 기관임과 동시에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성과 속’이 뒤섞인 복잡한 존재다. 저자는 인체의 ‘물건’적인 특성을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몸의 속성을 논하기 위해 ‘시체’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시체가 성스러운 물건이자 음식이자 약이며, 때로는 해로운 것이라고 과감히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 시대에는 파리 묘지에서 시신이 자주 도난당했고, 상당수가 해부학 교실로 팔려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 놀라운 건 해부 뒤 남은 인체의 지방이 약장수나 양초 제조자에게 팔렸다는 사실. 심지어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의 결혼식 때 뤽상부르궁을 밝히는 데에도 이 인간 양초가 사용됐다고 한다. 사실 프랑스 민법이 인체를 물건으로 보는지, 인격으로 보는지는 법학자나 관심 가질 만한 주제다. 책이 나올 당시에는 시험관 아기가 탄생하는 등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법과 인체에 관한 논란이 활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법을 출발점으로 프랑스 사회가 ‘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다. 결국 인간의 몸은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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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미술의 다양성과 역동성… 작가 11인 작품 33점 한국나들이

    액자 속 화면이 4등분 돼 있고 각각의 칸에는 불교부터 이슬람 유대교 등 여러 종교의 이미지가 혼합돼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 마른 식물이 놓인 이 예술 작품의 이름은 ‘20세기의 전도사들’(사진). 필리핀의 현대 미술가 노베르토 롤단(66)의 이 작품은 식민지를 경험하며 여러 문화가 혼재된 필리핀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필리핀은 16세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이미 서양 유화 기법을 받아들였다. 오랜 세월이 축적되며 기교가 뛰어난 작가가 많아 잠재력이 크다. 필리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미술가 11명의 작품 33점을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필리핀 미술, 그 다양성과 역동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일상 속 소품을 활용한 롤단의 작품부터, 국내 시민들을 참여시켜 책을 실로 칭칭 감아 만든 제드 메리노의 설치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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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앗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생성과 소멸을 보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씨앗을 통해 자연의 뿌리를 상상한다. 싹을 틔우며 생명의 여정을 시작하는 씨앗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잠재된 생명력으로서의 환상을 나에게 선사한다.” 식물을 모티프로 작업해 온 작가 최혜인의 개인전 ‘잠재된 덩어리’가 서울 종로구 갤러리도스 신관에서 열린다.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특히 씨앗에 주목한 회화를 포함한 신작 23점을 공개한다. 작가는 식물이 씨앗을 품으면 본체는 죽게 되지만, 그 씨앗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는 생성과 소멸에 흥미를 느꼈다. 육아와 가사 노동을 하며 마주친 채소에서 작가는 ‘인간사’를 공상하곤 했다. 이번에는 소박한 씨앗에서 찾은 무한한 잠재력과 관능적 생명을 화폭에 풀어놨다. 진주분, 백토, 금분 등 다양한 재료의 활용도 눈에 띈다. 1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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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적-시대불명의 기이한 이미지… 고정관념서 깨어난 관객에 손짓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심란하고 복잡하다. 벽지에는 양파, 마늘, 고추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광경이 어지럽게 혼합돼 있다. 그 가운데 샤먼이 사용할 법한 방울이 구의 형태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양혜규(48)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의 풍경이다. 4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은 국내 미술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독일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하고,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전시되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활동을 하는 작가에 대한 국내의 기대를 알기에 부담을 갖고 개인전을 준비했다”고 털어놨다. 블라인드를 활용한 대표작 ‘솔 르윗 동차’를 비롯해 방울을 활용한 ‘소리 나는 운동 지도’, 벽지 작업 ‘배양과 소진’ 등 전시는 작가의 최근 활동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요소가 결합돼 ‘이미지 폭격’이라 느껴질 정도로 공간의 밀도가 높다. 이렇게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전시장의 풍경은 양혜규의 작업 특징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특정한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를 끊임없이 거부한다. 이를테면 동그란 방울이나 짚풀은 토속적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작가는 이들 소재를 극도로 깔끔한 마감의 조형물로 만들어 토속성을 제거해 버린다. 그 결과 국적, 시대 불명의 독특하고 기이한 이미지가 탄생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를 결합하는 작업 방식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 비치된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뒤라스와 윤’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의 연대기를 작가의 주관으로 교차 편집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란 무엇인지, 프랑스인이란 무엇인지 등 정해진 개념에 관한 끝없는 질문이 파생된다. 조형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국제 미술전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며 그 낯섦에 어리둥절했던 한국의 1990년대도 떠오른다. 당시 활발하게 논의됐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난해한 언어도 감지된다. 작가 또한 1994년 독일로 이주하며 완전히 다른 시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혼란 그 이후에 이어질 작가 양혜규의 다음 목소리가 궁금해진다. 11월 1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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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뉴판서 작품을 주문하면 테이블로 갖다 드립니다

    ‘퍼포먼스, 영상 작품은 어떻게 유통하고 판매할 수 있을까?’ 작가들의 실질적 고민에서 출발한 ‘퍼폼’이 올해는 ‘예술 카페’로 문을 열었다. 지난달 27일부터 9월 4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2019 작가미술장터 ‘퍼폼 2019: 린킨아웃’은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도록 형태의 메뉴에서 선택하면 해당 작품을 테이블에 앉아 제공받을 수 있다. 참여 작가 78명은 관객의 경험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만들었다. 이 중에는 낯선 사람과 비밀 통화를 하거나 조각을 직접 만져보면서 조립하는 등 관객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이 더 깊숙이 작품에 접속(링크인)하고 나간다(링크아웃)는 의미에서 부제 ‘린킨아웃’이 붙었다. 작품을 판매할 뿐 아니라 일정 시간 체험해 보는 대가로 1000원에서 1만 원 사이의 대여료를 지불하는 대여권이나 상영권 등 대안적 판매 방식도 실험한다. 이번 전시는 특히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든 영상 작가들에게 흥미로운 형태다. 단순히 영상을 앉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상 속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만져보면서 감상하는 등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 작가 중 80%가 영상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다. ‘퍼폼’처럼 대안적인 형태로 작품의 전시·판매를 작가들이 직접 시도하는 ‘작가미술장터’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5년부터 진행해 지난해까지 50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80만여 명이 관람했다. 올해에는 회화, 조각을 포함해 공예,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디자인 등 다양한 작가가 참여한 16개 장터가 총 10개 지역에서 열린다. 5개 작가미술장터는 이미 개최됐고, 나머지 11개 장터는 20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울, 경기 수원, 대구 등 전국적으로 열린다. 작가미술장터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니온아트페어’는 수원 경기상상캠퍼스 공간 1986에서 10월 8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이 밖에 경남 김해 최초의 아트페어 ‘더스트 사우스 아트 페스티벌’, 광주 ‘미디어아트X페어’, 전북 전주 ‘아트 팝업스토어’ 등이 예정돼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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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들과 왔어요”… ‘행복한 곰돌이’ 푸, 한국 나들이

    《1928년 출간된 ‘푸 모퉁이에 있는 집’에는 ‘푸스틱(Poohstick)’ 놀이가 등장한다. 푸스틱은 곰돌이 푸와 친구들이 강물 위 다리에서 각자 막대기를 하나씩 던진 뒤, 반대편으로 뛰어가 누구의 막대기가 가장 먼저 나오는지 관찰하는 놀이다. 벤저민 호프가 쓴 책 ‘곰돌이 푸, 인생의 맛’에서는 이 ‘푸스틱’ 놀이를 도덕경의 ‘위무위(爲無爲)’로 설명한다.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 가면 ‘푸스틱’ 놀이를 설치 작품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지난해 출판 시장을 흔들었던 ‘행복한 곰돌이’ 푸의 원화가 한국을 찾았다. 22일 개막한 ‘안녕, 푸’전은 2017년 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기획으로 열린 뒤 미국과 일본을 거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열린다. 삽화가 E H 셰퍼드가 그린 원화 드로잉과 작가 A A 밀른이 쓴 원고·편지, 셰퍼드와 밀른의 가족사진 및 초판본 등 230여 점이 공개된다. 원화를 비롯한 전시품은 전시가 끝나면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의 수장고에 10년 이상 보관될 예정이다. 전시회 동안 빛에 오래 노출된 만큼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아동문학인 푸의 성격에 맞춰 어린이가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전시장 초입에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이 설치됐다. 계단의 옆면에는 ‘바닥도, 꼭대기도 아닌 중간이 내가 항상 앉는 곳’이라고 한 밀른의 시 ‘계단 한가운데’가 적혀 있다. 계단을 지나면 1930년 테디 토이 컴퍼니에서 만든 ‘위니 더 푸’ 캐릭터 인형을 비롯해 세월의 흔적이 묻은 아카이브가 관객을 맞이한다. 전시는 영국의 건축사무소 RKF와 무대디자이너 톰 파이퍼의 디자인을 소마미술관에 맞게 변형했다. 디자인은 사이즈가 작은 원화 드로잉을 직접 감상하는 데 집중했다. 런던 전시에 비해 설치물의 규모가 작고, 조명의 활용도가 낮은 것은 아쉽다. 그러나 이요르의 집이나 미끄럼틀 등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수 있는 구조물을 놓았다. 전시장은 총 5개 구역으로 나뉜다. 첫 전시장 ‘인기쟁이 곰’이 사람들이 가장 친숙한 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뒤이은 전시장 내용은 점점 심화된다. 두 번째 ‘우리가 소개되고’와 세 번째 ‘어떤 이야기일까?’가 ‘위니 더 푸’의 탄생 과정을 여러 설치물로 보여준다. 이어 ‘묘사의 기술’과 ‘푸 세상에 나오다’는 푸 원화 드로잉의 특징과 출판 과정을 설명한다. ‘묘사의 기술’ 코너에선 원화의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눈이 쌓인 풍경은 수채물감의 일종인 ‘과슈’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칼을 이용해 표현했다. 또 잡지 전체 페이지를 하나의 디자인으로, 텍스트도 그림의 일부로 간주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밀른이 보낸 원고에는 어떤 분위기를 연출하면 좋을지 제안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사람처럼 다양하다. 소심하고 겁 많은 피글렛, 우울하고 비관적인 이요르, 자신감 넘치지만 어설픈 티커, 간섭하고 나서길 좋아하는 래빗은 결국 인간 세상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내년 1월 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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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묻지마 범죄’의 광기… 폭력적 게임에서 싹튼다

    인간의 직감이 때로는 기계보다 정확하다.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에 관한 논쟁을 보며 든 생각이다. 비록 가상현실이라도 유혈이 낭자한 폭력 상황이 미칠 좋은 영향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게임 속 구체적 상황을 활자로 만나니 그 잔인함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심각성은 게임 업계의 로비로 가려져 있다. ‘살인 세대’는 그 숨겨진 진실, 비디오게임과 폭력의 연관성을 사례와 통계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97년 미국 켄터키주 퍼두커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대학살’(저자는 총기난사 사건을 이렇게 불러 마땅하다고 주장한다)은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열네 살 남학생이던 범인은 다섯 발은 피해자 머리에, 세 발은 상체에 명중했다. 명중률은 100%였다. 범인의 명중률이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타인을 죽이길 거부하는 본성을 지녔다. 그래서 직업 군인이나 경찰도 누군가를 사살하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근접 전투에서 실제로 총기를 발포한 병사는 15∼20%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투 시뮬레이션’ 훈련이 도입되자 미군의 총기 발사 비율은 6·25전쟁에서 55%, 베트남전쟁에서 95%까지 상승했다. 살상을 꺼리는 인간 본성은, 미국 검경이 간주하는 보통 수준의 명중률이 50%에 그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년은 사건 며칠 전 훔친 총과 총알 두 세트로 사격 연습을 해본 것 외에는 총을 사용해본 적도 없었다. 그의 냉혹한 잔인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반적으로 총격에서 인간의 머리를 겨누는 건 극단적 원한일 경우가 아니라면 극히 드물다. 그런데 퍼두커 사건의 범인은 정확히 피해자의 머리를 겨눴다. 이는 비디오 사격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주는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1인칭 슈팅 비디오게임을 했던 이 소년은 사실상 매일 밤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인 습관’을 신경세포에 각인시키며 살인에 관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퍼두커 ‘대학살’ 말고도 비디오게임이 폭력성을 붙잡아둘 고삐를 느슨하게 만든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독일 본대학에서 20, 30대 슈팅 게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뇌 스캔 실험에서는, 사용자들이 실제 폭력적 이미지를 봤을 때도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 도호쿠 의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도한 컴퓨터게임을 한 아동은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발달 둔화 우려가 있었다. 물론 “비디오게임을 하고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다수”라는 반론을 저자도 인정한다. 문제는 소수일지언정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 심층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미국에선 총기 난사 사건으로 462명이 사망했고, 1314명이 다쳤다. 대표 저자인 데이브 그로스먼은 23년간 군에서 복무한 심리학자다. 그가 살인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저항감을 쓴 책 ‘살인의 심리학’은 40만 부 넘게 팔리고 미 군사기관의 필독서에 올랐다. 미디어 중독 치료 교육을 하는 공동 저자와 함께 강조하는 건 예방이다. 다행히 게임 중독자라고 해도 뇌가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진 않는다고 한다.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등 실천 방법부터 부모가 활용 가능한 자료까지 함께 정리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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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14살 고교 총기난사범의 ‘100% 명중률’이 충격적인 이유

    인간의 직감이 때로는 기계보다 정확하다.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에 관한 논쟁을 보며 든 생각이다. 비록 가상현실이라도 유혈이 낭자한 폭력 상황이 미칠 좋은 영향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게임 속 구체적 상황을 활자로 만나니 그 잔인함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심각성은 게임 업계의 로비로 가려져있다. ‘살인 세대’는 그 숨겨진 진실, 비디오게임과 폭력의 연관성을 사례와 통계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997년 미국 켄터키 주 퍼두커의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대학살’(저자는 총기난사 사건을 이렇게 불러 마땅하다고 주장한다)은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열네 살 남학생이던 범인은 다섯 발은 피해자 머리에, 세 발은 상체에 명중했다. 명중률은 100%였다. 범인의 명중률이 충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타인을 죽이길 거부하는 본성을 지녔다. 때문에 직업 군인이나 경찰도 누군가를 사살하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근접 전투에서 실제로 총기를 발포한 병사는 15~20%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투 시뮬레이션’ 훈련이 도입되자 미군의 총기 발사 비율은 6·25전쟁에서 55%, 베트남전쟁에서 95%까지 상승했다. 살상을 꺼려하는 인간 본성은, 미국 검경이 간주하는 보통 수준의 명중률이 50%에 그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년은 사건 며칠 전 훔친 총과 총알 두 세트로 사격 연습을 해본 것 외에는 총을 사용해본 적도 없었다. 그의 냉혹한 잔인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반적으로 총격에서 인간의 머리를 겨누는 건 극단적 원한일 경우가 아니라면 극히 드물다. 그런데 퍼두커 사건의 범인은 정확히 피해자의 머리를 겨눴다. 이는 비디오 사격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주는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인칭 슈팅 비디오게임을 했던 이 소년은 사실상 매일 밤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인 습관’을 신경세포에 각인시키며 살인에 관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됐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퍼두커 ‘대학살’ 말고도 비디오게임이 폭력성을 붙잡아둘 고삐를 느슨하게 만든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독일 본 대학에서 20, 30대 슈팅 게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뇌 스캔 실험에서는, 사용자들이 실제 폭력적 이미지를 봤을 때도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 도호쿠 의과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도한 컴퓨터게임을 한 아동은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발달 둔화 우려가 있었다. 물론 “비디오게임을 하고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다수”라는 반론을 저자도 인정한다. 문제는 소수일지언정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 심층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미국에선 총기 난사 사건으로 462명이 사망했고, 1314명이 다쳤다. 대표 저자 그로스먼은 23년간 군에서 복무한 심리학자다. 그가 살인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저항감을 쓴 책 ‘살인의 심리학’은 40만 부 넘게 팔리고 미 군사기관의 필독서에 올랐다. 미디어 중독 치료 교육을 하는 공동 저자와 함께 강조하는 건 예방이다. 다행히 게임 중독자라고 해도 뇌가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진 않는다고 한다.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등 실천 방법부터 부모가 활용 가능한 자료까지도 함께 정리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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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셀카가 우스꽝스럽다고? 60대 사진거장 발랄한 저항

    스마트폰이 바꾼 세상의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라면 단연 ‘셀피(셀프카메라)’를 꼽을 수 있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에서 ‘#selfie’를 검색하면 세계적으로 4억300만 개 이상의 게시물이 쏟아진다. 이 거대한 셀피의 물결에 최근 미국 출신 사진작가 신디 셔먼(65)도 동참해 눈길을 끈다. 그런데 셔먼의 사진은 보통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셀피와는 좀 다르다. 각종 필터를 활용해 우스꽝스럽고 왜곡된 모습을 만들었다. 이런 그의 다양한 셀피들이 서울 강남구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국제 기획전 ‘아무튼, 젊음’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전시는 고령사회에서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젊음’을 주제로 한다. 국내외 작가 13팀의 사진, 설치, 영상 등 21점을 전시했다. 이 작품들은 모든 사람이 어려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시류를 꼬집거나 현대사회에서 나이 듦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되돌아본다. 셔먼의 인스타그램 셀피는 전시장 한쪽 방에 아이패드와 벽면 프린트로 전시했다. 사실 셔먼이 1980년대 선보였던 작업은 ‘셀피’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그의 첫 시리즈 ‘무제 영화 스틸’(1977∼80년)은 앨프리드 히치콕 영화에 등장할 법한 여성 캐릭터로 분장한 셔먼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담았다. 머리색이나 옷을 다르게 연출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줬다. 이후에도 ‘센터폴즈’ ‘섹스 픽처스’ 등의 시리즈를 통해 천변만화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묘사한 그는, 대중 매체 속 여성의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변화무쌍한 여성의 욕망을 그리며 전설적 사진가로 발돋움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시장에서 보이는 그의 ‘망가진’ 모습들은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장난이 아니다. 오히려 일시적 화려함만 좇는 SNS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군중들의 민낯을 도리어 까발리고 있는 게 아닐까. 셔먼의 셀피는 그가 하나의 작품으로 내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전시의 주제와 기획 의도를 SNS 메시지로 전달받은 작가가 전시를 허락했다. 그의 셀피를 전시장에서 공개하는 것은 중국 이후 두 번째라고 한다. 11월 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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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그리는 신부’의 아트글라스 작품 40여점

    ‘화가 신부’로 잘 알려진 조광호 신부(72)의 유리화 작품을 선보이는 ‘조광호의 Art Glass 작품전’이 경기 양평군 갤러리 카포레에서 열린다. 색이 다른 유리로 모자이크처럼 형태를 표현하는 기존 스테인드글라스와 달리 ‘아트 글라스’는 유리 위에 유약으로 직접 그림을 그린다. ‘아키텍추럴 아트 글라스’라고도 불리는 이 기술은 조 신부가 독일에서 처음 국내로 들여와 선보였다.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순교성지 기념탑이나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 로비 천장화 등 기존 작업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반면 이번에는 카페로 운영하는 갤러리 공간에 맞춰 중형 사이즈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먼저 작업한 그림을 유리 위에 그대로 입혀, 흔히 생각하는 스테인드글라스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1979년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은 조 신부는 1985년 독일 뉘른베르크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5년 동안 예술을 배웠다. 이때 독일의 아트 글라스 기술을 배워 한국에 가져와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일 공방으로 보내 제작하다가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12년 전 인천에 직접 공방을 만들었다. 국내 우수한 기술로 가마부터 컴퓨터 시스템까지 세계적인 시설을 갖춰 작업하고 있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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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품 가치와 시가감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예술을 문화적 자산을 넘어 경제적 자산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그 가치를 평가하는 감정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2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화신세계관에서 열린 공개 라운드테이블 ‘근현대미술 가치평가의 새로운 과제들’에 참석한 앤 마리 리처드 소더비 인스티튜트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와 소더비 인스티튜트(SIA·Sothebys Institute of Art)가 진행한 ‘미술품의 가치와 시가감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미술 관계자를 비롯해 일반인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미술품의 가치와 시가감정’ 프로그램은 최근 예술작품 가격 산정에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예경과 SIA가 국내 처음으로 공동 기획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SIA는 경매사 소더비가 설립한 교육기관으로, 소더비와 별개로 운영되며 향후 경매사에서 일하게 될 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철저한 비공개 진행… 반응은 엇갈려 2주간 진행된 ‘미술품의 가치와 시가감정’ 프로그램은 한국 근현대 미술품 감정 인력 육성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예경은 2015년부터 미술품 감정기반 구축 사업을 해왔고, 감정 인력 차원에서 미국감정협회(AAA)나 네덜란드 AiA와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이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 것도 특징이다. 수강생에게는 교재가 제공되지 않았고 녹음이나 동영상 촬영도 금지됐다. 리처드 SIA 디렉터의 강연을 중심으로 보존, 과학분석 전문가 니카 구트만 리에피 리센아트(RECENART) 대표, 온라인 미술품 거래 서비스인 아트시의 스타스 존슨치지코브 디렉터 등 초청 연사의 강연이 진행됐다. 또 현장학습 프로그램으로는 엄미술관, Art C&R 미술품보존연구소 방문 등도 이뤄졌다. 모든 코스에 참석한 수강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당초 ‘심화과정’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실무적인 기초에 집중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미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수강자들은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해외 경험이 없거나 입문자에 속했던 수강자는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예경 관계자는 “국내 감정시장의 전문 인력이 극소수이기 때문에,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강의 내용을 좀 더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수준에 맞췄다”고 설명했다. 한 참석자는 “사실 작품의 가격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부분은 해외 교육기관을 통해 배우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 ‘백남준 엔지니어’ 이정성 강연 눈길 24일 공개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고 백남준 작가의 엔지니어였던 이정성 씨(75)의 강연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경험한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발표한 이 씨는 백남준 작품이 전자기기를 이용해 고장이 나고 수리하는 것은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켤 때 전기 스위치를 한 번에 켜거나 24시간 켜두는 것은 가장 빨리 작품이 손상되게 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또 백남준의 국내 컬렉터가 소프트웨어와 기록(아카이브)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이 씨는 “생전 백남준은 소프트웨어를 관객과 소통하는 통로로 보고 밤새워 편집하고 테스트했는데, 작품을 수리하다 보면 원래 레이저디스크였던 것을 임의로 변환하거나 소프트웨어 이름도 없이 트는 경우가 있다”며 “원본과 그에 관한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작품 가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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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을 마주한 ‘3차원 데칼코마니’

    서울 용산구 이태원 번화가 밖 ‘모스크’(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가 있는 언덕길. 평범한 상점이 늘어선 골목 가운데 세탁소가 있다. 그런데 그 맞은편 1.5평 공간에 ‘가짜 세탁소’가 등장했다. 세탁소보다 좁은 공간 탓에 간판이 싹둑 잘린 것만 빼면, 재봉틀은 물론 머리 위에 걸린 옷가지, 파란 쓰레기통, 무심코 놓인 리모컨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똑같은 두 공간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진짜’ 세탁소를 찾은 고객들이 “상도덕도 없이 바로 맞은편에 세탁소를 차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단다. 사실 이 ‘가짜 세탁소’는 남다현 작가(24)의 설치 작품이다. 세탁소 주소를 제목으로 한 그의 개인전 ‘#21(서울특별시 용산구 우사단로 10길 85-1)’이 룬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남 작가는 과거에도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본어 서적을 필사하고, 그림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베끼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텍스트도 이미지처럼 복사했다”며 “이를 통해 언어의 구조나 상징의 무용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만든 ‘가짜 세탁소’에서도 관객은 진짜와 가짜, 이미지를 마음대로 복사하지 못하는 ‘저작권’의 의미, 혹은 물질적인 현실세계를 접하지 않고도 사이버공간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세태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우는 아이에게 거울을 보여주면 울음을 멈추듯, 있는 그대로 현실의 모습이 그 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3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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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진실-허구 사이의 불확실성이 다큐멘터리의 힘”

    예술가 겸 저술가인 저자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 작가 중 하나다. 미술시장보다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보여 온 그는, 이미지와 영상이 갖는 힘과 그 뒤에서 작용하는 왜곡과 통제 메커니즘을 설치나 영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독일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는 작품만큼이나 명쾌한 비평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독일 특유의 날카롭고 건조한 시각으로 미술계나 경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던진다. 특히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인터넷 환경의 상호 감시, 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 등의 문제를 드러내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에도 2016년 ‘스크린의 추방자들’이 김실비 작가의 번역으로 출간돼 미술계에서 호응을 얻었고 지난해 개정판도 나왔다. 이번에는 2008년 출간한 독일어 저서인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을 안규철 작가가 번역했다. 책은 다큐멘터리의 형식과 표현에 초점을 둔다. 슈타이얼이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쓴 박사 논문이 바탕이 됐다. 그의 중요한 저작인 ‘스크린의 추방자들’에서 보이는 통찰의 전조를 ‘진실의 색’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흔히 진실을 고발한다고 여겼던 다큐멘터리 영상이 실은 진실과 허구 사이의 불확실성을 오가며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한다는 통찰이 돋보인다. 다큐멘터리는 100% 진실이거나 허구가 아니고,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리다는 불확실함 때문에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서두에 이어 11개의 챕터에서 인터뷰, 기록, 영화, 다큐멘터리의 표현 등에 관해 여러 사례를 통해 서술을 이어나간다. 이들 챕터는 인과관계로 이어진다기보다, 하나의 사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며 다층적인 이미지를 쌓아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절대적인 진실도 허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서술 방식 자체도 흥미롭게 다가온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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