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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12일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에 관여한 에어비앤비, 알스톰, 부킹닷컴 등 기업 112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유엔과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정착촌 건설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향후 불매운동 등 파장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OHCHR가 발표한 기업에는 모토로라 솔루션스, JCB, 트립어드바이저, 익스피디아 등 유명 글로벌 기업이 다수 포함됐다. 112곳 가운데 이스라엘 기업이 94곳, 다른 6개 나라에 본사를 둔 기업이 18곳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을 통해 서안지구를 점령했다. 유엔 등 대부분의 국제기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토대로 한 분쟁 해결책인 ‘2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서안 점령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140여 개 정착촌을 세웠다. 이번 보고서는 2016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서안지구 등에서 활동하는 기업에 대한 조사를 결의한 데 따른 것이다. 민감한 서안지구 내 기업 활동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법적 효력이 없는 단순 실태 파악을 하는 데도 공식 발표까지 4년이나 걸렸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국제 유대인 로비 그룹의 집요한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가 공개된 뒤 팔레스타인과 국제인권단체들은 환호한 반면 이스라엘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리야드 알 말리키 외교장관은 페이스북에 OHCHR의 기업 명단 발표를 “국제법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OHCHR는 “언급한 기업들에 대한 사법적 혹은 준사법적 절차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라며 보고서에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민감한 사안인 만큼 명단에 오른 기업에 대한 불매(Boycott), 투자 회수(Divestment), 경제 제재(Sanction)를 펼치자는 ‘BDS 운동’이 거세질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거론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친(親)팔레스타인 움직임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에어비앤비, 부킹닷컴, 트립어드바이저 등 개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업은 특히 타격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11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한복판의 타흐리르 광장. 2011년 ‘아랍의 봄’ 시위 현장인 이곳은 ‘민주화 성지(聖地)’란 말이 무색하게 늘 경찰과 군인이 상주하고 있다. 2013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 출신 압둘팟타흐 시시 행정부는 시위 재발 등을 우려해 광장에서의 자유로운 사진 촬영조차 금지하고 있다. 이 광장 주변에 대형 녹색 깃발이 휘날리는 사각형 건물이 있다. 다음 달 탄생 75주년을 맞는 ‘아랍판 유엔’ 아랍연맹(AL·Arab League) 본부다. 아랍권의 영향력 및 공동 이익을 늘리자는 취지로 설립됐고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탄생에 기여했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아랍권을 대표하는 단체로 수십 년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최근 아랍연맹의 행보는 낡은 본부 건물 모습만큼 실망감을 안긴다. 국제기구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사 개최나 정책 발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이란 갈등, 리비아 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노골적 친이스라엘 행보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랍연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카이로 주재 외신 기자들도 “취재에 폐쇄적이다. 정기 기자회견도 제대로 안 한다”는 불만을 드러낸다. 웹사이트에는 영문 설명이 거의 없고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일도 잦다. 상당수 이집트인도 종종 기자에게 “카이로에 아랍연맹 본부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아랍연맹은 왜 75년 역사가 무색하게 힘 빠진 종이호랑이가 됐을까.○ 이집트 입김 강하고 GCC 출범으로 단결력 약화 1945년 3월 아랍연맹의 출범 당시 회원국은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 6개국이었다. 현재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 대부분이 참여해 22개국으로 늘었다. 다만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을 화학무기 등으로 잔혹하게 탄압해 ‘원년 멤버’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은 일시 정지됐다. 회원국 대표가 모두 참여하는 정기 이사회는 보통 연 1회 열린다. 현 수장은 이집트 외교관 출신의 아흐메드 아불 게이트 사무총장(78). 2016년 7월부터 재직 중인 그를 포함해 역대 8명의 사무총장 중 7명이 이집트인이다. 이처럼 아랍연맹 내에서 이집트의 주도권이 강하다는 점은 내부 분열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우디 등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회원국들은 이집트가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자 격렬히 반발하며 이집트를 연맹에서 추방했다. 1979∼1989년 아랍연맹 본부는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 있었다. 이 기간 사무총장을 지낸 튀니지 정치인 체들리 클리비 총장은 아랍연맹 역사상 유일한 비(非)이집트인 수장이다. 1989년 양측 갈등이 해소되면서 본부 역시 카이로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랍연맹은 크고 작은 내분을 겪었다. 사우디, 요르단, 카타르, 모로코 등 왕정국가와 대다수의 공화정 국가들, 산유국과 비산유국, 친미 국가와 반미 국가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 때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입장이 나뉘었다. 특히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이 1981년 ‘걸프협력회의(GCC·Gulf Cooperation Council)’를 창설한 것은 아랍연맹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GCC 회원국들은 왕정, 산유국, 중동 국가라는 공통점을 지닌 데다 수가 적어 아랍연맹보다 단결된 목소리를 내는 데 용이하다.○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정책에도 무기력 아랍연맹의 무기력과 분열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지난달 28일 트럼프 미 행정부가 공개한 ‘중동평화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주재하기 위해 만들었다”며 ‘세기의 협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만 드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안에는 그간 국제사회가 금기시해 온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촌 인정 △팔레스타인 수도의 예루살렘 밖 설립 △팔레스타인 국방력 불인정 등이 담겼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이스라엘의 이익만 고려한, 사실상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무시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아랍연맹이 56년 전 PLO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 거세게 반발해야 했다. 하지만 아랍연맹은 4일 후인 이달 1일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를 열었다.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최소한의 권리와 열망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안’이라는 비판 성명만 내놨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할 때 바로 옆에서 환호하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모습과 대비됐다. 한 팔레스타인인은 기자에게 “기대도 안 했지만 아랍연맹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이집트인은 “무능한 조직이다. 역대 사무총장이 대부분 이집트인이었다는 사실조차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 결사반대’를 외치던 상당수 회원국의 태도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때 이스라엘을 원수로 여겼던 ‘수니파 맏형’ 사우디는 ‘시아파 맹주’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부쩍 밀착하고 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에서다.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8년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 인터뷰에서 “이스라엘도 자기 땅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사우디의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중동평화구상을 기획한 트럼프 대통령의 유대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친밀한 사이로도 유명하다. UAE,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나라 역시 반(反)이스라엘보다 왕정 체제 유지 및 탈(脫)석유화를 더 시급한 과제로 여긴다. 이들은 국토 면적이 넓고 각각 8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이란과 터키, 호시탐탐 중동을 노리는 러시아, 이슬람국가(IS) 등 테러단체의 난립에 맞설 안보 여건이 취약해 미국과 절대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위치다. 과거와 달리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 편을 들어주는 아랍 국가가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팔레스타인도 자포자기 아랍연맹이 중동평화구상에 형식적으로만 반발하는 이유는 당사자 팔레스타인조차 극심한 내부 분열에 휩싸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는 PLO, 원래 PLO가 지배했지만 2007년부터 무장단체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로 완전히 나뉘어 있다. 온건 중도 성향의 PLO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는 대미(對美) 및 대이스라엘 노선에서 완전히 다른 성향을 보인다. 2004년 야세르 아라파트 전 PLO 수반이 숨진 후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만한 거물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도 양측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부터 다양한 형태의 무장투쟁 및 외교전을 펼쳤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한 것도 팔레스타인을 넘어 아랍권 전반의 무력감과 패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팔 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됐다’,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자괴감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모두 성지로 꼽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연맹 모두 대사관 이전을 저지하지 못했다. 한 팔레스타인인 대학교수는 “3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반아랍·극우 성향이 강한 네타냐후 총리 대신 중도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가 집권한다 해도 현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승패가 사실상 결정됐다는 의미다.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대통령 자식이 중국 우한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5일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눈물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의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 유학 간 가족을 둔 이들은 이렇게 외치며 가슴을 쳤다. 3일 프랑스국제라디오방송(RFI)과 AFP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3일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이 특별기로 우한의 자국민을 철수시키는 게 쉽지 않다고 밝히자 이를 비판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달 23일부터 봉쇄 조치에 들어간 우한에는 세네갈 출신 13명이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세네갈 외에도 우간다, 짐바브웨, 잠비아, 수단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한에 거주하는 자국민 송환을 사실상 포기했다. 특별기를 보낼 여건이 안 되는 가난한 이 나라들은 “중국 정부가 우리 국민을 잘 보호해 줄 것으로 믿는다. 국민들은 실내에 머물고 중국의 조치에 잘 따르라”고 발표했다. 자국민 철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아프리카 빈국들이 우한 내 자국민 철수에 소극적인 것은 열악한 보건의료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어렵게 우한에서 자국민을 데려와도 이들을 격리, 진단, 치료할 시설과 의료진이 부족하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시리아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이들리브주(州)에서 반군을 지원 중인 터키군과 시리아 정부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터키 군인 6명과 시리아군 13명이 사망했다고 3일 AP통신이 보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투기를 동원해 40여 곳을 공격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에 보복 조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과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는 2일 탱크, 장갑차, 트럭 등 차량 200여 대를 동원해 시리아로 진입했다. 터키군은 시리아로 진입한 뒤 이들리브 남부로 이동해 주요 도시인 알레포와 라타키아를 연결하는 도로 인근 지역을 군사작전 구역으로 선포했다. 이들리브는 2018년 9월 각각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을 지원해온 러시아와 터키가 공격을 중단하기로 한 휴전 지역이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은 협정을 깨고 지난해 말부터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 반군을 격퇴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정부군의 반군에 대한 공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군사력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의 시리아 주민 상당수는 터키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35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터키는 추가 난민 유입에 부정적이다. 또 반군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쿠르드족 민병대를 견제하길 희망한다. 한 터키 중진 의원은 알자지라에서 “이들리브에서 벌어진 교전으로 난민이 유입된다면 국경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2012년 세계 최초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집트 바이러스 학자 알리 무함마드 자키 아인샴스대 의대 교수(67·사진)가 2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야생동물을 먹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으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같은 바이러스의 공격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30년 넘게 바이러스를 연구한 그는 1994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뎅기열을 처음 진단하는 등 바이러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자키 교수는 “야생동물을 먹는 식습관이 남아있는 중국과 서아프리카에서 각각 우한 폐렴과 에볼라가 발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식습관을 바꾸고 불필요한 개척 작업을 줄여 야생동물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도시 개발, 농업과 목축 용지 확보를 위해 밀림을 파괴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자키 교수는 “밀림을 없애는 과정에서 사람과 가축 모두 야생 환경에 있던 다양한 바이러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다. 경제적 이유로 개발을 완전히 멈출 수 없다면 최소한 위험 예방 교육 및 안전체계 구축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키 교수는 우한 폐렴이 최소 올해 여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사람 1명이 몇 명까지 전파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확산 수치(reproduction number)’가 연일 상승세다. 세계 곳곳에서도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단기간에 진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또 중동과 아프리카의 관문 역할을 하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폐렴 확진 환자가 발생한 만큼 중동에서 비교적 경제력이 우수한 UAE, 사우디 같은 나라들이 추가 전파를 막는 데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한 폐렴 같은 대규모 감염병 위기는 상대적으로 방역 체계가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자키 교수는 “한국처럼 보건의료 역량이 우수하면서 과거 위기를 겪은 나라들이 개도국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태 종식 후 체계적인 예방 및 대응 매뉴얼을 만든 뒤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를 통해 다른 나라들과 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세계화 시대에 감염병은 단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공통 과제”라고 강조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중동평화구상(평화구상)’을 공개했다. 트럼프 본인은 ‘세기의 협상’이라 자화자찬했지만 친(親)이스라엘적인 데다 팔레스타인이 반발하고 있어 실행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을 방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백악관에서 이 구상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은 인정하되 4년간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을 완전한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독립국가 수립 과정에서 예루살렘 동쪽에 수도를 건설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500억 달러(약 60조 원)에 가까운 경제개발 기금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현실적인 2국가 체제 해법’이라며 “양쪽 모두가 윈윈하는 세기의 협상이다. 지난 70년간 (문제 해결에)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한 팔레스타인이 얻을 마지막 기회”라고 자평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현실적인 길을 제시함으로써 남들이 하지 못한 올바른 균형을 맞췄다”고 호응했다. 하지만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은 “예루살렘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민족은 미국의 구상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낼 것”이라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팔레스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중심으로 독실한 유대인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평화구상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도 평화구상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인정은 팔레스타인으로선 독립국가 수립 시 영토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지역의 70∼80%만 챙기게 된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정착촌을 불법으로 보는 국제법을 어기면서까지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예루살렘 동쪽 지역을 미래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이슬람교의 3대 성지인 데다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했던 동예루살렘 대신 예루살렘 동쪽 바깥에 수도를 만들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내용을 설명하며 동예루살렘(East Jerusalem) 대신 동쪽 예루살렘(Eastern Jerusalem)이란 표현을 썼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이스라엘 주권은 확실하게, 팔레스타인 주권은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다. 팔레스타인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에도 이슬람권의 반응은 비교적 조용하다. 미국과 불편한 사이인 이란과 터키가 강한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부분의 친미 국가들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오만 등은 주미대사가 백악관 행사장을 찾아 사실상 이번 조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27일 아프가니스탄 동부 가즈니에서 추락한 최신식 미국 군용기를 놓고 ‘사고’라 주장하는 미국과 ‘격추’라고 맞서는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의 진실 공방이 거세다. 특히 사고기에 3일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 작전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탑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러시아 군사전문매체 베테랑스투데이, 미 뉴욕타임스(NYT) 등은 ‘아야톨라 마이크’란 별명으로 유명한 CIA 요원 마이클 디앤드리아가 추락한 E-11A 항공기에 탑승했다고 전했다. 40년 넘게 CIA에서 근무한 디앤드리아는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CIA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그에게 시아파 최고 성직자를 뜻하는 ‘아야톨라’가 포함된 별명이 붙은 이유다. 러시아 소식통은 “디앤드리아가 탄 사고기는 CIA의 ‘움직이는 사령부’였다. 비행기 안의 모든 장비, 서류, 최첨단 정보가 탈레반의 손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미국은 아직 탑승 인원 및 사망 여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가즈니를 장악한 탈레반 역시 아프간 중앙정부의 조사를 저지하고 있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서니 레깃 미군 대변인은 27일 “사고기가 적의 공격으로 추락했다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추락 지점에서 6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해당 항공기가 첩보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격추했고 사망자 중 미군 고위 관계자도 포함됐다”고 맞섰다. 아프간 정부 당국자는 28일 “아프간군이 추락 지점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탈레반과 무력 충돌이 있었다”고 밝혔다. 캐나다 군수업체 봉바르디에가 제작한 E-11A는 미군에 4대밖에 없는 특수 통신용 항공기다. 미 공군이 전자감시 임무를 진행할 때 주로 쓰이며 야전에서 작전 중인 지상군과 지휘본부를 연결해 ‘하늘의 와이파이’로 불린다. 민항기와 겉모습이 비슷해 종종 민항기로 오인된다. 탈레반 공격에 따른 사고기 추락 및 디앤드리아의 사망이 최종 확인되면 미국과 탈레반의 아프간 종전 협상에도 후폭풍이 예상된다. ‘시아파 맹주’ 이란은 탈레반과 종파가 다르지만 △아프간 내 시아파 보호 △아프간 난민의 이란 유입 억제 △아프간 내 미군 활동 견제 등을 위해 탈레반과도 일정 부분 협력하고 있다. 다만 BBC는 과거에도 탈레반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장하기 위해 종종 거짓 선전을 했다며 이들이 진짜 사고기를 격추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최신 군용기인 E-11A를 격추하려면 대공 미사일이 필수적인데 탈레반이 이 미사일을 보유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조유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세기의 협상’으로 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팔) 분쟁 해결을 위한 ‘중동평화 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구상안에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고려한 내용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중동지역 긴장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정적인 중도 야당 청백당 베니 간츠 대표를 만나 중동평화 구상을 논의할 예정이다. 두 사람은 올해 3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중동평화 구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주도해 왔다. 쿠슈너는 독실한 유대교인으로 극우 성향인 네타냐후 총리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자연히 구상안은 이-팔 공존을 강조하는 내용과는 다를 가능성이 높다. 외신은 구상안에 팔레스타인 자치령 지역의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를 인정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곤경에 빠진 네타냐후 총리를 돕기 위해 구상안을 발표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선 전에 친이스라엘 내용이 담긴 구상안이 공개되면 부패 혐의 등으로 정치생명에 빨간불이 켜진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역사를 만들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팔레스타인 측은 반발하고 나섰다. 사입 우라이까트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대표는 “(구상안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일시적인 점령을 영구 점령으로 바꿀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2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무장 반군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중동부 가즈니 주에서 비행기 한 대가 추락했다고 AP통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탈레반은 자신들이 미군 비행기를 격추시켜 미군 고위 장교 등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측 미군 장교 사망을 부인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사고가 보도된 후 성명을 통해 “정보 임무를 수행하던 비행기가 가즈니주 데흐야크 지구의 사도 켈 지역에서 추락했다”며 “고위 장교를 포함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고로) 미 고위 장교가 사망하지 않았다”며 “여전히 추락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미군 중 누구로부터도 (사고 관련) 즉각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아리프 누리 가즈니 주정부 대변인은 “사고기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남서쪽에서 130km 떨어진 데하크 지구에서 현지 시간 오후 1시 10분경 추락했다”면서 “추락 지점이 탈레반이 통제하는 지역에 있다”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사고 발표 당시 가즈니 주 관계자들은 추락기가 국영항공인 아리아나 아프간항공 소속 보잉기라고 밝혔지만, 항공사 측은 “모든 비행이 정상적으로 완료됐다”며 추락설을 부인하는 성명을 냈다. 가즈니주의 경찰은 BBC에 “사상자에 대한 정보는 없으며 비행기가 추락한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해당 추락이 미국과 관련돼 있다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가즈니 주정부 대변인을 인용해 “목격담에 따르면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으며, 조종사의 시신만 간신히 알아볼 정도다. 잔해와 시신의 형태로 미뤄 아프가니스탄 사람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가즈니주의 언론인 타리크 가즈니왈은 AP통신에 “사고기 추락지점이 미군기지로부터 10km 떨어진 곳”이라고 전했다. 현재 소셜네트워크(SNS) 상에는 사고 현장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항공 애호가들은 잔해의 표식과 등록번호 등을 토대로 추락한 항공기가 미군의 감시·정찰용 항공기인 E-11A로 추정했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 관계자는 BBC에 “현 시점에는 미군 자산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만일 탈레반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미-탈레반 간 아프간 평화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말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2018년 중반부터 미국과 탈레반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을 진행 중이나 협상 중에도 아프간 내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세기의 협상’으로 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팔) 분쟁 해결을 위한 ‘중동평화 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구상안에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고려한 내용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중동지역 긴장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6일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정적인 중도 야당 청백당 베니 간츠 대표를 만나 중동평화 구상을 논의할 예정이다. 두 사람은 올해 3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중동평화 구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주도해 왔다. 쿠슈너는 독실한 유대교인으로 극우 성향인 네타냐후 총리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자연히 구상안은 이-팔 공존을 강조하는 내용과는 다를 가능성이 높다. 외신은 구상안에 팔레스타인 자치령 지역의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를 인정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곤경에 빠진 네타냐후 총리를 돕기 위해 구상안을 발표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선 전에 친이스라엘 내용이 담긴 구상안이 총선 전에 공개되면 부패 혐의 등으로 정치생명에 빨간불이 켜진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역사를 만들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팔레스타인 측은 반발하고 나섰다. 사입 우라이까트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대표는 “(구상안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일시적인 점령을 영구 점령으로 바꿀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AFP는 전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이스라엘의 인공지능(AI) 산업 경쟁력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같은 인근 걸프지역 아랍 산유국의 위기감을 자극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정보기술(IT)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경기 둔화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 셰일가스 같은 차세대 에너지의 등장으로 탈(脫)석유화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AI를 주목하고 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AI 산업을 단기간에 키우겠다는 야심이 대단하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UAE다. UAE는 2017년 정부 내 AI 업무를 총괄하는 장관급 자리를 신설했다. 지난해에는 수도 아부다비에 ‘무함마드 빈 자이드 AI 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중동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AI 전문대학원이다. 컴퓨터비전, 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같은 AI 핵심 분야의 전공을 석·박사 과정으로 개설했다. UAE에서 전자상거래 기업 ‘아부하킴’을 운영하는 유덕영 대표는 “UAE는 자국 차량공유 업체 ‘카림’과 전자상거래 업체 ‘수크닷컴’이 높은 가격에 미국 우버와 아마존에 인수되는 것을 경험했다. 이로 인해 기술 기반 창업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며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국제적인 허브로 키웠듯 AI 산업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버는 ‘중동의 우버’ 카림을 지난해 3월 31억 달러에 사들였다. 아마존 역시 ‘중동의 아마존’ 수크닷컴을 2017년 6억 달러에 인수했다. 사우디는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를 이용해 AI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우고 있다. 최근 아람코는 석유회사란 명칭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AI에 파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다란 본사에 ‘4차 산업혁명센터’를 설립했다. 아람코는 여기서 개발한 AI 기술로 주요 생산시설의 △오염물질 배출 △원유 수송 현황 △사고 파악 및 예측 관련 정보를 분석한다. AI 기술이 적용된 로봇과 무인기(드론)도 개발해 생산시설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아람코 관계자는 “석유화학뿐 아니라 AI에서도 사우디의 R&D를 선도하고 있다. 최근 아람코가 등록한 특허 중 상당수가 AI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중동의 교육허브를 지향하는 카타르는 미국 대학 중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카네기멜런대 분교(컴퓨터과학, 경영학, 생명과학 전공)를 2004년 수도 도하에 유치했다. 이곳에는 AI 관련 전공과목 및 연구 프로그램이 대거 개설됐다. 카타르는 2009년 설립한 R&D 및 창업기관인 ‘카타르 과학기술파크(QSTP)’를 통해서도 AI 역량을 키워 나가고 있다.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지난해 12월 16일 이스라엘 경제 중심지 텔아비브에 위치한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카티카AI’를 찾았다. 기술자들이 실험용 자동차 안에 설치된 모니터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화면에는 해당 자동차가 주행 중 인식했던 다른 자동차와 사람이 각각 다른 색깔로 나타났다. 주행 거리와 속도 변화 등을 담은 각종 데이터도 빼곡하게 표시됐다. 카티카AI는 이스라엘의 유명 AI 기업 ‘코티카’에서 지난해 9월 분사했다. 이 회사의 자율주행 기술은 단순히 도로에 있는 물체를 인식하는 수준이 아니라 후속 상황을 예측해 속도 조절을 하고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령 주택가 도로에서 스쿨버스와 마주치면 곧 어린이들이 버스에서 내린다는 점을 감안해 자동차가 저절로 속도를 줄이는 식이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카티카는 분사 직후부터 일본 도요타, 독일 BMW 등 세계적 자동차회사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카리나 오디나에브 코티카 공동창업자 겸 카티카AI 이사는 “2020년 2, 3분기에 우리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를 유럽 및 일본의 유명 자동차 기업과 함께 생산하고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AI 스타트업의 보고(寶庫) ‘창업국가’란 별명이 붙을 만큼 수많은 스타트업이 있는 이스라엘에서는 AI 산업 또한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선도한다. 독일 벤처투자사인 아스가르트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미국(1393개), 중국(383개) 다음으로 많은 362개의 AI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인텔 같은 세계적 정보기술(IT) 대기업도 이스라엘 AI 산업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연구개발(R&D)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직접 투자와 인재 유치도 활발하다. 한국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도 현지 AI 스타트업이 보유한 우수한 기술을 발굴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인텔은 2017년 3월 153억 달러(약 17조8500억 원)에 AI 기반자율주행자동차 스타트업 ‘모빌아이’를 사들였다. 지난해 12월에는 AI 반도체 스타트업 ‘하바나 랩스’도 20억 달러(약 2조3330억 원)에 인수했다. 미국 의료기기 기업 메드트로닉은 2018년 12월 AI 기반 수술용 로봇 스타트업 ‘마조 로보틱스’를 16억 달러(약 1조8670억 원)에 사들였다. 영국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는 AI 기반 슈퍼마켓 매장 관리 기술을 개발하는 ‘트리고’와 미래형 무인 슈퍼마켓을 개발하고 있다. 란 나탄존 이스라엘 외교부 국가브랜드팀장은 “스포츠로 치면 ‘1부 리그’ 프로팀의 스카우트들이 ‘2부 리그’와 ‘대학 리그’의 우수한 팀과 협력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하위 리그의 유망주를 일찌감치 비교적 싼 가격에 발굴해 인재와 기술을 입도선매(立稻先賣) 하겠다는 의도다. 나탄존 팀장은 “예전에는 서구 대기업이 사이버보안 스타트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AI 스타트업이 단연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이 창업·기술 선도 이스라엘의 AI 스타트업 열기를 주도하는 곳은 대학이다. ‘모빌아이’ 창업자이자 ‘자율주행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암논 샤슈아 히브리대 컴퓨터과학과 석좌교수(60)처럼 AI의 성장 가능성에 매료돼 창업을 시도하는 교수들이 많다. 코티카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조시 지비 역시 테크니온대 컴퓨터학과 교수다. 샤슈아 교수는 인공신경망(딥러닝)과 컴퓨터 비전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모빌아이 창업 전 3차원 비(非)파괴 검사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해 대기업에 매각했고 이후 모빌아이를 창업해 인텔에 팔았다. 그는 지금도 AI 기반 웨어러블 헬스기기 스타트업 ‘오캠’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오캠은 시각장애인에게 문자, 사람 얼굴, 색깔 등을 인식해 알려주는 22.5g 무게의 안경 부착용 웨어러블 헬스기기 ‘마이아이2’를 개발했다. 샤슈아 교수는 “이스라엘 교수 중에는 관련 연구를 통해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AI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들도 정책적으로 이를 지원하고 있다. 이샤크 벤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융합사이버연구센터장은 “AI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커 대학도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려고 한다”고 말했다. 소속 교수나 학생이 창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 학교 인지도가 올라가고, 기부금 등 투자 유치도 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버텍스벤처스의 야나이 오론 파트너는 “이스라엘이 그간 강세를 보여 온 IT, 정보보안, 소프트웨어 산업이 AI와 연관성이 높다. 기존 산업과 AI가 자연스럽게 융합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정부도 정책 지원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지에서는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추진하는 국가 차원의 AI 성장 전략 즉 ‘AI 이니셔티브’가 빠르면 상반기 중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텔아비브·예루살렘=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사진)가 ‘와츠앱’ 메신저를 통해 세계 최고 부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주의 휴대전화를 해킹한 시점으로 알려진 2018년 5월 직전에 서구 최고위 인사를 대거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다른 유명인의 휴대전화도 해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22일 가디언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투자 유치를 위해 2018년 3월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 등을 방문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외교장관(현 총리),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같은 거물 인사를 줄줄이 만났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애틀랜틱그룹 창업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MS CEO 등 세계적 경영자와도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들과 와츠앱으로 대화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기술(IT) 기기 사용을 즐기고 측근 및 지인과 와츠앱으로 자주 소통하는 그의 성향을 고려할 때 다른 이의 휴대전화도 해킹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무함마드 왕세자와 각별한 사이인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의 휴대전화 해킹 가능성이 거론된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쿠슈너는 와츠앱으로 자주 소통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이날 유엔 특별보고관은 해킹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유엔은 이번 사태가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당시 카슈끄지가 베이조스 창업주가 소유한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왕실 비판 글을 쓰는 것을 막기 위해 배후에서 살해를 조종했다고 지목받았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겉으로는 개혁 군주인 척하지만 중세 전제 군주 못지않은 폭정을 휘두른다’ ‘국제 사회가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의식해 카슈끄지 살해를 방관한다’는 논란이 거셌다. 쿠슈너 고문은 집권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사우디 제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적극 저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카슈끄지 사태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더해져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해킹 사실이 드러나면 핵심 동맹인 미국과 사우디 관계에도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이미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 여론전을 진행해 여러 나라 및 기업과 갈등을 빚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지난해 8월 사우디 정부 차원에서 여론 조작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난 계정 350개를 폐쇄했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지난해 12월 18일 이스라엘 경제 중심지 텔아비브에 위치한 텔아비브대(TAU). 정문을 지나 캠퍼스 안쪽으로 200m쯤 들어가자 모래색 건물들 사이로 거대한 트로이 목마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청동이나 대리석이 아닌 컴퓨터와 휴대전화 부품들로 만들어진 조형물이었다. 현지에선 ‘사이버 트로이 목마’로 불린다. TAU가 매년 주최하는 세계적인 정보보안 기술 포럼인 ‘내셔널사이버위크’를 기념하기 위해 2016년 세워졌다. TAU, 나아가 이스라엘이 강점을 보이고 선도해온 정보보안 분야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6m 높이에 무게 2t인 이 조형물에 쓰인 부품들은 모두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는 컴퓨터와 휴대전화에서 가져왔다. 이스라엘 정보보안 산업의 경쟁력은 지난해 말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검찰이 백원우 전 대통령민정비서관 밑에서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했던 고(故) A 씨가 사용하던 아이폰X의 잠금장치를 풀기 위해 이스라엘 정보보안 기업 ‘셀레브라이트’ 장비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테러와 마약 등 강력범죄자의 스마트폰을 분석할 때 셀레브라이트 장비를 애용할 정도로 이 기업의 기술력이 인정받고 있다. 인구 900만 명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어떻게 이처럼 정보보안 분야에서 뛰어난 기업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적대 관계인 아랍국도 이스라엘 제품 사용 현지에서 만난 이스라엘 기업인과 정보보안 분야 전문가들은 기자에게 “셀레브라이트는 이스라엘의 유명 기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기업들이 매우 많다”고 자랑했다. 실제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 불릴 만큼 첨단 과학기술 기반 창업이 활발한 이스라엘에서 정보보안 분야는 특히 전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시장 조사 회사 IVC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스라엘에는 439개의 정보보안 관련 기업이 있다. 세계 500대 정보보안 기업 배출 숫자로는 미국(354개)에 이어 2위(42개)다. 2008∼2018년 이스라엘 정보보안 기업들이 유치한 투자금은 약 44억2000만 달러(약 5조1500억 원)다. 또 이스라엘 정보보안 기업들이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도 10%에 달한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약 70%에 달해 사실상 정보보안 산업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우수함이 단연 두드러진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정보보안 관련 상품은 적대 관계인 이웃 아랍 국가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현지 유명 벤처투자사(VC)인 버텍스벤처스의 야나이 오론 파트너는 “뛰어난 역량을 갖춘 창업자들이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설립하고 있다”며 “유망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이를 세계적 대기업이 인수하고, 이를 통해 얻은 막대한 돈으로 기존 창업주가 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 10월 애플리케이션 및 데이터 보안 기업인 ‘임페르바’는 21억 달러(약 2조4453억 원)에 유명 사모펀드 토마브라보에 인수됐다. 지난해 2월 미국 유명 보안업체 팰로앨토네트워크스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정보보안 기술을 개발하는 ‘데미스토’를 5억6000만 달러(약 6523억 원)에 인수했다. ○ 사이버전 담당하는 8200부대 복무 후 업계 진출 이스라엘의 정보보안 산업 경쟁력을 높여주는 또 다른 원인으로 ‘첨단 군대’가 꼽힌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때부터 과학기술을 이용한 전투력 강화에 공을 들여 왔다. 주변 아랍 국가에 비해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고, 국토도 좁기에 양적인 전투력 증강은 한계가 있다. ‘양’보다 ‘질’로 국가 안보를 지키겠다는 신념이 투철하다. 1952년 설립한 ‘8200부대’는 이스라엘이 국가 차원에서 정보보안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과학과 수학 인재가 주로 복무하는 특수부대로 사이버 전쟁을 담당한다. 적의 정보를 파악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정보를 보호하는 게 목적이다. 정보보안에 관심이 많은 이스라엘의 젊은 영재들은 고교 졸업 후 이 부대에서 2, 3년간 군 복무를 한다. 이후 히브리대, 텔아비브대, 테크니온 같은 명문대에서 정보기술(IT) 관련 학과를 전공한 다음 산업계로 진출한다. 군(軍)→학(學)→산(産)으로 착착 이어지는 체계가 설립된 셈이다. 특정 기업이 해킹을 비롯한 각종 정보보안 문제를 미리 탐지할 수 있도록 하고,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진화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사이버리즌’은 직원 대부분이 8200부대 출신이다. 창업 초기 활동했던 50여 명 중 90% 이상이 이 부대에서 복무했다. 500여 명이 근무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현재도 기술자 200명 중 절반이 같은 부대 출신이다. 특히 핵심 연구개발(R&D) 부서 인력은 전원 8200부대를 나왔다. ‘8200부대 동문 기업’으로도 불리는 이 회사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미국 록히드마틴으로부터 각각 3억5000만 달러(약 4075억 원), 2500만 달러(약 292억 원)를 투자받았다. 굴지의 미국과 일본 대기업이 투자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요시 나르 사이버리즌 공동창업자 겸 최고비전책임자(CVO)는 “8200부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해킹을 막는다. 특히 아직 발생하지 않은 형태의 해킹도 예측한다. 정보보안 분야에서 8200부대만큼 경쟁력 있는 인력을 꾸준히 확보해 교육한 뒤 다시 배출하는 조직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고교 동문, 대학 동문처럼 이스라엘에서는 소속 부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네트워킹이 펼쳐진다. 남녀가 모두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 데다 젊은 나이에 전장(戰場)에서 끈끈한 동료애를 쌓은 경험이 사회에서도 이어진다. 8200부대 동문회에서 여성 창업가 지원 활동을 하는 케렌 헤르스코비치 씨는 “공식 모임은 매달 열지만 이와 별도로 삼삼오오 모일 때도 많다. 부대원 대부분이 지금도 정보보안 기업에서 근무하기에 기술 협력, 투자, 채용 등 업무에 관한 다양한 정보 교류를 하고 업계 동향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정부도 공격적 지원 정부도 정보보안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010년 보안 전문가들을 모아 국가 사이버보안 정책을 만드는 태스크포스(TF)를 설립했다. 이후 총리실 산하에 정보보안 정책을 이끄는 조직 국가사이버국도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2014년부터 벤구리온대가 자리 잡고 있는 베에르셰바 지역을 정보보안 산업 중심지로 집중 육성해 왔다. 당시 벤구리온대 캠퍼스를 제외하고는 딱히 특별한 게 없었던 이 지역에는 현재 IBM, 오라클 같은 세계적 대기업이 정보보안 관련 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도 속속 모여들고 있다. 란 나탄존 이스라엘 국가브랜드팀장은 “대학, 기업, 군대가 함께 정보보안 관련 R&D를 진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산업 허브”라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실용 연구를 강조하는 이스라엘 대학의 연구 문화도 정보보안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샤크 벤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융합사이버리서치센터장은 “학계에서도 이스라엘을 상대로 해킹을 시도하는 것을 막는 기술을 적극 개발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은 인력들이 졸업한 뒤 정보보안 업계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텔아비브에서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미국 행정부는 21일(현지 시간)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독자 파병 결정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와 군 주무 부처인 국방부 입장은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이날 한국의 파병 결정에 대한 동아일보의 질의에 “미국은 청해부대의 임무를 호르무즈 해협으로 확대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을 환영하고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결정은 한미 동맹의 공고함 및 글로벌 안보 우려에 대해 협력하기로 한 우리의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무부는 ‘파병’ 대신 한국이 사용해온 ‘청해부대의 임무 확대’ 등 표현을 사용했다. 국방부는 데이비드 이스트번 대변인 명의로 “한국이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을 지원함으로써 중동에서 항행의 자유 보장을 돕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국무부와 달리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호위연합인 IMSC의 지원을 언급한 것은 이에 대한 동맹의 지지와 참여를 필요로 하는 국방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란은 한국의 결정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 이날 트위터에 “한국 국방부는 페르시아만의 역사적 명칭도 잘 모르면서 무슨 지식과 정당성으로 이 지역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한국 국방부가 “청해부대 파견지역은 ‘아라비아·페르시아만’ 일대까지 확대된다”고 발표한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 통상 이 지역은 페르시아만으로 통용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아랍국가들은 ‘아라비아만’으로 쓴다. 이란은 외국에서 아라비아·페르시아만이라고 표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정부의 청해부대를 활용한 호르무즈 해협 독자 파병안에 대해 이란은 공개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21일 이란 반관영 메르통신에 따르면 아바스 무사비 외교부 대변인은 전일 취재진에 “한국 정부가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부대의 일부를 이 지역(페르시아만)으로 파견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미국의 호위 연합체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이란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한국 측에 전했다”고 밝혔다. 이란이 한국의 파병에 즉각 불쾌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외교 당국자는 21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 주말경 외교 경로를 통해 (파병 결정을) 전달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지역에 외국군 선박이 진입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외교 당국은 이란의 추가적인 이해를 구하기 위해 고위 당국자 파견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물밑에선 이란도 ‘이해한다’는 반응을 일부 보였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파병 반대 뜻을 밝혔으나 동시에 ‘한국이 신경 써 준 부분이 있다’는 기류를 내비쳤다고 한다. 다만 그 반대급부로 인도적 물품에 대한 교역 재개를 한국에 강력하게 요청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정부 파병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우선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자는 21일 “미국은 우리의 결정에 환영하고 기대한다는 수준의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한국이 파병 결정을 내린 것 자체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는 기류”라고 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론 방위비 협상과 호르무즈 파병은 완전히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동맹 기여 부분을 미국에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도 파병 결정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기재 record@donga.com /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 신규진 기자}

이슬람교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차기 지도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20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복수의 영국 정보기관을 인용해 지난해 10월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던 중 자폭해 사망한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뒤를 이어 아미르 무함마드 압둘 라흐만 알마울리 알살비(사진)가 IS의 새 수장에 임명됐다고 전했다. IS는 바그다디 사망 후 후계자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라는 가명을 공표한 탓에 그간 살비의 신상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이라크 탈아파르의 투르크멘계 가정에서 태어난 살비는 IS 최고 지도부 인사로는 드물게 비(非)아랍계다. 2004년 테러단체 알카에다에 협력한 혐의로 이라크 남부 미군기지 부카캠프에 수감됐을 때 바그다디를 만나 의기투합해 함께 IS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모술대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전공한 그는 IS 테러가 정당하다고 주장해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극단적인 성향으로 야지디족 여성 성노예 학대를 주도했다고 한다. 바그다디 사망 전인 지난해 8월 후임으로 임명됐으며, 현재 모술 산간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18일 리비아 동부 유전지대를 장악한 군벌 리비아국민군(LNA) 측이 리비아통합정부(GNA)의 원유 수출항을 봉쇄해 리비아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미국, 러시아, 터키, 독일, 프랑스 등 11개국이 개최하는 ‘리비아 사태 중재 국제회의’를 하루 앞두고 일어나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베를린 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사실상 파장 분위기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LNA와 GNA는 1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휴전 협상을 펼쳤지만 견해 차이로 이미 실패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LNA를 지지하는 무장단체는 최근 터키가 GNA를 돕기 위해 2000명을 파병한 것에 항의해 브레가, 라스라누프, 하리가, 주에이티나, 시드라 항구 등을 봉쇄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리비아의 원유 수출량이 하루 13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급감했고 손실 금액도 하루 5500만 달러(약 640억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GNA는 부패와 무능, 과도한 이슬람 원리주의 표방 등으로 국민 지지를 얻지 못했고 수도 트리폴리 인근에서만 명맥을 유지해왔다. 세속주의를 주창하는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77)이 이끄는 LNA는 ‘돈줄’인 유전지대를 장악하며 빠르게 세를 불렸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2017년 7월 이슬람국가(IS)가 장악했던 2대 도시 벵가지를 탈환하며 동부 지역을 안정시켰다. 민심을 얻은 그는 여세를 몰아 트리폴리까지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왔다. 리비아를 둘러싼 주요국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것도 혼란을 부추긴다. 미국은 겉으로는 유엔이 인정한 GNA를 지지하면서도 ‘석유’를 이유로 하프타르와도 깊은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프타르는 카다피 독재 시절인 1990년대 미국으로 망명해 시민권을 얻었고 카다피 사후 귀국해 세력을 확장했다. 오스만제국 시절 리비아 북부를 지배했던 터키, 20세기 초 리비아를 식민통치했던 이탈리아,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 정치단체인 무슬림형제단과 우호적인 관계인 카타르는 GNA를 지지한다. 반면 러시아, 프랑스 등은 석유와 첨단 무기 판매 등을 이유로 LNA를 두둔한다. 세속주의 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리비아와 인접한 이집트는 GNA의 이슬람 원리주의에 부담을 느껴 LNA 편에 서 있다. 유럽 각국은 리비아 내전으로 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유럽으로 건너오는 난민은 연간 100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리비아마저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이 더 늘어나고 있다. BBC 등은 “리비아 내전이 멈추지 않으면 폭증하는 난민으로 전 유럽이 더 심각한 갈등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3일 미국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하고,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하면서 양국은 극단적인 갈등을 겪었다. 사태의 배경에 중동 시아파 벨트, 즉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사실상 이란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나라들을 계속 좌지우지하려는 이란과 이를 묵과할 수 없다는 미국의 대립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핵 개발 억제에만 주력했던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미 행정부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출범 직후부터 줄곧 이란의 ‘시아파 벨트’ 전략을 핵 개발 못지않은 중동의 주요 위협으로 여기고 대응해 왔다. 솔레이마니는 이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시아파가 집권한 이라크에서는 “장관 인사도 솔레이마니의 결재를 받아야 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양측의 갈등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솔레이마니를 추종하는 각국 시아파 무장조직이 국지적 테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을 필두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친미 성향 수니파 중동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선 앞두고 시아파 벨트 압박 강화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와 달리 유독 시아파 벨트에 부정적인 이유는 그의 핵심 지지 기반이 복음주의 기독교인, 보수 성향 유대인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은 ‘성지(聖地)’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야 할 나라’와 ‘작은 사탄’으로 표현하는 이란을 극도로 적대시한다. 이들은 오바마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이란 핵합의가 이란에 지나치게 유리하며 미국의 힘과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11월 대선 승리가 지상 과제인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핵심 지지 기반인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처지다. 북한 비핵화 협상, 베네수엘라 사태 등 외교안보 핵심 정책들에서 뚜렷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강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최고위 인사인 솔레이마니를 제3국인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공개 사살한 것은 핵심 지지층에 어필하는 최고의 카드로 꼽힌다. 세계 최강대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해결사’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스라엘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는 한 유대계 미국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보수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원하는 중동정책을 구사한다. 11월 대선에서도 이런 성향의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지지하고 그에게 많은 기부를 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잘 알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란을 더 압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 유달리 유대계 핵심 인사가 많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39),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58) 등이 대표적이다. 원래 기독교인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39)도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유대교로 개종했다. 지난해 9월 사퇴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72) 역시 부시 행정부 시절 이란, 북한,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고 3개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했을 정도로 반이란 성향이 강하다.○ ‘완성된 시아파 벨트’ 포기 못 하는 이란 트럼프 행정부가 아무리 압박 강도를 높여도 이란은 시아파 벨트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시아파는 약 12억 무슬림 중 10∼15%에 불과한 소수파다. 이 소수파의 맹주인 이란 입장에서는 ‘시아파 벨트를 포기하는 순간 이란도 같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란은 시아파 벨트를 통해 상당한 정치·안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카타입헤즈볼라(KH)를 필두로 한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쿠드스군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란은 이들을 통해 굳이 자국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서도 ‘주적(主敵)’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또 자국 국민과 영토에 피해를 입히지 않고 타국 땅에서 수니파와 ‘대리전’을 치르는 일도 용이하다.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과 사우디, UAE가 지원하는 정부군의 대립으로 2015년 이후 6년째 내전 중인 예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아파 벨트 덕분에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도 비교적 손쉽게 격퇴할 수 있었다. 2014년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자칭 ‘칼리프 국가’를 건설했다고 주장할 때 IS를 저지하는 지상전을 주로 담당한 인력은 이란의 지원을 받은 시아파 무장단체였다. 미국 등 서방은 사실상 공군만 지원했고 실질적인 효과가 큰 지상전은 인명 피해 등을 우려해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IS 피해를 겪은 이들 나라에서는 이란과 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호의적 여론이 높아졌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단체들은 대부분 현지 정당, 주요 정치인들과 깊숙이 연을 맺고 있다. 시위, 여론, 선거 같은 비(非)군사적 방법으로 시아파 벨트 내 국가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라크와 레바논은 이미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상당수가 친이란 성향이다. 중동 외교 소식통은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서구의 제재가 엄청나다. 또 개발을 완료한다 해도 이를 손쉽게 사용하기도 어렵다. 반면 시아파 벨트는 핵개발보다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이미 완성됐을뿐더러 그 효과도 입증됐다. 이란 입장에서는 포기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 시아파 벨트 풀뿌리 민심은 반정부·반이란 친이란 성향인 시아파 벨트 국가의 지도층과 달리 국민들의 민심은 반정부, 반이란 성향이라는 점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에서는 고질적 경제난으로 인한 민생고, 이란의 과도한 내정 간섭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이들은 “국민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데도 집권 세력은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권력 유지에만 골몰한다. 이로 인해 개혁이 미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란 내부에서도 “시아파 벨트 구축에만 바빠 정작 국민들의 삶은 도외시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유류세 인상으로 이란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이유다. 반정부 시위로 이란의 시아파 벨트 장악력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와중에 발생한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는 잠시 이 지역의 반미 여론을 결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의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인 격추로 여론은 반전됐다. 이들 국가의 민생고가 워낙 심한 데다 시위 형태도 상당히 폭력적이어서 향후 반정부 시위와 각국 정부의 진압 양상에 따라 더 큰 후폭풍이 몰아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와중에 레바논과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단체들은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미국에 대한 복수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다. KH가 지난해 12월 27일 이라크 미군기지를 공격해 미국인 1명을 숨지게 한 사건에서 보듯 이들이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면 미국 역시 보복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 사우디, UAE 등도 직간접적으로 이런 대립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우디는 이미 지난해 9월 예멘 후티 반군 및 이란이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격으로 국영 석유사 아람코의 생산시설이 파괴되기도 했다. 예멘의 정정 불안도 고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암살할 때 쿠드스군 자금 총책인 압둘 레자 샤흘라이도 예멘 수도 사나에서 동시에 제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수십 개 가명으로 활동하는 샤흘라이를 잡기 위해 1500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샤흘라이를 필두로 예멘에서 활동하는 쿠드스군과 반미 세력들이 언제든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로이터통신 등은 18일(현지 시간) 후티 반군이 탄도미사일과 드론 등을 사용해 예멘 사나 인근의 정부군 훈련소를 공격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군인 60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미국과 이란 정부가 모두 상당 기간 자국 지지층을 위해 시아파 벨트를 이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선을 위해 대(對)이란 강경책을 고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혁명수비대 역시 경제난과 민항기 오인 격추에 따른 반발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외부의 적’ 미국에 화살을 돌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이란 정부가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를 인정한 뒤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사흘째 이어졌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경찰이 실탄까지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와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12일 수도 테헤란 중심부인 아자디광장, 테헤란대, 샤히드 베헤슈티공대 등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케르만샤, 시라즈, 타브리즈, 이스파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반정부 단체 국민저항위원회(NCRI)는 이날 최소 17개 주(州)에서 시위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이란 정부가 여객기 추락 초기에 격추 사실을 은폐한 것에 분노하며 이례적으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퇴진을 요구했다.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일부는 실탄까지 발사하며 강경하게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가디언은 테헤란 주요 지하철역에 최루가스가 발사됐고 이 때문에 일부 시위대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13일에도 이란의 대학들에서 시위가 이어졌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시위가 더욱 확산되면 이란 정부가 무차별 진압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란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경제난 등을 이유로 지난해 11월 15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진압 과정에서 2주일 만에 1500명이 숨졌다. 이런 가운데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57kg급에서 동메달을 딴 이란 최초의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 키미아 알리자데(22)는 아예 망명을 선언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위선적이고 거짓말쟁이이며 정의롭지 않고 겉치레뿐인 이란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 이란을 떠나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그를 ‘올해의 세계 여성 100인’에 선정한 영국 BBC는 알리자데가 현재 네덜란드에 머물며 훈련 중이라고 전했다. 이번 반정부 시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알리자데의 망명 선언이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방 국가들은 이란을 향해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협상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렸지만 핵무기는 안 된다. 시위대를 죽이지 말라”며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도 공동성명을 통해 “이란이 핵합의에 어긋나는 모든 조처를 되돌리고 합의를 완전히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중동의 안정을 위해 이란과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군 병력이 주둔 중인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의 알발라드 공군기지에서 이날 또다시 로켓포 공격이 발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제 카투사 로켓포 8발이 떨어졌고, 장교 2명을 포함한 이라크군 4명이 다쳤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8일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한 뒤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추가 보복이 없을 것’이라는 비밀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했고, 그 결과 군사적 충돌이 확대되지 않았다고 전했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