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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만치니의 작품이 ‘공기 반, 소리 반’으로 터치하는 감성이라면, 조반니 볼디니는 똑떨어지는 맛이 있습니다. 대중적 언어로 말하면 만치니는 ‘JYP 스타일’, 볼디니는 ‘SM 스타일’이지요.”‘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 전시가 열리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그림을 유심히 감상하던 관객들이 설명을 듣고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친근하고 쉽게 예술 작품을 해설해 관객을 몰고 다니는 ‘전시장의 피리 부는 사나이’, 국내에서 ‘1호 전업 도슨트’로 불리는 김찬용 도슨트다. 그는 전시장 입구에 걸린 두 초상화를 SM과 JYP에 빗댄 뒤엔 “와인을 마실 때도 보디감과 드라이함 같은 차이를 즐기지 않느냐”며 “그림도 비교해서 감상하면 더 즐겁게 안목을 넓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막 열흘째인 25일 벌써 관객 2만 명이 다녀간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월∼금요일 매일 3차례 무료 도슨트를 진행하고 있다. 큐레이터가 작품을 연구하고 나름의 맥락에 따라 전시장에 배치한다면, 도슨트는 그 맥락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내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전시 해설을 위해 누구보다 자주 전시장을 드나들었을 김 도슨트가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의 감상 포인트 3가지를 짚어봤다. ① 고급 뷔페처럼 골라 보는 맛: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이다. 남아공은 쉽게 찾아가기엔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곳 미술관을 가기란 더욱 어렵다. 따라서 이번이 아니면 남아공 미술관 컬렉션을 만날 기회는 정말 쉽지 않다. 17세기 네덜란드부터 20세기 남아공까지 다양한 시기,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고급 뷔페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맛보듯 골라서 감상할 수 있다. ② 희귀 작품을 원화로 만날 기회: 전시장 입구에 있는 만치니나 볼디니는 미술사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니다. 국내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원화로 보기 힘들다. 이렇게 덜 알려졌지만 희귀한 작품들이 이번 전시엔 여럿이다. ‘오필리아’로 유명한 작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한 땀 한 땀’도 독특하다.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前派)’ 화가로 전성기에는 문학이나 중세의 낭만적 소재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비해 ‘한 땀 한 땀’은 후기 작품이라 산업혁명 시대 영국 노동자들의 일상을 스냅사진을 찍는 것처럼 표현해 매력적이다. ③ 400년 변천을 비교하는 경험: 만치니의 ‘필립스 부인 초상화’(1909년)와 앤디 워홀의 ‘요제프 보이스 초상’(1980년대)을 비교해 보자. 만치니의 초상이 의뢰인을 예쁘게 담아내려 노력했다면, 워홀은 자신이 선망하던 보이스에 대한 ‘리스펙트(존중)’를 담았다. 판화에 다이아몬드 가루까지 뿌렸을 정도다. 짧게는 80년부터 길게는 400년까지 인간이 무언가를 보고 표현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두고 감상하면 애호가로서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입구에 디지털 숫자들이 각기 다른 속도로 카운트다운하는 설치 작품 ‘경계를 넘어서’로 익숙한 일본 현대 미술가 미야지마 다쓰오의 신작이 22일 갤러리바톤 개인전 ‘Folding Cosmos’에서 공개됐다. 미야지마 작가는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해 1부터 9까지 숫자들이 점멸하는 미디어 아트 작품을 통해 “계속 변화한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영원히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디지털 숫자들에 다양한 색채를 더하고, 그 배경에 거울을 넣어 주변이 비치도록 만들었다. 22일 한국을 찾은 작가는 “30여 년 전 첫 작품을 만들 때 LED가 빨강과 초록색밖에 낼 수가 없었는데 그 뒤로 여러 색이 발명됐다”며 “기술 발전에 따라 제 작품도 낮에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지고 색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선 고대 마야 문명의 최소 시간 단위인 ‘킨(k’in)’에서 영감을 얻은 연작 ‘C.T.C.S. k’in(변하는 자아, 변하는 시간―하루)’과 원통형 거울 안에 LED 판을 넣은 ‘Hundred Changes in Life(인생의 백 가지 변화)’, 정사각형 거울을 격자 모양으로 배열한 ‘Changing Life with Changing Circumstance(변하는 환경과 변하는 인생)’ 등을 만날 수 있다. 다음 달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공지능(AI)의 영향력이 일상에도 빠른 속도로 스며드는 지금. ‘이 사람’의 입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그의 한마디는 글로벌 반도체, 정보기술(IT), 금융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주가까지도.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IT 업계의 ‘록스타’로 떠오른 인물. 엔비디아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에 대해 쓴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뉴요커’ 기자인 저자가 3년 동안 황을 비롯한 엔비디아 핵심 관계자 300여 명을 인터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황이 10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성장기를 보내고, 1993년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소개했다. 책은 특히 엔비디아가 결정적 전환점을 맞이하며 어떻게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구축했는지의 과정에 집중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황이 가진 독특한 리더십과 엔비디아의 기업 문화다. 엔비디아는 강도 높은 업무량과 끈끈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엔비디아의 모토는 “우리 회사는 파산하기 30일 전입니다”일 정도다. 황은 항상 위기감을 조성하며 민첩하게 조직을 운영하고, 까다롭게 인재를 개발해 약 60명의 직원에게 매주 직접 보고받는 중앙집권적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다소 부담스러운 사례도 소개한다. 공개적으로 심할 때는 몇 시간씩 이어지는 질책, 이른바 ‘황의 분노’다. 엔비디아의 전 수석 과학자 데이비드 커크는 회의 도중 ‘황의 분노’를 말리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지독한 질책을 받았던 상황을 떠올렸다. “전쟁 때 참호에서 기관총에 손을 흔든 꼴이었다.” 다만 책은 “젠슨은 절대 복도에서 한 사람만 붙잡고 소리 지르진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소리치는 것이 동기 부여 전략의 일부이며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하나의 극적인 장면은 2010년대 초반 엔비디아가 그래픽에서 AI로 무게중심을 전환하던 순간이다. 엔비디아는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받은 병렬 컴퓨팅과 신경망 연구로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이 AI 연구와 응용에 최적화된 하드웨어 개발로 이어진다. 처음엔 황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AI의 잠재력에 대한 연구원들의 설득과 ‘강력한 도구만 제공하면 사람들이 그것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낼 것’이라는 신념으로 거액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우리가 아는 대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책 후반부에서 ‘AI가 인류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자 황은 “나는 그런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저자에게조차 ‘황의 분노’를 퍼부은 것이다. 책에 따르면 황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나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비교하면 온화하고 야심이 적은, 현실적 사고방식을 중시하는 엔지니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반발은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황의 비전이나 AI의 미래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보긴 어렵다. 다만 AI 혁명이 시대적 주류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 거대한 물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가 어떤 고민과 도전을 겪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공지능(AI)의 영향력이 일상에도 빠른 속도로 스며드는 지금. ‘이 사람’의 입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그의 한마디는 글로벌 반도체, 정보통신(IT), 금융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주가까지도.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IT 업계의 ‘록스타’로 떠오른 인물. 엔비디아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에 대해 쓴 책이 출간됐다.이 책은 ‘뉴요커’ 기자인 저자가 3년 동안 젠슨 황을 비롯한 엔비디아 핵심 관계자 300여 명을 인터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황이 10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성장기를 보내고, 1993년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소개했다.책은 특히 엔비디아가 결정적 전환점을 맞이하며 어떻게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구축했는지의 과정에 집중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황이 가진 독특한 리더십과 엔비디아의 기업 문화다. 엔비디아는 강도 높은 업무량과 끈끈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엔비디아의 모토는 “우리 회사는 파산하기 30일 전입니다”일 정도다. 황은 항상 위기감을 조성하며 민첩하게 조직을 운영하고, 까다롭게 인재를 개발해 약 60명의 직원에게 매주 직접 보고받는 중앙집권적 경영 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한다.다소 부담스러운 사례도 소개한다. 공개적으로 심할 때는 몇 시간씩 이어지는 질책, 이른바 ‘황의 분노’다. 엔비디아의 전 수석 과학자 데이비드 커크는 회의 도중 ‘황의 분노’를 말리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지독한 질책을 받았던 상황을 떠올렸다. “전쟁 때 참호에서 기관총에 손을 흔든 꼴이었다.” 다만 책은 “젠슨은 절대 복도에서 한 사람만 붙잡고 소리 지르진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소리치는 것이 동기 부여 전략의 일부이며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또 하나의 극적인 장면은 2010년대 초반 엔비디아가 그래픽에서 AI로 무게중심을 전환하던 순간이다. 엔비디아는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받은 병렬 컴퓨팅과 신경망 연구로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이 AI 연구와 응용에 최적화된 하드웨어 개발로 이어진다. 처음엔 황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AI의 잠재력에 대한 연구원들의 설득과 ‘강력한 도구만 제공하면 사람들이 그것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낼 것’이라는 신념으로 거액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우리가 아는대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책 후반부에서 ‘AI가 인류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자, 황은 “나는 그런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저자에게조차 ‘황의 분노’를 퍼부은 것이다. 책에 따르면 황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나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비교하면 온화하고 야심이 적은, 현실적 사고방식을 중시하는 엔지니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반발은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같은 맥락에서 이 책은 황의 비전이나 AI의 미래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보긴 어렵다. 다만 AI 혁명이 시대적 주류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 거대한 물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가 어떤 고민과 도전을 겪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페인에 식민 지배를 당하던 16세기 남미 아마존의 열대 우림.제국주의자들이 탐내는 금이 쏟아지던 이곳에서 식민 당국은 토착 부족을 강제 노역에 동원해 금광에서 무자비하게 부려먹었습니다.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금에 집착하며 마구잡이로 약탈해가는 기이한 광경에 원주민들은 이렇게 묻습니다.“당신들은 황금을 먹기라도 하는 것인가?”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혹독한 착취를 가하는 침략자들에게 원주민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입니다.그리고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 감독관들을 붙잡고 끔찍한 형벌을 가합니다. 그들의 입을 벌리고 그 안으로 펄펄 끓는 금을 부어 버린 것입니다.아즈텍 사람들은 금을 ‘신의 똥’이라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는데요.그들에게 금은 태양신이 땅에 빛과 에너지를 전해주고 남은 흔적이었고, 아름답고 귀한 금속이지만 그것은 축적의 대상이 아닌 신성한 의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그런 금을 감독관의 입으로 부어버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아즈텍 사람들에게 ‘신의 똥’이었던 황금이 탐욕 앞에서 피와 분노로 변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독일 출신 현대미술가 안젤름 키퍼가 에도 시대 쇼군의 궁전이자 가노파 화가들의 황금빛 병풍이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는 ‘니조성’에 ‘히로시마 원폭 참사’와 ‘신의 똥’인 황금, 곡식이 빼곡한 모래밭, 그리고 머리가 없는 강철 여신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키퍼의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 ‘솔라리스’ 현장을 소개합니다.히로시마, 옥타비오 파스, 오로라제가 이 전시를 소개하며 아즈텍의 황금과 약탈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곳에서 본 신작 ‘옥타비오 파스를 위하여’ 때문입니다.폭 9.5m, 높이 3.5m 대작인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를 소환하고 있습니다.우선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돌과 숯덩이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보였습니다. 자연광으로만 작품을 감상하도록 조성된 공간에서 그림 가운데 햇빛이 반사돼 번쩍이는 가죽 같은 것이 눈에 띄었는데요.가까이 가서 보니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얼굴이 거꾸로 매달린 형상이었습니다.그림 속 인간은 고통받고 있지만 그 모습이 한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오히려 금박과 각종 금속을 산화해 만든 청록색 물감으로 뒤덮인 무심한 듯 아름다운 들판이 압도했죠.불에 탄 것 같은 돌 위에는 물감이 아주 두껍게 발라져서, 요셉 보이스의 지방 덩어리가 놓인 의자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80주년을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즉 그림 속 폐허가 된 들판은 원자폭탄 폭격으로 황폐해진 지역의 모습에서 시작한 것이죠.그러나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의 비극이나 고통에서 한 단면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즉 고통스러운 폐허를 표현한 풍경이 역설적이게도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금 장식이 가득한 에도시대 궁전,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땅. 여기에 키퍼는 남미인 멕시코 출신 시인 ‘옥타비오 파스’를 끄집어 냅니다.이로 인해 이 전시에서 ‘금’은 빛과 어둠, 성스러움(신의 똥)과 탐욕(피의 분노), 파괴와 재생 등 복합적인 키워드를 떠오르게 하는 상징이 됩니다.이 작품 옆으로 가면 원폭으로 뼈대만 남은 초등학교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오로라’가 보입니다.공동 묘지처럼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앙상한 건물 구조가 겹겹이 건조한 선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그 가운데 황금 판자가 담긴 유모차가 매달려 있고, 이 유모차를 중심으로 녹슨 청록색 물감이 마치 생명력을 전하듯 퍼져 나가는 형상입니다.작품 제목 ‘오로라’는 1905년 러일전쟁 때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국의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러시아 군함을 일컫습니다.오로라 군함 피격 사건은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는 신호탄이자, 일본의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계기가 됩니다. 한 가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동아시아의 역사적 지형을 흔드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만드는 제목입니다.자신을 ‘역사를 먹고 사는 기생충’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는 키퍼는 되풀이되는 역사 속 사건들에 인간의 복잡한 속성, 그것을 이해하며 생겨나는 희망을 신화와 문학 같은 이야기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었습니다.안젤름이 여기 있었다키퍼의 개인전은 평소 공개되지 않는 공간인 니조성의 대형 부엌과 조리실을 활용해서 열렸는데요. 쇼군이 머물던 화려한 궁전 ‘니노마루고텐’과 달리 이곳은 어둡고 무거운 목조 건축물이었습니다.전시는 가장 큰 공간에 대형 신작을 늘어 놓고 나머지 공간엔 각각 ‘모건소 플랜’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과 키퍼의 고향에 있는 ‘라인강’에서 출발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모건소 플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군수 산업과 중공업을 제거하고 농업과 목축 중심의 국가로 만들자는 계획을 말합니다. 즉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사건 그 이후 무렵 같은 패전국이자 키퍼의 출신국인 독일의 역사를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작품은 목조 건물 내부에 모래를 깔고 곡식을 빼곡히 설치해 들판처럼 만들었고, 곡식의 머리 부분 곳곳에는 금이 칠해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모건소 플랜은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는데, 만약 정말로 실현됐다면 독일 땅은 이런 광경을 하게 되었을까? 곡식들 사이로 자세히 살펴보면 납으로 만든 커다란 책과 뱀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개인적으로는 무언가를 억지로 제압하거나 거스르려는 인간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게 꼭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지금까지 그런 행동이 문명을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덫이 될 수 있다는 이중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그리고 미술사의 유명한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 속에 화가가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고 남긴 글귀를 차용한 연작 ‘안젤름이 여기 있었다’도 인상 깊었습니다.키퍼는 역사에 대해 ‘승자가 쓴 것이든 누가 쓴 것이든 하나의 이야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보면서, 자기는 역사를 자기 방식대로 소화하고 주물러서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현실에서도 한 가지 사건을 두고 100명의 사람이 100개의 다른 해석을 내놓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많은 사건들은 100개 중 하나만 맞다고 누군가 억지로 강요하거나 주장하며 생깁니다. 이를 통해 권력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선을 넘어 뒤틀린 사건을 만들죠.이 ‘뒤틀림’이 제때 해결되지 않으면 원자폭탄 폭격, 전쟁 같은 커다란 비극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파괴된 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인류가 살아온 세상이 아닐까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그런 가운데 키퍼는 풍경과 한 몸이 된 듯 윤곽선만 간신히 딴 자신을 뒷모습으로 그려 넣으며. 세상을 보는 주인은 내 밖의 이데올로기도 권력도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고, ‘내가 그 모든 걸 보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안젤름 키퍼: 솔라리스 (Anselm Kiefer: Solaris)- 2025년 3월 31일 ~ 6월 22일- 일본 교토 니조성 (Nijo Castle, Kyoto)※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 작가 오원배 씨(72·사진)가 제10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20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고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과 박수근미술상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자 2014년 제정돼 2016년 제1회 수상작가를 배출했다. 오 작가는 한국적 조형 감각과 동양 철학적 사유를 현대 회화와 설치 작품을 통해 풀어내며, 예술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져왔다. 심사위원장인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대표 연작 ‘사유의 공간’을 통해 인간, 침묵, 시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형상화한 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박수근이 남긴 ‘소박한 진실성’ ‘삶에 대한 애정’과 깊이 맞닿아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29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야외공원에서 열린다.佛유학때 사회문제 회화 작업 접해… 현지도서관서 5·18 사진 보고 충격 이후 검은 배경-괴물 형상 그려… 다양한 검은색 찾아 물감 만들기도“캔버스에 다루지 못한것 무궁무진… 조형적 역량 발휘, 기대 부응할 것”“우리나라 ‘국민 화가’인 박수근의 이름을 딴 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수상자에게 거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조형적 역량을 새롭게 발휘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15일 찾은 오원배 작가의 경기 고양시 작업실에는 튜브 물감 대신 안료와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 수십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40년 전 공산품이 내지 못하는 검은색을 내려고 물감을 손수 만들어 썼던 오 작가는 이후 추상미술과 개념미술, 실험미술이 유행하는 동안에도 ‘그림’에서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지금도 안료를 개어 물감을 만든다. 오 작가는 “처음엔 ‘검은색’을 만들려고 시작했는데, 이젠 모든 색을 만들어 쓰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1986년 프랑스 유학을 마친 오 작가가 한국에서 처음 개인전을 열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듯 기어다니는 그림 속의 형상을 낯설어했다. 이 형상은 사람의 몸과 비슷하지만 뒤틀려 꿈틀거리는 형태였다. 때문에 ‘반인반수’란 별명을 붙이거나 기괴한 모습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미술계에선 오 작가의 작품이 뿜어내는 다채로운 검은색에 매료됐다. 당시는 학계는 물론이고 적지 않은 주류 작가들이 ‘형상이 그림에 등장해선 안 된다’며 추상을 고집하던 시기. 하지만 그때부터 오 작가는 색과 선, 구도처럼 그림에서만 쓸 수 있는 언어로 자기만의 형상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박수근미술상 심사위원단은 그런 오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박수근’을 떠올렸다. 심사위원장인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오랜 시간 진정성 있는 태도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한 점이 박수근 정신과 깊이 연결된다고 심사위원단은 봤다”고 설명했다. “어릴 때 공부하라고 사준 필기 노트에 그림을 더 많이 그려 야단을 맞기도 했다”는 오 작가는 “수천 년이 지난 그리스 철학을 두고 무용하다고 하지 않듯, 회화도 여전히 유효한 장르”라고 했다. “아직도 캔버스에 다루지 못한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한국 제도권 교육에선 거의 인상주의, 사실주의, 미니멀리즘만 가르쳐 답답했습니다. 자유롭고 다양한 형상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그때 제 돌파구는 미국문화원에 가서 빌려 보던 화집이었죠. 그곳에서 다양한 형상을 표현한 그림들이 현대미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보게 됐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한 오 작가는 사회 문제를 회화로 표현하는 ‘신구상회화’ 작가들을 교수로 만났다. 현지 작가들은 인종 차별이나 중동 전쟁, 제3세계 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작업을 했다. 오 작가도 자료 조사를 위해 퐁피두센터 도서관에 갔다가 5·18민주화운동 사진을 접하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로 신문지를 잘라 만든 괴물 같은 형상과 검은 배경의 그림이 탄생했다. 그의 작품에는 땀을 흘리는 듯 괴로워하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경직된 울타리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도 짙게 배어난다. 그는 알베르 카뮈 전집을 완역한 불문학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와도 절친한 사이다. 다만 오 작가는 앞으로는 절망보다 희망과 생에 대한 찬미를 더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몸짓이 하찮고 별 볼 일 없을 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의 질곡을 벗어나는 희망의 몸짓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지금 작업실에 걸린 작품에선 인물이 거친 선으로 표현되는 대신 흰 타이츠를 입고 있거나, 아예 인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석고 조각상이 놓이는 등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회화는 살아있는 생물이자 스스로 증식하는 것”이라는 작가는 “또 어떤 새로운 것이 나타나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 작가는 내년 5월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수상 기념전을 선보인다. 제10회 박수근미술상은 운영위원회(위원장 이인범 아이비리인스티튜트 대표)가 추천위원 10명을 위촉했고, 추천위원이 후보 7명을 선정한 뒤 심사위원회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 심사위원은 박남희 관장과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주원 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이윤희 (재)섬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위원이 맡았다.고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금박을 입힌 배경 위에 붉고 풍성한 머리칼의 여인이 팬지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1828∼1882)는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결혼을 기념해 이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인은 그림을 그릴 때 이미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였다. 그리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로세티와 시달의 아련하고 복잡한 심경이 담긴 이 작품의 이름은 ‘마음의 여왕’. 해당 작품을 포함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다양한 시기와 시대를 아우르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렸다.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AG)의 소장품 143점을 9개 주제로 나눠 선보였다. 개막 하루 전인 15일 미술관에서 전시 총괄 큐레이터를 맡은 이탈리아 출신 미술사학자·평론가인 시모나 바르톨레나를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 순회전 최고 인기는 모네와 로세티 바르톨레나는 JAG의 유럽 미술품을 이탈리아와 독일을 거쳐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지금까지 전시에서 관객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냐”고 묻자 단박에 “모네와 피카소, 로세티”를 꼽았다.“모네의 ‘봄’은 물론이고 함께 전시된 19세기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의 세 작품은 모두 JAG의 핵심 소장품입니다. 부댕은 모네가 멘토로 여겼던 화가죠. 피카소의 파스텔화 ‘광대’는 화가가 90세 때 그린 작품이지만, 순수하고 창의적 본능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보입니다.”이번 전시는 인상파나 피카소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게다가 19세기 영국의 ‘라파엘 전파’나 인상파의 후대 화가인 ‘나비파’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뤼시앵 피사로의 ‘아침 햇살’과 빈센트 반 고흐의 목탄 드로잉(늙은 남자의 초상),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 등도 놓치면 안 될 명작들이다. 20세기 미술 섹션에선 베이컨의 캔버스 유화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와 케네스 놀런드의 ‘부러진 반지’가 눈에 띈다. 이 밖에 유명 작가들의 판화와 이르마 스턴, 윌리엄 켄트리지 등 남아공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바르톨레나는 “유럽 전시에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러 왔다가, 남아공 화가 같은 새로운 작가를 발견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사하라 이남 최대 미술 컬렉션‘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JAG 소장품을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20세기 미국 현대미술까지 이어지는 구성으로 소개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퍼러리 △20세기부터 현대까지 남아공 미술 순이다. 여기에 JAG 설립자를 조명한 △필립스 부부까지 9개 주제로 엮었다. 이런 방대한 전시가 가능했던 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가장 큰 공공 미술 컬렉션으로 꼽히는 JAG의 다양한 소장품 구성 덕이었다. 바르톨레나는 “처음 미술관 수장고에 갔을 때 남아공은 물론이고 유럽 미술 작품 수천 점이 있어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JAG 미술관은 ‘필립스 여사’로 불렸던 플로렌스 필립스(1863∼1940)를 비롯한 남아공 부호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소장 목록을 키워 나갔다. 특히 영국계인 필립스 여사는 아일랜드 출신 수집가 휴 레인(1875∼1915)의 조언으로 일찍부터 인상파 작품을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후원자들의 기증도 더해져 오늘날의 컬렉션이 완성됐다.바르톨레나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중요 작품’으로 꼽은 것들도 있다. 점묘파 화가 폴 시냐크의 ‘라 로셸’과 제라드 세코토의 ‘오렌지를 든 소녀’다. 바르톨레나는 “시냐크의 회화는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라서 눈여겨볼 만하다”고 했다. ‘오렌지를 든 소녀’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아공에서 JAG가 최초로 소장한 흑인 미술가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아무래도 관객들은 색이 화려하고 다양한 유화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나 툴루즈 로트레크 같은 작가들은 판화에서도 정말 훌륭한 작품을 남겼어요. 작가들의 개인적인 기교가 잘 드러나는 판화들을 자세히 감상하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8월 3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금박을 입힌 배경 위에 붉고 풍성한 머리칼의 여인이 팬지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영국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는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결혼을 기념해 이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인은 그림을 그릴 때 이미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였다. 그리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로세티와 시달의 아련하고 복잡한 심경이 담긴 이 작품의 이름은 ‘마음의 여왕.’ 해당 작품을 포함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다양한 시기와 시대를 아우르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렸다.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AG)의 소장품 143점을 9개 주제로 나뉘어 선보였다. 개막 하루 전인 15일 미술관에서 전시 총괄 큐레이터를 맡은 이탈리아 출신 미술사학자∙평론가인 시모나 바르톨레나를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순회전 최고 인기는 모네와 로세티바르톨레나는 JAG의 유럽 미술품을 이탈리아와 독일을 거쳐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지금까지 전시에서 관객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냐”고 묻자, 단박에 “모네와 피카소, 로세티”를 꼽았다.“모네의 ‘봄’은 물론, 함께 전시된 19세기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의 세 작품은 모두 JAG의 핵심 소장품입니다. 부댕은 모네가 멘토로 여겼던 화가죠. 피카소의 파스텔화 ‘광대’는 화가가 90세 때 그린 작품이지만, 순수하고 창의적 본능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보입니다.”이번 전시는 인상파나 피카소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게다가 19세기 영국의 ‘라파엘 전파’나 인상파의 후대 화가인 ‘나비파’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뤼시앵 피사로의 ‘아침 햇살’과 빈센트 반 고흐의 목탄 드로잉(늙은 남자의 초상),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 등도 놓치면 안 될 명작들이다.20세기 미술 섹션에선 프랜시스 베이컨의 캔버스 유화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와 케네스 놀런드의 ‘부러진 반지’가 눈에 띈다. 이밖에 유명 작가들의 판화와 이르마 스턴, 윌리엄 켄트리지 등 남아공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바르톨레나는 “유럽 전시에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러 왔다가, 남아공 화가 같은 새로운 작가를 발견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사하라 이남 최대 미술 컬렉션‘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JAG 소장품을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20세기 미국 현대미술까지 이어지는 구성으로 소개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포러리 △20세기부터 현대까지 남아공 미술 순이다. 여기에 JAG 설립자를 조명한 △필립스 부부까지 9개 주제로 엮었다.이런 방대한 전시가 가능했던 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가장 큰 공공 미술 컬렉션으로 꼽히는 JAG의 다양한 소장품 구성 덕이었다. 바르톨레나는 “처음 미술관 수장고에 갔을 때 남아공은 물론 유럽 미술 작품 수천 점이 있어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JAG 미술관은 ‘필립스 여사’로 불렸던 플로렌스 필립스(1863~1940)를 비롯한 남아공 부호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소장 목록을 키워 나갔다. 특히 영국계인 필립스 여사는 아일랜드 출신 수집가 휴 레인(1875~1915)의 조언으로 일찍부터 인상파 작품을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후원자들의 기증도 더해져 오늘날의 컬렉션이 완성됐다.바르톨레나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중요 작품’으로 꼽은 것들도 있다. 점묘파 화가 폴 시냐크의 ‘라 로셸’과 제라드 세코토의 ‘오렌지를 든 소녀’다. 바르톨레나는 “시냐크의 회화는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라서 눈 여겨 볼 만하다”고 했다. ‘오렌지를 든 소녀’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아공에서 JAG가 최초로 소장한 흑인 미술가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아무래도 관객들은 색이 화려하고 다양한 유화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나 툴루즈 로트렉 같은 작가들은 판화에서도 정말 훌륭한 작품을 남겼어요. 작가들의 개인적인 기교가 잘 드러나는 판화들을 자세히 감상하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8월 3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유리 레비치(Yury Revich)가 6월 1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6월 3일 평촌아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레비치는 18세에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한 뒤 에코 클래식(ECHO Klassik), 국제 클래식 음악상(ICMA) 등을 수상했다. 또 작곡가, 유니세프 오스트리아 명예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이번 공연은 고전, 낭만, 근대 음악과 자작곡을 포함한 레퍼토리로 구성된다. 1부 첫 곡 ‘악마의 트릴’은 주세페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악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을 들은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작품으로, 극적인 트릴 기법과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고도의 연주 기술이 필요해 레비치의 탁월한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다. 2부 마지막 곡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는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선율을 기반으로 재편곡된 바이올린곡으로, 화려한 기교와 오페라의 극적 요소가 어우러진다. 레비치와 함께 대전의 청년 클래식 연주자인 피아니스트 김수빈, 첼리스트 황진하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식사 시간 배불리 무언가를 먹었는데도 습관처럼 군것질을 반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당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과자나 빵에 자꾸만 손이 가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다. 먹고 후회하고 또 먹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왜 또 못 참았지?” 자책도 한다. 이러한 ‘식탐’을 의지력 부족이 아닌 각인된 습관 회로의 결과로 설명하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식탐은 뇌가 학습한 습관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달콤한 초콜릿을 한 조각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 반복되면 뇌는 이 행동을 자동화된 패턴으로 저장한다. 이 때문에 억지로 참는 정도로는 식탐을 끊기 어렵다. 나의 식습관 회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고 그 회로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이론과 실전으로 나뉜다. 이론 부분에서는 뇌가 어떻게 식습관을 결정하는지, 식품 산업은 어떻게 우리의 식탐을 자극하는지, 또 칼로리를 제한하거나 의지력에만 의존하는 다이어트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전개된다. 이어 실천 플랜으로 ‘21일 식습관 혁명’을 저자는 제시한다. 처음 5일은 나의 식습관 패턴을 찬찬히 분석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감정이 요동칠 때 어떤 음식이 떠오르는지, 그 결과 어떤 기분이 드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그 다음 6∼16일에는 오래된 식탐 회로를 끊는 훈련을 이어간다. 건포도 한 알을 천천히 관찰하고 맛보며 오감에 집중하거나(건포도 수련), 온몸의 감각을 세밀하게 느끼고 내 몸과 마음을 연결하고(보디 스캔), 식탐이 생길 때 충동을 억누르지 않고 알아차리고(Recognize), 받아들이며(Allow), 탐구하고(Investigate), 친절하게 대하는(Nurture) ‘RAIN’ 훈련법 등이다. 책은 이 과정에서 ‘마음 챙김’을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한다.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 내 몸과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 뇌의 패턴을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이를 반복하면 무의식적인 폭식에서 벗어나 몸이 보내는 진짜 신호를 듣고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와장창 깨져서 금이 간 유리창 같은 그림 속 여인이 손수건을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며 울고 있습니다.여인은 빨간 모자에 푸른색 브로치를 달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지만, 그의 얼굴 한가운데는 흑백 사진처럼 모든 색이 사라지고 불안한 손가락과 치아만 강조돼 있습니다.빨강, 파랑, 초록, 노랑의 경쾌한 색채를 갖고 있음에도 초조한 모습의 이 여인은 바로 파블로 피카소가 한때 사랑했던 여자, 도라 마르입니다.‘우는 여인’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마르는 영원히 ‘우는 여자’로 기억되고 맙니다.피카소는 왜 연인을 이렇게 그렸던 걸까요? ‘그림 속에 갇혀버린 뮤즈’, 마르와 피카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피 묻은 장갑의 여인피카소와 마르의 첫 만남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자주 오갔던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 함께 아는 친구였던 시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마르와 피카소는 한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죠.당시 마르는 대담한 사진으로 앙드레 브르통, 만 레이의 인정을 받고, 초현실주의 예술가 그룹과 어울렸습니다. 금기를 탐구하며 ‘에로티즘’, ‘내적 경험’ 같은 저서를 남긴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와 연애를 한 적도 있었죠.그만한 과감함과 예술적 감각을 지녔던 그가 자기보다 훨씬 유명한 예술가 피카소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마르는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장갑을 벗고 한 손을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작은 칼을 꺼내 손가락 사이를 내리찍는 위험한 놀이를 시작합니다.날카로운 칼날이 마르의 희고 긴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오고 가던 찰나. 실수로 잘못된 곳을 찌르고, 손가락에서 흐른 피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장갑을 적십니다. 피카소는 그런 마르를 지켜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당신의 피 묻은 장갑, 내가 가져가고 싶어요.”마르가 건넨 장갑을 피카소는 집으로 가져가 진열장에 간직합니다. 마르의 복잡하고 예민한 내면을 상징하는 피 묻은 장갑, 그것을 손에 넣은 피카소.이 장면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게 될 격렬한 감정, 그리고 그것을 냉정하게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 피카소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나에게 도라는 우는 여자”피카소는 마르를 뮤즈로 삼아 그림으로 남겼지만, 마르 또한 성공한 사진가로 피카소에게 최신 사진 기법을 가르쳐 줬습니다.또 마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함께 ‘반파시즘 선언’에 참여하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냈는데, 그의 이런 정치적 의식 영향으로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갖고 대작 ‘게르니카’를 그립니다.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 과정을 마르는 사진으로 남겼고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 됐습니다.이렇게 현실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연인을 넘어 예술적으로도 교류하고 협업하는 관계였는데, 피카소는 후일 마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깁니다.“도라는 내게 항상 ‘우는 여인’이었다. 나는 몇 년간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을 그렸는데, 내가 그런 모습에서 즐거움이나 쾌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내 눈에 도라는 그저 ‘우는 여자’였고, 그건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 드러나는 현실이었다.”이 말처럼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린 다음 몇 년 동안 마르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고, 그 그림 대부분에서 마르는 슬프고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는, ‘우는 여인’이었습니다. 사랑 앞에 냉정했던 예술가, 피카소“‘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도라 마르의 우울한 감정에 집착한 결과물이다. 그는 마르의 고통에 깊이 감정 이입을 하면서도 그것을 이용했다.”마르의 회고전을 연 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우는 여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늘 불안하고 예민해 수시로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마르의 내면을 피카소는 예리하게 관찰했고, 때로는 부추기고 과장해 그림 속에서 일그러진 표정, 손수건을 잘근잘근 깨물며 울부짖는 모습으로 남긴 것이죠.그 결과물인 ‘우는 여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됐습니다. 게다가 피카소는 마르를 통해 이해한 불안과 슬픔을 보편적인 감정으로도 승화했는데 그건 바로 ‘게르니카’ 속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게르니카’ 속 스페인 내전이라는 폭력으로 참혹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마르의 내면에서 본 것을 여러 차원으로 변주한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피카소가 ‘우는 여인’의 도상을 ‘게르니카’에도 넣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다 포기했다는 사실인데요. ‘우는 여인’이 뿜어내는 슬픔이 너무 강렬해 다른 인물의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피카소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슬픔과 고통의 감정은 마르에게서 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피카소는 마르의 피 묻은 장갑을 가져가듯, 그녀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훔쳤’고, 그것을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해 ‘게르니카’에 활용했습니다. 마르의 핏빛 장갑이 피카소의 진열장 속 기념비가 되는 순간이죠.마르는 후일 인터뷰에서 “‘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나를 본 관점일 뿐, 도라 마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으로만 나를 기억하지 말아 달라는 항변입니다.사랑하는 여인의 아파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표현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역사적인 대작으로 만든 피카소. 그의 냉정함은 약 100년이 지나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고, 이에 따라 ‘우는 여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예술가는 누구의 눈물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가, 혹은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빌릴 수 있는가?’※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옥(玉) 공예가인 서지민 서울산업대 명예교수의 개인전 ‘푸르를 녹, 빛날 옥(Green like Her, Shine like Oke)’이 9일 서울 종로구 코너갤러리와 가회헌 한옥에서 개막했다.이번 전시는 서 교수가 궁중옥 장신구와 연구 제작에 힘써온 시간을 돌아보는 회고전으로, 그가 옥으로 만든 도장과 노리개 등 작품 120여 점을 선보인다. 임금의 옥새를 본떠 만든 작품이나 옥으로 만든 함 등을 감상할 수 있다.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던 서 교수는 고대 보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국 테네시주립대학에서 고대 보석을 연구하고, 직접 제작에까지 나서면서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전시는 21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와장창 깨져서 금이 간 유리창 같은 그림 속 여인이 손수건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며 울고 있습니다. 여인은 빨간 모자에 푸른색 브로치를 달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지만, 그의 얼굴 한가운데는 흑백 사진처럼 모든 색이 사라지고 불안한 손가락과 치아만 강조돼 있습니다. 빨강, 파랑, 초록, 노랑의 경쾌한 색채를 갖고 있음에도 초조한 모습의 이 여인은 바로 파블로 피카소가 한때 사랑했던 여자, 도라 마르입니다. ‘우는 여인’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마르는 영원히 ‘우는 여자’로 기억되고 맙니다. 피카소는 왜 연인을 이렇게 그렸던 걸까요? ‘그림 속에 갇혀버린 뮤즈’, 마르와 피카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피 묻은 장갑의 여인 피카소와 마르의 첫 만남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자주 오갔던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 함께 아는 친구였던 시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마르와 피카소는 한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죠. 당시 마르는 대담한 사진으로 앙드레 브르통, 맨 레이의 인정을 받고, 초현실주의 예술가 그룹과 어울렸습니다. 금기를 탐구하며 ‘에로티즘’, ‘내적 경험’ 같은 저서를 남긴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와 연애를 한 적도 있었죠. 그만한 과감함과 예술적 감각을 지녔던 그가 자기보다 훨씬 유명한 예술가 피카소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 마르는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장갑을 벗고 한 손을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작은 칼을 꺼내 손가락 사이를 내리찍는 위험한 놀이를 시작합니다. 날카로운 칼날이 마르의 희고 긴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오고 가던 찰나. 실수로 잘못된 곳을 찌르고, 손가락에서 흐른 피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장갑을 적십니다. 피카소는 그런 마르를 지켜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피 묻은 장갑, 내가 가져가고 싶어요.” 마르가 건넨 장갑을 피카소는 집으로 가져가 진열장에 간직합니다. 마르의 복잡하고 예민한 내면을 상징하는 피 묻은 장갑, 그것을 손에 넣은 피카소. 이 장면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게 될 격렬한 감정, 그리고 그것을 냉정하게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 피카소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나에게 도라는 우는 여자” 피카소는 마르를 뮤즈로 삼아 그림으로 남겼지만, 마르 또한 성공한 사진가로 피카소에게 최신 사진 기법을 가르쳐 줬습니다. 또 마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함께 ‘반파시즘 선언’에 참여하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냈는데, 그의 이런 정치적 의식의 영향으로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갖고 대작 ‘게르니카’를 그립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 과정을 마르는 사진으로 남겼고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 됐습니다. 이렇게 현실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연인을 넘어 예술적으로도 교류하고 협업하는 관계였는데, 피카소는 후일 마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깁니다. “도라는 내게 항상 ‘우는 여인’이었다. 나는 몇 년간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을 그렸는데, 내가 그런 모습에서 즐거움이나 쾌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내 눈에 도라는 그저 ‘우는 여자’였고, 그건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 드러나는 현실이었다.” 이 말처럼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린 다음 몇 년 동안 마르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고, 그 그림 대부분에서 마르는 슬프고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는, ‘우는 여인’이었습니다.사랑 앞에 냉정한 예술가, 피카소 “‘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도라 마르의 우울한 감정에 집착한 결과물이다. 그는 마르의 고통에 깊이 감정 이입을 하면서도 그것을 이용했다.” 마르의 회고전을 연 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은 ‘우는 여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늘 불안하고 예민해 수시로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마르의 내면을 피카소는 예리하게 관찰했고, 때로는 부추기고 과장해 그림 속에서 일그러진 표정, 손수건을 잘근잘근 깨물며 울부짖는 모습으로 남긴 것이죠. 그 결과물인 ‘우는 여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됐습니다. 게다가 피카소는 마르를 통해 이해한 불안과 슬픔을 보편적인 감정으로도 승화했는데 그건 바로 ‘게르니카’ 속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게르니카’ 속 스페인 내전이라는 폭력으로 참혹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마르의 내면에서 본 것을 여러 차원으로 변주한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피카소가 ‘우는 여인’의 도상을 ‘게르니카’에도 넣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다 포기했다는 사실인데요. ‘우는 여인’이 뿜어내는 슬픔이 너무 강렬해 다른 인물의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피카소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슬픔과 고통의 감정은 마르에게서 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는 마르의 피 묻은 장갑을 가져가듯, 그녀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훔쳤’고, 그것을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해 ‘게르니카’에 활용했습니다. 마르의 핏빛 장갑이 피카소의 진열장 속 기념비가 되는 순간이죠. 마르는 후일 인터뷰에서 “‘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나를 본 관점일 뿐, 도라 마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으로만 자신을 기억하지 말아 달라는 항변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아파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표현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역사적인 대작으로 만든 피카소. 그의 냉정함은 약 100년이 지나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고, 이에 따라 ‘우는 여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누구의 눈물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가, 혹은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빌릴 수 있는가?’※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제가 어디서 눈을 부릅뜨고 ‘다 불태울 거야!’라고 소리치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겠어요. 몰랐던 나를 끌어내며 희열을 느끼고 있죠.” 연극 ‘헤다 가블러’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영애가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32년 만에 무대에 선 소감을 전했다. 이 배우는 주인공 헤다에 대해 “120년 전 헨리크 입센이 쓴 극에선 ‘결혼에 갇힌 여자’이지만, 누구나 고립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선 남녀노소 모두 ‘헤다’가 될 수 있다”고 했다.“저도 때론 ‘나에게 악플 단 사람들, 가다가 넘어져라!’ 저주하는 마음이 들어요.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헤다’가 있지 않을까요.” 7일 개막해 6월 8일까지 이어지는 ‘헤다 가블러’의 5회 공연까지 마친 이 배우는 무대에 서기 전만 해도 “걱정이 많아 악몽도 꿨다”고 털어놨다.“대사를 잊어버리는 꿈도 꿨어요. 어느 날은 관객들이 전부 공연 중간에 나가 버리며, 누군가 저에게 ‘영애 씨,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라고 하셔서 엉엉 우는 꿈도 꿨어요.” 첫 번째 공연 당시엔 긴장할 새도 없었다고 한다. ‘대사 잊어먹지 말고 연습한 대로 차근차근 하자’는 말만 되뇌었다.“첫 회는 매뉴얼대로만 하는 게 목표였는데, 공연 영상을 다시 보니 발성이 너무 달라 ‘큰일 났다’ 싶었어요. 동료 배우들과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조금씩 무대에 다시 익숙해지고 있어요. 이제는 어느 날은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고, 어느 날은 노래 부르듯 대사를 하며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헤다는 모두가 원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내면에 무한한 이기심과 질투,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심리를 쫓아가는 게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려웠다”는 이 배우는 “관객들도 오셔서 함께 헤다의 마음을 풀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글자가 빼곡한 종이들이 무대 위에서 낙엽처럼 흩날린다. 배우가 종이 낱장 하나를 집어 귀에 대자 의미심장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종이를 떼면 소리는 끊어지고, 다른 종이를 들면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린다. 종이마다 적힌 건 고대 그리스의 무당 ‘시빌’이 사람들의 질문을 듣고 써서 던져 놓은 점괘다. 문제는 쌓여 있던 점괘들이 어느 날 세찬 바람에 날려 흐트러져 버렸다는 것. 수북하게 쌓인 종이 더미를 다급하게 뒤지며 ‘내 점괘’를 찾으려는 군상 속에서 극(劇)은 묻는다. ‘우리는 미래와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공연 작품 ‘시빌’이 한국 무대에 올랐다. 켄트리지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 ‘주변적 고찰’을 열었고, 2016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오페라 ‘율리시즈의 귀환’을 선보인 바 있다. 9, 1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시빌’은 운명을 알고 싶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과 불안을 드로잉을 담은 영상과 애니메이션, 음악, 연기, 무용으로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 과학기술과 알고리즘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재로 다뤘다. 켄트리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아공의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의 잔재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품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가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도 1막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에서 남아공의 탄광 속 광부와 그림을 그리는 켄트리지의 모습이 교차했다. 극에서는 무대 위 연기자들이 입으로 내는 리드미컬한 소리와 광부의 곡괭이 소리가 겹친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이야기를 짓는’ 예술가와 ‘광물을 캐는’ 광부의 노동을 비교하게 된다. 켄트리지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광산은 요하네스버그를 두 가지 풍경으로 나눈다. 하나는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화려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도시의 모습. 사람들은 광부를 불법 노동자라고 하지만 예술가와 광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불법인 것인지, 그 질문을 거칠게 담았다.” 2막 ‘시빌을 기다리며’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언’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을 세련된 감각으로 무대에 펼쳐 놓는다. 켄트리지와 협력해 작품을 연출한 작곡가 은란라 말랑구의 힘이 넘치는 음악과 연기자들의 몸짓이 알렉산더 콜더의 드로잉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선을 만나 정제된 모습으로 전개된다. 그중에서도 스크린으로 투사된 책 영상 위로 역동적인 춤을 추는 ‘시빌’의 그림자가 겹치는 장면이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빅데이터를 상징하는 듯한 깨알 같은 글씨들은 무대 위 살아 있는 몸으로 등장한 무녀 ‘시빌’의 그림자에 가려 힘을 잃는다. 켄트리지는 “우리는 은행 대출을 받는 게 좋을지, 80세까지 살 수 있을지, 미래와 건강은 어떨지 알고리즘에게 예측해달라며 신봉한다. 동시에 인간적인 ‘시빌’의 가능성을 붙들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했다. 켄트리지는 30일 GS아트센터에서 또 다른 작품을 이어간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10: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을 선보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가 어디서 눈을 부릅뜨고 ‘다 불 태울 거야!’라고 소리치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겠어요. 몰랐던 나를 끌어내며 희열을 느끼고 있죠.”연극 ‘헤다 가블러’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영애가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32년 만에 무대에 선 소감을 전했다. 이 배우는 주인공 헤다에 대해 “120년 전 헨릭 입센이 쓴 극에선 ‘결혼에 갇힌 여자’이지만, 누구나 고립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선 남녀노소 모두 ‘헤다’가 될 수 있다”고 했다.“저도 때론 ‘나에게 악플 단 사람들, 가다가 넘어져라!’ 저주하는 마음이 들어요. 팬데믹 때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영상 수업을 들을 땐 ‘집에서 뛰쳐나가고 싶다’ 생각도 했죠. 누구나 마음 속에 크고 작은 ‘헤다’가 있지 않을까요.”7일 개막해 6월 8일까지 이어지는 ‘헤다 가블러’의 5회 공연까지 마친 이 배우는 무대에 서기 전만 해도 “걱정이 많아 악몽도 꿨다”고 털어놨다.“대사를 잊어버리는 꿈도 꿨어요. 어느 날은 관객들이 전부 공연 중간에 나가버리며, 누군가 저에게 ‘영애 씨, 그렇게 하시면 안돼요’라고 하셔서 엉엉 우는 꿈도 꿨어요.”첫번째 공연 당시엔 긴장할 새도 없었다고 한다. ‘대사 잊어먹지 말고 연습한 대로 차근차근 하자’는 말만 되뇌었다.“첫 회는 매뉴얼대로만 하는 게 목표였는데, 공연 영상을 다시 보니 발성이 너무 달라 ‘큰일났다’ 싶었어요. 동료 배우들과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조금씩 무대에 다시 익숙해지고 있어요. 이제는 어느 날은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고, 어느 날은 노래 부르듯 대사를 하며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헤다는 모두가 원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내면에 무한한 이기심과 질투,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심리를 쫓아가는 게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려웠다”는 이 배우는 “관객들도 오셔서 함께 헤다의 마음을 풀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글자가 빼곡한 종이들이 무대 위 낙엽처럼 흩날린다. 배우가 종이 낱장 하나를 집어 귀에 대자 의미심장한 소리가 들리지만 종이를 떼면 소리는 끊어지고, 다른 종이를 들면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린다. 종이마다 적힌 것은 고대 그리스의 무당 ‘시빌’이 사람들의 질문을 듣고 써서 던져 놓은 점괘다.문제는 쌓여 있던 점괘들이 어느 날 세찬 바람에 날려 흐트러져 버렸다는 것. 수북하게 쌓인 종이 더미를 다급하게 뒤지며 ‘내 점괘’를 찾으려는 군상 속에서 극은 묻는다. ‘우리는 미래와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가?’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공연 작품 ‘시빌’이 한국 무대에 올랐다. 9~1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이 공연은 운명을 알고 싶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과 불안을 드로잉을 담은 영상과 애니메이션, 음악, 연기, 무용으로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 과학기술과 알고리즘까지 소재로 다뤘다.켄트리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아공의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의 잔재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품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가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에서도 1막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에서 남아공의 탄광 속 광부와 그림을 그리는 켄트리지의 모습이 교차했다.극에서는 무대 위 연기자들이 입으로 내는 리드미컬한 소리와 광부의 곡괭이 소리가 겹쳤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이야기를 짓는’ 예술가와 ‘광물을 캐는’ 광부의 노동을 비교하게 되는데, 켄트리지는 이렇게 설명했다.“광산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두 가지 풍경으로 나눈다. 하나는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화려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도시의 모습. 사람들은 광부를 불법 노동자라고 하지만 예술가와 광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불법인 것인지, 그 질문을 거칠게 담았다.”이어지는 2막 ‘시빌을 기다리며’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언’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을 세련된 감각으로 무대에 펼쳐 놓는다. 켄트리지와 협력해 작품을 연출한 작곡가 은란라 말랑구의 힘이 넘치는 음악과 연기자들의 몸짓이 알렉산더 칼더의 드로잉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선을 만나 정제된 모습으로 전개된다.그중에서도 스크린으로 투사된 책 영상 위로 역동적인 춤을 추는 ‘시빌’의 그림자가 겹치는 장면이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빅데이터’를 상징하는 듯한 깨알 같은 글씨들은 무대 위 살아있는 몸으로 등장한 무녀 ‘시빌’의 그림자에 가려 힘을 잃는다. 켄트리지는 “우리는 은행 대출을 받는 게 좋을지, 80세까지 살 수 있을지, 미래와 건강은 어떨지 알고리즘에게 예측해달라며 신봉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시빌’의 가능성을 붙들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했다.켄트리지는 30일 GS아트센터에서 또 다른 작품을 이어간다. 이날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10: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00년 개관해 신진 작가를 지원해 왔던 ‘인사미술공간’(인미공)이 6월 운영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전시를 열고 있다.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창작 활동과 예술 지원이 위축되자,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은 시각 예술가들의 활동과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인미공을 열었다. 그간 신진 작가들의 개인전 등을 개최하며 등용문 역할을 해왔으나 갈수록 여건이 나빠지면서 문을 닫게 됐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전시 ‘그런 공간’은 이러한 인미공의 25년 역사를 돌아보는 의미가 담겼다. 김익현, 슬기와 민, 박보마, 아트-토커 등 작가와 기획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관람객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3층 사무실을 활용해 가상의 무대를 재구성하거나(박보마), 과거 인미공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재료로 영상 작품을 구성하고(김익현), 인미공을 경험한 큐레이터들이 그동안 이뤄진 활동을 토대로 타임라인을 구성(아트-토커)했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첫 전시를 시작했던 인미공은 2006년 지금의 원서동 건물로 이전했다. 인미공을 운영하는 아르코미술관은 “시간이 흐르며 공간의 역할이 변했고, 지역 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 등 대내외적 여건이 악화돼 운영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며 “그 대신 인미공에서 생성한 여러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일 일본 교토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니조(二条)성. 여기에 있는 일본 막부시대 쇼군(將軍)의 궁전 ‘니노마루 고텐’은 화려한 금박 장식 등으로 평소 니조성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하지만 대형 부엌과 조리실(다이도코로, 오세이쇼)은 다소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의 목조 건축물로 평소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곳. 이날 건물 안에 들어서자 폭 9.5m, 높이 3.8m 대작 회화 ‘옥타비오 파스를 위하여’가 압도적 분위기를 내뿜었다. 이 작품은 세계적 거장인 독일 출신 미술가 안젤름 키퍼가 3월 31일부터 개최한 개인전 ‘솔라리스’에서 새로 공개한 신작이다. 키퍼가 아시아에서 연 최대 규모의 전시에 어울리는 크기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폭격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은 회화부터 과학과 신화, 종교에 대한 사색을 담은 작품까지 총 33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를 현장에서 둘러봤다.● 죽음과 황금이 섞인 매혹적인 폐허 키퍼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요제프 보이스(1921∼1986)나 게오르크 바젤리츠 같은 독일 신표현주의 미술가들과 함께 현대 미술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 거장. 독일 신국립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를 비롯해 여러 권위 있는 미술 기관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해 왔다.‘옥타비오 파스를 위하여’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줄지어 붙은 돌과 숯덩이들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만들어 냈다. 들판 한가운데 불에 탄 번쩍이는 형상이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비명을 지르는 얼굴이다. 그림 속 인간은 고통스럽지만, 역설적으로 들판은 무심한 듯 아름다운 금박과 각종 금속을 산화해 만든 청록색 물감으로 그려져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해당 작품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연작 가운데 하나. 모든 것이 연결돼 서로 영향을 준다는 시 구절을 인용한 이 작품은 현대인들이 전쟁의 상흔을 제대로 직면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 옆엔 원폭 투하로 뼈대만 남은 히로시마 센다초등학교의 사진을 바탕으로 한 ‘오로라’가 있다. 이 역시 처음 공개된 작품으로 공동묘지처럼 되어버린 학교를 선으로 겹겹이 그린 위에 유모차를 얹고 그 안에 금박 패널을 넣었다. 제목 ‘오로라’는 1905년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포격으로 피해를 본 군함을 일컫는다. 러일전쟁은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는 신호탄이 됐다. 당시는 일본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인간의 욕망이 낳은 비극과 그 안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사색하게 만든다.● 인간이 만드는 비극과 희망 이번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폭격 8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키퍼의 작품은 역사적 비극 등 한 측면만 강조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복잡한 속성, 그것을 이해하며 생겨나는 희망을 신화에 빗대거나 상징을 통해 표현한다. 인간이 자아낸 비극을 신비롭게 표현해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건 키퍼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요소 중 하나다. 1945년 3월 폭격을 당하던 독일의 한 병원 지하에서 태어난 키퍼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부서진 건물 벽돌을 갖고 놀며 자랐다고 한다. 패전국 독일의 복잡하고 모순적이던 사회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인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도 조리실로 쓰였던 공간에서 ‘모겐소 플랜(Morgenthau Plan)’을 제목으로 한 설치와 회화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모겐소 플랜은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군수 산업과 중공업을 제거하고 농업과 목축 중심의 국가로 만들려 했던 계획. 작가는 이 계획이 실현됐다면 만들어졌을 법한 곡식이 빼곡한 밭을 건물 내에 만들었다. 금을 입힌 곡식 사이로 바닥에 납으로 된 책과 뱀 조각이 보였다. 무언가를 억지로 제압하거나 거스르려는 인간의 행동이 문명을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덫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시장 밖 쇼군이 머무는 침실이 있었던 니노마루 고텐 앞 정원엔 ‘사포’ ‘솔라리스’ 등 지혜로운 여인들을 표현한 조각이 설치됐다. 또 금박과 산화된 청록 안료가 가득한 풍경 사이로 사라질 듯 서 있는 작가의 뒷모습을 담은 회화 ‘안젤름이 여기 있었다’ 등도 전시됐다.교토=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떠나는 연인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드리겠다고 했던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한국인에게 슬픔과 한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미술가 소피 폰 헬러만이 본 진달래꽃은 살짝 다르다.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의 엇갈린 시선과 떠나려는 찰나. 그사이에 피어난 희고 가느다란 꽃이 진달래꽃이다.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헬러만이 ‘단오’를 비롯한 한국의 문화를 주제로 만든 작품으로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지난달 9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막한 전시 ‘축제’는 헬러만의 신작 회화 20여 점과 대형 벽화를 선보였다. 헬러만은 캔버스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제소(gesso·석고 가루)를 칠하는 등의 바탕 작업을 생략하고, 천 위에 바로 빠른 붓질로 즉흥적이고 속도감 있는 그림을 그린다. 이런 감각을 살려 작가가 한국 전시를 위해 선택한 큰 주제는 ‘축제’와 ‘단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와 씨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액운을 쫓아내고 한 해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활기찬 분위기를 헬러만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헬러만은 “전시를 준비하며 봄에 열리는 한국의 축제인 ‘단오’와 이청준의 소설 ‘축제’를 읽었다”며 “‘축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고 삶을 기념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내 작품도 언제나 기억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가 표현한 단오제의 모습은 ‘진달래꽃’처럼 다소 낯선 형상을 하고 있지만, 공동체의 안녕을 소망하는 마음만은 비슷하다. 헬러만은 “단오에 관한 자료와 사진을 보며 영국에서 좋은 여름과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 ‘메이데이’가 떠올랐다”고 했다. 헬러만이 한국 문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건 미술관의 폭 80m, 높이 9m 벽을 가득 채운 초대형 벽화다. 조민석 건축가가 설계한 독특한 구조의 전시장 모양을 활용해 작가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을 펼쳐 놓았다. 정면에 가장 크게 보이는 공간에는 거센 폭풍과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대비시켰다. 오른쪽 2층 공간으로 이어지는 창엔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전통 단오제에서 마을의 산에 올라가 나무에 치장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그린 작품 ‘산행’도 인상적이다. 오방색 깃발이 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낀 하늘 속 무지개와 연결되는 장면이 담겼다. 커다란 자연 풍경 속에 배치된 캔버스 속 사람들은 대자연의 변덕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하지만 그 안에서 기원하고, 축복하고, 기념하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간사의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7월 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