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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디자인이 잘 나와야 한 해 전시도 잘될 것 같아 무척 신경 써서 만들죠.”(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팀장) 휴대전화가 일상이 되면서 연말연초 가장 줄어든 선물 중 하나가 달력(캘린더)이다. 손에 쥔 스마트폰만 켜도 달력이 뜨다 보니, 선물로서의 가치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하지만 막상 새해가 밝아오면 ‘어여쁜’ 달력 하나쯤은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미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날짜와 요일이 적힌 종이 뒤로 그림이나 사진을 넣는 달력은 미술관과 갤러리엔 또 하나의 소중한 캔버스다. 이 공간에 미술관 수장고에 있는 소장품 사진을 넣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별해 넣는다. 더 나아가 예술가와 초기 단계부터 협업해 공 들여 제작하는 경우도 많다. 미술 기관들의 ‘센스’를 경쟁하는 장이기도 한 ‘신년 굿즈’. 올해는 달력을 포함해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 살펴봤다.● 일민미술관 ‘푸른 뱀’ 달력리움미술관과 갤러리바톤은 해마다 예술가와 협업해 굿즈를 제작하는 걸로 유명하다. 리움미술관이 올해 달력을 위해 초청한 예술가는 크리스틴 선 김. 그가 달력에 제안한 작품은 2016년에 드로잉한 ‘저스트 뮤직’ 시리즈다. 영화에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에서 배경 음악을 묘사한 문구를 음표로 표현했다. 3월은 ‘숨죽인 클럽 음악’, 5월은 ‘긴장감이 고조되는 배경 음악’ 등의 글귀가 작가의 손 글씨로 적혀 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계절별로 느껴지는 음악적인 감각이 시각적으로 묘사된 듯한 결과물”이라며 “청각 장애가 있는 작가가 보여주는 시각 언어를 통해 우리도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공감해 보자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일민미술관은 특정 작가 작품 대신 미술관 직원들이 두 달 동안 머리를 모아 기획한 달력을 제작했다. 올해 콘셉트를 ‘푸른 뱀’으로 정하고, 달력 표지는 뱀피를 연상케 하는 질감의 종이를 사용했다. 또 뱀에 관련된 사자성어를 달마다 선정하고, 이 사자성어를 영어 문구로 풀어내 달력 디자인에 사용했다. 윤율리 학예팀장은 “뱀은 사악하면서도 지혜로운 이중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 재밌어서 ‘악담인지 덕담인지 모를’ 뱀에 관한 경구 12개를 담았다”며 “해외에서 오는 손님도 많아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서울시립미술관과 국제갤러리는 중량감 있는 여성 작가의 작품들을 담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올해 개인전이 예정된 강명희의 작품으로 달력을 구성했다. 다이어리를 제작한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김윤신 작가의 작품을 활용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을 달력에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사계절과 월 특색에 맞는 작품을 선정했다”며 “올해는 벽걸이뿐 아니라 책장에도 부착할 수 있도록 끈이 달린 형태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 버킨백 대신 바톤백갤러리바톤은 연말이면 전속 작가와 협업해 디자인한 에코백을 500점 제작한다. 올해는 서양화가 수잔 송의 초기 작품에 등장하는 패턴을 차용했고, 남성도 사용하기 좋도록 어깨끈을 새롭게 달았다. 2021년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에 숫자가 보이는 작품이 유명한 일본 현대미술가 미야지마 다쓰오와 협업했을 때는 여러 개의 숫자를 음영으로 표현한 디자인을 넣었다. 지난해 회화 작가인 쿤 판덴브룩과 제작할 때는 회화 작품의 일부를 가져와 가방 표면에 넣기도 했다. 매년 다른 색상과 디자인으로 연말 분위기를 담은 편지와 함께 발송되는 갤러리바톤의 에코백은 2015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선 ‘바톤백’이라는 애칭까지 생겼을 정도다. 갤러리바톤 관계자는 “명절마다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듯, 갤러리 직원이 모여 ‘바톤백’에 편지를 넣고 발송하는 일이 소중한 연말 행사가 됐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KBS 드라마 제작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병산서원에서 촬영을 하다 문화재 훼손해 논란이 벌어졌다.KBS는 2일 공식 입장을 통해 “연말 안동 병산서원에서 사전 촬영 허가를 받고 소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문화재에 어떻게 못질을 할 수 있느냐’는 항의를 받았다”며 “이유 불문하고 현장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이날 문화재 훼손 논란은 민서홍 건축가가 소셜미디어에서 “KBS 2TV 새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가버렸다’ 스태프들이 병산서원에서 못질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히며 불거졌다. 민 건축가는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3시경 병산서원에 들렀다 황당한 상황을 목격했다”며 “서원 내부 여기저기에 드라마 소품으로 보이는 물건이 놓여 있었고, 스태프들이 나무 기둥이 못을 박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 신사분이 스태프에게 항의하고 있었고, 나도 가만 보고 있을 수 없어 문화재를 훼손해도 되느냐고 거들었다”며 “스태프들은 귀찮다는 듯 ‘이미 허가를 받았다’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KBS는 “정확한 사태 파악과 복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논의 중에 있다”며 “병산서원 관계자와 현장 확인을 하고 복구를 위한 절차를 협의 중”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과 추가 발생할 수 있는 피해 상황에 대해서도 적극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거대한 거미’가 떠오르는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대규모 회고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불 작가의 40여 년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개인전, 호주 출신의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의 첫 아시아 전시…. 지난해 경기 침체 여파로 미술시장도 한파를 맞았지만, 그나마 무게 있는 전시들이 줄을 이으며 관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뱀의 해’를 맞은 2025년도 국내외 명망 있는 작가들의 전시가 풍성하게 준비돼 있다. 올해 라인업에선 팬층이 두꺼운 작가들의 개인전이 빼곡하다.● 부르주아 내면 파고드는 호암 전시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부르주아의 회고전은 8월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해 9월부터 이달 9일까지 열리는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의 부르주아 대규모 회고전은 이미 도쿄를 다녀온 애호가도 적지 않다. 실제로 모리미술관 전시작 중 일부도 호암미술관으로 오지만, 전시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호암 전시는 부르주아의 ‘정신분석 텍스트’가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르주아는 생전 수십 년간 정신 치료를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남긴 일기 등의 기록이 말년에 공개된 바 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전시 작품을 구성해 작가의 무의식이 작품과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김 부관장은 “작품을 감상하며 부르주아의 일기와 메모 등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겠다”며 “작가의 내면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9월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불 개인전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1980년대부터 40여 년간 펼친 작품 활동을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초기 노래방 작업과 사이보그 연작, 2005년 이후 이어지는 ‘나의 거대 서사(Mon Grand Recit)’ 연작이 중심이다. 초기 영상 작품을 다룬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과 달리, 이불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현 첫 전시는 ‘론 뮤익’국립현대미술관의 2025년 첫 전시는 4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론 뮤익 개인전이다. 뮤익은 2021년 리움 재개관 기획전인 ‘인간, 일곱개의 질문’에서 커다란 얼굴 조각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 적이 있다. 뮤익은 영화 특수분장 일을 했던 경력을 살려 살아 있는 듯 생생히 묘사된 인체 조각을 실제 사람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만들어 섬뜩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이 있는 전시를 해보고 싶다”고 밝힌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체제에서 기획된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밖에도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전(4월 덕수궁), 김창열 개인전(8월 서울), ‘젊은 모색’(4월 과천) 등의 전시가 준비돼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하종현 7957’(2월), 스페인 현대미술전인 ‘맑고 투명하고 깨어있는’(5월),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개인전(8월)을 연다.● 젊은 작가 주목하는 갤러리들 국제갤러리와 갤러리현대의 라인업에서는 젊은 한국 작가들의 개인전이 눈에 띈다. 국제갤러리는 장파(43) 개인전을 12월 서울에서 연다. 장파는 강한 색채로 신체의 장기를 닮은 그로테스크한 형태를 그린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를 ‘여성적 그로테스크’라고 표현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에도 대형 작품을 출품했다. 갤러리 측은 해외 아트페어에 출품할 강렬한 시각 언어를 가진 작가로 장파를 눈여겨본 것으로 전해졌다. 갤러리현대도 이우성(41) 개인전을 10월 신관에서 개최한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이 작가는 개념 위주로 접근하는 또래의 많은 작가와 달리 청춘, 연대, 집회 같은 일상 속 장면을 다뤄 한국 특유의 정서가 드러나는 점이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베니스 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한국관에서 전시됐던 ‘구정아―오도라마 시티’의 귀국 보고전이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 제1, 2전시실에서 열린다. 구정아 작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 있는 한국관에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 작품들과 더불어 전시 과정에서 수집한 ‘향의 기억’에 관련한 사연들도 한국 전시에서 함께 볼 수 있다. 구 작가는 2023년 6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국내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국에 얽힌 향의 기억’을 수집했다. ‘산동네에서 사용했던 연탄 냄새’, ‘학생 시위, 데모 현장에서 맡았던 최루탄 가스 냄새’, ‘가공되지 않은 싱싱하고 생생한 냄새’ 등 600여 편에 달하는 사연이 수집됐다. 전시장 1층에는 이 답변들이 보내준 사람의 이름과 함께 모두 공개됐다. 이는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성이다. 전시장 2층으로 가면 이렇게 수집한 이야기를 토대로 구 작가가 조향사에게 의뢰해 만든 17개의 서로 다른 향기를 맡아볼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진가 아널드 뉴먼이 찍은 대담하고 실험적인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초상 사진. 스트라빈스키의 얼굴은 왼쪽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고, 그랜드 피아노의 검은 덮개가 무거운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런가 하면 경쾌한 추상을 그린 페르낭 레제의 사진에서는 심각한 표정의 작가 왼쪽 아래 원기둥 두 개가 사람의 다리처럼 유쾌하게 겹쳐 있다. 이렇게 파블로 피카소부터 존 F 케네디까지 20세기의 주요 인물을 렌즈에 담은 사진가 뉴먼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시된다. 내년 3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에서 열리는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전은 뉴먼의 초기 실험작, 잡지 의뢰작, 창의적인 인물 사진, 기업 의뢰작, 보도 사진 등 200여 점을 전시한다. 2023년 캐나다 온타리오 미술관(AGO)에서 먼저 열렸던 전시를 뮤지엄한미와 AGO가 공동 기획·재구성했다. 뉴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가, 작곡가, 배우와 정치인의 강렬한 초상 사진을 촬영했다. 특히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을 주변 환경을 이용해 드러내는 방식의 ‘환경 초상’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조지아 오키프를 피사체로 할 때는 그녀가 즐겨 그렸던 들소의 머리뼈를 오키프의 옆얼굴 위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초상은 텅 빈 것 같은 커다란 집 앞에 호퍼를 덩그러니 앉혔다. 거기에 그의 아내는 아주 멀리서 걸어오는 구도로 거의 점처럼 보이게 담았고, 전체 광경을 마치 열쇠 구멍 사이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연출했다. 그 결과 사진은 호퍼의 쓸쓸하고 고요한 회화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 작품 중 상당수는 잡지사의 의뢰로 촬영됐다. 이 때문에 전시는 뉴먼의 작품에 미친 당대 잡지의 영향력도 주의 깊게 다룬다. ‘하퍼스 바자’, ‘라이프’, ‘홀리데이’, ‘포천’, ‘타운&컨트리’ 등 잡지와 뉴먼이 맺은 관계, 이들 매체와 작가 간의 상호 보완적 관계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피카소, 앤디 워홀 같은 미술가뿐 아니라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작곡가 글렌 굴드, 헨리 루스 라이프 매거진 창립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초상 사진도 전시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97년 오스트리아 빈.전통적인 아카데미 예술이 아닌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구스타프 클림트를 대표로 선출합니다. 여기엔 건축가 요셉 호프만, 디자이너 콜로먼 모저도 함께 있었죠.‘시대에 맞는 예술’을 보여주겠다는 이들의 꿈은 20년도 이어지지 못하고 잿더미가 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꿈을 꾸었던 대도시 빈. 이곳의 예술 작품과 그 안에 담긴 여러 겹의 사회상을 소개합니다.극적인 탐미주의, 클림트빈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을 모색한 된 계기는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예술이었습니다.다만 이들이 추구했던 예술은 ‘신성한 봄’(빈 분리파가 발간한 저널)이라는 말처럼 다소 모호합니다.같은 시기 후기 인상파 작가인 세잔이나 고갱이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면, 클림트의 작품은 장식적인 경향이 강합니다.키스, 연인, 삶과 죽음 같은 소재는 추상적이고 드라마틱하죠.이 때문에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클림트는 미술사에서 변방의 독특한 취향으로 여겨졌고 오히려 오스카 코코슈카의 표현주의가 더 인정받았습니다.198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1900년대 빈을 조명했을 땐 건축과 디자인을 먼저 소개한 다음, 회화를 다뤘으니까요.그러나 최근 빈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과 함께 클림트에 대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신흥 중산층과 초상화영국 내셔널갤러리가 2013년 전시에서 주목한 것은 초상화입니다. 이 전시의 출발은 클림트가 1888년 그린 ‘옛 부르크극장의 오디토리움’.여기서 부르크극장은 당시 빈의 신흥 중산층에게 중요한 공간이었는데요. 황제 및 상류층과 중산층이 한데 모이는 몇 안 되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입니다.클림트의 그림은 극장의 무대가 아니라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단체 사진처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즉 여기서 중요한 건 극장의 콘텐츠가 아니라 ‘누가 여기에 앉아 있느냐’. 이 그림의 목적은 황제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이너서클’을 인증하는 ‘인증샷’과 같은 것이었습니다.당시 빈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이끌고 있었지만, 그 제국은 헝가리와 타협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안에는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 다양한 출신의 인구가 각자의 언어와 종교 인정을 요구하고 있는, 겉모습은 제국이지만 절충적인 대도시였습니다.이곳의 신흥 중산층은 초상화로 신선한 취향과 계급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이를 가장 탁월하게 충족해 준 화가 중 한 명은 클림트였고요.즉 인상파의 화법은 가져오되, 왕정을 인정하지 않는 급진성은 제외하고, 상류층 취향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었던 빈 중산층의 욕망을 클림트의 회화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러한 미의식은 다른 한쪽에서 반발을 일으킵니다.실레와 코코슈카의 표현주의“클림트가 참여한다면 나는 전시하지 않겠다!”이 말은 클림트가 최고 인기 작가였을 때 20대 작가인 리하르트 게르스틀이 한 것입니다.게르스틀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한 자화상을 비롯해 뛰어난 초상화를 남겼죠. 그는 아널드 쇤베르크의 음악을 알아보고 가까이 지내며 그림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의 초상도 그렸는데요.쇤베르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진 듯합니다.코코슈카가 클림트를 ‘대도시 스타일리스트’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는데요.이렇게 클림트가 대도시에서 인정받으려는 중산층의 욕망에 충실했다면, 그의 다음 세대 젊은 작가들(게르스틀, 코코슈카, 에곤 실레)가 빈에서 본 것은 그러한 욕망이 낳은 어두운 그림자였습니다.빈은 도시화가 이뤄진 링슈트라세 지역의 땅 위로는 새로운 건축과 화려한 일상이 펼쳐졌죠. 그런데 이곳의 지하에는 ‘두더지 인간’들이 살고 있고, 그 외곽에는 ‘홍등가’로 불리는 성매매 지역이 크게 발달했습니다.‘두더지 인간’은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에 왔지만, 집이 부족해 지하 하수구에서 살았던 이민자들을 가리킵니다.1880~1890년에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한 빈에서 이민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시달렸고, 이러한 실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집이 빈에서 세계 최초로 발표되기도 했죠.실레의 적나라한 누드는 주체할 수 없이 폭발하는 욕망의 단면을 암시합니다.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폭발적으로 분출된 욕망은 클림트의 ‘탐미주의’나, 빈 분리파 건축가들의 ‘총체 예술’, 혹은 실레와 코코슈카의 표현주의 어느 한 쪽으로도 정리되지 못한 채 전쟁으로 막을 내립니다.이후 빈은 반유대주의, 사회주의(레드 비엔나), 나치즘 등 극단을 오가며 소용돌이에 휩싸였고요.그런 격동기를 앞둔 빈의 모습이 최근 현대 사회의 출발로 여겨지며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그중에서도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같은 도시 안의 너무나 다른 모습을 표현하며 여러 가치가 혼재했던 빈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97년 오스트리아 빈. 전통적인 아카데미 예술이 아닌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구스타프 클림트를 대표로 선출합니다. 여기엔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 디자이너 콜로만 모저도 함께 있었죠. ‘시대에 맞는 예술’을 보여주겠다는 이들의 꿈은 20년도 이어지지 못하고 잿더미가 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꿈을 꾸었던 대도시 빈. 그곳의 예술 작품과 그 안에 담긴 여러 겹의 사회상을 소개합니다.극적인 탐미주의, 클림트 빈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을 모색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예술이었습니다. 다만 이들이 추구했던 예술은 ‘신성한 봄’(빈 분리파가 발간한 저널)이라는 말처럼 다소 모호합니다. 같은 시기 후기 인상파 작가인 세잔이나 고갱이 개인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다면, 클림트의 작품은 장식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키스, 연인, 삶과 죽음 같은 소재는 추상적이고 드라마틱하죠. 이 때문에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클림트는 미술사에서 변방의 독특한 취향으로 여겨졌고 오히려 오스카어 코코슈카의 표현주의가 더 인정받았습니다. 198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1900년대 빈을 조명했을 땐 건축과 디자인을 먼저 소개한 다음, 회화를 다뤘으니까요. 그러나 최근 빈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과 함께 클림트에 대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신흥 중산층과 초상화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2013년 전시에서 주목한 것은 초상화입니다. 이 전시의 출발은 클림트가 1888년 그린 ‘옛 부르크극장의 오디토리움’. 여기서 부르크극장은 당시 빈의 신흥 중산층에게 중요한 공간이었는데요. 황제 및 상류층과 중산층이 한데 모이는 몇 안 되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클림트의 그림은 극장의 무대가 아니라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단체 사진처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서 중요한 건 극장의 콘텐츠가 아니라 ‘누가 여기에 앉아 있느냐’입니다. 이 그림의 목적은 황제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이너서클’을 인증하는 ‘인증샷’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빈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이끌고 있었지만, 그 제국은 헝가리와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안에는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 다양한 출신의 인구가 각자의 언어와 종교 인정을 요구하고 있는, 겉모습은 제국이지만 절충적인 대도시였습니다. 이곳의 신흥 중산층은 초상화로 신선한 취향과 계급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이를 가장 탁월하게 충족해 준 화가 중 한 명이 클림트였고요. 즉, 인상파의 화법은 가져오되 왕정을 인정하지 않는 급진성은 제외하고, 상류층 취향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었던 빈 중산층의 욕망을 클림트의 회화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의식은 다른 한쪽에서 반발을 일으킵니다.실레와 코코슈카의 표현주의 “클림트가 참여한다면 나는 전시하지 않겠다!” 이 말은 클림트가 최고 인기 작가였을 때 20대 작가인 리하르트 게르스틀이 한 것입니다. 게르스틀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한 자화상을 비롯해 뛰어난 초상화를 남겼죠. 그는 아널드 쇤베르크의 음악을 알아보고 가까이 지내며 그림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의 초상도 그렸는데요. 쇤베르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진 듯합니다. 코코슈카가 클림트를 ‘대도시 스타일리스트’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는데요. 이렇게 클림트가 대도시에서 인정받으려는 중산층의 욕망에 충실했다면, 그의 다음 세대 젊은 작가들(게르스틀, 코코슈카, 에곤 실레)이 빈에서 본 것은 그러한 욕망이 낳은 어두운 그림자였습니다.빈은 도시화가 이뤄진 링슈트라세 지역의 땅 위로는 새로운 건축과 화려한 일상이 펼쳐졌죠. 그런데 이곳의 지하에는 ‘두더지 인간’들이 살고 있고, 그 외곽에는 ‘홍등가’로 불리는 성매매 지역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두더지 인간’은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에 왔지만, 집이 부족해 지하 하수구에서 살았던 이민자들을 가리킵니다. 1880∼1890년에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한 빈에서 이민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시달렸고, 이러한 실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집이 빈에서 세계 최초로 발표되기도 했죠. 실레의 적나라한 누드는 주체할 수 없이 폭발하는 욕망의 단면을 암시합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분출된 욕망은 클림트의 ‘탐미주의’나, 빈 분리파 건축가들의 ‘총체 예술’ 혹은 실레와 코코슈카의 표현주의 어느 한쪽으로도 정리되지 못한 채 전쟁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후 빈은 반유대주의, 사회주의(레드 비엔나), 나치즘 등 극단을 오가며 소용돌이에 휩싸였고요. 그런 격동기를 앞둔 빈의 모습이 최근 현대사회의 출발로 여겨지며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같은 도시 안의 너무나 다른 모습들을 표현하며 여러 가치가 혼재했던 빈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홍이현숙 작가가 베테랑 등반가들과 협업해 북한산 인수봉을 광목천에 프로타주(탁본)한 작품을 공개했다. 세로 11.25m, 가로 1.6m 광목천 6줄로 된 설치 작품과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 인수봉의 소리를 담은 음향 1점으로 구성된 신작의 제목은 ‘당신이 지금 만지는 것―인수봉’이다. 이 작품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5일 개막한 전시 ‘돌과 밤’에서 볼 수 있다. ‘돌과 밤’은 서울시립미술관이 매년 여는 기획전 ‘타이틀 매치’ 시리즈의 올해 버전이다. 2024 타이틀 매치는 퍼포먼스 작가 홍이현숙과 염지혜를 초청해 10년 만에 여성 작가 2인전으로 구성했다. 두 작가는 기후 이변, 전쟁 등 세계가 처한 위기를 통찰하는 신작 4건과 영상, 설치, 회화 등 작품 35점을 전시한다. 홍이현숙 작가가 비석과 바위를 닦아내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인 ‘돌’이 하나의 자연으로 서로 얽혀 있다고 보고, 그것에 직접 손을 맞대고 접촉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 위한 것이다. 또 그는 ‘돌’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중 하나인 영상 작품 ‘아미동 비석마을’도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공동묘지로 사용됐던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을 배경으로, 비석에 얽힌 상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밤’을 모티프로 하는 염지혜의 작품은 ‘만일 지금이 이 세상의 마지막 밤이라면 어떡하나?’라는 위기감에서 ‘불’, ‘가속’, ‘지연’ 같은 개념들을 인간의 형태로 등장시킨 이야기를 영상으로 구성했다. 또 이 작품과 연결되는 영상 작품 ‘한낮의 징후’는 그러한 위기 앞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미술사 속 인물부터 파란 가재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그려냈다. 두 작가가 협업한 작품도 전시됐다. ‘돌과 밤’은 두 작가가 5개의 키워드로 작성한 짧은 글을 목소리로 주고받는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바다 생물과 인간의 몸 사이에 접점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바다생물 다라니’를 함께 읊는 것으로 시작해, 홍이현숙이 ‘버드나무가 돌아왔다’를 낭독하며 공존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내년 3월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북 구미시에서 개최하려던 가수 이승환의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가 취소되자 24일 강기정 광주시장이 ‘광주 콘서트’를 제안했다. 이승환은 1시간 뒤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의 공연을 기대한다”며 이 제안을 수락했다. 강 시장은 페이스북으로 “구미시가 이승환 가수의 콘서트 대관을 취소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럼 ‘광주에서 합시다’라고 말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계엄이 얼마나 황당하고 엉터리였으면 K-pop을 응원하는 청소년들이 자기의 가장 소중한 응원봉을 들고 길거리를 나섰겠는가! 우리를 지치지 않게 해주는 에너지, 바로 K-팝입니다”라며 “이승환 가수를 광주로 초대합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이승환은 페이스북으로 강 시장의 발언이 담긴 뉴스를 공유하며 “감사합니다. 제가 매니저가 없는 관계로 협력사 대표님께서 연락드릴 것이다”라고 답했다. 광주시는 콘서트를 위한 구체적 논의를 이승환 측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이승환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는 25일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김장호 구미시장이 13개 보수단체가 구미시청 앞에서 이승환 공연 반대 집회를 열자 “관객과 보수 우익단체 간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안전상 이유로 콘서트를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또 “이승환 씨는 14일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날 공연에서 ‘탄핵이 되니 좋다’고 했다”며 “‘보수 우익단체 여러분 감사합니다’는 등의 시민단체에 조롱과 냉소로 비칠 소지가 다분한 언급을 해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구미시가 ‘정치적 선동과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청했지만, 이승환 측이 반대했다. 이에 앞서 가수, 연주자, 프로듀서, 평론가 등 음악인 2645명이 참여한 ‘음악인 선언 준비모임’은 23일 ‘노래를 막지마라’는 성명을 내고 “예술가의 문화예술 활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기본권”이라며 “구미시가 이승환 콘서트 대관 취소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김장호 구미시장은 예술인과 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시적인 영상과 설치 작품으로 테이트 모던 ‘더 탱크스’ 개관전(2012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2021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Ua a‘o ‘ia ‘o ia e ia·그가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9일 개막했다. 미술관 2, 3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작가가 2022년 참가한 하와이 트리엔날레의 일부 작품과 신작 영상 ‘무제’, 2007년 영상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다.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역사를 처음 중고교 국사 교육으로 접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그 시대에 대해 자세히 읽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교육으로 배운 인식의 틀로 과거를 보게 된다”고 했다. “우리가 지난 2주간 경험한 한국 정치 역사에도 여러 인물이 있다. 국회 안팎의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소화기를 들고 있던 사람도 있고, 거리로 나온 시민도 있고, (노벨) 상을 받아 지금 일어나는 역사에 대해 말하는 소설가도 있고…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국사책의 기록에는 몇몇 인물만 나오고 그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그 색깔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가 ‘휴양지이자 아름다운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하와이의 역사를 풀어낸 것이 첫 번째 전시장이다. 이곳에는 1970년대 하와이 주권 운동 당시 하와이 출판사들이 펴냈던 책, 하와이의 변화를 기록한 사진가 그룹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가운데 도산 안창호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 이혜련(1884∼1969), 큰아들 안 필립(1906∼1978), 1950년 하와이로 건너가 조선의 전통춤을 가르쳤던 배한라(1922∼1994) 등 역사의 조연이었던 인물들의 사진을 프린트하고 세운 작품 ‘몸 콤플렉스’(2024년)가 설치됐다. 역사책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을 관객이 직접 마주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이번 전시 신작은 3층 두 번째 전시실에 선보이는 비디오 설치 ‘무제’다. 이 작품은 하와이의 역사를 발굴하는 ‘표해록’의 세 번째 신작인데 미완성이다. 작가는 2월 중순부터 3월까지 전시장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작품을 완성할 예정이다. 그는 “전시가 일방적인 발표의 장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작품을 관객과 함께 구성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 밖에 역사학자 정병문, 미술사학자 목수현, 미디어 역사학자 이용우의 강연 프로그램과 출판물 ‘레슨북―Room 3’가 전시장에서 제공된다. 전시는 내년 3월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시적인 영상과 설치 작품으로 테이트 모던 ‘더 탱크스’ 개관전(2012),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2021)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Ua a‘o ‘ia ‘o ia e ia, 그가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9일 개막했다. 미술관 2, 3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작가가 2022년 참가한 하와이 트리엔날레의 일부 작품과 신작 영상 ‘무제’, 2007년 영상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다.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역사를 처음 중고등학교 국사 교육으로 접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그 시대에 대해 자세히 읽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교육으로 배운 인식의 틀로 과거를 보게 된다”고 했다.“우리가 지난 2주간 경험한 한국 정치 역사에도 여러 인물이 있다. 국회 안팎의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소화기를 들고 있던 사람도 있고, 거리로 나온 시민도 있고, (노벨) 상을 받아 지금 일어나는 역사에 대해 말하는 소설가도 있고…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국사책의 기록에는 몇몇 인물만 나오고 그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그 색깔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가 ‘휴양지이자 아름다운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하와이의 역사를 풀어낸 것이 첫 번째 전시장이다. 이곳에는 1970년대 하와이 주권 운동 당시 하와이 출판사들이 펴냈던 책, 하와이의 변화를 기록한 사진가 그룹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가운데 도산 안창호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 이혜련(1884~1969), 큰아들 안 필립(1906~1978), 1950년 하와이로 건너가 조선의 전통춤을 가르쳤던 배한라(1922~1994) 등 역사의 조연이었던 인물들의 사진을 프린트하고 세운 작품 ‘몸 콤플렉스’(2024)가 설치됐다. 역사책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을 관객이 직접 마주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이번 전시 신작은 3층 두 번째 전시실에 선보이는 비디오 설치 ‘무제’다. 이 작품은 하와이의 역사를 발굴하는 ‘표해록’의 세 번째 신작인데 미완성이다. 작가는 2월 중순부터 3월까지 전시장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작품을 완성할 예정이다. 그는 “전시가 일방적인 발표의 장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작품을 관객과 함께 구성하는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밖에 역사학자 정병문, 미술사학자 목수현, 미디어 역사학자 이용우의 강연 프로그램과 출판물 ‘레슨북-Room 3’가 전시장에서 제공된다. 전시는 내년 3월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 한 해 미술계는 경기 침체로 인해 팬데믹 때의 활기는 사라지고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국내 10개 미술품 경매사의 온·오프라인 경매 낙찰 총액은 약 1151억 원으로 지난해의 75%, 최근 5년간 최저 수준을 보였다. 그럼에도 작품을 감상하러 미술관을 찾는 발길은 이어졌다. 올 한 해 공립미술관에서는 이색 설치·영상 작품이나 조경·공예 등으로 주제를 다양화한 전시들의 인기가 높았다. 해외 활동 작가 개인전이나 외국 큐레이터 초청이 활발했던 반면, 로컬 작가들의 두드러진 활약을 보기 어려웠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국현 ‘사물’전, 2030에 인기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연 전시 중 하루 평균 관람객이 가장 많았던 전시는 서울관의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하루 평균 1801명, 총관객 22만1542명)였다. 이 전시는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자는 주제로 국내외 현대미술가들을 모은 그룹전이다. 유명 작가 없이도 톡톡 튀는 영상, 설치, 사진 작품으로 젊은 관객이 많이 찾았다. 방문객 분포를 보면 20대가 55.5%, 30대가 20.7%로 2030 관객이 76.2%에 달했다.● 건축, 공예전도 주목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전시는 애플 본사 건물 ‘애플 파크’를 만든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터를 소개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파트너스’전(18만1000명)이다. 올해 공립 미술관에서는 이처럼 건축이나 조경, 공예를 전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14만9428명(하루 평균 1800명)이 관람해 국현에서 두 번째로 하루 평균 관람객이 많았다. 이 전시는 처음으로 20세기 자수 주요 작품을 모아 미술계에서도 호평받았다.● ‘부리오 효과?’ 외국 관객 증가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를 감독으로 선임해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부리오가 맡은 ‘판소리, 모두의 울림’ 전시는 22만9830명이 관람했고, 31개 국가와 기관이 참여해 만든 파빌리온전은 49만881명이 찾았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 비율이 지난 전시에 비해 7% 증가했다. 이 시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전도 외국인 관객이 10%에 달했다. 다만 ‘판소리’전은 한국 전통 음악극을 차용한 제목과 달리 한국 미술의 지역적 맥락과는 관계없이 부리오 감독이 평소 관심 갖던 주제인 인류세, 기후 위기를 전시로 풀어냈다. 이에 유명 감독을 선임해 한국 미술을 알린다는 취지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파인아트, 로컬 작가 개인전 실종 글로벌 아트페어가 개최되는 9월은 국내외 관객이 몰리는 시즌이 되고 있다. 이 시기 국내 주요 미술관이 개최한 개인전은 ‘정영선’(국현 서울), ‘아니카 이’(리움), ‘니콜라스 파티’(호암미술관) 등이다. 이 전시들은 조경가(정영선)를 다루거나 해외 활동 작가(아니카 이, 니콜라스 파티)를 초청했다. 개인전은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인 아드리아누 페드로사는 2023년 한국을 방문했다 남서울미술관에서 김윤신 개인전을 보고, 80대인 작가를 처음으로 본전시에 초청한 바 있다. 그럼에도 올해는 국내나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파인아트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적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자가 주목받을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도 유럽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미국 미술관은 국적 관계없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미국 미술가’로 보고 연구해 전시를 열기도 한다”며 “한국 또는 아시아의 맥락에서 작품을 하는 작가와 전시 기획자를 발굴해 연구하고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 한해 미술계는 경기 침체로 인해 팬데믹 때의 활기는 사라지고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국내 10개 미술품 경매사의 온·오프라인 경매 낙찰 총액은 약 1151억 원으로 지난해의 75%, 최근 5년간 최저 수준을 보였다. 그럼에도 작품을 감상하러 미술관을 찾는 발길은 이어졌다. 올 한해 공립미술관에서는 이색 설치·영상작품이나 조경·공예 등으로 주제를 다양화시킨 전시들의 인기가 높았다. 해외활동 작가 개인전이나 외국 큐레이터 초청이 활발했던 반면, 로컬 작가들의 두드러진 활약을 보기 어려웠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 국현 ‘사물’전, 2030에 인기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연 전시 중 하루평균 관람객이 가장 많았던 전시는 서울관의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하루평균 1801명, 총관객 22만1542명)였다. 이 전시는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자는 주제로 국내 외 현대미술가들을 모은 그룹전이다. 유명 작가 없이도 톡톡 튀는 영상, 설치, 사진 작품으로 젊은 관객이 많이 찾았다. 방문객 분포를 보면 20대가 55.5%, 30대가 20.7%로 2030 관객이 76.2%에 달했다. ● 건축, 공예전도 주목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전시는 애플 본사 건물 ‘애플 파크’를 만든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터를 소개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전(18만1000명)이다. 올해 공립 미술관에서는 이처럼 건축이나 조경, 공예를 전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14만9428명(하루평균 1800명)이 관람해 국현에서 두 번째로 하루평균 관람객이 많았다. 이 전시는 처음으로 20세기 자수 주요 작품을 모아 미술계에서도 호평받았다.● ‘부리오 효과?’ 외국 관객 증가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스타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를 감독으로 선임해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부리오가 맡은 ‘판소리, 모두의 울림’ 전시는 22만9830명이 관람했고, 31개 국가와 기관이 참여해 만든 파빌리온 전은 49만881명이 찾았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 비율이 지난 전시에 비해 7% 증가했다. 이 시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전도 외국인 관객이 10%에 달했다.다만 ‘판소리’전은 한국 전통 음악극을 차용한 제목과 달리 한국 미술의 지역적 맥락과는 관계없이 부리오 감독이 평소 관심 갖던 주제인 인류세, 기후 위기를 전시로 풀어냈다. 이에 유명 감독을 선임해 한국 미술을 알린다는 취지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파인아트, 로컬 작가 개인전 실종글로벌 아트페어가 개최되는 9월은 국내외 관객이 몰리는 시즌이 되고 있다. 이 시기 국내 주요 미술관이 개최한 개인전은 ‘정영선’(국현 서울), ‘아니카 이’(리움), ‘니콜라스 파티’(호암미술관) 등이다. 이 전시들은 조경가(정영선)를 다루거나 해외 활동 작가(아니카 이, 니콜라스 파티)를 초청했다.개인전은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인 아드리아누 페드로사는 2023년 한국을 방문했다 남서울미술관에서 김윤신 개인전을 보고, 80대인 작가를 처음으로 본전시에 초청한 바 있다. 그럼에도 올해는 국내나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파인아트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적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자가 주목받을 수 있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도 유럽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미국 미술관은 국적 관계없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미국 미술가’로 보고 연구해 전시를 열기도 한다”며 “한국 또는 아시아의 맥락에서 작품을 하는 작가와 전시 기획자를 발굴해 연구하고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류가 세계를 관찰하는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한쪽에서는 거대한 기계가 무한히 작은 입자인 ‘아원자’의 존재를 증명하고, 다른 쪽에서는 우주망원경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저 멀리 우주의 경계인 ‘빅뱅’의 잔광을 포착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종의 곤충이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영국의 생물학자로 세계 곳곳으로 곤충을 찾아 떠나 연구했으며, BBC 자연 다큐멘터리 진행자로 대중에게도 익숙한 저자가 곤충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들이 때론 하찮게까지 여기는 곤충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흥미롭고 기이한지를 쉽고 유쾌하게 설명한다. 우선 곤충은 인류보다 훨씬 먼저 지구에 나타나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했다. 그럼에도 ‘머리 가슴 배’라는 기본 체제는 오랜 시간 유지됐는데, 저자는 이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구조라고 설명한다. 곤충의 총 생물량은 사람과 가축을 더한 것보다 10배 이상 많다. 게다가 인간에게 ‘아낌없이’ 퍼준다. 꿀(벌)과 실크(누에나방)를 제공하고, 영국군을 상징하는 군복인 레드코트를 물들이는 염료(깍지벌레)를 주며, 사람의 손길로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제거하고 항균 작용(구더기)까지 해준다. 이렇게 저자는 곤충에 관한 지식을 풀어가는 한편 자연 다큐멘터리 거장인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을 비롯한 학자, 유명인 7명과의 인터뷰도 수록하며 더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애튼버러 경은 곤충을 비롯한 무척추동물을 다룬 영국 최초의 다큐멘터리 ‘덤불 속의 생명’을 제작한 과정을 전한다. 그는 “조류와 포유류가 시청자에게 더 인기가 많지만, 흙을 비옥하게 하고 꽃가루를 옮기며 분변과 사체를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곤충이 없어진다면 이 세계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책은 인간이 한 행위로 지구의 환경이 변해가는 ‘인류세’로 곤충이 맞은 위기를 일깨운다.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과 공존을 모색할 마지막 기회인 지금을 놓치지 말자고 강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종로문화재단은 18일부터 내년 2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에서 ‘2024 무계원·유금와당박물관 협력 전시 <DATE>展’을 연다. 이번 전시 <DATE>展은 창의적인 작업 방식을 통해 공예와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예술적 지향점을 모색하는 작가들의 시도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국내외의 공예‧한복 작가 21명의 6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1부 공예 전시가 12월 18일부터 내년 1월 12일까지, 2부 한복 전시가 2025년 1월 17일부터 2월 13일까지 열린다. 1부는 금속, 섬유 텍스타일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공예 작품이 전시되며 참여 작가로는 금기숙, 김계옥, 민호선, 서윤정, 선다혜, 오화진, 이재익, 이현정, 정호연, 주경임이 참여한다. 2부는 조형적 시도를 담아낸 감각적인 한복 공예를 선보이며 참여 작가로는 권혜진, 김남희, 김단하, 김지원, 김인자, 여백선옥, 이향, 이혜미, 정혜진, 황선태, 황이슬이 참여한다. 종로문화재단 김승모 대표이사는 “이번 유금와당박물관의 대외협력전시 <DATE>展을 통해 시민들에게 볼거리가 가득한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종로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문의는 무계원과 유금와당박물관으로 하면 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관이 전시할 때 생기는 쓰레기를 전시장 속 작품 옆에 함께 놓고(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작가와 작품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전시를 하거나(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 어린이를 훈육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비판하는 어린이 전시(포스트 모던 어린이)를 한다. 불특정 다수가 찾는 공립미술관은 민원이 두려워 과감한 전시를 꺼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렸고, ‘민원’보다 ‘반응’이 나왔다.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에는 관객 1만2000명이 작품을 보고 감상평을 남겼고 ‘포스트 모던 어린이’는 1, 2부 전시를 합해 24만 명이 관람해 해당 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 흥행 전시가 됐다. 과감한 전시 기획으로 주목받는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39)를 부산에서 만났다.● 미술관 전시의 경계는?최 학예연구사가 지금까지 연 전시는 ‘미술관에서 이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그가 최근 선보인 기획전 ‘능수능란한 관종’은 관심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을 비꼬는 단어 ‘관종’(관심 종자)을 주제로 예술 작품을 모았는데, 실험미술가 성능경(80)부터 개념 미술 대표 작가 피에로 만초니(1933∼1963), 젊은 작가 신민(39)과 화가 겸 가수인 조영남(79)까지 작품을 냈다. 이 전시는 “미술관 전시에 ‘관종’이라는 비속어를 전시 제목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출발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철구’ 같은 유튜버가 삭발하거나 물구나무를 서는 과한 행위를 하는 것이 동시대 퍼포먼스 예술가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현대 미술가와 유튜버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런 행위가 미학적 의미나 사회적 비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이어졌죠.”처음엔 미술관 내부에서도 ‘관종’에 거부감이 있었다. 이에 최 학예연구사는 미술관 전시에 맞는 ‘공공성’을 보강했다. “관심과 주목의 사회적 의미에 관한 학술 연구를 찾아보며 공부했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주목받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에 따르는 위험과 가능성은 무엇인지가 중요한 주제가 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1961년) 같은 20세기 미술사의 유명 작품이 추가됐고, 해외 유명 미술가인 토마스 히르슈호른은 전시 기획을 흥미롭다고 느껴 대형 설치 신작으로 참여했다.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의미 있는 볼거리’가 생긴 셈이다.● ‘불호’ 관객 있어도 좋아과거에 큐레이터는 작품을 연구, 보존하고 전시하는 역할로 생각했고, 공립 미술관 전시는 텍스트 연구를 토대로 작품을 배열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 미술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큐레이터라 생각했다면 요즘은 관객과 최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소통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다. 올해로 4년 차인 최 학예연구사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데 관심이 있다. 여기에 작용한 여러 배경 중 하나는 학예연구사가 되기 전 했던 작가 활동이다. 최 학예연구사는 미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미대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선발돼 레지던시까지 제공받았는데, 이때 캔버스 한 올에 물감을 묻힌 다음 ‘회화’의 개념을 묻는 작업을 했다. 처음으로 기획한 전시인 ‘지속 가능한 미술관’도 기후 변화 시대에 미술관의 역할을 묻는 시의성 있는 주제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미술관의 우려와 달리 관객들은 더 열려 있고, 알고 싶어하며, 의견을 내고 싶어 한다. 최 학예연구사는 “제 전시가 낯설거나 ‘불호’를 느끼는 관객이 있어도 좋다”며 “싫어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면 그것은 저만의 것이 아닌, 보는 사람이 함께 완성하는 것이니까요.”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관이 전시할 때 생기는 쓰레기를 전시장 속 작품 옆에 함께 놓고(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작가와 작품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전시를 하거나(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 어린이를 훈육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비판하는 어린이 전시를(포스트 모던 어린이) 한다. 불특정 다수가 찾는 공립미술관은 민원이 두려워 과감한 전시를 꺼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렸고, ‘민원’보다 ‘반응’이 나왔다.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에는 관객 1만2000명이 작품을 보고 감상평을 남겼고 ‘포스트 모던 어린이’는 1, 2부 전시를 합해 24만 명이 관람해 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 흥행 전시가 됐다. 과감한 전시 기획으로 주목받는 최상호 학예연구사(39)를 부산에서 만났다. ● 미술관 전시의 경계는?최 학예연구사가 지금까지 연 전시는 모두 ‘미술관에서 이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그가 최근 선보인 기획전 ‘능수능란한 관종’은 관심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을 비꼬는 단어 ‘관종’(관심 종자)를 주제로 예술 작품을 모았는데, 실험 미술가 성능경(80)부터 개념 미술 대표 작가 피에로 만조니(1933~1963), 젊은 작가 신민(39)과 ‘화수’(畵手, 화가 겸 가수) 조영남(79)까지 작품을 냈다. 이 전시는 “미술관 전시에 ‘관종’이라는 비속어를 전시 제목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출발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철구’ 같은 유튜버가 삭발하거나 물구나무를 서는 과한 행위를 하는 것이 동시대 퍼포먼스 예술가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현대 미술가와 유튜버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런 행위가 미학적 의미나 사회적 비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이어졌죠.” 처음엔 미술관 내부에서도 ‘관종’ 단어에 거부감이 있었다. 이에 최 학예연구사는 미술관 전시에 맞는 ‘공공성’을 보강했다. “관심과 주목의 사회적 의미에 관한 학술 연구를 찾아보며 공부했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주목받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에 따르는 위험과 가능성은 무엇인지가 중요한 주제가 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만조니의 ‘예술가의 똥’(1961) 같은 20세기 미술사의 유명 작품이 추가됐고, 해외 유명 미술가인 토마스 허쉬혼은 전시 기획을 흥미롭다고 느껴 대형 설치 신작으로 참여했다. 단순한 흥미 거리를 넘어 ‘의미 있는 볼거리’가 생긴 셈이다.● ‘불호’ 관객 있어도 좋아 과거에 큐레이터는 작품을 연구, 보존하고 잘 배열하는 역할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인식은 달라지고 있다. 영국 글래스고미술관에서는 전시가 취소되자 텅 빈 미술관 자체를 전시해 관객이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한 사례도 있다. 이전엔 미술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큐레이터라 생각했다면 요즘은 다양한 관객과 최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소통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진다.최 학예연구사도 관객에게 답을 정해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렇게 만든 전시에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각자의 답을 내놓았다.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에서 정보를 가렸을 때 9969명이, 공개된 뒤 2186명이 감상평을 남겼다. 최 학예연구사는 “기대와 달리 정보 공개 전과 후 감상평은 비슷했는데, 의외로 현대 미술에 대한 불만을 담은 감상평이 많았다”고 했다.미술관의 우려와 달리 관객들은 더 열려 있고, 알고 싶어하며, 의견을 내고 싶어 한다. 최 학예연구사는 “제 전시가 낯설거나 ‘불호’를 느끼는 관객이 있어도 좋다”며 “싫어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면 그것은 저만의 것이 아닌, 보는 사람이 함께 완성하는 것이니까요.” 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중 그림을 그린 도자기인 ‘도화(陶畵)’ 12점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도화’는 1970, 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도자기 그림으로, 조선시대 도화서의 화원들이 왕실 도자기에 그렸던 전통적인 그림 방식을 20세기에 재해석한 것이다. 내년 5월 6일까지 열리는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전은 이건희 컬렉션 도화 시리즈를 비롯해 1950년대 이후 현대 도자 공예의 흐름을 20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조명한다. 1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도화’ 시리즈는 도예가 안동오(1919∼1989)가 만든 백자 위에 장우성(1912∼2005), 서세옥(1919∼2020), 김기창(1913∼2001) 등 유명 한국 화가들이 청색 물감으로 그렸다. 김기창이 그린 ‘백자청화기우’에는 소년을 태운 소가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이, 장우성이 그린 ‘백자청화시비파문육각화분’에는 전통적 문인화 소재인 비파나무가 묘사됐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 이전 한국 도자 전통에 대한 관심이 다시 환기되었던 때로, 김익영, 윤광조, 조정현은 백자, 분청사기, 옹기 양식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또 산업화,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국가 재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외벽에 도자기가 사용되기도 했다. 김수근이 만든 ‘세운상가’(1967년) 외벽의 도자기 그림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전시는 연대기순으로 구성된다. 1부보다 앞선 ‘프롤로그’ 전시장은 1950년대 한국 현대 도자 공예의 출발을 조명한다.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 부설 기관으로 설립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설립한 ‘성북동 가마’와 조각가 윤효중(1917∼1967)이 세운 한국미술품연구소가 운영한 ‘대방동 가마’에서 제작된 조선백자와 고려청자 등이 공개된다. 2부 ‘예술로서의 도자’는 1980, 90년대 국제 예술 양식을 적극 수용해서 전개된 도자 공예를, 3부 ‘움직이는 전통’은 21세기 이후 현대 도자 공예가 추구하는 다양성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대형 도자 설치 작품은 물론이고 여성 도예 그룹 ‘흙의 시나위’ 창립 멤버로 활동한 한애규의 작품, 또 1997년 외환위기 전후 도자 수요가 증가하며 등장한 광주요와 이도를 설립한 이윤신의 작업을 통해 생활 도자 정착 과정을 볼 수 있다. 3부에서는 국제 공예 비엔날레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 또 팬데믹 이후 ‘K공예’를 이끄는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중 그림을 그린 도자기인 ‘도화’(陶畵) 12점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도화’는 1970~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도자기 그림으로, 조선시대 도화서의 화원들이 왕실 도자기에 그렸던 전통적인 그림 방식을 20세기에 재해석한 것이다. 내년 5월 6일까지 열리는 ‘한국 현대 도자공예: 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로운’전은 이건희 컬렉션 도화 시리즈를 비롯해 1950년대 이후 현대 도자 공예의 흐름을 200여 점 작품을 통해 조명한다.1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도화’ 시리즈는 도예가 안동오(1919~1989)가 만든 백자 위에 장우성(1912~2005), 서세옥(1919~2020), 김기창(1913~2001) 등 유명 한국 화가들이 청색 물감으로 그렸다. 김기창이 그린 ‘백자청화기우’에는 소년을 태운 소가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이, 장우성이 그린 ‘백자청화시비파문육각화분’에는 전통적 문인화 소재인 비파나무가 묘사됐다.이 시기는 일제강점기 이전 한국 도자 전통에 대한 관심도 다시 환기되었던 때로, 김익영, 윤광조, 조정현은 백차, 분청사기, 옹기 양식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또 산업화,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국가 재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외벽에 도자기가 사용되기도 했다. 김수근이 만든 ‘세운상가’(1967) 외벽에 도자기 그림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구성된다. 1부보다 앞선 ‘프롤로그’ 전시장은 1950년대 한국 현대 도자공예의 출발을 조명한다.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 부설 기관으로 설립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설립한 ‘성북동 가마’와 조각가 윤효중(1917~1967)이 세운 한국미술품연구소가 운영한 ‘대방동 가마’에서 제작된 조선백자와 고려청자 등이 공개된다.2부 ‘예술로서의 도자’는 1980~1990년대 국제 예술 양식을 적극 수용해서 전개된 도자 공예를, 3부 ‘움직이는 전통’은 21세기 이후 현대 도자공예가 추구하는 다양성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대형 도자 설치 작품은 물론 여성 도예 그룹 ‘흙의 시나위’ 창립 멤버로 활동한 한애규의 작품, 또 1997년 외환 위기 전후 도자 수요가 증가하며 등장한 광주요와 이도를 설립한 이윤신의 작업을 통해 생활 도자 정착 과정을 볼 수 있다. 3부에서는 국제 공예 비엔날레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 또 팬데믹 이후 ‘K-공예’를 이끄는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에드바르 뭉크의 가장 유명한 그림이자 20세기 모나리자로 불리는 작품 ‘절규’에는 연필로 쓴 글씨가 있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절규’(1893년) 이야기입니다. 글씨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미친 사람만이 그릴 그림’뒤늦게 발견된 이 글씨를 누가 썼느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인데요.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연구팀이 재개관을 준비하며 그 비밀을 밝혀냈습니다. 글씨를 쓴 범인은 바로 뭉크였습니다.‘나는 미친 사람인가?’이 글씨가 뭉크의 필적이라는 여러 가지 근거 중 하나는 1895년 어느 모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뭉크는 이 때 ‘절규’를 오슬로의 갤러리에 전시합니다. 전시에 관해 학생 토론회가 열린 밤, 한 의대생이 뭉크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저는 이 작품을 그린 사람의 정신 상태가 의심됩니다.”뭉크는 이 말에 큰 상처를 받습니다. 몇 십년이 지났을 때도 이 때 일을 곱씹으며 일기에 적었을 정도로 말이죠.자신의 그림을 폄하하는 말을 듣고 난 뒤 어느 시점에 뭉크가 직접 글씨를 새겨 넣었다는 것입니다.이밖에 그림을 적외선 촬영하고, 뭉크의 일기 속 필체와 대조한 결과 그가 쓴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미술관은 결론을 내렸습니다.그런데 뭉크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단순하게 상상을 해보면 홧김에 적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는 미친 사람인가?’ 고민하며 슬퍼서 적었겠다고 짐작할 수도 있죠.저는 뭉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적었다고 생각합니다.불안을 평생 곱씹은 화가뭉크는 ‘미친 사람’ 일화 말고도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여러 차례 떠올리며 그 때의 감정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그 중 하나는 바로 누나 요한네 소피(1862~1877)의 죽음이죠.어린 시절 결핵으로 어머니에 이어 누나까지 잃은 뭉크는 22세였던 1885년 처음으로 병상에 있는 소피를 담은 ‘아픈 아이’(The Sick Child)를 그린 뒤 40년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같은 주제를 반복해 그립니다.뭉크가 이 기억을 그린 이유는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아픈 아이’에 대해 남긴 말입니다.“처음엔 인상주의 그림을 그렸지만 나의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아픈 아이’를 그리며 내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여기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뭉크 이전의 화가들이 이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그리다가(아카데미 역사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하기를 시도(인상주의)했는데 뭉크의 시대에 이르러 미술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간 것이기 때문입니다.뭉크의 작품은 결국 나를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과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곱씹은 결과물입입니다.그러니 ‘미친 사람’이라는 비난을 글로 새긴 것은, 그 말을 들었을 때 흔들린 나 자신과 거기서 일어나는 감정을 관찰하기 위한 일종의 화두였을 것입니다.‘절규’가 아이콘이 된 이유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뭉크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과거에도 화가들은 여러 감정을 표현했지만 그것은 성경 속 일화나 역사적인 사건, 신화에 빗대어 이루어지곤 했습니다.그런데 뭉크는 가족의 죽음, 연인과의 다툼, 관객의 비난, 실연의 고통 등 아주 개인적인 삶에서 겪는 감정을 파고 듭니다.‘절규’ 역시 어느 날 친구와 오슬로의 다리를 건너다 불현듯 휘몰아치는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뭉크가 글로 쓴 ‘절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나는 두 친구와 걷고 있었다.해가 지고 있었고, 갑자기 하늘이 피로 물들었다.나는 지쳐서 잠시 멈춰 울타리에 몸을 기대었다.검푸른 바닷가와 도시 위에 피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화염이 치솟았다.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불안에 떨며 혼자 서 있었다. 그 때 온 세상을 찢을 듯한 끝없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제가 오늘 ‘절규’에 대해 쓰게 된 것은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취재를 갔다가 보고 느낀 것 때문인데요.이 미술관에서 ‘절규’ 옆은 늘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으며, 미술관 중심에 전시돼 노르웨이 미술을 소개하는 관문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문화재 급으로 중요한 대접을 받는 ‘절규’. 그만큼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그것은 뭉크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역사나 예술이 외면했던 개인의 불안, 슬픔, 고통을 곱씹으며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입니다.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외로움, 언젠간 맞아야 할 결말인 죽음,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왔는가 라는 의문 같은 것들.살면서 느끼는 이런 감정들은 종교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묻혀 좀처럼 생각되지 않는 것들이었죠.그러나 20세기 전환기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처럼 개인을 중심에 두고 오래된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학술적 결과는 물론 과학, 기술, 사회에서 많은 것이 변화하며 터져 나오는 개인의 감정, 욕망, 불안, 이런 것을 ‘절규’는 예고하고 있습니다.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절규’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작품이 되었죠. 여기에 새겨진 ‘미친 사람이 그릴 그림’이라는 글씨, 자신이 느끼는 것을 솔직하게 대면하려 했던 예술가의 흔적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