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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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4-04-23~2024-05-23
음악57%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칼럼10%
문화 일반3%
  • OTT로 영화만 보시나요… ‘클래식 전용’ OTT 등장

    세계 유명 악단의 콘서트와 오페라, 발레 등을 PC와 모바일 기기로 감상할 수 있는 클래식 전용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나왔다. 해외 공연물의 위성 중계와 영화관 상영 등을 맡아온 케빈앤컴퍼니는 클래식 공연 영상을 고화질과 고음질로 시청할 수 있는 OTT ‘뮤직온에어’를 지난달 30일 선보였다. 포털사이트에서 뮤직온에어를 검색하면 PC 버전으로 볼 수 있고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에서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을 수 있다. 임경환 케빈앤컴퍼니 대표는 3일 “호수 위의 오페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오페라 영상을 비롯해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20세기 최고 지휘자들의 전설적 영상 등 세계적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 200여 편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앱을 내려받은 뒤 기자에게 제공된 시험용 시청 아이디로 뮤직온에어에 접속해 봤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리골레토’ ‘카르멘’ 등 야외 오페라, TV 시청자를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클래식 팬이 접하는 영국의 BBC 프롬스 음악축제, 전설적인 베토벤 해석가로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영상 등 다양한 메뉴가 가득 펼쳐졌다. 리골레토 메뉴를 누르니 기자가 현장에서 관람했던 장대한 야외오페라의 스케일이 풀HD 고해상도 영상으로 재생됐다. 뮤직온에어는 매달 새 작품을 올리고 분기별로 클래식 마니아들이 가장 기대하는 공연의 라이브 영상도 제공한다. 서비스 내 커뮤니티를 통해 전문가가 선정한 클래식 플레이리스트도 제공한다. 국내 클래식 콘텐츠도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임 대표는 “국내 클래식 전문 TV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 서비스 등을 통해 쉽고 다양한 클래식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나성동도서관 자료실에서 무료로 서비스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 공공도서관과 대학교 내 정보학술관에도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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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모니니’ 양인모 “한국 청중, 어려운 곡도 척척 받아줘요”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1위,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1위를 차지한 뒤 팬들로부터 ‘인모니니’(양인모+파가니니) ‘인모리우스’(양인모+시벨리우스)라는 별칭을 얻은 양인모(28)가 지난해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의 낭보 이후 처음 서울에서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갖는다. 2021년 빈 베토벤 국제콩쿠르 공동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김다솔(34)과 함께 한다.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19년 금호 솔로이스츠 콘서트에서 타네예프의 5중주곡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됐죠. 제가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 석사과정으로 오게 되자 다솔 형이 연락을 주셨어요. 베를린의 ‘살롱 크리스토포리’에서 연주도 함께 했고, 서로 이해가 깊어졌죠.” 같은 프로그램으로 김다솔과 함께 현재 전국 투어 중인 양인모가 1일 통화에서 말했다. 독일어권 작곡가의 곡만으로 꾸민 이번 프로그램도 두 사람이 함께 상의했다. 브람스와 베토벤의 소나타 한 곡씩, 약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20세기 초 신빈악파 작곡가 베베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작품’, 스위스계 오스트리아 독일 작곡가인 베아트 푸러(69)의 1993년 작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이다. “지난달 부산에서 연주했을 때 청중이 푸러의 곡을 낯설어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베베른의 곡을 더 어렵게 느끼시더군요. 베베른의 곡은 당시로는 새로운 음악언어를 썼지만 제게는 매우 낭만적으로 느껴져요. 드뷔시의 음악과도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고요. 여러 방식으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아주 ‘달달하게’ 연주할 수도 있어요. 무대마다 다른 해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연주곡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가장 대중적인 브람스의 소나타 1번으로 ‘비의 노래’라는 제목이 있다. 기자가 “연주 당일 서울에 봄비 예보가 있다”고 했더니 그는 “모두가 기다리는 비”라며 웃었다. 가장 최근 작품인 푸러의 곡은 미국 작곡가 몰턴 펠드먼의 ‘콥틱 라이트’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 일곱 번째 곡 ‘냇가에서’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이 굉장히 천천히 움직이는 느낌이고, 음 하나하나의 재료를 느낄 수 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현을 뜯는 등 특수한 테크닉도 나오죠. 청중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피아노 옆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바싹 붙어 연주합니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 10곡 중에서 7번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은 피아니스트들이 좋아하는 곡”이라고 했다. “베토벤이 좋아했던 조성인 C단조고요. 앞의 곡들보다 베토벤 고유의 확실한 스타일을 구축한 느낌이 강하죠.” 그는 이달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수학한다. 이에 베를린을 매달 오가며 지낼 예정이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심사위원장이었던 사카리 오라모가 지휘하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15일 영국 런던에서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협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에서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는 등 연주 일정도 빼곡히 잡혀 있다. 그는 앞으로 고국 공연에서 여러 실험을 펼쳐보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진은숙 협주곡을 연주할 때 다소 어려운 곡으로도 청중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과감한 선택을 할 때 저를 가장 인정해줄 수 있는 곳도 한국이고요. 앞으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4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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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모니니’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韓서 다양한 시험 펼칠 것”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1위,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1위를 차지한 뒤 팬들로부터 ‘인모니니’ (양인모와 파가니니를 합친말) ‘인모리우스’ (양인모와 시벨리우스를 합친말)라는 별칭을 얻은 양인모(28)가 지난해 시벨리우스 콩쿠르의 낭보 이후 처음 서울에서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갖는다. 2021년 빈 베토벤 국제콩쿠르 공동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김다솔(34)과 함께다.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019년 금호 솔로이스츠 콘서트에서 타네예프의 5중주곡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됐죠. 제가 베를린으로 오게 되자 다솔 형이 연락을 주셨어요. 베를린의 ‘살롱 크리스토포리’에서 연주도 함께 했고, 서로 이해가 깊어졌죠.” 같은 프로그램으로 전국 투어 중 1일 전화를 받은 양인모는 “다솔 형에게 예술적으로 도움을 받은 편”이라고 했다. 독일어권 작곡가의 곡만으로 꾸민 이번 프로그램도 두 사람이 함께 상의해 꾸몄다. 브람스와 베토벤의 소나타 한 곡 씩, 약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20세기 초 신 빈악파 작곡가 베베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작품’, 스위스계 오스트리아 독일 작곡가인 베아트 푸러(69)의 1993년 작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이다.“먼저 부산에서 연주했을 때 저는 청중들이 푸러의 곡을 낯설어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베베른의 곡을 더 어렵게 느끼시더군요. 베베른의 곡은 당시로는 새로운 음악언어를 썼지만 제게는 매우 낭만적으로 느껴져요. 드뷔시의 음악과도 맞물려있다고 생각하구요. 여러 방식으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아주 ‘달달하게’ 연주할 수도 있어요. 무대마다 다른 해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연주곡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가장 대중적인 브람스의 소나타 1번으로 ‘비의 노래’라는 제목이 있다. ‘연주 당일 서울에 봄비 예보가 있다’고 했더니 그는 “모두가 기다리는 비”라며 웃었다. 가장 최근 작품인 푸러의 곡은 미국 작곡가 몰튼 펠드만의 ‘콥틱 라이트’와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 일곱 번째 곡 ‘냇가에서’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이 굉장히 천천히 움직이는 느낌이고, 음 하나하나의 재료를 느낄 수 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현을 뜯는 등 특수한 테크닉도 나오죠. 청중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피아노 옆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바싹 붙어 연주합니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 10곡 중에서 7번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실은 피아니스트들이 좋아하는 곡”이라고 했다. “베토벤이 좋아했던 조성인 C단조구요, 앞의 곡들보다 베토벤 고유의 확실한 스타일을 구축한 느낌이 강하죠.” 그는 이달부터 독일 프랑크푸르트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수학한다. 베를린을 매달 왕복하며 지낼 예정이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심사위원장이었던 사카리 오라모가 지휘하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15일 영국 런던에서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협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에서는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는 등 연주 일정도 빼곡히 잡혀 있다. 그는 앞으로 고국 공연에서 여러 실험들을 펼쳐보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진은숙 협주곡을 연주할 때 다소 어려운 곡으로도 청중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과감한 선택을 할 때 시험에서 저를 가장 인정해줄 수 있는 곳도 한국이구요. 앞으로 여러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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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류 최초의 도서관은 세계화의 전초기지였다

    “인간이 창안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다. 다른 도구들은 인간의 몸이 확장된 것이지만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책의 영어 제목은 ‘파피루스’다. 우리말 제목은 스페인어 원서 제목을 옮긴 것이다. 두 제목을 비교하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책에 관한 책’이다. 세계가 책을 만들어낸 기록이자 책이 세계를 만들어낸 기록이다. 시대순으로 서술한 역사서는 아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감사의 말을 포함해 166편의 에세이를 모은 수상록에 가깝다. 저자의 언어는 종종 주술적이거나 비의(秘儀)적이다. 비의적 작가 보르헤스에 강한 오마주를 드러내는 점부터 그렇다. 이집트의 지중해변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도시다. 그의 친구이자 후계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지식의 보편성에 대한 최초의 꿈을 도서관으로 현실화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는 광대한 규모의 번역이 이뤄졌고 이곳은 오늘날 말하는 세계화의 전초기지였다. 기원전 3세기에는 장서 목록을 담당하는 칼리마코스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최초의 사서였다. 책을 대하는 방법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4세기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가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만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껴 이를 ‘고백록’에 기록했다. 책을 필사로만 제작하던 시절에는 부수가 많아도 비용이 절감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만들어두지 않는 게 오히려 중요했다. 책은 때로 권력자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한 뒤 조로아스터교의 책을 모두 불태웠다. 저자는 하이네가 1821년 희곡에 쓴 “책을 태우는 곳에서 사람을 태우게 되리라”는 말을 상기하며 나치의 유대인 책 분서, 미국 플로리다에서 목사가 코란을 태워 전 세계에서 보복 테러를 부른 사건, 독서가 금지된 세상을 그린 소설 ‘화씨 451’ 등을 잇따라 불러낸다. 프랑코 정권 시절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고서점에서 금지된 판본들을 찾던 일도 아련한 기억으로 소환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책의 일대기는 아니다. 본문의 163개 장은 문명의 시초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로 한정된다. 기원전 3세기 건립돼 7세기에 책들과 함께 소멸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그 중심을 이룬다. 저자는 중세 이후와 오늘날의 인터넷에까지 사유를 확장하지만 그것은 고대와의 비교나 연관성을 드러낼 때에 한한다. 흔한 풍문대로 책은 사라질까.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사물이나 관습은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미래가 있다. 22세기에 수녀와 책은 있겠지만 와츠앱과 태블릿은 없을 수도 있다. 미래는 과거를 바라보며 진보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력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흰 수염이 더부룩한 노학자를 연상할 수도 있다. 여성 서지학자인 저자는 2019년 40세로, 이 책을 낸 뒤 스페인 국립에세이상과 서점조합상을 수상했고,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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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 창안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때론 권력자들에게 눈엣가시

    “인간이 창안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책이다. 다른 도구들은 인간의 몸이 확장된 것이지만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신간 ‘갈대 속의 영원’(사진)의 영어 제목은 ‘파피루스’다. 우리말 제목은 스페인어 원서 제목을 옮긴 것이다. 두 제목을 비교하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책에 관한 책’이다. 세계가 책을 만들어낸 기록이자 책이 세계를 만들어낸 기록이다. 시대 순으로 서술한 역사서는 아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감사의 말을 포함해 166편의 에세이를 모은 수상록에 가깝다. 저자의 언어는 종종 주술적이거나 비의(秘儀)적이다. 비의적 작가 보르헤스에 강한 오마주를 드러내는 점부터 그렇다. 이집트의 지중해변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도시였다. 그의 친구이자 후계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지식의 보편성에 대한 최초의 꿈을 도서관으로 현실화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는 광대한 규모의 번역이 이뤄졌고 이곳은 오늘날 말하는 세계화의 전초기지였다. 기원전 3세기에는 장서 목록을 담당하는 칼리마코스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최초의 사서였다. 책을 대하는 방법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4세기 로마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가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만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느껴 이를 ‘고백록’에 기록했다. 책을 필사로만 제작하던 시절에는 부수가 많아도 비용이 절감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만들어두지 않는 게 오히려 중요했다. 책은 때로 권력자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한 뒤 조로아스터교의 책을 모두 불태웠다. 저자는 하이네가 1821년 희곡에 쓴 “책을 태우는 곳에서 사람을 태우게 되리라”는 말을 상기하며 나치의 유대인 책 분서, 미국 플로리다에서 목사가 코란을 태운 뒤 전 세계에서 보복 테러를 부른 사건, 독서가 금지된 세상을 그린 소설 ‘화씨 451’ 등을 잇따라 불러낸다. 프랑코 정권 시절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고서점에서 금지된 판본들을 찾던 일도 아련한 기억으로 소환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책의 일대기는 아니다. 본문의 163개 장은 문명의 시초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에 한정된다. 기원전 3세기 건립돼 7세기에 책들과 함께 소멸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그 중심을 이룬다. 저자는 중세 이후와 오늘날의 인터넷에까지 사유를 확장하지만 그것은 고대와의 비교나 연관성을 드러낼 때에 한한다. 흔한 풍문대로 책은 사라질까.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사물이나 관습은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미래가 있다. 22세기에 수녀와 책은 있겠지만 왓츠앱과 태블릿은 없을 수도 있다. 미래는 과거를 바라보며 진보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력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흰 수염이 더부룩한 노학자를 연상할 수도 있다. 여성 서지학자인 저자는 2019년 40세로, 이 책을 낸 뒤 스페인 국립에세이상과 서점조합상을 수상했고,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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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의 실이 탁 끊어지는 순간… 아, 맥베스

    “베르디는 ‘맥베스’를 자신이 쓴 음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 뒤의 작품부터는 많은 것이 바뀝니다. 새로운 오페라를 쓰는 전환점이 된 거죠.”(이브 아벨·지휘자) 국립오페라단이 베르디 중기의 걸작 오페라 ‘맥베스’를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올해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베르디 전막 오페라 네 작품으로 선보이는 ‘비바! 베르디’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왕 맥베스를 주인공으로 욕망이 가져온 파멸을 그린 작품이다. 청년기 셰익스피어에 심취했던 베르디는 후기의 ‘오텔로’, ‘팔스타프’에 앞서 이 작품에서 처음 셰익스피어 극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주인공의 어두운 성격을 고려해 맥베스 역을 테너가 아닌 바리톤으로 설정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 내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27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지휘를 맡은 이브 아벨은 “극적인 힘을 다 내보이면서 노래하다가 다음 순간 아주 낮은 소리로 노래하는 등 성악가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출을 맡은 파비오 체레사(사진)는 국립오페라단과 2016년 비발디의 ‘오를란도 핀토 파초’를, 2022년 베르디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를 함께 한 바 있다. 그는 “‘맥베스’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운명이 주어졌다고 전제하는 극”이라고 했다. “운명을 대하는 자세는 배역마다 다릅니다. 맥베스 부인은 운명이 자신에게 오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맥베스는 운명이 올 때까지 기다리죠. 신화의 운명론은 한 사람의 삶에 모든 것이 가는 실로 연결돼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실이 탁 끊어지는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무대미술을 맡은 티치아노 산티는 “눈(眼) 모양의 터널을 통해 운명을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널 안으로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우리가 결국 죽음을 맞이할 때 끝이 납니다.” 의상을 맡은 주세페 팔렐라는 처음에 흰색이었던 의상은 극이 흘러가면서 파멸을 상징하는 핏빛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맥베스 역에는 바리톤 양준모 이승왕, 맥베스 부인 역에는 소프라노 임세경과 에리카 그리말디, 맥베스의 친구 방코 역에 베이스 박종민 박준혁, 맥베스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하는 막두프 역에 테너 정의근 윤병길이 출연한다. 2만∼15만 원. 한편 지난달 취임한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은 이날 ‘맥베스’ 제작발표회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립오페라단의 새 비전을 발표했다. 최 단장은 지금까지 1년에 4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것을 2024년 6편, 2025년엔 8편으로 늘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연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노마이오페라’를 전국 10곳의 지역 문예회관으로 송출하고 오페라에 인문학을 곁들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성악 유망주에게 오페라 전문 교육을 제공하는 ‘KNO스튜디오’를 소수정예 위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맥베스’로 시작하는 올해 국립오페라단 ‘비바! 베르디’ 시리즈는 6월 22∼25일 ‘일 트로바토레’, 9월 21∼24일 ‘라 트라비아타’, 11월 30일∼12월 3일 ‘나부코’로 이어진다. 내년에는 로시니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과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바그너 ‘탄호이저’ 등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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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디의 눈으로 본 셰익스피어의 운명론 ‘맥베스’

    “베르디는 ‘맥베스’를 당시까지 자신이 쓴 음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 뒤의 작품부터는 많은 것이 바뀝니다. 새로운 오페라를 쓰는 전환점이 된 거죠.” (이브 아벨·지휘자) 국립오페라단이 베르디 중기의 걸작 오페라 ‘맥베스’를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올해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맞아 베르디 전막 오페라 네 작품으로 선보이는 ‘비바! 베르디’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왕 맥베스를 주인공으로 욕망이 가져온 파멸을 그린 작품. 청년기 셰익스피어에 심취했던 베르디는 후기의 ‘오텔로’, ‘팔스타프’에 앞서 이 작품에서 처음 셰익스피어 극을 오페라로 만들었으며 주인공의 어두운 성격을 고려해 맥베스 역을 테너 아닌 바리톤으로 설정했다.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 내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지휘를 맡은 이브 아벨은 “극적인 힘을 다 내보이면서 노래하다가 다음 순간 아주 낮은 소리로 노래하는 등 성악진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출을 맡은 파비오 체레사는 국립오페라단과 2016년 비발디의 ‘오를란도 핀토 파초’를, 2022년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를 함께 한 바 있다. 그는 “‘맥베스’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운명이 주어졌다고 전제하는 극”이라고 설명했다. “운명을 대하는 자세는 배역마다 다릅니다. 맥베스 부인은 운명이 자신에게 오라고 요구하는 반면 맥베스는 운명이 올 때까지 기다리죠. 신화의 운명론은 한 사람의 삶에 모든 것이 가는 실로 연결돼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실이 탁 끊어지는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무대미술을 맡은 티치아노 산티는 “눈(眼) 모양의 터널을 통해 운명을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널 안으로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우리가 결국 죽음을 맞이할 때 끝이 납니다.” 의상을 맡은 주세페 팔렐라는 극이 흘러가면서 처음에 흰 색이었던 의상은 파멸을 상징하는 핏빛을 띄게 된다고 말했다. 맥베스 역에는 바리톤 양준모 이승왕, 맥베스 부인 역에는 소프라노 임세경과 에리카 그리말디, 맥베스의 친구 방코 역에 베이스 박종민 박준혁, 맥베스에게 가족을 잃고 복수하는 막두프 역에 테너 정의근 윤병길이 출연한다. 2만~15만 원. 한편 지난달 취임한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은 이날 ‘맥베스’ 제작발표회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립오페라단의 새 비전을 발표했다. 최 단장은 지금까지 1년에 4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것을 2024년 6편, 2025년엔 8편으로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연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노마이오페라’를 전국 10곳의 지역 문예회관으로 송출하고, 오페라에 인문학을 곁들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성악 유망주에게 오페라 전문 교육을 제공하는 ‘KNO 스튜디오’를 소수정예 위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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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문제 경고한 ‘북 오브 워터’ 국내 초연

    ‘가이저는 아내와 사별한 73세 남성으로,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다. 집 밖에는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나고, 가이저는 집에 갇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가이저는 개인과 문명의 가치를 느낄 마지막 기회를 두고 방대한 지식에 광적으로 매달린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겸 작곡가 미헐 판데르 아의 신작 ‘북 오브 워터(Book of Water)’가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한국 초연된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의 소설 ‘홀로세의 인간’을 원작으로 통영국제음악재단이 베니스 비엔날레 등과 공동 위촉해 지난해 완성된 작품이다. 4월 4, 5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공연된다.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과 내레이터 아벌 더프리스가 출연한다. 판데르 아는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로마이어 작곡상 수상자. 인간과 문명의 미래에 대한 묵시록적 통찰을 다룬 ‘북 오브 워터’에 대해 그는 “원작 소설의 문제의식을 더욱 확장된 세계관으로 담았다.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도 환경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도 최근 홍수로 비극적인 재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경계를 넘어’를 주제로 31일부터 4월 9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과 블랙박스 등에서 열린다. 올해 두 번째로 이 음악제를 이끄는 진은숙 예술감독은 “장르, 시대, 서로 다른 음악세계의 경계를 넘고자 한다. 한계에 도전하는 대담한 아티스트들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현대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온드르제이 아다메크가 레지던스 작곡가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레지던스 연주자로 참여한다. 국내외 유명 오케스트라 연주자들로 조직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개막일인 31일과 4월 1일, 폐막일인 4월 9일 출연한다. 줄리아드 음악원 지휘과 원장인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봉을 든다. 4월 4일 단독 공연을 여는 영국 노던 신포니아 단원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끈다. 개막일 공연에서는 피에르 불레즈가 편곡한 라벨 ‘권두곡’을 시작으로 카바코스가 협연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4월 1일 공연에서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을, 폐막 공연에서는 아시아 초연곡인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현대음악 연주단체 ‘앙상블 모데른’은 네 차례 무대를 갖는다. 4월 3일 첫 공연에서는 올해 이 음악제 레지던스 작곡가인 아다메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를 세계 초연한다. 이탈리아의 유명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인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공연(4월 7, 8일)도 고(古)음악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영국 노던 신포니아는 4월 4일 디니스 소자 지휘로 공연한다.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기타처럼 옆으로 메고 켜는 첼로) 연주자 세르게이 말로프는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국내에서 이 악기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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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문제 경고한 ‘북 오브 워터’, 통영국제음악제서 선보인다

    ‘가이저는 아내와 사별한 73세 남성으로,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다. 집 밖에는 홍수와 산사태가 일어나고, 가이저는 집에 갇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가이저는 개인과 문명의 가치를 느낄 마지막 기회를 두고 방대한 지식에 광적으로 매달린다.’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겸 작곡가 미셸 판 데르 아의 신작 ‘북 오브 워터’(Book of Water)가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한국 초연된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쉬의 소설 ‘홀로세의 인간’을 원작으로 통영국제음악재단이 베니스 비엔날레 등과 공동 위촉해 지난해 완성된 작품이다. 4월 4, 5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공연된다. 현악4중주단 에스메 콰르텟과 나레이터 아벌 더 프리스가 출연한다.판 데르 아는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로마이어 작곡상 수상자. 인간과 문명의 미래에 대한 묵시록적 통찰을 다룬 ‘북 오브 워터’에 대해 그는 “원작 소설의 문제의식을 더욱 확장된 세계관으로 담았다.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도 환경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도 최근 홍수로 비극적인 재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경계를 넘어’를 주제로 31일부터 4월 9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과 블랙박스 등에서 열린다. 올해 두 번째로 이 음악제를 이끄는 진은숙 예술감독은 “장르, 시대, 서로 다른 음악세계의 경계를 넘고자 한다. 한계에 도전하는 대담한 아티스트들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현대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온드레이 아다멕이 레지던스 작곡가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레지던스 연주자로 참여한다.국내외 유명 오케스트라 연주자들로 조직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개막일인 3월 31일과 4월 1일, 폐막일인 4월 9일 출연한다. 줄리어드 음악원 지휘과 원장인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지휘봉을 든다. 4월 4일 단독 공연을 여는 영국 노던 신포니아 단원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끈다.개막일 공연에서는 피에르 불레즈가 편곡한 라벨 ‘권두곡’을 시작으로 카바코스가 협연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4월 1일 공연에서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을, 폐막 공연에서는 아시아 초연곡인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현대음악 연주단체 ‘앙상블 모데른’은 네 차례 무대를 갖는다. 4월 3일 첫 공연에서는 올해 이 음악제 레지던스 작곡가인 아다멕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를 세계 초연한다. 이탈리아의 유명 바로크 음악 연주단체인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공연 (4월 7, 8일)도 고(古)음악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영국 노던 신포니아는 4월 4일 디니스 소자 지휘로 공연한다.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기타처럼 옆으로 메고 켜는 첼로) 연주자 세르게이 말로프는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국내에서 이 악기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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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생 150주년, 라흐마니노프가 마주친 ‘세계의 낯섦’[유윤종의 클래식感]

    “나는 낯설어진 세계를 방황하는 유령 같다고 느낀다.” 오늘(28일) 서거 80주년을 맞은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그를 말해주는 세 가지 키워드는 ‘엄청난 기교의 피아니스트’ ‘감상주의(센티멘털리즘)’ 그리고 ‘망명’이었다. 러시아 제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혁명이 일어나자 서유럽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라흐마니노프가 마주친 ‘세계의 낯섦’은 고향과 타향의 차이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시골의 부유한 장원에서 자라난 라흐마니노프는 뉴욕 마천루의 엘리베이터와 마주쳐야 했다. 그는 유럽 낭만주의 음악의 품 안에서 자라났고 ‘음악은 일상의 사랑스러운 감정들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 차이콥스키를 경모하며 작곡을 연마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음악계는 음계를 파괴한 쇤베르크의 무조주의적 음악이나 ‘봄의 제전’으로 대표되는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적 음악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서두에 소개한 라흐마니노프의 말은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 지향과 예술적 환경에 대한 소외감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런 소외감이 타국에 발을 디딘 러시아 작곡가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라흐마니노프보다 여덟 살 위였던 핀란드의 교향악 거장 시벨리우스는 오스모 벤스케 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달 24,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 교향곡 6번(1923)을 작곡하면서 “오늘날 여러 음악가들이 온갖 복잡한 칵테일을 섞는 데 열중하지만 나는 맑은 생수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보다 열다섯 살 위였던 이탈리아의 오페라 거장 푸치니는 자신이 혼란하게 느낀 예술계의 기류에 대해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음악으로 응답할 것이다. 이 미친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라고 편지에 썼다. 푸치니는 1924년 세상을 떠났고 시벨리우스도 비슷한 시기에 대부분의 작곡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스스로 명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자신의 ‘구식’ 음악을 연주하며 수입을 이어 나가야 했다. 대중들은 열광했지만 비평가들은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그의 음악은 ‘단순함, 가요적, 선율미에만 의존하는 개성 없는 작품’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음악사 전공자들의 필수 참고자료 중 하나인 그로브 음악사전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단조롭고 인공적이며 분출하는 선율뿐’이라고 단언했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를 지낸 해럴드 숀버그가 이에 대해 ‘터무니없이 젠체하며 멍청한 얘기’라고 반박한 게 다행이었다. 올해는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다. 오늘 서거 80주년에 이어 나흘 뒤인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그의 생일이 돌아온다. 이 사실이 그의 재평가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바드 음악축제는 라흐마니노프의 숨은 혁신성을 탐구하는 자리였다. 그의 음악 어법이 지닌 개성 및 동시대 대중음악과의 상호 영향, 현대 문명에 대한 반응 등도 진지하게 탐구됐다. 2020년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박주용 교수는 여러 작곡가의 화음 연결 패턴을 분석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 ‘고전음악 작곡가 중 가장 혁신적인 화음 연결을 사용한 작곡가는 라흐마니노프’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음악 팬에게는 재평가라는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2021년 영국 ‘클래식 FM’이 집계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순위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브람스와 드보르자크 다음 자리인 27위를 차지했다. 2015년 KBS 클래식FM이 설문 조사를 통해 집계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1위는 그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었다.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음질 개선 재업로드 버전을 포함해 26일 현재 1178만 뷰를 기록 중이다. 20세기 음악은 시벨리우스의 표현대로 ‘수많은 칵테일을 섞었고’, 당시까지 모색되지 못한 수많은 음향과 미학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음악 팬들은 선율적이고 감상적인 음악을 들으며 일상의 위안을 얻고 있다. 다음 세대에도 그럴 것이라는 데 감히 많은 것을 걸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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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직원 출연자들이 선보이는 ‘라 트라비아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4월 2일 콘서트 오페라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가 공연된다. 비올레타 역에 소프라노 김순영, 알프레도 역 테너 신상근, 제르몽 역 바리톤 양준모를 비롯해 국내 대표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해온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출연자들이 아트플랫폼 법인 ‘모브(Mov)’에 소속된 정직원이라는 점이다. 모브(의장 김기경·단장 양진모)는 2022년 설립 후 성악가와 기악 연주가 등 30명을 직원으로 영입해 서울 서초구 모브라운지에서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모브 수아레 콘서트’를 열고 있다. 경남 양산 모브다이닝에서도 금요일과 토요일에 다이닝 콘서트를 연다. “회사에 소속된 예술가가 안정된 환경에서 공연을 제작하면 경험이 쌓이고 시너지도 발휘할 수 있죠.” 양진모 모브 단장(지휘자)은 이렇게 말했다. 모브는 모기업인 모브그룹이 식음료 사업 등으로 진출한 말레이시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 노래 ‘원 서머 나이트’로 인기를 누렸던 홍콩 출신 가수 진추하와 손잡고 지난해 모브아시아를 설립했다. 올해 2월에는 이번 서울 ‘라 트라비아타’ 공연 출연진과 말레이시아 필하모닉 협연으로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필하모닉 홀에서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펼쳤다. 같은 달 말레이시아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갈라 콘서트 ‘오페리시마’도 열렸다. 진추하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 나오는 ‘임파서블 드림’ 등을 불러 화제가 됐다. 이달 24일에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모브가 주최하는 ‘베리 컬러풀 포 시즌스’를 연다. 바이올리니스트 안세훈 전진주와 모브 체임버 앙상블 협연으로 비발디의 ‘사계’와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연주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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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6세 교향악 연주자 육성… 伊 ‘말러 아카데미’ 신청 접수

    부소니 콩쿠르를 주관하는 이탈리아 부소니-말러 재단이 젊은 교향악 연주자를 육성하는 제24회 구스타프 말러 아카데미를 올해 7∼8월과 내년 8∼9월 개최한다고 밝혔다. 아카데미는 이탈리아 볼차노와 토블라흐에서 올해 7월 25일∼8월 11일, 2024년 8월 25일∼9월 15일 열린다. 선발된 연주자들은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이 아카데미는 지휘자 고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창설한 프로그램으로 올해 참가자들은 말러가 마지막 교향곡을 작곡한 토블라흐에서 말러 시대 악기로 교향곡 5번 연주를 배운 뒤 프랑스 파리, 독일 쾰른 등에서 유럽 연주 투어를 하게 된다. 1997년 1월 1일에서 2005년 7월 2일 사이 태어난 연주자를 대상으로 한다. 신청자는 부소니-말러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4월 11일까지 신청서와 영상을 제출해야 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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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내악으로 듣는 스페인 음악… 가야금과 협연 이색 무대도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실내악단 콘체르토 말라가가 2019년에 이어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4월 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장천홀. 콘체르토 말라가는 1996년 ‘98세대’ 작곡가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창단된 실내악단이다. 98세대란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무너져 가는 조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스페인 부흥의 정신을 외쳤던 예술가들을 일컬었던 용어다. 이 악단은 창단 후, 17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스페인 음악을 아우르며 연주의 외연을 넓혀왔다. 세계적 기타리스트 페페 로메로,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나 시르부 등과 협연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1000회 이상의 순회 연주를 펼쳤다. 2018년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지휘자 호세 세레브리에르가 지휘한 음반 ‘Serebrier conducts Granados’는 미국에서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라틴 그래미상의 베스트 클래식 앨범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이번 공연에서는 호아킨 투리나 ‘투우사의 기도’, 호아킨 로드리고 ‘두 개의 안달루시아 소곡’, 마누엘 데 파야 ‘사랑은 마술사’ 하이라이트 등 스페인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독일 막스 로슈탈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조가현은 비발디 협주곡 ‘사계’ 중 ‘봄’을, 첼리스트 홍승아는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첼로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특히 가야금 연주자 이수은(이화여대 교수)이 김대성 곡 ‘가야금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뮤즈’를 협연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국 전통악기가 솔로를 맡는 창작곡이 해외 악단의 내한 공연에서 연주되는 일은 드문 경우로 꼽힌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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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체르토 말라가가 선보일 찬란한 스페인의 화음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실내악단 콘체르토 말라가가 2019년에 이어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4월 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콘체르토 말라가는 1996년 ‘98세대’ 작곡가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창단된 실내악단이다. 98세대란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무너져가는 조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스페인 부흥의 정신을 외쳤던 예술가들을 일컬었던 용어다.이 악단은 창단 후 17세기 스페인 음악부터 오늘날의 스페인 음악까지 아우르며 연주의 외연을 넓혀왔다. 세계적 기타리스트 페페 로메로, 바이올리니스트 마리아나 시르부 등과 협연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1000회 이상의 순회 연주를 펼쳤다.2018년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지휘자 호세 세레브리어가 지휘한 음반 ‘Serebrier conducts Granados’는 미국에서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 라틴 그래미상의 베스트 클래식 앨범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도이체 그라모폰(DG) 레이블로 발매된 로메로 형제의 크리스마스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이번 공연에서는 호아킨 투리나 ‘투우사의 기도’, 호아킨 로드리고 ‘두 개의 안달루시아 소곡’, 마누엘 데 파야 ‘사랑은 마술사’ 하이라이트 등 스페인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독일 막스 로슈탈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조가현은 비발디 협주곡 ‘사계’중 ‘봄’을, 첼리스트 홍승아는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첼로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특히 가야금 연주자 이수은(이화여대 교수)이 김대성 곡 ‘가야금과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뮤즈’를 협연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국 전통악기가 솔로를 맡는 창작곡이 해외 악단의 내한 공연에서 연주되는 일은 드문 경우로 꼽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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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울리는 ‘시벨리우스의 선율’

    지난해까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70)가 고국 핀란드의 거장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넉넉히 풀어놓는다. 시벨리우스의 대표 인기곡 중 하나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 당시 악보와 개정판으로 나란히 선보이는 점도 눈길을 끈다. 24, 25일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개정판(1905년)을 조지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리사 바티아슈빌리(44) 협연으로 선보이고 ‘카렐리아’ 모음곡과 교향곡 6번을 연주한다. 30, 31일에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초연판(1903년)을 핀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엘리나 베헬레(48)와 협연한 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최고 인기곡인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두 콘서트는 당초 올해 1월 예정했던 콘서트와 함께 ‘3부작’이 될 예정이었다. 벤스케는 지난해 12월 낙상 사고로 같은 달 예정된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콘서트와 올해 1월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등을 연주하기로 했던 콘서트 지휘봉을 각각 김선욱과 야프 판 즈베던 신임 음악감독에게 양보했다. 최근 서울시향 소식지 월간 SPO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휘를 재개했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1904년 초연되었지만 당시 독주자의 기량 부족 등으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듬해 선보인 개정판 악보가 주로 연주된다. 한국에서 초연판 연주는 처음이다. 벤스케는 “개정판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 현악부가 소리를 줄이지만 초연판에서는 대규모 현악이 계속 연주한다. 두 개의 카덴차(주로 곡의 끝 부분에 사용되는 무반주 독주)도 하나로 줄였다. 두 악보 모두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두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량 대결도 관심거리다. 바티아슈빌리는 명문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DG) 전속 아티스트로 오푸스 클래식 상 등 권위 있는 음반상을 수상했다. 베헬레는 시벨리우스 외 아울리스 살리넨, 칼레비 아호 등 현대 핀란드 작곡가들의 작품 해석에 권위를 인정받아 왔다. 2020년 1월 취임한 벤스케 전 음악감독은 시향 재임기간 중 불운하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그는 월간 SPO 인터뷰에서 “서울시향 단원들의 기량은 세계 정상급이다. 앞으로도 훌륭한 지휘자와 함께 강렬한 음악적 체험을 들려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임기도 마쳤다. 그는 “이달 만 70세가 된다. 그동안 충분히 한 것 같다”며 핀란드 라티 교향악단과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계관지휘자 활동 및 객원지휘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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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올린 협주곡 초연과 개정판 함께 선보인다”

    지난해까지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70)가 고국 핀란드의 거장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넉넉히 풀어놓는다. 시벨리우스의 대표 인기곡 중 하나인 바이올린협주곡을 초연 당시 악보와 개정판으로 나란히 선보이는 점도 눈길을 끈다. 24, 25일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개정판(1905)을 조지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리사 바티아슈빌리 협연으로 선보이고 ‘카렐리아’ 모음곡과 교향곡 6번을 연주한다. 30, 31일에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초연판(1903)를 핀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엘리나 베헬레와 협연한 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최고 인기곡인 교향곡 2번을 연주한다. 두 콘서트는 당초 1월 예정했던 콘서트와 함께 ‘3부작’이 될 예정이었다. 벤스케는 12월에 낙상 사고를 당해 같은 달 예정된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콘서트와 1월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등을 연주하기로 했던 콘서트 지휘봉을 각각 김선욱과 얍 판 즈베던 신임 음악감독에게 양보했다. 최근 서울시향 소식지 월간 SPO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휘를 재개했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은 1904년 초연되었지만 당시 독주자의 기량 부족 등으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듬해 선보인 개정판 악보가 주로 연주된다. 한국에서 초연판 연주는 처음이다. 벤스케는 “개정판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 현악부가 소리를 줄이지만 초연판에서는 대규모 현악이 계속 연주한다. 두 개의 카덴차(cadenza·주로 곡의 엔딩 부분에 사용되는 무반주 독주)도 하나로 줄였다. 두 악보 모두 걸작”이라고 설명했다. 두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량 대결도 관심거리다. 1979년생인 바티아시빌리는 명문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DG) 전속 아티스트로 오푸스 클래식 상 등 권위 있는 음반상을 수상했다. 1975년생인 베헬레는 시벨리우스 외 아울리스 살리넨, 칼레비 아호 등 현대 핀란드 작곡가들의 작품 해석에 권위를 인정받아 왔다. 2020년 1월 취임한 벤스케 전 음악감독은 시향 재임기간 중 불운하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그는 월간 SPO 인터뷰에서 “서울시향 단원들의 기량은 세계 정상급이다. 앞으로도 훌륭한 지휘자와 함께 강렬한 음악적 체험을 들려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임기도 마쳤다. 그는 “이달 만 70세가 된다. 그동안 충분히 한 것 같다”며 핀란드 라티 교향악단가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계관지휘자 활동 및 객원지휘에 주력할 뜻을 시사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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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日에선 값이 4배… 조선 왕조 지탱한 ‘귀한 뿌리’

    “영국 약전(藥典)에 있는 어떤 약도 극동에서의 인삼의 평판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인삼은 이 나라의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며 세입의 중요 원천이다.” 영국 지리학자 이저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1898년)에서 인삼의 가치를 이렇게 소개했다. 오랜 세월 주변국이 우리를 인식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인삼이었다. 사학자로서 주로 경제사에 천착해 온 저자는 37건의 인삼 이야기를 통해 이 귀한 뿌리가 국가의 통치 및 동아시아의 경제와 외교에 끼쳐온 역할을 밝힌다. 풍성한 정보를 담았으면서도 술술 읽힌다. 한반도 인삼에 대한 경외는 6세기 중국 양나라의 책에 ‘인삼은 백제의 것을 최고로 친다’고 쓰였을 만큼 역사가 깊다. 12세기 송나라 의관이 쓴 책에도 ‘인삼으로 사용되는 것은 모두 고려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다. 임진왜란 후 중국과 일본에서는 왕조와 권력이 교체됐지만 폐허가 되다시피 한 조선은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은 광해군 즉위 이듬해인 1609년 일본과 국교를 재개했고,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으로 나라를 추스를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인삼은 여러 나라가 원하는 최고의 상품이자 핵심 결제수단이었다. 당시 문헌은 ‘서울에서 70냥이면 사는 인삼이 일본의 에도로 들어가면 300냥에 팔린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인삼을 만지거나 인삼 씻은 물을 마시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본은 조선 인삼을 사기 위해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는 순도 높은 은화를 특별히 제작했다. 이에 따라 조선에는 한 해 은 11만 t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렇게 확보한 은으로 중국의 옷감을 비롯한 온갖 상품을 사들였다. 조선 왕조의 주요 재원도 청과의 인삼 거래에 매기는 포삼세(包蔘稅)였다. 매년 20만 냥 정도로 곡물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의 세원이었다. 정조가 화성을 건설할 수 있었던 동력도, 흥선대원군이 군비를 증강한 배경도 포삼세였다. 주변국의 인삼 열기는 산삼의 고갈을 불러왔지만 18세기 초 인삼 재배가 성공을 거둔 뒤 찌고 말려 바스러지지 않는 홍삼이 개발되면서 산삼을 대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무역 및 외교사 이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일화가 책장을 수놓는다. 영조는 인삼을 주성분으로 한 보약에 건공탕(建功湯), 즉 건강을 지켜주는 공신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15년 뒤에는 이 약을 찬미하는 시를 지어 올리게 했다. 1년에 20여 근의 인삼을 복용한 그는 만년에 “이 늙은이는 인삼옹이로다”라고 탄식했다. 19세기 초 베트남의 개혁 군주였던 민망 황제는 충성을 고취하기 위한 선물로 인삼을 활용했다. 사족. 기자는 2004년 ‘책의 향기’ 지면에 신초(新潮) 학예상을 수상한 책 ‘해삼(海蔘)의 눈’을 소개하면서 아시아의 무역상품 하나에 확대경을 대 읽히는 책을 만들어낸 일본의 출판문화에 부러움을 표했다. 해삼 아닌 본래의 삼(蔘)을 다룬 이 책으로 아쉬움을 풀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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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열음 “모차르트 소나타, 즉흥 음악처럼 펼쳐”

    “모차르트는 제게 집 같고 모국어와 같습니다. 제 손과 마음의 중심에 있고, 가장 편한 작곡가죠.” 피아니스트 손열음(37)이 모차르트에 빠졌다. 그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8곡 전곡 앨범이 17일 프랑스 음반사 나이브 레이블로 발매된다. 이를 기념하는 전국 투어도 5월 2∼7일과 6월 21∼25일 서울과 강원 원주, 경남 통영 등 전국 7개 도시에서 여덟 차례 연다.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열음은 “시작은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플루티스트 조성현 씨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하게 됐는데, 녹음 장소와 최진 프로듀서 모두 이틀 더 날짜가 빈다는 거였어요. 쉽지 않은 기회여서 모차르트 소나타 한두 곡을 녹음할까 하다가 결국엔 다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첫 녹음이 모차르트의 생일인 1월 27일이었다. 운명인가 싶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손열음에게는 고향 같은 작곡가이지만 예전의 느낌과는 달랐다. “전곡을 연습하면서 모차르트가 만화경 같다고 느껴졌어요. 피아노 소나타 역사 초기였던 만큼 열정을 갖고 새롭게 시도한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프리즘처럼 많은 걸 내재한 음악이죠.”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즉흥 음악처럼’ 소나타들을 펼쳐내고 싶었다고 했다. “레코딩은 내가 죽어도 남죠. 대가들이 남긴 음반들을 들으며 불멸과 숭고함을 느껴요.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노력하는 데서 작곡가의 창작 과정에 다가가는 느낌도 갖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 음악을 맡은 고 네빌 매리너 경 지휘 세인트마틴 인 더 필즈 아카데미와는 2018년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음반을 발매한 바 있다. 그는 “매리너 경께선 마음이 열린 분이셨다. 조언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가 주장한 빠르기에 맞춰 주셨다. 경험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음악을 만들어 내는 분으로 느꼈다”고 회상했다. 손열음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 활약했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놓았어요. 세계인이 참여하는 축제를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 있는 음악가들이 중심이 됐죠. 오히려 더 보람을 느끼게 된 면도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됐다. 그는 “저는 끈기가 없는 줄 알았다. 자신에 대해 많이 발견하는 계기였다”고 털어놓았다. 한 작곡가의 소나타로 7개 도시를 도는 콘서트는 이례적이다. “어릴 때 원주에 살면서 좋은 콘서트가 서울에서만 열리는 점이 서운했어요. 음향이 좋고 개인적으로 각별한 곳들을 골랐죠. 통영은 이번 음반을 녹음한 곳, 원주는 제가 자랐고 모차르트 소나타를 처음 친 곳, 금호아트홀은 금호문화재단이 어린 시절 제게 많은 무대를 제공해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리사이틀은 5월 2,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일 원주 치악예술관, 7일 통영국제음악당, 6월 21일 광주 유스퀘어 금호아트홀, 22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24일 경기 고양아람누리, 25일 경남 김해문화의전당으로 이어진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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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미나’ 황수미, ‘파파게노’ 김기훈… 초호화 배역 ‘마술피리’ 무대 홀린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부문 우승자이자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부른 ‘올림픽 디바’ 소프라노 황수미, 2021년 카디프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눈물짓게 하며 우승한 바리톤 김기훈, 2016년 플라시도 도밍고 주최 오페랄리아 콩쿠르 우승자인 테너 김건우…. 유럽과 국내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톱 성악가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함께 선다. 서울시오페라단이 30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공연하는 모차르트 ‘마술피리’에서다. 독일 고유의 오페라 장르 ‘징슈필’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마술피리는 선악을 구분하기 힘든 모호한 설정으로 시작해 젊은 남녀의 인간적 성장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남녀 주인공인 타미노와 파미나뿐 아니라 감초 역할인 새잡이 파파게노, 현자 차라스트로, 당대 성악 기교의 절정을 보여주는 밤의 여왕 등 매력적인 배역들로 가득하다. 모차르트의 성악적 아이디어가 절정에 달한 작품이지만 동화적 내용 덕분에 ‘어린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오페라’로도 알려져 있다. 10일 열린 공개시연회에서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은 “현대적인 색깔을 입히고 대중을 위해 쉽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출은 뮤지컬 ‘이프덴’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편’에서 영상 디자이너로 호평을 받은 조수현이 맡았다. 여주인공 파미나 역의 황수미는 이번 공연이 한국에서 출연하는 첫 오페라다. 그는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한 역도 파미나였다”며 “내게 소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파미나 역으로는 2019년 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에서 이 역할을 맡았던 소프라노 김순영이 함께 출연한다. 그는 “대학 시절 오페라 무대에 처음 출연했던 배역”이라며 “영상을 폭넓게 활용한 이번 공연에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남자 주인공 타미노 왕자 역의 김건우는 오페랄리아 콩쿠르 우승 이후 영국 로열 오페라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한국어로 소통하며 연습하는 일이 그리웠다. 오랜 친구인 파파게노 역 김기훈과 호흡을 맞출 수 있어 기쁘고, 황수미와 드디어 함께 공연하게 돼 영광”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주립극장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테너 박성근이 함께 타미노로 출연한다. 카디프 콩쿠르 우승에 앞서 2016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를 차지하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파파게노 역의 김기훈은 “(연세대) 선배인 존경하는 바리톤 양준모와 함께 파파게노 역을 맡게 됐다. 앞으로의 출연작이 대체로 무거운 역할이라 코믹한 파파게노를 최대한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양준모도 “이번에 모차르트 오페라에 데뷔한다”며 “재미있는 역할도 잘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밤의 여왕 역에는 소프라노 김효영 유성녀, 차라스트로 역에는 베이스 이준석 임철민이 출연한다. 5만∼1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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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바이올린계 대모’ 김남윤 교수 별세

    ‘한국 바이올린계의 대모(代母)’로 불려 온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사진)가 12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고인은 9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1963년 제3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한 뒤 1974년 티보르 바르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경희대 음대와 서울대 음대 교수를 거쳐 1993년 문을 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가 됐다. 2002∼2009년 한예종 음악원장으로 재직했고 2015년 한예종을 퇴임한 뒤 2020년까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을 지내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정준수 경희대 명예교수, 김현미 한예종 교수, 이경선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 백주영 서울대 교수 등 중견 연주자부터 클라라 주미 강(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우승), 임지영(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양인모(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등 젊은 연주자까지 국내외를 누비는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육성했다. 고인은 2001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시작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하노버 콩쿠르, 파가니니 콩쿠르 등의 심사위원을 지내며 한국 바이올린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썼다. 1997년 처음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린 동아국제음악콩쿠르, 2009년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운영위원을 지냈다. 지난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난파음악상과 한국음악평론가상, 금호음악스승상,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남편 이승호 씨와 딸 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수정 씨, 아들 윤준영 씨가 있다. 장례는 한예종 음악원장으로 열린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8시. 02-3410-3151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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