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유원모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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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법조팀 유원모 기자입니다.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onemore@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검찰-법원판결60%
사회일반17%
사법10%
정치일반7%
사건·범죄6%
  •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서 가야 건국설화 새긴 토제방울 발견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가야 건국설화인 ‘구지가(龜旨歌)’의 한 구절이다. 임금 없이 추장 9명이 다스리던 가락국에서 백성들이 이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귀공자 6명을 내려보내 금관가야와 대가야 등 6가야를 세웠다는 얘기다. 이 같은 설화는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편 등 오직 문헌으로만 전해져 왔다. 그러나 최근 가야 건국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유물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에서 발굴조사를 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은 20일 “지난달부터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5세기 말 조성된 한 무덤에서 가야 건국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해 낸 토제(土製) 방울 1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날 경북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에서 공개한 토제방울은 지름 5cm 정도의 작은 크기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보니 방울을 둘러싼 겉에 6개의 문양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문양은 △가야산 정상 ‘상아덤’을 표현한 남성 성기 △거북이 등껍데기 △지도자를 형상화한 관을 쓴 남성 △춤을 추는 여성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자루 등이다. 배성혁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각각의 그림은 가락국기에 나타난 내용과 부합한다”며 “가야뿐 아니라 삼국 전체를 통틀어 문헌으로만 전하는 고대 건국설화를 시각화한 유물이 발견된 건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를 통해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가 수로왕으로 대표되는 금관가야뿐만 아니라 가야 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화였다는 점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토제방울은 1500년 전 가야 유물이 큰 훼손 없이 원형을 거의 유지한 채 발견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방울을 발견한 무덤이 봉분이 없어 지상에서 확인이 되질 않고 길이 165cm에 너비 45cm, 깊이 55cm 정도로 소규모여서 도굴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또 방울과 함께 발견한 어린아이의 치아와 두개골 편도 눈길을 끈다. 이 때문에 연구원은 무덤 주인이 신장이 1m 정도인 4∼5세 어린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영현 대동문화재연구원장은 “방울이 왼쪽 허벅지 근처에서 나왔는데 손목에 걸려 있거나 손에 쥐여진 것으로 보인다”며 “함께 나온 토기와 쇠, 낫 등의 형태를 고려하면 시기는 5세기 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탐방로 조성을 위해 진행한 이번 조사에서는 5세기 말∼6세기 초 소형 돌덧널무덤(석곽묘) 10기와 돌방무덤(석실묘) 1기를 확인했다. 특히 6세기 초에 조성한 석실묘는 지금까지 대가야 유적지인 고령 지역에서 확인된 것 중 가장 이른 시기의 횡혈식(橫穴式·굴식) 무덤이라고 연구원은 전했다.고령=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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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담백-따뜻한 전통안료 vs 무겁고 탁한 현대안료

    절반은 담백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감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반면 다른 한쪽은 다소 무거운 색채에 공격적인 모습이다.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의 궐내각사 터. 4개의 천막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문화재청이 대규모 문화재 복원 공사의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현장이다. 이 가운데 한 개는 천장이 뚫려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진행한 광화문 현판의 안료 모니터링 실험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이날 동행한 김태영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사무관은 “실제 현판이 내걸릴 상황과 비슷하게 햇빛과 비, 바람 등 외부 환경에 노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화문 현판 모니터링 현장이 언론에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 천막 안으로 들어가 실험 중인 광화문 현판 앞으로 다가섰다. 오른쪽의 ‘광(光)’과 ‘화(化)’ 글자 주변의 검은색 바탕면과 테두리에는 현대안료가, ‘화’의 나머지 부분과 ‘문(門)’ 글씨 쪽에는 전통안료가 칠해져 있는 상태로 둘 사이의 색감은 극명하게 대비됐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바탕 면을 살펴보니 전통안료가 칠해진 곳은 투명하고, 깊은 느낌을 주는 반면 현대안료가 쓰인 쪽은 다소 탁한 색감이었다. 테두리 부분인 붉은색은 색감 차이가 두드러졌는데, 전통안료가 상대적으로 투명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줬다. 광화문 현판의 모니터링에는 총 10가지의 색상을 적용해 실험하고 있다.○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 동판까지 고증 완료 광화문 현판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복원돼 있다. 그러나 2016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소장 사진에서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라는 점이 확인됐다. 지난해에는 1865∼68년 경복궁의 중건 과정을 상세히 담은 ‘경복궁 영건일기’를 분석한 연구 결과, 금색 글자 위에 동판으로 도금했던 사실까지 고증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해 광화문 현판 복원 계획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조건이 붙었다. 단절된 전통안료를 복원해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5년째 전통안료 복원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15종의 전통안료 색상과 수비법, 연표법 등 안료 재현 기술 등을 복원해 냈다. 이 기술을 처음으로 시범 적용한 것이 광화문 현판이다. 전통안료가 이제야 복원 현장에 등장한 건 일제강점기와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1972년 문화재 복원 시방서에서 전통안료와 아교(접착제)가 제외되고, 현대안료와 접착제로 대체됐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국사와 창덕궁 등의 단청조차 모두 현대안료를 사용했다. 정혜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광화문 현판 모니터링 결과 전통안료의 내구성과 색감이 현대안료에 뒤지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며 “경제성만 따지면 현대안료를 쓰는 게 낫지만 전통의 복원과 광화문의 상징성을 두루 고려하면 전통안료가 더 적합하다”고 밝혔다. ○ 새롭게 복원하는 숭례문에 적용될 전통안료 현재 진행하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광화문 현판에 사용될 안료의 종류는 올해 상반기 안에 결정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전통안료의 성능과 내구성이 입증되면 앞으로 복원 현장 전반에서 이를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2013년 단청이 떨어져 나가는 박락 현상이 발생했던 숭례문 재복원에도 적용한다. 당시 숭례문은 전통안료로 단청을 했지만 시공을 맡은 단청장이 전통아교 대신 화학접착제를 사용해 박락 현상을 초래했다. 일부에선 일본 안료와 아교를 섞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보 1호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단청장은 “일본의 경우 전통안료와 아교 기술이 끊이지 않고 전수됐지만, 한국은 명맥이 끊겼다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며 “수천 년간 일본과 교류를 하면서 양국의 전통안료와 아교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무조건 배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전통 단청 안료 복원이 걸음마 단계라는 점에서 숭례문 재단청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정연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장은 “전통안료든 현대안료든 영원불변한 것은 없고, 일정 시기가 되면 모두 수리와 보수를 거쳐야 한다”며 “전통단청을 복원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표준시방서, 셈법 등 법령 정비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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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성 해자, 통일신라 때 모습으로 복원”

    신라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사적 제16호)의 해자(垓子)가 통일신라 당시 모습으로 복원된다. 문화재청과 경북 경주시는 월성의 북쪽 해자를 연못 형태의 담수 석축해자로 정비한다고 19일 밝혔다. 2세기부터 신라 왕궁 역할을 한 월성은 성곽 외부에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대규모 해자가 지어졌다. 삼국 통일 이전까진 땅을 파서 조성한 수혈(竪穴) 해자로 조성됐지만 8세기 이후에는 방어 기능이 쇠퇴하면서 가장자리에 돌 벽을 세우고 물을 채우는 방식의 담수 석축해자로 바뀐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각각의 해자에는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가 설치돼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984년 월성 해자 시굴조사를 한 뒤 2014년까지 해자 6기를 발견했다. 이 가운데 1기는 담수 해자로 복원했고, 다른 2기는 물을 채우지 않는 건해자로 정비했다. 이어 2015년부터 나머지 해자 3기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병오년(丙午年)’ 목간과 신라의 국제교역 관계를 보여주는 페르시아계 소그드인 모양 토우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번 복원 계획을 통해 나머지 5기 해자에는 모두 물을 채우게 된다. 문화재청은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남아 있는 석렬(石列)을 기준으로 정비한다는 기본 방향 아래 관계 전문가 검토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사 현장에는 관람객들의 안전과 문화재 보존을 위해 탐방 길을 조성해 누구나 관람 가능하게 할 방침이다. 또 ‘고환경의 보고(寶庫)’라고 불리는 해자의 펄 층에서 나온 유물을 영상으로 알려주는 안내부스도 설치한다. 착공식은 20일 오후 2시에 열린다. 문화재청은 “월성 해자는 신라가 935년 멸망한 뒤 활용되지 않아 기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연내에 정비를 완료하고자 하나, 공사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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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하면서도 실용적인 고려의 美… 담백-단아한 조선의 美

    디자인의 관점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뛰어난 공예품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호림박물관은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특별전 ‘고려의 디자인Ⅰ 금속공예―빛·소리·향’과 ‘조선의 디자인Ⅳ―사각함’을 동시에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박물관이 소장 중인 고려 금속공예품 60여 점과 조선 사각함(四角函) 40여 점을 공개한다. 고려의 금속공예는 유려한 곡선에 바탕을 둔 섬세한 장식이 특징. 전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작품이 10여 개에 불과한 12세기 고려의 ‘철제은입사거울걸이’는 ‘ㅍ’자 모양의 막대 두 개를 서로 연결해 접었다 펼 수 있도록 한 실용성이 돋보인다. 거울걸이의 겉 부분에는 은으로 입힌 문양이 빼곡히 박혀 있어 당대 금속공예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고려의 사찰에서 주로 사용한 ‘종’의 다양한 면모도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 ‘청동무인명소종’(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19호)은 빼어난 장식을 자랑하는 용뉴(龍(뉴,유))와 음통(音筒) 등 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한국 고유의 종 모습(학명 코리안 벨)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이밖에도 고려의 귀족층이 주로 즐긴 향 문화와 관련된 ‘청동은입사범자문향완’과 ‘청동사자장식향로’ 등 수준 높은 금속공예 작품이 대거 공개된다. 반면 검소한 유교 국가였던 조선은 고려와는 극명히 대비되는 담백함과 단아한 매력을 자랑한다. 백자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공예품인 ‘사각함(四角函)’은 도장이나 패물부터 의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널리 사용됐다. 왕실 혹은 왕에게서 하사받은 사대부 집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붉은색 계열의 ‘목제주칠함’과 철갑상어의 가죽을 덧붙인 ‘목제어피문서함’은 당대 최고급 공예품이었다. 무관들이 머리에 착용하던 주립(朱笠)에 꽂은 호수를 보관하던 ‘목제호수함’, 도장을 보관하기 위해 특별하게 만든 ‘목제인장함’ 등 이색적인 함들도 선보인다.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연구팀장은 “화려한 예술성과 실용성을 갖춘 고려의 금속공예와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철학을 구현한 조선의 목공예를 동시에 관람하며 우리나라 디자인의 역사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000∼8000원. 5월 31일까지.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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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리 위대한 발자취, 敬으로 따르다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1501∼1570)이 1569년 임금에게 사직 상소를 올리고,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향했던 마지막 귀향길이 450년 만에 재현된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74·전 기획예산처 장관·사진)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1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음 달 9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출발해 안동 도산서원까지 12일 동안 800리(약 314km) 거리를 걷는 ‘위대한 발자취, 경(敬)으로 따르다’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퇴계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1569년 음력 3월 4일부터 17일까지의 현장 자료를 고증하고, 이에 맞춰 여정 기간과 경로를 세웠다. 퇴계가 귀향 이틀째부터 머물렀던 서울 봉은사에서 다음 달 9일(음력 3월 5일) 개막 행사를 열고, 도보 여정을 시작한다. 이후 광나루∼미음나루(남양주)∼한여울(양평)∼배개나루(여주)∼흔바위나루∼가흥창(충주)∼충청감영∼청풍관아∼단양향교(단양)∼풍기관아터(영주)∼영주두월리∼도산 토계삽골재(안동)∼도산서원으로 이어진다. 오전 8시에 출발해 하루 평균 20km 내외를 이동한다. 매일 걷기 일정이 끝나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이광호 국제퇴계학회장 등의 강연과 창수(唱酬·시나 문장을 지어 화답함) 행사가 이어진다. ‘동방의 주자’로 불린 퇴계는 선조가 즉위한 이듬해인 1568년 7월, 조정이 거듭해서 부르자 고향에서 상경했다. 대제학으로 어린 임금을 보좌했고, 평생의 학문적 공력을 쏟아부어 성리학의 핵심을 응축해 낸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편찬해 선조에게 올렸다. 이후 거듭된 사직 상소 끝에 퇴계는 1569년 3월 4일 일시적 귀향 허락을 받아냈다. 다음 날 바로 길을 나선 퇴계는 임금의 배려로 충주까지 관선(官船)을 이용했고, 이후에는 말을 타고 죽령을 넘어 고향인 안동 도산서원에 도착했다. 김 원장은 “임금과 고위대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향을 택했던 퇴계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장차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보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인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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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지방을 없애고 싶다면 싸우지 말고 협력하라

    가까이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정복하지 못해 안달이 나기도 하며 누군가에겐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다이어트의 훼방꾼 ‘지방’ 얘기다. 지방이 우리를 집요하게 괴롭힐 수 있는 이유는 특출 난 자기방어 시스템 때문이다. 지방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재생할 수 있고, 위협을 느끼면 우리의 식욕을 자극하며 바이러스 등을 동원해 팽창한다. 이 책은 당신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살을 빼고 싶다면 무작정 지방을 적대시하며 싸우지 말고, 지방과 협력해야 한다.” 실제로 지방은 건강의 좋은 친구가 될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뼈에 좋다. 지방과 뼈는 모두 골수의 동일한 줄기세포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장소에서 태어난 쌍둥이와도 같아서 지방세포가 될 줄기세포는 뼈세포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일수록 뼈가 튼튼하고, 폐경 후 여성은 에스트로겐을 얻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데 지방에 많이 의존한다. 저자는 ‘건강한 돼지’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정 기간 과체중(체질량지수 25∼30)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같은 나이의 정상 체중(체질량지수 18.5∼25)인 사람들보다 사망할 가능성이 6% 낮았다고 한다. 물론 이 조사에서도 고도비만인 경우에는 사망률이 낮지 않았다. 따라서 저자는 적정 체중보다 5kg가량 더 많은 지방을 보유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조언한다. 평생 다이어트를 하느라 고생하는 이들에게 과학적인 위로와 유쾌한 해법을 안겨주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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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안내판 2500개 연내 알기 쉽게 바꾼다

    어려운 전문용어가 많아 재미없고, 불편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문화재 안내판 2500여 개가 쉽고, 흥미로운 안내판으로 바뀐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전국의 1392개 문화재에 있는 안내판 2500여 개를 올해 안에 알기 쉽게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어려운 단어와 문장, 번역 오류가 있거나 낡은 안내판이 교체될 예정이다. 설명이 길고 오탈자가 있는 안내판도 바꾼다. 이를 위해 예산 103억 원을 투입한다. 한편 고령의 남성 교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문화재위원회 인적 구성이 크게 달라진다. 정 청장은 “40대 위원을 발탁하고, 여성 위원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젊은 시각을 갖추고 문화유산 활용이나 관광 콘텐츠를 보유한 인물을 동참시키겠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원회는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과 해제, 국외 반출과 매장 문화재 발굴 등을 심의하고 검토하는 권한을 지닌다. 정부 국정과제인 가야사 문화권 조사·정비도 계속한다. 전북 지역 가야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를 신설하고, 영호남 가야 무덤군 7곳을 묶은 ‘가야고분군’을 올해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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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日과 교역 위해 설치했던 조선 제포왜관 터 찾았다

    15, 16세기 조선과 일본의 자유무역지대였던 ‘삼포왜관(三浦倭館)’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는 제포왜관 터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한일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조선과 왜(일본)의 선린우호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일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두류문화연구원은 “지난해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조선 초부터 사량진왜변(1544년)이 발발하기 전까지 운영한 제포왜관 터를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제포왜관 터가 발견된 곳은 제덕만과 인근 냉이고개 사이에 위치한 7302여 m² 구역으로, 4층 규모로 조성된 대규모 계단식 지형이 확인됐다. 축대와 담장, 기단건물지 등 주거지 관련 유적뿐 아니라 당시 사용한 도자기와 기와 파편 등 수백 점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조선시대 왜관의 실제 유적지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반도의 일본인 집단거주지, 조선시대판 ‘저팬타운’ 7일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의 냉이고개. 서남쪽으로 제덕만이, 남쪽으로는 대규모 제포왜관 터가 아래에 놓여 있었다. 새 주둥이처럼 생긴 U자형 해안 마을인 이곳에는 500여 년 전 2500여 명의 왜인(倭人)이 집단으로 거주했다. 바로 제포왜관이다. 고개를 뒤로 젖혀 보니 웅천읍성을 비롯한 진해의 내륙 지방이 벌판처럼 펼쳐졌다. 냉이고개 능선에는 150m 길이 토성이 쌓여 있었다. 왜인들이 몰래 조선 내지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제덕토성’이다. 15세기 초 조선 조정은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의 침탈이 골칫거리였다. 이에 일부 지역에 왜와의 자유무역지대인 왜관을 설치했다. 1407년 부산포와 내이포(제포) 등 2개의 포를 개항하고, 1426년 울산 염포를 추가로 개항해 ‘삼포왜관’ 체제를 갖췄다. 당시 왜관은 말 그대로 일본인 집단 거주지였다. 일본 자료인 ‘중세왜인전(中世倭人傳)’에 따르면 1494년 제포왜관에는 347가구, 2500여 명의 왜인이 머물렀다. 같은 시기 부산포왜관은 453명, 염포왜관에는 152명에 머무른 것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규모였다. 그간 제포를 비롯한 삼포왜관은 신숙주(1417∼1475)의 ‘해동제국기’(1471년)에 수록된 고지도 등에서 위치를 간접적으로 추정해 왔다. 나머지 부산포왜관과 염포왜관 터는 현대에 들어서 각각 부산진시장과 현대차공장 부지로 사용돼 유적지를 확인할 수 없다. 이날 동행한 나동욱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은 “당시 조선 정부는 왜인들이 몰래 내륙으로 들어와 밀매를 하거나 약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덕토성을 쌓고 왜관을 통제했다”며 “이번 발굴조사에서 ‘해동제국기’에 표시된 모습 그대로 제포왜관과 제덕토성, 감시초소 등이 대거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공단 위해 도로 개설” vs “역사관광자원 활용” 실제 제포왜관 발굴 현장에서는 객사 등 관공서 건물로 추정되는 길이 24.6m, 너비 11.9m 규모의 대규모 건물터가 확인됐다. 유물 가운데는 ‘대명정덕팔년춘조(大明正德八年春造)’라고 적힌 기와가 눈에 띈다. ‘정덕’은 중국 명나라의 제10대 황제인 무종(재위 1505∼1521년)의 연호로 1513년 봄에 만들어진 기와라는 뜻이다. 1407년부터 사량진왜변이 발발한 1544년까지 운영된 제포왜관의 설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제포왜관이 500여 년 만에 발견될 수 있었던 건 이 지역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뎠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제포왜관 터에서 동남쪽으로 3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웅동경제자유구역과 국도 2호선을 잇기 위한 간선도로 개설을 진행하면서 해당 유적지가 발견됐다. 이에 문화재위원회는 최근 제포왜관 터를 경남도문화재로 지정할 것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은 제포왜관과 제덕토성 일대를 원형 보존한다고 밝혔다. 부산진해경제청 관계자는 “공단의 원활한 물류 수송을 위해 해당 지역을 왕복 6차선 도로로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제포왜관이 발견돼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청규 한국고고학회장(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 관련 유적은 대부분 치욕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반면 제포왜관은 조선이 교역을 희망하는 왜에 토지를 할애하고, 건물을 조성한 유적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진해=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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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긋불긋 꽃대궐서 두근두근 봄마중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 등지에서는 향긋한 봄 내음과 고풍스러운 옛 정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문화재청은 올해 궁궐과 조선왕릉의 봄꽃이 평년보다 1∼4일가량 빨리 필 것으로 12일 전망했다. 문화재청은 “3월 중순 창덕궁 후원 관람지(觀纜池)와 창경궁 경춘전 뒤편 화계(花階·계단식 화단) 일원의 노란 생강나무 꽃을 시작으로 봄꽃이 필 것으로 보인다”며 “궁궐 정원과 연지(蓮池) 주변, 조선왕릉 산책로 곳곳에 산수유 매화 복사꽃 진달래 앵두꽃 등 아름다운 꽃나무와 들꽃이 봄의 기운과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문화재 해설사가 추천하는 ‘궁궐과 조선왕릉의 봄꽃 명소 6선’도 공개했다. △잘 짜인 한 폭의 그림 같은 경복궁 교태전 △봄날의 단비처럼 흩날리는 하얀 살구꽃과 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창덕궁 성정각 △왕처럼 거닐며 봄의 풍류를 만끽할 수 있는 창경궁 옥천교 △산책길을 따라 형형색색의 봄꽃 잔치가 펼쳐지는 덕수궁 대한문과 석조전 △사도세자의 영혼을 따라 진달래의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융릉과 건릉 산책로 △외로운 삶을 살다 간 덕혜옹주를 만날 수 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꽃길인 덕혜옹주묘 산책로(홍릉과 유릉)다. 다양한 봄맞이 행사도 마련돼 있다. 창덕궁 후원에서는 4월 23일부터 5월 19일까지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 행사가 열리고 덕수궁에서는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석조전 분수대 앞에서 ‘덕수궁 정오 음악회’가 펼쳐진다. 자세한 개화 일정 등은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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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활동 역사 자세히 담은 ‘매천야록’ 문화재 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비통한 감정을 담은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죽음으로 항거한 매천 황현(1855∼1910)의 유고와 자료 4건이 한꺼번에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황현 관련 자료인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 ‘매천 황현 시문, 관련 유묵·자료첩, 교지·시권·백패통’ ‘대월헌절필첩(待月軒絶筆帖)’ 등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1일 밝혔다. 매천야록은 흥선대원군이 집정한 1864년부터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1910년까지의 역사를 7책으로 정리한 글이다. 구한말 위정자들이 저지른 비리와 비행, 일제 침략과 우리 민족의 저항 양상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상세히 기술해 근대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오하기문은 매천야록의 초고로 추정되는 글로,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을 비롯한 항일활동이 자세히 기록됐다. ‘매천 황현 시문, 관련 유묵·자료첩, 교지·시권·백패통’은 친필 시문 7책을 비롯해 친구들이 보낸 편지, 신문 자료, 황현이 1888년 생원시에 장원급제했을 때 작성한 시험지인 교지(敎旨)와 시권(試券) 등으로 구성됐다. 한편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1860∼1935)이 의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지은 ‘윤희순 의병가사집’과 1956년 건립된 서울 성동구 옛 한양대 본관도 이날 등록문화재로 예고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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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현장에 디지털 생태계 구축하는 ‘獨의 전략’

    제조업 강국 독일은 2014년 국가 차원의 새로운 산업 전략 ‘인더스트리 4.0’을 주창했다. 이 계획은 독일의 강점인 제조업에 사물인터넷(IoT) 등의 시스템을 결합해 세계 제조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였다. 결과는 기대보다 신통치 않았다. 이에 2015년 후속 프로젝트로 디지털 생태계의 완전 구현을 목표로 한 전 산업의 ‘스마트 서비스 월드 2025’를 발표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 대신 기초부터 차근히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독일의 치밀한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경제계뿐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뜬구름 같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가 아닌 산업 현장에서의 치밀한 디지털 전환이라는 조언을 담은 책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이 우선이다’(해남·사진)가 나왔다. 저자인 남호기 인천대 산업공학과 교수(전 부총장)는 1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제조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아날로그 시스템을 기반으로 생산 관리와 투자 계획 등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사결정의 가장 기본 시스템인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등 디지털 코어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은 디지털 혁명에 맞춰 변화하는 고객 경험, 스마트 공급망과 공장,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 등 국내외 생생한 사례와 핵심 개념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남 교수는 “ERP 등 경영 정보 분야의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다면 이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기술 등 새로운 시장을 한국 산업계가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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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양우, 문화-예술-관광 30년 정통관료… 盧정부때 차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30년 이상 문화·예술·관광 분야 정책을 맡아온 정통 관료 출신 행정가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2008년 문화관광부(현 문체부) 차관으로 발탁됐다. 19대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 조언을 했고, 현 정부에서 문체부 조직문화혁신위원장을 맡아 블랙리스트 사태로 추락한 문체부를 쇄신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14년부터 CJ E&M(현 CJ ENM) 사외이사와 감사를 맡아온 데 대해 일각에서 대기업의 영화계 지배력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광주(61세) △제물포고 △중앙대 행정학과 △한양대 관광학 박사 △행시 23회 △주뉴욕한국문화원장 △문화관광부 정책홍보관리실장 △문화관광부 차관 △중앙대 대외·연구부총장 △대통령직속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대표 △광주비엔날레 대표 △문체부 조직문화혁신위원장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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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무정부-해적 국가 아닌 진짜 소말리아를 찾아서

    ‘무정부 상태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나쁜 국가’ 아프리카 대륙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소말리아’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우리나라에는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의 대상이었던 해적 국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각 부족들이 서로 할퀴는 내전이 20년 이상 지속된 이 땅에도 복수정당제, 평화로운 정권교체, 안정된 치안을 자랑하는 민주주의 독립국가가 있다. 이름도 생소한 ‘소말릴란드’다. 소말리아 북부 지역에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지역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거대화된 무장 세력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논픽션 작가인 저자가 직접 체험한 소말릴란드는 우리의 상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주요 산업시설이 없어 전반적으로 가난하지만 외국과의 교역을 진행해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휴대전화가 대부분 보급돼 있고, 학교도 대다수 지역에 건설돼 있다. 무엇보다 정부를 욕해도 체포되지 않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고, 총·칼로 무장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만큼 치안이 안정된 ‘보통국가’와 다름없다. 저자는 국제사회가 소말릴란드를 정식 국가로 인정해 관심을 갖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해적질과 내전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소말리아의 다른 지역에 평화의 메시지를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잠재돼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게 걷어차 주는 책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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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오스 최초 ‘금동 요니’ 국내 연구진이 발굴

    국내 연구진이 보존, 복원하고 있는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에서 힌두교 여신을 상징하는 여근(女根)상 ‘요니’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문화재청은 공적개발원조(ODA)로 추진하고 있는 라오스의 홍낭시다 사원 보존·복원 현장에서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진이 금동 요니와 진단구(鎭壇具) 유물을 출토했다고 6일 밝혔다. 이곳은 라오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참파삭 문화경관 내 왓푸사원과 고대 주거지’에 속해 있는 힌두사원으로, 동남아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그러나 오랜 시간 붕괴와 매몰이 진행돼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재단 연구진은 지난달 13일 홍낭시다 주 신전을 해체 조사하던 중에 대좌(臺座·불상을 올려놓는 대) 형태의 요니를 발견했다. 재질은 청동이지만 표면은 금으로 도금됐다. 높이 6.3cm, 너비 11.0cm인 요니의 윗부분에는 5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구멍마다 1개씩 링가(남근상)가 끼워져 있다. 재단은 “5개의 링가와 요니가 결합된 상태로 볼 때, 힌두교의 ‘사다링가’라는 성물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고대 크메르 제국의 교류사 연구에 핵심적인 사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라오스 왓푸세계유산사무소와 함께 유물의 부식물 제거, 안정화 처리, 재질 강화 처리 등 보존처리를 할 계획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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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연구진, 라오스 홍낭시다 유적서 금동 여근상 ‘요니’ 첫 발굴

    국내 연구진이 보존·복원하고 있는 라오스 홍낭시다 사원에서 힌두교 여신을 상징하는 여근(女根)상 ‘요니’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문화재청은 공적개발원조(ODA)로 추진하고 있는 라오스의 홍낭시다 사원 보존·복원 현장에서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진이 금동 요니와 진단구(眞檀具) 유물을 출토했다고 6일 밝혔다. 이 곳은 라오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참파삭 문화경관 내 왓푸사원과 고대 주거지’에 속해 있는 힌두사원으로, 동남아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그러나 오랜 시간 붕괴와 매몰이 진행돼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재단 연구진은 지난달 13일 홍낭시다 주 신전을 해체 조사하던 중에 대좌(臺座·불상을 올려놓는 대) 형태의 요니를 발견했다. 재질은 청동이지만 표면은 금으로 도금됐다. 높이 6.3㎝, 너비 11.0㎝인 요니의 윗부분에는 5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각 구멍마다 1개씩 링가(남근상)가 끼워져 있다. 재단은 “5개의 링가와 요니가 결합된 상태로 볼 때, 힌두교의 ‘사다링가’라는 성물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고대 크메르 제국의 교류사 연구에 핵심적인 사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라오스 왓푸세계유산사무소와 함께 유물의 부식물 제거, 안정화 처리, 재질강화 처리 등 보존처리를 할 계획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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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둑 맞은 부안 당산 돌오리상, 16년 만에 돌아왔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의 동문안 마을 어귀에 가면 조선 중기부터 300년간 수호신 역할을 하던 당산(堂山·돌로 만든 솟대)이 인사를 건넨다. 높이 3m가 넘는 당산 위에는 원래 가로세로 59×29cm 크기의 ‘돌오리’상이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안읍 주산인 성황산을 바라보는 돌오리상 앞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며 평안과 풍년을 기원했다. 그러나 2003년 3월 돌오리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군가 훔쳐간 것으로 보였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듬해 새로운 오리상을 올려놨지만 결국 2005년부터 당산제라는 마을 고유의 축제마저 사라지게 됐다. 16년간 자취를 감췄던 ‘부안 동문안 당산’(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의 돌오리상이 최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문화재청은 돌오리상을 회수해 5일 동문안 마을에서 반환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최은령 문화재청 감정위원은 “당산과 오리의 조합은 매우 독특한데 돌오리상 회수는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돌오리상의 귀향은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의 끈질긴 수사 덕분이었다. 2015년 도난 사실을 신고 받은 사범단속반은 장물 매매업자와 석물을 취급하는 상인 등을 대상으로 돌오리상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러다 지난달 초 신원을 알 수 없는 중년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충북 진천에서 청주로 넘어가는 언덕인 잣고개에 돌오리상이 있다”는 것. 사범단속반은 야산 한가운데 인공조형물인 호돌이 조각상이 놓여 있는 것을 수상히 여기고 수색한 끝에 돌오리상을 발견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수사망이 좁혀오자 절도범이 일부러 연락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과 협조 수사를 진행해 범인을 꼭 검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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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촌의 친척을 죽여…” 임란 중 피폐한 사회상 생생

    “영남과 경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많은데, 심지어 육촌의 친척을 죽여서 먹기까지 했단다.” 흡사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사극 ‘킹덤’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상의 역사가 아닌 실제 현실이었다. 조선시대 사대부 오희문(1539∼1613)은 1594년 4월 3일 작성한 일기에서 1592년 발생한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사회를 이같이 기록했다. 오희문은 1591년 11월 27일 한양을 떠나 경기 용인에 사는 처남의 서당에서 머문 이야기를 시작으로 1601년 2월까지 9년 3개월간 일기를 썼다. 이를 모은 것이 ‘쇄미록’(보물 제1096호)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은 2017년 시작한 ‘임진왜란 자료 국역사업’의 첫 성과로 쇄미록 완역본(사회평론·18만 원)을 출간했다고 3일 밝혔다. 총 8권으로 번역, 교감, 표점 작업은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가 맡았다.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인 쇄미록은 민중의 고통, 의병 활동 등을 다각도로 기록했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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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주도 140명 명단 ‘빼곡’… 총독부 작성 ‘계보도’ 발견

    조선총독부가 3·1운동을 주도했던 140명의 명단을 기록한 ‘3·1운동 계보도’가 처음 발견돼 서울역사박물관의 3·1운동 100주년 특별전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에서 공개된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 발견된 ‘3·1운동 계보도’에는 민족대표 33인의 대표 격인 손병희와 기독교 대표 이승훈 등 이를 기획한 인물들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크기는 가로세로 54×40cm. 3·1운동 발발 직후인 1919년 3월 22일에 작성된 이 문서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총독과 육군대신 등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를 발견한 근대사 다큐멘터리 제작사 ‘더 채널’의 김광만 PD는 “3·1운동이 즉흥적인 시위가 아니라 치밀한 계획하에 이뤄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료”라고 했다. 5월 26일까지. 무료.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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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부-권력 독점한 엘리트, 민주주의 기반 흔든다

    2017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자기업으로 평가받는 지멘스는 독일의 공장 3개를 매각·폐쇄하기로 결정하면서 3500명의 일자리를 없앴다.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경영진은 오히려 무덤덤했다. 당시 조 케저 최고경영자(CEO)는 심화되는 빈부 격차에 대해 “노동자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비단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득 양극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배경에는 각국의 정치·경제·사회·사법·언론 등을 장악한 엘리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엘리트’는 우수한 능력이 있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엘리트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엘리트라는 용어 자체가 나치 정권에서 유래했다”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어 배타적으로 부와 권력을 독점해 왔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대중과 괴리된 엘리트 집단이 증가할수록 점점 대중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는다. 이로 인해 대중의 정치 혐오와 포퓰리즘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대안으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포괄적이고,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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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의 울분 그날의 감동, 눈앞에 생생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1919년 7월 10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제 경찰에 붙잡힌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서대문감옥에 투옥돼 있었다. 당시 일제 검찰의 신문을 받던 한용운은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글을 하루 만에 써내며 3·1운동의 동기와 당위성을 알렸다. 옥중서간으로 한용운의 독립에 대한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로 평가받는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육필 원고가 처음 공개된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1일 개막하는 3·1운동 100주년 특별전 ‘자화상-나를 보다’에서 한용운의 친필 원고와 백범 김구의 친필 유묵 ‘한운야학(閑雲野鶴)’ 등 130여 점의 유물을 공개한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한용운의 친필 원고는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이 작성한 ‘동양평화론’과 더불어 죽음을 대면하고 쓴 옥중서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4월 21일까지. 3000∼5000원. 국내 대표적인 박물관에서 특색 있는 3·1운동 10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국가기록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공동으로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을 연다. 기미독립선언서, 임시정부가 펴낸 기관지 ‘독립신문’, 기독교계 대표 11명이 서명한 ‘대한국 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 등 200여 점을 대거 공개한다. 유물 가운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95-1호)와 박은식이 집필한 역사서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임시정부 시민증이 눈에 띈다. 9월 15일까지. 무료. 국립고궁박물관은 기획전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을 통해 3·1운동을 촉발시킨 고종의 죽음과 관련된 유물을 공개한다. 고종의 승하, 국장, 영면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고종 초상화, 국장 당시 제작한 각종 기록과 사진, 고종 승하 이후 존호를 올리며 만든 옥보와 옥책 등 자료 15건을 선보인다. 31일까지. 무료. 국립중앙박물관의 테마전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에서는 최근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이봉창 의사 선서문’ 진본이 공개된다. 대한제국이 1899년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한 문서인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 대한민국 임시헌장, 대한독립여자선언서, 3·1독립운동가와 조선독립군가, 임시정부 환국 기념 선언문 등 구한말부터 광복까지의 과정을 유물을 통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9월 15일까지. 무료.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전시뿐 아니라 1일 오후 3시 크라잉넛, 레이지본, 킹스턴 루디스카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독립 밴드들이 무대에 나서는 ‘독립밴드: 독립군가 부르다’ 공연이 펼쳐진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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