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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맞춤법 문장부호 표기에서 온점과 반점으로 불렸던 ‘.’와 ‘,’가 각각 마침표, 쉼표로 혼용해 쓸 수 있도록 바뀐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는 이 같은 한글맞춤법 문장부호의 일부 개정안을 고시해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27일 밝혔다. 1988년 한글맞춤법 부록으로 처음 선보인 ‘문장부호’가 26년 만에 바뀌는 것이다. 말줄임표의 경우 ……(가운뎃점 6개)에서 ......(마침표 6개) …(가운뎃점 3개) ...(마침표 3개)도 쓸 수 있도록 했다. 3·1운동을 3.1운동으로, 상·중·하위권은 상,중,하위권으로 가운뎃점 대신 마침표나 쉼표를 쓰는 것도 가능해졌다. 날짜 사이에 붙는 물결표(10월 28일∼31일)도 붙임표(10월 28일-31일)를 병행해 사용할 수 있다. 원고지용으로 많이 쓴 낫표(「 」,『 』)나 화살괄호(, >)와 함께 따옴표(‘ ’, “ ”)도 쓸 수 있도록 했다. 연월일을 숫자만 쓸 경우엔 2014.10.28.처럼 날짜 뒤에 마침표를 반드시 붙이도록 했다. 또 ‘애를 씀’처럼 명사형 혹은 명사로 문장이 끝날 때는 마침표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공형식 국어정책과장은 “글쓰기 환경이 원고지에서 컴퓨터로 급속히 변한 것에 발맞춰 컴퓨터 자판에서 쓰기 쉬운 부호를 기존 부호와 함께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삶의 격’이라는 무거운 제목에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란 딱딱한 부제를 보면서 마음이 짓눌린다. ‘의미는 있을 것 같은데 책 읽기는 꽤 어렵겠구나.’ ‘리스본행 야간열차’ 등 묵직한 소설을 쓴 저자의 철학 에세이는 첫인상부터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서문부터 독자의 부담을 절반 정도 덜어준다. 그는 철학을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중요한 경험에 대해 이해 가능한 빛을 던지려는 시도’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존엄성의 개념 정의나 역사적 탐구, 철학적 고찰 등을 모두 생략한 채 ‘존엄성은 일상적 삶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며 그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바로 시작한다. 일상적 화법에서 벗어나 철학적 개념에 집중하다 보면 그 개념이 돌연 낯설고 난해해지면서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만약 존엄을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재돼 있고 타인이 아무리 끔찍한 짓을 하더라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존엄성은 왜 신성한지, 어디서부터 왔는지 등을 역사적 철학적으로 따져 묻게 된다. 저자의 접근법은 다르다. 존엄은 삶을 살아갈 때,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 기준이 되는 하나의 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존엄을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남이 나를 존엄하게 대하는지, 내가 남을 존엄하게 대하는지, 그리고 내가 나를 존엄하게 대하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어려울 수 있다고 본 것일까. 저자는 독립성, 만남, 사적 은밀함, 진정성, 자아존중, 도덕적 진실성, 사물의 경중에 대한 인식, 유한함의 수용 등 8가지 카테고리로 존엄을 설명하는 본문에서도 이해를 돕는 장치를 마련했다. 저자는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처럼 일상에서 경험한 일과 조지 오웰의 ‘1984’,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존 볼의 ‘밤의 열기 속으로’,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등의 작품을 사례로 들면서 존엄의 조건과 양태를 독자 앞에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세일즈맨의 죽음’에선 애원하다 실패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느끼는 좌절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선 친밀한 관계에서의 사적 은밀함이 누설됐을 때의 위기를 모델로 삼아 존엄성을 얘기한다. 저자가 국내의 막장 드라마를 자주 봤다면 아마 이런 장면도 책 속에 넣었을 것 같다. 재벌 2세와 사귀는 여자에게 그 어머니가 나타나 두둑한 봉투를 내밀며 헤어지라고 통보한다면. 이건 존엄의 상실을 가져오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과감하게 돈 봉투를 돌려주며 헤어질 수 없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것, 혹은 눈물을 흘리며 받아들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존엄의 상실을 피하는 길인가. 책이 정답을 말해주진 않는다. 저자는 삶의 순간에 부딪치는 결정적 문제 속에서 ‘존엄’을 생각하고 내 마음을 살펴 행동을 정하는 능력을 키울 것을 요구하고 그 여러 사례를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그 능력을 가질 때 각 개인들이 서로를 이끌어주고 길을 터주고 굴욕감이나 모욕감 없이 잘못된 점을 고쳐주고 때로는 상대를 거부할 수 있다. 저자의 바람대로 독자들이 책을 읽고 ‘아주 새로운 것은 없었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아.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말로 정리해 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권한 서평도 의미가 있다. 특히 너무 거창한 주제여서 접근할 엄두도 못 냈던 존엄이 갑자기 우리 삶에 녹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국내 심리학자 1세대로 심리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장병림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2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191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북간도에서 시인 윤동주 등과 같이 수학했다. 일본 도쿄 메이지대로 유학을 가 경제학과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1948년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배재중 교사, 감리교 신학대 강사, 해군사관학교 교관을 거쳐 1955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범죄심리학 성격심리학 정신분석학 아동심리학 저서를 집필, 번역해 후학을 양성했다. 1980년대 정년퇴임할 때까지 고인의 강의는 대형 강의실에 300∼400명이 몰릴 정도로 서울대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강의 중 하나였다. 특히 국내에 생소했던 범죄심리학을 개척해 거짓말탐지기 활용 등 과학 수사에 일조했고 주요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범죄심리학적 추리를 통해 수사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아동 교육을 위한 적성검사와 부모 상담, 비행 청소년 지도를 통해 심리학을 일상생활에 응용하는 일에 앞장섰다. 또 성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어렵던 시절 인간의 성적 욕망이 행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언론 매체에 나와 밝히기도 했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예계영 씨, 딸 혜란(강북삼성병원 안과 교수) 미란 씨(한국YWCA연합회 실행위원), 사위 김인겸(경방 타임스퀘어 부사장), 정수복 씨(사회학자)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북삼성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8시. 02-2001-1096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영국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1980년)에는 ‘바벨 피시’라는 기괴한 생물이 등장한다. 이 생물을 사람의 귀에 넣으면 그 어떤 언어라도 알아들을 수 있다. 이른바 전천후 통역기인 셈인데, 디지털 기술의 가파른 발전은 30여 년 전 꿈이라 여겼던 ‘바벨 피시’를 조만간 실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 IBM은 번역 서비스 회사와 손잡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고객과 제품 수리 기사의 대화를 즉시 번역해주는 온라인 앱을 개발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앱 이용자의 90%가 ‘사업에 활용할 만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1750년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이 제1의 기계 시대를 열었다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제2의 기계 혁명이 바야흐로 꽃봉오리를 피우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디지털비즈니스센터의 두 교수는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는 수많은 업체를 1년간 직접 찾아다닌 뒤 ‘제2의 기계 시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로봇, 무인자동차 등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기계들이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일들을 척척 해내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 2011년 미국의 유명한 퀴즈쇼 ‘제퍼디’에선 인간 대신 슈퍼컴퓨터 ‘왓슨’이 출연했다. ‘왓슨’과 대결한 상대는 제퍼디에서 74연승을 거둔 최고 실력의 보유자였다. 슈퍼컴퓨터가 얼마나 복잡한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 이 대결은 ‘왓슨’의 완승으로 끝났다. 디지털 기술 발전은 분명 국내총생산(GDP)의 성장 등 풍요를 불러오지만 소득 격차의 확대와 승자 독식이라는 부작용도 함께 가져온다. 구글이 실험 중인 무인자동차가 본격화되면 수많은 운전사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세법이 복잡한 미국에서 인기 있는 세금 소프트웨어 ‘터보택스’는 세무사를 실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터보택스를 만든 사람은 억만장자가 됐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소수의 공학자와 설계자가 수익을 독식하게 만든다. 이런 독식에는 과거처럼 많은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 인기 웹사이트나 프로그램 개발자는 단번에 수백만 명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일단 한번 만들면 복제 또는 재생산하는 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자본주의의 폐해나 사회 분배 시스템의 문제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불러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이로운 기술 발전의 물결처럼 흐를 제2의 기계 시대에 어떻게 사회적 격차라는 부작용을 없애며 번영을 이뤄낼 것인가. 이 책은 다양한 세금과 복지 정책도 제시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아직도 기계보다 우위에 있는 장점들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내기, 문제 해결을 위한 전체적인 틀 짜기, 적절한 의사소통 등이 그것이다. 특히 제2의 기계 시대엔 제1의 기계 시대에 유용했던 암기나 셈하기 위주의 교육을 버리고 인간의 감성과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으로 대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1의 기계 시대가 물질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면 제2의 기계 시대에는 인간의 창의력을 해방시킬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경기 여주시 남여주골프클럽(GC)은 9일 한글날 내장객에게 조그만 소책자를 나눠줄 예정이다. 이 책자에는 남여주GC의 3개 코스와 27개 홀에 붙인 순 우리말 이름 및 그 뜻을 담았다. 남여주GC는 올 5월 이 이름들을 짓고 각 코스와 홀마다 팻말을 세웠다. 3개 코스는 마루(정상) 누리(세상) 가람(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개 코스당 9개의 홀, 즉 27개 홀에도 꽃잠 산다라 고운매 씨밀레 등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들은 홀의 특성에 따랐다. 첫 번째 홀은 꽃잠(신혼의 첫날밤)처럼 라운딩에 대한 설렘을 보여주는, 어려운 홀에는 산다라(굳세게 꿋꿋하게)처럼 힘을 주는, 마지막 홀에는 하나린(어질게 살기 바람)처럼 덕담을 주는 이름을 붙였다. 코스와 홀뿐만 아니라 그늘집에도 ‘개여울의 속마음’ 등 한글 이름을 붙였다. 골퍼들도 “신선하다” “그런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는 줄 몰랐다” “홀을 기억하기 쉽다”며 반겼다. 이 이름들은 올 초부터 5개월간 강봉석 대표와 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만들었다. 강 대표는 “여주시에 세종대왕 묘가 있다는 점도 알리고 영어 위주인 골프 업계에서 한글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골프장의 순 우리말 이름은 해비치(경기 남양주와 제주) 솔모로(경기 여주) 푸른솔(전남 장성) 우리들(제주 서귀포) 아름다운(충남 아산) 외에는 찾기 힘들다. 레이크, 밸리, 캐슬, 힐스, 우드 등 영어를 조합해 지은 이름이 대다수다. 한편 최근 끝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경기장 이름을 열우물(테니스, 정구, 스쿼시) 고인돌(태권도, 우슈)로 붙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서정보 suhchoi@donga.com·이헌재 기자}

바둑 책은 급수에 맞게 골라야 한다. 그럼 철학 책은? 고교 때 배운 철학 사조와 유명 철학자, 그들이 남긴 대표적 저작과 명언 정도를 알고 있는 초보나 고전 원전은 읽어본 적이 없는 하수라면 이 책이 실력에 딱 맞다. 이 책은 16명의 철학자가 쓴 48권의 고전 원전 중 핵심 대목을 보여주면서 이를 둘러싼 배경, 철학자의 인생 등을 조곤조곤 풀어낸다. 예를 들어 플라톤 ‘대화편’의 ‘변명’을 설명하면서 소크라테스에게 적용된 혐의가 고작 종교와 풍기문란인데도 어떻게 사형까지 내려졌는지, 배심원은 어떻게 구성됐는지,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변론을 펼쳤고 자신에게 적절한 형량은 얼마라고 생각했는지 등을 보여준다. 특히 유명한 철학자의 명언이 어떤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여준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는 원래 일반 지식의 우월함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신의 전지(全知)를 언급한 것이라는 등 초보에게 유용한 얘기를 들려준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헤겔이나 니체의 철학도 브런치를 즐기듯 느긋하게, 가볍지만 알차게 시식할 수 있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학교 성적, 어학 실력, 취업, 사랑 등 젊은이의 고민은 끝이 없다. 일본 유명 소설가인 저자는 다 쓸어 던져 버리라고 제안한다. 취직 걱정? “당신이 직장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 순간 자유롭게 살 권리의 90%를 포기한 셈이 된다.” 반항 기질이 철철 넘치는 저자는 ‘사회적 성공을 원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굴종을 내면화하는 직장’, ‘몇 개의 당근으로 불만을 잠재우는 국가’ 등이 젊음을 갉아먹는다고 본다.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고 누구도 지배하지 않으며 자립해 세상을 헤쳐 나가자는 주장이 과하다 싶으면서도 가슴속을 뒤흔든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을 시대 순으로 비교 분석하면 일제가 비의 글자를 조작했다는 것이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광개토대왕릉비 연구 전문가인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는 29일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주최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16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조작한 광개토대왕릉비를 바탕으로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건 역사왜곡”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1883년 육군참모본부 소속 사카와 가게노부(酒내景信) 중위가 쌍구가묵(雙鉤加墨) 방식으로 만든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을 근거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쌍구가묵은 비석 글자의 외곽선을 종이 위에 그린 뒤 선 바깥을 먹으로 칠해 글자만 하얗게 남기는 것. 이 교수는 “사카와 중위가 글자가 불분명한 부분에 석회를 바르는 과정에서 왜곡이 있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왜가 (신라)성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성을 궤멸시켰다’(倭滿倭潰城·왜만왜궤성)는 경자년(400년) 기록으로 마치 왜가 신라군을 크게 무찌른 것처럼 해석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원래 왜구가 고구려와 신라 연합군에 궤멸됐다는 ‘倭寇大潰城(왜구대궤성)’의 조작”이라며 “석회가 떨어져 나간 뒤 1981년 탁본한 중국의 저우윈타이(周雲台) 탁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1909년 이후 10여 종의 탁본을 비교 분석한 결과 문제의 글자가 계속 변화하고 흐릿해지는 것으로 볼 때 애초 왜곡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이 책은 가급적 제왕절개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이유는 뜻밖에도 미생물 때문이다. 엄마 배 속의 양수에서 무균 상태에 있던 태아는 출생 때 산도(産道)와 질을 지나며 ‘락토바실리’라는 미생물(박테리아)을 흠뻑 뒤집어쓴다. 일부는 입에 묻어 있다가 젖을 빨면서 위장 속으로 들어간다. 엄마의 몸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락토바실리를 산도와 질에 잔뜩 준비시켜 놓는다. 락토바실리는 엄마 초유에 있는 올리고당의 분해를 쉽게 해주고 신생아의 장을 차지하려는 유해균을 억제해 신생아의 소화와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왕절개에선 당연히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미국 뉴욕대 의대 학장과 미국전염병학회장을 지낸 저자는 현재 뉴욕대 인간미생물군집 프로젝트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자는 인체와 미생물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이 책에서 기존의 이론을 뒤엎는 여러 도전을 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인간 위 속에서만 사는 박테리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역할이다. 이 박테리아는 위염, 위궤양 나아가 위암의 주범으로 꼽힌다. 호주의 배리 마셜 박사 등은 이 연관성을 밝힌 공로로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최근 급증하는 역류성 식도염을 비롯해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등을 억제하는 데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제시한다. 흔히 위 질환을 막기 위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제거하는 항생제를 처방하지만 제거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는 것. 이처럼 인간의 몸에 있는 미생물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세포 수는 30조 개. 반면 인간의 몸에 거주하는 미생물은 100조 개에 달한다. 이들 무게만 1.4kg으로 뇌의 무게와 비슷하다. 이들 미생물은 단순히 더부살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화와 면역 기능 증진, 호르몬 생산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인간의 몸에 상주하는 일부 박테리아는 병원성 박테리아가 인간의 몸에서 우세해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결국 인체와 미생물의 균형, 미생물과 미생물 간의 균형 속에서 인간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균형을 항생제의 남용이 깨뜨리고 있다. 1940년대 페니실린이 발견된 이후 병원성 박테리아로 인한 폐렴 결핵 농양 성병 등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을 거의 완벽히 퇴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생제가 병원성 박테리아만 잡는 게 아니라 인체에 당장 유익한, 또는 비상시에 필요한 박테리아까지 함께 없애고 있는 점이 문제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박테리아 퇴치에 유효한 항생제는 치료 효과가 없다. 하지만 감기가 폐렴 등으로 번질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모든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한다. 평균 100명 중 1명이 갖는 위험성 때문에 나머지 99명은 쓸데없이 항생제를 먹는 셈이다. 저자는 비만 천식 당뇨병 등 현대병도 항생제 남용과 관련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만의 경우 장 내에서 영양 흡수를 적절히 조절하는 박테리아가 항생제로 인해 크게 줄어들면 흡수량이 늘면서 살이 찌게 된다는 것. 축산업자들이 가축의 살을 찌우기 위해 특별한 병이 없어도 항생제를 놓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저자는 항생제 남용으로 돌연변이 병원균을 억제할 박테리아가 없어진 수백만 명의 인류가 신종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프랑스 보건당국의 구호처럼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항생제를 써 ‘인간과 세균의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한국의 보수 진보는 누구랄 것 없이 위기다. 특히 “보수 운동은 지적 운동에서 시작됐다”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한 칼럼니스트의 말과는 달리 국내에서 ‘보수’란 단어는 긍정적 가치를 상실한 채 쓰이는 경우가 많다. 기득권에 얽매이고 부패하고 툭하면 색깔론이나 들고 나오고…. 보수 집단은 진보의 실패에 힘입어 2007년과 2012년 잇따라 정권을 잡았지만 집권 후 성적은 낙제점이다. 저자는 이런 평가 아래서 한국의 보수는 무지하고 한국의 진보는 편향됐다고 진단한다.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우선 보수에 처방전을 내린다. ‘무지에서 벗어나라.’ 도대체 보수의 철학은 어디에 기반하며 보수의 정책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9·11 테러 이후 지난해까지 주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펴낸 100권의 책을 골라 소개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보수의 책뿐 아니라 진보의 생각을 알 수 있도록 미 진보 논객 토머스 프랭크의 저작 등도 분석한다. 진보가 주도권을 잡았던 미국도 이젠 보수의 흐름이 만만치 않다. 보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한 남자의 미국: 특별한 우리나라의 즐거움과 도전’이란 책에서 “미국의 보수는 이제 비로소 진보에 대적할 만한 지적 화력을 갖추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이렇게 묻는 듯하다. 한국 보수의 지적 화력이 진보에 맞설 수 있을 정도인가. 여기 소개된 책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번역되지 않았다. 입장 차이야 어떻든 미국 지성들이 쓴 100권의 책을 일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삶의 속도를 반 템포 늦춰줬던 존재라고 할까요.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가도 그를 보면 마음 한구석에 여유가 생겼어요.” ‘화첩기행’으로 유명한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61)가 신작 에세이 ‘자스민, 어디로 가니’(열림원)를 펴냈다. 주인공은 김 교수 가족과 16년간 함께하다 떠난 개 자스민. 영국 포메라니안종인 조그만 개 이야기는 김 교수의 명성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그래서 자스민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든 후에도 한참 고민했다고 한다. 반려견을 놓고 남우세스럽게 호들갑 떠는 건 아닌지. 하지만 16년간의 기록은 자스민을 매개로 한 가족의 기록이고 자스민을 통해 삶과 사랑, 죽음의 ‘볼록판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전개된다. 김 교수의 자스민 이야기와 자스민의 시각에서 본 가족 이야기가 교차된다. 김 교수는 직접 책에 들어갈 그림 10여 점도 백묘법(먹으로 선만 그리는 화법·사진)으로 그렸다. “제 가족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아줍니다. 안아보면 자스민의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리고 있었어요. 생명체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랄까요.” 김 교수의 기분이 좀 처져 있다 싶으면 슬그머니 그의 곁에 붙어 있었다. 산에 갈까 마음먹고 등산복을 입기 위해 안방으로 걸어가면 벌써 현관 앞으로 후다닥 뛰어가 앉아 있었다. 나도 데려가 달라는 듯. 자스민의 마지막은 어느 생명체에게나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웠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는데도 군대 간 둘째 아들 방으로 기어가기 위해 혼신을 다하기도 했다. “자스민이 사라지고 나서 생명의 존재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번 글쓰기는 제 해원(解寃) 같은 느낌이 들어요.”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임진왜란 때 왜장을 껴안고 경남 진주 남강에 투신한 논개는 잘 알려져 있지만 평양성에서 왜장의 목을 베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계월향을 혹시 아는지. 당시 ‘평양지’에 적힌 역사적 기록은 이렇다. 일본의 용맹한 부장(副將)이 총애한 평양 기생 계월향은 조선 장수 김경서를 오빠로 가장해 평양성으로 불러들인 뒤 왜장을 죽이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후 탈출 과정에서 왜군의 공격을 받자 김경서는 계월향을 죽이고 홀로 성을 빠져나간다. 공을 세웠으나 억울하게 죽은 계월향은 잊혀지고 김경서는 왜장을 죽인 장수로 칭송받는다. 심지어 ‘임진록’ 같은 당시 소설에선 김경서와 탈출하던 계월향을 왜군이 죽이자 김경서가 분노해 더 용맹하게 싸웠다는 얘기로 윤색된다. 계월향은 300년 뒤인 일제 강점기에 ‘충렬의 화신’으로 논개와 함께 복권되지만 남북이 갈리면서 다시 잊혀진다. 이 책은 조선시대 1592년부터 1658년까지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나선정벌 등 5∼10년마다 전쟁이 반복되던 시대에 잊혀지고 버림받은 민초의 얘기를 다룬다. 명나라와 베트남을 떠돌았던 전쟁 난민 최척, 전쟁 속에서 세 번 결혼한 기구한 운명의 김영철, 귀화한 일본인 김충선(일본명 사야가) 등이 등장한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아직도 태양계 행성이 9개이며 그중에 막내가 명왕성이라고 알고 있는가. 그럼 ‘땡 탈락’이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솟는다는 설정은 시금치 안에 든 다량의 철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역시 땡 탈락.(하지만 시금치는 비타민A 등이 풍부한 좋은 음식이다.) 우리가 옳다고 받아들이던 과학적 사실들이 이미 시효가 끝났는데도 우리의 지식은 ‘업데이트’가 안 된 경우가 많다. 우라늄이 세월(약 44억 년)이 지나면 반감하듯 인류의 지식도 시간에 따라 늘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개개의 지식이 변하는 모습은 무작위처럼 보여도 전체적으론 체계적으로 예측 가능할 정도로 규칙적으로 변한다. 이 책은 지식 혹은 기술이 어떻게 탄생해 성장하고 또 소멸하는지, 올바른 지식뿐 아니라 틀린 지식은 어떻게 전파되고 정정되는지와 같은 지식의 생사를 보여준다. 즉 지식에 대한 지식, 과학에 대한 과학인 셈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지구와 유사한 환경, 즉 생물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우주에서 발견하는 것은 천체물리학자들의 몫이지만 과연 이 행성을 언제 발견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건 바로 과학계량학자들의 몫이다. 예를 들면 ‘P와 NP’(0이 400개쯤 붙은 수 중에서 소수의 곱으로 이뤄진 수를 찾는 것)라는 수학적 난제를 언제 증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역사적으로 수학적 난제의 평균 해결 기간이 53년 정도이고 이 문제가 제기된 지 40여 년이 지났으니까 2024년 안팎에는 풀릴 가능성이 높다고 제시한다.(수학자들이여, 분발하라. 앞으로 10년 남았다!) 도서관에 얼마만큼의 책을 남겨둬야 하는가를 분석하려면 지식이 대체되는 주기를 확인해야 한다. 지식의 반감기, 즉 어떤 분야의 지식 절반이 새롭게 교체되는 기간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책에 따르면 물리학은 13년, 경제학은 9.3년, 수학은 9.17년, 심리학 7.15년, 역사학 7.13년이다. 지식에 대한 지식의 여러 사례도 흥미롭다. 1960년대 노벨상을 탄 사람들의 연구 저술을 분석하면 이들이 40대 때부터 ‘주 저자’의 지위를 후배 과학자들에게 양보해왔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마치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자신의 공을 후배에게 돌린 것인데 노벨상 수상자가 40대였을 때 주 저자인 경우는 26%였지만 비수상자는 56%나 됐다. 책을 읽다 보면 의문이 떠오른다. 행성을 발견하고 수학적 난제를 푸는 게 중요하지 그게 언제 가능한지를 추적하는 게 왜 중요한가.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그 지식의 생사가 어떤지가 왜 중요하냐는 점이다. 저자는 지식의 생사를 알면 자신의 지식을 고집하려고 하는 인간의 ‘인지 편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해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우리는 새로 업데이트되는 지식을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흡수해 지식에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도 생사를 알면 더욱 즐겁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 참, 처음 두 문제의 답은 혹시 모르는 독자를 위해 간단히 설명. 명왕성은 2006년 반경이 달보다 작다는 등의 이유로 소행성으로 격하됐다. 시금치의 철분 성분은 100g당 3.5mg인데 35mg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 거의 1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왔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글이 힐링일까, 그림이 힐링일까.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이 책에선 그림 쪽을 택하겠다. 약간 우울해 보이는 듯한, 멍 때리는 듯한, 무심한 듯한 ‘힐링 토끼’는 아주 가끔 웃어 보일 뿐. (23마리의 힐링 토끼 단체 사진에서도 웃고 있는 건 3마리다.) 그런데 이 묘한 토끼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차분해진다. 조연인 고양이의 나른한 표정 역시 기분 좋다. 힐링은 단순하고 소박한 데서 오는 것일까. 얼핏 어린 왕자나 파페포포 시리즈가 떠오른다. 100개의 글도 내공이 깊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가져야 할 것이,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마음이 비좁고, 분주한 세상 좇아야 할 보폭이 벅차 고단한 순간이 올 때 잠시 휴식이 되어주는 착한 책이 되길….” 적어도 한 사람은 휴식을 맛보았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최근 극심한 출판계 불황의 이유에 대해 스마트폰을 지목하는 출판인이 많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책을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출판 불황의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인의 독서량은 연간 평균 1권이 안 될 정도로 빈약하기 짝이 없다. ‘책 수련’과 ‘책으로 변한 내 인생’은 황폐한 국내 독서 풍토에 ‘독서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독서가 지식을 넓히고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을 넘어 인생 자체를 바꾼다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다. ‘책 수련’의 저자는 11년간 일하던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3년간 9000여 권의 책을 읽은 뒤 1년에 10권씩 지금까지 50여 권의 책을 냈다. ‘책 수련’은 그가 낸 ‘48분 기적의 독서법’ 등 독서 관련 서적의 완결편과 같다. 저자는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덜대지 말고 어디든 책을 들고 다니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보고 오직 책 읽는 날을 정해 실천하라고 권유한다. 또 주마간산이나 속독으로 읽지 말고 어려운 고전부터 읽지 말라는 조언도 한다. 가장 중요한 팁은 눈으로만 읽지 말라는 것. 책의 중요한 내용을 쓰면서 독서 노트를 작성하면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이게 버릇이 되면 나중에 책을 통해 배운 것, 작가의 견해와 내 의견의 비교 분석 등을 노트에 적으며 다각적으로 책 내용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책으로 변한 내 인생’의 저자도 1년에 2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인터넷 블로그에 빠짐없이 리뷰를 올리는 ‘헤비 리더’다. 그는 최소 ‘1일 1분 1장’의 독서법을 제시한다.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하루에 최소 1분 동안 책 1장을 읽는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다. 이것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어느 순간 탄력을 받아 더 많은 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럴 땐 이런 책을 읽어 보세요’라는 책 속 부록도 유용하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아이 넷을 둔 유부남이었는데도 한 여성과 오랫동안 혼외정사 관계를 유지했고 출장 틈틈이 다른 여성들과 짧은 외도를 즐겼다. 그의 전기 작가는 킹이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지만 육체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킹은 위선자였을까.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렌즈를 통해 킹이 다중인격장애였다고 진단한다. 정신 질환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 다중인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진화를 통해 가장 적합한 형질을 발전시켜 온 인류는 각각의 상황에 맞게 최소 7개의 부분 자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킹의 행동은 숭고한 인권운동을 벌이는 자아와 육체적 욕망에 따르는 자아의 서로 다른 행동이다. 물론 부분 자아가 비도덕적 행동을 정당화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왜 킹이 그런 행동을 저질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7개의 부분 자아는 어떤 것일까. 자기 보호, 질병 회피, 친애, 지위, 짝 획득, 짝 유지, 친족 보살핌 등이다. 이런 자아들은 우리 조상이 생존과 진화를 위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유리했던 특성을 우리 내부에 남겨둔 결과다. 왜 여자들이 헌신적이고 착한 남자보다 바람기 가득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지, 왜 가난한 남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여자친구에게 명품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왜 돈을 펑펑 낭비하는지, 사회의 전문직에 속하는 엘리트들이 왜 사이비종교에 빠져들어 모든 것을 탕진하는지 등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바보들의 행진’이 바로 진화를 통해 획득된 부분 자아 탓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성적 동물이 될 수 있는가. 이 책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분 자아가 적합한지를 자문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적어도 우리에게 여러 부분 자아가 있다는 것과 이러한 부분 자아가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중국 한나라 때인 서기 105년 채륜이 발명한 종이가 곧 세계 곳곳에 퍼져 인류 문화의 정수를 담는 기록 수단이 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동쪽으로 한국과 일본에는 비교적 빨리 전파됐지만 서쪽으로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에 다다르기까지는 스페인 12세기, 이탈리아 13세기 등 무려 1000년 넘게 걸렸다. 유럽 입장에서 보면 종이의 전래는 르네상스의 원동력이었고 이후 종이가 대량생산되면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생겨날 수 있었다. H G 웰스는 저서 ‘세계사 대계’(1920년)에서 “종이가 유럽의 부활을 가능케 했다”고 언급했다. 이 책은 2000여 년에 걸친 종이의 역사를 비롯해 종이로 인한 인간 생활과 문화의 변화를 촘촘히 담았다. 이 책은 특히 우리가 종이에 대해 잘못 알거나 선입견에 빠진 점을 바로잡아 준다. 총알과 폭탄이 난무하는 전쟁은 종이와 별 상관없을 것 같지만 1857년 제1차 인도독립전쟁(세포이항쟁)은 종이에서 비롯됐다.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용병인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에게 돼지나 소의 기름을 묻힌 종이 탄약통을 입으로 찢어 쓰도록 하자 이에 반발해 촉발된 것이다. 힌두교도에겐 소가 신성했고 이슬람교도에겐 돼지가 금기시되는 동물이라 이를 입에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1, 2차 세계대전은 ‘종이 전쟁’이라 할 만했다. 1차 대전 때 연합군은 하루 100만 장의 종이 전단(삐라)을 열기구에 띄워 독일군에게 뿌렸고 이는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새로운 무기였다. 2차 대전에서도 이탈리아 작전을 펼칠 때 연합군은 한 달에 1억 장을 뿌렸고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종이 중 값어치 있는 것은 지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진 않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국민들은 지폐를 벽지로 사용했다. 벽지를 살 돈, 즉 지폐를 벽에 바르는 것이 벽지를 사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1776년 7월 4일 발행된 1장짜리 ‘미국 독립선언문’ 원본은 814만 달러에, 르네상스 시대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스케치는 2009년 4790만 달러에 경매됐다. 종이는 훌륭한 기록 수단인 만큼 비밀이 담겼을 경우 파괴의 대상이기도 하다.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는 동독 붕괴 직전인 1989년 10월부터 3개월간 4500만 장의 비밀문건을 파쇄했지만 미처 소각하기 전에 적발됐다. 한 업체는 종이의 질감 모양 두께 활자체 등을 분석해 파쇄한 종이를 잇는 기계를 만들어 문건을 한창 복원 중이다. 미국 국가안보국은 아예 하루 12t의 파쇄용 기밀문서를 펄프로 만들어 피자 상자, 계란판으로 재활용하는 공장을 갖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종이와 9·11테러를 다루고 있다. 당시 건물이 붕괴할 때 먼지와 함께 태양을 가릴 정도로 수많이 종이가 쏟아졌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종이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당시 발견된 한 메모에는 ‘84층 서쪽 사무실에 12명이 갇혀 있다(84th floor west office 12 people trapped)’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가 84층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며 구조를 해달라며 빌딩 밖으로 던진 것이었다. 이 메모를 한 안전요원이 발견했을 때 이미 무너진 북쪽 빌딩에 이어 남쪽 빌딩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84층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10년간의 추적 끝에 메모의 필체가 84층의 한 금융업체 직원의 필체와 같다는 것이 확인됐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수 있었던 메모지가 이젠 유족들의 소중한 유품이 된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다!’ 에이 말도 안 돼. 저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나. 히틀러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비롯해 2100만 명을, 스탈린 소련이 6200만 명을, 중화인민공화국이 3500만 명을, 중국 국민정부가 1000만 명을, 일본 군국주의가 6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았나. 사회학자 러멜이 국가 살해로 계산한 숫자만 1억7000만 명인데…. 20세기는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처럼 대량 학살을 뜻하는 말이 새로 생겨날 정도로 인류의 이성이 마비된 가장 폭력적 세기였다는 것이 굳은 믿음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 마음 3부작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각종 통계와 역사적 자료를 들이대며 이런 신념이 오류임을 밝힌다. 인류 탄생 이후 폭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고 이는 대규모 학살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가해까지 모든 폭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가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실제 폭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폭력의 존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손쉽게 접하고, 폭력을 나쁘다고 느끼는 감수성이 어느 시대보다 민감하며, 피비린내 나고 잔혹한 과거의 사건과 일상에 대해 잘 모르는 ‘역사적 근시안’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에 폭력적 사망 건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인구수를 감안할 때 사망 비율은 20세기가 결코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600년대의 전쟁과 20세기 중반의 전쟁을 비교하려면 1600년대의 사망자 수에 4.5를 곱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은 뜻밖에도 8세기 중국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과 그로 인한 내전이었다. 인구 조사에 의하면 당시 중국 인구의 3분의 2인 3600만 명이 희생됐고 이는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었다. 이를 20세기 중반 인구 비율로 맞추면 무려 4억2900만 명이다. 저자는 사회학자 러멜의 자료를 이용해 20세기 이전 16건의 집단살해에서 무려 1억3314만 명이 숨졌다고 지적했다. 이 수치도 비교적 정확한 자료로 남아 있는 것만 정리한 것이다. 일상 속의 폭력이나 살인도 마찬가지다. 간통한 남편을 둔 무고한 아내는 코가 잘렸고 속치마를 훔친 일곱 살짜리 소녀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마녀는 톱으로 몸을 반으로 자르는 형벌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아내와 아이를 때리는 걸 가장의 당연한 권리로 여긴 곳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법으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저자는 폭력이 역사적으로 지역을 불문하고 감소해 왔다는 건 그만큼 인류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어도 좋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폭력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악마(포식성 우세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를 누르고 네 가지 천사(감정이입 자기통제 도덕감각 이성)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20세기 집단학살의 주범인 전체주의 체제, 즉 나치즘과 공산주의의 쇠퇴는 이런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전체주의 체제는 20세기 국가학살 사망자 1억7000여만 명 가운데 82%인 1억3800만 명을 죽였고, 이 중 공산주의 체제가 1억1000만 명(전체의 65%)이었다. 전성기 때 공산주의 체제는 “계란을 깨야 오믈렛을 만든다”며 폭력을 옹호했지만 하버드대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는 “인간이 계란이 아닌 건 차치하고라도 그 살육에서 오믈렛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 체제, 이성, 인도주의, 과학의 힘 등이 늘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론 이를 토대로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를 끄집어내 남은 폭력마저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한 학년 정원이 400명인 일본 가이세이고는 해마다 200명에 가까운 학생을 도쿄대에 입학시키는 ‘명문고’다. 운동에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2005년 고시엔 동(東)도쿄 예선(150개팀 참가)에서 16강까지 진출했다. 8강에서 가이세이고를 물리친 고쿠시칸고가 그 예선대회에서 우승한 걸 보면 만만치 않은 실력이었다는 것. ‘공부만 아니라 야구도 잘해?’ 저자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취재에 나섰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가이세이고 야구 선수들은 어설프기만 했다. 공을 뒤로 빠뜨리는 건 기본이고 타격 때 공은 제대로 보는 건지 있는 힘껏 헛스윙을 연발했던 것. 아오키 감독의 설명이 더 걸작이다. “수비는 기본만 하고 공격에만 집중한다.” 숙달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비는 최소화하고 풀스윙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더블플레이와 번트가 없고 작전 지시도 없으며 볼넷 출루보다 헛스윙 삼진 아웃이 더 칭찬받는 팀을 4년간 취재해 엮은 논픽션.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일제강점기 아래 항일운동은 국외와 국내,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됐습니다. 국내에선 단연 인촌 김성수 선생이 민족의 역량을 배양하고 독립의 기반을 쌓는 일에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유재천 전 상지대 총장) “만약 인촌이 ‘무슨 공을 가장 크게 세웠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인재 양성’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한정호 연세대 언론영상홍보학부 교수) 28일 오후 서울 고려대 미디어관에서 열린 ‘인촌의 언론과 교육사상’ 세미나(한국언론학회 주최)에서는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의 주제 발표가 끝난 뒤 7명의 교수와 언론인이 인촌의 역사적 역할과 의미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회는 한균태 경희대 교무부총장의 사회로 박정찬 전 연합뉴스·뉴스와이 대표,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유 전 총장, 유홍식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임상원 고려대 명예교수, 최종후 고려대 응용통계학과 교수, 한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손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한민족에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유지시켜 준 문화적 기반이 바로 언론과 교육기관”이라며 “일제의 끊임없는 공동체 의식 와해 시도에도 인촌의 동아일보 등이 이를 막아내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온건한 자유주의자’였던 인촌은 관용의 정신을 통해 사상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학생들을 길러냈다”고 평가했다. 토론 후 정 교수는 인촌을 둘러싼 친일 논란에 대해 “1940년 폐간된 동아일보가 1945년 12월 복간했는데 당시 중국에서 막 귀국한 백범 김구가 축하 휘호를 보냈다”며 “당시 친일에 민감했던 임시정부의 백범이 인촌을 친일파로 여겼다면 과연 휘호를 보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