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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전에 먼저 하나 고백해야겠다. 기자는 지난해 넷플릭스의 ‘마스터 오브 제로’를 보고 아지즈 안사리(사진)의 팬이 됐다. 저자인 안사리는 요즘 ‘핫한 직업’,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NBC의 ‘Parks and Recreation’에 출연해 유명해졌다. 최근엔 ‘Right Now’가 베스트 코미디 앨범으로 내년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마스터…’에서 안사리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인도계 이민자 2세로 겪는 이해 못할 상황들(근면만을 강조하는 아시아계 부모, 배우 지망생인데 오디션에 가면 ‘인도계 억양’을 해달라는 주문만 받는 상황)을 시니컬하고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낸다. 시리즈를 다 보고 나면 그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책에 호기심이 생긴 건 당연했다. 표지를 넘기자 안사리의 입담이 쏟아졌다. “이런 젠장! 제 책을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돈이 제 주머니에 쏙 들어왔네요. 책을 굉장히 공들여 썼으니 만족하실 거예요.”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성공하면 유머 책을 쓰라는 제안이 들어오지만, 유머는 무대에 가장 어울린다”며 한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읽씹’을 당하고 ‘광기어린 감정’에 휩싸인 경험에서 출발해 현대인의 사랑법에 대한 책을 쓰기로 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어지는 내용은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에릭 클라이넨버그와 함께한 아주 진지한 연구다. 2013년부터 1년 동안 두 사람은 팀을 꾸려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위치토, 뉴욕주 먼로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에서 초점 집단을 구성해 수백 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애 생활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주로 스마트폰으로 오가는 이야기를 모았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이웃에 사는 또래나 부모가 소개해 준 이성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시절의 결혼은 열렬한 사랑이 아닌 새로운 가족을 꾸리기 위한, ‘생존 공동체 결혼’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온라인으로 이성을 만날 기회가 무한대로 많아진 지금, 사람들은 ‘솔메이트 결혼’을 꿈꾼다. 그래서 지금의 사랑은 더 나아진 걸까? 결과는 아이러니하다. 과거처럼 아무나 만나고 싶진 않지만, 완벽한 사람을 원하다 보니 선택이 더 피곤해진다. 예전엔 로맨틱한 말 한마디로 만남이 시작됐다면, 지금은 문자 속 이모티콘, 틀린 맞춤법만으로도 상대에게 정이 떨어질 수 있다. 거절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만날 약속을 잡지 못하고 문자만 보내다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이 두려움이 극도에 달해 ‘초식남’이 탄생했다. 책은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언제가 연애하기 좋았다는 단정적 말을 경계하며 풍부한 사례와 통계로 연애의 지형도를 그린다. 딱딱한 팩트가 반짝이는 유머로 버무려진, 똑똑하고 재기 발랄한 책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엔 다양한 역사가 있어요. 그러나 주류 미술사는 여전히 남성 중심이죠. 제가 일한 영국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도 설립 이래 20년간 개인전이 23번 열렸는데, 여성 작가는 단 한 번뿐이었어요.” 10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만난 큐레이터 로라 스미스는 지난해 2월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에서 열린 ‘버지니아 울프’전을 담당했다. 당시 테이트에서 근무한 그는 문학가인 울프의 글을 렌즈 삼아 여성 작가를 조망했다. 82명 작가의 작품 200여 점을 선보인 대규모 전시로, 여성 미술가들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 사상 관객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전시로 기록됐다. “큰 미술관에서 여성 작가를 조명한 역사가 짧아요. 또 여성성을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하니 다양성을 보여줄 기회도 적었죠.” 5년간 준비한 전시가 개막한 직후 스미스는 화이트채플갤러리로 이직했다. 화이트채플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공공 갤러리로 현대미술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잭슨 폴록, 프리다 칼로의 첫 개인전을 선보인 것도 이곳. 스미스는 큐레이터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큐레이터가 권위를 갖는다고 보는 시선을 불편하게 생각해요. 전시 관객층은 정말 다양하고 느끼는 바도 각각 달라요. 다만 하고 싶은 건, 무수히 다양한 목소리와 역사를 보여주는 겁니다. ‘이건 몰랐죠? 이런 것도 있어요!’ 하며 제안하는 거죠.” 전시 준비 기간이 5년인 테이트와 달리 1∼3년인 화이트채플은 동시대 미술에 좀 더 빠르게 반응한다. 내년 2월에는 구상 회화 그룹전이 준비돼 있다. “2000년대 이후 트렌드인 구상 작품을 돌아보는 ‘Radical Figures’라는 전시예요. 그 후에는 100% 재활용 가능한 작품도 공개할 거예요. 가을에 열릴 전시는 제가 담당하는데, 기후변화와 환경을 다룹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런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해 2월 영국 테이트세인트아이브스에서 열린 ‘버지니아 울프: 글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Virginia Woolf:An Exhibition Inspired by Her Writings’는 미술관 사상 관객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전시다. 치체스터, 옥스퍼드로 순회전을 개최해 재방문율도 높았다고 한다. 미술가가 아닌 문학가의 이름을 앞세웠지만, 그의 삶이 아니라 글을 통해 예술을 돌아보는 독특한 전시는 큐레이터 로라 스미스의 작품이다. 5년간 준비한 전시를 오픈한 직후 스미스는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로 이직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막스마라 예술상 수상자인 헬렌 캐먹과 예술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전시를 담당했다. 스미스를 10일 화이트채플갤러리에서 직접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 전이 테이트 채용 면접에서 이야기해 성사됐다고. “2012년에 테이트세인트아이브스에 채용되며 있었던 일이다. 면접 과정에서 미술관에서 할 만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관한 전시를 제안했다. 당시 예술감독이었던 마틴 클락이 나처럼 울프의 전시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울프에 관한 전시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에서 벤 니컬슨, 바바라 헵워스, 패트릭 헤론 등 예술적 유산은 충실히 다뤄왔다. 그런데 그곳의 문학적 유산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 버지니아 울프가 13살까지 매년 휴가를 갔고, D.H. 로렌스와 캐서린 맨스필드도 별장을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게다가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에 등장하는 등대가 바로 세인트아이브스에 있는 그 등대다.” -울프의 글을 렌즈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조망했다. “나에게 중요했던 또 다른 테마가 바로 여성 미술사였다. 테이트에서 꼭 페미니즘 전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울프의 글을 전시의 뼈대로 삼은 것이다. 또 전시가 열린 해는 영국에서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투쟁)가 열린 지 100주년이 되는 때였다.” -울프의 전시일 줄 알고 들어가서, 여성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 언어에 매료됐다. 큐레이터로서 여성 작가를 조명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 “미술엔 아주 많은 버전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주류 미술사는 남성 중심이다. 통계만 봐도 내가 테이트세인트아이브스에 갔을 때 20년 동안 개인전 23번이 열렸는데, 여성 작가 릴리 반 스토커 단 한 번뿐이었다. 세인트아이브스의 작업실을 미술관으로 만든 바바라 헵워스는 제외한 수치다. 통계는 놀랍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 것이 놀라왔다. 2012년인데도! 그런데 이런 일이 테이트뿐 아니라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큰 미술관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다. 또 여성성을 하나의 덩어리로 바라보니 다양성을 보여줄 기회도 적었다.” -작가 82명에 작품 200여점. 쉽지 않았을 듯하다. “어려웠지만 아주 만족스럽고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었다. 테이트에서 준비 기간 5년을 줬다. 처음 목록을 작성했을 땐 작가 300명에 작품 700점을 꼽았다. 동료 큐레이터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숫자를 줄일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많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또 울프의 동시대작가 뿐 아니라 컨템포러리 작가를 포함하는 것도 중요했다.” -전시 반응은 어땠나. “개막 직후 런던으로 와버렸다. 그런데 전해 듣기로 반응이 좋았다. 관객 만족도가 어느 전시보다 가장 높았고, 옥스퍼드에서도 관객들이 수차례 재방문했다고 한다.” -화이트채플과 테이트에서 큐레이팅의 다른 점이 있다면. “테이트는 멋지면서 어렵고, 화이트채플도 다른 이유에서 멋지면서 어렵다(웃음). 가장 다른 점은 준비 기간. 테이트는 통상 5년 전부터 준비하는데, 그러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것이 쉽지 않다. 5년 뒤 트렌드를 예상한다는 건 거의 점쟁이 같은 일이다. 예술가에게도 ‘테이트에서 전시할래?’하면 좋아하지만, 5년 뒤라고 하면 때로 당황해한다. 아주 느리고 무거운 과정이다. 그런데 화이트채플은 보통 1~3년 전부터 준비해, 트렌드에 더 빨리 대응할 수 있다.” -큐레이터로서 관심 가는 주제는. “여성 작가와 계급 문제. 미술계가 왜 중산층, 상류층 출신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에 의해 주도 되는지에 관심 있다. 노동자 계급은 별로 없다. (영국 사회는 계급 구분이 뚜렷하다.)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특권이자, 결여라고 생각한다. 계급의 다양성, 민족의 다양성을 늘 생각한다.” -내년엔 어떤 전시를 선보일 예정인지. “내 전시는 9월로 예정돼 있는데 아직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기후 변화와 환경에 전시를 다룬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내년 2월에 2000년 이후 구상으로 회귀한 트렌드를 돌아보는 ‘Radical Figures’ 전이 열린다. 수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로 12명 작가가 참여했고, 초대형 회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동료 큐레이터인 에밀리는 카를라스 봉고와 함께 카드보드로 만든, 100% 재활용 가능한 작품을 제작 중이다.” 런던=김민기자 kimmin@donga.com}

내년 2월 9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백남준’전은 테이트모던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관(SFMoMA)이 협력한 전시다. 백남준 재단(the Nam June Paik Estate)부터 전문가와 기술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과정을 총괄한 것은 두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다. 이숙경 시니어 큐레이터와 함께 ‘백남준’전을 만든 큐레이터인 이탈리아 출신 발렌티나 라바글리아 씨(37)를 9일 미술관에서 만났다. ―‘백남준’전에 어떻게 함께했나. “대여 작품 목록이 확정된 지난해 봄부터 합류했다. 테이트 소장품 디스플레이를 맡아 히토 슈타이얼, 구스타프 메츠거, 오메르 파스트 등 미디어 작품 경험이 많았다. 실험음악과 플럭서스, 1960∼70년대 예술을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 ―준비 과정은 어려웠는지…. “백남준이 기술을 사용한 방식이 실험적이어서 난도가 높았다. 기존 기계를 개조하는 등 변칙적으로 기술을 활용했다.” ―보존 문제도 있었나. “과거에는 버려진 CRT(브라운관) TV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쓰레기장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TV 정원’을 위해 보존 팀에서 여러 재활용센터에 연락했지만 맞는 것을 못 구했다. 결국 이베이(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 찾았다. 요즘은 오프라인 상점보다 이베이를 자주 활용한다. 하하.” ―전시로 새롭게 느낀 것이 있다면…. “백남준을 알면 알수록, 그가 고급 예술을 팝 아트로 위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문화의 시각 언어를 ‘트로이 목마’처럼 활용해 관객을 고급문화로 이끌었다. 영상에 가벼운 코미디 공연이나 스포츠 장면을 넣어 시청자를 최대한 끌어들인 뒤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같은 실험 예술을 보여주는 식이다.” ―백남준의 동양 철학은 어떤 관점으로 봤나. “그는 어릴 적부터 선불교와 도교를 피부로 경험했다. 이후 서구 아방가르드 예술이 궁금해 독일로 갔는데, 거기서 만난 존 케이지가 선불교에 관심 갖는 걸 보고 깜짝 놀랐을 거다. 추측하건대,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동양 철학이 사용되는 맥락을 제대로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점이 백남준을 돋보이게 하는 정체성이기도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전시장은…. “단연코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백남준 첫 개인전 복원 공간)이다. 이번에 연구하며 이 개인전이 얼마나 혁명적이고 전복적인지 알게 됐다. 음악은 물론이고 참여 예술, 퍼포먼스, 기술과 시각 예술의 경계를 종합적으로 허물었는데, 이걸 아주 자연스럽게 해냈다. 대단한 업적이다.” ―관객 반응은 어떤가. “관객층이 다양해 놀랐다. 20세기 작가 회고전인데 젊은 관객도 좋아한다. 카세트테이프, LP판 같은 구식 기술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아는 세대에겐 향수를, 모르는 세대에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비디오아트 창시자’ 그 이상의 백남준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최초’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가 기술에 깊이 관여해 경계를 밀고 나간 것이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하다. 1980년대 MTV 미학이 백남준에서 왔다는 말을 가볍게 여겼는데, 세계인이 그의 이름은 몰라도 문화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또 플럭서스 창립자인 조지 머추너스가 백남준을 발견했을 때, 그는 실험음악으로 이미 플럭서스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플럭서스가 갈등으로 해체돼도 백남준은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개척했다.”런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미술 시장의 작품 가격이 비싸다는 말이 나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 유명 작품은 10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는데 한국 작품이 비싸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도 가치에 따라 비싼 건 수백억 원에 이르지만 수백만 원대 작품도 있다. 그런데 국내는 작품 자체보다 작가의 학력과 갤러리 전시 이력 같은 외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해 가격이 비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등급의 갤러리가 모여 있는 영국 콘월주(州)를 찾았다. 잉글랜드 남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콘월은 빼어난 자연 환경을 지녀 영국의 대표적 휴양지로 꼽힌다. 외지인을 대상으로 몇만 원부터 수천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들이 있다. 한눈에 미술 시장 구조를 파악하기 좋은 곳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일주일간 콘월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 ‘도상봉 스타일’ 정물화가 100만 원대 흔히 미술 시장이라고 하면 수억 원대 작품을 떠올린다. 하지만 콘월에서는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저렴한 작품들의 규모가 더 컸다. 세인트아이브스의 한 상업 갤러리. 바다 풍경을 그린 그림과 정물화가 여러 스타일로 있었다. 갤러리 주인은 구석에서 기타를 치다 눈인사를 하고 다시 연주에 몰두한다. 그림 옆에는 가격이 적혀 있어 혼자서도 편하게 작품을 고를 수 있었다. 도상봉 작가(1902∼1977)를 연상케 하는 정물화가 눈에 띄었다. 영국 작가 게리 롱(74)의 작품으로 가격은 액자를 포함해 750파운드(약 117만 원). 프린트를 판매하는 ‘휘슬피시’에서는 이대원 작가(1921∼2005) 스타일의 화려한 풍경화가 150파운드(약 23만5000원)였다. 도상봉 이대원 작가와 갤러리의 작품들은 모두 인상파 기법에서 출발해 조형성을 추구했다. 그런데 국내 작가의 작품은 학력 등에 따라 가격이 뛴 반면 영국 작가 작품은 장식성에만 충실하기에 ‘착한 가격’을 매긴 것이 눈에 띄었다. 인구 2000여 명에 불과한 어촌 패드스토에도 골목마다 10여 개의 갤러리가 있었다. 몇 만 원 혹은 수십만 원대부터 수천만 원대의 작품을 취급하는 갤러리까지 다양한 타깃의 고객을 대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뱅크시, 데이미언 허스트의 판화를 취급한 드랭 갤러리 관계자는 “고객 대부분은 휴가철 별장을 찾는 외지인”이라며 “여유롭게 쉬면서 넉넉해진 마음을 겨냥해 작품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갤러리를 유지하려면 매년 최소 수억 원어치는 판매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 갤러리는 8년간 운영됐다. 다른 갤러리의 역사도 짧게는 5년에서 25년까지 다양했다. 상당한 규모의 고객이 있어 시장이 활성화된다는 의미였다.○ 예비 컬렉터 키우는 구조 세인트아이브스는 ‘예술촌(Art Colony)’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때 런던을 제외하고 예술가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다. 1928년 어부 화가 앨프리드 월리스에 반해 벤 니컬슨이 이곳에 정착했다. 그 후 조각가 바버라 헵워스, 나움 가보는 물론이고 화가 마크 로스코, 피터르 몬드리안,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도 이곳을 찾았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생겨난 갤러리들은 영국의 미술 시장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뉜다. △예비 작가의 저가 작품(5만∼45만 원) △숙련된 작가의 상업 작품(50만∼200만 원) △상업과 파인아트의 경계에 있는 작품(150만∼800만 원) △국내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1000만∼수억 원대) △세계 미술사에 편입된 작품(수억∼수백억 원 이상)이다. 이 암묵적 기준에 따라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시장에 막 진입한 작가의 작품은 첫 번째 단계로 재료비의 7∼10배 수준의 가격을 형성한다. 이후 상업적 인정을 받으면 조형성과 인지도에 따라 가격이 올라간다. 그 다음 미술사적, 미학적,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역량에 따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 지역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은 잠재적 컬렉터 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저렴한 작품을 구매해 보고,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 같은 공공 미술관에서 세계적 작품들을 보면서 안목을 키운다. 초보 구매자가 성장해 여력이 되면 좋은 작품을 후원하는 컬렉터가 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타깃과 안목 필요한 한국 시장 한국과 콘월의 결정적 차이는 두 가지였다. 작가는 작품을 구매해 줄 ‘타깃’을 인식하고 컬렉터는 ‘안목’을 키워 나간다는 점이었다. 세인트아이브스의 예술가 7명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아트 스페이스 갤러리’는 20년 동안 지속됐다. 소속 작가가 매일 돌아가며 갤러리를 지키고 작품을 판매한다. 바다 풍경을 그린 저렴한 장식 작품 위주였다. 기자가 찾은 4일은 비수기였음에도 이날 벌써 그림 5점이 팔렸다고 했다. 갤러리 설립자 중 한 명인 헬렌 앳킨스는 “작가가 가격을 정하지만 잘 팔리지 않을 때는 경험을 기반으로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초보 작가라도 유명 학교를 졸업하거나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면 작품 가격이 수백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은 불투명한 과정을 통해 책정되기에 시기에 따라 급등락한다. 고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것은 예술을 상업화하는 것으로 여겨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작가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작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초보 관람객에게는 난해하게 여겨지는 작품이 많다. 관람객의 안목을 키울 초기 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다. 콘월에는 고객의 기호를 바탕으로 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통해 가격이 조절되는 살아 있는 시장이 있었다.세인트아이브스·패드스토·펜잰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미술 시장의 작품 가격이 비싸다는 말이 나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 유명 작품은 10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는데 한국 작품이 비싸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도 가치에 따라 비싼 건 수백 억 원에 이르지만 수백만 원대 작품도 있다. 그런데 국내는 작품 자체보다 작가의 학력과 갤러리 전시 이력 같은 외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해 가격이 비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등급의 갤러리가 모여 있는 영국 콘월 주(州)를 찾았다. 잉글랜드 남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콘월은 빼어난 자연 환경을 지녀 영국의 대표적 휴양지로 꼽힌다. 외지인을 대상으로 몇 만 원부터 수천만 원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들이 있다. 한 눈에 미술 시장 구조를 파악하기 좋은 곳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일주일간 콘월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도상봉 스타일’ 정물화가 100만 원대 흔히 미술 시장이라고 하면 수억 원대 작품을 떠올린다. 하지만 콘월에서는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저렴한 작품들의 규모가 더 컸다. 세인트 아이브스의 한 상업 갤러리. 바다 풍경을 그린 그림과 정물화가 여러 스타일로 있었다. 갤러리 주인은 구석에서 기타를 치다 눈인사를 하고 다시 연주에 몰두한다. 그림 옆에는 가격이 적혀 있어 혼자서도 편하게 작품을 고를 수 있었다. 도상봉 작가(1902~1977)를 연상케 하는 정물화가 눈에 띄었다. 영국 작가 게리 롱(74)의 작품으로 가격은 액자를 포함해 750파운드(약 117만 원). 프린트를 판매하는 ‘휘슬피시’에서는 이대원 작가(1921~2005) 스타일의 화려한 풍경화가 150파운드(약 23만5000원)였다. 도상봉 이대원 작가와 갤러리의 작품들은 모두 인상파 기법에서 출발해 조형성을 추구했다. 그런데 국내 작가의 작품은 학력 등에 따라 가격이 뛴 반면 영국 작가 작품은 장식성에만 충실하기에 ‘착한 가격’을 매긴 것이 눈에 띄었다. 인구 2000여 명에 불과한 어촌 패드스토우에도 골목마다 10여 개의 갤러리가 있었다. 몇 만 원 혹은 수십 만 원대부터 수천만 원 대의 작품을 취급하는 갤러리까지, 다양한 타깃 고객을 대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뱅크시, 데이미언 허스트의 판화를 취급한 드랭 갤러리 관계자는 “고객 대부분은 휴가철 별장을 찾는 외지인”이라며 “여유롭게 쉬면서 넉넉해진 마음을 겨냥해 작품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갤러리를 유지하려면 매년 최소 수억 원치는 판매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 갤러리는 8년 간 운영됐다. 다른 갤러리의 역사도 짧게는 5년에서 25년까지 다양했다. 상당한 규모의 고객이 있어 시장이 활성화된다는 의미였다. ●예비 컬렉터 키우는 구조 세인트 아이브스는 ‘예술촌’(Art Colony)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 때 런던을 제외하고 예술가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다. 1928년 어부 화가 알프레드 월리스에 반해 벤 니콜슨이 이곳에 정착했다. 그 후 조각가 바바라 헵워스, 나움 가보는 물론 화가 마크 로스코, 피에트 몬드리안,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도 이곳을 찾았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생겨난 갤러리들은 영국의 미술 시장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뉜다. △예비 작가의 저가 작품(5만~45만 원) △숙련된 작가의 상업 작품(50만~200만 원) △상업과 파인아트의 경계에 있는 작품(150만~800만 원) △국내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1000만~수억 원 대) △세계 미술사에 편입된 작품(수억~수백억 원 이상)이다. 이 암묵적 기준에 따라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시장에 막 진입한 작가의 작품은 첫 번째 단계로 재료비의 7~10배 수준의 가격을 형성한다. 이후 상업적 인정을 받으면 조형성과 인지도에 따라 가격이 올라간다. 그 다음 미술사적, 미학적,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역량에 따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 지역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은 잠재적 컬렉터 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저렴한 작품을 구매해보고,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같은 공공 미술관에서 세계적 작품들을 보면서 안목을 키운다. 초보 구매자가 성장해 여력이 되면 좋은 작품을 후원하는 컬렉터가 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타깃과 안목 필요한 한국 시장 한국과 콘월의 결정적 차이는 두 가지였다. 작가는 작품을 구매해 줄 ‘타깃’을 인식하고 컬렉터는 ‘안목’을 키워나간다는 점이었다. 세인트 아이브스의 예술가 7명으로 구성된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아트 스페이스 갤러리’는 20년 동안 지속됐다. 소속 작가가 매일 돌아가며 갤러리를 지키고 작품을 판매한다. 바다 풍경을 그린 저렴한 장식 작품 위주였다. 기자가 찾은 4일은 비수기였음에도 이날 벌써 그림 5점이 팔렸다고 했다. 갤러리 설립자 중 한 명인 헬렌 앳킨스는 “작가가 가격을 정하지만 잘 팔리지 않을 때는 경험을 기반으로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초보 작가라도 유명 학교를 졸업하거나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면 작품 가격이 수백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가격은 불투명한 과정을 통해 책정되기에 시기에 따라 급등락 한다. 고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것은 예술을 상업화하는 것으로 여겨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작가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작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초보 관람객에게는 난해하게 여겨지는 작품이 많다. 관람객의 안목을 키울 초기 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다. 콘월에는 고객의 기호를 바탕으로 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통해 가격이 조절되는 살아있는 시장이 있었다. 세인트아이브스·패드스토우·펜잔스=김민기자 kimmin@donga.com}

국내 미술 시장의 ‘인기 작가 잔혹사’에서 김환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김환기 화백(1913∼1974)의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가 한국 미술품 경매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작품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800만 홍콩달러(약 131억8570만 원)에 낙찰됐다. 미술계 반응은 엇갈렸다. “작품 가격은 국가 경쟁력”이라며 환영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가격이 정말 타당한가”, “국내용 가격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국내용 가격’이라는 표현을 인식한 듯 크리스티코리아 측은 “구매자가 서양인”이라고 귀띔했다. ‘국내용 가격’이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왜 피해야 하는 표현으로 여겨지는 걸까?○ 국내 시장 ‘인기 작가’ 잔혹사 ‘국내용 가격’이 금기어처럼 된 것은 한국 미술 시장의 최근 수십 년간 흐름과 연관이 있다. 그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기 작가가 배출됐지만 4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이 ‘잊혀진 사람’이 됐다. 이 때문에 국내용 가격은 미술계에서 은연중에 ‘거품’ 혹은 ‘신뢰할 수 없는 가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1970년대 인기 작가였던 최영림 화백(1916∼1985)이 한 예다. 물감에 흙을 섞어 만든 투박한 마티에르와 한복을 입고 있는 인물을 표현한 그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여겨져 인기리에 팔렸다. 당시 작품은 호당 30만 원을 호가했다. 1972년 5급 공무원(현재 9급에 해당) 1호봉 월급이 1만7300원, 잠실 시영아파트 분양가가 230만∼250만 원이었다. 통상 거래되는 10호 작품 가격이 300만 원이니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인 셈이었다. 그런데 올해 7월 최 화백의 10호 작품은 케이옥션에서 900만 원에 거래됐다. 숫자만 보면 가격이 3배로 오른 것 같지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가격은 폭락했다. 올해 9급 공무원 1호봉은 월 196만 원. 47년 전에 비해 약 113배로 올랐다. 공무원 월급을 기준으로 할 때 최 화백의 작품도 적어도 3억4000만 원에는 거래가 되어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최 화백만 해당되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미술협회장, 홍익대학장을 지내며 최고 권위와 인기를 누렸던 이마동 화백(1906∼1981)도 이제는 잊혀진 사람이 됐다. 이 화백의 10호 작품도 4월 케이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300만 원에 거래됐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해 온 요소에 문제가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 한국, 감흥 바탕으로 한 감정적 가치 우선 어떤 작품은 10만 원에도 겨우 팔리는가 하면, 다른 작품은 100만∼1000만 원에 판매된다. 혹은 수백억 원을 주고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화가의 손이 만드는 기교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인이 작품의 가격을 결정한다. 국제 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가격은 미술사적 가치, 미학적 가치, 사회적 가치, 미디어적 가치, 조형적 가치, 감정적 가치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은 미술사적 가치다. 흔히 뉴스로 접하는 ‘초고가’ 작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이 요인이기도 하다. 미술사적 가치란 말 그대로 역사에 남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가, 입체파 작가 피카소처럼 시대의 중요한 맥락을 담고, 후대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작품들은 좋은 고전 문학처럼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기 때문에 갈수록 가격이 더 높아진다. 그 다음으로는 미학적 가치, 사회적 가치, 미디어적 가치, 조형적 가치가 작품에 따라 여러 비중으로 작용한다. 미학적 가치를 지닌 대표적 작품은 1960년대 미국의 미니멀리즘 예술이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저서를 출간했을 정도로 미학적 기반이 뚜렷했다. 특히 당시 새롭게 부상한 현상학의 흐름과 맞물린 작품들로 가치를 인정받고 미술사에 편입됐다. 사회적 가치는 작품이 속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지를, 조형적 가치는 작품 자체의 기교와 조형 언어를 의미한다. 미디어적 가치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상어 설치작품이나 빈센트 반 고흐의 ‘불운한 예술가상’처럼 대중에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춘 것을 말한다. 감정적 가치는 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가격 결정 요소다. 보는 사람의 일시적 감흥으로 매겨지는 것이 바로 감정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는 이 감정적 가치에 속하는 ‘향수적 가치’가 주요하게 작용해왔다. 이 향수적 가치의 작용을 김환기 화백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향수적 가치’의 계보 김환기는 ‘한국인 추상 미술가’로 볼 수 있다. 그는 1913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중학교와 도쿄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를 졸업했다. 이때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는 프랑스 파리에서, 1963년부터 11년 동안은 미국 뉴욕에 머물렀다. 그리고 1974년, 생을 마감했다. 작품은 구체적 형상을 단순화해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는 195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 영국의 벤 니컬슨 등 모더니즘 화가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 특히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 도자기(백자)나 달, 산과 여인 등의 소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소재들은 추상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향수적 가치에 가깝다. 김환기 작품의 ‘향수적 가치’는 박수근과 이중섭이 그 계보를 이어왔다. 말 그대로 ‘어릴 적 내 고향’, ‘어려웠던 그 시절’처럼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특정 세대에게 어필하는 가치가 바로 향수적 가치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빨래터나 질박한 풍경, 그리고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에서 그려진 ‘예술가’의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이중섭 화백의 ‘황소’도 막연한 한국적 가치로 인정을 받았다. 향수적 가치는 두 가지 이유로 국제적 경쟁력을 획득하기 힘들다. 첫 번째는 향수가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한정된 지역 안에서도 정서는 시간에 따라 변덕스럽게 변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인기 작가의 작품도 가치의 하락세를 걷는다. 박수근, 이중섭은 워낙 대중적으로도 유명하고 남긴 작품이 많지 않아 여전히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빨래터’나 ‘황소’를 한국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그것이 유지될지는 냉정하게 지켜봐야 한다. 최영림 화백과 이마동 화백의 작품도 이들과 유사한 향수적 가치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가치는 시대적 흐름과 국내 미술 시장의 개방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을 기점으로 해외 미술이 급격하게 수입된 것도 연관이 있다. 국내 미술 시장에 해외 작품이 유입되며 점차 ‘국내용 가격’이 통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학력이나 인맥이 국내 미술 시장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젊은 컬렉터들은 온라인을 통해 국제 미술계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본다. 이런 상황에서 작품 외적 가치 기준은 장기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환기 ‘우주’의 가격, 132억 원은 시간이 지나도 유지될 수 있을까? 한국 미술 시장의 경쟁력과 신뢰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주’가 담고 있는 가치가 국제적 미술사 흐름과 맞물린 한국 미술사적 가치나 미학적 가치,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연결고리를 맺어야 할 것이다. 만약 작품의 가치가 ‘향수적 가치’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국경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뉴욕의 한 딜러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지만 김환기 화백의 작품에서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특히 애돌프 고틀리브의 영향이 보인다. 그런데 고틀리브보다 늦은 시기에 작업한 작품에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당신의 걱정을 이곳에서 씻어버리세요!’(‘론드리 프로젝트’ 홍보 문구) 세상은 넓고 이런저런 카페도 많다. 한때 ‘사주·타로 카페’가 유행하더니 요즘은 목욕탕을 개조한 카페도 인기 있다. 최근에는 빨래가 커피를 만났다. ‘세탁 카페’가 서울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흔히 찾던 동네 세탁소가 아니라 ‘동전 빨래방’과 카페를 합친 형태다.○ 서구식 ‘코인 워시’ 감성 세탁기 드럼이 도는 소리는 백색 소음처럼 흘러나온다. 실내에는 포근하고 향긋한 세제 냄새까지 솔솔 퍼진다. 이국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른바 ‘코인 워시’(동전 빨래방)는 최근 새롭게 생겨난 풍경이다. 세탁 카페의 다른 이름, ‘코인 워시’를 찾는 사람들은 의류 청결보다는 공간의 감성에 매료된 듯하다. 서구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분위기도 한몫했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한눈팔다 우연히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상투적 장면 말이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1999년). 화자(에드워드 노턴)가 마를라(헬레나 보넘 카터)를 처음 만나는 곳이 코인 워시다. 마를라가 다른 사람의 빨래를 훔치는 모습을 보고 화자는 묘한 기운을 느낀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2017년)에서는 색색의 빨래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가운데 베이비(앤설 엘고트)와 데보라(릴리 제임스)가 함께 음악을 들으며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서울의 세탁 카페들은 공간 연출에 힘을 쏟는다. 그러다 보니 국내 상업 영상의 촬영 장소로도 앞다퉈 쓰이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선데이런드리’는 빈티지한 느낌을 살렸고, 대형 세탁기를 비치한 공간은 텔레비전 CF 촬영 장소로 사용됐다. 올해 1월 문을 연 ‘솝셰이크(SSML)’는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쓰였다. 솝셰이크를 운영하는 이상민 씨(40)는 “남자친구의 옷을 마지막으로 세탁하며 마음을 씻어낸다는 내용의 이별 노래였다”며 “주부가 오후 8, 9시쯤 와서 빨래를 돌려놓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순간이 ‘코인 워시’의 감성인 것 같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시대, ‘만남의 장소’로도 각광 서울에서 이런 유행을 선도한 곳은 용산구 해방촌에서 2015년 시작한 ‘론드리 프로젝트’다. 2017년에는 마포구에 분점 ‘워시타운’도 열었다. 여느 이색 카페들은 반짝 유행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일쑤지만 이곳은 단골이 생기며 꾸준히 유지된다. 두 공간을 기획한 이현덕 로그램 대표(33)는 처음부터 사람들의 만남 자체를 중심 콘텐츠로 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배달 음식처럼 세탁에도 모바일 앱 서비스가 등장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비대면’이 정말 싫거든요. 어차피 빨래는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건데, 그 시간에 사람도 만나면 좋은 콘텐츠가 될 거라 생각했죠.” 이 대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CJ E&M(현 CJ ENM)에서 무대디자인을 한 독특한 경력이 도움이 됐다. 건축 분야를 경험한 덕에 공용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무대디자인 이력은 감각적인 공간 연출에 활용했다. 그는 “공간만 있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끼리 교류가 잘 이뤄질까 반신반의했는데 ‘론드리 프로젝트’를 통해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1인 가구가 밀집한 해방촌엔 좁은 원룸이 특히 많다. 제대로 된 세탁실도 없는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세탁 카페를 공용 거실처럼 쓰기 시작했다. 빨래를 돌리며 자기 일도 하고 마음 맞는 이웃과 같이 일도 하게 됐다. 음악가가 여기서 우연히 디자이너를 만나 앨범 표지 작업을 의뢰한다. 각자 시나리오를 쓰던 영화인들이 자연스레 관계를 맺는다. 과거의 다방과 같은 역할이 빨래를 매개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빨래방의 수익에서 커피 판매의 비중이 세탁비의 두 배를 넘길 때도 있다고 한다. 세탁 카페가 인기를 끌자 최근에는 자판기까지 동원된다. 일반적인 동전 빨래방에 커피 자동판매기를 들여놓고 ‘카페’라고 이름 붙이는 곳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1인 가구에 편의점이 ‘대형 냉장고’ 역할을 하듯, 세탁 카페는 내가 찾고 싶은 아늑한 세탁실이 돼야 해요. 멍도 때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하는 공간을 찾고 싶은 게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이현덕 대표)김민 kimmin@donga.com·임희윤 기자}

‘당신의 걱정을 이곳에서 씻어버리세요!’(‘론드리 프로젝트’ 홍보 문구) 세상은 넓고 이런저런 카페도 많다. 한때 ‘사주·타로 카페’가 유행하더니 요즘은 목욕탕을 개조한 카페도 인기다. 최근에는 빨래가 커피를 만났다. ‘세탁 카페’가 서울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흔히 찾던 동네 세탁소가 아니라 ‘동전 빨래방’과 카페를 합친 형태다.●서구식 ‘코인 워시’ 감성 세탁기 드럼이 도는 소리는 백색 소음처럼 흘러나온다. 실내에는 포근하고 향긋한 세제 냄새까지 솔솔 퍼진다. 이국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른바 ‘코인 워시’(동전 빨래방)는 최근 새롭게 생겨난 풍경이다. 세탁 카페의 다른 이름, ‘코인 워시’를 찾는 사람들은 의류 청결보다 공간의 감성에 매료된 듯하다. 서구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분위기도 한 몫 했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한 눈 팔다 우연히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상투적 장면 말이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1999년). 화자(에드워드 노튼)가 마를라(헬레나 본헴 카터)를 처음 만나는 곳이 코인 워시다. 마를라가 다른 사람의 빨래를 훔치는 모습을 보고 화자는 묘한 기운을 느낀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2017년)에서는 색색의 빨래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가운데 베이비(안셀 엘고트)와 데보라(릴리 제임스)가 함께 음악을 들으며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서울의 세탁 카페들은 공간 연출에 힘을 쏟는다. 그러다 보니 국내 상업 영상의 촬영 장소로도 앞 다퉈 쓰이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선데이런드리’는 빈티지한 느낌을 살렸고, 대형 세탁기를 비치한 공간은 텔레비전 CF 촬영 장소로 사용됐다. 올해 1월 문을 연 ‘솝셰이크(SSML)’는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쓰였다. 솝셰이크를 운영하는 이상민 씨(40)는 “남자친구의 옷을 마지막으로 세탁하며 마음을 씻어낸다는 내용의 이별 노래였다”며 “주부가 오후 8, 9시쯤 와서 빨래를 돌려놓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순간이 ‘코인 워시’의 감성인 것 같다”고 말했다.●1인 가구 시대, ‘만남의 장소’로도 각광 서울에서 이런 유행을 선도한 곳은 용산구 해방촌에서 2015년 시작한 ‘론드리 프로젝트’다. 2017년에는 마포구에 분점 ‘워시타운’도 열었다. 여느 이색 카페들은 반짝 유행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일쑤지만 이곳은 단골이 생기며 꾸준히 유지된다. 두 공간을 기획한 이현덕 로그램 대표(33)는 처음부터 사람들의 만남 자체를 중심 콘텐츠로 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배달 음식처럼 세탁에도 모바일 앱 서비스가 등장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비대면’이 정말 싫거든요. 어차피 빨래는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건데, 그 시간에 사람도 만나면 좋은 콘텐츠가 될 거라 생각했죠.” 이 대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CJ E&M(현 CJ ENM)에서 무대디자인을 한 독특한 경력이 도움이 됐다. 건축 분야를 경험한 덕에 공용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무대 디자인 이력은 감각적인 공간 연출에 활용했다. 그는 “공간만 있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끼리 교류가 잘 이뤄질까 반신반의했는데 ‘론드리 프로젝트’를 통해 그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1인 가구가 밀집한 해방촌엔 좁은 원룸이 특히 많다. 제대로 된 세탁실도 없는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세탁 카페를 공용 거실처럼 쓰기 시작했다. 빨래를 돌리며 자기 일도 하고 마음 맞는 이웃과 같이 일도 하게 됐다. 음악가가 여기서 우연히 디자이너를 만나 앨범 표지 작업을 의뢰한다. 각자 시나리오를 쓰던 영화인들이 자연스레 관계를 맺는다. 과거의 다방과 같은 역할이 빨래를 매개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빨래방의 수익에서 커피 판매의 비중이 세탁비의 두 배를 넘길 때도 있다고 한다. 세탁 카페가 인기를 끌자 최근에는 자판기까지 동원된다. 일반적인 동전 빨래방에 커피 자동판매기를 들여놓고 ‘카페’라고 이름 붙이는 곳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1인 가구에게 편의점이 ‘대형 냉장고’의 역할을 하듯, 세탁 카페는 내가 찾고 싶은 아늑한 세탁실이 돼야 해요. 멍도 때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하는 공간을 찾고 싶은 게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이현덕 대표) 김민 기자 kimmin@donga.com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어릴 적 항상 물이 고여 있던 웅덩이가 갑자기 흙으로 메워진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학교가 끝나고 귀가하는 길이면 늘 그 속에 떠다니는 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했다. 살아서 꿈틀대던 공간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매끄러운 아스팔트와 순식간에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도시에서 ‘물’이란 성가신 존재다. 어느 순간부터 비가 오면 기쁨보다 귀찮음이 앞서고, 우산을 쓰고 피하기 바쁘다. 도시에서 물은 인간의 존재에 따라 이용되고 치워지는 소비재로 여겨지곤 한다. 표지 그림이 반쯤 물에 잠겨 있는 이 축축한 책은 때로 더럽고 음침하게 여겨지는 습지를 예찬한다. ‘습한 땅’을 뜻하는 습지는 말 그대로 ‘젖은 땅’, 물이면서 동시에 뭍인 곳이다. 흔히 지구가 육지와 바다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그 중간 지대가 바로 습지다. 지구 표면적의 6%를 차지하는 습지는 10만 종에 달하는 생명의 서식지다. 이 습지의 매력을 저자는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다. 주인공은 영상 작품을 만드는 ‘나’.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의 내용이 교차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도시에서 권태로운 삶을 되풀이하던 ‘나’는 부업으로 생태통로에 관한 영상을 만들게 된다. 처음에는 이 일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팟캐스트를 들으며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고 이를 창작의 동력으로 삼아 영상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간접적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서서히 습지의 중요성을 설득해간다. ‘각 잡은’ 과학서라면 귀 기울이지 않을 독자를 향한 노력이 눈물겹다. 그 나직한 속삭임을 들으며, 페이지 곳곳에 삽입된 아름다운 습지 사진들을 보다 보면 맨발로 축축한 진흙을 밟아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 바로 아래에 있는 동판저수지는 언젠가 꼭 가볼 생각이다. 마지막 무대에 등장하는 습지에 관한 여러 예술 작품도 인상 깊다. 스스로를 ‘습지주의자’라고 칭할 만한 저자의 ‘덕력’을 느낄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목받았던 안창홍 작가(66)의 개인전 ‘이름도 없는’이 경남 창원시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다. 미술관은 매년 지역 출신 작가를 집중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지역작가 조명전’을 개최하고 있다. 안 작가는 경남 밀양 출신이다. 안 작가는 미술대학을 다니지 않고 작품 활동을 통해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해왔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가족사진’,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성 상실 문제를 다룬 ‘위험한 놀이’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새’ 연작을 발표하고 미술집단 ‘현실과 발언’에도 참여했다. 이 때문에 민중미술 작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이후 작가는 개인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2000년대에 빛바랜 사진을 재료로 한 ‘49인의 카우치’, 주변 인물을 섭외해 그린 ‘베드 카우치’ 등 연작으로 개인의 역사로 사회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형 입체 작품을 새롭게 선보인다. 전시 제목 ‘이름도 없는’은 40여 년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과 역사 속에 희생되어 사라진 이들을 의미한다. 다음 달 4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배우 유아인(33)이 8일 ‘뜬금없이’ e메일을 보내왔다. “저는 배우 유아인으로 활동 중인 엄홍식입니다”로 시작한 편지는, 그가 설립한 창작집단 ‘스튜디오콘크리트’의 새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엄홍식은 유아인의 본명이다. ‘1111’ 프로젝트의 출발은 예술을 물물교환으로 거래하는 ‘페어아트 1111’이다. 스튜디오콘크리트에 전시한 권철화 작가의 작품 등이 거래 대상. 입찰자는 돈이 아닌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내놓고, 그 가치가 서로 통하면 거래가 이뤄진다. 내년 1월 1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할 예정인 물품에는 유아인의 부동산도 포함됐다. 집을 내놓으면서까지 ‘일을 벌이는’ 이유가 뭘까? 21일 서울 용산구 스튜디오콘크리트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 검은 모자를 쓰고 나타난 그가 “프로젝트가 어떠냐”고 물었다. ‘녹음을 해도 되냐’고 묻자 좋다고 답하더니, 자신도 스마트폰을 슬쩍 기자 앞에 내밀었다. 이날 인터뷰를 프로젝트 영상에도 사용하겠단다. “매번 인터뷰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저도 인터뷰어가 되니 신나네요.” 프로젝트에 대한 감상이 몇 차례 오가자 유아인은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솔직하고 대담하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초(超)가치’ 예술 실험이라 소개했어요. “경제적 금전적 가치가 아닌 절대적 가치를 ‘초가치’라고 해요. 제가 무슨 옷을 입는지 돈은 얼마나 버는지, 이런 것은 ‘초가치’가 아니죠. ‘나의 인간성, 나의 변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집까지 내놓았다니 놀랍습니다. “과거에는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 집 마련은 도와드렸지만, ‘내 집 장만’은 5년 전이 생애 처음이었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게 결국 ‘내 집 갖기’잖아요. 그런데 좋은 집에 편안하게 살지만, 삶의 불안과 의심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또 경제활동은 계속할 거니까….” ―‘부동산’이 물물교환 대상이 될 수 있나요. “구체적인 건 변호사와 상의 중이에요. 집을 공공 미술관이나 마을회관으로 전환시킨다든지 하는 가능한 방법을 찾고 있죠. 다만 누구나 선망하는 ‘부동산’이 주는 느낌을 파괴하고 싶었어요. 이걸 재료로 흥미로운 논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요. “세상은 맘에 들건 말건, 생긴 그대로일 뿐이에요. 바꾸고 싶은 건 저 자신이죠. 세상이 게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누군가 이겨야만 하고 패배자가 생기고, 그 과정이 반복되지만 완전한 승리는 없잖아요. 그런 판을 깰 순 없지만 새로운 판을 실험해볼 순 있죠. 여기서 몰랐던 나의 가치를 발견한다면 그 자체로 흥미로운 판 아닐까요?”―굳이 안 해도 될 ‘모험’을 하는 건 아닌가요. “다들 ‘뻘짓’ ‘딴짓’ 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과연 ‘본업’이란 게 뭘까요. 사회적 일과 개인의 일에 경중은 없다고 봐요. 제 행동이 ‘헛짓거리’라고 끊임없이 폄하되지만, 나를 던지고 피드백을 얻고 이해를 넓혀가는 것. 그게 결국 나의 삶을 사는 일이죠.” ―스스로 폄하 당했다고 느낍니까. “길에서 손가락질 당한 정도까진 아니죠. 그러나 가슴 아프게 세상을 떠난 (연예계) 친구들이 많은데, 그렇게 된 데에는 온라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너무 방관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극성스러운 의견이 세상을 농단하잖아요. 그래서 전 계속 참여해요. 배우가 댓글 쓰면 왜 안 돼? 나는 휴대전화 없나? 전 실명으로 쓰거든요. 익명성에 숨지 말고 부당한 일에는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연예인은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않나요. “다들 자기 멋에 사는 거죠. 그런데 ‘왜 유난을 떠냐’고 물으면 ‘그게 멋있어서’라고 답할 거예요. 우리가 멋있다 생각했던, 사업을 일으키고 환호받는 스타들이 뒤에서 어떤 짓거리를 하는지 낱낱이 봤잖아요. 일반화는 아니지만 그런 삶이 멋있진 않아요.” ―배우의 길이 그렇다고 느끼나요. “배우로서 제 삶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선망하는 배우의 모습은 아니죠. 때로는 배우의 일이 나의 몸뚱이와 그것이 빚은 환상을 파는 일처럼 느껴져요. 다들 내숭떨지 말라고 하세요. 최고의 자극을 주려는 게, 결국은 ‘섹스’를 파는 행위죠. 노출을 하거나 성적 이미지를 자아내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가운데 프로젝트가 큰 자존감을 줬어요. 자존감이 항상 떨어졌거든요.” ―왜 자존감이 떨어졌나요. “진실되게 일하는지 의구심이 있었어요. 주변에선 밖에 나갈 땐 가면 쓰고, 집에 돌아오면 ‘캅사이신’ 먹으면서 뿅 가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이런 식으로 균형을 맞춰요. 그게 아니라 자신을 실험하는 거죠. 사람들이 ‘잠은 언제 자나’ ‘일은 방해되지 않냐’며 놀라요. 여전히 고민은 있지만, 훨씬 더 살아있다 느끼는 건 확실해요.” ―‘페어아트 1111’을 미술계도 공감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만든 판이니 어떨지는 모르죠. 다만 스튜디오를 만든 뒤에 유아인이라는 ‘치트키’를 활용해 높은 위치에 있는 예술인이나 행정가들을 만났는데, 그때 환멸을 느꼈어요. 작가의 가치를 위해 그들과 교분을 맺고, 평론가에게 알랑방귀 뀌고 이런 행위가 재미없어요.” ―유아인에게 예술이란 뭡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 존재의 본질을 따지며 자연스레 예술을 만났습니다. 나는 기계로 태어난 인간인가, ‘버닝’되어야 하는가 고민했죠. 내 삶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시작해서, 제가 느끼고 소화한 예술을 소개하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 1111’입니다.”유아인은 현재 영화 ‘Alone(가제)’ 의 지방 촬영 중이다. 이날도 어렵게 하루를 짬 내어 인터뷰에 응했다. 다음 날 다시 내려간다며 “‘물건 팔기 위해서가 아닌’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했다. “저를 멋있게 써줄 필요 없어요. ‘1111’을 통해 사람들이 예술과 가까워졌으면 좋겠어요. 그 부분만 잘 드러나게 해주세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잿빛 천이 전시장 벽 한쪽을 가득 메운다. 높이 4m, 폭 9m의 거대한 리넨의 한가운데에 깊숙한 터널이 있다. 무채색 화면 중앙의 붉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이 사람들을 향해 총알이 직선을 그리며 퍼붓는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이 작품은 서용선 작가(68)의 신작 ‘노근리’다. 경기 파주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서용선 개인전 ‘통증, 징후, 증세: 서용선의 역사 그리기’가 열리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6·25전쟁을 중심으로 분단의 현실과 촛불집회, 대통령 탄핵 등 최근 사건까지 다룬 작가의 신작 회화와 드로잉, 설치 작품 등 10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단종의 죽음부터 시작해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등 역사적 사건 속 비극을 다뤄왔다. 이번 작품들은 특히 6·25전쟁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작가 개인에게 가장 밀접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쟁 직후 서울에서 태어나 미아리 정릉 등지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미아리 공동묘지가 철거된 자리에 세워진 것이었다. 당시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미아리 공동묘지가 포화상태가 되자 망우리로 묘지 이전이 진행됐다. 미아리에 살았던 작가는 어린 나이에 그 과정을 모두 봤다고 한다. 운동장 한쪽에 뼈들이 쌓인 상황에서 수업을 하고, 학교 앞 산을 덮었던 어마어마한 공동묘지가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포츠담회담’ ‘포로’ 등 대작을 통해 작가는 문자로 기록되지 않는 인간의 감정과 역사의 맥락을 담아낸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세대 간 격차, 지역 갈등 등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실마리가 6·25전쟁에 있다는 목소리도 느껴진다. 전시장 3층에서 볼 수 있는 ‘제3의 선택, 김명복’은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한 달 만에 포로로 잡혀, 제3국을 선택해 브라질에서 60여 년을 산 김명복 씨의 초상을 담는다. 전시는 12월 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추상미술 작가 김환기(1913∼1974)의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사진)가 한국 미술품 경매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23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우주’가 8800만 홍콩달러(약 131억8750만 원)에 낙찰됐다. 구매 수수료를 포함한 가격은 약 153억4930만 원. 낙찰가 기준 한국 미술품이 경매에서 100억 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20세기&동시대 미술’ 이브닝 경매 하이라이트 작품 중 하나로 출품된 ‘우주’는 4000만 홍콩달러(약 60억 원)로 출발했다. 크리스티코리아에 따르면 10분여간 현장 응찰과 전화 응찰을 통해 33번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최종 낙찰자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전화 응찰자였다. 푸른색을 띠는 캔버스 전면이 점화로 이뤄진 ‘우주’는 1971년 작품으로, 가로세로 127×254cm 크기의 그림 두 점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김환기가 말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자연의 본질을 담아내려고 한 그의 예술사상과 미학의 집성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의 후원자이자 주치의였던 의학박사 김마태 씨(91) 부부가 1971년 구매해 50년 가까이 소장하고 있었다. 경매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최고가는 김환기가 1972년 그린 붉은색 전면 점화 ‘3-II-72 #220’으로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낙찰가 6200만 홍콩달러(약 85억3000만 원)에 팔렸다.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1∼10위 가운데 이중섭의 ‘소’(9위)를 제외하면 모두 김환기의 작품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추상미술 작가 김환기(1913~1974)의 작품 ‘우주(Universe 5-IV-71 #200)’가 한국 미술품 경매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23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우주’가 약 131억 8750만 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구매 수수료를 포함한 가격은 약 153억4930만 원. 낙찰가 기준 한국 미술품이 경매에서 100억 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20세기&동시대 미술’ 이브닝 경매 하이라이트 작품 중 하나로 출품된 ‘우주’는 약 60억 원(4000만 홍콩달러)으로 출발했다. 크리스티 코리아에 따르면 약 10여 분 간 현장 응찰과 전화 응찰을 통해 33번의 경합이 벌어졌다. 최종 낙찰자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전화 응찰자였다. 푸른색조의 캔버스 전면이 점화로 이뤄진 ‘우주’는 1971년 작품으로, 254X127㎝ 그림 두 점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작가의 후원자이자 주치의였던 의학박사 김마태 씨(91) 부부가 1971년 구매해 40년 넘게 소장하고 있었다. 이전 최고가는 김환기가 1972년 그린 붉은색 전면점화 ‘3-II-72 #220’로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낙찰가 85억3000만 원(6200만 홍콩달러)에 팔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고 위대한 성취, 제국의 영광만을 느낀다면 그 눈은 반쪽짜리에 그칠지도 모른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살생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장소다. 경기장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이 25만∼50만 명에 이르며, 동물도 수백만 마리가 죽었다. 경기장에서 멸종된 동물도 있다. 로마인들은 이 원형 경기장에 가는 것을 통과의례이자 가족 나들이로 여겼다. 거부감이 큰 사람도 일단 가면 ‘스릴’에 중독됐다. 검투사가 상대를 찔러 피가 솟구치면 내기에서 이긴 관중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전쟁에서의 승리와 강한 자가 왕이 되는 과정, 그간 로마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여겨진 것들이다. 기존 역사 서술이 로마 제국이 유럽 대륙에서 얼마나 멀리 뻗어나갔는지를 관찰했다면, 이 책은 로마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리고 3000년 역사 속에서 이 도시가 침략당하고 패배한 7번의 순간을 조명한다. ‘폭력을 겪을 때 진실이 드러난다’는 말처럼, 패배의 순간 앞에 로마의 민낯이 드러난다. 강인한 로마는 기원전 387년 갈리아인에게 당한 처절한 침략에서 시작됐다. 말과 전차를 타고 끔찍한 살육을 저지르는 갈리아인의 모습에 당시 로마인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모든 것을 빼앗긴 트라우마를 겪은 로마는 무방비 상태였던 성벽을 세우고 군대를 보강하며 ‘합리성’을 모색해갔다. 그러나 408년 서고트인, 537년 동고트인의 침략은 희생자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끔찍한 참상을 낳았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침략은 로마의 교황과 황제의 권력 다툼에서 일어났다. 1084년 노르만군이 성벽을 뚫고 4일 만에 도시 곳곳을 불바다로 만들고, 1527년에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 황제가 클레멘스 7세 교황을 공격하려 로마를 침략한다. 에스파냐군과 독일 용병 1만 군이 쇄도해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을 일삼아 “로마에 비하면 지옥도 아름답다”는 기록이 남았다고 한다. 마지막 두 번의 침략은 교황을 지지하는 루이 나폴레옹 프랑스 대군의 침략(1849년)과 독일 나치군의 침략(1943년)이다. 당시 이탈리아가 연합군과 휴전 협정을 맺고 무솔리니를 체포하자, 독일군이 전선에서 철군해 우방의 수도인 로마를 점령했던 사건이다. 독일군은 로마 유대인과 파르티잔 활동에 대한 보복성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나 이 기간 평범한 많은 로마 시민들은 파시스트 정부나 나치군, 연합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은 채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도 유대인을 숨겨주는 등 점령군에 대항했다. 영국인인 저자는 도시에 겹겹이 쌓인 역사의 흔적에 매료돼 16년째 로마에 살고 있다. 기나긴 도시의 역사를 흥미롭게 다룰 방법을 고민하다 ‘패배’에 집중했다. 일상에서 결정적 순간을 읽어내는 문학적 통찰도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저자의 소설 ‘English Passengers(2000년·국내 미출간)’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꾸준히 소설을 발표한 문학가이기도 하다. 다만 40페이지가 넘는 출처와 참고문헌이 보여주듯,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료에 바탕을 둔 역사서다. 저자는 마지막에서야 “여전히 로마 곳곳에 파시즘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테러 위협에 파스타를 준비하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시민’들이 로마를 자랑스럽게 만든다고 애정을 표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1 Trous du c…(11개의 똥구멍…)’ 프랑스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 옆에 설치한 한 조각 작품이 현지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예술가 제프 쿤스(64·사진)가 파리시에 기증해 지난달 4일 공개한 ‘튤립 꽃다발’(Bouquet of Tulips). 높이 12m인 이 대형 조각은 튤립 풍선 11개를 쥔 손을 컬러풀하게 표현했다. 그런데 공개 직후 저명한 철학자 이브 미쇼로부터 “11색 똥구멍처럼 보이는 포르노 조각”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이달 7일 조각상 하부에 작품을 조롱하는 낯 뜨거운 그라피티(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까지 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 작가, 왜 파리에서 ‘밉상’이 되고 만 걸까.○ “기회주의적 간접 광고” ‘튤립…’은 2015년 파리 바타클랑극장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품이다. 당시 주프랑스 미국 대사였던 제인 하틀리가 쿤스에게 의뢰했다. 하지만 기증을 발표한 순간부터 논란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1월엔 프랑스 문화계 인사 24명이 반대 서한을 일간지인 ‘리베라시옹’에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는 프레데리크 미테랑 전 문화부 장관, 니콜라 부리오 몽펠리에 현대미술관장도 있다. 이들은 “기회주의적인 간접광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컸던 대목은 쿤스가 ‘아이디어’만을 기부하고, 제작 및 설치비용(약 47억 원)은 파리시가 부담한다는 점이었다. 로버트 루빈 전 퐁피두재단 이사장은 “독이 든 성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제작비용은 모금으로 충당됐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케네스 그리핀 등 쿤스의 컬렉터와 기업인들이 참여했다. 모든 파리 시민이 작품을 반대한 건 아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이 작품은 자유와 우정의 상징”이라 했다. 또 다른 문화계 인사들은 찬성 서한을 통해 “에펠 타워, 퐁피두센터까지 파리지앵은 역사적인 랜드마크를 나중에야 인정했다”고 꼬집었다.○ 논란 먹고 자란 ‘속 빈 강정’인가 쿤스를 향한 분노는 ‘파리지앵’ 특유의 까탈이라 봐야 할까. 그러나 그는 유명세만큼이나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튤립…’에 대한 비판도 그 연장선으로 읽히는 이유다. 일상품을 그대로 전시한 레디메이드, 거대한 풍선 조형물 등 쿤스의 대표작들은 마르셀 뒤샹의 개념미술과 앤디 워홀의 팝 아트가 혼합돼 있다. 돋보이는 것은 작품의 재질과 보존성. 쿤스는 1988년 유럽의 최고 장인들에게 의뢰해 만든 조각을 전시한 ‘Banality’ 전을 통해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직접 만들진 않지만, 산업적 공정을 통해 매끄럽고 반짝이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로 유명했다. 일각에선 쿤스의 ‘세일즈맨십’에 주목한다.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며 미술계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증권가에서 활약하며 미술계와도 인맥을 쌓은 뒤, 자신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쿤스는 영업적 재능을 활용해 컬렉터들의 ‘과시적 소비’를 부추겨 왔다는 평도 나온다. 반짝이는 한정판 작품들이 “비싸기로 유명해 더 비싸졌다”는 뜻이다. 논란이 극에 달한 것은 1991년 ‘Made in Heaven’을 발표했을 때다. 당시 부인이었던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와의 정사 장면을 표현한 조각이었다. 쿤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미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마이클 키멀먼은 “80년대 말 최악의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 혹평했다. 논란을 즐기는 작가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전적 탓에 ‘튤립…’ 또한 외설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쿤스의 작품 ‘토끼’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082억 원에 팔리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현재의 비평이 미래에도 유효하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파리의 갤러리스트 스테파니 코레아르는 이렇게 일갈했다. “가장 비싼 작품이 가장 좋은 작품은 아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통상적 명화전과는 다른 형태의 관람객이 출현했음을 확인했다.”(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올해 3∼8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37만5350명이 관람하며 화제를 모았다. 전시 막바지인 8월에는 오픈 전부터 미술관 밖에 줄이 늘어서는 풍경도 연출됐다. 그런데 한편에선 “호크니가 누구냐”며 생소해했다. 미술관 데이터를 통해 ‘호크니’전 관객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봤다. 일반적으로 명화전에는 학부모 관객이 몰린다. 그러나 ‘호크니’전에선 △호크니를 잘 알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의 ‘취향’을 추구하는 2030세대가 주류였다. 미술관은 5∼7월 전체 관람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해 이 중 유효 표본 1003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대(31.4%)와 30대(28.4%)가 가장 많았고 10대(16.7%), 40대(12.8%), 50대(7.6%), 60대 이상(3.2%) 순이었다. 방문 동기는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 취미’가 53.3%로 다수였으며 ‘현장학습, 단체관람, 학교 과제’는 10.5%에 그쳤다. 전시를 담당한 이승아 큐레이터는 “현장 모니터에서 중장년층도 상당수였는데 자녀가 티켓을 구매하거나 그룹으로 전시를 찾아 설문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입소문’이 유효하게 작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 미술관 측은 홍보 전략으로 활용되는 ‘인플루언서’를 한 명도 초청하지 않았다. 설문 결과에서도 ‘지인의 소개’(45.1%)로 전시를 찾았다는 응답의 비중이 높았다. 소셜미디어는 21.7%였다. ‘호크니’전 관객의 또 다른 특징은 ‘진지함’이다. 사전 정보를 알고 방문한 관람객이 78.8%, 이 중 ‘작가나 전시 주제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알고 방문했다’는 응답이 47.8%였다. 현장에서도 작가나 작품에 관한 문의가 많았고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끝까지 보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또 전시 기간 중간 무렵인 6월이 하루 평균 관객 2665명으로 가장 한산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의 미술잡지를 통해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미술을 읽다: 한국 미술잡지의 역사’전이 서울 종로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린다. 전시는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 100여 년 동안 창간된 미술 잡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에선 1917년 4월에 발간한 ‘미술과 공예’ 창간호, 1921년 ‘서화협회회보’ 1호와 북한에서 발간한 ‘미술’(1956년), ‘조선미술’(1958년) 등이 공개된다. ‘미술과 공예’는 국내 미술 잡지로는 처음 발행된 희귀본이다. 다만 일본인이 일본어로 편집, 발행했기 때문에 근대미술 연구자들은 ‘서화협회회보’를 첫 미술 잡지로 꼽는다. 전시 후반부는 미술잡지 특집 기사를 중심으로 국내 미술계 전개 과정을 재조명했다. 1983년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사퇴로 마무리됐던 ‘계간미술’ 봄호의 ‘일제 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 특집도 다시 볼 수 있다. 이 특집은 당시 이 전 관장을 포함한 전문가 설문을 통해 국내 미술계에 남은 일본의 영향과 친일 작품을 공개했다. 그러자 친일로 지목됐던 작가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격론이 일었고, 결국 이 전 관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내년 3월 7일까지. 홈페이지 참조.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달 20일은 국립현대미술관(MMCA)에 역사적인 날이었다. 1969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미술관을 개관하고 5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를 기념해 특별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가 덕수궁, 과천, 서울 등 3개 관에 걸쳐 대규모로 열리고 있다. ‘광장…’은 국내외 작가 290여 명의 작품 450여 점을 소개하는 초대형 전시다. 감각을 일깨우고, 초월적 경험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미술관을 “새로운 교회”라 비유한다. MMCA라는 공공미술관이 준비한 ‘광장…’은 이런 비유가 적절할 만큼 일반 관객에게까지 감동을 주는 전시일까. 동아일보는 지난달 27일 ‘미술계 밖’의 시민 3명과 함께 MMCA 과천 ‘광장’전을 감상했다.○ 도입부는 신선하지만, 광활한 주제가 혼란 ‘광장…’은 1900년부터 1950년대를 다루는 1부(덕수궁관)와 1950년대∼현재를 다룬 2부(과천관), 현 시대를 다루는 3부(서울관)로 나뉜다. 1부는 일제강점기를, 3부는 2017년 이후를 다루기에 2부가 한국 미술사의 핵심적 시기다. 전시를 관람한 이동규(32·변호사), 손호정(31·로봇 엔지니어), 주희원 씨(29·취업준비생)는 전시 관람 경험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다들 ‘주제가 너무 넓어 혼란스럽고, 설명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씨는 “각 시대 상황과 작품의 연결고리가 구체적이지 않아 집중이 어려웠다”며 “주제가 추상적이어서 기획자도 구성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고 말했다. 손 씨는 “과거와 동시대 작품의 병치나 역사적 애도를 담은 ‘하얀새’ 섹션은 좋았다”면서도 “타임라인 등 설명이 부족해 아쉽다”고 했다. 실은 이번 전시는 출발부터 추상적이었다.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의 서문에 따르면 ‘광장…’은 “회고가 아닌,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는” 전시다. 전체 전시를 관통하는 ‘광장’의 의미는 4·19혁명 등 현대사 주요 기점의 “울분, 애도, 축제, 환희의 각기 다른 결의 함성이 채운 공간”을 의미한다. 이를 기반으로 MMCA의 소장품을 선별해 구성했다. 전시 구성은 큐레이터의 선택이다. 그러나 해외 공공미술관의 흐름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영국 공공미술관인 테이트는 수년 전부터 작품 설명의 기준을 9세의 눈높이로 낮췄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구성을 지향한다. 또 국제 미술사의 흐름 사이에 자국 작가의 작품을 배치해 이해를 돕는다. 아직 미술사에 관한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국내 관객에게 이러한 배려는 더욱 필요하다. 주희원 씨는 “도입부 영상 작업과 ‘푸른사막’ 전시장의 동선은 재밌었지만 미술사를 알고 싶은 관객에겐 난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쇄본’ 논란까지… 내실 보완 절실 특히 1부 전시는 최근 일부 작품이 인쇄본임에도 표기가 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미술 애호가·저술가인 황정수 씨는 지난달 25일 전시품 중 한용운의 ‘수연시’와 오세창의 글씨 ‘정의인도’가 인쇄본임을 지적했다. MMCA 측은 소장가 확인 등 절차를 거쳐 뒤늦게 ‘복제본’ 표시를 부착했다. 황 씨는 추가로 민영환, 신규식의 작품은 위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MMCA 측은 두 작품의 진위를 다시 확인 중이다. 황 씨는 “국내 최고의 미술관인 MMCA의 기념비적 대규모 전시에 이런 의혹이 불거져 안타깝다”며 “전시 횟수를 줄여서라도 충분한 연구와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