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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사(America‘s Pastor)’로 불리며 20세기 개신교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것으로 평가받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사진)가 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세. AP통신은 암과 폐렴으로 투병하던 그레이엄 목사가 이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고 그의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70여 년간 개신교 복음주의의 리더로서 일반 신자들뿐 아니라 많은 미국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도맡았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들의 목사님’으로도 불린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선정하는 ‘가장 존경받는 인물’ 톱10에 1955년부터 2016년까지 총 60회 선정돼, 이 분야의 최고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1918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인근의 농촌에서 태어난 그레이엄은 1940년 플로리다 성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목사가 된 뒤 1947년부터 ‘크루세이드(Crusade)’라는 명칭의 전도운동을 벌였다. TV 라디오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설교를 벌였고 대형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대규모 집회를 통한 부흥회를 수시로 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레이엄의 핵심적 성과는 20세기 전반에 잠시 후퇴했던 복음주의 개신교가 다시 영향력을 드높일 수 있도록 고무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는 그레이엄 목사가 총 185개국에서 약 2억1500만 명의 청중 앞에서 설교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 명을 대상으로 전도집회를 열었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차례 대회에 모인 군중으로서는 최대 규모였다. 여의도광장에 화장실 시설도 변변치 않았는데, 대회가 끝났을 때 광장 바닥에는 휴지 한 장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의 방한은 국내 개신교 부흥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는데 1992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김일성에게 전했고, 1994년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그때 만난 김일성은 분명히 변화와 개방을 모색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의 손자 윌 그레이엄 목사는 2013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우리 가족에게 매우 특별하다. 어릴 때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파를 가리지 않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많은 대통령들과 직접 면담하고 개인적 친분을 이어가며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다. AP통신은 “그 어떤 복음주의 목사도 앞으로 그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기재 record@donga.com·조은아 기자}
미국 정치학자들이 실시한 역대 미 대통령 평가 설문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사진)이 ‘꼴찌’를 차지했다. 브랜던 로팅하우스 미 휴스턴대 교수와 저스틴 본 보이시주립대 교수는 19일 ‘대통령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낮은 순위인 44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45대이지만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두 번(22대, 24대)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평가 대상은 모두 44명이다. 이번 조사는 미 정치학회(APSC) 소속 대통령·행정분과 회원 17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0점 만점에 평균 12.34점을 받았다. ‘외교 리더십’과 ‘제도와 규범 구현’ 분야에서 낙제점인 F학점을, ‘입법 성과’와 ‘대중과의 소통’ 분야에선 이보다 두 단계 위인 D학점을 각각 받았다. 4가지 분야 평가를 종합한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성적은 결국 F학점이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라고 밝힌 회원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역대 대통령 44명 중 40위라는 낮은 점수를 줬다. ‘톱7’ 대통령은 4년 전 조사와 같았다. 노예해방을 이끈 에이브러햄 링컨이 평균 95.03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92.59점)과 ‘뉴딜정책’을 이끈 프랭클린 D 루스벨트(89.09점)는 각각 2위와 3위였다. 이어 시어도어 루스벨트(81.39점), 토머스 제퍼슨(79.54점), 해리 트루먼(75.15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74.03점) 등이 뒤를 이었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은 각각 8위, 13위, 30위를 차지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가 올림픽 개회식 방송 도중 일본의 식민 지배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이를 두둔하는 기고를 실은 사실이 알려졌다. 포천은 12일(현지 시간) 미국 타임지 편집국장을 지낸 노먼 펄스틴이 쓴 ‘조슈아 쿠퍼 라모의 한국 관련 발언은 진실의 중요한 일부를 담고 있다’는 논평을 실었다. 이 논평에서 펄스틴은 “라모의 발언은 매우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가 (올림픽 중계 방송에서) 사라졌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고 밝혔다. NBC 해설자 라모는 9일 올림픽 개회식 도중 일본 선수단 입장 차례가 되자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을 점령한 나라다. 한국인 모두는 ‘일본이 문화적, 기술적, 경제적으로 좋은 본보기’라고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계 직후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NBC는 10일 오전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한국인들이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란 점을 이해하고 사과한다”고 발표했고 라모를 올림픽 기간 출연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펄스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례로 들어 라모의 주장을 옹호했다. 펄스틴은 “박 전 대통령은 일본 군국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였고 한국이 일본 정책을 모방하도록 만들었다”며 “과거 중장비에 대한 투자, 대기업 통제 등은 일본에서 배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라모가 ‘모든 한국인’이란 표현으로 불필요한 과장을 했다고 보면서도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라모의 발언이 (정확히 설명할 겨를 없이) 짧았음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조은아 기자achim@donga.com}

15일 오후 6시 반경 한국 방문 첫날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며 서울의 한 호텔에 들어선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57)는 로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유쾌하게 일행과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강추위에도 가벼운 코트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곧바로 기자를 만나러 라운지 카페에 들어선 솔베르그 총리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없었다. 30분간 예정된 인터뷰는 40분을 넘겼지만 그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화려한 입담을 뽐냈다. 28세에 정계에 뛰어든 뒤 30년간 앞만 보고 달린 에너지가 느껴졌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지난해 노르웨이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선정했다. 비결은 무엇인가. “복지 제도, 국가 안보 덕일 것이다. 나도 항상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고 자문해 본다. 넓게 보면 행복이란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인 것 같다.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룰 때 사람들은 자기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 ―내게도 아이가 하나 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지켰는지 묻고 싶다. “집안일을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이 하도록 했다. 내가 처음 장관을 맡았을 때 아이들은 각각 4세, 2세였다. 당시 장관으로서 이민 및 통합, 지방정부 업무에 관여해 큰 의제가 많았다. 그래서 남편이 거의 매일 저녁밥을 했다. 그러더니 아예 집안 살림을 직접 계획하기 시작하더라. 남편이 육아휴직을 나보다도 더 많이 썼다. 그 덕에 난 의회로 좀더 빨리 출근하게 됐다.” ―당시 집안일을 도맡은 남편은 괜찮아 했나. “남편한테 물어보자. 남편이 여기 와 있다. (노르웨이어로 남편을 부르더니 기자에게 소개하며) 이 사람이 내 남편이다. 내 생각엔 그는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웃음)” 솔베르그 총리가 즉흥적으로 소개한 남편 신드레 핀네스 씨는 사업가로 총리와 함께 자녀 2명을 키웠다. 그는 일본에서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방문한 아내를 만나기 위해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먼 길을 날아왔다. 그에게 ‘독박 육아’ 경험을 물었다. ―부인 대신 집안일을 많이 했는데 괜찮았나. “집안일은 할 만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총리와 함께 폭소)” 기자가 인터뷰 중 동석을 권하자 핀네스 씨는 “아내에게 그냥 인사하러 왔을 뿐”이라며 자리를 성급히 비워줬다. 솔베르그 총리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현대 사회에서는 남자들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속삭였다. ―내가 내 남편에게 말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말해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아주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당신이 만약 남편에게 집안일을 하라고 요구하고 싶은데 여전히 당신이 주도적으로 살림을 계획하고,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남편에게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그건 정말 잘못하고 있는 일이다. 남편에게 ‘당신에게 집안일을 할 책임이 있으니 당신 원하는 대로 해라’라고 말해야 한다. 남자들은 지시하는 말을 듣는 걸 정말로 싫어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늘리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천하는가. “엄마가 돼서도 기업계든 학계든 정계든 어디서든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줘야 한다. 그러니까 가족과 직업이 삶에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 육아휴직이 참 중요하다. 노르웨이에서 육아휴직은 49주인데, 임금 전액을 받는다. 아빠들은 현재 의무 육아휴직을 14주간 내야 하는데 앞으로는 15주로 늘어난다. 엄마들은 의무 육아휴직을 15주간 내고 있다. 유치원, 어린이집이 충분히 마련돼야 함은 물론이다. 또 노르웨이에선 대부분의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유연근무제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는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근무시간에 밀도 높게 일하기 때문이다. 경직된 제도 안에서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항상 일하진 않는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노동유연성을 더욱 높여 세계에서 노동생산성이 높은 나라가 됐다. 우리가 애들을 학교에서 데려오려 오후 4시쯤 퇴근한다고 치자. 대다수는 애들을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이고는 컴퓨터를 열고 업무를 마무리할 것이다. 우린 이런 방식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였지 낮추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한국에서도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Too)’ 움직임이 있다. 노르웨이에선 어떤가. “세계적으로 미투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지난해 10월부터 노르웨이에선 사회 각 방면에서 미투와 관련된 여러 논쟁이 있었다. 우리 당도 미투 이슈가 좀 있었다. 노르웨이는 평등하고 정당한 사회로 인식돼 있음에도 이렇다.” ―지난해 9월 보수당으로서는 1985년 이래 처음 재선에 성공했는데 그 비결은…. “유가 하락으로 경기 침체가 특히 심했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과정을 사람들이 평가해준 것 같다. 난민 위기 문제도 꽤 잘 해결했다. 결국 우리는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란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우린 대선 공약을 잘 실천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정권을 자주 바꾸는 편이긴 하지만, 이제는 정책 효과를 보려면 정권이 길게 가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개혁과 변화를 꾀하려면 4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대선 공약으로 감세(減稅)를 주장했는데, 감세가 복지제도를 해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에게 우리 복지제도가 미래에도 가장 양질일 것이란 확신을 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야 한다. 세제 개혁은 의회 대다수가 동의했다. 우린 중소기업과 창업가들이 더 생겨나도록 인센티브를 마련했다. 이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걸 느끼고 있다. 이는 감세뿐만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화합을 이뤄낸 책임감 있는 파트너들 덕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 임금 인상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해 관계자들이 유가 하락을 고려해 경쟁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잘 협상했다.” ―노동시장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그들끼리 알아서 협상을 했다. 이들은 수출 중심 기업들이 임금 인상 수준을 결정할 주체라고 결론을 냈다. 그래서 공공 부문이나 비교적 안정된 부문은 자연스럽게 수출 기업들보다 더 임금을 올려선 안 되는 상황이 됐다.” ―‘탈석유 시대’에 노르웨이는 어떻게 일자리를 늘릴 수 있나. “노년층 서비스를 비롯한 공공 분야에도 기회가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건설에서 일자리가 늘 수 있고, 특히 관광 분야 일자리가 증가한다. 정말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노르웨이에 와서 북구의 밤, 사람이 별로 없어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을 즐기기 때문이다. (웃으며) 더 많이들 오시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노르웨이는 인터넷 시스템이 최상인 국가 중 한 곳이라서 미래에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어려움이라 하면,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기술을 새롭게 바꾸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술 제도를 개혁해 사람들이 ‘평생 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새 정책을 만들고 있다.” ―포브스는 당신에 대해 ‘재정에 대한 보수적인 입장과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인본주의적 시각을 잘 혼합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진보적 보수당(liberal conservative party)이다. ‘진보적 보수’라고 말하는 게 적절치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재정에 있어선 보수적이되, 가정과 관련된 정책 등 여러 사회 이슈에선 진보적이다. 그 결과 난민이든 난민 신청자이든 이민자들의 자녀 세대는 노르웨이 교육 시스템에서 잘 적응해가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노르웨이 태생 부모의 자녀들과 소수자의 자녀들의 학교 진학률이 동일했다.” ::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1961년 노르웨이 베르겐 출생 △1986년 노르웨이 베르겐대 졸업(사회·정치·경제통계학 전공) △1989년 28세 때 시의원에 당선돼 첫 정계 진출 △2001∼2005년 지방정부·지역개발부 장관 △2004년 노르웨이 보수당 대표 취임 △2013년 노르웨이 두 번째 여성 총리로 취임 △2017년 보수당 대표로서 32년 만에 처음으로 재선 승리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한국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보복 발언 수위가 심상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캠페인에서 중국과 멕시코를 미국 일자리를 도둑질해 간 주적(主敵)처럼 묘사했고, 한국은 그런 강성 발언 때 곁들여지는 ‘양념’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13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국무위원 및 연방위원들과 무역 관련 50여 분간의 공개회의를 하면서 중국은 10번, 일본은 4번 거론한 반면 한국은 무려 17차례나 언급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워싱턴 정가에선 “‘일자리 대통령’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주공격 대상이 (중국이나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옮겨간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 보호무역 강펀치 노리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관세 부과로 무역 상대국을 수시로 압박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초 발표될 예정이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은 말로만 그쳤다. 주요 대선 공약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도 지금까지 결론을 맺지 못했다. 미국 CNN은 13일 “지난 한 해 동안 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사는 94건으로, 전년(2016년)보다 81%나 증가했지만 이 중 일부가 보류되거나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강 펀치는 아껴두고 많은 잽만 날렸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잽만 날렸다’는 지지자들의 평가를 의식한 듯 “경제적 굴복의 시대는 끝났다”며 보호무역 강펀치를 예고했다.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 전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경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기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 보호무역 정책이었던 NAFTA 재협상이 지지부진해진 점이 한국을 향한 무역 공격을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8월 개시된 NAFTA 재협상은 지난달 말까지 여섯 번에 걸쳐 진행됐지만 자동차 원산지 기준,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 해결 문제 등으로 합의가 요원해 보인다. “NAFTA를 탈퇴하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가 공허해져 버린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14일 발표한 ‘NAFTA 재협상 동향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최근 미국 행정부가 종전과 미묘하게 다른 무역정책 기조를 보이고 있어 NAFTA 폐기 가능성은 다소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내에서 NAFTA 폐기로 경제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 “트럼프 발언은 협상력 높이려는 것”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미국은 한미 FTA뿐만 아니라 NAFTA에 대해서도 ‘협상이 잘 안 되면 폐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NAFTA와 마찬가지로 한미 FTA에서 협상력을 높이려고 민감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미국의 무역 압박 조치가 자국 기업의 주장을 과도하게 반영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이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할 때 사용하는 ‘불리한 가용정보(AFA)’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며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AFA는 미 상무부가 제소를 당한 기업(한국)의 자료가 아닌 제소한 기업(미국)의 자료를 근거로 관세를 정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무역보복 막말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는 복잡한 일도 말로 해결하곤 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삼성전자의 미국 공장 건설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설을 보도한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리트윗하면서 “생큐 삼성”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를 당연시하면서 그 결과가 자신의 업적인 것으로 홍보하는 마케팅 감각을 선보인 셈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4개월 뒤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 한국GM 군산공장의 폐쇄를 ‘미국 일자리의 본토 귀환’으로 포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란 지적이 많다.조은아 achim@donga.com / 세종=이건혁 기자}
2010년 강진이 발생했던 중앙아메리카 아이티에서 영국의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현지 직원들의 성매매 의혹이 제기돼 ‘구호단체의 도덕적 양심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페니 모던트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은 11일 영국 BBC에 출연해 “옥스팜 최고위층에 도덕적 리더십이 없다면 우리는 옥스팜과 파트너로 함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옥스팜에 대한 국제개발부 자금 지원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옥스팜은 지난해 국제개발부로부터 3200만 파운드(약 480억 원)를 지원받았다. 모던트 장관은 성매매 사건에 대해 “옥스팜이 도움을 주려 했던 이들과 옥스팜 직원들을 그곳에 보낸 이들 모두를 완전히 배신한 것이다. 옥스팜이 자세한 내용을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영국 더타임스는 9일 아이티 강진 발생 이듬해인 2011년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벌이던 소장을 비롯한 옥스팜 직원들이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옥스팜은 자체 조사 뒤 “직원 4명을 파면했고 소장을 포함한 다른 3명은 스스로 회사를 나갔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옵서버는 11일 옥스팜 직원들이 2006년 아프리카 차드에서도 성매매를 했다고 폭로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에 출연했던 미국 배우 존 개빈(사진)이 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86세. 개빈의 부인인 배우 콘스턴스 타워스의 매니저 브래드 버튼 모스 씨는 이같이 발표했다. 개빈의 사인을 명확히 밝히진 않았다. 개빈은 데뷔 초 190cm 장신에 준수한 외모로 주목받았다. 1950년대 짧은 기간에 적은 예산으로 촬영되는 B급 영화에 주로 출연하다 1958년 ‘타임 투 러브, 타임 투 다이’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군인으로 열연해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그는 1981년 멕시코 주재 미국대사로 임명돼 외교관 생활도 했고, 영화배우조합 회장을 맡기도 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선 실업률이 높다는 아우성이 여전한데 미국은 실업률이 17년 만에 최저치를 찍으며 홀로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다. ‘일자리 대통령’임을 강조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낮은 실업률을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하기 바쁘다. 하지만 미국 고용을 견인하는 유통기업에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월마트가 본사 직원을 중심으로 약 1000명을 해고한다는 월스트리트 보도가 나오자 여론이 냉랭해졌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말까지 나왔다. 바로 전날만 해도 월마트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 인하 발표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최저임금과 보너스를 올리겠다”고 떵떵거렸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겉으론 절약한 세금을 직원을 위해 베푸는 듯하면서 속으론 조용히 직원을 내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미국에서 150만 명을 고용하는 ‘유통 공룡’ 월마트의 행보는 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130년 전통의 백화점 ‘시어스’와 할인 소매점 체인 ‘K마트’를 소유한 ‘시어스 홀딩스’도 지난달 말 정규직 직원 22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 기업은 지난해 정규직 직원 400명을 자르고 매장 250곳의 문을 닫기도 했다. 미국 유통업계 구조조정 진원지는 아마존으로 꼽힌다. 전자상거래로 유통 비용과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감축해 성장하며 유통업의 성공 공식을 다시 쓴 혁신의 아이콘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내로라하는 유통기업들은 아마존을 따라잡기 위해 온라인 거래를 활성화해 인건비를 감축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달 22일 미국 시애틀에서 계산대 없는 무인점포 ‘아마존 고’를 열어 미국 전역의 점원 90만 명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 경제 리더들도 지난달 말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다보스포럼)에서 기술 발달로 사라질 일자리를 걱정했다. WEF의 ‘기술 재교육 혁명: 일자리의 미래(Towards a Reskilling Revolution: A Future of Jobs for All)’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여파로 2026년까지 미국에서만 일자리 140만 개가 사라질 예정이다. 가장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 분야로는 공장 운영자, 기술자를 포함하는 생산직과 단순 사무·행정직이었다. 이 보고서는 산업이 격변하는 이 시기에 새 시대에 맞는 새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지금의 일자리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인공지능(AI)의 혁명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 혁명’을 꾀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기술은 전에 없던 첨단 기술일 필요는 없다. 기존에 있던 기술도 새로 익혀 미래에 필요한 방향으로 활용하면 된다. WEF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이 보고서에서 분석한 업종별 전환 경로를 참고해볼 만하다. 단순 생산직은 유지·보수직이나 건설 관련 기술을 배우면 기존 직업과의 시너지가 좋았다. 사무 및 행정직은 재무 또는 영업 기술을 익히면 적합했다. 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건설 분야로, 품질 감독관이나 시험관은 ‘품질제어 애널리스트’로 전환할 만하다. 사진 인화 관련 직종에서 일했다면 ‘컴퓨터 이용자 컨설턴트’로 활동할 수 있다. 세계 각국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인재를 개조하고 있다. 미국 이동통신사 AT&T는 2013년부터 직원 28만 명에게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이터 과학 분야를 배우도록 장려하고 학습한 결과를 업무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캐나다 제조·수출협회는 중소기업 10여 곳을 묶어 14개월마다 업계의 신기술을 공유하도록 한다. 싱가포르의 성인 재교육 기관(IAL)은 성인들이 재교육받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유는 단순한 직원 복지로만 인식됐던 재교육이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활용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간 잘 키워온 직원들을 내보내면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실업 대란을 막기 위해 지역사회와 함께 ‘평생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절실히 깨닫고 있다. 특히 신기술에 익숙지 않은 은퇴자들이 할 일을 찾지 못하면 노인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00세 인생 시대’ 인재 양성 정책을 세우기 위해 영입한 린다 그래턴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지난해 기자와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의 교육부 장관이라면 ‘평생 교육’을 정책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아직 사회로 진입도 하지 못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못지않게, 고령화 사회의 재교육 문제도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청년 일자리에 비해 기성세대의 재교육 얘기는 듣기 힘들다. 세계가 ‘재교육 혁명’을 외치는데 혹시 한국 기업과 정부는 이 중요한 흐름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 아닌지 점검해볼 일이다. 조은아 국제부 기자 achim@donga.com}
“우리(미국) 정책은 바뀐 게 없다. 여전히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이다.” 헤더 나워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제한적인 대북 선제 군사공격)’ 전략에 대한 많은 얘기가 있다. 정부가 선호하는 정책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코피 터뜨리기가 아니라) 외교가 우리가 선호하는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코피 터뜨리기’에 대한 워싱턴 정가와 언론, 동맹국인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자 일단 사태를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 美, ‘빅터 차’와 ‘코피 터뜨리기’ 파문 수습에 분주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리도 이날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코피 터뜨리기) 표현은 언론의 (지어낸) 허구(That phrase is a fiction of the press)”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리는 “우리(미국)는 끊임없이 군사적, 비군사적 폭넓은 선택 방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피 터뜨리기’란 표현이 정부의 공식 용어가 아닐 뿐, 대북 군사옵션을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날 나워트 대변인은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이 전격적으로 철회된 사태에 대해서도 “그(빅터 차)가 차기 주한 대사로 갈 것처럼 언론이 앞서갔지만 사실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공식) 지명된 적이 없다. 대사 지명은 백악관의 권한이다. 백악관이 그 자리(주한 대사)에 갈 사람을 확보하면 우리는 그를 (공식) 지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 석좌가 틸러슨 장관이 추천했고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까지 끝난 인물일지라도, 인준안을 미 상원에 보내기 직전 절차인 백악관의 정식 ‘지명(nomination)’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번 낙마 사태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 미 언론, “‘포스트 평창’이 걱정된다” 미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당장 대북 군사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북한이 도발할 경우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대북 메시지가 충분히 걱정스럽다. 전쟁을 위한 사례(근거)를 축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우려했다. NYT는 다른 기사에서 “백악관이 군사행동을 향해 너무 성급하게 움직여 국방부는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정연설 때 탈북자 지성호 씨(36)를 소개하며 북한 정권의 잔악성을 강조한 데 이어, 2일엔 탈북자 9명을 백악관에 초청해 면담함으로써 대북 압박을 더욱 본격화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무기는 바로 탈북자”라고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탈북자 면담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북한 정권 교체로 수정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고 전했다. 미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탈북자들과 면담한 것은 2006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를 위한 대북 압력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조은아 기자}

“제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면 미국인들이 뭐라고 할지 아직도 무서워요. 그래도 두려움에 침묵하는 미등록(불법 체류) 친구들을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에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 초청으로 참석한 한국계 미등록 청년 조정빈 씨(24)는 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등록 청년 추방 유예 제도(DACA·다카)’ 수호 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자신도 미등록 신분이라 언제든 이민 당국에 체포돼 추방될 수 있지만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채 살아온 한국계 ‘그림자 아이들’을 위해 공개석상에 섰다는 것이다. “지역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거리에서 DACA 수호 캠페인을 벌이긴 하지만 아직도 친한 친구들에겐 제 신분을 말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 알려진 마당에 말할 수 있을 법한데 왜 이런지 저도 모르겠어요.” 조 씨는 7세 때인 2001년 전북 지역에서 살던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가 브로커의 사기로 비자를 제대로 발급받지 못해 온 가족이 미등록 신세가 됐다.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악착같이 남동생과 조 씨를 키우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열세 살 때 학교 농구팀에 들어가려 하니 신분증을 내야 했어요. 부모님한테 이 얘길 하니 소리 없이 우셨어요. 직감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임을 깨달았죠.” 조 씨는 2013년 버지니아공대에 합격했지만 첫 학년을 포기해야 했다. 미등록 신분이어도 입학은 허락됐지만 미국 시민보다 훨씬 많은 학비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 번째 학년부터 한국 음식점 사장님을 비롯한 한국 교민 사회 기부금을 받아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나를 도와준 분들을 생각하면 비슷한 친구들을 도와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에서 DACA 권익 옹호 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DACA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폐기하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DACA란 부모와 함께 불법 입국해 학교를 다니거나 취업한 이들이 체류하도록 돕는 행정명령이다. 추방의 불안에서 벗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는 뜻에서 ‘드리머’라 불리는 이들은 약 80만 명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180만 명의 미등록 젊은이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조 씨는 이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 입법화될지 모르고 실제 시민권을 가지려면 절차상 12년이 걸린다”며 “트럼프는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몰라 언제 쫓겨날지 두렵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장 10월경 만료될 취업 허가증 때문에 어떻게 먹고살지가 걱정이다. 전국아시안아메리칸위원회(AAPI)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계 미등록자는 17만4677명으로 추산된다. 인도(45만8663명), 중국(38만7369명), 필리핀(24만7304명)에 이어 아시아계 중 4위다. 조 씨는 “한국계 미등록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많다. DACA 대체 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 내 미등록 청소년은 대학 입학도, 취업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에 크게 놀라며 “그 아이들이나 우리나 모두 사람이다. 기본적 인권은 보호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첫 여성 의장 재닛 옐런(72·사진)이 연준을 떠났다. 재임 4년간 미국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미 CNBC에 따르면 옐런 의장은 지난달 30, 31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마지막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25∼1.50%로 동결하며 임기를 마쳤다. 그는 2014년 2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연준 의장에 취임했고 그간 기준금리를 5차례 올렸다. 옐런 의장은 금리 인상기에 나타날 수 있는 경기 침체를 피하고 미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연준 자산을 단계적으로 줄이며 ‘출구 전략’을 시행했다. 양적완화가 끝나고 금리가 인상되며 경기가 경직될 수 있지만 미국 실업률은 그의 임기 중에 17년 만에 최저치인 4.1%까지 내려갔다. 그가 미국 경제를 호황으로 이끈 비결로는 점진적인 금리 인상을 이끌어낸 점이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옐런이 의장에 취임할 당시 연준 이사들은 0%였던 금리가 장기적으로 4%까지는 인상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옐런 의장은 인상 목표치를 2.8%로 내려 급격한 인상에 따른 충격을 피했다. WSJ는 “옐런은 미국 금리에 있어서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떠났다. 이는 오랫동안 미국 경제에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증권시장은 옐런 재임 기간 사상 최고 지수를 기록하며 호황을 보였다. CNBC에 따르면 옐런 재임 기간 정보기술(IT)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97% 올랐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 성장이 자기 덕이라고 자랑하지만 정작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은 옐런 의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마워해야 할 옐런 의장을 관례를 무시한 채 축출했다”고 지적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우리는 지금 ‘새로운 미국이 열리는 순간(new American moment)’을 맞고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시작하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시기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안전하고, 강하고, 자랑스러운 미국의 시대’를 선언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워싱턴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모든 미국 국민을 위해,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명확한 비전과 의로운 사명감을 품고 전진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독설이나 비아냥거리는 어조를 내보이지 않았다. 역대 미 대통령 국정연설 중 3번째로 길었던 1시간 20분간의 연설에서 자신이 거둔 성과를 조목조목 짚으며 “민주당과 공화당의 화합”을 촉구했다. 안보와 대외무역에서는 강경한 정책 기조를 확인한 반면 이민정책과 미국 내 산업, 근로자 복지 지원에서는 타협안을 제시하며 정치색을 뛰어넘는 협력을 강조했다. CNN은 ‘한 손은 악수, 한 손은 주먹’이란 제목으로 그의 국정연설을 요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초반 미국이 지난 1년간 겪은 재난과 총격사건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홍수, 화재, 폭풍의 고통을 나누며 미국의 아름다운 영혼, 강철 같은 등뼈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240만 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 수당이 4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게 했으며 흑인과 히스패닉 실업률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취임 이후 경제 부문에서 거둔 성과를 확인했다. 트럼프는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줄여 미국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며 “애플도 조금 전 미국에 총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2만 명의 추가 인력을 고용할 계획임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과 미국을 믿으면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언급하며 “성장 배경, 피부색, 신념에 상관없이 미국의 모든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 언제나 활짝 손을 내밀겠다”며 통합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었다. 이민 정책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자 180만 명에게 시민권 취득의 기회를 관대하게 열어주겠다”며 “이민자 사회도 미국인 노동자와 가정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이민정책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연쇄 이민을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이민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교통 등 사회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1조5000억 달러(약 1600조 원)의 투자 예산 의결을 의회에 요구했다. 하지만 대외무역 문제와 관련해서는 변함없이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양보 없는 정책’ 기조를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그동안 스스로의 번영을 희생시키고 개인, 사업자, 국가의 부를 다수의 불공정한 무역 거래로 인해 수십 년 동안 덜어냈다”며 “경제적 항복의 시대는 끝났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정하게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무역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기존의 ‘나쁜 무역 거래’를 고치고 새로운 무역 협상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논의 중인 한국 등의 무역 대상국에 대해 “무역 규칙의 강력한 집행을 통해 미국의 노동자와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거듭된 선언에 대해 많은 의원들이 기립박수와 함께 “USA”를 연호했다. 외교안보 정책에서도 강경 노선을 견지했다. 트럼프는 “미국은 전 세계의 불량 정권, 테러리스트 그룹, 그리고 우리의 이익에 도전하는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국과의 대립에 직면해 있다”며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한 힘이 미국을 방어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침략행위를 막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현대화된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교적 온건한 뉘앙스로 명확한 메시지가 전해졌지만 부정적 평가도 적잖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다’는 언급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 정책을 실천했다’는 발언은 실제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 등 여야 간 갈등이 첨예한 부분에 대해서는 해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손택균 sohn@donga.com·조은아 기자}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열린 미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가장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였다. 그는 홀로 국정연설의 주인공인 남편보다 먼저 입장해 대통령 부부가 함께 등장하는 국정연설의 관례를 깨는 파격을 보였다. 미 CNN은 이날 “멜라니아가 자신이 초대한 손님들과 차량을 타고 홀로 등장해 오랜 전통을 깼다. 매우 독립적인 퍼스트레이디의 ‘나 홀로 움직임(isolated movement)’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평가했다. 멜라니아의 대변인 스테퍼니 그리셤은 “멜라니아는 진정한 영웅인 초대 손님을 예우하는 의미에서 백악관에서 별도 리셉션을 주최했고 이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의사당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이날 화사한 흰색 의상을 입고 나타나 더욱 눈길을 끌었다. 대체로 어두운 정장을 갖춰 입은 참석자들과 대비를 이뤄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의상 브랜드와 스타일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그가 입은 흰색 실크 블라우스는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가바나, 크림색 정장은 프랑스 브랜드 크리스티앙 디오르였다. 그가 신은 하이힐은 프랑스산 크리스티앙 루부탱 제품이었다. 여론을 의식해 공식 석상에서만은 미국 브랜드를 택하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하면 멜라니아 여사는 ‘난 내 스타일대로 한다’는 식이다. 남편의 대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랄프로렌을 입고 연설장에 서곤 했다. 흰색 의상을 선택한 점도 마찬가지다. 흰색은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항의 표시로 입었던 색상으로,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흰옷을 자주 입었다. 그가 남편이 불편해할 만한 색상을 당당히 입고 나타난 것이다. 멜라니아 여사의 독립적인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25일에는 남편과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다보스포럼) 출장 동행 계획을 갑자기 취소하고 혼자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았다. 그는 남편의 대통령 취임식 후에도 백악관에 들어가지 않고 뉴욕의 트럼프타워에 살았다. 막내아들 배런이 학업을 안정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언론들이 튀는 행보라는 뉴스를 쏟아냈지만 개의치 않고 5개월간 남편과 따로 살다 배런이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6월에야 백악관에 입성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낙마에 따라 차기 주한 미국대사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1일 한반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미 워싱턴 정책연구소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대리가 후보로 거론된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헤리티지재단이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할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며 “이를 고려하면 이 재단의 한반도 전문가인 클링너 선임연구원이 주한 미대사 후보 1순위”라고 전망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으로 2007년부터 헤리티지재단에 몸담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조율 없이 무리한 대화를 강행하면 한미 간 껄끄러운 관계가 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며 대북 대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유엔 주재 대사를 지낸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과 손발을 잘 맞출 수 있는 대표적인 강경파다. 그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을 정지시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시한을 ‘3개월’이라고 보고하며 강경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현재 주한 미대사관을 지키고 있는 내퍼 대사대리도 대사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는 2015년 4월 주한 미 대사관 차석으로 부임해, 2017년 1월 마크 리퍼트 전 대사 이임 후부터 대사관 대사 대리로 있다. 한국 정부와 의견 조율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최근 평창 올림픽 전에 열릴 북한 열병식에 대해 “북한이 스스로 원칙을 훼손하는 명분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올림픽 정신의 훼손이자 국제사회를 향한 정면 도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차 석좌의 낙마 소식에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저녁 ‘#아임위드빅터(ImWithVictor)’라는 해시태그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게재하며 지지의 뜻을 보냈다.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대부분의 한국 전문가가 동의할 것”이라며 해당 해시태그를 걸었다.조은아 achim@donga.com·한기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직후 생방송으로 전해지는 민주당의 ‘연두교서 반론 연설’은 워싱턴 정가에선 ‘독이 든 성배’로 통한다.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지만 화제성 측면에서는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해야 본전’이란 평가가 많다. 우려 섞인 목소리에도 ‘반론 연설 클럽’은 여전히 스타 정치인의 산실로 남아있다. 지난 50여 년간 연두교서 반론을 낭독했던 정치인 중엔 익숙한 이름이 많다. 간접적으로나마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붙어본 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이 대권에 도전하거나 요직을 차지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올해 연두교서 반론에 나서는 조지프 케네디 3세 하원의원(38·민주·매사추세츠)에게 큰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케네디 의원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손자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케네디라는 이름 자체가 기대를 높이고 있다. (그 가문이) 연설로 사람들에게 감명과 자극을 줬기 때문”이라고 28일 전했다. 그러면서 “케네디 의원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조부) 케네디 전 법무장관이나 (종조부) 케네디 전 대통령이 강조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반면 그는 생각을 정리할 때 오히려 어조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반론 연설엔 관례적으로 초당적 협력을 위한 호소가 담긴다. 케네디 의원이 관례를 따를 경우 원하는 만큼의 매력을 지지층을 상대로 발산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폴리티코는 민주당으로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중도층을 붙잡는 것도 중요하다며 “조부 케네디 전 법무장관이 그랬듯 (케네디 의원이) 분열을 봉합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역사상 첫 연두교서 반론 연설의 주인공은 훗날 대통령이 됐다.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시절이던 1966년 1월 17일, 당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이던 에버렛 더크슨과 함께 5일 전에 발표된 린든 존슨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두고 반론을 펼쳤다. 대통령 연두교서는 1965년 처음으로 주요 시간대에 TV를 통해 생중계됐는데, 야당인 공화당이 이듬해에 정치적 수세를 만회하기 위해 고안해 낸 무기를 포드가 휘둘렀던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42대)도 반론 연설의 얼굴 역할을 했다. 1985년 당시 39세의 아칸소 주지사이던 클린턴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반론 연설 방송에서 사회자를 맡았다. 독무대는 아니었지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백악관 문턱까지 갔던 정치인들 다수도 반론 연설의 주인공이었다. 1996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클린턴과 맞붙었던 밥 돌은 상원 원내대표이던 1996년 1월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맞불을 놨다. 10개월 후 직접 클린턴과 백악관 자리를 두고 겨루게 되면서 TV 화면을 통한 대결이 실제 대권 경쟁으로 이어진 드문 경우가 발생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뛰었던 팀 케인 상원의원(민주·버지니아)은 버지니아 주지사 시절인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에 대응한 반론 연설을 펼쳤다. 현 하원의장인 폴 라이언(공화·위스콘신)도 2011년 연두교서 반박 연설을 맡은 다음 해인 2012년 밋 롬니의 러닝메이트로 대선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실세로 통하는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도 ‘반론 연설 클럽’ 출신이다. 2016년 반론 연설에서 헤일리는 “미국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기회를 갖게 됐다”고 강조하며 다가올 대선에서 공화당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반론 연설에서 그는 “분노의 목소리를 따르자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며 당시 경선 후보이던 트럼프를 비판하기도 했다.한기재 record@donga.com·조은아 기자}

“환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존 켈리 장군과 백악관 모든 직원에게 감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68)을 한껏 치켜세웠다. 이어 “가짜 뉴스가 여러분을 더 힘들게 하지만 승리하는 건 언제나 위대한 일이고, 우리보다 더 승리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20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년 차를 시작한 첫 주에 켈리 실장을 공개적으로 칭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날 연예 매체 ‘배니티페어’의 보도 때문이다. 이 매체는 복수의 공화당 인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친구에게 켈리 실장을 가리켜 ‘여기 자신이 모든 걸 다 한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미친 놈(nut job)이 있다’는 불만을 털어놨고 켈리 실장의 후임을 물색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들이 이 보도를 재생산하며 ‘켈리 낙마설’을 키우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도가 역설적으로 켈리 실장의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CNN은 10일 익명의 백악관 관료의 말을 인용해 “켈리 실장이 참모들에게 11월 중간선거까지 유임할지 자리를 떠날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하며 그의 인사권을 부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년 차를 맞아 존 켈리 실장과 존 디스테파노 백악관 인사수석비서관(40) 등 ‘두 명의 존(John)’이 핵심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올드 존(Old John)’은 전방에서 웨스트윙(백악관 집무동) 군기를 잡고, ‘영 존(Young John)’은 백악관 사무실에서 소리 없이 참모 4000명의 인사를 결정한다. 두 사람은 대선 공신이 아니며, 과거 행정부와 의회에서 정무 감각을 익힌 전문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켈리 실장은 지난해 7월 백악관에 입성한 뒤 핵심 실세로 자리를 굳혔다. 그는 지난해 참모의 34%가 해고될 정도로 어수선했던 백악관을 수습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대통령을 만나려면 비서실장인 나를 통해야 한다’는 원칙도 스스로 정했다. 다만 켈리 실장도 대통령과 이견을 보일 때가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불편함을 얼마나 인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또 다른 ‘존’인 디스테파노 비서관은 공개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지난해 12월 28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디스테파노 비서관이 백악관 정무 기능을 포함해 더 큰 책임과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 보좌관 및 선임고문, 공화당전국위원회(RNC) 간부 등을 지낸 의회 베테랑이다. 그는 세인트루이스대 재학 중 여름방학 때 공화당의 한 의원실에서 인턴을 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졸업 뒤에는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외부 보수 단체들 간의 연락책을 맡으며 영역을 넓혔고, 2006년 데버라 프라이스 공화당 하원의원(오하이오)의 재선을 위해 뛰었다. 정치 경험이 많지 않은 그가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가자 일부 극우 블로거들은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 유권자 분석 업무 등을 거치며 조용히 실력을 쌓은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인사권으로 굵직한 정계 선배들의 목줄을 쥐고 있다. 참모들은 젊은 실세의 부상에 적잖이 불편해하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해 6월 백악관 참모회의에서 갑자기 분노를 폭발했다. 자신의 경질설 등 인사 관련 보도가 흘러나오자 “백악관이 나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흘린다”며 인사수석인 디스테파노 비서관을 진원지로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틸러슨 장관은 “국무부 인사에 관해서는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그는 젊은 디스테파노가 국무부 인사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몹시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두 실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앤서니 스캐러무치 전 공보국장, 라인스 프리버스 전 비서실장 등이 극단적 발언이나 행동을 하다 경질되면서 백악관의 신임을 얻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전임 측근들과 달리 초당적인 이슈를 온건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조은아 achim@donga.com·한기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년 차가 시작되는 첫 주에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한 것은 본격적인 보호무역 전쟁 선포로 풀이된다. 지난해 사실상 말로만 그쳤던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정책이 올해 다양한 경로로 실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0일 취임 뒤 직접 서명한 첫 보호무역 정책이다. 미 통상당국은 지난해에도 반덤핑 관세 부과 등 크고 작은 정책을 발표했지만 대통령이 서명하진 않았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서명함으로써 보호무역에 강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발표한 세이프가드를 발판 삼아 나흘 뒤인 26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폐막되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 포럼)에서 세계 경제 리더들에게 보호무역 정책을 과시하듯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30일 발표하는 연두교서에 중국에 대한 무역조치가 비중 있게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무역전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 이를 예고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첫해 백악관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긴 했지만 내분으로 언제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국수주의의 산파 격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보호무역 강공을 주장했지만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이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한 관료는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제는 백악관 내부에서 무역 관련 의견이 하나로 수렴되고 있다”고 말해 보호무역이 좀 더 힘을 받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진행 중인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 여부에 대한 조사 결과도 당초 예정보다 빨리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데릭 시저스 미국기업연구소 중국경제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의 지재권 침해 여부에 대한 1차 조사 결과 발표가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며칠 전에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집권 2년 차인 올해 11월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는 만큼 대선 공약을 실천해 지지 기반을 튼튼히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러시아 스캔들’과 인종차별주의적 막말 등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확실히 굳힌 덕에 버틸 수 있었다. 3대 지수로 꼽히는 다우존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나스닥 지수가 사상 최고를 찍고 있어 경제 성과를 대표적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내외적 환경도 조성되고 있다.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미 가전업체 월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또한 오하이오 공장에서 일하게 될 정규직 노동자 200명을 고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제조업 기반의 오하이오주에서 재선에 성공해야 하는 셰러드 브라운 민주당 상원의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강한 구제책을 내놓다니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월풀 외에도 미국 태양광회사 퍼스트솔라, 솔라월드, 수니바 그리고 미국 내 생산 공장을 계획 중인 중국 태양광회사 롱지 등이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반면 세이프가드 발동이 수입 부분 단가 인상 등으로 나타나 미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미국 태양광산업협회(SEIA)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 결정은 올해에만 미국에서 약 2만3000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하고, 태양광 분야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공격’은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을 주로 수출하는 중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도 피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의 라지브 비즈와스 이코노미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태양광 패널이나 세탁기 공급망이 아시아 전체로 확산돼 이번 정책은 중국이나 한국 외에도 여러 국가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도 22일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 멕시코 등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무역보호 조치를 발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에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는 23일 “행정부가 발표한 관세 수준은 당초 미국 기업들이 제안한 것보다 높다.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할 여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조은아 achim@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지난해 멕시코에서 하루 평균 69명이 살인 사건으로 사망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는 멕시코에서 살인 사건 관련 집계가 실시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최대치다. 멕시코 내무부 산하 공공치안 집행사무국(SESNP)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희생자 수는 총 2만5339명이었다. 2016년에 비하면 13%가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까지 연간 살인 사건 희생자 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2011년(2만2409명)이었다. AP통신은 “이는 멕시코에서 날마다 평균 69명이 살인 사건으로 희생된 것을 의미한다”며 “한 해 동안 인구 10만 명당 20.51명이 살해된 셈”이라고 전했다. 멕시코에서 발생하는 강력 범죄는 땅 소유권 분쟁, 역사 관련 갈등, 이익집단 간의 다툼 등 다양한 원인을 갖고 있지만 살인 사건 관련 범죄는 대개 마약과 관련된 범죄와 연결된 것으로 조사됐다. 피살자 발생 지역이 마약 조직이 활동하는 거점인 게레로 주와 베라크루스 주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알레한드로 호프 멕시코 보안 분석가는 “이 같은 통계는 사법당국이 살인사건을 인지하거나 신고가 접수돼 수사에 착수한 경우만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거나 접수되지 않은 건수를 합치면) 실제 살인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조은아 기자achim@donga.com}

지난해 멕시코에서 하루 평균 81명이 살인 사건으로 사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멕시코 살인 사건 규모로는 최대치다.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내무부 산하 공공치안 집행사무국(SESNP)은 지난해 한해 멕시코에서 발생한 피살자가 2만9168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81명꼴로 희생된 셈이다. 연간 피살자 규모는 전년에 비해 27%가 증가했다. 이는 통계가 집계된 199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11년 2만2409명이었다.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20.51명이 살해된 셈인데, 이는 전년(2016년) 16.80명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피살자가 주로 마약범죄 조직이 활동하는 게레로주, 베라크루스주에서 발행한 점으로 보아 마약범죄와 연루된 살인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레한드로 호프 멕시코 보안 분석가는 AP통신에 “실제 멕시코 살인률(인구 10만 명 당 살인 피해자 숫자)은 정부 통계보다 높을 수 있다. 멕시코의 범죄 문제는 땅 소유권, 역사 갈등, 기관 간의 분쟁 등 매우 복잡하다”고 설명했다.조은아 기자achim@donga.com}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한 뒤 미국 최고위급 인사로는 첫 방문이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이 이날부터 이틀간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면담하고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연설한다. 아랍계 12명과 유대계 1명으로 구성된 의원들은 펜스 부통령을 ‘인종차별적이고 정치적인 방화범’이라며 비난하며 연설을 보이콧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홀로코스트 추모관 야드바셈과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도 방문할 계획이다.펜스 부통령은 지난달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언한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불만을 품은 중동 국가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방문이 미뤄졌다.네타냐후 총리는 21일 내각 회의에서 펜스 부통령을 “이스라엘의 아주 좋은 친구”라고 칭하며 환영했다. 그는 펜스 부통령과 함께 이란의 안보 위협과 역내 평화 증진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의 예루살렘 선언에 강하게 항의하며 펜스 부통령의 방문을 거부했다. 이들은 그간 평화 협상에서 미국이 맡은 중재자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펜스 부통령은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각각 만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압둘라 국왕은 펜스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미국의 결정은 포괄적인 합의를 거친 결과라고 보지 않는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에 펜스 부통령은 대화 내내 정면을 응시했고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국왕의 말을 경청했다. 펜스 부통령은 미팅 후 압둘라 국왕에게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도 전혀 사과하진 않았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전했다.조은아 기자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