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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상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해 조사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내부고발이 공개되면서 워싱턴이 발칵 뒤집혔다.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러시아 스캔들’ 이후 다시 외국과 연루된 의혹이 제기된 것. 내년 미 대선에 새로운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차남 헌터(49)에 대한 비리를 조사하라는 요구를 8번가량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바이든 부자(父子) 의혹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터는 2014년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 가스회사 ‘부리스마 홀딩스’ 이사로 임명됐다. 당시 미 부통령 아들이 이 회사 임원으로 활동하는 게 윤리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2016년 초 우크라이나 검찰이 이 회사에 대한 부패 의혹 수사에 들어가면서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일부 언론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시 미국이 우크라이나 측에 10억 달러 규모의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며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해임됐지만, 바이든 측은 의혹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에 대해 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그는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자신의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협력하라고 촉구했으며, 줄리아니 전 시장은 8월 3일 젤렌스키 대통령 보좌관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만났다.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 문제를 검토 중이었다. WP는 “군사 원조를 빌미로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정보기관 직원의 내부고발로 시작됐다. 7월 통화 당시 백악관에 재직했던 이 직원은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부적절한 요구와 약속을 했다”며 지난달 12일 국가정보국 감찰실에 고발했다. 그러나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DNI) 대행이 이를 의회에 통보하지 않았고, 이런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자 논란이 확산됐다. 이번 폭로는 2020년 미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대한 비판이 나오겠지만 이 과정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측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 역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상 간) 통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교정책을 이용하고 국가안보를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혐오스럽다”며 발끈했다. 민주당 소속 하원 상임위원장들은 백악관과 국무부를 상대로 두 정상 간 통화 녹취록 공개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많은 지도자와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언제나 적절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내부고발자를 향해 “당파적인 고발자”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도 ‘압박설’을 부인하고 나섰다. 자칫 미국 내 문제로 불이익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반응이다. 바딤 프리스타이코 외교장관은 21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당시 정상 간) 대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고 있다. 압력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0일(현지 시간)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와 관련해 “북쪽에서 계속 신호가 오고 있다”며 미국 측과 이에 대한 깊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 본부장은 이날 국무부 청사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면담한 뒤 특파원들과 만나 “비건 대표와 10일에 전화 통화를 한 뒤 열흘 정도 지났는데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선희 외무성 1부상에 이어 북측 협상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담화를 내놓으며 공개적으로 미국 측과의 협상에 대한 의견을 내놓은 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 본부장은 이어 “그동안 러시아와 중국도 다녀왔다”며 “중국과 러시아, 또 일본과 함께 어떻게 우리가 앞으로 비핵화를 위해 같이 노력할 수 있는지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협력이 계속된다는 차원에서 유엔에 가서도 계속해서 몇 번 더 비건 대표와 만날 생각”이라며 다음 주 유엔 총회 기간에도 미 측과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비건 대표와의 구체적인 면담 내용에 관해서는 “민감한 시기여서 얘기하기가 곤란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제일 중요한 건 일단 양측이 같이 앉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하노이(북미 정상회담) 이후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접점을 찾아 나갈 건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20년간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다. 이렇게까지 지정학이 비즈니스를 흔들어 본 적이 없는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SK하이닉스 지사에서 열린 ‘SK의 밤(SK Night)’ 행사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최 회장이 언급한 지정학적 위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폭, 미중 무역갈등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지정학적 위기가 30년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게 단시일에 끝날 것 같지 않으니 적응하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최 회장은 또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과 관련해 “국산화라기보다 대안(alternative way)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산화를 배제한다는 게 아니라 일단 대안을 먼저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또 “(일본이) 물건을 안 팔면 다른 데서 구해야 하는데 결정적인 부품은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라며 “그랬다가는 세계 공급망이 부서진다. 우리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고객에게 문제가 된다. 이를 무기화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SK의 밤’은 SK그룹이 미국 정·재계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며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로 올해 2회째를 맞았다. 올해 행사에는 캐런 켈리 상무차관, 하원 법사위 간사인 더그 콜린스 하원의원(공화·조지아),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 캐슬린 스티븐스 및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SK그룹에서는 최 회장 외에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등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행사에서 “SK그룹은 최근 3년간 미국에 50억 달러(약 5조9500억 원)를 투자했고 향후 3년간 100억 달러(약 11조9000억 원)를 추가 투자하겠다”며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24억 달러(약 2조8600억 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행사 전 윌버 로스 상무장관,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회장 등과 만나 세계 정치·경제 동향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서동일 기자}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협상에 ‘새로운 방법(new method)’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을 “현명한 정치적 결단”이라며 환영했다. 자신을 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라고 직접 밝히면서 기존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해법’을 고수할 뜻도 내비쳤다. 김 대사는 이날 첫 담화를 통해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핵포기’ 방식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조미(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주장했다는 보도를 흥미롭게 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이 이제 진행하게 될 조미 협상에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리라고 기대하며 그 결과에 대해 낙관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간) 최근 해임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판하며 “볼턴이 (일괄타결식) 리비아 모델을 언급해서 (협상을) 어렵게 만들었다. ‘새로운 방법’이 좋을지 모른다”며 유연한 접근법을 시사했다. 김 대사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조미 쌍방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취지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20년 간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다. 이렇게까지 지정학이 비즈니스를 흔들어 본 적이 없는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SK하이닉스 지사에서 열린 ‘SK의 밤(SK Night)’ 행사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지정학적 위기가 30년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단시일에 끝날 것 같지 않으니 적응하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또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반도체 부품 국산화 이슈와 관련해 “국산화라는 단어를 쓰는 것보다 대안(alternative way)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산화를 배제한다는 게 아니라 일단 대안을 먼저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또 “(일본이) 물건을 안 팔면 다른 데서 구해야 하는데 결정적인 부품은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라며 “그랬다가는 세계 공급망이 부서진다. 우리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고객에 문제가 된다. 이를 무기화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SK그룹은 최근 3년 간 미국에 50억 달러(5조9500억 원)를 투자했고 향후 3년간 100억 달러(11조9000억 원)를 추가 투자하겠다. SK는 또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24억 달러(2조8600억 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캐런 켈리 상무차관, 하원 법사위 간사인 더그 콜린스 하원의원(공화·조지아),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 캐슬린 스티븐스 및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등 미 정재계 핵심 인사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사진)는 18일(현지 시간) 북한이 여전히 핵무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이 여전히 미국의 대북정책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이날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청문회에서 코리 가드너 의원(공화당)으로부터 북한의 핵무기 생산에 대해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변했다. 그는 가드너 의원이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이 여전히 미국의 대북정책이냐”고 묻자 “내가 아는 한 사실이다”고 말했고, 북한이 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CVID)에 대한 이행 의지를 보일 때까지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물론이다”고 답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추궁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로버트 메넨데스 의원(민주당)이 “우리의 동맹인 한일 양국 간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미국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스틸웰 차관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활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있는 게 아니다”며 “해법은 그들이 자신들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중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무부 인질문제 담당 대통령 특사가 18일(현지 시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더욱 북핵 이슈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한미 양국에서 나오고 있다. 오브라이언 신임 보좌관은 이른바 ‘폼페이오 사단’의 일원으로, 폼페이오 장관과 사사건건 부딪치던 볼턴 전 보좌관과는 달리 ‘팀플레이’에 능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변호사 출신인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2005년 유엔총회에 미국 측 대표단으로 참석하고 2012년 밋 롬니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의 외교안보고문을 맡은 적은 있으나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직접 다뤄본 적은 없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인질문제를 다루기는 했으나, 그의 지난해 5월 인질문제 특사 임명은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세 명에 대한 석방이 이뤄진 뒤에 발표됐다. 그만큼 그가 이 사안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낮다. 외교당국도 “기본적으로 (외교안보 커뮤니티에서) 잘 알려진 게 없는 사람이다. (북한 문제를) 제대로 맡아 본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이 주도하는 국무부 라인의 대북정책 영향력이 이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대북 협상은 이미 폼페이오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주도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었다”며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비건 대표가 일각의 관측대로 북핵수석대표 자리를 유지한 채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할 경우 국무부가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흐름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2005년 유엔에서 볼턴 전 보좌관과도 같이 일해보고, 2년 전 한 칼럼에선 볼턴을 “굉장한 내공을 갖춘 외교관이자 애국자다”라고 부를 정도로 우호적인 사이였다고 한다. 동시에 임명 과정에서 특사 시절 호흡이 잘 맞았던 폼페이오 장관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을 정도로 국무부 고위인사들과도 가까운 사이로 조정 역할에 더 맞는다는 말도 나온다. 이 때문에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기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로키 행보’를 보일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망하고 있다. ‘슈퍼 매파’로 불린 볼턴 전 보좌관과는 정반대 성향의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등장하자 청와대는 한미 안보사령탑 간 소통이 더 원활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북핵 이슈뿐 아니라 곧 재개될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 있어서도 더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오브라이언 보좌관 임명에 대해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한미 간 소통이 원활하게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다음 주 유엔총회 기간에 카운터파트인 오브라이언 보좌관과 처음 만날 것으로 보인다.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 문병기 기자}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격 배후로 지목한 이란에 대해 추가 제재를 거론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8일 취재진으로부터 이란 공격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군사 공격 외에도 많은 방안을 갖고 있다. 강화된 제재를 48시간 안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최후의 방안은 전쟁 돌입을 의미하지만 지금 그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고 대응 수위를 조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사우디 지다에서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대응책을 논의했다. 미 국무부는 “공격적이고 무모하며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이란 정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양국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사우디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이란의 공격은 사우디에 대한 직접적 ‘전쟁행위(act of war)’”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19일 CNN 인터뷰에서 ‘미국이나 사우디가 이란을 공격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면전(all-out war)으로 갈 것이다. 매우 많은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P통신은 이 발언이 전날 폼페이오 장관의 ‘전쟁 행위’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자리프 장관은 그러면서 “나는 우리가 군사적 갈등에 직면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진중한 성명들을 발표해왔다”고 덧붙였다. 피격 배후를 놓고 미국과 이란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 CBS방송은 18일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번 공격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CBS는 또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남서부 아바즈 공군 기지에서 공격 준비를 하는 모습을 담은 위성사진을 가지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사우디 군도 자국 석유시설을 공격한 무인기(드론) 및 미사일 잔해를 이날 공개하며 이들 무기가 ‘이란제’라고 밝혔다. 사우디군은 무인기가 사우디 남부인 예멘이 아니라 이란 방향인 북쪽에서 날아오는 동영상도 공개했다. 반면 이번 공격의 주체라고 주장해온 예멘 후티 반군은 14일 공격에서 자신들이 사용한 무인기 기종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자신들의 소행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공격에) 작전 반경 1500∼1700km인 장거리 무인기와 최근 개발한 제트엔진 장착 신형 무인기가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사우디가 후티 반군 근거지에서 피격 지점까지 거리가 1000km 이상 떨어진 점을 들어 이란이 배후라고 주장한 데 대해 반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니파 맹주’ 사우디가 ‘시아파 맹주’ 이란에 대한 군사대응을 주도할 가능성도 제시한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7년 하메네이를 ‘히틀러’에 비교할 만큼 이란에 적대적이다. 다만 사우디의 부실한 방공망과 이란의 강력한 군사력을 감안할 때 강경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버나드 헤이컬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잃을 것이 많다. 하지만 옆집에 사는 방화범(이란)은 잃을 게 없고 정밀하게 계속 타격할 역량도 있다”고 진단했다. 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간) 이란에 대해 “군사적 공격 외에도 많은 옵션을 갖고 있다”며 “이란을 대상으로 강화된 제재가 48시간 안에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를 방문 중인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란 공격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자 “지금 우리는 매우, 매우 강력한 위치에 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다만 “최후의 옵션은 전쟁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면서도 “지금 그것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무력 사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갖고 있고, 공격하기는 매우 쉽다. 우리가 만약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을 망설임 없이 해야 할 것”이라며 이란을 향한 경고 메시지를 반복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사우디 제다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최근 사우디 석유시설 공격 대응을 논의했다.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과 살만 왕세자는 이란 정권의 지속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한자리에 모일 필요성이 있으며, 이란 정권이 공격적이고 무모하며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앞서 사우디 제다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취재진에게 “이란의 유전시설 공격은 사우디에 대한 직접적인 전쟁행위(act or war)”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이번 공격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규모로, 전 세계 에너지 공급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이는 또한 유엔 헌장과 유엔 인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주 열리는 유엔총회에서도 이번 사안을 문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 그는 살만 왕세자와 만난 이후 트위터를 통해 이를 전하며 “이란 정권의 위협적인 행동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무부 인질문제 담당 대통령 특사는 워싱턴 외교가에도 낯선 이름이다.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을 다뤄본 경험이 많지 않은 의외의 인물이 기용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제동을 걸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8일(현지 시간) 오브라이언 보좌관에 대해 “국가안보와 국가기밀의 영역에서 주요 인물은 아니다(not a big name)”며 “(전임자보다) 훨씬 더 몸을 낮추고 로우키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매체 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근무했던 고위 참모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밋 롬니 후보 캠프에서, 2016년에는 테드 크루즈 후보의 캠프에서 외교안보 고문으로 활동했다. 2005년에는 당시 유엔주재 미국대사였던 볼턴 전 보좌관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련 부처에서 굵직한 외교안보 현안을 직접 다뤄본 경험은 없다. 그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을 모시는 특권을 얻게 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하에서 엄청난 외교정책의 성공을 봐왔으며, 앞으로도 이것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고 추켜세웠다. 첫 일성으로는 “많은 과제들이 있지만 훌륭한 팀과 협력해 군을 재건하고 미국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군대를 언급한 것을 놓고 ‘힘을 통한 평화’ 기조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볼턴 전 보좌관과 함께 일한 경력 등을 바탕으로 그를 강경파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전임자만큼 호전적이지 않으며 팀플레이에 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인질 담당 특사로 활동하던 7월 스웨덴에서 폭행 혐의로 체포, 구금된 미국인 래퍼 에이셉 라키의 석방 활동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눈에 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미국 역사상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인질 협상가”라고 말했고, 이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흡족해했다는 것. 오브라이언 특사는 임명 직후부터 이란의 사우디 유전시설 공격에 대한 대응 등 만만치 않은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 북-미 비핵화 협상 등도 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 전임자보다 순응적인 그를 낙점한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외교정책에서 독자적인 결정권을 더 휘두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대북정책에는 그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워싱턴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대북 협상은 이미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스티븐 비건 북핵 협상대표가 주도적으로 진행해오고 있었다”며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폼페이오 장관이 적극적으로 밀었던 것으로 알려진, ‘폼페이오 사단’의 일원이다. 대북정책 뿐 아니라 다른 외교안보 정책을 놓고도 폼페이오 장관의 입지는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서로 견제하며 충돌해왔던 볼턴 전 보좌관과의 권력투쟁에서 ‘최후 승자’가 된 데다 측근인 비건 대표까지 국무부 부장관에 기용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측근들로 채우는 셈이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시설 피습 후 미국 외교안보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격 배후로 추정한 이란에 보복하는 것도 쉽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8일 트위터에 “재무장관에게 이란 제재 조치를 대폭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하루 전 AFP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이달 말 뉴욕 유엔총회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회담 가능성에 대해 “그를 만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사건의 검증 결과에 따라 (군사) 대응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이날 “‘장전 완료(locked and loaded)’”라며 “우리의 이익과 동맹을 방어할 준비가 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사우디에 급파했다”고 밝혔다. 이틀 전 대이란 군사 대응을 시사하며 ‘장전 완료’를 언급했던 대통령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겉으로 드러난 미 권력자들의 강경 발언과 달리 행정부 내에서는 이란 강경책에 대한 논쟁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용을 이유로 해외 주둔 미군 철수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 큰 돈이 필요한 군사 대응을 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산 원유 수출 제재 등도 군사 수단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우리가 무엇인가 결정하더라도 사우디가 많이 관여해야 한다. 여기에는 비용도 포함된다”고 돈을 거론했다. CNN은 “이란의 소행임이 확인됐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미국이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처럼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도 중동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피습 후에도 이란과의 협상 의지를 보인 것은 그를 ‘사자’가 아니라 ‘토끼’처럼 보이게 한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최측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까지 트위터에 “신중한 대응은 이란에 대한 나약함의 표시”라고 비판했다. 이란뿐 아니라 북한 중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계 각국에 국제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이터와 CNN 등은 이번 공습이 이란 남서부에서 시작됐고, 드론 외 저고도 순항 미사일이 사용됐음을 미 정부가 확인했다고 전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등은 16일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대통령에게 이란 원유시설 공습, 미사일 기지 타격, 사이버 공격 등 다양한 군사 보복 방안을 보고했다. 사우디가 보복 공격을 주도하고 미국은 각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안, 미군의 페르시아만 추가 배치 등도 거론됐다. 반면 18일 이란 관영통신 IRNA에 따르면 이란은 배후설을 부인하는 외교 전문을 이미 미국 정부에 보냈다. 이란은 공습 이틀 후인 16일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는 주테헤란 스위스대사관에 이 서한을 전달했다. 사우디 에너지 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피격으로 차질이 생긴 생산 물량 중 약 50%를 회복했다. 2주 후인 이달 말이면 원유 생산이 완전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17일(현지 시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각 협력 증진에 ‘막대한 노력(enormous effort)’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스틸웰 차관보는 하원 외교위 산하 아시아태평양 및 비확산 소위가 18일 개최하는 청문회에 앞서 제출한 서면발언 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6월 차관보에 임명된 그가 처음으로 의회에 출석해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 자리다. 스틸웰 차관보는 이날 자료에서 “북한의 불법적 핵·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이 미국과 우리의 동맹들에 가하는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외교의 최우선 순위”라고 전제했다. 이어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싱가포르에서 설정한 목표에 전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국제적인 단합 및 현재 (대북) 제재들의 지속적인 이행을 위해 역내 및 전 세계에 있는 동맹 및 파트너들과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면서 한국과 일본을 콕 찍어서 언급했다. 그는 “특히 일본 및 한국과의 3국 간 안보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쏟고 있다”며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외교의 최우선 순위에 있다는 점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북아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스틸웰 차관보의 발언은 미국이 다음주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일 양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물밑에서 모종의 촉진자 역할을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한국 측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되돌리라는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6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신임 일본 외상과의 통화에서 한일 양국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스틸웰 차관보는 “북한의 지독한 인권 전력을 다루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북한 안팎으로 정보가 오가게 만들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지원을 촉구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미국의 북핵협상 실무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에 임명될 것이란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안보 담당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17일(현지 시간) 칼럼에서 “정부 관계자 3명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대표를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할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발표 시기는 미정이며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인사 방식을 감안할 때 최종 발표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비건 대표는 최근 여러 요직의 하마평에 올랐다. 10월 초 퇴임하는 존 헌츠먼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 후임설, 10일 전격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후보군 등으로도 꼽혔다.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이 새 러시아 대사로 사실상 내정된 후에는 설리번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는 까다로운 북한과의 협상을 맡아 진지한 자세로 업무에 임해왔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분야 인사들과의 소통도 원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건 대표의 부장관 기용설은 북-미 실무협상이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시점에 나와 특히 주목받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북한 비핵화란 중요한 업무에 집중할 것”이란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시기에 협상 대표를 교체할 경우 북-미 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비건 대표가 국무 부장관에 오르더라도 현재의 대북정책 특별대표 자리는 유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건 칼럼니스트도 이를 언급하며 “비건 대표가 승진하면 그에 대한 북한의 신뢰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올해 초 ‘하노이 결렬’ 이후 멈춰 있던 북-미 비핵화 협상이 이달 말 마침내 재가동될 분위기지만 양측이 서로 ‘통 큰 양보’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살얼음판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여전히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의 폐기’를 협상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제도 안전’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협상 조건으로 꺼내며 요구치를 높이는 모양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이달 초 미시간대 강연에서 “(미국은)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북한과) 신뢰를 쌓을 의지가 있으며, 이를 통해 한반도에서 WMD와 그 운반수단에 대한 폐기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하노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 이상을 내놓기를 꺼려 협상이 결렬됐지만, 여전히 ‘영변’을 훌쩍 뛰어넘는 WMD 개념에 대한 양보는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 측 협상 조건이 하노이 때보다 후퇴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는 해임된 ‘대북 강경파’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도 관계없는 미국의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전향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6월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이후) 대화 유지 차원의 북-미 소통이 있었지만, 간극을 줄일 만큼의 의미 있는 소통이 나온 것은 아닌 걸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기대치를 한껏 부풀리는 모양새다. 16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담화를 통해 향후 협상의 성공 전제조건으로 체제 안전을 의미하는 ‘제도 안전’을 거론한 데 이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전하며 경제 제재 완화의 필요성까지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17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전하면서 “일방이 제재 도수를 높이는 속에서 타방이 그와 대화탁(대화 테이블)에 나앉기는 힘든 일”이라고 했다. 북-미 협상 논의가 시작됐으니 대북 추가 제재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한껏 신중해졌다. 그는 16일(현지 시간) 평양 방문 가능성에 대해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아직 갈 길이 남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6월 판문점 회동을 갖기도 했지만, 향후 제대로 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서 사전 실무협상을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연설문을 통해선 “우리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IAEA 회원국 앞에서 ‘북핵 검증’을 강조한 것. 미 국무부 대변인실도 북-미 실무협상 진전 상황을 묻는 동아일보 질의에 “(현재) 발표할 어떠한 만남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런 가운데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최근 극비리에 해외 출장을 떠난 것으로 파악돼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을 찾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 원장은 앞서 비밀리에 판문점이나 워싱턴을 찾아 북-미 비핵화 대화 지원에 나선 바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는 17일 “(서 원장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북핵 관련 논의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말 귀국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1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인근에 위치한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46)의 자택을 찾았다. 마침 그의 아들 세준(윌리엄·4)과 딸 세희(캐럴라인·3)가 유치원을 다녀왔다. 두 아이는 “손님에게 인사하세요”라는 아버지의 한국말에 90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2주 전부터 한국어 수업도 듣고 있다는 세준이의 유치원 가방에는 큰 글씨로 ‘Sejun’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리퍼트 전 대사는 2014년 1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한국에 근무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집안 곳곳에는 안동소주 호리병, 포돌이 인형, 액자 등 한국을 상징하는 물건이 가득했다. 그와 가족의 일상에서 한국은 떨어질 수 없는 부분인 듯했다. 》 리퍼트 전 대사가 인터뷰에 응한 13일은 청와대가 유엔총회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계획을 밝힌 직후였다. 그는 “한미 간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고 많은 협의가 필요하다. 뉴욕에서의 정상회담이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미국의 촉진자 역할 등에 대해서는 ‘스마트한 원칙 외교(smart principle diplomacy)’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 등으로 한미 관계가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떤 동맹이든 관계의 부침(ups and downs)이 있다. 진정한 동맹의 가치는 모든 상황이 좋을 때가 아니라 긴장과 압박 요인이 있을 때 더 잘 드러난다. 한미 양국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긴밀하게 협의를 지속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가 뭔지 이해해야 한다. 핵심 사안에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현명하다.”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곧 시작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5배 증액’ 요구가 한미 관계를 흔들고 반미 감정을 키우는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국은 지금까지 매우 큰 기여를 해왔다. 지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매우 강력한 기여자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남성이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고, 100억 달러(약 12조 원)가 들어간 미군의 해외 최대 군 기지를 갖고 있으며, 지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는 부담률을 더 높였다. 한국의 국방비는 최근 5, 6년간 계속 증가했다. 이런 기록을 보라. 한국이 한미 동맹에서 훌륭한 기여자라는 것을 입증할 강력한 데이터들과 긴 목록이 있지 않은가. 중요한 점은 방위비 협상이 몇 달러, 몇 센트 같은 수치상의 기여 문제가 아니라 (동맹의) 토대를 닦는 문제라는 점이다. 동맹국이 서로 바위처럼 단단한 토대 위에서 공동의 목표와 이해관계에 대해 협력하고 있다는 확신의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가치를 별로 중시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했는데….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미 의회가 동맹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회는 최근 주한미군의 감축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내놨다. 미국 내 전문가 그룹과 여론도 한미 동맹을 지지하는 강력한 토대가 된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은 동맹에 있어 강력한 기여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도 유명한 리퍼트 전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자제했다. 평가를 내리는 데 신중했고 표현도 매우 절제돼 있었다. 그 대신 그는 현 정책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수치나 근거들을 차근차근 제시했다. 동맹의 가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역설할 때에는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근간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완전한 돈 낭비’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 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요구해 관철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에 팀스피릿 훈련을 취소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일련의 훈련 규모를 축소하거나 취소했다. 그러나 북측으로부터 이에 대한 어떤 상응조치를 받지 못했다.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 비핵화 협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미군의 준비 태세가 정치적 협상의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시점에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을 배제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대사로 있을 때 한미 관계는 탄탄했다. 상호 신뢰가 깊었다. 2015년 비무장지대(DMZ) 포격전 등에 관해 남북 협상이 진행 중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는 협상장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을 깊이 신뢰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맹 관계는 매우 중요하며, 더 강할수록 더 깊은 신뢰가 형성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곧 뉴욕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들었다. 한미 관계에 긍정적인 사안이다. 다만 양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또 북한을 향해서도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을 ‘동북아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막상 한일 분쟁은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의 관여 의지가 중요하다. 만약 한국과 일본 모두 미 대통령의 관여 의지를 확인한다면 그것이 상황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집권 2기 후반부에 2, 3차례 한미일 3자 정상회의를 열었다. 만약 미 대통령이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이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한일 양국 지도자의 근본적 계산을 바꾸지는 않더라도 상황을 개선할 여지를 줄 수는 있다. 이 여지는 때로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듣고 놀랐는가. “놀라지 않았다. 상황이 이미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다만 지소미아가 실제 종료되는 올해 11월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 이 문제에는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만큼 상황을 진전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스마트한 원칙 외교(smart principle diplomacy)’가 필요하다.” ―주한 미국대사 재직 당시 껄끄러웠던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이에서 막후 중재도 활발히 했던 것으로 안다. 현 상황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미국이 중재자라고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미국이 서울과 도쿄에 ‘잘 지내라’고 말하면 양국이 잘 지낼 것이란 오해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한일 두 나라의 복잡하고 중요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역사 문제를 간과하는 태도다. 또한 한국과 일본 모두 각자의 리더십, 이해관계,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보유한 강한 국가임을 간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때때로 서로의 오해를 풀도록 돕고 촉진하는 것이다. 미국의 역할은 작지만 그 작은 역할이 두 나라의 간극을 좁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막후에서 보이지 않게, 때로 사적 채널을 통해 조용히 양국 관계를 조율해온 긴 역사가 있다.” 1시간의 인터뷰 내내 그의 눈매는 매섭게 치켜 올라가 있었고 어조는 단호했다. 종종 한국 방송에 출연해 한국 음식을 요리하고, 한국 여러 야구장에서 열정적으로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연예인 같은 면모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한미 동맹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무거운 기류를 반영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출장이 어땠느냐”고 질문하자 예의 친근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업무가 끝난 뒤 짬을 내 서울 잠실야구장, 대전 한밭야구장 등에서 야구 경기를 여러 차례 관람했다. 다만 대구에서 열린 ‘치맥 페스티벌’을 못 간 것이 너무 아쉽다”며 웃었다. 영어가 아닌 유창한 한국말로 대사 시절 자주 찾았던 서울 광화문의 한 순두부집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에게선 ‘한국 아재’의 모습이 느껴졌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약력△ 1973년생△ 스탠퍼드대 국제정치학 석사△ 2005∼2008년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 수석대외정책보좌관△ 2009년 미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 겸 대통령부보좌관△ 2012∼2014년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2014년 10월∼2017년 1월 주한 미국대사△ (현)미국 보잉사 부사장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하순에 시작될 한국과의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연일 ‘동맹 때리기’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열린 공화당 소속 연방하원의원 만찬 연설에서 “우리는 엄청나게 부유한 나라들을 방어하는데 그들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들은 우리에게 거의 아무것도 내지 않는다”며 “그 나라들은 우리의 친구이고 동맹국이지만, 가끔은 우리의 동맹국이 우리를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나쁘게 대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및 22∼26일 유엔 총회 기간에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동맹국에 대한 압박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사업가 대통령 특유의 전략이자 동맹국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그의 시각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때로 우리의 동맹이 다른 그 누구보다 미국을 더 나쁘게 대한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 (돈을 내라는 요구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미국은 당신의 나라를 방어한다. 당신은 아주 부유하니 좀 더 내야 한다’고 말하면 그들은 ‘안 된다’고 한다”며 “(동맹국의) 왕, 총리, 대통령에게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면 그들은 ‘아무도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답한다”고 설명했다. 왕은 사우디아라비아, 총리는 독일 및 영국, 대통령은 한국 등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고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효과도 거두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왜 방위비는 내지 않으면서 무역 분야에서는 미국을 그렇게 오랫동안 이용하느냐고 그들에게 묻는다”며 무역 불균형에 대한 불만도 표시했다. 이어 “더 이상은 이런 식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며 동맹국에 대한 분담금 증액을 관철시킬 것이란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재선 유세에서도 “많은 사례에서 미국을 가장 이용한 것은 우리의 동맹이다. 이제 여러분은 드디어 이를 알고 있는 대통령을 만났다. 나는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4일 취재진 앞에서도 같은 주장을 펴며 한국과 일본 등을 구체적으로 압박했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미국 재무부가 13일(현지 시간) 라자루스그룹 등 북한의 3대 해킹그룹을 대북제재 명단에 올렸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는 모양새다.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라자루스그룹, 블루노로프, 안다리엘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외의 주요 인프라 시설 및 금융, 언론,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을 타깃으로 활동해 왔다. OFAC에 따르면 라자루스는 북한 정찰총국 제3 기술정찰국 110연구소 소속으로 150여 개국에서 30만 대의 컴퓨터에 피해를 줬다. 2014년 미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 및 2017년 전 세계 컴퓨터에 랜섬웨어를 심은 워너크라이 사건에도 관여했다. 당시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해킹당해 영국 일반 의료행위의 약 8%가 마비돼 NHS는 1억1200만 달러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9월 미 법무부가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한 북한 해커 박진혁도 라자루스 소속이다. 블루노로프와 안다리엘은 모두 라자루스의 하부 해킹그룹으로 알려졌다. 블루노로프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4년경 만들어졌다. 해외 금융사를 해킹해 얻어낸 자금 일부가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에 활동이 포착된 안다리엘은 한국 정부와 인프라 시설을 집중 공격했고 가상통화 공격도 시도했다. 안다리엘은 2017년 1월∼2018년 9월 아시아의 5개 가상통화 거래소에서만 모두 5억7100만 달러(약 6820억5950만 원)를 빼낸 것으로 추정된다. 재무부의 이날 제재는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가 공개한 반기보고서의 후속 성격으로 풀이된다. 당시 보고서는 “향후 추가 대북제재가 이뤄지면 사이버 공격의 심각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권고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제재가 북한이 9월 하순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물밑에서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인 시점에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행정부에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는 북한을 향한 미국의 압박 메시지로 풀이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 3차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띄우며 북한에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12일 취재진이 ‘올해 어느 시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것인가’라고 묻자 “틀림없이 그들은 만나기를 원한다. 나는 그것이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발언은 그가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면서 볼턴의 ‘리비아 모델’ 발언을 비판한 이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이 북한을 향해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이 “매우 큰 실수였다”고 평했다. 이는 미국 내 강경파가 주장하는 일괄타결식 핵 문제 해결 대신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배제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하순에 시작될 한국과의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연일 ‘동맹 때리기’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열린 공화당 소속 연방하원의원 만찬 연설에서 “우리는 엄청나게 부유한 나라들을 방어하는데 그들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들은 우리에게 거의 아무것도 내지 않는다”며 “그 나라들은 우리의 친구이고 동맹국이지만, 가끔은 우리의 동맹국이 우리를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나쁘게 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국가의 왕과 총리와 대통령에게 ‘우리가 왜 공짜로, 왜 비용의 아주 작은 부분만 부담하는 당신들을 보호해줘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대답을 못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고 그들도 이런 일이 일어나길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간)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 협상 과정에서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던 것에 대해 “매우 큰 실수”라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을 전격 경질한 직후 그의 대북 협상전략을 비판하며 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이견이 컸음을 확인한 것.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것은 매우 큰 실수였다”며 “좋은 언급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다피에게 일어난 일을 보라”며 “그 발언은 (북한 비핵화 협상에) 차질을 빚게 했다”고 했다. 볼턴 전 보좌관이 지난해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방안으로 제시했던 이른바 ‘리비아 모델’은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 방식으로, 북한이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던 모델이다. 미국은 리비아가 2003년 핵무기 포기에 합의하고 2년이 지난 뒤 경제적 보상을 이행했다. 당시 리비아 독재정권의 지도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2011년 반정부 시위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 은신 도중 과도정부군과 반(反)카다피 세력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이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을 때 우리는 매우 심하게 퇴보(set back)했다”며 “그가 리비아 모델을 언급해서 저지른 실수는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또 “나는 이후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말한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현명하지 못한 것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리비아 모델’을 세 차례나 거듭 언급하며 이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시했다. 특히 그가 카다피 정권의 결말을 언급하며 리비아 모델의 문제점을 비판한 것은 체제 안전보장을 요구해온 북한의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르면 9월 하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 이슈를 검토할 수 있다’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제재완화 요구가 먹혀들지 않자 이후 체제 안전보장을 앞세우며 대미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완전한 종료와 종전선언 등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가진 경제적 잠재력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러시아와 한국, 중국 사이에 있는 북한은 놀랍고도 큰 잠재력이 있으며, 북한 주민들도 놀라운 사람들이라는 기존 발언을 반복하며 “북한도 엄청난 무언가가 벌어지기를 원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 “가장 믿을 수 없는 실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