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225

추천

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연극23%
문화 일반17%
미술17%
무용15%
문학/출판12%
인사일반7%
음악5%
칼럼2%
역사2%
  •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 치장… 1500년전 신라의 여성은 누굴까

    6세기 전반 신라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장신구 일체가 착용된 상태 그대로 출토됐다.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를 한 상태로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3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고분 120-2호를 추가 정밀 발굴 조사한 결과 금동관 금귀걸이 은팔찌 은허리띠 금동신발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문화재청과 경북도, 경주시 공동 ‘신라 왕경 핵심 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은 올 5월 황남동 고분에서 금동 달개(금관에 붙이는 쇠붙이 장식)를 먼저 발견했다. 추진단은 2018년 5월부터 이 고분을 발굴 조사해왔다. 이날 오후 유튜브로 생중계된 황남동 고분 현장 설명회에서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피장자(被葬者)의 머리끝부터 금동신발까지 176cm여서 키는 170cm로 추정된다”며 “(발굴 장신구 중) 큰 칼이 없고 방추차(물레의 실을 꼬는 기구)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여성으로 추정되며 당시 왕족이나 귀족 등 최고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고 그 위로 3단의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 3개와 사슴뿔 모양 세움장식 2개를 덧붙인 모양이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경주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 중 가장 화려하다”며 “‘ㅜ’ ‘ㅗ’ 모양으로 뚫린 판이 있는데 세움장식 상단에도 같은 흔적이 일부 확인됐다. 이 판이 관모(冠帽)를 뜻하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금동관은 평평하게 접어 무덤 주인의 머리가 아닌 얼굴에 덮은 형태로 발굴됐다. 이런 형태의 발굴은 드문 사례로서 망자의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도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왼손 부분이 완전히 노출되지 않아 추가적으로 조사하면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다”며 “천마총 피장자처럼 모든 손가락에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 주인이 금동신발을 신은 채로 발굴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땅에 구덩이를 판 뒤 나무 덧널을 깔고 돌을 쌓아올리는 고분 양식이다. 이한상 대전대 고고학 교수는 “경주에서 금동관을 머리에 쓴 상태로 발굴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적은 거의 없다. 아마도 망자가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입혀서 관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며 “신라시대 사람들이 망자에게 어떻게 장신구를 착장시켰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 자료를 획득했다”고 평가했다.김민 kimmin@donga.com·정성택 기자}

    • 2020-09-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자연미술, 안면도 꽃지해변서 시작”

    1970년대 중반 청년 임동식(72)은 ‘한국미술청년작가회’ 소속 작가들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변에서 며칠 머물며 그들은 바다와 땅, 하늘을 캔버스 삼아 작품 활동을 했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충청도 중심의 지역 미술을 태동시킨 순간이었다. 이후 임 작가는 1980년대 홍명섭을 비롯한 지역 작가와 함께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결성하고 자연미술(표현 대상이 아니라 자연이 미술 안에서 직접 작용하는 예술)을 한국에 유입했다. 40년이 지나 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가 된 임 작가를 지난달 31일 충남 공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온 국민이 사랑하는 박수근 화백의 이름을 딴 상을 받으니 주변에서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자연미술이 시작된 순간이 궁금하다. “1975년 꽃지해변에서 전국광 작가는 할배바위에 수평선을 그리고, 나는 일정한 크기의 석고로 된 알을 만들어 해변에 깔았다. 파도소리와 바다의 수평선, 하늘이 어우러지는 모양에서 밀려오는 감동이 있었다. 이때 자연미술의 가능성을 처음 봤다.” ―‘야투’는 어떻게 결성했나. “1980년 공주로 내려와 대전의 홍명섭 류근영 등과 의기투합해 ‘금강현대미술제’를 열었다. 당시 모인 사람들은 저를 비롯해 모두 유명하지는 않지만 뭔가 하고자 하는 열망에 차 있었다. 홍명섭 선생이 ‘현장’이라는 말을 붙이고, 세미나도 열며 야투가 시작됐다. 야투는 농구 용어에서 차용했다. ‘내가 들로 무언가를 던지다’와 ‘들에서 나에게로 뭔가 던져 온다’는 뜻이다.” ―당시 미술계 상황은 어땠나. “서울시에서 짓고 있던 미술아카이브가 (미술품) 수집의 기점을 1970년으로 잡았다. 이때부터 한국 현대미술이 ‘국전파(國展派)’ 대 ‘반(反)국전파’ 구도를 벗어나 다원화했다고 본다. 나 역시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인 길목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을 많이 했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갔다. “카셀도쿠멘타(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전)가 한창 주목받고 신표현주의 운동이 독일 미술에 대두되는 시점이었다. 나는 오히려 유럽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각국의 민속미술에 관심이 갔다. 문화권마다 다른 미술의 양상을 비교하며 생각하는 기회였다.” ―박수근미술상 심사평 중에 ‘수상 전시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줬으면’ 하는 의견이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아카이브 자료와 관련된 내용이어서 포함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1970년대부터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일반적 풍경화부터 농사와 관련된 유화, 가족애 등을 담은 드로잉이 있다. 회화와 드로잉, 그 자체를 보여주는 전시를 구상 중이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려고 하나. “박수근 화백의 휴머니즘처럼 나와 내 가족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을 생각하고 있다. 1970년대 아버님이 편찮으신 것을 비롯해 개인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픈 형제의 조카를 어머니가 돌보는 모습이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담은 드로잉이 있다. 예술과 마을에 관계된 ‘원골 시리즈’나 농촌을 비롯해 그동안 그려온 고목 그림을 한자리에 모으고도 싶다.” ―앞으로 더욱 바빠지겠다. “신작과 병행해 다양한 내용의 활동을 펼치고 싶다. 박수근 화백을 비롯해 한국 미술사에 남은 훌륭한 작가들의 예술 행보에서 받은 감동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공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려시대 실존 승려 조각한 희랑대사좌상 국보로 승격

    고려시대 실존했던 승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은 해인사의 조각상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999호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 활동한 승려 희랑대사(希朗大師)를 묘사한 이 조각은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존했던 고승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이자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이다. 조선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승려로, 해인사 희랑대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한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줘 왕건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해인사에 둔 것으로 전해진다. 조각상 가슴에는 폭 0.5cm, 길이 3.5cm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독특하다. 해인사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가슴에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흔적이라고 한다. 희랑대사의 별칭이 ‘흉혈국인(胸穴國人·가슴에 구멍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흔히 고승의 가슴이나 정수리에 난 구멍은 신통력을 상징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조사에 따르면 작품은 앞면은 건칠로 만들고,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했으며 후대의 변형 없이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칠 기법은 삼베 등에 옻칠을 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으로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유행한 기법으로, 국내에 남아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자칭 ‘예술 테러리스트’, 알고보니 ‘착한 레지스탕스’

    영국 브리스틀 출신의 예술가 뱅크시가 최근 난민 구조선에 재정 지원을 한 사실을 밝혀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뱅크시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예술계에서 큰돈 벌었다는 사람들처럼 나도 요트를 샀다. 오래된 프랑스 군함이고 이름은 루이즈 미셸”이라고 밝혔다. ‘루이즈 미셸’은 지중해에서 유럽 땅을 향해 생존을 걸고 표류하는 보트 피플을 구호하는 구조선이다. 뱅크시는 거리의 벽화 그라피티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스트리트 아티스트다. 세계에 많은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있지만 미술사에 남을 작가는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정도다. 미술계에서는 뱅크시가 그렇게 기억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얼굴도 나이도 공개한 적 없는 뱅크시는 어떻게 미술계에서 생존하는 것일까.○ 뼈 있는 깜짝 농담뱅크시는 경매에서 낙찰된 자신의 작품을 곧바로 파쇄해 대중의 눈길을 끌거나, 자신의 모습과 동선을 비밀에 부친 상태에서 작품을 ‘깜짝 발표’한다. 이런 충격요법 또는 스캔들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기에 뼈 있는 농담, 즉 블랙코미디를 가미한다. 2017년 뱅크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요르단강 서안 분리장벽 옆에 호텔을 연다. 이름은 ‘월드오프 호텔(Walled Off Hotel·벽으로 막힌 호텔)’, 홍보 슬로건은 ‘세상 최악의 뷰(view·전망)를 자랑합니다’였다. 막사처럼 꾸민 저렴한 호텔 객실에는 베개싸움 하는 군인들 벽화가 그려졌다. 미국 뉴욕 최고급 호텔 ‘월도프(Waldorf)’의 디스토피아 버전이었다. 2018년에는 브리스틀에 디즈니랜드의 ‘지옥 버전’인 디즈멀랜드(Dismaland·절망의 땅)를 만든다. 호박마차가 전복돼 바닥에 고꾸라진 신데렐라, 멀미를 일으킬 듯한 인어공주 동상이 등장했다. 이곳의 슬로건은 ‘어린이에겐 적합하지 않은 가족 공원’. 뱅크시는 디즈멀랜드를 공개하며 “테마파크는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회와의 연결고리문제는 스캔들 그 후다. 대중을 놀라게 하는 데 그친다면 선정주의에 불과하다. 뱅크시에 대해 비판도 ‘쇼맨십이 강하다’ ‘진지한 주제를 너무 유머러스하게 다룬다’ 등이다. 이 같은 비판에 맞서는 뱅크시만의 방법은 사회적 이슈와 작품의 연결고리를 맺는 일이다. 지난달 21일 요르단강 서안 지역 투어가이드들은 ‘뱅크시 헌정 전시’를 열었다. “뱅크시 덕분에 ‘대안관광’이 활성화됐다”며 뱅크시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곳곳에 그린 벽화 사진 20점을 내건 소규모 전시였다. 뱅크시의 그라피티와 월드오프 호텔을 보러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경기가 나아졌기 때문이다. 앞서 뱅크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 작품의 판매 수익 220만 파운드(약 35억 원)를 뇌졸중 병원 건립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디즈멀랜드 전시가 끝난 뒤에는 해체된 각종 자재를 프랑스 칼레의 난민캠프에 기부했다. 국제 미술계에서는 예술 작품의 가치를 크게 미술사적, 미학적, 미디어적, 사회적 가치로 분류한다. 미술사적 가치는 세대가 지나도 기억될 역사성이 있느냐, 미학적 가치는 철학적으로 가치가 있느냐를 따진다. 반면 뱅크시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미디어적 가치로 높게 평가받는다. 여기 루이즈 미셸 지원같이 국제적 이슈의 현장에 뛰어들며 사회적 가치도 높여가고 있다. 영리한 작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흑인의 역사 다시 살려낸 ‘블랙팬서 ’보즈먼”

    영화 ‘블랙 팬서’의 주인공 채드윅 보즈먼이 갑작스레 숨졌다는 소식에 미국 각계에서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대장암 투병 중이던 보즈먼은 29일(현지 시간) 43세로 숨을 거뒀다. 보즈먼은 2016년 암 진단을 받았지만 4년간 공개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그가 백악관을 찾은 것은 2013년 영화 ‘42’에서 사상 첫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을 연기할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는 데 사용했고, 그 모든 것을 투병의 고통 속에서 이뤄냈다.”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는 “그의 진정한 힘은 우리가 스크린에서 봐 온 것보다 컸다”고 추모 글을 남겼다.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 후보인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보즈먼의 마지막 트윗은 해리스 의원의 부통령 후보 지명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보즈먼은 미국의 역사적 흑인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흑인의 정체성을 대변한 인물로 꼽힌다. 보즈먼은 로빈슨 역을 비롯해 영화 ‘마셜’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인 서굿 마셜 역과 ‘겟 온 업(Get on up)’에서 솔(soul) 가수 제임스 브라운 역 등을 맡았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3세는 “은막에서 흑인의 역사를 다시 살아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 팬서’에서 지구 최강의 기술을 보유한 아프리카 제국 ‘와칸다’의 국왕 티찰라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슈퍼 히어로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블랙 팬서가 흑인 팬들에게 힘과 희망, 자부심을 상징했다”며 보즈먼에 대한 추모 열기를 설명했다. 그가 숨지기 전, 연인인 가수 테일러 시몬 레드워드와 결혼한 사실도 유족을 통해 뒤늦게 밝혀졌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의 동료들도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는 생과의 사투 속에서도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헐크’ 역의 마크 러펄로는 “그의 위대함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예술계서 큰 돈 벌면 요트 산다며?”…난민 구조선에 기부한 뱅크시

    “예술계에서 큰 돈 벌었다는 사람들처럼 나도 요트를 샀다. 오래된 프랑스 군함이고 이름은 루이즈 미셸이다.” 영국의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가 28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트를 샀다고 밝혔다. 2018년 경매에서는 15억 원에 팔린 자신의 그림을 파쇄 하더니, 이번엔 ‘플렉스’를 하려는 걸까? 사실은 정반대다. ‘루이즈 미셸’은 지중해에서 표류한 ‘보트 피플’, 난민을 구호하는 구조선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뱅크시는 지난해 9월, 구조선 여러 척을 운영한 선장 피아 클렘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클렘프는 최근 수 년 간 선장으로 활동하며 난민 수천 명을 구조한 활동가다. 이 편지에 따르면 뱅크시는 난민 위기를 다룬 작품으로 번 돈을 자신이 가질 순 없다, 구호활동에 써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안녕 피아, 당신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나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로, 최근 난민 위기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걸로 번 돈을 내가 가질 순 없다. 새 배를 사거나 필요한 데 써주면 좋겠다. 당신의 생각을 알려주길 바란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클렘프는 뱅크시에게 재정적 지원만 받고, 운영은 활동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 세관이 소유하고 있던 작은 배에는 분홍색 페인트와 뱅크시의 트레이드마크 ‘소녀’ 그림이 그려졌다. 지난해 8월 스페인에서 출항한 이 배는 유럽의 활동가 10명이 선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법을 지키며 위기에 처한 사람은 편견 없이 구한다’는 원칙으로 지중해를 오가며 이미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뱅크시가 이를 뒤늦게 알린 것은 배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루이즈 미셸호는 트위터를 통해 “선원 10명과 난민 219명과 배에 있다. 탑승 인원이 너무 많고 구조선 옆 고무 보트 때문에 더는 움직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유럽 각국 구조 당국에 연락을 취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며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루이즈 미셸 호의 상륙 및 이주민 하선을 촉구했다. 이후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가 이주민 49명(여성 32명, 어린이 13명, 남성 4명)을 구조했다. 루이즈 미셸호에 남은 승객은 130명, 이 배의 최대 탑승 인원은 120명이다. 유엔에 따르면 26일 리비아 해안에서 난민 선박의 엔진이 폭발해 어린이 5명을 포함한 난민 45명이 사망했다. 올해 지중해를 건너려다 바다에서 사망한 난민은 최소 500여 명에 이른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0-08-30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우리는 ‘가짜 빵’을 먹고 있다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갈색 빵 한 조각은 최고의 아침식사다.” 17세기 인간의 자연권을 옹호한 영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의 말이다. 한국인에겐 밥이 최고의 음식이라면, 서구에선 빵의 미덕을 말한 사상가가 많았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갈색 빵을 ‘괜찮은 와인과 함께’ 먹으면 훌륭한 식사가 된다고 찬양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먹는 빵은 그 시절과 다른 ‘가짜 빵’이라면 어떨까? ‘진짜 빵’은 밀가루, 물, 이스트와 소금 한 자밤이면 충분히 만든다. 그런데 영국에선 1961년부터 ‘콜리우드 제빵 공정’으로 빵을 대량 생산한다. 이 공정은 고속 분쇄기와 값싼 곡물, 마법 같은 화학 물질을 사용해 두 배 빨리 빵을 만든다. 그 속엔 곰팡이 제거제, 살충제로 재배한 대두, 샴푸에도 첨가되는 유기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가짜 빵’의 불편한 진실이다. 점심 메뉴부터 건강을 위한 식단 관리까지. “오늘 뭐 먹지?”는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고민이다. 책은 이 고민을 철학의 핵심 주제로 살려낸다. 영국의 철학자인 저자는 현명한 식생활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1. 디테일이 중요하다. 2.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3. 크리스털 꽃병을 깨뜨리지 마라. 첫 번째 원칙은 쉬운 해결책이나 단순한 생각에 저항하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채소로 섭취하는 비타민은 영양제와 질적으로 다르다. 두 번째는 식이요법과 관련된다. 한 가지 음식을 끊거나 줄이면 어딘가에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균형에 관한 이야기다. 정밀한 부품이 섬세하게 배열된 인간의 몸은 불가사의할 만큼 복잡하다. 이런 몸에 극단적 굶기 등의 망치질로 균형을 깨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 역사 속 흥미로운 음식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전복의 철학자’ 니체는 “양심 없는 독일 음식 때문에 소화불량이 독일의 정신이 되었다”며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식단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는 과일, 채소를 멀리하는 육식 위주의 식단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미래파’ 예술가들은 괴상한 식단을 자랑했다. 닭의 배 속에 자동차 부품을 넣고 오븐에 굽거나,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이혼한 달걀’이라고 이름 붙였다. 저자는 이들의 극단적 생각이 파시즘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식품 기업들이 숨기는 정보도 여과 없이 폭로한다. 이를테면 현대의 ‘기능성 밀가루’에는 젤라틴이 포함된다. 젤라틴은 돼지고기와 쇠고기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나 이슬람교, 유대교 신자에겐 중요한 정보다. 그럼에도 성분표에는 기능성이라는 이름만 표기되며 젤라틴은 누락된다. 식재료에 관한 문제부터 잘못 알려진 상식 등 실용적 내용과 철학적 지식을 맛있게 버무렸다. 이를 통해 ‘먹기’의 철학적 태도를 가꾸는 방법을 이야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제5회 박수근미술상 임동식 작가

    임동식 씨(75·사진)가 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25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서울디자인재단 박수근미술관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6년 제정했다. 충남 출신인 임 작가는 1981년 공주 금강에서 결성한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 창립 멤버로 자연물을 활용한 행위·설치 예술을 실험했다. 독일 함부르크 유학 시절엔 야투를 매개로 국내외 자연미술 작가 교류를 주도했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현존 最古 간행본’ 삼국유사 권4, 5 국보됐다

    현존하는 삼국유사 간행본 중 가장 오래된 ‘범어사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지정됐다. 26일 문화재청은 보물 제419-3호 ‘삼국유사 권4∼5’를 국보 제306-4호로 승격했다고 밝혔다. 부산 범어사가 소장하고 있는 ‘삼국유사 권4∼5’는 전체 5권 중 4, 5권만 남아 있다. 범어사 초대 주지 오성월(1865∼1943)의 옛 소장본으로 1907년 범어사에 기증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유사’는 고려 일연 스님(1206∼1289)이 편찬한 책으로 고려시대 판본은 알려지지 않았다. ‘범어사본’은 국보 제306호 ‘송은본’(3∼5권)과 국보 제306-3호 ‘파른본’(1, 2권)에 누락된 28∼30장이 수록돼 있어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친위부대의 본영을 채색화로 그린 ‘장용영 본영도형’은 보물 제2070호로 지정됐다. 채색화 1점과 평면도안인 ‘간가도’ 2점으로 구성돼 있다. 또 애기부처로 알려진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등 총 8건이 보물로 신규 지정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의 자연속에 녹아든 따뜻한 휴머니즘

    “제 친구 우평남과 공동 출연하는 다큐멘터리를 열흘째 찍다 하루 쉬는 날이었어요. 뙤약볕 속 촬영에 지쳐 낮잠이 들었는데, 박수근미술관 엄선미 관장님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전시를 같이 하자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죠.” 26일 오후 충남 공주 작업실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은 임동식 작가(75)는 자신이 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응모하지도 않았고 후보에 오른 것도 전혀 몰랐다는 것. 놀라움이 가신 뒤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는 느낌이 몰려왔다고 했다. “제가 공주고 미술부 학생 때 국전에서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는 그분의 아들 박석남 씨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지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정감 깊은 세계를 담은 박수근 화백의 이름을 딴 상을 받아 과분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임 작가는 서양 미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국내 미술계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며 주체적인 예술 어법을 모색하고자 했다. 1980년 홍명섭 등과 함께 ‘금강현대미술제’를 개최했고, 그 이듬해 여름에는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결성해 야외 현장에서 자연물을 이용한 퍼포먼스와 설치예술을 하는 자연미술을 시도했다. 같은 해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해 야투의 작업을 현지에 소개했다. 이후 외국 작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1991년)도 함께했다. 다만 국내 미술계에서는 조명을 받지 못하다 임 작가가 최근 서울시에 자신의 아카이브 1300여 건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미술사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박수근미술상운영위원회는 상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현재 미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선임 학예연구관, 나희영 서울문화재단 교육팀장,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 최태만 국민대 미대 교수, 김진엽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추천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심층 토론을 거쳐 후보 작가 17명을 선정했다. 고충환 미술평론가,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이영욱 미술평론가, 윤동천 서울대 미대 교수,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이 17명을 심사해 최종 수상 작가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임동식의 작품세계에는 박수근 선생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휴머니즘과 자연이 녹아 있다. 작품의 주제와 형식적 측면에서 박수근의 작품세계와 맥락이 이어진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조은정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은 “박수근이라는 인물에 가까운 예술적 태도, 삶의 태도, 예술성에 부합하는 작가를 선택하고자 했다”며 “박수근미술상이 한 명의 예술가를 조명하고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의미가 있겠다”고 말했다. 임 작가에게는 상금 3000만 원과 조각상패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다. 임 작가의 개인전은 내년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문과 양구 박수근미술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성락원→서울 성북동 별서, 이름 바꿔 문화재 재지정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정원으로 명승 제35호인 성락원(사진)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해제하고 ‘서울 성북동 별서’(명승 제118호)로 재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심의 결과 성락원을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이 아니라 고종 때 내관이자 문인 황윤명(1844∼1916)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된 데 따른 조치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성락원에 대한 고증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이 정원의 문화재적 가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문헌 검토와 현지 조사를 마친 문화재위원회는 “이 공간이 고종 이전에도 경승지(景勝地)로 널리 이용됐고 얼마 남지 않은 조선시대 민가 정원으로서 학술적 가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황윤명의 유고 문집 ‘춘파유고’에 기술된 내용 등을 고려해 명칭을 서울 성북동 별서로 결정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화려한 북아프리카 이슬람 미술의 유혹

    아랍어와 터번, 낙타, 히잡과 턱수염에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까지…. 이태원에서도 보기 힘들 ‘마그레브(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문화권) 폭탄’이 서울 종로구 바라캇컨템포러리에 떨어졌다. 낯선 문화 이미지임에도 미술계에서 ‘저세상 힙(hip)’이라며 입소문이 났다. 모로코 출신 작가 하산 하자즈(59·사진)의 개인전 ‘다가올 것들에 대한 취향’ 이야기다. 눈에 띄는 공간은 전시장 2층에 마련된 ‘부티크’다. 화려하고 직설적인 색채의 이국적 조합은 마그레브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여기에 익숙한 대중문화를 차용해 거부감을 없앴다. 이를테면 모로코 전통 신발인 바부슈를 루이비통과 나이키 로고를 결합해 만들거나, 바비 인형에 전통 의상을 입혔다. 1960년대 팝아트를 차용한 ‘모로칸 팝아트’인 셈이다. 여기에 실제 상점처럼 작품을 판매한다. 부티크 내 티셔츠, 신발, 티 박스 등을 작가가 지역 장인들과 협업해 에디션 상품으로 만들었다. 여러 점을 대량 생산하기에 가격도 대부분 100만 원 이하. 가장 저렴한 티 박스는 4만 원이다. 가격표도 비치돼 있다. 갤러리 측은 “바부슈, 나이키 로고가 그려진 에코백, 도록은 준비한 물량이 모두 팔려 예약 주문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예술 상품은 미술관 내 상점에서 판매된다. 그런데 하자즈는 작가가 스스로 ‘굿즈’를 만들고 갤러리에서 작품의 일부로 판매하고 있다.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자즈의 부티크는 모로코에서도 운영 중이다. 시각적 화려함은 국제 미술계의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전시장과 작품에서 보이는 색상 조합은 마그레브의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풍경을 토양 삼아 태어났다.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화려함이다. 같은 이유에서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이 최근 미술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10대 시절 영국으로 이주한 작가는 1970년대 후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RAP를 만들고, 힙합 레게 등을 즐기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영국 내 하위문화를 이끌었다. 1980년 후반부터 자신의 뿌리를 찾아 사진에 담고, 상품과 결합하면서 ‘모로코의 앤디 워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욕망없인 살 수 없는게 인간, 그 욕망에 순교하는 삶 그려

    멀리서 보면 붉은 카펫과 꽃,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화려한 풍경이다. 그런데 가까이 보면 나뭇잎 대신 돈이 매달려 있고, 벌거벗은 여인은 망치로 손을 내리친다. 칼이 널브러져 있고, 유혈이 낭자한 잔혹 정원. 화려함을 보고 달려든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이 그림은 박재철 작가(52·사진)의 ‘붉은 카펫’이다. 그림의 한가운데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신혼부부가 보인다. 얼굴은 화면 밖으로 잘렸다. 결혼식의 기억은 저편으로 밀려나고 회색 남녀는 피를 흘린다. 21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결혼한 남녀가 갈라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 더플럭스에서 열리는 박 작가의 개인전 제목이 ‘붉은 카펫―가족 공동체의 욕망’이다. ‘붉은 카펫’을 이야기하기 전에, 작가는 화면 아래 빼곡히 놓인 책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넣은 그림, ‘봄은 아프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가난한 시골에서 다섯 명의 누나를 둔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이란 이유로 누나들은 전부 초등학교만 다니고 내 학비를 벌었다.” 그림을 잘 그렸던 막내는 홍익대 동양화과에 진학한다. 1999년 첫 개인전을 열고 주목도 받았다. 그러나 ‘우리를 대신해 성공해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가족의 압박이 채무처럼 돌아왔다. 숨 막힐 듯한 가족 관계가 죽을 것같이 힘들어 끊었다. 살을 잘라내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작가 생활도 계속할 수 없었다. “도피하듯 결혼을 했다. 아파트단지의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뿌리도 가지도 잘린 채 인간을 위해 꽃을 피우라고 심어진 나무가, 자신의 욕망은 거세된 채 가족의 욕망을 짊어진 인간으로 보였다.” 개인의 욕망을 배제한 관계가 가능할까?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한 틀이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사는 것이 지옥 같았다’던 작가는 2015년 다시 붓을 잡았다. “그땐 3년 안에 죽을 것 같았다. 이왕 죽을 거라면 내 얘기를 해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고통을 파고들며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그려내는 중이다. “사람은 욕망 없이는 살 수 없지 않나. 어쩌면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순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전시는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구직자 다빈치의 이력서가 궁금해

    ‘돈(Don)에게; 조만간 제 조각 작품을 선물로 받게 될 거예요. ‘미국 여성 예술제’에 냈던 거예요. 머지않아 뉴욕에서 만나길 고대하고 있어요. 안부 전하며, 야요이.’ 1974년 구사마 야요이가 쓴 이 편지의 수신인은 도널드 저드(1928∼1994)다. 1959년 구사마가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저드가 평론을 썼다. 저드는 구사마의 작품이 ‘새로운 그림’이라 극찬하고 한 점을 200달러에 구입했다. 두 사람의 끈끈한 우정을 한 장의 편지가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유명 예술가들의 가장 은밀한 기록, 편지를 모았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다빈치의 ‘이력서’부터 자신의 개념미술 작품이 동생에게 쓰레기로 취급돼 버려진 뒤샹의 이야기까지 600여 년 미술사 속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요즘엔 좀처럼 보기 힘든,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와 사적인 드로잉을 보는 재미가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오바마의 부통령’ 바이든은 누구인가

    올해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의 관심사는 또다시 트럼프냐, ‘탈(脫)트럼프’냐일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20일(현지 시간) 델라웨어 연설로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조 바이든이 있다. 아직까지는 바이든이 오바마 정부 부통령이었다는 사실만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관계라는 렌즈로 바이든을 들여다본다. 2008년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CBS는 ‘조바마(Joebama)’ ‘오바이든(Obeiden)’같이 두 사람의 이름을 조합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백악관을 떠난 뒤인 2018년 두 사람이 갑자기 베이커리에 나타나 샌드위치를 함께 먹는 모습에 ‘그립다’고 향수를 느끼는 미국인도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과 오바마는 태생부터 성격까지 정반대인 이질적 조합이었다. 오바마가 초선 상원의원이던 2005년, 바이든은 32년차 베테랑 의원이었다. 바이든의 연설을 지켜본 오바마는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며 ‘모터가 달린 입’이라고 경악했다. 오바마가 상대의 내면을 파고드는 신중한 성격이라면 바이든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외향성 인간이었다. 그런 오바마는 바이든의 솔직함을 눈여겨봤다. 시한폭탄 같은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며 ‘뇌와 입 사이에 필터가 없다’는 평가도 듣는 바이든. 그러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인간적인 모습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 결국 부통령 후보로 선거운동을 함께한 바이든은 딱딱하고 진지한 오바마의 캐릭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책은 두 정치가가 정치에 입문할 무렵부터 마지막 공식 일정을 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정책의 성패를 분석할 생각은 없다’며 오히려 위기의 순간 두 사람이 어떻게 대립하고 화합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바이든이라는 인물의 인간적 면모에 서술이 집중돼 대통령 후보로서의 정치관이나 외교정책관은 유추해보는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4월 ‘버락 앤드 조(Barack and Joe)’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해 워싱턴포스트의 주목할 만한 논픽션 50선에 선정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연극계 덮친 코로나… 극단 ‘산’ 15명 감염

    서울 성북구 한성대 인근에 있는 한 중견 연극극단에서 배우 등 관계자 15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다. 해당 연극은 전면 취소됐으며, 확진된 배우 가운데 일부가 출연하는 TV 드라마 등은 촬영이 중단됐다. 극단 ‘산’은 2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극단 배우 및 스태프 41명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 1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극단은 19일부터 연극 ‘짬뽕&소’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허동원 씨가 17일 코로나19로 확진돼 모든 관계자가 검사를 받았다. 현재 7명은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나머지 19명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확진자 가운데는 영화 ‘군함도’ 등에 출연해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 김원해 씨도 포함됐다. 김 씨의 소속사인 ‘더블에스컴퍼니’는 이날 “김 씨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김 씨와 동행했던 매니저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출연 배우는 물론이고 관계자까지 집단감염되며 30일까지 예정됐던 연극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윤정환 극단 산 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방역을 준수하며 준비했는데도 이런 상황이 발생해 죄송하다. 더 이상 전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수 확진자가 발생해 문화예술계가 받을 타격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고 아프다”고 전했다. 극장은 물론이고 서울 종로구에 있는 연습실까지 방역을 마친 당국은 확진자들의 감염 경로 등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방송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확진된 배우 등이 TV 드라마 등에 출연하며 방송 관계자들과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연예기획사 ‘좋은사람 컴퍼니’에 따르면 배우 오만석 씨는 17일 확진된 허동원 씨의 메이크업을 맡았던 분장사와 2시간가량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분장사 역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다. 오 씨는 20일 자신의 SNS에 “신속하게 검사를 받으러 왔다. 내일 오전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로 인해 오 씨가 출연하는 JTBC 예능프로그램 ‘장르만 코미디’도 촬영이 중단됐다. 배우들이 출연했던 TV 드라마들도 촬영을 멈췄다. KBS는 “배우 허동원 씨가 출연하는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방영 예정)과 배우 서성종 씨가 출연하고 있던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의 촬영이 전면 중단됐다”고 밝혔다. 드라마 촬영에서 허 씨와 접촉한 배우 서이숙 씨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로 인해 서 씨가 출연하는 tvN의 새 드라마 ‘스타트업’도 촬영을 일시 중단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김민 기자}

    • 2020-08-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띄어 앉기는 임시처방… 연금-보험 틀 갖춰야 공연계 버텨”

    ‘어떠한 어려움에도 쇼는 계속된다’고 합심해 만든 공연마저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을로 연기됐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0 뮤지컬 갈라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 이야기다. 피엠씨프러덕션, 신시컴퍼니, 클립서비스, 오디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 CJ ENM, 에이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대표 제작사 8곳이 합심해 준비한 공연이다. 추진위원장을 맡은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52)를 19일 만났다. 한국 뮤지컬계에서 대표 제작사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건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 코로나19 때문이다. “공연이 하루아침에 멈추니 위기감이 몰려왔습니다. ‘한번 모이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고요. 논의의 시작은 갈라 콘서트였지만, 더 중요한 현안이 많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입니다.” 신 대표가 언급한 현안은 표준계약서, 제작 방식 등에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에 모인 대형 제작사는 물론이고 중소 제작사도 함께할 예정이다. 신 대표는 그간 앞만 보고 달려오며 간과한 문제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했다. “회사마다 계약 방식도 조금씩 달랐고, 공연을 올리기까지 제작사가 지녀야 할 막중한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았습니다. 갖춰지지 않은 시스템이 너무 오래 지속됐죠.” 그러면서 ‘브로드웨이 시스템’을 말했다. “뉴욕은 직군별 조합이 잘 정비돼 있습니다. 이들이 개런티 상승 요인 등 세세한 부분을 협의하죠. 조합 정회원이 되기까지 심사도 엄격하고요.” 공연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프로듀서에게는 막중한 책임을 요구한다고 했다. “미국에선 사전 제작비를 모두 모아야만 공연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후 오픈런으로 공연을 열어 수익이 나면 계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멈추죠. 그런데 일단 공연을 열고 보는 국내 제작 시스템은 흥행하지 못했을 때 법적 분쟁으로 가는 구조입니다.” 쉽게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상황에서 성공하면 괜찮지만 실패하면 피해자가 무수히 양산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모인 제작사들은 이런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편 신 대표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띄어 앉기’나 ‘극장 폐쇄’ 정책은 장기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띄어 앉기로 수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아예 셧다운을 결정했습니다. 배우 조합 등에서 오랫동안 구축한 연금과 보험으로 지탱하고 있죠. 한국은 이런 시스템이 없으니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공연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는 공연계가 장기적 관점에서 건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뮤지컬은 산업인데 정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예술이란 틀 속에 가두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앙테르망’(프리랜서를 위한 연금제도) 같은 제도가 생기면 제작자도 합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거든요.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길위에 발자국 찍는다, 이름없는 영혼을 위해…

    《온몸에서 나오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20세기 다빈치’ 요제프 보이스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며 경계를 허물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박제된 미술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예술가 김주영(72)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에 안고 길 위에서 스스로 붓이 되길 자처한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김주영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30대 후반 홍익대 미대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했다. 강의실 앞에서 한 교수를 기다렸다. 그 교수를 졸라 미학 수업을 들었다. 탈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였다. 운동화와 청바지만 남기고 모두 버린 삶을 살았다. 굶기를 밥 먹듯 했고 버려진 건물에서 작업도 했다. 김환기 화가의 부인 김향안 여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해준 덕에 얼마간 버텼으나 이내 노마드(유랑) 생활로 돌아갔다. 그의 방황은 태생적 조건에서 출발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 증발했다는 걸 성인이 돼서 알았다. ‘김주영’은 본명이 아니었고, 어릴 때 크레용을 주며 혼자 놀라고 했던 어머니의 당부는 정체를 들킬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주영이 놓인 삶의 조건은 6·25전쟁이라는 한반도의 비극에서 출발한다. 이름도 없는 아버지. 역사의 수레바퀴에 송두리째 흔들린 개인의 삶. 1994년 파리 베르나노스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그는 무명의 기생을 위한 제식을 올린 뒤 수십 년간 이름 없는 영혼을 위로하는 노마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그는 언제나 흰 광목천에 검은 먹으로 발자국을 찍는다. 손에는 한 줌의 쌀이나 흙, 재가 들려 있다. 스스로 낸 길 끝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며 크고 작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그를 유럽에선 ‘동양에서 온 무당’이라며 신기하게 여겼다. 서양 문명의 한계를 본 그는 2006년 귀국했고, 경기 안성 시골에 정착했다. 여전히 지구를 캔버스 삼아 스스로가 붓이 된 그는 평면과 문(門), 벽과 창(窓), 흑과 백, 바닥과 거울 등 충돌하는 소재를 통해 조형 언어를 생성해낸다. 모래성을 쌓았다가 허물듯 김주영은 예술을 한다. 그의 예술은 흰 천 위 발자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김주영 작가::▽1948년 충북 진천 출생▽1972년 홍익대 회화과(석사)▽1992년 프랑스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박사)▽1994년 프랑스 파리 베르나노스 갤러리 ‘어느 기생의 영혼祭’▽2000년 서울 남대문시장-DMZ ‘떠도는 무명의 영혼들이여’▽2010년 중국 ‘송화강은 흐른다―신경 고모’▽2019년 충북 청주시립미술관 개인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땅을 캔버스로 붓이된 작가 김주영[한국미술의 딥 컷]

    손끝이 아닌 ‘온 몸에서 나오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1921~1986)는 이미 미술관뿐 아니라 대학 강단, 사회단체, 정당(녹색당) 등 곳곳을 누비며 삶 자체가 예술임을 보여주고 ‘20세기 다빈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르네상스’나 ‘모더니즘’ 같은 허영적 미의식에 얽매여 박제된 미술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한국의 현대미술가 김주영(72)의 예술은 흰 광목천 위에 찍힌 검은 발자국이다. 이 단순한 몸짓이 예술인 것은 그것이 그녀의 삶과 온 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보이스의 ‘펠트 수트’와 벨기에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의 ‘산책’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자신의 삶과 한국의 역사,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버무린 한국 작가 김주영의 예술 세계를 소개한다.● 길 위에서 스스로 붓이 되다2009년 동유럽 불가리아의 초원. 카라반과 임시 주거촌이 만들어진 ‘노마딕 빌리지’ 한 가운데서 김주영 작가가 흰 광목천을 펼쳤다. ‘노마딕 빌리지’는 ‘길 위에서 작업하다’는 콘셉트로 예술가들이 유럽 일원을 이동하며 함께 생활하고 작업하는 프로젝트다. 오스트리아 슈미에드(Schmiede) 재단 후원으로 이뤄진 프로젝트에 김주영 작가도 참여했다.그는 빈 땅에 스스로 만든 흰 광목천 길 위로 검은 먹을 칠한 발자국을 찍어 나갔다. 길 끝에 도착한 곳은 ‘비밀 정원’. 작가가 노마딕 빌리지에 도착하고 열흘 동안 가꾼 불모의 땅이다. 조약돌로 50X100cm 구역을 경계 짓고 매일 물을 주었더니 신기하게도 풀이 돋아났다.이 길 앞에 선 작가는 땅에 완전히 엎드린다. 그리고 양팔을 십자로 벌렸다 머리 위로 모으고 반쯤 일어나, 자연의 신에게 쌀 한줌을 바친다. 김주영 작가의 행위 예술 ‘쌀의 길’이다. 이렇게 흰 광목천을 펼치고, 손에는 흙이나 재를 담은 채 발자국을 찍으며, 땅 위에 엎드리며 제식을 올리는 행위는 김주영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러한 퍼포먼스가 어떻게 예술 행위가 되느냐는 것이다. 방점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수많은 맥락과 함의에 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작가의 ‘노마딕 프로젝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 의식은 한국의 비극적 근대사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얽히면서 탄생한 작품이다. ● 문(門)의 이편과 저편작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사주신 크레용과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유화와 누드모델을 처음 접하고, 대학원 연구조교와 강사 생활 시절엔 기하학적 그림과 검은색 모노크롬 작업을 했다. 일요일에는 ‘홍익일요화우회’ 일을 하며 풍경화도 그렸다.이중섭의 주치의였던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유석진 교수 밑에서 임상예술요법(예술 치료)을 연구하면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 때 나온 모티프가 바로 ‘문’이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문은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가는 초현실적 상징이다. 1986년 파리로 이주한 후 박사논문으로도 이어졌던 이 모티프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너무 불충분한 이 세상의 수많은 모순들을 생각하며 상상한 ‘저편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과 같다. 모든 문제가 풀어질 것 같은 그런 동경의 세계가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구운몽’의 꿈 속 개미굴 저편의 세계 혹은 무릉도원처럼. 나 스스로를 지탱하게 하는 내 몸 속 집 같은 곳이다.”그가 말하는 ‘모순’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는 물론 인간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이다. 또 하나는 미시적 관점에서 작가의 태생적 조건이 자아낸 역사의 모순이다. ● ‘신경 고모’ 이야기그는 30대 초반부터 홍익공업전문대에서 강의를 시작하고, 1982년 당시 뉴욕에 있었던 환기재단 공모에서 입상할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였다. 그런데 1986년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프랑스로 떠난다. 이 때부터 시작된 노마드(유랑)의 삶은 프랑스에서 독일 인도 네팔 몽골과 한국의 DMZ, 다시 중앙아시아와 터키로 수십 년간 이어졌다. 유랑이 시작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내 진짜 이름은 김주영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내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좌익 활동을 하다 증발했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 알았다. 어머니의 철저한 증거인멸로 나는 그 존재조차 몰랐다. 어릴 때 어머니가 나에게 크레용을 쥐어 준 것은 우리 가족의 정체가 탄로 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내 본명이 ‘현선영’임을 알게 된 것이 파리행 즈음이다.”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 그가 겪었던 지진과 같은 모순은 사실 분단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도 맞닿아 있다. 이 모순과 고통을 때로는 깊이 파고들고, 또 때로는 주변과 세계로 확장하며 김주영의 작품은 이어졌다.2000년 남대문시장과 DMZ로 이어진 작업 ‘떠도는 무명의 영혼들이여: 등잔불 祭’와 2010년 노마드 프로젝트 ‘송화강은 흐른다: 신경 고모’는 작가의 개인사와 연결된다.DMZ 프로젝트 당시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름 없이 벌판에 버려졌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찾아보고 싶다. 체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소멸될 수 없는 끈질긴 생명의 투쟁을 담겠다”고 밝혔다. 작가는 DMZ를 따라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곳에서 호롱불을 켜고 제식을 올리며 남은 재를 상자에 담았다.‘송화강은 흐른다: 신경 고모’에서는 중국 신경에서 남편을 만난 엄마, ‘신경 고모’(친척들이 작가의 어머니를 부르던 호칭)의 이야기를 추적해갔다. 하얼빈 장춘 길림으로 이어진 여정에서 그는 731부대 박물관, 의열단 결성 장소, 송화강 등을 찾아 무명의 영혼을 위한 제식을 올린다. 돌아온 뒤에는 자개장농 속에 어머니의 유품과 데드마스크를 놓고 에폭시로 굳혀 박제했다.● 쌀과 흙과 한줌의 재1986년 작가는 삶의 풀리지 않는 모순을 안고 프랑스로 떠난다. 그 곳에서 몇 번의 중요한 만남을 경험하는데, 그 중 하나가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 여사(1916~2004)였다. 4년 전 환기재단 공모에서 수상한 젊은 작가를 김향안은 기억했다. 그리고 파리8대학에 진학한 김주영에게 장학금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때로는 불법 점거(squat)한 건물을 화실 삼았던 그에게 큰 도움이었다.또 다른 만남은 노마디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였다. 막 파리에 도착해 프랑스어도 유창하지 못했던 김주영은, 들뢰즈의 강의실 앞에 기다리다 그에게 강의를 듣게 해달라고 졸랐다. 동양인 예술가의 절박함을 본 들뢰즈는 호의를 베풀었고, 김주영은 그의 강의를 청강했다.이 때 그의 작품은 평면에서 공간으로 확장된다. 주어진 공간에 흰 천을 깔고, 검은 발자국을 찍으면서 충돌 속에 그는 조형 이미지를 건진다. 또 납작한 바닥에 거울을 놓아 깊이를 만들기도, 나무로 지은 기하학적 조형물 속에 초록색 네온사인을 넣어 활기를 불어 넣는다. 이 모든 것은 고정된 형식이 아닌 주변 맥락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리좀’(Rhizome)적 조형언어다.유럽 지성사의 변화를 체화한 작가가 돌아온 것은 우리 농가의 처연한 삶이었다. 흙과 쌀과 농기구와 나무를 활용한 조형 언어를 그는 ‘애잔한 서정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실컷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이 짓 저 짓 해보았는데,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 나의 원점은 한국의 시골 논밭이 있는 전원이었다. 거친 잡풀더미와 뙤약볕에서 일하는 아낙네들 말이다.”지난해에도 터키로 노마드 프로젝트를 이어간 김주영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늘 끊임없이 이야기(내러티브)를 만들고, 집을 지으며 또 종국에는 그 집을 불태우고 재로 돌아갈 것이다. 흰 광목천에 찍힌 검은 발자국처럼, 우리의 삶도 결국은 타고 남는 ‘한줌의 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0-08-18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가해자의 목소리로 성폭력을 기록하다

    저자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이자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금기시되어 왔던 여성의 성(性)을 솔직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저자는 ‘브이데이’와 ‘원 빌리언 라이징 레볼루션’을 조직해 여성 폭력 방지에 힘쓰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31년 전 세상을 떠난 가해자 아버지의 입장에서 스스로 써 내려간 글을 담았다. 5세 때 시작한 성 학대는 10세 때 폭행과 위협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아버지의 목소리로 다시 기록한다. 여기서 가해자였던 아버지 자신도 폭력 속에 살았던 성장 과정, 나르시시즘 안에 그림자처럼 도사린 자기혐오가 드러난다. 이분법적 선악 구분을 넘어 상대를 원점에서 바라본다. 이를 통해 끝내 화해할 수 없었던 두 비극적 삶을 정면 돌파하는 처절한 시도가 돋보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8-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