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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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6~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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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리현대 반세기… 상업화랑 1세대 빛과 그늘 오롯이

    “상업적 가치도 중요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김환기 화백의 최고가(最高價) 작품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라 생각합니다.” 1970년 서울 종로구에서 ‘현대화랑’으로 출발한 갤러리현대가 개관 50주년을 맞았다. 50주년 기념 특별전 ‘현대 HYUNDAI 50’이 다음 달 12일 공개된다. 앞서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51)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학술적 연구는 큐레이터의 일”이라며 “상업적 가치를 갤러리, 경매사 등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31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1부 전시는 본관과 신관에서 70여 점을 선보인다. 선정 기준은 ‘과거 전시, 판매한 작품’이다. 도 대표는 주요 컬렉터, 작가 등의 ‘인연’이 주된 선정 요소라고 했다. 신관에 전시되는 백남준의 ‘마르코 폴로’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갤러리현대를 통해 소장하게 된 작품이다. 1972년 유작(遺作)전에서 공개된 이중섭의 ‘황소’ ‘통영 앞바다’ ‘닭과 가족’도 나왔다. 사진 편지 방명록같이 이 갤러리의 역사를 기록한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반도화랑’ 점원에서 국내 굴지의 갤러리 대표가 된 박명자 회장(77)의 성공 요인을 간접적으로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바로 상업적 가치와 인연이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1세대 상업화랑’으로 시작한 갤러리현대는 박수근 이중섭을 ‘국민화가’ 반열에 올렸다. 두 작가는 소설가 박완서와 시인 구상의 작품에서 언급되며 문인들 사이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이런 흐름을 재빨리 파악한 박 회장은 시의적절하게 전시회를 열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중에게 어필했다. 오랜 세월 컬렉터, 작가 등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갤러리의 성장이 한국 미술의 발전과 항상 함께했느냐에 대해서는 미술계의 의견이 갈린다. 다양한 작가와 장르가 공존해야 할 미술시장을 일부 작가가 독식하게 해서 성장해야 할 작품성 있는 작가를 결과적으로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상업화랑으로는 이례적으로 입장료를 매겨 대규모 전시를 열고 시민의 성원으로 성공도 거둔 반면 그만큼 상업성에 치중해 젊은 작가 발굴이나 성장에 기여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도 대표는 “한국 근현대 미술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해외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990년대 이후 작품을 다루는 2부 전시에서 이 포부의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날 듯하다. 홈페이지에 공개될 갤러리가 출간한 도록(圖錄) 작품집 간행물을 비롯한 50년간의 아카이브도 기대를 모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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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환기-천경자 화백 직접 그린 책 표지, 불교 개혁 의지 담은 한용운 간찰 출품

    동아일보사가 후원하는 제10회 동아옥션 경매가 23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동아옥션 갤러리(동아일보 충정로사옥 18층)에서 열린다. 동아옥션은 △도서 △근현대자료 △동서양 미술 △도자기 민속품 △고서화 고문서 간찰(簡札) 등 243건을 선보인다. 김환기(1913∼1974) 천경자 화백(1924∼2015)이 직접 표지를 그린 단행본과 잡지 수십 점이 응찰대에 오른다. 김 화백이 장정(裝幀)한 자료(출품번호 49)는 단행본 43점, 잡지 17점 등 60점이다. 그가 처음 장정한 책인 함대훈의 ‘폭풍전야’를 비롯해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등 소설도 있다. 천 화백의 자료(출품번호 50)는 단행본 50점, 잡지 3점 등 53점이다. 그의 평소 그림처럼 꽃과 여인을 화려하게 그렸다. 승려이자 저항시인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쓴 간찰(출품번호 199)도 출품됐다. 만해가 자신의 벗 도진호에게 보낸 것으로, 공부에 뜻을 두었으니 더욱 정진하라는 조언과 불교개혁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 만해가 불교 개혁을 위해 저술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언급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부끄럽다는 겸손의 말 뒤에 불교개혁의 작은 씨앗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적었다. 한국 최초의 남자 프로 골프선수 연덕춘(1916∼2004)의 자필 수첩 등 관련 자료(출품번호 98)도 경매에 나온다. 그가 사용했던 골프채 4점은 등록문화재 제500호로 지정돼 있다. 이번 경매에는 한국 골프 역사와 관련된 중요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다. 금속활자로 찍어낸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출품번호 155), 고려 말∼조선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가삼존도(釋迦三尊圖)’(출품번호 139)도 응찰대에 오른다. 석가삼존도는 배채법(背彩法·종이 뒷면에 채색해 은은한 느낌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림의 필치와 상태로 볼 때 14세기 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약 100년 전에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동아옥션은 응찰자들이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23일까지 경매품 168건을 매일 오전 10시∼오후 5시(경매 당일은 오후 2시까지) 동아옥션갤러리에서 전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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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적 추상으로 부활한 書畵同體 전통

    《주름진 천에 무채색 물감을 얇게 칠해 거친 질감을 살렸다.그 위에 신문지 은박지 종이를 잘라 만든 문자를 붙였다.덧칠된 물감 사이로 신문지에 적힌 프랑스어와 사진이 보인다.화면 아래의 푸른빛과 반짝이는 은박지의 빛이 부딪쳐 차가운 풍경을 만든다.한국과 프랑스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한국 추상화의 선각자’로 평가받는 남관 화백(1911∼1990)의 ‘겨울 풍경’(1972년)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관의 올해 첫 기획전이자 MMCA 개관 후 첫 서예 단독 전시인 ‘미술관에 서(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 지난달 30일 온라인으로 문을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술관이 휴관 중이어서다. 그럼에도 이날 오후 유튜브로 공개된 90분짜리 학예사 전시투어 영상은 1만4118명이 관람할 정도로 인기였다. 서예는 물론 전각 회화 조각 등 작품 300여 점, 자료 70여 점을 선보인 종합전이다. 온라인 공개에 앞서 언론에 지난달 26일 하루 공개된 덕수궁관 전시장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건 남관과 이응노 화백(1904∼1989)의 문자추상(文字抽象)이었다.○ 서구 추상의 한국적 재해석 “(프랑스 파리의) 인상파 미술관을 보니 일본에서의 공부가 모두 허사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곳에서 가르친 서양화는 기교뿐이었습니다. 이를 마흔에 깨달았으니 얼마나 분하겠습니까.” 1955년 배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남관의 말이다. 1935년 도쿄 태평양미술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1942년 후나오카(船岡)상, 1943년 미쓰이(三井)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파리에서 서양미술을 직접 보고 충격을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과 미국에선 추상 미술이 다수 그려지고 있었다. 남관 이응노 같은 작가들은 서양미술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했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 전통의 서예를 차용했고 그 결과물로 문자추상 시리즈가 탄생했다.○ 서화동체(書畵同體) 전통과 현대미술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MMCA의 서예전 개최를 ‘소외 장르 챙기기’로 설명한다. 그는 이번 전시 도록(圖錄) 인사말에서 “동아시아의 독자성을 이룬 서화동체 사상의 전통이 근대 들어 급격하게 변화해 미술과 거리를 두게 됐다”고 했다. 잊혀진 문화를 되새기기 위해 전시는 한국 근·현대 1, 2세대 서예가들의 작품서부터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디자인까지 방대한 양을 소개한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시화전(詩畵展)이나, 많은 사람이 취미로 하는 캘리그래피를 함께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 전통문화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짚어볼 수 있다. 다만 서울서예박물관처럼 해당 장르를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전시품의 절반이 넘는 서예 작품을 새로운 해석 없이 내놓은 것에 대해 미술계의 의견이 갈린다. 이를테면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이 서예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차용했는가’같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조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배원정 MMCA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의 섹션별 주제는 또 하나의 기획전으로 깊이 있게 조명해야 할 만큼 여러 담론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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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사소한 외출이 폭발적 결과로

    저자는 첫 소설 ‘소수의 고독’으로 이탈리아 최고 문학상(賞)으로 꼽히는 스트레가상을 최연소 수상하고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물리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쓸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뜻하지 않게 칩거하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차분히 관조한다. 바이러스의 눈에 인간의 나이 성별 국적 취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감염 가능자, 감염자(확진자), 회복자로 나뉠 뿐이다. 전파의 속도는 예측 불가하며, 모임에 가는 것은 확률 게임이다. 그러나 사소한 행위가 때로 폭발적 결과로 이어진다. 책임감과 연대감이 결여된 행동은 부족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고 그는 진단한다. ‘외출을 자제하라’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단순한 구호보다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논리와 문학으로 설득한다. 이 책의 인세 수익은 코로나19를 치료하는 의료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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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민주주의 종말은 독재정부로부터?

    민주주의의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투표를 할 수 없게 되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정부를 장악하며, 국민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 독재 정부?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것이 순진한 생각이라고 경고한다. 민주주의의 실패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될 거라면서 말이다. 그 출발점을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분석한다. 과거 군대의 폭압적 방식과 달리 앞으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이는 물밑의 은밀한 압력으로 이뤄질 것이다. 시스템이 아닌 사회가 붕괴하는 대재앙으로도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 여기에 대부분이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쓰고 있는 온라인 정보기술 서비스는 민주주의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막연한 성역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냉정하게 접근해 흥미롭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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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작 패러디… 코로나 이기는 ‘집콕 갤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미술관은 거의 휴관 중이다. 작품들도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격리된’ 상태다. 온라인을 통해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며 아쉬움을 달래던 사람들이 참다못해 작품을 따라하기에 나섰다. 욕실 수건은 물론 텀블러나 레고까지 각종 생활용품으로 명작을 구현하는 놀이가 퍼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게티 미술관은 트위터 계정을 통해 “여러분에게 집에 있는 물건(혹은 사람)을 활용해 좋아하는 작품을 재창조하는 챌린지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1974년 석유사업가 진 폴 게티가 만든 게티 미술관은 고대 문명부터 20세기까지 유럽의 명작 컬렉션을 갖고 있다. 매년 200만 명이 찾지만 코로나19로 지난달 14일부터 무기한 휴관 중이다. 챌린지의 규칙은 ‘좋아하는 작품을 고를 것’ ‘집에 있는 물건 세 가지를 활용할 것’ ‘그 물건으로 작품을 재창조할 것’이다. 그러자 기발한 명작 패러디가 쏟아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은 나무구슬 목걸이를 머리에 두른 여인으로 변신했다. 중세의 성모자(聖母子) 패널 그림에서 라피스라줄리색(감정색) 옷을 입은 마리아는 짙은 욕실용 수건을 뒤집어쓴 모습으로 재현됐다. 그림 속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지만 사진 속 여성은 살구색 프렌치 불도그를 안고 있다. 불도그의 포즈가 비슷해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피터르 몬드리안의 유명한 기하학적 추상은 원색의 레고로 아주 간단하게 패러디됐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1657∼1658년)을 따라한 소녀의 사진은 탁자 위는 물론 벽에 걸린 정물까지 비슷하다. 명작 챌린지는 인스타그램으로도 번졌다. 스스로 ‘예술을 좋아하는, 무한정 격리된 4명의 룸메이트’라고 소개한 한 계정(@covidclassics)은 귀를 자른 고흐의 자화상을 비롯해 미술사의 명작을 매일 올리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미스터리한 작품 ‘사람의 아들’(1946년)을 재현하기 위해 사과가 꽂힌 포크를 입에 무는 기발함도 엿보인다. “어떠한 편집도, 필터도 없이 집안에 있는 물건과 우리 자신을 활용했다”고 소개한 그림들을 보기 위해 7만 명 이상이 이 계정을 팔로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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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랑새, 백두산 천지서 영감 얻었죠”

    1881년 핀란드 남부 작은 마을의 유리공장에서 시작한 유리 디자인 브랜드 ‘이딸라’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이딸라는 ‘한국의 새: 동아백년 파랑새’를 제작했다. 동아백년 파랑새를 디자인한 ‘이딸라 & 아라비아 디자인센터’ 수장인 투이야 알토세탤래를 e메일로 만났다. ―‘파랑새’ 제작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동아일보가 100주년을 기념해 미래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이해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을 들였다. 동아일보에서 보내준 자료를 바탕으로 많은 기록을 검색했다.”―기술적으로 특별한 부분이 있다면…. “파랑새의 몸체는 맑은 파랑이며 날개와 꼬리는 진한 파랑, 머리는 투명하게 만들었다. 이런 색채는 백두산 천지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투명하고 푸른 몸통과 파랗게 채색한 날개, 꼬리 부분이 조화를 이루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딸라의 모든 제품이 수작업이다. “이딸라 성공의 초석이 바로 재능 있는 장인(匠人)들이었다. 입으로 유리를 부는 글라스 블로어, 금형 제작자, 유리 덩어리와 색상을 혼합하는 사람 모두 장인이다. ‘알토 화병’ 하나를 불기 위해서 적어도 5년은 훈련해야 한다. 2년에 한 번씩 전 세계 장인들이 모여 가장 큰 유리 불기에 도전하는 대회도 연다.” ―디자이너와 장인의 어떻게 협업하나. “나는 유리공예의 대가 오이바 토이카(1931∼2019)가 일하는 방식을 지켜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작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작업장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장인 한두 명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서로 제작 과정을 잘 알기에 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타피오 비르칼라, 티모 사르파네바 등 훌륭한 디자이너는 늘 장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새 모양 ‘버드 바이 토이카’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토이카가 이끈 ‘버드 바이 토이카’는 1962년부터 생산됐고 마니아층도 두껍다. 이딸라 버드 450마리를 소장한 독일인을 만난 적도 있다. 그의 집에 들어서자 버드 제품이 가득한 진풍경이 펼쳐졌다. 심지어 토이카를 만나러 핀란드까지 여행도 왔다고 한다. 수집가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하는 비결은…. “유리를 부는 방법이 수천 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이딸라 유리공장의 전문가들은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첨단기술을 함께 사용한다. 그러면서 유리 불기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견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수작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지원자가 많아졌다.” ―동아일보와 협업을 결정하게 된 까닭은…. “우리는 외부와 협업할 때 그들의 철학과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고 동일한 가치를 공유할 때만 협업을 시작한다. 이딸라와 동아일보는 모두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진보적 디자인과 예술을 추구해 비슷하다고 느꼈다. 협력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 가치를 공유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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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무엇도 오는 봄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봄은 온다는 걸 잊지 마세요(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아이패드 드로잉 속에 노란 수선화가 활짝 피었다.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기세에 불안감도 커진다. 그럼에도 바이러스가 봄을 막을 순 없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3)가 덴마크 루이지애나미술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한 그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자국의 문을 걸어 잠그는 가운데 세계적 예술가들이 온라인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최근 아이패드로 그린 봄 풍경 여러 장을 공개한 호크니는 그 자신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격리 중이다.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 노르망디의 자연에 반한 그는 지난달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 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프랑스 전국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호크니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같은 때 드로잉을 제안한다”며 “카메라와 사진을 치우고 모든 것을 의심하며 대상을 그려보라”고 주문했다. 항상 군중을 싫어했고 고독을 즐겼다는 그는 “내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라고 늘 생각한다”면서 “예술이 스트레스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스트레스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오지만 예술은 ‘지금 이 순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덴마크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손(53)은 인스타그램에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시대, 기술을 통해 친밀감을 높이며 ‘따로 또 같이’하는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독일 작가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 유고슬라비아 출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의 작품 사진을 첨부했다. 엘리아손은 2003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빈홀에 인공 태양을 설치해 스타덤에 올랐다. 앞서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62)는 지난달 20일 코로나19가 처음 창궐한 우한(武漢)의 임시 의료시설인 팡창(方艙)의원 영상을 공유했다. 영상 메시지로는 “코로나19는 평온한 일상이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일깨워줬다. 긍정적 태도를 잃지 말자”고 전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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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다빈치-몬드리안의 드로잉 스타일은?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작품에도 드로잉이 있다. 예술가가 생각을 정리하고 작품을 구상하며 때론 설계도 역할까지 하는 것이 드로잉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같은 과거의 대가는 물론이고 현대 추상화가 피터르 몬드리안,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비롯한 예술가 100명의 드로잉을 한데 모았다. 마를렌 뒤마나 피터 도이그 같은 동시대 인기 작가의 것도 담았다. 영국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미술학교에서 회화와 드로잉을 가르친 교사 겸 작가인 저자가 펴낸 이 책은 드로잉의 기초부터 알려주는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정물화 두상 풍경화 인물화 추상화 누드화 판타지 등 모두 7장으로 구성돼 구체적 예시와 함께 연습 방법을 알려준다. 작가마다 다른 스타일의 드로잉을 비교해 보면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림 보는 방법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만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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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양으로 시간여행 떠날 준비 되셨나요”

    “조선 시대에는 관념 산수만 그렸다는 통념이 있어요. ‘정말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만난 서울 그림을 모았습니다.”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열화당), ‘이중섭 평전’(돌베개)의 저자인 미술사학자 최열(64)의 새 책이 출간됐다. 겸재 정선은 물론 북산 김수철 등 화가 41명의 작품 125점을 수록했다. 조선시대 서울 그림을 모은 첫 책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1117’ 사옥에서 2일 만난 최 씨는 책의 시작을 2002년 하나은행 사보라고 설명했다. “정수영의 ‘백사 야유도’를 출발로 실경 회화에 관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림 찾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하나를 찾으면 다음이 선물처럼 등장해 2006년에는 삼성문화재단에서 발간한 ‘문화와 나’, 2009년 ‘서울아트가이드’로 이어졌죠.” 연재는 서울뿐 아니라 관동팔경, 단양팔경 등 조선 전역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다 ‘이중섭 평전’으로 인연을 맺은 이현화 혜화1117 대표의 제안으로 서울에 관한 글을 모으기로 했다. 연재 과정에서 최 씨는 그림 속 장소를 답사해 보고 숨은 작품을 찾으려고 발품을 팔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그는 심사정의 그림 속 실경을 추적한 일을 꼽았다. “심사정은 실경을 그린 적이 없다고만 이야기 됐죠. 그런데 ‘경구팔경첩’은 서울을 그린 화첩임에도 구체적 장소에 대한 연구가 없어 그것을 직접 찾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그는 그림은 기본적으로 실제 경치를 대상으로 하며 특수한 경우가 관념 산수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굳이 ‘실경’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이나 권신응의 북악십경처럼 한양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그림들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관념 산수만을 이야기하며 ‘실경’을 특별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죠.” 책은 도봉으로 시작해 세검정, 인왕산과 광화문을 지나 남산, 광나루를 거쳐 행주산성으로 마무리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산이나 물길을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의 풍경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작자 미상의 ‘근정전 정시도’에는 임진왜란 후 오랜 세월 폐허로 방치돼 불에 탄 궁궐 건물 대신 천막이 설치된 풍경도 드러난다. 겸재뿐 아니라 다양한 화가의 그림이 수록된 것도 특징이다. 그는 “겸재의 그림 대부분은 주문에 의한 것이었다”며 “겸재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화원 등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림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파고들기보다 그림 속 서울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를 적절히 버무려 일반 독자의 흥미를 끈다. 그는 요즘처럼 야외 활동이 어려운 때 책으로나마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옛 그림을 보며 시간 여행을 떠나곤 했죠. 책을 읽는 모든 이와 함께 아름다웠던 한양의 감동을 누리고 싶습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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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틀을 거부한 자유로운 상상력[한국미술의 딥 컷]

    《딥 컷(Deep Cut). 대중음악에서 쓰이는 이 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명곡, ‘숨은 보석’을 가리킨다. 한국 미술에도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만한 ‘딥 컷’이 있다. 다만 장식적 취향이나 접근성의 한계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미술의 ‘숨은 보석’을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1980년대 세계 미술계에는 신표현주의 바람이 불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해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지금까지도 미술시장의 주류로 활동 중이다. 신표현주의를 한국적 맥락에서 보여준 작가가 황창배(1947∼2001)다. 황창배의 신표현주의는 파격에서 나온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사군자나 산수 같은 전통적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고 색채를 금기시하는 한국화의 관습을 탈피했다. “밀가루로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수제비, 국수도 해먹을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완성했다. 2000년에 완성한 ‘무제’는 세련된 기교가 돋보인다. 그림의 절반 이상을 검은색, 갈색이 덮었으나 인물의 화려한 색채가 산뜻한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림 속 왼쪽 아래 나무에서 시작돼 오른쪽 상단까지 이어지는 녹색 선, 세 갈래로 뻗어나가 중심을 잡는 가운데 인물의 붉은 팔, 그림의 무게를 잡아주는 어두운 배경 위 인물의 무채색 옷을 눈여겨보자. 화면의 리듬감을 위해 인체의 형태나 색채, 배치를 자유자재로 변형했다. 그림의 출발은 도시 풍경이지만 결과물은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버전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등의 표현주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속성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1913∼2001)은 한때 자신을 찾는 기자들에게 “나 말고 황창배에게 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시각 탓에 그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아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더 자세히 만날 수 있다.● 전통에 대한 저항, 장르 넘나든 파격…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소정(素丁) 황창배(1947∼2001)▽1947년 서울 출생▽1975년 서울대 회화과(동양화) 석사▽1978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대통령상▽1988년 미국 국무성 초청 뉴욕 아티스트 콜로니(Yaddo) 작업▽1997년 ‘북한 문화유산 조사단’ 일원으로 화가 최초 방북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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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성, 재료 아닌 몸에서 나오는 것”…한국적 ‘신표현주의’ 보여준 황창배[한국미술의 딥 컷]

    딥 컷(Deep Cut). 대중음악에서 이 말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명곡, ‘숨은 보석’을 가리킨다. 한국 미술에도 당당히 세계에 내놓을 만한 ‘딥 컷’이 있다. 다만 한국 미술시장에서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의 수요가 많고 관객과 만날 기회가 제한되면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미술의 ‘숨은 보석’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1980년대 세계 미술계에는 신표현주의 바람이 불었다. 국내에서도 인기인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해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지금까지도 미술시장의 주류로 활동 중이다. 이런 신표현주의를 한국적 맥락에서 보여준 작가가 황창배(1947~2001)다.● 개념에서 회화로…신표현주의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를 ‘1980년대 초·중반 미국과 유럽의 미술시장을 점령한 예술가(주로 화가)들의 다양한 움직임’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신표현주의는) 1970년대까지 고도로 개념화된 추상예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체나 형태의 표현으로 돌아간 젊은 작가군을 가리킨다. 기법은 다양하지만 공통 요소가 있다. 전통적 구성과 디자인의 거부, 동시대 도시의 삶과 가치를 반영한 모호하고 불안정한 감정 표현, 부조화와 날카로운 색채 대비, 대상의 유희적이고 강렬하며 원시적인 표현 등이다.” 현재 미술시장에서 작품 최고가를 형성하는 다수의 작가도 신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독일의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미국의 장 미셸 바스키아가 그렇다. 이들은 미술사의 단계적 흐름을 벗어나 개인의 관점에서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주관성이 두드러진다. 황창배 또한 이런 신표현주의의 속성에 뒤지지 않는 혁신을 보여줬다.● ‘한국적 신표현주의’ 황창배의 거의 모든 작품은 제목이 없다. 생전 그는 “제목을 달아 작품의 다양한 면을 한정시키지 않고, 그림으로만 충분히 보여 주겠다. 제목에 신경을 기울이기보다 작품 제작에 몰두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작품 내용은 이미지에 따라 추측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 그림은 작가가 담도암 수술을 받고 작고하기 전 해인 2000년에 완성된 것이다. 지난해 국내에 선보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연상케 한다. 그림의 절반 이상을 어두운 계열의 검은색과 갈색이 덮고 있지만 인물의 화려한 머리색과 의상이 화면의 산뜻한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림 속 왼쪽 아래 나무에서 시작돼 오른쪽 상단까지 이어지는 녹색 선, 세 갈래로 뻗어나가 중심을 잡는 가운데 인물의 붉은 팔, 그림의 무게를 잡아주는 어두운 배경 위 인물의 무채색 옷을 눈여겨보자. 화면의 리듬감을 위해 작가는 인체의 형태나 색채, 배치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림의 출발은 같은 도시 풍경이겠지만, 결과물은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버전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등의 표현주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속성이다. 오른쪽 아래 서명에는 평소 단기(檀紀)로 표기했던 연도를 서기(西紀)인 ‘2000’으로 적어 독특하다. 이 무렵 작가는 담도암 수술을 받고 충북 괴산 작업실에서 나와 서울에서 생활했다. 21세기를 맞아 낯설 정도로 탈바꿈한 도시의 모습을 작가의 눈에 비친 대로 담고 있다.● ‘한국화 테러리스트’ “한국적 이미지를 찾고 드러내는 작업, 그것이 저의 관심입니다. 밀가루로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수제비, 국수도 해먹을 수 있어요. 새로운 한국화 운동, 우리의 공통된 이미지를 찾아가는 길에 동양화가나 서양화가 또 조각가 등 모든 이들이 동참해야 합니다.” (1990년대 월간지 인터뷰) 황창배는 동양화로 그림을 시작했다. 1966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그는 한국미술을 체계화해야겠다고 결심해 전공을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바꾸었다. 월전 장우성(1912~2005)을 찾아가 동양화를 배우고, 서예와 전각은 철농 이기우(1921~1993)를 사사했다. 1975년에는 청명 임창순(1914~1999)에게 한학과 한국 서예미술사를 공부했다. 이후 황창배는 파격을 거듭한다. 한국에선 서양적으로, 서양에선 한국적으로 보이는 그림들이었다. 이런 작품들로 그는 ‘한국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어 주목받는가 하면, 동양화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도 받았다. 파격의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통적 동양화를 공부하다보니 이것 또한 중국적 화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서양인의 방법론을 선택하며 기존 미술에 대한 반발로 모든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1989년 ‘New Life Magazine’ 특집 대담 ‘황창배 화백의 작품세계’) 전통에 대한 저항과 부정은 신표현주의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극단적 예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거꾸로 그린 그림들이다. 바젤리츠는 왜곡된 형태에 폭력적일만큼 화려한 색채를 더했다. 작품을 실제로 접하면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황창배 또한 끊임없이 관습의 파괴를 시도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나갔다. 그 과정은 아래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자유롭게 종이 위에 번지도록 무작위로 선을 그린 다음, 그 속에 구체적 형상을 추가해 완성했다. 비슷한 작품들을 ‘숨은 그림 찾기’ 시리즈라고도 한다. 사군자나 산수(山水)라는 전통적 동양화의 소재를 벗어났고, 색채를 금기시했던 한국화의 관습도 탈피했다. 녹색은 물론 그림 하단에 붉은색과 파란색을 더해 생동감을 더한다. 이 무렵 선화랑 개인전에서 선보인 유사한 작품군에 대해 그는 후일 “전통적 공간이나 선묘에서 벗어나 시간도 없고 원근도 없는 그림을 시도한 것”이라며 “그러나 너무 작품이 예쁘게 보여 불만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한국성(性)은 “몸에서 나오는 것” 이후 작품은 “일기장을 쓰듯 그림을 그린다”는 말처럼 개인의 시각언어 완성에 집중해갔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1991)이 소재가 되거나 한국 화가 최초로 방북해 북한 풍경을 스케치(1997)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관념적인 한국성(韓國性)을 강조하기보다 작가의 주관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1989년 월간 ‘동양화’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따지고 보면 과거의 모든 사람들도 자신이 현대를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도 조금만 지나면 과거의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감동을 극대화시켜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이 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일이 없다.” 바스키아가 작품에 차용한 그래피티는 특정 시공간에서 개인이 처한 정체성과 문화를 보여주는 소재에 불과하다. 황창배가 동양화 기법이나 소재를 활용한 것도 한국에 살고 있는 ‘개인 황창배’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집단적’ 한국성을 찾으려는 시각이 그의 작품을 예술 자체로 보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의 작품에 관한 담론 대부분이 한국화나 서예의 토대에서만 이뤄져서 그렇다. 예술작품의 한국성을 고정된 소재나 색, 기법으로 한정시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황창배는 생전 글과 인터뷰를 통해 ‘그러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한국성이란 무엇일까. 그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힌트를 남겼다. “인류 역사는 도구 변화의 역사다. ‘한국의 색’ 또한 애초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유입되고 변주된 것이다. 가야금 하나로도 다양한 연주를 하고 서양악기와 합주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온전히 우리 것도 아닌 것을 그대로 따라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억지다. 한국성은 시대에 맞게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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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의자를 버려라, 그리고 움직여라

    영화 ‘두 교황’을 본 사람이라면 베네딕토 16세(앤서니 홉킨스)의 스마트워치를 눈여겨봤을 것이다.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조너선 프라이스)의 가상의 만남을 그린 영화는 두 교황의 끊임없는 대화로 구성된다. 이야기를 나누는 두 교황이 한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면 베네딕토 16세의 손목에서 경고음이 울리며 “움직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두 교황은 스마트워치의 ‘명령’에 따라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영화평론가들은 “움직이라”는 스마트워치의 소리를 “개혁하라”는 종교적 은유로 읽었다. 그런데 이 목소리를 교황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아주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책이 나왔다. ‘의자의 배신’이다. 깨끗한 실내에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일하는 삶은 수천 년간 많은 인류가 꿈꿨던 일상이다. 고통스러운 육체노동에서 조금씩 벗어난 현대 일반인의 생활수준은 중세시대 왕보다 낫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현대적 삶이 공룡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줄어들었다는 것만 빼면 별다른 이점이 없다고 밝힌다. 알레르기성 비염부터 골다공증 수면장애 당뇨병 부정교합은 물론이고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환 질환이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서 기인했다면서 말이다. 문제는 DNA다. 우리 몸은 유전자가 발현한 결과물인데 이 유전자의 발현 방식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인류는 오랜 시간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해왔고 이 같은 생활 방식에 따라 몸이 형성됐다. 그런데 약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되고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쳐 지금의 사무실 노동에 이르기까지의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몸은 아직도 수렵, 채집에 맞춰져 있는데 말이다. 그 결과 나타난 대표적인 증상이 바로 요통(腰痛)이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싯’에 실린 ‘2015년 지구 질병 부담 연구’에 따르면 요통은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겪는 장애다. 일본 미국 독일 폴란드인이 요통을 많이 앓는 반면 앙골라 케냐 가나 사람들은 세계에서 요통이 가장 적다. 얼마나 많이 활동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진다. 편하게 스트레스 없이 사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우리 몸이 더 튼튼해진다는 사실도 새겨들을 만하다. 우리 뼈는 적당한 충격을 가할수록 더 크고 단단해지며 근육도 쓸수록 강해진다. 첫 장에서 5억 년 전부터 3만 년 전까지 몸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책은 이후 시간 순서대로 몸의 변화를 5개 장에서 설명한다. 각 장 말미에는 몸을 ‘과거’로 돌리기 위한 해법을 친절하게 제시한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독자라면 ‘절대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말라’는 지침은 경구처럼 새겨야 할 것 같다. 현재의 인체공학은 우리가 20분 일하면 1∼2분간 스트레칭해야 하며, 50분마다 5∼10분씩 휴식을 취한 후 다른 업무를 해야 한다고 권한다. 저자는 회의실에서만이라도 의자를 퇴출시키라고 제안한다. 회의가 훨씬 짧아지고 효율적이 된다는 추가 이득도 얻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인간이 전 지구의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류세(人類世)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함부로 밖에 나가기도 어려운 전염병이 창궐한 지금은 인류가 어디까지 왔는지 돌아볼 만한 좋은 시기다. 조용히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몸의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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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이비통 디렉터가 풀어낸 ‘젊음의 단면’

    재고로 남아 ‘땡처리’ 세일로 40달러에 나온 랄프로렌의 플란넬 셔츠를 대량 사들였다. 이 셔츠에 Pyrex와 마이클 조던을 상징하는 숫자 23을 프린트해 550달러에 팔았다. 개성 있는 길거리 패션에 스포츠 웨어의 편안함을 더해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다. 2012년 패션계를 놀라게 한 이 사건으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42)는 스타가 됐다. 그가 직접 기획한 전시 ‘커밍 오브 에이지’(Coming Of Age)가 서울 강남구 ‘루이비통 메종 서울’(청담 메종)에서 열리고 있다. 아블로는 2018년부터 루이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성인이 되는 과정’을 뜻하는 전시 제목처럼 사진가 18명이 포착한 젊음의 단면을 자유분방하게 담았다. 참여 작가도 아라키 노부요시 같은 유명 작가부터 신예까지 다양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액자 없이 붙여진 사진들이 벽을 가득 채운다. 청소년이 방에 좋아하는 이미지를 마구 붙이듯, 이 전시에서도 핀이나 집게, 테이프를 이용해 사진을 걸었다. 설명 문구도 걸리지 않아 다양한 이미지들을 그저 눈으로 감상해야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리틀 빅 맨 갤러리에서 첫선을 보인 전시는 에스파스 루이비통 베이징, 뮌헨, 도쿄를 거쳐 한국을 찾았다. 서울 전시 공간의 벽면에 맞춰 배치와 간격까지 아블로가 다시 결정했다고 한다. 작품이나 작가가 아닌 기획자의 명성이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독특한 전시다. 관객에게 팬서비스라도 하듯, 전시된 사진 작품들의 작은 프린트를 무료로 나눠준다. 30개 버전의 프린트가 각각 250여 장씩 준비돼 있는데, 벌써 동이 난 사진도 있다. 4월 26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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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는 다 보고 있다… 오늘 얼마만큼 일했는지

    “한 달 전쯤 회사에서 재택근무 한다고 부서원들이 각각 어떤 일을 하는지 정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더군요. 구체적인 직무 계획과 목표에 따라 하루 단위로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들라고요. 지금까진 그날그날 눈치껏 알아서 일을 나눠 업무를 해왔는데, 이젠 각자 할 일이 정확히 나뉘는 셈이죠. 재택근무를 하면 ‘눈치껏’이 안 되잖아요?”(국내 대기업 계열사 11년 차 마케팅팀 김모 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업문화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 갑자기 재택근무가 보편적 근무형태가 된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이 나아졌다는 의견과 오히려 업무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기업들은 근태 관리뿐 아니라 성과 측정, 평가가 부담스러워졌다고 말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코로나19 이전의 업무 방식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향후 평가, 채용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늘어난 재택근무… 새로운 근무방식에도 적응 분위기 코로나19 여파로 프리랜서나 프로그램 개발자 등 일부 직군만 가능했던 재택근무가 일반 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존 업무 관행의 ‘비효율’을 돌아보게 됐다는 목소리도 높다. 재택근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출퇴근하는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고 옷 갖춰 입기, 화장하기 등을 하지 않아도 돼 업무 효율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한다. 3주째 재택근무 중인 심모 씨는 “일주일 동안 같은 옷을 입어도 된다. 사무실에 있을 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는 등 다른 것에 휘둘린 반면에 집에 있으니 업무 성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준비되지 않은 재택근무 탓에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업무 지시가 오가는 ‘단톡방’에서 조금만 답이 늦어지면 “누가 읽지 않고 있느냐”고 타박을 주기도 한다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쉽게 풀릴 문제를 온라인으로 하니 더 복잡해진다”거나 “집이 더 불편해졌다”는 반응도 있다. 그날그날 업무 성과를 입증하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방식에도 적응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분위기다. 자신들의 재택근무 ‘팁’을 공유하는 풍경도 생겨났다. “집중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을 조성하자” “집중 근무 시간을 정하자” “밖에 나갈 수 있는 수준으로는 옷을 갖춰 입자” 같은 제안이 나온다. 재택근무자들은 회사의 근태 관리 방식을 두고서도 신경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국내 한 정보기술(IT)업계 직원은 “회사망에 접속하는 순간, 어느 사이트를 들어가는지 내용이 다 남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메신저 등을 통해서 근무 내용을 확실히 남겨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상사의 생각을 읽기 어렵다 보니, 실적이나 업무 평가엔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코로나19가 스마트워크 ‘실험’ 계기”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발달한 IT 시스템 덕분에 원격 근무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많았다. 출퇴근 시간 낭비 없고, 사무실 임차료 등 비용 요소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도 수년 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근무 방식을 실험해 왔다. 특히 SK, LG, KT 등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훨씬 전부터 원격 근무가 가능하도록 클라우드 업무 환경 등을 준비해왔다.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근무를 늘리려면 뭘 보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2월 말에 재택근무를 늘렸지만 미리 IT 인프라를 충분히 갖춰놓았던 만큼 시스템적인 문제는 없었다”며 “오히려 근태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만큼 결국 업무 성과로 평가해야 하는데, 개개인의 직무를 할당하고 성취 기준을 제시하는 게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회사가 직원에게 어떤 업무를 할지 목표를 정확히 정해줘야 하고, 직원 역시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원격근무는 꼼꼼한 평가 시스템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갑자기 실시하다 보니 이런 기준이 마련돼 있는 기업이 많진 않다고 한다. 개인보다 팀에 업무가 떨어지고, 이를 그때그때 나눠서 하는 게 국내 기업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 직무가 ‘팀 막내’인 줄 알았는데 이제 제대로 알게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한 대기업은 지난달 말 전 직원 재택근무에 앞서 부서별, 팀원별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직무 기술서’를 작성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택근무 땐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준 기업문화팀장은 “상사가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지시를 할 때에는 무엇을 원하고, 업무의 기대효과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문자 이외에 다른 정보가 없어서 지시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호하고 포괄적인 지시는 업무 비효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회사 입장에선 팀원들 간에 대면 접촉이 줄어들다 보니 직원 정서, 스트레스 파악이나 관리가 더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자사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인해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화로 심리 상담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동안 팀 차원에서 다독이던 일을 회사 프로그램으로 돌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채용 방식에도 영향 미칠 것” 재계에선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수시 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 등 눈에 보이지 않고 측정하기 어려운 영역보다는 업무 전문성을 가지고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는 것. 또 시장이 위축되고 고용시장이 악화된 탓에 대규모 채용인 공채보다는 경력직이나 수시 채용에 눈을 돌릴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종업원 수 300인 이상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중복 응답 가능)한 결과 응답 기업 62.7%가 올해 가장 중요한 채용 트렌드로 ‘경력직 채용’을 꼽았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비대면 근무 등 변화 폭이 커질수록 성과나 전문성 중심 채용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인사 담당 전문가는 “성취 기준으로 조직을 보게 되면 업무 효율성이 드러나 구조조정이 더 잦아질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임현석 lhs@donga.com·김민 기자}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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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5년 우울했던 마음, 자연이 보듬어 줬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이야기하는 요즘, 주말이면 산과 공원이 붐비는 아이러니한 풍경이 펼쳐진다. ‘집순이’를 자처하는 사람도 강제 격리를 당하다 보면 탁 트인 자연이 간절해지게 마련이다. 책은 푸릇한 새싹과 작은 새의 귀여움, 잔디밭에서 풍기는 풀내음이 주는 안정감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첫 장부터 저자는 스스로 25년간 우울증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데려간 마음의 병에 관한 회고와 자연을 산책하며 수렁에서 빠져나온 경험을 매끄럽게 연결 짓는다. 직접 보고 느낀 자연의 모습도 사진과 스케치로 담았다. 우울증은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소파에서 한 발자국 떼기조차 어렵게 한다. 저자도 “실내에 처박혀 넷플릭스만 보고 싶었다”고 한다.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활자로나마 동기를 부여해 보는 건 어떨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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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비주류’ 중국 영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8년 세계 영화시장을 놀라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해 1분기(1∼3월) 중국 박스오피스 수입이 202억 위안(약 3조4000억 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북미 영화시장 흥행(약 3조2000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 유럽미술재단은 중국이 2011년 세계 최대 미술품 및 골동품 시장이라고 발표한다. 아직 검증할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중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문화산업에서도 잠재력을 갖췄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중국 문화의 현주소를 서구의 시각이 아닌 중국적 시각에서 가늠해 본 책이다. 영화 미술같이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시각문화적’으로 사회와 개인을 분석했다. 1990년대 세계 영화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장이머우의 초기 영화가 ‘셀프 오리엔탈리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는 등 영화에 관한 분석이 흥미롭다. 홍콩중문대 문학원장인 저자는 미국 시카고대,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를 지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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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라밸 good” vs “성과 부담” 재택근무, ‘스마트워크’ 실험 계기될까?

    “한 달 전쯤 회사에서 재택근무 한다고 각 부서원들이 각각 어떤 일을 하는지 정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더군요. 구체적인 직무 계획과 목표에 따라 하루 단위로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들라고요. 지금까진 그날그날 눈치껏 알아서 일을 나눠 업무를 해왔는데, 이젠 각자 할 일이 정확히 나뉘어지는 셈이죠. 재택근무를 하면 ‘눈치껏’이 안 되잖아요?” (국내 대기업 계열사 11년차 마케팅팀 김모 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업문화의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 갑자기 재택근무가 보편적 근무형태가 된 것이다. 일과삶의균형(워라밸)이 나아졌다는 의견과 오히려 업무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기업들은 근태 관리 뿐 아니라 성과 측정, 평가가 부담스러워졌다고 말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코로나19 이전의 업무 방식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향후평가, 채용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늘어난 재택근무…새로운 근무방식에도 적응 분위기 코로나19 여파로 프리랜서나 프로그램 개발자 등 일부 직군만 가능했던 재택근무가 일반 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존의 업무 관행을 ‘비효율’을 돌아보게 됐다는 목소리도 높다. 재택근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출퇴근하는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고 옷 갖춰 입기, 화장하기 등을 하지 않아도 돼 업무 효율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한다. 3주째 재택근무 중인 심모 씨는 “일주일 동안 같은 옷을 입어도 된다. 사무실에 있을 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는 등 다른 것에 휘둘린 반면, 집에 있으니 업무 성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준비되지 않은 재택근무 탓에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업무 지시가 오가는 ‘단톡방’에서 조금만 답이 늦어지면 “누가 읽지 않고 있느냐”고 타박을 주기도 한다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쉽게 풀릴 문제를 온라인으로 하니 더 복잡해진다”거나 “집이 더 불편해졌다”는 반응도 있다. 그날그날 업무 성과를 입증하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방식에도 적응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분위기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택근무 ‘팁’을 공유하는 풍경도 생겨났다. “집중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을 조성하자” “집중 근무 시간을 정하자” “밖에 나갈 수 있는 수준으로는 옷을 갖춰 입자” 같은 제안이 나온다. 재택근무자들은 회사의 근태 관리 방식을 두고서도 신경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국내 한 정보기술(IT)업계 직원은 “회사망에 접속하는 순간, 어느 사이트를 들어가는지 내용이 다 남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메신저 등을 통해서 근무 내용을 확실히 남겨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상사의 생각을 읽기 어렵다 보니, 실적이나 업무 평가엔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코로나19가 스마트워크 ‘실험’ 계기”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발달한 IT시스템 덕분에 원격 근무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많았다. 출퇴근 시간 낭비 없고, 사무실 임대료 등 비용 요소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도 수년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근부 방식을 실험해 왔다. 특히 SK, LG, KT 등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훨씬 전부터 원격 근무가 가능하도록 클라우드 업무 환경 등을 준비해왔다.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근무를 늘리려면 뭘 보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2월 말에 재택근무를 늘렸지만 미리 IT인프라를 충분히 갖춰놓았던 만큼 시스템적인 문제는 없었다”며 “오히려 근태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만큼 결국 업무 성과로 평가해야 하는데, 개개인의 직무를 할당하고 성취 기준을 제시하는 게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회사가 직원에게 어떤 업무를 할지 목표를 정확히 정해줘야 하고, 직원 역시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원격근무는 꼼꼼한 평가 시스템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갑자기 실시하다 보니 이런 기준이 마련돼 있는 기업이 많진 않다고 한다. 개인보다 팀에 업무가 떨어지고, 이를 그때그때 나눠서 하는 게 국내 기업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 직무가 ’팀 막내‘인 줄 알았는데 이제 제대로 알게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한 대기업은 지난달 말 전 직원 재택근무에 앞서 각 부서별, 팀원별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직무 기술서’를 작성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택근무 땐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준 기업문화팀장은 “상사가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지시를 할 때에는 무엇을 원하고, 업무의 기대효과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문자 이외에 다른 정보가 없어서 지시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호하고 포괄적인 지시는 업무 비효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회사 입장에선 팀원들간에 대면 접촉이 줄어들다 보니 직원 정서나 스트레스 파악이나 관리가 더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자사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인해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화로 심리상담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동안 팀 차원에서 다독이던 일을 회사 프로그램으로 돌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채용방식에도 영향 미칠 것” 재계에선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수시 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 등 눈에 보이지 않고 측정하기 어려운 영역 보다는 업무 전문성을 가지고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는 것. 또 시장이 위축되고 고용시장이 악화된 탓에 대규모 채용인 공채 보다는 경력직이나 수시 채용에 눈을 돌릴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종업원 수 300인 이상 매출액 500대 기업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중복응답 가능)한 결과, 응답 기업 62.7%가 올해 가장 중요한 채용 트렌드로 ‘경력직 채용’을 꼽았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비대면 근무 등 변화폭이 커질수록 성과나 전문성 중심 채용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될 것”고 설명했다. 한 인사 담당 전문가는 “성취 기준으로 조직을 보게 되면, 업무 효율성이 드러나면서 구조조정이 더 잦아질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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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친 작가 4人의 ‘4色 인도 드로잉’

    “인도 라자스탄주 사막엔 가물 때 사용하는 우물이 남아 있다. 심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우리 인생도 이 우물과 비슷하지 않은가.”(강경구 작가) 강경구 김성호 김을 안창홍. 4명의 60대 ‘절친’ 작가들은 올해 초 인도로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1월 6일부터 22일까지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자이푸르, 자이살메르를 지나 타르 사막에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편한 관광지보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장과 어렵게 사는 서민들의 삶을 찾았다. 낮에는 함께 여행하다 밤이면 각자의 방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던 네 작가의 결과물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만날 수 있다. 18일 시작한 ‘라자스탄의 우물’전은 ‘아트스페이스 보안1’(구관 전시장)에서 열린다. 1942년 지은 오래된 여관 건물의 뼈대 위에 드로잉이 다닥다닥 붙어 현장감이 느껴진다. 같은 풍경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네 작가의 시각언어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안창홍 작가는 “하필이면 여행할 무렵 121년 만의 한파가 몰아쳐 추위로 고생했다”고 했다. 여러 점의 드로잉 중에 소의 탈을 쓴 사신이 칼을 들고 목을 노리는 모습이나 검은 눈물을 흘리는 자화상이 보인다. 낯선 여행길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후회도 하면서 찌꺼기를 내보내는 모습이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득 채운 강경구 작가의 ‘18시간’ 역시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담는다. 여행 막바지 예매한 1등석 티켓이 예고 없이 취소되면서 3등 칸을 겨우 얻어 타 시장 바닥 같은 기차에서 섰다 앉았다를 18시간 동안 반복했다. 자이살메르에서 델리까지 900km를 주파하는 열차였다. 강 작가는 “국내에선 6·25전쟁 직후에나 볼 법한 밑바닥 삶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함축한 자화상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을 작가의 레디메이드를 활용한 설치작품, 김성호 작가의 수채화 드로잉도 함께 전시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작가들이 수집하는 각기 다른 이미지의 편린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4월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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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착시일까

    멀리서 보면 패턴 가득한 평면이던 벽이 자세히 보면 볼록 튀어나와 있다. 고요한 바다가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 사진 속으로 문을 열고 나가면 스마트폰, 담배, 묘비가 확대된 사진이 반대편에 등장한다.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미지들의 향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정말 순수하게 보는 것일까. 오히려 그것은 인식에 끊임없이 좌우되는 것 아닐까. 18일부터 서울 용산구 갤러리바톤에서 열리는 독일 출신 작가 토비아스 레베르거(54)의 개인전은 이런 개념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Truths that would be maddening without love’라는 제목으로, 가벽을 세우고 시트지를 바른 뒤 문을 달거나, 방을 만들어 선반을 설치하는 등 전시 공간 전체를 활용한 설치 프로젝트다. 제목에서 진리(truth)가 이성을 의미한다면, 사랑(love)은 감정을 뜻한다. 이성을 맹신하고 감정을 도외시했던 지성사의 맥락에 반기를 드는 작업들이다. 흔히 개념미술이라고 하면 무미건조한 풍경, 난해한 언어를 상상한다. 그런데 레베르거의 작품은 화려한 형광색이나 공간 전체를 채우는 체험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착시 효과를 통해 관객은 작게나마 깨달음의 경험을 얻는다. 유희가 더해져 누구나 쉽게 즐기는 개념미술인 셈이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Was du liebst, bringt dich auch zum Weinen’(네가 사랑하는 것이 너를 울게도 한다)가 대표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전함의 위장 무늬로 뒤덮인 카페를 만든 설치 작업. 어디가 의자이고, 테이블인지 한눈에 구분되지 않는 공간으로 ‘보는 행위’에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유사한 버전을 부산현대미술관 카페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2004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국 미술계와도 여러 차례 함께한 경험이 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이성과 감정이 뒤섞인 듯한 한국 사람들의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 정했다고 한다. 5월 13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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