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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0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 600명이 넘는 여성이 몰려들었다. 피부색과 나이, 출신 국가는 각양각색이었다. 떡볶이를 먹는 이집트 여성부터 한국어 단어집을 들고 ‘열공’하는 네덜란드 여성까지…. 이들은 서울경찰청 소속 의경인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동해(본명 이동해·31·사진)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세계 각국의 ‘글로벌 곰신(고무신의 줄임말)’이다. 13일 오전 5시에 가장 먼저 도착한 스코틀랜드 출신 바이린 씨(21)는 20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히잡을 두른 인도네시아 교사 사산티 씨(27)는 한국에 오려고 월급의 절반인 100달러를 2년간 계속 모았다. 오전 6시 한 프랑스 여성이 “동해 나오기 3시간 전”이라고 외치자 모든 팬이 일어나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일부가 차도로 떠밀리자 금발의 한 여성 팬은 한국말로 “차도 내려오지 마! 차에 치여 죽을 거야. 죽으면 안 돼!”라고 외치기도 했다. 오전 9시 반 정문으로 나온 동해는 1박 2일을 기다린 팬들에게 5분 남짓 전역 소감을 밝히고 떠났다. 한 멕시코 여성 팬에게 ‘힘든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답이 돌아왔다. “저도 몰라요. Just happiness(그냥 행복하니까)!”김예윤 yeah@donga.com·김동혁 기자}

14일 0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 600명이 넘는 여성이 몰려들었다. 피부색과 나이, 출신 국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길바닥에 앉아 떡볶이를 먹는 이집트 여성부터 한국어 단어집을 들고 쪼그려 앉아 ‘열공’하는 네덜란드 여성, 미니 선풍기를 들고 앞머리를 말고 있는 홍콩 여성까지…. 이들은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동해(본명 이동해·31)의 팬. 이날은 서울경찰청에서 의경으로 복무 중인 동해의 전역일이었다. 좋아하는 스타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 각국의 ‘글로벌 곰신’이 모인 것이다. 곰신은 군대 간 연인을 기다리는 여성을 일컫는 ‘고무신’의 줄임말이다. 이날 행렬 맨 앞에 있던 스코틀랜드 출신 바이린 씨(21·여)는 13일 오전 5시에 1등으로 도착해 스무 시간 넘게 기다리던 중이었다. 바이린 씨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빼앗길까봐 컵라면과 콜라 한 캔으로 버티고 있다. 그래도 오빠를 제일 앞에서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늘색 히잡을 두른 인도네시아 여성 사산티 씨(27·여)는 맨발로 양반다리를 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슈퍼주니어 노래가 흘러 나왔다. 교사인 그는 한국에 오기 위해 월급의 절반인 100달러를 2년간 모았다고 했다. 이날 모인 팬의 대부분은 12일 강원 원주시 1군사령부도 찾았다. 슈퍼주니어의 또 다른 멤버 은혁(본명 이혁재)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당시 현장에선 은혁을 가까이 보기 위해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그래서인지 서울경찰청 앞에서는 자체적으로 대기명부를 작성해 기다렸다. 언어가 달라 마찰이 생기면 통역을 수소문하거나 스마트폰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했다. 일부 팬들이 차도로 밀려나면 네덜란드에서 온 한 여성이 어눌한 한국말로 “차도 내려오지 마! 차에 치여 죽을 거야. 죽으면 안 돼!”라고 외쳤다. 오전 6시 한 프랑스 여성이 “동해 나오기 3시간 전”이라고 또박또박 외쳤다. 지친 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오전 9시 반 동해가 정문으로 걸어 나오자 팬들은 “이동해”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1박 2일을 기다린 팬들에게 동해는 전역 소감을 밝혔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멕시코 여성 산체스 씨(29)에게 “힘든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감격의 눈물을 닦으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말했다. “저도 몰라요. Just happiness(그냥 행복하니까)!”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얼굴만 예뻐지면 대학 등록금도 쉽게 마련할 줄 알았는데….’ 늦깎이 대학생 A 씨(29·여)가 눈물을 흘렸다. 뒤늦은 후회였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부족했다. A 씨는 ‘오뚝한 코와 갸름한 턱선’을 가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1000만 원이 넘는 성형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이미 금융기관에 400만 원의 빚도 있었다. A 씨는 ‘성형 지원 대출’ 광고를 접하고 솔깃했다. 성형수술 목적으로 돈을 빌린 뒤 수술 후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이다. A 씨는 꿈을 이루는 듯했다. 악몽의 시작이라는 건 짐작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상한 점도 많았다. A 씨는 ‘잘한다’는 병원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돈을 빌려준 대부업체는 병원을 ‘콕’ 집어 알려줬다. 그렇게 눈과 코, 얼굴 윤곽 수술을 했다. 부기가 빠지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 쉽게 돈을 갚을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매달 원금과 이자로 100만 원 가까운 돈을 내는 것도 버거웠다. “너희 부모는 이런 일 하는 거 아냐, 집에 찾아갈까?” 대출금 상환이 밀리자 대부업자는 A 씨를 협박했다. 쩔쩔매는 A 씨에게 대부업자는 “인터넷 음란방송에 나가거나 성매매를 해서라도 갚아라”라고 강요했다. A 씨의 머릿속에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에게 성형수술을 미끼로 불법 고금리 대출을 해주고 폭력과 협박을 일삼은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무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수백 명에게 법정 이자율을 초과한 이자를 뜯어낸 박모(47) 이모 씨(37)를 구속하고 대부업 관계자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또 이들로부터 성형수술 환자를 소개받고 수수료를 건넨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 원장 박모 씨(42) 등 3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대부업자 박 씨와 이 씨는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78명에게 약 55억 원을 빌려주고 성형외과 3곳에서 수술을 받도록 했다. 이자는 법정이자율(연 25%)보다 높은 연 34.9%. 병원은 환자 1명마다 수술비의 30%를 수수료로 건넸다. 박 씨 일당은 19억 원가량의 이자와 알선 수수료를 챙겼다. 피해자는 대부분 강남 일대 유흥업소 종사자 등 20대 초반 여성이다. 이들은 유흥업소 실장에게 “성형을 받아 예뻐지면 대우를 더 잘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을 받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업체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박근혜 퇴진 앞장서 싸운 한상균을 석방하라!” “내란음모 무죄판결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진행해 온 ‘사회적 총파업’ 마지막 날인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 30여 개가 펄럭였다. 민노총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른바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등 소외계층 권익 향상을 앞세운 사회적 총파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선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석방 등 정치적 구호가 쏟아졌다. 연단에 오른 한 참가자는 “문재인 대통령도 2번이나 감옥을 갔던 양심수였다”며 “한 위원장과 이 전 의원을 감옥에서 되찾아오는 날이 진정한 적폐 청산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월 불법 폭력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뒤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이 전 의원은 내란선동죄로 2015년 1월 징역 9년형 및 자격정지 7년형이 확정됐으며 4년째 복역 중이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500명(경찰 추산 1500명)이 참가했다. 민노총 집회가 끝난 뒤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열린 양심수 석방 문화제에서는 한 위원장과 이 전 의원 석방 요구가 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졌다. 민노총 등 일부 단체들이 최근 집회에서 두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선 건 다음 달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정부를 압박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민노총 관계자는 이날 집회에서 “만약 광복절 사면에 한상균 동지가 제외된다면 청와대와 정부의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위원회의 권오현 후원회장은 “한 위원장과 이 전 의원이 감옥에 있는 한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큰소리쳐도 우리는 (민주주의 인권 국가라고) 자랑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후 도심 행진에 나서면서 광화문광장 일대는 오후 5시경부터 교통정체를 빚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종각역 부근 차로가 시위대 행진으로 가로막히자 시민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차도 한가운데 줄을 서는 아슬아슬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김예윤 yeah@donga.com·구특교 기자}

“아이고, 사람을 잘못 찾아오셨네.” 지난달 26일 장모 씨(52)는 자신의 집에 경찰관이 찾아오자 현관문을 열어주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 김성용 경위는 개의치 않고 수갑을 채웠다. 체포된 장 씨가 경찰서로 잡혀가는 길,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피해자가 얼마나 억울했으면 하늘이 맑다가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겠어요.” 김 경위의 비난에 장 씨는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고 그러던데 뭐…”라며 딴소리를 했다. 장 씨는 이날이 숨죽이며 들키지 않고 살아온 15년의 마지막이 될 줄 모르는 듯했다.○ 결정적 물증 ‘쪽지문’ 2002년 12월 14일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에서 주인 A 씨(당시 50세·여)가 둔기로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 감식반 요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에 폐쇄회로(CC)TV가 없었고 가게 바닥에 나뒹구는 맥주병 3개는 지문 하나 없이 말끔했다. 수건으로 병을 닦아낸 흔적이 역력했다. 이때 주변을 둘러보던 한 감식요원이 깨진 맥주병 조각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세히 살펴보니 완전하지 않은 지문, 즉 ‘쪽지문’이 나왔다. 엄지손가락의 3분의 1쯤 되는 크기였다. 현장에서 확보한 물증이었지만 쪽지문만 가지고는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당시엔 온전한 지문 하나를 감식하는 데도 5일 넘게 걸렸다. 경찰은 피해자 명의의 신용카드가 사용된 가게를 탐문하고 몽타주를 만들어 공개 수배를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리고 14년이 흘렀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017년 12월 13일. 영구미제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경찰의 재수사 대상이 됐다. 2015년 7월 개정된 형사소송법, 일명 ‘태완이법’ 덕분에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먼지로 뒤덮였던 영구미제 사건들이 햇빛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태완이법’은 1999년 5월 대구에서 황산 테러로 숨진 김태완 군(당시 6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5년 만에 풀린 응어리 경찰에 14년 전 확보한 쪽지문은 금쪽같은 단서가 됐다. 2012년 도입된 지문자동감식식별시스템(AFIS)으로 쪽지문에서 추출한 특징과 주민등록 지문정보에 입력된 지문들을 비교해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 지문 감식 결과 일치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장 씨였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던 키높이 구두로 추정되는 뒷굽이 둥근 족적(발바닥 지문)도 중요한 단서가 됐다. 경찰은 키가 165cm 정도인 장 씨의 집에서 사건 현장의 족적과 유사한 자국이 찍히는 키높이 구두를 두 켤레 발견했다. 또 장 씨의 얼굴은 사건 발생 당시 수사팀이 만들어 배포했던 수배전단 속 몽타주와 흡사했다. 지난달 29일 경찰이 키높이 구두 증거를 들이밀며 “그 정도 버텼으면 됐다”고 설득하자 장 씨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제가 그랬습니다.” 살인사건 피해자와 유족의 15년 묵은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범행을 자백한 장 씨는 “사건 직후 동네에 붙은 수배전단을 보고 내 모습과 똑같아 너무 놀랐다”고 경찰에 털어놨다. 경찰은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을 설치해 영구미제 273건을 재수사해왔다.김예윤 yeah@donga.com·구특교 기자}

지난달 28일 오전 5시 25분 서울 남산3호터널 입구에서 외제차 운전석에 탄 남성이 술 냄새를 풍기며 잠들어 있었다. 음주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65%로 면허취소에 해당했다. 신분증을 확인하니 힙합듀오 ‘리쌍’의 멤버 길(본명 길성준·39·사진)이었다. 2일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길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길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스스로 터널 입구까지 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길이 현장에서 사실을 인정해 귀가 조치했다. 추후 소환 조사한다”고 밝혔다. 길은 1일 페이스북을 통해 “1cm건 100km건 (음주 후) 잠시라도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은 분명히 큰 잘못”이라며 사과문을 올렸다. 길은 “(경찰에게) 봐달라고 했다는 건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음주 무마 시도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많은 누리꾼은 “이 정도면 습관” “연예계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등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길의 음주운전 적발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4년 4월에도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가 이듬해 광복절특사로 사면됐다. ‘무한도전’을 비롯해 인기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내려와야 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주한 미국대사관을 에워싸는 사상 첫 ‘포위 집회’가 열렸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노골적인 반미 구호가 경쟁하듯 쏟아졌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를 강도 높게 압박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24일 오후 4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참여하는 사드저지전국행동(전국행동)이 주최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집회가 열렸다.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NO THAAD(노 사드)’라고 적은 대형 깃발이 휘날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집회는 시작됐다. 연단에 선 주최 측 인사들의 수위 높은 발언이 이어졌다. 최종진 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촛불항쟁으로 만들어진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불필요한 사드를 당장 가져가라고 통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소속 김종훈 의원(울산 동)은 “(한미)동맹이 협박의 연속이라면 동맹은 파기될 수밖에 없다”며 “(문 대통령이) 우리의 간절함에 상처를 입힌다면 문 정부와도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걸 경고한다”고 말했다. ‘한미동맹 파기’ 등이 언급될 때마다 참가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광화문 일대 행진 도중 나온 발언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김재하 민노총 부산지역본부장은 “미국 추종하는 놈들은 (국내에) 20%도 안 된다”며 “미국이 압박하면 (대통령은) 국민에게 호소해라. 우리가 촛불 들어 미국을 쓸어버리겠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한 명은 마이크에 입을 대고 10초가량 ‘윙’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오산 등 미국 레이더기지에서 나는 소리”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부부젤라와 호루라기 등을 불고 ‘촛불의 명령’ ‘사드 철회’ ‘노(NO) 트럼프’ 등을 외쳤다. 시위대는 이날 오후 5시부터 약 2km 거리를 행진했다. 서울광장에서 세종대로 사거리를 거쳐 종로1가 사거리(종각역), 우정국로 등을 돌아 미 대사관을 향하며 최대 3개 차로가 통제됐다. 토요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차량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종로1가 사거리에서 세종대로 사거리 방향은 약 1시간 동안 교통이 통제돼 차량들이 광교 사거리 방향 등으로 우회해야 했다. 행진 막바지 코스인 종로구청을 지난 뒤 미 대사관 ‘포위’가 시작됐다. 전날 법원의 ‘1회에 한해 20분 이내 통과’라는 조건부 허용으로 이뤄진 것이다. 오후 6시 32분부터 시위대는 미 대사관 뒷길로 행진한 뒤 멈춰 섰다. 인간 띠를 만들어 파도타기를 진행하고 부부젤라와 호루라기를 불며 대사관을 향해 ‘노 사드, 노 트럼프’ 등을 외쳤다. 미 대사관 ‘포위 집회’는 19분간 진행됐다. 집회 마지막 미 대사관 정문 앞에서는 ‘사드강요 미국규탄 NO THAAD NO TRUMP’ 문구와 함께 사드 미사일과 돈뭉치를 입에 문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노란색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25일에는 광화문 일대에서 ‘사드 배치’ ‘한미동맹 강화’ 등을 외치는 보수단체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주최 측인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행동’은 이날 오후 6·25전쟁 기념 국가안보 및 국민회의 집회를 열고 탑골공원부터 중구 대한문까지 약 1.6km 구간을 행진했다. 6·25전 참전용사 등으로 구성된 집회 참가자들은 “한국에 사드 반대를 외치는 좌파들의 선동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예윤·구특교 기자}

법원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단체가 신청한 주한 미국대사관 주변 행진을 허용했다. 미대사관을 에워싸는 형태의 이른바 ‘포위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강석규)는 23일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전국행동)이 낸 ‘금지 통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미대사관 뒷길 행진을 금지한 경찰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 것이다. 단 ‘24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사이에 1회에 한해 20분 이내에 신속히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앞서 전국행동은 1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미대사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주변을 지나 광화문시민열린마당으로 향하는 집회 및 행진 개최를 신고했다. 예상 참가자는 약 5000명(신고 기준)이다. 그러나 경찰은 미대사관 앞길(제2경로) 상위 차로의 행진만 허용하고 뒷길(제1경로)은 금지하는 제한 통고 조치를 내렸다. 이에 전국행동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이번 집회가 한미관계에서 민감한 현안인 사드 배치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게 목적이지만 미대사관은 사드 배치에 관한 의사결정 기관이 아니다”며 “행진은 사드 배치 반대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것일 뿐 미대사관에 어떤 위해를 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제1경로의 행진을 허용해도 미대사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신청인(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제1경로 행진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건 집회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다만 행진 경로에 있는 종로소방서의 긴급 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통과 횟수와 시간을 제한했다.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0분 만에 수천 명이 좁은 도로를 통과하려면 병목 현상 때문에 사실상 대사관을 에워싸는 집회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며 “그 자체가 마치 미대사관을 위협하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최 측이 평화적 집회를 약속했지만 돌발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59개 중대 4700여 명을 투입하고 미대사관 주변에는 폴리스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다. 차벽은 설치하지 않는다. 이날 사드 반대 집회에 앞서 오후 2시 서울역광장에서는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철도적폐 청산 공공철도 실현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가 열린다. 참가자 5000명(주최 측 신고 기준)은 집회 후 서울광장으로 행진한다. 차량 통행이 많은 휴일 오후 대규모 집회가 잇달아 열리면서 극심한 교통 혼잡도 우려된다.김예윤 yeah@donga.com·이호재 기자}

노동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촛불 특혜’의 대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장외집회 규모를 늘리고 수위를 높이면서 압박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최저임금 만원 비정규직 철폐 만원공동행동’과 ‘6·30 사회적 총파업’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상진 민노총 부위원장은 “촛불 수혜를 가장 많이 본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며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등이) 촛불 혁명 정신을 올곧게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연대학생그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촛불 특혜로 당선됐다”며 “노동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노숙 집회 후 도로 행진01:10 광장서 웃통 벗고 21일 새벽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은 거대한 ‘술판’으로 바뀌었다. 민노총 산하 건설노동조합원 2000여 명은 ‘건설현장 안전보장’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와 행진을 마치고 청계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은색 돗자리를 깔고 노숙 투쟁에 돌입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맥주와 소주 막걸리 잔이 오갔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곳곳에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건 노조원끼리 서로 욕하며 드잡이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이 이동식 화장실을 마련했지만 일부는 청계광장 주변 곳곳에서 노상방뇨를 했다. 한 커피전문점 앞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건물마다 노조원과 경비원들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중국인 관광객 마모 씨(27·여)는 “갑자기 길에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오전 1시경 비가 내리고 나서야 술판이 잦아들었다. 오전 8시 반경 8000여 명으로 늘어난 노조원들은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에 모여 행진을 시작했다. 출근시간대 3개 차로를 이용해 세종대로 사거리와 종각 내자동 사거리를 거쳐 세종로공원으로 2.8km를 2시간가량 걷는 통에 극심한 교통 정체가 빚어졌다. 건설노조원들은 종로구 신문로 대우건설 본사 앞에서 “서울시 교통을 마비시키겠다. 책임은 너희(대우건설)가 질 것이다”라고 외쳤다. 참다 못한 일부 시민은 항의하기도 했다. 한 50대 여성은 노조원들을 향해 “종로1가에서 내려 20분 넘게 걸어왔다. 왜 출근시간에 집회를 하느냐”고 항의했다. 버스에 탄 일부 시민은 창문을 열고 소리치고 운전자들은 차량 경적을 울렸다. 그러나 노조원들은 사과는커녕 “우…” 하고 야유를 하거나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흔들었다.○ ‘촛불 대가’ 요구하며 거세지는 집회06:30 대자로 드러눕고 앞으로 ‘촛불 민심 계승’을 주장하는 집회가 줄줄이 열릴 예정이다. 집회 방식과 강도는 갈수록 세질 것으로 보인다. 민노총은 24일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과 함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사드 반대 집회를 연다. 참가 규모는 약 6000명이다. 전국행동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1700만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이룩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 1700만 촛불은 사드 한국 배치를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주한 미국대사관까지 행진해 대사관을 에워싸는 띠잇기 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일단 경찰은 제한 통고를 했지만 주최 측은 즉각 행정금지 통고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결과는 22일 오후에 내려진다. 24일에는 철도노조의 상경 집회도 열린다. 30일에는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옥중서신을 통해 ‘칭기즈칸의 속도전’을 강조한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노동계의 요구 수위가 높아지면서 과거처럼 불법 집회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출근길 도로 행진이 이뤄진 것을 들어 경찰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살수차와 차벽을 배치하지 않기로 했지만 대규모 행진으로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 등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다”라고 밝혔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예윤 기자}
“여보 이스라지가 뭐예요? 병꽃나무도 처음 듣고…, 설명을 좀 적어놓지.” 16일 오후 서울 중구 고가보행로 서울로7017에서 나무들을 보던 70대 여성이 생소한 이름을 보고는 남편을 쳐다봤다. 서울로에 있는 화분 645개에는 식물명이 표기돼 있지만 별도 설명은 없다. 한참 잎 모양을 살피던 노부부는 식물명 표기 옆 QR코드(사진, 영상 정보를 담은 스마트폰 전용 바코드)를 서너 번 손가락으로 눌러보다가 포기하고는 지나쳤다.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읽어봤지만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은 듯 이름 말고는 다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주변 상인들 마음은 ‘들썩’ 지난달 20일 문을 연 서울로가 개장 한 달을 맞는다. 누적 방문객 186만 명(15일 기준)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서울로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엇갈린다. 차 걱정 없이 걸을 수 있는 도로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이날 서울로에서 만난 직장인 윤모 씨(32)는 “길지는 않지만 도심을 보행자 위주로 바꾸는 건 세계적 추세”라면서 “낡은 고가도로를 활용해서 걱정되긴 하지만 도심 여러 곳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성일 씨(23)도 “남대문시장, 남산 같은 서울의 명소를 걸어서 갈 수 있어 좋다”고 평가했다. 서울로 사업 초기 교통이 혼잡해져 손님들이 줄어든다며 반대했던 인근 상인들도 인파가 몰리자 반기고 있다. 매출이 급상승한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효과가 나리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남대문시장 상인 이모 씨(50)는 “개장 전에 비해 주말 시장을 찾는 사람이 30% 이상 늘었다”면서 “오후 8시만 지나면 휑하던 시장이 요즘에는 북적인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 김모 씨(52)도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을 빼곤 아직 매출이 오르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서울로가 생기고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만큼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랍어 환영 인사 표기 엉터리 그러나 편의시설 부족과 안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 서울로를 걷는다는 김모 씨(71)는 “좀 오래 쉬다 가려고 해도 주변에 쓰레기통도, 화장실도 없다”면서 “편의시설이 너무 부족해 공원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로에 있는 카페나 식당에서 음식물을 팔지만 쓰레기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서울로를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이날 스피커에서는 서울로 인근에서 열리는 공연을 비롯한 각종 안내가 흘러나왔지만 외국어로는 제공되지 않았다. 잘못된 외국어 표기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세계 각 나라 언어로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적어놓은 원형 조형물의 아랍어 표기는 엉터리였다. 아랍어 문장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를 모두 이어서 써야 한다. 그러나 조형물에는 두 가지 원칙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아랍어 통역사인 최은녕 씨는 “아랍어에 대한 기본적인 검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로가 정말 안전한지 걱정도 계속됐다. 이정엽 씨(63)는 “40년 넘은 낡은 고가를 다시 사용한다는데 솔직히 걸으면서도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 “최근 자살 사고까지 벌어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걱정이 더 되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로가 모델로 삼은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line Park)와 달리 고가도로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전 노력이 부족해 방문객의 공감이 덜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의 물자 수송을 책임지던 하이라인은 1980년 운영이 중단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다. 하이라인을 구해낸 건 시민들이었다. 1999년 시민단체 ‘하이라인 친구들’이 결성됐고 10년간의 토론 끝에 고가철로 공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하이라인에 비하면 서울로는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과 시민의 참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시 주도로 만들어진 서울로가 시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서울로 개선을 위한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강승현 byhuman@donga.com·김예윤·김배중 기자}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피의자 김모 씨(25·기계공학과 대학원생)가 폭발물 사용 혐의로 15일 구속됐다. 김 씨는 스승인 김모 교수(47·기계공학과)로부터 논문 지도 등을 받는 과정에서 반감을 갖게 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부지법 조미옥 영장전담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할 염려가 있다”며 이날 오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도착한 김 씨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5월 13일부터 22일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다. 전공 관련 단기연수 프로그램으로 같은 연구실 학생 2명과 함께였다. 김 씨는 출국하기 직전에 기사 검색을 통해 러시아 지하철 폭탄테러를 알았다. 그러나 경찰은 김 씨의 범행과 러시아 폭탄테러의 직접 연관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김 씨는 5월 말 논문 작성을 지도하는 김 교수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 뒤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평소에도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 씨의 일기장에는 ‘힘들다’는 표현이 곳곳에 적혀 있었다. 김 씨는 경찰에 “(교수에게) 겁을 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살해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가혹 행위나 폭행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 교수는 논문 작성 과정에 이견이 있어 교육적 의도로 대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경찰에 전했다. 텀블러 폭탄 사건을 계기로 대학 내 비뚤어진 사제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날 서강대에서는 대학원생을 위한 권리장전 선포식이 열렸다. 박종구 서강대 총장(64)은 “텀블러 폭탄 같은 안타까운 불상사를 막기 위한 예방적 조치”라고 밝혔다. 현재 연세대 등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소속 14개 대학은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과 함께 대학원에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률 입안을 추진 중이다.김예윤 yeah@donga.com·이호재·황성호 기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이혼한 형제자매 또는 배우자의 계부모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같은 권고는 2014년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인권위에 따르면 김모 씨 등 18명은 “결혼하지 않은 형제자매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데 혼인 경력이 있는 형제자매나 배우자의 계부모는 안 된다는 건 부당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이에 대해 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험 적용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2000만 명 이상이 보험료를 내지 않고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보험 급여 혜택을 받는다”며 “피부양자 대상을 최소화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요건은 가입자에 대한 생계 의존 여부와 보수, 소득의 유무”라며 “이혼하거나 사별한 형제자매를 해당 조건과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혼인 여부에 따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또 가입자의 계부모만 피부양자로 인정하고 배우자의 계부모를 인정하지 않은 것 역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가족 형태의 차별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인권위는 2006년과 2014년 총 네 차례에 걸쳐 관련법의 제정·개정을 복지부에 권고한 바 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억울해 말도 못하고 있다. 세상이 그만 다 보기 싫다.” 관정(冠廷)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93)은 지난해 “‘마음의 병’을 얻었다”며 지인에게 한탄했다. 한 남성의 근거 없는 비방 탓이다. 이모 씨(56)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가짜 기부천사 이 (명예)회장은 아침저녁 한두 시간씩 전자오르간을 치면서 일본군 군가 십여 곡을 부른다’ ‘일평생 외도와 부인, 자식을 폭행으로 군림한 대한민국의 가정폭력범 원조실체 공개’ 등 근거 없는 비방글을 올렸다. 이 명예회장의 지인은 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온라인 비방 내용을 보고 명예회장이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다니 정말 처참하다’며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이 명예회장의 아들 이석준 삼영화학그룹 회장(63)도 “전부 다 각색하고 편집한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억울해했다. ‘기부왕’으로 알려진 이 명예회장은 1959년 삼영화학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해 50년 가까이 국내 석유합성수지 가공제품산업을 선도한 기업인이다. 2000년 10억 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한 뒤 지금까지 장학생 7000여 명을 지원하고 서울대 제2중앙도서관(관정도서관)을 건립하는 등 사재 1조 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이 명예회장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이 씨를 고소했다. 검찰은 이 씨를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선일)는 이례적으로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이 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 씨는 이 명예회장의 종친이었다. 그는 “이 명예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며 20여 년 전의 행사 사진을 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의 지인은 “명예회장이 여러 행사를 다니며 우연히 마주쳤을지 모르지만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 씨는 범행 이유에 대해 “공익적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명예회장과의 직접 만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법정에서 전직 국회의원이나 국립대 총장 등 유명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제시하며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씨의 범행 동기와 의도, 시기, 글 내용 등 여러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보통 명예훼손 관련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나 3년 이하의 징역이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징역 5년은 이례적이다. 앞서 검찰도 이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배심원 7명 중 5명이 검찰 구형보다 더 높은 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김예윤 yeah@donga.com·전주영·최지연 기자}
“진돗개는 사나워서 안 될 것 같아요.” 지난달 말 전북 전주시의 한 애견카페 직원은 안모 씨(21·여)의 애견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씨가 데려간 반려견은 1년 된 진돗개였다. “진돗개는 사고 날 가능성이 있어 애견카페 출입을 제한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안 씨는 반려견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천연기념물 53호이고, 역대 대통령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퍼스트 도그’ 진돗개가 이처럼 대부분의 애견카페에선 찬밥 신세다. 영리하고 주인 말을 잘 따르지만 수렵 본능이 있어 다른 반려견에 비해 근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본보 취재 결과 서울지역 애견카페 21곳 중 14곳은 진돗개 입장을 단칼에 거절했다. 나머지 7곳 역시 성별과 나이, 중성화 여부 등을 따져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주로 암컷이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진돗개가 애견카페 입장에 성공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애견카페를 운영하는 이모 씨(39·여)는 “진돗개는 서열 경쟁이 심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진돗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이른바 ‘견(犬)종차별’이라며 불만이다. 대부분 애견카페가 맬러뮤트와 허스키 등 진돗개보다 큰 반려견의 입장은 허용하기 때문이다. 안 씨는 “현재 키우는 진돗개는 생후 한 달부터 애견카페에 다니며 다른 개와 노는 법을 배웠다”며 “이제껏 한 번도 다른 개를 문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애견카페 측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차제남 전남 진도군 진도개사업소장은 “타고난 품성이 야생적인 건 있지만 지금은 어릴 때 사회화를 통해 인명구조견이 되기도 한다”며 “진돗개라고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2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4차로 도로에서 중학생 A 군(15) 등 10대 4명이 탄 승용차가 신호 대기 중인 광역버스를 들이받았다. 시속 70km로 달린 승용차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A 군 등은 다치지 않았다. 버스 운전사와 승객 등 3명이 경상을 입었다. 6일 경찰 조사 결과 운전면허를 딸 수 없는 나이인 A 군이 엄마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카셰어링(차량 대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차량을 빌린 뒤 친구들과 한밤 질주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미성년자의 카셰어링 사고였다.○ 신분 확인 시스템 ‘맹점’ 여전 카셰어링 앱은 가입할 때 한 번만 인증과정을 거치면 이후에는 별도의 인증 절차가 없다. 미성년자가 성인의 아이디를 도용해도 차량을 빌리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카셰어링 시스템의 맹점이다. 올 초부터 동아일보를 비롯해 여러 언론이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10대 청소년이 어른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카셰어링 차량을 빌려 무면허 운전을 하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운전자까지 위험에 빠뜨릴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면허 청소년의 성인 아이디 도용 및 대여, 이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이라는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단순히 엄마 아빠의 아이디를 잠시 가져다 쓰는 차원을 넘어 더 조직적, 집단적으로 카셰어링 서비스의 허점을 활용하기도 한다. 4월 인천에서는 휴대전화 고객 개인정보를 빼돌려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한 10대 9명이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휴대전화 대리점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는 B 군(18)은 점주 C 씨(32)의 인터넷 메일함에 보관된 고객정보 수천 건을 이용해 카셰어링 차량을 빌렸다. 이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빌린 차량은 109대. 이들은 차량을 빌린 뒤 이용료를 내지 않거나 교통사고를 낸 뒤 달아났다. 사고를 내 파손된 차량만 20대에 이른다. 그럼에도 카셰어링 업체의 서비스 가입 및 대여 절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6일 오후 동아일보 취재진은 스마트폰으로 카셰어링 업체 앱을 내려받았다. 이후 이미 인증이 완료된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접속해 차량을 대여했다. 이용 시간을 정하고 지도에서 대여 장소를 지정한 뒤 요금 결제까지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차량 탑승 지점인 서울 서대문구 원룸 주택가로 가서 죄책감 없이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다. 2월 본보 취재진이 시험해 본 대여 과정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0대 무면허 렌터카 사고는 2012년 카셰어링 서비스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한 해 평균 50건 정도였다. 그러나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한 해 평균 86건이나 됐다.○ “징벌적 규제 나서야 할 때” 카셰어링 업계는 “아이디 도용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은 10대 일부의 비행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카셰어링은 무인시스템을 통해 편리하게 차량을 대여하게 고안된 것이 강점인 서비스”라며 “추가 신원확인 작업을 하기에는 비용이나 기술 측면에서 어려움이 따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별도의 단계가 생길수록 이를 유지하는 비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비용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 같은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했음에도 업계가 효율성만 따지며 자체 개선을 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강제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해당 업체에 10대 무면허 사고 발생 시 과징금을 매기는 등 징벌적 규제에 나선다면 업체들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낙문 한국교통연구원 종합교통본부장도 “지금처럼 아무 규제 없이 10대가 차량을 빌릴 수 있는 상황은 명백하게 문제”라며 “카셰어링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높아지는 만큼 정부도 상황을 방치하지 말고 규제 강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예윤 기자}

“항상 초라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팠는데 늦게나마 이렇게 기릴 수 있게 돼 기분 좋습니다.” 고 정종수 경사(1935∼1968)의 장남 정창한 씨(61)는 행사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흉상에 씌워진 흰 천을 잡아당겨 아버지 정 경사의 ‘모습’이 드러나자 울컥 입매가 일그러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5일 오전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고개 현충시설에서 ‘1·21사태’ 때 북한 무장공비와 교전하다 숨진 정 경사를 추모하는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정 경사의 장남 정 씨를 비롯한 유족 8명과 김정훈 서울경찰청장, 김기현 대통령경호실 경비안전본부장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흉상은 서울경찰청과 서울시재향경우회, 서울북부보훈지청이 함께 제작했다. 1968년 1월 21일 종로경찰서 순경이던 정 경사는 청와대를 습격하러 인왕산을 넘어온 북한 무장공비 31명을 저지하다 순직했다.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은 현재의 청운실버센터 자리에서 경찰이 검문을 하려 하자 외투 속에 감춰둔 기관단총을 꺼내 난사했다. 총격을 받아 숨진 정 경사는 경사로 1계급 특진(지금은 순경 다음 계급이 경장이지만 당시엔 경사)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당시 숨진 경찰은 종로경찰서장이던 최규식 경무관과 정 경사, 두 명뿐이다. 최 경무관의 동상은 1·21사태 1년 후인 1969년 세워졌다. 이날 정 경사의 흉상이 세워진 바로 옆이다. 장남 정 씨는 “같은 일을 하다 순직했는데 (고 최 경무관과 달리) 동상도 없고 초라해 어릴 땐 창피했고 커서는 마음이 아팠다”며 “늦게나마 당당하게 기릴 수 있게 해주신 경찰 및 보훈처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정훈 서울경찰청장은 “이번 제막식을 계기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경찰관들이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주택가 인근에서 발생한 서울 노원구 수락산 화재는 축구장 5.5배 면적에 해당하는 3만9600m²의 숲을 태운 채 2일 오전 10시 50분경 진화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차량 64대, 2330명을 동원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주민들로 구성된 의용소방대원 126명도 불이 나자마자 1시간도 안 돼 불끄기에 나섰다. 이들은 대부분 큰불에 놀라 저녁을 먹다가 뛰쳐나왔지만 이내 등짐펌프를 들고 밤을 꼬박 새우며 불을 꺼 ‘1등 공신’으로 꼽혔다. 수락산은 동아일보 취재진이 불과 24일 전 “등산로 곳곳에서 화재 위험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5월 9일자 A12면 참조)고 지적한 곳이다. 불이 꺼진 뒤 그때 현장을 다시 돌아보니 진화장비가 약간 개선된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4일 전 ‘위험 경고’ 때와 비슷 불이 처음 난 수락산 5분 능선 인근 등산로 부근에서 500m가량 떨어진 수락산 제4등산로. 지난달 8일 찾았을 때 담배꽁초가 곳곳에서 나뒹굴었다. 바싹 마른 낙엽은 살짝 밟아도 잘게 부스러질 정도였다. 바로 그 옆에 막 버린 듯한 담배꽁초가 있어 기자가 발로 비벼 껐다. 아찔했다. 등산로 주변 산불진화장비 보관함 상태도 엉망이었다. 보관함에는 빗자루 8개와 녹슨 삽 1개만 있었다. 보관함은 자물쇠로 잠겨 불이 나도 쓸 수조차 없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2일 오후 다시 찾은 제4등산로 입구부터 ‘어김없이’ 담배꽁초 7개가 버려져 있었다. 올라가는 산길 곳곳에서 담배꽁초를 볼 수 있었다. 화재가 크게 번진 5분 능선 귀임봉(288m) 쪽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산불감시원은 보이지 않았다. 주민 임모 씨(80·여)는 “등산할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만나곤 하는데, 뭐라고 하면 싸움이 날까 봐 늘 참고 지나쳤다”고 말했다. 산림당국은 화재 원인을 입산자의 실화(失火)로 추정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산불감시원 산불진화장비 보관함은 일부 사정이 나아 보였다. 처음 찾았을 때 용도가 애매해 보였던 빗자루는 사라지고 삽 6개와 쇠갈퀴 4개가 있었다. 자물쇠도 채워져 있지 않아 누구든 꺼내 쓸 수 있었다. 노원구 관계자는 “동아일보 보도 직후 장비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삽과 쇠갈퀴 정도로는 “잔불을 정리할 수 있을 뿐이지 큰불에는 별 효과가 없다”고 화재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산불이 화재 예방과 초기 진화를 담당하는 산불감시원의 배치와 운용에 문제가 있어 큰불로 번졌다는 지적도 있다. 산불감시원은 올해 산불 조심 기간인 봄철(1월 25일∼5월 31일)과 가을철(11월 1일∼12월 15일)에만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조심 기간이 끝난 1일 산불감시원은 자취를 감췄고 바로 불이 났다. 수락산 인근 아파트 단지의 일부 주민은 산불감시원이 없어 불이 더 빨리 번졌다고 주장했다. 50대 남성 김모 씨는 “(1일) 근처 편의점에 앉아있던 초저녁에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봤다”며 “산불감시원도 없고, 초기 대응이 제대로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노원구 측은 산불감시원 활동 기간을 이달 말까지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취재진과 등산로를 함께 점검한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김동현 교수는 “당시 지적한 위험 요인만 제거했더라도 발화와 확산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예방 안 되는 불은 없다”고 말했다.김하경 whatsup@donga.com·김예윤·구특교 기자}
2007년 탈북한 새터민 A 씨(61·여)는 사회적응교육 후 인천의 한 호텔에 취직했다. 그의 역할은 주방 보조. A 씨는 매일 엄청난 양의 그릇을 씻고 옮겼다. 경사진 곳을 내려오다 넘어져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아픈 내색도 못했다. 그렇게 일하고 받는 월급이 110만 원. 비슷한 일을 하는 동료들보다 40만 원가량 적었다. A 씨는 ‘내가 남한 사람보다 못한 게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2년이 지나도 차별은 달라지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다친 A 씨는 결국 6년을 버티다 일을 그만뒀다. 그는 “북한에서는 근로자 급수에 따라 정해진 급여를 주는 대로 받을 뿐”이라며 “남한에 최저임금이나 산재보험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A 씨처럼 직장생활 중 크고 작은 차별을 받는 새터민이 많다. 그러나 법에 보장된 근로자 권리를 제대로 몰라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새터민 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154만6000원으로 일반 국민(229만7000원)의 67% 수준이다. 특히 평균 근속기간은 1년 4개월로 일반 국민(5년 8개월)보다 매우 짧다. 새터민들은 노동권을 침해당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5년 ‘북한이탈주민 노동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금을 떼이거나 부당하게 해고당하는 등 노동권을 침해당했을 때 ‘참고 넘기는 등 해결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새터민이 43.7%에 달했다. ‘고용부 등 공공기관의 도움으로 해결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7%에 그쳤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새터민들의 노동권 상담과 구제기능 강화를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고 31일 밝혔다. 새터민 대상 고용센터 취업상담과정도 개선 및 활성화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거주지 보호기간 연장 사유를 확대하도록 통일부에 권고했다. 새터민은 거주지 보호 기간 중 취업에 성공해 임금을 저축하면 정부로부터 매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저축 액수만큼 최대 50만 원의 지원금이 나온다. 거주지 보호 기간은 하나원 퇴소 후 5년이다. 지금은 입대나 출산으로 일할 수 없는 새터민만 보호 기간을 최대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인권위는 “몸이 아파 병원에 장기 입원하거나 필수적인 직업훈련을 받느라 취업하지 못한 경우도 거주지 보호 기간 연장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해 자립하는 새터민의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 새터민이 많기 때문에 거주지 보호 기간 연장 대상자가 확대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최지연 lima@donga.com·김예윤 기자}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습지 교사와 골프장 캐디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노동3권 보장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2007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인권위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별도로 제정하거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 이들을 근로자에 포함시킬 것을 고용부에 권고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는 보험모집인과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등 9개 직종에 약 50만 명이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이들은 개인사업자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타인의 사업을 위해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얻은 수입을 받는다는 점에서 근로자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사업주에 대한 종속성 정도와 경제적 종속성 측면에서 근로자와 유사하다고 판단해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가 형식상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노동관계법상의 보호를 받지 못해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변경 또는 해지하거나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에겐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22일 국회를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국회의장단 및 여야 지도부와 만나 대북정책,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북핵 외교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정 실장은 임명 직후라는 점을 감안해 발언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향후 통일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직간접으로 제시했다. 정 실장은 자유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을 만나 “국가안보실에서 국방 개혁, 사드 문제, 한미 동맹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려고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는 정 실장은 “사드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해서 철저히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드 도입 과정의 절차적 문제점들은 결국 국회를 통해 해결돼야 하며 이 문제를 풀어가는 단계마다 국회와 상당히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드 배치 결정을 차기 정부로 넘길 것을 요구했고, 안보실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해 국회 비준을 받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또 국방 개혁과 관련해서 “국방 개혁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 방위력 강화”이며 “방산비리가 (방위력 강화에) 하나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또 발생해서는 안 되겠다는 차원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머지않아 방산비리에 대한 대대적 사정이 진행될 가능성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정 실장은 한일 위안부 협상과 관련해선 “문희상 일본 특사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내에서 상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일본 측에 전달했는데, 그 문제에 대해 일본도 상당한 공감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보인다. 대북 정책에 대해선 대화를 추진하되 국제사회의 압박 기조를 존중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23일 대북 지원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대북 접촉을 승인하면 그동안 위축돼 온 남북 민간 교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 실장은 박주선 국회부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모색해 보겠다”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 실장은 “너무 앞서 간다”고 답했다. 정부는 우선 판문점 통신망 복원과 민간단체의 대북 교류를 통해 전면 단절된 남북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 중단된 남북 간 통신선을 복원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역시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속내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남북 간 문화·스포츠 교류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다음 달 24∼30일 전북 무주에서 열리는 2017 세계태권도연맹(WTF) 선수권대회에 34명으로 구성된 시범단을 파견하겠다고 19일 밝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 체육 교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zsh75@donga.com·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