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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연수 중인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을 태운 버스는 1일 오후 3시 반경(현지 시간)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과 단둥(丹東) 경계 지점 조선족마을 부근 다리에서 이동하던 중 추락했다. 버스는 강바닥에 거꾸로 뒤집힌 채 찌그러진 상태였다.○ 1시간 동안 오지 않은 구조대 당시 사고 버스에는 한국 공무원 교육생 24명과 행정자치부 산하 지방행정연수원 소속 인솔자 1명, 한국인 가이드 1명, 중국인(가이드, 운전사) 2명 등 모두 28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로 공무원 등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구조차량이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아 부상자 치료와 이송이 늦어졌다. 사고 직후엔 구조장비가 없어 나무막대기, 쇠막대로 부상자를 끄집어냈다. 뒤늦게 중장비가 와 버스를 들어올렸지만 부상자 대부분이 사고 충격으로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 구조대원 대신 현지 군인과 주민들이 먼저 출동해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출동한 중국 군인들이 사망자를 사고 버스 옆에 천으로 덮어 놓은 장면이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사고 버스에 앞서 출발한 버스에 탔던 공무원들은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돌아왔다. 울산시 소속 공무원 김모 씨는 “사고가 났다고 해서 구조하기 위해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며 “내려가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경황이 없었다. 지금도 손이 떨린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씨는 “현재 공안의 통제를 받아 부상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 멀쩡한 다리 위 추락 왜? 정확한 사고 원인이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맞은편에서 오던 버스를 피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사고 차량 바로 뒤 버스에 타고 있던 김현 광주시 사무관(53)은 “바로 앞에 가던 5호차 버스가 직진하다 커브를 돌고 다리에 진입하고 나서 강바닥으로 추락했다. 버스가 뒤집혀 추락했는데 버스 밑 부분의 하중이 승객들에게 전해지면서 사고를 키운 듯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다리는 버스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가는 게 가능할 정도의 폭이라 정비 불량이나 운전 미숙 등 다른 이유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내 관광버스의 고질적인 과속이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목격자들은 다리 위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선양 총영사관 측에 따르면 사고가 난 왕복 2차로 도로는 2급 지방도로로 겨울에는 차량 통행이 제한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굽은 도로가 끝나자마자 교량이 건설돼 있어 평소에도 사고 위험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도 A 사무관이 탄 버스도 사고 소식을 듣고 곧바로 현장으로 돌아갔다. A 사무관은 “다리 아래를 보니 구조장비가 아닌 중장비(불도저)가 찌그러진 차량을 옮기고 있어 일부 직원들도 내려가 구조작업을 도우려 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이 통제해 곧 현장에서 빠져 부상자와 대화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부상자 치료도 차질 우려 사고 버스를 뒤따르던 버스에 탔던 경남도 B 사무관은 “버스 출발 간격이 길어 사고 지점에 도착했을 땐 구조대까지 투입된 상황이었다”며 “현재 중국 공안의 통제를 받고 숙소로 돌아와 부상자,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부상자들은 사망자와 함께 지안시의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난 지점은 백두산 관광 후 지안 시∼퉁화∼단둥으로 내려가는 300km에 이르는 코스로 버스로 4시간 반 이동하는 일정이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호경 / 광주=이형주 기자}

《 아서 코넌 도일 재단이 공식 인정한 유일한 홈즈 작가. 영국 작가 앤터니 호로비츠(60)에게 붙은 수식어다. 2011년 1월 아서 코넌 도일(1859∼1930)의 직계 후손이 직접 운영하는 이 재단은 “명탐정 셜록 홈즈를 부활시키겠다”며 깜짝 발표를 했다. 재단에서 공식 인정한 호로비츠가 새로운 홈즈 소설을 출간한다는 내용이었다. 재단은 저작권 관리와 함께 코넌 도일 사후 홈즈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에 앞서 호로비츠는 2000년대 초 재단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고 곧장 수락했다. 그 역시 17세 때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셜록 홈즈 작품집을 읽고서 ‘범죄 작가(Crime Writer)’가 되기로 결심했다. 2011년 9월 8년간의 방대한 자료 조사와 집필 기간을 거쳐 쓴 ‘셜록 홈즈-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출간됐다. 영국 현지에선 ‘완벽하게 셜록 홈즈를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0만 부가 팔리며 인기를 모았다. 호로비츠가 쓴 두 번째 셜록 홈즈 소설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이 최근 황금가지에서 출간됐다. ‘모리어티의 죽음’은 홈즈와 숙적 모리어티 교수의 맞대결을 그린 유명한 단편 ‘마지막 사건’의 이후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국내 셜록 홈즈 마니아들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한국 독자들은 재단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이전트가 혹시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냐고 하기에 즉시 하겠다고 대답했다. 코넌 도일 직계 후손들은 무척 관대했다. 특별히 요구하는 바도 거의 없었고, 탈고할 때까지 직접 만난 일도 없었다.” ―‘실크 하우스…’에 대한 칭찬은 코넌 도일‘처럼’ ‘답게’ 썼단 거다. 당신도 ‘알렉스 라이더’ 시리즈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홈즈 시리즈의 그늘로 들어가는 것이 아쉽지 않았나. “원전이 ‘그늘’이라고 생각한 적은 전혀 없다. 그 작품들은 코넌 도일이 환상적으로 정제한 놀라운 세계관과 문학사상 손꼽히게 위대한 캐릭터를 제공해준 영감의 원천이었다. 솔직히 ‘실크 하우스…’를 잘 쓸 자신이 있었다. 마음에 의심이나 거리낌이 한 점이라도 있었다면 작품을 끝내 쓰지 못했을 것이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아주 간단한 규칙을 세웠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것(I would change nothing)’. 코넌 도일이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은 나도 할 생각이 없다. 나는 셜록 홈즈는 내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 그와 그가 등장하는 책을 사랑하는 수백만 명의 전 세계 팬들에게 속한 존재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홈즈 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셜록 홈즈 마니아가 오래 기다린 모리어티가 등장한다. “원작에서 모리어티가 실제로 등장하는 건 ‘마지막 사건’ 단 한 편이고, 몇몇 작품에서는 이름이 언급될 뿐이다. 그러나 그는 범죄 문학에서 크나큰 위치를 차지했다. 두 사람은 라이벌이라기보다는 불구대천의 숙적으로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서로에게 크나큰 경의를 품고 있지만 말이다. 코넌 도일은 한때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쓰는 데 지쳐 버렸고, 그래서 홈즈를 ‘죽이기’ 위해 모리어티를 창조해 냈다. 모리어티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당신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이 있나. “까다롭게 굴려는 건 아니지만 사실 난 매일을 색다르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지금 난 에게 해 끄트머리에 있는 크레타 섬에서 이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때로는 영국 서퍽 주에 있는 오퍼드란 작은 마을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쓴다. 확실히 물가에서 작업이 잘된다. 하루에 열 시간 정도, 다른 건 전부 잊어버릴 정도로 글에 집중한다. 보통은 펜으로 직접 쓴 뒤에 컴퓨터로 옮긴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너무 좋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한국 문학은 왜 ‘문학동네만의 동네’가 됐나.” 1년 전 새내기 문학 담당 기자가 되고서 가진 한 모임에서 한 출판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는 1993년 문을 연 문학동네가 경쟁 출판사인 창비, 문학과지성사를 제치고 문학 분야 1위 출판사로 자리 잡게 된 과정에 불만이 많았다. 과도한 선인세 지급으로 유명 작가들을 자사로 결집시키고, 그에 비해 새로운 작가 발굴엔 소홀하고, 상품성만 있다면 ‘주례사 비평(칭찬 일색 비평)’으로 문학성까지 심어준다는 주장이었다. 수긍할 만한 대목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학동네의 장점에 주목하고 싶었다. 선인세로 작가의 삶이 윤택해져 문학에만 집중하게 한다면, 과한 마케팅이 새로운 문학 독자를 발굴해 전체 파이를 키운다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최근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을 보면서 잊고 지냈던 그 말이 떠올랐다. 16일 신 씨의 표절 논란이 일어나고서 문학동네는 창비,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문학권력’으로 비판받았다. 신 씨 표절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사과 한 줄 없던 문학동네는 25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문학권력을 비판해온 평론가 권성우 김명인 오길영 이명원 조영일 씨 등 5명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호명’하며 자사가 마련한 비공개 좌담에 나올 것을 ‘청했다’. 그 내용은 자사의 문예지에 싣겠다는 것이다. 이후 문학동네 팬들이 주로 모이는 문학동네 인터넷카페에서조차 말만 청한 것이지 고압적이라는 비판 의견들이 나왔다. 호명받은 평론가들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그 태도에 대해 항의했다. 권성우 오길영 이명원 평론가는 제안을 공개적으로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동네는 28일 또 한 번 “초청받은 분들 중 일부는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며 “충분한 토론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발언한 후 그것을 근거로 상대에게 무언가를 징벌하듯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재차 참석을 요구했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간 비판을 의식한 듯 자세를 낮췄지만 좌담회 참석 요구는 굽히지 않았다. 개인 자격으로 문학동네를 포함한 문학권력을 비판했던 평론가들에게 문학동네 편집위원 일동이란 집단으로 개인들을 한 명 한 명 콕 찍듯 호명하는 것이 공정할까. 그것도 공개 토론회가 아닌 비공개 좌담이다. 대부분 문학동네의 태도를 고압적이라고 비판하는데도 재차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행여 한국 문학을 ‘나만의 동네’로 여기는 오만함은 아니길 바란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원불교는 치킨 먹어도 됨.’(원치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원불교의 사이버 교화에 힘쓰는 페이지(facebook.com/WonIntro) 이름이다. 이름도 도발적인데, 페이스북 커버 사진은 원불교 상징인 둥그런 일원상과 닭다리가 결합된 이미지(사진)다. 이 페이지는 일명 ‘원치됨’으로 불리며 하루 방문자 3만5000명이 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원치됨의 인기 비결은 인터넷식 유머다. 게시글 ‘원불교? 눈물 좀 닦고’에선 오열하는 사진을 올린 뒤 원불교 신자가 13만 명으로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였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신(神)으로 믿는 신자 10만 명과 비슷하다고 적었다. ‘원불교 누구한테 기도함?’에선 예수님과 부처님은 자신에게 온 기도 건수가 수억 개에 달한다고 힘들어하는 반면 원불교 대종사는 ‘우리 애들은 저한테 기도 안 한다’며 느긋해하는 내용도 있다. 유머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원불교 소개다. 신자 수가 적어도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은 활발히 한다거나, 기도는 대종사가 아닌 천지, 동포, 부모를 위해 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원치됨의 운영자는 KAIST 대학원 박사과정 조창순 씨(27). 그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원불교를 믿는다고 하면 주위에서 ‘불교 짝퉁 아니냐’ ‘거긴 고기 먹느냐’ 등의 질문에 시달렸다”며 “인터넷을 통해 원불교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 2013년 4월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불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원불교 언어인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 일원상을…’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는 일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다. 원불교의 역사, 사상, 복장 등에 관한 상식을 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인터넷 코드에 녹이자 효과가 컸다. 종교가 없거나 타 종교 신자들이 원불교가 궁금해서 찾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페이지 이름에 치킨을 넣은 것도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불법(佛法)을 누구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 게 원불교”라며 “치킨만큼 일상을 잘 표현하는 것이 없어서 고기 대신 썼다”고 했다. 이 페이지가 인기를 모으자 주변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열어보라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그는 “100년밖에 안된 종교답게 원불교는 현대적이고 합리적이고, 사회적 물의를 한 번도 일으킨 적이 없을 만큼 깨끗하다”며 “일원상이 예수님, 부처님 같은 개인이 아닌 그분들이 깨친 공통의 진리를 상징하듯, ‘원치됨’은 여러 종교인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원불교는 치킨 먹어도 됨.’ (원치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원불교의 사이버 교화에 힘쓰는 페이지 이름이다. 이름도 도발적인데, 페이스북 커버 사진은 원불교 상징인 둥그런 일원상과 닭다리가 결합된 이미지다. 이 페이지는 일명 ‘원치됨’으로 불리며 하루 방문자 3만5000명이 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원치됨의 인기 비결은 인터넷식 유머다. 게시글 ‘원불교? 눈물 좀 닦고’에선 오열하는 사진을 올린 뒤 원불교 신자가 13만 명으로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였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신(神)으로 믿는 신자 10만 명과 비슷하다고 적었다. ‘원불교 누구한테 기도함?’에선 예수님과 부처님은 자신에게 온 기도 건수가 수억 개에 달한다고 힘들어하는 반면 원불교 대종사는 ‘우리 애들은 저한테 기도 안 한다’며 하소연한는 내용도 있다. 유머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원불교 소개다.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신자 수는 적지만 구호단체에서 활동하는 신자 비율은 높다거나, 기도는 대종사가 아닌 천지, 동포, 부모를 위해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원치됨의 운영자는 카이스트(KAIST) 대학원 박사과정 조창순 씨(27). 그는 동아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원불교를 믿는다고 하면 주위에서 ‘불교 짝퉁 아니냐’ ‘거긴 고기 먹느냐’ 등의 질문에 시달렸다”며 “인터넷을 통해 원불교를 제대로 알리고 싶어 2013년 4월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불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원불교 언어인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상징하는 법신불 일원상을…’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는 일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다. 원불교의 역사, 사상, 복장 등에 관한 상식을 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인터넷 코드에 녹이자 효과가 컸다. 종교가 없거나 타종교 신자들이 원불교가 궁금해서 찾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페이지 이름에 치킨을 넣은 것도 친숙하게 다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불법(佛法)을 누구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 게 원불교”라며 “치킨만큼 일상을 잘 표현하는 것이 없어서 고기 대신 썼다”고 했다. 이 페이지가 인기를 모으자 주변에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열어보라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그는 “100년 밖에 안 된 종교답게 원불교는 현대적이고 합리적이고, 사회적 물의를 한 번도 일으킨 적이 없을 만큼 깨끗하다”며 “일원상이 예수님, 부처님 같은 개인이 아닌 그분들이 깨친 공통의 진리를 상징하듯, ‘원치됨’은 여러 종교인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기억은 예고 없이 떠올랐고, 그것을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당황스러운 것이 되었다.” 주인공 ‘나’(지율)는 열한 살 때 과잉기억증후군을 자각한다. 학교에서 돌아와 쇠고기야채죽을 먹는데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생후 9개월 당시 아기용 식탁에 앉아 먹은 으깨진 밥알과 호박, 당근 조각이며 자신을 돌보던 엄마의 옷차림까지 생생히 기억했다. 그의 기억은 어머니가 기록한 육아일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기억을 조절하는 법은 쉽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이 끝없이 아래로 스크롤할 수 있는 새하얀 웹문서라고 상상했고, 기억들은 거기에 첨부되는 동영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 갑자기 재생 버튼을 누른 듯 눈앞에 떠오른 기억은 그를 몽롱한 상태로 만들었다. 나는 타고난 기억력으로 의대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해 관둔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정반대의 여자 ‘은유’를 만난다. 은유는 반대로 자신의 삶마저 사회면 자투리 기사처럼 기억하지 못했다. 둘의 사랑은 쉽지 않았다. 나는 안에서 폭발하는 기억 때문에 은유에게 집중하지 못했고, 은유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말하지 못했다. 소설 끝자락에서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불필요한 과거를 망각이라는 순리에 맡기고, 본래 그것들이 가야 했던 곳에 돌려놓고 싶었다”며 망각을 위한 약물 치료를 택한다. 저자는 그 장면에 “모든 것을 기억하기에 자기 세계에 갇혀 있던 ‘나’가 망각을 통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담았다”고 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둘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까. 결말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설에서 나는 먼 훗날 은유가 읽어줬던 소설의 기억을 되살리며 필사한다. 그 소설은 사고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다. 저자는 보르헤스 소설 인용구와 과잉기억증후군을 묘사하기 위해 참고한 정보 출처를 확실히 밝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최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소설 분야 1위는 지난달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 저자 프레드릭 배크만은 스웨덴 출신의 칼럼니스트이자 유명한 블로거다. 그는 이 작품을 블로그에 연재하면서 댓글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했다. 출판사가 이 블로그를 보고 책 출간을 제안했다. 이 책은 현지에서 70만 부 이상 팔렸고 독일, 영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됐다. 다산책방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소설이 문예지나 인터넷 등에 연재되지만저자가 독자의 반응을 작품에 반영하고 독자와 소통하는 일은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미’ ‘뇌’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 출판사에 투고해 데뷔했다. 》○ “등단 제도 문학 생태계 다양성 저해” 등단은 한국만의 독특한 작가 데뷔 제도다. 작가 지망생들은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 외에 문예지에 원고를 투고하고 평론가들의 심사를 거쳐 등단하게 된다. 주요 문학출판사가 문예지를 갖고 있어 자연스럽게 등단과 평론, 출판 과정에서 ‘문학권력’과 작가들의 폐쇄적 관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가 전문가 10인에게 한국 문학의 새로운 ‘백년대계’에 관해 문의한 결과 등단 제도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여럿 나왔다.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은 “등단 제도에서 합격증을 받기 위해선 내면의 이끌림보다 심사 요건을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작품이 다양해지려면 미등단 작가 작품도 많이 발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해종 박하 대표도 “등단 제도는 문학 생태계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며 “강한 개성,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 발굴을 위해서라도 등단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이런 등단 제도를 통과한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는 데 비해 해외에선 출판사 투고 중심으로 다양한 직업과 세대의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로 구축된 문학권력의 폐해와 개선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이 나왔다. 민음사 대표 편집인을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해외는 문학작품의 생산 조직과 비평 조직이 결합된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만 그렇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비평 집단과 출판 자본이 분리돼 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가 내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시카고대가 출간하는 ‘크리티컬 인콰이어리’ 등은 출판사와 상관없는 독립된 비평 공간이다.○ 새로운 스토리텔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독자와 소통하는 작품이 나오기 위해선 문장에 대한 집착이 아닌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출판사 대표는 “이야기가 있는 소설은 ‘원 소스 멀티 유스’가 가능하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되면서 문학의 지평은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국내 단편문학이 감성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측면이 컸지만 일반 독자들은 ‘이야기성’이 강한 장편에 관심을 갖는 만큼 장편 서사를 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 베스트셀러 열풍을 일으킨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기자와 PD로 일했다. 그는 “언론에서 일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창작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표절 사태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경숙 씨를 둘러싼 표절 사태가 오히려 “한국 문학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문학이 한국을 만들어 왔고, 한국의 정치적 상상력은 문학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한국 문학의 사회적 위치가 높기 때문에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작가회의는 표절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실무 협의와 공론화 절차를 밟고 있고,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도 문학 표절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신 씨의 책을 출간해온 문학동네는 25일 문학권력을 비판했던 평론가들과 자사 편집위원이 함께하는 좌담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문학동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을 통해 문학동네가 경청해야 할 말씀을 들려주신 권성우 김명인 오길영 이명원 조영일 이상 다섯 분께 저희가 마련한 좌담의 장에 참석해 주실 것을 청한다”고 밝혔다.김지영 kimjy@donga.com·박훈상·김윤종 기자}

“(소설가) 신경숙 씨와 출판사의 어이없는 해명을 보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어요. 당분간 한국 소설은 덮어두고 외국 소설만 골라 읽을 거예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소설 코너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 씨(26·여)의 목소리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한국 소설을 매달 꾸준히 사서 읽었다는 그는 “신경숙 씨 책은 중고서점에 곧 내놓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해외 소설 코너에서 만난 직장인 신모 씨(33·여)는 “한국 소설이 표현, 소재, 줄거리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우리 작가니까 애정을 갖고 읽었다”며 “신 씨 표절 논란을 보면서 그마저도 베낀 것 같은 생각에 해외 소설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소설의 하락세가 가파르다. 24일 동아일보가 온라인서점 예스24와 함께 2005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국내 문학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2010년까지 상승세를 유지했던 것이 2011년 이후 기세가 꺾였다. 2011년에는 13%, 2013년 16.6%, 2014년에는 무려 17%나 전년 대비 판매가 감소했다. 2012년 한 해만 전년 대비 6.1%의 상승세를 보였는데 이는 문인이 아닌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안철수의 생각’이 그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년 상반기 대비 33%나 판매량이 감소했다.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국내 문학은 12권이 포함됐지만 그림책 또는 에세이였을 뿐 창작 소설이나 시집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예스24 관계자는 “이야기나 형식 면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 세대의 요구에 한국 문학이 아직 대답을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이 독자들에게 외면받은 이유는 뭘까. 출판 현장에선 무엇보다 독자 중심이 아닌 문단 중심의 출판 방식을 꼽는다. 출판사의 문학 편집자 5명은 전화 인터뷰에서 문학 문예지 게재를 위한 단편 위주 집필과 요즘 독자가 원하는 스토리텔링 발굴이 아닌 문체 미학에의 집착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실제 독자들은 단편소설집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 하지만 우리 문단의 경우 등단 뒤 단편을 발표해 문예지에 게재하고 평단의 인정을 받은 뒤에야 장편 집필에 들어가는 구조가 정착돼 있다. 편집자 A 씨는 “단편은 삶의 찰나에 깊이 파고들어가는 문학성은 깊지만 정작 사람 사는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며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읽기 어렵거나 재미없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문체 미학에 집착해 ‘골방 문학’에만 갇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편집자 B 씨는 “문장에만 집착하느라 책상머리에 앉아 필사를 하고 있으니 현장 취재를 통한 새로운 소재나 스토리텔링 발굴이 되지 않고 있다”며 “어설픈 디테일을 보면서 편집자로서 답답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미문과 감성에 주력하는 단편과 달리 장편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종목’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국내 작가들은 서사 구조가 취약한, ‘단편 같은 장편’을 쓰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 C 씨도 “국내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이 스마트폰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며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스토리텔링 없이는 이젠 소설이 읽히기 어려운 때”라고 말했다. 기존 글쓰기의 답습이 아닌,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향 전환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순문학의 죽음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이야기의 힘을 계속 무시했다간 앞으로 문단은 권력이라는 말을 갖다 쓰기도 민망한 종이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지영 기자}

“신경숙은 문학이란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표절 논란에 휘말린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다. 신 씨는 22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지만 표절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특히 신 씨가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독자에게 사과한다”고 밝힌 부분에 비판이 집중됐다. “마지못해 사과했다” “논점을 교묘하게 피하는 느낌” “말장난에 불과하다” 등이 주류를 이뤘다. “당신 자전거를 훔치지는 않았는데, 당신 자전거가 우리 집에 있다. 나는 당신 자전거에 가지도 않았는데, 왜 자전거가 내게 있을까란 답변이나 다름없다”고 비꼬는 글도 눈에 띄었다.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 2000여 개 중 90% 이상이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문학, 출판계도 술렁였다. 문단에선 “신 씨가 자기 혼자 살기 위해 문단 전체의 고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왔다. 신 씨의 발언이 오히려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더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 주요 문학상 수상자인 중견 소설가 A 씨는 “신 씨는 애매한 표현 대신 (표절을) 했으면 했다, 안 했으면 안 했다고 명확하게 인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소설가 B 씨는 “상당 기간 신간을 출간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문단에서 주를 이룬다”며 “독자들이 의심의 눈으로 한국 소설을 읽을 텐데 오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C출판사 대표는 “이건 사과가 아닌 말장난 수준이다. 진정성이 없다”고 말했다. 신 씨의 해명이 철저히 준비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출판인 D 씨는 “대형 출판사들이 여론의 추세상 더이상 침묵하면 곤란하다고 신 작가를 설득했을 것이고 사전 논의를 거쳐 ‘꼬투리’ 잡히지 않는 수준을 정해 인터뷰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기 검열’의 기준을 높이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등단 10년 차 소설가 D 씨는 “문장 하나하나 쓸 때마다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 같다”면서 “글을 쓸 때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젠 스스로 더 엄격하게 경계해야겠다”고 말했다. 소설가 E 씨도 “소설의 사소한 부분이라도 영향을 받은 대목이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출처를 확실하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 씨를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23일 본보와 한 통화에서 “고발을 취하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표절 의혹을 제기할 만하고 이에 대해서는 사과한다’는 신 씨의 말은 변명”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의성’ 여부고 이를 법적으로 가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zozo@donga.com·박훈상 기자}

《 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후폭풍은 오히려 거세졌다. 신 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사과 아닌 말장난’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는 것. 23일 열린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주최 긴급토론회에서도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이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우리 문단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대안을 찾아본다.한국문학이 어느 때보다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 사태가 불거지면서다. 신 씨는 22일 표절한 것으로 지목된 소설 ‘전설’에 대해 “출판사와 상의해서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며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절필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판사 창비는 “‘전설’이 실린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의 출고를 정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신 씨 개인이 아닌 한국문학의 구조적 문제를 들추는 계기가 됐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개최한 긴급토론회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 권력의 현재’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오늘의 한국문학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문단의 패거리화, 권력화로 빚어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 “정당한 비판과 성숙된 논의로 한국문학의 썩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토론회에 앞선 인사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문학의 ‘썩은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문단 내부에서도 공유됐다는 뜻이다. 23일 긴급토론회 참석자들은 한국 문학권력을 정조준하면서 비판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신경숙 표절 국면에서 문학권력의 문제’를 주제로 ‘전투적인 평론가’들의 끊임없는 지적에도 신경숙 표절을 옹호한 문학권력의 폐쇄성을 비판했다. 그는 “문학권력 내부에서 작가 양성과 매체 발간, 문학상 수여와 단행본 발간까지 이뤄지다 보니 독자와의 관계보다는 내부적 질서가 우위에 놓이게 된다”며 “이 질서의 ‘신화적 상징’이 바로 신경숙 문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출판자본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출판사가 자신만의 문학적 색채를 가지려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가 말하는 문학권력은 이른바 3대 주요 문학출판사인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를 가리킨다. 이 출판사들이 단순히 문학 단행본을 많이 내서 문학권력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각각 출간하는 문예지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가 한국문단의 ‘권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 문예지에 편집위원으로 소속된 평론가들이 각 사에서 출판되는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을 문예지에 게재하면서 작가의 명성을 굳히는 요인이 됐다. 이 잡지들은 순문학의 부흥을 꾀한다는 목적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 즉 ‘시장’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문학의 생산과 유통 과정이 이들 문학권력의 ‘닫힌 체제’ 안에서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2000년대 이후 일부 비평가들이 문학권력들의 칭찬 일변도 평론을 ‘주례사 비평’으로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는 권력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은경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도 신 씨의 문학 이력이 이런 ‘문단 카르텔’의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3년 신 씨가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로 큰 주목을 받은 이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에서 고르게 책을 출간하며 “대중성에 이어 창비가 상징하는 진보적 가치와 문학적 상징자본을 일거에 획득해 한국문학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됐다”고 밝혔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에 대해 “신경숙은 ‘환금성(換金性)’이 탁월한 작가였고 그가 쓴 책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그를 ‘한국문학의 보람’이라고 칭하며 떠받들었다”며 “이를 견제해야 할 비평가들은 출판사의 압력 속에서 반체제 지식인이 아닌 산업적 메커니즘의 일부로서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경숙 사태는 한국 문학이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됐던 십여 년의 실험이 희·비극적으로, 어떤 희망 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으로 인식돼야 한다”며 “치매 상태에서 집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것은 신경숙 소설 속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문학’”이라고 했다. 토론자로 참가한 심보선 시인은 “이번 사태는 문학 시장과 문학 비평을 독점한 권력화된 시스템과 거기 결부된 작가와 평론가들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며 “나쁜 관행이 작가들에게 시스템 안에만 들어오면 구미에 맞춰 대충 써도, 표절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나쁜 시그널(신호)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심 시인은 이어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다. 다수의 에이스를 육성하고 발굴해야 한다”고 발언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지영 기자}

《 소설가 신경숙 씨(52)의 표절 논란이 확산되는 추세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18일 신 씨를 검찰에 고발하자 문학계는 “문단 내부에서 해결할 일”이라며 고발 철회를 주장했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는 문단의 자정능력을 강조하며 23일 ‘표절사태와 한국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한다. 시인 이종섭 씨는 페이스북에 “작가회의를 탈퇴했다. 가망성이 없다”고 문단에 대한 실망을 밝히기도 했다.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동아일보는 19∼21일 문단과 출판계, 저작권 전문가 10명으로부터 문학작품 표절의 근본적 원인과 근절을 위한 제언을 들었다. 》○ 문단 내 카르텔, 전무(全無)한 표절 기준이 근본 원인 전문가 10명 중 절반 이상이 국내 문학계에 표절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신인 작가로 등단해 기성 작가로 자리 잡는 과정의 폐쇄성을 꼽았다. 계간 ‘작가세계’ 편집위원 박철화 씨(50)는 “과거에 사과하고 인정했다면 이런 사달도 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문단의 닫힌 구조’를 이야기했다. 그는 1999년 작가세계 가을호에서 신 씨의 소설 ‘작별 인사’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을 표절했다며 처음으로 신 씨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들이 철저하게 신 씨를 감싸면서 이런 의혹이 묻혔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실제 황석영 등 원로작가부터 유력 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 조경란까지 그동안 문단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표절 시비가 여러 차례 있었다(표 참조). 하지만 문단 내부에서만 시끄러웠을 뿐 작가가 부인하고 출판사가 보호해 금세 묻혔다. 출판인 A 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나 신춘문예 같은 좁은 관문을 뚫어야 하는 ‘문학 고시생’이 돼야 한다. 등단 후엔 선후배, 선생과 제자로 묶이면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나 표절 의혹에 눈감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등단 후엔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문학 메이저 출판사의 계간지 등에 작품을 연재하고 책으로 묶어 출판해야 ‘밥벌이’가 가능하다. ‘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의 편집위원, 평론가가 ‘하사’하는 ‘주례사 비평’과 문학상도 필요하다. 소설가 B 씨는 “많은 작가들이 ‘신경숙은 가더라도 출판사 권력은 영원하다’며 출판사에 밉보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문학동네 편집위원 신형철 권희철 씨가 신 씨를 비판한 것에 대해 “대세에 밀린 사후약방문이다. 창비 이상으로 문학동네의 책임이 크다. 문학동네 지면을 통해 이뤄진 신경숙 소설에 대한 글과 대담, 리뷰는 상당 부분이 확대 해석, 문학적 애정 이상의 과도한 의미 부여였다”고 밝혔다. 표절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문학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김찬동 법제연구팀장은 “‘몇 개 단어, 문장이 겹치면 표절’이란 구체적 기준이 국내 저작권법 조항에는 없다”며 “저작권 침해 여부는 법원에서 원저작물을 봤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의거성’과 두 작품의 ‘실질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음악계와 학술계 등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표절 문제에 대처해 왔다. 음악계는 핵심 부분 두 소절(8마디)이 똑같을 경우, 학계는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거나 명제 또는 데이터가 유사한 경우 등을 표절로 인정한다는 기준이 마련돼 있다. C출판사 편집자는 “문학계는 작품 표절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문단도 표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문인윤리조사위원회서 백서 만들자” 본보의 제언 요청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형 출판사의 지나친 이기주의 버리기 ▽문단의 도덕성 높이기 ▽표절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처벌규정 마련하기 ▽표절 문제에 대한 백서 제작하기 등을 제시했다. 박철화 작가세계 편집위원은 “신 씨의 잘못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의 상업주의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의 표절 문제니까 용서해주겠단 생각은 문단의 낮은 도덕 수준을 보여준다”며 “정치인도 자기 표절로 낙마하는 시대에 문단만 사회의 양심 기준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연구윤리규정이 있는 학술계처럼 문학계도 법률가 등을 참여시켜 명확한 윤리강령과 처벌규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가칭 문인윤리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지금까지의 표절 행위를 종합적으로 담은 백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윤종 기자}

독자가 시집의 가격을 정하고, 백지가 시보다 많다. 독자를 잡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담은 이색 시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시집 ‘명랑생각’, ‘자명한 연애론’의 최명란 시인(52)은 새 시집 ‘복합과거’를 출판하면서 가격란에 ‘책값은 독자가 매깁니다’라고 썼다. 그는 이메일(1210pearl@hanmail.net)로 독자의 주문을 받고 택배로 시집을 보낼 계획이다. 책값은 보통 시집 한 권 가격보다 저렴한 5000원 이상만 내면 된다. 그는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아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실험으로 독자를 붙잡아야 한다”며 “독자에게 책을 부치러 갈 때 설렘도 기대된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펴낸 시선집 ‘동시’는 시가 인쇄된 쪽보다 없는 쪽이 더 많다. 최수연 편집자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빽빽하게 시가 실려 있으면 읽고서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시와 시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 빈 종이 위에서 천천히 몽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시’엔 ‘지만지 한국근현대동시작가선집’ 100권에 실린 작가 113명의 작품 9940편에서 고른 방정환, 강소천 아동문학가 등 30명의 35편이 실려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독자가 시집의 가격을 정하고, 백지가 시보다 많다. 독자를 잡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담은 이색 시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시집 ‘명랑생각’, ‘자명한 연애론’의 최명란 시인(52)은 새 시집 ‘복합과거’를 자비 출판하면서 가격란에 ‘책값은 독자가 매깁니다’라고 썼다. 그는 이메일(1210pearl@hanmail.net )로 독자의 주문을 받고 택배로 시집을 보낼 계획이다. 책값은 보통 시집 한 권 가격보다 저렴한 5000원 이상만 내면 된다. 그는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아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실험으로 독자를 붙잡아야 한다”며 “독자에게 책을 부치러 갈 때 설렘도 기대된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펴낸 시선집 ‘동시’는 시가 인쇄된 쪽보다 없는 쪽이 더 많다. 최수연 편집자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빽빽하게 시가 실려 있으면 읽고서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시와 시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 빈 종이 위에서 천천히 몽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시’엔 ‘지만지 한국근현대동시작가선집’ 100권에 실린 작가 113명의 작품 9940편에서 고른 방정환, 강소천 아동문학가 등 30명의 35편이 실려 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1934년 스물둘이던 저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집을 나선다. 그는 미국 중북부 미니애폴리스에서 최남단 키웨스트까지 3200km를 이동했다. 대공황 시절 가진 돈도 없어 부랑자처럼 차편을 구걸해 이동해야 했다. 이유는 딱 하나. 숭배하는 작가에게 단 몇 분이라도 글쓰기에 관한 조언이 듣고 싶어서였다. 거지꼴로 무작정 헤밍웨이의 집에 찾아갔지만 헤밍웨이는 예상과 달리 친절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것”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절대로 훌륭한 작가인지 알 길 없는 살아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라” 같은 조언을 들려줬다. 게다가 저자에게 깜짝 제안까지 했다. 자신의 낚싯배 필라호에서 재워줄 테니 뱃일을 도와달라고. 저자는 1년간 헤밍웨이와 함께 필라호를 타고 키웨스트와 쿠바 아바나를 누비며 받은 특별한 작가 수업을 생생히 기록했다. 그는 헤밍웨이가 인정한 유일한 문하생이다. 책을 읽으며, 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상남자’ 헤밍웨이를 만나 반갑다. 헤밍웨이는 저자의 원고를 연필로 일일이 수정해 다듬어주고, 작가가 되기 위한 내적 동기를 이끌어 준다. 자신과의 경험을 글로 써서 상업적으로 팔아도 좋다는 통 큰 배포도 보여준다. 헤밍웨이 소설의 팬이라면 소설 뒷이야기가 궁금할 터. 어느 날 헤밍웨이와 저자 앞에 바다가 검게 변할 정도로 수많은 쇠돌고래 떼가 나타나 물 위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헤밍웨이는 “묘사가 불가능해. 이런 감격은 세상의 어떤 작가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라며 감탄했던 장관을 훗날 ‘노인과 바다’ 속 어부의 꿈속 장면으로 묘사한다. 유명 작가의 표절로 시끄러운 한국 문단이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도 있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중략) 그리고 남을 흉내 내지 말게.” 저자는 작가 수업을 받고도 널리 알려진 소설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의 1년을 멋진 기록으로 남겼다. 닮고 싶은 남자와 물보라 일으키는 고래를 사냥하고, 작가 수업까지 받았다니, 같은 남자로서 어찌나 부러운지…. 읽고 또 읽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국내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이른바 ‘문단 권력’으로 불려온 출판사 창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쏟아지는 독자들과 문인들의 비판에 굴복했다. 18일 창비는 강일우 대표이사 명의로 창비 홈페이지 등에 게재한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전날) 보도자료는 ‘표절이 아니다’라는 신경숙 작가의 주장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면서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전설’이 내용과 구성에서 매우 다른 작품이라는 입장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자들이 느끼실 심려와 실망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했다”고 했다. 강 대표는 이 글에서 “17일 본사 문학출판부에서 내부 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점을 사과드린다”고 했다. 창비의 입장 변화는 독자와 문인, 평론가들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출판계 안팎에서는 “경박하고 기회주의적이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애매한 표현이나 명백한 사과가 아닌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 A 씨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을 대표이사와 상의 없이 문학출판부가 자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백낙청 편집인의 허락을 받고서 창비와 편집인의 이름을 더럽힐 수 없어 ‘창비 문학출판부’ 명의로 낸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출판사 대표 B 씨는 “창비가 과거 SNS가 없던 시절처럼 출판사와 평론가만 덮어주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자료를 냈다가 화들짝 놀란 것 같다”며 “백 편집인을 위시로 수직의사결정 구조로 이름난 창비에서 내부 조율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코미디’”라고 했다. 한 창비 관계자는 “(기자가) 다 알 거 아니냐. 더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출판계에선 창비가 자사 직원들을 동원해 신 씨의 소설 표절 논란과 창비의 입장에 대한 분위기를 살피고, 소설가 이응준 씨가 표절 논란 의혹을 제기한 이유를 알아봤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불과 하루 만에 창비가 한발 후퇴한 입장을 밝힌 것은 거센 비난 여론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비는 전날 표절이 의심되는 대목을 두고 “(신 씨의)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고 해명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창비 홈페이지에는 수십 개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는 ‘창작과 비평이 아닌 표절과 두둔’ ‘일개 기업으로 전락한 창비, 스스로 망조의 길로 들어서다’ ‘이참에 출판사 이름도 바꾸라’ 등 비난 일색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에도 비난 여론과 함께 ‘창피하다’ 대신 ‘창비하다’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문단에서는 소설가 장강명 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게 표절이 아니라면, 한국 소설은 앞으로 짜깁기로 말라죽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학평론가 오길영 충남대 교수는 “창비마저도 문학의 시장논리에 굴복하는구나 싶다. 자본주의 현실에서 출판사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시장논리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시장논리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문제란 뜻이다”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부 직원으로 추정되는 창비직원A(@unknownmembera)는 트위터에 “내년은 창작과비평이 세상에 나온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위해 곳곳에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처음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모두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창비는 이날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언제나 공론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표절 문제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고 가이드라인과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보다 앞서 창비뿐 아니라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도 자사에서 책을 내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봉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년 50주년을 맞는 창비는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한국 문학의 요람으로 불렸지만 2000년대 들어 문단 권력으로 군림해 문단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미시마 유키오는)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憂國)’)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 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신경숙)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자신의 단편소설 ‘전설’이 일본 작가 작품의 표절이라는 소설가 이응준 씨(45)의 주장이 나온 지 하루 만인 17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입장을 내놓았다. 신 씨는 창비를 통해 발표한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에서 “해당 작품은 알지 못한다”며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씨가 표절 근거로 제시한 두 소설의 흡사한 대목에 대해선 일절 해명하지 않았다. 이 씨는 16일 인터넷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신 씨의 ‘전설’이 일본 탐미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 신 씨의 사과에도 문단과 독자들 비판 여론 거세 신 씨의 해명이 나온 후 문단에서는 신 씨에 대한 비판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날 이 씨의 표절 주장이 나왔을 때만 해도 적지 않은 동료 문인들이 “소설 습작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감싸준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신 씨가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작가로 존중하지만 ‘모르는 작품’이라는 해명은 최악의 대답”이라며 “예비 작가 시절 수련할 때 여러 작품을 베껴 써봤을 텐데 모른다는 식의 대답은 자충수”라고 말했다. 소설가 A 씨도 “습작 과정의 실수라고 사과했다면 이해했겠지만 저런 고백은 신 씨가 일본 극우소설가와 문학적 유전자가 같다는 해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더 차갑다. 누리꾼들은 “‘국민 작가’로 불린 신 씨가 표절로 작품을 쓴다면, 어떤 작가를 믿고 한국 문학을 읽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은 신 씨의 다른 소설 ‘깊은 슬픔’ ‘딸기밭’ 등에서 찾은 해외 유명 작가의 소설과 유사한 문장을 인터넷에 정리해 올리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해당 대목 외에도 유사한 부분 나와 창비도 ‘문학출판부의 입장’을 내고 이 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창비는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라며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우국’의 번역자인 김후란 시인은 “(문제가 된 대목이) 미시마 원작의 발상, 표현 방식과 무척 많이 닮아 있다”며 “소설을 보든, 보지 않았든 창작자는 다른 작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보가 직접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주제나 분위기는 달랐지만 흡사한 문장 외에 설정의 유사점도 눈에 띈다. ‘우국’에선 천황을 위한 쿠데타에 참여하지 못한 신혼의 다케야마 중위가 등장한다. ‘전설’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새신랑인 남자가 아내를 두고 전쟁에 참전하는 내용이다. 신혼의 주인공이 거사(쿠데타 또는 전쟁)에 참여하려 하자 친구들이 만류하는 설정도 비슷하다. 다케야마 중위가 “내가 신혼이라고 나만 안 껴준 걸까” 하는 장면과 ‘전설’의 새신랑이 “내가 신혼이라 친구들은 내게 말도 없이 자원했소”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 씨는 신 씨와 창비 측의 반박에 대해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줄 거라 믿는다”며 “다만 문인으로서 너무도 치욕스러워 그저 죄스러울 뿐”이라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B 씨는 “문학계는 표절에 대한 명백한 규정도, 처벌하는 기구도 없어 표절 논란이 일어나도 그대로 넘어가기 일쑤였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공개된 정보를 독자가 실시간 공유하는 만큼 문학의 권위 회복을 위해서도 문학계 표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 소설가 편혜영(43)의 새 장편소설 ‘선의 법칙’ (문학동네·사진)의 띠지에 적힌 문구다. 소설을 여러 번 읽은 편집자가 독자에게 읽히고 싶어 고른 문구일 터이다.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등단 15년 차 작가가 이전과 전혀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까. 》 “(제게 붙은) ‘혈흔 낭자’ ‘그로테스크’ ‘엽기’ 인장(印章)에 익숙한 독자에겐 낯선 소설이에요. 예전 소설이 절망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그렸다면, 이번 소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삶을 조금씩 연장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려져요. 소설 시작점이 다른 셈이죠.” 소설 속 주인공은 윤세오와 신기정, 둘이다. 윤세오는 가스 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불법 다단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딸을 조건 없는 애정으로 품은 아버지였다. 세오는 아버지를 괴롭혔던 이수호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기정은 이복동생 하정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동생의 휴대전화 발신 기록을 좇아 하정의 발자취를 더듬기 시작한다. 장마다 두 사람의 궤적이 번갈아 진행되며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함께 연결되어 있던 시절에는 그들도 차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몇 년 후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누구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120쪽) 띠지의 또 다른 문구는 ‘생의 마지막 순간 보내온 간절한 발신음’이다. 편 씨는 독자에게 어떤 발신음을 보내고 싶었을까. 그는 “등장인물들이 고독하게 인생에서 큰 실패를 한 것 같지만, 실패의 순간에도 끝이라 생각 않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우리 옆에 누군가는 실패를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고, 그런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2011년부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편 씨는 민망한지, 여러 차례 답을 부탁받고서야 짧게 답했다. “가진 운의 총량이 있다면 한 시기에 몰아서 받은 것 같아요. 운이 쌓일수록 ‘빚’도 늘어나는 것 같아 그걸 갚아 나가려면 더 열심히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재능과 성실 중에서 성실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문학적 재능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뭘 잘하는지 찾으려고 성실하게 썼다”며 “천부적으로 참신한 표현이 툭 튀어나오거나 단어를 편하게 다루지 못해 초고를 쓰고선 퇴고를 많이 한다”고 했다. 글이 쓰고 싶어 늦깎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2000년 등단 후에도 2008년까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소설을 쓴 그다. “난 한 놈만 팬다”던 영화 속 ‘무대포’ 캐릭터처럼, “오늘은 이 소설만 팬다”는 각오로 소설을 쓸 것 같아 정이 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소설을 다시 읽었다. 편혜영의 소설은 편안한 편혜영이 쓰는 불편한 소설이다. 그 사이 문학이 있기에 일독을 권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일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설가 이응준 씨(45)는 16일 인터넷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란 글을 올리고, 신 씨가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이 미시마의 ‘우국(憂國)’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소설 ‘금각사’를 쓴 미시마는 1970년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주장하며 할복자살했다. 1990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한 이 씨는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등을 발표한 중견 작가여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 씨는 이 글에서 표절이 의심되는 부분을 인용해 나란히 올려 두었다. 각각 4개와 7개 문장으로 이뤄진 해당 부분은 같은 글이나 다름없이 비슷하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우국’(1983년)은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돼 있다. 신경숙의 ‘전설’은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고 표현돼 있다. 이 씨는 해당 글에서 “‘다른 소설가’의 저작권이 엄연한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하는’, (중략)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이라며 “의식적으로 도용(盜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단에서 10여 년 전부터 제기됐던 신 씨의 ‘우국’ 표절 의혹을 공개적인 공간에 기록하기 위해 글을 썼다”며 “신 씨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표절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금까지 보도됐던 신 씨의 표절 논란에 대한 언론 보도도 정리해 올렸다. 신 씨는 1999년 당시 소설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가 국내외 작가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이 씨의 표절 주장에 대해 출판계의 의견은 엇갈렸다. 한 문학평론가는 “표절 의혹을 받는 부분이 소설 전체에서 얼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해당 대목의 문장들이 흡사한 정도를 볼 때 표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 씨의 소설을 출간했던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해당 대목이 아니라 전체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다른 소설이기에 표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씨의 주장과 관련해 여러 차례 신 씨와 측근에게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 소설가 편혜영 씨(43)의 새 장편소설 ‘선의 법칙’(문학동네)의 띠지에 적힌 문구다. 소설을 여러 번 읽은 편집자가 독자에게 읽히고 싶어 고른 문구일 터이다.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등단 15년 차 작가가 이전과 전혀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제게 붙은) ‘혈흔 낭자’ ‘그로테스크’ ‘엽기’ 인장(印章)에 익숙한 독자에겐 낯선 소설이에요. 예전 소설이 절망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그렸다면, 이번 소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삶을 조금씩 연장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려져요. 소설 시작점이 다른 셈이죠.” 소설 속 주인공은 윤세오와 신기정, 둘이다. 윤세오는 가스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불법 다단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딸을 조건 없는 애정으로 품은 아버지였다. 세오는 아버지를 괴롭혔던 이수호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기정은 이복동생 하정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동생의 휴대전화 발신기록을 좇아 하정의 발자취를 더듬기 시작한다. 장마다 두 사람의 궤적이 번갈아 진행되며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함께 연결되어 있던 시절에는 그들도 차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몇 년 후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누구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120쪽) 띠지의 또 다른 문구는 ‘생의 마지막 순간 보내온 간절한 발신음’이다. 편 씨는 독자에게 어떤 발신음을 보내고 싶었을까. 그는 “등장인물들이 고독하게 인생에서 큰 실패를 한 것 같지만, 실패 순간에도 끝이라 생각 않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우리 옆에 누군가는 실패를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고, 그런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2011년부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편 씨는 민망한지, 여러 차례 답을 부탁 받고서야 짧게 답했다. “가진 운의 총량이 있다면 한 시기에 몰아서 받은 것 같아요. 운이 쌓일수록 ‘빚’도 늘어나는 것 같아 그걸 갚아 나가려면 더 열심히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재능과 성실 중에서 성실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문학적 재능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뭘 잘하는지 찾으려고 성실하게 썼다”며 “천부적으로 참신한 표현이 툭 튀어나오거나 단어를 편하게 다루지 못해 초고를 쓰고선 퇴고를 많이 한다”고 했다. 글이 쓰고 싶어 늦깎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2000년 등단 후에도 2008년까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소설을 쓴 그다. “난 한 놈만 팬다”던 영화 속 ‘무대뽀’ 캐릭터처럼, “오늘은 이 소설만 팬다”는 각오로 소설을 쓸 것 같아 정이 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소설을 다시 읽었다. 편혜영의 소설은 편안한 편혜영이 쓰는 불편한 소설이다. 그 사이 문학이 있기에 일독을 권한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성탄절. 당신이 연말 인사가 담긴 성탄절 편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갈까. 책에 답이 있다. 저자가 만난 미국 노스다코타주립대 앤 버넷 교수는 평범한 소도시 사람들의 성탄절 편지를 모았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천 장 분량이다. 버넷 교수는 편지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와 구절을 분류했다. 감사 인사보단 ‘정신없다’ ‘분주하다’ ‘허덕이다’ ‘피곤하다’ 같은 말이 주를 이뤘다. 버넷은 “다들 ‘당신보다 내가 더 바쁘다’고 자랑한다. 자신이 이웃들만큼 바쁘지 않으면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일과 가정에 얽매이다 보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처 하지 못한 일,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밤이 이어진다. 함께 사는 남편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잡다한 일 더미뿐이었다고 후회할까 싶다. 저자는 ‘왜 이렇게 쫓기며 사는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이 가능할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시간활용 학술대회’에 참가해 시간연구가 여러 명에게 조언을 듣고 사회학자, 인류학자, 뇌과학자를 만나 학문적 배경을 탄탄히 쌓는다. 발로 뛰면서 시간에 쫓기는 자와 시간을 즐기는 사람을 만나고 ‘균형 잡힌 삶’을 보장하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의 현장을 취재한다. 그렇게 모은 취재기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일, 사랑(가정), 놀이(여가) 영역에서 균형을 달성하는 법을 알려준다. 일터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아버지는 바빠서 얼굴도 못 보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바쁘게 일하고, 어머니는 육아 부담에 일을 줄였다가 한직을 전전하게 되는 ‘마미 트랙’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나마 아이 있는 아버지는 ‘아빠 보너스’라도 받지, 아이 있는 엄마는 ‘엄마 벌점’ 속에 더 나쁜 일자리로 내몰린다. 저자는 주간 60∼70시간 근무를 강요하면 단기 효과를 거둘 순 있지만 장기적으론 비생산적임을 강조한다. 창조성과 생산성을 높이려면 첨단 정보기술(IT) 기기를 지급할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일하는 방식’을 존중하고 탄력 근무제를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 돼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이런 연구 결과는 뜬구름 잡는 소리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하지만 저자의 경고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저자는 1990∼2000년대에 나고 자라 막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Y세대(18∼35세)에 주목한다. 미국에만 800만 명이다. 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받지 못하면 과감히 회사를 떠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험을 시작하거나 자발적 실업을 택한다. 최근 수많은 젊은이가 직장을 관두고 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도전하는 한국도 귀담아들어 볼 만하다. 사랑(가정) 영역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골라 하고 기분 좋을 때만 아이를 돌보는 남자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여자들도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좋은 엄마’란 규범에 휘둘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일을 맡기는 변화가 필요하단다. 여가 부분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TV에만 빠지는 어리석음만 저지르지 않길 강조한다. 저자는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의 나라 덴마크를 소개한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지금 이 순간에서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발견하는 ‘휘게’(hygge·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뜻하는 덴마크어)의 미학이다. 시간에 쫓기는 삶을 바꾸려면 세상과 나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 세상을 향해 “시간은 권력이다.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줄 수 없다”고 요구해야 하고, 나를 향해선 현재의 순간을 몰입하고 만끽하는 노력을 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원제 Overwhelmed.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