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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여성 핸드백 ‘코치(coach)’의 창업주 마일스 칸이 10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귀족들이 타던 ‘사륜마차’를 뜻하는 코치는 핸드백 의류 신발 등을 만드는 미국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칸은 가죽 공방을 인수한 뒤 유명 디자이너 보니 캐신을 영입해 독특한 디자인의 여성용 핸드백을 출시하며 명품 브랜드로 성장했다. 코치는 현재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직영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액 45억 달러(약 5조 850억 원)를 올렸다. 임직원만 1만 7000명이다.● 맨해튼 가죽 공방에서 출발 코치는 1941년 가죽 장인들이 뉴욕 맨해튼 34번가에서 운영하던 공방이 모태다. 직원 6명이 남성용 가죽지갑과 작은 가죽 제품을 손으로 만들었다. 칸과 아내 릴리안은 1946년 이 공방에 합류했다. 부동산 업자였던 칸의 아버지가 이 공방의 투자자 4명 중 한 명이었다. 칸 부부는 이전에도 가죽제품 제작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고 1950년 이 공방을 완전히 인수했다. 칸 부부의 공방은 1961년까지도 남성용 지갑을 만들었다.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다. 칸은 2008년 발간된 자서전 ‘마이 스토리’에서 “몇 명의 고객이 전부였다”고 회고했다. 아내 릴리안은 1960년 칸에게 여성 핸드백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칸은 2013년 아내 릴리안이 사망했을 때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처음에 비웃었다. 당시 뉴욕에는 엄청난 숫자의 핸드백 회사들이 있었다. 모든 가게들은 유럽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을 베낀 짝퉁 제품을 팔았다. 그러나 내 아내가 곧 이들을 압도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에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있었다. 여성용 가방 수요도 덩달아 증가했다. 당시 여성용 핸드백은 대체로 얇은 가죽으로 만들었다. 칸 부부는 차별화를 추구했다. 두툼하고 견고하나 부드러운 가죽을 원했다. 릴리안은 가죽이 부드럽게 마모되는 ‘낡은 야구 글러브’에서 착안해 무두질(Tanning)을 거쳐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글러브 탠드 카우하이드(Glove Tanned Cowhide)’을 만들어냈다. 글러브 탠드 카우하이드는 코치만의 고유한 가죽 재질로 자리를 잡아 다른 브랜드들과는 차별화를 꾀할 수 있었다. 칸 부부는 1961년 공방을 확대해 ‘코치가죽의류회사(Coach Leatherwear Company)’를 출범시키고 ‘코치’ 로고가 부착된 여성용 핸드백을 출시했다. 같은 해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의 의류를 제작했던 디자이너 보니 캐신(Bonnie Cashin)을 영입했다. 캐신은 코치 컬렉션의 1세대를 이끈 인물이다. 1950년 화장품 및 향수 회사인 코티사가 패션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미국코티패션비평상(1942년 제정)을 받았으며 뉴욕타임스에 195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소개된 베테랑이었다.● 유명 디자이너 영입으로 도약 캐신은 코치 제품을 업그레이드했다. 1962년 코치는 캐신이 디자인한 가죽 가방, 액세서리 컬렉션 ‘캐신 캐리’를 출시했다. 캐신은 강아지 목줄의 클립을 보고 가방과 가방끈의 연결장치를 고안해 ‘도그 리시 클립’을 만들었다. 자신이 타고 다니던 컨버터블 자동차의 지붕 고정장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턴록 클로저(잠금 장치)’로 핸드백에 적용했다. 당시 이런 디자인을 선보이는 브랜드는 흔하지 않았다. 캐신의 노력으로 다양한 가방 액세서리는 코치의 아이콘이 됐다. 코치는 1970년대 초 글러브 탠드 카우하이드 가죽으로 만든 클래식한 모양의 더플백(실린더 모양의 큰 가방)을 내놓아 큰 인기를 얻었다. 1974년 코치 마크가 새겨진 가죽 조각인 행태그를 달았다. 코치는 1970년대 후반 카탈로그 마케팅, 우편발송 시스템 등으로 경영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며 매출을 크게 늘렸다. 백화점에 크게 의존하는 경쟁자들과는 달리 일반 가게들과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어 경쟁력을 키웠다. 1981년 뉴욕 메디슨가에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특정 상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를 열었다. 코치는 1980년대 초까지 매년 2000만 달러 이상의 핸드백을 팔았다.● 염소치즈에 매달린 말년 칸 부부는 1985년 3000만 달러를 받고 식음료 기업 새러리(Sara Lee)에 코치를 넘겼다. 당시 칸은 64세였다. 칸 부부는 1985년 뉴욕 주 컬럼비아 카운티에 600에이커(약 73만 평) 규모의 염소농장 ‘코치팜’을 운영하고 있었다. 코치팜은 초창기 염소 200마리를 키웠다. 하지만 염소가 1500마리로 늘자 칸 부부는 아예 농장에 전념하기로 했다. 코치팜은 친환경 유기농 제품의 붐과 맞물려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칸 부부는 20년 이상 농장을 운영하다 칸이 85세이던 2006년 농장을 팔고 생업에서 은퇴했다. 칸은 러시아 출신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칸은 뉴욕시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육군에서 복무했다. 헝가리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아내 릴리안과는 1947년 결혼했다. 칸은 좀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을 겨냥해 전쟁 반대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싣기도 했다. 코치의 경영을 맡았을 때는 노조가 제시하는 액수 보다 더 많은 급여를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코치의 아버지는 이제 세상을 떴지만 차별화를 추구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코치의 혁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1수학의 붕괴: 초등생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속출#2‘교육의 신화’ 대한민국.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 교육 시스템이 주목을 받았고,한때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1위를 차지해 선진국들의 탐구 대상이었죠. #3그러나 PISA 2015(지난해 12월 발표)는 역대 최악.특히 수학은 심각한 상황. 지난 3년간 30점이나 급락했죠.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평균 4점 하락에 그쳤습니다.#4교육현장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수포자’가 속출하고 있죠.#5교육 당국은 지난 10년간 사교육을 잡고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수학 교육수준을 하향화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시험과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평가’는 바뀌지 않았죠. 그 결과 사교육 없이 학교 교육만 받은 학생은 오히려 점수 얻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마치 농구할 때 평소에는 1m앞에서 슈팅연습 하라고 하고 시험 볼 때는 10m밖에서 하라고 하는 격이다.”- 강옥기 경희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6학생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풀이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정답만 필요합니다.학교들은 ‘변별력’을 이유로 교과과정 밖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합니다.‘요령’, ‘유형 파악’이 필요하지만 학교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고득점을 얻으려면 학원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7고득점 학생도 원리 이해나 응용력이 좋아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아닙니다.평소 문제 유형 파악과 빠른 계산 연습을 숱하게 많이 했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죠. 결국 고득점 학생도 수학 교육의 근본 목표인 사고력, 창의력 향상과는 상당히 벗어난 ‘문제 풀이 기술’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8“한국의 수학 평가는 계산과 속도가 핵심이다. 이건 엄밀히 말해 수학이 아니다.”- 이용훈 부산대 수학과 교수수학 교육은 왜 하는가.교육 목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2017.02.27 (월)원본 | 임우선·노지원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1최순실이 변호사 200명먹여 살린다고?#2“서초동이 확실히 특수(特需)는 특수죠.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변호사 일자리는 많이 만들었습니다.서초동 법조타운이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박영수 특검 기소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 A 씨#3매년 2월. 법원, 검찰의 정기 인사로 변호사들은보릿고개를 맞이합니다.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죠.지난해 10월부터 지속된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한 검찰과 특검 수사, 형사재판,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이어지면서 변호사 수요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423일 현재 변호사 209명(사임 변호사 제외)이 국정 농단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는 전국의 개업 변호사 100명 중 1명꼴입니다. “구치소 접견만 담당하는 이른바 ‘집사 변호사’와 선임계를 내지 않고 ‘그림자 변호’를 하는 거물급 변호사까지 포함하면 전체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 #5국정 농단 사건 참여 변호사 중에는 중소 로펌 소속이나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변호사가 많습니다. “대형 로펌은 주로 특검 수사 대상인 대기업을 대리하거나 자문에 응하고 있기 때문에 담당 변호사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판사 출신 변호사#6평소 법정이나 검찰청에서 모습을 보기 힘든 원로 법조인들이 직접 사건을 맡은 것도 특징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대리인단에 최근 합류한 정기승 전 대법관(89)은 그중에서도 최고령이죠. #7국정 농단 사건 전체 피고인 34명 중 31명은 판검사 출신인 전관 변호사(73명)를 선임했습니다.피의자와 참고인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정·관·재계 고위직 출신인 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8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서초동 법조타운에 때 아닌 ‘특수’를 가져온 상황.어떻게 봐야 할까요?2017.02.24 (금)원본 | 신나리·조윤경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1.턱 밑으로 다가온 탄핵심판 선고‘숨 가빠지는 대선 일정’#2.헌법재판소는 22일 16차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증인신문을 모두 마쳤습니다.남은 절차는 최종 변론.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이날“(최종 변론기일을) 27일 오후 2시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3.관심은 박 대통령의 최종 변론 출석 여부.이 권한대행은 대통령 측에 “26일까지 출석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대통령이) 결정을 못하고 있다. 대통령을 만나 상의해 보겠다”고만 답했습니다.#4.현재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박 대통령은 필요하면 출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지만,신문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죠.반면 헌재는 ‘출석하면 신문은 반드시 한다’는 입장이어서 갈등이 예상됩니다.#5.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상황을 고려하면최종변론 후 헌재 재판관의 탄핵 심판 결정까지 약 2주가 걸립니다. 탄핵심판 선고일은 3월 10일, 13일이 유력하죠.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선고일은 사흘 전 공개됐습니다.#6.대선 시계도 바빠졌습니다. 만일 3월 탄핵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은 불가피합니다.현행 헌법은 탄핵 결정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7. 결국 대선일은 5월 2~12일 실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선 후보로 나설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일 30일 전까지 사퇴해야 합니다.탄핵이 인용되면 정치권은 대선 정국에 본격 돌입합니다.#8.여야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습니다. 문재인 전 더불어 민주당 대표는 만 35세에 인텔 수석매니저에 오른 유웅환 박사를 영입했습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2일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같은 날 토크쇼 형식의 생방송 토론회에 출연해 ‘사실상 대선행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23일 각계 전문가들로 이뤄진 ‘전문가광장’을 출범시켰습니다. 조기대선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분위기입니다.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유정 인턴}

#1회사 몰래 가죽 바느질 배우는 ‘넥타이 부대’#2.“김 대리, 또 반차 냈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 거야?” 21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제약회사 영업부. 박모 팀장은 걱정 반, 의심 반의 목소리로 김모 대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김 대리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서둘러 가방에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섭니다.#3.“어머니가 편찮다”는 반차 사유는 거짓말. 제약사 영업사원 1년 차인 그가 반차를 내고 찾아간 곳은 회사 부근 가죽 공방(工房). 공방엔 멀쑥한 양복 차림의 남성 10여 명이 어울리지 않는 앞치마를 두른 채 느리고 서툰 솜씨로 가죽에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모두 취업 1¤3년 차인 새내기 직장인. #4.‘회사 몰래’ 6개월째 공방 수업을 듣는 김 대리는 1년 전 100곳이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희망하던 회사에서는 모두 낙방. 유일하게 합격한 곳이 중소 규모 제약사 영업부. #5.그러나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상사와 업체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취업보다 어려운 것이 재취업.“퇴사를 생각하다가 공방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만들어 팔면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열심히 배우고 있다.”- 중소 제약사 영업부 김 대리#6.지난해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 힘겹게 들어간 직장 상황도 좋지 못합니다. 지난해 전국 306개 기업에서 1년 이내 퇴사한 대졸 신입사원의 비율은 27.7%. 퇴사 이유는 상당수가 ‘조직과 직무 적응 실패’. 취업난에 적성이나 근로조건과 상관없이 ‘무작정’ 들어간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속출하는 셈이죠. #7.하지만 당장 퇴사를 하고 싶어도 재취업을 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과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공방에 손기술을 배우러 온 직장인들, 이른바 ‘생존형 공방족’이 늘고 있습니다. #8.20, 30대 직장인들이 생존형 공방족이 되는 건 취업난이 불러온 일종의 후유증이라는 분석.“취업문이 워낙 좁다 보니 적성과 근로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묻지 마’ 취업이 늘고 이는 결국 사회 초년생의 퇴사 문제로 이어진다. 자신이 꿈꾸던 직장생활과 너무 다른 현실에 재취업보다는 심적 스트레스가 덜한 창업을 택하려는 것도 공방으로 몰리는 원인 중 하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원본 | 김단비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채널A의 본격 시사 토크프로그램 ‘외부자들(화요일 오후 11시)’에서 박근혜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의 한 명인 서석구 변호사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21일 방영된 ‘내부자 전화 연결 <보이스피싱>’ 코너에서 출연진들은 서 변호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태극기를 꺼내든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지만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서 변호사는 ‘박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바라는가’라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질문에 “현재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는 증거는 (부족하다). 검찰은 대통령, 변호인 조사도 하지 않고 대통령을 공범자로 발표했다. 적법 절차를 위반한 사례다. 전 세계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특검법은 박 대통령이 사인한 부분이다. 검찰이나 특검의 소환을 거부한 것도 대통령”이라고 반박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피자헛’ ‘도미노 피자’와 함께 미국 3대 피자 기업으로 꼽히는 ‘리틀시저스(Little Caesars)’의 창업주이자 프로야구단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주 마이크 일리치(Mike Ilitch)가 3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일리치는 동네 피자가게를 세계 19개국의 글로벌 피자체인, 식자재 유통기업, 스포츠구단, 카지노, 호텔을 아우르는 거대 기업으로 키워낸 대표적인 미국 경영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테이크아웃 피자 체인인 리틀시저스는 미국에만 4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15년 매출액 34억 달러(약 3조 9100억 원)를 기록했다. 현재 일리치 가족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의 직원만 2만3000명에 이른다. ● 동네 피자가게 주인으로 변신한 야구선수 일리치는 1929년 미시간 주의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동유럽 마케도니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공구 제작자였다. 일리치는 디트로이트 쿨리고교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고교 졸업 이후 해병대에 입대해 4년 동안 복무했다. 전역한 뒤 1952년 계약금 3000달러를 받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메이저리거’를 꿈꾸며 유격수, 2루수로 뛰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에만 머무르다 결국 무릎 부상으로 1955년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일리치는 같은 마케도니아 이민자 가정 출신의 아내 마리안(84)과 함께 1959년 디트로이트 인근 소도시 가든시티에 작은 피자가게를 열었다. ‘리틀시저’라는 이름은 마리안이 남편 마이크를 그렇게 생각해 붙였단다. 마리안의 아버지는 음식점을 운영했다. 마리안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냅킨, 소금, 후추 등을 용기에 채우는 등 음식점의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어릴 때부터 장사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었던 셈이다. 마리안은 고교를 졸업한 뒤 전문대학에 해당되는 데어본커뮤니티칼리지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그의 경험은 일리치 부부의 피자 가게에 큰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리틀시저스 첫 매장은 장사가 잘 됐다. 일리치 부부는 프랜차이즈를 통해 매장을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1950~60년대는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속속 창업하던 시기였다. 피자헛은 1958년 캔사스 주 위치타, 도미노는 1960년 미시간 주 입실랜티에 첫 매장을 열었다. 일리치는 1962년 미시건 주 워런에 첫 프랜차이즈 매장을 열었다. 1967년 디트로이트 시내에도 진출했고 1969년 50호점과 해외 첫 매장인 캐나다 매장을 개점할 수 있었다. 미국 3대 피자기업은 국내 피자 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세 기업은 저마다 다른 독특한 판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피자헛은 ‘다양한 메뉴’, 도미노는 ‘빠른 배달’, 리틀 시저스는 ‘싼 가격’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일리치는 식자재 구매부터 피자 판매까지 최대한 비용을 줄였다. 1971년 피자에 많이 사용되는 버섯의 품질과 원가 절감을 위해 버섯농장을 인수했다. 다른 식자재 공급까지 직접 맡아서 원가 비중을 최대한 낮췄다. 1979년 피자 2개를 하나의 가격으로 파는 반값 할인 정책을 내놓으며 소비자를 모았다. 미국 내에선 꽤나 알려진 ‘PIZZA! PIZZA!’ 광고문구도 만들었다. 1988년 ‘Pan! Pan!’으로 불리는 정사각형의 두꺼운 피자를 출시했고 소비자들이 여러 가지 크기, 모양의 피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메뉴도 만들었다. TV 광고에도 나섰다. 리틀시저스는 저가 마케팅 전략 등에 힘입어 사세를 키웠고 1987년까지 미국 50개주 전역에 매장을 늘렸다. 1990년대부터는 종합소매점 체인 K마트 매장에도 매장을 입점시켰다. 2008~2015년에는 매장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피자 체인으로 꼽혔다. 승승장구하는 사업으로 여윳돈이 생긴 리틀시저스는 1989년 디트로이트 시내의 10층짜리 옛 폭스극장을 인수해 본사가 입주했다. ● “침체된 디트로이트를 스포츠로 살리자.” 일리치는 사업이 순항하자 고향 디트로이트에 뭔가 기여하고 싶었다.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 후반 GM(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기업들이 다른 도시에도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일리치는 스포츠 사업으로 디트로이트 시민들에게 큰 위안을 주고 싶었다. 1982년 어려움을 겪고 있던 프로아이스하키구단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를 인수했다. 당시 레드윙스의 성적은 하위권을 맴돌아 ‘데드윙스’로 불릴 정도였다. 시민들도 아이스하키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들을 기업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수익을 따진다. 하지만 일리치는 애초부터 수익과는 무관한 구단주였다. 그는 승리만을 추구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이었다. 1983년 드래프트에서 캐나다 출신의 스티브 아이저맨을 뽑아 20년 이상 주장을 맡기고 팀의 리더로 성장시켰다. 아이저맨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사상 최고의 리더라는 찬사를 받았다. 동구권, 북유럽권 선수들도 대거 영입했고 몬트리올 캐나디언스 감독을 지낸 명장 스카티 바우만을 영입해 1997, 1998년 스탠리컵(NHL의 플레이오프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4년 1600만 달러(약 184억 원)의 운영적자에도 불구하고 레드윙스는 ‘가장 가치가 높은 팀’으로 꼽혔다. 스탠리컵은 2002, 2008년에도 받았다. 일리치는 2003년 NHL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도시가 ‘하키타운’으로 불릴 정도로 아이스하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1992년에는 자신이 마이너리그 선수로 뛰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피자 업계 라이벌인 도미노피자의 창업주 톰 모나한에게 8500만 달러(약 978억 원)를 주고 인수했다. 1901년 창단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8개 구단 중 하나 월드시리즈 4번, 리그 11번의 우승을 한 명문 구단이다. 일리치에게 야구는 필생의 꿈이었다. 그는 자신이 대부분의 돈을 들여 1912년부터 사용하던 낡은 주경기장을 대신 2000년 코메리카파크에 새 경기장을 열었다. 일리치는 개인재산을 털어가며 유명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는 단장, 감독에게 “돈은 신경쓰지 말라. 최고의 선수만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일리치의 적극적인 투자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2011~2014년 4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타이거스는 2006년, 2012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도 올랐지만 끝내 월드시리즈 우승은 해내지 못했다. 일리치는 “죽기 전 월드시리즈 우승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 선수, 시민, 팬 모두에게 존경받는 구단주 일리치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성명을 내고 “그는 스포츠와 비즈니스, 지역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디트로이트에 대한 열정, 타인에 대한 관용,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헌신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리치는 스포츠계는 물론 지역사회, 스포츠팬 등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흔치 않는 구단주 중 하나였다. 2009년 디트로이트에 본사를 둔 GM이 파산 위기에 직면해 타이거스의 홈 구장인 코메리카파크애 광고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일리치는 다른 기업들의 광고 제안을 뿌리치고 광고료가 가장 비싼 구단 외야 중앙에 GM의 광고판을 무료로 세워줬다. GM은 디트로이트의 경제를 지탱하는 대표적인 지역 기업이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돈을 많이 번 만큼 사회공헌에도 힘쓰며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적 신분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했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를 인수한 뒤 아이스하키 청소년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리틀시저스아마추어하키리그를 출범시켰다. 이 리그는 현재 가장 존경 받는 청소년하키리그로 성장했다. 1985년에는 푸드트럭 ‘리틀시저스 러브 키친’을 만들어 노숙자, 저소득층, 재난피해자 등 사회적약자들에게 무료로 피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런 공고로 리틀시저스는 1991년 당시 조지 H.W. 부시 대통령에게 자원봉사상을 받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봉사상을 수상했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로 변신한 ‘마이너리거’ 일리치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유종기자 pen@donga.com}

#1.추락하는 ‘수출 코리아’ 세계 6→8위로 하락#2.지난해 한국의 수출액은 4955억 달러(약 569조8000억 원).2015년 5269억 달러(약 605조9000억 원)에 비해 5.9% 줄었습니다.수출액은 2015, 2016년 연속 줄어 13.5%나 감소했습니다. 수출이 2년 연속 줄어든 것은 1957, 1958년 이후 58년 만이죠. #3.수출 순위도 세계 6위에서 8위로 두 계단이나 떨어졌습니다.2008년 12위였던 한국의 수출규모는 2015년 6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홍콩 프랑스 등에 밀려 2009년(9위) 이후 7년 만에 순위가 가장 낮아졌죠.#4.수출액 감소는 세계 무역시장이 위축되고 특히 중국 경기가 둔화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1월 대(對)중국 수출액은 1224억 달러(약 140조8000억 원)로 2015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 가까이 줄었습니다. 중국의 수입 규모는 2014년, 2015년 사이 14% 이상 감소했습니다.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단종과 현대자동차 장기 파업도 수출 부진에 영향을 끼쳤죠. #5.올해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미국이 예상보다 강한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하고사드(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무역 보복’ 조치가 잇따르고 있어 올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미국 상무부는 최근 한국산 합성고무에 최대 44%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예비 판정했습니다.#6.“전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제조업 중심의 낡은 산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수출 감소 폭은 더욱 컸다. 트럼프 집권 등으로 올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보여 대응책을 찾지 못하면 수출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7.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들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주도의 통상협정이 2000년대 들어 지지부진해지자 FTA 체결에 주력해 왔습니다. 최근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는 등 대규모 경제블록 결성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FTA가 수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8.제조업 구조조정도 시급합니다. 지난달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 정도 늘어나는 등 연초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환율, 유가 효과에 기댄 것이기 때문에 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강(强)달러’ 등 올해 교역여건이 반짝 나아진 것을 기회로 삼아 조선, 해운, 철강 등 수출 주력산업에 대해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원본 | 천호성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1김정남 피살과 ‘닮은 꼴’20년 전 사촌형 이한영 총격 사건을 아시나요?#21997년 2월 15일 밤.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한 남자가 괴한 2명의 총격을 받아 결국 열흘 뒤 숨졌습니다.#3피살자는 북한 평양 출신의 리일남 씨.그는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14일 피살)과 외조부모가 같은 이종사촌형입니다. 김정남과 함께 성장했고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북한 상류층이었으나1982년 9월 스위스 어학연수 중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4그는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테러 위협을 느껴 ‘이한영’으로 이름을 바꿨고 성형수술까지 했습니다.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KBS에 PD로 입사했죠.이후 개인사업을 시작했지만 1991년 부도를 냈고 횡령 혐의로 10개월간 수감되기도 했죠.#5이 씨는 돈이 궁해지자 언론사들과 거래를 시도했습니다.1996년 북한 최고 권력층의 실상을 속속들이 밝힌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발간했습니다. 1996년 2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성혜림 망명설’도 그가 언론에 흘려준 정보였습니다.#6이한영은 저서에서 기쁨조 등 김 씨 왕조의 실체를 폭로했습니다. 김정남과 동갑내기인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현도 공개했습니다.김현은 김일성과 담당 간호사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입니다.1971년 환갑 나이인 김일성과 갓 서른 살에 접어든 아들 김정일이 동시에 ‘불륜’으로 아들을 얻은 것입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의형제는 이 씨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7그러나 이한영은 책 출간 6개월 만에 피살됐습니다.김 씨 왕조의 실체 폭로로 북한의 ‘공적(公敵) 1호’가 된 셈이죠. 국가안전기획부는 1997년 11월이 씨가 북한 대남공작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에 의해 사살됐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820년 전 이한영은 의식을 잃기 전 “간첩”이라고 말했습니다.테러범들은 영웅 칭호를 받고 재(再)남파를 위해 성형수술까지 받았습니다.김정일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을 앞두고 피살된 이한영, 김정남에 대한 미스터리가 풀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미주, 유럽, 아시아를 아우르는 글로벌 제과기업 ‘빔보(Bimbo)’의 창업주 로렌소 세르비트헤가 3일 멕시코시티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 ‘제빵왕’ 세르비트헤는 아버지의 작은 빵집을 물려받아 세계 1위의 제과회사로 키운 멕시코 출신 기업인이다. 빔보는 현재 22개국에서 공장 170여 개를 운영하며 1만 종류 이상의 제품을 생산한다. 직원만 13만 명에 달하며 트럭 등 운송수단만 1만1000대를 웃돈다. 2014년 매출액은 141억 달러(약 16조2150억 원). 세르비트헤는 스페인 이민자 후손이다. 그의 아버지는 카탈로니아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멕시코로 이주해왔고 1928년 처음으로 빵집 ‘엘 모니카’를 세웠다. 하지만 1936년 갑작스럽게 타계해 멕시코국립자치대를 졸업한 뒤 회계사로 일하던 세르비트헤가 회계사를 포기하고 동네빵집 운영에 뛰어들었다. 엘 모니카를 운영하던 세르비트헤는 미국의 현대적인 제빵 기술에 주목했다. 미국의 제과회사들처럼 다양한 종류의 빵을 대량 생산해서 멕시코시장에서 출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다소 늦춰졌고 1945년 12월에서야 동생, 친척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제과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명은 사람들이 뭔가 하려던 것을 해냈을 때 외치는 단어인 ‘빙고(bingo)’와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 제목인 ‘밤비(bambi)’를 조합해 ‘빔보(bimbo)’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세르비트헤가 생각한 빔보의 의미는 영어 단어 ‘빔보(bimbo)’의 ‘섹시한 외모에 머리 빈 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빔보의 창업은 전후 분위기를 고려할 때 화려한 편이었다. 직원 34명에다 재료, 제품을 운반할 트럭만 10대를 확보했다. 첫 제품은 4가지 종류의 빵이었다. 빔보는 2가지 크기의 흰빵과 호밀빵, 토스트용 슬라이스 빵을 팔았다. 미국에서 팔리던 슬라이스 빵은 빔보가 멕시코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빔보는 1948년 말까지 9가지 종류의 빵을 시장에 내놓았다. 회계사 출신의 세르비트헤는 전략적인 인물이었다. 당시 멕시코 노동자 가정은 아침 식사로 비위생적인 시설의 빵집에서 만든 빵을 먹을 때가 많았다. 이런 빵마저 빵집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주 보급되지 않기도 했다. 세르비트헤는 이런 실태를 간파했다. 그는 빵을 대량 생산해서 셀로판지로 포장하고 팔았다. 위생적인 빵은 비위생적인 동네빵집의 빵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을 보여줬다. 핫도그, 햄버거, 도너츠 등 미국에서 잘 팔리는 새로운 종류의 빵도 구비했다. 하지만 1950년대만 해도 빔보의 빵이 동네 빵집에서 만든 빵 보다 훨씬 더 잘 팔리진 않았다. 하지만 대량 생산된 빵의 소비량은 꾸준히 늘었고 빔보는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빔보는 제조부터 유통까지 모두 책임지는 수직 계열화를 추구했다. 또 국내 시장에서 경쟁자들이 시장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봉쇄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미국의 거대 제과기업인 원더브레드가 멕시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사전에 원더브레드의 멕시코 시장 총판을 인수했다. 경쟁 자체를 막은 것이다. 세르비트헤는 이런 방법으로 빔보의 국내 시장 점유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또 제빵뿐만 아니라 과자, 캔디, 초콜릿 등 가공음식 사업에 폭넓게 진출했고 독보적인 사업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1984년 빔보는 멕시코에서 생산된 빵을 이웃 국가인 미국에 수출했다. 멕시코 국경에서 가까운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유통망을 확대했다. 1989년 과테말라, 1991년 아르헨티나에 공장을 지었다. 세르비트헤는 크고 작은 전세계 제과 및 제빵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끊임 없이 몸집을 불렸다. 1998년 미국의 미시즈베어드를 인수했고 2001년 브라질의 ‘플러스 비타 앤드 풀맨’을 넘겨받았다. 2006년 중국 베이징의 판리코를 인수해 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했으며 2009년 웨스톤푸드를 차지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큰 제과회사가 됐다. 이후에도 캐나다 스페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등의 제과회사들을 합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제과기업’이라는 자리에 올랐다. 빔보는 2013년 기준으로 멕시코에서 9번째로 큰 기업집단에 기록됐다. 빔보는 현재 빔보, 마리넬라, 리콜리노, 바르셀 등 100개 이상의 식음료 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며 미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해 빔보를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중 986위에 올렸다. ‘멕시코의 상징’의 저자 로버트 웨이스 노던콜로라도대 교수는 “빔보는 미국화의 첨병이라는 지위를 뛰어넘어 멕시코혁명의 문화적인 기풍에다 현대 미국 문화를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빔보의 창업주 세르비트헤는 1981년까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켰다. 1994년 이사회 의장을 마지막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의 아들 다니엘 세르비트헤는 현재 빔보의 CEO 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빔보의 신화는 계속된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국내 1호 선사’ 한진해운은 2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롱비치터미널(TTI)의 지분 54%를 스위스 해운기업 MSC(지중해해운)에 7800만 달러(약 897억 원)를 받고 넘겼다. TTI는 미 서부항만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이상을 처리하는 ‘알짜’ 자산이다. 지난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17일 파산 선고를 받는다. TTI를 인수한 MSC는 컨테이너선 480척으로 150개국, 315개 항구를 오가며 직간접으로 6만 명을 고용하는 세계 2위의 컨테이너 해운회사다. 본사는 이례적으로 바다가 없는 내륙국 스위스에 있다. 스위스는 해운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레만 호, 보덴 호 등 호수를 오가는 배 49척(약 170만 t)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전 세계 해운업에서 스위스의 비중은 0.1% 미만이다. 상선 역사도 100년 미만으로 짧다. 그러나 설탕 면화 등 전 세계 건조 화물의 22%는 MSC 등 스위스 해운회사가 취급한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MSC는 1970년 이탈리아 출신의 잔루이지 아폰테(77)가 빌린 돈 5000달러로 독일의 중고 선박을 구입해 출범했다. 그의 가족은 나폴리에서 300년 이상 뱃일을 해 온 뱃사람들이다. 아폰테는 지중해 항구와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를 오가는 항로에 주력하며 큰돈을 벌었다. MSC는 회사가 커지자 본사를 스위스 제네바로 옮겼다. 이탈리아 국적의 아폰테는 사실 스위스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폰테는 왜 제네바에 둥지를 튼 것일까. 인구 20만 명의 제네바는 전 세계 원자재의 40%가 거래되는 국제 무역 도시다. 전 세계 곡물의 65%, 금속 60%, 설탕 커피 50%, 석유 코코아 35%가 스위스에서 거래된다. 직접적인 거래 액수만 연간 200억 스위스프랑(약 23조 원)을 웃돈다. 1조5000억 스위스프랑(약 1717조 원)에 달하는 원자재 관련 자금이 스위스에서 관리된다. 제네바에는 운송, 화물 점검 등 부가적인 일감이 넘쳤다. MSC는 본부를 제네바로 옮겼다. 부가적인 일감도 제네바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1878년 프랑스 루앙에서 설립된 세계 1위의 선적 전 검사(수출 전 상품검사) 회사인 SGS도 제네바에 본사를 두고 있다. SGS는 전 세계에 2000개의 사무소를 운영하며 9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제네바에는 리버레이크 등 크고 작은 선박중개회사들이 설립됐다. 튼실한 스위스의 금융 인프라 덕분에 선박금융도 쉽게 성장했다. 한진해운은 호황기 비싼 값에 배를 빌렸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일감이 줄어들자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채 파산에 내몰렸다. 해운업에서 금융업, 원자재 거래시장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해운업을 튼실하게 만들려면 이런 연관 산업부터 키워야 한다. 국내 시중 은행들은 해운업의 이런 특성을 잘 몰라 경기가 좋지 않으면 지레 겁을 먹고 자금을 회수하기 바쁘다. 동북아 오일허브 등의 글로벌 원자재 거래 시장 구상도 지지부진하다. 바다가 없어도 해운업은 성장할 수 있다. ‘3면이 바다’라도 해운업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pen@donga.com}

#1.우리는 ‘노인’을 어떻게 보나?#2.노인 기준 연령(그래픽)동아일보 조사 결과 응답자 절반(48.7%)은 ‘70세’는 넘어야 노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적 노인 연령 기준(만 65세)보다 다섯 살 많죠.#3.(그래픽)노인 연령 상향에 대해선 찬성(38.7%)과 반대(37.2%)가 팽팽했습니다. 찬성 이유로는 ‘충분히 건강하다(69.0%)’가 가장 많았죠.#4.(그래픽)현재 노인은 한 세대 전에 비해 약 8년 더 삽니다. 1970년 65세 남성의 기대여명은 75.2세, 여성은 79.9세였죠.하지만 현재는 각각 83.2세, 87.4세(2015년 기준)로 늘었습니다.#5.(그래픽)기대여명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는 뜻인데요. 65세 이상 인구(707만 명)는 15세 미만 인구(675만 명)를 추월했습니다. (2017년 추계)#6.노인이 늘면 젊은 세대의 부담도 증가합니다.53.2%는 ‘젊은 세대의 사회비용 부담’ 때문에노인 기준 연령을 올려야 한다고 봤습니다.생산가능 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인은2015년 17.5명에서 2065년 88.6명으로 급증합니다.#7.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합니다.사회복지 시스템이 65세를 기준으로 구축된 상황에서 사회 전반에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은퇴한 뒤 연금을 받기까지 소득이 없는 ‘소득 크레바스(절벽)’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8.“노인 연령 상향은 고용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등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논의해야 한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노인 스스로 생을 마칠 때까지 생산적이고 사회를 책임지는 ‘현역 노인’이 돼야 한다. 4년마다 1년씩 20년에 걸쳐 노인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등 단계적 상향이 바람직하다.”- 이심 대한노인회장원본 | 김윤종 김호경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1.‘35층서 멈춘’ 강남 재건축 고? 스톱? 딜레마#2.서울시가 2일 최고 50층 높이의 잠실주공 5단지 아파트 재건축 계획안에 대해보류 판정을 내렸습니다. “아파트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정한 ‘2030 서울도시계획’에 부합하지 않는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3.층수를 40~50층으로 높여 사업성을 키우려던 재건축 조합들엔 비상이 걸렸습니다.올해 관리처분인가(철거 이전 최종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 내년에 부활하는 초과이익환수제의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초과이익환수제 : 재건축으로 이익이 과다하게 발생하면 정부가 초과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제도.#4.재건축 조합이 서울시의 요구대로 기존 계획안을 수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기존 계획안(최고 49층)을 고치려면 다시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사업이 늦춰질 수밖에 없어 고민이 크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 관계자 #5.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이 ‘35층 제한’의 영향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급매물이 늘어나는 등 시장 변화가 클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데요.“이번 심의 결과로 향후 시장 가격이 전반적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 전문가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6.반면 서울시의 35층 제한을 받아들인 재건축 단지들은 잇달아 승인을 받으면서 사업 진행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 14차 아파트는 최근 최고 층수를 34층으로 하는 계획안을 제출해 용적률 심의를 통과했죠. 50층을 고수하던 반포주공1단지도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낮춰 지난달 사실상 재건축 심의를 통과했습니다. #7.서울시는 9일 35층 이상으로 재건축 계획을 세우고 있는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해“35층 제한 방침에 변함없다”며 불가(不可)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8.“(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해도) 아파트 단지의 평균 층수는 15층에 불과해 다양한 층수 구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24층인 싱가포르 ‘인터레이스’ 단지나 서울 자곡동 강남힐스테이트(18층)처럼 초고층이 아니라도 우수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김학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원본 | 황태호 · 강성휘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 · 이고은 인턴}

#1.최악 치닫는 구제역, 파악도 못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2.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구제역이 동시 창궐한 ‘멀티바이러스’ 대란이 닥쳤습니다.#3.9일 경기 연천군의 젖소 농가에서 A형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충북 보은군에서도 한우 구제역이 발견되자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렸습니다.심각 단계는 2010년 구제역 파동 이후 처음이죠.#4. 전국 가축시장은 18일까지 폐쇄되고 가축 이동도 금지됐습니다,경기도 가축은 15일 밤 12시까지 다른 시도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5소에서만 발견된 구제역은 돼지까지 확산될 수 있습니다.“기온이 내려가면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 특성상 따뜻한 곳에서 기르는 돼지보다 밖에서 기르는 소에게서 먼저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돼지에서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서상희 충남대 수의학 교수-#6.구제역 예방에 필요한 백신은 255만 개.현재 정부가 보유한 백신은 190만 개.농림축산식품부는 부족한 백신 수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7.“이번 주에 백신 접종을 마치라”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9일백신 수급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지시를 내렸습니다.#8.2010년 구제역 악몽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당시 돼지 336만 마리가 도살 처분돼 2조 8695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게다가 주춤했던 AI마저 두 개의 바이러스(H5N6형, H5N8형)가 동시 발견되면서‘최악의 상황’에 돌입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원본 | 김재영·최혜령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유정 인턴}

#1.‘고금리 대출’ 늪에 빠진 2030 청년들#2.인천에 사는 박모 씨(34·여)는 2015년 말 대부업체에서 약 700만 원을 빌렸습니다. 식당 일자리를 잃어 생활비가 급하게 필요했죠. 그는 신용등급이 낮아 당시 최고 금리인 34.9%를 적용받았고 매달 약 25만 원을 갚고 있습니다. “현재 100만 원 정도인 월급으로는 이자조차 못 낼 때가 있다.”- 박모 씨#3.지난해 3월 법 개정으로 최고 금리는 27.9%로 낮아졌지만법 개정 이전 대출자들에겐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박 씨처럼 이전에 높은 금리로 돈을 빌린 신용대출 잔액은 4조 원. (그래프)연 27.9%(현행 법정 상한선)를 초과한 금리를 내는 20, 30대 현황(지난해 말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상위 10곳)저축은행 - 16만2211건 (44.8%)대부업체 - 29만8270건 (40.4%)#4.20, 30대의 고금리 대출이 많은 것은 불황, 실업난이 겹치면서 청년층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고금리 대출은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을 부릅니다.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해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 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5.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20대 가구의 평균 소득은 3282만 원으로 전년(3406만 원)보다 3.6% 감소했습니다. 30대 가구도 5148만 원으로 전년보다 1.4% 늘어나는 데 그쳤죠. 반면 20, 30대 가구가 저축은행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새 3배로 치솟았습니다. #6.“20, 30대가 과소비로 대부업 대출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조사해보면 생계형 대출이 훨씬 더 많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7.생활고를 겪으며 미등록 불법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난해 불법 고금리 대출과 관련해 금감원에 접수된 신고사례만 1016건에 이르죠. 신고 내용 중에는 선이자를 떼는 등 연 3000%가 넘는 살인적 금리에 시달린 사례도 있었습니다.#8.“고금리 대출을 싼 이자로 갈아탈 수 있는 ‘바꿔드림론’ 등 정책금융 상품도 적극 활용하게 해야 한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 안전망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원본 | 주애진 · 정임수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 · 이고은 인턴}

#1. 새누리당, 또 이름 바꿔 ‘자유한국당’#2.새누리당이 8일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습니다.2012년 2월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지 5년 만입니다.약칭은 이승만 정권을 연상케 하는 ‘자유당’이 아닌 ‘한국당’입니다.#3.새누리당의 당명 변경은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결별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선 긋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며 반대했으나 대다수 의원들은 찬성했죠.#4.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추천한 ‘보수의 힘’은 표 확장성에 한계가 있고,이미지가 가볍다는 반대 여론으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5.그동안 국내 보수 정당들은 당명을 자주 바꿨습니다.자유당(1951년 12월)민주공화당(1963년 2월)민주정의당(1981년 1월)민주자유당(1990년 2월)신한국당(1995년 12월)한나라당(1997년 11월)새누리당(2012년 2월)자유한국당(2017년 2월)#6.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민주자유당, 이회창의 신한국당,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당의 실권자가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뀌었다. 차라리 노태우당, 김영삼당, 이회창당, 이명박당, 박근혜당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뻔했다.”-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7.영국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100년 이상 같은 이름을 써왔습니다.새누리당의 당명 변경으로 창당한 지 5년도 안 된 정의당이 5대 정당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당명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8.5년 뒤 현재 당명을 사용하는 정당은 몇 개나 될까요?제헌국회 이후 7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합니다.원본 | 송평인 논설위원 송찬욱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유정 인턴}

#1‘포켓몬고’ 덕에 매출 늘어 역세권 뺨치는 포세권#2포켓몬고 국내 다운로드 횟수가 77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포켓몬과 이코노미(economy)를 합친 ‘포켓코노미’ 특수도 일어나고 있죠.희귀 포켓몬 출몰지 여부에 따라 매장들은 희비가 교차했습니다.#3포켓몬고 덕을 가장 많이 본 곳은 편의점입니다. 포켓몬을 잡다가 배터리가 다 되거나 손이 차가워지면 급하게 편의점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인데요.#4포켓몬고 명소로 알려진 편의점(서울 보라매공원 등 CU 점포 20곳)에선보조배터리 등 휴대전화 용품(594.7%↑)을 중심으로핫팩(72.8%↑) 팟바(62.0%↑) 컵라면(49.8%↑) 생수(56.2%↑) 등의 매출이 올랐습니다.#5포켓몬이나 포켓스톱(아이템 획득지점)이 나타나면 진동으로 알려주는 웨어러블 기기 ‘포켓몬고 플러스’도 인기입니다. 4만3600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죠.#6점포들은 포세권에 들었는지 여부에 따라 희비가 교차하기도 합니다. 게임 이용자들이 발품을 무릅쓰고 포세권을 찾아 나서면서해당 지역 점포의 매출이 급등했기 때문이죠.커피빈은 포세권 매장의 평균 매출이 최대 44%나 늘었습니다.스타벅스도 주요 포세권인 남산 서울타워점 매출이 38%, 올림픽공원 주변 4개 점포가 평균 18% 올랐죠.(포세권: 희귀 포켓몬과 포켓스톱이 많이 있는 지역을 역세권에 빗댄 말)#7롯데프리미엄아울렛 파주점은 게임 내 희귀 포켓몬인 ‘망나뇽’이 출현한다고 알려지며 방문객이 늘었습니다. 파주점은 아예 포켓스톱 등의 위치를 표시한 포켓몬고 지도 표지판을 설치하기도 했죠.#8한파로 인한 야외 활동 비수기임에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포켓몬고.‘포켓코노미’ 특수까지 만들어낸 포켓몬고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 거리입니다.원본 | 곽도영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달걀, 버터를 팔던 아버지의 재래시장 가판대를 전국적인 슈퍼마켓 체인으로 키운 영국의 ‘슈퍼마켓 왕’ 켄 모리슨 경(卿)이 1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모리슨은 그래머스쿨(인문계 중등학교)을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신 시장에서 아버지 윌리엄의 가업을 이었다. 특유의 성실함과 소비자 이해력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물려준 재래시장 가판대를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의 성을 딴 유통기업 ‘모리슨’은 영국에서 4번째로 큰 슈퍼마켓 체인이다.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 기업에도 포함돼 있다. 현재 영국 북부의 소도시 브래드포드를 기반으로 영국 전역에 50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1899년 브래드포드의 로손시장에 식료품을 파는 가판대를 열었고 1956년 모리슨 경에게 물려줄 때까지 반세기 이상 시장에서 가판대와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모리슨은 5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왔다. 첫 업무는 달걀의 흠을 찾는 아버지 곁에서 양초를 들고 있는 것. 모리슨은 6남매 중 막내였지만 유일한 아들이라 군에서 의무복무를 마친 뒤 가게를 물려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은 뒤 변화를 추구했다. 1958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3개의 계산대를 가진 셀프 서비스 점포를 열었고 1961년에는 슈퍼마켓에도 진출했다. 그는 옛 영화관에 무료 주차장을 마련하고 자신의 첫 슈퍼마켓을 세웠다. 당시 영국에서 개인의 차량 소유가 늘어나는 추세였고 자가용을 타고 와 장을 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증가했다. 모리슨은 노동자 계층을 주요 고객으로 설정했다. 이들의 경제력을 고려해 철저하게 ‘비용 최소화’를 추구했다. 그는 자체 도축장까지 운영하면서 원가를 낮췄다. 사계절 채소는 현지에서 매입해 직거래를 했다. 비닐봉지도 직접 만들었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다.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상당한 품질의 물건을 소비자에게 공급했다. 모리슨은 자신의 눈과 통찰력을 믿는 감각적인 경영인이었다. 수치와 프리젠테이션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에게 배운 육감적인 ‘상인의 기술’을 활용했다. 그의 전략은 항상 상식에 기반을 뒀다. 철저하게 ‘소비자 지향적’이었다. 5펜스짜리 쇼핑백을 팔 때도 소비자들의 재사용 여부를 따져 예상 판매량을 추정했다. 노동자 계층 소비자들이 저렴한 쇼핑백이라도 여러 번 재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는 유통 재벌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검소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서민적인 감각을 지켰다. 모리슨은 현장과 디테일을 강조했다. 예고 없이 여러 지점들을 방문했다. 지점에서 식료품들의 포장 상태, 신선도 등을 일일이 검사했다. 현장 직원들의 말을 경청했고 임원 보다는 현장 계산대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2000년까지 잉글랜드 북부에 100개 이상의 슈퍼마켓을 열었고 2001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모리슨은 말년(70대 초반)에 커다란 승부수를 띄운다. 2004년 자신의 회사 보다 덩치가 2배 이상 큰 슈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를 33억 파운드(약 4조7000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 세이프웨이는 479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세이프웨이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웹스터는 모리스에게 회사를 인수하라고 설득했다. 웹스터는 모리슨이 세이프웨이를 인수하면 모리스의 회사 규모가 2배 이상 커지고 지역 중심의 슈퍼마켓이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세이프웨이 인수는 모리스에게 큰 시련을 안겨줬다. 세이프웨이의 외형은 컸지만 내실은 좋지 않았다. 유능한 인재들은 이미 회사를 빠져 나간 상태였다. 게다가 서로 다른 전산망, 배송 시스템 등을 가진 이질적인 두 회사의 통합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통합기업인 모리슨의 실적은 하락했고 주주와 투자자들은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주기를 원했다. 모리슨은 2006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회장을 맡으며 2선으로 퇴진했다. 2008년에는 회장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이후 모리슨은 안정을 되찾았다. 80대 노객인 모리슨은 최근까지도 회사 경영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금요일이면 현재 모리슨의 CEO인 데이비드 포츠와 함께 구내식당에서 흰살 생선튀김에 감자튀김을 곁들인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며 회사 운영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포츠는 “경영은 모리스의 가슴에 매우 가까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모리슨의 가족들은 현재 유통기업 모리슨의 주식 10% 정도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1.죽을 장소마저 부족'2025년 임종난민'에 떠는 일본#2.일본 베이비붐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49년 출생)'는 약 650만 명.단카이세대는 2025년 모두 75세를 넘깁니다.갑작스런 고령층 증가로 일본은 의료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죠. #3.더 큰 문제는 병원, 집에서 임종할 수 없는 '임종 난민'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2012년 연간 사망자 120여만 명 중 76%가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2025년 연간 사망자는 160만 명 이상으로 전망됩니다. 응급실에 가도 병상이 없고 재택 임종도 왕진할 의사가 없어 어려울 가능성이 크죠.#4.'2030년 연간 47만 명이 죽을 장소를 찾지 못해 '임종 난민'이 될 수 있다.'2006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강력한 경고.#5.'2025년 문제'는 사회보장비 팽창과 의료 및 간병 인력 부족이란 두 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임종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그래픽> 2025년 보건의료비용 추산의료비 54조 엔(2006년의 약 2배) 사회보장비 162조 엔(2006년의 약 1.8배)#6"죽을 장소를 못 찾는 난민이 대량 발생한다니, 상상하기 끔찍하죠. 하지만 불과 10년 안에 닥칠 현실입니다. 일본인의 50% 이상이 자신의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76%가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고 있죠. 이제 여러 이유로 '재택 임종'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다가오는 2025년 쇼크'를 취재한 일본 아사히신문 사토 유(佐藤陽·51) 기자#7.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橫須賀)시(인구 40만 명).고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 29%로 전국 평균보다 고령화 속도가 5년 빠릅니다.하지만 재택임종 비율은 22.9%로 전국 1위입니다.2025년 '임종 난민' 쇼크에 대비해 일찌감치 지역에서 재택의료를 뿌리내린 결과입니다.2011년부터 지자체와 의사회, 병원이 중심이 돼 '재택요양연대회의'를 세우고 대책을 논의해 왔습니다.#8."의사들은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생명만 유지하는 연명치료를 하기 일쑤죠. 하지만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의 연명을, 환자 본인이 과연 좋아할까요? 사람은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재택 임종'을 돕는 요코스카 소재 미와(三輪)의원의 지바 준(千場純·67) 원장#9.일본의 고령화는 세계에서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일본은 고령화사회(인구 중 65세 이상이 7% 이상)에서 고령사회(14% 이상)로 진전하는 데 24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과정을 프랑스는 114년, 스웨덴 82년, 미국 69년, 독일은 42년이 소요됐습니다.#10.일본 정부는 최근 '익숙한 지역에서 최후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재택의료와 간병을 충실하게 만드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11.한국의 고령화는 일본보다 더 빠릅니다. 2018년 고령사회, 2026년이면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대비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죠. '임종난민'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원본 │ 서영아 도쿄 특파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김한솔 인턴}

#1내 목소리로 결제,'바이오 페이' 시대 열린다.#2"인터넷 쇼핑몰에 로그인해 두루마리 휴지를 골랐다. 결제 창에서 신용카드를 선택하자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ISP)이 자동으로 실행됐다.'내 목소리로 결제.'결제가 끝났다.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동아일보 김성모 기자의 바이오 페이 이용 후기#3금융위원회는 올해 상반기목소리, 손바닥 정맥, 홍채 등 생체 정보로 결제하는 '바이오 페이'를 시범 도입합니다. 더 이상 지갑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꺼내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4BC카드는 3월 목소리만으로 결재하는 보이스 페이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먼저 목소리를 등록해야 합니다. #5먼저 스마트폰 결제 애플리케이션을 켭니다. 보이스 인증 항목을 선택한 뒤 개인식별번호(PIN)를 누르면 '사용자 보이스 트레이닝을 시작합니다'라는 문구가 뜹니다. 화면에 다시 '내 목소리로 결제'라는 표시가 떠오르면 이를 8번 반복해 또박또박 읽으면 등록 절차가 종료됩니다."반복해서 읽는 동안 기계가 학습하고 목소리 정보를 저장한다."- BC카드 핀테크본부#6사람마다 음성 정보가 달라서음성만으로도 보안성은 뛰어납니다.미국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에코'는 음성으로 상품 주문과 결제까지 할 수 있죠.#7다른 카드회사들도 생체 인증 및 결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롯데카드는 3월손바닥 정맥으로 결제하는 '핸드 페이(Hand Pay)'를시범 운영할 계획인데요. 손바닥 정맥 또한 사람마다 모양이 달라 높은 보안성을 자랑합니다.#8신한카드는 지난해 지문으로 결제가 가능한 지문 인증 및 결제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하나카드는 지문이나 음파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삼성카드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홍채·안면 인식 결제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죠. #9전문가들은 조만간 몸 하나만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있는 '무(無)카드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10"카드사들이 새로운 결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플라스틱 신용카드가 사라질 수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그렇다면 '바이오 페이' 이후 결제 방법은 또 어떤 게 나올까요?원본/ 김성모 기자기획·제작 / 이유종 기자· 김한솔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