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

이원주 기자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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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가 되고 싶었는데 되지 못해서, 조종사 다음으로 비행기 많이 탈 것 같은 직업을 택했습니다. 비행기와 날씨에 대한 '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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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이 도와 살아 온다니 꿈만 같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금미305호가 피랍 123일 만에 석방됐다는 소식에 김대근 선장(55)과 김용현 기관장(68) 가족들은 “하늘이 도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 선장의 부인 서모 씨(부산 사하구 감천동)는 “말할 수 없이 너무 좋다.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빨리 보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서 씨는 “정부가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 기약도 없이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며 “남편이 오면 다시는 케냐로 보내지 않을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의지가 굳고 강한 성격이지만 당뇨가 있는 남편이 오랜 억류생활로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을지 걱정”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가족들에게 아무 연락도 없고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많이 섭섭했는데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려 다행”이라고 기뻐했다. 김 선장의 딸 민지 씨(28)는 “군사작전이나 협상을 해서 사건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런 것 없이 처리가 돼서 다행”이라며 “건강이 어떠신지 확인해 보고 많이 힘드셨으니까 푹 쉬게 해드릴 것”이라고 웃었다. 또 “이제 다시는 배를 타시지 않았으면 한다”며 “영화도 보고 등산도 함께 한 다정했던 아빠를 어서 빨리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산에 사는 김 기관장의 부인도 “너무 감사하고 너무 좋다. 그동안 신경을 많이 써 주셔서 고맙다.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남편이 평소 고혈압이 있었는데 말라리아까지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동안 약은 제대로 먹었는지, 풀려났어도 지금 건강 상황은 어떤지 걱정”이라고 말했다.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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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기밑밥 연명… 몸아파 누워서 전화”

    “지금 소말리아 해적들의 본거지인 하라데레 항을 출발해 핀란드 해군을 만나러 북상하고 있습니다. 기름이 별로 없는데 큰일이네요.” 지난해 10월 9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9일 풀려난 금미305호의 석방 협상에 참여했던 김종규 대표(58)는 김대근 선장(55)이 해적에게서 풀려난 직후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김 대표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늘 오후 김 사장과 통화했는데 김 사장이 ‘오늘 낮 12시 반(한국 시간)에 출발해 핀란드 해군을 만나러 북상하고 있다. 핀란드 해군도 우리를 만나러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선장은 “지금 근황이 어떻냐”라는 질문에 “지금 배에 기름도 없고 닻도 떼어 가버려 없다”며 “배에 식량이 없어 굶으면서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또 김 선장은 “지금 해군 함정을 만날 때까지는 굶을 수밖에 없고 배에 고기 같은 것, 밑밥 같은 게 있는데 그거라도 먹으면서 가야 할 것 같다”며 “건강이 아주 안 좋아 서 있기가 불편할 정도이며 지금 전화도 누워서 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 김 대표는 “현재 금미305호가 시속 10km 속도로 공해상으로 항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이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니 100km가량 올라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 선박을 만나면 유류와 식량을 지원받고 배를 수리하고 몸바사 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며 “그동안 몸바사의 이슬람 종교단체에서 협상을 계속 했으며 소말리아에 있는 사업가가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 이번 석방이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그동안 수시로 김 선장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며 “해적들이 금미305호를 석방한 것은 그동안 이 배를 이용해 해적질을 하고 선박에서 빼갈 것은 모두 빼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부산=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윤희각기자 toto@donga.com}

    • 20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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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당행위이지만…” 구출작전 장병도 조사

    해경으로부터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을 넘겨받은 부산지검 공안부(부장 최인호)는 석해균 선장(58)의 몸에서 나온 총알을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구출 작전에 참여한 청해부대 장병에 대해 인터넷 서면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검찰은 이 조사를 통해 진압 작전 상황과 조타실 진입 당시 석 선장 상태 등을 확인하기로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해군 총알로 확인되면 어떤 경위로 석 선장 몸에 총알이 박혔는지도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검찰은 “해군 총알로 판명돼도 군 작전 도중 발생한 사고여서 확인 차원이지 수사 대상은 아니다”며 “정당행위(형법 20조)에 해당돼 처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석 선장의 상태가 호전되면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를 상대로 오만 현지에서 총알 1발을 분실한 경위와 총격 부위 등도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최장 20일간 이뤄질 수사에서 석 선장에게 총을 쏜 용의자인 무함마드 아라이(23)에게 자백을 받아낼 계획이다. 해경이 밝혀내지 못한 삼호드림호와 금미305호 등 과거 피랍 선박과의 연관성, 해적 배후 세력과 생포된 해적들의 소속 단체 등도 수사할 예정이다. 정점식 부산지검 2차장은 “해적들을 철저히 수사해 강력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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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호해운 “일당 7만원×피랍 6일 특별위로금” 42만원

    “생사(生死)의 기로에서 선박을 안 뺏기려고 노력한 대가가 고작 42만 원이라니….”(삼호주얼리호의 한 선원) “노사 합의 사항을 어길 수 없다.”(삼호해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6일 만에 풀려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과 선사인 삼호해운이 월급과 별도로 지급하는 특별위로금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8일 삼호해운과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에 따르면 선사 측은 7일 선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피랍 기간 고생한 보상금으로 일당의 100%를 지급하겠다”고 제시했다. 회사는 한국인 선원들 일당을 직급에 따라 7만∼16만여 원으로 잡았다. 피랍 기간을 6일로 계산했을 때 직급과 경력에 따라 한국인 선원들이 받게 되는 금액은 42만∼96만 원으로 추산된다. 삼호드림호에 탔던 한국인 선원 5명도 불만이다. 이들은 피랍 생활 216일간 일당을 기준으로 1인당 특별위로금 수천만 원을 지급받기로 했다. 일당은 배 규모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삼호해운은 당초 이들이 귀국한 지난해 11월 13일을 기준으로 보름 내에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한 명도 받지 못했다. 삼호주얼리호의 한 선원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선박과 동료 선원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우리를 회사가 이렇게 대우하다니…”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삼호드림호 선원들도 “회사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 같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삼호해운은 “피랍 기간 임금 100%를 특별위로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2009년 4월 한국선박관리업협회와 한국선박관리선원노동조합의 노사 합의사항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합의문에는 아덴 만 소말리아 인근 해협 등 ‘고위험 지역’을 지나가다 선박이 납치됐을 때 위험 지역 취항 일수와 피랍 기간을 합친 기간의 임금 100%를 특별위로금으로 지급하도록 돼 있다. 삼호해운 측은 “연이은 피랍 사건으로 회사가 어렵다”며 “선원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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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石선장 맞은 1발은 해군 탄환”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을 수사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구출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58)의 몸에서 나온 총알 가운데 한 발은 해군이 쏜 것으로 추정했다. 김충규 수사본부장은 7일 이 사건의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는 아니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네 발 가운데 확보한 세 발을 분석한 결과 이 중 한 발은 우리 해군이 사용하는 권총탄, MP-5 9mm 기관단총탄, MP-5 소음탄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는 것. 또 “한 발은 해적이 사용하는 AK 소총탄, 나머지 한 발은 총격 과정에서 선박 부품이 석 선장 몸에 박힌 피탄(튕겨서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수사본부는 “해군 총알이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경위는 국과수 감식 결과와 석 선장에 대한 피해자 조사에서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해군의 총탄이 맞다면 교전 도중 잘못 사격한 오발탄이 아니라 선체 같은 이물질에 맞고 튄 유탄으로 보인다”며 “작전 당시 석 선장은 이미 해적이 쏜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에 해군 특수전 요원들이 오발탄을 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오만에서 2차 수술에 참여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도 “오만에서 뺀 총알(석 선장의 옆구리에서 뺀 것)은 손가락 한 마디 길이에 묵직했던 점으로 미뤄 AK 소총 총알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술 당시 석 선장 양쪽 다리에서 제거한 총알 두 발(피탄 포함) 가운데 하나가 해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수원=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 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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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만서 분실된 총알1발 해적것? 해군것?

    해양경찰청이 9일간의 조사를 마치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해적들의 구체적인 납치 전모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58)의 몸에 박힌 ‘총알 미스터리’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석 선장이 맞은 총알 가운데 1개가 해군의 탄알로 추정되면서 석 선장이 맞은 탄알이 과연 몇 개인지와 누구에 의한 총격인지, 분실한 탄알의 정체 등이 이 사건 규명의 핵심 관건으로 떠올랐다. 이것들이 어떻게 규명되느냐에 따라 해적의 총격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은 물론이고 납치 전모의 확인, 나아가 우리 해군 작전의 적절성까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의 초점도 여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탄알과 관련한 다양한 숫자들 ‘6, 5, 4, 3, 2, 1.’ 석 선장 몸에 난 총알 상처는 모두 6개다. 해적이 해군의 진압작전에 저항하면서 석 선장이 맞은 총알은 모두 4, 5개로 추정된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한국인 선원들은 4발의 AK소총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여기에 해군이 쏜 총알까지 합치면 5발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1개의 탄알이 몸을 2번 스쳤을 수도 있다. 총알이 4발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의료진이 석 선장의 몸에서 제거한 탄알은 모두 4개. 이 중 현재 해경이 확보한 탄알은 3개다. 오만 현지 의료진이 1차 수술 과정에서 복부 위쪽에서 적출한 탄알 1개는 우리 의료진이 귀국 과정에서 분실했다. 3개의 탄알 가운데 1개는 우리 해군의 탄알로 추정됐다. 나머지 2개 중 하나는 해적이 사용하는 AK소총의 탄알로, 나머지 1개는 피탄(튕겨서 맞은 것) 즉 선박 부품으로 확인됐다. 결국 현재 해적이 쏜 총알은 유일하게 하나만 확보된 셈이다. 수사팀은 이제 유일하게 남은 AK소총의 탄알만으로 해적의 총격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셈이다. 수사팀으로서는 탄알 분실이 매우 뼈아프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AK소총탄이 치명상 입힌 듯 석 선장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은 바로 복부 위쪽에 맞은 총알이다. 이 총알은 오만의 현지 의료진이 제거했다. 하지만 이 총알은 우리 의료진이 분실했다. 따라서 이 총알이 해적이 쏜 총알인지 아니면 우리 해군의 총알인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현재 수사팀이 확보한 AK소총 탄알은 해적이 석 선장의 옆구리에 쏜 총알로 보인다. 옆구리에 맞은 총알 역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제거한 총알 2개(피탄 1개 포함)는 모두 양쪽 허벅지에서 적출했다. 해군이 쏜 총알로 추정되는 것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는 석 선장에게 치명상을 입힌 총알은 아니라고 의료진은 전하고 있다.○ 총알 실체 수사는 검찰 몫 총기로 사람을 살해 또는 살해하려 했을 때 피해자 몸에서 나온 총알은 중요한 물증이 된다. 석 선장에게 치명상을 입힌 복부에 박혔던 총알이 해적이 쏜 것인지, 해군이 쏜 것인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잃어버린 탄환이 어떤 종류인지 밝혀내는 것 또한 주요 피의자인 무함마드 아라이의 범행을 입증하는 데 중요한 증거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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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해경 “삼호주얼리호 운항 정보 해적선 이란선원이 제공”

    소말리아 해적들은 선박을 납치하기 위해 출항할 당시부터 삼호주얼리호 운항 정보를 파악한 뒤 25일간의 항해 끝에 표적 납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석해균 선장(58)을 쏜 것은 해적 1명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다. 수사본부는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탄환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감식한 결과 해적이 사용한 AK 소총의 탄환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6일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 따르면 소말리아 푼틀란드 출신 해적 13명(사살 8명, 생포 5명)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1월 15일)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중순 팀을 꾸렸다. 이들은 같은 달 22일 40∼50t급 이란 국적 어선을 모선으로 삼아 소말리아 가라드 항을 출항한 뒤 납치할 선박을 찾아다녔고 약 15일간 총기 조작, 사격술, 사다리를 이용한 선박 진입훈련을 했다. 가라드 항과 선박 납치 지점은 직선거리로 약 1500km다.이들은 모선에 타고 있던 이란 국적의 선원에게서 삼호주얼리호 운항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해적과 이란 선원의 관계, 해적의 이란 선박 획득 경위, 이란 선원의 운항 정보 획득 경위는 밝혀내지 못했다.석 선장을 쏜 해적은 무함마드 아라이(23)로 그는 아덴 만 여명작전 당시 조타실에서 총을 들고 경비를 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아라이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했다.그러나 수사본부는 삼호드림호, 금미305호 등 과거 피랍된 한국 선박과 이들 해적의 연관성 여부, 해적들의 배후는 밝혀내지 못했다. 수사본부는 “사건을 주도한 두목 아브디 리스끄 샤끄(28)가 사망한 데다 생포한 해적들도 ‘잘 모르겠다’며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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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모선, 25일간 삼호주얼리호 추적했다

    《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조사 결과 해군 작전 과정에서 사살된 해적 두목 아브디 리스끄 샤끄(28)는 7차례의 선박 납치 경험이 있는 것으로 6일 드러났다. 또 해적이 선원들의 소지품을 뒤져 강탈한 현금과 귀중품은 모두 2750만 원어치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 수사본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수사결과를 7일 발표한 뒤 해적 5명의 신병과 수사기록을 검찰에 넘길 계획이다. 》 ○ 해적 공모 해적 13명은 소말리아 북부 푼틀란드 지방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중순경 선박 납치 등을 목적으로 팀을 꾸림. 같은 달 22일경 이란 국적 40∼50t급 어선을 모선으로 소말리아 가라드 항을 출항한 뒤 납치할 선박을 찾아 약 25일간 항해. 이 과정에서 총기조작 및 사격술과 사다리 이용한 선박 진입 훈련을 약 15일간 받음.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이들은 삼호해운㈜에 몸값을 요구하는 등 사전에 해적 행위를 공모. 삼호주얼리호 표적 납치는 사건을 주도한 해적 두목이 숨져 수사 못함. ○ 선박 강취 및 선박 운항 강요지난달 15일 오전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 해 공해상을 항해 중이던 삼호주얼리호에 대전차로켓포 등으로 무장한 해적 5명이 먼저 스키프보트(고속단정)를 타고 접근한 뒤 갈고리가 연결된 로프와 사다리 등을 이용해 배에 올라타고 선박을 납치. 나머지 해적 8명은 2차로 배에 올라 선미 로프창고에 숨어 있던 선원들을 살상용 무기로 위협. 또 조타실과 선실 등에 감금한 뒤 항로를 해적 본거지인 소말리아로 향하도록 강요. ○ 몸값 요구해적들은 두 차례에 걸쳐 석해균 선장을 통해 삼호해운에 전화를 걺. 해적 두목은 삼호해운 관계자에게 “우리는 돈을 원한다. 돈을 준비해라. 소말리아로 입항한다”며 몸값을 요구.○ 청해부대 작전 대항청해부대 진압작전 당시 해적들은 조타실 옆 외곽에 한국인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세움. 해적들은 갖고 있던 살상용 무기류 등으로 진압하던 해군 장병 3명을 살해하기 위해 조준사격.○ 석 선장에 대한 해상강도 살인미수생포한 해적 가운데 1명은 지난달 21일 해군 진압작전이 시작되자 조타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석 선장을 살해하기 위해 지니고 있던 소총을 발사해 석 선장에게 의식불명 상태의 중상을 입힘. 조타실에 있던 한국 선원들의 일관된 진술과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AK 소총 탄환, 조타실 바닥 총탄 흔적 등으로 해적 1명이 석 선장에게 총을 쏜 사실이 입증됨. ○ 여죄 수사지난해 10월 해적에게 납치된 원양어선 금미305호 등 과거 우리 선박 피랍과 이들의 연관성 여부를 조사했지만 생포된 해적들은 모두 “모른다”며 일관되게 진술해 관련성 확인 못함. ○ 수사 결론해적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위력을 이용해 해상에서 삼호해운 소유 삼호주얼리호(시가 500억 원 상당)와 선박에 실려 있던 화물(시가 70억 원 상당), 선원 소지품을 뒤져 현금과 귀중품 등 2750만 원 상당을 강취.또 스리랑카로 향하던 삼호주얼리호 항로를 강제로 변경. 배에 있던 석 선장 등 21명을 인질로 잡고 선박 운영사에 몸값을 요구했지만 삼호해운이 응하기 전에 해군에 진압돼 미수에 그침. 이런 점으로 볼 때 해상강도 살인미수, 선박 및 해상구조물에 대한 위해행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인질강도 살인미수,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살인미수의 죄책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함.▼‘해적수사 매뉴얼’ 통했다▼소말리아 사진 보여주며 해적 자백유도 등 16가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58)에게 총을 난사한 유력 용의자인 무함마드 아라이가 총기 소유 사실을 인정하고 동료 해적 4명이 아라이를 용의자로 지목하는 등 ‘모르쇠’로 일관하던 해적들의 입이 열리고 있다. 여기에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마련한 ‘16가지 해적 수사 매뉴얼’(표)이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사법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해적 수사인 데다 2중 통역으로 수사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되자 수사본부는 미리 ‘필드 매뉴얼(FM)’ 형태로 만들었다. 해적 수사 매뉴얼은 피의자 인권 건강 종교 회유 수사기본 사항 위주로 꾸몄다. △소말리아 사진, 풍경, 영화를 보여주며 심리적 자극으로 회유 △국내 이슬람학자를 통해 회유 △조직, 범행 전모 등 부담 가는 내용 대신 순차 조사 △가족 또는 현지 조직원 확보되면 연결 △자술서 5회 이상 작성 등을 담았다. ‘해적이라도 인권은 존중하되 이번 해적 수사가 국제 표본이 될 수 있는 만큼 무리하지 말고 절차 등 수사기본을 착실히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백이 나올 수 있도록 해적 건강 상태에 관심을 두고 종교적 감성적 심리적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회유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시했다.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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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옥 같았던 146시간” 삼호주얼리호 피랍부터 구출까지

    146시간(6일 2시간). 삼호주얼리호가 해적에게 피랍된 순간부터 청해부대가 해적을 모두 무력화하고 선원들을 안전하게 구출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선원들은 모두 "지옥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석해균 선장(58)과 선원들은 지혜를 모으고 기지를 발휘했다. 피랍부터 구출까지. 선원들의 진술과 국방부 발표 등을 토대로 삼호주얼리호 안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시간 흐름에 따라 재구성했다. 시간은 모두 선상시간(船上時間)으로 표시했다.● 비상벨 울리며 "해적이 옵니다." 15일 오전 7시 반경. 삼호주얼리호 선원의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김두찬 갑판장(61)이 갑판부 선원을 모두 모아놓고 이날 할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직근무 일정을 전달할 때 쯤 갑자기 비상벨이 울렸다. 이 때만 해도 선원들은 '해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불났나 보다." 김 갑판장은 서둘러 선원들을 선내 곳곳으로 보냈다. 하지만 선실을 비롯한 실내에는 이상이 없었다. 기관실에서도 연기는 물론 타는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순간 당직근무를 서던 이기용 1등항해사(46)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렸다. "해적입니다." 당시 삼호주얼리호의 위치는 아덴만. 소말리아 해안에서 동북쪽으로 2000㎞ 떨어진 곳이었다. 두 달 전 약 950만 달러(약 106억 원)를 주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던 같은 회사 소속 삼호드림호는 지금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1200㎞ 지점에서 납치됐다. 일단 몸을 숨겨야 했다. 혹시라도 해적들이 기어 올라오는 데 쓰일까봐 눈에 보이는 모든 로프를 챙겨 대피소에 몸을 숨겼다. 1항사가 이동용 무전기를 이용해 대피소 구조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해부대는 너무 멀리 있어서 답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답신을 보낸 배도 너무 멀리 있었다. 대피소로 숨어들기 전 정만기 기관장은 해적들이 배 오른쪽 중간 정도 지점에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작은 고속정을 삼호주얼리호 옆에 바짝 붙인 이들은 능숙하게 사다리를 걸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배수량이 1만2000t에 육박하는 벌크선에 작은 고속정을 갖다 붙이는 솜씨도, 출렁이는 배에 사다리를 걸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배를 장악하는 솜씨도 '프로급'이었다. 첫 해적이 올라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해적을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20분도 채 안 됐다. 오전 8시 반 정도 되자 우르릉거리던 엔진소리가 사라졌다. 해적들이 엔진을 끈 모양이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충격을 받은 듯 흔들렸다. 해적 모선(母船)이 접안한 것 같았다. 대피소에 숨은 선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잠시 후 대피소 바깥에서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조타실을 비롯한 선실을 샅샅이 뒤져 대피소를 찾아낸 것. 하지만 육중한 철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화가 난 해적들은 바깥에서 총을 쏘아대기도 했다. 문은 3시간여 만에 열렸다. 주로 쓰는 출입문 외에 평소에는 막아놓는 동그란 출입문을 쇠파이프를 꽂아 젖히고 열었다. 하나, 둘, 셋… 해적 13명보다 먼저 선원들의 눈에 들어온 건 총 13정이었다. 해적 모두 총 한 자루씩을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휴대용 로켓포 RPG-7과 기관총도 눈에 띄었다. 해적들은 복잡한 AK소총을 1분 안에 모두 분해·조립해 낼 만큼 개인화기를 능숙하게 다뤘다.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한 해적들은 양말에 칫솔까지 선원들의 물건을 모두 빼앗는 '노략질'을 시작했다. 선원들에게 둘째 날부터는 두 끼를, 셋째 날부터는 한 끼만 먹도록 했다. 선원들끼리 얼굴을 마주보고 한국말로 대화만 해도 주방용 칼을 들이대며 협박을 했다.● 청해부대와 선원들이 양공 펼친 1차 교전 피랍 2일째인 17일 오후 11시경. 삼호주얼리호는 최영함과 만났다. 해적들은 삼호주얼리호를 모선으로 해 근처에 있는 몽골 선박을 납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5시간가량이 지난 18일 오후 2시 반경. 해적들은 김 갑판장에게 자신들의 고속정을 바다에 내릴 것을 지시했다. 김 갑판장의 기지는 여기에서 빛났다. 삼호주얼리호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자선(子船)을 바다로 내려주는 역할을 하던 김 갑판장은 해적들이 고속정을 내리라고 명령했을 때 '해적들을 바다에 빠뜨리고 고속정도 침몰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선을 내릴 때는 모선을 정지시켜야 하지만 갑판장은 삼호주얼리호를 정지시키지 않은 채 해적 5명이 탄 고속정을 그대로 바다에 내렸다. 김 갑판장의 생각처럼 배가 뒤집히지는 않았지만 고속정엔 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이 들어찼다. 해적들이 배에 찬 물을 퍼내는 사이 해적의 기동을 눈치 챈 최영함에서 링스헬기가 떠올랐다. 해적들은 고속정을 버리고 허겁지겁 삼호주얼리호로 올라왔다. 반면 모선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해적 중에서도 무기를 가장 능숙하게 다루던 두목 오디 아비사르(28)는 최영함에서 내린 고속단정 두 척이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기관총을 장전한 두목은 해군 고속정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길 기다렸다. 선원들이 옷을 벗어 흔들며 해군 고속정에 신호를 보냈지만 해군은 이 신호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청해부대 고속정이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자 두목이 들고 있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고속정은 급히 방향을 틀어 양 쪽으로 갈라졌지만 이 과정에서 두목이 쏜 총에 부대원 세 명이 부상을 당했다. 1차 구출작전은 실패했다. 잇따른 선원들의 행동에 화가 난 해적은 폭력적으로 변했다. 석 선장에게는 수시로 개머리판이 날아들었다. 갑판장이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난데없이 팔꿈치를 날려 앞니 3개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주변에 배가 있을 때는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 선원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선장에게는 밥을 주지 말라는 명령도 뒤따랐다. 이번엔 정상현 조리장(57)이 활약했다. 다른 해적들보다 상대적으로 순하고 함께 조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해적 압둘라 시룸을 설득해 식사시간이 끝난 후 석 선장의 끼니를 몰래 챙겨줬다.● 2차교전-선장을 쏜 아라이 구타와 감시 속에서 또다시 이틀을 보냈다. 피랍 7일 째인 21일 새벽 4시 58분. 조타실에서 쪽잠을 자던 최진경 3등항해사(25)는 헬기소리와 총소리를 듣고 놀라서 잠을 깼다. 조타실 멀리서 빛줄기가 삼호주얼리호를 향해 휙휙 날아들었다. 예광탄(曳光彈) 궤적이었다. 해는 뜨지도 않은 어둠 속이었다. 피랍 기간 내내 선원들을 가장 많이 괴롭힌 무함마드 아라이(23)가 조타실에서 함께 자던 석 선장과 김 갑판장, 손재호 1등기관사(53) 등을 모두 일으켜 세워 총알이 날아오는 곳에 세웠다. '인간 방패'를 만든 것. 최 3등항해사와 이기용 1등항해사(46)는 다른 해적들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끌려 나갔다. 총알이 '퓽 퓽'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스쳐갔다. 엄청난 폭음 사이로 한국말이 들렸다. "선원은 모두 엎드리세요!" 아라이의 협박보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석 선장과 선원들은 해적들이 잠을 자기 위해 조타실에 가져다놓은 매트리스를 뒤집어쓰고 납작 엎드렸다. 그 때부터 해적 중 한 명이 갑자기 "캡틴 캡틴"을 외치기 시작했다. 매트리스를 하나하나 들추던 해적은 석 선장과 김 갑판장이 함께 뒤집어쓰고 있던 매트리스를 뒤집은 뒤 김 갑판장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발로 차버렸다. 발에 채여 나뒹굴던 김 갑판장은 이 해적이 옆에 있던 석 선장을 확인한 후 총을 쏘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따·따·따·따" 네 번의 총성이 울렸다. "뚜뚜뚜"에 가까운 한국군의 총소리와는 확연히 구분됐다. '누군가 선장에게 총을 쐈구나.'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정 조리장의 몸에도 소름이 돋았다. 해적이 총을 쏘는 순간 엎드려 있던 선원 한 명이 조타실 바깥으로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손 기관사였다. 그는 기관실로 부리나케 달렸다. 머릿속엔 '엔진을 꺼야 우리가 산다'는 생각뿐이었다. 손 기관사가 엔진을 정지하는 순간 배에 설치된 비상발전기가 작동하면서 조타실 실내에 불이 들어왔다. 주변이 밝아지자 해적의 윤곽만 보였던 김 갑판장의 눈에 해적의 얼굴까지 똑똑히 들어왔다. 역시 아라이였다.●146시간보다 길었던 5시간 밖으로 끌려 나가던 이 1항사와 최 3항사 역시 총격이 심해지자 납작 엎드린 채 화장실로 숨어들어갔다. 최 3항사의 머리 속에 부모님과 여자친구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해도(海圖)실로 숨어들어갔다. 석 선장과 김 갑판장이 있던 조타실이나 해도실은 철판이 2, 3중으로 되어 있고 나무 벽까지 설치된 곳이어서 총알이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데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 때 정상현 조리장의 귀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해적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 군이다.' 발자국이 아주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귀를 찢는 듯 한 총소리가 몇 발 더 들렸다. 마지막 총소리였다. 이후 더없이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 해군입니다. 한국 선원들 나오세요." 김 갑판장을 뺀 다른 선원들은 석 선장이 아라이가 쏜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선원들의 마음이 놓이기도 전에 갑판장은 청해부대원들에게 "선장이 총에 맞았다"고 외쳤다. 곧바로 도착한 의무병이 석 선장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 다음 석 선장은 미 해군 헬기로 긴급 후송됐다. 상황 종료. 선원들은 그제서야 함교 문을 열고 나와 아덴만의 아침햇살을 만끽했다. 피랍 146시간, 작전개시 4시간 58분 만에 맞는 '자유의 빛'이었다.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부산=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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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아라이, 선장 회복 소식에… 총기소유 시인”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을 수사 중인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5일 “선박 납치 혐의(선박 위해법), 석해균 선장에 대한 총격 혐의(해상강도 살인미수), 청해부대 1차 구출작전 때 작전을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등으로 해적 피의자에 대한 조사를 대부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특히 석 선장에게 총을 난사한 용의자인 무함마드 아라이(23)가 “총을 만져본 적도 없다”던 태도와 달리 이날 조사에서 “총을 가지고 있었다”며 총기 소유 사실을 처음 인정했다고 수사본부는 설명했다. 이에 앞서 아라이는 2일 한국 선원과의 대질조사에서는 “저들이 어떻게 나를 정확히 알아볼 수 있나”라며 석 선장에 대한 총격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자백을 하면 감형 사유가 될 수 있다는 한국 형법체계를 설명하고 석 선장의 건강이 회복됐다는 뉴스 화면을 보여줬더니 아라이가 심적 변화를 보였다”며 “석 선장에게 총을 쐈다는 자백을 받아내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김두찬 갑판장(61)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2차 구출작전에서 아라이는 우리를 인간방패로 삼았다”며 “구출작전 과정에서 엔진이 멈춰 비상발전기가 작동하면서 조타실 내부 불이 켜졌을 때 파란색 셔츠를 입은 아라이가 선장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봤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선원도 “해군 총소리는 ‘뚜 뚜 뚜’였지만 해적 총소리는 ‘따 따 따’라서 구분할 수 있었다”며 “아라이가 선장에게 총을 쏠 때 난 소리는 ‘따 따 따’였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김 갑판장 외에도 한국인 선원 2명과 미얀마인 선원 1명에게서 “아라이가 쐈다”는 진술을 추가로 확보했다. 동료 해적인 아울 브랄라트 등 나머지 해적 4명도 총기 난사범으로 아라이를 지목했다. 수사본부는 청해부대가 해적에게 뺏은 총기에 남은 지문을 감식하는 한편 석 선장 몸에서 제거한 탄환과 총기를 대조하기로 했다. 수사본부는 7일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8일 부산지검에 해적 5명의 신병과 수사기록을 넘길 계획이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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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만기 기관장 “해적, 소뼈 써는 중국집 큰 칼로 위협했다”

    삼호주얼리호 정만기 기관장(58)은 "해적들은 소뼈를 썰 때 주로 사용하는 중국집 큰 칼을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협박했다"며 2일 밝혔다. 이날 귀국한 직후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은 그는 "와인 병 형태의 4홉(640㎖)들이 큰 병으로 구타도 했다"며 "일부러 기관고장을 일으키게 지시를 내린 석 선장은 특히 많이 맞았다"고 전했다. 또 "해적들이 배를 점령한 뒤 대피소에서 3시간15분가량 대피했지만 해적들은 맨홀 커버를 뚫고 총을 들고 왔다"며 "두 손을 깍지 끼게 하고 머리에 손을 올리는 방법으로 끌려갔다"고 피랍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석 선장께서 완쾌되도록 계속 기도하고 응원할 것"이라며 "내일쯤이나 삼호주얼리호 선원들과 함께 직접 문병을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 기관장과의 일문일답. -피랍당시 상황은?"저는 잘 모른다. 기관실에 있었기 때문에. 기관실로 막 내려가려던 참이었다."-해적들이 배에 올라왔을 때 대피소에 있었다고 하는데?"나는 브릿지에서 해적을 발견하고 비상벨을 울렸다. 기관실에 내려가는 와중에 도중이었다. 1기사랑 외국인 선원과 대피소로 갔다."-석 선장 지시로 기관 고장을 일부러 냈다고 하는데?."기관고장은….아~ 그거 설명하자면 길다."-그럼 해적이 어떻게 올라오는지 봤나?"기관실에 내려가는 중이어서 못 봤다."- 21명이 대피소에 다 대피했던 상황인가?그렇죠. 3시간이 넘었죠. 3시간 15분 동안."-해적들이 대피소 어떻게 들어왔나?대피소 문이 2군데 있다. 정식으로 나 있는 문이 있고 위에 맨홀 커버라고 해서 거기가 또 하나 있다. 환기구는 아니고 로프를 집어넣는 구멍이다. 맨홀 커버로 들어왔다. 총을 들고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 -구타와 협박이 심했나?"아 그럼요. 선장은 많이 맞았다. 나도 2군데나 맞았다. 칼로 위협했다. 그냥 칼이 아니라 조리장이 소뼈 써는 칼이다. 중국집에서 쓰는 사각형 칼, 큰 칼 있지 않나. 계속 그거 들고 따라다녔다. 집단 구타는 없었다." -구출작전 당시 상황은?"그때도 기관실에 있어서 모르겠다."-피난처에서 해적들이 뭘 지시했나?"인질로 잡혔잖아요. 깍지를 끼고 머리에 손을 올리고 해적들이 가는 방향으로 같이 따라갔다. 제일 마지막에 나가서 총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생포된 해적 가운데 두목이랑 부두목 없는 거 맞나."맞다. 사살됐다." -제일 악랄했다는 두 명이 두목 부두목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그건 모르겠네요. 주로 두목이랑 세컨이랑 많이 접촉해서 다른 애들은 잘 모르겠다."-폭행 많이 했다는 사람들이 두목은 아닙니까?"두목은 아니다."-무엇으로 때렸나."병이다. 무슨 병이더라…. 와인 병 같은 것이다. 4홉들이 정도 되는 병이다."-사살되는 사람이 두목인지 부두목인지 확인되나? "두목은 확인된다. 내가 안다. 두목 살해되는 장면은 못 봤다."-주로 어떤 때 폭행했나.조타를 1기사하고 작전해서 고장 냈을 때다. 조타를 정상으로 복귀하는데 한 18~20시간 걸렸다. 빨리 복귀 안 시킨다고 그것 때문에 선장이 구타 많이 당했다. 살해위협까지 당했다. 저한테 영향도 왔었다."-무함마드 아라이와 김두찬 갑판장은 대질했나?"했나. 그 내용은 확실히 모르겠다. 김두찬 갑판장이 확실히 알고 있다. 해적이 부인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얘기는 진술 다 했다. 너무 피곤하다. 어제 잠을 2시간 밖에 못 잤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선장님 뵈야 된다. 내일이라도 갈 수 있으면 가볼 생각이다." -선장님께 하고 싶은 말은?"빨리 회복하셔야 합니다. 완전히 완쾌돼야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저희가 직접 가서 응원할 겁니다. 내일이나 갈까 생각 중이다. 다 같이 갈 생각이다. 일단 전화를 해보고 갈 상황이 되면 가겠다." 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부산=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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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찬 갑판장 “아라이는 악질이었다”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58)에게 해적들이 총을 쏜 장면을 목격한 김두찬 갑판장(61)은 "(석 선장을 쏜 해적인)무함마드 아라이는 악질이었다"고 2일 말했다. 그는 해적들을 툭하면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목을 칼로 긋는 시늉을 하며 협박했다"며 "나는 해적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협박을 많이 당했다"고 설명했다. 김 갑판장은 귀국한 직후 이날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서 무함마드 아라이와 대질심문 조사를 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라이와 대질 심문 했나? "했다" -아라이가 그렇게 악질이었나? "맞다." -아라이가 석 선장에게 총을 쏜 사실을 부인했나? "그렇다." -대체로 해적들이 혐의를 부인하나? "그렇다." -해적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나? "나는 배를 올리고 내리는 일을 했기 때문에 해적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해적이 어떤 협박을 했나? "해적들은 툭하면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목을 칼로 긋는 시늉을 했다" -심경은 어떤가? "만약 해안까지 끌려갔으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나를 살려주신 국가와 회사에 감사드린다."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부산=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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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경 삼호주얼리호 3등 항해사 일문일답

    삼호주얼리호 3등 항해사 최진경 2기사(28)는 2일 소말리아 해적 납치 상황에 대해 "해적들이 사다리를 타고 선박으로 올라온 뒤 10~20분가량 총알을 퍼부었다"며 "대피소에서 3시간가량 버텼지만 맨홀을 뚫고 해적들에게 피랍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목과 부두목은 사살됐고 사살 장면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최 2기사는 이날 6시간가량 수사본부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답했다. 다음은 최 2기사와 일문일답. -구출작전 당시 상황?"브릿지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빨간 불빛이 나왔다. 해적들이 모든 선원을 밖으로 나가라고 협박했다. 그러다 유리창들이 마구 깨지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살려고….여기저기 정신없이 도망 다녔다.-시간이 어느 정도였나? "시간 자체는 오래 안됐는데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총알 퍼붓는 시간만 한 10분~20분 된 것 같다."-해적들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나?"그렇다." -두목과 부두목은? "사살됐다." -사살 장면 봤나? "(잠시 생각하다가) 직접 봤다." -피랍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1항사님이 항해일지 쓰고 있는데 조난신호를 보내고 이후 피랍방송 나오고 해서."- 해적이 어떻게 왔나? "사다리 타고 왔다." -배 뒤로 왔나? "아니다. 선체 중앙으로 왔다." - 해적들이 올라와서 어떻게 했나 "대피소에 가서 3시간 버텼는데….-모든 선원들이 다 대피소에 들어갔나? "그렇다." -그럼 문을 따고 들어온건가? "3시간은 버텼는데 그 앞에 강화문은 못 뚫고 위 쪽에 그 맨홀 뚜껑이 있는데 그 맨홀이 뚫렸다."-지금 뭘 하고 싶은가? "자고 싶다."-해적들이 올라와서 때리기도 하고 심하게 대했다는데 어떻게 된 건가? (갑자기 표정 굳어지며 차로 이동)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부산=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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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찬 갑판장 “무함마드 아라이가 석 선장 쐈다”

    "무함마드 아라이(23)가 분명하다. 이 놈이 석 선장 바로 옆에서 해적이 소총을 쐈다. 급박하고 정신도 없었지만 그건 똑똑히 기억한다. 범인이 누군지 분명히 안다. 경찰 조사에서 똑똑히 지목했다." 삼호주얼리호 한국인 선원들이 피랍 19일 만인 2일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을 했다. 석 선장에게 총을 난사한 해적을 목격한 김주찬 갑판장(61) 등 선원 7명은 곧바로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서 피랍과 구출과정까지 상황을 진술했다. ●갑판장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총부를 겨눈 놈이다" 김 갑판장은 무함마드 아라이를 지목한 이유에 대해 간결하게 진술했다. "당시 석 선장과 같이 있었다. 아라이를 기억하는 것은 선장 옆에 있는 내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총도 내게 겨눴다. 해군이 구출 작전에서 총알이 빗발치지 않았다면 나도 총에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적들은 내가 선장과 이야기만 해도 발로 밟고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해적이 휘두른 개머리판에 맞아 앞니 3개가 통째로 빠졌다. 나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친 놈은 사살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오후 진행된 아라이와 대질 조사에서도 "이 해적이 맞다. 석 선장을 쏜 것은 이 녀석이다. 틀림없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선원들 "해적들에게 수시로 맞았다" 피랍 당시 선원들은 해적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진경 3등 항해사(25)는 "해적은 선장, 조기장 등을 주로 폭행했다. 틈만 나면 'Kill(죽이겠다)'고 소리쳤다. 일주일가량 해적들과 함께 있어서 선장에게 총을 쏜 해적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정만기 기관장(58)은 피랍과 구출 당시 "당직근무를 제외하고는 외국 선원과 한국 선원 15~16명 정도가 모두 선교에서 해적들과 함께 있었다"며 "구출작전이 시작되고 나서는 수천발의 총탄이 쏟아지는 소리가 엄청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또 "선원들에게 악랄하게 폭행을 일삼던 해적 2명은 구출작전 과정에서 죽었다"고 전했다.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은 여전히 피랍 당시의 악몽에 시달리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고 가족들과의 만남 등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오후 4시 현재까지 수사본부에서 2차 피해자 진술 조사를 받고 있다.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부산=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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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들 4大조직 ‘푼틀란드’ 소속 추정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은 소말리아 해적 4대 그룹 가운데 하나인 ‘푼틀란드 그룹’인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해경 조사 결과 선박을 납치한 해적 대부분이 소말리아 동북쪽 해안 지역인 푼틀란드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1일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 따르면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 13명(사살 8명, 생포 5명)은 19∼29세 청년이다. 이 가운데 10명은 푼틀란드 내 같은 지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포한 해적들은 두목을 아브디 리스끄 샤끄(28)로 지목했다. 해군 작전 당시 사살된 샤끄는 푼틀란드 갈카요 출신이다. 역시 사살된 부두목 수티 알리 하루(29)도 갈카요에서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사람을 비롯해 생포 또는 사살된 해적 10명이 갈카요에 살고 있었다. 해적들 출신지가 대부분 푼틀란드 지역인 만큼 푼틀란드 그룹이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유력한 단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해경은 추정하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적은 푼틀란드 그룹 등 4개 조직, 16만 명으로 이뤄져 있다. 푼틀란드 자치주 연안 항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푼틀란드 그룹은 조직원이 1만여 명에 이른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최대 군벌인 하위야가 거느린 13만 명 규모의 소말리아 해병대(SM). 북부 하라데레 항을 거점으로 활동한다. 2006년 동원호 납치와 지난해 마부노1·2호 납치 사건도 SM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남부 키스마요 항 연안에 주둔 중인 NVCG(조직원 1만 명), 남부 미르카 항 연안에서 활동 중인 마르카 그룹(조직원 5000명)이다.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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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뚱한 해적… “귀화하면 안될까요”

    한국으로 압송된 소말리아 해적 중 한 명이 특별수사본부 조사에서 귀화 요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 관계자는 31일 “해적 5명 가운데 압둘라 시룸(21)이 지난달 30일 조사에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 한국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해경에 따르면 요리사 출신인 시룸은 한국에 압송된 이후 “한국은 매우 좋은 나라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유치장에 입감된 다른 해적들도 “아프리카에 있는 어지간한 호텔보다 한국 유치장이 낫다”는 말을 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해적들은 또 한국 사람을 납치하고 총부리까지 겨눈 범죄자 신분인데도 얼굴을 가리고 경찰력을 동원하는 등 우리 정부가 이들의 인권 및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도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해적들이 희망대로 한국 국적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강력 전과범은 귀화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과자라고 모두 귀화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죄가 무겁고 고의성이 명백하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이들은 부산 압송 후 지금까지 제공된 한식 백반을 남기지 않고 먹을 정도로 한국 음식에도 잘 적응했다. 해적들을 수감하고 있는 부산해양경찰서 측은 “해적들이 31일 아침에 제공된 밥과 김치, 두부구이 등을 ‘굿(Good)’이라는 감탄사까지 연발하며 모두 남김없이 비웠다”며 “특히 쌀밥과 김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요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말리아인들의 주식은 찰기가 없고 길쭉한 쌀인 ‘인디카’. 야채도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맵게 양념을 한 김치는 양념을 거의 쓰지 않고 요리하는 소말리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일부 해적들은 앞으로 큰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태라고 해경 측은 전했다. 해적 중 나이가 가장 어린 학생 출신 아울 브랄라트(19)는 지난달 30일 경찰 조사 도중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시종일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해적은 조사를 받다가 “석 선장이 살아 있느냐”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고 해경은 설명했다.해적들은 군인(알둘라 알리, 아부카드 아에만 알리)과 어부(무함마드 아라이)출신이지만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강추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부산해양경찰서는 이들이 열대지방 출신임을 감안해 유치장에 히터를 가동하고 바닥에 설치된 전기패널도 작동시켰지만 해적들은 “이불을 더 갖다 달라”고 요구하는 등 난생 처음 접하는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했다.해경이 해적들에 대해 비교적 좋은 대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우리 국민을 죽이려 한 해적을 왜 이렇게 환대하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해경은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국제사회에 한국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투명하고 엄정한 수사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부산=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201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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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포해적 5명 압송]석선장에 총 난사한 용의자 집중조사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을 수사 중인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30일 석해균 선장(58)에게 총을 난사한 주범으로 소말리아 해적 무함마드 아라이(23·사진)를 지목하고 집중 조사 중이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석 선장을 제외한 한국인 선원 중 일부가 해경에 보낸 피해자 진술조서에서 아라이를 지목해 “석 선장에게 총을 쏜 해적은 바로 그”라고 진술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부산지법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아라이의 동료 해적들은 “저 사람(아라이)이 선장에게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고 수사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아라이는 이날 경찰 조사에서 처음엔 “내가 석 선장에게 총을 쐈다”고 혐의를 인정했다가 곧바로 진술을 번복했다고 수사 관계자는 밝혔다. 수사본부는 이날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했다가 ‘아덴 만 여명작전’ 과정에서 우리 군에 생포된 아라이를 비롯해 압둘라 세룸(21), 압둘라 알리(24), 아부카드아에만 알리(21), 아울 브랄라트(19) 등 5명을 △해상강도 살인미수 △선박 및 해상구조물 위해(危害)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선박 위해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외국인 해적을 국내로 압송해 구속한 것은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수사본부에 따르면 이들은 이달 15일 낮 12시∼오후 1시경(한국 시간)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 해에서 삼호주얼리호와 선원 21명을 납치한 뒤 소말리아 해역으로 끌고 가면서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18일 청해부대 1차 구출작전 때 우리 군을 향해 총을 쏴 장병 3명에게 상처를 입히고, 21일 아덴 만 여명작전 과정에서 석 선장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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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5명 방3개에 수용… 일사천리 구속집행

    30일 오전 9시 55분 부산 동구 좌천동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정문에 멈춰선 호송버스 문이 열리자 해적들이 천천히 풀죽은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할 때 보여줬던 기세등등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명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1층에 마련된 수사본부로 힘없이 걸어 들어갔다. 나머지 세 명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모두 예상보다 앳된 얼굴인 이들의 나이는 19∼23세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해경은 이날 오전 4시 20분경 김해공항에서 해적 5명을 인수받고 현장에서 영어와 소말리어로 미리 적어간 미란다 원칙을 해적들에게 읽어준 후 사전구속영장 청구에 따른 구인장을 집행했다.○ VIP 경호급 압송 작전 압송을 맡은 해양경찰은 테러 등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해적들이 수사본부에 도착할 때까지 철통같은 경비를 폈다. 오전 4시 20분경 아랍에미리트(UAE) 왕실전용기가 김해공항 군사지역에 해적을 내려주자 신병을 인도받은 경찰특공대는 이들을 호송버스에 태워 오전 6시 25분경 공항을 빠져나왔다. 호송버스는 부산지방검찰청까지 약 40분 거리를 25분 만에 주파했다. 호송버스 앞뒤로는 경찰차 6대가 배치돼 취재차량을 통제했다. 수사본부인 남해해경에는 실탄을 소지한 특공대 7명이 상주하며 주변을 감시했다. 김충규 수사본부장은 “해적의 모습이 외신을 통해 보도될 경우 소말리아 해적들을 자극할 수 있어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에 앞서 소말리아 해적들을 국내로 압송한 전용기에는 UAE에 파견된 아크(Akh)부대원 10여 명도 탑승했다. 아크는 아랍어로 ‘형제’ 라는 뜻이다. ○ 12시간 반 만에 구속영장 발부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구속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지 12시간 반 만이다. 검찰 해경 법원 모두 국민적 관심사임을 감안해 사법처리 절차를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법원도 사건에 관심이 컸다. 주말이었지만 당직 판사 대신 부산지법 김주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직접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다. 사안의 중대성을 따진 것으로 보인다. 영장실질심사 결과도 1시간 27분 만에 결론이 났다. 부산지법은 “사안이 중대하고 도주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 빈틈없는 수사 준비 해양경찰은 해적 수사를 위해 50여 명의 ‘수사 엘리트’ 사단을 투입했다. 김충규 수사본부장은 1999년 신창원 검거사건을 진두지휘하는 등 부산에서 20년간 활약한 대표적인 강력수사통으로 꼽힌다. 25년 경력의 강력사건 전문가인 서래수 경정도 김 본부장을 도와 수사팀을 이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부산해양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돼 특별수사본부가 있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을 오가며 조사를 받게 된다. 부산해경 유치장은 12.5m²(약 3.8평)짜리 방 3개로 구성돼 있다. 현재 비어 있는 상태. 수사본부는 해적 5명을 방 3개에 나눠 수용할 예정이다. 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해적들에게 내복과 방한용 점퍼를 지급한다. 식사는 부산해경 구내식당에서 제공한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해적들이 이슬람교도라서 돼지고기를 안 먹지만 야전생활에 익숙해 대부분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부산=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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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포해적 5명 압송]소말리아어-영어-한국어 3단계 통역

    30일 국내 사법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해적들을 구속하고 석해균 선장(58)에게 총을 쏜 주범도 어느 정도 확인되면서 수사는 이들의 구체적인 해적활동을 샅샅이 밝혀내는 데로 집중되고 있다. 수사본부가 설치된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은 “유엔해양협약, 형법 등을 검토한 결과 혐의 입증을 자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석 선장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나머지 선원들도 한국에 없는 상태에서 짧은 기간에 수사해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소말리아어-영어-한국어로 이어지는 3단계 통역 과정도 수사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에서 또 다른 걸림돌이다. ○ 납치부터 생포 때까지 모든 행위가 수사 대상 해적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해상강도 살인미수, 선박에 대한 위해행위, 구출작전을 펼친 해군부대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 세 가지. 수사 대상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순간부터 청해부대의 인질 구출작전으로 생포될 때까지 모든 과정이다. 한국 선박 납치를 사전에 계획했는지 여부, 선박 강탈 뒤 강제 운항, 선원 억류와 인질 몸값 요구 등이 포함된다. 무엇보다 석 선장에게 총을 쏜 무함마드 아라이의 혐의를 밝혀내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다. 수사 첫날인 30일에는 장거리 비행, 시차 등을 감안해 오후 5시까지 신원확인 등 기본 조사만 벌인 뒤 부산해경 유치장으로 입감했다. 수사본부는 한국 선원 7명이 쓴 자필 진술서와 청해부대 구출작전 영상, 최영함 작전상황 일지, 삼호주얼리호 운항 일지 등 기초 수사 자료는 이미 확보했다. 해적들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오만에 있는 삼호주얼리호가 입항하면 한국인 선원과 미얀마인 선원들을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한다. 건강, 심리적 문제 때문에 경찰 출석이 어려우면 방문조사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과거 한국선박 피랍 연관성도 수사 수사 대상에는 동원호(2006년), 마부노호(2007년), 삼호드림호(2010년), 금미305호(2010년) 등 과거 소말리아 해상에서 납치됐다 풀려났거나 여전히 억류 중인 피랍사건도 포함돼 있다. 한국 선박만 노린 소말리아 해적그룹이 사건 주모자라면 생포 해적들이 옛 한국선박 납치 범죄에 가담했을 여지가 크기 때문. 이번 수사에서 현장 납치 주동자, 배후조종 세력 등을 밝혀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소말리아와 한국이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데다 소말리아 현지에 있을 배후세력을 검거하기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해적 가운데 일부가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직업을 ‘군인’이라고 밝힌 만큼 소말리아 군벌 소속과 국제 해적단체의 연계 여부도 조사한다. 석방 협상에 어려움이 많은 금미305호 문제를 풀 실마리가 있는지도 포함했다. 우리 선박과 소말리아 해적이 관련된 모든 부분을 수사 대상으로 볼 수 있다. ○ 통역, 범행 떠넘기기…수사 곳곳 난제 본격 수사는 31일 시작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문맹에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해적들을 장시간 상대해야 한다. 통역은 영어가 가능한 소말리아인 2명이 맡았다. 이들은 2003년부터 난민비자를 받아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 2명도 포함됐다. 수사관이 한국인에게 질문하면 한국 통역이 영어로 소말리아 통역에게 전달한다. 그 뒤 소말리아 통역이 해적에게 소말리아어로 바꿔 묻는 절차다. 대답은 반대 순서. 따라서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수사 속도를 낼 수 없다. 해적 가운데 1명이 아랍어를 일부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31일부터는 국내 아랍어 전공자 1명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수사 계획대로라면 피의자 범죄조서만 A4용지로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장 분량이 예상된다. 결국 통역이 수사 성공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사건기록을 넘겨받을 검찰도 같은 고민을 해야 할 처지다. 사건이 송치되더라도 다음 달 28일로 예상되는 기소 시점까지 밝혀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해적들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 충남 천안 외국인교도소에 수감된다. 모르쇠 전략도 뚫어야 한다. 해적들은 입을 맞춘 듯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많은 말을 쏟아냈다. “동료 해적이 선장을 쐈다” “다른 사람들이 배를 납치한 뒤 배에 탔을 뿐 관련 없다” “일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배에 탔다가 이상한 사건에 휘말렸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수사본부는 “이미 선원 자필진술서와 청해부대 영상 등 수사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 혐의 입증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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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수사 역풍 맞은 ‘檢客’… ‘劍’을 버리다

    한화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를 지휘해온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51·사법시험 25회)이 28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남 지검장은 이날 오전 11시 25분 검찰 내부통신망에 법정 스님의 저서에서 따온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제 저에게도 때가 왔다고 판단해서 정든 고향, 검찰을 떠나려 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이어 이날 오후 대검찰청을 통해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한화 수사 논란, 교체론에 반발 성격 검찰 안팎에서는 남 지검장이 최근 청와대와 법무부에서 고검장급 검찰 간부 인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화그룹에 대한 ‘과잉수사’ 논란을 문제 삼아 문책성 전보인사를 검토하자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 직전 검찰 내에서는 남 지검장이 대검 형사부장(검사장급)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흘러나왔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9월 수사를 시작한 이래 한화그룹이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380개로 1077억 원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인 홍동옥 여천NCC 대표의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는 등 9건 가운데 8건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과잉수사’ 논란이 일었다. 일부에서는 남 지검장이 김승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법무부 및 검찰 수뇌부와 이견을 보인 일도 사표 제출의 이유로 꼽았다. 서울서부지검은 김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법무부 등에서 “김 회장을 불구속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남 지검장은 주변 인사들에게 “검찰총장의 정식 지휘서신이 아니면 어떤 얘기도 듣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는 홍동옥 대표의 첫 영장이 기각된 뒤 ‘부실 수사’ 시비가 일자 지난해 12월 8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보다 ‘살아있는 재벌’에 대한 수사가 더 어렵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서울서부지검은 30일 김 회장 등 한화그룹 전·현직 임직원 14명을 일괄 기소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남 지검장 사퇴에 검사들 ‘부글부글’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지검장을 바꾸는 것은 부당한 압력 행사나 마찬가지”라며 남 지검장 교체론을 제기했던 법무부 등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남 지검장이 내부통신망에 올린 사직 인사 글에는 불과 4시간 만에 사퇴를 안타까워하는 후배 검사들의 댓글 150여 개가 달렸다. 남 지검장의 검찰 2년 후배인 최재경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뭐가 어쨌다고요. 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네요. 마음이 많이 상합니다”라고 적었다. 갑자기 수장을 잃은 서울서부지검도 충격에 휩싸였다. 봉욱 차장검사는 남 지검장의 사의 표명 직후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씀드릴 것이 없다”는 답변만 반복한 뒤 한화·태광그룹 수사팀 검사들을 모아 하루 종일 대책회의를 했다. 남 지검장은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끊은 채 집무실에 계속 머물다 오후 5시 50분경 퇴근했으며 평소 가깝게 지내던 검찰 선후배들과 밤늦게까지 통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날 검찰 내부통신망에 남긴 글에서 한화그룹 수사 얘기나 자신의 인사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훌륭한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기회 덕분에 정의감, 바른 자세, 억울한 사람 만들면 안 된다는 교훈 등 귀중한 가치를 배웠다”고 밝혔다.○ 검찰 내 대표적 강골 검사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남종삼(南鍾三·1817∼1866)의 종손인 남 지검장은 검찰 내에서 대표적인 강골(强骨) 검사로 꼽힌다. 평검사 시절 ‘강력통’으로 이름을 날렸고 2003년 대검 중수1과장으로 재직하면서 대선자금 수사 주임검사를 맡았을 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검찰로 소환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검찰 수뇌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처럼 비타협적인 성격 때문에 후배 검사들 사이에 그를 따르는 ‘남기춘사단’이 생길 정도였다.전성철 기자 dawn@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201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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